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고향 만리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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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2 вер 2024
  • 노래 이야기
    일제 강점기가 지난 1940년대 말, 평화가 올 것이라는 우리의 염원과는 달리 세상이 둘로 나뉘어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고 우리 대중가요 역시도 수난의 시절을 겪었습니다. 노랫말은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작가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노래를 만들던 시기였지요. 그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게 된 현인 선생님의 '고향 만리'는 유호 , 박시춘 선생님 콤비의 작품으로 1947년 만들어져 194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1946년 박시춘 선생님을 만나 대중가수의 길을 걷게 된 현인 선생님은 '신라의 달밤'으로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데뷔하게 됩니다. '해방 전 남인수, 해방 후 현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복 이후 최초의 대중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주현미TV에서도 소개해 드린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고모령', '서울 야곡'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현인 선생님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리 길게 서술해도 부족하겠지만 오늘 들려드리는 '고향 만리' 또한 1940년대 노래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멋진 곡입니다.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 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도 우는 바닷가 저 편에
    고향산천 가는 길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이네
    날이 새면 만나겠지 돌아가는 배
    지나간 날 피에 맺힌 꿈의 조각을
    바다 위에 뿌리면서 나는 가리다
    물레방아 돌고 도는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으로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 주어 우는거냐 몰라서 우느냐
    기다리는 가슴 속엔 기다리는 가슴 속엔
    고동이 운다"
    '남쪽나라 십자성' 즉 남십자성이라 부르는 별자리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북위 30도 이남에서만 보이는 별자리라서 노래 속 화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당해 남쪽 나라에서 별을 바라보며 고국에 계신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실제로 태평양 전쟁시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징용으로 끌려가 필리핀, 보르네오, 수마트라 등 먼 타향에서 전쟁의 두려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노래의 주인공은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며 기쁨에 찬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현인 선생님의 음반과 영상 자료들을 취합한 결과 3절까지 부르신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1-2절, 혹은 1-3절로 이루어진 가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을 보았을 때 어떤 부분도 빠트릴 수 없어 주현미 TV에서는 3절까지 모두 부르기로 했습니다.
    '고향 만리'는 발표 후 크게 히트했는데 1960년대 월남전이 발발하고 우리 나라에서 많은 군인들을 파병하면서 다시 한번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노래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남에 파병된 우리 부대 중 '십자성 부대'(제100군수사령부)가 있었다고 하네요. 자연스럽게 월남에 파병된 우리 군인들은 '고향 만리'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곤 했답니다. 우리의 아버지, 삼촌, 오빠들이 목을 놓아 고국을 그리며 부르던 노래. 이제는 그 시절을 가슴 속으로 그려보며 이 노래를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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