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축커룸입니다. 먼저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많은 의견들 중 포항 구단의 책임으로만 전가되는 의견들이 많아 추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절대 포항을 감싸는 것이 아님ㅎㅎ) 당시 최순호 선수의 유럽 진출을 막은 것은, 물론 포항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병역법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병역법은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국내에서 5년간 해당 분야에 종사해야한다" 라는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최순호 선수는 1981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 괴상한 특례법 때문에 한창 실력이 물오르던 시기에 국내에 묶여있던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김주성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 앞으로 더욱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khp3300 넵넵 맞습니다~ 병역법이 끝날즘이었던 86년 월드컵 직후의 경후 실력이 만개한 그 시점에서 유벤투스의 오퍼에는 포항의 반대에 막혔구요, (86년 5월엔 프랑스의 릴에서도 최순호에게 관심을 갖고 직접 경기장을 찾았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한창 실력이 올라가고있던 86년 이전 약 5년간은 괴상한 병역특례법이 가장 큰 발목을 잡았다고 합니다 :) 어쨌든 두 상황 모두 안타깝기는 마찬가집니다ㅠ 이러한 상황들을 발판삼아 지금으로의 한국축구가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2008년도쯤 최순호 감독님과 하룻동안 함께 다니면서 방송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몸도 정말 좋으시고 성품도 선하셨던 기억이 있네요. 유벤투스 이야기 여쭤봤었는데 그때는 해외진출할 때 도와줄 에이전트도 없고 도움받을 길이 없어서 못가셨다고 아쉬워하시더라고요.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주름잡으신 보물이십니다. 멀리서 늘 응원합니다.
차범근도 그랬고, 유럽명문클럽으로 가는 걸 무슨 국부유출이라 여기던, 무식이 상식을 호도하던 시절.. 유벤투스가 어떤팀인데... 최순호가 그 때 갔다면 박지성이나 이영표 송흥민같은 재능 넘치는 많은 한국선수들이 보다 더 일찍 유럽선진무대로 진출핲 수 있는 초석이 됐을건데...
덕분에 위태위태하던 우리나라 프로리그가 안착이 됬고 모든 국민들이 외면하지는 않을 정도의 리그가 되었죠 다행히 그 슈퍼스타들이 활약해준 덕분에 ㅇㅇ. 만약 그때 잘하는 사람들 다 해외로 갔으면 지금은 k2리그는 커녕 k리그조차도 아무도 안가고 아무도 안보는 리그가 되었겠지 ㅇㅇㅇ
@@user-si6cd8ty1e 과연 그랬을까요? 차범근 독일갔다고 축구종목 망했습니까? 안일한 시각이 발전을 저해합니다. 인재는 끝없이 나옵니다. 어린아이들이 박지성, 손흥민을 보며 꿈을가지는 이유가 뭘까요? 그대는 딱 쌍팔년도 고루한 감상을 가지고 있군요.. 크게 생각하면 발전오 옵니다.
흔히 최순호를 스트라이커 공격수로 연상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최순호의 감명깊었던 재능은.. 패스능력과 엄청난 경기시야임. 그만큼 상당히 고급진 축구를 했던 최순호임. 내가 최순호의 패스를 요즘 다시 볼 수 있는건..해외축구에서 케빈 데브라이너의 축구를 보면서 그 예전 최순호가 저런 패스를 잘 뿌렸지.. 이런 생각을 했었음. 우리 선수와 상대선수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딱 우리선수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롱패스.. 이게 최순호의 전매특허
@@kml5794 황선홍 시대하고 최순호 시대는 다름 나이차가 열살 가까운데.. 최순호가 스트라이커로 대표팀 데뷔했고 점차 공미 비슷하게 스타일이 내려간거죠. 황선홍과 최순호 사이에는 이태호가 스트라이커였죠. 최순호가 스트라이커 하던시절 활약상도 대단함. 20세에 아시안컵 득점왕 먹고.. 근데 최순호한테 다른 선수들이 잘 패스를 안했다고 하네요. 아마 유벤투스 문제로 선배들한테 질시를 당했던 걸로 추측되네요. 그래서 자기가 골을 넣기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스타일로 플레이스타일을 점점 바꿨다고 하네요.
아마도 개인기량면에서는 최순호를 따라올자가없지싶을정도..게다가 장신인데도 불구하고 저런기량이..하는것을보면 그냥 아트사커이고 저자의 말처럼 요한크루이프같앴어요.. 근데 그명성과 기량을 살려줄 좋은감독을 못만난게 천추의한이라생각합니다 당시 뉴스방송에서 팀이탈로 박종환감독에게 구타, 꾸지람듣는거보고 정말 충격이었어요 선수의 기를 살려서 재능을 돋보이게하지는 못할망정 그냥 군대식 경직된 방식의 지도방식에 최순호가 당시 많이 갈등했을거고 이후 자신의 축구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됬다고 생각합니다 최순호가 요즘 시대에 활약했다면 더욱 빛을봤을거고 개인적기량 자질면에선 그누구도 최순호한텐 안되지않을까 싶네요
한국축구사에서 제일 아까운 재능인듯 유럽에 진출했다면 정말 잘했을것 같은데 ㅠ 187의 큰 키에 탄탄한 하드웨어를 타고났고 뛰어난 연계능력+키핑력에 넓은 시야와 유려한 볼터치, 슈팅력도 좋았던 역대급 세컨탑이었는데(전성기 시절 최순호 아재 플레이 영상을 보면 베르바토프, 베르캄프, 벤제마의 플레이 스타일과 많이 닮음) 너무 아까움 1980년 아시안컵 득점왕에, 세계 청소년 월드컵과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도 대단했음 솔직히 요즘 시대는 유럽에 진출할만한 실력이 없음에도 유럽으로 가는 한국 선수들이 많은데 최순호, 홍명보, 유상철은 가고도 남는 실력을 지녔음에도 못갔으니 ㅠ
저신장에 100m를 11초5안에 주파하는 준족이란게 더 놀라웠는데~ 필드에서 상대선수 앞에서 앞으로 툭차고 주력으로 압도했던게 인상적~!솔직히 체중이 가벼워 상대와 몸싸움은 좀 피했던거같았는데ㅋ 지금도 추측:최순호와 이대형이 100m 시합하면 어떤결과가~?ㅋ 두롱다리의 접전ㅋ
1981년 호주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 이탈리아를 격파했는데 그때 첫골 어시스터 곽성호선수가 첫골 넣음 그 패스가 진짜 기가막힌 패스였음 30년이 지나도 그 패스는 잊을수가 없음 세계무대에서 그렇게 잘싸은것은 처음봤다 그때 4대1로 격파 했는데 호주는 한국대표팀을 환상적인 팀이라 했고 최순호 선수는 전세계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고 이루어질수없는 이태리 에이전트를 몸살나게 만들었음 갔어야 했는데
와! 드리블 하실때 겁나 유연하시네요.키 185에서 저런 유연함을?? 보통 아시아 선수들이 대체로 뻣뻣한 경향이 있는데 유연성이 남미,아프리카 선수 같으심.어릴적 좋아했었던 축구선수들을 생각해보면 어느 한 부분에선 아쉬운점들이 한가지씩 꼭 있었던거 같은데 최순호 선수는 만능이셨던거 같네요.모자라는 부분이 없는 그런 완벽한 선수.
최순호선수 슈팅도 굉장히 강하고 시원시원했지...요즘 애들 슈팅은 참...뭐라해야할지...황의조도 슈팅력이 다소 아쉽고... 게다가 저때는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도 안된 시절이었는데 몸쌈도 안밀리고 참 대단했다. 최순호는 그냥 몇번 반짝해서 관심을 받은게 아니라 실제로 잘했고 거기다 월드컵 이탈리아전때 원더골 사고를 치는 바람에 안그래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더 데리고 가고싶었겠지..
@@asdfishkkhoqwer 그런 비교는 의미 없음 단순비교를 떠나서 그시대에서 이룬 업적을 어져야지 최순호가 진짜 엄청난 선수였다면 결국 차범근 처럼 해외진출을 하던가 아니면 더 오래 선수생활을 이어가던가 했겠지 동시대 선수들 사이에서 위치만 따져도 손흥민 보다는 훨씬 아래지
정말 유연하고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는 스트라이커였죠. 본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원했다고 하는데...개인적으론 좀 더 투쟁심을 가지고 욕심을 부렸다면 더 큰 선수로 성장했을 것 같은 선수. 지금과 같은 지원이 있었다면 분명히 유럽 축구 현장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90년 이태리 월드컵&98 프랑스 월드컵이 서로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지역예선을 1위로 통과하며 16강 나아가 8강도 자신 있다며 호언장담 했지만 당시 같은 조에 속해있던 국가들이 그야말로 유럽과 중남미를 대표하는 팀들이었고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둔게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talih3610 98 월드컵에서 한국의 큰 소득은 본선에서 히딩크의 네덜란드 역대급 오렌지 군단에 5대 0으로 털리고 난 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감독을 그 히딩크로 선임한 것이죠 ~!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다비즈, 클루이베르트, 야프스탐, 코쿠, 반데르사르... 당시 간지 좔좔좔...)
최순호는 전성기에 해외 진출을 못 했었어도 해외에 나가서 선수 생활을 끝까지 해서 미련은 없겠죠. 재능을 펼쳐보지 못하고 전성기에 은퇴한 정말 아까운 선수들이 많았죠. 대표적인 선수들이 이영무, 김석원, 김병수, 백승철 등인데, 특히, 김석원 선수 팬이라서 최순호 동기였던 김석원 선수가 전성기에 들어설 무렵에 부상으로 은퇴를 한 게 가장 슬프더군요. 다른 선수들도 마찮가지이지만요.
의문인게 최순호 선수 정도면 고교시절 연고대 그냥 들어갈텐데 학력고사 보고 광운대 전기공학과애 입학했죠. 거기서 그 어렵다던 전기기사도 따고 공부를.잘한걸로 알고 있어요. 한마디로 당시 엘리트였죠 축구 선수중 유일하게 체육특기.포기하고 학력고사로 인서울대로간 유일한 선수일겁니다.
그때당시 플레이스타일 보면 지금의 블라호비치같은 스타일 같음. 키는 큰데 일반적인 타겟맨포지션이 아니라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들어오며 득점하는 성향이랑 연계플레이가 좋다는게 비슷함. 그리고 활동량이 많은편이 아니라는 단점도 비슷함.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대를 잘 타고났으면 이름있는 클럽에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을것같음
이제껏 보면 병역문제로 선수생활뿐만 아니라 인간자체가 망가진 선수들이 제법 있음...이거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줘야 함..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돈이 많이 투자되는 스포츤데...차떼고 포떼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 맘이... 김종부 최순호 차범근 안정환 손흥민...그보다 당시엔 큰 문제가 생겼지만 잊혀져버린 수많은 선수들 그리고 안타깝게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선수들 전부... 국가가 나서서 합리적인 시스템을 마련해라..그깟 철책에 몇놈 가서 담배나 몰래 피우다 군생활 마치고 오는거 보단 훨씬 국력강화에 도움된다
국가가 나서서 하는건 후진국 시스템임-.- 축구에서 새로운 전술이나 훈련은 다 명문팀이나 유망한 리그에서나 나옵니다. -.-; 엘리트 스포츠로 올림픽에서 메달따서 나라 홍보하는건 개발도상국이나 하던 시절이고 선진국일수록 자본주의 시스템하에 발전된게 더 많아요 쯧쯧 우리나라야 뭐 기초과학이나 경제 기반시스템 스포츠 인프라 문화는 아직 개발도상국에서 못벗어 났지만
덕분에 위태위태하던 우리나라 프로리그가 안착이 됬고 모든 국민들이 외면하지는 않을 정도의 리그가 되었죠 다행히 그 슈퍼스타들이 활약해준 덕분에 ㅇㅇ. 만약 그때 잘하는 사람들 다 해외로 갔으면 지금은 k2리그는 커녕 k리그조차도 아무도 안가고 아무도 안보는 리그가 되었겠지 ㅇㅇㅇ
@27 relic 뭘 똑같아요. 굉장히 달라졌지. 우리나라 문화가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2000년대 이후에는 엄청 달라지고 성장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 그 화려했던 선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막혔던 나라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이랬습니다. 그 팀들이 현재 우리가 느끼는 이란, 일본, 호주 같은 상대였어요. 그리고 축구 성장에 가장 기본이 되는 프로리그가 정말 체계화 되었구요. 부족해 보이지만 많이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제갈량도 말했던 천시.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최순호님은 능력비해서 때를 잘못 타고 나신거 아닌가 싶다는. 하지만 그 시대에 최순호님 계셔서 그래도 한국팀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고(최종예선전 한국 3골 다 최순호 님이 어시스트) 월드컵에서도 지난대회 우승팀 이태리 상대로 멋진 골 넣으시고. 뭐 활약상에 대해서 말하는게 두말하면 잔소리.
라떼는... 최순호지... 86멕시코월드컵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축구보기 시작한 어린 아재입니다. 그 때는 차범근 보다 최순호가 인기가 더 좋았어요. 당시에 차범근이 독일 무대 씹어먹어도 TV 에 방송이 잘 안나왔습니다. 반면에 월드컵 최종예선 축구 한일전 연승해서 월드컵 올라간 대표팀 경기를 다들 봤으니깐... 오히려 차범근이 본선에 합류하자 팀플레이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상대 수비수들 집중 마크로 차범근한테 패스는 다 차단?) 86년 이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대표팀에 최순호 아저씨가 허리에 딱 있으면, 유럽팀하고 붙어도 왠지... 든든한 느낌? 2002년의 홍명보 아저씨 아우라의 2배 정도 생각됩니다. 당시는 유럽, 남미팀 대항하면 울렁증이... ;;; 최전방 공격수들 기량 발휘 잘 안되었죠... 그래서 최순호 때문인지 저는 천재 플레이메이커에 대한 환상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정환, 고종수 콤비 나왔을 때도 환호했고,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도 부러워했죠. 박지성 나와서 그냥 여한이 없어졌습니다.
넵넵 맞습니다~ 그 당시 병역법은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국내에서 5년간 해당 분야에 종사해야만하는 조건부 특례법이였는데 최순호는 1981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 괴상한 특례법 때문에 한창 기량이 물오르고있던 시기에 국내에 묶여있던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합니다~ (김주성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
근데 차범근 70년대 대표팀 모습 봤으면 그런 이야긴 못할듯. 차범근이 독일가기전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아직까지 대표팀 그 누구도 능가하지 못할 정도의 비중임. 최순호는 차범근에 비해 공격 파괴력적인 임팩트는 좀 약하지만 경기시야나 패스능력같은게 차붐보다 앞서서..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봅니다.
옳소. 1978년 12월 당시 25세 차범근이 조국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기고 독일행. 한국축구 스타공백론이 대두. 일년 정도 지나 언론에서 흥분. 소년천재가 나왔디! 당시 만 18세 최순호 바로 한국축구에 에이스되고. 청소년, 성인을 오가며 축구를 살림. 당시 차범근 이후 골 잘 넣는 해결사부재라 최의 활약은 정말 단비. 주요 죽 쑤는 경기 다 해결. 내가 본 것만도 수두룩. 최순호 한명으로 5년을 버틴 한국축구. 국제대회에서 우리가 대등한 경기 못한 강팀전에서 늘 체면세워준 최선수. 우리 축구사에서 지금까지 공격부문에서 세계수준을 운운할만한 자는 딱 네 명 나옴. 범근차, 최순호, 박지성, 손씨. 그외엔 없다. 이게 우리 축구 백년역사의 성적표. 최순호는 우리나라 레벨에서 평가되선 안된다.
안녕하세요. 축커룸입니다.
먼저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많은 의견들 중 포항 구단의 책임으로만 전가되는 의견들이 많아 추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절대 포항을 감싸는 것이 아님ㅎㅎ)
당시 최순호 선수의 유럽 진출을 막은 것은, 물론 포항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병역법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병역법은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국내에서 5년간 해당 분야에 종사해야한다" 라는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최순호 선수는 1981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 괴상한 특례법 때문에 한창 실력이 물오르던 시기에 국내에 묶여있던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김주성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 앞으로 더욱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훌륭한 영상과 해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잠시 잊고 있던 대한민국의 불세출의 축구영웅 최순호 선수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축구팬으로서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
www.juventus.kr/special/469056
가장 큰 이유가 병역법이 아닌것 같습니다. 병역법 끝날즘에 또한번 오퍼가 왔는데 포항측과 이렇다할만한 협상조차 못했다네요.. 무지한 시대이긴 했어도 빅클럽에서 5~6년이나 전담 스카우트를 배정해서 쫓아다녔는데 이렇게 처리하다니 참... 다 지난얘기긴 하지만요^^;;
@@khp3300 넵넵 맞습니다~ 병역법이 끝날즘이었던 86년 월드컵 직후의 경후 실력이 만개한 그 시점에서 유벤투스의 오퍼에는 포항의 반대에 막혔구요, (86년 5월엔 프랑스의 릴에서도 최순호에게 관심을 갖고 직접 경기장을 찾았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한창 실력이 올라가고있던 86년 이전 약 5년간은 괴상한 병역특례법이 가장 큰 발목을 잡았다고 합니다 :) 어쨌든 두 상황 모두 안타깝기는 마찬가집니다ㅠ 이러한 상황들을 발판삼아 지금으로의 한국축구가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yunamoo 너무나도 힘이되는 선플 정말 감사드립니다! :)
근깐요 그걸 오로지 국내서만 하라는게 참 아쉽죠
2008년도쯤 최순호 감독님과 하룻동안 함께 다니면서 방송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몸도 정말 좋으시고 성품도 선하셨던 기억이 있네요. 유벤투스 이야기 여쭤봤었는데 그때는 해외진출할 때 도와줄 에이전트도 없고 도움받을 길이 없어서 못가셨다고 아쉬워하시더라고요.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주름잡으신 보물이십니다. 멀리서 늘 응원합니다.
최순호의 이태리전 동점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에 감격해서 우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너무 멋졌습니다. 시대가 안타까웠던 반드시 재조명 돼야할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드리블 진짜 지금봐도 천재스럽네
특히 당시와 같은 투박한 드리블이 아닌 부드럽고 우아한 드리블이었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차범근도 그랬고, 유럽명문클럽으로 가는 걸 무슨 국부유출이라 여기던, 무식이 상식을 호도하던 시절..
유벤투스가 어떤팀인데... 최순호가 그 때 갔다면 박지성이나 이영표 송흥민같은 재능 넘치는 많은 한국선수들이 보다 더 일찍 유럽선진무대로 진출핲 수 있는 초석이 됐을건데...
덕분에 위태위태하던 우리나라 프로리그가 안착이 됬고 모든 국민들이 외면하지는 않을 정도의 리그가 되었죠 다행히 그 슈퍼스타들이 활약해준 덕분에 ㅇㅇ. 만약 그때 잘하는 사람들 다 해외로 갔으면 지금은 k2리그는 커녕 k리그조차도 아무도 안가고 아무도 안보는 리그가 되었겠지 ㅇㅇㅇ
@@user-si6cd8ty1e
과연 그랬을까요?
차범근 독일갔다고 축구종목 망했습니까?
안일한 시각이 발전을 저해합니다.
인재는 끝없이 나옵니다.
어린아이들이 박지성, 손흥민을 보며 꿈을가지는 이유가 뭘까요?
그대는 딱 쌍팔년도 고루한 감상을 가지고 있군요.. 크게 생각하면 발전오 옵니다.
무식이 상식을 호도 하든 시절
이라 하기보다는...
독재에 경제발전 우선 군문제등으로
특히 남자는 50세까지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간섭하든게
당연했든 시절이라
외국진출 국가 허가없이는
꿈도 못꾸는 세상 이였지요
넵넵 정말 아쉽습니다~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식이 상식을 호도하던 시절이라는게 지금 관점에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는 지금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이 폐쇄적이었던 데다가 타국가의 소식을 접하기 어려운 탓에 유벤투스가 어떤 팀인지 얼마나 큰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축구 종사자들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듯
흔히 최순호를 스트라이커 공격수로 연상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최순호의 감명깊었던 재능은.. 패스능력과 엄청난 경기시야임.
그만큼 상당히 고급진 축구를 했던 최순호임.
내가 최순호의 패스를 요즘 다시 볼 수 있는건..해외축구에서 케빈 데브라이너의 축구를 보면서
그 예전 최순호가 저런 패스를 잘 뿌렸지.. 이런 생각을 했었음.
우리 선수와 상대선수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딱 우리선수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롱패스..
이게 최순호의 전매특허
스트라이커가 주지 시야는 덤이고 시야만 갖고잇엇으면 이정도로 알아주진 않지
키가 커서 감독들이 스트라이커를 시킨 탓도 있죠. 몸싸움도 싫어 하는 편이라서 스트라이커에 꼭 맞는 스타일은 아니죠... 그렇지만 재능은 역대급이 확실합니다.
@@ADSO_21 ㅋ최순호는 공미임.
대표팀에서 스트라이커는 황선홍이 붙박이였음.
옛날 어느나라감독이 최순호선수평가를
물으니 모든걸다갖춘선수 다만몸싸움을싫어하는게 아쉽다했습
@@kml5794 황선홍 시대하고 최순호 시대는 다름 나이차가 열살 가까운데.. 최순호가 스트라이커로 대표팀 데뷔했고 점차 공미 비슷하게 스타일이 내려간거죠. 황선홍과 최순호 사이에는 이태호가 스트라이커였죠. 최순호가 스트라이커 하던시절 활약상도 대단함. 20세에 아시안컵 득점왕 먹고.. 근데 최순호한테 다른 선수들이 잘 패스를 안했다고 하네요. 아마 유벤투스 문제로 선배들한테 질시를 당했던 걸로 추측되네요. 그래서 자기가 골을 넣기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스타일로 플레이스타일을 점점 바꿨다고 하네요.
플레이가 부드럽고 유려했음 한 마디로 공을 예쁘게 찬다고 찬사를 보냈었죠
야구에선 선동열,최동원 투수의 미국진출을 두고두고 아쉬위하고있다면
축구에선 단연 최순호감독님이죠.
가셨다면 아마 엄청나셨을듯
야구, 축구 모두 당시 시기와 상황때문에 빅리그에 가지못한 정말 아쉬운 재능들이 있는것 같아요
82년 프로야구 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스타선수들의 해외진출을 막는 시대적 분위기도 있었죠
뭔 빳따질이랑 비교를 하노
@하루밈 어쩌라고?
선동열은 광주의 민심이 해외진출을 허락치않어서 포기한것도 있죠 극성팬들이 선동열 집앞에서 시위를 했다죠 덕분에 해태왕조를 완성했구요 허정무는 차붐 독일 가고난후에 네덜란드 갔다가 프로축구 출범후에 돌아왔죠 80년대초중반 스타들이 프로리그의 정착때문에 해외진출이 막힌 세대들이라고 봐야죠
좋은 영상이에요. 최순호의 축구가 그립네요
아마도 개인기량면에서는 최순호를 따라올자가없지싶을정도..게다가 장신인데도 불구하고 저런기량이..하는것을보면 그냥 아트사커이고 저자의 말처럼 요한크루이프같앴어요..
근데 그명성과 기량을 살려줄 좋은감독을 못만난게 천추의한이라생각합니다
당시 뉴스방송에서 팀이탈로 박종환감독에게 구타, 꾸지람듣는거보고 정말 충격이었어요
선수의 기를 살려서 재능을 돋보이게하지는 못할망정 그냥 군대식 경직된 방식의 지도방식에 최순호가 당시 많이 갈등했을거고 이후 자신의 축구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됬다고 생각합니다
최순호가 요즘 시대에 활약했다면
더욱 빛을봤을거고 개인적기량 자질면에선 그누구도 최순호한텐 안되지않을까 싶네요
박종환 감독님 정말..ㅎㅎ 그래서 최순호 감독님의 경우는 선수들을 정말 자유롭게 풀어준다고 하더라구요
그 당시 박종환은 운동장에서 국대 선수들 싸대기 갈겼음 ㅋㅋㅋㅋ
한국축구사에서 제일 아까운 재능인듯 유럽에 진출했다면 정말 잘했을것 같은데 ㅠ 187의 큰 키에 탄탄한 하드웨어를 타고났고 뛰어난 연계능력+키핑력에 넓은 시야와 유려한 볼터치, 슈팅력도 좋았던 역대급 세컨탑이었는데(전성기 시절 최순호 아재 플레이 영상을 보면 베르바토프, 베르캄프, 벤제마의 플레이 스타일과 많이 닮음) 너무 아까움 1980년 아시안컵 득점왕에, 세계 청소년 월드컵과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도 대단했음 솔직히 요즘 시대는 유럽에 진출할만한 실력이 없음에도 유럽으로 가는 한국 선수들이 많은데 최순호, 홍명보, 유상철은 가고도 남는 실력을 지녔음에도 못갔으니 ㅠ
정말 이분 드리블 볼 키핑 컨트롤 당시 국대에서 독보적 이었어요. 최순호 선수가 볼 뺏기는걸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해요.
최순호의 멕시코 월드컵 활약은 알지만 세계청소년대회 이탈리아전 장면 처음 봅니다. 개인기 좋고 대단히 창의적인 선수였네요. 키도 무려 185cm. 지금 같으면 거의 190cm.
185보다 살짝 더 큽니다.186~7정도 될거임. 월드컵 본선경기할때 외국해설자가 6피트2인치의 키를 가진 최순호라고 해설했었죠. 6피트2인치면 188이죠.
얼마전까지 감독하실때 보면 지금의 선수들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크시더라구요~ ㅎㅎ
최순호 186..
저신장에 100m를 11초5안에 주파하는 준족이란게 더 놀라웠는데~
필드에서 상대선수 앞에서 앞으로 툭차고 주력으로 압도했던게 인상적~!솔직히 체중이 가벼워 상대와 몸싸움은 좀 피했던거같았는데ㅋ
지금도 추측:최순호와 이대형이 100m 시합하면 어떤결과가~?ㅋ
두롱다리의 접전ㅋ
대충 186~187정도 될 듯, 지금으로 치면 거의 190 초중반..
구단과 나라의 무지로 최고의 선수 발목을 잡았네요! 최순호선수께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당시엔 유럽으로 나가버리면 국대 월드컵아시아예선은 참가가 일정상 어려워지다보니..ㅜㅜ
드디어 최순호 선수 군요
넵넵 드디어 그분을...
정말 최고의 선수였죠 유연하면서도 강한 참 말도 안되는 선수
한창때 중공이 한국을 상대로 의외로 잘 싸웠던 경기가 있었는데 후반 막판 최순호의 어시스트로 한국이 1점 넣고 이김. 중공 감독 "경기 내내 최순호를 막다가 아주 잠깐 그를 놓쳤는데 그게 골이 됐다" 기억으론 환상적인 크로스 패스 였음. 잊을수가 없음
오호 영상이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것도 정말 안타까운 부분인것같아요
아마 이경기가 초대 다이너스티컵(현 동아시안컵)으로 기억됩니다..최순호의 어시스트는 헤더였고 골은 황보관입니다
@@나날나리 그경기는 중국과의 경기가 아니고 북한과의 경기 였습니다 아예 떠먹여준 어시스트였죠
내 기억에는 역대 최고의 게임메이커... 최감독님이 대표님 그만둘때 어린마음에 우리나라 축구는 이제 어떡하나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최순호선수는 구단과 국가가 망친거죠~~~해외로 나갔으면 더 멋진 선수가 되었을건데 당시 경기를 보면 공을 참 쉽게 찼어는데
멋진 선수
넵넵 공감입니다~! :)ㅎㅎ
지금도 이태리 축구인들이 기억하는 최순호..청소년대회 이태리4-1승리할때 주역 86월드컵 대회 10대골 선정...대단했었지..윙어.풀레이메이커..
넵넵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최순호는진짜인정이지.. 한장면이있는데진짜 턴동작이랑 볼컨트롤예술인장면 말그대로 시대를앞서간 재능이였다
나이가??
왜 물어? 여기 다 할배야
차범근 허정무가 유럽선수생활을 다녀오고 지도자로 전향하고 나서 제일먼저하고 싶어한일이 유소년 육성이었다고 했음. 최순호도 이태리에 갔으면 거기서 보고 느낀게 있었을건데ㅜ 아쉬움..
이게 말로만 듣던 촤순호구나
넵넵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양질의 컨텐츠 감사합니다.^^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저당시 활동하셨던 선수분들이 오히려 요즘 활동하는 선수들보다 실력 훨씬 더 뛰어남.
최순호 패스가 또 얼마나 일품이었는데... 발앞에 착착
넵넵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 정말 독보적인 느낌입니다~ㅎㅎ
80년대 우리나라 축구선수중에 탑이었다.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실력을 스타성으로 이어갈 여건이나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해외에서도 활약못했던 가장 실력대비 아쉬운 선수였습니다.
1981년 호주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 이탈리아를 격파했는데 그때 첫골 어시스터 곽성호선수가 첫골 넣음 그 패스가 진짜 기가막힌 패스였음 30년이 지나도 그 패스는 잊을수가 없음 세계무대에서 그렇게 잘싸은것은 처음봤다
그때 4대1로 격파 했는데
호주는 한국대표팀을 환상적인 팀이라 했고
최순호 선수는 전세계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고
이루어질수없는 이태리 에이전트를 몸살나게 만들었음 갔어야 했는데
와! 드리블 하실때 겁나 유연하시네요.키 185에서 저런 유연함을?? 보통 아시아 선수들이 대체로 뻣뻣한 경향이 있는데 유연성이 남미,아프리카 선수 같으심.어릴적 좋아했었던 축구선수들을 생각해보면 어느 한 부분에선 아쉬운점들이 한가지씩 꼭 있었던거 같은데 최순호 선수는 만능이셨던거 같네요.모자라는 부분이 없는 그런 완벽한 선수.
그래서 외국 진출에 대한 부분이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ㅠ
프로리그 통산 출전경기가 100경기 좀 넘는데
A매치 출전이 95경기 ㄷ ㄷ ㄷ
그냥 대표팀이 소속팀이었던 선수
최순호는 충분히 유럽 갈만한 재목이었다 보통 한국 역대 베스트 11 원톱에 차범근을 놓는데 CF에 차붐을 놓고 ST에는 최순호를 놓아야 맞다고 생각
넵넵 저도 공감합니다~~ㅎㅎ
@@vedo7065 방구석에 쳐 앉아서 굳이 욕을 쳐 버는 것도 능력이다..한심한 놈아...
차붐은 윙으로 넣어도 됨. 원래 윙 출신.
최순호는 나중에 공미로 탈바꿈 했는데.. 원톱으로 주로 쓰였던게 사실이고..
둘다 상관없음.
@@제프린 그렇지요. 센타포드는 누가뭐래도 최순호. 황선홍선수는 그나마 2002년도에 잘마무리독엇지. 최순호선수한테는. 중간에아까운선수는. 김종부
@@vedo7065 최소 니보다는 백만배는 낮을듯 한데?
시대를 잘못탔지 지금 저런 스트라이커가 필요한대
나도 최순호선수가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로 봤는데 잘못 본게 아니구나!! 진짜 순간 판단을 해서 슈팅때리는 모습은 마치 독수리가 먹이감을 낚이는 그모습 자체^^세계적인 선수였지요~~~ 제2 최순호 선수가 나왔으면 합니다!
최순호선수 슈팅도 굉장히 강하고 시원시원했지...요즘 애들 슈팅은 참...뭐라해야할지...황의조도 슈팅력이 다소 아쉽고...
게다가 저때는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도 안된 시절이었는데 몸쌈도 안밀리고 참 대단했다.
최순호는 그냥 몇번 반짝해서 관심을 받은게 아니라 실제로 잘했고 거기다 월드컵 이탈리아전때 원더골 사고를 치는 바람에 안그래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더 데리고 가고싶었겠지..
당시 저 피지컬에 스피와 개인기를 갖춘 아시아 선수는 최순호가 유일했다. 아니 지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에서 뛰었다면 아마 손흥민 못지 않은 활약을 했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능력면에선 최순호가 낫다고 봅니다
가능성은 있지만 동나이대 역대급 유망주로 꼽히는 손흥민과 비교하기엔 너무 고평가일수도있음
차범근은 중국선수냐 세키야 ㅡㅡ
@@asdfishkkhoqwer 그런 비교는 의미 없음 단순비교를 떠나서 그시대에서 이룬 업적을 어져야지
최순호가 진짜 엄청난 선수였다면 결국 차범근 처럼 해외진출을 하던가 아니면 더 오래 선수생활을 이어가던가 했겠지
동시대 선수들 사이에서 위치만 따져도 손흥민 보다는 훨씬 아래지
@@두드리자계산기를 훨씬 아래라고 확답내리는것도 문제있다 이또한 비교하는거니까
당시 유벤투스 갔으면 성공했을 거라 봅니다. 주변에 최순호의 재능을 받아 줄만한 선수가 있으면 당연히 더 큰 활약을 했겠죠..
엄청 많았죠 당시 유벤은 이태리 국대가 즐비했습니다
최순호 선수의 축구를 보면 뭔가 기대, 흥분이 생기게 만들었던 진짜 판타지스타
이 시대에 재조명이 필요한 선수.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자란 입장으로서 지단에 비빌만한 역대급이라고 생각함.
순호니?
실시간은 본적없는데 하이라이트 보고
지림;;
정말 유연하고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는 스트라이커였죠. 본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원했다고 하는데...개인적으론 좀 더 투쟁심을 가지고 욕심을 부렸다면 더 큰 선수로 성장했을 것 같은 선수.
지금과 같은 지원이 있었다면 분명히 유럽 축구 현장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자료와 스토리 소개 정말 감사합니다! subb and like from london~
선이 굵은 축구를 하는 차붐이 독일과 잘맞았다면 최순호는 이태리리그와 잘맞았을것같네요 그래서 더욱 아쉽네요
그렇지요. 이태리나 스페인과 잘 맞았을 것 같네요.
넵 예리하십니다~ 정말 그래서 더욱 아쉽네요ㅎㅎ
어린시절 우상 최순호 . 저 피지컬에서는 나오기힘든 정교하고 부드러운 드리볼 저시절 해외진출했으면 역사를 다시썼겠지요
90 월드컵도 한국 공격은 최순호가 유일하게 제대로 이끌었습니다. 기대했던 김주성 변병주 황선홍은 활약이 거의 없었습니다.
넵넵. 정말 90년 월드컵은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의 흑역사로 꼽히죠..ㅠ
90년 이태리 월드컵&98 프랑스 월드컵이 서로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지역예선을 1위로 통과하며 16강 나아가 8강도 자신 있다며 호언장담 했지만 당시 같은 조에 속해있던 국가들이 그야말로 유럽과 중남미를 대표하는 팀들이었고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둔게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talih3610 98 월드컵에서 한국의 큰 소득은 본선에서 히딩크의 네덜란드 역대급 오렌지 군단에 5대 0으로 털리고 난 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감독을 그 히딩크로 선임한 것이죠 ~!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다비즈, 클루이베르트, 야프스탐, 코쿠, 반데르사르... 당시 간지 좔좔좔...)
최순호는 정통 스트라이커로는 한국축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죠 차범근이나 손흥민은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했지만 스피드를 바탕으로 하는 윙어라고 보는게 맞지 정통 스트라이커라고 할수는 없죠
넵넵 맞습니다~ 차범근, 김주성, 설기현, 손흥민과 같은 선수들은 크게 나눴을때 공격수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윙어, 윙포로 분류되죠! :) 근데 요즘 손흥민 선수는 토트넘 공격 1선 어느 포지션에 있어도 다 소화하면서 맹활약하는거보고 정말 요즘 극찬하기 바쁩니다ㅎㅎㅎ
@@user-mn8tu1mn2c 그래요 폄하할마음은없는데
설기현 쫌그래요
최순호 축구 대단함
@@user-mn8tu1mn2c 설기현 정도면 역대로 봐도 손꼽히는 수준이고 설기현이후에 손흥민빼고는 아직까지도 설기현만큼 하는 윙어가 없는데요???
최고의 강점은 패스였음. 결정적인 다이렉트 패스는 하나 하나가 다 그림이었죠. 개인적으로 차범근보다 최순호가 더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포스코 박태준 전 회장님께서 그렇게 아꼈던 선수가 포항 최순호 선수라고들었네요
당시 기준으로 한국 최고선수가 해외로 나간다는건 국보급 고려청자를 밀수업자가 해외로 밀반출 하는 느낌... 실제로 차범근 감독님깨서 독일 분데스리가로 가실때 신문에 국보유출 이라는 단어를 섰으니 말입니다 만약에 가셨다면 차범근 감독님급 되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ㄷㄷ
최순호선수가 유벤투스에 갔다면 , 세계축구역사는 새롭게 쓰여졌을것이다 . 포철과 병역법에 묶여 ,제대로 꽃피우지못햇던 ,불운의천재 최순호님 ~ 우리 마음속의 축구영웅이었습니다 .
그거때문에 밥줘도 유소년 시절에 스폰해준 포항 재쳐두고 서울로 입단 포항이 원체 전적이 화려 해서
한국이 국가주도 집단주의에 나라도 후진국 시스템이여서 재능이 많아도 빛을 못본 사람들 많앗을겁니다.
최순호는 전성기에 해외 진출을 못 했었어도 해외에 나가서 선수 생활을 끝까지 해서 미련은 없겠죠.
재능을 펼쳐보지 못하고 전성기에 은퇴한 정말 아까운 선수들이 많았죠.
대표적인 선수들이 이영무, 김석원, 김병수, 백승철 등인데, 특히, 김석원 선수 팬이라서 최순호 동기였던
김석원 선수가 전성기에 들어설 무렵에 부상으로 은퇴를 한 게 가장 슬프더군요.
다른 선수들도 마찮가지이지만요.
아무리 이전 축구와 현대축구가 수준이나 다른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고 해도 최순호 영상 몇개만 봐도 만약 지금 선수 생활 했으면 씹어먹는다고 느낌
ㅋ편집영상만 보면 마라도나 급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욕많이먹는 선수중한명.
축구지능.패싱력,스피드는 좋았지만 체력,활동량 때문에 욕많이먹었던선수임.
몸싸음은싫어했지요
역시 갓순호ㅜㅜ
갓갓갓갓입니다~~~
의문인게 최순호 선수 정도면 고교시절 연고대 그냥 들어갈텐데 학력고사 보고 광운대 전기공학과애 입학했죠. 거기서 그 어렵다던 전기기사도 따고 공부를.잘한걸로 알고 있어요. 한마디로 당시 엘리트였죠 축구 선수중 유일하게 체육특기.포기하고 학력고사로 인서울대로간 유일한 선수일겁니다.
그때당시 플레이스타일 보면 지금의 블라호비치같은 스타일 같음. 키는 큰데 일반적인 타겟맨포지션이 아니라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들어오며 득점하는 성향이랑 연계플레이가 좋다는게 비슷함. 그리고 활동량이 많은편이 아니라는 단점도 비슷함.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대를 잘 타고났으면 이름있는 클럽에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을것같음
재밌는 영상 많네요 시간 날때마다 보겠습니다 구독 누르고 가요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난 비운의 천재임.
어떤분이 '20년만 늦게 태어나시지' 라고 남기셨는데 격하게 공감가더라구요~ㅎㅎ
와.. 정말 축잘알이십니다. 중간중간 정보들이 섬세하고 적확하기 그지 없습니다. 너무 잘 봤습니다. ^^ 최순호의 이태리전 툭툭툭 파앙~ 10등 슛은 유벤투스 갔어도 충분히 통했을것이란 완벽한 방증이었죠. 아쉽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와 진배없던 쪼잔한 당시 어른들..
덕담 감사드리구요~ 영상도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내가 보기엔 6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 놓고 봤을 때 선천적 축구 재능면에서는 최순호가 탑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선수였다. 참고로 최순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프랑스 미셸 플라티니였다.
우연히 알게되어 구독, 좋아요 정주행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들, 이야기들 감사합니다.
저희 큰형 얘기로는 저 당시에 드리블, 패스 전부 그냥 혼자서 요즘의 축구 도사같은 플레이를 했다고 하네요;
넵넵 지금의 축구도사란 말이 딱 어울리는것같아요~ ㅎㅎ
한국의 덕배네요ㅋㅋ
아름답게 공을 찬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였습니다.
축구를 한다고 꼭 유럽을 가야하는건 아니지만, 좀 더 일찍 시장문을 열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러게요 정말 아쉬운것같습니다~ㅠ
당시엔 운동을 잘하면 수업도 안듣고 잠을자도 그냥 둿기 때문에 말이 안통하는 해외로 나가는게 더욱 겁이 낫을겁니다.
지금과는 상황자체가 달랏으니 ...
이제껏 보면 병역문제로 선수생활뿐만 아니라 인간자체가 망가진 선수들이 제법 있음...이거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줘야 함..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돈이 많이 투자되는 스포츤데...차떼고 포떼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 맘이...
김종부 최순호 차범근 안정환 손흥민...그보다 당시엔 큰 문제가 생겼지만 잊혀져버린 수많은 선수들 그리고 안타깝게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선수들 전부... 국가가 나서서 합리적인 시스템을 마련해라..그깟 철책에 몇놈 가서 담배나 몰래 피우다 군생활 마치고 오는거 보단 훨씬
국력강화에 도움된다
국가가 나서서 하는건 후진국 시스템임-.- 축구에서 새로운 전술이나 훈련은 다 명문팀이나 유망한 리그에서나 나옵니다. -.-; 엘리트 스포츠로 올림픽에서 메달따서 나라 홍보하는건 개발도상국이나 하던 시절이고 선진국일수록 자본주의 시스템하에 발전된게 더 많아요 쯧쯧 우리나라야 뭐 기초과학이나 경제 기반시스템 스포츠 인프라 문화는 아직 개발도상국에서 못벗어 났지만
이탈리아 갔으면 마인드가 많이 달라졌을테고 그러면 대한민국 축구가 달라졌을텐데.....
넵넵 한국축구가 정말 많이 달라질수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7 relic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단순하게 차범근 감독님을 보면 그냥 축협에서 배제당할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으니까요 ㅜㅜㅜㅜㅜ
덕분에 위태위태하던 우리나라 프로리그가 안착이 됬고 모든 국민들이 외면하지는 않을 정도의 리그가 되었죠 다행히 그 슈퍼스타들이 활약해준 덕분에 ㅇㅇ. 만약 그때 잘하는 사람들 다 해외로 갔으면 지금은 k2리그는 커녕 k리그조차도 아무도 안가고 아무도 안보는 리그가 되었겠지 ㅇㅇㅇ
@27 relic 뭘 똑같아요. 굉장히 달라졌지.
우리나라 문화가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2000년대 이후에는 엄청 달라지고 성장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 그 화려했던 선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막혔던 나라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이랬습니다.
그 팀들이 현재 우리가 느끼는 이란, 일본, 호주 같은 상대였어요.
그리고 축구 성장에 가장 기본이 되는 프로리그가 정말 체계화 되었구요.
부족해 보이지만 많이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leehaeseung324 근데 차범근이 프랑스 월드컵 말아먹은건 사실이지 어쨌든 잘하고 이기면 축협이 잘랐을까 결국 감독 능력이고 역량임
최순호를 잊었나 하고 섭섭했는데 드디어 보물을 발굴해줘서 고맙습니다
고등학교때최선수볼려고. 비엄청오는날 시골촌놈이 안동까지갖었지. 참좋은추억으로남음 그날골도기록하고
이런분이 계셨내요!!
최순호 선수는 진짜 당시 아시아권 선수의 움직임이 아니다. 유벤투스의 공격수 계보를 보다보면 유연하고 번뜩이는 드리블을 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는데 최순호 선수도 그런 스타일이였어서 잘 어울리긴 하는듯. 코리안 델 피에로 느낌
넵넵. 탈아시아급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ㅎㅎ
우와 감사합니다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ㅎㅎ
피지컬.기량.두가지를.충족 시켰던 천재
대한민국 월컵 골중 압도적인 넘버1 골을.기록한 선수~!!!!
그립다 최순호
감독 자리에서 다시 뵈었으면 하네요!
제갈량도 말했던 천시.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최순호님은 능력비해서 때를 잘못 타고 나신거 아닌가 싶다는. 하지만 그 시대에 최순호님 계셔서 그래도 한국팀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고(최종예선전 한국 3골 다 최순호 님이 어시스트) 월드컵에서도 지난대회 우승팀 이태리 상대로 멋진 골 넣으시고. 뭐 활약상에 대해서 말하는게 두말하면 잔소리.
라떼는... 최순호지...
86멕시코월드컵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축구보기 시작한 어린 아재입니다.
그 때는 차범근 보다 최순호가 인기가 더 좋았어요.
당시에 차범근이 독일 무대 씹어먹어도 TV 에 방송이 잘 안나왔습니다.
반면에 월드컵 최종예선 축구 한일전 연승해서 월드컵 올라간 대표팀 경기를 다들 봤으니깐...
오히려 차범근이 본선에 합류하자 팀플레이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상대 수비수들 집중 마크로 차범근한테 패스는 다 차단?)
86년 이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대표팀에 최순호 아저씨가 허리에 딱 있으면,
유럽팀하고 붙어도 왠지... 든든한 느낌? 2002년의 홍명보 아저씨 아우라의 2배 정도 생각됩니다.
당시는 유럽, 남미팀 대항하면 울렁증이... ;;; 최전방 공격수들 기량 발휘 잘 안되었죠...
그래서 최순호 때문인지 저는 천재 플레이메이커에 대한 환상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정환, 고종수 콤비 나왔을 때도 환호했고,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도 부러워했죠.
박지성 나와서 그냥 여한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손흥민, 이강인 보며 내심 다음 월드컵 기대했는데 사실 너무 설레발 칠것도 없는게 알고 보니 특급 공격수는 예전에도 있었구만요. 그만큼 어느 감독이 어떻게 이끄느냐가 더 중요한듯...
허정무 선수 영상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영상 퀄리티가 굉장히 좋네요ㅎㅎ구독하고 갑니다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재밌는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예전 경기영상보면
볼터치도 좋고 유연하고 스피드도 빠르고
축구지능도 좋음 골결정력도 평타수준은 됨
거기에 패스도 좋음
요즘으로 치면 헤리케인 같은 선수였음
완성형 스트라이커
넵넵 공감합니다~~ㅎㅎㅎ
제발 황선헝과 엮지맙시다
차범근과 최순호가 있어서 그나마 86월드컵 대표팀이 무게가 좀 있었죠.
저당시 유벤으로 갔으면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확실히 한국축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라는 예상은 해봅니다~
최순호 선수는
전형적인 육각형 플레이어였다
지동원이 어릴때 가장 비슷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후에 성장을 못한것을 보면 그릇차이가 엄청 난다는걸 알 수 있지
맞습니다~ 지동원 선수가 리틀 최순호라 불렸던 시절이 있었죠! ㅎㅎㅎ
지금봐도 최순호 선수 같은 선수 찾기 힘든듯
저시절에 저런플레이는 진짜....그냥 스코어러뿐만 아니라 찬스메이킹까지 하는 진짜 한국형 판타지 스타였음
공을다루는게 편해보이네요 차범근이전의 시대 선수들은 영상이 잘없어서 아쉽네요 2002월드컵은 풀경기고화질영상있는데 ㅠ
저 당시의 깨끗한 화질의 영상이 얼른 풀렸으면 합니다~
최순호가 대단하다!!
포항의 레전드
개인적으로 포항 감독 시절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ㅠ
그러고보니 90 伊월드컵, 스페인 전 때
황보관의 골도 최순호의 어시스트였네요^^
최순호가 유벤투스로 입단이 실현되었다면
박지성, 손흥민 같은 선수가 더 이르면서
더욱 많이 배출되었을 겁니다!
존경스러운 축구 선수였죠
맞아요. 정말 훌륭한 선수였는데.
86년 이태리와의 멋진 중거리 원더골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초딩인데 골넣는 장면 아직도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전 골은 역대 최고.
내가 써보고 싶었던 댓글인데 캐공감 합니다. 디벤딩 챔피언이었던 카테나치오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막강 수비진을 농락하며 폭발시킨 대포알 중거리슛~^^. 개인적으로 한국대표팀의 역대 월드컵 골 중 최고로 멋진 골~!!!
넵넵 지금봐도 속이 뻥뚫리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3:01 슛페인팅 후 곧바로 팬텀
86아시안게임때 금메달로 병역면제 받았으나 그당시는 국내에서 5년간 뛰어야하는 규정이 있었음. 이런저런이유로 유벤토스 못간거지.
넵넵 맞습니다~ 그 당시 병역법은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국내에서 5년간 해당 분야에 종사해야만하는 조건부 특례법이였는데 최순호는 1981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 괴상한 특례법 때문에 한창 기량이 물오르고있던 시기에 국내에 묶여있던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합니다~ (김주성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
아쉽
김주성이 어딜명암을 ???
최순호 플라티니 로시...80년대 유벤투스에서 그렇게 뛰었으면 했던 가슴 벅찬 상상^^
행복 회로 돌아가게 만드는 정말 기분좋은 상상입니다~ㅎㅎ
이탈리아 한국 최순호 선수 움직임이 ㅋㅋㅋ이탈리아 애들 가볍가 제껴버리는게
와 움직임이 동물그감각 그자체......
저 때 국가대표 경기보면서 최순호
패스보며 저렇게 패스를 잘하는 한국선수가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개인적으로 국가대표
경기때 차범근 보다 최순호가 돋보였다 생각함
당시 차범근 선수도 최순호 선수를 보며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했다고 합니다~
@@ckroom2020
유튜브에 축구 영상 보는데 이상하니만큼
최순호 예기가 적어서 아쉬웠는데
감사합니다
@@돌아이돌아버려 그만큼 자료가 없으니까요. 아쉬울 뿐이죠.
그래도 이렇게 기억속의 플레이 모습을 다시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근데 차범근 70년대 대표팀 모습 봤으면 그런 이야긴 못할듯.
차범근이 독일가기전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아직까지 대표팀 그 누구도 능가하지 못할 정도의 비중임.
최순호는 차범근에 비해 공격 파괴력적인 임팩트는 좀 약하지만 경기시야나 패스능력같은게 차붐보다 앞서서..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봅니다.
@@제프린
네 맞습니다 차범근은 그야 말로
월드클래스죠
유상철, 홍명보, 서정원 선수 등 아쉽게 해외진출이 무산되었거나 말년에 진출하셔서 아쉬움이 많은, 비교적 최근 선수들은 알았지만 최순호 선수가 그걸 능가하는 재능이고 오퍼가 왔다는 사실은 처음 접하네요..아쉽습니다
서정원이 해외진출 무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뛴걸로 아는데
최순호 그는 진짜 한국의 요한 크루이프
진짜 저 당시 경직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저런 창의적이고 우아하며 볼 찰 줄 아는 선수가 나온건지... 차범근이야 뭐 전통적인 한국형 사이드 공격수의 끝판왕 같은 선수니 나올수 있다손 쳐도 최순호는 진짜 ㄷㄷ
최순호 선수는 큰 키에도 모든 걸 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였고 엄청난 개인기를 가진 진정한 최고의 선수였죠 앞으로도 없을 거 같은
옳소. 1978년 12월 당시 25세 차범근이 조국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기고 독일행. 한국축구 스타공백론이 대두. 일년 정도 지나 언론에서 흥분. 소년천재가 나왔디! 당시 만 18세 최순호 바로 한국축구에 에이스되고. 청소년, 성인을 오가며 축구를 살림. 당시 차범근 이후 골 잘 넣는 해결사부재라 최의 활약은 정말 단비. 주요 죽 쑤는 경기 다 해결. 내가 본 것만도 수두룩. 최순호 한명으로 5년을 버틴 한국축구.
국제대회에서 우리가 대등한 경기 못한 강팀전에서 늘 체면세워준 최선수.
우리 축구사에서 지금까지 공격부문에서 세계수준을 운운할만한 자는 딱 네 명 나옴. 범근차, 최순호, 박지성, 손씨.
그외엔 없다. 이게 우리 축구 백년역사의 성적표. 최순호는 우리나라 레벨에서 평가되선 안된다.
시대가 영웅을 품지 못했네요
특히 당시의 병역법 문제가 가장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ㅠ
안정환 이동국을 합친 느낌. 공미 쉐도우도 가능하고 최전방에서 굵직한 한방까지. 역대급 대형스트라이커. 시대를 잘태어났다면 이태리에서 커리어 정점을 찍고도 남았을 선수. A매치 골도 30골에 월드컵에서도 1골 1도움이었던가? 시대 잘못테어나 유럽무대가 아쉬운 선수
86월드컵 2경기 1골2도움.. 임팩트가 최고였죠ㅎㅎ 시대적으로 정말 아쉬운 선수입니다~
@@계정-y6o 최순호 황선홍 대형 스트라이커 계보가 극찬하고 인정한 선수가 이동국 ㅅㄱ.
@@계정-y6o 피온충 한마리가 인정하던말던 아무 의미 없음. 황선홍 최순호 차범근이 인정한게 10000000000000는 인정 팩트 ㅋ
@@계정-y6o 실력으로 못까니까 병역드립ㅋ 팩트는 현역 병장 제대 ㅋㅋ
@@kkkkkk10100 동바리는 전북 레전드이지 한국축구 레전드가 아님
그리고 은퇴후 몇년 뒤...(90년대 중반으로 기억)그는 고향인 청주에서 최순호 축구교실을 열었습니다~엄청난 인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