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 기간이었음에도 공부보다 경기결과에 심장이 두근거리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스포츠 신문에선 외신들이 활약이 두드러진 여러 명을 (한국은 신연호) 미래의 축구 백만장자 후보들로 꼽기도 했는데... 신연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대의 모든 선수들 특히 김종부, 김종건 등등 정말 기대만빵이었음. 아마도 축구 국대가 상당한 돈이 된다는 것과 박종환 숏패스 전술 등 축구라는 것이 감독 놀음이라는 것을 일반인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tv-8763 바로 이듬해 국가대표를 맡아 LA올림픽 본선진출에 도전했으나 최순호,최인영,이태호,변병주등 주력선수들이 반발하고 무단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짐. 어찌어찌 수습했지만 결국 올림픽 본선진출은 최종라운드에서 사우디 5-4 패. 이라크 1-0 패하면서 실패. 당시 국민들의 실망감은 대단했지요. 세계대회 4강의 명장이 국대를 거느리고 아시아 문턱도 못넘다니 하면서.. 말씀대로 단일소속팀은 입맛대로 다룰수가 있어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프로선수들을 과거 자신의 서울시청 축구단처럼 속칭 그냥 조지면서 끌고 나갔죠.
@@tv-8763 저도 박종환 감독님 팬입니다만, 히딩크나 퍼거슨이 매일 선수들 일기검사 하고, 전날 음료수 체크한것으로 아침 조회때 자아비판 시키고, 선수 가족들 참관훈련때 까지도 체벌을 가하지는 않았죠. 저도 처음에는 박감독이 이러한 특공대식 훈련법으로 드라마 같은 결과를 내서 정말로 매료가 되었지만 84 올림픽 탈락. 정치력 부재로 인해 88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경질, 국대들의 2차 사보타주로 불리는 96 아시안컵 이란전 참패. 최근의 선수 폭행논란까지 겪고나니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을 떠나 속상하더라구요. 약체 서울시청으로 전국을 석권했고 신생팀 일화를 명문팀으로 만든것처럼 단일팀 조련이 그분의 적성인거 같습니다. 그 캐릭터가 83청소년 대회때 아다리가 딱 맞아 국민에게 큰 선물을 준것이죠. 그래도 자신이 데리고 있던 선수를 사위삼고 몇몇 선수들은 아직도 아버지처럼 모시는 의리파 사나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시골에서 살 때였는데, 전경기를 풀영상으로 보지 않고 뉴스에서 하일라이트로 띄엄띄엄 봤던 기억이 있는데, 특히 4강 대 브라질전에서 김종부 선수의 선제골이 가장 설레고, 인상적이었었는데, 결국 2대1 역전패. 축구 최강국인 브라질을 맞아 우리가 먼저 골을 넣은 건 이 때가 최초였을 겁니다.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유독 2대1 스코어가 많았던 듯. 이겼을 때도 2대1, 졌을 때도 2대1
저 시절은 청대는 인맥축구로 뽑지 않을때니까 실력대로 뽑아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시키고 대회에 나갔으니 안지치고 뛰면서 연전연승 했지만, 저 이후로 저 청대 세대들을 등지고, 성인대표팀들은 전부 인맥축구로 선발해서, 울나라가 축구가 더 빨리 발전할수 있었던 시기를 다 놓치고, 저 이후로 90년대 내내 했던 인맥축구로 실력있는 인재들은 다 배제시키고 묻히고 ㅋㅋ 그냥 아시아 정도의 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인맥 좋은 선수들만 게속해서 선발되는 고질적인 시스템 . 바로 일본한테 역전당하는 계기가됨 . 한동안 그래서 아시아에선 여포짓만 하고 다녔잖슴. 적당히 아시아 실력 수준에서, 인맥이 좋은 선수들만 선발한 결과물임 . 중국이 특정계층이나 특정 인맥들끼리만 축구를 시켜서 , 지금 이지경이 낫듯이 , 울나라도 저때부터 점차 한 20여년넘게 딱 아시아 수준을 한동안 넘지를 못했음 . 인맥축구로 인재들이 다 묻히고 나니까 실력축구 계보를 잇지 못하고, 그냥 아시아 수준에서 어느정도 볼좀차는 인맥좋은 선수들만 선발해주니까, 딱 저상태로 한 25년동안 아시아 수준을 넘지못하고, 일본한테도 실력 따라잡히고 . 원랜 진작에 세대가 교체되어 가면서, 일본도 못넘을정도로 실력들이 발전해야 정상이었는데, 중간에 인맥축구로 그 계보가 끊겨버린거임. 지금 저 청대 멤버들중 저 이후로 올림픽이나 성인대표팀에서 보이는 선수가 있었나요? 거의 안보였죠. 울나라도 저땐 현재의 중국처럼 인맥축구로 축구기술 발전의 기회를 중간에 다 끊겨 먹었던거임. 90년대 울나라 축구보면 알겠지만 딱 아시아에서만 여포짓을 하고, 그외 유럽이나 남미팀 아프리카팀들을 만나면, 암만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도 최고 결과물이 졋잘싸임 ㅋ 그럴수밖에 없음. 처음부터 선수선발을 인맥으로 해서 ㅋ 일본에게 따라잡히는건 뭐 당연한 수순이었고 . 지금에서야 겨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거지.
신태용 감독의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옛 향수에 이끌려 다시 보네요~~ 어쩜 저렇게 경기운영 방식이 다를까? 감독의 수준차가 여실히 느껴집니다. 아직도 아련히 떠오르는 36년 전의 우리선수들의 투지있는 경기력이 보기 좋고 문원근,김판근,이태형,노인우,김종부,신연호,이기근,김종부,이문영,선수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당시 내 또래였던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그때 그 선수들 어디에서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길 빕니다~~~~ 박종환 감독님도 건강하세요~~~~
아쉽게도 83청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연호의 A매치 경력은 12경기로 끝났습니다. 김종부도 25경기밖에 뛰지 못했죠. 김판근처럼 국대에서 자리잡은 명선수도 배출됐지만, 대체로 한국축구는 83청대가 배출한 유망주들을 잘 키워내지 못했죠. 축구계 어른들이 83청대를 이용해먹기만 했지 그들의 앞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봐요. 김종부 스카웃 파동만 봐도 알 수 있죠.
Jose PERDOMO, Carlos AGUILERA, Ruben SOSA Johnny VAN T SCHIP, Gerald VANENBURG, Marco VAN BASTEN BEBETO,J ORGINHO, DUNGA Paul CALIGIURI, Tab RAMOS Toni POLSTER Gennadi LITOVCHENKO, Oleg PROTASOV Luis ISLAS, Jorge BORELLI Yisa SHOFOLUWE
이 대회 주역중에 훗날 성인무대에서 성공한 선수는 김종부 하나.. 김종부는 86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 터뜨려 스타가 됨. 신연호도 이 대회에서 골을 많이 넣고 스타가 되었지만 훗날 성인무대에서는 피어보지 못하고 사라져감. 김판근도 훗날 올림픽 대표가 되지만 월드컵 스타는 되지 못했음. 그러니 청소년 대표 선수가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다.
박종환 감독 빠다치기 방법은 문제가 많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루어낸 참된 결과라 생각한다.축구는 공놀이하는 개인 서커스도 아닌 종합 운동 스포츠이거늘 요즘은 빌드업이니 뭐니하며 엉뚱한 짓거리만 한다.유목기마 민족답게 끌여들여 방어하다가 전광석화같은 공격 축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1985-1991 현대호랑이 115경기..1991-1992 일화 천마 12경기 1987-1994 울산 현대 155경기 1987-1993 대우 로얄즈 167경기..1994-1995 LG 치타스 58경기 ..1996-1997 안양 LG 치타스 42경기..1998-2001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69경기 1988-1989 포항제철 아톰즈 33경기..1990-1993 대우 로얄즈 37경기.. 1993-1994 일화 천마 3경기..1995 대우 로얄즈 3경기
오늘 박종환 감독님 별세소식을 듣고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와봤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기 동점골만드신 노인우 선수가 저희아버지입니다자랑스럽네요^^
우연히 오늘 새벽에 노인우 선수가 생각나더라구요^^ 팬 입니다^^ 김종건 선수는 어디서 무얼 할까?는 생각도 나구요^^ 훌륭한 아버지를 두셔서 자랑스럽겠어요^^ 아버님께 건강하시라는 안부 전해 주세요^^
노광범 우와 ~아버지가 멕시코 4강신화의 주역이시라니...ㅎㄷㄷ
👍👍👍
당시 청소년 축구 대단 했지요
4강전 브라질전에서 선취점
그러나 아깝께 2:1패
불은악마는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지요
노인우선수 의 아들이라니 ...자랑스럽습니다
반갑습니다😂아버님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지겠네여🤣
신연호 3골, 김종부 2골 , 김종건 1골, 그리고 수비수 김판근, 감독 박종환..
다 추억속의 선수들이네요.
1981년 20세 대회 카타르 준우승, 1983년 20세 대회 우리나라 4강, 1989년 17세 대회는 사우디 깜짝우승. 1980년대 유스대회 의외로 아시아가 꽤나 선전했습니다. 박종환 감독님 늘 건강하셔요
박종환이 실제로 요리실력이 좋은 편이라 자신이 직접 요리해서 선수단에게 먹이기도 했답니다.
지금껏 젤로 감명깊은축구는 멕시코청소년축구였어요.
화면에도 잠깐 나옵니다만 당시 우리 경기는 이전의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세네번의 아주 빠른 킬패스에 이은 슛이 이어져서 경기를 같이 보던 친구들과 너무 놀라고 열렬히 응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1971년 생 49세의 남성 입니다, 1983년 이 해, 저는 13살로 초등 학교 6학년 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우루과이를 깰 때 저는 신연호 선수가 제 우상이 됐어요. 저희 부모님 께서 감격 해 하시고 눈물 흘리시던 4강 진출 기억 나네요.
ㅜㅜ
저때 엄청난 관중으로 더 기억에 남았던 대회.....아무리 축구 인기 국가라고 하더라도 청소년 월드컵 경기는 썰렁한 경우 허다했는데
저 멕시코 대회는 매 경기마다 관중이 꽉 참.......진짜 멕시코 관중 동원 수준은 최고.
저 당시에 박종환이 잘했던 건 인정해야지.
저 대회도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탈락했는데 나중에 어부지리로 본선에 갔는데..
당시 축협의 지원도 부실해서 박종환 감독이 힘들게 팀을 구성했다고 하던데..
아무튼 저 당시때 맥시코에서도 코레아 열풍이 대단 했다고 합니다.
나쁘게 이야기 하면 북한이 죽쒀서 개 준 월드컵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때 북한애들이 심판 판정에 띠꺼움을 표시하고
심판을 두들겨 패서 국제 경기 참가 금지 처분을 받았는데 예선 3위를 한 한국이 대신 멕시코 땅을 밟았습니다 .
맞다 허나 음 축구 위성중계로 하였다.원조 붉은악마,
당시 우리나라는 30년넘게 월드컵본선에도 못가본 우물안 개구리였는데 당시의 감격은 2002년 4강 못지않았어요 한가지 아쉬운건 이 대회서 활약한 선수들 상당수가 성인무대에서 제대로 꽃피우지못한게 한국축구의 큰 손실이었죠
김종부선수가 대표적인 케이스져🧐
4강 재진출하는데 자그마치 36년 걸렸다..
여기갔던 이태형 선수가 저희 안양초 감독님이였습니다 자랑스럽네요 !!
박종환감독이 선수들 무자비하게 훈련시키기는 했지만 유럽이나 남미팀에게 개인기와 체력이 열세였던 우리선수들을 스파르타 식으로 훈련시켜 짧은기간에 조직력을 저정도로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불가능 한 결과였다고 봄.
고등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 기간이었음에도 공부보다 경기결과에 심장이 두근거리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스포츠 신문에선 외신들이 활약이 두드러진 여러 명을 (한국은 신연호) 미래의 축구 백만장자 후보들로 꼽기도 했는데... 신연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대의 모든 선수들 특히 김종부, 김종건 등등 정말 기대만빵이었음.
아마도 축구 국대가 상당한 돈이 된다는 것과 박종환 숏패스 전술 등 축구라는 것이 감독 놀음이라는 것을 일반인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초딩 때 브라질과의 준결승 경기 학교에서 라디오 중계 각 교실마다 틀어줬던 기억이 나네여☺지금 봐도 감동입니다😊
라디오도'중계해줬니
난 텔레비전 으로 봤는데
@@권투중계방송TV이교덕넵넵 반말하지 마세요
저때 상대 브라질 선수들은 11년후 1994미국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입니다
호마리우,베베토.둥가,산토스등!^^
1971년 생 남성인 저는 1983년 저는 13살로 초등 학교 6학년 이었는데요. 이 당시 어려운 형편에 집에 TV가 없어서, 친척 분 댁에 놀러 가서 중계를 보며 환호 했습니다.
1982년쯤이면
각 가정마다 텔레비전 이
거의 있을텐데 요
아마도 각 가정95%는
가지고'있었을'건데
칼러가 아닌집은 입었어도
ㅇㅈ
@@권투중계방송TV이교덕
나 78년생인데 84년 7살돼서야 집에 티비 들였어요. 전엔 친구 집 가서 만화 같이 보고.
산동네 단칸 셋방 살던 서민들은 없는 집도 꽤 됐어요
붉은 악마의 탄생! 지금 봐도 아주 조직적이고 호흡도 좋고 개인기량도 뛰어난 멋진 모습입니다.
83년도 4월에 입대하여 육군제2훈련소(논산)에서 훈련 받을때에 이 대회가 열렸었는데 교육시간에 교관들이 쉴때마다 경기 결과를 전해주곤 했었는데.... 벌써 36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이 축구를 연구해봐봐...박종환감독...진짜 대단
저때 박종환이 혹독한 스파르타로 요즘말로 일명 티키타카를 선보였는데, 세상에 그런건 구경도 못했던 우리국민들은 완전 넋이 나갔었다. 하지만 그 스파르타방식은 청소년대표팀이니 먹혀들어간 것이었고, 저때도 성인대표팀부터는 잘 통하지가 않았었다.
일화프로가서도 통해서
리그 컵 아시안컵까지
다 씹어먹음
빠따타카ㅋㅋㅋㅋㅋ
@@tv-8763 바로 이듬해 국가대표를 맡아 LA올림픽 본선진출에 도전했으나
최순호,최인영,이태호,변병주등 주력선수들이 반발하고 무단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짐.
어찌어찌 수습했지만 결국 올림픽 본선진출은 최종라운드에서 사우디 5-4 패. 이라크 1-0 패하면서 실패.
당시 국민들의 실망감은 대단했지요. 세계대회 4강의 명장이 국대를 거느리고 아시아 문턱도 못넘다니 하면서..
말씀대로 단일소속팀은 입맛대로 다룰수가 있어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프로선수들을 과거 자신의 서울시청 축구단처럼 속칭 그냥 조지면서 끌고 나갔죠.
@@bk2111 히딩크도 근1년간
선수들 조지면서 국대 끌고갔고
퍼거슨도 비판 받으면서
맨유의 독재자로 맨유를 하드케리함
@@tv-8763 저도 박종환 감독님 팬입니다만, 히딩크나 퍼거슨이 매일 선수들 일기검사 하고, 전날 음료수 체크한것으로 아침 조회때 자아비판 시키고, 선수 가족들 참관훈련때 까지도 체벌을 가하지는 않았죠.
저도 처음에는 박감독이 이러한 특공대식 훈련법으로 드라마 같은 결과를 내서 정말로 매료가 되었지만
84 올림픽 탈락. 정치력 부재로 인해 88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경질, 국대들의 2차 사보타주로 불리는 96 아시안컵 이란전 참패. 최근의 선수 폭행논란까지 겪고나니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을 떠나 속상하더라구요.
약체 서울시청으로 전국을 석권했고 신생팀 일화를 명문팀으로 만든것처럼 단일팀 조련이 그분의 적성인거 같습니다. 그 캐릭터가 83청소년
대회때 아다리가 딱 맞아 국민에게 큰 선물을 준것이죠.
그래도 자신이 데리고 있던 선수를 사위삼고
몇몇 선수들은 아직도 아버지처럼 모시는
의리파 사나이.
이때 이경기를 지켜본 외국기자로부터 붉은악마라는 호칭을 얻었죠~^^
와 역대 한국 연령별 대표팀 다 통틀어서 최강이다. 아웃프런트 스루패스 봐라. 디진다 진짜
2022 카타르월드컵 도플갱어~
이 글은 성지가 된다.
김종건 슛 개 멋지다 0:51
잊을수 없는 월드컵 입니다2022년 월드컵을 위하여😉
폭력이(스파르타식)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 박종환 감독이 선수들 때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
당시 소년중앙 이라는 어린이 잡지에서 대서특필...4강신화 만화까지 나왔는데....코메디언 이주일씨가 고교 동창이라고 방송타고 난리였는데
다시 봐도 감동
1:07에 나오는 초정밀 유도탄 아웃프런트 패스를 10번은 돌려봤네요.. 저 짧은 순간에 저런 시야와 판단과 기술을 보이다니 괜히 당시에 4강간 게 아니었군요. 신연호 선수 클라스에 잠시 녹고 갑니다.
선수이신가 봐요? 경기를 보시는 눈초리가 매섭습니다^^
아웃사이드로 차서 수비수가 차단못하게하면서 시간지나면 같은팀쪽으로 휘어지게 찼음 ㄷㄷ
엄청난 계산이 들어간 수룩패스 입니다.
나는 무슨 아르헨티나의 베론을 보는 줄 알았음
국민학교 시절.... 시차때문에 밤샌 사람 많았죠. 선생도 졸고 학생도 졸고...
낮에 했는데 뭔소리야
박종환감독의 스파르타식 의 혹독한 훈련과 용병술이 보인 경기들..
꼬레아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멕시코 국민들이 꼬레아를 알게 된 계기가 돼었죠^^
바록 후보 선수 였지만
영등포 공고 최용길 선수가
우리 옆집 살아서 가끔 보기도 했었는데
4강후 고향에서 카퍼레이드도 했음
옛날 한국 선수들은 다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야..
정말 열심히 했었죠^^
조춘제 캐스터 오늘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칙...치직...치이직...멕시코의...대한건아...여러분...여기는...2019년...입니다...치지직...여러분의...후배가...결승에...갔습니다...거기는...행복하신지요...치치직...
+수정
2019년의 청소년들이 결승까지 갈 줄은 몰랐네요ㄷㄷ 대한만국 만세!
저 시절 엊그제 같네요... 내가 저때 5학년이었는데 지금 내 막둥이 딸도 5학년.
하아...시그널.2..나올때가.된건.같은데요
저때 한국축구보고 놀라울 따름 이였다 한국선수들이 얼마나 빠른지 카메라가 못잡을 정도였으니 정말 기가 막혔다 붉은악마가 저때 탄생했지 외국인들 입에서 붉은 악마라는 말이 나왔다 저때의 축구를 보고 있으면 눈시울이 적셔진다 감동 그 자체다 축구는 저렇게 하는거다
저때가1965~1968년 출생자로 구성되었을겁니다. 그이후 홍명보 황선홍 이운재등 선수들이 나오기시작했고 저때는 한국축구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네요
83년 청소년 축구를 잊을수 없다😂😂😂
한국대 브라질 경기는 중학교 3학년때 오전에 벌어졌던 경기라 너무 보고 싶었는데, 저때는 교실에 TV보고 없어서 애닳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죠.
정말 그시절 투혼과 투지로 똘똘 뭉쳐 사력을 다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대한민국 축구가 그립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시골에서 살 때였는데, 전경기를 풀영상으로 보지 않고 뉴스에서 하일라이트로 띄엄띄엄 봤던 기억이 있는데, 특히 4강 대 브라질전에서 김종부 선수의 선제골이 가장 설레고, 인상적이었었는데, 결국 2대1 역전패. 축구 최강국인 브라질을 맞아 우리가 먼저 골을 넣은 건 이 때가 최초였을 겁니다.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유독 2대1 스코어가 많았던 듯. 이겼을 때도 2대1, 졌을 때도 2대1
저 시절은 청대는 인맥축구로 뽑지 않을때니까 실력대로 뽑아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시키고 대회에 나갔으니
안지치고 뛰면서 연전연승 했지만, 저 이후로 저 청대 세대들을 등지고, 성인대표팀들은 전부 인맥축구로
선발해서, 울나라가 축구가 더 빨리 발전할수 있었던 시기를 다 놓치고, 저 이후로 90년대 내내 했던 인맥축구로
실력있는 인재들은 다 배제시키고 묻히고 ㅋㅋ
그냥 아시아 정도의 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인맥 좋은 선수들만 게속해서 선발되는 고질적인 시스템 .
바로 일본한테 역전당하는 계기가됨 . 한동안 그래서 아시아에선 여포짓만 하고 다녔잖슴.
적당히 아시아 실력 수준에서, 인맥이 좋은 선수들만 선발한 결과물임 .
중국이 특정계층이나 특정 인맥들끼리만 축구를 시켜서 , 지금 이지경이 낫듯이 ,
울나라도 저때부터 점차 한 20여년넘게 딱 아시아 수준을 한동안 넘지를 못했음 .
인맥축구로 인재들이 다 묻히고 나니까 실력축구 계보를 잇지 못하고,
그냥 아시아 수준에서 어느정도 볼좀차는 인맥좋은 선수들만 선발해주니까,
딱 저상태로 한 25년동안 아시아 수준을 넘지못하고, 일본한테도 실력 따라잡히고 .
원랜 진작에 세대가 교체되어 가면서, 일본도 못넘을정도로 실력들이 발전해야 정상이었는데,
중간에 인맥축구로 그 계보가 끊겨버린거임.
지금 저 청대 멤버들중 저 이후로 올림픽이나 성인대표팀에서 보이는 선수가 있었나요? 거의 안보였죠.
울나라도 저땐 현재의 중국처럼 인맥축구로 축구기술 발전의 기회를 중간에 다 끊겨 먹었던거임.
90년대 울나라 축구보면 알겠지만 딱 아시아에서만 여포짓을 하고,
그외 유럽이나 남미팀 아프리카팀들을 만나면, 암만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도 최고 결과물이 졋잘싸임 ㅋ
그럴수밖에 없음. 처음부터 선수선발을 인맥으로 해서 ㅋ 일본에게 따라잡히는건 뭐 당연한 수순이었고 .
지금에서야 겨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거지.
아~한국 축구 살아있는 전설 박종환 감독님!
고질 병폐 인맥때문에 올림픽,월드컵 감독 모두 맡질 못 하고,,,,,,,,,,,,
야구는 김성근~
축구는 박종환~
👍👍👍👍👍♥️♥️♥️♥️♥️
6학년 때 이 경기 때문에 수업 중단하고 모두가 교실에 설치된 흑백 TV 앞에 모여서 시청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방울방울~
미드필드 강재순은 저와 절친 고교동기입니다. 현재 화천wfc 여자축구 감독하고 있지요~
득점자 및 경기 : 신연호 ( 멕시코전, 우루과이전 )
김종건 (호주전) 김종부 ( 호주전 브라질전 )
국민학교시절 한반에 70명씩 있었고 교실에 티비도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20인치 티비를 각반마다 설치하고 전교생에게 보여주었었죠.. 마치 월드컵 같았어요
저때 우리 담임샘이 체육샘이셔서 흑백 TV 교실에 갖다 놓고 단관했던 경기가 8강 그리고 4강전이었습니다.
8강전은 일요일에 했어요
캬... 양윙을 지배하던 예전 한국 축구 스타일....
신태용 감독의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옛 향수에 이끌려 다시 보네요~~ 어쩜 저렇게 경기운영 방식이 다를까? 감독의 수준차가 여실히 느껴집니다. 아직도 아련히 떠오르는 36년 전의 우리선수들의 투지있는 경기력이 보기 좋고 문원근,김판근,이태형,노인우,김종부,신연호,이기근,김종부,이문영,선수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당시 내 또래였던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그때 그 선수들 어디에서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길 빕니다~~~~ 박종환 감독님도 건강하세요~~~~
그래요?
그때 그청소년 대표팀을
붉은악마라 했지요ㆍ
건강하게 지내시라 믿습
니다
故 조춘제 캐스터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역시 감독은 박종환이 최고다. 국대 감독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감사합니다~한국인으로 태어나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바이브레이션이 쩌네여
원조 4강 신화 옛날에 잘 모르는 숨은 전적들이 굉장하군요 근데 청소년인데 다 어른같다는ㅋ 역사속의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지금 보면 우리 선수들 플레이가 약간 투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짜임새있는 전술에 세련된 플레이였습니다.
아쉽게도 83청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연호의 A매치 경력은 12경기로 끝났습니다. 김종부도 25경기밖에 뛰지 못했죠. 김판근처럼 국대에서 자리잡은 명선수도 배출됐지만, 대체로 한국축구는 83청대가 배출한 유망주들을 잘 키워내지 못했죠. 축구계 어른들이 83청대를 이용해먹기만 했지 그들의 앞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봐요. 김종부 스카웃 파동만 봐도 알 수 있죠.
Jose PERDOMO, Carlos AGUILERA, Ruben SOSA
Johnny VAN T SCHIP, Gerald VANENBURG, Marco VAN BASTEN
BEBETO,J ORGINHO, DUNGA
Paul CALIGIURI, Tab RAMOS
Toni POLSTER
Gennadi LITOVCHENKO, Oleg PROTASOV
Luis ISLAS, Jorge BORELLI
Yisa SHOFOLUWE
2019폴란드청소년월드컵
화이팅남자축구국가대표팀
이강인 조영욱
저 대회 때는 신연호 씨가 구세주셧네요 ㄷㄷㄷ
이때는박종환축구가 빛을 발했지 ㅠㅠ짦은패스축구로 조직력을 극대화!!!!!!!!간단명료한 패스 한박자더뛰는 정신력!과 체력!!모든게 박종환의 잣품!!
39년전이구나.붉은 악마로 불리우며 4강 진출로 들떠있었떤 20대 였던 80년대 그 시절이 그립구나.부모님,어동생,친구,와이프,처남내외 등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나 중학교시절... 저때도 온나라가 들썩들썩했었는데
저는 고1 때..
브라질 전은 교실에 티비 가져와서
수업 대신 응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박종환이가 티키타카햇다면 2007캐나다 청소년축구에서는 조동현감독이 이어받았네요 ㅋㅋ
더욱 정밀해지고 화려해진 티키타카로 대한민국을 놀라게햇죠!! 결과는 아쉽게 16강탈락이지만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3=--2면 잘한거지요!
땅볼패스로 이어지는짦은패스와 조직력은 지금다시봐도 최강이죠!! 기술축구가 탄생한경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축구는 다시원점으로 ㅠㅠ뻥축구시작!!
1:05 패스 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가 저가 국민학교 6학년때 인데 잊을수 없었다
나 저때 고등학생이었는데 교실에 티비 가져다 수업안하고 경기보다가 책상 몇개가 부서진 기억이 ㅋ
이 대회 주역중에 훗날 성인무대에서 성공한 선수는 김종부 하나.. 김종부는 86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 터뜨려 스타가 됨. 신연호도 이 대회에서 골을 많이 넣고 스타가 되었지만 훗날 성인무대에서는 피어보지 못하고 사라져감. 김판근도 훗날 올림픽 대표가 되지만 월드컵 스타는 되지 못했음. 그러니 청소년 대표 선수가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다.
저때 난리났었는데 이젠 결승에 진출 몬가 한이 풀린 느낌이다 ㅎㅎ
브라질에 역전패 ..
폴란드에도 역전패 해서 4위했지만 이때 처음으로 순위권 밖으로 안나갔다 .
ㅎㅎ
한국 선수들 졸라 잘했네..수준 높은 경기 유럽축구 보는듯..
janet님 글 후반부에 띄어쓰기 한 칸 차이로 뭔가 오해를 살만한 마디가 생겨버렸네요 하 이해를 하신분들도 많겠습니다만
고 박종환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이 결실을 맺은거지요 히딩크는 체력훈련이 빛을 본것이고
와~~
유럽경기 보는것같이 힘이 살아있네~~
요즘은 똥볼 투성인데...
쩐다 ㅋㅋㅋㅋㅋ 자랑스럽네
브라질 멤버중에는 후에 94월드컵 우승주역인 둥가와 베베투도 있었음.. 둥가가 일본에도 뛰었지만 두번정도 한국와서 친선전에도 뛰었는데 소속팀인 주빌로 이와타의 일본선수들이 안일한 플레이를 할때면 니들은 한국선수들의 정신력을 본받아라라고 할정도로 높이 평가했음
골세레모니는 한결 같네요. "두손 머리위로 들어. 미친듯이 흔들어~"
예선 첫경기 스코틀랜드에 0:2 패가 빠졌음...당시 멕시코는 꼬레아로 돌풍을 일으킴
중2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숙직실에서 골골 한국만세 햤든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시대 아나로그시대가 왜이리 그리운거지..축구가 이기면 좋고 지면 지는대로 술한잔 마시면서 사람들과 회포를 풀던 그 시절
저 시대에 저런 아웃프런트 패스가 가능한 일인가 괴물이 있었네 ㅎㄷㄷㄷ
어디서 구했나요 정말로 대단합니다
몬태레이겅기장이 아니고 과달라하라 경기장입니다
2019년 결승진출 우승가즈아~
요즘애들보다 훨씬 잘한다
박종환 감독과 어린선수들의 눈물과 땀의 결과였죠^^
요즘애들도 오늘 4강 감 ㅎㅎ
요즘애들 결승 진출 !!
2:16 pk실축 빠따박 표정 ㄷㄷㄷ
백컴 졋으면 대진거지
노인우 선수 pk실축한게 기억나네요
벌써. 나 국민학교 5학년 때네.
❤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요~~~ 저때 내나이가 21세였음 대학교 2학년때였는게 생생함
조춘재 아나운서 그립네요...
0:32 멕시코선수들 서로니킥 ㅋㅋㅋ내용은너무좋은데 흔들리는 화질이 참아쉽네여
박종환 감독 빠다치기 방법은 문제가 많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루어낸 참된 결과라 생각한다.축구는 공놀이하는 개인 서커스도 아닌 종합 운동 스포츠이거늘 요즘은 빌드업이니 뭐니하며 엉뚱한 짓거리만 한다.유목기마 민족답게 끌여들여 방어하다가 전광석화같은 공격 축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은 요즘에 맞는 트랜드가 있는 것이고 나름 이유가 있겠지요.
세계적 추세를 못 따라가면 도태되니까요.
@@RottenWater_Immune 맞습니다.그런데 알고보면 기본은 정신력과 이기려는 승부욕이라 생각합니다.좋은 체력과 기술 그리고 참신한 전술이 있다한들 선수들 의지가 약하면 도로 말짱인 경우를 많이 보잖아요.
티카티카 축구를 국내 첨선보인 감독, 전원공격 전원 수비 벌떼공격 벌떼수비
이제 더 이상 남자 u20에서 4강은 신화가 아닙니다~^^
나 태어나고 1년후의 일이네요.
1:05 와 이때 아웃프론트
@@Jakeq_brawl 그 다음 장면 말하는거야
브라질은예나지금이나 벅찬상대임은 분명합니다
선제골 넣어도 불안불안ㅎ
청소년 스타병 때문에 성인 무대에선 성공을 못한건가요? 이름이 다들 생소하네요
1985-1991 현대호랑이 115경기..1991-1992 일화 천마 12경기
1987-1994 울산 현대 155경기
1987-1993 대우 로얄즈 167경기..1994-1995 LG 치타스 58경기
..1996-1997 안양 LG 치타스 42경기..1998-2001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69경기
1988-1989 포항제철 아톰즈 33경기..1990-1993 대우 로얄즈 37경기..
1993-1994 일화 천마 3경기..1995 대우 로얄즈 3경기
다시 해냈습니다..!!!! 2019.6.9 대한민국 청소년 월드컵 4강 !!
그걸 누가 봤냐
아무도 모르쟎아
1:08 와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