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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스토리텔링
South Korea
Приєднався 27 січ 2021
[원제스님의 스토리텔링] 채널은 운영자인 원제스님이 이야기라는 방식을 통해 불교의 경전과 수행, 일상의 삶과 일들을 가볍지만 심도있게, 유쾌하지만 진지하게 다루는 채널입니다. 수행과 삶의 모든 일들을 주된 이야기로 다루게 되겠지만, 채널 운영자인 원제스님의 두 서적, [다만 나로 살 뿐]과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에 나오는 경험들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갈 것입니다.
수행과 삶에 대한 한 수행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셨으면 합니다.
수행과 삶에 대한 한 수행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셨으면 합니다.
그런 깨달음은 없다
다음은 무문관 3칙 구지수지(俱胝豎指:구지가 손가락을 세우다) 공안입니다.
◎◎◎
구지 화상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만 하나의 손가락을 들 뿐이었다.
뒷날 한 동자를 데리고 있었는데, 밖에서 찾아온 사람이 “구지 스님은 어떤 법을 말씀하시느냐?” 하고 물었을 때에, 그 동자도 손가락을 세웠다.
구지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칼을 가지고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는 아픔을 못 이겨 울면서 도망갔는데, 구지가 다시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구지가 도리어 손가락을 세웠다. 이에 동자가 문득 깨달았다.
구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천룡 스님에게서 한 손가락 선을 얻어서 일생 동안 누리고도 다 누리지 못했다.”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무문의 말]
구지와 동자가 깨달은 곳은 손가락 위에 있지 않다. 만약 여기에서 알아볼 수 있다면, 천룡과 구지와 동자와 자기가 한 꼬치로 꿰일 것이다.
[무문이 송]
구지는 천룡을 망신시키네
날카로운 그 칼은 동자를 시험하니
거령이 제 손들기 무슨 힘이 들던가
단번에 천만 겹의 화산을 쪼개느니
거령(巨靈) : 본디 화산은 한 산이었는데 거령신이 한 손으로 내리치니 산이 두 조각이 나서 화산과 수양산으로 나뉘고 황하 물이 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
벽암록 19칙 구지일지의 평창에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지 스님은 무주(婺州) 금화(金華)사람(마조선사의 문하 대매 법상(大梅法常, 552~839)선사의 법제자인 항주 천룡(杭州天龍)선사의 법제자)이다. 처음 암자에 주석하고 있을 때, 실제(實際)라는 한 비구니(마조대사의 제자)가 구지 스님의 암자에 이르러 곧바로 들어오더니, 삿갓도 벗지 않고 지팡이를 든 채로 선상(禪牀)을 세 바퀴 돌면서 말했다.
“말할 수 있다면 삿갓을 벗겠소.”
이처럼 세 차례 질문했으나 구지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에 비구니가 떠나가려 하자 구지 스님은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하룻밤 머무르도록 하라.”
“말할 수 있다면 하룻밤 쉬어가지요.”
구지 스님이 또다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비구니는 바로 떠나 버렸다. 구지 스님은 탄식했다.
“나는 장부의 모습을 가지고서도 장부의 기상이 없구나.”
마침내 분발하여 ‘이 일’을 밝히고자 암자를 버리고 여러 총림의 선지식을 참방하여 법문을 청하려고 (신변을) 정리하여 행각을 하리라고 다짐했는데, 그 날 밤 꿈에 산신(山神)이 나타나 그에게 고했다.
“이곳을 떠날 필요가 없다. 내일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찾아와서 스님을 위하여 설법하실 것이니, 부디 떠나지 마시오.”
과연 그 이튿날 천룡(天龍) 스님이 암자에 이르렀다. 구지 스님이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전에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말했다.
천룡 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그에게 보여주자, 구지스님은 갑자기 완전히 깨쳤다. 이는 당시 그가 정중하고 한결같이 참구(專注)했기 때문에 통의 밑바닥이 쉽게 빠진 것이다. 그 후로는 묻기만 하면 오직 손가락을 세워 보일 뿐이었다.
◎◎◎
하지만 사람들이 깨달음을 원합니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자유로운 내가 되고 싶고,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고, 위풍당당한 자신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달음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인격이 되고 싶은 ‘나’는 결코 그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이를 원하는 ‘나’를 버려야지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많은 공부인들이 슬쩍 이 깨달음의 편린들을 확인하고 받아들이지만, 완벽한 깨달음의 길에서는 주저하며 멈춰섭니다.
솔직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와 깨달음, 이 둘 중 무엇 하나만 선택할 것이고,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진리 #깨달음 #무문관 #선불교 #그런깨달음은없다
◎◎◎
구지 화상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만 하나의 손가락을 들 뿐이었다.
뒷날 한 동자를 데리고 있었는데, 밖에서 찾아온 사람이 “구지 스님은 어떤 법을 말씀하시느냐?” 하고 물었을 때에, 그 동자도 손가락을 세웠다.
구지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칼을 가지고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는 아픔을 못 이겨 울면서 도망갔는데, 구지가 다시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구지가 도리어 손가락을 세웠다. 이에 동자가 문득 깨달았다.
구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천룡 스님에게서 한 손가락 선을 얻어서 일생 동안 누리고도 다 누리지 못했다.”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무문의 말]
구지와 동자가 깨달은 곳은 손가락 위에 있지 않다. 만약 여기에서 알아볼 수 있다면, 천룡과 구지와 동자와 자기가 한 꼬치로 꿰일 것이다.
[무문이 송]
구지는 천룡을 망신시키네
날카로운 그 칼은 동자를 시험하니
거령이 제 손들기 무슨 힘이 들던가
단번에 천만 겹의 화산을 쪼개느니
거령(巨靈) : 본디 화산은 한 산이었는데 거령신이 한 손으로 내리치니 산이 두 조각이 나서 화산과 수양산으로 나뉘고 황하 물이 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
벽암록 19칙 구지일지의 평창에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지 스님은 무주(婺州) 금화(金華)사람(마조선사의 문하 대매 법상(大梅法常, 552~839)선사의 법제자인 항주 천룡(杭州天龍)선사의 법제자)이다. 처음 암자에 주석하고 있을 때, 실제(實際)라는 한 비구니(마조대사의 제자)가 구지 스님의 암자에 이르러 곧바로 들어오더니, 삿갓도 벗지 않고 지팡이를 든 채로 선상(禪牀)을 세 바퀴 돌면서 말했다.
“말할 수 있다면 삿갓을 벗겠소.”
이처럼 세 차례 질문했으나 구지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에 비구니가 떠나가려 하자 구지 스님은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하룻밤 머무르도록 하라.”
“말할 수 있다면 하룻밤 쉬어가지요.”
구지 스님이 또다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비구니는 바로 떠나 버렸다. 구지 스님은 탄식했다.
“나는 장부의 모습을 가지고서도 장부의 기상이 없구나.”
마침내 분발하여 ‘이 일’을 밝히고자 암자를 버리고 여러 총림의 선지식을 참방하여 법문을 청하려고 (신변을) 정리하여 행각을 하리라고 다짐했는데, 그 날 밤 꿈에 산신(山神)이 나타나 그에게 고했다.
“이곳을 떠날 필요가 없다. 내일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찾아와서 스님을 위하여 설법하실 것이니, 부디 떠나지 마시오.”
과연 그 이튿날 천룡(天龍) 스님이 암자에 이르렀다. 구지 스님이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전에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말했다.
천룡 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그에게 보여주자, 구지스님은 갑자기 완전히 깨쳤다. 이는 당시 그가 정중하고 한결같이 참구(專注)했기 때문에 통의 밑바닥이 쉽게 빠진 것이다. 그 후로는 묻기만 하면 오직 손가락을 세워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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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깨달음을 원합니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자유로운 내가 되고 싶고,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고, 위풍당당한 자신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달음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인격이 되고 싶은 ‘나’는 결코 그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이를 원하는 ‘나’를 버려야지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많은 공부인들이 슬쩍 이 깨달음의 편린들을 확인하고 받아들이지만, 완벽한 깨달음의 길에서는 주저하며 멈춰섭니다.
솔직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와 깨달음, 이 둘 중 무엇 하나만 선택할 것이고,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진리 #깨달음 #무문관 #선불교 #그런깨달음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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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심즉불인가 비심비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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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30칙, 마음이 곧 부처 卽心卽佛 마조에게 대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무문의 말] 만약 즉시 깨달을 수 있다면, 부처의 옷을 입고 부처의 밥을 먹고 부처의 말을 하고 부처의 행동을 할 것이니, 곧 부처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대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저울의 기준 눈금을 잘못 읽었으니, 부처라는 글자를 말하기만 해도 3일이나 입을 닦았다는 말을 어찌 알겠는가? 만약 한 사람 참된 대장부라면, "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귀를 막고 곧장 달아날 것이다. [무문의 송] 밝은 대낮처럼 명백하니 결코 찾지 말아야 한다 다시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훔친 물건을 안고서 억울하다고 외치는 짓이다 ◎◎◎ 무문관 33칙 마...
부처가 부처를 보내, 부처로 하여금 부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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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부처를 보내, 부처로 하여금 부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죽이리니...[벽암록 73칙 마조백비(馬祖百非)]
Переглядів 2,5 тис.5 місяців тому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죽이리니...[벽암록 73칙 마조백비(馬祖百非)]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도달하였다(@청주 마야사 초청법문)
Переглядів 2,5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도달하였다(@청주 마야사 초청법문)
유럽사람들이 종교명목으로 중동 식민화 갔는데...성매매, 인신매매 엄청 번창했음...이후 돌아온 병사들에 의해 유럽 전역이 전염성 강한 매독에 시달렸고, 탈모가 심해져..결국 고위직들은 흰가발을 쓰고 다니기 시작한것임.
마음을 움직이는 커피같은 법문입니다. 이슬람(너네)은 악마😮~ 커피(당신)는 맛이 좋아~!! 용서가 스윽~~ 문화로🎉 ((커피 속에 녹아든 교황? 교황에 스며든 커피?...)) 이슬람은 이슬람이고💙 커피는 커피❤ 커피는 죄가 없어~ 커피 한 잔 올립니다. 스님~^ (저도 한 모금 맛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스님 생생한 여행기 잘봤습니다 추운대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통과 친구하기를 친구가 나를 떠나지 않는건지 내가 친구를 떠나지 않는건지 그것만은 확연히 아네요^^ 감사합니다 🙏
스님 영상잘봤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네 네 네 네 ❤❤❤❤❤❤사랑합니다 보고십어요
원제스님 영상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를 버리기 싫어서.....' 뼈를 맞은 느낌이였습니다 며칠 전 수행을 마치고 깨달음에 대한 발원을 하는데 마음 한편에서 정말로 완전히 깨닫게 될까봐 겁내고 두려워하는 모순된 마음이 올라오는걸 보면서 '이 마음은 뭐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이 법문을 듣게 되네요 제 속에서 두려워했던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닌 완전히 나를 놓아버리는 거였음을 법문을 들으면서 알게됐습니다 나와 깨달음 둘중에 선택하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도 망설이는 저를 보게 됩니다ㅠ 그나마 오늘 법문을 듣고서 저는, 나를 버리기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게 됐습니다 저의 현주소를 알았으니 무엇을 붙잡고 있어 나를 온전히 못놓는지를 솔직하게 세밀하게 보겠습니다 뼈를 때리는 법문에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구지선사의 '정중하고 한결같은 참구'를 떠올리며 그 마음과 태도를 상상해보고 느껴보면서 리셋 버튼을 누릅니다 감사드립니다 🙏🙏🙏
스님법문 공감합니다.공부길을 잘 알려주 감사드립니다.
눈앞도 곧장 홀연히 사라집니다 내안을 벗어나면 그 어떤 봄도 일어나지 않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일체의 현상은 내안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내바깥을 보는 눈을 가졋다는 것도 착각입니다 있지도 않는 그눈으로 손가락이 내바깥에 잇는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히 착각이죠 눈앞도 눈뒤도 본래 없습니다 허상이다 실체가 없다 그런 차원의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잇다는건 의식 그것밖에 없어요 불가에선 참나라 말하던가요? 그외에는 모두 생멸을 거듭하죠 태양도 달도 매순간 공과 색을 넘나들고 잇죠 우주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닫고 알아차린건 스님의 지혜로운 오온입니다 참나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오온이 바라보니 내바깥이 잇는거죠 대부분 그렇게 깨닫죠 잘못됫다는게 아닙니다 그또한 참나의 작용이니까요 눈앞이 사라지니 실실 웃음만 나옵니다 이놈이 왜 웃고 잇는걸까요?
스님 감사합니다 🙏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스님의 법문에 너무 공감이 갑니다. 나를 완전히 버리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45:34 😆😆😆 역시 제가 스님을 똑바로 봤네요ㅋㅋㅋㅋㅋ 저는 허세 위선 가식을 가장 싫어하는데, 이런 것들이 없는 분들의 보통의 삶 자체가 수행이라 생각해요. 어렵지만 저도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 중이구요. 계속 지금처럼만 계셔주세요🙏🏻
56:06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인데,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내 유전자를 세상에 남겨두는거라 후손을 낳는 건 생명체의 가장 강한 본능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나란 껍데기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해탈이라는 불가의 깨달음과는 정면대치되는 속성이 아닌가 싶어요. 인간이나 동물이나 후손을 남기는 걸 폄하하는건 절대 아니고 20여년 남의집 귀한 자식들을 가르쳐 본 사람인지라,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고 부모의 끝없는 희생은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흔히들 자식을 낳아봐야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이 된다는 말에는 한번도 동의 한 적은 없어요. (물론 속으로😆) 생리학에서도 나오지만, 생명체가 가장 이기적이 될 때는 내 유전자, 후손들을 보호할 때이거든요. 저도 제 유전자를 남겼으면 응당 그랬을거구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생명체의 본성이 그렇다는거죠.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목사는 절대 성직자가 아니고, 그냥 직업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30대 중반에 아빠 돌아가신 후 그 충격으로😂 선방에 몇개월 살았었는데, 게을러터지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철부지를 몇 스님과 어른들이 출가해 볼 생각 없냐고 하실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제 이런 면을 보신게 아닌가 나이 먹고 알았어요. 뭐 이번생은 저 혼자 떠나면 되니 다음생엔 출가 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맨날 똑같은 옷 입는건 너무 싫은거 보니 에휴 아직 멀었어요🤣 평소 생각해오던 부분을 스님이 확실히 짚어주시니 반가운 마음에 사족이 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alomode 님의 예쁜 마음이 와 닿네요. 저도 자식을 낳아보지 않았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어릴 때 고사리 손으로 빨래하고 밥짓고 제 동생들 보살피고 사촌 남동생들까지 육아해주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엄마(여성)란 어떤 존재이고 나의 행복은 무엇인가? 의문이 쏠리면서 인내로써 감당은 했었지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점점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결혼해서 남편과 단 둘이 살다가 갑작스레(30분의 생사고투)하늘로 가버린 유일한 나의 편이었던 남편! 번개로 머리를 치고 지진으로 땅을 쩌억~ 갈라놓으면서 동반자를 데려간 무심한 하늘ㅡ>> 눈깜짝 찰라에 혼자가 되어 남은 생을 시체아닌 시체로 살아가야 했었던 기억도 회상되네요~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저에게도 아직 진행중이죠~님처럼~^ 직업을 가진 목사와 성직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원제스님에 대해서 잘~알고 계시는가요? 앞으로 계속 그 자리에 그렇게 계셔줄까요? 누구를 위해서죠?ㅎ (저는 영상을 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다른 모습의 원제스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있어서 ㅋ) 건강하게 함께 정진합시다~ 화이팅입니다!
또 또 또 오직!! 나란 실체 벗어나기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나?? 진리?? 에고에 꽉찬 저는 나를 완전하게 버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스님 법문을 통해 순간순간은 깨어 있으려 애 쓰겠습니다 스님의 진리에 두손 모읍니다!!
곧장 😊☝️근념하셨습니다 원제스님 합장공경합니다 뜰 앞에 잣나무 ㆍ선방클라스도 잘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원제 스님 🙏 《그런 깨달음은 없다》 곧장 문득 홀연히 '나'라는 실체 거둬짐 우리라는 존재는 항상 곧장이다 눈앞이다 항상 흔들림 없이 확연하게 같은 밀도로 안정감 바뀌지 않는 눈앞 원래부터 있던 눈앞 완전히 '나'를 포기한다 완전히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나를 내던저야 찾아오는 자유 고맙습니다 🙏 💗
곧장... 굿! 입니다.^^ 직거하라!!^^
감사합니다 🙏🙏🙏
🙏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존경하옵니다
쏴악~ 곧장! 눈앞! (뜻이 있어도 뜻이 없는) 법문에 들어갑니다. 늦가을 수도암의 은행나무, 고개잘린 은행나무가 좀 아쉽다는 원제스님~ 잘린 대가리는 구지선사의 손가락이었던가요? 아님 동자의 손가락이었던가요? 침묵을 가르며 바람이 (고개 자를 기세로) 세차게 지나가네요~ 예쁘게 가지치고 모양을 만들어 대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가위의 속삭임을 싣고~ 아야~😮 (허리^)아파 😷🤩 ※수행인의 태도와 자세 여성과 비구니의 직위와 처우가 부당하고 보잘것없었던 그 당시 '옳지 걸렸구나' ㆍ ㆍ 의문(화두/탐구)에는 남녀노소가 불문한가요? 오히려 그런 열악한 환경<(빽도어가 별로~ ex; 공부를 할 수 있어도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공정하지 못한 출발선상ㅡ남녀불문ㅡ의 성적순위😮)> 이었기에 (철두철미) 화두가 간절했었던 것이 아닐까요? 틈새(남성위주의 터전)를 활용한 창의~ 여성 선각자의 발버둥 탐구 개척정신에 존경을 표합니다~!! 손가락 속에서가 아니라 가르키는 곧장! 문득!을 깨우친 눈 밝은 여성 구도! 저 절 로 마주하는 영원불변의 여기! 지금! 감사합니다 🙏
스님🙏🙏🙏 감사합니다 🙏🙏🙏
🙏🙏🙏 ❤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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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스님 영상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제스님 나는 내가 하고싶은데로 다한다!
스님 영상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 _()_
감사합니다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개별성을 벗어남 드러남 🙏
ㅎㅎㅎ 스님 감사 합니다 🙏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한 통으로 돌아가는~ 법문에 귀 기울입니다. 한 통/덩어리이기에 모양(형태/견해/주장/실체성...은 있지만 벗어난 불이)도 그 속(성질)에서 하나! 한 통에서 드러나는 (바다에 물결 ㅡ대양)! *물결이 예뻐도~ 높이 솟아서 멋져 보여도ㅡ개성/개별성ㅡ 근본은 바다(물/공통분모)ㅡ 번뇌 즉 보리! *밀가루ㅡ> 국수/수제비/빵 ..... ((당신; 큰소리치고 핏대올리며 막~ 주장을 펼치고 고집을 부려도~ 경청하는 내가 마음을 밝힌 경우 ㅡ아무런 문제없는 하나~)) 티끌~🍂 모래같은💭 (물결/번뇌..) 인생이지만 동시에 마음을 밝히면 대양이요 바다~🎉🎉 우주공정에 포함/참여 <인생(하늘)의 뜻/의미ㅡ저마다의 잠재력 ㅡ를 되살리고 일깨우는ㅡ>하는 자성/본래면목/눈앞! 하나! ❤ 감사합니다 🙏
🙏
스님 영상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스님 영상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제스님 네중생놀음 잘했어요 안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