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축커룸입니다. 영상에서 잘못된 내용 수정하려고합니다~ 10:42 성남FC는 '연고이전' 이 아닌 성남일화천마를 성남시가 통일교 재단으로부터 '인수'하여 재창단한 '시민구단'입니다 :) 낭E님께서 제보해주신 내용이며 올바른 정보 전달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남깁니다. 혹시 다른 수정해야 될 내용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로 달아주세요~~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종환 감독의 축구에 매료된 것이 1987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끌때였습니다. 지도방식 자체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축구계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력으로 승부한 멋진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으로 월드컵 본선 감독을 한번도 못한 것이 한으로 남으실 듯합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전설적 만화(+영화)가 있었죠.... 난 박감독님과 외인구단의 감독이 항상 오버랩됩니다.... 박찬호 박세리가 어렵던 시절 국민들 시름을 달래주었다면 그 이전 시대에는 박종환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감독님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말년에 전재산 사기당하고 힘들게 지내시다 가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고 이주일(정주일)의 친구이자 축구를 함께한 절친 국대 감독시절..... 협회 뒤통수에 제대로 나가리 된 케이스 협회는 예전부터 선수들을 이용해 태업을 시점하거나 항명사건을 만들고 이를 빌미로 감독들을 교체했다 그 중심에 있던 선수중엔 홍명x 황선x 최영x 등 많은 유명 선수가 있다 후에도 여러 감독들 교체하는 일에 큰 역활을 하고 감독이 되고 협회에 들어간다 이렇게 보듯 예전부터 악순환은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다 재벌이 협회를 장악하고 재벌의 하수인 노릇만 하다가 나가리 되는 방식
물론 나는 박종환스타일이 지금의 시대에는 안맞다고 생각함... 그리고 저 시절의 박종환감독을 이해도함... 60~80년대 저때는 세계의 분위기가 냉전시대였고 미국vs소련의 첨예한 대립 경쟁구도였던 살벌했던 시대임... 매일매일이 긴장이었고 맨날신문에는 자유진영vs공산진영이 서로 핵전쟁을 하니 마니,,, 죽이니 살리니,,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던 시대임... 실질적인 물리적 생존의 위협이 있던 시대다. 정신,신체가 나약하거나 남성성이 떨어지면 매우 지탄받고 배척되던 시대이지...왜냐면 그런 애들은 국가발전과 국가생존력에 방해만 되니까... 시대의 명확한 분위기와 흐름이라는건 거스를수없다... 결국 강압적인 폭력이나 그런게 조금은 발생할수도있다...그랬던 시대다. 그 시대를,,,, 지금시대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는것 역시 오만이라고 생각함.... 내가 볼땐 박종환 같은 사람도 필요했다고 본다. 그 시대때는 어쩔수없었다고 본다...또한 ,,그러면서 한국축구도 데이터가 쌓이고 발전해 나간거고,,, 다 명과암이 있다.. 그리고 박종환감독의 폭력만 빼고보면 박종환의 축구의 수준자체는 정말 일류임... 간결한 패스워크과 압박을 중시하는 체력축구를 한다. 축구에서 창의력과 기술로 공간을 열고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체력이 반드시 필수임... 체력적으로 우위가있으면 상대팀이 먼저지치기에 그 지치는 부분에서도 상대실수가 반드시 나와서 공간이 난다...그럼 체력으로 공간을 만든셈이다. 게다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재빨리 안치지고 침투를 들어가는건 체력의 영역임... 그리고 수비시에 우리의 공간이 뚤렸을때 빨리 쫒아가야하는데 그 역시 체력의 영역임... 축구 안해본 사람들이 자꾸 창의력,기술좋은선수만 수준높다고하고,,, 자꾸 헛소리하는데 축구는 사실 아주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스포츠다. 브라질 일류 선수들은 기술도 좋지만 스태미나도 아주 좋음...
어디서나 그렇죠. 억지로 따라 오는 사람과 자발적으로 해나가는 사람. 후자가 많으면 다행이지만 전자도 이끌고 가야 하는 경우가 문제죠. 이에 대한 해결방법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겠죠. 솔직히, 최근 일본축구 보면 개인이 아닌 철저히 패스축구로 성장했더군요. 돌파와 골결정력은 낙제점이지만, 티키타카식 패스에 의한 빌드업 축구. 공격할 때 보면 라인이 같이 올라가면서 공격을 하니 상대 수비보다 더 많이 들어가 있는 공격수들, 수비할 때도 라인이 같이 따라 내려오면서 수비를 하니 수비라인에 바글바글.. 그야말로 빌드업에 의한 토탈축구. 어찌보면 박종환이 꿈꿨던 축구가 이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전반에 2대1로 이기고 있었으나, 박감독님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스타일로 하프타임에 선수들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독려했는데 황선홍등 선수놈들이 후반전에 들어가 태업을 벌여 다섯골을 먹고 만 사건이었죠.... 김병지도 골 막을 생각도 안하고.... 곧 월드컵 감독을 앞둔 시점에 가슴아픈 사건으로 남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되겠지만 80~90년대는 저런 훈련 방식을 감독 생각대로 할 수 있었고 실제로 성적도 냈으니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그렇다고 박종환이 명감독이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업적을 낸 역사에 남는 감독이라는 건 인정한다! 특히 무명 선수를 발굴해 명 선수로 만든 것과 83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의 4위는 정말 박종환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실적!
84년도로 기억합니다. 중1때였죠. 진짜 잘 들리지도 않는 벨소리만 나오던 스피커에서 알아듣기도 힘든 목소리로. 청소년 축구 중계를 들었습니다. 그때 그런식으로 축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운동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그 중 일부는 친구도움 받아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감독들만 부족한게 아니라 선수들의 의식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강도높은 훈련을 하면, 도망가기 일 수고, 전술적인 이해력이 부족해서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죠.. 훈련으로 몸에 몸에 익히는 방법이 최선이었던거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설명을 잘 해주고 이해를 구해서 동기를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서 말이 덜 나오는거라고 봅니다. 선수수준이 올라간게 더 크기도 하고요.
박종환은 한국 축구사에서 철저히 변방으로 대우받았음. 지금도 문제지만 축협의 라인(연고대)에 없었던 감독으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가 없었다면 국대 감독을 절대로 맡을 수 없었음. 이는 차범근도 마찬가지. 프로같지도 않은 것들이 프로럽시고 개ㅈㄹ 떨던 것들이 경기 전날 술 처먹고 뛰어서 6대2로 졌음. 이때 나온 말도 박종환을 국대감독애서 쫓아내려는 축협과 축협의 지시를 받은 선수들이 합작해서 그랬다는 말이 있을 정도. 이때 축협의 분위기를 알고 있던 차범근이 박종환을 위로 했고, 차범근이 쫓겨났을 때 박종환도 차범근을 위로했음. 박종환의 벌떼축구는 90년대 세계축구의 트랜드가 되는 압박축구 보다 빨리 한국축구에서 박종환에 의해 활용된 탁월한 전술이었음. 만약 축협이 라인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박종환을 대표팀 감독으로서 대우하고, 지원했다면 박종환은 히딩크 보다 앞서서 월드컵 본선에 올릴 수 있었을 것.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뛰어났지만 고질병인 라인에 의해 희생된 안타까운 감독.
박종환 감독은 시대를 잘 만나 성공한 면도 있지. 80년초 한국축구는 역대 최악의 암흑기였음..차범근 등 70년대 국대 주축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국대에 차출못하게 됨으로 한국축구는 아시아 동네북 수준 역대 최약체 수준이었음. 그때 혜성처럼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 4위 성적을 이루고..선수들 개개인 능력보다 강한 압박과 조직력을 내세운 박종환 축구는 당시대 한국축구의 솔루션이었음.. 물론 이러한 축구는 상대적으로 안좋은 선수들로 좋은 성적을 내는 효과는 있었지만 잘하는 선수들 데리고 강팀으로 운영하는데에는 맞지 않았으니.. 여러 트러블들이 생기게 된 거.
언젠가 축구 경기 중 박종환 감독이 자기 선수들에게 쌍욕을 하는 장면이 마이크에 고스란히 담겼고 중계진도 머슥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열정이 강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해도 그 선수들이 느꼈을 인격적 모멸감을 생각하면 좋게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업적에는 인정하지만 그 뒤에 있었을 선수들의 희생에는 불편한 마음만 듭니다.
강압적인 지도방식으로 업적은 이뤘을지모르나 그밑에서 많은 선수들이 희생되었고, 또 폭력에위한 트라우마로 축구계를 떠났습니다. 당시는체육계뿐만 아니라 교육,예술등 온분야에 폭력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시기였으나 특히 체육계는 심하였고 또 사회분위기도 묵인하는가운데 못견디고 사라져간 좋은 선수들도 많았습니다...지금 으로선 상상할수없지만 그런 흑역사가 지금의 한국 축구,스포츠계의 밑거름이 됬다는게 착찹할뿐입니다...
항상 락커룸에서 전반전에 자기(박종환) 맘에 안든 플레이어는 귀빵을 해주셨던 때찌축구의 근본이셨죠. 전반전에 골을 넣고도 일렬로 선채 귀빵을 맞은 선수는 알지도 못한채 무조건 죄송합니다. 연발하고....만에 하나 실점을 유발한 수비선수들은 하드한 복부 펀칭과 부모님 안부의 컨버세이션 쌍욕을 버무리며 선수들을 발로 잘근잘근 밟았죠. 채력적으로 쉬어가며 감독과 선수들이 의논을 해야할 락커룸에서 일렬로 선채 힘들지만 숨소리도 안내며 무조건 쳐맞아야만 했던...그저 선수들이 정말 맞기 싫어서...부모님 욕 듣기 싫어서 이기는 축구를 해야했던 시절(83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은 그때가 유일했고 끝이었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축커룸입니다. 영상에서 잘못된 내용 수정하려고합니다~
10:42 성남FC는 '연고이전' 이 아닌 성남일화천마를 성남시가 통일교 재단으로부터 '인수'하여 재창단한 '시민구단'입니다 :)
낭E님께서 제보해주신 내용이며 올바른 정보 전달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남깁니다.
혹시 다른 수정해야 될 내용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로 달아주세요~~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ㅡㅡ음 ㅡ저는 ㅡ그냥 통일교 가계속 지배했는줄알았었는데ㅡ일화 글자가들어갈때는말예요ㅡ
고 박종환감님 ..우리는 불근 악마.. 한 골 먹으면 수비 강화보다 ..공격..
아닌 총~~ 공격하라.. 1골 먹으면 2골을 넣으라..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 합니다.
박종환은 명감독이다. 현대축구의 모든것을 그는 이미 80년대부터 시작했다. 시대를 앞섰던 감독이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노년에 고생 많으셨던걸로 압니다.
한국 축구에
히딩크 이전
박종환 감독이 있었다!
긴말 하지말고....열받는다...대한민국의 최고의 명장입니다!!
사실상 지금 국대에 필요한 감독임 잘갖춰진 개인기량에 박종환의 선수장악력과 체력중시전술 유망주및 무명선수 발굴등 딱 지금 한국에 필요한 인물
2002월드컵때 박종환 감독님께 기회드렸으면 4위 그 이상 가능했음
박종환은 대한민국 토종 명 감독이다
권투로 치면 김태식
농구로 치면 허재
축구에선 박종환.
불같은 파이터,
성질 못죽이는 열혈남,
좌고우면 안하는 오로지 직진 독사.
선수들은 고통스러웠고
국민들은 박수를 치던 남자.
성질과 키리스마는
대단했음
프로감독시절 용병도 대가리박아
시켰을 정도니 ㄷ ㄷ
명장은 명장인데, 80년대 아주 좋게 봐도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통하지 않을 지도자... 그냥 예전 명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것저것 따지는것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박종환 만세~~~
지금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다
요즘 젊은넘들 개념 싹수 없고 빠진놈들 많아서 ㅊ맞고 해야 정신차리고 잘하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홍명보가 박종환 감독에게 반기 들고 비참하게 살아가셨다고 정신과 유투버가 이야기 해줘서 찾와봄
참 한결같은 감독님이군요
지금도 어흥~ 하실것같습니다ㅎㅎㅎ
ㄴㄴ 이젠 80대 초로의 노인인데, 그럴 리가.
ㅋㅋㅋ
빠따박은 오늘자로 갔읍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도, 구설수도 많으셨던 감독. 박종환 감독님과 친하셨던분이 2002년 여름에 돌아가셨던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님이셨죠. 박감독님의 국대감독시절 경기장서 태극기들고 열렬히 응원하셨던 이주일 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축구계의 김성근인가
맞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을 존경합니다...
줘패면서 자신의 경제적 자유를 이루며 배불렸으면 욕 하겠는데 그러시진 않으신거로 압니다
지금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될꺼같아요 6.25 정도의 어려움 겪어봐야 이분에 대해 논할수 있을꺼같습니다
진짜 오래도하십니다
30년후 독일에서 위르겐 클롭이란 감독이 박종환 감독의 축구를 게겐프레싱이라는 전술로 소개하며 세계적 명장으로 등장하는데...
얼마나뚜가팻으면, , 저시절 맞는걸 당연히 생각하는게 맞긴하지만
박종환 감독의 축구에 매료된 것이 1987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끌때였습니다. 지도방식 자체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축구계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력으로 승부한 멋진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으로 월드컵 본선 감독을 한번도 못한 것이 한으로 남으실 듯합니다.
구설수 많았던 빠따감독님...
현시대와는 맞지 않지만
과거엔 열정과 능력이 대단해서
업적이 많았던 감독이죠
아직도 축구계에 몸담고 있다니 대단하네요
박 감독님이 축구에 대한 열정하나만큼은 정말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참아쉬운건 그분이 올림픽 월드컵 한번만
지도해봤으면하는바람이 있었습니다
정신상태가 흐리멍텅한 한국 축구에 딱 어울리는 최고의 명장임 박종환 감독이 그립다
너무 빨리 태어난 천재였는 듯..
7080시대엔 스포츠계 뿐 아니라 학교 군대 심지어 직장에서도 폭력과 욕이 난무 했었고 또 그걸 당연시 했다.
제2의 박종환은 아직 없다 한국 축구 발전 일등공신 박종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전설적 만화(+영화)가 있었죠.... 난 박감독님과 외인구단의 감독이 항상 오버랩됩니다....
박찬호 박세리가 어렵던 시절 국민들 시름을 달래주었다면 그 이전 시대에는 박종환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감독님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말년에 전재산 사기당하고 힘들게 지내시다 가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80년 이전에 태어난 올드팬들에게 박종환은
영웅이셨지....불같은 성미 때문에 월드컵의 뜻을 이루지 못한게 한으로 남지만...
프로감독으로써 업적은 영원히 남을것이다.
83년 멕시코신화는 당시 온 국민들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었지 😂 ㅎㅎ
강압적인 방식은 좀 그렇긴 하지만 한국축구 지금 까지의 업적은 이분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됩니다.
지대하였죠. 영화 휘플레쉬의 대머리교수를 연상케 함. 인간성은 정말 아니지만 정말 그 분야의 발전을 위해 모든 걸 거는 사람같았음.
운동장에서 선수들 쌰대기때리고 이단옆차기했단 그감독아냐?
고 이주일(정주일)의 친구이자
축구를 함께한 절친
국대 감독시절.....
협회 뒤통수에 제대로 나가리 된 케이스
협회는 예전부터 선수들을 이용해 태업을 시점하거나 항명사건을 만들고 이를 빌미로 감독들을 교체했다
그 중심에 있던 선수중엔 홍명x 황선x 최영x
등 많은 유명 선수가 있다
후에도 여러 감독들 교체하는 일에 큰 역활을 하고 감독이 되고 협회에 들어간다
이렇게 보듯 예전부터 악순환은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다
재벌이 협회를 장악하고 재벌의 하수인 노릇만 하다가 나가리 되는 방식
아 ..그래서 홍명보가 그런 비과학 인터뷰를 한거군요..그리고 지가 협회일 하며 지가 감독됨.
홍명보.황선홍.최용수?
박종환감독님 대단하셨죠
1983년도에 멕시코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 대회때 아버지가 축구 좋아하셔서 새벽에 축구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참 재미있었던거 같습니다.
많이 늙으셨네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제발지금의잦데로 옛날을평가하지맙시다
그분도지금지도자면 그러지않았을겁니다
누가뭐래도 그분은한국 축구의한획을그으신분
아시안컵 2-6 참사는 당시 선수들이 박종환 감독에 대한 태업 항명이는 썰이 있습니다
캬 대부 박종환ㅋㅋ 인트로 쥐기네요ㅋㅋㅋ
왠지 잘어울려서요~ㅎㅎ
쌍욕하고 빠따치는걸 결과가 있었다고 옹호하다니…
야구의 세이콘도 마찬가지임 ㅋㅋㅋ OB 박철순부터 한화 시절까지 선수들 혹사시키고 크보를 망친 장본인 중 하나인데 SK 왕조 이끌고 최근 최강야구 때문에 이미지 존나 좋아짐
그 시절엔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무식하고.. 폭력적이고.. 학교고, 군대고, 회사고 간에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에게 행하던 폭행, 막말이 당연시 되던 사회...
빌런 맞음 폭행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안된다.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국가대표 얼굴에 싸다귀 날리던 감독!!
이주일 씨와 친구. 멕시코 청소년 선수권 4강 귀국 후 이주일이 박종환 에게 스텔라 선물
물론 나는 박종환스타일이 지금의 시대에는 안맞다고 생각함...
그리고 저 시절의 박종환감독을 이해도함...
60~80년대 저때는 세계의 분위기가 냉전시대였고 미국vs소련의 첨예한 대립 경쟁구도였던 살벌했던 시대임...
매일매일이 긴장이었고 맨날신문에는 자유진영vs공산진영이 서로 핵전쟁을 하니 마니,,, 죽이니 살리니,,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던 시대임...
실질적인 물리적 생존의 위협이 있던 시대다.
정신,신체가 나약하거나 남성성이 떨어지면 매우 지탄받고 배척되던 시대이지...왜냐면 그런 애들은 국가발전과 국가생존력에 방해만 되니까...
시대의 명확한 분위기와 흐름이라는건 거스를수없다...
결국 강압적인 폭력이나 그런게 조금은 발생할수도있다...그랬던 시대다.
그 시대를,,,, 지금시대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는것 역시 오만이라고 생각함....
내가 볼땐 박종환 같은 사람도 필요했다고 본다. 그 시대때는 어쩔수없었다고 본다...또한 ,,그러면서 한국축구도 데이터가 쌓이고 발전해 나간거고,,,
다 명과암이 있다..
그리고 박종환감독의 폭력만 빼고보면 박종환의 축구의 수준자체는 정말 일류임...
간결한 패스워크과 압박을 중시하는 체력축구를 한다.
축구에서 창의력과 기술로 공간을 열고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체력이 반드시 필수임...
체력적으로 우위가있으면 상대팀이 먼저지치기에 그 지치는 부분에서도 상대실수가 반드시 나와서 공간이 난다...그럼 체력으로 공간을 만든셈이다.
게다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재빨리 안치지고 침투를 들어가는건 체력의 영역임...
그리고 수비시에 우리의 공간이 뚤렸을때 빨리 쫒아가야하는데 그 역시 체력의 영역임...
축구 안해본 사람들이 자꾸 창의력,기술좋은선수만 수준높다고하고,,, 자꾸 헛소리하는데 축구는 사실 아주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스포츠다.
브라질 일류 선수들은 기술도 좋지만 스태미나도 아주 좋음...
어디서나 그렇죠. 억지로 따라 오는 사람과 자발적으로 해나가는 사람. 후자가 많으면 다행이지만 전자도 이끌고 가야 하는 경우가 문제죠. 이에 대한 해결방법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겠죠. 솔직히, 최근 일본축구 보면 개인이 아닌 철저히 패스축구로 성장했더군요. 돌파와 골결정력은 낙제점이지만, 티키타카식 패스에 의한 빌드업 축구. 공격할 때 보면 라인이 같이 올라가면서 공격을 하니 상대 수비보다 더 많이 들어가 있는 공격수들, 수비할 때도 라인이 같이 따라 내려오면서 수비를 하니 수비라인에 바글바글.. 그야말로 빌드업에 의한 토탈축구. 어찌보면 박종환이 꿈꿨던 축구가 이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전략이없는 무능한 클린스만 보단 박종환이 훨 훌륭하지😊
명장 박종환 과 히딩크
아시안컵 참패가 커리어에 너무 치명적이었음.
어찌보면 지금기업은행팀
전반에 2대1로 이기고 있었으나, 박감독님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스타일로 하프타임에 선수들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독려했는데 황선홍등 선수놈들이 후반전에 들어가 태업을 벌여 다섯골을 먹고 만 사건이었죠.... 김병지도 골 막을 생각도 안하고.... 곧 월드컵 감독을 앞둔 시점에 가슴아픈 사건으로 남습니다....
박종환 감독의 한국축구사에 남긴 업적은 위대하지..... 고로 영상올린 너는 ㅁㅈㅎ
지금은 말도 안되겠지만 80~90년대는 저런 훈련 방식을 감독 생각대로 할 수 있었고 실제로 성적도 냈으니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그렇다고 박종환이 명감독이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업적을 낸 역사에 남는 감독이라는 건 인정한다! 특히 무명 선수를 발굴해 명 선수로 만든 것과 83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의 4위는 정말 박종환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실적!
명감독 이죠 세계 랭킹 137위엿을때 4강 이루어낸건 세계역사에없습니다.
비주류 조선대의 김주성을 발탁하여 88올림픽팀에 합류시키고 결국 국대로 이끈것도 박종환이었음.
지랄 20세이하월드컵준우승이 더대단한것
84년도로 기억합니다. 중1때였죠. 진짜 잘 들리지도 않는 벨소리만 나오던 스피커에서 알아듣기도 힘든 목소리로. 청소년 축구 중계를 들었습니다. 그때 그런식으로 축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운동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그 중 일부는 친구도움 받아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감독들만 부족한게 아니라 선수들의 의식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강도높은 훈련을 하면, 도망가기 일 수고, 전술적인 이해력이 부족해서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죠.. 훈련으로 몸에 몸에 익히는 방법이 최선이었던거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설명을 잘 해주고 이해를 구해서 동기를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서 말이 덜 나오는거라고 봅니다. 선수수준이 올라간게 더 크기도 하고요.
84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때 4강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단 한번의 파울을 전경기 동안 범한 적이 없었고 결국 대회 사상 페어플레이상을 처음으로 수상하게 된 사연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싶다.
83년 임.
이라는 독특한 전법을 완성하여 한국형 축구를 만들어낸 감독이었습니다. 한국의 역대 축구감독 중 선수빨이 아닌 감독의 전술로 성적을 낸 유일한 지도자였습니다.
육전법은 니미 빠따가 곧 전술이여.
6전법이 뭔가용?
@@피부는민둥산소고기육전 모르심?
손버릇이 안좋아서 그렇지 체력을 바탕으로한 전략으로 승부보는 감독님이네요.
그당시 한국 기술 축구 안될때입니다
롯데자이언츠에 제일 필요한 감독...
롯데는 임권택감독~~~~
그 시대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체벌을하고 있었든 시절이며
무엇보다 그는 학맥 인맥이 없고
또한 곧은 성격이라 장점보다 단점을 부각시켜 밀려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 ~😢
노년에 지인에게 제자에게 배신당하여 불쌍하게 돌아가셔 인생 무상을~😢
선수에게 빠따로 폭행이나 해대던 자기 업보지 뭐 ㅋㅋㅋ
운동장에서 국대 선수 싸대기 갈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몇년전이 저희 팀 앞 70대 팀에서 뛰는거 몇번 봤는데
승질은 여전하시더라구요...
70대 노인들 사이에서도 험한 말 작렬 ㅋㅋㅋㅋ
ㅋㅋㅋㅋ 싸대기 얼마나갈겼길래
83년 청소년4강.
캬~~
그때 다들 엉엉울었죠 ㅋㅋ 😂
선수들 특히 프로선수들에게 손찌검 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 안되죠? TV 카메라 켜져 있는데고 주먹으로 프로 유명한 선수 머리 꿀밤질 한거는 너무 유명하죠
한국의 토탈축구, 히딩크가 말한 체력. 나는 선구자라 생각한다
그래도 맥시코 4강 신화가 아니었으면 한국축구는 없었다
알려진 선수가 아닌 무명선수를 뽑아 혹독한 훈련으로 될성싶은 떡잎으로 만든 화수분 감독이었음
영상 퀄리티랑 내용이 정말 좋네요. 우연히 보게된 후 구독하고 지난 영상들도 다 찾아보고 있습니다. 구독자 십만은 넘는 채널인줄 알았네요.
너무나 기분 좋은 선플입니다~ 앞으로 더욱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일화가 우승한건 솔직히 박종환보다는
샤리체프 덕분이었지
이후로 모든 프로팀들이 용병 골키퍼를 들여왔다는.....ㅎㅎ
때려 조지면 4강이 보인다... 종환이형 그립네요..^^
빠따훈련 그땐그랬지
박종환은 한국 축구사에서 철저히 변방으로 대우받았음. 지금도 문제지만 축협의 라인(연고대)에 없었던 감독으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가 없었다면 국대 감독을 절대로 맡을 수 없었음. 이는 차범근도 마찬가지. 프로같지도 않은 것들이 프로럽시고 개ㅈㄹ 떨던 것들이 경기 전날 술 처먹고 뛰어서 6대2로 졌음. 이때 나온 말도 박종환을 국대감독애서 쫓아내려는 축협과 축협의 지시를 받은 선수들이 합작해서 그랬다는 말이 있을 정도. 이때 축협의 분위기를 알고 있던 차범근이 박종환을 위로 했고, 차범근이 쫓겨났을 때 박종환도 차범근을 위로했음. 박종환의 벌떼축구는 90년대 세계축구의 트랜드가 되는 압박축구 보다 빨리 한국축구에서 박종환에 의해 활용된 탁월한 전술이었음. 만약 축협이 라인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박종환을 대표팀 감독으로서 대우하고, 지원했다면 박종환은 히딩크 보다 앞서서 월드컵 본선에 올릴 수 있었을 것.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뛰어났지만 고질병인 라인에 의해 희생된 안타까운 감독.
축구에 박종환, 야구에 김응룡...빠따 지도자들의 시대가 있었다.
저희 시대때 박종환 감독 인기는 정말 엄청났었지요... 당시 감독으로 스포츠신문 1면에 그렇게 자주 오르내리던 감독은 박 감독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 영상도 또 추억여행했네요 너무 잘봤습니다.
이번에도 추억여행이 되셨다니 뿌듯하네요~ 감사합니다! :)
저땐 샘에게 다들 맞는 분위기라... 맞아도 모욕감 안 느낌..그냥 공포 긴장감 조성.
샘 나가면 또 떠듬..
저땐 왕따는 없었는데....
..
지금은 아니겠지만, 그 시대에는 가장 걸맞는 지도자였고 쵝오의 성적으로 보답했다.... 당시에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었고 인기였음.
그당시에 청소년 대회는 축구 강국들이 신경도 안썻다 너무 과대포장된 감독이다
춘천지역방송국에 나오서 얘기하시는거 지금도 기억 납니다. 쌍둥이가 있는데 한명은 공수부대 한명은 일반부대를 보내면 어찌될것 같냐고.. 아무튼 체력을 많이 강조 하셨죠.
지도방식은 세대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80대 중반에도 축구감독 할 정도면 진짜 축구에 대한 열정하나 만큼은 인정. 축구계의 송해네.
한국판 퍼거슨
박종환 감독은 시대를 잘 만나 성공한 면도 있지. 80년초 한국축구는 역대 최악의 암흑기였음..차범근 등 70년대 국대 주축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국대에 차출못하게 됨으로
한국축구는 아시아 동네북 수준 역대 최약체 수준이었음. 그때 혜성처럼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 4위 성적을 이루고..선수들 개개인 능력보다 강한 압박과 조직력을 내세운 박종환 축구는 당시대 한국축구의 솔루션이었음.. 물론 이러한 축구는 상대적으로 안좋은 선수들로 좋은 성적을 내는 효과는 있었지만 잘하는 선수들 데리고 강팀으로 운영하는데에는 맞지 않았으니.. 여러 트러블들이 생기게 된 거.
통일교와 케미가 좋았던 박종환
96 아시안컵 부진은 선수들이 태업한게 분명합니다.
선수들이 박종환과 98 월드컵까지 하기 싫어서 96 아시안컵때 태업했을거라 봅니다.
안그래도 그얘기올린중인데
님의 의견에동의합니다
백번 동감
일화감독시절 용병도 대가리 박아 시켰다는 ㅋㅋㅋㅋ
용병 말 안들어면 밥도 안줬어요 북조선히딩크입니다.
사리체프도ㅎㅎㅎ
진정한 한류.돈 주고도 못 할 병영체험ㅋㅋ
용병한테절절매는 감독보다백배놨죠
우리시대의 최고 입니다
빠따따카 1세대 ㅋㅋㅋ
언젠가 축구 경기 중 박종환 감독이 자기 선수들에게 쌍욕을 하는 장면이 마이크에 고스란히 담겼고 중계진도 머슥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열정이 강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해도 그 선수들이 느꼈을 인격적 모멸감을 생각하면 좋게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업적에는 인정하지만 그 뒤에 있었을 선수들의 희생에는 불편한 마음만 듭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만은 인정해줘야겠네요
요즘 축구하는거보면 좀 맞긴 해야할듯
여러 구설수와 논란을 떠나서 범상치 않은 감독이고 여든이 넘은 현재까지도 감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축구에 대한 그 열정만큼은 대단하게 보이네요.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 만큼은 정말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봤습니다. 당시 폭력이 관대한? 상무팀을 지휘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한국축구에서 가장 높은 대표팀 감독을 여러번 밟아보신 분인데 지금 여든이 넘는 나이면 자기 돌보기도 힘든 나이에 시민축구팀을 지휘하는 걸 보면 정말 열정적이면서 겸손하게까지 느껴지네요
넵넵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 만큼은 절대로 식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박종환 만을 비난할 수 없는게 국가자체 즉 학교 직장 사회전체가 군사국가 즉 병영국가 였음 때리고 조져서 극한까지 짜내는 방식
시절이 그랬죠
히딩크가 국대로와서한말 한국은 기술은충분한데 체력이 엉망입니다라고 말해 우리의고정관념을 깨트렸지 또한 수비를못하는선수는 과괌히 도태시켰지 근데 박종환은 20년전에이미 그걸알고 체력과근력운동 전원수비전원공격 선구자적인축구를한감독이지
축구뿐만아니라 모든스포츠가 체력이우선입니다 그당시우리나라현실에서
박종환감독님은 최선의선택을했다고 봅니다지금의잣대로보면 과한건사실이지난 그시대 노동자들 다어렵게버텨왔습니다
세종대왕이 찬란한업적을 이룰수있엇던건아버지 이방원이 모든짐을져주었기에 가능했듯이 그분도우리나라 축구사에필요하신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박감독 이주일씨랑 절친임
축구 전술 만큼은 시대를 앞서간 감독님. 가장 한국적 스타일에 맞는 전술과 스타일로 축구를 한신 감독님, 히딩크 감독님과 박 종홬 감독님 차이, 유럽 리그 경험이 있다와 없다.
85년 당시 축구나 사회모든 부분이 구타와 힘을 ㅗ해결되던 시절이니 지금에서 평가는 무의미 정말 잘하는 감독님
일화축구 3년패 영원한 금자탑
그시대의 맞는행동이 필요하긴 한것같긴하다 하지만 쉽지않은 것도 사실
박종환 지금 같으면 선수 혹사 폭행으로 깜빵 간다
강압적인 지도방식으로 업적은 이뤘을지모르나
그밑에서 많은 선수들이 희생되었고, 또
폭력에위한 트라우마로 축구계를 떠났습니다.
당시는체육계뿐만 아니라 교육,예술등 온분야에
폭력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시기였으나
특히 체육계는 심하였고 또 사회분위기도
묵인하는가운데 못견디고 사라져간 좋은
선수들도 많았습니다...지금 으로선 상상할수없지만 그런 흑역사가 지금의 한국 축구,스포츠계의 밑거름이 됬다는게 착찹할뿐입니다...
열정과 승질사이...열정과 빠따 사이..
80년대 근성의 시대...그 아이콘
그래도 그리운 한 단면
박종환감독님과 이주일선생님은 고교때부터 깐부였음 8090년대에도 폭력축구 빠따축구로 소문이 파다했었음
이란 전 6:2 패배
선수 집단 항명의 추억
전반 이기고 있던 경기
맘에 안 들었는지 라커룸에서 분명 손 댓을 듯
그래서 선수들 조카라 마이싱으로 경기 포기
박종환 경질
이거 시간이 지나 스포츠 신문 기자가 취재한 걸로 기억합니다
항상 락커룸에서 전반전에 자기(박종환) 맘에 안든 플레이어는 귀빵을 해주셨던 때찌축구의 근본이셨죠. 전반전에 골을 넣고도 일렬로 선채 귀빵을 맞은 선수는 알지도 못한채 무조건 죄송합니다. 연발하고....만에 하나 실점을 유발한 수비선수들은 하드한 복부 펀칭과 부모님 안부의 컨버세이션 쌍욕을 버무리며 선수들을 발로 잘근잘근 밟았죠. 채력적으로 쉬어가며 감독과 선수들이 의논을 해야할 락커룸에서 일렬로 선채 힘들지만 숨소리도 안내며 무조건 쳐맞아야만 했던...그저 선수들이 정말 맞기 싫어서...부모님 욕 듣기 싫어서 이기는 축구를 해야했던 시절(83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은 그때가 유일했고 끝이었기를 바랍니다....
월드컵한번 나갔어야 했는데
이란전 대패로 거의 예약되었던 월드컵 감독을 못맡으시고 차붐이 대신 나가 히딩크한테 쳐발리고 대회도중 짤렸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