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세상에 어떠한 절대적 가치도 없다고 외치며 신을 죽였지만 정작 우리에겐 니체와 허무주의가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니체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만큼 초인과 거리가 먼 사람이 또 있을까요? 부처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죽이란 말처럼 이제 니체를 만났으니 니체를 죽일 차례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니체는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라.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처럼 말이죠.
니체가 말의 목을 잡고 운 이유에 대한 설명이 너무 그럴 듯합니다. 저 역시 니체의 운명애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반론이 떠올랐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진흙 쿠키를 먹는 아이티 난민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하고요. 피안의 세계를 구하는 것을 니체는 허무주의라고 했지만, 사실 내세에 대한 기대만이 이 현실의 유일한 희망인 이들에게 그러한 종교마저 빼앗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여운이 많이 남는 영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초인과 같은 강인함을 강조했지만 정작 허우적 거리는 말처럼 평탄하지 않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니체! 어쩌면 오늘 날 삶에 허덕이지만 그래도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기에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조울증으로 고통스러웠던 때에 니체에 관한 것을 좀 접했었습니다. 니체 역시 외로움의 병을 앓았던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논리적 잣대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이 아님에도 꼬리를 무는 생각에 함몰되어, 단발적인 지적 쾌락으로는 자신의 감정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닌지.. 당시 그런 니체의 황폐한 삶에 '공감'이 되어 슬펐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나 사랑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공허함과 갈망에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삶은 언젠간 끝이 나고 허무하나 그럼에도 삶을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주체적인 낙관적 허무를 강조했다곤 하나, 그것을 스스로 행동하기에는 허무의 골이 깊었던 것이겠죠. 오히려 신이 있던 시절이 개인으로서는 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에 대한 무지를 처음 알게 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미가 자연의 섭리로부터 우연찮게 존재하게 된 별 것 아니라는 걸 인정하지 못해 괴로운 것 같아요. 자신이 잘나서 무언가가 된 것도 아니고 못나서 괴로운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연의 우연이 낳은 결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바라보면 삶이 무의미해 보이긴 합니다. 다만, 그렇기에 그런 신이 내린 운명에서 신을 비웃듯 발버둥 치는 것이 니체가 내린 결론이었겠죠. 하지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느끼며, 자신이 쫓던 진리가 스스로도 삶에 적용하는 게 어렵고 부정 당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떻게 하든 간에 신은 결국 자신을 죽이는 운명을 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겠죠. 그리고 그러한 무지 속에서 사람들 간의 고통을 주고 받는 모습이 괴로웠을 것 같아요. 결국 인간은 신도 짐승도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부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정신적 고통 속에서 죽어간 거겠죠. 우연이 있어서 니체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야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니체가 봤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세대가 다르니 그럴 수 없었겠지만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예나 주인이나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며 그런 자체가 도덕이라고 합리화 시키며 상대방은 "나쁜"이라고 단정지은게 원인이 되었지요.. 그러한 자기 중심적이 관념자체가 지금까지도 존재하며...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사랑하라 라는 이상적인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되지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진창에 빠진 말을 보고 흐느꼈던 것은 말과 자신의 동질감에서 나온 정신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상대방의 입장이 내 입장이 될 수도 있듯이..
부활이 없이 울부짖다가 짖이겨지는 것을 너무도 인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를 외면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에 한 때 매료되었던 나에 대하여 냉철하게 살펴보는 시각이 회피할 수 없었어요 실존주의는스스로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며 처절하도록 살려면 먼저 처절한 그 곳에서 무릎을 꿇어야겠다 싶습니다
신을 만나고 난 후 니체를 보니 그의 삶이 참 불쌍합니다 저도 한 때 니체의 철학을 신봉했던 사람이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의 철학은 자신의 약함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열등의식으로 발현된 수치심에 대한 반발심으로 탄생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는 말하나 강해지지 않으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자신을 용납할 수 없기에.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마부에게 그 생각에게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러나 신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약함과 강함 그리고 선함과 악함 또는 추함과 아름다움까지. 그 안에서 우리는 내 생각으로 이런 것들을 판단하는 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 선악과를 따먹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를 깨닫고 누리며 드디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김은영-z3x4q 신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이 스스로 옭아맨 법들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가장 큰 흠은 자신의 생각에 도착돼서 그 안의 굴레에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초월하려 애써야 하니 매순간이 죽을 노릇이겠죠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대로 헤아림을 받으리라 그것이 나 자신을 헤아리는 남을 헤아리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내 생각이라는 것을 깨칠 수 없다면 진정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도덕의 계보:선악의저편 이라는 책을 최근에 보았어요. 그게 니체의 원문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니체가 기존의 도덕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니체가 진창에 빠진 말을보고 그를 끌어안고 흐느낀것은 참 재미있네요 제 생각에 니체가 도덕의 기초를 새롭게 쓰고자 했다면, 내가아닌 다른것의 고통에 대하며 굳이 연민같은걸 느껴야 할 필요도 없을것같은데요 진창에 빠진 말을 보고 굳이 수고스러움을 마다하면서까지 말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낀것은 어떻게보면 정말로 자기모순적인것 같아요. 성경에나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해야 할 일 같은데.. 그런 도덕을 노예도덕이라고 주장한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게 정말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지금 도스토옢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문학책을 보고있는데 이 주제와도 연결되는것 같아요. 어쨌든 좋은영상 잘보고갑니당!
마지막 영화의 장면들이 인상에 오래 납습니다... 신을 죽이고도 신이 부여한 인생의 고통에 헤어나오지 못한 자. 그의 인생도 돌고돌아 다시 제자리에 멈추게 되는 수레 바퀴. 본인은 제자리를 돈 수레바퀴였지만 그 덕분에 수레는 그만큼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제자리에서 돌다 멈추게 되는 수레바퀴 같던 누군가의 삶도 삶을 문화를 시간을 전진 시킨 하나의 몸짓이 되었다.
니체의 생각을 단편적으로만 접하고, 흔한 낙천주의 같은 것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그렇기에 쇼펜하우어보다 니체가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일지도요.). 그리고 그것을 사회 내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비웃는 용도로 써먹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러나 니체를 깊이 이해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오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본능에 굴복해서 타자의 고통을 생성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그러한 이기적 본능에 강인하게 저항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자신의 모든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다 무의미한 짓일 것 같고 그런 고행을 때려치우고 싶은 유혹이 들더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실레노스의 지혜를 깨달은, 초인이 할 일입니다. 가령 아이를 낳은 사람이 니체를 운운하면서 타인을 훈계하는 건 지독한 넌센스라는 거지요.
ㆍ간절, 집중, 최선으로 매순간을 살아가고 ㆍ결과는 인정,수용,받아들이고 ㆍ2차로 펼쳐지는 인과를 잘 만들 기 위해서 ㆍ성냄, 분노, 슬픔을 자제하고 ㆍ긍정을 선택하여 그에따른 결과 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 한 생각 일어남 진실 아님 알고 그저 간절, 집중, 최선으로 살아 결과는 사회에 환원하고 미련없이 웃으며 죽읍시다 " 애초에 기준이 없으면 나머지는 생길 건덕지가 없지요 이데아, 현실은 둘이 아니잖아요 지금 있는 곳을 내가 이데아로 만들수 있고, 지옥으로도 만들수 있죠 언제나 펼쳐져 있는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어떠한 선택을 내가 함으로써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항상 좋은 강의 훌륭하십니다 💌💘💝💖LOVE 💚💜💛💞
@@yesno9065 유전병일수 있는 신경증 증세(아버지가 35세죽음)니체 본인도 아버지처럼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동안 건강한 적이 없던 육체(불면증으로 인한 약물과용 그리고 시력이 소멸해 가고 있었습니다등등) 그래서 니체 철학의 핵심이 건강성과 병리성의 구분인 것 같습니다 고통은 니체에게 실존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고통은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긍정과 자기극복이 그의 철학의 바탕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니체만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한계도 있지만요 니체의 책들은 자기 진화의 과정입니다 완성이 아닌 것이지요 위버맨쉬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마찬기지이고요 열심히 생각하고 정독하세요 니체는 피와 삶으로 글을 쓴다고 합니다 그의 말처럼 그는 다이너마이트가 되어 떠나 갔습니다
2주 뒤면 10학년이 되는 독일에서 유학 생활중인 중학생입니다. 졸업 프레젠테이션 시험 주제로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로 정하여 앞으로 약 2-3달간 준비를 해나갈 계획인데 이 영상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둘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인류에게 둘 중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노예의 것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타인이 타인에 대해서 지옥인 이유는 서로가 주인행세를 하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계적 인류사적 보편성을 획득한 것은 그의 윤리가 인류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니체의 주장이 상대적으로 히틀러 등 소수의 지지를 받은 이유가 있겠지요.-물론 니체의 사상이 나치즘에 부역했다는 건 아닙니다. 인류 전체로 본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노예의 윤리로 임하는 것이 세상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길인가 봅니다. 니체같은 생각을 가진 인간은 예수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인류가 예수의 가르침을 선택한 것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생각보다 집단지성은 똑똑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김필영 선생님 때라면(저포함) 우스개소리로 학적부 기록에 ‘개성이 강하고, 진취적, 자기주장이 뚜렷’ 이런 구절들이 들었다면 98%의 확률로 문제아였을 것이란 말이 있었던걸 아실 것입니다. 주인의 윤리와 상통하는 것들이죠. 선한 사람을 정의하라면 자기 안에 자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유교 기독교 이슬람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이죠. 스스로 구원하는 종교라는 불교도 자아라는 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탈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주인의 윤리보단 노예의 윤리가 더 인류문명에 보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에서 그런 윤리를 선택한 집단이 살아남은 것이겠죠. 주인의 도덕도 물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그 적용범위나 경우는 노예의 그것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어짜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혼자 살 수 없고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의 도덕이란 것은 다른 말로하면 타인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얘기입니다. 단순히 생각해서 서로가 주인행세하려는 집단과 서로가 노예를 자처하는 집단 중에서 당신은 어느 집단을 선택하겠습니까? 요즘 영상은 선생님의 그간 공부 후 깨달은 생각들이 많이 반영된 듯 합니다. 덕분에 좋은 콘텐트 소재를 얻었습니다. 차제에 영상으로 정리해서 답해보겠습니다.
니체는 토리노의 말을 껴안고 울며 어쩔수 없는 절망의 초인의 삶을 생각하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었지만 우리는 같이 진흙에 빠진 그 말을 나올 수 있도록 도와 팔이 없는 마부와 운명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그 딸을 깨우고 말을 일으켜 다시 짐을 나르며 그 삶에 지친 마부가 딸이 있으매 또 팔은 없지만 누군가에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눌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나부터 팔 걷어 부치기 소망해봅니다 !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잘못 이해하고 계시네요. 마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의미하는 것처럼 그런 구도로 설명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주인의 도덕이든 노예의 도덕이든 모든 것은 힘에의 의지의 발로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니체가 노예의 도덕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힘에의 의지가 병리적인 양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르상티망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겉으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숨어 있는 것은 바로 원한감정이라는 말이지요.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치켜세워서 정신적으로 승리를 취하는 모습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위선입니다. 노예들은 현실적으로 주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원한감정과 복수심으로 선과 악이라는 도덕을 만듭니다. (이때 노예는 약자의 메타포입니다.) 반면, 주인들은 강자이기에 원한감정이 없으며 좋음과 나쁨으로 도덕을 만듭니다. 노예들이 비록 겉으로는 도덕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주인과 똑같이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입니다. 그것도 원한과 복수심이라는 병리적인 모습으로요. 니체가 보기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고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실상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에 역행하는 도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힘에의 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죠.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힘의 상승, 강화와 지배를 추구하는데 자기 힘을 죽이라는 도덕은 말이 안된다는 거죠. 그런 도덕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대지를 경멸하는 도덕으로 사실은 약자들이 강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귀함으로 이기려는 복수심과 원한감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니체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은 원한감정과 복수심을 실제로 느끼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니체의 심리학자적인 면모가 보입니다. 니체는 프로이트 등장 이전까지 최고의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신도 선악의 저편에서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원한 감정이나 복수심은 의식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니체는 정동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무의식적인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노예도 주인도 아니거든요 이게 철학의 아주 심각한 문제에요 용어를 전제하고 거기에 갇혀 버리거든요 우리는 더 많은 의무를 질때 우리 인생의 주인이고 더 적은 의무를 질때가 노예나 한정치산자인것을 압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래도 최대로 주인-노예 코스플레이를 줄였어요
인간은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게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젊은시절 가지고 있든 신념 그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건 한 개인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종이 가진 생물학적 기제 때문인 것이죠.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한 인물들 중 젊은시절과 중년시절과 오래 산 사람이라면 나이 들었을때 그들의 시각이나 신념이 달라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나이들어 병들거나 달라지는 건 나약한것이 아닙니다. 자연 스러운 것이지요. 이걸 모르는 분들은 아직은 젊은 분 이신 거라고 생각 됩니다.
끝도 없이 독립적이고 끝도 없이 주체적으로 살고자하면 니체의 철학에 도달하게 되는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라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며 의존하고 나의 모든 행동이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절대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죠. 아무리 많은 권력과 힘을 가졌어도 지구반대편 어느한 아기의 울음소리에도 금방 죽어버릴 수 있는게 인간입니다. 즉 절대 위버맨쉬가 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거 같아요. 니체도 모두가 위버맨쉬가 될 수없는 현실을 사랑하려하니(아모르파티) 세상이 미웠을거 같아요. 그래서 미처버린 상태로 현실을 살다간게 아닐까요?
저는 어릴 때 니체의 글을 접하마마자 엉엄 울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난감한 지경의 말을 부둥켜 안고 울고있던 니체를 보고 엉엉 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ᆢ 어쨌든 니체는 신에게 나를 어떻게든 해 달라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가끔 스칩니다 오감 뿐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망과 야망을 확인하려는 인간은 자칫 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질 가능성이 많겠지요 무엇인가 하려는 성급한 인간은 항상 신을 제껴버리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버릴수도 있지요 인간은 한 참 뒤에 무죄한 자의 죽음의 피흘림을 알게 되지요
'신'이라는 초월자에 지나치게 천착하고 애착을 가진 것 같네요, 니체는.. 그러다보니 '신'이 아니면 그에 해당하는 '초인'이 필요했고 극단을 오가는 사유는 극단적 정신세계와 통하는 경우가 많죠. '강을 지나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라고 붓다는 말했는데 니체는 '신'이라는 뗏목을 계속 질질 끌고다녔군요. 다양한 옷을 갈아 입히며 .. 그 넘의 뗏목이 그렇게도 내려놓기 버거웠나봅니다. 적어도 100여년 전의 서양인들에게는..... 헤겔도 그런 것 같아요, 초기의 불교에 대한 무관심에서 점차 엄청난 관심을 보이다가 결국 말년에는 불교이론이 자기 이론의 핵심인 원심성(단일성) 이론을 해체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 의식적으로 다시 불교를 폄하하죠.(힘도 없고 여성적이라며). 2000년간 문화적 원형심상을 제공해준 신앙체계가 주는 무게감이 19세기 유럽인들에게는 굉장히 컸던 것 같아여.
의 광인에 관한 아포리즘에서 볼 수 있듯이, 니체는 신은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죠. 이때,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에서 신은 창조자로서의 신을 말합니다. 인간이 가치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니체는 인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창조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재창조를 거듭합니다.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생각도, 그것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자처할 때 조차도, 힘에의 의지가 만들어낸 창조적 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창조자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신에 의해서 그 특성이 억압되어 왔다는 것이죠. 이처럼 니체가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신'은 절대성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 가치 창조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니체가 철저하게 부정한 신(모든 이념, 관념, 자명성들 포함)은 절대적 실체가 존재하며 인간의 창조성을 억압하는 것들입니다. 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지만 신의 그림자를 지우는데 까지는 수 세기가 걸릴거 같다고 했습니다. 니체는 그런 신의 그림자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 아포리즘에서 불교를 메타포로 사용합니다. 불교에서 떠받드는 불상들도 모두 신의 그림자라고 했죠.) 니체는 신이 죽었으니 그 대신에 초인을 신의 절대적 지위로 올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가치와 이념을 제시하는 신이 죽었으니 이제는 각자가 자신들의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신이 또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초인이 만드는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관점적이며 삶의 유용성을 위해 창조된 것들입니다. 기존의 신과는 다른 신이자 초인입니다. 그리고 니체와 붓다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만물은 모두 변화한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둘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붓다는 해탈을 이야기한 반면,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세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관점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으로 다른 하나의 관점을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설명이신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인간은 자신들이 결국 겪게 되는 고통과 불편함을 설명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 종교나, 철학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 종교나 철학이 반대로 인간을 지배해 온것이죠. 각각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답이 완벽한 답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9분 55초 내용의 의미라면 전 조금 다르게 이해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시대 물은 어디론가 없어졌고 천주교에서 말하는 평평한 지구가 인간의 탐험에의해 사라졌다. 라는 의미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신이 이룬 일을 망쳤다. 라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제가 틀릴수도 있고 아직 배울게 많은 사람이지만 약소하게 끄적이고 갑니다. 5분뚝딱철학 좋아요 꾹 누르고가요.❤
@@heeslee3610 저분이 전도사인가요 저분을 아시나요 ? 저런것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전도사 즉 무식한놈들입니다 저분은 못난 기독교인입니다 니체의 철학에서 왜 노아의 사건이 나오며 평평한 지구라는 개념이 나오는겁니까 저사람은 수학시간에 국어를 말하고 국어 시간에 수학을 말하는 판을 깨는 무식자 같습니다 가만이 있으면 중간은 갈텐데 어이하여 노아의 방주를 들먹이며 기독교인인체를 할까요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하는 말처럼 만일 저사람이 전도사라면 저분이 오늘날 니체에게 Ko당한 무식한 기독교의 대명사일것입니다
니체가 신의 머리를 망치로 깨뜨렸다고 했으니까 귀하는 철학적 실력으로 니체의 머리를 깨뜨리면 되는데 오늘날 세계 신학자들중에 니체를 깨뜨릴 실력자가 있을까요 맨날 믿습니까 아멘하라고 지껄이는 곳이 교회아닙니까 오늘날 현대신학은 생성과 소멸의 아리스토텔레쓰의 철학속에 갇혔습니다 칼빈과 루터는 어거스틴으로 회귀했는데 오늘의 세계교회는 다시 반루터 반칼빈의 아리스토텔레쓰의 철학으로 들어가서 신학박사 새끼들이 전부 변질된 하이데꺼의 제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땅에서 최고로 무식한놈들이 기독교 신학박사들입니다 인간이 신이 이룬 업적을 망쳤다고 탄식하지 말고 니체 백마리가 똥피리를 불어도 창조주는 살아있다는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하세요 기독교인들이 니체한마리를 이기지못하는것 그것자체가 썩어버린 기독교인것입니다
무슨 뚱단지 같은 무식한말을 하는겁니까 지구가 평평하다니요 ? 지구는 둥글지만 일부에서 평평하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문제와 니체와는 아무연관이 없습니다 니체는 자연을 스피노자처럼 일자신으로 보았고 뱀새끼 신학박사 화이트헤드처럼 신은발전해 나아가며 신은 시간과 공간속에 너와 나로 엮여진 유기체로 보았습니다 현대신학은 우주라는 영역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버렸고 니체는 우주자체를 설악산 최고의 절정기의 단풍보다 천배나 황홀한 환상 또는 생명으로 보았습니다 예도 철학에 들어가보면 니체는우주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황홀한 신으로 바라본것입니다 백번을 말해도 귀하와 목사와 신학자들은 이해못합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철학자들의 똥구멍을 빠는 똥벌레들입니다 그러니까 귀하는 전도사 때려치우고 오분뚝딱에 들어가서 예도님의 발을 씻어주면서 삼년동안 배워야 훌륭한 목사가 될것입니다
오분철학은 니체에 먹혀버리지 아니한 훌륭한 철학자입니다 세계의 최고의 신학자들은 거의가 니체와 하이데꺼와 헤겔에게 먹혀버린놈들인데 그래도 오분뚝딱은 신학자들보다 세수 위를바라보는 철학자입니다 귀하가 만일 신학교에서 뛰쳐나와서 오분뚝딱을 배운다면 귀하는 21세기의 빛나는 목사가될것입니다 그대들이 너무 무식하기때문에 내가 존경어를 쓰지않고 목사와 신학자들에게 이놈 저놈 개새끼라는 거친 용어를 씁니다 아시아 신학교에서 헤겔을 위대한 신학자로 보고 세계고회에서 뱀새끼 화이트헤드에게 사탄의 새끼라고 평하지 않는 썩어빠진 세상이되었으믄로 내가 거친용어를 쓸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니체를 사랑했죠 그를 창조주로써 책임져야 했기에 사링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기에 사랑했던거죠 허우적거리는 말을 감싸안고 엉엉 울었던 것은 니체였죠 죽여도 죽여도 죽을 수 없었던 그 때 그 니체를 통해 니체와 함께 신께서 엉엉 울었던 거죠 신을 본 자는 없으나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함께한 무슨 선한 것이 나사렛에서 나온다는 말이냐? 생김새나 배경적으로 흠모할만한 것이 조금도 없었던 바로 나사렛 예수이셌을 겁니다
세상에 완벽한 개념이 없다는게 저는 진짜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먹고 자고 싸게 진화해온 생명체거든요.. 이 생존을 목적으로 의식과 지능이 발달해 온것이니... 절대적인 선과 악 도덕관념은 사실 생명의 속성이 될수 없어요 우리는 항암제로 감기를 고치지 못하고 항생제로 암을 고치지 못하고 항암제와 항생제를 밥대신 먹고 사는것이 아니죠. 다 적당하게 환경과 상황에 맞추어서 필요한것을 만들고 소비하며 사는거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철학자 선각자들의 사상을 탐구해 보는게 유익하죠 중용, 중도 이런 개념이 중요한거 같아요
주인의도덕을 주창해서 위버맨쉬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가.그 초인의 삶인 운명을 개척한 삶은 목표달성과 도전정신을 키울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영원회귀되도 사랑스런 운명이 되는건 아니다. 진정한 운명의 사랑은 자신의 개척이 아닌 이타와 함께 선한 삶을 살때 영원회귀되도 거부하지 않는 삶으로 느낄것이다 바로 노예의 도덕이 그것이다 말이 니체를 깨닫게 만들었다.
난 군대에 맞는 사람은 아니었음. 그래서 소위 말하는 고문관이라 불리었지. 근데 고참이 되고, 내 위에 있는 놈들 숫자가 줄어드니 내가 들이받아 버렸지. 결국 내가 이겼음. 근데 고참이 되고 나니까 난 내 밑 친구들을 전혀 터치하지 않았음. 어차피 군대라는게 2년 6개월이면 끝나는 거고, 무난하게 끝내는게 장땡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후임들에게 좋은 후임이 되었지. 난 내가 봐도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되는 일에도 눈을 감았음. 난 무사한 제대 외엔 전혀 관심없었으니까. 근데 내 후임들은 날 성인군자라 생각하고, 좋은 선임이라 생각하더라. 내가 좋은 선임이었을까? 그냥 보신주의자였을까?
.9세기 임제선사는 隨處作主 入處皆眞 ‘머무는 곳마다....👌👌👌 니체가 망치를 다루는 법을 19세기에 알았으니 ......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석가모니는 파사현정 ( 破 邪 顯 正 ) 금강으로 만든 망치를 휘어잡고 일찍이 신은 죽었다고 한소식 했는데.......쯔쯔 니체는 이천년후...! 5분뚝딱 철학 늘 감사하는 맘으로 경청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독백) 니체가 말하는 초인간이기보다는 현실에 발 붙인 주제파악하는 사람이고 싶다.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또 어떤가? 살려고 애쓰는 것도 한 때 뿐이라는 것을 어떤 생명들은 진실로 깨닫기도 하던데. 타의로 태어난 나는(피투된) 하루하루가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바란다. ================ 사족) 니체는 초인이 되기 전에 고통에 미쳐버렸고, 예수는 신의 아들이 되어 타인의 등불이 되었네. 주인의 도덕, 노예의 도덕보다는 아리스토텔이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장한 덕윤리를 알고 싶습니다. 5분 뚝딱으로 부탁드립니다.~ ^^
어디서 내가 신의 후계자라고 하면서 정신병원에 갖혔다는 예기는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짜라투스투라만 보았을때는 니이체는 인류를 구하러 온사람이지..또한번의 인류 멸망을 경험하지 않기위해서 성경이 얼마나 무서운책인지도 모르고 교회를 다니사람들이 있어요. 자기가 믿는 신이 어떤건지도 모르고.. 인류 멸망과 심판을 말하는 요한계시록으로 결론을 내는게 성경책이요. 미치지 않고서야 멸망의 신을 이시대에 믿는게 마땅한가요.. 사람들이 무감각해졌어요. 그러고 다니든 말든 너는 떠들어라 ... 그러다가 다시 신이 지배하는 시대로 떨어질지 어떻게 장담해요. 정말 신을 목숨바처 믿는 저 이슬람국가들이 만군의 여호와로 하나로 뭉처서 이세상이 안전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니이체는 인류를 구하러온 사람이에요.. 그러나 니이체의 군대는 초라하고 여호와의 군대는 여전히 막강했지요. 그리고 이차대전이 터지고 사람들이 다시 자성으로 돌아가고 실존주의 운동이 일어난거에요.. 지금까지도 니이체와 여호와 싸움은 진행중이요.
3:53 저는 다른 시대상이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봅니다. 소크라테스 시절에는, 사람들이 거만해서 콧대를 눌렸어야 됬을거고, 니체 시절은 ‘자유’를 보다 존중 및 갈망하는 시대 였기에, 둘의 관점이 달랐을거라 생각합니다. 니체는 부정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였구나 ㅋㅋㅋ 소크라테스를 보는 관점이 하나에 갇혀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짓이 증거가 될 수 있지요 직접 당사자가 용서를 하든 안하든지 간에 직접적으로 용서의 권한이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 우린 자격이 없지요 당사자에게 용서조차 구하지 못하는 위선과 무능력의 인간들이니까요
니체는 세상에 어떠한 절대적 가치도 없다고 외치며 신을 죽였지만 정작 우리에겐 니체와 허무주의가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니체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만큼 초인과 거리가 먼 사람이 또 있을까요? 부처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죽이란 말처럼 이제 니체를 만났으니 니체를 죽일 차례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니체는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라.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처럼 말이죠.
니체ㅡ자기도 감당못 할 삶의 무게를 다른사람의 어깨에 얹어늫고, 피할 구멍을 막아놓고 간 철학계의 교주
천마신교 그 자체
니체가 말의 목을 잡고 운 이유에 대한 설명이 너무 그럴 듯합니다. 저 역시 니체의 운명애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반론이 떠올랐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진흙 쿠키를 먹는 아이티 난민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하고요.
피안의 세계를 구하는 것을 니체는 허무주의라고 했지만, 사실 내세에 대한 기대만이 이 현실의 유일한 희망인 이들에게 그러한 종교마저 빼앗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 정말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은 오직 이것 하나 뿐이기에
최선을 다 합시다.
영원회귀를 주장한 니체의 영상과는 상반되지 않나요?
@@whoisthismilkanyway 무한히 반복되는 그 인생도 결국 하나입니다.
@@추상인간 뭐 하나라고 할 수도 있고 반복될때마다 처음이라고 느끼니깐 하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죠😊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의미가 적멸해 모두 평등하다
약일즉다다일즉 의미적멸실평등
여운이 많이 남는 영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초인과 같은 강인함을 강조했지만 정작 허우적 거리는 말처럼 평탄하지 않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니체! 어쩌면 오늘 날 삶에 허덕이지만 그래도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기에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 안에 신성이 있고 지금의 인생은 여행이죠. 여행을 할 때 중요한 건 그 순간 순간을 즐기는 거라 봅니다.
저항할 수 없는 썸네일, 도망칠 수 없는 20분
저를 또다시 노예로 만드셨네요.
니체를 들으며 노예가 되는 우리라니..
이런 노예는 좋은 걸지도
인생을 의미있게, 얽매임없이 자유롭게 😊
조울증으로 고통스러웠던 때에 니체에 관한 것을 좀 접했었습니다. 니체 역시 외로움의 병을 앓았던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논리적 잣대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이 아님에도 꼬리를 무는 생각에 함몰되어, 단발적인 지적 쾌락으로는 자신의 감정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닌지.. 당시 그런 니체의 황폐한 삶에 '공감'이 되어 슬펐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나 사랑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공허함과 갈망에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삶은 언젠간 끝이 나고 허무하나 그럼에도 삶을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주체적인 낙관적 허무를 강조했다곤 하나, 그것을 스스로 행동하기에는 허무의 골이 깊었던 것이겠죠. 오히려 신이 있던 시절이 개인으로서는 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에 대한 무지를 처음 알게 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미가 자연의 섭리로부터 우연찮게 존재하게 된 별 것 아니라는 걸 인정하지 못해 괴로운 것 같아요. 자신이 잘나서 무언가가 된 것도 아니고 못나서 괴로운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연의 우연이 낳은 결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바라보면 삶이 무의미해 보이긴 합니다. 다만, 그렇기에 그런 신이 내린 운명에서 신을 비웃듯 발버둥 치는 것이 니체가 내린 결론이었겠죠. 하지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느끼며, 자신이 쫓던 진리가 스스로도 삶에 적용하는 게 어렵고 부정 당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떻게 하든 간에 신은 결국 자신을 죽이는 운명을 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겠죠. 그리고 그러한 무지 속에서 사람들 간의 고통을 주고 받는 모습이 괴로웠을 것 같아요. 결국 인간은 신도 짐승도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부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정신적 고통 속에서 죽어간 거겠죠. 우연이 있어서 니체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야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니체가 봤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세대가 다르니 그럴 수 없었겠지만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js2ml1yn2b하아.. 눈치좀
@user-js2ml1yn2b하아.. 눈치 좀 챙기자..
뭐라 했어요?@@ehgugu
노예나 주인이나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며 그런 자체가 도덕이라고 합리화 시키며 상대방은 "나쁜"이라고 단정지은게 원인이 되었지요..
그러한 자기 중심적이 관념자체가 지금까지도 존재하며...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사랑하라 라는 이상적인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되지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진창에 빠진 말을 보고 흐느꼈던 것은 말과 자신의 동질감에서 나온 정신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상대방의 입장이 내 입장이 될 수도 있듯이..
개인적으로 채널주님 정말 존경합니다 철학에 관심이 생겼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랐을 때 이 채널이 제일 도움이 된 매체입니다 너무 재밌고 흥미롭네요
결국 니체가 보이는 세계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
부활이 없이 울부짖다가 짖이겨지는 것을
너무도 인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를 외면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에 한 때 매료되었던 나에 대하여 냉철하게 살펴보는 시각이 회피할 수 없었어요
실존주의는스스로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며 처절하도록 살려면
먼저
처절한 그 곳에서 무릎을 꿇어야겠다 싶습니다
신을 만나고 난 후 니체를 보니 그의 삶이 참 불쌍합니다 저도 한 때 니체의 철학을 신봉했던 사람이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의 철학은 자신의 약함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열등의식으로 발현된 수치심에 대한 반발심으로 탄생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는 말하나 강해지지 않으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자신을 용납할 수 없기에.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마부에게 그 생각에게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러나 신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약함과 강함 그리고 선함과 악함 또는 추함과 아름다움까지. 그 안에서 우리는 내 생각으로 이런 것들을 판단하는 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 선악과를 따먹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를 깨닫고 누리며 드디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니체는 멈출 수 없었나 봅니다
견딜 수 없도록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짐작되는 것이 역설적으로 노리고 있었던 것은 분명 도저히 죽일 수 없는 신에게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김은영-z3x4q 신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이 스스로 옭아맨 법들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가장 큰 흠은 자신의 생각에 도착돼서 그 안의 굴레에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초월하려 애써야 하니 매순간이 죽을 노릇이겠죠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대로 헤아림을 받으리라
그것이 나 자신을 헤아리는 남을 헤아리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내 생각이라는 것을 깨칠 수 없다면 진정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도덕의 계보:선악의저편 이라는 책을 최근에 보았어요. 그게 니체의 원문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니체가 기존의 도덕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니체가 진창에 빠진 말을보고 그를 끌어안고 흐느낀것은 참 재미있네요
제 생각에 니체가 도덕의 기초를 새롭게 쓰고자 했다면, 내가아닌 다른것의 고통에 대하며 굳이 연민같은걸 느껴야 할 필요도 없을것같은데요
진창에 빠진 말을 보고 굳이 수고스러움을 마다하면서까지 말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낀것은 어떻게보면 정말로 자기모순적인것 같아요.
성경에나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해야 할 일 같은데.. 그런 도덕을 노예도덕이라고 주장한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게 정말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지금 도스토옢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문학책을 보고있는데 이 주제와도 연결되는것 같아요. 어쨌든 좋은영상 잘보고갑니당!
진짜 철학은 알면 알수록 재밌다
마지막 영화의 장면들이 인상에 오래 납습니다...
신을 죽이고도 신이 부여한 인생의 고통에 헤어나오지 못한 자.
그의 인생도 돌고돌아 다시 제자리에 멈추게 되는 수레 바퀴.
본인은 제자리를 돈 수레바퀴였지만
그 덕분에 수레는 그만큼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제자리에서 돌다 멈추게 되는 수레바퀴 같던 누군가의 삶도
삶을 문화를 시간을 전진 시킨 하나의 몸짓이 되었다.
니체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
니체의 생각을 단편적으로만 접하고, 흔한 낙천주의 같은 것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그렇기에 쇼펜하우어보다 니체가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일지도요.). 그리고 그것을 사회 내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비웃는 용도로 써먹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러나 니체를 깊이 이해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오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본능에 굴복해서 타자의 고통을 생성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그러한 이기적 본능에 강인하게 저항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자신의 모든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다 무의미한 짓일 것 같고 그런 고행을 때려치우고 싶은 유혹이 들더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실레노스의 지혜를 깨달은, 초인이 할 일입니다. 가령 아이를 낳은 사람이 니체를 운운하면서 타인을 훈계하는 건 지독한 넌센스라는 거지요.
그냥 니체의 생각이 별거 없어요. 님이 말한 내용정도는 니체를 안읽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사패가 아닌 이상 도덕이라는 것이 실천이 어렵지 몰라서 안지키는게 아니죠. 내가 보기에 과거 철학자들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그냥 허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johnna3385 솔직히 니체니 철학이니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애초에 진짜로 "알고싶은" 생각도 없을거고 (본인도 속으로는 자기가 그렇다는 거 아시죠?) 괜히 남 댓글에서 상대방 인신공격이나 하는 분에게는 똑같이 해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ㆍ간절, 집중, 최선으로 매순간을
살아가고
ㆍ결과는 인정,수용,받아들이고
ㆍ2차로 펼쳐지는 인과를 잘 만들
기 위해서
ㆍ성냄, 분노, 슬픔을 자제하고
ㆍ긍정을 선택하여 그에따른 결과
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
한 생각 일어남 진실 아님 알고
그저 간절, 집중, 최선으로 살아
결과는 사회에 환원하고
미련없이 웃으며 죽읍시다 "
애초에 기준이 없으면 나머지는
생길 건덕지가 없지요
이데아, 현실은 둘이 아니잖아요
지금 있는 곳을 내가 이데아로 만들수 있고, 지옥으로도 만들수
있죠
언제나 펼쳐져 있는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어떠한 선택을 내가 함으로써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항상 좋은 강의 훌륭하십니다
💌💘💝💖LOVE 💚💜💛💞
니체 관련 서적 영상은 절대 지나칠 수 없죠..!!! 언제나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 역시 철학은 재밌게!
철학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된다고 말할 수 없지만
가볍게 할 수 있는 철학이 있을까 싶습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철학이 철학 그 자체에 머물러 행세하게되면
그것은 이미 죽은 철학이겠지요
그렇게 쎈척했던 니체는 자신 스스로도 살로메나, 마부의 채찍으로 부터 받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수가 없음
읽어보고 말하셈
니체 책 한권이라도 읽었으면
그런말 못함
@@정아각 3~4년 동안 본다고 봤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되네요. 이데아가 없다는 단정은 그렇다 치고, 그의 철학이나 주장은 이해하겠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삶은 왜 그랬을까 하는 거죠. 나의 잘 못된 분석의 수정을 부탁 드려요
@@yesno9065 유전병일수 있는 신경증 증세(아버지가 35세죽음)니체 본인도 아버지처럼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동안 건강한 적이 없던 육체(불면증으로 인한 약물과용 그리고 시력이 소멸해 가고 있었습니다등등) 그래서 니체 철학의 핵심이 건강성과 병리성의 구분인 것 같습니다 고통은 니체에게 실존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고통은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긍정과 자기극복이 그의 철학의 바탕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니체만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한계도 있지만요 니체의 책들은 자기 진화의 과정입니다 완성이 아닌 것이지요
위버맨쉬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마찬기지이고요 열심히 생각하고 정독하세요 니체는 피와 삶으로 글을 쓴다고 합니다 그의 말처럼 그는 다이너마이트가 되어 떠나 갔습니다
니체의 글을 읽으면서 뿌연 안개처럼 이해했던 내용이 이 영상을 보면서 맑은 하늘처럼 선명해졌어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인데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칸트 철학을 좋아하지만 니체도 볼수록 상당히 매력적이네요!
철학의 궁극은 광기 아니면 허무주의 아니면 체념? 여기서 좀 더 나가면 불교, 더 나가면 다시 신 앞에 선다.
니체는 진짜 신에게 발견되고 싶었던 겁니다
이렇게 당신에게 덤벼서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겠지만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하고 더욱 절망케하는데
나를 이대로 놔둘거냐구요?!!!
감사합니다. 의미없는삶이지만 의미를 찾아가는 삶 어쩌면 실존주의랑 비슷한 면이 있네요
2주 뒤면 10학년이 되는 독일에서 유학 생활중인 중학생입니다. 졸업 프레젠테이션 시험 주제로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로 정하여 앞으로 약 2-3달간 준비를 해나갈 계획인데 이 영상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둘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인류에게 둘 중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노예의 것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타인이 타인에 대해서 지옥인 이유는 서로가 주인행세를 하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계적 인류사적 보편성을 획득한 것은 그의 윤리가 인류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니체의 주장이 상대적으로 히틀러 등 소수의 지지를 받은 이유가 있겠지요.-물론 니체의 사상이 나치즘에 부역했다는 건 아닙니다. 인류 전체로 본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노예의 윤리로 임하는 것이 세상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길인가 봅니다. 니체같은 생각을 가진 인간은 예수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인류가 예수의 가르침을 선택한 것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생각보다 집단지성은 똑똑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김필영 선생님 때라면(저포함) 우스개소리로 학적부 기록에 ‘개성이 강하고, 진취적, 자기주장이 뚜렷’ 이런 구절들이 들었다면 98%의 확률로 문제아였을 것이란 말이 있었던걸 아실 것입니다. 주인의 윤리와 상통하는 것들이죠.
선한 사람을 정의하라면 자기 안에 자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유교 기독교 이슬람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이죠. 스스로 구원하는 종교라는 불교도 자아라는 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탈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주인의 윤리보단 노예의 윤리가 더 인류문명에 보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에서 그런 윤리를 선택한 집단이 살아남은 것이겠죠. 주인의 도덕도 물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그 적용범위나 경우는 노예의 그것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어짜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혼자 살 수 없고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의 도덕이란 것은 다른 말로하면 타인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얘기입니다. 단순히 생각해서 서로가 주인행세하려는 집단과 서로가 노예를 자처하는 집단 중에서 당신은 어느 집단을 선택하겠습니까?
요즘 영상은 선생님의 그간 공부 후 깨달은 생각들이 많이 반영된 듯 합니다. 덕분에 좋은 콘텐트 소재를 얻었습니다. 차제에 영상으로 정리해서 답해보겠습니다.
똑바로 이해하고 답글 다신분이 이분밖에 없네 ㅋㅋ
@@돈까스-p1m 그러네요..^^😁😊
니체는 토리노의 말을 껴안고
울며 어쩔수 없는 절망의 초인의 삶을 생각하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었지만
우리는 같이 진흙에 빠진 그 말을 나올 수 있도록 도와 팔이 없는 마부와 운명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그 딸을 깨우고 말을 일으켜 다시 짐을 나르며
그 삶에 지친 마부가 딸이 있으매 또 팔은 없지만 누군가에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눌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나부터 팔 걷어 부치기 소망해봅니다 !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잘못 이해하고 계시네요. 마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의미하는 것처럼 그런 구도로 설명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주인의 도덕이든 노예의 도덕이든 모든 것은 힘에의 의지의 발로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니체가 노예의 도덕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힘에의 의지가 병리적인 양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르상티망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겉으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숨어 있는 것은 바로 원한감정이라는 말이지요.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치켜세워서 정신적으로 승리를 취하는 모습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위선입니다. 노예들은 현실적으로 주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원한감정과 복수심으로 선과 악이라는 도덕을 만듭니다. (이때 노예는 약자의 메타포입니다.) 반면, 주인들은 강자이기에 원한감정이 없으며 좋음과 나쁨으로 도덕을 만듭니다. 노예들이 비록 겉으로는 도덕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주인과 똑같이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입니다. 그것도 원한과 복수심이라는 병리적인 모습으로요. 니체가 보기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고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실상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에 역행하는 도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힘에의 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죠.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힘의 상승, 강화와 지배를 추구하는데 자기 힘을 죽이라는 도덕은 말이 안된다는 거죠. 그런 도덕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대지를 경멸하는 도덕으로 사실은 약자들이 강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귀함으로 이기려는 복수심과 원한감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니체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은 원한감정과 복수심을 실제로 느끼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니체의 심리학자적인 면모가 보입니다. 니체는 프로이트 등장 이전까지 최고의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신도 선악의 저편에서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원한 감정이나 복수심은 의식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니체는 정동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무의식적인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노예도 주인도 아니거든요 이게 철학의 아주 심각한 문제에요 용어를 전제하고 거기에 갇혀 버리거든요
우리는 더 많은 의무를 질때 우리 인생의 주인이고 더 적은 의무를 질때가 노예나 한정치산자인것을 압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래도 최대로 주인-노예 코스플레이를 줄였어요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고백을할때 부르짖으면서 하잖아요
스스로 기독교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을 부정하니 스스로 자아가 붕괴된거 아닐까요?
자신이 살았던 세계관을 부정해야하니….
그냥 지나가던 사람의 귱금증이였습니다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든다"는 역설.
아직도 어렵긴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소중하게 들으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이십니다~~
와 요즘 니체에 대해서 공부 중인데 감사합니다!
야~진짜 훌룡한 강의입니다.토씨하나도 안놓치고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몇번 더 들어볼 생각입니다^~^
오늘도 정말 도움 되는 영상이네요.
이렇게 영상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매불쇼 박사님이시당~^^ 이끌어준 알고리즘 땡큐~ 오늘 알게되어 시청중인데. 정말 좋으네요. 구독~^^
소크라테스는 파면 팔수록 그시대 인물들이 빡칠만했다고 느껴지네
감사합니다 늘 큰 깨우침을 주십니다 🙏👍👍
와우.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썸네일.
드디어 통합편!!
감사합니다 ^^
니체가 어찌 자신의 철학을 만들고서 말년에 자신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스스로 나약한 인간이 되버렸는데, 니체에 빠지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인간은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게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젊은시절 가지고 있든 신념 그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건 한 개인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종이 가진 생물학적 기제 때문인 것이죠.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한 인물들 중 젊은시절과 중년시절과 오래 산 사람이라면 나이 들었을때
그들의 시각이나 신념이 달라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나이들어 병들거나 달라지는 건 나약한것이 아닙니다. 자연 스러운 것이지요.
이걸 모르는 분들은 아직은 젊은 분 이신 거라고 생각 됩니다.
@@1stepofall918 이해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버멘쉬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말년에 부정하게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니체의 사상과 니체 개인의 현실모습은 많이 달랐습니다. 니체의 사상을 흠모해서 니체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자신이 상상하던 모습과 너무 달라 놀랏죠.
어쩔 수 없으니 결국 사랑해야 한다는 선택은 옳음을 떠나, 이 비참한 결론에 있어서 필수라는 것이다. 라고 저는 해석했는데 맞을까요?
신이 존재 하든, 죽었든. 인간의 삶은 진창을 허우적 대며 채찍을 맞는 말과 같군요…
끝도 없이 독립적이고 끝도 없이 주체적으로 살고자하면 니체의 철학에 도달하게 되는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라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며 의존하고 나의 모든 행동이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절대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죠. 아무리 많은 권력과 힘을 가졌어도 지구반대편 어느한 아기의 울음소리에도 금방 죽어버릴 수 있는게 인간입니다. 즉 절대 위버맨쉬가 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거 같아요. 니체도 모두가 위버맨쉬가 될 수없는 현실을 사랑하려하니(아모르파티) 세상이 미웠을거 같아요. 그래서 미처버린 상태로 현실을 살다간게 아닐까요?
뜻깊은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10:23 이 생각났습니다. "오 여호와여,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5분만에 니체 얘기를 한다고? 하면서 들어왔더니 20분인거시예요… 왜 5분 뚝딱 철학이예요 20분 뚝딱이잖아요 흑흑
5분 곱하기 4가 되니 괜찮을지도.. ㅋㅋ
ua-cam.com/video/6rp61JGbU_Q/v-deo.html 신을 이해하는 명상입니다.
니체는 너무 슬픔...눈물이 자꾸 남...
니체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
니체의 글을 접하마마자 엉엄 울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난감한 지경의 말을 부둥켜 안고 울고있던 니체를 보고 엉엉 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ᆢ
어쨌든
니체는 신에게 나를 어떻게든 해 달라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가끔 스칩니다
오감 뿐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망과 야망을 확인하려는 인간은
자칫
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질 가능성이 많겠지요
무엇인가 하려는 성급한 인간은 항상 신을 제껴버리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버릴수도 있지요
인간은 한 참 뒤에 무죄한 자의 죽음의 피흘림을 알게 되지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왜 니체는 현실세계가 진짜 세계라고 생각했는지 설명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고시죠👏👏👏 고맙습니다
생명의 본질은 “고통” 이고 거기에 양념과 치장을해서 시간을 보내는것이 인간이고 삶이라고 믿게 되었어요 😢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항상 영감을 주시네요 🙏
우와 진짜 대단하십니다. 짧은 영상으로 정말 이해가 잘 되게 정리를 잘 해주시네요
표현하자면 온전히 나의 생각과 느낌으로 자신만의 가치관과 타인의 가치관을 바라보고 계속 그 가치관이 어떻게 보여지고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생각하는거임.그리고 공동 압력에 좀 저항하는거.
🩵Good bye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안녕히 잘가요 니체 님 .
❤さよなら様。
편집이 꽤 재밌었어요. 잘 봤습니다.
니체의 마초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철학이라 너무 마음에듭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철학을 철학으로서가 아닌 삶으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영상이네요
'신'이라는 초월자에 지나치게 천착하고 애착을 가진 것 같네요, 니체는.. 그러다보니 '신'이 아니면 그에 해당하는 '초인'이 필요했고 극단을 오가는 사유는 극단적 정신세계와 통하는 경우가 많죠. '강을 지나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라고 붓다는 말했는데 니체는 '신'이라는 뗏목을 계속 질질 끌고다녔군요. 다양한 옷을 갈아 입히며 .. 그 넘의 뗏목이 그렇게도 내려놓기 버거웠나봅니다. 적어도 100여년 전의 서양인들에게는..... 헤겔도 그런 것 같아요, 초기의 불교에 대한 무관심에서 점차 엄청난 관심을 보이다가 결국 말년에는 불교이론이 자기 이론의 핵심인 원심성(단일성) 이론을 해체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 의식적으로 다시 불교를 폄하하죠.(힘도 없고 여성적이라며). 2000년간 문화적 원형심상을 제공해준 신앙체계가 주는 무게감이 19세기 유럽인들에게는 굉장히 컸던 것 같아여.
의 광인에 관한 아포리즘에서 볼 수 있듯이, 니체는 신은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죠. 이때,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에서 신은 창조자로서의 신을 말합니다. 인간이 가치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니체는 인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창조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재창조를 거듭합니다.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생각도, 그것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자처할 때 조차도, 힘에의 의지가 만들어낸 창조적 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창조자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신에 의해서 그 특성이 억압되어 왔다는 것이죠. 이처럼 니체가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신'은 절대성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 가치 창조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니체가 철저하게 부정한 신(모든 이념, 관념, 자명성들 포함)은 절대적 실체가 존재하며 인간의 창조성을 억압하는 것들입니다. 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지만 신의 그림자를 지우는데 까지는 수 세기가 걸릴거 같다고 했습니다. 니체는 그런 신의 그림자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 아포리즘에서 불교를 메타포로 사용합니다. 불교에서 떠받드는 불상들도 모두 신의 그림자라고 했죠.)
니체는 신이 죽었으니 그 대신에 초인을 신의 절대적 지위로 올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가치와 이념을 제시하는 신이 죽었으니 이제는 각자가 자신들의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신이 또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초인이 만드는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관점적이며 삶의 유용성을 위해 창조된 것들입니다. 기존의 신과는 다른 신이자 초인입니다.
그리고 니체와 붓다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만물은 모두 변화한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둘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붓다는 해탈을 이야기한 반면,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세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관점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으로 다른 하나의 관점을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사회 전체에 만연된 문화와 어린시절 교육이란 이름으로 세뇌된 것들을 제거 하는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설명이신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인간은 자신들이 결국 겪게 되는 고통과 불편함을 설명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 종교나, 철학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 종교나 철학이 반대로 인간을 지배해 온것이죠. 각각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답이 완벽한 답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9분 55초 내용의 의미라면 전 조금 다르게 이해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시대 물은 어디론가 없어졌고 천주교에서 말하는 평평한 지구가 인간의 탐험에의해 사라졌다. 라는 의미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신이 이룬 일을 망쳤다.
라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제가 틀릴수도 있고 아직 배울게 많은 사람이지만 약소하게 끄적이고 갑니다. 5분뚝딱철학 좋아요 꾹 누르고가요.❤
@@NadriYahoho니체와의 대화장에서 전도사님께서 오시기엔 이자리가 너무나 맞지않습니다. 아멘.
@@heeslee3610
저분이 전도사인가요 저분을 아시나요 ?
저런것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전도사 즉 무식한놈들입니다
저분은 못난 기독교인입니다 니체의 철학에서 왜 노아의 사건이 나오며 평평한 지구라는 개념이 나오는겁니까
저사람은 수학시간에 국어를 말하고
국어 시간에 수학을 말하는 판을 깨는 무식자 같습니다
가만이 있으면 중간은 갈텐데 어이하여 노아의 방주를 들먹이며 기독교인인체를 할까요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하는 말처럼 만일 저사람이 전도사라면 저분이 오늘날 니체에게 Ko당한 무식한 기독교의 대명사일것입니다
니체가 신의 머리를 망치로 깨뜨렸다고 했으니까 귀하는 철학적 실력으로 니체의 머리를 깨뜨리면 되는데 오늘날 세계 신학자들중에 니체를 깨뜨릴 실력자가 있을까요
맨날 믿습니까 아멘하라고 지껄이는 곳이 교회아닙니까
오늘날 현대신학은 생성과 소멸의 아리스토텔레쓰의 철학속에 갇혔습니다
칼빈과 루터는 어거스틴으로 회귀했는데 오늘의 세계교회는 다시 반루터 반칼빈의 아리스토텔레쓰의 철학으로 들어가서 신학박사 새끼들이 전부 변질된 하이데꺼의 제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땅에서 최고로 무식한놈들이 기독교 신학박사들입니다
인간이 신이 이룬 업적을 망쳤다고 탄식하지 말고 니체 백마리가 똥피리를 불어도 창조주는 살아있다는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하세요
기독교인들이 니체한마리를 이기지못하는것 그것자체가 썩어버린 기독교인것입니다
무슨 뚱단지 같은 무식한말을 하는겁니까
지구가 평평하다니요 ?
지구는 둥글지만 일부에서 평평하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문제와 니체와는 아무연관이 없습니다
니체는 자연을 스피노자처럼 일자신으로 보았고 뱀새끼 신학박사 화이트헤드처럼 신은발전해 나아가며 신은 시간과 공간속에 너와 나로 엮여진 유기체로 보았습니다
현대신학은 우주라는 영역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버렸고 니체는 우주자체를 설악산 최고의 절정기의 단풍보다 천배나 황홀한 환상 또는 생명으로 보았습니다
예도 철학에 들어가보면 니체는우주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황홀한 신으로 바라본것입니다
백번을 말해도 귀하와 목사와 신학자들은 이해못합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철학자들의 똥구멍을 빠는 똥벌레들입니다
그러니까 귀하는 전도사 때려치우고 오분뚝딱에 들어가서 예도님의 발을 씻어주면서 삼년동안 배워야 훌륭한 목사가 될것입니다
오분철학은 니체에 먹혀버리지 아니한 훌륭한 철학자입니다
세계의 최고의 신학자들은 거의가 니체와 하이데꺼와 헤겔에게 먹혀버린놈들인데
그래도 오분뚝딱은 신학자들보다 세수 위를바라보는 철학자입니다
귀하가 만일 신학교에서 뛰쳐나와서 오분뚝딱을 배운다면 귀하는 21세기의 빛나는 목사가될것입니다
그대들이 너무 무식하기때문에 내가 존경어를 쓰지않고 목사와 신학자들에게 이놈 저놈 개새끼라는 거친 용어를 씁니다
아시아 신학교에서 헤겔을 위대한 신학자로 보고 세계고회에서 뱀새끼 화이트헤드에게 사탄의 새끼라고 평하지 않는 썩어빠진 세상이되었으믄로 내가 거친용어를 쓸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운명을 사랑하는 것 말고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신은 니체를 사랑했죠
그를 창조주로써 책임져야 했기에 사링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기에 사랑했던거죠
허우적거리는 말을 감싸안고 엉엉 울었던 것은 니체였죠 죽여도 죽여도 죽을 수 없었던
그 때 그 니체를 통해 니체와 함께 신께서 엉엉 울었던 거죠
신을 본 자는 없으나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함께한
무슨 선한 것이 나사렛에서 나온다는 말이냐?
생김새나 배경적으로 흠모할만한 것이 조금도 없었던
바로 나사렛 예수이셌을 겁니다
과학 철학이 그 해답을 내지 않을까 싶네요 😢😂😮
세상에 완벽한 개념이 없다는게 저는 진짜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먹고 자고 싸게 진화해온 생명체거든요.. 이 생존을 목적으로 의식과 지능이 발달해 온것이니... 절대적인 선과 악 도덕관념은 사실 생명의 속성이 될수 없어요
우리는 항암제로 감기를 고치지 못하고 항생제로 암을 고치지 못하고 항암제와 항생제를 밥대신 먹고 사는것이 아니죠.
다 적당하게 환경과 상황에 맞추어서 필요한것을 만들고 소비하며 사는거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철학자 선각자들의 사상을 탐구해 보는게 유익하죠
중용, 중도 이런 개념이 중요한거 같아요
주인의도덕을 주창해서 위버맨쉬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가.그 초인의 삶인 운명을 개척한 삶은 목표달성과 도전정신을 키울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영원회귀되도 사랑스런 운명이 되는건 아니다.
진정한 운명의 사랑은 자신의 개척이 아닌 이타와 함께 선한 삶을 살때 영원회귀되도 거부하지 않는 삶으로 느낄것이다
바로 노예의 도덕이 그것이다
말이 니체를 깨닫게 만들었다.
정말 정알 감사합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함으로 나온 것입니다. 성경에 선악과의 반대말은 생명과 즉 그냥 본질적인사람의 자리를 말한건데 선과 악으로 잘못 해석하고 나눈겁니다
선과 악은 하나입니다. 그저 생명, 인간의 본질, 여러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것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선생님께서 니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셨군요.. 매번 철학이 쉽고,잼있습니다. 저 테스형은 볼때마다 아주 욱겨요~ ㅎㅎ자유의지는 있고,운명은 내가만든다고 살아야 인생이 잼있겠죠~ 오늘도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난 군대에 맞는 사람은 아니었음.
그래서 소위 말하는 고문관이라 불리었지.
근데 고참이 되고, 내 위에 있는 놈들 숫자가 줄어드니 내가 들이받아 버렸지.
결국 내가 이겼음.
근데 고참이 되고 나니까 난 내 밑 친구들을 전혀 터치하지 않았음.
어차피 군대라는게 2년 6개월이면 끝나는 거고, 무난하게 끝내는게 장땡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후임들에게 좋은 후임이 되었지.
난 내가 봐도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되는 일에도 눈을 감았음.
난 무사한 제대 외엔 전혀 관심없었으니까.
근데 내 후임들은 날 성인군자라 생각하고, 좋은 선임이라 생각하더라.
내가 좋은 선임이었을까? 그냥 보신주의자였을까?
성인군자에 대하여 이해가 필요할 겁니다
대충 어떤 느낌으로 착한사람 성인군자 하더군요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으면 좋은사람이라고 말하기가 쉬운가 봅니다
지나친 접근일까요
이기주의는 모든것을 아우르는 본능적 성향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리가 예술이네요
.9세기 임제선사는
隨處作主 入處皆眞 ‘머무는 곳마다....👌👌👌
니체가 망치를 다루는 법을
19세기에 알았으니 ......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석가모니는 파사현정 ( 破 邪 顯 正 )
금강으로 만든 망치를 휘어잡고
일찍이 신은 죽었다고 한소식
했는데.......쯔쯔 니체는 이천년후...!
5분뚝딱 철학 늘 감사하는 맘으로
경청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아름다운 영화를 본것 같습니다. 정말 최고입니다 선생님
체게바라에서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군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독백) 니체가 말하는 초인간이기보다는 현실에 발 붙인 주제파악하는 사람이고 싶다.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또 어떤가? 살려고 애쓰는 것도 한 때 뿐이라는 것을 어떤 생명들은 진실로 깨닫기도 하던데. 타의로 태어난 나는(피투된) 하루하루가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바란다.
================
사족) 니체는 초인이 되기 전에 고통에 미쳐버렸고, 예수는 신의 아들이 되어 타인의 등불이 되었네.
주인의 도덕, 노예의 도덕보다는 아리스토텔이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장한 덕윤리를 알고 싶습니다.
5분 뚝딱으로 부탁드립니다.~ ^^
혼자일수밖에없구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것이구나
2014년에 이런 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무 좋은 영상 때문에 괜히 행복하리만큼 섭섭해지네요 ㅎㅎ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전부 다 때려부시다가 결국 자신의 몸과 뇌도 매독과 뇌종양으로 박살냈다고....
그냥 돌아이지 뭘, ..
그리고 많은 사람은 그를 존경하죠
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이지, 세상 자체도 아니고, 인간 위에 있는 것도 아니죠,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어떤 용어를 전제하거나 설정하면, 그 용어의 개념에서 사상이 제한 되는 걸 너무 많이 봐온 거 같아요
언어 명제의 한계라고 해야 되나...
잘 들었습니다♧
감사!!!♡♡♡
어디서 내가 신의 후계자라고 하면서 정신병원에 갖혔다는 예기는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짜라투스투라만 보았을때는 니이체는 인류를 구하러 온사람이지..또한번의 인류 멸망을 경험하지 않기위해서 성경이 얼마나 무서운책인지도 모르고 교회를 다니사람들이 있어요. 자기가 믿는 신이 어떤건지도 모르고.. 인류 멸망과 심판을 말하는 요한계시록으로 결론을 내는게 성경책이요. 미치지 않고서야 멸망의 신을 이시대에 믿는게 마땅한가요.. 사람들이 무감각해졌어요. 그러고 다니든 말든 너는 떠들어라 ... 그러다가 다시 신이 지배하는 시대로 떨어질지 어떻게 장담해요. 정말 신을 목숨바처 믿는 저 이슬람국가들이 만군의 여호와로 하나로 뭉처서 이세상이 안전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니이체는 인류를 구하러온 사람이에요.. 그러나 니이체의 군대는 초라하고 여호와의 군대는 여전히 막강했지요. 그리고 이차대전이 터지고 사람들이 다시 자성으로 돌아가고 실존주의 운동이 일어난거에요.. 지금까지도 니이체와 여호와 싸움은 진행중이요.
2:54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소리 듣고 뿜었다
3:53
저는 다른 시대상이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봅니다.
소크라테스 시절에는, 사람들이 거만해서 콧대를 눌렸어야 됬을거고,
니체 시절은 ‘자유’를 보다 존중 및 갈망하는 시대 였기에,
둘의 관점이 달랐을거라 생각합니다.
니체는 부정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였구나 ㅋㅋㅋ 소크라테스를 보는 관점이 하나에 갇혀서.
4:58
얘 성격 나랑 비슷하네 ㅋㅋㅋ
재밌네 얘도 ㅋㅋㅋ
7:20
이거 완전 보수•진보의 마인드 차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사람들이 갈리기 시작하는거네.
10:59
얘도 미친놈 또라이였네 ㅋㅋㅋ
저 시절에 종교•신을 욕하네 ㅋㅋㅋ
너무좋아요 감사합니다
항!상! 잘 배우고 갑니다!
👍
우린 감옥 행성에 살고있음. ㅋ 감옥에서 아무리 희망을 품고 성공 해봤자 결국 자유가 없는 죄수임. 그럼에도 모르는척, 아닌 척하고 살아야 된다는 소리
일단 니체면 무조건 봐야지
니체가 말 목을 끌어안은 이유는 오직 니체만이 알겠지만
앞뒤 정황을 고려한 매우 개연성 있는 설명인 듯 합니다
깊이 있는 사유
깊이 있는 분이십니다
🥶뭐지 니체의 생각이 이미 머리속에 있었고 다 아는 이야기라니!!!
난 어디서 배운것 이지 ???
그것이 기억이 안난다 .
정신 나간 니체를 우러르는 건 본인이 신(의 아들)이라고 설파한 예수를 떠받드는 것과 같은 이치.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그만.
정신승리하라는 결론인거임?
ㅎㅎ훌륭하십니다 😂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성경에 예수를 믿지 않음이 이미 형벌을 받은거라고 나옵니다
기쁨과 사랑의 영인 성령 없이
운명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지금의 자신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해도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김필영 선생님 결국 신이 되셨다...
확실히 현재 세상의 보면 신이 죽은 아니면 죽인 사회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짓이 증거가 될 수 있지요
직접 당사자가 용서를 하든 안하든지 간에
직접적으로 용서의 권한이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 우린 자격이 없지요 당사자에게 용서조차 구하지 못하는 위선과 무능력의 인간들이니까요
통합편ㅎㅎ
한편의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가슴이 뭉클 하네요
네 운명을 사랑하라, 네것이기에
니체의 우버멘쉬와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불교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린다면, 니체는 의지를 긍정하는 반면, 불교는 의지를 부정합니다. 니체는 의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불교는 의지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불교의 견해는 쇼펜하우어의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쇼펜하우어도 비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