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시대 가장 권력이의 힘이 높앗던 대원군 당현희 목소리도 높다 허나 그가 한것이 무엇이가~~권력 다툼의 목소리만 드높다 ~~권력에 아들이라 하여 화해 하여 물려주는왕은 없다 오희려 아들을 죽이는 왕도 존재 한다 또한 목소리만 드높고 왜세의 침입에 대비 실페 하엿고 나라도 잃은자이다 ~~다들 대원군을 강한자로 묘사 하나 나라안에서 강햇스나 외세의 힘엔 무기력 하엿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 무능력한자가 아니엇슬가 이다 권력가 재력가라 하여 모두 똑똑하고 천재가 아니다 결과가 증명 하는 것이다 나라를 뻬앗겻스니 무능함으로 나라를 다스렷다는 말이기도 하다~~또한 나라도 잃코 나라의 국모도 살해 대엇지 어치 그러한 모든것을 보고도 우린 대원군을 똑똑하다 해야 하는가 말이다 최악의 무능한자가 권력을 쥐고 휘두른 목소리만큰 이기주의의 상징일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오죽미웠으면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그것도 임금이 아버지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안흘렸다고 합니다. 정작 자기 친형이자 1910년경술국치(한일합방조약)때 일제로부터 돈을 받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흥친왕 이재면이 죽었을때는 대성통곡을 했다지요...
하필이면 가장 안좋은 시기, 권력의 맛에 눈이 먼 시야가 좁은 아버지, 사치를 즐기는 부폐한 왕비와 그 가족들, 어리버리한 왕.....+ 떨어지는 기술력, 당장 나를 삼키려하는 강한 옆나라, 떨어지는 통치시스템, 지금보면 중학생도 현자가 될것같은 극히 한정된 정보, 진짜 노답....
방식은 달랐지만, 그래도 각자 방식에서는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극적이었네요. 마지막까지 화해못한 부자사이가 가슴 아프네요... 솔직히 어느 누가 나라 망치려고 했겠어요...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었던 국운이 다한 조선의 마지막 발악같았던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통해 본인 답게 집중해서 생활한다면 질좋은 사회인이 되었다고 할것입니다. 손수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본받을만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요. 우리의 몸이나 모아놓은 재물도 내것으로 남지 않으며 오직 남는건 이름만 남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나 자랑스러운 이름을 남기는 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유산이라 봅니다. 건강히 우리가 배려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ua-cam.com/video/dFuZCWCEsog/v-deo.html 이인간들은 한가지 나쁜사례만 있으면 전체를 호도하고 왜 이런 인간들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긴 어차피 독립운동가에 대해 비난부터 하는 인간들일텐데 이러니까 대만도 문제인거야 대만에도 친중파가 드글거려서 홍콩엔 성룡같은 인간들이 ㅉㅉㅉ
근데 그건 독립운동가 특히 초반의 양반가 출신들도 마찬가지임 안중근만해도 동학 농민때려 잡았는데 안중근이 원했던 동북아 평화와 독립이 민중의 독립이었겠냐 조선의 독립이지 후기도 마찬가지였는데 왕정을 혐오하는 김구와 이승만이 너무 거물이고 김일성이 평양에서 연설이후 빠르게 권력을 잡으면서 왕당복귀파가 사라진거임
정조 이후에 어린순조 앉혀놓고 장동 김가놈들의 매관매직 타락하고 방탕한 세도정치가 끝간데 모르고 나락으로 달려가고 왕권정치가 아부지 며느리로 나뉘어 힘 겨루기와 도움도 안되는 외세붙잡기에 이리흔들 저리흔들 결국 나락으로 쳐박히는게 순서였고 말고 결국 을사오적이란게 아~ 노력해봐야 틀렸구나 나라 팔아먹을게 있으면 뭐든 팔아서라도 나만 잘 퍼먹고 잘살자 하지 않았음메~
저당시 왕이나 왕비, 대원군 어느 누가 더 못난네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요. 왕정시대 왕족의 생각은 어차피 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사 적으로도 아예 왕조를 없앨 각오가 없는 개혁은 실패했죠. 결국 민비라 부르며 비난받는 왕비가 없었더라도 왕조와 왕권을 유지한채 진행하는 개혁은 어차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란게 제 생각입니다.
굉장히 패배주의적 시각인데요. 왕족을 유지하고도 성공적으로 외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일본의 사례가 있습니다. 심정지 후 cpr을 하지 않으면 단 몇 분의 시간이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이 있듯이, 당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비스마르크, 세이난 전쟁 등 격변하는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기민한 대처를 했으면 (쉽지는 않겠지만) 일본처럼 타국의 식민지가 안 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초 중요한 골든타임에 쇄국정책을 선택한 사람의 잘못이 엄청나게 어마어마한거지, 국제정세를 파악했으면 가능했습니다.
만인소의 종이는 어떻게 만드나요? 이렇게 큰 종이가 있다는 게 더 신기한데. 제지기술이 대단한듯. 대원군이 일본과 손잡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쉽게 침략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차라리 젊었을때 쇄국은 나라를 위한 거라지만 이때는 이용만 당했네요. 그런데 영상의 난그림은 전문가가 아닌듯 못 그렸음.
ㄴㄴ 고종병신이 마누라말만듣고 휘둘리는게 아니라 중립지키면서 흥선의 노선을 어느정도 따랐더라면 적어도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거임 민썅년이가 흥선과 기싸움할때 고종은 어떻게 하고있었는지 나오는 기록이 거의 전무함 이건 고종이 아무 힘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병신이라는걸 증명하는거임 고려 무신정권때도 당시 왕들의 행보는 커녕 이름조차 언급되는일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그만큼 아무것도 안했고 힘도없는 허수아비였다는 소리임
제가 아는 바로는 흥선대원군은 너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개발이 늦어서 일본의 먹이감이 되었고 또한 고종도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카리스마있는 사라이 아니라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임금감은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공부 잘 하고 갑니다^^
아닙니다. 한반도문명은 10세기 이전에 이미 일본열도문명에 추월당했습니다.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은 거지의 땅 한반도에 관심이 별로 없었지요. 이를테면 지금의 북조선을 누가 가져가고 싶겠습니까. 남조선도 마다할지 모르는데. 임진왜란 때 스스로 물러난 것도, 한반도에 진주했다가는 굶어죽을 것 같아서 스스로 물러간 것입니다. 실재로 왜군 전사자 5만명 중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얼마되지 않고 거의가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얼어서 죽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도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일본열도의 안보를 위해서였지요. 경제적으로 한반도가 탐이 났다면 그것은 문둥이 코에 마늘을 탐하는 꼴이지요.
문 열기전에 방비부터 하고 열어야지 아무 시스템 가춰지기 전에 그게 가능키나함? 대원군이 겉으로 정치적으로 그렇게 한거지 결국 서양의 기술을 배워야한다고 인정을 하면서 일단 적어도 외세침공을 버틸 나라와 체제는 잡아야 한다는걸 생각한겁니다. 프랑스 주교와 이야기하고 가족들이 천주고 믿었을떄도 그거 이용하려고 했다가 마음대로 안되서 천주교 박해를 한거고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야요이인과 한반도 남부 도래인 사이의 유전학적 관련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는데,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일한 국가가 조선이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 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은 지금 러시아 식민지로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활동하던 지역이다.짜장들이 중국땅이라고 우기는데 헛소리다. 진시황이 북방오랑캐의 침략을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만들었지만 몽골족 만주족에게 여러번 정복됐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해서 300년간 통치한거다.....
1860년경 남부에 노예를 소유한 백인가족들의 비율은 남부 중에서 남쪽 지역이 43%, 남부 중 북쪽지역이 36%, 그리고 남부와 북부의 경계 지역에서는 22%였다. 노예 소유주의 절반은 한 명 내지 네 명의 노예를 가지고 있었다. 1850년에 8,000여명의 농장주들은 50명 이상의 노예를, 그 중 1,800명은 100명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100명 이상을 소유한 1,800명의 노예 소유주들 중, 85%는 최남단 주에 살았고, 1% 정도만이 경계 지역에 살고 있었다.
한심하긴요. 당시에 다른교육을 받은것도 아니고 안동김씨, 풍양 조씨등이 마음대로 나라 말아먹어서 일어난건데. 조선이 원래 약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조선말기 정조 사후에 쇠락을 간 이유가 세도정치떄문이고 이걸 바로잡으려고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잡아가려고 한겁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국민들 대다수가 일정 교육을 받고 시스템이 가춰줘야 가능한거지 당시 신분제도등이 그대로 있는데 가능키나 함?
둘이 똑 닮았지. 독선적이고 권력욕 강하고 정치적 술수엔 능하지만 대국은 보지 못하고... 대원군이 왕이었으면 고종이랑 비슷한 짓을 좀더 꼼꼼히 했을 것 같다. 고종히 하도 무능한 임금이다 보니 대안이 될 수 있었던 인물로 좀 더 고평가 받고, 조금 더 강한지도자였던 것도 맞지만 그 이상으로 독선적이고 아집강했음. 그나마 옆에 민비 없으니깐 대원군이 계속 상왕짓거리 해먹었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긴하겠다.
내가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럴 수 있지만 고종과 명성황후가 잘한게 하나도 없지만 솔찍히 흥선이야말로 내눈에는 나라를 말아먹은 원흉임... 일단 가장 중요한시기 쇄국으로 라스트미닛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했고 경복궁짓겠다고 당백전으로 경제를 말아드심.. 그리고는 나이먹어서도 아들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권력포기하지 못하고 자기 아들과 싸움이나하며 외세까지 끌어들인 한심한 인간...
쇄국이든 개화든 그 시대에 그 짧은 시간에 부국강병을 바랄 수 있을 까요? 물론 부국강병이 아닌 그 손자 정도인 소국강병쯤이라도 일뤄냈으면 어떨까 해서 아쉽겠지만 그건 천부당 만부당한 생각이지요. 어차피 무력을 통해서 쟁취가 가능한 시대에서 흥선대원군이든, 고종황제든, 명성황후든 정치노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합니다? 다만 단지, 치욕은 치욕으로 되갚아 줄 뿐이라고 되새기고 싶습니다.
근데 사실 흥선대원군 때도 열었으면 되게 위험하긴 했을 것 같음 아직 고1이라 완전 세부사항은 알지 못하지만 그 때 개항했으면 침략을 빨리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고종보다는 흥선대원군이 그 상황을 잘 이끌긴 했을 테지만 흥선대원군이 경제에선 잘 못 다스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안동김가에 휘둘리는 폐정 개혁까지는 좋았으나, 경복궁 다시짓고(심지어 이걸 다시 어쩌는 누군가도 없었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음) 당백전 발행해서 물가오르게 하고 그 이후로 너무 심하게 권력을 안놓으려 했던 점이 분명 말썽의 시발점이었음. 죽기직전 모습은 되려 이거저거 다 치이고 나서 일개 촌로처럼 인상이 풀어져 버렸네용 권력 위치에서는 아주 강건한 눈빛이더니. 아이러니하게도 고종 간택에서 제일 명성황후 밀어준게 대원군이었다는...;;
어떻게 생각해봐도 고종은 나쁜놈이고,천하의 불효자다~더군다나 효를 지상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조선의 왕이 어찌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여를 않을수 있을까?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었던가?흥선대원군이 만들어준 왕의 자리가 아니던가? 역시,못나고,몹쓸 왕이다~어찌,나라가 성하길 바라겠는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사말씀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역사를 다시한번 생각 하게 하네요,,
그시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를모르면 나라가망한다
이러한 역사를 공영방송에서 역사 드라마로 방송!!??
방송 감사합니다 ~^^
서양은 19세기 반도체, 옴의 법칙, 도플러효과, 에너지보존법칙, 전자기장..원소주기율표. x 레이.이런거 만들고 있을떄 이씨조선은 자국민 노예로 삼고 쇄국하면서 중세시대를 지속시키고 있다니 정말 쪽팔리다.
뭐 그정도가지고~ 그것보다 한참 전에 미국은 증권거래소가 있었는데
따라 붙으면 됩니다! 역사는이어집니다! 함께 나아갑시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세력이 똘똘 뭉쳐서 싸우기만 하고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것은 변함이 없네요... 지금 한국을 보는 느깜...
지금은 민주주의 떄문이죠.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바로 권력의 분산입니다. 권력의 분산은 포퓰리즘을 낳고요
한국은 위기가 오면 싸우고
일본은 위기가 오면 통합함
잘 봤습니다.
현세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큐네요..
시작부터
대박
좋은영상 자주보고싶습니다
공부많이 하고 있어요
흥선대원군은 아들이 아닌 자기 스스로 왕이 되었어야 했다 이게 아쉽다
ㄷ
알써 ㅡㅡㅜ122ㆍ
정선호?정
명분이 ~
꼰대국 ㄷㄷ
이완용보다 흥선대원군 고종이 매국노져
시청을 하던중에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서 글을 남깁니다. 6:22 를 보시면 손으로 고문서를 직접 만지면서 읽고 계시던데...그러면 유실의 위험이 있으리라 봅니다. 유리나 아크릴을 그 문서 위에 덥어서 설명을 하실때 손으로 가르킨다 하여도 문서의 회손은 없을 것 입니다.
마스크도 필수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서로 나누지 못 한다 라는
두분이서 아주 닮았네요!
조선 말기가 되면 대원군이 집권하기 이전에 이미 재정이 엉망진창인 상태에 이릅니다. 이는 기득권층의 수탈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되어있지 않은 사회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되네요.
당시 시대 가장 권력이의 힘이 높앗던 대원군 당현희 목소리도 높다 허나 그가 한것이 무엇이가~~권력 다툼의 목소리만 드높다 ~~권력에 아들이라 하여 화해 하여 물려주는왕은 없다 오희려 아들을 죽이는 왕도 존재 한다 또한 목소리만 드높고 왜세의 침입에 대비 실페 하엿고 나라도 잃은자이다 ~~다들 대원군을 강한자로 묘사 하나 나라안에서 강햇스나 외세의 힘엔 무기력 하엿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 무능력한자가 아니엇슬가 이다 권력가 재력가라 하여 모두 똑똑하고 천재가 아니다 결과가 증명 하는 것이다 나라를 뻬앗겻스니 무능함으로 나라를 다스렷다는 말이기도 하다~~또한 나라도 잃코 나라의 국모도 살해 대엇지 어치 그러한 모든것을 보고도 우린 대원군을 똑똑하다 해야 하는가 말이다 최악의 무능한자가 권력을 쥐고 휘두른 목소리만큰 이기주의의 상징일것이다
면세계층인 노비가 전체인구의 약8할을 차지하는 나라였기에 재정이 파탄에 빠질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도 정약용 같은 조선제일의 수구꼴통은 노론정권의 공노비해방을 맹비난했는데 그것은 나라가 골백번을 망한다해도 양반자신의 이익을 침해받지 않는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통영-y9v 노비인구가 8할을 차지하면 세금 걱정할 백성들이 없었겠네요 ㅋ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주워와서 엉뚱한 논리를 전개하나요 ㅋ
지금도 다를게없죠 ?
조선시대 양반들자리에 대기업이있고 삼성이 황제자리에 있는거같은데
한국하고 일본이 다른점은
일본은 정해진 세금만받고 기업일에 개입하지않는다는거죠
대원군의 친필두루마기가 왜 가정집에 있나요?
자기 아버지가 오죽미웠으면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그것도 임금이 아버지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안흘렸다고 합니다. 정작 자기 친형이자 1910년경술국치(한일합방조약)때 일제로부터 돈을 받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흥친왕 이재면이 죽었을때는 대성통곡을 했다지요...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서 13살인가에 왕에 올랐으니
대원군이 얼마나 간섭질을 했을지
20살이 넘었는데도 그 후로도 계속 간섭질 했다는건데
밉기도 미웠겠네
대원군의 과오가 10 이라면 고종의 과오는 20, 민비의 과오는 30 이라고 본다.
노노 뭔소리노 고종의 과오는 무조건 100임
@@user-pi9cy4jn2m좃까 민비임
@@user-pi9cy4jn2m욕까지할 필요있나요?욕먹을 정도로 적은댓글아닙니다.흥분자제하세요 흥분은 밤에 여자랑 있을때만하세요
@@user-pi9cy4jn2m민비도 맞음ㅇㅇ
대원군이 50인거 같아요 …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우리 중 약자가 고통받는다.
약자=무능력자=흥부
흥부는 형수한테 싸대기 맞아도 싸지요.
놀면서 밤일에만 열심이고, 허구헌날 바가지 들고 형님 부엌문을 두드리니!
한민족의 약자 코스프레는 전세계가 알아주지요.
동정받고 싶어하는 심리!
그것은 이씨조선 500년간 길러지 노예근성의 발로지요.
그 노예근성으로 말미암아 북조선이 건재하고,
남조선 또한 북조선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지요.
미국 서해안의 120년 된 해안포대를 가 본적이 있습니다. 동시대의 강화도 포대는 그야말로 깜이 안되더군요... 그 당시 미국의 포대가 얼마나 발전했었는지 제 눈으로 확인 했습니다. 그런 수준으로 쇄국정책을 편다는것이... 미국/일본 입장에서 얼마나 한심 했을까요?
그래서 안에서부터 다지고 개방하자 쇄국하신거자나요 ..
고종이 무지하고 급했던거죠
미국이랑 일본이 어떻게 생각했을지가 중요한 니가 난 제일 한심해~
하필이면 가장 안좋은 시기, 권력의 맛에 눈이 먼 시야가 좁은 아버지, 사치를 즐기는 부폐한 왕비와 그 가족들, 어리버리한 왕.....+ 떨어지는 기술력, 당장 나를 삼키려하는 강한 옆나라, 떨어지는 통치시스템, 지금보면 중학생도 현자가 될것같은 극히 한정된 정보, 진짜 노답....
ㄸ??
강화도에서 나뭇꾼 하던 철종
그 뒤를 이어 12살때 왕이 된 고종
간섭질 하는 대원군
한일관계가밝히밝혀지길빕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그래도 각자 방식에서는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극적이었네요. 마지막까지 화해못한 부자사이가 가슴 아프네요... 솔직히 어느 누가 나라 망치려고 했겠어요...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었던 국운이 다한 조선의 마지막 발악같았던 것 같습니다...
대원군이나 고종이나 그 왕비나 역사의 비극이죠
고종의 왕이 되기 이전에 이미 나라가 기울었는데
온갖 비난은 저들 셋이 다 받으니
결국 시애비, 며느리, 아들 이 세 인간들이 조선을 말아먹었지.....
아들은 그냥 무능한 민족의 적 쯤 되는거디 고종이 말아먹다거나 팔아먹었다기엔 별거 못함
니할부지
안 말아먹었으면?
말아먹어서 지금 좋은세상 된거아닌가?ㅋㅋ
노친네여~~ 그만 주무셔~~
조선이란 나라자체가. 맹자왈 공자왈 하다가 망할운명.... 조선인구 절반이상이 양반들 노예 노비인데, 당신두 조선시대 안망하고 그대로였다면 노예였을지도 ㅋㅋㅋㅋ
너무 꿀잼 ㅡㅡㅡ
이렇게 귀한 사료가 어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가?
같은 민족을 절반이상 노예로 삼아서 오백년 배채운 지구상 유일한 조선시대 왕족과 사대부. 단군이래 가장 치욕적역사.
그날 돌려줘요....
사회생활을 통해 본인 답게 집중해서 생활한다면 질좋은 사회인이 되었다고 할것입니다.
손수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본받을만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요. 우리의 몸이나 모아놓은 재물도 내것으로 남지 않으며 오직 남는건 이름만 남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나 자랑스러운 이름을 남기는 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유산이라 봅니다.
건강히 우리가 배려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정작 웃긴건 왕족들은 일본가서도 왕공족으로 잘 살았다는거임. 그런데 지금와서 그사람들을 독립운동가마냥 포장하는게 좋은일인가?
개돼지들은 감성적인 소설을 좋아하죠 ㅡ
독립운동가들도 다시평가되야됨. 판타지임
이게 맞지.. 독립운동가들도 항일+반공 하던 소수 위인들빼곤 추켜세울필요가없음. 진정한 독립운동가는 팻맨과 리틀보이임
특히 덕혜옹주 너무 미화됨 일본에서 호의호식 하다 해방후 귀환해서 피해자 코스프레질함
ua-cam.com/video/dFuZCWCEsog/v-deo.html
이인간들은 한가지 나쁜사례만 있으면 전체를 호도하고 왜 이런 인간들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긴 어차피 독립운동가에 대해 비난부터 하는 인간들일텐데
이러니까 대만도 문제인거야
대만에도 친중파가 드글거려서 홍콩엔 성룡같은 인간들이 ㅉㅉㅉ
요즘 유행어 한 마디 "나라가 니꺼냐" 옛 지도자도 자기 기준으로 국민과 나라를 생각했네. 왕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부자가 자기 집안은 물론 나라까지 날려버렸습니다.
하늘 아래에 태양은 두 개가 될 수 없고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데 왕이 아니였던 대원군이 끝까지 왕노릇을 하려한것은 자식을 키우려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어긋난 일이지요.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서 13살인가에 왕에 올랐으니
대원군이 얼마나 간섭질을 했을지
20살이 넘었는데도 그 후로도 계속 간섭질 했다는건데
밉기도 미웠겠네
6:49 대원군이라는 아무런 정치적 권력이 없는데 자신의 아들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고 아들을 꼼짝못하게 자신의 아바타로 부리는 논리가 바로 '효'프레임 이었네 ㅋㅋ 효의 정체네. 효의 정체ㅋㅋ 어찌 현시대와 똑같누 ㅋㅋ
근데요 저렇게 혼란한시기에 21살에 어린 왕이 정치을 알면 얼마나알고 사회 물정을 알면 얼마나 알았을까요? 저는 흥선대원군 생각이 맞았다고 봅니다~ㅋㅋㅋ
고종이 너무 역사적으로 미화된 것이 개탄스럽네요. 무능한 그냥 그런 인간인데.
ㅂㅅ~ㅋ
백성들 핍박하는 부끄러운 역사지 ㅡ ㅋㅋㅋ #니들선조충들 등판안하나?
무능했다기보단 고종 선대왕부터 왕권이 워낙 약해서 아무런 힘이 없었다는게 맞는 표현임.ㅇㅇ
이씨 선조가 죄를 너무 많이저서 그죄를 대대로 죽고 죽이고..개탄스런 이조 멸망하길 잘했다...
@@hellominc 그렇다고하기에는 고종에게 기회가 많았고 재산도 현재가치로 40조나 되는 내탕금이 있었음. 일본왕실 전성기 최대 내탕금이 70조가량했는데 일본보다 자본력이 50배나 딸리는 조선에서 일본 왕실못지않은 내탕금을 제대로쓰지도 않았음
은행이라도 만들었다면 대박났을지경인데
40조면 삼성연이익 만큼되는데....
저들이 온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주인공들이다 저들의 어리석음에 수백만이 목숨을 빼앗기고 온나라가 수탈 당했다 역사를 똑바로 봐라
지금의 문죄앙 좌파정권 국민을 파탄에빠트림
지금의 문제인 이네. 예전부터 조선인은 하는 짖꺼리가 절대 크게 일어설수가 없음. 몇년 잠깐 잘 살았지. 앞으로는 문제인이 바닥까지 끌고 내려갈것이다.
한국의 참모습을 문제인이 다시 보여줄뿐.
@@youngjac1460 뼈 아픈 말이나 그래서 눈뜬국민들 거리로 나가고 있다
밤다식박기
밤다식박기
흥선군 이하응은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상 이성계가 세운 조선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너무나 정확한 댓글 ㄷㄷ
근데 그건 독립운동가 특히 초반의 양반가 출신들도 마찬가지임 안중근만해도 동학 농민때려 잡았는데 안중근이 원했던 동북아 평화와 독립이 민중의 독립이었겠냐 조선의 독립이지 후기도 마찬가지였는데 왕정을 혐오하는 김구와 이승만이 너무 거물이고 김일성이 평양에서 연설이후 빠르게 권력을 잡으면서 왕당복귀파가 사라진거임
ㅡㅡ
ㅅㅇ
이하응은 조선을 지키자 했고 민비와 고종은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고자 했지. 대원군이 고종을 앉힌건 고종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우유부단하니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하려 하기 위함이었겠지.
고종은 기승전결 자신의 안위만 추구했던 인물
@@lilillliilililll6088 니말 맞는데, 거기에 김구도 빼라
고종 볼수록 무능력하게 보인다 ᆢ
니할부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인다 생긴게
고종: 난 대한제국 황제이다!!!
백성,신하,외국 인물: ㅋㅋㅋㅋ 병신 쉐키 ㅋㅋㅋㅋ
방구석 황제는 순사 따까리보다 못한게 현실이였음.
정조 이후에 어린순조 앉혀놓고 장동 김가놈들의 매관매직 타락하고 방탕한 세도정치가 끝간데 모르고 나락으로 달려가고 왕권정치가 아부지 며느리로 나뉘어 힘 겨루기와 도움도 안되는 외세붙잡기에 이리흔들 저리흔들 결국 나락으로 쳐박히는게 순서였고 말고 결국 을사오적이란게 아~ 노력해봐야 틀렸구나 나라 팔아먹을게 있으면 뭐든 팔아서라도 나만 잘 퍼먹고 잘살자 하지 않았음메~
강화도에서 나뭇꾼 하던 철종
그 뒤를 이어 12살때 왕이 된 고종
간섭질 하는 대원군
이 비극의시작은 정조가 승하하고 정순왕후부터 외척의 정치세력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결국 정순왕후가 개쌍련이다
영조가 개쌍놈임..
지 아들도 죽이고 15살 어린아이와 혼인했음..
그여자가 바로 정순황후
이게 팩트.. 너무 고종 대원군 명성왕후만 욕 먹는데 이미 이때는 너무 늦음. 그 전에 수대 동안 나라 말아드신 임금 및 친인척들의 죄가 가장 크죠
정조 이후 8살에 왕에 오른 효종
나뭇꾼하던 19살 철종
12살 왕에 오른 고종
46:05 Well-said!
저당시 왕이나 왕비, 대원군 어느 누가 더 못난네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요. 왕정시대 왕족의 생각은 어차피 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사 적으로도 아예 왕조를 없앨 각오가 없는 개혁은 실패했죠. 결국 민비라 부르며 비난받는 왕비가 없었더라도 왕조와 왕권을 유지한채 진행하는 개혁은 어차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란게 제 생각입니다.
현재에도 왕이 있는 나라들 많은데요? 영국이나 스웨덴.. 아랍쪽.. 태국.. 일본
@@산계 존재만 할 뿐 실권이 없는 입헌군주제잖아요
굉장히 패배주의적 시각인데요. 왕족을 유지하고도 성공적으로 외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일본의 사례가 있습니다. 심정지 후 cpr을 하지 않으면 단 몇 분의 시간이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이 있듯이, 당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비스마르크, 세이난 전쟁 등 격변하는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기민한 대처를 했으면 (쉽지는 않겠지만) 일본처럼 타국의 식민지가 안 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초 중요한 골든타임에 쇄국정책을 선택한 사람의 잘못이 엄청나게 어마어마한거지, 국제정세를 파악했으면 가능했습니다.
대일본제국이 없었다면 개혁은 불가능이었습니다.
조선을 개혁하는 것보다 차라리 중이 재머리 깎는 것이 더 쉬웠겠징.
@@user-pi9cy4jn2m 그러며 내가 어느날 황제라 칭하면 우리 마누라가 황후가 되는 것입니까?
실소를 야기시키지 마십시오.
고종이 개화를 원한건 아닙니다 고종은 친정을 하고싶었던것 뿐이죠
대원군이 쇄국을했으니 자신이 그길을 가지않았던거죠
민씨가 남편 상투 잡고, 시킨거지요. 그래야 자기 발언권이 세지니까.
민씨, 권력욕이 지나쳤습니다. 고종은 무기력, 무능했고, 민씨는 어설픈 지식으로 자기와 자기 가문만 지켰죠. 죽어 마땅한 여자. 지금의 누구 같을거 같사옴.
명성황후가 고아나 다름이 없는데 가문이 어딨어요
명성황후는 권력욕이 아니라 목숨을 지킨겁니다
명성황후가 무슨 상투를 잡아요 고종의 조력자인데
@@딩고-c4t 명성황후 본인은 고아가 맞지만 그가 속한 여흥민씨는 당대에도 엄청난 가문이였습니다
고종 생모도 여흥민씨 출신입니다
@@melongmelonglee4688 명문가인것은 맞지만 세도가와는 거리가 멀고 흥선대원군이 꼭두각시로 세운이유는 친척도 없고 고아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아나 다름없다고 했지 고아는 아니고 홀어머니입니다 세도가의 여식을 꼭두각시로 세우지 않습니다 왕비를 지맘대로 하기위해 그런집안 고른것 자체가 흥선대원군놈이 막장이라는거죠
개화와 매국노의 차이점이 없다면 개화겠죠
나라를 판거지 개화가 아니었지
청나라의 속국을 천명함 ㅋㅋ
망해가는 청나라의 속국임을 만방에 알림
대놓고 매국행위
그렇게 해서 개화를 하고자 했으나
주변 똥개들이 전부 조선을 먹을려고 달려들음
만인소의 종이는 어떻게 만드나요? 이렇게 큰 종이가 있다는 게 더 신기한데. 제지기술이 대단한듯. 대원군이 일본과 손잡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쉽게 침략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차라리 젊었을때 쇄국은 나라를 위한 거라지만 이때는 이용만 당했네요.
그런데 영상의 난그림은 전문가가 아닌듯 못 그렸음.
흥선대원군 똑똑하고 개혁가 하지만 시대의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함 그 시대 구한말은 개혁가보다 혁명가가 있었어야 하는 시대죠 그리고 고종 나름 .... 선방했죠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어찌 할 수 없는...
ㄴㄴ 고종병신이 마누라말만듣고 휘둘리는게 아니라 중립지키면서
흥선의 노선을 어느정도 따랐더라면 적어도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거임
민썅년이가 흥선과 기싸움할때 고종은 어떻게 하고있었는지 나오는 기록이 거의 전무함
이건 고종이 아무 힘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병신이라는걸 증명하는거임
고려 무신정권때도 당시 왕들의 행보는 커녕 이름조차 언급되는일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그만큼 아무것도 안했고 힘도없는 허수아비였다는 소리임
@@khd5031 고종의 망명 시도는 모르시지요?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 군주였슴.
Vincent 엥 흥선대원군이 지능이 떨어 졌다는말은 ㅋㅋ 말이.안되시구요 서원철페등만 봐도 아무도 못한걸 한 양반 이구요 그리고 정조의 모티브는 세종입니다 세종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했던 왕 입니다 ㅡㅡ
저시대는 개항이 곧 식민지가 되겠습니다 하는 시대아닌가요 그래서 쇄국한거고 누가 왕이더라도 쉽지 않을것같음
@@heyday183 지가 뭔데 서원철폐를 하나?
고종 국난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그러게여 왕은 하늘이 내리는거라하던데 고종이 왕이된건 하늘에 큰 오판이라봐야져
틀렸습니다 고종은 찌질이, 무능아, 의심쟁이, 병쉰, 중2병 *"황제"* 였습니다 ㅋㅋㅋ
제가 아는 바로는 흥선대원군은 너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개발이 늦어서 일본의
먹이감이 되었고 또한
고종도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카리스마있는
사라이 아니라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임금감은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공부 잘 하고 갑니다^^
군대로 치자면 걍 찌질이+관심병자 폐급 ㅋㅋ
문통같은 경우죠
민비가 빠지니까 내용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자나
가족간의 ##사랑##의 부재????가 원인이 아닐까?
대화가 필요해!!!!.....과유불급!!!!!욕심..욕망이 망친다.....
아버지가크면 아들은 힘 못써요.
뺏기거나 당하는 피해자는 쉽게 불쌍하고 동정받으며 미화되기 일쑤이나 글쎄... 기록만으로 보았을 때 그중에서도 고종은 NG로 보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골동품덕후 유튜브도 함께 합니다.
여백의 미,백의 민족이라는것이 빈틈 많은 조선 사회, 염색 기술의 퇴조를 애둘러 표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향상심 변화의 의지가 있다면 여백이 아니라 채움이었을지 모르겠다.
명성황후 1876 강화도 조약 태어나기 100년전 ㄷㄷㄷㄷ
결론은 하나다. 권력 욕심...지금 여의도 개들이랑 다를게 없다...
당파쌈질들~국민들이 숨통막혀 죽어가는데 바이러스3단계올릴 궁상만 하는군
정조가 오래 살았다면 역사가 조금 달라졌으려나
아니~
정조도 조선왕이라서 그틀에서 못벗어났죠
정조도 너무 미화되었어요
다른왕들이 엿같아서 그런것도 있고요
정조는 세종다음으로 미화가 심한 인물이죠.
민비 이야기가 빠지니...내용자체가 이상하게 돌아가네요...
세도정치가 더 빠르게 청산되었다면 우리나라가 그래도 일본에 먹히진 않았을것 같은데 아쉽다
고종 이전 왕인 철종을 생각하면 되죠.
나뭇꾼을 왕에 앉혔으니
아닙니다.
한반도문명은 10세기 이전에 이미 일본열도문명에 추월당했습니다.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은 거지의 땅 한반도에 관심이 별로 없었지요.
이를테면 지금의 북조선을 누가 가져가고 싶겠습니까.
남조선도 마다할지 모르는데.
임진왜란 때 스스로 물러난 것도, 한반도에 진주했다가는 굶어죽을 것 같아서 스스로 물러간 것입니다.
실재로 왜군 전사자 5만명 중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얼마되지 않고 거의가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얼어서 죽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도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일본열도의 안보를 위해서였지요.
경제적으로 한반도가 탐이 났다면 그것은 문둥이 코에 마늘을 탐하는 꼴이지요.
대원군 고종도 기회는 많았음
하지만 대원군은 쇄국정책에 왕권 강화 목적으로 경복궁재건
고종은 외세 끌어들여 자국민 탄압 견제 ㅋㅋㅋ
영상내용 요약해줄 쏴람...?
한국 사전 말고 드라마 명성황후 김경응 선생님 몇회분에 나오 시나요?
운이 다된 나라에 뭘 해본다한들 될가? 썩을대로 썩고 고일대로 고인물. 아무리 노력해본다 한들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수 없는법.
다른 나라들은 저만치 앞서나가 있는데
쇄국을 한다는거도 말이안되고
개화해서 문물을 받아들일 준비는 커녕
붕당과 세도 정치로 썩을대로 썩어있었는데
쇄국이니 개화니 논해봐야 한낮 부질없는시대
문 열기전에 방비부터 하고 열어야지 아무 시스템 가춰지기 전에 그게 가능키나함?
대원군이 겉으로 정치적으로 그렇게 한거지 결국 서양의 기술을 배워야한다고 인정을 하면서 일단 적어도 외세침공을 버틸 나라와 체제는 잡아야 한다는걸 생각한겁니다.
프랑스 주교와 이야기하고 가족들이 천주고 믿었을떄도 그거 이용하려고 했다가 마음대로 안되서 천주교 박해를 한거고요.
성리학의 폐단으로 봄. 인간적으로 비극이네요
비극이구만..
당연히 생각이 다를수있는거고, 더군다나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의 생각의 갭은 더 클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부자지간이니 자신의 권력이 아닌 나라와 백성을 위해 진정으로 위했다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국정을 할수있는거고 역사가 바뀌지않았을까...
고종의 12살때 즉위를 했으니
대원군이 얼마나 간섭을 했을라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원군이 자기 집권을 위해서 자기가 잡혀간 청도 끌어들이고 동학도 끌어들이는데, '나라와 백성을 위해' 행동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과 '서로의 의견을 존중' 따위는 영원히 먹힐 리도 없고 있을 수도 없겠지요.
임진왜란때이순신 장군과. 똑같은 상황같네요.영웅은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걸고 간신배들은 자기세력을 넓히려 충신을 없애려하는 상황.
흥선대원군이 신식무기만 받아들였어도 아니 미국 프랑스 한테 문만 열어줬어도 일본한테 발릴 일은 없었을텐데....
속터져...!!!
나라를 지키지 못한 “이” 들...!!
지금도 경찰개혁이 급하냐?국민들이 스트레스로 죽어가는데ㅜㅜ
우리 역사에 비극은 대원군과 고종의 대립이 아니라..일본과 청나라가 조선을 먹으려한게 진짜 비극의 이유다..
청과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지 말아라
지금까지 척화정책이 이어졌으면,, 어우..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하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야요이인과 한반도 남부 도래인 사이의 유전학적 관련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는데,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일한 국가가 조선이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
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은 지금 러시아 식민지로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활동하던 지역이다.짜장들이 중국땅이라고 우기는데 헛소리다.
진시황이 북방오랑캐의 침략을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만들었지만 몽골족 만주족에게 여러번 정복됐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해서 300년간 통치한거다.....
1860년경 남부에 노예를 소유한 백인가족들의 비율은 남부 중에서 남쪽 지역이 43%, 남부 중 북쪽지역이 36%, 그리고 남부와 북부의 경계 지역에서는 22%였다. 노예 소유주의 절반은 한 명 내지 네 명의 노예를 가지고 있었다. 1850년에 8,000여명의 농장주들은 50명 이상의 노예를, 그 중 1,800명은 100명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100명 이상을 소유한 1,800명의 노예 소유주들 중, 85%는 최남단 주에 살았고, 1% 정도만이 경계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게 어느 나라 이야기야?
일본은 신식총들고 대포쏘는데 ㅋㅋ 활쏘고 고무신 신고 딱총쏘던 조선 개노답
대포는 조선에도 있었는데..... 그리고 임진왜란은 조총 때문에 진거 아니에요.. 그때는 조선의 활이나 조총이나 비등비등했음.. 개쪽난 조선이 군체계 엉망이여서 박살당한걸 신무기 때문에 졌다고 합리화씨게 한거인데.......
@Joseon 그니까 쇄국이 문제
패널분중 에 저 여자 배우님은
왜 계속 참여시키시는건가요?
아들이용해서 왕질해먹고싶어안달하고 서양문물 들어오면 왕권즉 지권력 흔들릴까봐 쇄국질하면서 아들 바짓가랭이붇들고 통수때린꼰대 얼마나 꽉막힌 욕심사나운 늙은이엿을까
내용을 잘 들어보세요
@@김현중-b7l 내용이고 나발이고 흥선망나니 모르는 반도인있나? 내가 망국 이씨넘 평가허겟다는데
이씨 조선은 더 빨리 망했어야 함~~~요즘 드라마 픽션이라도 이씨 조선 왕가 지속되는거 나오는거 보면 역겨움
어쩔수있나 그 좆같은 애들이 조선 역사 전부인데 한숨만 나오지 ㅋㅋ
빨리망했어야 일제 지배도 없었을것을
이순신이 잘못했어
임진년때 망하게 냅두거나 본인이 선조새끼 죽이고 왕이 됐어야지
대원군 고종 둘다 어리버리..
민주주의가 아닌 이상 강력한 왕권만이..군사력만이..민생을 안전시키는것이다.
한심한 철.고.순종.대원군.
중국만 처다보는 나약한 군신들
조선 말기는 그냥 썩은국가. 무정부상태에 가까웠음
한심하긴요. 당시에 다른교육을 받은것도 아니고 안동김씨, 풍양 조씨등이 마음대로 나라 말아먹어서 일어난건데.
조선이 원래 약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조선말기 정조 사후에 쇠락을 간 이유가 세도정치떄문이고 이걸 바로잡으려고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잡아가려고 한겁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국민들 대다수가 일정 교육을 받고 시스템이 가춰줘야 가능한거지 당시 신분제도등이 그대로 있는데 가능키나 함?
지금도 나라 이공계가 먹여 살린다
저 때 사농공상이라는 계급구조를 만들고
공업을 천대했우니 나라가 저 꼴이지
조선의 운명이 기운것은 정조대왕의 고손자로 8살에 즉위한 조선 24대왕 헌종(1834~1849, 15년 재위)부터가 아닐까 싶음.
순원왕후가 8살짜리 왕에게서 수렴청정하면서 천주교인 학살하고 국정의 혼란과 민생파탄이 시작되고 급박하게 돌아가던 외국정세는 관심밖이었고 25대 철종이 즉위(1849~1864, 14년 재위)하면서 외척의 득세와 극심한 혼란이 켜켜이 쌓이면서 망국의 문이 열림. 불과 29년만에.. 망국은 대원군과 26대왕 고종(1864~1907, 44년 재위), 민씨 집안만의 작품이 아니었던듯.
헌종까지 갈것도 없고 정조 죽은 1800년부터 이미 망테크였음
고종의 조선을 말아먹는것 처럼 말하고
고종 대한제국에만 국한 되서 말하는거 보고 한심했는데
그나마 크게 보고 설명한분을 보니 더 반갑네
대구힘내요
역사에서 쇄국과 개방은 언제나 다퉜고 개방 인사는 고평가 받을 수밖에 없음
고종이 개방하긴 개풀
대원군은 10년 수렴청정후 정계에서 물러나 예술활동에나 전념했어야 한다 그러면 30점이라도 받는다
난이나 그리고 민요나 부르면서 풍류나 즐길것이지
정계에서 물러난후 권력찬탈의 욕심으로 패륜짓을 너무 많이 저질러서 점수를 주자면 0점도 아니고 마이너스다
강화도에서 나뭇꾼 하던 철종
그 뒤를 이어 12살때 왕이 된 고종
간섭질 하는 대원군
@@산계 18세의 총명한 큰아들이 있음에도
어린 아들을 꼭두각시로 세워놓고 지가 다 처먹었죠 대원군은 고종교육도 안시켰어요 똑똑해지면 안되니까 고종한테 여자를 붙여줬죠 아들은 여자랑 놀게하고 정권은 지가 잡으려고
0:54 내가 왕이 될 상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 착각하지 말게나 왕의 발꼬락이나 빨거라
철종의 서거후에 대원궁 지신이 임금이 되었으면 며느리 민비 가족들과의 싸움도 쉽게 할 수 있었고 미신 바가지 민비보다 좀더 논리적인 대원군이 왕권을 가졌으면 청나라의 영향을 적게 받고 세계화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잘못 생각한것이 있는데 흥선대원군의 생각과 위정척사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흥선의 생각은 중요한게 아니잖아..
대원군이 정치를 놓치못해서
대비가 정치를 못 놓으면 개판되는데 대원군은 어땠을까?
집안싸움이곧나라권세싸움이다.지금청와대나똑같다.나라를위해싸우자.
..당파싸움과 노론에의해 기울어가던 말기 조선의 기둥을 대원군이
붙잡고 일으켰는데 고종,민비가
마음껏 말아먹었다고 보여짐..
국력을 리더쉽없이 일으키나?..
노론에 의해 기울어 가던 조선의 기둥을 뿌리채 뽑아버린게 대원군 ㅎㅎㅎ
고종은 지능이 좀 떨어져 보임. 순종은 훨씬 더 떨어지고.
좀 빙시같음
@@サワコ-i8e사와코라 ~~~↪🗾🇯🇵
그러니까 조선이 망했지
순종은 자폐아였딥니다 저능아가 왕인거죠
니할부지
안타까운 역사 ㅜㅜㅜ
조선 말기는 순조이후는 아주 개판.
이하응이도 대원군이 아니라 원종이라고 불러라.저 정도면 왕이지 대원군인가.
순조이후가 아니라 정조이후지 정조의 유일한 오점이 안동김가놈 김조순이 등용한건데ㅋㅋ
정조 이후 8살에 왕에 오른 효종
나뭇꾼하던 19살 철종
12살 왕에 오른 고종
흥선대원군이 쇄국이 아니라, 당시 개방을 선택했다면.. 일제 강점기가 안 왔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죠.
머리가 좋은 사람인 건 맞는데.. 시대적 발상을 쇄국으로 선택한 건.. 너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도..
예나 지금이나 외세의 내정간섭이 한반도를 가만두지 않네 나라가 힘이 없으니..
4분마다 광고 있네
둘이 똑 닮았지. 독선적이고 권력욕 강하고 정치적 술수엔 능하지만 대국은 보지 못하고... 대원군이 왕이었으면 고종이랑 비슷한 짓을 좀더 꼼꼼히 했을 것 같다. 고종히 하도 무능한 임금이다 보니 대안이 될 수 있었던 인물로 좀 더 고평가 받고, 조금 더 강한지도자였던 것도 맞지만 그 이상으로 독선적이고 아집강했음. 그나마 옆에 민비 없으니깐 대원군이 계속 상왕짓거리 해먹었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긴하겠다.
왕과 왕비가 있는데
대원군이 왜 간섭을 하나? 그게 정상인 나라니?
흥성대원군은 성질이 험악한것 같아도 더내고 십은것을 란 그리면서 아마거기에 노걸적으로 나타내는것 갔습니다
내가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럴 수 있지만 고종과 명성황후가 잘한게 하나도 없지만 솔찍히 흥선이야말로 내눈에는 나라를 말아먹은 원흉임...
일단 가장 중요한시기 쇄국으로 라스트미닛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했고
경복궁짓겠다고 당백전으로 경제를 말아드심..
그리고는 나이먹어서도 아들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권력포기하지 못하고 자기 아들과 싸움이나하며 외세까지 끌어들인 한심한 인간...
정조 이후 8살에 왕에 오른 효종
나뭇꾼하던 19살 철종
12살 왕에 오른 고종
고종 이전에 이미 세도정치질 하던게 일반화 되던 시절임
쇄국이든 개화든 그 시대에 그 짧은 시간에
부국강병을 바랄 수 있을 까요?
물론 부국강병이 아닌 그 손자 정도인 소국강병쯤이라도 일뤄냈으면 어떨까 해서
아쉽겠지만 그건 천부당 만부당한 생각이지요.
어차피 무력을 통해서 쟁취가 가능한 시대에서 흥선대원군이든, 고종황제든, 명성황후든 정치노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합니다?
다만 단지, 치욕은 치욕으로 되갚아 줄 뿐이라고 되새기고 싶습니다.
대원군의 정책을 쇄국정책이라고 매도하는것 자체가 식민사관입니다. 대원군은 영정조의 정책을 롤모델로 삼아서 내부의 썩은 뿌리를 걷어내고 이를 통해 왕권강화를 이루려했지요. 다만 외세의 힘을 너무 간과하였고 당시 국제질서에 어두웠어요.
근데 사실 흥선대원군 때도 열었으면 되게 위험하긴 했을 것 같음 아직 고1이라 완전 세부사항은 알지 못하지만 그 때 개항했으면 침략을 빨리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고종보다는 흥선대원군이 그 상황을 잘 이끌긴 했을 테지만 흥선대원군이 경제에선 잘 못 다스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격동의 시대에 국외정세를 제대로 살피지못한다는건 엄청 큰 하자가있었던게 아닐까싶네요.
그리고 60여년간 지속된 세도정치때문에 왕권이 박살나서 왕권 되찾는답시고 재정적으로 부실한데 지방관료들, 백성들 수탈해서 경복궁 재건비용 충당하고 그것도 모잘라서 당백전 풀어서 인플레로 조선경제 박살내고...민비와 더불어 조선말기 국가재정 파탄낸데 큰몫한 인물이 이하응
그려면 대원군 집권기 대외정책을 '쇄국'이 아니면 뭐라고 정의내려야 함?
대원군이 그 정도로 간섭질을 했으면 거의 쿠데타구만
지가 뭔데 왕권강화야? 그러면서 왜 고종은 힘이 없는데?
그게 쇄국정책이야
신형무기로 중무장한 신식군대도 없앤새끼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인데 재평가를 왜 하냐
안동김가에 휘둘리는 폐정 개혁까지는 좋았으나,
경복궁 다시짓고(심지어 이걸 다시 어쩌는 누군가도 없었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음)
당백전 발행해서 물가오르게 하고 그 이후로 너무 심하게 권력을 안놓으려 했던 점이 분명 말썽의 시발점이었음.
죽기직전 모습은 되려 이거저거 다 치이고 나서 일개 촌로처럼 인상이 풀어져 버렸네용
권력 위치에서는 아주 강건한 눈빛이더니.
아이러니하게도 고종 간택에서 제일 명성황후 밀어준게 대원군이었다는...;;
어떻게 생각해봐도 고종은 나쁜놈이고,천하의 불효자다~더군다나 효를 지상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조선의 왕이 어찌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여를 않을수 있을까?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었던가?흥선대원군이 만들어준 왕의 자리가 아니던가? 역시,못나고,몹쓸 왕이다~어찌,나라가 성하길 바라겠는가?
권력욕에 찌든 이하응이와 멍청하지만 왕이라는 자존심 하나는 짱짱했던 이명복이가 아주 그냥 엄청난 비극을 만들었어요. 결국 그 아들대에 가서 왕이 옥새 찍어 나라를 팔아먹는, 총 한방 못 쏘아보고 나라가 넘어가는 치욕을....
역적들 아닌가?? 조선이 500년 갔다는게 불행한일
니할부지
비극이지 세상어디에도 없던 좉기ㅡㅌ은 나라 좆선
잃어버린 500년
잃어버린 500백이면 한글도 없었겠네
500년 역사가 후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