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습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호한 틈 속에세숨 쉴 공간을 만들다니 감복해버렸네요.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내가 가자 어휘가 어떤 감정이 묻어 있고 또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선별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현실 너머로 떠남으로 현실을 지탱할 힘을 갖는 것을 텐데. 여기 못박혀 울고만 있는 처참한 삶의 서사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1년을 손 놓고 쓰지 못하고 있는데요. .많이 느끼게 합니다. 40 중반에 세상 모든 생명이 슬퍼서 울었던 어느 시기가 있어서요. 평생 기독교인적 없지만,강렬한 빛에 이끌렸던 신기한 경험과, 내가 아는 모든 지혜의 말이 내 가슴을 뚫고 가버려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강력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눈물. 눈물, 리히트님의 눈물이 신성하게 느껴집니다. 쿤테라-참존가 2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그때의 감동에 더해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픈 쿤데라였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 책을 관통하는 긴 끈이었음을, 뇌를 탁치게 됐고, 다시 또 읽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공공연히, 내가 읽은 소설 중에 참존가를 능가하는 것은 아직 없다 라고 말하는 저니깐요. 부디, 더 성장하는 유투브이길 바랍니다.
철학의 존재는 틈의 증명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제가 왜 철학에 끌렸는지 알아냈던 슬픈 시간의 경과, 질식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원하던 것을 얻었네요. 철학은 끝나지 않는 인간의 꿈을 지키는 경계이자 지금은 무용해지는 듯이 배척되는 저 마을 뒷구석의 폐가가 되어 마치 이야기만 전해져 옵니다만..때문에 꿈을 낳는 생명력으로 부활하게 되어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알던것인데 더 말하기 쉽게 되었네요. 덕분에 고맙습니다.
철학의 존재는 틈의 증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존재하는 동안 자유를 추구했지만, 현재 육신의 자유에 갇힌 존재입니다.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님서 보시기엔 육신적으로 저처럼 갇혀있는 존재도 또한 시지프스처럼 바위를 죽기 전까지 밀어야 할까요?
모호함은 아름다운 것... 멋져요. 타자를 온전히 알 수 없어서 우리는 그 사람이 없는 동안 그리워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도 감추고 싶거나, 혼자서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테니까요. 다만 그 사람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만났을 때 반갑게 웃으며 다시 어울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싶어요. 그 사람의 모든 걸 들추지 않고서, 용기 내서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면서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항상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어른들 덕분에 제가 정말 바보 같은 생각만 하고 있는줄 알았는데요, 바보임에도 행복함을 아는 제가 싫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렇게 영상을 보니, 제가 왜 바보이면서 행복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 속에서 자란 저는 아직 타자의 시선이 두렵지만, 그래도 본질을 놓지 않고 꼭 그 틈을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우연히 보게된 영상인데 그 어떤 영상보다고 제겐 힘이 되었습니다! ㅎㅎ
학생으로서 건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던 중에 이 영상을 접했는데, 어릴 적 공간이 삶의 '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실마리를 찾은 느낌입니다. 조금씩 생각해왔던 것들을 너무 잘 정리해주셔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 사람들이 각자 행복하게 시간을 즐기는 식당을 좋아한 것, 그리고 힘들때면 웹툰에 중독돼서 살아왔던 것도 틈을 찾기 위해서 일 수도 있겠네요.
리히트님 덕분에 밀란 쿤데라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알게되었어요. 6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제 맘속에 한 문장이 새겨진 것 같아요. 삶은 덧없어 가벼우나 생각은 도돌이표가 되어 무거움을 더한다. 앞으로 남은 여러 페이지들이 또 어떤 사유를 하게할지 즐거움이 큽니다. 좋은 책을 알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길 바라며.
이따금 유튜브 댓글을 읽다보면 감명 깊은 댓글이나 낯간지러워 보이는 댓글들이 눈에 밟혀요. 답글들은 '오글거린다' 같은 말로 웃어넘기는 댓글이지만 유튜버님이 책을 읽으며 우신 것처럼 오글거리는 댓글을 쓰는 것처럼 조금의 낭만은 우리를 숨트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얄팍한 지식으로 우쭐거리던 저에게 난 책을 읽으며 울은 적 있었던가?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상이네요. 잘 봤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단순히 국어 수행평가로 독후감을 써야해서 책방에서 책을 골랐는데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였습니다. 단순히 제목이 너무 흥미로워서 선택했었지만 제게는 철학의 시작이였네요. 니체의 영원회귀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막 읽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들이 참 많네요. 요즘 참 즐겁습니다.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참 부럽기도 하고 좋은 채널 발견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리추얼의 종말에서 나오는 신자유주의의 과잉한 진정성 추구와 맥이 닿는 것 같습니다.증명을 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그럼으로써 환상과 신비의 문턱이 없어지고 있고요... '난 차가 없다.'라고 말하면 차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차가 있다'라고 말한 사람들이 '내가 차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하나의 영상에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영상입니다. 과잉가시성...진정성....뭐 그런 것들입니다. 리히트님의 영상에는 여백이 있어서 좋습니다.
철학은 저마다의 지평선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시도인 것 같습니다. 죽음의 심연이 자아낸 불연속성은 그러나 자신의 지평선을 통해 영생의 틈을 노리는 자를 질식시킬 뿐, 그에게서 그 틈을 빼앗을 순 없습니다.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다는 것, 남은 자들의 호명에 떠난 이들이 언제나 그 이름을 내어주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저도 죽기 전에 밀란 쿤데라라는 사람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관점에 따라 고상하고 무거울 수도 천박하고 가벼울 수도 있고 죽고 난 이후엔 그 사람이 '타자'에 의해 '어떻게 기억' 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기억되겠죠. 망자(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의 경우만 생각하게 됨)는 사망 이후의 세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죠. 우리는 세상에 내 던져 진 (Geworfenheit) 존재입니다. 저는 어차피 죽을 인생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내 의지대로 살기 위해 살아왔는데, 현재 몸이 많이 불편해지고 더더욱 안좋아 지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동안 제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어요. 이럼에도 시지프스처럼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자이 오사무의 선택을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리히트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와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라이브는 매주 토요일 저녁 9시에 합니다!
작가를 얼마나 사랑해야 문장의 아름다움에 눈물까지 흘릴 수 있을까요.
짧은 영상에서 위대한 작가와 함께 살아가는 여린 독자를 보았네요. 아름다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을 습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호한 틈 속에세숨 쉴 공간을 만들다니 감복해버렸네요.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내가 가자 어휘가 어떤 감정이 묻어 있고 또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선별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현실 너머로 떠남으로 현실을 지탱할 힘을 갖는 것을 텐데.
여기 못박혀 울고만 있는 처참한 삶의 서사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1년을 손 놓고 쓰지 못하고 있는데요. .많이 느끼게 합니다. 40 중반에 세상 모든 생명이 슬퍼서 울었던 어느 시기가 있어서요.
평생 기독교인적 없지만,강렬한 빛에 이끌렸던 신기한 경험과, 내가 아는 모든 지혜의 말이 내 가슴을 뚫고 가버려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강력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눈물. 눈물, 리히트님의 눈물이 신성하게 느껴집니다.
쿤테라-참존가 2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그때의 감동에 더해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픈 쿤데라였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 책을 관통하는 긴 끈이었음을,
뇌를 탁치게 됐고, 다시 또 읽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공공연히, 내가 읽은 소설 중에 참존가를 능가하는 것은 아직 없다 라고 말하는 저니깐요.
부디, 더 성장하는 유투브이길 바랍니다.
만일 모든 것이 가시적이라면, 우리는 눈이 멀기를 꿈꿀 것이다. - 폴 비릴리오
요 문장 너무 좋네요
철학의 존재는 틈의 증명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제가 왜 철학에 끌렸는지 알아냈던 슬픈 시간의 경과, 질식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원하던 것을 얻었네요. 철학은 끝나지 않는 인간의 꿈을 지키는 경계이자 지금은 무용해지는 듯이 배척되는 저 마을 뒷구석의 폐가가 되어 마치 이야기만 전해져 옵니다만..때문에 꿈을 낳는 생명력으로 부활하게 되어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알던것인데 더 말하기 쉽게 되었네요. 덕분에 고맙습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글을 잘 쓰시는 거 같아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철학의 존재는 틈의 증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존재하는 동안 자유를 추구했지만, 현재 육신의 자유에 갇힌 존재입니다.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님서 보시기엔 육신적으로 저처럼 갇혀있는 존재도 또한 시지프스처럼 바위를 죽기 전까지 밀어야 할까요?
모호함은 아름다운 것... 멋져요. 타자를 온전히 알 수 없어서 우리는 그 사람이 없는 동안 그리워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도 감추고 싶거나, 혼자서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테니까요. 다만 그 사람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만났을 때 반갑게 웃으며 다시 어울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싶어요. 그 사람의 모든 걸 들추지 않고서, 용기 내서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면서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항상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어른들 덕분에 제가 정말 바보 같은 생각만 하고 있는줄 알았는데요, 바보임에도 행복함을 아는 제가 싫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렇게 영상을 보니, 제가 왜 바보이면서 행복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 속에서 자란 저는 아직 타자의 시선이 두렵지만, 그래도 본질을 놓지 않고 꼭 그 틈을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우연히 보게된 영상인데 그 어떤 영상보다고 제겐 힘이 되었습니다! ㅎㅎ
따뜻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과잉가시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720p로 시청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영상보며 크나큰 감동이 밀려오네요 다분히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저에게 리히트님도 행복으로 통하는 창을 열어주신분입니다! 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리히트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래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ㅠㅠㅠ 마지막에서 저도 눈물이 나네요
학생으로서 건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던 중에 이 영상을 접했는데, 어릴 적 공간이 삶의 '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실마리를 찾은 느낌입니다. 조금씩 생각해왔던 것들을 너무 잘 정리해주셔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 사람들이 각자 행복하게 시간을 즐기는 식당을 좋아한 것, 그리고 힘들때면 웹툰에 중독돼서 살아왔던 것도 틈을 찾기 위해서 일 수도 있겠네요.
너무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리히트님 덕분에 밀란 쿤데라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알게되었어요. 6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제 맘속에 한 문장이 새겨진 것 같아요. 삶은 덧없어 가벼우나 생각은 도돌이표가 되어 무거움을 더한다. 앞으로 남은 여러 페이지들이 또 어떤 사유를 하게할지 즐거움이 큽니다. 좋은 책을 알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길 바라며.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리히트님, 작품과 작가를 통해 받은 감동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몰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좋네요 ㅎㅎ
사랑으로 망자가 내 안에 현존한다는 그 말과 그 말에 흐르는 눈물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잔잔한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와 맞어요. 그 이야기가 우리를 살게 해주는거 같어요. 지금 진짜 그 틈이 전혀 없어요. 나이가 들면서 다 없어지는가 싶기도 했어요.몇 년전에는 저한테 그 틈이 신이였는데, 지금은 그냥 깊은 생각을 안하고 단순하게 살고있었는데, 오늘 영상보고 좀 놀랐네요
감사합니다!!
그 '틈'에 기대어 사는 사람으로서, 이 영상을 계기로 저를 다시 한번 강하게 긍정하게 되네요:)
주신만큼 더더욱 받으시길!
감사합니다!
이따금 유튜브 댓글을 읽다보면 감명 깊은 댓글이나 낯간지러워 보이는 댓글들이 눈에 밟혀요. 답글들은 '오글거린다' 같은 말로 웃어넘기는 댓글이지만 유튜버님이 책을 읽으며 우신 것처럼 오글거리는 댓글을 쓰는 것처럼 조금의 낭만은 우리를 숨트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얄팍한 지식으로 우쭐거리던 저에게 난 책을 읽으며 울은 적 있었던가?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상이네요. 잘 봤습니다!
뒤에 문장 보며 눈물이 흘렀다. 난 이상한 인간인가..왜 이런데서 눈물이ㅜ나지..했는데.. 리히트님을 보고 위로받았다❤
감사합니다ㅠㅠ!
고등학교 1학년 때 단순히 국어 수행평가로 독후감을 써야해서 책방에서 책을 골랐는데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였습니다.
단순히 제목이 너무 흥미로워서 선택했었지만 제게는 철학의 시작이였네요. 니체의 영원회귀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막 읽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들이 참 많네요. 요즘 참 즐겁습니다.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참 부럽기도 하고 좋은 채널 발견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만나서 좋아요
저는 예술작품 만드는 사람인데요 예술 작품 만들때 가장 중요한것은 리히트님이 말하신대로 거리, 있어보임, 환상적임 인거 같아용. 너무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리히트님이 하시는 이 무언가는 공익적이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귀가 맞는 말을 듣는 것은 엄청난 기쁨을 주는 군요. 감사합니다.
열아홉때부터 쿤데라를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상대가 평생 없었는데 그런 상대가 생긴거 같은 영상이네요. 그런 상대=그런 틈 이랄까요..
어제 발견한 채널인데 앞으로 자주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익한 컨텐츠 감사합니다.. 리히트님 우실 때쯤 같이 울었어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카프카, 쿤데라 둘 다 정말 마음으로 아끼는 작가들인데 그만큼이나 귀한 진심이 가득한 채널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영상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인간의 감정에 관해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리추얼의 종말에서 나오는 신자유주의의 과잉한 진정성 추구와 맥이 닿는 것 같습니다.증명을 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그럼으로써 환상과 신비의 문턱이 없어지고 있고요...
'난 차가 없다.'라고 말하면 차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차가 있다'라고 말한 사람들이 '내가 차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하나의 영상에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영상입니다. 과잉가시성...진정성....뭐 그런 것들입니다. 리히트님의 영상에는 여백이 있어서 좋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부재의 증명...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신의 부존재를 믿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영상 감사합니다
당신은 귀하네요
너무 좋은 채널이다
쇼츠를 참고 이 채널을 보면
항상 작가의 꿈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영원은 있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영원을 갖고자 한다면.
😭😭
형아의 설명과 영상이 내게 틈이고 창이야! 사랑해 리히트 사랑해 리히트 두 번 말해야해 너무 좋아서
😭
리히트님의 창을 저도 바라볼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국어 어휘력이 부족하셨을때 사전으로 전부 공부하셨나요?
그냥 책만 봤습니다ㅋㅋㅋ 그리고 제가 지금도 어휘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ㅠㅠㅎㅎ
최고예요 항상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틈 이야기 넘 감동적..
ㅋㅋㅋ 리히트님 웁니까?
울어요?
아 ㅋㅋㅋㅋㅋ
저도요…….🥲
ㅋㅋㅋㅋㅋㅋㅋ
잘 들었습니다. 뒤에 뚜비가 귀엽네요.
철학은 저마다의 지평선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시도인 것 같습니다. 죽음의 심연이 자아낸 불연속성은 그러나 자신의 지평선을 통해 영생의 틈을 노리는 자를 질식시킬 뿐, 그에게서 그 틈을 빼앗을 순 없습니다.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다는 것, 남은 자들의 호명에 떠난 이들이 언제나 그 이름을 내어주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사랑합니다
🥰
그 망자들은, 그들과 동일감을 느끼는 전세계의 우리들이 아닐까요.
저도 죽기 전에 밀란 쿤데라라는 사람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관점에 따라 고상하고 무거울 수도 천박하고 가벼울 수도 있고 죽고 난 이후엔 그 사람이 '타자'에 의해 '어떻게 기억' 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기억되겠죠. 망자(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의 경우만 생각하게 됨)는 사망 이후의 세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죠. 우리는 세상에 내 던져 진 (Geworfenheit) 존재입니다. 저는 어차피 죽을 인생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내 의지대로 살기 위해 살아왔는데, 현재 몸이 많이 불편해지고 더더욱 안좋아 지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동안 제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어요. 이럼에도 시지프스처럼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자이 오사무의 선택을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리히트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
몸이 아프시군요ㅠㅠㅠ 대화를 한 번 나눠보고 싶습니다
해체된 문턱과 경계에서 불현듯 차이나 미에빌의 이중 도시가 떠올랐어요.
영상 너무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