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께서 돌보시어 아버님께서 머나먼 바다에서도 무사히 돌아오시지 않으셨나 생각됩니다. 저 또한 임관을 앞두고 아산 현충사에서 이충무공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인가 여지껏 무사히 군생활을 하고 있나봅니다. 충의 하나로 민족의 대 군신이라 해도 무방할 신화적 전적을 남기신 대장이시니 앞으로도 유혹을 떨쳐내고 직분에 충실하길 기도해봅니다.
@@홍시-q9b그당시 조선은 일본령인데 당연한거아니냐 루트가 전조선반도인이 독립을 외치고 저항하고 독립군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그이상으로 무능하고 조선반도 인구 반틈 이상백성을 탐닉하는 양반들이 더 싫었을거다. 일제의 침탈은 참으로 원통하나 그시대의 청년들의 먹고살길 마저 욕할수는 없다.
@@홍시-q9b일제 치하가 35년이다 35년이면 그당시 태어나거나 그전에 태어났던 청년들으 인생 반틈이상을 산 기간인데 전부 식민사학과 세뇌로 이미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산것 현 북괴인민들이 세뇌당한것과 마찬가지일 터이니 군인이 되고싶다는것은 조선의 군인이 아니라 황국신민의군대가 된다는것으로 생각하면 됨
@@조재화-k2m 중세 근세 일본도 심리적으로 대륙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해군이 없어요. 임진왜란때 급하게 해적들 조금 모아서 해군 만들었는데 그냥 수송선에 불과합니다. 바다에서 전투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무라이라는 육군이 막강 했지요. 그 위력이 어마어마 합니다. 부산에서 한양까지 20일만에 점령 했지요. 이것을 보고 명나라에서 이건 이해가 안간다 조선하고 일본이 짜고 치는 것 아니냐 의심했고 이것때문에 류성룡이가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답니다. 역사적으로 잘 모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길어지니까 끝
저 이순신장군님의 초상화는 어떤 화가... 작품... 당대? 조선시대? 모든 문무관이 똑같이 닮았다는... 일제 때, 어느분께서 소장하고 계셨다는 충무공 진영의 사진을 보았는데, 정말 호랑이같은 기상과 맑은 기운, 그러면서도 인자함을 숨기신 모습이었습니다... 저 초상화들은 이제 어디 보관하고, 모든 분들의 초상화 찾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물때를 보면 평소 견내량에서 통영쪽으로 올려면 썰물때(오전 !~2시경)인데 당시가 조금이면 오전9~10시도 가능합니다. 즉 이순신은 그때를 기다린것이죠...7월 6일 창선 적량에서 일박하고 충분히 쉬게하고, 오전출발 한나절 에 7/7 일 한산도쪽을 이동 8일을 기다린것입니다...
판옥선 크기가 위압감이겠지요. 도색이 있었다면 단청 정도..일 것 같네요. 루이스 프로이스의 책에 따르면 조선 수군은 커다란 배 타고 다니며 일본 배를 보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온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내용이 가물가물한데..일반 인식과 달리 조선배가 일본배에 다가와 고리를 거는 식으로 표현한 것 같네요. 높은 판옥선이 낮은 일본선에 고리를 걸어 도망 못가게 하고 대포를 쏘아 명중률을 높여 배를 부수고 위에서 아래로 화살을 쏘는 방식의 전투로 저는 추정합니다. 영화는 포탄이 멀리 날아가 왜선을 맞추는 식이지만..실제로는 흔들리는 배에서 눈대중으로 대충 쏜 포를 적선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듯) 명군 장수 진린과 등자룡도 명선 대신 판옥선을 한 척씩 선물 받아 타고 나선걸 보면 당시의 판옥선은 크기와 단단함이 깡패였던 듯 합니다.
조선배의 나무재료의 틈새에 송진으로 매꾸었다는 글을 어디서 본 듯합니다. 방수를 위한 것이겠지요. 영화감독 이순신 시리즈에서 한번도 도색을 칠한 적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어떤식으로든 방수나 배의 상징성을 위해 도색과 장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상으로라도 영화에서 조선배를 디자인 했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임란당시의 포 사격술을 폄홰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하물며 고려거란전쟁에서도 투석기의 사격거리를 가늠하는 도구가 등장합니다. 그 정도의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너무 먼 거리는 정확성이 떨어지겠지만요. 일본수군의 특기가 접근해서 승선해서 단병접전하는 것입니다. 조선수군은 그걸 피하는 전략이었을 겁니다. 일본이 조선수군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은 아웃복싱을 했기 때문입니다. 근접전에서는 아마 장창과 대형 낫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왜란때 세종이나 문종때 개발한 무기를 먼지털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은 전성기가 너무 일찍왔어요.
글쎄요... 이순신장군께 이 나라가 어떤 기업에 취업해 계신 것으로 비유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조국을 유린하는 적들 섬멸하고, 더구나... 일부러 이순신장군 생가에 찾아가 아들까지 죽인 적들... 하여간, 이순신장군님은 세계전쟁사에 길이 길이 남으실 분 ~ 23전23승은 큰 전투만 꼽은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생 겪으신 크고 작은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끄신 분... 일인들이 전쟁의신으로 모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충무공 주위에 수많은 백성이 모여드니까 왕이란자가 불안 했던 것 조선시대 건진 것 세종조 한글하나 결국 쿠데타로 집권한 이성계 세족들이 나라까지 일본에 갖다 바침 2천년전 세계 최강국 고구려, 계승국 해동성국 발해와 고려!!! 21C 문화 기술 산업경제 강국 동방예의 지국 The greatest Republic of Korea 대한민국
저는 진린장군에 후손입니다.
역사는 고정되여 있고
현재와 미래는 바뀌기도 합니다.
현재와 미래가 가뀌는 기본은
역사입니다.
그래서 역사에 진실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뿌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수 좌수영사람 입니다.
이충무공타루비를 모신 사당 옆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70년대 초등학교때 저희 아버님이 멀리 외항선원으로 떠나시기 전날 타루비에 오셔서 이순신장군님 잘 돌봐주시라고 묵념을 올리고는 하셨는데...
추엌이 생생하네요
충무공께서 돌보시어 아버님께서 머나먼 바다에서도 무사히 돌아오시지 않으셨나 생각됩니다.
저 또한 임관을 앞두고 아산 현충사에서 이충무공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인가 여지껏 무사히 군생활을 하고 있나봅니다.
충의 하나로 민족의 대 군신이라 해도 무방할 신화적 전적을 남기신 대장이시니 앞으로도 유혹을 떨쳐내고 직분에 충실하길 기도해봅니다.
육사출신들은 뿌리가 일본군이라 그런가요?
@@홍시-q9b그당시 조선은 일본령인데 당연한거아니냐 루트가
전조선반도인이 독립을 외치고 저항하고 독립군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그이상으로 무능하고 조선반도 인구 반틈 이상백성을 탐닉하는 양반들이 더 싫었을거다.
일제의 침탈은 참으로 원통하나
그시대의 청년들의 먹고살길 마저 욕할수는 없다.
@@홍시-q9b일제 치하가 35년이다 35년이면 그당시 태어나거나 그전에 태어났던 청년들으 인생 반틈이상을 산 기간인데
전부 식민사학과 세뇌로 이미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산것
현 북괴인민들이 세뇌당한것과 마찬가지일 터이니 군인이 되고싶다는것은
조선의 군인이 아니라 황국신민의군대가 된다는것으로 생각하면 됨
여해 이순신 제독님 기록을 진란 제독의 입장에서 알 수 있어서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방송 하시느라 고생하십니다. 라디오 전파로도 널리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임진란 병자호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6.25때 무기비교 남침인가 ㅡ 다음 검색
미일과 친일파 방해로 통일기회 4번 놓쳣다 ㅡ 다음 검색
한동훈의 미끼에 끌러가면 안된다 120년간 지속되는 ㅡ 다음 검색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이순신 장군님!!
섬나라는 육지를 바라보게 돼있다
섬나라를 경계 해야합니다
@@조재화-k2m
섬나라는 한국입니다. 일본땅 면적이 어마어마 한데
홋가이도만 해도 남한땅 보다 넓어요.
저의 말은 땅크기를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이야기하는것입니다 저의 친구가 사량도 섬에 살고 있었는데 이리가도 바다 저리가도 바다 이섬을 벗어 ᆢ육지로 올라옴 사람의 심리를 이야기한것입니다
@@조재화-k2m
중세 근세 일본도 심리적으로 대륙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해군이 없어요. 임진왜란때 급하게 해적들 조금 모아서 해군 만들었는데 그냥 수송선에 불과합니다.
바다에서 전투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무라이라는 육군이 막강 했지요.
그 위력이 어마어마 합니다. 부산에서 한양까지 20일만에 점령 했지요.
이것을 보고 명나라에서 이건 이해가 안간다 조선하고 일본이 짜고 치는 것 아니냐 의심했고 이것때문에 류성룡이가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답니다.
역사적으로 잘 모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길어지니까 끝
영화에서 등자룡에 대사가 가슴에 남습니다
통제사에 원수는 우리에 원수다 분전하라😊😊😊😊
야 등자룡이 엄청 용감하게 싸웠네.;,
등자룡도 사살 당한다는건 아냐?
니들은 명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읺했데메?
영화는 허구의 세계란다.
@@WHCAV-u5p중국에 진씨가 8000만명이랍니다.
그들이 영화관으로 달려간다면 미화한들 국익 아닌가요?
등자룡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걸로 기록에 나와있습니다. 당시 60대 후반 당시 수명으론 백전노장이라 감안하고 싸우셨을거같네요..
여자분 너무 귀엽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기같음
임진란 병자호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그냥 제가볼때 선조는
질투심이 많은 성격이고.
덕분에 불안함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었던것 같습니다.
왜란 이후 병자호란때 의병이 없이 무기력하게 여진족에게 당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선조때 왜적에 대항해서 싸운 의병장들을 다 죽여버린 탓입니다.. 그러니 전란이 터져도 누가 나서서 나라를 구하려 했겠습니까? 선조는 암군중의 암군입니다.
그냥 쓰레기 왕일 뿐입니다
왜놈들의 거짓정보에 놀아난 당대의 난다 긴다하는 자들이 아무 죄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사람을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고 열등감과 시기심에 쩔은 선조는 어떻고 이러니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일어났지
왜놈들의 거짓정보에 놀아난 당대의 난다 긴다하는 자들이 아무 죄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사람을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고 열등감과 시기심에 쩔은 선조는 어떻고 이러니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일어났지
왜놈들의 거짓정보에 놀아난 당대의 난다 긴다하는 자들이 아무 죄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사람을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고 열등감과 시기심에 쩔은 선조는 어떻고 이러니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일어났지
방송국넘들아!!! 조금 투자 좀 해라!!! 토멘사 원멤버 다 모시고 와라!!!!
실제 명사에는 이순신 제독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고 하죠. 단 한번 정도 짧게 기록된 수준…. 진린이 남긴 글에 대해서도 정확한 출처를 남겨 주셔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독은 오히려 일본 기록 측에 내용이 꽤 많다고 하죠.
이충무공도 이충무공이시지만..
남의 나라 전쟁에서 이충무공과 함께 68세.. 지금 나이로 거의 80대 중후반에 가까운 나이에 군을 독전하며 싸운 등자룡 장군.. 진짜 군인 중의 군인이고 남자 중의 상남자이시네요 ㄷㄷ
저 이순신장군님의 초상화는 어떤 화가... 작품... 당대? 조선시대? 모든 문무관이 똑같이 닮았다는...
일제 때, 어느분께서 소장하고 계셨다는 충무공 진영의 사진을 보았는데, 정말 호랑이같은 기상과 맑은 기운, 그러면서도 인자함을 숨기신 모습이었습니다...
저 초상화들은 이제 어디 보관하고, 모든 분들의 초상화 찾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 미력산에서 눈으로 보고 확인하여 보고할려면 당시 휴대폰도 없는 보고체계에서 장군께 접수하려면 한나절은 속히 걸려요..그 시간이면 견내량지나 사랑도 앞으로 내려옵니다.. 사전 첨보가 있어야 합니다
이순신장군은 인격적으로 완성된 분이 어떠한 이득에 흔들리시겠나요.
이순신장군 요즘 표현으로 완벽한본체 이십니다.
노량 본 이후 한산도부터 영상을 찾아 계속 보고 있습니다. 👍👍👍
남해 여수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와 딴건모르겠고 여자분 누구임? 엄청 이쁘다
선조가 이순신장군을 시기 질투 했다는... 이야기...
명나라 장군들이 진짜 진짜 존경했다는...
당시 물때를 보면 평소 견내량에서 통영쪽으로 올려면 썰물때(오전 !~2시경)인데 당시가 조금이면 오전9~10시도 가능합니다. 즉 이순신은 그때를 기다린것이죠...7월 6일 창선 적량에서 일박하고 충분히 쉬게하고, 오전출발 한나절 에 7/7 일 한산도쪽을 이동 8일을 기다린것입니다...
국민학교때 보던 이순신 위인전 듣는거 같다..ㅎㅎ
이성계조선은 나라도 엉망진창 다스렸는데 그들 조상묘들은 어디서 돈이많아서 그렇게 단장들하고 좋은땅 다 차지하고 화려하게 조성하는지 권력과 돈은 다 자기들끼리 차지하고 잔치하는것 같네 어이가 없어
명나라 황제 면사첩
😊
여자엠씨는 화면나오고 말을안하네....미인이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아나운서 AI 같이 보임 이쁘기도 하지만 일부러 저렇게 화장한 것임?
화사 비유는 좀 그렇네. 회사는 사장을 위한 것이잖아요. 나라에는 백성들이 있으니.. 이순신의 충정은 회사(왕)을 위한 것이 아나라 백성들을 위한 충정.
군산앞바다에 고군산.지리공부합시다
이보세요.ㅡ고군산군도는 충청도가아니고,ㅡ전라북도새만금앞에 있다오.좀더공부하세요.
영화에서 조선의 배는 도색이 전혀 없고 위압감을 주는 장식도 없다. 이건 사실과 다르지 않을까? 배가 바다에서 견디려면 반드시 도색이 있었을 것이다.
판옥선 크기가 위압감이겠지요. 도색이 있었다면 단청 정도..일 것 같네요.
루이스 프로이스의 책에 따르면 조선 수군은 커다란 배 타고 다니며 일본 배를 보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온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내용이 가물가물한데..일반 인식과 달리 조선배가 일본배에 다가와 고리를 거는 식으로 표현한 것 같네요. 높은 판옥선이 낮은 일본선에 고리를 걸어 도망 못가게 하고 대포를 쏘아 명중률을 높여 배를 부수고 위에서 아래로 화살을 쏘는 방식의 전투로 저는 추정합니다. 영화는 포탄이 멀리 날아가 왜선을 맞추는 식이지만..실제로는 흔들리는 배에서 눈대중으로 대충 쏜 포를 적선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듯)
명군 장수 진린과 등자룡도 명선 대신 판옥선을 한 척씩 선물 받아 타고 나선걸 보면
당시의 판옥선은 크기와 단단함이 깡패였던 듯 합니다.
조선배의 나무재료의 틈새에 송진으로 매꾸었다는 글을 어디서 본 듯합니다. 방수를 위한 것이겠지요. 영화감독 이순신 시리즈에서 한번도 도색을 칠한 적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어떤식으로든 방수나 배의 상징성을 위해 도색과 장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상으로라도 영화에서 조선배를 디자인 했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임란당시의 포 사격술을 폄홰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하물며 고려거란전쟁에서도 투석기의 사격거리를 가늠하는 도구가 등장합니다. 그 정도의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너무 먼 거리는 정확성이 떨어지겠지만요. 일본수군의 특기가 접근해서 승선해서 단병접전하는 것입니다. 조선수군은 그걸 피하는 전략이었을 겁니다. 일본이 조선수군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은 아웃복싱을 했기 때문입니다. 근접전에서는 아마 장창과 대형 낫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왜란때 세종이나 문종때 개발한 무기를 먼지털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은 전성기가 너무 일찍왔어요.
우리나라 영화를 보면 일본은 무섭고 강하게 표현하고 조선은 유약한 느낌으로 표현하는데 그렇지 않은데 너무 패배주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글쎄요... 이순신장군께 이 나라가 어떤 기업에 취업해 계신 것으로 비유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조국을 유린하는 적들 섬멸하고, 더구나... 일부러 이순신장군 생가에 찾아가 아들까지 죽인 적들...
하여간, 이순신장군님은 세계전쟁사에 길이 길이 남으실 분 ~ 23전23승은 큰 전투만 꼽은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생 겪으신 크고 작은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끄신 분... 일인들이 전쟁의신으로 모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진짜 한족명나라 진린장군이라 그런거야요. 역대중국왕조중 당.송.명 제외하고우리나라하고 사이좋은 중국 없었다.지금 우리나라 고건축은 전부 송나라 양식으로부터 시작됬어요. 주레고공기
조공/책봉체제
허준만 아니면 좋을뗀데
당장 퇴출시켜라
불랑기가 프랑스냐…
중국애들 말하길 그때 이순신이 진린의 권유에 응하고 전쟁이 끝나면 명에 가기로 했다네요?
맞자. 한자(漢字)를 배우서 진짜 역사책 읽어
선조 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놈.
지목숨을 지켜준 무관을 괄시하다니
이건 아무리 선비의 나라라해도 이해해주기가 힘드네.
명나라없엇어도 충분햇다라는애들은 반성하자.
그때명군이 조선에 들어옴에인해서 일본이 북쪽진출을 멈추고 냉전상태로들어간것이지 명군이안들어왔으면 진즉 압록강두만강까지그냥다밀려서 나라사라졌다. 명군이 들어온것만으로도 충분히 명군이뿜어낸포스는 가히 대단했다고볼수가있는것이다.
ㅉㅉ
잠꼬대 하세요. 명군 아니었다면 전쟁 일찍 끝났어요? 일본군이 부산 쪽으로 병력 이동 한것은 일본수군이 한산도 에서 대패 당해서 보급이 끊기는것 때문에 강화. 협정 하면서 후퇴한거죠? 명나라 무서워서 후퇴 한건 아닙니다
@@단통이 명나라참전하고부터 분위기달라진게맞는것인데 인정을안하시네 아무리이순신장군이 활약했었어도 명군지원없이는한계가있어요 한양이파죽지세로함락아닌무혈입성했는데 충분히 자급자족하면서 밀고올라갈수잇었는데 완전히제압하지못한조선과 명군이라는상대를두고 싸우기엔 일본도무리가있죠 조선을완전히제압했다면이야기가달라지지만 선조가도망가고 명군이참전한이상 더이상전진은무리이기에계속 평양에주둔했던것이구요 명나라참전이 결과적으로시간도벌수있게되었던게맞는건데
명이당연히 참전해야지. 명으로 진출할걸 한국이 몸빵해준고있는셈인데..당연한것임.
ㅋㅋ ㄹㅇ ㅈ소기업 입장에서는 과도하긴 하네ㅋㅋ
몽고메리 트롤
Ytn 퀄리티 아주 저질이네..
충무공 주위에 수많은 백성이 모여드니까 왕이란자가 불안 했던 것
조선시대 건진 것
세종조 한글하나
결국 쿠데타로 집권한 이성계 세족들이 나라까지
일본에 갖다 바침
2천년전 세계 최강국 고구려,
계승국 해동성국 발해와 고려!!!
21C 문화 기술 산업경제 강국 동방예의 지국 The greatest
Republic of Korea 대한민국
전형적인 식민사관.
영상거지같내 똒같은 내용 몇번나와
반복재생이라고 써있는데 억지는 좀
중꾹에서 돈받았냐? 영화 분위기에 중꿔하고 친선 분위기가 좀 강함..닛뽄은 원래 그렇다 치고..그런데 조선군 갑옷은 다 흑색이고 일본군 중귝군 복장은 엄청나게 화려함.
여기다 엄청나게 돈 쓴 이유가 뭡니까 감독?
중국자본없이는 영화나 드라마 못만들어서..
사극에 동북공정코드 심는일이많음..
일본자금은 일본미학을 홍보해주고.. 고급식사는 일식만먹잖음.
오죽하면 경성크리처에서까지 일본제국주의 미학을 홍보하겠음.
서구자본은 한국콘텐츠에 폭력을 외주주고있음..
선정적인 칼부림 범죄스릴러아님 제작오더가 거의안남.
헌마디로 한국엔터는..외국자본에의해서 좌지우지돼서 한국폄훼를 세일즈하고있는것임.
군대가 무서워 진법훈련금지한 조선.
소요진압훈련 없앤 대한민국.
대규모 소요사태 생기면 어쩌려는지.
선조후대는 뼈속까지 새기고 명심하면서 살아가라.
임진왜란 끝나고 100년이 지날 때까지 이순신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임진왜란 100년 후에 류성룡이 쓴 정비록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에서 과장시키고 소설화 시키면서 이순인이 알려졌음.
해전에서 능한 장군이 아니라 장비 이미지임
ㅋㅋ
그래바야 일본지배 ㅋㅋㅋ 다시지배받아 ㅋㅋ
어라, 두번의 백의종군..??
오메, 환장 허겄네.. 진짜..
임란전.... 녹둔도때 백의종군 하신적 있습니다..
저는 선조집안사람입니다 이거이거 부끄럽게되었소이다. 허나 이건만 알아주시길바라오 선조는 정통우리집안 사람이 절대 아니라오 애는 좀 또라이였다오.
그놈이 만약에 신하로 태어났다면 만고에 간신이 되었을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