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고대국가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음.. 4:10 저 영토를 100% 실효지배한 영토라고 가정하면 발해는 강대국임. 근데 중세초기 봉건국가들은 간접지배와 실효지배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수많은 소국 & 민족들을 느슨하게 묶어놓은 거랑 비슷함. 발해의 5경 15부 62주는 그냥 행정체제를 주현으로 나눈 개념일뿐이고, 예를 들어서 용천부 주변 몇평방 킬로미터 그일대만 실효지배했을 뿐 그 주변 민족들을 통치하지는 못했다는거다. 엄밀히 말하면 수조권도 없고 징발권한도 없으니 그냥 빈땅이나 다름없음. 발해 동쪽지역은 그냥 수백개로 쪼개진 Mohe 족들이 누대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던 형태였고, 발해의 직접통치영역은 아님. 9세기 이후 독립한 보로국(寶露國), 흑수국(黑水國) 사례를 살펴보면 신라국경지역에 있었던 한반도 함흥일대는 애초부터 발해의 직접지배권도 아닌 Mohe족들의 영역이었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거다. 시각적으로 발해의 영토는 넓어보이지만 실제로 직접 지배한 영역은 1/3도 안된다고 봐야 한다. 나머지는 전부 빈땅 or 간접지배라고 봐야 맞음. 특히나 대씨가문의 왕위계승문제로 살인과 내전이 빈번했던 9세기 상황은 주변민족들이 중앙정부 통제에서 이탈하기 좋은 기회였을거다.
철리부같은 경우도 일본으로 갔을때 발해와 별개의 집단인 거 처럼 활동했었고 철리부 라는 이름으로도 남아있을뿐더러 발해 말기 - 멸망 후에도 독자적으로 나라를 자처하며 활동한 걸 보면 고려에 종속되던 여진족처럼 느슨한 관계 정도(고려보단 좀 더 가까웠겠지만) 라고 보는게 옳지 싶음 특히 요동 평안도 지역은 발해 통치에 대해 직접적인 고고학적 성과도 적은 지역이라 발해 중앙 5경 정도나 그나마 실질적인 직접 지배 영토이고 나머지 발견되는 역참 흔적이 물류 이동 흔젇으로 본다면 발해는 우리가 아는 영토보다는 작았을 것 고구려의 1.5배 이러는 사람들은 좀 정신 차려야 되는게 강이나 산맥 같은 직접적인 환경적 구분이 없으면 저런 곳들은 언제든지 이탈하는 지배권역 정도로 봐야됨.
오랑님께서 제 영상을 기다려 주셨다니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직전에 올려 주신 페르세우스 영상 너무 좋아서 처음 PC로 보고 난 이후에도 유산소 운동할 때 귀로만 들으면서 서너 번을 더 보았습니다. 좋은 영상 올려 주시고, 또 응원도 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행복한 2023년 마무리하시고, 올해보다 더 보람 있고 즐거운 2024년을 맞이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0:00: 📖 발해의 멸망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나라와의 관계 변화와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해 서서히 쇠약해진 결과였습니다. 0:00: 발해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오히려 서서히 쇠약해진 결과였다. 1:06: 발레와 당나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2:41: 말갈족과 고구려인의 비율에 대한 오해가 있었으며, 실제로는 고구려인이 많은 지역이었다. 4:01: 발해의 멸망은 당나라와의 관계 변화와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해 서서히 쇠약해진 결과였다. 4:21: 📜 발해의 쇠약함으로 인해 휘아 세력들이 독립하는 흐름이 시작되었고, 거란과의 전쟁으로 발해가 쇠약해지면서 내분이 발생했으며, 거란의 강세로 발해가 멸망하게 되었다. 4:21: 발해의 쇠약함으로 휘아 세력들이 독립하는 흐름이 시작됨 4:48: 발해의 쇠약함으로 내분이 발생하고 거란과의 전쟁으로 쇠약해져 멸망 5:29: 거란의 강세로 발해가 멸망 8:46: 📜 발레의 멸망은 거란과의 장기전에서 약화되고 내부 분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8:46: 거란군의 갑작스럽게부여를 공격하여 발레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9:00: 발레는 거란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3만 병력을 파견했지만 노상의 부대는 폐에서 항복했다. 11:15: 발레의 멸망은 거란과의 장기전에서 약화되고 내부 분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Recapped using Tammy AI
훌륭한 영상이네요. 국사책에서조차 다루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어서 매우 신선하고요.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나라가 남쪽에 치우친 상황이고 또 지리적으로도 이제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라 한국에서는 더욱 연구가 힘든 상황입니다. 가장 찬란했던 우리의 역사이지만 안타까울 뿐이고요. 좋은 영상 잘보고 갑니다.
지금의 역사가 고구려보다 줄어든 국토로 한국의 역사는 퇴화되어 가고 있다는 관점은 문제겠죠. 하지만 역사라는 것의 중요성은 좋은 결과 만을 부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결과를 보고서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역사를 하는 이유일 겁니다. 오히려 식민사관이라는 굴레로 과거의 잘못된 점을 스스로 외면하려 하는 것 역시 바른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sugarfree97
@@jasoncho264 드넓은 초원을 가지고 있는 몽골이 한국보다 위대하다는 말이군요? 90년대 한국의 위상은 신흥 강국으로 동시대 중국 전체의 gdp에 2/3이 넘는 수준까지도 갔었죠. 대한민국의 강역은 그 시대보다도 더욱 줄었지만 한국사 최강의 국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세계를 호령하던 네덜란드의 영토는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고요. 좋은 결과만을 부각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를 부정하기 위한 식민사관에 빠진 발언이라니 정말 참담하군요. 과거의 잘못된 점? 무엇이 잘 못 되었길래 대한민국의 한국사까지 부정하고 스스로의 출생의 비밀 아침 드라마를 찍고 있습니까.
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고구려계의 지배계층과 말갈계의 절대다수 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진 이원적 국가였다는 내용이 아직까지도 저의 머리속에 남아있었는데... 역사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연구성과가 나오면서 뒤집어질수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 고구려가 수나라와의 전쟁때 오히려 선제공격을 하는 과정에서 말갈인 1만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는걸 보면 역사멘터리 형님이 이 영상에서 말씀하신것처럼 말갈인들의 당대인식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것보다는 일종의 다민족국가처럼 고구려 발해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을거라고 동의합니다. 오늘도 너무 흥미롭고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영상 좋게 보아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응원해 주셔서 항상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도 소수의 고구려계 지배층과 다수의 말갈계 피지배층으로 구성된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배웠습니다만, 과연 그게 진짜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우선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했던 여러 의문 중 발해의 민족 구성에 대한 건 최우선 사항 중 하나였고, 확인해 보니 이미 90년대의 학계에서는 소수의 고구려 지배층, 다수의 말갈계 피지배층 이론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요즘은 다수의 연구자들이 더 이상 그 이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학설이 너무 널리 퍼져 있다 보니 아직까지도 다수설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그게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아주 유명한 역사 강사님까지도 유튜브 영상에서 소수의 고구려인과 다수의 말갈인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아직 학계의 연구 성과가 대중들에게는 커녕 강사 등 콘텐츠 가공 및 전달자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말씀드린 관련 얘기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고 아직 학계에 계시는 연구자들과 논의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조만간 몇몇 연구자들께 여쭤 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말씀하셨던 대로 고구려의 역사에 있어서도 말갈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구성 집단 중 하나였고, 발해 건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고려 또한 초기에 말갈계 집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자면 우리 역사에서 말갈, 여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집단 같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여진 정벌 실패가 참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때 여진과 다시 하나가 될 수만 있었어도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실패함으로써 우리와 여진이 갈라지게 되었으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불데드 이양반 무슨 꿈꾸나? 문명은 주기가 있어요 대개 벽 소개벽이 있고.. 우리선조는 지구가 고향이 아닌 외계의 별에서 왔어요 그래서 천손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지구가 고향이면 지손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아직도 원숭이 가 사람이 되었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네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는 사람이 있나보네. 님 지구는 구멍 뚫린 별로 지구내부에 지저문명이 있어요 우리보다 과학기술이 만년발전했고 Ufo의 발원지입니다. 지구가 구멍 뚫린 별인걸 우리선조는 만년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지구 과학자들은 모릅니다. 지구가 구멍 뚫린별인 것도 모르는게 현재의 과학문명입니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다고 하는걸 믿나요? 제발좀 공부좀해요 이 무식한 양반아. 하느님을 환인 =한인이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손이라 한민족이라고 부르는겁니다 이 무식한 양반아
사실 주변의 거대한 질서가 바뀌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기면 그걸 적절하게 따라가면서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자기 발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발해도 당나라 멸망 이후 나름 잘 버텨내긴 했습니다만, 당나라가 있을 때 맞춰졌던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 결국 적응하지 못하면서 멸망하게 되었지요. 발해와 당나라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잘 지냈던 사이이고, 만약 고구려가 당나라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다면 역사가 또 달라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발해의 외교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이었기에 나중에는 그 신라와도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정도였지요. 문제는 그런 괜찮은 외교 관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모두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어떠한 지원도 할 수 없었고 발해는 홀로 외로이 거란과 싸우다가 결국 무너져 갔다는 점입니다.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건 내분때문에 멸망했어요. 근데 이 내분이 발생한이유가 박혁거세 후손이 고주몽이고 박혁거세 후손이 아틸라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친척인데 족보도 꼬이고 아틸라의 한일파가 아틸라사후 신라로 돌아왔고 지증왕부터는 아틸라세력입니다. 이런족보관계 때문에 .. 국제정세 내편니편에서 족보가 꼬여서 내분이 난겁니다. 그리고 당나라 이세민도 우리민족입니다 당나라도 우리민족이 세운 국가입니다. 그냥 우리민족끼리 패권전쟁을 했고 고구려는 내분 백제는 천재지변이라는 백제 침몰이 원인이 되어 멸망한것으로 백제의 후예들이 세운 백제가 일본입니다
발해 건국 주체는 고구려계와 속말말갈계였고, 이후 발해 확장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흑수말갈이 포함되면서 진정 다민족 국가로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쉽게 말갈이라고 퉁쳐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말갈도 여러 부류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 모두는 말갈이라는 공통의 일체감을 갖기 보다는 그냥 각기 다른 부족 세력이었지요. 그런 다수를 하나로 아우르는 거대 세력이 고구려였고, 그 뒤를 이어 발해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인데 말씀하신 대로 망조가 들면서 통제력을 잃은 다민족 국가는 급속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기에 결국 발해는 920년대 중반 급격하게 분열하면서 몰락이 가속화된 것 같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저도 부여부에서 상경용천부 사이에 방어 거점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부여부와 장령부가 서부 전선에서 중요한 거점이었으므로 그 성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확고히 버텨 준다는 전제 하에 발해의 전체적인 방어 전략이 짜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장령부는 발해 멸망 그 순간까지도 거란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면서 거란군의 진격을 막아내면서 맡은 바 책무를 확실히 이행했습니다. 만약 장령부가 뚫렸다면 마찬가지로 상경용천부로 가는 도중에 이렇다 할 방어 거점이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아쉬운 건 부여부가 너무 쉽게 함락되면서 발해가 손 쓸 틈도 없이 방어 전선 전체가 무너져 버리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점 같습니다. 무려 20여 년 가까이 거란의 공격을 버텼던 발해입니다만, 쇠약해진 상황에서 부여부의 함락이라는 트리거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것이 아쉬운 망국으로 이어진 듯합니다.
주변국에서는 고씨의 고려, 대씨의 고려가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왕씨의 고려까지도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말씀하신 대로 고구려와 발해, 고려는 큰 틀에서는 동질감을 품은 정치 집단이 존속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려 원종이 태자 시절 몽골에게 항복하러 갔을 때 쿠빌라이가 너희 고려는 당 태종도 항복시키지 못한 나라가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 고구려와 고려를 동일시했던 것이겠지요.
@@내이름-w1n정답입니다.. 발해가 당나라와 대립했음에도 당나라는 이미 성장동력을 잃고 안사의 난 이후로 당나라가 시궁창 됬으니까요.. 발해는 9세기 선왕이후로 개판 된것을 극복못하다가 신흥강국 거란에게 밀리게되엇고 요동을 뺏고 빼앗기다 수도가 고구려에 비해 더 방어에 취약햇기에 거란도를 통한 기습공격에 순식간에 털린거라 봅니다
아 이 영상을 보기전에는 단순히 백두산폭발로인해 발해라는 나라 전체가 혼란에빠졌고 거란이 이를 틈타 수도를 포위공격해 멸망시켰다, 거란이 기마전술을 이용해 발해의 수도를 기습적으로 포위공격해 발해의 항복을 받아내고 멸망시켰다 이렇게알고있었는데.. 이렇게나 긴 항쟁의 역사가 있는줄 몰랐네요.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발해 정치의 특이한점은 왕족들이 정치에 너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군사, 행정, 외교 전반에 대씨가문의 구성원들이 적극활동했고 따라서 왕위쟁탈전도 수시로 일어날수밖에없었을 겁니다. 자연히 지방에 대한 영향력도 점차 약화되었을거고 귀족들의 이반도 심화되었을거 같습니다.
발해에 대해 내가 가장 궁금한 부분은...발해는 흔히들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들이 세운 나라라고들 하는데 이미 발해 멸망 전에 발해와 여진이 분리되어 사서에 나타남. 그럼 분명 발해의 일부였다 배우는 말갈과 여진은 다른 주체인가? 그들이 나뉘어진 경로와 계기는? 그리고 왜 발해와 여진인은 서로를 원수라 했을까? 넘 궁금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잘 나갈 때 여진의 조상인 흑수말갈을 탄압하고 복속시키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당나라도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여진과 협력했으니까 둘이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지 그리고 거란 지배 하에서도 발해인은 거란에 협조했고 여진은 거란에 저항하면서 또 다시 부딪히고
고구려 멸망 당시 인구 300만명 , 멸망 후 상당 수가 발해에 남아있다면 고구려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것에 준할 정도의 국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점 그리고 그 당시 거란 인구는 50만에 달하고 발해는 거란과의 장기전에 밀린 점을 볼때 발해는 고구려보다 국력을 적게 운용했고 인구도 적었으며 더 많은 백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이주했다는 의미는 전쟁 이전에 발해 안에 내분도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발해의 멸망에 관한 주제로 가장 흥미롭고 얼마남아있는 않는 발해 관련 사서들을 근거로 정확하게 분석하신거같애요. 결국은 신생강대국과 거란과의 20여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주요 군사적 거점이자 중국으로 향하는 무역, 생산, 경제적, 외교적 거점인 요동 상실이 타격을 주었던거 같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발해 대 거란의 전쟁의 무게추가 거란쪽으로 기울였던게 아닌가 싶고 주도권을 잃은 상황에서 거란이 선택했던 수도직공작전이 결국 주효 했다고 봅니다. 장령부의 발해의 주력군을 분산시키고 조공을 취하고 주공은 거란도를 타고 부여부와 심장인 상경용천부를 공격해 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수도를 장악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대로 갈수록 지방보다는 수도에 물자와 행정, 인구가 집중 된다고 판단되는데 수도가 적에게 유린되어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동경용원부나 중경현덕부, 서경압록부 등의 지방 세력들과 중압집권체제로 국력이 집중되지 못한점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는 신라나 일본측 사서, 요사에도 발해의 민심이 이반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전쟁의 패배도 결국 안에도 단결되지 못하면 외세에도 패배할 수도 있다는점에서 오늘날 후손들에게도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발해가 직접 남긴 기록이 전하지 않기에 주변의 기록을 토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발해가 거란과 벌였던 장기간의 전쟁은 분명 고려거란전쟁 못지 않은 장엄한 스토리를 품고 있을 텐데 그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록 발해가 패배한 전쟁이지만, 해동성국의 마지막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웅장했을 텐데 기록이 없으니 허무하게 하루아침에 멸망한 국가 취급 받는 게 아쉽습니다.
발해가 하루아침에 멸망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해동성국이라 불리우고 당시 초강대국 당과 돌궐 여러 세력과 싸우면서도 지지않고 동북아 강대국으로써 200년 넘게 요동과 만주를 장악했던 국가가 너무 쉽게 무너져서 그렇게 불리는 거죵 ㅋㅋㅋ 발해는 나름 거란과 잘 싸웠고 거란도 분전을 하고 있었는데 수도 빼았겼다고 멸망해버린게 좀 허무해서…. ㅎㅎ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영상 긍정적으로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해석과 역사적 의미 부여 쪽에 집중하면서 영상을 제작하다 보니 제 개인의 관점과 평가가 개입될 수밖에 없어서 온전하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유익한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거란이 쎄기 보단 문왕과 선왕사이의 혼란기 및 선왕과 애왕 사이의 혼란기로 인하여 국력을 높이지 못했고, 그 중앙권력의 부재가 지방권력으로 퍼져나가며 약화 되고 있다가 20년이라는 거란과 전쟁이 치명타가 된거 같습니다! 발해가 고구려의 평양성처럼 몇달을 버틸수 있는 수도의 성벽을 갖췄다면 그래도 보급문제로 거란군은 얼마 못가 철수 했을텐데 그부분이 아쉬운거 같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이유는 고구려의 평양성 처럼 몇개월이상 버텨줄 만큼의 수도주변의 성을 만들지 못한게 큼!! 그렇다고 확실한 중앙집권국가도 아니여서 현종니나 선조처럼 도망도 못가는 상황인데다가 노상의 3만 군대가 바로 배신때려버린 바람에 발해왕이 도망칠 여유 조차 주지 못한점까지 연달아 겹처 갑자기 망한거 같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사실 거란이 고려를 멸망못시킨건 몽골쪽에 반란군이 막강해서 그럼 양규나 강감찬이 ㅈㄴ잘싸운것도 맞는데 고려보다 훨씬 땅이 컸던 발해가 방어전을 못할리가 없잖음 거란이 고려에 최정예 군사들을 많이 못보낸게 큼 몽골 그들은 거란을 멸망시킨 금나라도 제대로 단속못해서 몽골한테 흡수됐고 그만큼 몽골이 빌런이였다고 보면될듯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항상 느끼는거지만 새로운 신흥강자 주변국들이 부상하면 그 인접국인 한반도 국가들이 피해를 보는듯.그것도 중국이 부상하면 발해멸망으로 치닫는데. 한가지아쉬운점은 발해멸망 이후로 한반도의 방파제가 사라짐. 저때 고려가 어떻게든 발해를 도왔다면 한반도의 거대한 울타리의 보호를 받는 국가들로 성장할수있었을텐데
@@j3459시골 깡촌이였으면 농사지을 땅이 많은데 무조건 와야죠. 실제로 산지가 7할이고 땅파면 화강암이 나오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경제부양은 무역과 상공업으로 했습니다. 특히 장보고 같은 해상왕이 있을 때는 한중일에 아라비아 상인까지 다이렉트로 무역 못하게 통제해서 신라가 황금 끌어모아 금입택 만들고 난리나죠 ㅋㅋ. 물론 장보고 죽고 경제공황오면서 혼란기가 옵니다. 또 고려도 개경이 조선시대까지 무역업자들이 계속 살던 곳이던 만큼 송나라와 다이렉트로 무역하니 생산성 낮은 농업에 관심 가질 일도 없고 중앙군 키워서 사노비 인구만 컨트롤하죠.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확실히 역사멘터리님의 전쟁사 강의를 들으니 한국사를 이해하려면 세계사를 확실히 이해해야 된다는 말은 역시 진리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발해의 멸망 원인은 발해 내의 군사반란, 내전의 발발과 군사최강대국 거란제국의 발해 침략이라고만 한국사 교과서에 써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특히나 발해 멸망은 진짜 복잡하게 전개됐던것같음. 발해 멸망의 전후과정들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대당제국(당나라)의 멸망으로 인해 세계 국제정세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그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발해가 쇠락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발해 내의 말갈족 군벌 세력들이 독립하면서 떠나기 시작하면서 결국 내전까지 발발하면서 발해를 정복하려고 혈안이던 거란제국이 발해를 침략한듯 ㄷㄷ 확실히 한국사만 알면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음. 세계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알아야 한국사의 흐름을 알수있는 것 같음 ㄷㄷ 당시는 당나라가 세계사의 가장 강력한 흐름이었고 이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제국들 중 하나가 발해인듯. 21세기 현대시대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들인 중국, 러시아, 미국이 만약에라도 전부 다 망하면 세계는 엄청나게 큰 혼란이 될 수도 있을듯 ㄷㄷ;
말씀하신 대로 만약 현대 시기에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이 급변 속에서 무너진다면 그 여파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최악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붕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우리나 일본의 경우 미국이라는 최강대국 우방이 유지하는 질서에 편승해서 번영을 누리는 게 큰 데, 미국이 패망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구축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예 우리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로서는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게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중국의 붕괴는 환영입니다. 여러 모로 타격은 있겠지만, 새로운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거란 황제 무덤에서 나는 고려인의 후예라는 묘지명이 나왔는데 제도권 교과서에서는 안가르치죠. 거란 말갈 모두 고려인이고 고려의 번국입니다. 대원을 세운 몽골은 거의 거란의 후예죠. 삼국사기 고수전쟁 관련 기사에 보면 수양제가 200만 군사의 출정식을 하면서 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고구려가 거란 군사를 동원하여 황허 입구에서 수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시안을 공격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수양제가 요동정벌을 한 원인의 하나입니다.
이양반아 제발좀 공부좀해요 몽골 돌궐 선비 흉노 저 갈 강족과 여기서 파생되는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고려가 중국통일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때 여진족이성계가 여진족의 나라를 세울려고 반란일으켰어요. 이성계가 고려와 같은 뿌리라고 생각했으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겠죠 그래서 이씨조선 즉 여진족의 나라를 세우고 민족말살정책과 역사왜곡을 국가정책으로 한게 아닙니까? 같은 민족인건 맞는데 그들은 다른뿌리 계파로 보았어요. 그리고 발해는 밝은해 라는 뜻으로 박혁거세 이름입니다. 박혁거세는 세계 2000년내 최고의 대왕으로 세계를 일통한 인물입니다. 박혁거세 이후 세계를 일통한 인물은 없어요. 박혁거세 출신이 북부여 단군 고두막한의 손자이며 외가로는 스키타이(페르시아)왕자 계통입니다. 박혁거세 후손으로 고주몽 아틸라 대조영 징키스칸 등이 있어요. 님이라면 세계를일통해서 신으로까지 불린 박혁거세를 계승하겠어요? 안하겠어요?
발해의 진과 여진의 진은 한자부터가 다릅니다. 지금의 한국식 한자 발음이 똑같다고 말장난하고 있어 ㅋㅋ 대표적인 단어가 여진이라는 것이지. 당대에 여진 여정 여질 등으로 불렀고. 이것을 생각하면 진 정 질 사이 어딘가의 중국 발음이라는 소리입니다. 그 중국 발음에 입각한 단어를 다시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었을 때 여진이라는 것이고요.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잘 나가갈때는 너도 나도 우리편 좀만 힘들어지면 각자도생 혹은 배신 이게 팩트였을듯... 지원군 보낼 시간이 없었던것보다 각자 자기 지역에서 도우러 올 생각을 안했던것 같음 백제처럼....그리고 뒤에 부흥운동때는 각자 자기지역 중심으로 진행하고... 아마 많은 세력이나 땅들이 고려로 흡수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고려가 발해와 경계 지역이던 많은 북방은 발해 멸망하면서 전쟁없이도 많이 먹었을 것으로 생각됨 고려는 건국부터 고구려 계승한다고 했으니
안 망합니다. 조선의 호란도 조선을 멸망시키고 통치하기 위함이 아니라 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명과 이어져 있던 조선 선제압한 것이고. 거란 또한 중원으로 내려가기 위해 송과의 연결를 끊기 위함이라 고려를 망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호란과는 달리 그것이 고려에 막혀버렸죠. 한반도 외부의 세력이 한반도 내부 세력을 진심으로 멸망시키려고 한 적은 나당전쟁 때 단 1번이 뿐었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j3459 원소가 발해태수란 관직명에 있었다 너가 말한 발해가 생기기 몇백년전에 그리고 요동반도 밑에 바다 보하이 한자로 발해라고 불러 세상에 발해라는 나라가 있기 몇백년전에 조그만 동네를 국호로 쓰고 싶겠냐! 원소가 태수로 있던땅의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하고 싶었겠냐! 당나라와 신라가 일방적으로 발해라고 부른거지 대내적으로는 자신들을 고려라고 불렀다고
말씀하신 대로 요동을 상실한 이후 저는 발해와 거란의 대립에서 무게추가 거란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동 방어선은 고구려 때에도 이미 그 효용이 톡톡히 입증되었던 중요한 방어선인데 그게 무너지고 난 이후에는 비록 장령부가 엄청난 분투를 하면서 끝까지 함락되지 않고 버티는 등 제 몫을 다했습니다만,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발해의 그와 같은 장령부 중심의 방어 전략을 꿰뚫고 단번에 부여부를 거쳐 상경용천부를 치고들어가려 했던 거란의 전략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효과적이었으므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발해를 무너뜨려 버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 주변에도 발해사 연구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했다가 기록이 너무 없는 문제로 결국 포기한 선후배나 동기들이 꽤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 고고학의 발달로 인해 유물과 유적을 통한 연구 방법이 굉장히 발전했으므로 발해사의 편린들을 이전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중국입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록이 나올 걸 우려해 꽁꽁 싸매고 남북한 학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래서 거란애들이 나중에 뭐에 씌인거마냥 길돌아서 개경에 들이박는구나... 같은 수성 특화민족 공략법인줄 알고ㅠ 한반도는 요동이랑 달리 폭이 좁은데다 높진 않아도 첩첩산중이라 특정 거점 몇개만 성쌓고 제대로 버텨주면 거길 돌아내려가 봤자 금방 보이지도 않는 언덕 너머 산길로 몇천명씩 몰려나와서 병참기지 순식간에 하나씩 아수라장내고 근거지로 되돌아감
거란이 공격한 개경이 개성이 아니라 베이징입니다. 평양시를 서쪽으로 우회해서 동쪽으로 가면 개성이 나오는게 아니라 태백산맥이 나오죠. 아이큐가 80만 돼도 알 수 있는데 역사학과는 산수 능력을 안보고 입학하니까 뭐가 뭔지 쥐뿔도 모르는 거임. 거란이 공격한 고려의 서경이 평양시가 아니라 다퉁시임. 다퉁=大東市. 베이징 서쪽에 있어요.
유투브 내용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약해진게 맞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갑작스럽게 망한것도 맞다는 생각...주력군이 궤멸되지 않은채 망한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주력군 뿐 아니라 그 외 지역에서 전혀 원군이 오지 않은것도 이상하고... 마치 백제 멸망과 데칼코마니...오히려 호족들간의 세력 갈등 쇠퇴의 직접적 요인이라고 크게 느껴짐.. 고려로 유입이 많아진것도 그 반증
말씀하신 유목민족에 말갈이 포함된다면 사실 발해에서 말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발해는 여전히 유목집단과의 연계가 튼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말갈은 이미 반농반목 생활을 할 지 오래이고, 그 외 다양한 생업에 종사했던 집단이므로 순수 유목민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서북방의 유목 세력과의 관계가 중요했는데, 문제는 거란이 급성장하면서 그들을 모두 통합해 버렸기에 발해가 연대할 만한 유목 집단이 사라진 게 문제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아마 부여부와 상경용천부 사이에 다른 방어 거점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상경용천부는 평지이므로 지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곳이기에 수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고, 그래서 결국 수성보다는 회전을 통한 요격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백두산 폭발은 발해 멸망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자연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백두산 폭발은 발해 멸망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며, 다만 대규모 화산 폭발 이전에 나타나는 사전 조짐에 의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졌을 가능성은 있다 정도로 얘기됩니다.
발해는 고구려후손이 고구려의 재건을 위해 만든 나라다..이렇게 해석하는게 옳지않나요. 북방쪽이니 당연히 그 지역에 터잡고 살던 다수의 민족들이 있었을것이고 그렇다고해서 발해지역을 우리역사가 아니다라고까지 하는 분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만주 일대는 고구려때 우리의 영토였습니다. 굳이 고증을 하지않더라도 문화민족인 고구려인들이 지배층이었을건 짐작이 가는 일이고 여러민족이 합쳐져 움직이던 거대한 집합체였을거라 생각이 되네요. 일본은 홍보용으로 책자만 발행할뿐 아예 역사교과서 자체가 없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창피해서 역사교과서를 못만드는거죠. 그런 나라도 있습니다. 자랑스런 고구려, 고려의 후손으로서 다시 한번 옛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선조들이 활약했던 북방의 땅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네요.
고구려의 재건을 위해 만든 나라가 아니라 그냥 고구려를 재건한겁니다 어떻게보면 고려보다 더 정통성 있죠 고려는 신라의 북쪽 옛 고구려지역 호족들을 묶기위해 고구려라는 이름을 활용해서 우리는 하나다라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선전한건데 발해는 그냥 여지도없이 국호 고려 박고 고구려 지배층들이 직접 만들고 고구려 유민들 그대로 흡수해서 만든 나라라서요
말씀하신 내용들 모두 하나씩 살펴보면서 사료 기록을 근거로 규명해 나가야 할 문제들 같습니다. 다만 동해 바다 쪽으로 발해는 일정 수 이상의 부대를 반드시 배치해야 했을 겁니다. 흑수부 말갈이 뒤늦게 발해의 세력에 편입되기는 했습니다만, 그들은 다른 우호적인 말갈과는 달리 고구려와 발해 초기까지 내내 적대적인 집단이었고, 그들의 세력권을 발해가 직접 지배하지도 못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영상의 지도에서는 발해의 영토가 상당히 넓게 나옵니다만, 그건 전체적인 영향권을 표기한 것이고 아마 실제 직접 통치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토는 훨씬 더 작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동해 바다 쪽에 반드시 일정 병력을 배치해서 흑수부 말갈이나 혹은 한반도 동북부 지역의 말갈 집단의 동태를 살피고 억제해야 했으므로 발해는 결국 군사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외국을 30년 넘게 떠돌면서 외국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서들을 여럿 보았습니다!.....그들도 처음에는 중국사서 정도로 알고 있다가 전문가에게 맡겨서 검토한후에 우리의 사서임을 확인했고 본인에게까지 보여주었습니다!.....때가 되면 이 세상에 나오질 않을까 생각해봅니다!.....퍼즐 조각 맞추기가 시작될것임!
팩트)) 고대국가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음.. 4:10 저 영토를 100% 실효지배한 영토라고 가정하면 발해는 강대국임. 근데 중세초기 봉건국가들은 간접지배와 실효지배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수많은 소국 & 민족들을 느슨하게 묶어놓은 거랑 비슷함. 발해의 5경 15부 62주는 그냥 행정체제를 주현으로 나눈 개념일뿐이고, 예를 들어서 용천부 주변 몇평방 킬로미터 그일대만 실효지배했을 뿐 그 주변 민족들을 통치하지는 못했다는거다. 엄밀히 말하면 수조권도 없고 징발권한도 없으니 그냥 빈땅이나 다름없음. 발해 동쪽지역은 그냥 수백개로 쪼개진 Mohe 족들이 누대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던 형태였고, 발해의 직접통치영역은 아님. 9세기 이후 독립한 보로국(寶露國), 흑수국(黑水國) 사례를 살펴보면 신라국경지역에 있었던 한반도 함흥일대는 애초부터 발해의 직접지배권도 아닌 Mohe족들의 영역이었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거다. 시각적으로 발해의 영토는 넓어보이지만 실제로 직접 지배한 영역은 1/3도 안된다고 봐야 한다. 나머지는 전부 빈땅 or 간접지배라고 봐야 맞음. 특히나 대씨가문의 왕위계승문제로 살인과 내전이 빈번했던 9세기 상황은 주변민족들이 중앙정부 통제에서 이탈하기 좋은 기회였을거다.
철리부같은 경우도 일본으로 갔을때 발해와 별개의 집단인 거 처럼 활동했었고 철리부 라는 이름으로도 남아있을뿐더러 발해 말기 - 멸망 후에도 독자적으로 나라를 자처하며 활동한 걸 보면 고려에 종속되던 여진족처럼 느슨한 관계 정도(고려보단 좀 더 가까웠겠지만) 라고 보는게 옳지 싶음
특히 요동 평안도 지역은 발해 통치에 대해 직접적인 고고학적 성과도 적은 지역이라 발해 중앙 5경 정도나 그나마 실질적인 직접 지배 영토이고 나머지 발견되는 역참 흔적이 물류 이동 흔젇으로 본다면 발해는 우리가 아는 영토보다는 작았을 것
고구려의 1.5배 이러는 사람들은 좀 정신 차려야 되는게 강이나 산맥 같은 직접적인 환경적 구분이 없으면 저런 곳들은 언제든지 이탈하는 지배권역 정도로 봐야됨.
고대 로마가 속주 통치하는 방식이나 당이 기미지배 체제 활용하는거 보면 영토 실효지배가 얼마나 어려운줄 알 수 있음.
뭐 고대국가라는게 거진 그런형태가 많지 않았습니까
고려 초기에도 대충 비슷했음
고대국가였다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죠. 애초에 발해만 저런것도 아니고 저시대 나라들은 대부분 저런 식으로 통치했습니다. 고대국가한테 1800년대 조선급의 지방통제력을 기대하면 안되죠
오래동안 기다렸습니다. 너무 알고 싶던 내용이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오랑님께서 제 영상을 기다려 주셨다니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직전에 올려 주신 페르세우스 영상 너무 좋아서 처음 PC로 보고 난 이후에도 유산소 운동할 때 귀로만 들으면서 서너 번을 더 보았습니다.
좋은 영상 올려 주시고, 또 응원도 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행복한 2023년 마무리하시고,
올해보다 더 보람 있고 즐거운 2024년을 맞이하시기 바라겠습니다.
@@Hmentary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언제나 역사멘터리 님 영상 귀하게 보고 있습니다.
역사멘터리님도 올해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0:00: 📖 발해의 멸망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나라와의 관계 변화와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해 서서히 쇠약해진 결과였습니다.
0:00: 발해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오히려 서서히 쇠약해진 결과였다.
1:06: 발레와 당나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2:41: 말갈족과 고구려인의 비율에 대한 오해가 있었으며, 실제로는 고구려인이 많은 지역이었다.
4:01: 발해의 멸망은 당나라와의 관계 변화와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해 서서히 쇠약해진 결과였다.
4:21: 📜 발해의 쇠약함으로 인해 휘아 세력들이 독립하는 흐름이 시작되었고, 거란과의 전쟁으로 발해가 쇠약해지면서 내분이 발생했으며, 거란의 강세로 발해가 멸망하게 되었다.
4:21: 발해의 쇠약함으로 휘아 세력들이 독립하는 흐름이 시작됨
4:48: 발해의 쇠약함으로 내분이 발생하고 거란과의 전쟁으로 쇠약해져 멸망
5:29: 거란의 강세로 발해가 멸망
8:46: 📜 발레의 멸망은 거란과의 장기전에서 약화되고 내부 분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8:46: 거란군의 갑작스럽게부여를 공격하여 발레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9:00: 발레는 거란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3만 병력을 파견했지만 노상의 부대는 폐에서 항복했다.
11:15: 발레의 멸망은 거란과의 장기전에서 약화되고 내부 분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Recapped using Tammy AI
훌륭한 영상이네요.
국사책에서조차 다루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어서 매우 신선하고요.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나라가 남쪽에 치우친 상황이고 또 지리적으로도 이제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라 한국에서는 더욱 연구가 힘든 상황입니다.
가장 찬란했던 우리의 역사이지만 안타까울 뿐이고요. 좋은 영상 잘보고 갑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사 역대 최강의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가장 찬란한데 망하고 없는 나라가 찬란하다니 무슨 망언입니까. 고구려 발해 제일주의에 빠지면 그게 일제가 만든 만선사관 식민사관과 완전히 동일한 노선이 되요.
지금의 역사가 고구려보다 줄어든 국토로 한국의 역사는 퇴화되어 가고 있다는 관점은 문제겠죠. 하지만 역사라는 것의 중요성은 좋은 결과 만을 부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결과를 보고서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역사를 하는 이유일 겁니다. 오히려 식민사관이라는 굴레로 과거의 잘못된 점을 스스로 외면하려 하는 것 역시 바른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sugarfree97
@@jasoncho264 드넓은 초원을 가지고 있는 몽골이 한국보다 위대하다는 말이군요? 90년대 한국의 위상은 신흥 강국으로 동시대 중국 전체의 gdp에 2/3이 넘는 수준까지도 갔었죠. 대한민국의 강역은 그 시대보다도 더욱 줄었지만 한국사 최강의 국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세계를 호령하던 네덜란드의 영토는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고요. 좋은 결과만을 부각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를 부정하기 위한 식민사관에 빠진 발언이라니 정말 참담하군요. 과거의 잘못된 점? 무엇이 잘 못 되었길래 대한민국의 한국사까지 부정하고 스스로의 출생의 비밀 아침 드라마를 찍고 있습니까.
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고구려계의 지배계층과 말갈계의 절대다수 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진 이원적 국가였다는 내용이
아직까지도 저의 머리속에 남아있었는데...
역사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연구성과가 나오면서
뒤집어질수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 고구려가 수나라와의 전쟁때 오히려 선제공격을 하는 과정에서 말갈인 1만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는걸 보면 역사멘터리 형님이 이 영상에서 말씀하신것처럼
말갈인들의 당대인식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것보다는 일종의 다민족국가처럼 고구려 발해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을거라고 동의합니다.
오늘도 너무 흥미롭고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영상 좋게 보아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응원해 주셔서 항상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도 소수의 고구려계 지배층과 다수의 말갈계 피지배층으로 구성된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배웠습니다만, 과연 그게 진짜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우선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했던 여러 의문 중 발해의 민족 구성에 대한 건 최우선 사항 중 하나였고, 확인해 보니 이미 90년대의 학계에서는 소수의 고구려 지배층, 다수의 말갈계 피지배층 이론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요즘은 다수의 연구자들이 더 이상 그 이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학설이 너무 널리 퍼져 있다 보니 아직까지도 다수설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그게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아주 유명한 역사 강사님까지도 유튜브 영상에서 소수의 고구려인과 다수의 말갈인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아직 학계의 연구 성과가 대중들에게는 커녕 강사 등 콘텐츠 가공 및 전달자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말씀드린 관련 얘기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고 아직 학계에 계시는 연구자들과 논의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조만간 몇몇 연구자들께 여쭤 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말씀하셨던 대로 고구려의 역사에 있어서도 말갈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구성 집단 중 하나였고, 발해 건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고려 또한 초기에 말갈계 집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자면 우리 역사에서 말갈, 여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집단 같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여진 정벌 실패가 참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때 여진과 다시 하나가 될 수만 있었어도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실패함으로써 우리와 여진이 갈라지게 되었으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지배층 고구려계 피지배층 말갈계 / 피지배층이 마지막에 잘 따르지않아서 분열됐다고도 알고있습니다 저는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저 갈 강족 다 우리민족입니다
그리고 파생되는민족도.
@@j3459
아프리카에서 나올때는 다~~ 한민족이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파생되는 민족도..
우리가 그 파생된 민족이에요
@@이불데드 이양반 무슨 꿈꾸나?
문명은 주기가 있어요
대개 벽 소개벽이 있고..
우리선조는 지구가 고향이 아닌 외계의 별에서 왔어요
그래서 천손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지구가 고향이면 지손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아직도 원숭이 가 사람이 되었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네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는 사람이 있나보네.
님 지구는 구멍 뚫린 별로
지구내부에 지저문명이 있어요
우리보다 과학기술이 만년발전했고
Ufo의 발원지입니다.
지구가 구멍 뚫린 별인걸 우리선조는
만년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지구 과학자들은 모릅니다.
지구가 구멍 뚫린별인 것도 모르는게
현재의 과학문명입니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다고 하는걸 믿나요?
제발좀 공부좀해요 이 무식한 양반아.
하느님을 환인 =한인이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손이라 한민족이라고 부르는겁니다
이 무식한 양반아
20년 간 싸웠으면 오래도 싸웠네요. 고구려는 결국 당나라의 소모전에 점점 국력이 소모되어가다 내분으로 망했는데 아이러니하게 발해는 같은 당나라가 있을 땐 잘 있다가 망하고 나니 나라 존립이 어려워지는 걸 보니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가 신기하기도 합니다
사실 주변의 거대한 질서가 바뀌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기면 그걸 적절하게 따라가면서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자기 발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발해도 당나라 멸망 이후 나름 잘 버텨내긴 했습니다만, 당나라가 있을 때 맞춰졌던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 결국 적응하지 못하면서 멸망하게 되었지요.
발해와 당나라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잘 지냈던 사이이고, 만약 고구려가 당나라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다면 역사가 또 달라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발해의 외교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이었기에 나중에는 그 신라와도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정도였지요.
문제는 그런 괜찮은 외교 관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모두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어떠한 지원도 할 수 없었고 발해는 홀로 외로이 거란과 싸우다가 결국 무너져 갔다는 점입니다.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건 내분때문에 멸망했어요.
근데 이 내분이 발생한이유가
박혁거세 후손이 고주몽이고
박혁거세 후손이 아틸라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친척인데 족보도 꼬이고
아틸라의 한일파가 아틸라사후
신라로 돌아왔고 지증왕부터는 아틸라세력입니다.
이런족보관계 때문에 .. 국제정세 내편니편에서 족보가 꼬여서 내분이 난겁니다.
그리고 당나라 이세민도 우리민족입니다
당나라도 우리민족이 세운 국가입니다.
그냥 우리민족끼리 패권전쟁을 했고
고구려는 내분
백제는 천재지변이라는 백제 침몰이 원인이 되어 멸망한것으로
백제의 후예들이 세운 백제가 일본입니다
국뽕 댓글 중국 욕 할 필요가 없다
@@j3459ㅋㅋㅋㅋㅋㅋㅋㅋㅋ
@@gogive9750 ㅋㅋㅋㅋㅋㅋ 공부해
너무 좋은 내용 잘들었습니다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일리있는 고견입니다. 동의합니다. 안 그래도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추천합니다.
영상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발해는 다민족 국가임 ... 다민족 국가의 문제는 한번 망조가 들면 그걸 뒤집기가 너무 힘듬 ... 빛의 속도로 각각의 민족이 각자도생의 길로 넘어가버려서 버티면서 부흥의 기회 노리기가 안 됨 .
발해 건국 주체는 고구려계와 속말말갈계였고, 이후 발해 확장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흑수말갈이 포함되면서 진정 다민족 국가로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쉽게 말갈이라고 퉁쳐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말갈도 여러 부류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 모두는 말갈이라는 공통의 일체감을 갖기 보다는 그냥 각기 다른 부족 세력이었지요.
그런 다수를 하나로 아우르는 거대 세력이 고구려였고, 그 뒤를 이어 발해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인데
말씀하신 대로 망조가 들면서 통제력을 잃은 다민족 국가는 급속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기에 결국 발해는 920년대 중반 급격하게 분열하면서 몰락이 가속화된 것 같습니다.
당시 동북아시아의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농경을 주된 생산방식으로 하는 예맥족이 결국 만주에서 소멸하게 된건 만주 일대가 발해 멸망 즈음해서 기온하강으로 농경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더라구요
그것도 영향이 있을거 같네요. 사실 고구려가 존재했던 시기만 해도 요동일대에서 쌀경작도 가능했다고 할정도로 나름 온난한 지역이었다고 하니
기온하강이 온이유가 백두산폭발..
천재지변..
그래서 이당시 발해유민중에 아메리카로 간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있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고 그랬어요.
물론 거란 요나라도 우리민족입니다
그 당시에 만주 지방이 척박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는 영토 확장을 하지 않았겠죠. 그 당시 고구려가 어떻게든 평양을 지켜낼라고 했던건 평양의 수많은 인구, 생산까지 되니 포기를 못하는거죠. 고구려 멸망때 인구 밀집도가 평양과 개성일대니 말 다한거죠
@@최유훈-n1r 평양이 북경
@@j3459 베이징 고구려 유적 있나요? 없잖아요.
이상한 소리하지마세요. 이런 행동은 중국인 같은 행동입니다
이 채널은 떡상 해야 합니다
굉장한 고견과 식견을 가지고 계신분이네요..
화이팅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설득력있는 영상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점은 발해는 왜 부여부에서 상경용천부로 가는 길목에 아무런 방어진지를 만들지 않았을까입니다.
저도 부여부에서 상경용천부 사이에 방어 거점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부여부와 장령부가 서부 전선에서 중요한 거점이었으므로 그 성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확고히 버텨 준다는 전제 하에 발해의 전체적인 방어 전략이 짜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장령부는 발해 멸망 그 순간까지도 거란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면서 거란군의 진격을 막아내면서 맡은 바 책무를 확실히 이행했습니다. 만약 장령부가 뚫렸다면 마찬가지로 상경용천부로 가는 도중에 이렇다 할 방어 거점이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아쉬운 건 부여부가 너무 쉽게 함락되면서 발해가 손 쓸 틈도 없이 방어 전선 전체가 무너져 버리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점 같습니다.
무려 20여 년 가까이 거란의 공격을 버텼던 발해입니다만, 쇠약해진 상황에서 부여부의 함락이라는 트리거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것이 아쉬운 망국으로 이어진 듯합니다.
초원길입니다. 거긴 송화강 유역 대초원
주변이 거의 평야지대라 강동 6주같은 산악 지형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이 지형에서는 회전을 펼쳐서 막아야하는데,
쇠약해진 발해 단독으로는 초원의 기마군단을 평원에서 막아내기란 힘들었을거 같네요
고구려는 찬란했던 705년의 역사를 이어갔지만
발해국은 고구려의 절반도 안되는 230여년밖에 이어지지못한 우리 민족 ㅠ
고려가 475년의 역사를 이어갔으니 사실상 고구려의 역사는 천년 제국이라 봐도 무방하네요 ❤
주변국에서는 고씨의 고려, 대씨의 고려가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왕씨의 고려까지도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말씀하신 대로 고구려와 발해, 고려는 큰 틀에서는 동질감을 품은 정치 집단이 존속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려 원종이 태자 시절 몽골에게 항복하러 갔을 때 쿠빌라이가 너희 고려는 당 태종도 항복시키지 못한 나라가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 고구려와 고려를 동일시했던 것이겠지요.
근데 200년이면 왠만한 중원 왕조들 보다도 오래간거임
@@jjk2769고구려가 당나라 마지막 웨이브만 막았으면 천년은 갔을듯? 당나라가 고구려 멸망 바로 다음에 토번한테 수도도 털리고 거란이랑 고구려인한테도 털린거 보면
@@내이름-w1n정답입니다..
발해가 당나라와 대립했음에도 당나라는 이미 성장동력을 잃고 안사의 난 이후로 당나라가 시궁창 됬으니까요..
발해는 9세기 선왕이후로 개판 된것을 극복못하다가 신흥강국 거란에게 밀리게되엇고 요동을 뺏고 빼앗기다 수도가 고구려에 비해 더 방어에 취약햇기에 거란도를 통한 기습공격에 순식간에 털린거라 봅니다
고구려 발해는 중국 역사입니다
와...진짜 양질의 자료와 설명!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영상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이 영상을 보기전에는 단순히 백두산폭발로인해 발해라는 나라 전체가 혼란에빠졌고 거란이 이를 틈타 수도를 포위공격해 멸망시켰다, 거란이 기마전술을 이용해 발해의 수도를 기습적으로 포위공격해 발해의 항복을 받아내고 멸망시켰다 이렇게알고있었는데..
이렇게나 긴 항쟁의 역사가 있는줄 몰랐네요.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랑 똑같은 생각이신분이 계셨네요!
백두산 폭발은 의외로 발해 멸망 60년후 고려시대에 있던 일이고 편서풍 영향으로 화산재가 죄다 일본으로 날아감
물론 옛날사람들이니까 백두산 터지기 전에 있었을 기상, 지질 이변에 큰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음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발해 왕사가 꽤 혼란스러운 점도 발해 멸망에 어느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선왕이 발해의 황금기를 만들었다지만 사실 일반적인 왕조에서 선왕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되죠(대조영의 후손이 아닌 자가 왕위에 오름)
대조영의 후손이 아닌 자라구요?
대조영 동생의 후손임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대조영 동생의 후예입니다
@@하진우-s2w 대중상은 대조영의 아버지이고 발해의 전성기를 이끈 선왕은 대조영의 또 다른 동생 대야발의 4세손입니다.
발해 정치의 특이한점은 왕족들이 정치에 너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군사, 행정, 외교 전반에 대씨가문의 구성원들이 적극활동했고 따라서 왕위쟁탈전도 수시로 일어날수밖에없었을 겁니다. 자연히 지방에 대한 영향력도 점차 약화되었을거고 귀족들의 이반도 심화되었을거 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발해는 고구려 세력과 서로 의견이 안맞고 말갈세력이 분리 되어서 망하지 않았을까요?
고구려 세력은 부흥운동 하고 결국 거란과 여진족에 흡수 당하고
말갈세력은 여진족에 흡수 된것 같네요
일부는 고려쪽으로 흡수 된것 같네요
2:51 아 이 부분 너무 좋네요
그렇지만 자료가 부족해서일지 학생들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배우는데 이런 이면의 내용을 제대로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발해에 대해 내가 가장 궁금한 부분은...발해는 흔히들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들이 세운 나라라고들 하는데 이미 발해 멸망 전에 발해와 여진이 분리되어 사서에 나타남. 그럼 분명 발해의 일부였다 배우는 말갈과 여진은 다른 주체인가? 그들이 나뉘어진 경로와 계기는? 그리고 왜 발해와 여진인은 서로를 원수라 했을까? 넘 궁금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잘 나갈 때 여진의 조상인 흑수말갈을 탄압하고 복속시키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당나라도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여진과 협력했으니까 둘이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지
그리고 거란 지배 하에서도 발해인은 거란에 협조했고 여진은 거란에 저항하면서 또 다시 부딪히고
고구려 멸망 당시 인구 300만명 , 멸망 후 상당 수가 발해에 남아있다면 고구려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것에 준할 정도의 국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점 그리고 그 당시 거란 인구는 50만에 달하고 발해는 거란과의 장기전에 밀린 점을 볼때 발해는 고구려보다 국력을 적게 운용했고 인구도 적었으며 더 많은 백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이주했다는 의미는 전쟁 이전에 발해 안에 내분도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부여부가 프리패스로 뚫린게 어처구니 없는일이긴 했음. 그래서 배신행위가 있었던게 아닌가하는 설이 있고
@@권태환-r8h 노상이라는 장군인가 신하가 거란 토벌군이었는데 항복했을걸요? 그리고 부여성이 뚤리면서 상경까지 하이패스이고 상경은 방어에 취약한 성이니. 대인선이 몽진도 안갔고요
당시 요나라는 송나라도 때려잡던 애들인데 인구가 중요할까요? 그냥 몽골이나 청나라같이 거란은 당시 유목민족짱 먹은애들이라 어쩔수 없이 멸망당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발해는 한반도마냥 방어가 유용한지형도 아니고
고구려 초기면 모를까 고구려나 발해도 시간이 가면서 한반도나 중국처럼 백성 대부분이 정주민 위주로 변해갔을거고 저시대에는 북방유목민족들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짱해먹던시대라서 전투력은 딸릴수밖에 없다고 봐요전ㅋㅋ
@@Doge877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답게 요동에서는 수성전으로 요나라와 치열하게 싸워서 요나라가 고전하고 요동에서 치열하게 싸웠는데 요나라의 특기인 패스를 하니까 발해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죠ㅠ
구독박음 팩트를 기반으로 하려는 아주 마음에드는 유투버인듯
역사란 여러관점이 나올여지가 있는 난제이기에 중요한 팩트위에서 해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발해의 멸망에 관한 주제로 가장 흥미롭고 얼마남아있는 않는 발해 관련 사서들을 근거로 정확하게 분석하신거같애요.
결국은 신생강대국과 거란과의 20여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주요 군사적 거점이자 중국으로 향하는 무역, 생산, 경제적, 외교적 거점인 요동 상실이 타격을 주었던거 같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발해 대 거란의 전쟁의 무게추가 거란쪽으로 기울였던게 아닌가 싶고 주도권을 잃은 상황에서 거란이 선택했던 수도직공작전이 결국 주효 했다고 봅니다. 장령부의 발해의 주력군을 분산시키고 조공을 취하고 주공은 거란도를 타고 부여부와 심장인 상경용천부를 공격해 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수도를 장악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대로 갈수록 지방보다는 수도에 물자와 행정, 인구가 집중 된다고 판단되는데 수도가 적에게 유린되어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동경용원부나 중경현덕부, 서경압록부 등의 지방 세력들과 중압집권체제로 국력이 집중되지 못한점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는 신라나 일본측 사서, 요사에도 발해의 민심이 이반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전쟁의 패배도 결국 안에도 단결되지 못하면 외세에도 패배할 수도 있다는점에서 오늘날 후손들에게도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발해국도 기록만 제대로 남았어도
고려거란전쟁처럼 대하드라마로 만들수 있을텐데 ㅠㅠ
발해가 직접 남긴 기록이 전하지 않기에 주변의 기록을 토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발해가 거란과 벌였던 장기간의 전쟁은 분명 고려거란전쟁 못지 않은 장엄한 스토리를 품고 있을 텐데 그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록 발해가 패배한 전쟁이지만, 해동성국의 마지막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웅장했을 텐데 기록이 없으니 허무하게 하루아침에 멸망한 국가 취급 받는 게 아쉽습니다.
발해 드라마 있지않나요???
@@승이양놀자대조영
@@승이양놀자대조영 드라마 있긴한데 초기 발해 건국하는 얘기만 있고그 뒤 역사는 잘알려진게 없어서 만들어진 창작물이 없슴.
대조영은 발해드라마 라기보단 고구려 드라마죠
발해가 하루아침에 멸망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해동성국이라 불리우고 당시 초강대국 당과 돌궐 여러 세력과 싸우면서도 지지않고 동북아 강대국으로써 200년 넘게 요동과 만주를 장악했던 국가가 너무 쉽게 무너져서 그렇게 불리는 거죵 ㅋㅋㅋ
발해는 나름 거란과 잘 싸웠고 거란도 분전을 하고 있었는데 수도 빼았겼다고 멸망해버린게 좀 허무해서…. ㅎㅎ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재밌네요. 앞으로 크게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재밌어하지만 공인된 역사서는 확인된 정설만 다루어서 불명확한 역사에 대한 언급이 너무 적고, 나머지 도서들은 판타지에 가까운 수준이라 아쉬운데 나름대로의 근거와 식견이 보이는 역사 채널을 발견하면 참 반갑네요.
영상 긍정적으로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해석과 역사적 의미 부여 쪽에 집중하면서 영상을 제작하다 보니 제 개인의 관점과 평가가 개입될 수밖에 없어서 온전하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유익한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존 역사해석은 "발해는 거란에게 항복하여 망했다," 이 상식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미스테리 음모론에 천착했군요.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그냥 당시에 거란이 너무 강했고 고려는 당대의 영웅인 양규 강감찬이 있어서 버틴거지
다른나라들은 거란에 다 무릎꿇었지 발해는 그냥 거란이 너무쎄서 망한거임
거란이 쎄기 보단 문왕과 선왕사이의 혼란기 및 선왕과 애왕 사이의 혼란기로 인하여 국력을 높이지 못했고, 그 중앙권력의 부재가 지방권력으로 퍼져나가며 약화 되고 있다가 20년이라는 거란과 전쟁이 치명타가 된거 같습니다! 발해가 고구려의 평양성처럼 몇달을 버틸수 있는 수도의 성벽을 갖췄다면 그래도 보급문제로 거란군은 얼마 못가 철수 했을텐데 그부분이 아쉬운거 같습니다
이게 가장 간단하면서 정확한 이유인거 같은거 같아요! 당시 거란은 욱일승천 하는 강대국이였으니깐요
발해가 멸망한 이유는 고구려의 평양성 처럼 몇개월이상 버텨줄 만큼의 수도주변의 성을 만들지 못한게 큼!! 그렇다고 확실한 중앙집권국가도 아니여서 현종니나 선조처럼 도망도 못가는 상황인데다가 노상의 3만 군대가 바로 배신때려버린 바람에 발해왕이 도망칠 여유 조차 주지 못한점까지 연달아 겹처 갑자기 망한거 같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사실 거란이 고려를 멸망못시킨건 몽골쪽에 반란군이 막강해서 그럼 양규나 강감찬이 ㅈㄴ잘싸운것도 맞는데 고려보다 훨씬 땅이 컸던 발해가 방어전을 못할리가 없잖음 거란이 고려에 최정예 군사들을 많이 못보낸게 큼 몽골 그들은 거란을 멸망시킨 금나라도 제대로 단속못해서 몽골한테 흡수됐고 그만큼 몽골이 빌런이였다고 보면될듯
근데 암만 요동쪽으로 전선이 치우쳐졌다 해도 부여부도 나름 북쪽에서 최전방인 지역인데 대비안하고 사흘만에 함락됐다는거 자체가 진짜...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영상 잘 보고 있숩니다 ^^
영상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드디어 제대로알게된것같네요 내부약화에의한 멸망이었군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새로운 신흥강자 주변국들이 부상하면 그 인접국인 한반도 국가들이 피해를 보는듯.그것도 중국이 부상하면 발해멸망으로 치닫는데. 한가지아쉬운점은 발해멸망 이후로 한반도의 방파제가 사라짐. 저때 고려가 어떻게든 발해를 도왔다면 한반도의 거대한 울타리의 보호를 받는 국가들로 성장할수있었을텐데
그래도 발해는 나름 상당한 기간 동안 버티면서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 덕에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나라의 기틀을 잡은 다음 이어지는 거란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때 고려는 후백제랑 아둥바둥 할때였습니다 ㅠㅠ
한반도는 고려시대까지 시골 깡촌입니다.
크게 관심가질만한 땅이 아니었어요
@@j3459시골 깡촌이였으면 농사지을 땅이 많은데 무조건 와야죠. 실제로 산지가 7할이고 땅파면 화강암이 나오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경제부양은 무역과 상공업으로 했습니다. 특히 장보고 같은 해상왕이 있을 때는 한중일에 아라비아 상인까지 다이렉트로 무역 못하게 통제해서 신라가 황금 끌어모아 금입택 만들고 난리나죠 ㅋㅋ. 물론 장보고 죽고 경제공황오면서 혼란기가 옵니다.
또 고려도 개경이 조선시대까지 무역업자들이 계속 살던 곳이던 만큼 송나라와 다이렉트로 무역하니 생산성 낮은 농업에 관심 가질 일도 없고 중앙군 키워서 사노비 인구만 컨트롤하죠.
발해의 역사에 대해 공감합니다.
6:48 요주전투 이후 이탈 혹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내부분열 그리고 전염병 때문에 멸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역사가 바뀐적도 있잖아여
정확히는 그냥 내부분열입니다 수나라가 고구려 1차 침공해올때도 전염병이 있었을때인데 고구려는 역으로 그걸 이용해서 수나라 군대를 전염병돌게해서 거의다 죽게 했잖아요 발해가 그걸 못할리가 없죠
왜 발해는 수성이 가능한 곳을 수도로 정하지 않았을까요 안타깝네요 고려거란전쟁 당시 고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도 알겠네요 😢 발해의 언어도 궁금합니다 말갈족들과 어떻게 소통했을지도요
발해 이전 고구려와 동화되어 살았으니 비슷할듯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확실히 역사멘터리님의 전쟁사 강의를 들으니 한국사를 이해하려면 세계사를 확실히 이해해야 된다는 말은 역시 진리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발해의 멸망 원인은 발해 내의 군사반란, 내전의 발발과 군사최강대국 거란제국의 발해 침략이라고만 한국사 교과서에 써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특히나 발해 멸망은 진짜 복잡하게 전개됐던것같음. 발해 멸망의 전후과정들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대당제국(당나라)의 멸망으로 인해 세계 국제정세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그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발해가 쇠락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발해 내의 말갈족 군벌 세력들이 독립하면서 떠나기 시작하면서 결국 내전까지 발발하면서 발해를 정복하려고 혈안이던 거란제국이 발해를 침략한듯 ㄷㄷ
확실히 한국사만 알면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음. 세계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알아야 한국사의 흐름을 알수있는 것 같음 ㄷㄷ
당시는 당나라가 세계사의 가장 강력한 흐름이었고 이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제국들 중 하나가 발해인듯.
21세기 현대시대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들인 중국, 러시아, 미국이 만약에라도 전부 다 망하면 세계는 엄청나게 큰 혼란이 될 수도 있을듯 ㄷㄷ;
말씀하신 대로 만약 현대 시기에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이 급변 속에서 무너진다면 그 여파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최악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붕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우리나 일본의 경우 미국이라는 최강대국 우방이 유지하는 질서에 편승해서 번영을 누리는 게 큰 데, 미국이 패망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구축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예 우리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로서는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게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중국의 붕괴는 환영입니다. 여러 모로 타격은 있겠지만, 새로운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우리민족의 영토는 아무래도 만주 간도 연해주 즈음 이었을것 같음 대신 단일민족으로 따지면 한반도님 좀더 국제제적으로 보면 만주 까지임 지금에야 그럼 몽골쪽 북방게열은 누구인가? 하는 역사적 관심이 있겟지만...
거란1차 침입에서 강동육주를 넘겨주는 것만 봐도 유화정책이 거란의 기본정책으로 보이고, 거란3차 침입이 발해멸망 과정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사실 3차 침입이 상식과 맞지 않아서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지만 발해멸망의 경험이 낳은 결과로 보입니다.
개인적 궁금증인데
거란의 왕실은 무덤이 없나요?
황제국이면 왕의 무덤이 잇을텐데
한번도 언급이나 본적이 없네요
거란 황제 무덤에서 나는 고려인의 후예라는 묘지명이 나왔는데 제도권 교과서에서는 안가르치죠. 거란 말갈 모두 고려인이고 고려의 번국입니다. 대원을 세운 몽골은 거의 거란의 후예죠. 삼국사기 고수전쟁 관련 기사에 보면 수양제가 200만 군사의 출정식을 하면서 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고구려가 거란 군사를 동원하여 황허 입구에서 수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시안을 공격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수양제가 요동정벌을 한 원인의 하나입니다.
역사서에 나와 잇는걸로 알고 잇는데요 민심이 이반되니 요가 싸우지 않고 이겻다라고 나와 잇어요 내부 분열인거죠
결국은 중원이랑 한반도쪽 세력이 쪼개지면서 힘의 균형이 약해지니 그틈을 거란이 차지한거네요.
선왕 사후 왕위 계승이 상당히 불안정한 시기가 20여 년간 지속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당나라가 멸망하기 전의 일입니다. 선와 이후부터 발해의 국력이 약화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런지요?
지금으로 치면 미국과 같은 느낌으로 다양한 인종의 용광고 역활을 해야할탠데 그게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과 함께 살다가 슬슬 망조의 길로 접어든 것인가..
11:32 발해의정식국명은 대진 즉 진나라임
그래서 진이멸망후 만주일대의민족을 통합해서 여진이라는 민족이생김
여진족은 말갈+부여+고구려+선비
가 합해져서 생긴명칭임
후에 여진+거란+몽고일부가합해져서 만주족이생김
발해 정식국명이 진나라라는 근거는 어디있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요.
음 아골타의 금나라와 누르하치의 후금은 성격이 완전 달라요!! 아골타는 개피에다 밥말아 먹었지만 누르하치의 후금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네요 ㅋㅋ
이양반아 제발좀 공부좀해요
몽골 돌궐 선비 흉노 저 갈 강족과 여기서 파생되는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고려가 중국통일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때
여진족이성계가 여진족의 나라를 세울려고
반란일으켰어요.
이성계가 고려와 같은 뿌리라고 생각했으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겠죠
그래서 이씨조선 즉 여진족의 나라를 세우고
민족말살정책과 역사왜곡을 국가정책으로 한게 아닙니까?
같은 민족인건 맞는데 그들은 다른뿌리 계파로 보았어요.
그리고 발해는 밝은해 라는 뜻으로 박혁거세 이름입니다.
박혁거세는
세계 2000년내 최고의 대왕으로 세계를 일통한 인물입니다.
박혁거세 이후 세계를 일통한 인물은 없어요.
박혁거세 출신이 북부여 단군 고두막한의 손자이며
외가로는 스키타이(페르시아)왕자 계통입니다.
박혁거세 후손으로 고주몽 아틸라 대조영 징키스칸 등이 있어요.
님이라면 세계를일통해서 신으로까지 불린
박혁거세를 계승하겠어요?
안하겠어요?
발해의 진과 여진의 진은 한자부터가 다릅니다. 지금의 한국식 한자 발음이 똑같다고 말장난하고 있어 ㅋㅋ 대표적인 단어가 여진이라는 것이지. 당대에 여진 여정 여질 등으로 불렀고. 이것을 생각하면 진 정 질 사이 어딘가의 중국 발음이라는 소리입니다. 그 중국 발음에 입각한 단어를 다시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었을 때 여진이라는 것이고요.
고구려의 경우도 응축한 힘을 바탕으로 초원길을 뚫거나 중국을 점령한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군사적인 성과로 자랑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몽골도 한때 세계패권을 갖었으나 지금은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이죠
중국을 점령했으면 오히려 그 인구 블랙홀에 먹혔을 겁니다.
몽골 제외하고 중원을 제패했던 여진, 거란, 선비족들 모두 사라졌잖아요
아이러니하지만 고려땅에 머물러서 현재까지 살아남았네요.
연개소문이 10년만 더 살았다면 아마 만주와 연해주 전체를 아우르는 중앙 집권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더군다나 고구려입장에선 만리장성을 과연 넘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미.친넘인가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서토정벌 해서 독일 까지 진출했는데..
고구려를 무슨 죱밥으로 보냐.
고구려가 오늘날 미국같은 위상
백제가 구소련같은 위상이었어
@@martinj8935 동의 합니다 ㅎㅎ 중국먹었으면 청나라 여진족 처럼 없어졌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식으로 역사가 흘러갔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발해 거란전쟁은 20여년간했다는데 이는 고구려와 당나라가 23년간 전쟁한것과 같다
발해 영토를 유지하기엔 북방 유목민족과 바다건너 중원세력, 남방의 고려를 모두 상대해야했기에 국력이 쇠퇴하는 시점에서 해체는 기정사실이었을듯
감사합니다 역사는 거울인데 이거만든다고 국가나 어디에서 고생많다고 재정적지원 안해줄텐데 지속해주셔서 느낌이 대한동포 를 위한 마치 세종 이도의 애국애민 같습니다 제짧은 생각에는 쓸데없는 거말고 군정훈시간에 이거 틀어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사리사욕 내려놓고 배포해주셔서 보고알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영상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거란과는 교류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형제국인 발해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라고 함..
나라가 너무 크면 오래 존속하기 힘든 거 같습니다.
발해만이 발해땅 안에 있어야 하거늘.. 지도가 잘못 되었소이다.
와..진짜 신빙성 있는 영상이네요 근데 궁금한게 그러면 금나라의 여진은 우리 조상인가요? 고구려 땅에 살고 있었잖아요?
여진인 자체가 속해 있다가도 독립적이기로 하듯이 금이전에 여러 부족으로 나눠짐
발해는 뭐.... 어짜피 화산 터지긴했을꺼여서. 부흥운동은 주변 탄압이 너무 심했고, 고려조차도 고구려를 계승했다는게 겹쳐서 안도와주고 결국 마지막으로 금나라랑 협력해서 요나라 무너뜨리긴하지만 결국 금나라에 흡수되버렸다는... 근데 요나라나 금라나 발해라는 싹을 잘라낼려고 안간힘을 쓴걸로 보아선 저력이나 민족성이 엄청나긴 했나봄
신라의 멸망과정과 비슷한 점이 있네요 신라가 후삼국으로 다시 나누어진것도 결국 행정이 무너지면서 너도 나도 독립해서 그런건데 발해도 비슷하게 되니까 거란이 쳐들어왔어도 결속력이 없어서 대응력이 약했다고 봅니다
거란에게 지속적으로 공격 당해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아직도 교과서에서는 소수의 고구려인지배층이 다수의 말갈인을 다스렸다고 가르치는 한국사학계 수준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발해가 오래 갈려면 무조건 남이나 서쪽으로 갔어야 했음. 지금 가스난방 들어오는데도 저기 살벌하게 추운데, 나무장작으로 저동네 어케 살아
베이징과 산동반도 까지가 발해 전성기의 영토입니다. 천 년이 지나도 베이징 앞바다가 발해인 이유는 거기가 발해 영토였기 때문임. 베이징이 발해 전성기의 중경이고. 고려사 보면 다 나오는데 제도권 학자 놈들이 인정도 안하고 머리가 나빠서 이해도 못함.
발해는 백두산폭발 이상기후 농사불가능.
거란이 칩입했을때 싸울군사도 없을만큼
망하기 직전이었어요.
다들 발해를 떠나서
근데 발해 무왕때 산둥반도를 공격했는데
이러면 우리역사는 한번도 다른 나라를 공격한 적이 없다 도 틀린 말이 되는게 아닌가요?
아울러 후삼국통일 또한 발해를 빼놓고 하는 말 아닌가요?
다문화를 받아들이면 안되는이유.
당도 망하고 신라도 망하고 발해도 망하고 망할 때가 된 것이었네... 발해(진국)사람이 고려로 대거 들어왔다. 참 사람 진국이네... 이말이 발해에서 왔다고 들음.
발해는 내부분열이 극심했조
거기에 거란 외침까지 있었고
고려는 내분이 없지 않았지만
왕권을 찬탈할만한 그런 존재는 없었조
당장 대씨왕조 내에서도 대조영계 대야발계가 극심한 왕권 다툼했조
후에 열씨가 찬탈하는데 구체적인 기록이 없더라도 알만합니다
지방에 반란이 들끓지 않았고서야 대승이후 너무 단기간에 망하기는 했음.
거란도 장령부 공격루트를 고수했다는건 부여부ㅡ상경 루트가 여러 위험요소가 있었다는건데, 대승 몇개월뒤 3일만에 함락은 이상하긴 하지요.
당연히 말기적 증상도 보였겠지만, 망한 사유는 석연치않음. 수문장의 희대의 배신 정도가 있다면 몰라도.
ㄷ
최수종이 발해를 세우고 또 맘을 바꿔 고려를 세우다 보니 버린받은(!) 발해는 망할 수밖에 요
잘 나가갈때는 너도 나도 우리편 좀만 힘들어지면 각자도생 혹은 배신 이게 팩트였을듯... 지원군 보낼 시간이 없었던것보다 각자 자기 지역에서 도우러 올 생각을 안했던것 같음 백제처럼....그리고 뒤에 부흥운동때는 각자 자기지역 중심으로 진행하고...
아마 많은 세력이나 땅들이 고려로 흡수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고려가 발해와 경계 지역이던 많은 북방은 발해 멸망하면서 전쟁없이도 많이 먹었을 것으로 생각됨
고려는 건국부터 고구려 계승한다고 했으니
❤❤
기록이 많이없는게 아쉽네여
강감찬이나 서희, 양규가 없었으면 고려도 순식간에 거란한테 망할뻔했네요
안 망합니다. 조선의 호란도 조선을 멸망시키고 통치하기 위함이 아니라 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명과 이어져 있던 조선 선제압한 것이고. 거란 또한 중원으로 내려가기 위해 송과의 연결를 끊기 위함이라 고려를 망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호란과는 달리 그것이 고려에 막혀버렸죠. 한반도 외부의 세력이 한반도 내부 세력을 진심으로 멸망시키려고 한 적은 나당전쟁 때 단 1번이 뿐었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현재 북한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백두산 주변지역등이다 대략봐도 험준한 산악지역에 농업을 거의 안했으며 했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은 작았고 ( 저 위도에서는
일조량이 적어서 고밀도생산이 안되며 고대나 중세의 유럽인구가 평야면적에 비해서 적었던 이유 이기도하며 같은면적 평야라도 생산성이 몇분의 1밖에 안됨) 고구려나 백제 신
라 인구가 비슷했듯이 발해는 거의 사냥과 목축업이 주산업 이었음 목축업 지역은 인구밀도가 아주낮음 게다가 아주춥고 (현재에도 저지역은 겨울이길고 겨울에는 영하40~50도
까지 내려감) 길어서 인구가 적었는데 말갈족들은 다른지역 까지 복속시켜 많은 군대를 두갈래로 나눠서 오니 한쪽만 알고서 막았는데 상경부 북쪽으로 둘러서 기마병으로 고속
으로 쳐내려오니 모르고 있다가 대비도 못하고 당했으며 그기에다 내분으로 권력다툼으로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망한것임 고구려 패망과 비슷함 별거없음 발해다 대단한 나라
였다면 따뜻한 통일신라 부터 먹었을것임 발해가 착해서 신라를 안먹은것이 아니다 당과 손잡고서라도 먹었을것이나 신라역시 북쪽의 험준한 산세와 이동및 식량보급 등의 문제
로 신라나 발해사 서로를 칠국력 자체가 안되어서 합병이 안된것일뿐 .... 쓸데없는 환상이나 지도만 보고 대단한 나라였다고 착각하면 안됨 통일신라 보다도 보잘것없이 약했던
나라였음 국뽕에 취한 자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자꾸 부풀려서 만드는것도 문제임
의미없는 얘기지
어느 정도 말이 된 게 발해가 위에서 저렇게 버텨내지 못하였다면 당시 후삼국으로 분열된 한반도에 거란 기병이 휘집고 다닐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을 거 같네요
초기 고려가 거란과 싸울 당시에는 중장 기병 비율이 적을때입니다. 오히려 후삼국시대때는 고려와 후백제는 대규모로 중장 기병을 운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대규모 중장 기병을 운용한 국가가 후백제니까요
발해라고 부르지 마세요!
발해서람둘은 자신을 고려사람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발해는 당나라가 준 이름이에요
고려(대씨)라거나 대씨고려라고 말해야합니다
발해라고 부르는 잘못된겁니다.
이양반아 발해라고 부르는게 왜 잘못이야
같은말인데..
그리고 발해가 뭔뜻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비판하누
발해는 밝은해라는 뜻으로 지존을 상징하고
오늘날 미국같은 패권국가의 의미야
@@j3459 그걸 당나라 준이름이라고 했어 안했어!
그리고 그 사람들은 스스로 고려사람이라 했는데 무슨근거로 발해라고 부르는 거야!
고구려도 장수태왕때 고려로 개명했는데...
@@johnniegwag4820 제발좀 발해가 뭔뜻인지나 알아라.
무슨 발해가 뭔뜻인지도 모르는 넘들이 발해 발해 그러나..
발해가 뭔뜻인지 알면 그때 댓글달아라
@@j3459 원소가 발해태수란 관직명에 있었다
너가 말한 발해가 생기기 몇백년전에 그리고
요동반도 밑에 바다 보하이 한자로 발해라고 불러
세상에 발해라는 나라가 있기 몇백년전에 조그만 동네를 국호로 쓰고 싶겠냐! 원소가 태수로 있던땅의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하고 싶었겠냐!
당나라와 신라가 일방적으로 발해라고 부른거지
대내적으로는 자신들을 고려라고 불렀다고
요동 상실이 발해로서는 뼈아픈 손실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고려로 치면 서경을 포함한 서북면 요충지들을 빼앗긴 셈
비록 거란도를 통한 기습작전이 유효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요동을 상실함으로서 진격로가 열린 것이겠지요ㅎㅎ
말씀하신 대로 요동을 상실한 이후 저는 발해와 거란의 대립에서 무게추가 거란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동 방어선은 고구려 때에도 이미 그 효용이 톡톡히 입증되었던 중요한 방어선인데 그게 무너지고 난 이후에는 비록 장령부가 엄청난 분투를 하면서 끝까지 함락되지 않고 버티는 등 제 몫을 다했습니다만,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발해의 그와 같은 장령부 중심의 방어 전략을 꿰뚫고 단번에 부여부를 거쳐 상경용천부를 치고들어가려 했던 거란의 전략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효과적이었으므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발해를 무너뜨려 버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환장하겠다
제 주변에도 발해사 연구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했다가 기록이 너무 없는 문제로 결국 포기한 선후배나 동기들이 꽤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 고고학의 발달로 인해 유물과 유적을 통한 연구 방법이 굉장히 발전했으므로 발해사의 편린들을 이전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중국입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록이 나올 걸 우려해 꽁꽁 싸매고 남북한 학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고려사 보면 대충 윤곽은 나와요. 그런데 고려사는 완전 번역본이 없죠. 제도권 애들이 고려사를 싫어 합니다. 걔들은 고려인의 후예가 아니라 여진족 후손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독학으로 고려사를 연구해야 발해가 보입니다.
이래서 거란애들이 나중에 뭐에 씌인거마냥 길돌아서 개경에 들이박는구나... 같은 수성 특화민족 공략법인줄 알고ㅠ 한반도는 요동이랑 달리 폭이 좁은데다 높진 않아도 첩첩산중이라 특정 거점 몇개만 성쌓고 제대로 버텨주면 거길 돌아내려가 봤자 금방 보이지도 않는 언덕 너머 산길로 몇천명씩 몰려나와서 병참기지 순식간에 하나씩 아수라장내고 근거지로 되돌아감
거란이 공격한 개경이 개성이 아니라 베이징입니다. 평양시를 서쪽으로 우회해서 동쪽으로 가면 개성이 나오는게 아니라 태백산맥이 나오죠. 아이큐가 80만 돼도 알 수 있는데 역사학과는 산수 능력을 안보고 입학하니까 뭐가 뭔지 쥐뿔도 모르는 거임. 거란이 공격한 고려의 서경이 평양시가 아니라 다퉁시임. 다퉁=大東市. 베이징 서쪽에 있어요.
거란 요나라도 고구려를 계승하는 우리민족입니다.
고구려후예 왕건은 사천출생으로
고구려가 멸망당하는 과정에서 사천으로 강제이주된 고구려 유민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거란과 고려 둘다 고구려 후예들인겁니다.
유투브 내용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약해진게 맞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갑작스럽게 망한것도 맞다는 생각...주력군이 궤멸되지 않은채 망한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주력군 뿐 아니라 그 외 지역에서 전혀 원군이 오지 않은것도 이상하고...
마치 백제 멸망과 데칼코마니...오히려 호족들간의 세력 갈등 쇠퇴의 직접적 요인이라고 크게 느껴짐..
고려로 유입이 많아진것도 그 반증
다른 분이 적은 글 보니 갑작스럽게 망한거 맞는듯
방어가 힘들었으면 중경이나 동경으로 옴겨야지.. 왜 계속 상경에 있었냐.'.
노상은 사람이름 아니고 높은재상 그런 의미 같네요
답이 있네
1,왕권약화
2,당 멸망으로 인한 경제력 약화
3,거란침략
거란이 저당시 너무너무 강했지 후일 청나라 세우는 여진족마저도 요나라 힘빠질때까지 납작엎드려있을 정도로..
뭔이상한 소리임 거란이 멸망할때까지 기다린건 금나라인데 청나라 세우는 여진은 금나라가 멸망한뒤에 등장함 거란을 멸망시킨게 여진금나라고
애초에 발해가 한국 역사인지 중국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둘중 누가 중국인인데?
다른 방향으로 발해멸망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영상입니다 ^^
영상 유익하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도움되는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구려처럼 말갈,거란같은 유목민족을 군사동원할 역량이 있었으면 거란한테 망하진 않았을듯 당장 외몽골지역에 군사전진기지를 설치하고 철륵방면에서 당나라 통수친게 고구련데 외몽고쪽 유목민 자기땅에 군사적 거점을 허락할정도면 강력한 통치력을 고구려가 행사했다고 봐야함
발해는 고구려가 망하고 유목민족과의 결속력이 무너진것으로 보임
말씀하신 유목민족에 말갈이 포함된다면 사실 발해에서 말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발해는 여전히 유목집단과의 연계가 튼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말갈은 이미 반농반목 생활을 할 지 오래이고, 그 외 다양한 생업에 종사했던 집단이므로 순수 유목민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서북방의 유목 세력과의 관계가 중요했는데, 문제는 거란이 급성장하면서 그들을 모두 통합해 버렸기에 발해가 연대할 만한 유목 집단이 사라진 게 문제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발해는 여진족국가고 거란 = 고구려 = 고려 다 같은 나라다...
여진족은 가야가 멸망하고 나서 고려땅 근처에서 각각 부족끼리 산거고 발해는 말갈족이 대부분이였음
우리나라 학교의 역사교육이 정말 쓰레기라는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백두산 화산으로 하루아침에 갈 수 있지...
지금 구글지도봐도 솔직히 부여부 지나서 성을 만들지 않았던게 이해가 가는게
방어가 가능한 지형이 안보임. 그냥 회전 이기는 거 밖에 답이 없음.
예상 위치를 봐도 솔직히 말이 빨리 뛰면 3일이면 들어갈 위치라 안만든게 아닐까?
말씀하신 내용이 아마 부여부와 상경용천부 사이에 다른 방어 거점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상경용천부는 평지이므로 지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곳이기에 수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고, 그래서 결국 수성보다는 회전을 통한 요격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수도를 수비하기 좋은 천혜지역인 동경이나 중경으로 고정박고 고구려의 평양성처럼 성벽을 작정하고 쌓고 2~3달을 버텼다면 어땟을까 싶더라구요!! 그랬다면 거란은 보급문제로 철수 했을거 같은뎅
결과론이지만 석경당이 싸지른 빅똥 하나가 어마무시한 스노우볼로 굴러감.
그냥 역사적기록이 없어져서 그런거지..
앞마당 격인 요동도 지배하지 못했다는게 사실 그리 강한 국가가 아님은 알 수 있음
ㄴㄴ 요동 지배했습니다.
다만 거란과 전쟁끝에 요동을 잃은 거로 봅니다
머 근데 거란도 전성기에서 망하는데 까지 20년 ㅎㅎ 글고보면 저런 험지서 700년 버틴 고구려가 대단한듯
제생각에 시간이 너무많이남아서 만든게절대 아닌데 만들고 역사를 거울삼으세요로 무료배포 외길만 걷기땜후네 참 고맙군요 글헉케보면 모두를 위하니까 대의 같습니다 잘보겠습니다 꼭 선한일 하시니까 계속 유지할수있게 환경여건이 마련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봐요 😅😊
뭔 말이냐 도대체.
걷기땜후네x 걷기 때문에o
글헉케보면x 그렇게 보면o
@@vincentr6567 ㅇㅇ 맞춤봅다암 걍 해 본 겁니다 해명은 했고 그래도 모르시니까 가르쳐줄라 하신 의도는 ㄱㅅ합니다 프로필사진있듯 대한민국 44대국방부장관 한민구와 젊은이들이 가장좋아하는 시인조사 1위수상하신정호승 시인의 ㅇㅈ받은 윤동주와같은 생명파14회병영문학상 국방부시인 임다 뭐랄까 비겁한 변명이예요 ㅇㅇ 시는 아닌데 시적허용을 대입해봤다는 다리를 절을수는 없으니까 발음을 절었다고 해두겠습니다 😅 이해해주셔서 아니벌써 감삼다 😊
발해는 백두산 폭발로 국력이 약해 무너진 것이 아닌가요?
백두산 폭발은 발해 멸망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자연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백두산 폭발은 발해 멸망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며, 다만 대규모 화산 폭발 이전에 나타나는 사전 조짐에 의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졌을 가능성은 있다 정도로 얘기됩니다.
고구려는 다민족 제국 말갈도 예맥도 모두 하나
발해는 고구려후손이 고구려의 재건을 위해 만든 나라다..이렇게 해석하는게 옳지않나요.
북방쪽이니 당연히 그 지역에 터잡고 살던 다수의 민족들이 있었을것이고
그렇다고해서 발해지역을 우리역사가 아니다라고까지 하는 분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만주 일대는 고구려때 우리의 영토였습니다. 굳이 고증을 하지않더라도 문화민족인 고구려인들이 지배층이었을건 짐작이 가는 일이고 여러민족이 합쳐져 움직이던 거대한 집합체였을거라 생각이 되네요.
일본은 홍보용으로 책자만 발행할뿐 아예 역사교과서 자체가 없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창피해서 역사교과서를 못만드는거죠. 그런 나라도 있습니다.
자랑스런 고구려, 고려의 후손으로서 다시 한번 옛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선조들이 활약했던 북방의 땅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네요.
남의 나라 땅을 자기땅이라하고 엄연한 남의 나라의 역사와 유물을 자기것이라고 우기는 뻔뻔한 나라들이 바로 우리 옆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찬란했던 발해의 존재를 높이 사야겠습니다.
고구려의 재건을 위해 만든 나라가 아니라 그냥 고구려를 재건한겁니다 어떻게보면 고려보다 더 정통성 있죠 고려는 신라의 북쪽 옛 고구려지역 호족들을 묶기위해 고구려라는 이름을 활용해서 우리는 하나다라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선전한건데 발해는 그냥 여지도없이 국호 고려 박고 고구려 지배층들이 직접 만들고 고구려 유민들 그대로 흡수해서 만든 나라라서요
좋은 영상이었지만 저렇게 넓은영토를 하루아침에 전술과 전략이 잘통해서 먹혔다는건 다른 요인이 분명더 있었을거 같네요 군량이나 인구문제가 있었겠죠
바다쪽으론 경계할 나라가 없었는데도 많은 병력이 분산돼있다가 방어선이 뚫린건 이영상만으론 미스테리가 해결되질 않네요 기록되지 않은 내통자가 거점 성문을 열어주고 야습을 했다던지 뭔가가 있었겠죠 지도상으로 봐도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영토인데 전략 전술이 잘통해서 이긴다는건 어불성설이죠 인산인해의 규모끼리 싸운다는건데요 분명 뭔가가 더 있었고 삭제된 문헌이나 기록이 있어보입니다
말씀하신 내용들 모두 하나씩 살펴보면서 사료 기록을 근거로 규명해 나가야 할 문제들 같습니다.
다만 동해 바다 쪽으로 발해는 일정 수 이상의 부대를 반드시 배치해야 했을 겁니다. 흑수부 말갈이 뒤늦게 발해의 세력에 편입되기는 했습니다만, 그들은 다른 우호적인 말갈과는 달리 고구려와 발해 초기까지 내내 적대적인 집단이었고, 그들의 세력권을 발해가 직접 지배하지도 못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영상의 지도에서는 발해의 영토가 상당히 넓게 나옵니다만, 그건 전체적인 영향권을 표기한 것이고 아마 실제 직접 통치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토는 훨씬 더 작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동해 바다 쪽에 반드시 일정 병력을 배치해서 흑수부 말갈이나 혹은 한반도 동북부 지역의 말갈 집단의 동태를 살피고 억제해야 했으므로 발해는 결국 군사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외국을 30년 넘게 떠돌면서 외국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서들을 여럿 보았습니다!.....그들도 처음에는 중국사서 정도로 알고 있다가 전문가에게 맡겨서 검토한후에 우리의 사서임을 확인했고 본인에게까지 보여주었습니다!.....때가 되면 이 세상에 나오질 않을까 생각해봅니다!.....퍼즐 조각 맞추기가 시작될것임!
1리 2 네.......
나무위키 고대로 갖다 읽기만 했네?
결국엔 썰만 있고 근거는 하나도 없네요. 실망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