δικαιοσύνη γὰρ Θεοῦ ἐν αὐτῷ ἀποκαλύπτεται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로마서 1:17) δικαιοσύνη - 의로움 γὰρ - 왜냐하면 Θεοῦ - 하느님의 ἐν - 안에서 αὐτῷ - 그 안에 ἀποκαλύπτεται - 드러나다 ἐκ - ~에서 πίστεως - 믿음 εἰς - ~로 πίστιν - 믿음 καθὼς - ~처럼 γέγραπται - 기록되었다 Ὁ - 그 δίκαιος - 의로운 사람 ἐκ - ~에서 πίστεως - 믿음 ζήσεται - 살 것이다 저와 비슷한 문제제기를 한 개신교 내의 글이 있어 공유합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개신교를 전혀 모르는 무지한 가톨릭신자가 음해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미 나온 지적을 제가 한번 더 이야기 한 것 뿐입니다. 영문은 원본이 아니라고 따지시는 분들도 계신데, 원문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원문도 보았고,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과도 비교한 것입니다. 또한 이 영상은 구원론 '오직 믿음'이 맞네 틀리네를 따지는 영상이 아닙니다. 개역 개정 성경 번역의 지나친 의역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제 말씀을 잘못 이해하시고 구원론을 따지시면서 성경구절을 따로 떼어 보면 안된다고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구원론과 관련하여는 ua-cam.com/video/YqjO4KvHoHE/v-deo.html 를 봐주세요 아래 구절들을 참고하세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NIV, Romans 1:17)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KJV, Romans 1:1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7) Where, then, is boasting? It is excluded. On what principle? On that of observing the law? No, but on that of faith. (NIV, Romans 3:27) Where is boasting then? It is excluded. By what law? of works? Nay: but by the law of faith. (KJV, Romans 3:27)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4:13) It was not through law that Abraham and his offspring received the promise that he would be heir of the world, but through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NIV, Romans 4:13) For the promise, that he should be the heir of the world, was not to Abraham, or to his seed, through the law, but through the righteousness of faith. (KJV, Romans 4:1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For by the grace given me I say to every one of you: Do not think of yourself more highly than you ought, but rather think of yourself with sober judgment, in accordance with the measure of faith God has given you. (NIV, Romans 12:3) For I say, through the grace given unto me, to every man that is among you,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soberly, according as God hath dealt to every man the measure of faith. (KJV, Romans 12:3)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9)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th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God and is by faith. (NIV, Philippians 3:9)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KJV, Philippians 3:9)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NIV, Galatian 2:16)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 (KJV, Galatian 2: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6) But when he asks, he must believe and not doubt, because he who doubts is like a wave of the sea, blown and tossed by the wind. (NIV, James 1:6) But let him ask in faith, nothing wavering. For he that wavereth is like a wave of the sea driven with the wind and tossed. (KJV, James 1:6)
'동의'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행함'이 없거나 부족하거나 있기는 하지만 잘못 행하고 있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은, 대체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떠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개신교 목사들 중에도 그 저서에서, 언급하신 구절들에 관하여, "성경에 '오직'이라는 말은 없다"라는 소제목으로 책을 써서 의견을 표했습니다. 형제님과 그 목사를 포함하여 일부 신학자들이, 그 구절들에 대해 '교정'은 하고 있지만, 이후의 언급은 별다른 게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요...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좋으나 그 방법이 비판이나 헤아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말하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비판과 헤아림에서 똑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은 지식과 시기의 차이일뿐이지 지금 틀렸다고 교정해주는 부분을 똑같이 본인도 틀리게 되어있거든요 품어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만이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 믿습니다 이 영상도, 이 영상의 댓글도 비판과 헤아림의 글들이 대부분이듯이요 설령 온전히 맞는 말을 할수있다해도 그 맞는 말로는 사람을 바꿀 수 없어요 열매로 그 씨앗을 알수있으므로 올바른 믿음인지 분별할수있는 말씀들을 계속 묵상하게 만들어 주는 말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올바름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실일이라 믿습니다 아멘
의도적으로 '오직'이라는 표현이 과도하게 들어간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개정이 나온지 대략 30여년정도 되었죠.. 그이전에 사용하던게 '개역성경'이었고요.. 그런데 표준새번역에서는 '오직'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요즘은 이를 개정한 '새번역'성경이나오고 있지만요..) 솔직히 요즘 성경통독을 하면서 개역개정에서 좀 난해한것에 대해서는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개정판)'을 참조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첨언하자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건 맞습니다.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타종교와 다를바 없습니다. 예를 들어드리죠. 돌쇠와 개똥이라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구걸을 하러 갑니다. 돌쇠는 이대감 집으로, 개똥이는 박대감 집으로 갑니다. 돌쇠는 이대감에게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니 밥을 좀 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이대감은 돌쇠에게 자기네 집 마당을 다 쓸면 밥을 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돌쇠는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밥을 먹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해 마당을 쓸기 시작합니다. 마당을 다 쓸자 이대감은 고작 감자 한개를 줍니다. 개똥이는 박대감에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 밥을 좀 달라고 말을 합니다. 박대감은 측은한 마음으로 개똥이에게 7첩반상을 차려줍니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합니다. 밥을 다 먹은 개똥이는 너무 고마워서 시키지도 않았지만, 마당을 씁니다. 은혜로 믿음을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 없는 나를 깨닫고, 이런 나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는데, 행위가 없다??? 네,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마태오 형제님~ 로마서 1:17을 보시면 “오직 믿음으로” 라고 한글 번역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오직 의인”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호 데’를 오직으로 번역한 것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되오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와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믿음의 강조 보다는 오직 의인이라는 의인에 강조가 되어 있는거로 보는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 개신교에서 맨첨에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뺄려고 했다는 말을 신부님께 들었어요. 믿음에 실천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있기 때문에요. 하느님이 계시다는건 지옥에있는 영혼도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하셨어요. 이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면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걸 이해할 수 있게됐어요… 믿음 말씀 중요하죠 하지만 내가 변하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과 성체신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미국의 어느 구마사제가 말하길 마귀는 우리 모두를 합한것 보다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하느님을 알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아니까요. 믿는것 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야겠지요.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내가 주인되어 살겠다는 형제 자매들을 가끔 보게되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천사가 하느님께서 부여한 존재목적을 거부하면 마귀가 됩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안에 우리가 가져야할 순명과 겸손이 모두 들어있다 생각합니다.
초기 루터 목사가 일부러 빼려고 지푸라기라고 하고 빼려 했다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집어 넣기는 했죠. 실천 없는 죽은 믿음이 피정의 결과라고 자기가 오해한 실천 없는 십자가 신학으로 오해된 거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로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는데 한국 개신교에서는 아르뱅주의로 믿음의 증거인 실천을 하는 것은 필요없다고 실천부재의 구원파식 믿음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습죠. 루터도 결국 철회한 것으로 압니다.
제 말을 그냥 믿지 마시고 직접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m.cafe.daum.net/kim1056347/47bT/1312?listURI=%2Fkim1056347%2F47bT 깨어계신 분들은 문제를 개신교내에서도 지적하십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저는 장로교 신자이며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되어있는 원문 성경과 영문 그리고 한글 성경을 비교하며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 입니다. 위의 영상 안에서 마테오 형제께서 짚어주신 "오직", "오로지" 들과 같은 부사. 즉, 동사, 형용사에 해당하는 용언과 부사, 그리고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수식어에 대한 단어들을 한국 개신교 성경에서는 사용하여 원문 성경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인도 굉장히 아쉬운 해석이며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으로 이렇게 한국어 성경 뿐만 아니라 영문 성경에도 오류가 있는 번역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모송세번 바칠게요♡pm3:57 자비기도 바치겠습니다♡pm1:46~ 박사님♡감사드립니다♡🎂🧸🌺 박사님♡덕분에 3시까지 자비기도를 달리게 되네요~ 오랜만입니다~ 제게도 은총이 같이 쏟아집니다~♡ 자비기도 10/17까지 하고 드문드문 건너뛴 날이 존재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하나씩 메꾸고 있습니다 3시에 11/14 기도하고 끝낼게요~♡ 감사드립니다 박사님♡😂 박사님 영상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3시 자비기도로 갚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20회 거의 다 해가는데 2시간 채울거 같아요 ㅋ17번째 하구 있어요~♡
지나가던 개신교인 크리스천입니다. 말씀의 취지를 잘 이해했습니다. 오해가 없길 바라는 부분은 개신교에선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믿음과 행위(혹은 선행, 혹은 성화)는 동전의 양 면처럼 함께 간다고 배웠습니다. 다만, 개인의 신앙 성숙의 차이로 인해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못해 생겨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믿음과 삶은 일치해야하며 이는 나의 노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주께서 인도하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감사히 듣고 갑니다.
오해가 있는게 아니라 제가 아는 개신교인들 10명중 9명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던데요. 모든 개신교가 다 그렇게 가르치는양 일반화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당신 교회에선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시는게 맞을듯 합니다. 사실 님같이 깨어있는 분들이 전체개신교인중 몇%나 될까요?? 과거에 자신들이 주장하고 고집했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 하면서 카톨릭을 공격하기도 했던 주제였었는데... '믿음 안에 선행이 포함되 있다' 돌려말하니 변명하기 참 쉽네요.
개인적인 사견 조심스레 남겨봅니다. (긴글 죄송합니다...) 마태오 형제님께서 개신교가 원문에도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를 본인들의 교리의 강조를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고 말씀하시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직'은 개신교가 자신들의 교리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넣은 것이 아닙니다.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번역한 영어성경은 NASB, KJV, NKJV, ESV, NAB, NIV, NLT, TLB 등등 꽤 많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어성경을 한 구절씩 서로 비교 분석하다보면 서로 일치하는 부분도 많지만, 서로 통일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 원어에는 없었던 단어들이 번역본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요. 마태오 형제님이 예시로 들어주신 구절인 로마서 1:17절을 살펴보면, NIV: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KJV: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한눈에 보아도 서로 다른 부분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마태오 형제님의 논리대로라면 NIV 번역에 참여했던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교리적 성향을 강조하기 위해 원문에도 없는 εὐαγγέλιον (복음, Gospel)을 넣은 것인가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첫째로, 언어가 가진 성격과 번역의 과정 때문이며, 둘째로, 히브리어,헬라어 원어성경이 가진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어는 언어가 가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언어일 때만 느낄 수 있는 뉘앙스가 존재하죠. 예를 들어, 한국인이라면 '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바로 인식하고 느낄 수 있지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정'이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입니다. 이 '정'이라는 단어에 딱 맞는 영어의 단어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가게는 참 정이 없네" 라는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단어를 직역하여 "This place is so heartless' 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단어를 의역하여 "I feel a lack of warmth and friendliness from the people in this restaurant." 이라고 할 수도 있죠.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이 원어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같은 구절을 보아도 어떤 학자는 직역을 선택하고 어떤 학자는 의역을 선택합니다. 직역에 가까운 영어 성경은 KJV, NKJV, NASB와 같은 성경이고, 직역과 의역의 중간이 NIV 이며, 의역이 NLT 성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본 내에서도 그 번역이 서로 상이 한 것입니다. 이는 영어성경이 한글성경으로 번역될 때, 또는 원어성경이 한글성경으로 번역될 때에도 당연히 적용이 됩니다. 둘째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성경이 가진 특성은 바로 그들 역시 사본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의 저자로 인해 가장 처음 기록된 원본을 autograph라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원본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전부 다 원본을 필사(베껴 쓴)한 사본입니다. 사본은 기본적으로 손에서 손으로 기록되는 특징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과정에 실수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과거의 문헌 기록의 기술은 그리 좋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글자의 형태가 변하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비평을 통해 가장 원본에 가까운 성경을 되찾기 위해 많은 신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노력을 해왔던 것이죠. (본문비평이란, 구약을 기준으로 Masoretic text, LXX, Samaritan Pentateuch, Qumran, Peshitta 등과 같은 사본 및 번역본을 비교 분석해서 원본의 형태를 찾는 학문) 그래서 학자들마다 원문에 가까운 형태로 믿는 구절이 약간씩 다릅니다. 제가 알기로 카톨릭은 LXX (70인역)이라고 불리는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가장 신빙성있게 보는 것으로 알고 있고, 유대인이나 개신교는 BHS or BHQ (Masoretic Text)를 가장 원본에 가까운 성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원어 성경을 기준으로 두고 번역을 했는지에 따라서도 영어성경과 한글성경의 내용이 조금은 다를 수 있죠. 이런 복잡한 과정과 노력은 뒤로하고 단순히 한국 개신교가 원문에도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를 본인들의 교리의 강조를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드리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이미 너무 글을 길게 작성했기에...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이 적은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직이란 단어만 문제가 있는게 아닙니다. 개신교에 주기도문에 시험에 들지않게 하시고 부분이 있는데 천주교는 그 부분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로 되어 있는데 개신교는 4대 복음 전체 유혹이란 단어가 들어가야할 부분에 시험이란 단어를 넣었습니다. 유혹과 시험은 단어의 뜻이 다릅니다. 저도 이 부분이 이상해서 개신교인이었다가 천주교로 세례를 다시 받게 됐었습니다..
@@성진박-k7q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우리나라 개신교 통성기도는 마치 바알한테 기도하는 바알사제들 같습니다. 님이 위에 서 얘기한 비유는 찬양이죠. 찬양은 하느님께 즐겁게 힘껏 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옆에 사람이 볼 때 바알사제들처럼 흉칙하게 자학하는듯 소리질러대는건 민폐에 불과합니다.
@@yunsangkim3859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거라 통성기도가 바알숭배같다는건 너무 가신것 같네요.. 님처럼 통성기도가 혹여나 불편하신 분들이 많아서 점점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마 한국개신교가 미국에서 순복음교단이 들어온 이후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다보니 방언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러면서 그런문화가 유행처럼 번진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잔잔하고 깊은 묵상의 기도가 더 큰 은혜가 됩니다.
정말 많은 개신교분들에게서 볼 수 있는 말, 이 영상에 댓글을 단 개신교인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믿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그 말이 저는 정말 실천에 대한 궁극의 회피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들도 교부들도 어느 누구도 그런 가르침을 준 적이 없습니다. 개신교적 오직 믿음이 나오고 나서야 가르치게 된 가르침이지요. 그리고 그 가르침은 죄 앞에 넘어지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믿음을 통한 실천보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니 실천에서 넘어지면 아 나는 믿음이 없구나 하고 정말 잘 믿고 있는데도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화는 저절로 되는게 아닙니다. 성화는 우리가 마음을 쓰고 실천할 때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개신교도 믿으면 행위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렇게 가르치는 목사님들도 계시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 또한 많은 개신교 성도들도 알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중요하지만 그 믿음에 성도들의 행위 또한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우위라고 말할 수 없어요.
@@hyeryun2 제가 개신교 신자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바로는 개신교에선 믿으면 행위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예시를 보여드릴까요? 지금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서 개신교 신자분들의 댓글들을 보십시오. 십중팔구 믿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개신교 교회에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가르치던가요? ㅋㅋㅋㅋㅋ 행함 없이 믿음 있다 말만 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지 않고요? 어떤 사이비 개신교가 그러는지 궁금하네요 ㅋㅋㅋ 아직 성경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어떤 신도들이 하는 말을 잘못 들으신 건지도요. 어떤 종교도 다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절 다니면 부처님 말씀을 100% 깨달아 틀림이 없이 말할 수 있고, 성당 다니면 성경 말씀을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해석하는 능력이 생깁니까? 왜 일부의 "카더라" 가지고 "전체가 다 그렇다"고 오해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여기계시는 분들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난 외계인을 믿어!" 그럴때 믿음인가요?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의 그 믿음인가요? 그것부터 제대로 규정한 다음 다음 논의가 되어야 말이 통할 것 같구요! 한가지 더 묻고 생각하고싶은건... 여기 계신 님들은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 마음과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신가요? 격한 어조로 따지고 비꼬는게 아니라 질문한거니 싸우자고 답글 안다셨으면 좋겠습니다. 카톨릭 신사들이시잖아요~^^
@@AKang-gc9eb 그러면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등등의 구절들과 상반된다는 시각인 건가요? 아니면 저기서 말하는 실천이란 믿는 것을 말하는 건지, 아님 믿음이 실천까지를 포함하는 건가요?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저는 가톨릭신자이지만 믿음엔 faith와 belief가 있는데 faith는 영적인 차원의 '진정한 믿음'의 의미라고 하네요. 그냥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믿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선행이 따라온다 이러더군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하고요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로 나타나야 하므로 'faith=before믿음+after선행'이라 선행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닌듯. 바오로서간에도 진정한 믿음(faith)은 선행이 저절로 수반된다는 구절이 자주 나오더군요. 성경을 곡해하는 사람은 문자만 갖고 바오로와 야고보의 구원관이 상반되었다고 그릇된 주장을 하고 베드로 3장16절에 바오로의 복음이 어려워서 무식한 사람에 의해 그렇게 곡해할수도 있다고 경계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믿음과 행함이 서로 분리될수 없다면 '믿음'앞에 굳이 '오직'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겠죠. 실제 믿음과 실천이 일치되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실천이 어려운만큼 문제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교리에 '믿음+실천'의 카톨릭교리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신학자들이 성경원본과 개신교 성경을 비교해보니 루터가 믿음앞에 '오직' 을 삽입했고 1,400여군데 손을 댔음을 밝혔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인들의 구원관은 예수님 십자가사건으로 이미 구원을 다 받았으니 살면서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일부 소수 식자층의 개신교인들은 카톨릭의 교리도 있고 해서 꼭 그렇게 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개신교인 90%는 그리 믿고 있을겁니다.
@@Respect-kg6wr 제 말을 잘못 알아들았나본데 영어 faith를 인간들끼리 신뢰하는 믿음(belief)으로 번역해서 앞에 '오직'이란 말을 붙인 개신교 목사들의 잘못을 지적하고싶은겁니다. 제대로 번역하려면 선행이 필요없다는 의미로 곡해할 수있는 '오직 믿음'대신 '(선행이 전제된)진정한 믿음'으로 번역해야 옳다는거죠. '진정한 믿음'은 육화된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진심으로 믿는다는거고 그런 자라야만 남에게 사랑을 베풀수있다 이런 예깁니다. 마태오형제님의 말을 반박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견진성사까지 받은 가톨릭신자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말씀을 사랑하는 개신교인입니다. 우연히 알고리즘을 통해 영상을 접했는데 7:34 부터 강조하시는 부분에 깊이 동의합니다. 제대로 성경을 배우고 묵상한다면 이 영상에 강조하신 '오직 믿음'에만 기대어 나의 구원받음과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했음을 주장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당연히 복음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믿음의 완성은 성령님의 감화를 통하여 나의 존재가 거듭나고 그로 인해 삶의 전반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남을 믿습니다. 요즘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는 커녕 복음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며 우월감을 느끼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의 개신교인들을 보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부족함 많고 부끄러운 개신교 신자이지만 이러한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참 진리를 깨닫는데 힘쓰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거 정말 한국 개신교에서 제대로 정정해야 하는 번역 이슈네요. 오직 성경-믿음-은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만든 이론인데..그걸 주장하고 홍보할 수는 있지만 성경에 포함하는 건 아주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오직'은 '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의 이론과 주장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죠.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건강한 소통을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총신대 신학과 출신입니다. 헬라어 번역에 대한 유튜버님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다만 ‘오직’이라는 표현은 수사적인 강조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헬라어 원문에서 사용된 접속사들에는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번역을 특별히 좋아할 만한 교파는 루터교밖에 없을 텐데 한국에서는 루터교의 교세가 매우 약해서 음모(?)를 꾸밀 만한 세력이 못 됩니다. 번역이 구원론을 형성하는 데 잘못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조차 행위를 필요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화(행위)와 칭의(믿음)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보기 때문이죠. 가톨릭 역시도 공로(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에 대한 신자의 반응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고요. 애당초 행위구원은 가톨릭 내에서도 오래 전에 이단 판정을 받은 교리이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이를 더 확고히 했죠. 심지어 최근의 학자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은 구원론에 있어서 강조의 차이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까지 인정합니다.
저도 구원론의 간격이 좁은 건 알고있고 이 영상에선 그것에 대해 문제 삼으려던 의도도 없어요.. 물론 하다보니 가톨릭 구원론관련 잠깐 언급을 하게되었습니다만 번역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역이 간격이 멀지않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원론을 멀게 느껴지게만들고 대화가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 제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헬라어 원문에서 사용된 접속사들에는 강조의 의미가 있고 개신교 성경 역자는 이 강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수 있는데 이는 의도적 오역이 아닙니다. 애당초 헬라어 원문과 일 대 일 대응되는 한국어 번역 자체는 불가능합니다.
의도적 오역이 아니라 의역중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다라고 보신다면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개신교쪽에서 나온 글 한번 참고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오직이라는 표현은 절대성/고립성을 내포하는 단어이기에 단순히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설명은 누구나 납득하기 어려울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오직 믿음이라는 저 구절을 근거로 박옥수 구원파 등이 자체적인? 구원론을 주장할때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해당 오역은 신앙에 있어서 아주 지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입니다. 개신교 내 수많은 교파가 있기에 구원파외에도 해당구절을 곡해하여 설교하는 교파는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마태오 형제님 감사합니다.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영상입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자기만의 믿음, 생각, 고집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실천하며 그 분안에 함께 하는것이 주님께서 바라시지 않으실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하고..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마태오 형제님 안녕하세요? 중학생 가톨릭 신자입니다! 형제님의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고 있는데요 이해가 잘 되게 설명 해주시더라고요 형제님께 부탁 아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11월 10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도중에 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베이사이드 미카엘회"의 유인물을 배포하는 사람이 있더라 고요 확실히 심각하단 생각도 들고 해서 교회에 인준을 받지 않은 "마리아의 구원방주" 라던지 "베이사이드 운동" 같은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 대해 신자들에게 경고나 일깨움을 줄 수 있는 영상이 필요하다 느껴서요 저도 사실 초등학생때 지식인에 죄가 많은데 지옥에 가는가에 대해 글을 올렸었는데 그때 이제 어떤 사람이 답변에 "나주 성모동산에 견학을 할 필요성이 있다 5대영성을 해라" 라는 답변이 와서 어렸을때 뭣 모르고 영상을 클릭해서 시청한 적이 있었거든요 사실 그때 잘 모르고 빠졌으면 큰일 날 뻔 했죠 아무튼 신자분들에게 경고하는? 심각성을 일깨우는 영상이 필요할 꺼 같습니다
참 개신교는 넘 많이 상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네요.^^.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마태 25,31-3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심판관’으로 오실 것입니다.여기서 ‘모든 민족들’은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입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날의 심판은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인다는 말은 심판받기 위해서 모인다는 말인데, 아무도 심판을 피해서 달아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라는 말은, 구원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을 갈라 세운다는 뜻인데, 심판이 순식간에 끝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소하고, 변론하는 등의 심리 과정도 순식간에 끝나버립니다.양들을 오른쪽에, 염소들을 왼쪽으로 세운 다음에 남은 절차는 ‘선고’뿐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4-36)”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굶주렸을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였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라는 말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서 언급된 ‘가난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오른쪽에 서 있는 양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믿고 받아들여서, 복음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의인들은 “주님, 저희가 언제......?” 라고 질문합니다(마태 25,37-39).의인들의 질문은, 자기들이 사랑 실천을 한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 실천을 했지만 ‘주님께’ 해 드린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고 대답하십니다. (“나에게 해 준 것과 같다.”가 아니라, “나에게 해 준 것이다.”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강도들을 만나서 초주검이 된 사람’(루카10,30)은 바로 예수님이었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도와드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나의 앞에 있는 ‘작은 이’가 곧 예수님이라는, 또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작은 이’로서 나에게 오신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 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신앙과 사랑은 하나”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선고가 내립니다(마태 25,41). 선고 이유는 그들이 사랑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고에 대해서, 악인들은 “주님, 저희가 언제......?” 라고 질문합니다(마태 25,44). 그들의 질문은, “주님께서 그런 처지에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도와드렸을 텐데, 몰라서 못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해도 주님에게는 합니다.” 라는 뜻인데,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말입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들이 사랑 실천 자체를 하나도 안 했음을 나타냅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 작은 이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셨더라면, 저희는 틀림없이 사랑 실천을 했을 것입니다.” 라고 항의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복음 말씀은, 그런 항의를 할 경우에 대비해서 ‘너의 앞에 있는 그 작은 이가 바로 주님이시다.’ 라고 미리 알려 주는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몰랐다.’고 변명하지 말고, 또 ‘왜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항의하지도 말고, ‘지금 당장’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여라.” 라는 가르침. 여기서 ‘한 사람’이라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마태 25,40.45).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사랑 실천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굉장히 ‘큰 사랑’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바라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형편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인류 전체를 구하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초능력을 발휘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굶주리는 ‘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는 ‘한 사람’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작은 사랑도 사실은 ‘위대하고 큰 사랑’입니다. ‘사랑’은 큰 사랑이든지 작은 사랑이든지 간에 모두 고귀하고 위대합니다.
저는 이십년전 세례받고도 형식적인 신자에 불과했고 무지했습니다.영적인 갈망이 느껴져 뜨거운 개신교 신자였던 회사동료에게 말씀 나눔을 받고 저도 동기유발이 되었고 미지근한 제 신앙이 마치 가톨릭을 대표하는것처럼 부족히 느껴졌던 그때 이단 사역까지 하려고 공부했다던 그지인이 조심스레 가톨릭은 세계에서 가장큰 이단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뜨여서 그이후 저는 가톨릭에 대해 조금씩 공부를 더했고 성령세미나로 통해 충분히 뜨거울수있음을 알았고 레지오를 들어가 성모님을 신성시 하는게 아닌걸 알았고 지금은 성경학교를 다니며 성경공부를 하며 무지하지 않게 뒷받침 하려고하고있습니다. 가톨릭은 뜨겁지 않은게 아니였고 제가 부족했다는것을 더 느꼈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어요 근데 문제는 공부하면 할수록 그 개신교 지인한테도 그렇게 가르켰을 목사님께 그 종파에 너무 화가나고 속상합니다. 얼마전 프랑스 올림픽에 대한 비난도 그땐 모르고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톨릭이 종교다원주의.동성애옹호했다고 혼자 착각하고 비난하는것을 뒤에서야 알았습니다. 사람 자체로는 참 좋은데 이 극복할수없는 저들만의 굳센 이념이 이젠 거리감이 생기네요
아이 친구 중 교회 다니는 아이가 우리는 성당 다닌다고 했더니 목사님이 거기는 진짜 교회 아니랬어요 그러더라구요 어떤 아이는 대뜸 와서 마리아는 가짜 신이예요! 그러지를 않나 목사님한테 배운 거죠 다 나름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가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 교황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겠냐는 질문에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단적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개신교 형제 자매 여러분, 성경에선 분명히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묵시 22,18-19) 믿음을 강조하려고 원문에도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를 성경에 추가한 것은 잘못이 맞습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건 교회가 해야 할 일이지, 원문에도 없는 것을 성경에 강조한답시고 추가하는 건 묵시 22,18-19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롬2:13, 2:29, 3:27, 4:13, 6:13, 7:13, 8:20, 8:26, 9:7, 9:8, 9:16, 12:2, 12:3, 13:14, 14:17에서 “알라”라는 단어는 “오직”으로 번역된 것이다, 심지어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마6:13)에서 “다만”도 “알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알라”는 강조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영어 단어의 but 도 "그러나" 라는 용법외에 강조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오직 믿음에서 “오직”은 믿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는 것이 옳다.
현역 통번역사로써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합니다.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오직"이라는 원문에도 없는 단어를 추가함으로써 어떻게 해당 구절의 원의에서 이탈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도적으로 변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중 하나네요. 개신교 성경을 읽다보면 장과 절은 있는데 내용이 (없음) 이라고 되어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꽤 자주 나타나지요. 이런 내용들의 원문이 무엇인지 다루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개신교 성경이 참 심각한 문제가 이 부분이죠 원어성경과 비교하면 의역된 게 아닌가 싶은 부분들이 군데 군데 있습니다 때문에 한 때 몇 몇 교회를 중심으로 헬라어 원문에 접근하고 설교하는 방식이 유행했었는데, 대중화가 되지는 못한 것 같더라고요. 아니 뭐 이런걸 다 떠나서, 미국에서 유학하신 분들도 개역개정과 NIV의 서술 차이에 관해 입 다물고 있는 판이니 개신교는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저 모습일겁니다
@이것보라 카톨릭에 대해서 뭘 알고 얘기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교황 성하께서 황제의 위치에 있다고요, 뭐 중세 교회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대에 와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황의 입김은 커녕 교구장 주교의 입김도 크게 실감이 안될 정도로 영향력이 사실상 약해진 상태라고 보셔도 됩니다. 지금은 사제의 영향보다 각 평신도회 회장들과 본당 총회장이 각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성경말씀을 임의로 추가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입니다. 바로 이 성경 구절이 생각나네요..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묵시 22,18).
@@moremoreplus야고보서에 의인의 기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약 5,16) 초기 그리스도교에서의 의인은 현재 개신교의 주장대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이미 죽었지만 하느님 곁에 살아계시는 수많은 성인들도 포함됐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라고 하셨었지요.(막 12,26-27)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만 야고보서의 의인의 기도를 지상의 살아있는 자들에게만 국한되게 축소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이 왜 가톨릭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가라는 의문점이 생기는 거고 우상숭배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연옥은 가톨릭 뿐만 아니라 정교회에도 델로니아라는 이름으로 있고 심지어 유대교에도 게헨나라는 이름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도 하지요. 물론 연옥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와있는 건 아닙니다. 허나 연옥을 암시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은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외경인 마카베오기는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 12,32) 여기에서 내세는 어디를 의미할까요? 제가 아는 개신교의 교리는 살아생전 예수님을 믿었으면 구원 받아서 천국에 이르고 아니면 지옥으로 갑니다. 하지만 위 구절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지요. 그러면 죽어서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건데 그러면 개신교의 교리와 맞지 않습니다.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 (고전 3,15) 이 구절에선 구원은 받았지만 불속에서 목숨을 겨우 건지듯이 한다고 기록돼있는데 개신교의 주장대로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할 시 천국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가는 곳으로 불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옥은 아예 구원이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저 구절에선 "구원을 받겠지만" 이라고 돼있지요. 즉 지옥이랑도 맞지 않는 겁니다. 결국 마 12,32의 내세와 고전 3,15의 말씀은 연옥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황은 무오하다는 것은 먼저 오해를 풀고 가겠습니다. 가톨릭의 교황 무류성은 교황의 모든 발언이 전부 오류가 없다는 것이 아닌 가톨릭 신자들이 무조건 믿어야 할 믿을교리, 즉 신앙 도덕에 관한 중요한 교리를 선포할 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심과 평소 가톨릭의 신부, 주교, 대주교, 추기경의 발언들도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중 하느님을 안 믿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발언은 전혀 교리의 위치가 아니고 단순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에 불과합니다. 즉 비판해야 하고 충분히 오류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성경에서도 가톨릭에서 1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가 무류권을 행사하고 예수님 대신 교회를 이끈 구절들이 있습니다. 마 4,18-22; 막 1,29-34; 눅 4,38,41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첫 제자로 나오고, 마 10,2; 마 17,1; 막 9,2; 눅 9,28에서 베드로가 사도들 명단 중 항상 첫자리였고, 마 16,16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요 20,1-10에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사도들이 무덤에서 기다렸다가 베드로를 먼저 들어가게 하고, 눅 24,34에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다른 사도에 앞서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시고, 행 15,7에서 예루살렘 사도회의 때 베드로가 회의를 주재하고 하느님이 사도들 중 베드로를 뽑아세우고, 마 17,1; 2,3-26에서 항상 사도들의 대표로 간주되고, 행 1,22에서 베드로가 마티아를 새 사도로 세우고, 행 2,14; 3,6에서 베드로는 첫 설교와 첫 기적을 행합니다. 특히 가톨릭에서 1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가 무류권을 행사하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행 15,7-12) 이 사도회의가 개최된 예루살렘은 야고보 사도가 사목하던 곳으로 베드로 사도의 관할이 아니었으나, 베드로 사도는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무류권을 행사하여 율법주의에 빠질 뻔한 교회의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ahhatv 구원 받으면 자연스레 선한 삶을 살게됩니다. 영화의 살인범처럼 남의 슬픔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이기심에 사로잡히진 않죠. 살인범이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면 눈앞에서 절규하고 망가지는 사람을 보며 그런말을 할수있을까요? 먼저 사과하고 회개하면서 눈물흘렸을 겁니다.
ㄷㄷㄷ 개신교 성도님들은 이 사실을 아시고 계실까요? 음... 이렇게 된 이유가 있겠군요... 문제의식이 크시죠 저두요~ 저들도 세례를 받은 하느님 자녀이고, 우리 형제 자매들이니 , 형제님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반드시 아실수 있게~♡ 마태오 형제님~ 축복합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돌보심안에 평화롭고 기쁜 날들 되게 도우소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받으소서
@@AKang-gc9eb 저도 개신교인인데 이 영상 보고 원문도 찾아보고 개신교계에서 이와 관련해 있었던 논담도 찾아봤습니다. 개역성경에서 '오직'으로 번역된 de는 only, alone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는 아니고, rather나 but 등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단어입니다. 단지 개역성경이 처음 번역될 때는 '오직'이라는 단어가 '오히려'의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도적 오역은 아닌셈이죠. 그러나 요즘에는 오직은 거의 only 등의 의미로만 쓰여서 곡해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젠 개신교회도 너무 오래된 번역본인 개역성경보다는 새번역 등을 사용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꽃피는봄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 21)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 7, 22)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마태 7, 23)
어느 댓글에서 본인도 교리만 너무 사랑한적이 있었다며 형제님도 그러는거 아니냐는 개신교분이 계셨죠. 개신교는 "오직 말씀" 이라 그 말씀에서 추출한 교리에만 매달리게 되기 쉬우니 그렇구나 했어요. 우리는 교리말고 사랑할게 너무 많죠. 교부들, 바오로가 굳게 지키라고했던 전통들, 성사들-특히 실제로 오시는 예수님의 성체, 협조자엄마, 사도계승된 하나의교회의 교도권 등 오직 말씀, 오직 믿음 ... 이런주장 볼때마다 포도당 수액만 맞겠다는건가 싶어요. 단백질 기름 비타민 미네랄 없으면 병걸리는데... "건강"한 신앙은 어찌 지키나. 소중한걸 커버없이 보관하면서 물려주겠다는건가 싶죠. 냉장보관,차광보관 해야하는데 미지근하게 자외선노출하면서 "변질"시키지않을 노력에 대한 태만... 결국 개신교는 사이비의 요람이되고 3만3천개의 콩가루가.... 우린 특별한 지향이 있으면 하나의교회안에서 각기 다른 카리스마를 지닌 수도회를 만드는걸로 해결하는데 말이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구약성경 하박국서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인데,악인이 의인보다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선지자 하박국이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질문을 하자 하나님이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불신에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의인들이 고난을 받고 악인들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너는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또 신약성경 로마서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으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믿음은 율법과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파송된, 이방인 담당 선교사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말을 반박했습니다 달랑 예수 하나 갖고는 구원 못받아 구약의 율법에서 하라고 한 행위들(할례 안식일 동물제사 부정한 음식 안먹기..)까지 다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즉 예수의 십자가 속죄 사역은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말을 듣는 이방인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바울은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저 유대인들은 할례 안 하면 구원이 없대.. 예수가 별거 아닌건가? 예수만 믿어 가지고는 절대 안된대.. 그러자 바울이 목에서 피가 터져나올때까지 외친 겁니다 예수님 믿는걸로 충분하다 구약의 율법 안 지켜도 된다 구약(옛 언약)이 가고 , 신약(새 언약)이 우리에게 임했다 할례 안 받아도 되고 양잡고 소잡아 태워 바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한것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선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서신서마다 너희는 빛의 자녀들이니 거룩하고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루터는 어떤 의미로 오직 믿음이라고 외쳤을까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카톨릭 교회는,바울 시대의 유대인들처럼,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에다가 온갖 것을 다 구원의 조건으로 갖다 붙였습니다 예수만으로는 안되~ 그러나 성경은 천하만인에게 구원을 가져다가 줄 이름은 오직 예수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사역이 반쪽짜리여서 거기다 뭘 더 갖다 붙여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는 카톨릭 사상에 반기를 든 루터의 신학은,유대 율법준수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외친 선배 신앙인 바울을 본받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 자기가 보는 것만 믿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만 곧이 곧대로 주장하는 맹신가야 광신자이지요 데살로이카 2서 2 장에도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우는 멀리 하여라 하였지요 바로 로마서늘 남긴 바오로 사도 말씀이지요 당신 어설픈 성경 귀절 들어 합리화 하려는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불쌍한 사람들은 예수님 재림때에 오른편 얌이 아니라 왼편 염소때가 되의 스스로 유다가 가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릇 유다도 예수님의 제자였지요 당신도 예수님 말씀을 하지만 참 진리가 아닌 당신들 욕망에서 만들어난 헛된것에 기댄 가릇 유다인이지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나요? 종교개혁 당시 온갖 것을 다 구원의 조건으로 갖다 붙이다니요? 뭘 갖다 붙였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카톨릭은 예나 지금이나 중세때나 구원의 조건에 뭘 갖다 붙인게 없어요. 그리고 구원을 가져다 불 분은 오직 예수님 맞아요. 카톨릭은 다른줄 아십니까?
지나기던 극우기독교인입니다.ㅋㅋㅋㅋ 저희 교인분들중에 성서무오론... 그 중에서도 텍스트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신분들한테 데인게 많다보니, 대체적으로 생각해볼 지점이 있네요. 근데 몇몇부분이 제가 알던내용이랑 조금 달라서 어라? 싶은 내용이 있네요... 일단 제가 잘못알고있었는지 체크해보고 다시 여쭤보러오겠슘다.
형제님 안녕하세요 저는 모태신앙 가톨릭 신자이고 개신교인 아내를 만나 미국에 살고있습니다. 회심이니 깨달음이니 너무 마음 쓰지마셔요. 저도 그 차이에 힘들어서 성당에서 멍하니 성체조배를하며 무엇을 바라시기에 이렇게 우리를 만나게하셨을까에 대한 고민부터 별별 분심에 잡념에 스트레스에 분노들이 많이 들더군요. 그래서 성직자 면담을 했고 신부님과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적이 있답니다. 신부님께선 웃으시며 아내분을 너무 사랑하기에 형제님이 고민하시는 것같은데 더욱이 사랑하신다면 아내분과 개신교 예배에 함께 참석해주세요라고 하시더라구요. 개신교회도 형제 자매들이고 우리가 보듬고 사랑해야하는 소중한 분들이라구요. 그때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일에 내 스스로가 목메여 고통받았었구나하구요. 그래서 전 평일에 매일미사 참석하구 주일에는 아내와 함께 개신교회 예배에 참석합니다. 아내도 너무 좋아하구 제 마음도 더 긍정적이게 변하고 사랑이 더 깊어지게 되더라구요. 우리는 그저 사랑을 실천하면 될 뿐입니다. 내가 양보하고 내가 더 사랑해주세요. 그뿐입니다. 형제님의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요한 세례자 형제가.
@@불법은부처님의법도 너무 마음에 와닿는 사연입니다 ~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겠어요 ❤ 카톨릭신앙이 깊은분들은 절대 개신교 안갑니다 !!! 얕고, 모르니 개신교로 따라가더라구요 😢 형제님의 깊은 신앙심과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받습니다! 성체를 꼭!!! 영하셔야합니다 ! ❤❤❤😇🙏
저는 개신교인 인데 구원은 믿음으로 시작하는거죠 그리고 행함도 중요합니다. 행함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자녀로서의 삶아가는데 있어서 신자로서의 삶 즉 행위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딱잘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구원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강조점이 다른 부분입니다. 천주교에도 개신교에서도 구원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카톨릭이 단어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네요~ 그렇다고 NIV. KJV.성경이 잘못된 성경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지어진 성경... 성도라면 진리의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의 진리에 이르기때문이죠! 그러므로 성경 여러곳에서 충돌하는 것 같이 보이는 내용들도 결국 '하나'로 읽히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성경을 읽고도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혀 다르게 인생의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성경 1쪽만 가지고도 진리에 이르는 사람도 있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진리에 이르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lordacton5858 안녕하세요 저는 개신교 장로교회에 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장로교회에 있을때 한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형제님은 해답이 있으신가요? "누구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는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개신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것은 바르게 믿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 개신교 계열 사이비가 그렇게 융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이 없는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인간이 악하고 어리석더라도 그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가 된 형제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또한 사이비의 성경해석이 틀렸다는 것은 형제님도 알고 저도 알지만 만민사제주의를 지향하는 개신교 신학적 관점에서 사이비의 해석은 틀리고 어느 교파의 해석은 옳다고 말 할 수가 있나요? 개신교 신학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의문과 괴로움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가톨릭은 성경 해석의 권위는 오직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단 하나의 보편교회(가톨릭)에 의해서만 나온다고 믿습니다. 성경해석은 오로지 성령의 인도로만 바르게 해석 될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는 개개인의 삶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교회를 통해 신앙공동체 전체에서 이뤄집니다. 성경 해석 또한 공동체 전체의 몫입니다. 성령의 분별또한 개개인이 알아서 해내기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개신교 교회에서 이런 분별을 잘 하지 못하고 꿈만 꾸면 예지몽이라고 생각하고 얼핏 얼핏 드는 생각들을 성령님께 받은 예언이라고 하고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사탄의 왕국도 분열하면 버틸수 없다하셨는데 천년 넘도록 가톨릭 하나뿐이었던 기독교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3만개이상의 교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3만가지의 다른 믿음을 가지길 예수님께서 바라실까요? 모든 기독교인들이 3만가지로 분열되어 있길 바라실까요? 루터의 신앙공동체 파괴와 분열을 합리화 한 결과 개신교의 정신에 남겨진 상처가 바로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 구원관과 분열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분열시키는것이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악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이 분열하며 저마다의 성경해석을 옳다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들이 더 옳은 이유를 댈 수 없습니다. 그들이 단 하나의 정당한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lordacton5858 안녕하세요 저는 개신교 장로교회에 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장로교회에 있을때 한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형제님은 해답이 있으신가요? "누구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는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개신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것은 바르게 믿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 개신교 계열 사이비가 그렇게 융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이 없는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인간이 악하고 어리석더라도 그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가 된 형제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또한 사이비의 성경해석이 틀렸다는 것은 형제님도 알고 저도 알지만 만민사제주의를 지향하는 개신교 신학적 관점에서 사이비의 해석은 틀리고 어느 교파의 해석은 옳다고 말 할 수가 있나요? 개신교 신학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의문과 괴로움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가톨릭은 성경 해석의 권위는 오직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단 하나의 보편교회(가톨릭)에 의해서만 나온다고 믿습니다. 성경해석은 오로지 성령의 인도로만 바르게 해석 될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는 개개인의 삶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교회를 통해 신앙공동체 전체에서 이뤄집니다. 성경 해석 또한 공동체 전체의 몫입니다. 성령의 분별또한 개개인이 알아서 해내기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개신교 교회에서 이런 분별을 잘 하지 못하고 꿈만 꾸면 예지몽이라고 생각하고 얼핏 얼핏 드는 생각들을 성령님께 받은 예언이라고 하고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사탄의 왕국도 분열하면 버틸수 없다하셨는데 천년 넘도록 가톨릭 하나뿐이었던 기독교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3만개이상의 교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3만가지의 다른 믿음을 가지길 예수님께서 바라실까요? 모든 기독교인들이 3만가지로 분열되어 있길 바라실까요? 루터의 신앙공동체 파괴와 분열을 합리화 한 결과 개신교의 정신에 남겨진 상처가 바로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 구원관과 분열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분열시키는것이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악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이 분열하며 저마다의 성경해석을 옳다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들이 더 옳은 이유를 댈 수 없습니다. 그들이 단 하나의 정당한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변화없는 믿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에스겔 33:13 ~16 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살 것이라고 말했어도 그가 만일 자기 의만 믿고 악을 행하면 전에 그가 행한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 그는 자기가 범한 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너는 죽을 것이다.' 하고 말했을지라도 그가 만일 자기 죄에서 떠나 선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전당물이나 훔친 물건을 돌려 주고 생명의 법을 따르며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그는 분명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라고 되어있는처럼, 결국 '행함'에 기반해서 구원받을듯한 사람도 죄를 지음으로 구원이 취소될수있고 취소된자도 다시 행함으로 얻을수도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오직믿음이란뜻은 그런뜻이 아닌데 믿으면 죄를 지으면안된다는 얘기인데 그걸 곡해한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제대로된 목회자 교회, 목사님들은 절대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지않습니다. 성경에 그런말이 한줄도없으니까요.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인정받는겁니다. 행함으로 오로지 의로워질수있고 천국도 갈수있습니다. 다만 행함을 고치는것은 성령에게 의지해야 할수있는 일이죠. 자신의 힘으로만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쉬웠으면 예수님이 내려오시지않았을겁니다. 결국 예수님 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고쳐짐-> 실수해도 또 반복하면서 점점 고쳐짐-> 의로워짐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말씀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도 하게 됩니다. 오직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없다고 하셨으므로 믿음과 그로 인한 행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주님 주님한다고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 하느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우린 믿음과 더불어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게 단순하고 쉬울거 같죠? 뼈를깎는 자기 노력이 수반되는 일입니다. 평생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고난의 길을 걷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믿기만 하면 아무나 주어지는게 아니예요.
와 너무나 기쁘고 감동 받았어요. 이렇게 서로가 오류를 인정하고, 배려하면 하느님 안에 편견없이 한 형제자매가 될것같아요. 같은 하느님을 믿으며 이단이라하고 종교전쟁을 하는 하느님 종교가 늘 이해가 안갔는데 이렇게 악의없이 풀어가면 우리는 한 형제자매로 평화롭게 지낼수 있게 될것같아요. 정말 희망이 생깁니다 😊 감사합니다 💚 세계 평화가 오기를 늘 기도합니다❤❤❤~^^
공동번역성서도 찾아보니깐 슬프게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구절에 오직이란 단어가 삽입되어있네요 아마 개신교 목사님이랑 같이 번역하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 천주교 성경도 사서 같이 읽어야겠네요 야고보서에 분명 실천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되어있는데 오직 믿음이라니… 말도 안됩니다😂
성경은 사본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 역시 번역본으로써 사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가톨릭교회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와의 공동번역 성경에서 믿음 앞에 ‘오직’이 삽입된 적이 있었는데 (로마 1,17 ; 야고 1,6) 이는 개신교 목사들의 주장이 대단히 완강했던 까닭입니다. 루터의 의도적인 성경훼손이 지금까지도 부분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같이 성경을 번역했죠 그래서 공동번역이라고 성당 성경공부 시간에 배웠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개신교는 공동번역 성경을 많이 사용하진 않았구요 2005년 가톨릭 새번역 성경이 나왔죠 공동번역은 성서 였구요 새로 번역하면서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죠
마태오 형제님~ 영상 항상 잘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 문제는 개역개정이 100년전 한글성경인 '성경젼서'를 연속해서 개정함으로 발생한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믿음에 대한 구절에만 '오직'을 덧붙혔다면 안 좋은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성경젼서에는 너무 많이 '원문에 없는 오직'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생각해보건데 아마도 헬라어의 몇몇 역접(alla, de)을 '오직'으로 번역했던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믿음에 대한 강조로 억지로 '오직'을 붙이려고 했으면 행위에 대한 강조에도 '오직'을 붙일 이유가 없을 텐데(예를 들어 로마서 2:13; 티토서 1:8같은 경우), 믿음과 관계 없이 많은 경우에 그런 번역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100년전에 사용하던 한국어 '오직'이 지금과는 미묘하게 다른 용례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수 있겠습니다만 새번역과 현대어 성경에도 오로지와 오직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 했습니다. alla de를 오직으로 번역한 계기가 전 오직을 믿음앞에 넣으려던 결과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의도적으로 그랬건 그러지 않았건 제가 보기에 감히 말씀드리자면 개역 개정 성경은 문제가 많아보입니다...
찬미 예수님~^^ 한국 개신교만의 번역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루터가 처음부터 오직을 성경에 삽입하였습니다. 그러다 원문을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차차 수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개신교에서만큼은 오직 믿음을 고수합니다. 믿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참으로 진실하다면 그것이 행동으로 실행되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루터의 오직 시리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위배됩니다.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말 자체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신약성경은 단 한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사도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남아있는 선민사상으로 인해, 할례라는 행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훈계하기 위한 말씀으로 할례라는 행위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실천을 배제시킨 말이 아니었습니다. 야고보서의 ‘실천’과 갈라티아서의 ‘행위’는 그리스어 ‘에르곤 ἔργον’을 번역한 것으로 ‘일, 행위, 행동, 실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한 공동체에는 이방인들이 많았는데 이들도 유다인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부추기는 선교사들이 있었고 이방인 중에도 구원을 ‘할례라는 행위’로 보장받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의로움이란 할례라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임을 역설함으로써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유다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지 ‘믿기만 하고 실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2,13) 결국 야고보 사도가 강조한 ‘실천’은 믿음에 따른 실천이었고, 바오로 사도가 반대한 ‘행위’는 율법에 기대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율법에 기대는 행위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믿음과 행동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야 온전한 상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육신과 영혼이 연합한것처럼, 제사의 제물과 제사자의 마음이 연합된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교파와 상관 없이 로마서와 야고보서 사이의 균형을 통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묵묵히 채널 챙겨보고 있던 장로회 합동 목회자입니다. 처음에는 본 채널의 방향이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 신자를 이해하는 가닥으로 가시는 것 같아 감탄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시청하고 있었는데요, 갈수록 가톨릭을 공격하는 개신교단 유튜브 채널과 길을 같이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번 영상 내내 강조되는 저 “오직” 해석은 이미 틀린 것으로 인지하여 나온지 오래된 “새번역”은 물론이고 현재 최신 번역인 “새한글성경”에서도 “오직”을 제외하였습니다. 뭔가 심각한 오류를 찾아 공격하기에는 개신교단 신학자들도 원어를 찾아 보고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개신교 목회자인 저조차도 카톨릭 신자들을 무시하지 않는데, 형제님의 컨텐츠에는 어느때서부터인가 개신교도들을 무지한 단체로 치부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것 같네요. 댓글들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개신교들을 이해하고 품으려합니까? 극단적인 개신교도들이 카톨릭 신자들에게 그리하듯 비난하고 비하하는 댓글이 가득입니다. 어디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와 포용이 있습니까? 이런건 어떨까요, 마틴로이드존스의 천주교 사상평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카톨릭의 시선에서 개신교단을 평가하는, 자칫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자리는 그만 내려놓으시고, 개신교단이 평가하는 카톨릭을 대변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찬미예수님 의견 감사드립니다. 저의 이 영상을 가톨릭 신앙을 비방 비난하는 영상들과 같게 보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보통은 방어적 시선에서 영상을 올립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에 대해서 보다가 제가 몰랐던 개역 개정 성경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공유한 것 입니다. 저는 개신교인이나 교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번역의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개역 개정 말고 새번역된 2개의 성경에서도 로마서 1:17에는 오직 오로지가 추가되어있음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개역 개정이 가장 많이 쓰이는 성경이기에 이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기에 알리고도 싶었습니다. 개역 개정을 오래 읽으신 분과 왜 오직 믿음에 관하여 대화가 전혀 안되는지 저는 이번에 비로서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목사님과 같이 깨어계신 분들은 이문제를 알고 연구하십니다. 애초에 저도 개신교 쪽에서 나온 문제제기글을 보면서 더 알게되고 했습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그런데 개신교 전체가 목사님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문제 제기를 된걸 보고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어이없는 공격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렇다고 저같은 나부랭이가 아닌 깨어 계신 개신교분들이 이야기 하면 듣느냐 그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애초에 워낙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신교도들을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방어적 시선에서 가톨릭 신앙을 설명 해 나갈 것입니다. 댓글들은 제 선을 벗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정도의 토론은 두겠지만 상호 비난과 비하는 더 잘 관리해보겠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당할땐 크게 보이고 내 편들어줄 땐 또 잘 못보고 그렇습니다. 이점은 제가 고쳐야합니다. 개신교에 대한 제 대응은 정상적이고 이성적이고 차분한 분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장 날 서있고 가장 많은 수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것임을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니 참 신기한게... 번역이 잘못되어 오해하기 쉽다고 지적을 해주는건데 뭐가 문제가 되는건지요?? 그리고 좀 코메디한게요 .. 거짓말 1도 안보태고 개신교 일반신자들이 가톨릭신자를 보면 뭐라하는지 아시나요??? 아..마리아교 다니는구나..거긴 이단입니다.. 이게 과연 한두번 이겠습니까??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심지어 직장에 서도 같은 말을 매번 들은게.. 그말인데요??? 다 목회자 뷴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있기에 그리 전파되어 버린거 아닙니까? 그건 목회자 잘못이 아닙니까??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 없는게... 양심을 거시고 유트브 에서 가톨릭은 이단 또는 마리아교 라는 타이틀을 가진 곳에 나는 목회자 인데 그건 아니라고 댓글을 일일이 달아본적 있으신가요???? 한분도 못봤습니다... 어디어디 목사인데 이거 잘못된거라고 누가한번 비판해 준 목사가 한명도 없는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이 영상 채널에 신기하게도 목회자님이 엄청 댓글을 다시네요?? 이야.. 신기하네요...
@@DailyBible 제 글이 격정에 차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신중하고 정중한 답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셨군요. 방어적으로 올리셨던 거였군요. 십분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개신교도들이 천주교도들을 바라볼 때 설득과 비난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를, 저 역시 자주 보았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제 글에 오해가 생기기 전 입장부터 말씀드려야 했네요. 저는 마태오 형제님과 케케묵은, 신구교의 신학적인 논쟁이나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비슷하나 선명하게 다른 입장에 서 있고,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까요. 저는 목회자 이전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 다른 공동체가 옳고 그름에 취해 자신이 의로운 것 마냥 다른 지체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잘못을 지양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살아왔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가 믿음은 연약한 자를, 뜨거운 자가 잠잠한 자를, 또 개신교가 천주교 신자들을 그렇게 대할 때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태오 형제님 채널을 보았지요. 개신교가 다수인 이 땅에서, 보다 더 아팠을 신자가 오히려 포용하고 설득하려 하는 모습에 얼마나 감탄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저의 교만한 지레짐작이었습니다. 형제님의 아픔은 갈무리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고, 그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저도 제 한계가 명확한 사람이라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같은 아픔은 겪지 않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그저 이상근 형제님의 채널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도하는 한 성도로서 글을 남깁니다. 괴물과 싸우느라 괴물이 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형제님의 모습에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참된 성도가 받는 박해에 억울하고 서글픈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같은 공동체에서도 상처를 받는데 그 외에는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차라리 예수님이 가셨던 길로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쩌면 이미 깨달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믿음을 가졌다고 공격하는 사람에게 이런 영상을 일만개 던져줘도 변함이 없습니다. 기도와 예수를 닮은 사랑과 용서가 아니면 답이 없고,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품고자 하는 사람과 궤를 같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원수가 얼마나 많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 아닙니까.. 저도 제 자리에서 더 노력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소망합니다.
@@고뇌하는오뎅 원래 조롱조의 글에는 답글을 달지 않습니다만 오해가 있어 덧글을 답니다. 이 글 아래로는 달지 않겠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고뇌하는 오뎅님이 알고 교제하는 개신교 일반 신자들은 아마 일천명이 되지 않을겁니다. 천명이 아니라 만명도 일반 개신교 성도를 이야기하기에 적은 숫자지요. 일반론을 이야기하기에는 고뇌하는 오뎅님은 아마 충분한 인원의 개신교 성도를 알지 못하실겁니다. “개신교도들이 카톨릭에게 이단이라 하지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개신교단이 많죠. 항상 특별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듯, 제가 몸담고 있는 교단에서도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큽니다. 존중하고 예의바르며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기다리고 인내하는데 말입니다. 님께선 저를 모르실겁니다. 그러니 제가 그렇게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도 모르실거고, 제 주변 목회자들이 어떻게 교육하는지도 모를 것이며, 제가 카톨릭을 욕하는 영상에 댓글을 달았는지 달지 않았는지도 모르실겁니다. 한 분도 못봤다구요? 당연히 못보셨겠지요. 영상 몇 개나 보셨습니까? 제가 말하고자 하는건 고뇌하는 오뎅님은 모르실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신기할 수 밖에 없지요. 모르시니까요. 그러니 못난 개신교도들이 하는 것 처럼, 모르는걸 아는 척 하지 마십시오. 저도, 제 동기 목회자들도 천주교의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에 대해서는 반박합니다만, 그들을 욕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은 커녕 최소한의 존중도 배우지 못한 사람 취급합니다. 위의 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마태오님의 영상을 평소 흥미진진하게 보던 사람으로서 갈수록 채널의 방향이 너무나도 익숙한, 그래서 배척했고 공격했던 영상의 기류가 느껴지기에 이야기했습니다. 번역이 잘못되어 오해하기 쉽다고 지적을 해준다구요?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적해준 것에 지금 개신교의 상황을 들어 답한 것입니다. 오늘 남은 하루 평안하시길, 복된 밤 되길 바랍니다.
@@좋은아빠 하시고 싶은 말씀이 일반적인 개신교인이 그러지 않는데 재수 없게 내가 걸려서 그런 말을 듣는거라 그걸 일반화 해서 이야기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맞나요? 현실을 그렇게 믿고 싶거나 현실을 잘 모르시는거 같습니다... 아마 투표함이 있었다면 가톨릭신자들이 대다수 신자들이 저와 같은경험을 했을겁니다. 여기 유트브에 가톨릭을 까는 목회자 영상이 일부입니까?? 일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데요???? 하지만 신부님이 개신교를 이단이라 이야기 하는 영상은 단한건도 없뿐만 아니라 구경도 못했습니다... 제가 어처구니 없었던거는 여기 마태오형제님이 올려주신 영상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된다고 목회자들이 와서 이야기 하는지... 3일도 안된 영상에 목회자라고 말하고 이야기 하시는분이 너무 많네요??? 가톨릭까는 영상에 목회자님이 이건 아니라고 댓글 남긴수가 지금 남긴 목회자 숫자보다 많은곳이 있다면 좌표를 알려주세요... 수많은 채널을 뒤져봤는데 못봐서 그렇습니다.. 그런곳이 존재 한다면 정말 저의 무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행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믿음의 결과물, 실체를 알수 없는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도, 행위를 너무 강조하는 것도 모두 같음. 행위는 믿음의 결과물이고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같이 하나의 동시에 존재하는 양면일 뿐.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행위이지만 행위가 있다고 반드시 믿음이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마치 사랑없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수 있듯...
"해당 영상에서 개신교의 '오직 믿음'이라는 표현과 번역을 비판하셨지만, 이는 신학적 맥락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오직 믿음(Sola Fide)'은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의 구원론의 핵심이며, 로마서 3장 28절, 에베소서 2장 8-9절 등 성경 말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교리적으로 무조건 맞다고 옹호하고자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구원은 특정 종파나 교회 소속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깨닫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을 단순한 지적 동의로 보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와 전인격적인 의탁을 포함한 깊은 신앙의 행위로 이해합니다. 번역은 각 종파의 신학적 관점을 반영할 뿐, 번역 방식 자체가 신앙의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개신교 신앙을 비판하는 것은 신학적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주장입니다. 종파 간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며, 각자의 신학적 정체성을 비판하기보다, 성경의 본질적인 진리를 함께 탐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공통된 구원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의 문제는 행위 빠진 믿음만 이야기 하지만, 카톨릭의 문제는 믿음이 없는 행위라서 문제였을 뿐, 성경대로 믿는 자는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행위가 수반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봅니다. 제가 중국어 성경을 보는데, 오직이라는는 말이 없어도 중국 개신교도 오직 믿음을 강조합니다. 번역의 오류가 신학의 오류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만약 개역개정의 번역 오류가 개신교의 신학적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하신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번역 오류가 신학적 오류로 갔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신학적 오류가 번역 오류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카톨릭이 믿음이 없는 행위라고 하심이 매우 편견에 찬 댓글인것을 알려드립니다 ua-cam.com/video/6jSLT3ykElc/v-deo.html 가톨릭의 구원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로 비판 하지마시고 영상을 봐주시길 권고합니다
@@DailyBible 신학적 오류가 번역오류라 하심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주장하시며 오직 카톡릭의 믿음+선행이 맞다고 주장하시는 것이군요. 먼저, 신학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개신교 영어, 중국어 버전 모두가 오직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번역의 오류가 한국어 버전에만 있어서 한국 개신교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번역오류를 통해 개신교의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를 반박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번역오류와 신학사상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이 있던 없던,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단코 선행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3:28: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노고에 감사합니다. 개신교의 성경 번역의 오류는 참 많습니다. 야고보서간은 아예 빼버렸다가 나중에 끼워넣은 것이고 또 하나의 의도적인 번역은 '목사'입니다. 포이메나스 (ποιμ?να?) 이 단어(명사)의 원형은 포이멘(ποιμ?ν)으로 ‘목자’이며 신약에서 목자라는 말은 26회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포이멘을 ‘목자’로 번역하다가 에페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사’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의도적으로 위작하였습니다. (개신교)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가톨릭) 즉 목사라는 직분을 성경에 기록된 성직이라는 명분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이는 사도들의 안수가 끊어진 자신들의 직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으로 사도들의 안수가 끊어졌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무관하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라고 하셨지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리스도의 명령은 파견받은 사람만이 제대로 진실되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도 사도전승이 아니라고 가톨릭교회는 여깁니다. 헨리8세가 불륜을 저지르면서 왕비와의 이혼을 허락해달라는 요구를 가톨릭교회에서 거부하자 이때부터 가톨릭과의 단절을 선언하면서 주교를 왕이 임명하여 사도들의 안수라는 물리적인 요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렇게 개신교식으로 변형되었습니다. 그리고 1920년 이후 구가톨릭교회의 주교들로부터 거의 모든 성공회 주교들이 안수를 받음으로써 가톨릭에서 문제 삼던 성공회의 물리적 사도전승이 사실상 회복되었지만 가톨릭교회는 정교회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야말로 진정한 종교다원주의로써 인문학적인 것을 대폭수용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성체'에 대한 인식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환을 믿지 않고 그저 그리스도께서 임재한다는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공회에서의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임재일뿐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아니라고 믿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성공회도 축성한 성체를 감실(성막)에 모셔둡니다. 남겨 두는 이유는 성찬례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 즉 병자들이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서 나중에 직접 이를 가져다가 성체를 영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면서 그것을 모셔두고 사람들에게 모시도록 한다는 것은 신앙 공동체가 예배하면서 그리스도를 경험한 증거물로써의 하나의 '상징'이며 '매개물'로 보는 입장인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칼빈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도 궁금해서 주석을 보니 제시해주신 구절에서 δὲ를 오직으로 번역을 했네요. 그리고 성경구절중에 여기만 δὲ를 오직으로 번역한 것은 아니고, 믿음이라는 단어가 없는 문장에서도 δὲ를 오직으로 번역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제가 본 주석은 옥스퍼드 주석이었습니다. 제시하신 구절에 δὲ를 영어로는 번역을 따로 대응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략한 것으로 나오네요.
번역마다 성경 오역부분이 조금씩 다른데, 유난히 특정버젼의 한 성경만 허락하고 다른버젼을 다 악마화하는 개신교 교단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해당 오역을 근거로 억지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래요. 신약에서 성경을 중시하는 부분이 쓰인건 아직 요한계 성경이 집필되기 이전이고 구약만 말한거죠. 구약에서 성경을 일컬을땐 곧 율법이라는 뜻이고요. 성경이 형성되기 전 초기교회의 100~200년 동안 교회전통이 있었죠. 바오로서간에서 '우리의 전통을 굳게 지키라'고 나오고요. 27권을 신약성경으로 취사선택해 확정한것도 예수님이 위임한 교권이라는걸 개신교는 잊고있어요. 제목에 '개신교 신자들 봐달라' 보다는 '개신교의 주장으로 혹시 혼란이 있으신 카톨릭교우분들, 또는 카톨릭과 개신교 둘 중 어디로 입교할지 고민 중인 예비자분들'에게 보시라고 안내해주면 좋을것같아요. 어차피 계도도 안되고 악플만 더 달릴것같아서.
신약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죠. "나에게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가는거 아니다" 오직 믿음 X --> 믿음과 실천 오직 성경 X --> 성경과 성전 오직 은총 X --> 은총과 자유의지 두다리로 서야지 한쪽다리만 고집하면 절뚝거리면서 걷습니다. 으뜸계명 = 하느님사랑+이웃사랑 예수님 = 온전한 인간 + 온전한 신 전례목적 = 하느님영광 + 신자들의 성화 (미사 = 하느님영광+우리의구원)
루터의 sola fide는 다른 다섯 개의 sola 중 하나임. 루터가 최초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면서 "only"(allein)라는 단어를 문맥의 의미로 추가했는데, 이는 당시에도 구교의 공격 대상이었음. 이후 sola fide는 구교와 신교 간 교리적 차이의 핵심에 해당함. (구교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야고보서를 근거로 'fide+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신교를 비판함.) 야고보서는 초대교회 경전화 과정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었음. 저자에 대한 논란, 주로 유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읽혔다는 점, 바울 서신과 다르게 행위를 강조하는 점, 복음에 대한 메시지 부족 등의 이유로 카르타고 공의회 이후 비로소 정경으로 자리 잡음. 루터는 야고보서를 sola christ의 중심 메시지와 일치하지 않는 부차적인 서신으로 간주하고, 신약 성경의 가장 뒤쪽에 배치했음. 독일어 성경 번역 서문에서 야고보서를 덜 중요하다고 언급했으며, 이런 이유로 루터가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제외시키고자 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근거가 없는 주장임. 개인적으로는 구교에서 퍼뜨린 소문으로 보임. 루터의 sola fide는 sola script 관점에서 성경적 일관성과 문맥적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곧 중세 구교의 전승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것임. 따라서 sola fide를 오류라고 하는 것은 '오직 성경'이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임. 즉, 루터는 철저한 sola script 주의자였다는 말임. 그리고 영어 성경 번역본에 "only"가 포함된 성경도 몇 종류 있음. Good News Translation (GNT), The Living Bible (TLB) 등에 "only"가 포함되어 있음. 결론은, 이 유튜버의 "only" 관련된 비판은 종교개혁 때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떡밥임.
개신교인들! ❤조작된 성경 한번 읽어보세요! 자. ㆍ영ㆍ힌 합본 성겅 영어로 ㆍ누가복음 ㆍ 1.43 을 읽어 보세요! (43. But why am I so favored, ) (43.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호의를 받나요,) 이 구절이 ❤왜??? ㆍ 삭제가 되었을까요? 영어 번역 안되는 사람은 번역기 라도 돌려 보세요! 그리고 당신들 거짓 목사들 한테 물어보세요! 왜 ??? 성경의 이부분이 삭제 되었는지? 왜???? 삭제를 시켰는지? 물어 보세요!
sola fide에 대한 구교의 반박은 "fide + 행위"이고, sola scriture에 대한 반박은 "scripture + 전승"임 하지만 루터의 sola 주장은 인간의 면죄부를 사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와 교황과 "전승"이 성경의 권위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는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본말을 전도시킨 것임 이후 신교와 구교 간 신학적 대립이 심화되었고 종교전쟁과 엄청난 살육이 이어지게 됨 즉, fide인가 행위인가, 하는 교리 논쟁의 실체는 종교 권력의 정치적 투쟁을 대신하는 종교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임
"오직"이라는 한 부분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영상을 만들어야 했던 의도가 궁금할 따름이네요. 댓글에 '지나친 의역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이라고 하셨다는 것을 보았고, 저도 그부분은 이해합니다. 평소에 원문 번역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언급하신 부분을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문맥적 흐름에 따르면 오류라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 듯 합니다. 믿음을 강조한다고 개신교가 대표적으로 야고보서의 말씀(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을 간과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또한 로만카톨릭처럼 모든 이타적 행위를 성경이 말하는 선행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유튜버님께서 많은 다양한 주제로 영상을 올린 것을 훑어 보았지만... 개신교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결정적인 메시지를 영상 제목으로 떡하니 올려놓은 것은 싸움을 붙이겠다는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네요. 제 생각에는 지금 비성경적으로 돌아가는 로만카톨릭의 교리 문제를 성경에 입각하여 정직하게 다루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소위 교황이 사도라고 주장하는 일, 신부만을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래서 예배를 여전히 미사(제사)라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복음 전파 도중에 지나친 토착화로 인해서 우상화 되어가는 문제들(남미나 필리핀 같은 사례), 7성례, 연옥설 등등... 중세 시대에 있었던 연옥설(님은 교부들이 가르쳤던 신앙 전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형벌을 부과하던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지속되어 온 것은 압니다만, 연옥설이 그렇다는 것은 금시초문이군요. 과거 유대교가 바쳤던 위령 기도 관습에서 기원한다는 글을 찾아볼 수 있는데, 유대교 전통을 기독교가 다 이어받아야만 하는가? 유대교 전통이 모두 성경적인 것인가? 까지 거슬러 올라가 대답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연옥설이 불러왔던 면죄부 판매(판매 부흥사들) 문제까지.. 성인 전통과 성물 숭배 사상, 형상을 만들어 놓는 문제, 마리아 성(聖)격화 문제까지... 그리고 성경 번역 문제로 시작된 일이니, 로만카톨릭은 외경을 포함하는 공동번역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정경으로 읽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후대의 '70인역에' 들어 있는 외경들을 포함시켜서 46권으로, 중세시대인 1546년 트랜트 공의회 때 이 외경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러면 아마도 외경을 인용하고 있는 유다서 같은 책을 들먹거리겠지만, 이 역시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수신자가 유대인들이고, 그들에게 익숙한 내용을 언급할 필요를 따라 유대인(교)들에게 익숙한 외경을 인용할 수 있다는 점(짧은 글로 논쟁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DailyBible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개신교인들을 위해서라면 영상을 이렇게 찍었어야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영상을 볼 때마다 조회수를 올리고 싶어서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올린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분쟁을 만드는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 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행위의 중요함을 빼지 않습니다 영상은 마치 말씀을 사랑하는 개신교인들은 말씀만 읽어서 행위는 없고 오직 믿음만 강조하며 살아가기에 문제가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사랑하면 행위의 중요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형제님이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모든 개신교 인들을 분별하지 않고 다 같다라고 여기셔서 이러한 영상을 올리셨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모욕을 간접적으로 하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이러한 의도가 없으셨다면 개신교인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이건 교만이 아닐까 합니다
영상의 주제는 개신교의 구원관이나 신앙 방식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되는 성경의 번역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이 문제는 개신교 내에서도 이미 논의되고 있는 주제로, 제가 새롭게 발견한 지적은 아닙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있는데도 대화가 자주 엇갈리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어서 개신교 성경 번역본을 살펴보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어 번역에서 발생한 차이점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구원관 대화가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되었고, 이 문제를 최대한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직"이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사용된 부분은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간의 대화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또한 "오직 믿음"을 과하게 집착하는 이단을 초래했습니다. 오해와 단절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의 구원관은 (흔히 하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이러한 번역 문제로 인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이 영상에 대한 댓글에서 번역 문제를 지적한 저의 의도가 곡해되고, 제가 "오직 믿음"을 공격하거나 개신교의 신앙을 비판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저의 표현의 문제도 있고 능력탓이기에 그 점은 사과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개신교 내에서도 이미 논의되고 있는 번역상의 문제를 표면위로 떠올린 것일 뿐입니다. 오래된 논의지만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개신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성경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이해합니다. 가톨릭은 보통 분위기가 점잖게 가만히 있는게 낫다라는 쪽이고 그러다보니 늘 수비하는 입장입니다. 저 또한 가톨릭 신앙에 대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비판과 비방을 상대합니다. 제가 당하는 비난과 비방에 수위에 비하면 제가 지적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신학 논쟁이나 교리 논쟁이 아니라, 신자분들에게 한국 성경 번역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인지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댓글에서 다른 개신교분들께 많은 공감도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개역개정 이후의 성경 번역본에서 일부 수정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적을 과도하게 방어하거나 지나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대화의 장을 좁히고 서로의 이해를 막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더 많은 대화와 논의를 통해 신앙과 성경에 대한 이해를 함께 넓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ㅋㅋㅋㅋ 무지하신게 티가 납니다... 이야.. 역사를 왜곡하시네요?? 가장 큰 무지가 원래 397, 419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73권이 정경으로 재확정 되었습니다. 못믿으시면 ㅋㅋㅋㅋ 네이버에 카르타고 공의회 치시고 위키백과 클릭하신후 밑에 쭉 내리면 성경목록 결정 클릭하시면 419년 공의회에서 재확인된 정경목록을 아예 교회법으로 못박아 버립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원래 73권이 1500년간 믿어 왔다가 루터가 66권으로 줄인게 역사적으로 맞는것이죠.. ㅋㅋㅋ 그리고 유다서 뿐만 이겠습니까??? 예수에게 시비 털려고 사두가이가 질문한 구절 내용이 토빗기 내용구절 입니다.. 또한 요한이 보고 들은걸 기록한 요한계시록에 토빗기 구절 내용이 그대로 묘사되어 나옵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건데요??ㅋㅋㅋㅋ 아 😂😂 개콘 저리가라네요
선을 행함 즉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그것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면 즉 율법안에서 온전하게 될 수 있다면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하느님을 구하시는 기도를 항상 하십시오 우리의 의지로만 할 수 없는 것을 보혜사 성령님께서 온전히 이루어 가게 하실겁니다 점진적으로
영상 시청 후 궁금한 점이 있어 댓글 남깁니다. 오직이라는 단어가 개신교 성경에 등장하며 오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비교하신 KJV (King James Version)와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성경은 모두 개신교 성경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한국 개신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개신교 전체의 문제인지 모호합니다. 개신교 자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지만, 한국 개신교만 오류를 범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오직이란 단어가 한국어 번역에 첨가되었던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아마 솔라 피데의 강조로 나온, 오역보다는 번역의 영역인것 같습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믿음을 법, 율법, 행위와 대비하기 위해서요. 전 카톨릭에서 강조하는 '행위'나 개신교에서 말하는 '행위'없는 믿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값이 완벽하고 그 이상의 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거지요. 행위도 해야만 한다는것보다는 진심으로 믿는자들에게 필수불가결적으로 나타내지는 결과가 행위이다라고 보는 견해의 차이인것같습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성서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특히 믿음을 강조한 것은 유다인들와 지나친 율법 정신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강조했지만 로마서를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율법을 준행해야 함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받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알은 사람이라도 율법이 명하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도 할례 받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보아주실 것이 아닙니까?"(로마 2, 25-26)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로마 3, 33) 믿음이 중요해요! 천주교에서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성서를 바로 읽어봅시다. 부분적인 성서 구절로 전체의 성서 뜻인 양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선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했듯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이 실천이 없는 믿음은 분명히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로마 8,13)'여러분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행위와 욕정과 못된 욕심과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탐욕 따위의 욕망은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골로 3, 5-6)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 24)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루가 13, 3)'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9-31)'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거룩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 14)'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1요한 5, 3)보십시오. 사랑의 계명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마태 19, 5-6) 그리고 ♥'십일조'♥는 구원과는 별로 관계없는 것입니다. 훌륭한 믿음은 있는데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는 교리에는 모순이 있지 않습니까? 이건 중요한 '구원'의 문제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구원의 진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낙태를 해도 괜찮고, 강간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살인을 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진정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까? 말이 나왔으니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면 교회에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을 키우면 됩니다. 구원의 기본 조건이 '믿음'만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믿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의 목적으로 세우셨고 목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신권(神權)을 주셔서 성사를집행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귀한 하느님의 제사(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의 몸인 성체(聖體)를 모셔서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개신교처럼 순수히 예배만 바치는 교회와 성체와 제사인 미사 그리고 일곱 가지 성사를 집행하는 천주교와는 근본적으로 교회관이 다릅니다. 그래서 진정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천주교가 주는 구원의 길,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정통 신앙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 구원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개신교 형제들은 자기들의 편견만을 내세우는데 진정 구원이 무엇이며 그 구원을 전해 주는 교회의 사명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마태오형제님의 간극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에 참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개신교인으로서 조금 아쉬운 점은, 사실 ‘오직 믿음’만으로 개신교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형제님이 설명하신대로 ‘오직 믿음’만 보게 된다면 잘못된 성경 해석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많은 개신교인들이 오직 믿음을 회심으로부터의 회피수단으로 잘못 사용하며 참된 성화에서 멀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바라볼 때에, 개신교와 천주교, 우리가 나뉜 사건 가운데 분명히 인간의 연약함도 포함되며 그 위에서는 주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으실 거라 믿어요. 개신교는 많은 단점이 있지만 동시에 개신교도 더 주님께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오형제님의 영상을 통해 평소 천주교에 갖고 있던 오해들이 풀리고, 천주교가 가진 장점들과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천주교회를 알게 됩니다. 계속해서 좋은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Ps. ‘오직 믿음’이 신앙의 출발선이 되어 행함도 예수와 같이 살아가려 노력하는 복된 개신교인 지체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ㅎㅎ
저도 조심스럽게 저의 의견을 피력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는 '오직 믿음'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성경'을 주장한다는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개신교식으로 변형시켜놓고 '오직 성경'이라 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만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증언할 것입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했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계시하신 그리스도와 다양한 민족과 문화속에서 만들어진 언어들 곧 번역본으로 접한 그리스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왜곡된 주님을 고백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어 선포되고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실행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믿음은 기본바탕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 믿음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교회의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마태 7,19) 예수님께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분명히 개신교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톨릭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예 한 몸을 이룹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체험을 가톨릭교회는 매일 체험합니다. 매일의 미사안에서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것 만큼 큰 기적은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주시는 교회가 가톨릭교회입니다...
δικαιοσύνη γὰρ Θεοῦ ἐν αὐτῷ ἀποκαλύπτεται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로마서 1:17)
δικαιοσύνη - 의로움
γὰρ - 왜냐하면
Θεοῦ - 하느님의
ἐν - 안에서
αὐτῷ - 그 안에
ἀποκαλύπτεται - 드러나다
ἐκ - ~에서
πίστεως - 믿음
εἰς - ~로
πίστιν - 믿음
καθὼς - ~처럼
γέγραπται - 기록되었다
Ὁ - 그
δίκαιος - 의로운 사람
ἐκ - ~에서
πίστεως - 믿음
ζήσεται - 살 것이다
저와 비슷한 문제제기를 한 개신교 내의 글이 있어 공유합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개신교를 전혀 모르는 무지한 가톨릭신자가 음해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미 나온 지적을 제가 한번 더 이야기 한 것 뿐입니다.
영문은 원본이 아니라고 따지시는 분들도 계신데, 원문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원문도 보았고,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과도 비교한 것입니다.
또한 이 영상은 구원론 '오직 믿음'이 맞네 틀리네를 따지는 영상이 아닙니다. 개역 개정 성경 번역의 지나친 의역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제 말씀을 잘못 이해하시고 구원론을 따지시면서
성경구절을 따로 떼어 보면 안된다고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구원론과 관련하여는 ua-cam.com/video/YqjO4KvHoHE/v-deo.html 를 봐주세요
아래 구절들을 참고하세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NIV, Romans 1:17)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KJV, Romans 1:1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7)
Where, then, is boasting? It is excluded. On what principle? On that of observing the law? No, but on that of faith. (NIV, Romans 3:27)
Where is boasting then? It is excluded. By what law? of works? Nay: but by the law of faith. (KJV, Romans 3:27)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4:13)
It was not through law that Abraham and his offspring received the promise that he would be heir of the world, but through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NIV, Romans 4:13)
For the promise, that he should be the heir of the world, was not to Abraham, or to his seed, through the law, but through the righteousness of faith. (KJV, Romans 4:1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For by the grace given me I say to every one of you: Do not think of yourself more highly than you ought, but rather think of yourself with sober judgment, in accordance with the measure of faith God has given you. (NIV, Romans 12:3)
For I say, through the grace given unto me, to every man that is among you,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soberly, according as God hath dealt to every man the measure of faith. (KJV, Romans 12:3)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9)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th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God and is by faith. (NIV, Philippians 3:9)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KJV, Philippians 3:9)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NIV, Galatian 2:16)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 (KJV, Galatian 2: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6)
But when he asks, he must believe and not doubt, because he who doubts is like a wave of the sea, blown and tossed by the wind. (NIV, James 1:6)
But let him ask in faith, nothing wavering. For he that wavereth is like a wave of the sea driven with the wind and tossed. (KJV, James 1:6)
'동의'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행함'이 없거나 부족하거나 있기는 하지만 잘못 행하고 있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은, 대체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떠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개신교 목사들 중에도 그 저서에서, 언급하신 구절들에 관하여, "성경에 '오직'이라는 말은 없다"라는 소제목으로
책을 써서 의견을 표했습니다. 형제님과 그 목사를 포함하여 일부 신학자들이, 그 구절들에 대해 '교정'은 하고 있지만, 이후의 언급은 별다른 게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요...
오역이 아니라 de나 alla를 '오직' 으로 번역했던 개항기 당시 한국어와 현대 한국어의 차이에 의한 것임. 학술적 깊이와 개신교에 교리에 대한 한계가 잘 드러난 영상.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좋으나 그 방법이 비판이나 헤아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말하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비판과 헤아림에서 똑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은 지식과 시기의 차이일뿐이지 지금 틀렸다고 교정해주는 부분을 똑같이 본인도 틀리게 되어있거든요 품어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만이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 믿습니다 이 영상도, 이 영상의 댓글도 비판과 헤아림의 글들이 대부분이듯이요 설령 온전히 맞는 말을 할수있다해도 그 맞는 말로는 사람을 바꿀 수 없어요 열매로 그 씨앗을 알수있으므로 올바른 믿음인지 분별할수있는 말씀들을 계속 묵상하게 만들어 주는 말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올바름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실일이라 믿습니다 아멘
의도적으로 '오직'이라는 표현이 과도하게 들어간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개정이 나온지 대략 30여년정도 되었죠.. 그이전에 사용하던게 '개역성경'이었고요.. 그런데 표준새번역에서는 '오직'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요즘은 이를 개정한 '새번역'성경이나오고 있지만요..) 솔직히 요즘 성경통독을 하면서 개역개정에서 좀 난해한것에 대해서는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개정판)'을 참조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younmotgol 이걸 알았다면, 제가 하고싶은 말은 개신교 여러분 표준 새번역을 읽으십시오였을 것입니다.
영상 볼 때마다 형제님의 믿음이 얼마나 깊고 진실한지 느껴집니다. 비교설명이 쏙쏙 들어와요.믿음과 행위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된다.아멘
마태오형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리 교회에서 보석같으신 분이에요~
개신교인으로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신실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겠지요
첨언하자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건 맞습니다.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타종교와 다를바 없습니다.
예를 들어드리죠.
돌쇠와 개똥이라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구걸을 하러 갑니다.
돌쇠는 이대감 집으로, 개똥이는 박대감 집으로 갑니다.
돌쇠는 이대감에게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니 밥을 좀 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이대감은 돌쇠에게 자기네 집 마당을 다 쓸면 밥을 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돌쇠는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밥을 먹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해 마당을 쓸기 시작합니다.
마당을 다 쓸자 이대감은 고작 감자 한개를 줍니다.
개똥이는 박대감에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 밥을 좀 달라고 말을 합니다.
박대감은 측은한 마음으로 개똥이에게 7첩반상을 차려줍니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합니다.
밥을 다 먹은 개똥이는 너무 고마워서 시키지도 않았지만, 마당을 씁니다.
은혜로 믿음을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 없는 나를 깨닫고, 이런 나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는데, 행위가 없다??? 네,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마태오 형제님~
로마서 1:17을 보시면
“오직 믿음으로” 라고 한글 번역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오직 의인”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호 데’를 오직으로 번역한 것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되오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와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믿음의 강조 보다는 오직 의인이라는 의인에 강조가 되어 있는거로 보는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 개신교에서 맨첨에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뺄려고 했다는 말을 신부님께 들었어요.
믿음에 실천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있기 때문에요.
하느님이 계시다는건 지옥에있는 영혼도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하셨어요.
이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면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걸 이해할 수 있게됐어요…
믿음 말씀 중요하죠 하지만 내가 변하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과 성체신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야고보서 제외는 개신교라기보단 루터 개인의 의견이었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대해서 루터가 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Hrh_11 그렇게 들었던거 같아요~
어쨌던 실천도 무시 할 수 없는거니깐요.
미국의 어느 구마사제가 말하길 마귀는 우리 모두를 합한것 보다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하느님을 알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아니까요. 믿는것 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야겠지요.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내가 주인되어 살겠다는 형제 자매들을 가끔 보게되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천사가 하느님께서 부여한 존재목적을 거부하면 마귀가 됩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안에 우리가 가져야할 순명과 겸손이 모두 들어있다 생각합니다.
답글중이었는데 글이 지워졌네요T.T
이후 글은 밤에 대답드리겠습니다... 지금 일나와서요. .^^;;;
초기 루터 목사가 일부러 빼려고 지푸라기라고 하고 빼려 했다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집어 넣기는 했죠. 실천 없는 죽은 믿음이 피정의 결과라고 자기가 오해한 실천 없는 십자가 신학으로 오해된 거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로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는데 한국 개신교에서는 아르뱅주의로 믿음의 증거인 실천을 하는 것은 필요없다고 실천부재의 구원파식 믿음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습죠. 루터도 결국 철회한 것으로 압니다.
장로교인인데 첨 듣는 얘기라 충격이 큽니다. 영문 성경과도 다르다니..매번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제 말을 그냥 믿지 마시고 직접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m.cafe.daum.net/kim1056347/47bT/1312?listURI=%2Fkim1056347%2F47bT
깨어계신 분들은 문제를 개신교내에서도 지적하십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킹제임스 성경과 NIV는 번역본이죠 헬라어 원문을 원전 분해 해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데 기본 G1161
저는 장로교 신자이며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되어있는 원문 성경과 영문 그리고 한글 성경을 비교하며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 입니다. 위의 영상 안에서 마테오 형제께서 짚어주신 "오직", "오로지" 들과 같은 부사. 즉, 동사, 형용사에 해당하는 용언과 부사, 그리고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수식어에 대한 단어들을 한국 개신교 성경에서는 사용하여 원문 성경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인도 굉장히 아쉬운 해석이며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으로 이렇게 한국어 성경 뿐만 아니라 영문 성경에도 오류가 있는 번역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류는 가톨릭 성경에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류가 실수로 있는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역 개정 이번에 보면서 좀 충격을 먹었습니다. 아 이래서 대화가 안되는거구나 싶었습니다.
@@DailyBible 네. 저 또한 처음에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어 성경보다는 원문을 중심으로 영어 성경과 대조시키며 보고 있습니다
성모송세번 바칠게요♡pm3:57
자비기도 바치겠습니다♡pm1:46~
박사님♡감사드립니다♡🎂🧸🌺
박사님♡덕분에 3시까지 자비기도를 달리게 되네요~ 오랜만입니다~ 제게도 은총이 같이 쏟아집니다~♡
자비기도 10/17까지 하고 드문드문 건너뛴 날이 존재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하나씩 메꾸고 있습니다 3시에 11/14 기도하고 끝낼게요~♡ 감사드립니다 박사님♡😂
박사님 영상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3시 자비기도로 갚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20회 거의 다 해가는데 2시간 채울거 같아요 ㅋ17번째 하구 있어요~♡
지나가던 개신교인 크리스천입니다. 말씀의 취지를 잘 이해했습니다. 오해가 없길 바라는 부분은 개신교에선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믿음과 행위(혹은 선행, 혹은 성화)는 동전의 양 면처럼 함께 간다고 배웠습니다. 다만, 개인의 신앙 성숙의 차이로 인해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못해 생겨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믿음과 삶은 일치해야하며 이는 나의 노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주께서 인도하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감사히 듣고 갑니다.
말씀하신바 가톨릭의 관점과 크게 다른바 없습니다. 따듯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오해가 있는게 아니라 제가 아는 개신교인들 10명중 9명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던데요. 모든 개신교가 다 그렇게 가르치는양 일반화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당신 교회에선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시는게 맞을듯 합니다. 사실 님같이 깨어있는 분들이 전체개신교인중 몇%나 될까요?? 과거에 자신들이 주장하고 고집했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 하면서 카톨릭을 공격하기도 했던 주제였었는데... '믿음 안에 선행이 포함되 있다' 돌려말하니 변명하기 참 쉽네요.
@@juanakim5991 부족한 댓글에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주변분들이 올바른 믿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주신 말씀 잘 기억해서 사랑으로 품고 주님께 더 구하겠습니다~!
@@PaulYi-yw8hx 긍정적으로 받아주시고 답글까지 달아주시니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칼뱅루터신학에서 믿음 행위 구분해서 가르쳐요.
행위 의 중요성 얘기하면, 개신교단에서 행위구원론 이단으로 찍혀요.
개인적인 사견 조심스레 남겨봅니다. (긴글 죄송합니다...)
마태오 형제님께서 개신교가 원문에도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를 본인들의 교리의 강조를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고 말씀하시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직'은 개신교가 자신들의 교리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넣은 것이 아닙니다.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번역한 영어성경은 NASB, KJV, NKJV, ESV, NAB, NIV, NLT, TLB 등등 꽤 많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어성경을 한 구절씩 서로 비교 분석하다보면 서로 일치하는 부분도 많지만, 서로 통일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 원어에는 없었던 단어들이 번역본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요.
마태오 형제님이 예시로 들어주신 구절인 로마서 1:17절을 살펴보면,
NIV: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KJV: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한눈에 보아도 서로 다른 부분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마태오 형제님의 논리대로라면 NIV 번역에 참여했던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교리적 성향을 강조하기 위해 원문에도 없는 εὐαγγέλιον (복음, Gospel)을 넣은 것인가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첫째로, 언어가 가진 성격과 번역의 과정 때문이며, 둘째로, 히브리어,헬라어 원어성경이 가진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어는 언어가 가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언어일 때만 느낄 수 있는 뉘앙스가 존재하죠.
예를 들어, 한국인이라면 '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바로 인식하고 느낄 수 있지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정'이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입니다. 이 '정'이라는 단어에 딱 맞는 영어의 단어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가게는 참 정이 없네" 라는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단어를 직역하여 "This place is so heartless' 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단어를 의역하여 "I feel a lack of warmth and friendliness from the people in this restaurant." 이라고 할 수도 있죠.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이 원어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같은 구절을 보아도 어떤 학자는 직역을 선택하고 어떤 학자는 의역을 선택합니다. 직역에 가까운 영어 성경은 KJV, NKJV, NASB와 같은 성경이고, 직역과 의역의 중간이 NIV 이며, 의역이 NLT 성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본 내에서도 그 번역이 서로 상이 한 것입니다. 이는 영어성경이 한글성경으로 번역될 때, 또는 원어성경이 한글성경으로 번역될 때에도 당연히 적용이 됩니다.
둘째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성경이 가진 특성은 바로 그들 역시 사본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의 저자로 인해 가장 처음 기록된 원본을 autograph라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원본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전부 다 원본을 필사(베껴 쓴)한 사본입니다.
사본은 기본적으로 손에서 손으로 기록되는 특징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과정에 실수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과거의 문헌 기록의 기술은 그리 좋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글자의 형태가 변하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비평을 통해 가장 원본에 가까운 성경을 되찾기 위해 많은 신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노력을 해왔던 것이죠.
(본문비평이란, 구약을 기준으로 Masoretic text, LXX, Samaritan Pentateuch, Qumran, Peshitta 등과 같은 사본 및 번역본을 비교 분석해서 원본의 형태를 찾는 학문)
그래서 학자들마다 원문에 가까운 형태로 믿는 구절이 약간씩 다릅니다. 제가 알기로 카톨릭은 LXX (70인역)이라고 불리는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가장 신빙성있게 보는 것으로 알고 있고, 유대인이나 개신교는 BHS or BHQ (Masoretic Text)를 가장 원본에 가까운 성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원어 성경을 기준으로 두고 번역을 했는지에 따라서도 영어성경과 한글성경의 내용이 조금은 다를 수 있죠.
이런 복잡한 과정과 노력은 뒤로하고 단순히 한국 개신교가 원문에도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를 본인들의 교리의 강조를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드리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이미 너무 글을 길게 작성했기에...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이 적은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번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는데
한두번도 아니고 믿음이 나오는 구절 마다 오직이 저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꿈 보다 해몽 이네요.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때 각 사람들에게 어려운 이웃에게 한 행실에 따라
영생과 영벌로 나누겠다고 직접 말씀 하셨습니다.
번역상의 오류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거짓 선동 구호일 뿐 입니다.
마태오 형제님 정말 최고십니다. 잘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에 이미 많은 분들이 언급하셨지만 저도 개신교인으로서 이 영상에 깊이 공감합니다.
믿음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종이 되는, 십자가의 삶을 따라가는 것(사랑, 선행 등)까지 포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유툽키면 개신교 목사들이 가톨릭 비난하고 구원이없다하는 영상 천지에 이단이라는 욕만 일방적으로 먹다가 이런분이 내편이라니 속이시원합니다...천주교에와서 성체 모실수있음에 감사합니다~
개신교 인인데, 덕분에 천주교에 대해 깊게 공부중입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오직이란 단어만 문제가 있는게 아닙니다. 개신교에 주기도문에 시험에 들지않게 하시고 부분이 있는데 천주교는 그 부분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로 되어 있는데 개신교는 4대 복음 전체 유혹이란 단어가 들어가야할 부분에 시험이란 단어를 넣었습니다.
유혹과 시험은 단어의 뜻이 다릅니다. 저도 이 부분이 이상해서 개신교인이었다가 천주교로 세례를 다시 받게 됐었습니다..
저도 개신교였다 카톨릭 세례를 오래전에 받았어요 ~ 진짜의 길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성모님께 항상 감사기도 드립니다 ~^^
@@이것보라 전 개신교에서 통성기도 하는거 보면 거룩함과 진실함이란 전혀찾아볼 수 없고 마치 지옥에 있는 죄인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 같아 혐오스럽습니다
@@yunsangkim3859 한나는 기도할때 술에취한사람처럼 기도하였고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때 바지가 벗겨진것도 모르고 춤을추었으며 예수님이 기도하실때 땀방울이 핏방은이 되도록 기도하셨으며 성경에 분명히 온땅이여 여호와께 큰소리로 찬양하라고 되어있으며 성령이 불같이 임하시어 각기다른나라말로 기도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체면차리면서 기도하고 찬양하는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다하고 온마음을다하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춤추며 찬양하고 예배하시는걸 좋아하싶니다
만약 로또 1등이되서 20 억정도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그게 좋아서 기뻐 춤추시지않겠어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기쁘다 그러고 계실수있겠어요?
내가 세상에 잠시살동안 쓸 물질도 이렇게 귀하고 기쁜데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수있는 구원을주신 하나님께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찬양을 드릴수있다구요? 그정도로 절제력이 좋다면 인정이지만 그게아니라면 구원을 찬양을 예배를 딱 조용히 드릴정도로만 좋아하시는 겁니니
@@성진박-k7q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우리나라 개신교 통성기도는 마치 바알한테 기도하는 바알사제들 같습니다. 님이 위에 서 얘기한 비유는 찬양이죠. 찬양은 하느님께 즐겁게 힘껏 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옆에 사람이 볼 때 바알사제들처럼 흉칙하게 자학하는듯 소리질러대는건 민폐에 불과합니다.
@@yunsangkim3859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거라 통성기도가 바알숭배같다는건 너무 가신것 같네요.. 님처럼 통성기도가 혹여나 불편하신 분들이 많아서 점점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마 한국개신교가 미국에서 순복음교단이 들어온 이후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다보니 방언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러면서 그런문화가 유행처럼 번진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잔잔하고 깊은 묵상의 기도가 더 큰 은혜가 됩니다.
정말 많은 개신교분들에게서 볼 수 있는 말, 이 영상에 댓글을 단 개신교인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믿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그 말이 저는 정말 실천에 대한 궁극의 회피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들도 교부들도 어느 누구도 그런 가르침을 준 적이 없습니다. 개신교적 오직 믿음이 나오고 나서야 가르치게 된 가르침이지요.
그리고 그 가르침은 죄 앞에 넘어지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믿음을 통한 실천보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니 실천에서 넘어지면 아 나는 믿음이 없구나 하고 정말 잘 믿고 있는데도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화는 저절로 되는게 아닙니다. 성화는 우리가 마음을 쓰고 실천할 때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개신교도 믿으면 행위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렇게 가르치는 목사님들도 계시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 또한 많은 개신교 성도들도 알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중요하지만 그 믿음에 성도들의 행위 또한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우위라고 말할 수 없어요.
@@hyeryun2 제가 개신교 신자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바로는 개신교에선 믿으면 행위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예시를 보여드릴까요? 지금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서 개신교 신자분들의 댓글들을 보십시오. 십중팔구 믿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개신교 교회에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가르치던가요? ㅋㅋㅋㅋㅋ 행함 없이 믿음 있다 말만 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지 않고요? 어떤 사이비 개신교가 그러는지 궁금하네요 ㅋㅋㅋ 아직 성경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어떤 신도들이 하는 말을 잘못 들으신 건지도요.
어떤 종교도 다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절 다니면 부처님 말씀을 100% 깨달아 틀림이 없이 말할 수 있고, 성당 다니면 성경 말씀을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해석하는 능력이 생깁니까? 왜 일부의 "카더라" 가지고 "전체가 다 그렇다"고 오해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Hrh_11'저절로' 아닙니다~ 은혜에 의한 반응이고,
육신을 입은 몸의 한계때문에 그렇지않을때도 많으니
회개도 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믿음과 마음의 변화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생각하는 믿음과 제가 생각하는 믿음의
층위(?)가 다른 듯 하네요~
여기계시는 분들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난 외계인을 믿어!" 그럴때 믿음인가요?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의 그 믿음인가요?
그것부터 제대로 규정한 다음 다음 논의가 되어야
말이 통할 것 같구요!
한가지 더 묻고 생각하고싶은건...
여기 계신 님들은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
마음과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신가요?
격한 어조로 따지고 비꼬는게 아니라 질문한거니
싸우자고 답글 안다셨으면 좋겠습니다.
카톨릭 신사들이시잖아요~^^
놀랍습니다. 예전부터 고민하던 문제인데 명쾌하네요. 행동으로 증명되야만 믿음이 강해지는 법인데..........오직 믿음..?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지침이 전혀 되지 않는 신념입니다. 믿음이라는 개념을 더욱더 모호하게 만들 뿐이죠.
하느님은 성경 말씀대로만 구원하신다고 개신교외 아니 자기 교회 외에 다른 그리스도교에게는 온갖 비하를 일삼더니 정작 하느님 말씀을 마음대로 왜곡한건 자기들이네요...
우리를 창조한 신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신을 믿는 이런 케이스를 '이단' 이라고 부르죠.
본질을 잘못해석함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들은 그런 구원파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이래서 권위있고 거룩한 교도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분들은 늘 자기들이 옳다고 합니다. 마치 카톨릭을 바라볼 때 이단인 것처럼 그런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오늘도 너무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NIV는 번역본이죠 헬라어 원문을 원전 분해 해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데 기본 G1161
@@AKang-gc9eb 어디 좀 봅시다,
@@interfake70오직 나옵니다.
@@AKang-gc9eb 그러면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등등의 구절들과 상반된다는 시각인 건가요? 아니면 저기서 말하는 실천이란 믿는 것을 말하는 건지, 아님 믿음이 실천까지를 포함하는 건가요?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저는 가톨릭신자이지만 믿음엔 faith와 belief가 있는데 faith는 영적인 차원의 '진정한 믿음'의 의미라고 하네요. 그냥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믿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선행이 따라온다 이러더군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하고요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로 나타나야 하므로 'faith=before믿음+after선행'이라 선행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닌듯. 바오로서간에도 진정한 믿음(faith)은 선행이 저절로 수반된다는 구절이 자주 나오더군요. 성경을 곡해하는 사람은 문자만 갖고 바오로와 야고보의 구원관이 상반되었다고 그릇된 주장을 하고 베드로 3장16절에 바오로의 복음이 어려워서 무식한 사람에 의해 그렇게 곡해할수도 있다고 경계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믿음과 행함이 서로 분리될수 없다면 '믿음'앞에 굳이 '오직'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겠죠. 실제 믿음과 실천이 일치되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실천이 어려운만큼 문제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교리에 '믿음+실천'의 카톨릭교리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신학자들이 성경원본과 개신교 성경을 비교해보니 루터가 믿음앞에 '오직' 을 삽입했고 1,400여군데 손을 댔음을 밝혔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인들의 구원관은 예수님 십자가사건으로 이미 구원을 다 받았으니 살면서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일부 소수 식자층의 개신교인들은 카톨릭의 교리도 있고 해서 꼭 그렇게 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개신교인 90%는 그리 믿고 있을겁니다.
카톨릭 신자는 당신처럼 성경을 해석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읽고 묵상 합니다. 개신교 신자님! 그냥 당당하게 다른 생각있으시면 자신있게 자신을 밝히고 댓글을 다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Respect-kg6wr 제 말을 잘못 알아들았나본데 영어 faith를 인간들끼리 신뢰하는 믿음(belief)으로 번역해서 앞에 '오직'이란 말을 붙인 개신교 목사들의 잘못을 지적하고싶은겁니다. 제대로 번역하려면 선행이 필요없다는 의미로 곡해할 수있는 '오직 믿음'대신 '(선행이 전제된)진정한 믿음'으로 번역해야 옳다는거죠. '진정한 믿음'은 육화된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진심으로 믿는다는거고 그런 자라야만 남에게 사랑을 베풀수있다 이런 예깁니다. 마태오형제님의 말을 반박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견진성사까지 받은 가톨릭신자 맞습니다
@@juanakim5991루터가 손을 댔다는 사실은 어디에서 찾아볼수 있을까요?
@@hj5620 저는 연구자도 아니고, 제가 확인한 것도 아니라서 들었다고 썼습니다.
그 말은 성경공부 강의실에서 같은 수강생분한테서 들은 얘기이고, 유투브에서도 어떤분의 긴 답글에서 같은 내용의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말씀을 사랑하는 개신교인입니다. 우연히 알고리즘을 통해 영상을 접했는데 7:34 부터 강조하시는 부분에 깊이 동의합니다. 제대로 성경을 배우고 묵상한다면 이 영상에 강조하신 '오직 믿음'에만 기대어 나의 구원받음과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했음을 주장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당연히 복음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믿음의 완성은 성령님의 감화를 통하여 나의 존재가 거듭나고 그로 인해 삶의 전반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남을 믿습니다. 요즘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는 커녕 복음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며 우월감을 느끼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의 개신교인들을 보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부족함 많고 부끄러운 개신교 신자이지만 이러한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참 진리를 깨닫는데 힘쓰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저번에 댓글에서 설명해주셨던 부분이네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태오형제님~오늘도 귀한시간 감사합니다
개신교인들은 가톨릭교회가 일부러 뺐다고 가르치나 보더라구요..
형제님처럼 이렇게 찾아 보는 개신교인들이 얼마 안되요..
킹제임스 성경과 NIV는 번역본이죠 헬라어 원문을 원전 분해 해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데 기본 G1161
@@AKang-gc9eb 형제님께서 헬라어 원문과 영문 번역 비교 함 해주시죠👍
@@AKang-gc9eb 궁금해요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가톨릭 교회가 일부러 뺐다고 가르치는 개신교는 혹시 이단 아닐까요 ㅋㅋㅋ 어느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던가요
도대체 어느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설파하는지 유튜브 영상 링크 하나만 달아주세요.
수십년 개신교 신앙 생활 동안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 목회자 단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오류를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두가 진리 안에서 바르게 예수님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아멘
이거 정말 한국 개신교에서 제대로 정정해야 하는 번역 이슈네요. 오직 성경-믿음-은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만든 이론인데..그걸 주장하고 홍보할 수는 있지만 성경에 포함하는 건 아주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오직'은 '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의 이론과 주장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죠.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건강한 소통을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개신교->가톨릭 옮긴 사람인데요
충격이네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네요.
맞습니다. 말씀을 사랑하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 더욱 믿음을 굳건히 하시길 바래요 마태오 형제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역시 공대 근거로만 말하는 NTJ 짝짝짝~
INTJ 공대녀로써 극 공감합니다. 반박시 라틴어 원문을 드리밀면 또 하는 말이 가톨릭에서 옮겨적을때 의도적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말로 돌리더라구요, ㄷㄷㄷ
총신대 신학과 출신입니다. 헬라어 번역에 대한 유튜버님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다만 ‘오직’이라는 표현은 수사적인 강조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헬라어 원문에서 사용된 접속사들에는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번역을 특별히 좋아할 만한 교파는 루터교밖에 없을 텐데 한국에서는 루터교의 교세가 매우 약해서 음모(?)를 꾸밀 만한 세력이 못 됩니다. 번역이 구원론을 형성하는 데 잘못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조차 행위를 필요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화(행위)와 칭의(믿음)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보기 때문이죠. 가톨릭 역시도 공로(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에 대한 신자의 반응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고요. 애당초 행위구원은 가톨릭 내에서도 오래 전에 이단 판정을 받은 교리이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이를 더 확고히 했죠. 심지어 최근의 학자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은 구원론에 있어서 강조의 차이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까지 인정합니다.
저도 구원론의 간격이 좁은 건 알고있고 이 영상에선 그것에 대해 문제 삼으려던 의도도 없어요.. 물론 하다보니 가톨릭 구원론관련 잠깐 언급을 하게되었습니다만 번역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역이 간격이 멀지않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원론을 멀게 느껴지게만들고
대화가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 제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헬라어 원문에서 사용된 접속사들에는 강조의 의미가 있고 개신교 성경 역자는 이 강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수 있는데 이는 의도적 오역이 아닙니다. 애당초 헬라어 원문과 일 대 일 대응되는 한국어 번역 자체는 불가능합니다.
의도적 오역이 아니라 의역중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다라고 보신다면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개신교쪽에서 나온 글 한번 참고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DailyBible 역자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는 걸 말씀드린 건데 무조건 역자가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고 믿으실 거면 저도 할 말 없습니다. 사족입니다만, 그런 부정적인 인지도식은 삶을 힘들게 합니다.
오직이라는 표현은 절대성/고립성을 내포하는 단어이기에 단순히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설명은 누구나 납득하기 어려울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오직 믿음이라는 저 구절을 근거로 박옥수 구원파 등이 자체적인? 구원론을 주장할때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해당 오역은 신앙에 있어서 아주 지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입니다.
개신교 내 수많은 교파가 있기에 구원파외에도 해당구절을 곡해하여 설교하는 교파는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마태오 형제님 감사합니다.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영상입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자기만의 믿음, 생각, 고집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실천하며 그 분안에 함께 하는것이 주님께서 바라시지 않으실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하고..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마태오 형제님 안녕하세요?
중학생 가톨릭 신자입니다! 형제님의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고 있는데요 이해가 잘 되게 설명 해주시더라고요
형제님께 부탁 아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11월 10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도중에 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베이사이드 미카엘회"의 유인물을 배포하는 사람이 있더라
고요 확실히 심각하단 생각도 들고 해서 교회에 인준을 받지 않은
"마리아의 구원방주" 라던지 "베이사이드 운동" 같은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 대해 신자들에게 경고나 일깨움을 줄 수 있는 영상이
필요하다 느껴서요 저도 사실 초등학생때 지식인에 죄가 많은데
지옥에 가는가에 대해 글을 올렸었는데 그때 이제 어떤 사람이
답변에 "나주 성모동산에 견학을 할 필요성이 있다 5대영성을 해라"
라는 답변이 와서 어렸을때 뭣 모르고 영상을 클릭해서 시청한 적이
있었거든요 사실 그때 잘 모르고 빠졌으면 큰일 날 뻔 했죠 아무튼
신자분들에게 경고하는? 심각성을 일깨우는 영상이 필요할 꺼 같습니다
고마워요 중학생이라니 대견하고 훌륭하네요 그들에 대한 경고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관심을 주지않는 것도 필요해서 고민해볼게요. 신앙생활에 성령이 함께 하시길 기도할게요 사랑합니다!
@DailyBible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성령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참 개신교는 넘 많이 상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네요.^^.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마태 25,31-3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심판관’으로 오실 것입니다.여기서 ‘모든 민족들’은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입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날의 심판은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인다는 말은 심판받기 위해서 모인다는 말인데, 아무도 심판을 피해서 달아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라는 말은, 구원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을 갈라 세운다는 뜻인데, 심판이 순식간에 끝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소하고, 변론하는 등의 심리 과정도 순식간에 끝나버립니다.양들을 오른쪽에, 염소들을 왼쪽으로 세운 다음에 남은 절차는 ‘선고’뿐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4-36)”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굶주렸을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였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라는 말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서 언급된
‘가난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오른쪽에 서 있는 양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믿고 받아들여서, 복음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의인들은 “주님, 저희가 언제......?” 라고 질문합니다(마태 25,37-39).의인들의 질문은, 자기들이 사랑 실천을 한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 실천을 했지만 ‘주님께’ 해 드린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고 대답하십니다.
(“나에게 해 준 것과 같다.”가 아니라, “나에게 해 준 것이다.”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강도들을 만나서 초주검이 된 사람’(루카10,30)은 바로 예수님이었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도와드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나의 앞에 있는 ‘작은 이’가 곧 예수님이라는,
또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작은 이’로서 나에게 오신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 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신앙과 사랑은 하나”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선고가 내립니다(마태 25,41). 선고 이유는 그들이 사랑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고에 대해서, 악인들은 “주님, 저희가 언제......?” 라고 질문합니다(마태 25,44).
그들의 질문은, “주님께서 그런 처지에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도와드렸을 텐데, 몰라서 못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해도 주님에게는 합니다.” 라는 뜻인데,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말입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들이 사랑 실천 자체를 하나도 안 했음을 나타냅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 작은 이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셨더라면, 저희는 틀림없이 사랑 실천을 했을 것입니다.” 라고 항의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복음 말씀은, 그런 항의를 할 경우에 대비해서 ‘너의 앞에 있는 그 작은 이가 바로 주님이시다.’ 라고 미리 알려 주는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몰랐다.’고 변명하지 말고, 또 ‘왜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항의하지도 말고, ‘지금 당장’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여라.” 라는 가르침. 여기서 ‘한 사람’이라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마태 25,40.45).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사랑 실천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굉장히 ‘큰 사랑’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바라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형편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인류 전체를 구하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초능력을 발휘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굶주리는 ‘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는 ‘한 사람’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작은 사랑도 사실은 ‘위대하고 큰 사랑’입니다. ‘사랑’은 큰 사랑이든지 작은 사랑이든지 간에 모두 고귀하고 위대합니다.
저는 이십년전 세례받고도 형식적인 신자에 불과했고 무지했습니다.영적인 갈망이 느껴져 뜨거운 개신교 신자였던 회사동료에게 말씀 나눔을 받고 저도 동기유발이 되었고
미지근한 제 신앙이 마치 가톨릭을 대표하는것처럼 부족히 느껴졌던 그때
이단 사역까지 하려고 공부했다던 그지인이
조심스레 가톨릭은 세계에서 가장큰 이단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뜨여서
그이후 저는 가톨릭에 대해 조금씩 공부를 더했고 성령세미나로 통해 충분히 뜨거울수있음을 알았고 레지오를 들어가 성모님을 신성시 하는게 아닌걸 알았고
지금은 성경학교를 다니며 성경공부를 하며
무지하지 않게 뒷받침 하려고하고있습니다.
가톨릭은 뜨겁지 않은게 아니였고 제가 부족했다는것을 더 느꼈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어요
근데 문제는 공부하면 할수록 그 개신교 지인한테도 그렇게 가르켰을 목사님께
그 종파에 너무 화가나고 속상합니다.
얼마전 프랑스 올림픽에 대한 비난도
그땐 모르고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톨릭이
종교다원주의.동성애옹호했다고 혼자 착각하고 비난하는것을 뒤에서야 알았습니다.
사람 자체로는 참 좋은데
이 극복할수없는 저들만의 굳센 이념이 이젠
거리감이 생기네요
개신교 목사님들은 제대로 모르고 선배가, ㆍㆍ이단이다! 하면 믿는것 같군요.개신교 목사님.신학대 교수들도 천주교가 이단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이 친구 중 교회 다니는 아이가 우리는 성당 다닌다고 했더니
목사님이 거기는 진짜 교회 아니랬어요 그러더라구요
어떤 아이는 대뜸 와서 마리아는 가짜 신이예요! 그러지를 않나
목사님한테 배운 거죠 다
나름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가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 교황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겠냐는 질문에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단적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개신교 형제 자매 여러분, 성경에선 분명히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묵시 22,18-19) 믿음을 강조하려고 원문에도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를 성경에 추가한 것은 잘못이 맞습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건 교회가 해야 할 일이지, 원문에도 없는 것을 성경에 강조한답시고 추가하는 건 묵시 22,18-19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진건데요?
성경의 만들어진것 부터 잘 봐야겠죠ㆍㆍ
롬2:13, 2:29, 3:27, 4:13, 6:13, 7:13, 8:20, 8:26, 9:7, 9:8, 9:16, 12:2, 12:3, 13:14, 14:17에서 “알라”라는 단어는 “오직”으로 번역된 것이다,
심지어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마6:13)에서 “다만”도 “알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알라”는 강조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영어 단어의 but 도 "그러나" 라는 용법외에 강조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오직 믿음에서 “오직”은 믿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는 것이 옳다.
지나친 변호는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됩니다
형제님 짱입니다...!!
전 이로써 개신교형제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되었어요.
그들의 '오직 믿음'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들도 알면서 왜 저럴까 했었는데..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인데..어쩌다가 이렇게 됐나했었는데.. 이해가 됩니다...
저도 말 한마디마다 오직을 꼭 집어넣는 분들의 맘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ㅠ
현역 통번역사로써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합니다.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오직"이라는 원문에도 없는 단어를 추가함으로써 어떻게 해당 구절의 원의에서 이탈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도적으로 변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중 하나네요.
개신교 성경을 읽다보면 장과 절은 있는데 내용이 (없음) 이라고 되어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꽤 자주 나타나지요. 이런 내용들의 원문이 무엇인지 다루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와…. 저 가톨릭 신자인데, 형제님 오늘 정말 큰 일 하신거 같습니다… 진리를 전파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말씀은 태초에 계셨고, 그 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것입니다. 행위와 믿음의 분리는 불가능합니다
한국 개신교 성경이 참 심각한 문제가 이 부분이죠
원어성경과 비교하면 의역된 게 아닌가 싶은 부분들이 군데 군데 있습니다
때문에 한 때 몇 몇 교회를 중심으로 헬라어 원문에 접근하고 설교하는 방식이 유행했었는데, 대중화가 되지는 못한 것 같더라고요.
아니 뭐 이런걸 다 떠나서, 미국에서 유학하신 분들도 개역개정과 NIV의 서술 차이에 관해 입 다물고 있는 판이니 개신교는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저 모습일겁니다
@이것보라 카톨릭에 대해서 뭘 알고 얘기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교황 성하께서 황제의 위치에 있다고요, 뭐 중세 교회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대에 와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황의 입김은 커녕 교구장 주교의 입김도 크게 실감이 안될 정도로 영향력이 사실상 약해진 상태라고 보셔도 됩니다.
지금은 사제의 영향보다 각 평신도회 회장들과 본당 총회장이 각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오... 이런 면은 생각 못 해봤는데 정말 날카로운 지적을 해 주신 것 같네요.
성경해석에 "오직 믿음"이라는 개신교의 신앙적 '전통'이 영향을 끼친 예가 되겠네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경말씀을 임의로 추가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입니다. 바로 이 성경 구절이 생각나네요..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묵시 22,18).
좋아요 100번 누르고 갑니다
그래서 성경 어디에 마리아에게 기도하라는 것과 연옥과 교황은 무오하다는게 나오나요?^^
캐톨릭이 성경 가지고 개신교 공격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거 모르셨어요?ㅎㅎ
@@moremoreplus야고보서에 의인의 기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약 5,16) 초기 그리스도교에서의 의인은 현재 개신교의 주장대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이미 죽었지만 하느님 곁에 살아계시는 수많은 성인들도 포함됐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라고 하셨었지요.(막 12,26-27)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만 야고보서의 의인의 기도를 지상의 살아있는 자들에게만 국한되게 축소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이 왜 가톨릭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가라는 의문점이 생기는 거고 우상숭배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연옥은 가톨릭 뿐만 아니라 정교회에도 델로니아라는 이름으로 있고 심지어 유대교에도 게헨나라는 이름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도 하지요. 물론 연옥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와있는 건 아닙니다. 허나 연옥을 암시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은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외경인 마카베오기는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 12,32)
여기에서 내세는 어디를 의미할까요? 제가 아는 개신교의 교리는 살아생전 예수님을 믿었으면 구원 받아서 천국에 이르고 아니면 지옥으로 갑니다. 하지만 위 구절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지요. 그러면 죽어서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건데 그러면 개신교의 교리와 맞지 않습니다.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 (고전 3,15)
이 구절에선 구원은 받았지만 불속에서 목숨을 겨우 건지듯이 한다고 기록돼있는데 개신교의 주장대로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할 시 천국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가는 곳으로 불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옥은 아예 구원이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저 구절에선 "구원을 받겠지만" 이라고 돼있지요. 즉 지옥이랑도 맞지 않는 겁니다. 결국 마 12,32의 내세와 고전 3,15의 말씀은 연옥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황은 무오하다는 것은 먼저 오해를 풀고 가겠습니다. 가톨릭의 교황 무류성은 교황의 모든 발언이 전부 오류가 없다는 것이 아닌 가톨릭 신자들이 무조건 믿어야 할 믿을교리, 즉 신앙 도덕에 관한 중요한 교리를 선포할 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심과 평소 가톨릭의 신부, 주교, 대주교, 추기경의 발언들도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중 하느님을 안 믿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발언은 전혀 교리의 위치가 아니고 단순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에 불과합니다. 즉 비판해야 하고 충분히 오류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성경에서도 가톨릭에서 1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가 무류권을 행사하고 예수님 대신 교회를 이끈 구절들이 있습니다. 마 4,18-22; 막 1,29-34; 눅 4,38,41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첫 제자로 나오고, 마 10,2; 마 17,1; 막 9,2; 눅 9,28에서 베드로가 사도들 명단 중 항상 첫자리였고, 마 16,16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요 20,1-10에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사도들이 무덤에서 기다렸다가 베드로를 먼저 들어가게 하고, 눅 24,34에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다른 사도에 앞서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시고, 행 15,7에서 예루살렘 사도회의 때 베드로가 회의를 주재하고 하느님이 사도들 중 베드로를 뽑아세우고, 마 17,1; 2,3-26에서 항상 사도들의 대표로 간주되고, 행 1,22에서 베드로가 마티아를 새 사도로 세우고, 행 2,14; 3,6에서 베드로는 첫 설교와 첫 기적을 행합니다.
특히 가톨릭에서 1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가 무류권을 행사하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행 15,7-12)
이 사도회의가 개최된 예루살렘은 야고보 사도가 사목하던 곳으로 베드로 사도의 관할이 아니었으나, 베드로 사도는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무류권을 행사하여 율법주의에 빠질 뻔한 교회의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moremoreplus 성경 어디에 성경 어디에 나와야 된다고 나오나요?
@@moremoreplus오직 성경이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영화 밀양에서 아들 유괴하고 죽인 살인범이 애통해하는 어머니 앞에서 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며 말하는 근거가 바로 저 '오직 믿음'이죠.
밀양은 개신교의 믿음에 대한 이해없이 낮은 수준으로 개신교를 공격합니다.
진짜 믿음을 깨달았다면 피해자가 용서할때까지 용서를 비는게 개신교의 믿음이죠
@namito6188 전 그런 개신교 신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확신할수 없습니다.
@@chic_chooc 구원을 받고 그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는 연기하는 것인가요?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ahhatv 구원 받으면 자연스레 선한 삶을 살게됩니다. 영화의 살인범처럼 남의 슬픔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이기심에 사로잡히진 않죠.
살인범이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면 눈앞에서 절규하고 망가지는 사람을 보며 그런말을 할수있을까요? 먼저 사과하고 회개하면서 눈물흘렸을 겁니다.
마태오형제님 대단하셔요
정확히 알고 믿는것이중요한데.....
많은분들이 이영상을 보았으면좋겠습니다!!!!
형제님을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좋은 지적 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아하!
그렇군요!
큰거 배웠습니다
예리한지적이시네요~~복음에는 의,,가나타나서 ,,의 그,,의를찾아주세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도로 이루어진 것이니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면 심판을 받는다더니 어떻게 오직이라는 단어를 끼워넣을 수 있나요. 내로남불인가요. 이건 정말 획기적 발견입니다.
오직 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학자들이 70인역 원본과 루터의 번역본을 비교해보니 1,400여군데(어미나 접미사 등)를 루터가 수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juanakim5991진짜 독일... 독
@@juanakim5991헐 겁나 많이 맘대로 바꿨네요
'오류'가 아니라 '조작'입니다.즉 '의도적인 오류'. 우상숭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급한 조작.
영문판이든 헬라어판이든 그 의도적인 오류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것보라 "성경 번역은 이 시대 상황과 그 나라의 당시 상황에 맞게" 이런 걸 조작이라고 합니다. 검찰과 동급 맞습니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법을 휘두르는 것이나 시대상황에 따라 원본을 조작번역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이건 “번역 오류”가 아니라 “왜곡” 아닌가요? 한두번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저렇게 옮긴거면 왜곡이죠.
ㄷㄷㄷ 개신교 성도님들은 이 사실을 아시고 계실까요?
음... 이렇게 된 이유가 있겠군요...
문제의식이 크시죠
저두요~ 저들도 세례를 받은 하느님 자녀이고, 우리 형제 자매들이니 , 형제님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반드시 아실수 있게~♡
마태오 형제님~ 축복합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돌보심안에 평화롭고 기쁜 날들 되게 도우소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받으소서
킹제임스 성경과 NIV는 번역본이죠 헬라어 원문을 원전 분해 해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데 기본 G1161
@@AKang-gc9eb
구절을 올려주세요
@@AKang-gc9eb 원문 제시하시면서 비교해 주세요
@@AKang-gc9eb 저도 개신교인인데 이 영상 보고 원문도 찾아보고 개신교계에서 이와 관련해 있었던 논담도 찾아봤습니다.
개역성경에서 '오직'으로 번역된 de는 only, alone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는 아니고, rather나 but 등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단어입니다. 단지 개역성경이 처음 번역될 때는 '오직'이라는 단어가 '오히려'의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도적 오역은 아닌셈이죠. 그러나 요즘에는 오직은 거의 only 등의 의미로만 쓰여서 곡해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젠 개신교회도 너무 오래된 번역본인 개역성경보다는 새번역 등을 사용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같은 믿음이 부족하여 가끔 개신교의 열정속에 있으면 내가 주님을 만날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한테 유익하였습니다 역시 천주교가 진리인듯싶습니다. ♥♥♥♥♥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꽃피는봄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 21)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 7, 22)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마태 7, 23)
어느 댓글에서 본인도 교리만 너무 사랑한적이 있었다며 형제님도 그러는거 아니냐는 개신교분이 계셨죠.
개신교는 "오직 말씀" 이라 그 말씀에서 추출한 교리에만 매달리게 되기 쉬우니 그렇구나 했어요.
우리는 교리말고 사랑할게 너무 많죠. 교부들, 바오로가 굳게 지키라고했던 전통들, 성사들-특히 실제로 오시는 예수님의 성체, 협조자엄마, 사도계승된 하나의교회의 교도권 등
오직 말씀, 오직 믿음 ... 이런주장 볼때마다
포도당 수액만 맞겠다는건가 싶어요.
단백질 기름 비타민 미네랄 없으면 병걸리는데...
"건강"한 신앙은 어찌 지키나.
소중한걸 커버없이 보관하면서 물려주겠다는건가 싶죠.
냉장보관,차광보관 해야하는데
미지근하게 자외선노출하면서 "변질"시키지않을 노력에 대한 태만...
결국 개신교는 사이비의 요람이되고 3만3천개의 콩가루가....
우린 특별한 지향이 있으면 하나의교회안에서 각기 다른 카리스마를 지닌 수도회를 만드는걸로 해결하는데 말이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구약성경 하박국서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인데,악인이 의인보다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선지자 하박국이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질문을 하자 하나님이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불신에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의인들이 고난을 받고 악인들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너는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또 신약성경 로마서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으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믿음은 율법과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파송된, 이방인
담당 선교사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말을 반박했습니다
달랑 예수 하나 갖고는 구원 못받아
구약의 율법에서 하라고 한 행위들(할례 안식일 동물제사 부정한 음식 안먹기..)까지 다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즉 예수의 십자가 속죄 사역은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말을 듣는 이방인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바울은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저 유대인들은 할례 안 하면 구원이 없대..
예수가 별거 아닌건가?
예수만 믿어 가지고는 절대 안된대..
그러자 바울이 목에서 피가 터져나올때까지 외친 겁니다
예수님 믿는걸로 충분하다
구약의 율법 안 지켜도 된다
구약(옛 언약)이 가고 ,
신약(새 언약)이 우리에게 임했다
할례 안 받아도 되고 양잡고 소잡아 태워 바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한것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선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서신서마다 너희는 빛의 자녀들이니 거룩하고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루터는 어떤 의미로 오직 믿음이라고 외쳤을까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카톨릭 교회는,바울 시대의 유대인들처럼,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에다가 온갖 것을 다 구원의 조건으로 갖다 붙였습니다
예수만으로는 안되~
그러나 성경은 천하만인에게 구원을 가져다가 줄 이름은 오직 예수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사역이 반쪽짜리여서 거기다 뭘 더 갖다 붙여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는 카톨릭 사상에 반기를 든 루터의 신학은,유대 율법준수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외친 선배 신앙인 바울을 본받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 자기가 보는 것만 믿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만 곧이 곧대로 주장하는 맹신가야 광신자이지요 데살로이카 2서 2 장에도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우는 멀리 하여라 하였지요 바로 로마서늘 남긴 바오로 사도 말씀이지요 당신 어설픈 성경 귀절 들어 합리화 하려는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불쌍한 사람들은 예수님 재림때에 오른편 얌이 아니라 왼편 염소때가 되의 스스로 유다가 가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릇 유다도 예수님의 제자였지요 당신도 예수님 말씀을 하지만 참 진리가 아닌 당신들 욕망에서 만들어난 헛된것에 기댄 가릇 유다인이지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나요? 종교개혁 당시 온갖 것을 다 구원의 조건으로 갖다 붙이다니요? 뭘 갖다 붙였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카톨릭은 예나 지금이나 중세때나 구원의 조건에 뭘 갖다 붙인게 없어요.
그리고 구원을 가져다 불 분은 오직 예수님 맞아요. 카톨릭은 다른줄 아십니까?
마태오씨, 정말 평신도로서 가져야 할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십니다.
당연한 시간들이 당신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정말 훌륭하신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님께 엄청난 응원을 보냅니다.
찬미예수님😊가톨릭의 든든하신마태오 형제님 고맙습니다평화를빕니다🙏👏
지나기던 극우기독교인입니다.ㅋㅋㅋㅋ 저희 교인분들중에 성서무오론... 그 중에서도 텍스트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신분들한테 데인게 많다보니, 대체적으로 생각해볼 지점이 있네요. 근데 몇몇부분이 제가 알던내용이랑 조금 달라서 어라? 싶은 내용이 있네요... 일단 제가 잘못알고있었는지 체크해보고 다시 여쭤보러오겠슘다.
개신교는 가톨릭을 인정하지만 이단으로 보는듯 해요. .제가 요즘.힘든데 좋은 영상이네요.
참고로.전 개신교에서 개종했고.집사람은.개신교입니다. .저를 다시 개종 시키려 엄청 노력하는데 안쓰럽더군요. .같이 다니는게.좋다고해서 6시에.성당가고.오전11에는.개신교를 갑니다. .이것도.돌봄이겠죠. .가정의 평화를 위해
힘내십시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드릴게요.
형제님 안녕하세요 저는 모태신앙 가톨릭 신자이고 개신교인 아내를 만나 미국에 살고있습니다.
회심이니 깨달음이니 너무 마음 쓰지마셔요. 저도 그 차이에 힘들어서 성당에서 멍하니 성체조배를하며 무엇을 바라시기에 이렇게 우리를 만나게하셨을까에 대한 고민부터 별별 분심에 잡념에 스트레스에 분노들이 많이 들더군요. 그래서 성직자 면담을 했고 신부님과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적이 있답니다. 신부님께선 웃으시며 아내분을 너무 사랑하기에 형제님이 고민하시는 것같은데 더욱이 사랑하신다면 아내분과 개신교 예배에 함께 참석해주세요라고 하시더라구요. 개신교회도 형제 자매들이고 우리가 보듬고 사랑해야하는 소중한 분들이라구요. 그때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일에 내 스스로가 목메여 고통받았었구나하구요. 그래서 전 평일에 매일미사 참석하구 주일에는 아내와 함께 개신교회 예배에 참석합니다. 아내도 너무 좋아하구 제 마음도 더 긍정적이게 변하고 사랑이 더 깊어지게 되더라구요. 우리는 그저 사랑을 실천하면 될 뿐입니다. 내가 양보하고 내가 더 사랑해주세요. 그뿐입니다. 형제님의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요한 세례자 형제가.
요한 세례자 형제님 채채 형제님 두분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법은부처님의법도 너무 마음에 와닿는 사연입니다 ~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겠어요 ❤ 카톨릭신앙이 깊은분들은 절대 개신교 안갑니다 !!! 얕고, 모르니 개신교로 따라가더라구요 😢 형제님의 깊은 신앙심과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받습니다! 성체를 꼭!!! 영하셔야합니다 ! ❤❤❤😇🙏
저는 개신교인 인데 구원은 믿음으로 시작하는거죠 그리고 행함도 중요합니다. 행함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자녀로서의 삶아가는데 있어서 신자로서의 삶 즉 행위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딱잘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구원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강조점이 다른 부분입니다. 천주교에도 개신교에서도 구원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ua-cam.com/video/6jSLT3ykElc/v-deo.html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을 한번 보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개신교의 안타까운 모습이네요~ 단어 하나에 매달리고 집착하게 되고, 집착의 결과로 성경의 말씀과 의미까지 왜곡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는 모습은 정말 큰 문제네요.
킹제임스 성경과 NIV는 번역본이죠 헬라어 원문을 원전 분해 해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데 기본 G1161
오히려 카톨릭이 단어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네요~
그렇다고 NIV. KJV.성경이 잘못된 성경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지어진 성경...
성도라면 진리의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의 진리에 이르기때문이죠!
그러므로 성경 여러곳에서 충돌하는 것 같이
보이는 내용들도 결국 '하나'로 읽히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성경을 읽고도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혀 다르게 인생의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성경 1쪽만 가지고도 진리에 이르는 사람도 있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진리에 이르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lordacton5858 안녕하세요 저는 개신교 장로교회에 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장로교회에 있을때 한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형제님은 해답이 있으신가요? "누구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는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개신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것은 바르게 믿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 개신교 계열 사이비가 그렇게 융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이 없는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인간이 악하고 어리석더라도 그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가 된 형제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또한 사이비의 성경해석이 틀렸다는 것은 형제님도 알고 저도 알지만 만민사제주의를 지향하는 개신교 신학적 관점에서 사이비의 해석은 틀리고 어느 교파의 해석은 옳다고 말 할 수가 있나요?
개신교 신학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의문과 괴로움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가톨릭은 성경 해석의 권위는 오직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단 하나의 보편교회(가톨릭)에 의해서만 나온다고 믿습니다. 성경해석은 오로지 성령의 인도로만 바르게 해석 될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는 개개인의 삶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교회를 통해 신앙공동체 전체에서 이뤄집니다. 성경 해석 또한 공동체 전체의 몫입니다. 성령의 분별또한 개개인이 알아서 해내기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개신교 교회에서 이런 분별을 잘 하지 못하고 꿈만 꾸면 예지몽이라고 생각하고 얼핏 얼핏 드는 생각들을 성령님께 받은 예언이라고 하고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사탄의 왕국도 분열하면 버틸수 없다하셨는데 천년 넘도록 가톨릭 하나뿐이었던 기독교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3만개이상의 교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3만가지의 다른 믿음을 가지길 예수님께서 바라실까요? 모든 기독교인들이 3만가지로 분열되어 있길 바라실까요? 루터의 신앙공동체 파괴와 분열을 합리화 한 결과 개신교의 정신에 남겨진 상처가 바로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 구원관과 분열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분열시키는것이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악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이 분열하며 저마다의 성경해석을 옳다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들이 더 옳은 이유를 댈 수 없습니다. 그들이 단 하나의 정당한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lordacton5858 안녕하세요 저는 개신교 장로교회에 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장로교회에 있을때 한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형제님은 해답이 있으신가요? "누구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는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개신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것은 바르게 믿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 개신교 계열 사이비가 그렇게 융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이 없는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인간이 악하고 어리석더라도 그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가 된 형제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또한 사이비의 성경해석이 틀렸다는 것은 형제님도 알고 저도 알지만 만민사제주의를 지향하는 개신교 신학적 관점에서 사이비의 해석은 틀리고 어느 교파의 해석은 옳다고 말 할 수가 있나요?
개신교 신학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의문과 괴로움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가톨릭은 성경 해석의 권위는 오직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단 하나의 보편교회(가톨릭)에 의해서만 나온다고 믿습니다. 성경해석은 오로지 성령의 인도로만 바르게 해석 될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는 개개인의 삶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교회를 통해 신앙공동체 전체에서 이뤄집니다. 성경 해석 또한 공동체 전체의 몫입니다. 성령의 분별또한 개개인이 알아서 해내기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개신교 교회에서 이런 분별을 잘 하지 못하고 꿈만 꾸면 예지몽이라고 생각하고 얼핏 얼핏 드는 생각들을 성령님께 받은 예언이라고 하고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사탄의 왕국도 분열하면 버틸수 없다하셨는데 천년 넘도록 가톨릭 하나뿐이었던 기독교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3만개이상의 교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3만가지의 다른 믿음을 가지길 예수님께서 바라실까요? 모든 기독교인들이 3만가지로 분열되어 있길 바라실까요? 루터의 신앙공동체 파괴와 분열을 합리화 한 결과 개신교의 정신에 남겨진 상처가 바로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 구원관과 분열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분열시키는것이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악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이 분열하며 저마다의 성경해석을 옳다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들이 더 옳은 이유를 댈 수 없습니다. 그들이 단 하나의 정당한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변화없는 믿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에스겔 33:13 ~16 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살 것이라고 말했어도 그가 만일 자기 의만 믿고 악을 행하면 전에 그가 행한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 그는 자기가 범한 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너는 죽을 것이다.' 하고 말했을지라도
그가 만일 자기 죄에서 떠나 선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전당물이나 훔친 물건을 돌려 주고 생명의 법을 따르며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그는 분명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라고 되어있는처럼, 결국 '행함'에 기반해서 구원받을듯한 사람도 죄를 지음으로 구원이 취소될수있고 취소된자도 다시 행함으로 얻을수도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오직믿음이란뜻은 그런뜻이 아닌데 믿으면 죄를 지으면안된다는 얘기인데 그걸 곡해한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제대로된 목회자 교회, 목사님들은 절대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지않습니다. 성경에 그런말이 한줄도없으니까요.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인정받는겁니다. 행함으로 오로지 의로워질수있고 천국도 갈수있습니다. 다만 행함을 고치는것은 성령에게 의지해야 할수있는 일이죠. 자신의 힘으로만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쉬웠으면 예수님이 내려오시지않았을겁니다. 결국 예수님 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고쳐짐-> 실수해도 또 반복하면서 점점 고쳐짐-> 의로워짐입니다.
궁금하여 여쭙습니다 감리교이신가요?
@@DailyBible 예수님은 파가 없으시죠.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보십니다. 아멘입니다!
엄....내용이 와전 되어 있네요 한국개신교 문제있네요
지금까지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원론에 대한 큰 차이인 실천이 따르는 믿음과 오직 믿음에 관한 궁금한 내용을 알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태오형제님은 보석같은 분입니다❤
추가로 잠시 검색해보니 카돌릭 성경 야고보의 편지 1:6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원어 성경도 δὲ를 오직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즉, 카돌릭 성서도 개신교 성경과 같이 δὲ를 오직으로 번역한 사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인가요?
개신교와 공동 번역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톨릭 성경은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야고보 1:6)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말씀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도 하게 됩니다. 오직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없다고 하셨으므로 믿음과 그로 인한 행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주님 주님한다고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 하느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우린 믿음과 더불어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게 단순하고 쉬울거 같죠? 뼈를깎는 자기 노력이 수반되는 일입니다. 평생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고난의 길을 걷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믿기만 하면 아무나 주어지는게 아니예요.
와 너무나 기쁘고 감동 받았어요.
이렇게 서로가 오류를 인정하고,
배려하면 하느님 안에 편견없이 한 형제자매가 될것같아요.
같은 하느님을 믿으며 이단이라하고
종교전쟁을 하는 하느님 종교가 늘 이해가 안갔는데
이렇게 악의없이 풀어가면 우리는 한 형제자매로 평화롭게 지낼수 있게 될것같아요.
정말 희망이 생깁니다 😊
감사합니다 💚
세계 평화가 오기를 늘 기도합니다❤❤❤~^^
공동번역성서도 찾아보니깐 슬프게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구절에 오직이란 단어가 삽입되어있네요 아마 개신교 목사님이랑 같이 번역하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 천주교 성경도 사서 같이 읽어야겠네요
야고보서에 분명 실천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되어있는데 오직 믿음이라니… 말도 안됩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NIV는 번역본이죠 헬라어 원문을 원전 분해 해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데 기본 G1161
성경은 사본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 역시 번역본으로써 사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가톨릭교회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와의 공동번역 성경에서 믿음 앞에 ‘오직’이 삽입된 적이 있었는데 (로마 1,17 ; 야고 1,6)
이는 개신교 목사들의 주장이 대단히 완강했던 까닭입니다.
루터의 의도적인 성경훼손이 지금까지도 부분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같이 성경을 번역했죠 그래서 공동번역이라고 성당 성경공부 시간에 배웠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개신교는 공동번역 성경을 많이 사용하진 않았구요 2005년 가톨릭 새번역 성경이 나왔죠 공동번역은 성서 였구요 새로 번역하면서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죠
마태오 형제님~ 영상 항상 잘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 문제는 개역개정이 100년전 한글성경인 '성경젼서'를 연속해서 개정함으로 발생한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믿음에 대한 구절에만 '오직'을 덧붙혔다면 안 좋은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성경젼서에는 너무 많이 '원문에 없는 오직'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생각해보건데 아마도 헬라어의 몇몇 역접(alla, de)을 '오직'으로 번역했던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믿음에 대한 강조로 억지로 '오직'을 붙이려고 했으면 행위에 대한 강조에도 '오직'을 붙일 이유가 없을 텐데(예를 들어 로마서 2:13; 티토서 1:8같은 경우), 믿음과 관계 없이 많은 경우에 그런 번역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100년전에 사용하던 한국어 '오직'이 지금과는 미묘하게 다른 용례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수 있겠습니다만 새번역과 현대어 성경에도 오로지와 오직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 했습니다. alla de를 오직으로 번역한 계기가 전 오직을 믿음앞에 넣으려던 결과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의도적으로 그랬건 그러지 않았건 제가 보기에 감히 말씀드리자면 개역 개정 성경은 문제가 많아보입니다...
@@DailyBible 개역개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격하게 동의합니다^^ 저도 가톨릭 성경과 공동 번역을 많이 참조합니다.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한국 개신교만의 번역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루터가 처음부터 오직을 성경에 삽입하였습니다.
그러다 원문을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차차 수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개신교에서만큼은 오직 믿음을 고수합니다.
믿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참으로 진실하다면 그것이 행동으로 실행되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루터의 오직 시리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위배됩니다.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말 자체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신약성경은 단 한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사도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남아있는 선민사상으로 인해, 할례라는 행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훈계하기 위한 말씀으로 할례라는 행위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실천을 배제시킨 말이 아니었습니다.
야고보서의 ‘실천’과 갈라티아서의 ‘행위’는 그리스어 ‘에르곤 ἔργον’을 번역한 것으로
‘일, 행위, 행동, 실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한 공동체에는 이방인들이 많았는데
이들도 유다인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부추기는 선교사들이 있었고
이방인 중에도 구원을 ‘할례라는 행위’로 보장받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의로움이란 할례라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임을 역설함으로써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유다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지
‘믿기만 하고 실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2,13)
결국 야고보 사도가 강조한 ‘실천’은 믿음에 따른 실천이었고,
바오로 사도가 반대한 ‘행위’는 율법에 기대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율법에 기대는 행위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 외친다고 천국에 안 들여보네주신다고 말했거늘... 예수님을 믿는다는건 당연히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거지 백날 기도하고 성경만 본다고 되는게 아닌 것을.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믿음과 행동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야 온전한 상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육신과 영혼이 연합한것처럼, 제사의 제물과 제사자의 마음이 연합된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교파와 상관 없이 로마서와 야고보서 사이의 균형을 통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멘..
정말 충격이네요...ㅠㅠ 개신교 성경이 쓰는 단어나 말투만 다를뿐 당연히 내용이 똑같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임의로 바꿔놓으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그 말이야 좋은 뜻이긴 해두요. 충격충격...
매우 중요한 지적이고 소중한 가르침입니다.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역개정에서 유난히 '오직'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썼다는것은 알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나온 성경중에 '표준새번역'에는 '오직'이라는 표현이 없지요..
묵묵히 채널 챙겨보고 있던 장로회 합동 목회자입니다.
처음에는 본 채널의 방향이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 신자를 이해하는 가닥으로 가시는 것 같아 감탄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시청하고 있었는데요, 갈수록 가톨릭을 공격하는 개신교단 유튜브 채널과 길을 같이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번 영상 내내 강조되는 저 “오직” 해석은 이미 틀린 것으로 인지하여 나온지 오래된 “새번역”은 물론이고 현재 최신 번역인 “새한글성경”에서도 “오직”을 제외하였습니다.
뭔가 심각한 오류를 찾아 공격하기에는 개신교단 신학자들도 원어를 찾아 보고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개신교 목회자인 저조차도 카톨릭 신자들을 무시하지 않는데, 형제님의 컨텐츠에는 어느때서부터인가 개신교도들을 무지한 단체로 치부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것 같네요.
댓글들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개신교들을 이해하고 품으려합니까? 극단적인 개신교도들이 카톨릭 신자들에게 그리하듯 비난하고 비하하는 댓글이 가득입니다. 어디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와 포용이 있습니까?
이런건 어떨까요, 마틴로이드존스의 천주교 사상평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카톨릭의 시선에서 개신교단을 평가하는, 자칫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자리는 그만 내려놓으시고, 개신교단이 평가하는 카톨릭을 대변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찬미예수님 의견 감사드립니다.
저의 이 영상을 가톨릭 신앙을 비방 비난하는 영상들과 같게 보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보통은 방어적 시선에서 영상을 올립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에 대해서 보다가 제가 몰랐던 개역 개정 성경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공유한 것 입니다.
저는 개신교인이나 교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번역의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개역 개정 말고 새번역된 2개의 성경에서도 로마서 1:17에는 오직 오로지가 추가되어있음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개역 개정이 가장 많이 쓰이는 성경이기에 이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기에 알리고도 싶었습니다. 개역 개정을 오래 읽으신 분과 왜 오직 믿음에 관하여 대화가 전혀 안되는지 저는 이번에 비로서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목사님과 같이 깨어계신 분들은 이문제를 알고 연구하십니다. 애초에 저도 개신교 쪽에서 나온 문제제기글을 보면서 더 알게되고 했습니다.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0
그런데 개신교 전체가 목사님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문제 제기를 된걸 보고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어이없는 공격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렇다고 저같은 나부랭이가 아닌 깨어 계신 개신교분들이 이야기 하면 듣느냐 그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애초에 워낙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신교도들을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방어적 시선에서 가톨릭 신앙을 설명 해 나갈 것입니다. 댓글들은 제 선을 벗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정도의 토론은 두겠지만 상호 비난과 비하는 더 잘 관리해보겠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당할땐 크게 보이고 내 편들어줄 땐 또 잘 못보고 그렇습니다. 이점은 제가 고쳐야합니다.
개신교에 대한 제 대응은 정상적이고 이성적이고 차분한 분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장 날 서있고 가장 많은 수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것임을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니 참 신기한게... 번역이 잘못되어 오해하기 쉽다고 지적을 해주는건데
뭐가 문제가 되는건지요??
그리고 좀 코메디한게요 ..
거짓말 1도 안보태고 개신교 일반신자들이 가톨릭신자를 보면 뭐라하는지 아시나요???
아..마리아교 다니는구나..거긴 이단입니다.. 이게 과연 한두번 이겠습니까??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심지어 직장에 서도 같은 말을 매번 들은게.. 그말인데요???
다 목회자 뷴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있기에 그리 전파되어 버린거 아닙니까? 그건 목회자 잘못이 아닙니까??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 없는게... 양심을 거시고 유트브 에서
가톨릭은 이단 또는 마리아교 라는 타이틀을 가진 곳에 나는 목회자
인데 그건 아니라고 댓글을 일일이 달아본적 있으신가요????
한분도 못봤습니다... 어디어디 목사인데 이거 잘못된거라고 누가한번
비판해 준 목사가 한명도 없는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이 영상 채널에 신기하게도 목회자님이 엄청 댓글을 다시네요??
이야.. 신기하네요...
@@DailyBible 제 글이 격정에 차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신중하고 정중한 답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셨군요. 방어적으로 올리셨던 거였군요. 십분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개신교도들이 천주교도들을 바라볼 때 설득과 비난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를, 저 역시 자주 보았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제 글에 오해가 생기기 전 입장부터 말씀드려야 했네요. 저는 마태오 형제님과 케케묵은, 신구교의 신학적인 논쟁이나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비슷하나 선명하게 다른 입장에 서 있고,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까요.
저는 목회자 이전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 다른 공동체가 옳고 그름에 취해 자신이 의로운 것 마냥 다른 지체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잘못을 지양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살아왔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가 믿음은 연약한 자를, 뜨거운 자가 잠잠한 자를, 또 개신교가 천주교 신자들을 그렇게 대할 때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태오 형제님 채널을 보았지요. 개신교가 다수인 이 땅에서, 보다 더 아팠을 신자가 오히려 포용하고 설득하려 하는 모습에 얼마나 감탄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저의 교만한 지레짐작이었습니다. 형제님의 아픔은 갈무리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고, 그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저도 제 한계가 명확한 사람이라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같은 아픔은 겪지 않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그저 이상근 형제님의 채널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도하는 한 성도로서 글을 남깁니다. 괴물과 싸우느라 괴물이 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형제님의 모습에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참된 성도가 받는 박해에 억울하고 서글픈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같은 공동체에서도 상처를 받는데 그 외에는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차라리 예수님이 가셨던 길로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쩌면 이미 깨달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믿음을 가졌다고 공격하는 사람에게 이런 영상을 일만개 던져줘도 변함이 없습니다. 기도와 예수를 닮은 사랑과 용서가 아니면 답이 없고,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품고자 하는 사람과 궤를 같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원수가 얼마나 많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 아닙니까..
저도 제 자리에서 더 노력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소망합니다.
@@고뇌하는오뎅 원래 조롱조의 글에는 답글을 달지 않습니다만 오해가 있어 덧글을 답니다. 이 글 아래로는 달지 않겠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고뇌하는 오뎅님이 알고 교제하는 개신교 일반 신자들은 아마 일천명이 되지 않을겁니다. 천명이 아니라 만명도 일반 개신교 성도를 이야기하기에 적은 숫자지요. 일반론을 이야기하기에는 고뇌하는 오뎅님은 아마 충분한 인원의 개신교 성도를 알지 못하실겁니다.
“개신교도들이 카톨릭에게 이단이라 하지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개신교단이 많죠. 항상 특별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듯, 제가 몸담고 있는 교단에서도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큽니다. 존중하고 예의바르며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기다리고 인내하는데 말입니다.
님께선 저를 모르실겁니다. 그러니 제가 그렇게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도 모르실거고, 제 주변 목회자들이 어떻게 교육하는지도 모를 것이며, 제가 카톨릭을 욕하는 영상에 댓글을 달았는지 달지 않았는지도 모르실겁니다. 한 분도 못봤다구요? 당연히 못보셨겠지요. 영상 몇 개나 보셨습니까?
제가 말하고자 하는건 고뇌하는 오뎅님은 모르실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신기할 수 밖에 없지요. 모르시니까요. 그러니 못난 개신교도들이 하는 것 처럼, 모르는걸 아는 척 하지 마십시오.
저도, 제 동기 목회자들도 천주교의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에 대해서는 반박합니다만, 그들을 욕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은 커녕 최소한의 존중도 배우지 못한 사람 취급합니다.
위의 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마태오님의 영상을 평소 흥미진진하게 보던 사람으로서 갈수록 채널의 방향이 너무나도 익숙한, 그래서 배척했고 공격했던 영상의 기류가 느껴지기에 이야기했습니다.
번역이 잘못되어 오해하기 쉽다고 지적을 해준다구요?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적해준 것에 지금 개신교의 상황을 들어 답한 것입니다.
오늘 남은 하루 평안하시길, 복된 밤 되길 바랍니다.
@@좋은아빠
하시고 싶은 말씀이 일반적인 개신교인이 그러지 않는데 재수 없게
내가 걸려서 그런 말을 듣는거라
그걸 일반화 해서 이야기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맞나요?
현실을 그렇게 믿고 싶거나 현실을 잘 모르시는거 같습니다...
아마 투표함이 있었다면 가톨릭신자들이 대다수 신자들이
저와 같은경험을 했을겁니다.
여기 유트브에 가톨릭을 까는 목회자
영상이 일부입니까?? 일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데요????
하지만 신부님이 개신교를 이단이라
이야기 하는 영상은 단한건도 없뿐만
아니라 구경도 못했습니다...
제가 어처구니 없었던거는 여기 마태오형제님이 올려주신 영상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된다고 목회자들이 와서 이야기 하는지...
3일도 안된 영상에 목회자라고 말하고 이야기 하시는분이 너무 많네요???
가톨릭까는 영상에 목회자님이 이건
아니라고 댓글 남긴수가 지금 남긴 목회자 숫자보다 많은곳이 있다면
좌표를 알려주세요... 수많은 채널을
뒤져봤는데 못봐서 그렇습니다..
그런곳이 존재 한다면 정말 저의 무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행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믿음의 결과물, 실체를 알수 없는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도, 행위를 너무 강조하는 것도 모두 같음.
행위는 믿음의 결과물이고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같이 하나의 동시에 존재하는 양면일 뿐.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행위이지만 행위가 있다고 반드시 믿음이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마치 사랑없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수 있듯...
1. 오직 믿음뿐만이 아니라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이 모든게 문제 아니겠는지요.. !
2. 많은 보수 개신교인이 목사님의 말씀에 반기를 드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한 말씀을 전하는 분에게 반기를 드는 것으로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직 목사를 첨가 해야겠군요....이러니 교단이 수십 수백개 ~~~~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은 없긴 하니까요. 다만 그게 성인공경을 공격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리고 오직 성경은 문제가 상당히 많은게 맞습니다.
"해당 영상에서 개신교의 '오직 믿음'이라는 표현과 번역을 비판하셨지만, 이는 신학적 맥락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오직 믿음(Sola Fide)'은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의 구원론의 핵심이며, 로마서 3장 28절, 에베소서 2장 8-9절 등 성경 말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교리적으로 무조건 맞다고 옹호하고자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구원은 특정 종파나 교회 소속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깨닫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을 단순한 지적 동의로 보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와 전인격적인 의탁을 포함한 깊은 신앙의 행위로 이해합니다.
번역은 각 종파의 신학적 관점을 반영할 뿐, 번역 방식 자체가 신앙의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개신교 신앙을 비판하는 것은 신학적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주장입니다.
종파 간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며, 각자의 신학적 정체성을 비판하기보다, 성경의 본질적인 진리를 함께 탐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공통된 구원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정 댓글 확인 부탁합니다
개신교의 문제는 행위 빠진 믿음만 이야기 하지만, 카톨릭의 문제는 믿음이 없는 행위라서 문제였을 뿐, 성경대로 믿는 자는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행위가 수반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봅니다.
제가 중국어 성경을 보는데, 오직이라는는 말이 없어도 중국 개신교도 오직 믿음을 강조합니다. 번역의 오류가 신학의 오류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만약 개역개정의 번역 오류가 개신교의 신학적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하신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번역 오류가 신학적 오류로 갔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신학적 오류가 번역 오류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카톨릭이 믿음이 없는 행위라고 하심이 매우 편견에 찬 댓글인것을 알려드립니다
ua-cam.com/video/6jSLT3ykElc/v-deo.html
가톨릭의 구원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로 비판 하지마시고 영상을 봐주시길 권고합니다
@@DailyBible 신학적 오류가 번역오류라 하심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주장하시며 오직 카톡릭의 믿음+선행이 맞다고 주장하시는 것이군요.
먼저, 신학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개신교 영어, 중국어 버전 모두가 오직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번역의 오류가 한국어 버전에만 있어서 한국 개신교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번역오류를 통해 개신교의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를 반박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번역오류와 신학사상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이 있던 없던,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단코 선행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3:28: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고정댓글을 봐주세요~
1. 오직 믿음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번역 오류임을 지적합니다.
2. 번역 오류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저는 당연히 오직 믿음을 동의하지 않습니다.
3. 왜인지는 따로 영상이 있으니 봐주십시오
@@DailyBible 네 알겠어요.
노고에 감사합니다.
개신교의 성경 번역의 오류는 참 많습니다.
야고보서간은 아예 빼버렸다가 나중에 끼워넣은 것이고
또 하나의 의도적인 번역은 '목사'입니다.
포이메나스 (ποιμ?να?) 이 단어(명사)의 원형은 포이멘(ποιμ?ν)으로 ‘목자’이며
신약에서 목자라는 말은 26회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포이멘을 ‘목자’로 번역하다가 에페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사’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의도적으로 위작하였습니다. (개신교)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가톨릭)
즉 목사라는 직분을 성경에 기록된 성직이라는 명분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이는 사도들의 안수가 끊어진 자신들의 직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으로
사도들의 안수가 끊어졌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무관하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라고 하셨지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리스도의 명령은 파견받은 사람만이 제대로 진실되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도 사도전승이 아니라고 가톨릭교회는 여깁니다.
헨리8세가 불륜을 저지르면서 왕비와의 이혼을 허락해달라는 요구를 가톨릭교회에서 거부하자
이때부터 가톨릭과의 단절을 선언하면서 주교를 왕이 임명하여 사도들의 안수라는 물리적인 요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렇게 개신교식으로 변형되었습니다.
그리고 1920년 이후 구가톨릭교회의 주교들로부터 거의 모든 성공회 주교들이 안수를 받음으로써
가톨릭에서 문제 삼던 성공회의 물리적 사도전승이 사실상 회복되었지만
가톨릭교회는 정교회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야말로 진정한 종교다원주의로써 인문학적인 것을 대폭수용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성체'에 대한 인식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환을 믿지 않고 그저 그리스도께서 임재한다는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공회에서의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임재일뿐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아니라고 믿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성공회도 축성한 성체를 감실(성막)에 모셔둡니다.
남겨 두는 이유는 성찬례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 즉 병자들이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서
나중에 직접 이를 가져다가 성체를 영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면서 그것을 모셔두고 사람들에게 모시도록 한다는 것은
신앙 공동체가 예배하면서 그리스도를 경험한 증거물로써의 하나의 '상징'이며 '매개물'로 보는 입장인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칼빈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루터는 임재가 아닌 공재를 이야기했습니다. 칼뱅이 이를 임재로 주장했죠.
실천 안하는 믿음이 진짜일까요? 딱 들어도 아니라는게 느껴지네요.
개신교분들이 꼭 이영상을보고 깨닫길 바래요
@@jihyunkim398어떤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는지요
개신교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시는데 성경의 예수님의 말씀은 죽어라 안믿으십니다
@@jihyunkim398 천주교 신자들은 말씀을 온전히 잘 믿고 있으니까 댁이나 잘하세요. 함부로 타 종교 비방질 시비질이나 해대는 댁 같은 인간이야말로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는 자입니다.
저도 궁금해서 주석을 보니 제시해주신 구절에서 δὲ를 오직으로 번역을 했네요. 그리고 성경구절중에 여기만 δὲ를 오직으로 번역한 것은 아니고, 믿음이라는 단어가 없는 문장에서도 δὲ를 오직으로 번역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제가 본 주석은 옥스퍼드 주석이었습니다. 제시하신 구절에 δὲ를 영어로는 번역을 따로 대응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략한 것으로 나오네요.
번역마다 성경 오역부분이 조금씩 다른데, 유난히 특정버젼의 한 성경만 허락하고 다른버젼을 다 악마화하는 개신교 교단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해당 오역을 근거로 억지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래요.
신약에서 성경을 중시하는 부분이 쓰인건 아직 요한계 성경이 집필되기 이전이고 구약만 말한거죠. 구약에서 성경을 일컬을땐 곧 율법이라는 뜻이고요.
성경이 형성되기 전 초기교회의 100~200년 동안 교회전통이 있었죠. 바오로서간에서 '우리의 전통을 굳게 지키라'고 나오고요.
27권을 신약성경으로 취사선택해 확정한것도 예수님이 위임한 교권이라는걸 개신교는 잊고있어요.
제목에 '개신교 신자들 봐달라' 보다는
'개신교의 주장으로 혹시 혼란이 있으신 카톨릭교우분들, 또는 카톨릭과 개신교 둘 중 어디로 입교할지 고민 중인 예비자분들'에게 보시라고 안내해주면 좋을것같아요.
어차피 계도도 안되고 악플만 더 달릴것같아서.
맞는 말씀이신것 같아.. 제목을 살짝 고쳐봤습니다.. 길게 할 수가 없어서 ..ㅠㅠ
신약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죠. "나에게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가는거 아니다"
오직 믿음 X --> 믿음과 실천
오직 성경 X --> 성경과 성전
오직 은총 X --> 은총과 자유의지
두다리로 서야지 한쪽다리만 고집하면 절뚝거리면서 걷습니다.
으뜸계명 = 하느님사랑+이웃사랑
예수님 = 온전한 인간 + 온전한 신
전례목적 = 하느님영광 + 신자들의 성화
(미사 = 하느님영광+우리의구원)
루터의 sola fide는 다른 다섯 개의 sola 중 하나임.
루터가 최초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면서 "only"(allein)라는 단어를 문맥의 의미로 추가했는데, 이는 당시에도 구교의 공격 대상이었음.
이후 sola fide는 구교와 신교 간 교리적 차이의 핵심에 해당함.
(구교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야고보서를 근거로 'fide+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신교를 비판함.)
야고보서는 초대교회 경전화 과정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었음.
저자에 대한 논란, 주로 유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읽혔다는 점,
바울 서신과 다르게 행위를 강조하는 점,
복음에 대한 메시지 부족 등의 이유로 카르타고 공의회 이후 비로소 정경으로 자리 잡음.
루터는 야고보서를 sola christ의 중심 메시지와 일치하지 않는 부차적인 서신으로 간주하고, 신약 성경의 가장 뒤쪽에 배치했음.
독일어 성경 번역 서문에서 야고보서를 덜 중요하다고 언급했으며,
이런 이유로 루터가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제외시키고자 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근거가 없는 주장임.
개인적으로는 구교에서 퍼뜨린 소문으로 보임.
루터의 sola fide는 sola script 관점에서 성경적 일관성과 문맥적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곧 중세 구교의 전승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것임.
따라서 sola fide를 오류라고 하는 것은 '오직 성경'이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임.
즉, 루터는 철저한 sola script 주의자였다는 말임.
그리고 영어 성경 번역본에 "only"가 포함된 성경도 몇 종류 있음.
Good News Translation (GNT), The Living Bible (TLB) 등에 "only"가 포함되어 있음.
결론은, 이 유튜버의 "only" 관련된 비판은 종교개혁 때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떡밥임.
개신교인들!
❤조작된 성경 한번 읽어보세요!
자.
ㆍ영ㆍ힌 합본 성겅
영어로
ㆍ누가복음
ㆍ 1.43 을
읽어 보세요!
(43. But why am I so favored, )
(43.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호의를 받나요,)
이 구절이
❤왜???
ㆍ 삭제가 되었을까요?
영어 번역 안되는
사람은
번역기 라도 돌려 보세요!
그리고
당신들
거짓 목사들 한테 물어보세요!
왜 ???
성경의
이부분이
삭제 되었는지?
왜????
삭제를 시켰는지?
물어 보세요!
sola fide에 대한 구교의 반박은 "fide + 행위"이고,
sola scriture에 대한 반박은 "scripture + 전승"임
하지만 루터의 sola 주장은 인간의 면죄부를 사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와
교황과 "전승"이 성경의 권위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는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본말을 전도시킨 것임
이후 신교와 구교 간 신학적 대립이 심화되었고 종교전쟁과 엄청난 살육이 이어지게 됨
즉, fide인가 행위인가, 하는 교리 논쟁의 실체는
종교 권력의 정치적 투쟁을 대신하는 종교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임
다섯 솔라는 장로교에서 가장 강조되고 활용되는 것으로 알며, 다섯 솔라 자체를 교리로 삼는 것 자체는 성경 외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개신교에서 다섯 솔라를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오직"이라는 한 부분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영상을 만들어야 했던 의도가 궁금할 따름이네요. 댓글에 '지나친 의역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이라고 하셨다는 것을 보았고, 저도 그부분은 이해합니다. 평소에 원문 번역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언급하신 부분을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문맥적 흐름에 따르면 오류라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 듯 합니다. 믿음을 강조한다고 개신교가 대표적으로 야고보서의 말씀(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을 간과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또한 로만카톨릭처럼 모든 이타적 행위를 성경이 말하는 선행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유튜버님께서 많은 다양한 주제로 영상을 올린 것을 훑어 보았지만... 개신교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결정적인 메시지를 영상 제목으로 떡하니 올려놓은 것은 싸움을 붙이겠다는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네요.
제 생각에는 지금 비성경적으로 돌아가는 로만카톨릭의 교리 문제를 성경에 입각하여 정직하게 다루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소위 교황이 사도라고 주장하는 일, 신부만을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래서 예배를 여전히 미사(제사)라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복음 전파 도중에 지나친 토착화로 인해서 우상화 되어가는 문제들(남미나 필리핀 같은 사례), 7성례, 연옥설 등등...
중세 시대에 있었던 연옥설(님은 교부들이 가르쳤던 신앙 전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형벌을 부과하던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지속되어 온 것은 압니다만, 연옥설이 그렇다는 것은 금시초문이군요. 과거 유대교가 바쳤던 위령 기도 관습에서 기원한다는 글을 찾아볼 수 있는데, 유대교 전통을 기독교가 다 이어받아야만 하는가? 유대교 전통이 모두 성경적인 것인가? 까지 거슬러 올라가 대답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연옥설이 불러왔던 면죄부 판매(판매 부흥사들) 문제까지.. 성인 전통과 성물 숭배 사상, 형상을 만들어 놓는 문제, 마리아 성(聖)격화 문제까지...
그리고 성경 번역 문제로 시작된 일이니, 로만카톨릭은 외경을 포함하는 공동번역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정경으로 읽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후대의 '70인역에' 들어 있는 외경들을 포함시켜서 46권으로, 중세시대인 1546년 트랜트 공의회 때 이 외경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러면 아마도 외경을 인용하고 있는 유다서 같은 책을 들먹거리겠지만, 이 역시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수신자가 유대인들이고, 그들에게 익숙한 내용을 언급할 필요를 따라 유대인(교)들에게 익숙한 외경을 인용할 수 있다는 점(짧은 글로 논쟁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올린 (가톨릭 신앙의 방패) 영상들을 모두 봐주시길 간구 합니다. 저는 먈씀을 사랑하기에 이 영상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올린 것입니다.
댓글 하나에 가톨릭 신앙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아주 가득하여 어디부터 답해야 될지 모를 지경입니다~
@@DailyBible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개신교인들을 위해서라면 영상을 이렇게 찍었어야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영상을 볼 때마다 조회수를 올리고 싶어서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올린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분쟁을 만드는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 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행위의 중요함을 빼지 않습니다
영상은 마치 말씀을 사랑하는 개신교인들은 말씀만 읽어서 행위는 없고 오직 믿음만 강조하며 살아가기에 문제가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사랑하면 행위의 중요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형제님이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모든 개신교 인들을 분별하지 않고 다 같다라고 여기셔서 이러한 영상을 올리셨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모욕을 간접적으로 하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이러한 의도가 없으셨다면 개신교인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이건 교만이 아닐까 합니다
영상의 주제는 개신교의 구원관이나 신앙 방식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되는 성경의 번역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이 문제는 개신교 내에서도 이미 논의되고 있는 주제로, 제가 새롭게 발견한 지적은 아닙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있는데도 대화가 자주 엇갈리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어서 개신교 성경 번역본을 살펴보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어 번역에서 발생한 차이점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구원관 대화가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되었고, 이 문제를 최대한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직"이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사용된 부분은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간의 대화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또한 "오직 믿음"을 과하게 집착하는 이단을 초래했습니다. 오해와 단절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의 구원관은 (흔히 하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이러한 번역 문제로 인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이 영상에 대한 댓글에서 번역 문제를 지적한 저의 의도가 곡해되고, 제가 "오직 믿음"을 공격하거나 개신교의 신앙을 비판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저의 표현의 문제도 있고 능력탓이기에 그 점은 사과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개신교 내에서도 이미 논의되고 있는 번역상의 문제를 표면위로 떠올린 것일 뿐입니다. 오래된 논의지만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개신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성경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이해합니다. 가톨릭은 보통 분위기가 점잖게 가만히 있는게 낫다라는 쪽이고 그러다보니 늘 수비하는 입장입니다. 저 또한 가톨릭 신앙에 대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비판과 비방을 상대합니다. 제가 당하는 비난과 비방에 수위에 비하면 제가 지적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신학 논쟁이나 교리 논쟁이 아니라, 신자분들에게 한국 성경 번역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인지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댓글에서 다른 개신교분들께 많은 공감도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개역개정 이후의 성경 번역본에서 일부 수정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적을 과도하게 방어하거나 지나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대화의 장을 좁히고 서로의 이해를 막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더 많은 대화와 논의를 통해 신앙과 성경에 대한 이해를 함께 넓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ㅋㅋㅋㅋ 무지하신게 티가 납니다... 이야.. 역사를 왜곡하시네요?? 가장 큰 무지가 원래
397, 419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73권이 정경으로 재확정
되었습니다. 못믿으시면 ㅋㅋㅋㅋ
네이버에 카르타고 공의회 치시고
위키백과 클릭하신후 밑에 쭉 내리면
성경목록 결정 클릭하시면 419년 공의회에서 재확인된 정경목록을 아예 교회법으로 못박아 버립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원래 73권이 1500년간 믿어 왔다가 루터가 66권으로 줄인게 역사적으로 맞는것이죠.. ㅋㅋㅋ
그리고 유다서 뿐만 이겠습니까???
예수에게 시비 털려고 사두가이가
질문한 구절 내용이 토빗기 내용구절
입니다.. 또한 요한이 보고 들은걸
기록한 요한계시록에 토빗기 구절 내용이 그대로 묘사되어 나옵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건데요??ㅋㅋㅋㅋ 아 😂😂 개콘 저리가라네요
성경 66권으로 줄인건 큰 실수입니다
저도 잘 몰랐던 부분을 콕 찝어주시고 논리있게 설명해주시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카톨릭을 알아가면 알아 갈 수록 신비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오류 없는 성경에 심심해서 오류를 집어넣었군요 ㅋㅋㅋㅋㅋ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너무 충격적이네요.. “오직”이 원문에 없는데 끼워넣은 셈이 되네요..
선을 행함 즉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그것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면 즉 율법안에서 온전하게 될 수 있다면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하느님을 구하시는 기도를 항상 하십시오 우리의 의지로만 할 수 없는 것을 보혜사 성령님께서 온전히 이루어 가게 하실겁니다 점진적으로
영상 시청 후 궁금한 점이 있어 댓글 남깁니다. 오직이라는 단어가 개신교 성경에 등장하며 오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비교하신 KJV (King James Version)와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성경은 모두 개신교 성경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한국 개신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개신교 전체의 문제인지 모호합니다. 개신교 자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지만, 한국 개신교만 오류를 범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한국 개신교의 문제입니다
루터도 비슷하게 독일어 성경에 오직을 추가했었습니다 그러나 고쳐졌습니다
한국 개신교 성경은 고치지 않았습니다
@@DailyBible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저는 무교인데 요즘 기독교에 대해 찾아보다 우연히 이 채널을 봤는데 아주 이로운 자료가 많네요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직이란 단어가 한국어 번역에 첨가되었던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아마 솔라 피데의 강조로 나온, 오역보다는 번역의 영역인것 같습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믿음을 법, 율법, 행위와 대비하기 위해서요. 전 카톨릭에서 강조하는 '행위'나 개신교에서 말하는 '행위'없는 믿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값이 완벽하고 그 이상의 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거지요. 행위도 해야만 한다는것보다는 진심으로 믿는자들에게 필수불가결적으로 나타내지는 결과가 행위이다라고 보는 견해의 차이인것같습니다.
구원론은 오히려 서로 이해가능한 부분이 많지요 그런데 번역에 신학이 너무 의도적으로 드러나는 구절이 좀 지나치다 생각듭니다. 개신교 영문 성경들은 이렇게 번역치 않습니다...ㅠ
@@DailyBible 그러게요 주신 niv랑 kjv만 봐도 그런 특정단어는 없네요. 좋은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보니 개신교 성경 중에도 우리말, 바른, 쉬운 성경에는 "오직"이 없네요.
왜냐면 그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오호 지나가는 개신교
새로운것 감사해요.
야고보서와 로마서가 너무 충돌이많았는데 유익합니다
요즘 저도 중요하게 보는말씀은 히브리어 헬라어로봐요. 번역당시정서와 단어가 표현이 어색한것들이 있는것같아서요.
지나치게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번역 문제가 큽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성서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특히 믿음을 강조한 것은 유다인들와 지나친 율법 정신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강조했지만 로마서를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율법을 준행해야 함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받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알은 사람이라도 율법이 명하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도 할례 받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보아주실 것이 아닙니까?"(로마 2, 25-26)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로마 3, 33)
믿음이 중요해요! 천주교에서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성서를 바로 읽어봅시다. 부분적인 성서 구절로 전체의 성서 뜻인 양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선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했듯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이 실천이 없는 믿음은 분명히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로마 8,13)'여러분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행위와 욕정과 못된 욕심과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탐욕 따위의 욕망은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골로 3, 5-6)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 24)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루가 13, 3)'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9-31)'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거룩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 14)'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1요한 5, 3)보십시오. 사랑의 계명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마태 19, 5-6)
그리고 ♥'십일조'♥는 구원과는 별로 관계없는 것입니다.
훌륭한 믿음은 있는데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는 교리에는 모순이 있지 않습니까?
이건 중요한 '구원'의 문제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구원의 진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낙태를 해도 괜찮고, 강간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살인을 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진정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까?
말이 나왔으니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면 교회에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을 키우면 됩니다.
구원의 기본 조건이 '믿음'만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믿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의 목적으로 세우셨고 목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신권(神權)을 주셔서 성사를집행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귀한 하느님의 제사(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의 몸인 성체(聖體)를 모셔서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개신교처럼 순수히 예배만 바치는 교회와 성체와 제사인 미사 그리고 일곱 가지 성사를 집행하는
천주교와는 근본적으로 교회관이 다릅니다. 그래서 진정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천주교가 주는 구원의 길,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정통 신앙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 구원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개신교 형제들은 자기들의 편견만을 내세우는데 진정 구원이 무엇이며 그 구원을 전해 주는 교회의 사명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마태오형제님의 간극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에 참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개신교인으로서 조금 아쉬운 점은, 사실 ‘오직 믿음’만으로 개신교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형제님이 설명하신대로 ‘오직 믿음’만 보게 된다면 잘못된 성경 해석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많은 개신교인들이 오직 믿음을 회심으로부터의 회피수단으로 잘못 사용하며 참된 성화에서 멀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바라볼 때에, 개신교와 천주교, 우리가 나뉜 사건 가운데 분명히 인간의 연약함도 포함되며 그 위에서는 주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으실 거라 믿어요. 개신교는 많은 단점이 있지만 동시에 개신교도 더 주님께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오형제님의 영상을 통해 평소 천주교에 갖고 있던 오해들이 풀리고, 천주교가 가진 장점들과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천주교회를 알게 됩니다. 계속해서 좋은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Ps. ‘오직 믿음’이 신앙의 출발선이 되어 행함도 예수와 같이 살아가려 노력하는 복된 개신교인 지체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ㅎㅎ
저도 조심스럽게 저의 의견을 피력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는 '오직 믿음'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성경'을 주장한다는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개신교식으로 변형시켜놓고 '오직 성경'이라 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만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증언할 것입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했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계시하신 그리스도와
다양한 민족과 문화속에서 만들어진 언어들 곧 번역본으로 접한 그리스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왜곡된 주님을 고백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어 선포되고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실행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믿음은 기본바탕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 믿음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교회의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마태 7,19)
예수님께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분명히 개신교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톨릭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예 한 몸을 이룹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체험을 가톨릭교회는 매일 체험합니다.
매일의 미사안에서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것 만큼 큰 기적은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주시는 교회가 가톨릭교회입니다...
개신교에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지체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천주교 개신교 할것없이 우리 모두 예수님의 지체로서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P.S. 문제는..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온갖 악행을 저지를때죠..😢
감사하며 사랑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개신교에서도 야고보서를 강조 많이 합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