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기 싫어서.....' 뼈를 맞은 느낌이였습니다 며칠 전 수행을 마치고 깨달음에 대한 발원을 하는데 마음 한편에서 정말로 완전히 깨닫게 될까봐 겁내고 두려워하는 모순된 마음이 올라오는걸 보면서 '이 마음은 뭐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이 법문을 듣게 되네요 제 속에서 두려워했던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닌 완전히 나를 놓아버리는 거였음을 법문을 들으면서 알게됐습니다 나와 깨달음 둘중에 선택하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도 망설이는 저를 보게 됩니다ㅠ 그나마 오늘 법문을 듣고서 저는, 나를 버리기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게 됐습니다 저의 현주소를 알았으니 무엇을 붙잡고 있어 나를 온전히 못놓는지를 솔직하게 세밀하게 보겠습니다 뼈를 때리는 법문에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구지선사의 '정중하고 한결같은 참구'를 떠올리며 그 마음과 태도를 상상해보고 느껴보면서 리셋 버튼을 누릅니다 감사드립니다 🙏🙏🙏
선뜻 댓글 쓰기가 쉽지않았습니다. 이 법문이 주는 한 방이 너무 커서지요. 밑바닥을 긁는 말씀..."나를 버리기 싫어서!" 원제스님은 참으로 끝을 보게끔 하십니다.👍 이번 법문은 신심명의 첫 대목과 오버랩이되면서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여러번 들었다고해서 다 새겨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무 가지 끝에 달린 감이 푹 익어 저절로 떨어지듯 저를 그렇게 익혀보겠습니다.😊 끝帳을 보게하시는 법문 감사합니다. 스님🙏🙏🙏 이 가을 건강히 명랑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나 눈물을 덮고.. 말없는 말이 흐려진 눈앞이 되어 마음 속 바람이 훅! 지났습니다. 🔆언제나 삶은.. 곧장 만나는 삶만이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니.. 당당히 나로서 눈앞을 보게 되면 눈앞이 알아서 온전한 삶으로 인도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 어떤 생겨나는 모든 일들이 무상과 무심이라는 인연으로 스스로 드러나고 있음을요~ 내가 아니었다..! 앞선 말에는 어긋남이 있기 마련이더라고요..ㅎㅎ 하루하루 맞닿게 되는 눈앞이라는 삶으로 흐름에 나를 맡기고 세상과 함께 잘 흘러가겠습니다.. 나에게 물음이라면 ⭐️ . . 눈앞이 하얗네 . . 손이 멈추어 서네 . . 무슨 말이 아무것도.. . . 오늘은 무슨 말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무슨 말이라 해도 지금 이럴뿐으로...⭐️ 삶의 경계와 온정이 흐르는 가득한 달빛 가득아래 😊 일당백 우리 스님의 법문을 배람하며.. 포개진 별빛 눈동자⭐️ 순간의 빛남으로 윤슬에 비쳐진 지금이라는 바탕에서 유유히 흘러 봅니다. 어떤것과도 견줄수없는 귀한 스승의 인연으로 당도하신 선지식이시여~ 스님의 공부 인연이 참으로 귀하고도 지중함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스님^^❤️ 일일시호일🔆 비오는 밤☔️ 포근한 밤 되셔요^^🌳 😊🙏🌺
쏴악~ 곧장! 눈앞! (뜻이 있어도 뜻이 없는) 법문에 들어갑니다. 늦가을 수도암의 은행나무, 고개잘린 은행나무가 좀 아쉽다는 원제스님~ 잘린 대가리는 구지선사의 손가락이었던가요? 아님 동자의 손가락이었던가요? 침묵을 가르며 바람이 (고개 자를 기세로) 세차게 지나가네요~ 예쁘게 가지치고 모양을 만들어 대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가위의 속삭임을 싣고~ 아야~😮 (허리^)아파 😷🤩 ※수행인의 태도와 자세 여성과 비구니의 직위와 처우가 부당하고 보잘것없었던 그 당시 '옳지 걸렸구나' ㆍ ㆍ 의문(화두/탐구)에는 남녀노소가 불문한가요? 오히려 그런 열악한 환경 이었기에 (철두철미) 화두가 간절했었던 것이 아닐까요? 틈새(남성위주의 터전)를 활용한 창의~ 여성 선각자의 발버둥 탐구 개척정신에 존경을 표합니다~!! 손가락 속에서가 아니라 가르키는 곧장! 문득!을 깨우친 눈 밝은 여성 구도! 저 절 로 마주하는 영원불변의 여기! 지금! 감사합니다 🙏
56:06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인데,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내 유전자를 세상에 남겨두는거라 후손을 낳는 건 생명체의 가장 강한 본능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나란 껍데기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해탈이라는 불가의 깨달음과는 정면대치되는 속성이 아닌가 싶어요. 인간이나 동물이나 후손을 남기는 걸 폄하하는건 절대 아니고 20여년 남의집 귀한 자식들을 가르쳐 본 사람인지라,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고 부모의 끝없는 희생은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흔히들 자식을 낳아봐야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이 된다는 말에는 한번도 동의 한 적은 없어요. (물론 속으로😆) 생리학에서도 나오지만, 생명체가 가장 이기적이 될 때는 내 유전자, 후손들을 보호할 때이거든요. 저도 제 유전자를 남겼으면 응당 그랬을거구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생명체의 본성이 그렇다는거죠.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목사는 절대 성직자가 아니고, 그냥 직업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30대 중반에 아빠 돌아가신 후 그 충격으로😂 선방에 몇개월 살았었는데, 게을러터지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철부지를 몇 스님과 어른들이 출가해 볼 생각 없냐고 하실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제 이런 면을 보신게 아닌가 나이 먹고 알았어요. 뭐 이번생은 저 혼자 떠나면 되니 다음생엔 출가 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맨날 똑같은 옷 입는건 너무 싫은거 보니 에휴 아직 멀었어요🤣 평소 생각해오던 부분을 스님이 확실히 짚어주시니 반가운 마음에 사족이 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alomode 님의 예쁜 마음이 와 닿네요. ~ 저도 자식을 낳아 본 적은 없지만 그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자랄 때부터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밥짓고 빨래하며 가정사 챙기고 동생들도 보살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에 대한 열의까지 불태우며 그렇게 자라오면서 여성의 존재와 행복(진리)에 대한 탐구/의문으로 목말라했었죠. . 결혼을 하고서도 그 목마름은 진행중이었고 그러다가 유일한 나의 편이었던 동반자를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보내며 죽음을 마주하고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생각(분별)에 빠져들어 시체 아닌 시체가 되어 헤매이기도 했었죠. 이원적 사고에서 생과 사를 분명하게 나누어보고 정리해보려는 작심에서 차츰 차츰 풀려나 점점 구분이 희미해지고 불분명해지면서 인생이 삶이 죽음과 비교해서 또렷히 구분할 수만은 없는, 인식상, 경계선상의 여정만은 아닐 것이라는 깨우침?을 마주하기도 하죠~ 죽음은 또 다른 여정이며 분별로 보기보다 분별지에 맡겨두는 초월! ! 지금 이순간에서.. 촛점을 맞춰서 죽음과 함께 여기를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업을 가진 목사와 성직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원제스님에 대해서 잘~알고 계시는가요? 앞으로 계속 그 자리에 그렇게 계셔줄까요? 누구를 위해서죠?ㅎ (저는 영상을 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다른 모습의 원제스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있어서 ㅋ) 건강하게 함께 정진합시다~ 화이팅입니다!
눈앞도 곧장 홀연히 사라집니다 내안을 벗어나면 그 어떤 봄도 일어나지 않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일체의 현상은 내안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내바깥을 보는 눈을 가졋다는 것도 착각입니다 있지도 않는 그눈으로 손가락이 내바깥에 잇는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히 착각이죠 눈앞도 눈뒤도 본래 없습니다 허상이다 실체가 없다 그런 차원의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잇다는건 의식 그것밖에 없어요 불가에선 참나라 말하던가요? 그외에는 모두 생멸을 거듭하죠 태양도 달도 매순간 공과 색을 넘나들고 잇죠 우주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닫고 알아차린건 스님의 지혜로운 오온입니다 참나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오온이 바라보니 내바깥이 잇는거죠 대부분 그렇게 깨닫죠 잘못됫다는게 아닙니다 그또한 참나의 작용이니까요 눈앞이 사라지니 실실 웃음만 나옵니다 이놈이 왜 웃고 잇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원제 스님 🙏 《그런 깨달음은 없다》 곧장 문득 홀연히 '나'라는 실체 거둬짐 우리라는 존재는 항상 곧장이다 눈앞이다 항상 흔들림 없이 확연하게 같은 밀도로 안정감 바뀌지 않는 눈앞 원래부터 있던 눈앞 완전히 '나'를 포기한다 완전히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나를 내던저야 찾아오는 자유 고맙습니다 🙏 💗
감사합니다 🙏 🙏 🙏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감사합니다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스님🙏🙏🙏
감사합니다 🙏🙏🙏
스님 ❤️
쉽고 명확하고 간결하게
그자리를 표현해주시고
분명하게
수행의 마음자세도
짚어주시니
속이 후련합니다.
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
늘~
새로움에 설레이는 법문~
감사합니다~^
공부에 대한 간절한 염원으로 인한 부작용?이나 조급함?에 자신도 모르게 스님의 법문에 묘하게
섣부른
비판과
평가(스님의 경지를 훼손하는)의 잣대(어설픈모방의 기준)를 들이대는 어리석음을 맘속으로 경계하면서(입 꾹) 조심스레 스님께서 밝혀준 길을 따라가봅니다~ 공부(수행)인의 자세를 돌이켜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
'나를 버리기 싫어서.....'
뼈를 맞은 느낌이였습니다
며칠 전 수행을 마치고 깨달음에 대한 발원을 하는데
마음 한편에서 정말로 완전히 깨닫게 될까봐 겁내고 두려워하는 모순된 마음이 올라오는걸 보면서
'이 마음은 뭐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이 법문을 듣게 되네요
제 속에서 두려워했던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닌 완전히 나를 놓아버리는 거였음을 법문을 들으면서 알게됐습니다
나와 깨달음 둘중에 선택하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도 망설이는 저를 보게 됩니다ㅠ
그나마 오늘 법문을 듣고서 저는, 나를 버리기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게 됐습니다
저의 현주소를 알았으니 무엇을 붙잡고 있어 나를 온전히 못놓는지를 솔직하게 세밀하게 보겠습니다
뼈를 때리는 법문에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구지선사의 '정중하고 한결같은 참구'를 떠올리며
그 마음과 태도를 상상해보고 느껴보면서
리셋 버튼을 누릅니다
감사드립니다
🙏🙏🙏
🙏🙏🙏 ❤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감사합니다 🙏🙏🙏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스님의 법문에 너무 공감이 갑니다.
나를 완전히 버리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존경하옵니다
스님법문 공감합니다.공부길을 잘 알려주 감사드립니다.
❤❤❤❤❤❤❤❤❤ 네 네 네 네 ❤❤❤❤❤❤사랑합니다 보고십어요
선뜻 댓글 쓰기가 쉽지않았습니다.
이 법문이 주는 한 방이 너무 커서지요.
밑바닥을 긁는 말씀..."나를 버리기 싫어서!"
원제스님은 참으로 끝을 보게끔 하십니다.👍
이번 법문은 신심명의 첫 대목과 오버랩이되면서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여러번 들었다고해서 다 새겨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무 가지 끝에 달린 감이 푹 익어 저절로 떨어지듯
저를 그렇게 익혀보겠습니다.😊
끝帳을 보게하시는 법문 감사합니다. 스님🙏🙏🙏
이 가을 건강히 명랑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또
또
또
오직!!
나란 실체 벗어나기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나??
진리??
에고에 꽉찬 저는
나를 완전하게
버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스님
법문을 통해 순간순간은 깨어 있으려 애 쓰겠습니다
스님의 진리에
두손 모읍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
곧장 😊☝️근념하셨습니다 원제스님 합장공경합니다
뜰 앞에 잣나무 ㆍ선방클라스도 잘보고 있습니다🙏🏻🙏🏻🙏🏻
고통과 친구하기를
친구가 나를 떠나지 않는건지
내가 친구를 떠나지 않는건지
그것만은 확연히 아네요^^
감사합니다 🙏
곧장...
굿! 입니다.^^
직거하라!!^^
오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나 눈물을 덮고..
말없는 말이 흐려진 눈앞이 되어
마음 속 바람이 훅! 지났습니다.
🔆언제나 삶은..
곧장 만나는 삶만이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니..
당당히 나로서 눈앞을 보게 되면
눈앞이 알아서 온전한 삶으로 인도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 어떤 생겨나는 모든 일들이 무상과 무심이라는 인연으로 스스로 드러나고 있음을요~
내가 아니었다..!
앞선 말에는 어긋남이 있기 마련이더라고요..ㅎㅎ
하루하루 맞닿게 되는 눈앞이라는 삶으로
흐름에 나를 맡기고 세상과 함께 잘 흘러가겠습니다..
나에게 물음이라면 ⭐️
.
.
눈앞이 하얗네
.
.
손이 멈추어 서네
.
.
무슨 말이 아무것도..
.
.
오늘은 무슨 말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무슨 말이라 해도 지금 이럴뿐으로...⭐️
삶의 경계와 온정이 흐르는 가득한 달빛 가득아래 😊
일당백 우리 스님의 법문을 배람하며..
포개진 별빛 눈동자⭐️ 순간의 빛남으로
윤슬에 비쳐진 지금이라는 바탕에서 유유히 흘러 봅니다.
어떤것과도 견줄수없는 귀한 스승의 인연으로 당도하신 선지식이시여~
스님의 공부 인연이 참으로 귀하고도 지중함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스님^^❤️
일일시호일🔆
비오는 밤☔️ 포근한 밤 되셔요^^🌳
😊🙏🌺
쏴악~
곧장!
눈앞!
(뜻이 있어도
뜻이 없는) 법문에 들어갑니다.
늦가을 수도암의 은행나무,
고개잘린 은행나무가 좀 아쉽다는 원제스님~
잘린 대가리는
구지선사의 손가락이었던가요?
아님 동자의 손가락이었던가요?
침묵을 가르며 바람이
(고개 자를 기세로) 세차게 지나가네요~
예쁘게 가지치고 모양을 만들어
대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가위의 속삭임을 싣고~
아야~😮
(허리^)아파
😷🤩
※수행인의 태도와 자세
여성과 비구니의 직위와 처우가 부당하고
보잘것없었던 그 당시
'옳지 걸렸구나'
ㆍ
ㆍ
의문(화두/탐구)에는 남녀노소가
불문한가요?
오히려 그런 열악한 환경
이었기에 (철두철미) 화두가 간절했었던 것이 아닐까요?
틈새(남성위주의 터전)를 활용한 창의~
여성 선각자의 발버둥 탐구 개척정신에 존경을 표합니다~!!
손가락 속에서가 아니라
가르키는 곧장! 문득!을 깨우친 눈 밝은 여성 구도!
저
절
로
마주하는
영원불변의
여기!
지금!
감사합니다 🙏
45:34 😆😆😆 역시 제가 스님을 똑바로 봤네요ㅋㅋㅋㅋㅋ
저는 허세 위선 가식을 가장 싫어하는데, 이런 것들이 없는 분들의 보통의 삶 자체가 수행이라 생각해요.
어렵지만 저도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 중이구요. 계속 지금처럼만 계셔주세요🙏🏻
56:06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인데,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내 유전자를 세상에 남겨두는거라 후손을 낳는 건 생명체의 가장 강한 본능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나란 껍데기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해탈이라는 불가의 깨달음과는 정면대치되는 속성이 아닌가 싶어요.
인간이나 동물이나 후손을 남기는 걸 폄하하는건 절대 아니고 20여년 남의집 귀한 자식들을 가르쳐 본 사람인지라,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고 부모의 끝없는 희생은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흔히들 자식을 낳아봐야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이 된다는 말에는 한번도 동의 한 적은 없어요. (물론 속으로😆)
생리학에서도 나오지만, 생명체가 가장 이기적이 될 때는 내 유전자, 후손들을 보호할 때이거든요. 저도 제 유전자를 남겼으면 응당 그랬을거구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생명체의 본성이 그렇다는거죠.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목사는 절대 성직자가 아니고, 그냥 직업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30대 중반에 아빠 돌아가신 후 그 충격으로😂 선방에 몇개월 살았었는데, 게을러터지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철부지를 몇 스님과 어른들이 출가해 볼 생각 없냐고 하실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제 이런 면을 보신게 아닌가 나이 먹고 알았어요.
뭐 이번생은 저 혼자 떠나면 되니 다음생엔 출가 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맨날 똑같은 옷 입는건 너무 싫은거 보니 에휴 아직 멀었어요🤣
평소 생각해오던 부분을 스님이 확실히 짚어주시니 반가운 마음에 사족이 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alomode
님의 예쁜 마음이 와 닿네요.
~
저도 자식을 낳아 본 적은 없지만 그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자랄 때부터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밥짓고 빨래하며 가정사 챙기고 동생들도 보살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에 대한 열의까지 불태우며
그렇게 자라오면서 여성의 존재와 행복(진리)에 대한 탐구/의문으로 목말라했었죠.
.
결혼을 하고서도 그 목마름은 진행중이었고
그러다가 유일한 나의 편이었던 동반자를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보내며 죽음을 마주하고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생각(분별)에 빠져들어 시체 아닌 시체가 되어 헤매이기도 했었죠.
이원적 사고에서 생과 사를 분명하게 나누어보고 정리해보려는 작심에서 차츰 차츰 풀려나 점점 구분이 희미해지고
불분명해지면서 인생이 삶이 죽음과 비교해서 또렷히 구분할 수만은 없는,
인식상, 경계선상의 여정만은 아닐 것이라는 깨우침?을 마주하기도 하죠~
죽음은 또 다른 여정이며
분별로 보기보다 분별지에 맡겨두는 초월!
!
지금
이순간에서..
촛점을 맞춰서 죽음과 함께
여기를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업을 가진 목사와
성직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원제스님에 대해서 잘~알고 계시는가요?
앞으로 계속 그 자리에
그렇게 계셔줄까요?
누구를 위해서죠?ㅎ
(저는 영상을 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다른 모습의 원제스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있어서 ㅋ)
건강하게 함께 정진합시다~
화이팅입니다!
구지:굳이~
눈앞도 곧장 홀연히 사라집니다 내안을 벗어나면 그 어떤 봄도 일어나지 않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일체의 현상은 내안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내바깥을 보는 눈을 가졋다는 것도 착각입니다 있지도 않는 그눈으로 손가락이 내바깥에 잇는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히 착각이죠 눈앞도 눈뒤도 본래 없습니다 허상이다 실체가 없다 그런 차원의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잇다는건 의식 그것밖에 없어요 불가에선 참나라 말하던가요? 그외에는 모두 생멸을 거듭하죠 태양도 달도 매순간 공과 색을 넘나들고 잇죠 우주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닫고 알아차린건 스님의 지혜로운 오온입니다 참나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오온이 바라보니 내바깥이 잇는거죠 대부분 그렇게 깨닫죠 잘못됫다는게 아닙니다 그또한 참나의 작용이니까요 눈앞이 사라지니 실실 웃음만 나옵니다 이놈이 왜 웃고 잇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원제 스님 🙏
《그런 깨달음은 없다》
곧장
문득
홀연히
'나'라는 실체
거둬짐
우리라는 존재는 항상 곧장이다 눈앞이다
항상
흔들림 없이
확연하게
같은 밀도로
안정감
바뀌지 않는 눈앞
원래부터 있던 눈앞
완전히 '나'를 포기한다 완전히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나를 내던저야 찾아오는 자유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