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운동장 저 자리에 있었습니다 고 2 봄날로 기역합니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당시에는 흡연이 일상이던 시절이라 경기도 중 인데도 코칭이 흡연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관중석은 온통 술판에 담배연기 자욱했던 시절이였고 그런것을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시절입니다 학생신분에 엉감생심 대놓고는 못피고 운동장 화장실에서 몰래 친구랑 연기 먹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벌써 40년 가까이 흘러간 옛 시절이네요 소중한 영상을 보면서 아름답던 추억을 눈꺼풀 속에 돌려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정확히 기억하는데 일본 축구가 80년대 침체기를 겪고 지금의 일본축구 시작을 알린게 92년 다이너스티컵 대회...그때 처음으로 일본한테 경기력에서 밀릴수 있다는걸 처음 보게됨. 결국 몇개월 뒤 일본 홈에서 열린 92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첫 우승을 차지함... 그 대회에서 한국은 실업선발 내보냈다 지역예선 탈락함..
사실 그 전해인 91년 일본에서 한일정기전이 있었는데 일본이 브라질 유학 유소년 육성 등 오랫동안 축구에 집중투자 했다며 이번 대표팀이 그 결실이 될 첫 세대가 모인 팀이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이번 한일전을 엄청 벼르고 있다고 했죠 결과는 1대0 한골차로 한국이 이겼는데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그 당시 떠오르는 스타 하석주였음
80년대 축구 83년 프로축구 생기고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유럽에서 통하는 선수들하고 83년 청소년 4강 멤버 김종부 김주성 등 80년대 축구는 아시아권에선 한국이 100m 11초대 워낙 빠른 선수들이 많아서 정면공격시 역습당하나깐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선수비 후역습 정도로 한국을 상대했음. 그러다 93년 정도 일본이 귀하선수 받아들이고 브라질 유학파에다 j리그 태동하고 포백수비를 펼치니 한국이 조직력 개인기가 밀리기 시작했음 그나마 황선홍 최용수 없었으면 90년대 축구 한국 형편없었음
KBS PD님 혹시 모두 KBS에서 중계를 했는지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아래 4경기 KBS에서 경기 녹화 비디오테이프 있으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명승부들이라 조회수 잘 나올 것 같습니다. 1984년 올림픽 예선 대한민국 vs 사우디아라비아 (4-5 패 / 경기일 1984년 4월 24일) 1985년 메르데카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 vs 아메리카 FC (7-4 승 / 경기일 1985년 7월 26일) 1985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전 대한민국A팀 vs 대한민국88올림픽팀 (A팀 1-0 승 / 경기일 1985년 6월 17일) 1987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전 대한민국A팀 vs 호주 (1-1, 승부차기 5-4 승 / 경기일 1987년 6월 21일)
저때 일본은 아마추어고 우리는 프로급임 레벨이 아마추어와 프로급인데 3대0 점수차는 잘했다고 볼수도 없는거임 이후 일본은 프로축구가 90년대 생겨나고 20년안에 아시아를 제패하고 50년후엔 세계를 제패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제 20년안에 아시안컵 우승을 비롯 피파랭킹만 보더라도 아시아권 쌉가능한 팀이됨 국가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나면 지들이 계획한대로 되냐 진짜 대단한거임 저때는 한국선수 인터뷰서 좀 과장된 표현으로 한쪽눈 감고도 이긴다고 말했었음 그랬던 팀인데 현재는....? 그리고 90년대2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한일정기전 평가전 자주했었는데 일본이 아시아 제패하고 스파링 상대를 세계무대로 돌려서 요즘은 평가전이 줄어듬 일본축협 회장이 한국과 평가전 3번을 하는것보다 브라질.네덜란드등과 같은 강화들과 1번 하는게 경기력 향상에 도움되고 더이상 한국과의 경기는 일본대표팀 경기력에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개무시함 그후로 한일평가전 거의 실종됨
70년대만 하더라도 국가대표 1군을 화랑이라 했었고, 2군 상비군을 충무라고 했었던 시기도 있었죠... 1982년엔 그냥 한국이라 한 것보면 옛 화랑이란 칭호는 안쓰게 되었던듯 합니다...저는 신라 화랑을 좋아하지 않아서(저는 고구려의 조의선인은 좋아합니다..거기에 유래된 선비란 호칭도 좋아하고요..) 그런 호칭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1982년은 잊지못할 스페인 월드컵의 해로 기억합니다..브라질의 지코,소크라테스 등 '황금 4중주' 최고의 미드필더진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본것이 행복했었던...비록 2차리그에서 이태리에 비겨도 올라갈 찬스를 공격위주의 전술로 결국 이기고 올라가려다 오히려 2대3으로 져서 탈락했지만, 그때까지의 환상적인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남아있기에 1982년은 잊지 못할 해입니다...
1986년한알존 패배 뼈속까지 분노를 참고 한국축구 죽이기 모리감독 동대문 축구장 없애고 동대문 프로축구 창찬 무산시키고 오시장 과 결탁 음모론 한일전 패배후 모리감독 한국에는 프로축구가 있단 일본이 도저히 이길수없다 일본축협에보고후 일본도 프로축구를 만들자 j리그 탄생후 한국축구 를 앞질러 가는 일본축구의 무서움
저 당시 일본에게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죠 일본은 축구가 그리 인기가 없었고 우리도 있던 프로리그도 없었을 정도니. 그러다 86 멕시코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모리감독이 이끄는 일본팀이 최종전까지 가서 대한민국과 맞붙는 성과를 보이면서 일본내에서도 축구에 관심을 보이자 투자를 하기 시작해 프로리그 출범을 시키고 어린영재들을 브라질로 보내고 ( 저때 미우라가 있었슴 ) 외국인 선수도 귀화시키기도 하더니 90년대 중반부터 우리와 엎치락뒤치락했다는 ( 특히 나카타란 선수는 대단했슴 ).. 그래도 일본한텐 지면 안됨!!!
@@generationnew3185 아무도 안신었는게 아니라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의 광고는 특별한 사람들만 신는...아무나 못신는 프리미엄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려는 광고죠. 저때 나이키는 진짜 비쌌습니다. 물론, 지금도 비싸지만요. 요즘은 나이키 외에도 여러 종류의 신발들이 많은데 저때도 나이키가 신발은 갑이였죠.
최순호는 진짜 잘한다. 볼터치 예술
재능은 최순호가 역대 최고라고 함..고교시절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
이태호.정해원.최순호.장외룡.이강조 등 추억의 전설들
한국축구의 기둥이셨던분들이십니다
이태호 선수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정말 좋아햇던 외눈박이 선수이자 등지고하는
스크린 플레이 최고의 테크니션...
대우로얄즈의 최고의 골잡이....
80년대 대통령배 국제축구나 메르데카배 하이라이트 만들어서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영상 정말 좋네요!
귀한 자료 정말 고맙습니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1977년 3월20일 (동대문운동장) 대한민국 대 이스라엘 경기도 부탁 드립니다
이태호 장외룡 최순호 강신우 정해원 박성화... 40대 미만 팬들에겐 지도자나 해설가로 알려진 분들인데 이런분들의 현역시절모습 신선하네요..
동대문 운동장 저 자리에 있었습니다 고 2
봄날로 기역합니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당시에는 흡연이 일상이던 시절이라
경기도 중 인데도 코칭이 흡연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관중석은 온통 술판에
담배연기 자욱했던 시절이였고
그런것을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시절입니다 학생신분에
엉감생심 대놓고는 못피고 운동장
화장실에서 몰래 친구랑 연기 먹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벌써 40년 가까이
흘러간 옛 시절이네요 소중한 영상을
보면서 아름답던 추억을 눈꺼풀 속에
돌려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코치 감독들이 담배 피던 시절 ㅋ
중계중 자주 들리는 장해용(?) 선수가 장외룡 감독님 맞나요?
담배 피는 장면 왤케 구수하냐 ㅋㅋㅋㅋ
전설의 백솔 예상! 아니면 거북선이나 은하수! ㅋㅋㅋ
저도 이 장면이 젤 훈훈합니다
지금으로보면 절대무쌍 패기죠.
@@오크라이더한산도
@@오크라이더 82년이면 아직 솔이 나오기전...
저 당시 메인이면... 거북선이나 썬 으로 예상됨..
아부이 심부름으로...ㅋㅋ 500원 하던시절..
참고로 은하수는 메인이 아니라 저가 담배에서 많이 팔렸음...200~300원 정도로 기억함 .ㅋㅋㅋ
한국 축구 희귀한 영상
감사 드립니다 ☆
82년도..고3때네.
80년도까지도 버스안서 담배도 태울때.의자뒤에 재털이도 달려있었음
2:21 대박이네
3:39 골키퍼 키 무엇ㅋㅋ
초등학생이 성인 대회에 나왔는데??
정해원.최순호.이태호의 신새대와 화랑충무이절의박성화.조광래.이강조.박상인등의 구새대가 조화를 이루었던 한국축구의 중흥기인듯합니다.
장외룡을 장외용으로 발음해서 한동안 햇갈렸네요.
이 게임만 봐도 우린 옛날부터 일본 한테 축구 만큼은 안집니다! 왜 요새는 자꾸 집니까!!
실력차이죠…
그때는 한국이 잘했고, 지금은 일본이 잘하고…
거기에 지금은 정신력으로 커버되는 축구가 아니어서 이기도 하고요
2:13 최순호군 ㅋㅋㅋㅋ
혹 전반 2분에 선취골 넣은 선수가 강신우 해설위원???
선수들을 최순호군... 이태호군...으로 지칭하던 게 새삼스럽네요... 방송에서 늘 '군'자를 붙이다보니.. 어렸을 때 차범근 선수도 첨에는 이름이 '차범' 인지 알았음..
ㅋㅋㅋㅋㅋ
결국 분데리스가로 가 차범(붐)으로 불렸지.
ㅋㅋㅋㅋㅋ 😂
행배군?
이태호 변병주 팬이었고
모든 선수들 참 실력있었어요
정트리오가 제일 인상깊어죠!~
정용환 정해원 정종수.
@@가미소리-b1t 이태호선수 눈에 문제 생겼을때 많이 속상했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국가대표 된 선수가 2명이나. 정해원, 최순호.
정확히 기억하는데 일본 축구가 80년대 침체기를 겪고 지금의 일본축구 시작을 알린게 92년 다이너스티컵 대회...그때 처음으로 일본한테 경기력에서 밀릴수 있다는걸 처음 보게됨.
결국 몇개월 뒤 일본 홈에서 열린 92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첫 우승을 차지함... 그 대회에서 한국은 실업선발 내보냈다 지역예선 탈락함..
실업선발이면 차라리 낫지요. 대학선발에 실업선수들 짬뽕 시켜서 내보냈다가 본선에도 못나감.
그해여름 대학선발로만 92 바르셀 올림픽 나갔다가 의외의 선전을 해서 축협에서 오판을 제대로 한것임 😢
사실 그 전해인 91년 일본에서 한일정기전이 있었는데 일본이 브라질 유학 유소년 육성 등 오랫동안 축구에 집중투자 했다며 이번 대표팀이 그 결실이 될 첫 세대가 모인 팀이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이번 한일전을 엄청 벼르고 있다고 했죠 결과는 1대0 한골차로 한국이 이겼는데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그 당시 떠오르는 스타 하석주였음
어렴픗이 기억나는데... 강신우선수가 조기축구 출신 국가대표라 들었음.. 그래서 조기축구 선수들이 참 좋아했지요...
80~90년대 아티스틱스위밍 중계도 보고 싶습니다....이 더운 여름에 말이죠....찾아서 보여주세요~~
옛날 축구라...압박이 느슨하고 라인 넓네요
한국축구의 전설들의 모습! 테크닉과 그를 훨씬 능가하는 강인한 투지와 체력. 한국축구의 전형적인 플레이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 경기!
강신우랑 무슨 관계세요? 혹시 형제?
80년대 축구 83년 프로축구 생기고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유럽에서 통하는 선수들하고 83년 청소년 4강 멤버 김종부 김주성 등 80년대 축구는 아시아권에선 한국이 100m 11초대 워낙 빠른 선수들이 많아서 정면공격시 역습당하나깐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선수비 후역습 정도로 한국을 상대했음. 그러다 93년 정도 일본이 귀하선수 받아들이고 브라질 유학파에다 j리그 태동하고 포백수비를 펼치니 한국이 조직력 개인기가 밀리기 시작했음 그나마 황선홍 최용수 없었으면 90년대 축구 한국 형편없었음
90년대 한국은 정말 뻥 축구였죠~ 그래도 승룰이 대등했던 건 그저 개인 역량~!
@@쿵쿵따-i3n 아주 빠른 스피드로 롱패스를 받고 수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었음..근데 골 결정력 때문에 그닥 빛이 안났을 뿐이지 ㅋㅋ
선발
GK : 정성교
DF : 장외룡, 박성화, 최경식, 정종수
MF : 조광래, 이강조, 이태호
FW : 강신우, 최순호, 정해원
명단에 강신우가 빠졌네요... 강신우가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ssoh001 앗, 그러네요. 수정했습니다.
@박동균 네. 수정했습니다.
선수들 얼굴은 40대로 보이는데 이름 부를 때 00군..ㅋㅋㅋ
동대문운동장 옛날 생각난다
고전한일전 너무감사합니다
쎈~타링, 골~인, 이런 용어가 요즘은 낯설지만 정겹네요^^
중계 끝날때
애들 ㅋㅋㅋ
96년까지도 잠실야구장 3루 관중석에 앉아 담배 피운 기억있는데... 언제부터 관중석 금연인지 기억이 안 남.
최순호 유럽 팀에서 그렇게 스카웃 하려고 기를쓰고 쫒아 다녔는데 한국에서 놔주질 않아서..참 아까운 선수
홍명보 감독님, 故유상철 감독님 등도 그런것으로 피해봤죠
차범근 감독님도 하마타면 그리될뻔 했고
7:07 지리네요 ㅋㅋㅋㅋㅋ
나 휴가나와서 이경기보면서 팔각모 휘두르고 난리치면서 보고 했던 기억나네요 그날 가는곳마다 온통 축구이야기로 ,술엄청 얻어먹었네요
군인들이라고 아예 술값 안받는 곳도 있었는데
0:12 핸드볼 같은데요
골 결정력 참~~ㅋ
기차,버스에서도 담배 피우던 시절임.
시외버스 좌석에 재떨이까지 붙어
있었음. ㅋㅋ 경기장 흡연은 기본
나도 83년 고3까지 선수로 뛰었는데 빳따로 쳐맞던 기억이 가득. 그래도 축구부라고 으시대고 구름과자 빨면서 폼잡고 다니던 좋은? 추억도 많음 ㅋㅋ
머리끄댕이,담배 ㅋㅋㅋㅋ구수하다 옛 시절ㅋ
캬 재밌네요^^
한국 아디다스 옷 이뻐보이네 ㅎ
위크엔드 였습니다
@@matthaus8866 86멕시코월드컵때 위크엔드(라피도 전신)였는데 3선없이....위크엔드도 삼선썻나요?나무위키 찾아보니 이당시 아디다스 스폰서 킷맞습니다.09:03초보니 아디다스 불꽃로고입니다...02:18,09:49코치도 커다란 아디다스 불꽃로고입니다.
관중들이나 선수들의 장발머리가
나름대로 멋지네.
조광래는 아직도 저 스타일 ㅋㅋ 😂
벤치에서 담배 피는거 실화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06 신반포 반원조기 축구회
첫번째 골은 핸들이네요 ㅋ
1980년대 중반 일본대표팀 방한해서 우리나라 프로팀 유공과 친선경기한 적도 있어요 유공팀이 2골차 승리. 우리나라 프로팀에게도 쩔쩔맸던 실력이 당시 일본입니다. 일본축구 많이 발전했습니다
유공 신문선
크로~~스 패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근은 a매치하면 여자애들 꽥꽥 소리인데 저 때는 유럽처럼 상남자 목소리 가득하네. 저래야 위압감 있지
요즘은 콘서트장 분위기
Name of the tournament & team.
최순호는 진짜 잘했네.
유럽 갈거를 당시 나라땜시 못감요 야구는 최동원 선동렬이 피해보고 차범근님도 엄청 꼬장에 힘들게 나갔음
1986 멕시코 월드켭 본선때 빨랫줄 골도 기록함.... 2-3으로 패한 이탈리아전에서...
그시절내마음의우상 80년대한국축구의대명사
이태리 리그로 갈 수도 있었죠
@@greatyisoon-sin3402 선뚱은 전혀 아님..아마 시절 쿠바전 출장은 기피하다가 메이저 스카웃 제의가 전혀 없자 프로로 데뷔한 것..
저..중학교1학년때 입니다.
저때는 쇼트 짧은거 입었습니다
저고등학교때까지 짧은거 입었습니다.
슬라이딩 하다 맨땅에 엉치밑 항상 상처가 마르질 않았던기억이 납니다.
아옛날이여..
조강래 정해원.이강조.최순호.김석원.변병주.등등
와우 박승화감독님까지 대단한 경기구나
원래 한국은 일본보다 한수 위 그래서 일본에 옛날에는 남미로 축구배우러 많이 떠났지
그 1세대가 미우라 카즈요시,나카야마,기타자와였죠
동시 입력 같은 자막은 넣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겠습니다.
틀리게 입력해서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상을 보는데 지장만 주었습니다.
카메라 시점 바뀌는게 epl급인데?
82년이면 황선홍 홍명보는 아기였던 시절 ㅋㅋ
강신우 선수면 해설위원 강신우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
KBS PD님 혹시 모두 KBS에서 중계를 했는지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아래 4경기 KBS에서 경기 녹화 비디오테이프 있으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명승부들이라 조회수 잘 나올 것 같습니다.
1984년 올림픽 예선
대한민국 vs 사우디아라비아
(4-5 패 / 경기일 1984년 4월 24일)
1985년 메르데카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 vs 아메리카 FC
(7-4 승 / 경기일 1985년 7월 26일)
1985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전
대한민국A팀 vs 대한민국88올림픽팀
(A팀 1-0 승 / 경기일 1985년 6월 17일)
1987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전
대한민국A팀 vs 호주
(1-1, 승부차기 5-4 승 / 경기일 1987년 6월 21일)
저때 일본은 아마추어고 우리는 프로급임 레벨이 아마추어와 프로급인데 3대0 점수차는 잘했다고 볼수도 없는거임 이후 일본은 프로축구가 90년대 생겨나고 20년안에 아시아를 제패하고 50년후엔 세계를 제패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제 20년안에 아시안컵 우승을 비롯 피파랭킹만 보더라도 아시아권 쌉가능한 팀이됨 국가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나면 지들이 계획한대로 되냐 진짜 대단한거임 저때는 한국선수 인터뷰서 좀 과장된 표현으로 한쪽눈 감고도 이긴다고 말했었음 그랬던 팀인데 현재는....? 그리고 90년대2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한일정기전 평가전 자주했었는데 일본이 아시아 제패하고 스파링 상대를 세계무대로 돌려서 요즘은 평가전이 줄어듬 일본축협 회장이 한국과 평가전 3번을 하는것보다 브라질.네덜란드등과 같은 강화들과 1번 하는게 경기력 향상에 도움되고 더이상 한국과의 경기는 일본대표팀 경기력에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개무시함 그후로 한일평가전 거의 실종됨
선진국: 계획 실행 분석 개선
후진국:빨리빨리, 하면 된다
02:18 역시 담배는 옛날이 더 수준높았지. 버스에서 필수도 있었고,
사무실에서도 스트레스 받다보면 피기도 했고...그때가 좋았는데...ㅋㅋ
아주 인정이 철철 넘쳤던 시절이었죠 ㅋㅋ
딱 저때 키퍼들이 원색 츄리닝 바지 입고 뛰던게 유행이던 시절..
글구 우리나라 킵은 정기동 선수인가요 가물가물 하네요..
카메라가 수평이.안맞네 ㅋㅋㅋㅋㅋ
1982年3月21日にソウル運動場で開催された第10回日韓定期戦の映像だな。
이때 ㅋㅋ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 장발이 유행이었어서 너도나도 장발..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우리나라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가
더 잘하던 시절이었지~
크메르도.,.ㅎ
일본이 68년도 멕시코올림픽 때 축구에서 동메달 땄습니다.
그때 가마모도,스기야마는 세계적
선수였습니다.
@@namyoungkim9913 님은 지금도 세계적임 ㅎㅎ
@@namyoungkim9913
일본 축구가 그때 한때 반짝했었지요. 그러나 그후 대한민국의 벽을 넘지못하고 기나긴 (무려 30여년) 침체기에 들어가지요 . ㅎㅎ !
@@onnuliTV000 일본이 세계 Ranking
에서 항상 한국의 위였고 지금도 앞서 있습니다.
다만 한일전이다 하면 한국선수들이
엄청난 투지로 게임에 임하기
때문에 이겼던 경우가 많은 거죠.
초등학생 시절 이네여😄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과 정해원,이태호,조광래,최순호,이강조,강신우... 감독&해설가로 활약했던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8:10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 : 저요...
저도..
70년대만 하더라도 국가대표 1군을 화랑이라 했었고, 2군 상비군을 충무라고 했었던 시기도 있었죠... 1982년엔 그냥 한국이라 한 것보면 옛 화랑이란 칭호는 안쓰게 되었던듯 합니다...저는 신라 화랑을 좋아하지 않아서(저는 고구려의 조의선인은 좋아합니다..거기에 유래된 선비란 호칭도 좋아하고요..) 그런 호칭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1982년은 잊지못할 스페인 월드컵의 해로 기억합니다..브라질의 지코,소크라테스 등 '황금 4중주' 최고의 미드필더진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본것이 행복했었던...비록 2차리그에서 이태리에 비겨도 올라갈 찬스를 공격위주의 전술로 결국 이기고 올라가려다 오히려 2대3으로 져서 탈락했지만, 그때까지의 환상적인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남아있기에 1982년은 잊지 못할 해입니다...
그냥 어른과 아이 수준으로 쳐바르네 ㅋ
대박~~ 지금보다 더 잘해~~
상대가 안되네ㅋㅋ
일본은 90년대 초반 까지는 사실 한국에게 압도적으로 밀렸죠. 아시아 에서도 그다지 존재감 없었구요. 일본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벽을 반드시 넘는건 필수다! 라고 스스로 한국을 한수위로 인정했었습니다.
@@김봉석-t7x 대학선발팀이라는데 무슨ㅋㅋㅋ
@@jaekoo1 한국국가대표팀 일본과의 역대전적 42 승 23무 14패 청소년대표팀 일본과의 역대전적 29승 9무 6패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일본의 기량이 계속 상승했죠! 패도 대부분 이 시점에서 많이 기록했구요.
코칭스텝 김정남 담배 피우는 장면
지금 보니 충격이네
4년 후 월드컵에 출전했지
ㅋㅋㅋ요즘 축구보다가 보니까 조기축구회 느낌나네
과거 부산 연고지프르 축구단 대우 소속 선수들 보니까
초창기 한국 프르축구 개막전이 그립습니다.
이태호,변병주 조광래 박창선 정해원 정용환 김풍주,대우로얄즈호화멤버 기억나요
저 시기 A대표팀에는 대우 축구단 소속 선수가 많았죠. 강신우, 정해원, 조광래, 장외룡, 최경식
국대 유니폼 심플하고 좋아보이네요 어깨 삼선에 카라티로 빨강 흰색 조합 요즘 국대 유니폼보다 더 세련되고 깔끔해보이네요
저때는 심지어 우리나라 유럽파( 차범근, 허정무 등등)는 뛰지도 않았슴
이 영상에서 건질건 역시 최순호의
실력은 발군이었다는거.
저당시 유럽으로 갔어야 하는데ㆍㆍㆍ
그런선수를 안정환밑으로보는사람도있데요
@@윤유원-v7b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역대 최고의 재능을 지닌 선수로 꼽히는게 바로 최순호..
이강조는 강릉상고를 우승시킨 강릉의 영웅이였다.
옛날 상무 감독이시네요.. ㅎㅎ
저 당 시 잘 하 는 고 등 학 생 들 은 고 대 에 많 이 입 학
굿~~
10만 관중이라면 어느 경기장이지?
저기가 혹시 동대문구장 맞나요? 맞다면...제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축구 명문이었는데 결승전 볼라고 갔던 데가 효창운동장 그리고 동대문구장...
당시 효창운동장은 83년에 인조잔디 깔기 전까지 정말 맨땅에서 축구했죠
심지어는 실업축구 결승도 맨땅에서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지금은 믿어지지 않죠
동대문운동장은 국제대회 아니면 거의 쓰질 못했으니...
@@klauschong8541 네 맞아요. 지금은 거의 어느 학교든 가보면 잔디가 깔려있는데 당시 유소년 축구 선수들은 맨땅에서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 참 신기하네요.
이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참...쓸쓸하네요
00:13 신의 손 아닌가? ㅋㅋ
80년대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강했죠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광고명언 죽이네 ㅋㅋ
알베르토 살라자르..당시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존 매켄로...당시 쵝오 테니스 실력자
그 광고의 주인공이죠
저때 옆에서 솔 담배 피면 솔향이 솔솔 풍겼는데...
지금은 왜 그때의 솔 향을 못 만드는지.
안 만드는건가요?
저때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 까요?
저때 솔 담배 500 원 이었나요?
70년대 차범근 대 가마모토
와 저 시절엔 벤치에서 감독이 담배를 그것도 카메라에 잡혔어도 심의규정에는 크게 문제가 안되던 시절인듯...반대로 현재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일 .
그당시엔 버스안 기차ㆍ교실서 선생님도
병원 대기실도 다 담배를 피어도 제재받지
시절이었네요 그래도 그때는 도덕심이나
예절은 있어서 어르신들 앞에선 담배피다
얼른 감추었는데
@@차상진-d1w 어르신들 앞에서 예절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죠..
2:18 담배 ㄷㄷㄷ
첫골 넣을 때 핸드볼 파울 같은데
핸드볼 맞아요 ,.. 몇번 돌려봄 ..
장외용 ㅋㅋ
1986년한알존 패배 뼈속까지 분노를 참고 한국축구 죽이기 모리감독 동대문 축구장 없애고 동대문 프로축구 창찬 무산시키고 오시장 과 결탁 음모론 한일전 패배후 모리감독 한국에는 프로축구가 있단 일본이 도저히 이길수없다 일본축협에보고후 일본도 프로축구를 만들자 j리그 탄생후 한국축구 를 앞질러 가는 일본축구의 무서움
저 당시 일본에게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죠 일본은 축구가 그리 인기가 없었고 우리도 있던 프로리그도 없었을 정도니. 그러다 86 멕시코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모리감독이 이끄는 일본팀이 최종전까지 가서 대한민국과 맞붙는 성과를 보이면서 일본내에서도 축구에 관심을 보이자 투자를 하기 시작해 프로리그 출범을 시키고 어린영재들을 브라질로 보내고 ( 저때 미우라가 있었슴 ) 외국인 선수도 귀화시키기도 하더니 90년대 중반부터 우리와 엎치락뒤치락했다는 ( 특히 나카타란 선수는 대단했슴 ).. 그래도 일본한텐 지면 안됨!!!
다른 선수는 몰라도 기무라와 하라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아주 뛰어난 선수였습니다..나머지가 완전 헬이었었죠..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ㅋㅋㅋㅋ
아무도 안신었나봄..ㅋㅋ
@@generationnew3185 아무도 안신었는게 아니라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의 광고는 특별한 사람들만 신는...아무나 못신는 프리미엄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려는 광고죠. 저때 나이키는 진짜 비쌌습니다. 물론, 지금도 비싸지만요. 요즘은 나이키 외에도 여러 종류의 신발들이 많은데 저때도 나이키가 신발은 갑이였죠.
@@knature9807 그냥 농담이었어요 ㅎㅎ
궁예 버젼임?
와... 카메라 화질은 떨어지는데
슛쏘는 실력은 90년대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네
3:40 이땐 90년대처럼 슛 아무데나 쏘면 머리끄댕이 잡혔다구~~~~~~~~~~~~~~ ㅋㅋㅋㅋㅋ;
~군,~군, 이러한 일본식호칭이 사회전반에 살아있었던 시대^^
최순호는 뛰어난 선수지만 시대가 아닌듯 최근이라면 박지성은 저리가라다 당시의 중계가 참 재밋군요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 궁예의 예지력?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