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진성성 있는 말씀...반드시 이 시대 한국교회가 귀담아 듣고 가슴에 새긴바 되어야 할 것이다. 욕망의 세례를 제거하고 욕망을 십자가에 죽이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근본적인 자세이다. 욕망이 죽지 않는 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보기는 어렵다. 기독교의 원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는게 아니라 복음만 들어갔다하면 하늘의 보좌를 흔들고 가난했던거 멸시천대 받은거 자존감 낮은거 공부못한거 인물없는거 등등등 결핍된 모든것에 보상을 찾으려고 어마무시한 복을 달라고 혹은 난 받아야 한다고 강렬한 고백들을 해대는데 그 누구도 예외를 본적이 없습니다 특히나 신학교를 나왔다는 사람들은 그 욕망의 스케일이 참으로 대범한데 놀라하면서 살아온것 같습니다
신학은 하나의 성경안에서 그 시대와 환경에 맞춘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교수님의 견해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확고한 메세지를 주기 위한 책이지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라는 말로 보는 것은 좀 어려울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성경이라는 이 텍스트 앞에서 우리는 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고 이 주장에 대해 나는 이런 스텐스를 가진다라는 확고한 결정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스텐스가 기준이 되어서 여러 해석과 관점에 대해 우리는 옳고 그름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신학의 담론이 가지고 있는 각자 해석의 개별성을 존중하긴 해야 하나 그것을 너무 존중해서 성경 전체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 보편적인 메세지를 무시하는 것은 상당히 주의해야 합니다. 서신서의 사도들이 교수님 말대로 다양함에 대한 존중도 분명히 있었으나 그럼에도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배타적이고 전쟁까지 선포할 정도로 거칠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애써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보편성, 보편적인 메세지, 본질적 부분이 정의되는 것이 무엇 인가요 그것은 당연한 거지만 초대 교회부터 수많은 기득권적 교회의 모습에서 해석되고 결론 되어진 많은 것들이 과연 옳았나요 그리고 현재의 우리나라 대형 교회와 목사들의 말과 행태가 과연 정의로운가요 성경 말씀 안에서 옳은 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어떻게 하면 믿음 안에서 실천적 삶을 살아 갈 것 인가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고 어느 누구도 옳고 그름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기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배타적 독선적 편협한 세계관을 벗어나자는 의미가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면서 여러가지 해석을 하도록 하셨을까요? 우리도 다른사람이게 말할때 한 뜻으로 말하지 여러가지로 해석하도록 말하지 않는데 말이죠. 시대에 맞게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할것은 말씀 해석이 아니고,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말씀해석이 갈리면 너도 맞고 나도 맞고가 아니라, 누가 맞는지를 성경안에서 발견해서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섭리로 운영하시는 경륜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정의라고 본다면, 우리는 진리의 다양성이나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고 제시되고 결정되어진 모든 것은 사람의 생각처럼 다양하게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과 의견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다양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해석은 성경에 언급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일뿐, 그 해석의 결과가 진리 자체인 것은 아니죠. 이 점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신이 과학을 다루는 과학의 관점에서도 인정할 것입니다.
말은 바르게 하자 그 기록들 왜 기록 자 마다 다르나 그러므로 나 주장은 경에 너무 집착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이다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그가 임 하시면 내 것으로 너희를 가르치실 것 이라 요긴 하고 핵심적인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우리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안 계신 다면 크리스찬이 아니지요
성경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한거죠!!! 예수님께서 비유로써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요한복음 16장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 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렇다면 왜 비유와 상징으로써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의 상황에서 아무리 말씀을 선포하셔도 예수님은 이미 구약의 율법자 및 제사장 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몰리고 계셨으니, 예수님께서 진실로 선포하시고자 하시는 하늘의 섭리를 어찌 맘 편히 다 말씀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 해주시고 싶으셨던 말씀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요? 그러나 단 하나도 들으려 않는 자들에게 되려 몰리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될 때에 예수님의 그 안타까운 심정은 또 얼마나 깊으셨을까요. 성경은 다양하게 해석되라고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실 그 감춰진 즉 차마 예수님께서 다 못하신 말씀 이면에 감춰진 뜻을 우리들이 더욱 깊이 헤아려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철부지 자녀에게는 부모님께서 속내를 다 비추시지 못하시듯이, 그렇기에 우리들이 더욱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철이들어 하늘의 말씀을 바로 새길 수 있는 우리들이 먼저 되어야겠습니다. 그때에 다시 오시는 재림주께서 더이상은 비사가 아닌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바로 알려주실 것입니다.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사고와 이해와 인식과 욕망은 어디로부터 올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내 속으로 들어온 세상 지배원리인 세상 가르침을 통해 혈과 육인 나(에고)를 구성하고 있는 "나(옛사람)"의 가치체계와 인식판단 구조인 세상의 지혜 사람의 지혜 육체의 지혜로부터 오는 사고와 생각과 이해와 인식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인 성령의 생각과 성령의 이해와 인식이 어떻게 내(새사람) 안에 일어날까? (세상은 바깥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자기의와 율법 등을 비롯한 나를 지배하는 원리와 땅위에 있는 보화의 가치구조로 들어와 있다. 인간은 이 자기속의 세상을 벗어날수 없다. 이미 자기화 되어 자아의 자기정체성으로 스며들어와 버렸기에..) 사람의 머리는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 계시를 통해 오는 그리스도의 머리가 붙어 머리와 뿌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지혜로 충만케 되어 온전한 가치체계와 의식 및 판단구조로 존재하는 온전한 자는 어떻게 되어질까.. 바울이 말하는 남자 여자는 생물학적 성별의 남녀가 아니다. 남자는 자기(에고)라는 옛사람의 머리가 βαπτισμα(밥티스마: "잠김"의 뜻. 세례나 침례로 번역한 단어. 교회에서 의식으로 행하는 세례나 침례는 이 잠김을 가리키는 그림자로 신학이론이 아닌 때가 되어 실제 자기속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사건)사건을 통해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힘으로 잘려나가고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 그리스도의 νους(누스)를 가지고 있는 이를 "남자"라 하며 아직은 마음의 생각과 이해와 인식이 흘러나오는 샘의 근원인 그리스도가 머리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가 머리인 남자로부터 흘러나오는 생각을 받고 있는 이를 성경은 여자라 한다. 신학에서 난해구절인 딤2장의 "여자가 해산하여 남자를 낳으면 여자는 그 해산함으로 구하여질것이다." ("구원을 얻는다" 는 문장은 구원을 자기가 소유하는 것으로 에고의 소유개념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구원도 에고의 죽음이 동반되지 않는 자기 소유 욕구의 충족으로 인지한다...헬라어 본문엔 구원이란 명사가 없고 "구하다"의 수동태인 "구하여지다"라고 나와있다.. "구원을 얻다"가 아닌 "구하여졌다"가 인간의 인식구조로 인한 번역의 인식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번역이라 본다.) 해산하여 남자를 낳은 그때부터 여자는 자기 머리가 잘려나가고 뿌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진액을 받아 사는 씨를 가진 남자가 된다... 그리스도가 머리인 남자는 더 이상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신학 지식이든 성경지식이든 세상적인 것이든(돈 학벌 외모 명예 집평수 교회 크기 등등) 뭐든 이용해 비교우위에 올라서려는 에고의 욕구인 큰 자가 되고 싶은 욕구(우월감 자존심)의식이나 권력욕의 산물인 권위의식 그리고 내 꺼라는 소유의식에 지배 당하지 않고 다른 이를 부속품화하거나 종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하나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우는 일에 섬기는 자가 된다..
철학에서 말하는 진리만 논리학을 통한 보편적인 진리다. 하나님이 직접 성경을 해석해야 하나뿐인 절대적 해석이 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진리가 하나인 것에는 해석의 여지가 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14:6) 다른 진리를 또 말하는 놈은 이단이다.
성경은 사람마다 달리 해석할수 있으나 하나님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눈덩이처럼 살이 붙여지듯 다양하게 더 확대 해석된다 죽을때까지 하나님을 다 알고 가지 못하죠 그사랑이 너무커서 우리가 우주를 볼수없듯이 지구만 보고 지구를 설명하는것과 같다 우주는 안가봐서 자세히 설명 못하듯 성경을 힘써 알려할때 하나님은 영적인부분까지 크고 은밀한 비밀을 하나씩 알려주시니까
조금더 사전에 만나는 사람의 저술이나 견해에 대해 파악한 뒤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전에 만날 사람을 독자들에게 공지하고 질문을 모집하거나, 던질 질문의 예시를 주고 설문조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질문이 좀 두리뭉실 한 느낌이 듭니다
해석의 다양성을 수용해야되지 않나는 부분에 성경은 한가지 메세지니 다양한 해석은 마치 성경을 모르는 것으로 글을 다신 분들께 정중히 여쭙니다. 성경자체가 여러해석을 가능하게 쓰여진것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해석이 공존해야한가라능 주장은 아니니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한번 구원받으면 형편없이 살아도 되나요? 한번구원 영원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해석해 내야합니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나요? 그러면 왜 결단하라고 설교들을 하시나요? 여자들은 목사직이 허락되야되나요 않아야 하나요? 하나님은 인간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고 계시나요 아닌가요? 그리스도인은 다 병고침 받아야 하나요? 왜 누구는 암에서 치유를 받고 누구는 안그런가요? 지옥은 정말 불떵이 속에서 고문 받는것처럼 영원히 죽지 않은 장소인가요 ? 하나님이 믿는자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보호하신다면서 왜 지금 이시간 지구 다른땅에서 기독교인들이 처참하게 살해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죽어갑니까? 나이지리아 크리스챤들이 보꼬하람이라는 무슬렘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것을 아시나요? 21세기동안만 육만이천명이 순교했습니다. 나이지리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 인도, 중국등등 이것이 현실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들을 우리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믿어보자라는 취지의 말씀인것 같습니다. 나는 믿어져! 내가 경험한건 이거니까 이게 성경적 진리야! 등등은 위험합니다.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자가 아니라 서로 수용하며 생각해보자는 말씀앞에서 겸손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신중히 말씀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치 여친이 쓴 연애편지를 읽고 '연인의 향기의 냄새 분자 화학식에 맞춰서 적었냐?'를 기준으로 따지는 건 무의미하듯이 신이 계시를 위해서 준 문장을 가지고 '물리학이 어떻고'를 따지는 건 무의미해서 그렇습니다. 모든 문장은 그 의도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도가 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살 때 "해가 떴다"고 말하지 "지구가 자전해서 가시 영역대 파장의 태양광이 내 망막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위치로 각이동 했다" 라고 말하지 않쟎아요. 똑같은 이치입니다.
구름바람님이 신이라면 3천년 전의 근동 사막 지방 사람들에게 똑같은 현상을 두고 '쿼크 입자가 글루온을 방출하고 특정 에너지 포텐셜 준위에 도달해서 광자 교환이 일어나고 해당 파장에 맞는 전력이 공급되어서 구름 속 하전 입자들의 전위차가 생성되었다'고 적어 주겠습니까 '번개가 쳤다'고 적어 주겠습니까 "전자대로 적어 주겠다"고 대답했다면 나중에 서기 2500년 쯤 과학 상식으로 보면 전자의 문장도 얼마나 유치해 보일까요? 완벽해 보이던 뉴튼 역학도 아인슈타인 보어의 현대 역학으로 보면 불완전하듯이요.
해석이 다른 이유는 당연히 성경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희미한 청동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듯 불투명하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이란 주된 주제는 알수 있으나 그 이상의 디테일한 부분은 몰라도 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 예수 재림의 날짜를 성경이 말하던가요? 애초에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은 여기에 적힌 것 보다 많으나 다 적지 못하였다고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원하는 마음은 너무나 선하나 우리가 확실하고 완벽하게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아지에게 간식을 일정량 나눠주듯이 자신을 조금씩 밝혀주시는 것을 기다려야하죠
성경은 믿음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도 되는가?성경의 뜻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시'는 성령의 감도로 성경에 글로 담기고 표현되어 보존된 것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성령) 한분이기 때문에 한 의미로만 해석되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도 구약성경을 달달 외웠지만 그 성경안에 나오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할수밖에 없었던것은 그안에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학교에 가지 않아도 최신 신학을 배울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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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해석들이 공존하는것을 수용합니다. 그래서 발생할수있는 부작용도 조심하면서 교회사 책을 가까이 두고서 살아가려합니다. 설득력과 조리있으신 말씀 고맙습니다
권 연경 목사님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방송에서도 자주 뵙고싶네요. 성경공부 방송 기대해봅니다. 🎉최곱니다 .
권영경 교수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화면 소리 질문 답변 너무 잘 들리고 좋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진성성 있는 말씀...반드시 이 시대 한국교회가 귀담아 듣고 가슴에 새긴바 되어야 할 것이다. 욕망의 세례를 제거하고 욕망을 십자가에 죽이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근본적인 자세이다. 욕망이 죽지 않는 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보기는 어렵다. 기독교의 원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는게 아니라 복음만 들어갔다하면
하늘의 보좌를 흔들고 가난했던거 멸시천대 받은거
자존감 낮은거 공부못한거 인물없는거 등등등 결핍된 모든것에
보상을 찾으려고 어마무시한 복을 달라고 혹은 난 받아야 한다고
강렬한 고백들을 해대는데
그 누구도 예외를 본적이 없습니다
특히나 신학교를 나왔다는 사람들은 그 욕망의 스케일이 참으로 대범한데
놀라하면서 살아온것 같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말할때 여러가지 뜻을 내포하기보단 분명한 한가지의 뜻을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한가지 입니다
그 한가지를 찾는게 설교자의 소명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학은 하나의 성경안에서 그 시대와 환경에 맞춘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교수님의 견해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확고한 메세지를 주기 위한 책이지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라는 말로 보는 것은 좀 어려울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성경이라는 이 텍스트 앞에서 우리는 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고 이 주장에 대해 나는 이런 스텐스를 가진다라는 확고한 결정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스텐스가 기준이 되어서 여러 해석과 관점에 대해 우리는 옳고 그름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신학의 담론이 가지고 있는 각자 해석의 개별성을 존중하긴 해야 하나 그것을 너무 존중해서 성경 전체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 보편적인 메세지를 무시하는 것은 상당히 주의해야 합니다. 서신서의 사도들이 교수님 말대로 다양함에 대한 존중도 분명히 있었으나 그럼에도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배타적이고 전쟁까지 선포할 정도로 거칠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애써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보편성, 보편적인 메세지, 본질적 부분이 정의되는 것이 무엇 인가요 그것은 당연한 거지만 초대 교회부터 수많은 기득권적 교회의 모습에서 해석되고 결론 되어진 많은 것들이 과연 옳았나요 그리고 현재의 우리나라 대형 교회와 목사들의 말과 행태가 과연 정의로운가요 성경 말씀 안에서 옳은 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어떻게 하면 믿음 안에서 실천적 삶을 살아 갈 것 인가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고 어느 누구도 옳고 그름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기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배타적 독선적 편협한 세계관을 벗어나자는 의미가 아닐까요
@@세상만사-m3c누군가 십자가와 부활을 독선적이라고 비판한다면 받아들이고 해석을 수정하실까요?
을 쓰신 백석대학교 채영삼 신약학 교수님을 모시고 "공동서신이 이 시대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조직신학자이신 김균진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명예교수님도 모셔서 귀한 말씀 들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뮈토스적 진리는 수학에서 말하는 로고스적 진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수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하나의 정답으로 떨어지지만 성경은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기에 특별한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하나의 진리만을 고집하고 싶다면 그냥 공대로 가세요 ㅎㅎ)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이미 해석된 사실들을 우리가 접하고 있음을 1차적으로 알아야겠죠. 성경도 성경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면서 여러가지 해석을 하도록 하셨을까요? 우리도 다른사람이게 말할때 한 뜻으로 말하지 여러가지로 해석하도록 말하지 않는데 말이죠. 시대에 맞게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할것은 말씀 해석이 아니고,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말씀해석이 갈리면 너도 맞고 나도 맞고가 아니라, 누가 맞는지를 성경안에서 발견해서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의 따라 하나님을 아는 분량의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이 아닐가 생각해 봅니다.
진리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섭리로 운영하시는 경륜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정의라고 본다면, 우리는 진리의 다양성이나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고 제시되고 결정되어진 모든 것은 사람의 생각처럼 다양하게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과 의견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다양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해석은 성경에 언급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일뿐, 그 해석의 결과가 진리 자체인 것은 아니죠. 이 점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신이 과학을 다루는 과학의 관점에서도 인정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지 않나? 그런데 해석의 다양성은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풍성하게 한다? 왜 본질은 해석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그럼 그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으로 보증되어야하나? 자연인가?
말은 바르게 하자 그 기록들 왜 기록 자 마다 다르나 그러므로 나 주장은 경에 너무 집착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이다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그가 임 하시면 내 것으로 너희를 가르치실 것 이라 요긴 하고 핵심적인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우리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안 계신 다면 크리스찬이 아니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리인 것이다
성경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한거죠!!!
예수님께서 비유로써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요한복음 16장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
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렇다면 왜 비유와 상징으로써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의 상황에서 아무리 말씀을 선포하셔도 예수님은 이미 구약의 율법자 및 제사장 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몰리고 계셨으니, 예수님께서 진실로 선포하시고자 하시는 하늘의 섭리를 어찌 맘 편히 다 말씀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 해주시고 싶으셨던 말씀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요? 그러나 단 하나도 들으려 않는 자들에게 되려 몰리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될 때에 예수님의 그 안타까운 심정은 또 얼마나 깊으셨을까요.
성경은 다양하게 해석되라고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실 그 감춰진 즉 차마 예수님께서 다 못하신 말씀 이면에 감춰진 뜻을 우리들이 더욱 깊이 헤아려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철부지 자녀에게는 부모님께서 속내를 다 비추시지 못하시듯이, 그렇기에 우리들이 더욱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철이들어 하늘의 말씀을 바로 새길 수 있는 우리들이 먼저 되어야겠습니다.
그때에 다시 오시는 재림주께서 더이상은 비사가 아닌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바로 알려주실 것입니다.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사고와 이해와 인식과 욕망은 어디로부터 올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내 속으로 들어온 세상 지배원리인 세상 가르침을 통해 혈과 육인 나(에고)를 구성하고 있는 "나(옛사람)"의 가치체계와 인식판단 구조인 세상의 지혜 사람의 지혜 육체의 지혜로부터 오는 사고와 생각과 이해와 인식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인 성령의 생각과 성령의 이해와 인식이 어떻게 내(새사람) 안에 일어날까?
(세상은 바깥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자기의와 율법 등을 비롯한 나를 지배하는 원리와 땅위에 있는 보화의 가치구조로 들어와 있다. 인간은 이 자기속의 세상을 벗어날수 없다. 이미 자기화 되어 자아의 자기정체성으로 스며들어와 버렸기에..)
사람의 머리는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 계시를 통해 오는 그리스도의 머리가 붙어 머리와 뿌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지혜로 충만케 되어 온전한 가치체계와 의식 및 판단구조로 존재하는 온전한 자는 어떻게 되어질까..
바울이 말하는 남자 여자는 생물학적 성별의 남녀가 아니다.
남자는 자기(에고)라는 옛사람의 머리가 βαπτισμα(밥티스마: "잠김"의 뜻. 세례나 침례로 번역한 단어. 교회에서 의식으로 행하는 세례나 침례는 이 잠김을 가리키는 그림자로 신학이론이 아닌 때가 되어 실제 자기속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사건)사건을 통해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힘으로 잘려나가고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 그리스도의 νους(누스)를 가지고 있는 이를 "남자"라 하며 아직은 마음의 생각과 이해와 인식이 흘러나오는 샘의 근원인 그리스도가 머리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가 머리인 남자로부터 흘러나오는 생각을 받고 있는 이를 성경은 여자라 한다.
신학에서 난해구절인 딤2장의
"여자가 해산하여 남자를 낳으면
여자는 그 해산함으로 구하여질것이다."
("구원을 얻는다" 는 문장은 구원을 자기가 소유하는 것으로 에고의 소유개념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구원도 에고의 죽음이 동반되지 않는 자기 소유 욕구의 충족으로 인지한다...헬라어 본문엔 구원이란 명사가 없고 "구하다"의 수동태인 "구하여지다"라고 나와있다..
"구원을 얻다"가 아닌 "구하여졌다"가 인간의 인식구조로 인한 번역의 인식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번역이라 본다.)
해산하여 남자를 낳은 그때부터 여자는 자기 머리가 잘려나가고 뿌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진액을 받아 사는 씨를 가진 남자가 된다...
그리스도가 머리인 남자는 더 이상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신학 지식이든 성경지식이든 세상적인 것이든(돈 학벌 외모 명예 집평수 교회 크기 등등) 뭐든 이용해 비교우위에 올라서려는 에고의 욕구인 큰 자가 되고 싶은 욕구(우월감 자존심)의식이나 권력욕의 산물인 권위의식 그리고 내 꺼라는 소유의식에 지배 당하지 않고 다른 이를 부속품화하거나 종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하나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우는 일에 섬기는 자가 된다..
저와 동일하게 성경을 호라오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님의 글을 더 보고 싶은데 어디서 볼수 있나요?
철학에서 말하는 진리만 논리학을 통한 보편적인 진리다. 하나님이 직접 성경을 해석해야 하나뿐인 절대적 해석이 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진리가 하나인 것에는 해석의 여지가 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14:6) 다른 진리를 또 말하는 놈은 이단이다.
아시아의 미국이 된 우리나라❤.
성경은 사람마다 달리 해석할수 있으나 하나님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눈덩이처럼 살이 붙여지듯
다양하게 더 확대 해석된다 죽을때까지 하나님을 다 알고 가지 못하죠
그사랑이 너무커서
우리가 우주를 볼수없듯이 지구만 보고 지구를 설명하는것과 같다
우주는 안가봐서 자세히 설명 못하듯
성경을 힘써 알려할때 하나님은 영적인부분까지 크고 은밀한 비밀을 하나씩 알려주시니까
조금더 사전에 만나는 사람의 저술이나 견해에 대해 파악한 뒤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전에 만날 사람을 독자들에게 공지하고 질문을 모집하거나, 던질 질문의 예시를 주고 설문조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질문이 좀 두리뭉실 한 느낌이 듭니다
해석의 다양성을 수용해야되지 않나는 부분에 성경은 한가지 메세지니 다양한 해석은 마치 성경을 모르는 것으로 글을 다신 분들께 정중히 여쭙니다. 성경자체가 여러해석을 가능하게 쓰여진것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해석이 공존해야한가라능 주장은 아니니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한번 구원받으면 형편없이 살아도 되나요? 한번구원 영원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해석해 내야합니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나요? 그러면 왜 결단하라고 설교들을 하시나요? 여자들은 목사직이 허락되야되나요 않아야 하나요?
하나님은 인간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고 계시나요 아닌가요? 그리스도인은 다 병고침 받아야 하나요? 왜 누구는 암에서 치유를 받고 누구는 안그런가요? 지옥은 정말 불떵이 속에서 고문 받는것처럼 영원히 죽지 않은 장소인가요 ? 하나님이 믿는자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보호하신다면서 왜 지금 이시간 지구 다른땅에서 기독교인들이 처참하게 살해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죽어갑니까? 나이지리아 크리스챤들이 보꼬하람이라는 무슬렘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것을 아시나요? 21세기동안만 육만이천명이 순교했습니다. 나이지리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 인도, 중국등등 이것이 현실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들을 우리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믿어보자라는 취지의 말씀인것 같습니다. 나는 믿어져! 내가 경험한건 이거니까 이게 성경적 진리야! 등등은 위험합니다.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자가 아니라 서로 수용하며 생각해보자는 말씀앞에서 겸손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신중히 말씀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경본문 해석은 정치적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교회에 부목사제도가 왜 있는지? 대표 목사님들의 도우미로 전락? 왜죠?
대형교회라서 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한국교회에서 없어져야 할 한국의 장유유서 유교문화라고 봅니다. 이걸 참고 견뎌내는 젊은 목사님들 자세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지요.
신학을 공부하시는데 왜 성경만 보는거죠? 신이 만들어놓은 물리학의 법칙을 왜 신학에서 안다루죠?
이세상을 성경만으로 편파적으로만 보는게 맞는건가요?
신학과 물리학의 충돌되는부분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마치 여친이 쓴 연애편지를 읽고 '연인의 향기의 냄새 분자 화학식에 맞춰서 적었냐?'를 기준으로 따지는 건 무의미하듯이
신이 계시를 위해서 준 문장을 가지고 '물리학이 어떻고'를 따지는 건 무의미해서 그렇습니다.
모든 문장은 그 의도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도가 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살 때
"해가 떴다"고 말하지
"지구가 자전해서 가시 영역대 파장의 태양광이 내 망막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위치로 각이동 했다"
라고 말하지 않쟎아요.
똑같은 이치입니다.
구름바람님이 신이라면
3천년 전의 근동 사막 지방 사람들에게 똑같은 현상을 두고
'쿼크 입자가 글루온을 방출하고 특정 에너지 포텐셜 준위에 도달해서 광자 교환이 일어나고 해당 파장에 맞는 전력이 공급되어서 구름 속 하전 입자들의 전위차가 생성되었다'고 적어 주겠습니까
'번개가 쳤다'고 적어 주겠습니까
"전자대로 적어 주겠다"고 대답했다면 나중에 서기 2500년 쯤 과학 상식으로 보면 전자의 문장도 얼마나 유치해 보일까요?
완벽해 보이던 뉴튼 역학도 아인슈타인 보어의 현대 역학으로 보면 불완전하듯이요.
성경이 진리인 것은 주제의 단일성과 논리적 일관성에 있는데 다양성을 인정한다구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세요~
성경을 모른다고.,
성경해석이 다양한 것은 지식의 수준문제다 사실 해석이 다양하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가 되어야지 그 뜻이 각기 다르면 말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한 것이다
온전한 성경해석 방법은 키워드를 알면 해결된다! 키워드성경공부다
해석이 다른 이유는 당연히 성경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희미한 청동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듯
불투명하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이란 주된 주제는 알수 있으나
그 이상의 디테일한 부분은 몰라도 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 예수 재림의 날짜를 성경이 말하던가요?
애초에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은 여기에 적힌 것 보다 많으나 다 적지 못하였다고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원하는 마음은 너무나 선하나
우리가 확실하고 완벽하게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아지에게 간식을 일정량 나눠주듯이 자신을 조금씩 밝혀주시는 것을 기다려야하죠
성경은 믿음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도 되는가?성경의 뜻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시'는 성령의 감도로 성경에 글로 담기고 표현되어 보존된 것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성령) 한분이기 때문에 한 의미로만 해석되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도 구약성경을 달달 외웠지만 그 성경안에 나오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할수밖에 없었던것은 그안에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예를 들면 구약의 예언은 가까운 미래만 말하지 않고 먼 미래도 말합니다. 한가지 뜻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좀 쉬운 결론 같네요^^
성경이 여러가지 뜻이라면 진리라고 할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