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철학적 고민을 담은 저의 책 📖 서점 링크 교보문고: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578919 예스24: www.yes24.com/Product/Goods/135744489 알라딘: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426887
삶의 의미를 찾자못해도 일단은 살아갑니다..순간 순간의 숨, 시원한 바람, 저녁무렵 찾아오는 짧은 자유시간, 한 구절의 책, 느린 산책, 커피 한잔, 소소한 글쓰기, 나의 일, 아이들..그런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기쁨을 얻으려 합니다. 무기력하고 힘든 날도있지만 내일은 좀 낫겠지하며 털어냅니다. 물론 더 큰 고통과 슬픔이 삶속에 존재한다는걸 알지만 주로 하루 하루속에서 의미를 찾아요..😅
@@eric_82 예 어차피 죽기때문에 의미가 없어라기보다 죽기때문에 삶이 소중하다라고 생각해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걸 알지만 삶에 치열했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울림을주죠. 살아있는동안 소중함을 알고 치열할 수 있는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알아가기위해 철학에 관심을 갖습니다.
@@josephp9141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입니다. 생존 본능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 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해당하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예컨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무한동력 장치나 빛의속도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허락하는 것 즉 물리법칙이 허용하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포식하는 것이 자연법칙에 위배는 물리적 행위였다면 애초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겠죠. 삶이 있기에 그냥 살아야 한다는 당위나 가치는 어떤 물리법칙이나 심지어 우주전체를 관찰해도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과학적 명제는 가치의 우열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 동등한 명제일뿐 입니다. 어떤 당위나 가치는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 즉 사회적 구상물에 불과하고 그 믿음의 최종근거는 없죠. 우리의 가치판단 그 어느것도 확실하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법이니 윤리니 하는 것도 마치 축구규칙처럼 다수의 의해서 집단질서라는 명목하에 정해졌을 뿐입니다. 최종근거가 없으니 그냥 막연하게 하늘에서 인권이 주어졌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요.(물론 과거에는 천부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죠)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거기서 느끼는 어떤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생을 끝낼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삶을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죠.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입니다. 생존 본능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 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해당하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예컨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무한동력 장치나 빛의속도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허락하는 것 즉 물리법칙이 허용하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포식하는 것이 자연법칙에 위배는 물리적 행위였다면 애초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겠죠. 삶이 있기에 그냥 살아야 한다는 당위나 가치는 어떤 물리법칙이나 심지어 우주전체를 관찰해도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과학적 명제는 가치의 우열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 동등한 명제일뿐 입니다. 어떤 당위나 가치는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 즉 사회적 구상물에 불과하고 그 믿음의 최종근거는 없죠. 우리의 가치판단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법이니 윤리니 하는 것도 마치 축구규칙처럼 다수의 의해서 집단질서의 유용성이라는 명목하에 정해졌을 뿐입니다. 최종근거가 없으니 그냥 막연하게 하늘에서 인권이 주어졌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요.(물론 과거에는 천부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죠)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거기서 느끼는 어떤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삶을 그만둬야 할 이유도 없지만 동시에 삶을 지속할 이유도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죠.
전 학창 시절 왜살지 이런생각이 들면서 약간 우울감이 들었는데 이유는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우주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됐어요.먼지보다도 작은 나같은게 뭔 이런 생각을 하지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먼지 같아서 나의 존재가 별거 아니라 생각하이 내 존재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이상하게 우울감이 사라지면서 이왕 태어난거 재밌게 맘대로 살아야지 이런 맘상태가 되더라구요.
각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게 뭐든지 간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 나아가는것이 삶인거같음 전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는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아갑니다. 그 발자국이 무엇인지는, 각자 정하면 됩니다. 이 무한히 어둡고 고요한 우주에서 단 한순간 빛나고 있는 그 자체가 의미있기도 합니다. 즉 우린 뭘 하든 이미 의미있습니다.
처음 영상을 봤고 굉장히 감명깊게 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항상 똑같은 질문을 했었는데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라고 했던 친구들이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때 잘 사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하루하루를 얼마나 충실하게 채워나가느냐. 그리고 그 목표는 얼마나 타인을 위한것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보자면, 삶의 목적은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잘 죽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죽음의 상태에만 있을 때는 삶의 상태가 매우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었으나 모두 경험한 뒤에는 삶의 상태가 결국 죽음과 같이 의미가 없어서 결론적으로는 죽음에서 벗어날 생각을 굳이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02:44 "전체를 통해서 부분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가." 저도 이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한 가지 목적지로 귀결되기보단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삐뚤빼뚤 이곳저곳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런 저를 보고 바보같다고 말할 거예요, 저도 가끔 그렇게 느끼고요. 그런데 그 삐뚤빼뚤한 선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게 아니라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시절 하나하나를 되새겨보면, '불필요한 순간'들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아 그때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했구나, 그래서 기뻤구나, 슬펐구나. 난잡한 그 선 하나하나가 모두 인생이구나. 요즘은 그런 생각이 종종 듭니다.
if. 만약 삶이 있다면, 삶의 의미도 있겠죠. 철학자의 삶은 그 자체로 수행자의 삶입니다. 세상의 쾌락보다는 진리에 더 관심이 많죠.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가운데 철학자들은 이미 두번째 색계의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요. 빛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입니다. 천상의 메신저들이죠. (feat.도남 金성철 삼계설)
늘 좋은 이야기들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죠.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 동안,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것이 목적이죠. 집에 돌아와서 여행이 즐거웠다면 된 거 겠죠. 강신주 작가님이 장자이야기에서 쓸모없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시더군요. 우리 어린 시절에는 쓸모 없지만 행복하고 기쁜 많은 것들이 있었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 거예요. 여행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는 것처럼, 힘겨웠던 여행이 추억이 되었던 것 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는게 아닐까요? 모두 즐거운 여행 되세요. ^^
살면서 이런 주제에 대해 항상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었지만 다들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느낌이어서 외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깊게 이런 주제에 대해 탐구하시는 충코님 영상 보니 그런 감정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이 듭니다. 왜 살아야하는지 몇십년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의문만 갖고 갈거 같긴 한데) 사람도 동물이니 그냥 끝없이 움직여야겠다(신체든 정신이든).. 라고 생각하고 사는것 같네요
속이 시원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군요. 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저도 수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태어나서 살다보니 죽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글구 질병과 가난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글구 또 개떡같은 긍정과 부정을 떠들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아울러 행복과 불행을 떠들어대는 것도 듣기 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무튼 저는 삶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근데 분명한 건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안락사제도를 시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있어요.
왜 안락사 제도가 필요한가요? 당신에게 필요한 건가요? 인간이 생각이 많아서 다른동물보다 불행하다 생각해요 안락사 제도가 없어도 자살 1위에요 예전엔 스위스가 1위인거 알죠? 너무 살기편해서 자살률이 높은거에요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 20살 중반이 되었을때 ,,,한뻔쯤 읽어봤음 하는 책이 있어요 . 그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요 읽어보면 왜 살아야 하는지 ? 내가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일어보시기를 추천하구요 ,인간은 누구나 살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 고비를 넘기면 세상 달라보여요 .
@@조은나라-e4g 인간사회에서 가장 나쁜 행위를 고르라면 저는 '이중잣대'를 선택하겠습니다. 폭력, 살인, 강간 등 강요와 억압이자 일방적인 가학의 형태들이 가장 높은 처벌을 받는 이유는 자기 마음대로 가해하는 사람이 있고 꼼짝없이 당하고 피해받는 사람이 있어서 일겁니다. 다시말해서 한쪽의 자유가 다른쪽의 자유를 뭉개버리는 상황. 본질을 더 쉽게 표현하면 내가 당하기 싫은걸 남에게 하는 이중잣대의 상황. 기준이 일관적이지 못한것. 나는 해도 되는데 너는 안돼. 이건 해도 되는데 저건 안돼. 태어난것도 강제적으로 당한거죠. 그런데 죽는것에 있어서 마음대로 편하게 죽지 못하게 하는것도 더더욱 웃긴 강압이고 폭력인것 같습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안락사, 자살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살아있음에 감사해야한다는 등의 정신은 물론 훌륭한겁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런 삶의 태도를 갖는다는것은 매우 존경스러운 겁니다. 근데 단지 그뿐입니다. 그 삶의 태도를 남에게도 강요해서는 안되는겁니다. 모든 사람이 다 달라서 실행 가능여부가 다른데 그들에게 일률적인 틀을 강요하게 되는 일종의 폭력이죠. 나에게 축구나 춤이 재밌어서 남에게도 같이 해보라고 억지로 끌고와서 도전 정신을 가지라고 부추기고 떠밀어도 그것들이 재미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은 그걸 제대로 할수도 없고 더 비참해지기만 합니다. 타인의 비참함과 고통을 보고도 모른척하는것, 방조하는것, 심지어 그 수많은 비참함과 고통들을 밟고 올라 그 위에 서서 유지되는 사회가 얼마나 강건한 사회인지, 언제 무너져 내릴 사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 유지의 목적을 운운하며 안락사의 자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리 어딘가에는 사회의 밑바닥을 깔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도 있을겁니다. 내가 살려고 남을 데려와 억지로 살게하는 강제성과, 살지않겠다는 것도 막아세우는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있는데 글로 다 표현을 못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겁니다. 원하시면 질문하시면 추가 답변 드리겠습니다.
나는 인생은 게임이라고 이해하니 설득력이 있더라. 예를 들어 게임 중 하나인 축구와 비교해 보자. 축구의 목적은 점수를 내는 것이고 점수를 내는 목적은 승패를 정하기 위함이지. 그러나 목적이 행위의 모든 것이라면 사실 승패만 정하면 되니 굳이 축구를 할 필요없이 가위 바위 보나 주사위로 승패를 결정하면 더 간결한거 아니냐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축구가 가위 바위 보로 대체될 수 없다는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축구의 본질은 점수와 승패에 있지않고 점수를 내는 과정, 즉 플레이에 있기 때문이다. 점수와 승패는 플레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요소일뿐이다. 마치 그냥 치면 재미가 없어서 점 당 10원이라도 걸고 화투를 치는 것과 같다.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모든 행위는 게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지만, 게임 설계자의 관점으론 게임의 목적이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게임의 목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골문 안에 공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는 규정은 손으로 공을 만지지말라는 규정 이상의 의미가 있는건 아니다. 두 규정 모두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인생게임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하길 바란다. 추가)정리하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은 사실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만들어진 이유는 인생게임의 플레이를 더 재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를 사실로써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목적과 의미가 없어도 인생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인생을 플레이하고 싶다면 목적이나 의미를 만들어 보자. 동어반복이지만 만드는 기준은 당연히 '내 인생플레이를 더 재밌게 만들어 줄 것'이다.
@@mm-rb7df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야죠. 재밌는 게임이 재밌는 플레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재밌는 플레이가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플레이가 될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건데 혹시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곧 마음입니다. 감정과 정서를 못 만들어내는 병을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한 기분이 우울증이 아닙니다. 사정 직후 성욕이 사리지듯 감정이 거세된 것이 우울증입니다. 쉽게 말해 현자타임이 지속되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스스로는 좀 냉정해지고 차분해졌다 착각할 수 있는데 감정의 기복이 두드러지게 작아졌다면 우울증이 의심스러우니 운동, 양질의 식사, 숙면으로 건강을 회복해 보시고 차도가 없으면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정서를 만들어낼만한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재밌는 게임플레이를 만들수있습니다.
@@spinoffnote 신체는 건강합니다. 그냥 삶에 재미를 못 느낄 뿐입니다. 정신과 약은 그냥 감정을 거세하는 거라던데 진짜로 그냥 모든 감정이 거세되는 처방이 아닐까 싶은데요. 부정 감정과 긍정 감정이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부정 감정은 꽤 큰데 긍정 감정을 느낄 만한 요인이 없어서 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진짜 개노잼입니다.
@@mm-rb7df 주변 환경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가득하면 그럴 수 있겠군요. 게임이라는 것의 본질은 문제해결과정입니다. 게임을 즐긴다는건 문제해결과정을 즐긴다는 것이죠. 님의 문제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환경이군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 힘들지만 괴롭지않은 것은 자아가 개입되지 않고 오로지 문제해결만 머리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죠. 본인이 플레이어라 생각하고 '부정적 요인 개선'이라는 퀘스트에만 집중하시는게 어떨까합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장문의 글을 쓸 수 있는건 저 또한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환경에서 힘들어 해왔기에 많은 생각을 해와서 그렇습니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지만 플레이어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니 전처럼 괴롭지는 않습니다. 게임과 인생의 차이점이라면 게임은 제작사가 플레이어 사정 봐가면서 감당할만한 난이도의 문제만 던져준다면 실제 인생은 개인 사정 안봐주고 제멋대로 설정된 난이도의 문제를 던져준다는 것이죠. 이럴 때는 하나의 큰문제를 여러 개의 작은 문제들로 나누어서 하나씩 해결해 보는 것도 좋은 공략법입니다. 이것 말고도 문제해결에는 여러가지 공략법이 있고 과거의 사람들이 남겨놓았습니다. 책을 읽으시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공략법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spinoffnote 일면식도 없는 제게 이렇게 장문의 글과 정성을 남겨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다 이해되는 말씀은 아니지만 진실되게 따스한 말씀의 뜻만은 알아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게임을 즐긴다는건 문제해결과정을 즐긴다는 것'이라는 부분은 와닿네요. 새기며 살아야겠습니다. 2.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게 직장이라면 퇴사가 해결방법일 텐데, 퇴사 후엔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순환문제에 직면하는 것 같습니다. 3. 수학문제는 풀 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괴롭더라고요. 나는 왜 이런 걸 못하지라는 자아가 항상 개입되었는데 지금 수학문제를 봐도 무섭습니다 저는. 열심히 했지만 극복하지 못했던 벽이 제게 수학이라는 과목의 의미여서 두렵고 또 괴로운 이름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그래서 공감이 안 됐습니다. 지금도 수학 잘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합니다 저는.
저의 머리로는 이해와 정의하기가 어려운데요. 뭔지모를 위안을 얻었어요. 나처럼 왜 사는지 모를 사람들이 많다는것과 타인에게 영향을 주면서 내 가치를 찾아야하고 결국 답은 없고 단순한것이 진리일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고싶어요. 저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 저도 십대 때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저 혼자서 예술이나 즐길거리들로 채우면 될 거라고 단정하고 답을 내렸습니다. 헌데 나이가 차면서 그렇게 삶이 유지가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그것들이 모든 것을 채우지도 못 하구요. 그래서 뒤늦게 삼십대가 되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하다보니 철학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고요. 고전을 직접읽을 정도의 간절함은 안 되었는지 유튜브를 통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채널을 보게 되고 영상을 보면서 그래도 무언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삶을 다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해한다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남아있는 삶의 과정들을 잘 보내는 것에 더 많이 안다는 것이 유효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상대적으로 아는 것이 조금은 더 필요한 경향의 사람이긴 한것 같네요. 철학 영상들을 볼수록 위안을 얻었습니다. 어느 영상에서 철학의 위안이라는 것이 있다고 본 것도 같네요.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두서가 없네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저는 이 영상에서 말하는 요지에 굉장히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서 사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으로 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제가 이제 어른 흉내는 내려나 봅니다. 언젠가는 보는 것을 넘어서 바뀐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철학에서는 절때 답을 찾을수 없을거 같은데 나도 이전에는 철학을 좋아했지만 그 과정을 거쳤는데 성경을 읽어보던가 하면 깨달음이 생길수도 있을건데 처음볼때에는 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보다나면 알게 될건데,강병국 목사님 설교를 보는걸 추천하는데 생애의빛 인지 sostv 검색하면 나올걸😂불경은 좀 너무 심오한데 알고보면 또 그렇게 어려운거는 아니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처음 부터 혼자서 봐서는 뭐가뭔지 모를거 같은데 스님의 설교를 먼저 듣고나서 어느정도 익숙해진후에 혼자서 보고 연구해야 할건데😂근데 깨달음이란건 IQ라든가 똑똑한것하고 상관이 없는것 같은데 마음이 중요한데 신이 깨닫게 해준다면 금방 깨달을수 있는데,아무리 돌대가라도😂근데 보통 돌대가리들이 마음이 좋은건 아닌데😂천재라도 신이 깨달음을 주지 않으면 평생 깨닫지 못할건데😂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죽어도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죽음의 의미 또한 모르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그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혹은 죽었으면 합니다. 마음 한 켠에서 끌리는 것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허나 지금까지는 그저 남들에게 영향받지 않고 저만의 가치를 쫓으려 했는데, 오늘 말씀하신 견해도 굉장히 흥미롭네요. 종합적으로 생각정리 할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충코님 영상은 항상 너무 재밌습니다.
보부아르의 타인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고 인간의 본성인 사회적 동물로서 수천년동안 진화하면서 깨달은 진리일 것이다.인간 개인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고 먼 옛날 부족들이 모여 살다가 오늘날 국가를 형성해서 사는 이유도 거기에 답이 있다.타인을 위하는 길이 곧 나를 위하고 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나의 부족함을 알면 다른사람의 실수 부족함도 포용할 수 있다.
저도 젊은날 삶을 관통하는 목표,사명을 찾고자 했던때가 있었지요..지금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작은 보람,가치의 작은 실현,배움과 성장, 사랑하는사람과의 소소한 행복 등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충고님의 오늘영상으로 제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어 고맙습니다~ 영상으로볼때마다 매사에 성실함이 묻어나 잘 듣고 있습니다! ㅋ밖에 나와서 걸으시며 하는 영상이 항상 귀에 잘 들어오고 좋게 느껴지는데, 저만 그런건 아닌가봅니다~^^*
"사랑" 💖 사랑의 정의를 찾기 위한 여정 인 듯 합니다. 한창 약관의 시절엔 목표가 분명 했으므로 왜 사는가, 란 여백 없이 줄곧 그것을 향해 노력 했었는데, 몇 번의 쥭음의 고비들을 넘기고 인내심을 시험 받으며 지쳐 갈 즈음 마치 무겁고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확연 하게 깨닫기 시작 했습니다. 결국 "사랑" 의 정의를 찾기 위한 여행 길 이었다는 것을. 그 " 사랑" 이란 무엇인지 한 가지로 정의 할 수 없습니다. 시대와 세대와 남녀 간 모두를 의미 하지만 그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남녀의 사랑" 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과 넓이와 높이를 찾아 가는 여정 속에서 인간은 진정 더욱 완성 되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이 설령 , 배신과 상처와 온갖 혼란을 초래 한다 해도 끝끝내 놓치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근원적 철학은 인문학의 토양을 더욱 비옥 하게 가꾸어 예술로 창조 되는 감명 깊은 생의 기쁨을 선사 합니다. 그것이 두뇌력 있는 인류가 사는 이유 이며, 진정 살아 가는 방식이며, 방향이고 목적인 듯 합니다. 철옹성의 내 세계만 우선 내세우지 않고, "너"를 위해 "너"를 사랑 하므로 내 세계의 어느 벽 하나는 기꺼히 허물어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의 정의를 체득 하길 항상 각성 합니다. "죽음" 이란 하나의 거대한 차원의 과정 일 뿐 , 결코 끝이 아니란 사실 또한 더불어 각성 합니다.
흔적 없이 사라질 존재이지만, 주어진 생이나 후대에 해가 되는 존재는 되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 현재 있는 이 자리를 함부로 하지 말자고 매일 다짐하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했지만,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바라보니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서 삶이 편해졌답니다.🎉
타인을 위해 살아야하는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나와 남 모두를 위해 살아야 한다가 균형잡힌 태도임. 맹목적으로 타인만을 위하는 과정에서 외려 자신이 남으로부터 위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고 또한 먼저 나를 이롭게 해야 남도 이롭게 할수 있음. 그리고 보부아르가 내세우는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실존주의적 관점의 한계에 따라 그 근거로 내세운 내용과 논리가 턱없이 빈약하다고 할수 있음. 왜냐하면 보부아르의 그러한 초월 이론에 따른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단지 유전자 번식에 대한 현상을 아이디어 관념적 차원으로 상호호환시킨 버전인 셈인데 그 내용은 집단주의적 측면에서 표면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지만 인간이 근원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음 물론 대중이 반드시 옳은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임. 그녀의 명성에 대한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노예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ㅋ 😂
전 입자인듯 파동인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 나름 인생 즐기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아서 사는게 잼있어 집니다. 😂😂 순간 순간 의미 부여를 하고 발전하고 사고하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한 시공간에 갇혀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수행의 질만큼 살다 가는게 인생인거 같기도 해요.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겠지요.
태어난 것도 어쩔 수 없듯이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라는게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월권이라는게 있잖아요. 태어난것도 나의 책임이 아닌듯이 죽는것도 나의 책임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은 왜 살아야 한다고 묻는건 월권입니다. 나의 책임이 아니죠.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어야 하는것이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게 저의 최근 화두입니다.
4:39 사람의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변치않는 목적을 설정할수 없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은 의미를 잃고 다른 것을 찾는다. 타인을 지향한다는 의미는 , 타인이 있어야 기준을 잡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의 의미, 목적을 굳이 정해본다면,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변하지 않으면 정체),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타인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니까) 이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스스로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자기가 교육받은 지식안에서 형성된 기치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받은 교육에 따라서 스스로의 신념이 형성되고 그 신념대로 살게되니 그는 그 신념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거고 결국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결론에 이를지라도....
삶의 의미보다 나를 죽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을 찾아보면 거기에 많은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슬픔이건, 책임이건, 아직 못다본 내 삶의 이야기 등이라면 왜 나는 그것을 내 삶의 의미보다 신경쓰는가... 생각해보면 역으로 거기에서 의미가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지만 너무 늘 그곳에 있어와서 특별한줄 모르는 것들이 진리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나만의 선물을 줄 때, 동시에 마음의 선물을 항상 보답받는구나 느꼈거든요. 뭐 벌레에게 내 피, 살점 일부를 선물하는 것 또한 선물의 종류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죠. 이처럼 내 주변 사람, 자연,, 모든 것들에게 소중한 나의 것을 주는 것, 그 마음 하나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 마음은 하나일지라도 선물의 종류는 다양하니까요. 재밌기도 합니다. 각자 원하는게 다르고, 어울리는게 다르니 선물도 달라지는 그 이상한 매력이.
나 자신을 위해 사는게 베스트라고 생각하면서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나니 내가 타인(가족)을 위해 먼저 생각하고 대우해 주니 처음에는 힘이 들었는데 지금보니까 안정적인 삶을 위한 가치있는 노력이였다는걸 영상을 통해 다시한번 깨달았어요 요즘에는 아기엄마들과 아이 하원하고 같이 놀이터에 만나서 애들 공동육아 하면서 힘을 얻고있는데 이도 그와 같은거였네요 차분한 목소리로 인간이 누릴수있는 고급지식을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 누르고 갑니다 😁’마지막 영상에서 삶의 의미를 모른다고 할때 과연 살아야 할까요‘에 대한 제 아이디어는…신이 인간세계를 체험하려고 내려와서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 인생을 장난삼아 살아보는 그런 가볍고 재밌는 기분으로 살아보는겁니다
왜 살까를 묻기 전에 왜 왜 살까라고 물을까 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고통스럽다는 느낌이나 불편하다는 느낌이나 결핍된 느낌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왜 살까를 물을까?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물을까? 죽음을 거친 삶(죽음을 전제한 삶), 의심을 거친 믿음(의심을 전제한 믿음), 무의미를 거친 의미(무의미를 전제한 의미), 부정을 거친 긍정(부정을 전제한 긍정)만이 우리에게 불안이자 동시에 위안일 수 있으니....
오늘 강연 내용 너무 좋습니다 👍🏻 요즘 유튜브채널 몇군데서 같은 내용으로 많이들 영상을 제작하시던데... 마치 어린 양떼를 몰이하는 식의 어설픈 내용이나 선악을 두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해 찬반토론을 끌어내는 내용 보다는 훨씬 깊이감 있는 접근이라 진지하게 강연을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 태생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삶을 허무하게 느끼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론에서는 서로 의견이 나뉘고 다투는게 일상이지만 인간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는 각자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는 지점이 분명 있다는 점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듭니다.
지금의 나와 앞으로 내 선택의 총합이 나라는 사르트르의 말도 떠오르네요. 자아는 본질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이다. 나는 어떤 고정된 코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다발이라는 불교철학의 무아라는 개념이 인간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유한한 생명을 갖고 우리는 끝으로 향하는 삶을 사는데, 그 삶이 가치가 있으려면 남을 위해 살면 됩니다. 본인만을 위해 살면 무슨 가치가 있나요? 책을 쓰든, 발명을 하든, 회사를 설립하든, 인간의 많은 활동들은 남을 위하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유튜브를 찍어도 결국 누군가에게 마음의 울림을 줄수도 있고요.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고 그 본성에서 벗어나긴 힘듭니다. 남을 위한다는게 막 이타적인건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솜씨가 부족해서 깔끔하게 쓰기 힘드네요. 😊
요즘에 드는 생각은,, 상대방의 고유한 온도가 변질되지 않도록, 그사람만의 색깔을 가지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자. 라는 결론까지인데, 제 온도를 보니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상처를 덜 받는 고요한 삶이더라구요. 무엇이 나의 일부가 되는 상대방을 돕는가? 결국 내가 살고싶은 방향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 조금씩 그렇게 살려고 하니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것이 저에겐 돕는 방향인거 같아요.
영상을 보니 그런 생각이드네요 인생에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내가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누군가의 본보기가 됨으로써 타인이든 누군가가 영향을 받고 뭔가 삶의 원동력이 됨으로서 사회에 일원이 되고 그가치를 타인에게 강요는 아니지만 뭔가 큰 문제에 직면 했을때 고민의 시간을 길게 잡아보면서 의미를 되찾아 보는게 아닐지. 이게 참 어려운게 윤리ㆍ철학이 보기에도 어럽고 해석도 상당기 자기 주관적으로 보여서 타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갈등하고 아닌가 싶습니다. 영상 처음 봤지만 삶의 의미를 대해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 이익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결국 주변 다른 사람들이 잘 살게 하는게 최대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내가 줄 수 있는게 0에 수렴한 상태가 되고 그러니 다시 나를 채울 수 있는 삶을 살며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느낍니다. 무슨 의미 같은건 없습니다. 결국 내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되는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출생 자체가 불필요한 고통을 수반하며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삶의 진짜 의미를 찾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고 불완전하며 불필요한 고통의 연속을 해명하려는 노력일 뿐이며 태어나지 않는 것이 고통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완전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삶의 본질은 바꿀 수 없으며 삶의 의미는 출산 자체가 폭력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임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춘들 인생은 질병, 자연재해, 죽음(또는 결국엔 다른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 등)이라는 고통을 회피할 수 없죠. 유전자에 각인 된 종을 보존하려는 욕구로 인해서 성욕이 존재하고 그렇게 집단을 만들고 사회가 생기죠. 그래서 저도 본능적으로 출산하고 싶은 마음, 이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자꾸만 자녀를 갖는 것은 자녀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게 됩니다. 나의 욕구 때문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글쓴이 님께서는 출산과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삶의 의미가 남아있기 위해서는 다른이와 상호작용이나 공유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세대의 개인주의와는 대치되는 가치관인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의 공허함의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답일수도 있겠네요. 예전에는 가까운 사람이나 사회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치관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널리 받아들여 졌었잖아요? 관계성이 의미를 준다는 것은 더 근본적인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될 때에도 완전한 혼자가 아님을 알 때에만 길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을 위해 사는게 아닌 항상 나를 지켜보는 절대자를 인정하고 그의 뜻을 살피는 것은 우리 삶의 의미에 다른 차원을 줄 것입니다.
생각보다는 간단한거같아요.일단 태어나긴 했으니까 쾌락을 위해 살거나 의미부여를 위해 살거나 둘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도 자연 속 죽음과 탄생 속에서 나온 동물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누구도 원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그러니 그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건 온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태어남을 저주로 느끼며 살아갈 수도 누구는 태어남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도 있죠. 각자 환경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자원도 다르니까요.그 누구도 어떤 의견이든 비난할 순 없습니다. 태어남에 감사하는 것도 인정하고 태어남에 원망하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니 법의 테두리를 크게 넘지 않는 선에서 다들 원하는걸 하도록 합시다. 놀든 일하든 맘대로 하세요.뭐 일단 세상에 나온 이상 최대한 즐길건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안되는 현실이라면....그냥 못 죽어서 사는거죠 뭐. 죽을 고통은 느끼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으니 그냥 무기력하게 사는거죠.대부분은 이 경우가 많을겁니다. 솔직히 세상은 즐길 것보단 고통 받을 것들이 훨씬 수두룩하니까요.그냥 연명하려고 정신승리하고 거기에 의미부여하는거지.
삶의 의미는 이 세상을 만든 그것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알길이 없음.행성이 탄생하고 세월이 흘러 폭발하고 다시 그 잔해가 새로운 별들을 만들고..행성도 은하도 모두가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 안에서 개체들이 번식하지..왜 존재하고 왜 번식하려 하는지 그 이유는 그것..우주 만물을 만든 것..생물일지 무엇일지 그것..
불교철학과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문득 아! 이제 "자리이타"의 삶을 살아가야 겠다라고 마음먹었어요...물질적으로는 힘든시기를...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건 계속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 싶고, 그렇게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나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충코님의 의견에 매우 공감이 되고, 보부아르와도 같은 마음인것 같아 댓글 남겨봅니다;;^^
삶의 철학적 고민을 담은 저의 책
📖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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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학문은 너무 무거워서 다른 학문을 배워보고 싶어요오,,
삶의 의미를 찾자못해도 일단은 살아갑니다..순간 순간의 숨, 시원한 바람, 저녁무렵 찾아오는 짧은 자유시간, 한 구절의 책, 느린 산책, 커피 한잔, 소소한 글쓰기, 나의 일, 아이들..그런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기쁨을 얻으려 합니다. 무기력하고 힘든 날도있지만 내일은 좀 낫겠지하며 털어냅니다. 물론 더 큰 고통과 슬픔이 삶속에 존재한다는걸 알지만 주로 하루 하루속에서 의미를 찾아요..😅
👍🏻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작성자분, 그리고 가족 모두 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chungco_phil 충코님 좋은 영상 항상 잘보고있어요. 감사합니다^^
일단 죽으면 모든게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데😂누가 기억해주는것도 없고😂백지에서 태어나 백지로 돌아가는건데😂
@@eric_82 예 어차피 죽기때문에 의미가 없어라기보다 죽기때문에 삶이 소중하다라고 생각해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걸 알지만 삶에 치열했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울림을주죠. 살아있는동안 소중함을 알고 치열할 수 있는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알아가기위해 철학에 관심을 갖습니다.
돈이 안되는 음악을 한다는 게 참 힘들었는데 사실 힘들 때 마다 음악을 들으며 힘을 냈거든요 저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음악이 삶의 의미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멋지시네요! 응원합니다
@ 앗! 감사합니다^^\
이유가 있어서 사는게 아니라, 살아있으니까 이유를 찾는 것이군요. 🦥
그마저도 그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죠.
삶이 있고 그 다음에 이유가 생긴다는 식의 실존주의 철학의 시각도 당연히 정해진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일뿐이죠 ㅋ
생물학적 목적은 이미 있으니까 걍 처 살면되는거 아닌가요
@@josephp9141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입니다. 생존 본능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 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해당하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예컨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무한동력 장치나 빛의속도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허락하는 것 즉 물리법칙이 허용하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포식하는 것이 자연법칙에 위배는 물리적 행위였다면 애초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겠죠.
삶이 있기에 그냥 살아야 한다는 당위나 가치는 어떤 물리법칙이나 심지어 우주전체를 관찰해도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과학적 명제는 가치의 우열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 동등한 명제일뿐 입니다.
어떤 당위나 가치는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 즉 사회적 구상물에 불과하고 그 믿음의 최종근거는 없죠.
우리의 가치판단 그 어느것도 확실하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법이니 윤리니 하는 것도 마치 축구규칙처럼 다수의 의해서 집단질서라는 명목하에 정해졌을 뿐입니다.
최종근거가 없으니 그냥 막연하게 하늘에서 인권이 주어졌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요.(물론 과거에는 천부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죠)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거기서 느끼는 어떤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생을 끝낼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삶을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죠.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입니다. 생존 본능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 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해당하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예컨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무한동력 장치나 빛의속도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허락하는 것 즉 물리법칙이 허용하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포식하는 것이 자연법칙에 위배는 물리적 행위였다면 애초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겠죠.
삶이 있기에 그냥 살아야 한다는 당위나 가치는 어떤 물리법칙이나 심지어 우주전체를 관찰해도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과학적 명제는 가치의 우열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 동등한 명제일뿐 입니다.
어떤 당위나 가치는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 즉 사회적 구상물에 불과하고 그 믿음의 최종근거는 없죠.
우리의 가치판단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법이니 윤리니 하는 것도 마치 축구규칙처럼 다수의 의해서 집단질서의 유용성이라는 명목하에 정해졌을 뿐입니다.
최종근거가 없으니 그냥 막연하게 하늘에서 인권이 주어졌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요.(물론 과거에는 천부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죠)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거기서 느끼는 어떤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삶을 그만둬야 할 이유도 없지만 동시에 삶을 지속할 이유도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죠.
깊은공감대 감사합니다
남을위해 사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른사람이 자유를발휘할 수있도록 최소한의 생활환경을 마련해 줘야한다는 대목에서
백프로 공감했으며 보석을
발견한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래서 의미있습니다.
진짜 의미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면 이 댓글도 쓰지 않았을거임. 모순임.
나답게 살고자 삽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관, 즐거운 것을 실제로 구현해내며 나만의 길을 닦는다는 생각으로요
자기 자신을 속여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깊게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 같음
태어남을 당해 기왕 사는 거 덜 고통스럽게 살아봅시다.
당했는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충코님캍은 젊은이가 많을수록 세상은 살만한가치가있읍니다
전 학창 시절 왜살지 이런생각이 들면서 약간 우울감이 들었는데 이유는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우주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됐어요.먼지보다도 작은 나같은게 뭔 이런 생각을 하지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먼지 같아서 나의 존재가 별거 아니라 생각하이 내 존재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이상하게 우울감이 사라지면서 이왕 태어난거 재밌게 맘대로 살아야지 이런 맘상태가 되더라구요.
언젠가 꺼질 내 횃불이 더 가치있고 번영하기 위해선 다른 횃불에 옮겨 붙이는게 가장 효과적일 수 있겠네요
오 👍🏻
Thanks!
많은 배움 받아갑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각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게 뭐든지 간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 나아가는것이 삶인거같음
전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는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아갑니다. 그 발자국이 무엇인지는, 각자 정하면 됩니다.
이 무한히 어둡고 고요한 우주에서 단 한순간 빛나고 있는 그 자체가 의미있기도 합니다. 즉 우린 뭘 하든 이미 의미있습니다.
처음 영상을 봤고 굉장히 감명깊게 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항상 똑같은 질문을 했었는데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라고 했던 친구들이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때 잘 사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하루하루를 얼마나 충실하게 채워나가느냐. 그리고 그 목표는 얼마나 타인을 위한것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은 전쟁이 아니다. 단지 음미하는 긴 여행일뿐.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보자면, 삶의 목적은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잘 죽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죽음의 상태에만 있을 때는 삶의 상태가 매우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었으나 모두 경험한 뒤에는 삶의 상태가 결국 죽음과 같이 의미가 없어서 결론적으로는 죽음에서 벗어날 생각을 굳이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02:44 "전체를 통해서 부분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가."
저도 이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한 가지 목적지로 귀결되기보단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삐뚤빼뚤 이곳저곳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런 저를 보고 바보같다고 말할 거예요, 저도 가끔 그렇게 느끼고요.
그런데 그 삐뚤빼뚤한 선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게 아니라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시절 하나하나를 되새겨보면, '불필요한 순간'들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아 그때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했구나, 그래서 기뻤구나, 슬펐구나.
난잡한 그 선 하나하나가 모두 인생이구나. 요즘은 그런 생각이 종종 듭니다.
if. 만약 삶이 있다면, 삶의 의미도 있겠죠. 철학자의 삶은 그 자체로 수행자의 삶입니다. 세상의 쾌락보다는 진리에 더 관심이 많죠.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가운데 철학자들은 이미 두번째 색계의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요. 빛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입니다. 천상의 메신저들이죠. (feat.도남 金성철 삼계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갈수록 멋었어지세요:)
항상 인생의 영감받아갑니다. 응원합니다 충코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주환, 최진석 님과 더불어 충코 철학 요즘 동행중입니다^^
늘 좋은 이야기들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죠.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 동안,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것이 목적이죠.
집에 돌아와서 여행이 즐거웠다면 된 거 겠죠.
강신주 작가님이 장자이야기에서 쓸모없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시더군요.
우리 어린 시절에는 쓸모 없지만 행복하고 기쁜 많은 것들이 있었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 거예요.
여행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는 것처럼, 힘겨웠던 여행이 추억이 되었던 것 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는게 아닐까요?
모두 즐거운 여행 되세요. ^^
살면서 이런 주제에 대해 항상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었지만 다들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느낌이어서 외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깊게 이런 주제에 대해 탐구하시는 충코님 영상 보니 그런 감정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이 듭니다. 왜 살아야하는지 몇십년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의문만 갖고 갈거 같긴 한데) 사람도 동물이니 그냥 끝없이 움직여야겠다(신체든 정신이든).. 라고 생각하고 사는것 같네요
속이 시원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군요.
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저도 수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태어나서 살다보니 죽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글구 질병과 가난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글구 또 개떡같은 긍정과 부정을 떠들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아울러 행복과 불행을 떠들어대는 것도 듣기 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무튼 저는 삶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근데 분명한 건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안락사제도를 시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있어요.
공감합니다. 특히 이부분,
'개떡같은 긍정과 부정을 떠들어대는 소리...'
@@ijegman 제 의사에 공감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
왜 안락사 제도가 필요한가요? 당신에게 필요한 건가요?
인간이 생각이 많아서 다른동물보다 불행하다 생각해요
안락사 제도가 없어도 자살 1위에요
예전엔 스위스가 1위인거 알죠? 너무 살기편해서 자살률이 높은거에요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 20살 중반이 되었을때 ,,,한뻔쯤 읽어봤음 하는 책이 있어요 . 그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요
읽어보면 왜 살아야 하는지 ? 내가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일어보시기를 추천하구요 ,인간은 누구나 살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 고비를 넘기면 세상 달라보여요 .
@@조은나라-e4g 당신에겐 필요없는 거군요.
@@조은나라-e4g 인간사회에서 가장 나쁜 행위를 고르라면 저는 '이중잣대'를 선택하겠습니다.
폭력, 살인, 강간 등 강요와 억압이자 일방적인 가학의 형태들이 가장 높은 처벌을 받는 이유는 자기 마음대로 가해하는 사람이 있고 꼼짝없이 당하고 피해받는 사람이 있어서 일겁니다. 다시말해서 한쪽의 자유가 다른쪽의 자유를 뭉개버리는 상황. 본질을 더 쉽게 표현하면 내가 당하기 싫은걸 남에게 하는 이중잣대의 상황. 기준이 일관적이지 못한것. 나는 해도 되는데 너는 안돼. 이건 해도 되는데 저건 안돼.
태어난것도 강제적으로 당한거죠. 그런데 죽는것에 있어서 마음대로 편하게 죽지 못하게 하는것도 더더욱 웃긴 강압이고 폭력인것 같습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안락사, 자살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살아있음에 감사해야한다는 등의 정신은 물론 훌륭한겁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런 삶의 태도를 갖는다는것은 매우 존경스러운 겁니다. 근데 단지 그뿐입니다. 그 삶의 태도를 남에게도 강요해서는 안되는겁니다. 모든 사람이 다 달라서 실행 가능여부가 다른데 그들에게 일률적인 틀을 강요하게 되는 일종의 폭력이죠. 나에게 축구나 춤이 재밌어서 남에게도 같이 해보라고 억지로 끌고와서 도전 정신을 가지라고 부추기고 떠밀어도 그것들이 재미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은 그걸 제대로 할수도 없고 더 비참해지기만 합니다. 타인의 비참함과 고통을 보고도 모른척하는것, 방조하는것, 심지어 그 수많은 비참함과 고통들을 밟고 올라 그 위에 서서 유지되는 사회가 얼마나 강건한 사회인지, 언제 무너져 내릴 사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 유지의 목적을 운운하며 안락사의 자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리 어딘가에는 사회의 밑바닥을 깔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도 있을겁니다. 내가 살려고 남을 데려와 억지로 살게하는 강제성과, 살지않겠다는 것도 막아세우는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있는데 글로 다 표현을 못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겁니다. 원하시면 질문하시면 추가 답변 드리겠습니다.
나는 인생은 게임이라고 이해하니 설득력이 있더라.
예를 들어 게임 중 하나인 축구와 비교해 보자. 축구의 목적은 점수를 내는 것이고 점수를 내는 목적은 승패를 정하기 위함이지.
그러나 목적이 행위의 모든 것이라면 사실 승패만 정하면 되니 굳이 축구를 할 필요없이 가위 바위 보나 주사위로 승패를 결정하면 더 간결한거 아니냐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축구가 가위 바위 보로 대체될 수 없다는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축구의 본질은 점수와 승패에 있지않고 점수를 내는 과정, 즉 플레이에 있기 때문이다.
점수와 승패는 플레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요소일뿐이다. 마치 그냥 치면 재미가 없어서 점 당 10원이라도 걸고 화투를 치는 것과 같다.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모든 행위는 게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지만, 게임 설계자의 관점으론 게임의 목적이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게임의 목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골문 안에 공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는 규정은 손으로 공을 만지지말라는 규정 이상의 의미가 있는건 아니다. 두 규정 모두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인생게임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하길 바란다.
추가)정리하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은 사실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만들어진 이유는 인생게임의 플레이를 더 재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를 사실로써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목적과 의미가 없어도 인생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인생을 플레이하고 싶다면 목적이나 의미를 만들어 보자. 동어반복이지만 만드는 기준은 당연히 '내 인생플레이를 더 재밌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너무 재미가 없다면요?
@@mm-rb7df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야죠. 재밌는 게임이 재밌는 플레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재밌는 플레이가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플레이가 될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건데 혹시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곧 마음입니다. 감정과 정서를 못 만들어내는 병을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한 기분이 우울증이 아닙니다. 사정 직후 성욕이 사리지듯 감정이 거세된 것이 우울증입니다. 쉽게 말해 현자타임이 지속되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스스로는 좀 냉정해지고 차분해졌다 착각할 수 있는데 감정의 기복이 두드러지게 작아졌다면 우울증이 의심스러우니 운동, 양질의 식사, 숙면으로 건강을 회복해 보시고 차도가 없으면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정서를 만들어낼만한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재밌는 게임플레이를 만들수있습니다.
@@spinoffnote 신체는 건강합니다. 그냥 삶에 재미를 못 느낄 뿐입니다. 정신과 약은 그냥 감정을 거세하는 거라던데 진짜로 그냥 모든 감정이 거세되는 처방이 아닐까 싶은데요.
부정 감정과 긍정 감정이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부정 감정은 꽤 큰데 긍정 감정을 느낄 만한 요인이 없어서 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진짜 개노잼입니다.
@@mm-rb7df 주변 환경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가득하면 그럴 수 있겠군요.
게임이라는 것의 본질은 문제해결과정입니다. 게임을 즐긴다는건 문제해결과정을 즐긴다는 것이죠. 님의 문제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환경이군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 힘들지만 괴롭지않은 것은 자아가 개입되지 않고 오로지 문제해결만 머리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죠. 본인이 플레이어라 생각하고 '부정적 요인 개선'이라는 퀘스트에만 집중하시는게 어떨까합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장문의 글을 쓸 수 있는건 저 또한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환경에서 힘들어 해왔기에 많은 생각을 해와서 그렇습니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지만 플레이어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니 전처럼 괴롭지는 않습니다.
게임과 인생의 차이점이라면 게임은 제작사가 플레이어 사정 봐가면서 감당할만한 난이도의 문제만 던져준다면 실제 인생은 개인 사정 안봐주고 제멋대로 설정된 난이도의 문제를 던져준다는 것이죠. 이럴 때는 하나의 큰문제를 여러 개의 작은 문제들로 나누어서 하나씩 해결해 보는 것도 좋은 공략법입니다.
이것 말고도 문제해결에는 여러가지 공략법이 있고 과거의 사람들이 남겨놓았습니다. 책을 읽으시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공략법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spinoffnote 일면식도 없는 제게 이렇게 장문의 글과 정성을 남겨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다 이해되는 말씀은 아니지만 진실되게 따스한 말씀의 뜻만은 알아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게임을 즐긴다는건 문제해결과정을 즐긴다는 것'이라는 부분은 와닿네요. 새기며 살아야겠습니다.
2.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게 직장이라면 퇴사가 해결방법일 텐데, 퇴사 후엔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순환문제에 직면하는 것 같습니다.
3. 수학문제는 풀 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괴롭더라고요. 나는 왜 이런 걸 못하지라는 자아가 항상 개입되었는데 지금 수학문제를 봐도 무섭습니다 저는. 열심히 했지만 극복하지 못했던 벽이 제게 수학이라는 과목의 의미여서 두렵고 또 괴로운 이름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그래서 공감이 안 됐습니다. 지금도 수학 잘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합니다 저는.
저의 머리로는 이해와 정의하기가 어려운데요.
뭔지모를 위안을 얻었어요. 나처럼 왜 사는지 모를 사람들이 많다는것과
타인에게 영향을 주면서 내 가치를 찾아야하고 결국 답은 없고 단순한것이 진리일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고싶어요.
저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hello-li5tg 삶의 의미가 가지가지를 하는건지?😂교통카드도 인식않되도록 하고 잔액도 어느새 없어지고 요금도 많이 깍이고😂나중에 가지가지한 열매가 맺혀서 가지가지한 수확을 거두겠지😂
@@hello-li5tg 지능장애인이라 그런지?무식해서 그런지?😂사는걸 왜 사는지 모르는건 기본이고,거기에다 똑똑한 머리를 굴려서 똑똑한 짓을 한다는게 논리가 없는 짓인데😂쿄통카드도 핸드폰 케이스안에 넣어도 감응해서 읽어내는데는 아무문제 없는데 감응이 않되게 차단작용이 없는데 차단작용도 못하는데😂이건 내가 무식하다는걸 보여주고 증명하려고 그런건지?😂자기가 무식하다는걸 보여주고 증명하려고 그런건지?😂그래서 핸드폰 케이스밖에 붙여서 쓰는데,별 수가 없었는지?아예 교통카드를 인식않하도록 해놨는데😂그럼 카드를 바꿔야 할건데,그래야 고장이니 뭐니 구실을 못댈건데😂카드마다 고장이 날수가 없지,불량품으로 만든것도 아닐건데,이런 카드는 고장율이 로또 당첨하고 비슷한데😂근데 x-ray같은거는 알루미늄으로 차단이 되서 알루미늄 케이스안에 넣으면 스캔이 되지 않아서 그냥 통과되는데😂공공장소에서 x-ray로 안전검사하는건 뭔가 이상한데,허수아비?다른목적?😂진짜 범죄자는 이런걸 알고 있을 확율이 높을건데😂,물론 모르고 몰라서 위험한걸 가지고 들어가는건 발견할수는 있지만,이런 경우는 범죄목적이 없는건데,안전문제가 없는데,폭발물 같은거는 위험하고 안전문제가 있겠지만,
@@hello-li5tg 논리가 없는 무식한 짓을 해서 내가 무식하다는걸 증명하는건지?자기가 무식하다는걸 증명하는건지?😂어떤 사람이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삶의 의미를 못찾아도 대리할만한 다른 가치가 있으면 ‘살아지는’것 같기는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주위의 좋은 관계나 성취가 있다면.. 요
나에게만 남는 가치가 아닌 타인에게 남는 가치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죽을 사람이 '자신' 이라는 것으로 남길 수 있는건 자신이 어떤 형식이든 조금이라도 달라진 이 세상, 그리고 자신이 보낸 시간과 기억 뿐이니까요.
와. 자연으로 다시 돌아와주셨군요~~너무 편안합니다. 늘 응원합니다!!
요새 참 고민이 많은 주제였는데 우연히 영상을 봤네요. 위로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왜 사는거지 인간은 왜 사는거지 동물은 왜 사는거지 근본적으로 생명은 왜 사는거지 이과적으로 진화와 자기복제이며 문명사회에서 자기복제는 자식보다 지식이 순수한 불멸의 자기복제인걸 고전 철학자들이 입증해준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 저도 십대 때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저 혼자서 예술이나 즐길거리들로 채우면 될 거라고 단정하고 답을 내렸습니다. 헌데 나이가 차면서 그렇게 삶이 유지가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그것들이 모든 것을 채우지도 못 하구요. 그래서 뒤늦게 삼십대가 되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하다보니 철학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고요. 고전을 직접읽을 정도의 간절함은 안 되었는지 유튜브를 통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채널을 보게 되고 영상을 보면서 그래도 무언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삶을 다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해한다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남아있는 삶의 과정들을 잘 보내는 것에 더 많이 안다는 것이 유효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상대적으로 아는 것이 조금은 더 필요한 경향의 사람이긴 한것 같네요. 철학 영상들을 볼수록 위안을 얻었습니다. 어느 영상에서 철학의 위안이라는 것이 있다고 본 것도 같네요.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두서가 없네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저는 이 영상에서 말하는 요지에 굉장히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서 사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으로 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제가 이제 어른 흉내는 내려나 봅니다. 언젠가는 보는 것을 넘어서 바뀐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진짜말잘한다
TT로 보낼께😂재미있는 친군데,뭔가 생각을 할줄 알고 논리적사고를 할줄 아는데 더 열심히 연구해서 인간으로 진화되야지😂그럼 정답을 찾을수 있을거😂
철학에서는 절때 답을 찾을수 없을거 같은데 나도 이전에는 철학을 좋아했지만 그 과정을 거쳤는데 성경을 읽어보던가 하면 깨달음이 생길수도 있을건데 처음볼때에는 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보다나면 알게 될건데,강병국 목사님 설교를 보는걸 추천하는데 생애의빛 인지 sostv 검색하면 나올걸😂불경은 좀 너무 심오한데 알고보면 또 그렇게 어려운거는 아니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처음 부터 혼자서 봐서는 뭐가뭔지 모를거 같은데 스님의 설교를 먼저 듣고나서 어느정도 익숙해진후에 혼자서 보고 연구해야 할건데😂근데 깨달음이란건 IQ라든가 똑똑한것하고 상관이 없는것 같은데 마음이 중요한데 신이 깨닫게 해준다면 금방 깨달을수 있는데,아무리 돌대가라도😂근데 보통 돌대가리들이 마음이 좋은건 아닌데😂천재라도 신이 깨달음을 주지 않으면 평생 깨닫지 못할건데😂
물론 철학을 유투브로 돈벌이로만 생각한다면😂근데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철학을 선택한거 같은데 철학에서는 답을 찾을수가 없다는건 분명한것 같은데😂
바나나만 먹어서는 답이 없으니 얼른 쌀밥을 먹는걸로 갈아타야 답을 찾을수 있을거다😂
철학은 재미있기는 한데 답이없다.답이 없는거가 문제다😂
인생 궁극적 목적이란 망상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적을 내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해 잘가게 설명도 잘하시고 재밌네요 흥미롭습니다.
시몬느드보부아르 모든사람은 혼자 다; 얼마안되면 곧예순을 눈앞에 두고 삶의 의미는 스스로부여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혼자서 해결해나가며 사는 것이 삶이지죠라며 ‘관계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내면의 자족을 위하여’ 하루하루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미, 붓다가 이 숙제를 끝냈는데 ...
ㄹㅇㅋㅋ
인간의 능력으로 삶의 의미는 아직 알수없지만
삶에 의미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던지며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인간답고 아름다운것임은 확실한것같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사유하시는 충코님 항상 응원할게요~!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죽어도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죽음의 의미 또한 모르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그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혹은 죽었으면 합니다. 마음 한 켠에서 끌리는 것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허나 지금까지는 그저 남들에게 영향받지 않고 저만의 가치를 쫓으려 했는데, 오늘 말씀하신 견해도 굉장히 흥미롭네요. 종합적으로 생각정리 할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충코님 영상은 항상 너무 재밌습니다.
보부아르의 타인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고 인간의 본성인 사회적 동물로서 수천년동안 진화하면서 깨달은 진리일 것이다.인간 개인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고 먼 옛날 부족들이 모여 살다가 오늘날 국가를 형성해서 사는 이유도 거기에 답이 있다.타인을 위하는 길이 곧 나를 위하고 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나의 부족함을 알면 다른사람의 실수 부족함도 포용할 수 있다.
저도 젊은날 삶을 관통하는 목표,사명을 찾고자 했던때가 있었지요..지금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작은 보람,가치의 작은 실현,배움과 성장, 사랑하는사람과의 소소한 행복 등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충고님의 오늘영상으로 제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어 고맙습니다~
영상으로볼때마다 매사에 성실함이 묻어나 잘 듣고 있습니다!
ㅋ밖에 나와서 걸으시며 하는 영상이 항상 귀에 잘 들어오고 좋게 느껴지는데, 저만 그런건 아닌가봅니다~^^*
"사랑" 💖
사랑의 정의를 찾기 위한 여정 인 듯 합니다.
한창 약관의 시절엔 목표가 분명 했으므로
왜 사는가, 란 여백 없이
줄곧 그것을 향해 노력 했었는데,
몇 번의 쥭음의 고비들을 넘기고
인내심을 시험 받으며 지쳐 갈 즈음
마치 무겁고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확연 하게 깨닫기 시작 했습니다.
결국 "사랑" 의 정의를 찾기 위한 여행 길 이었다는 것을.
그 " 사랑" 이란 무엇인지 한 가지로 정의 할 수 없습니다.
시대와 세대와 남녀 간 모두를 의미 하지만
그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남녀의 사랑" 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과 넓이와 높이를 찾아 가는 여정 속에서 인간은
진정 더욱 완성 되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이 설령 ,
배신과 상처와 온갖 혼란을 초래 한다 해도
끝끝내 놓치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근원적 철학은 인문학의 토양을 더욱 비옥 하게 가꾸어
예술로 창조 되는 감명 깊은 생의 기쁨을 선사 합니다.
그것이 두뇌력 있는 인류가 사는 이유 이며,
진정 살아 가는 방식이며,
방향이고
목적인 듯 합니다.
철옹성의 내 세계만 우선 내세우지 않고,
"너"를 위해
"너"를 사랑 하므로
내 세계의 어느 벽 하나는 기꺼히 허물어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의 정의를 체득 하길 항상 각성 합니다.
"죽음" 이란 하나의 거대한 차원의 과정 일 뿐 ,
결코 끝이 아니란 사실 또한 더불어 각성 합니다.
사랑이 사랑의 정의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말씀이 매우 위로가 되었어요. 다른 글도 쓰시는지 더 읽고 싶어 채널로 가니 페북이 있어 친구신청했어요. 저도 부산 시민입니다^^
@@srs1659 감사 합니다. 부산 시민이시라니 반갑습니다. 😊
너무 좋네요. 보브아르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네요.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고마와요.
인간의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을때 길가에 있는 풀을 보면 해결돼요
우리몸은 산소수소흙같은 물질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들은 죽어있는것이죠 우리는 이것들로 다시 돌아가죠 살아있다는것은 무엇인가 어떤 의지나 목적을 갖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흔적 없이 사라질 존재이지만, 주어진 생이나 후대에 해가 되는 존재는 되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 현재 있는 이 자리를 함부로 하지 말자고 매일 다짐하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했지만,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바라보니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서
삶이 편해졌답니다.🎉
타인을 위해 살아야하는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나와 남 모두를 위해 살아야 한다가 균형잡힌 태도임. 맹목적으로 타인만을 위하는 과정에서 외려 자신이 남으로부터 위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고 또한 먼저 나를 이롭게 해야 남도 이롭게 할수 있음. 그리고 보부아르가 내세우는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실존주의적 관점의 한계에 따라 그 근거로 내세운 내용과 논리가 턱없이 빈약하다고 할수 있음. 왜냐하면 보부아르의 그러한 초월 이론에 따른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단지 유전자 번식에 대한 현상을 아이디어 관념적 차원으로 상호호환시킨 버전인 셈인데 그 내용은 집단주의적 측면에서 표면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지만 인간이 근원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음 물론 대중이 반드시 옳은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임. 그녀의 명성에 대한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노예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ㅋ 😂
인간으로 태어날 기회에 가치가 있다면 인간의 삶은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충코님과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했는데 유튜브에서 충족이 되네요~
나눠주셔서 참 감사하고 만족스러워요
전 입자인듯 파동인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 나름 인생 즐기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아서 사는게 잼있어 집니다. 😂😂 순간 순간 의미 부여를 하고 발전하고 사고하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한 시공간에 갇혀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수행의 질만큼 살다 가는게 인생인거 같기도 해요.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겠지요.
태어난 것도 어쩔 수 없듯이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라는게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월권이라는게 있잖아요. 태어난것도 나의 책임이 아닌듯이 죽는것도 나의 책임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은 왜 살아야 한다고 묻는건 월권입니다. 나의 책임이 아니죠.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어야 하는것이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게 저의 최근 화두입니다.
어제 처음 발견하고, 얼추 팬이 된 것 같네요. 보브와르 삶의 의미, 저는 깊이 동감합니다.
이 영상에서 말하는 책 내용이 너무 많이 좋네요 ㅎㅎㅎ
저는 살아갈수록 삶의 의미를 찾기 이전에 삶 그 자체가 이미 의미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삶 자체가 신비이고 나는 그 신비속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부아르는 아마 그것에 동참하는 동류의식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닐까요.
4:39 사람의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변치않는 목적을 설정할수 없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은 의미를 잃고 다른 것을 찾는다.
타인을 지향한다는 의미는 , 타인이 있어야 기준을 잡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의 의미, 목적을 굳이 정해본다면,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변하지 않으면 정체),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타인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니까) 이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스스로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자기가 교육받은 지식안에서 형성된 기치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받은 교육에 따라서 스스로의 신념이 형성되고 그 신념대로 살게되니
그는 그 신념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거고
결국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결론에 이를지라도....
나를 위해 산다면 왜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한평생을 보낼 것이요
남을 위해 살기로 한 사람의 질문은 지금 나는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할까 이다
삶의 의미보다 나를 죽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을 찾아보면 거기에 많은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슬픔이건, 책임이건, 아직 못다본 내 삶의 이야기 등이라면 왜 나는 그것을 내 삶의 의미보다 신경쓰는가... 생각해보면 역으로 거기에서 의미가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지만 너무 늘 그곳에 있어와서 특별한줄 모르는 것들이 진리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나만의 선물을 줄 때, 동시에 마음의 선물을 항상 보답받는구나 느꼈거든요. 뭐 벌레에게 내 피, 살점 일부를 선물하는 것 또한 선물의 종류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죠. 이처럼 내 주변 사람, 자연,, 모든 것들에게 소중한 나의 것을 주는
것, 그 마음 하나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 마음은 하나일지라도 선물의 종류는 다양하니까요. 재밌기도 합니다. 각자 원하는게 다르고, 어울리는게 다르니 선물도 달라지는 그 이상한 매력이.
인생은
"자기의 영혼 발견 입니다"
왜 살아가는가?
"그것은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것이며, 지금도 변하고있다"
나 자신을 위해 사는게 베스트라고 생각하면서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나니 내가 타인(가족)을 위해 먼저 생각하고 대우해 주니 처음에는 힘이 들었는데 지금보니까 안정적인 삶을 위한 가치있는 노력이였다는걸 영상을 통해 다시한번 깨달았어요 요즘에는 아기엄마들과 아이 하원하고 같이 놀이터에 만나서 애들 공동육아 하면서 힘을 얻고있는데 이도 그와 같은거였네요 차분한 목소리로 인간이 누릴수있는 고급지식을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 누르고 갑니다
😁’마지막 영상에서 삶의 의미를 모른다고 할때 과연 살아야 할까요‘에 대한 제 아이디어는…신이 인간세계를 체험하려고 내려와서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 인생을 장난삼아 살아보는 그런 가볍고 재밌는 기분으로 살아보는겁니다
왜 살까를 묻기 전에
왜 왜 살까라고 물을까
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고통스럽다는 느낌이나
불편하다는 느낌이나
결핍된 느낌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왜 살까를 물을까?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물을까?
죽음을 거친 삶(죽음을 전제한 삶),
의심을 거친 믿음(의심을 전제한 믿음),
무의미를 거친 의미(무의미를 전제한 의미),
부정을 거친 긍정(부정을 전제한 긍정)만이
우리에게 불안이자 동시에 위안일 수 있으니....
참 좋은 콘텐츠네요~^^
좋은데요. 에고 속 공허에는 없던 것이 밤하늘의 별이라는 타자 속에서도 찬란한 의미가 느껴지는거 같아요.
보부아르 여사님 덕분에 일상을 좀 더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오늘 강연 내용 너무 좋습니다 👍🏻
요즘 유튜브채널 몇군데서 같은 내용으로 많이들 영상을 제작하시던데...
마치 어린 양떼를 몰이하는 식의 어설픈 내용이나 선악을 두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해 찬반토론을 끌어내는 내용 보다는 훨씬 깊이감 있는 접근이라 진지하게 강연을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 태생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삶을 허무하게 느끼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론에서는 서로 의견이 나뉘고 다투는게 일상이지만 인간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는 각자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는 지점이 분명 있다는 점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듭니다.
맞습니다. 자꾸 어설프게 철학을 끌어들여서 호도하는게 보기 너무 좋지가 않네요.. 그런 댓글들도 철학을 왜곡하는 거 같고 안타깝습니다.. 전문적인 철학 교육이 보편화되었으면 좋겠네요
견해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신중하게 좋은 콘텐츠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지금의 나와 앞으로 내 선택의 총합이 나라는 사르트르의 말도 떠오르네요.
자아는 본질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이다.
나는 어떤 고정된 코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다발이라는
불교철학의 무아라는 개념이 인간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유한한 생명을 갖고 우리는 끝으로 향하는 삶을 사는데, 그 삶이 가치가 있으려면 남을 위해 살면 됩니다. 본인만을 위해 살면 무슨 가치가 있나요? 책을 쓰든, 발명을 하든, 회사를 설립하든, 인간의 많은 활동들은 남을 위하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유튜브를 찍어도 결국 누군가에게 마음의 울림을 줄수도 있고요.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고 그 본성에서 벗어나긴 힘듭니다. 남을 위한다는게 막 이타적인건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솜씨가 부족해서 깔끔하게 쓰기 힘드네요. 😊
삶은
계란입니다..
간단명료하게삽시다
책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삶에 대한 좋은 통찰 많이 얻었습니다! 감사해요~~~
이런 주제 너무 좋아요 🖤
자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가 찾은 정답은 정신을 현재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삶에 의미더군요.
요즘에 드는 생각은,, 상대방의 고유한 온도가 변질되지 않도록, 그사람만의 색깔을 가지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자. 라는 결론까지인데, 제 온도를 보니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상처를 덜 받는 고요한 삶이더라구요. 무엇이 나의 일부가 되는 상대방을 돕는가? 결국 내가 살고싶은 방향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 조금씩 그렇게 살려고 하니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것이 저에겐 돕는 방향인거 같아요.
영상을 보니 그런 생각이드네요
인생에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내가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누군가의 본보기가 됨으로써 타인이든 누군가가 영향을 받고 뭔가 삶의 원동력이 됨으로서
사회에 일원이 되고 그가치를 타인에게 강요는 아니지만 뭔가 큰 문제에 직면 했을때 고민의 시간을 길게 잡아보면서 의미를 되찾아 보는게 아닐지.
이게 참 어려운게 윤리ㆍ철학이 보기에도 어럽고 해석도 상당기 자기 주관적으로 보여서 타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갈등하고 아닌가 싶습니다.
영상 처음 봤지만 삶의 의미를 대해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년전 내가 추구했던 가치가 지금에와선 무의미하게 느껴질때... 뭔기 허무한 느낌이었는데 마침 이 영상을 보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삶의 의미란 죽음의 의미와 똑같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깨닫고 내가 생각하는데로
내삶과 내죽음의 의미는 존재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데로의 나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하고 실현해나가는 삶이 아닐까요
개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 이익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결국 주변 다른 사람들이 잘 살게 하는게 최대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내가 줄 수 있는게 0에 수렴한 상태가 되고 그러니 다시 나를 채울 수 있는 삶을 살며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느낍니다. 무슨 의미 같은건 없습니다. 결국 내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되는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없고, 찾아봤자 의미도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출생 자체가 불필요한 고통을 수반하며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삶의 진짜 의미를 찾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고 불완전하며 불필요한 고통의 연속을 해명하려는 노력일 뿐이며 태어나지 않는 것이 고통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완전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삶의 본질은 바꿀 수 없으며 삶의 의미는 출산 자체가 폭력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임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춘들 인생은 질병, 자연재해, 죽음(또는 결국엔 다른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 등)이라는 고통을 회피할 수 없죠. 유전자에 각인 된 종을 보존하려는 욕구로 인해서 성욕이 존재하고 그렇게 집단을 만들고 사회가 생기죠. 그래서 저도 본능적으로 출산하고 싶은 마음, 이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자꾸만 자녀를 갖는 것은 자녀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게 됩니다. 나의 욕구 때문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글쓴이 님께서는 출산과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던피터슨도 대답못한..
역시 밖에서 알려주는 철학이 제 귀엔 더 잘들어와요 뭔가 상쾌하기도하고 좀 긴장도 풀어주고 충코님은 타인을위해 저희에게 이렇게 좋은 지혜를 알려주는 군요 하하 하지만 날이더운만큼 조심히 하시길
‘살아진다’는 충코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실존은 본질에 우선하죠. 젊은 날의 내가 존재에 앓고 있을때 구원을 얻은 대답
사랑과 케어로 잘 키운 자식 그리고 제 삶을 다시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삶의 여정이고 나의 의무를 잘 수행했다는 안도감을 느낌니다.
요즘 제가 하는 고민...이 불평등, 불공정, 불합리한 세상.....대부분 운으로 움직이는.세상을 왜.....열심히 살아야하나.....하는 일에 대한 열의 상실...특히 특권층의 특혜를 보며 더더욱~~
법륜스님이 쉽게 대답해주심.
동의함.
내 삶의 의미는 내가 남에게,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발생함.
"삶의 의미가 남아있기 위해서는 다른이와 상호작용이나 공유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세대의 개인주의와는 대치되는 가치관인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의 공허함의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답일수도 있겠네요. 예전에는 가까운 사람이나 사회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치관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널리 받아들여 졌었잖아요?
관계성이 의미를 준다는 것은 더 근본적인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될 때에도 완전한 혼자가 아님을 알 때에만 길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을 위해 사는게 아닌 항상 나를 지켜보는 절대자를 인정하고 그의 뜻을 살피는 것은 우리 삶의 의미에 다른 차원을 줄 것입니다.
호모사피앤스는
머리가 좋아요
각자가 그 의미를찾으면서
살아나가요
생각보다는 간단한거같아요.일단 태어나긴 했으니까 쾌락을 위해 살거나 의미부여를 위해 살거나 둘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도 자연 속 죽음과 탄생 속에서 나온 동물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누구도 원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그러니 그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건 온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태어남을 저주로 느끼며 살아갈 수도 누구는 태어남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도 있죠.
각자 환경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자원도 다르니까요.그 누구도 어떤 의견이든 비난할 순 없습니다.
태어남에 감사하는 것도 인정하고 태어남에 원망하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니 법의 테두리를 크게 넘지 않는 선에서 다들 원하는걸 하도록 합시다.
놀든 일하든 맘대로 하세요.뭐 일단 세상에 나온 이상 최대한 즐길건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안되는 현실이라면....그냥 못 죽어서 사는거죠 뭐.
죽을 고통은 느끼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으니 그냥 무기력하게 사는거죠.대부분은 이 경우가 많을겁니다.
솔직히 세상은 즐길 것보단 고통 받을 것들이 훨씬 수두룩하니까요.그냥 연명하려고 정신승리하고 거기에 의미부여하는거지.
바나나를 즐겨드시는 분인가 싶은데😂
원하는걸 하고 살아야지😂
삶의 의미는 이 세상을 만든 그것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알길이 없음.행성이 탄생하고 세월이 흘러 폭발하고 다시 그 잔해가 새로운 별들을 만들고..행성도 은하도 모두가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 안에서 개체들이 번식하지..왜 존재하고 왜 번식하려 하는지 그 이유는 그것..우주 만물을 만든 것..생물일지 무엇일지 그것..
굉장히 미약하지만 한줄기 희망으로 느껴지는 것👍🏻
법륜 스님과 같은 얘기네요😊
불교철학과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문득 아! 이제 "자리이타"의 삶을 살아가야 겠다라고 마음먹었어요...물질적으로는 힘든시기를...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건 계속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 싶고, 그렇게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나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충코님의 의견에 매우 공감이 되고, 보부아르와도 같은 마음인것 같아 댓글 남겨봅니다;;^^
오래된 삶,혹은 묵은삶속에 자유를 위한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있는 단계로 승격하여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도 마음속에서는 이루어질 수있다는 영원성을 찾았을 수있는
현실과 내일을 이을 수있을만한 새로운 진리를 찾을 수있는 나 였으면합니다
보부와르는 벌건이 사상을 갖고 있어 자유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도구로 보여요
공부 하다 보니 엮겨운 느낌도 갖게 되더군요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