사도바울의 이 고백과 가르침에는 뭐라 답하시겠나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7)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신자? 누가? 인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나요? 참된 신자가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이유가 없었겠죠. 이 세상에 영생이 확정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칼빈주의자입니다. 영상 속 내용에서 만약 if라는 가정문으로 해석하더라도 논리적 오류는 해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당 구절이 참된 신자를 나타낸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정하고 가능함을 경고를 한 것이 되기 때문에 서로 모순이 된다고 봅니다. 이미 가정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령을 맛보고 빛에 참여한 자는 결코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곧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견인으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참된 신자도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 라고 가정하고 경고를 하신다는 점이 선뜻 와닿지가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정도 모순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모순적 내용을 제시하시며 경고하신다는 점이 의문입니다. 제 생각엔 차라리 전통적 입장인 애초에 참된 신자가 아닌 것을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이 논리적 오류가 적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빠르게 가기 위해 구절을 일일히 적지 않지만 앞뒷절도 아니고 최소 앞뒷장을 읽어보면서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서 6:4-8 - 사울의 경우에 하나님의 영이 깃들었고 사무엘이 기름부은 후 변화 받았다 합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신, 즉 그 영이 떠나가십니다. 구원을 잃은 것인데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불순종으로 인해 성령님께서 슬퍼하시고 떠나시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데마의 경우는 디테일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 합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데마의 그 구원의 증거와 성령님의 열매를 보지도 못하고 동역자라 소개하고 같이 사역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견인은 그의 택하신 백성, 즉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그 백성들에 대한 언약으로 이 점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올리브나무에서 떨어지고 이방인의 교회가 접붙힘을 받았으나 불순종, 불신으로, 즉 이것은 불법한것으로 하나님께서 잘라 버리십니다. 이는 성령님에 대한 모독으로 그 신이 떠나시면 생명의 근원이자,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우리를 책망하시는 성령님의 부재로 구원의 길이 없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견인하시는것이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우리가 믿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 그들의 제자들, 또 그들의 제자들 중 아무도 이러한 칼빈의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교회의 보존을 실패 하시고 진리가 부족하여 칼빈 (혹은 성어거스틴)이 새롭게 만들어야 했나요?
@@ChristIsMyKingAndImHisServant 하나님의 견인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편에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견인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견인하시기에 성도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서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의 택한자라 할지라도 범죄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가 나는 절대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하며 평생살아간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물론 성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성도라 할지라도 무죄한 자는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을 뿐이지 그 안에 죄성은 여전하며 연약하기에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서는 성령이 거하시다가 떠나기도 하시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신약시대 이후로는 성령이 한번 거하시면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행함이나 본인의 의로 구원받지않습니다 리더님께서 말씀하시는것은 결국 펠라기우스 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가까운 내용이며 칼빈주의와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입니다
요한일서1: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히6:4~6에서 거나 고 하는게 아니거든요. 가정해서 경고하는 거죠. 오히려 "진실한 신자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참으로 이같이 말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6:9)
뭐...지나가다가 영상을 본 한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음악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영상을 만드는 분이 그렇게 만들었는데 왜 그것 가지고 뭐라 그러는지. 설교자분의 논리가 저 음악과 감정, 큰 목소리와 분위기에 담겨있는데요? 성경은 글로 기록되었으며 그 글에는 문체와 분위기가 항상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처한 급박한 배경을 떠올려보면 아마 저자(인간 저자와 하나님 모두)는 저 설교자의 목소리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하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단지 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석이 안되니 그게 마음의 불편함으로 나타났을 것 같네요.
사도바울의 이 고백과 가르침에는 뭐라 답하시겠나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7)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신자? 누가?
인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나요?
참된 신자가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이유가 없었겠죠.
이 세상에 영생이 확정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칼빈주의 예정론도 어렵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수 밖에 없는가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칼빈주의자입니다. 영상 속 내용에서
만약 if라는 가정문으로 해석하더라도 논리적 오류는 해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당 구절이 참된 신자를 나타낸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정하고 가능함을 경고를 한 것이 되기 때문에 서로 모순이 된다고 봅니다.
이미 가정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령을 맛보고 빛에 참여한 자는 결코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곧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견인으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참된 신자도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 라고 가정하고
경고를 하신다는 점이 선뜻 와닿지가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정도 모순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모순적 내용을 제시하시며 경고하신다는 점이 의문입니다.
제 생각엔 차라리 전통적 입장인 애초에 참된 신자가 아닌 것을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이 논리적 오류가 적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빠르게 가기 위해 구절을 일일히 적지 않지만 앞뒷절도 아니고 최소 앞뒷장을 읽어보면서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서 6:4-8 - 사울의 경우에 하나님의 영이 깃들었고 사무엘이 기름부은 후 변화 받았다 합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신, 즉 그 영이 떠나가십니다. 구원을 잃은 것인데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불순종으로 인해 성령님께서 슬퍼하시고 떠나시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데마의 경우는 디테일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 합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데마의 그 구원의 증거와 성령님의 열매를 보지도 못하고 동역자라 소개하고 같이 사역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견인은 그의 택하신 백성, 즉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그 백성들에 대한 언약으로 이 점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올리브나무에서 떨어지고 이방인의 교회가 접붙힘을 받았으나 불순종, 불신으로, 즉 이것은 불법한것으로 하나님께서 잘라 버리십니다. 이는 성령님에 대한 모독으로 그 신이 떠나시면 생명의 근원이자,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우리를 책망하시는 성령님의 부재로 구원의 길이 없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견인하시는것이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우리가 믿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 그들의 제자들, 또 그들의 제자들 중 아무도 이러한 칼빈의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교회의 보존을 실패 하시고 진리가 부족하여 칼빈 (혹은 성어거스틴)이 새롭게 만들어야 했나요?
그니까요. 모르는걸 아는것 처럼 해석하다 보니 이런 해석이 나오는거죠. 목회자가 모르면 솔직히 모른다고 말할 용기도 필요합니다
@@ChristIsMyKingAndImHisServant 하나님의 견인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편에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견인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견인하시기에 성도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서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의 택한자라 할지라도 범죄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가 나는 절대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하며 평생살아간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물론 성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성도라 할지라도 무죄한 자는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을 뿐이지
그 안에 죄성은 여전하며 연약하기에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서는 성령이 거하시다가 떠나기도 하시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신약시대 이후로는 성령이 한번 거하시면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행함이나 본인의 의로 구원받지않습니다
리더님께서 말씀하시는것은 결국 펠라기우스 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가까운 내용이며 칼빈주의와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입니다
요한일서1: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저는 루터주의자입니다. 이 논쟁은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군요. 저도 공부해봐야겠습니다.
히6:4~6에서 거나 고 하는게 아니거든요. 가정해서 경고하는 거죠. 오히려 "진실한 신자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참으로 이같이 말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6:9)
지옥 가는게 디폴트인 세상에 태어나는것도 억울한데, 성경에서조차 택한 사람, 택한 사람 이러니까 진짜 미치겠어요
님이 회개하고 예수님 믿어서 구원받으면 그게 곧 택한 사람, 구원 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인거에요.
인간 입장에서 어차피 예정을 100% 이해 할 수 없어요
이 구절은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타락하면'이라는 IF절인 거네요.
참된 경고의 구절?
타락할 위험은 있으나 타락할 수 없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가있고 그 경고들에 대한 신자다운 반응들이 있어서 끝까지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
음악 넣지 마시고, 소리도 지르지 마시고 그냥 논리로만 정리해주시죠.
이런 내용은 감정이나 분위기에 호소할 내용이 아닙니다
저도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지만 솔직히 이 구절은 해석 안되네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다 교리에 끼워 맞춘 해석이란 생각만 듭니다.
뭐...지나가다가 영상을 본 한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음악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영상을 만드는 분이 그렇게 만들었는데 왜 그것 가지고 뭐라 그러는지.
설교자분의 논리가 저 음악과 감정, 큰 목소리와 분위기에 담겨있는데요?
성경은 글로 기록되었으며 그 글에는 문체와 분위기가 항상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처한 급박한 배경을 떠올려보면 아마 저자(인간 저자와 하나님 모두)는
저 설교자의 목소리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하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단지 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석이 안되니 그게 마음의 불편함으로 나타났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