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에서 식품을 수입해서 제노바에 많이 가봤는데 정말 중세상인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더라구요. 당시 항구며 또 최초 organized bank 가 제노바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하면 다들 베네치아 밀라노만 생각하시는데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코로나 이후 제노바도 꼭 가보시길!
베니스의 상인 시대 배경의 유대인은 당시 토지 소유권이 없었으며, 길드에도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구약의 해석에서 같은 민족이 아니면 얼마든지 고리대금업을 해도 된다고 해석하였기에,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기독교인은 고리대금업을 할 경우 파문까지 당했지요. 그래서 은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4세기 베니스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은행을 의미하는 단어인 ‘Bank’는 유대인들이 탁자를 놓고 업무를 했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지요. 그런데 요즘도 고리대금업자가 사회적으로 지탄 받기에, 당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는 자의던 아니던 비난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이였지요. 당시 피렌체에도 기독교 고리대금업자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주로 외국왕실과 국제적 사업에만 돈을 빌려주어 파문을 피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14세기 후반 피렌체 가문의 가톨릭 신자 ‘코시모 데 메디치’가 유대인을 피렌체로 데려와 은행을 열어 서민에게 환전과 고리대금업을 하였고, 이로 축적한 부로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 예술가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과학자를 후원 하여 르네상스의 선구자가 됩니다.
와 이번꺼 진짜 재밌게 봤어요. 한자동맹 왜 중요하게 다루는지 몰랐는데 그당시의 초다국적기업의 개념이 어느정도 들어있네요. 상인들이 각 지역의 부족한 물자들을 유통한다는 개념도 저때 나타났군요. 그 당시에 화폐가 저렇게 많았다면 금본위제가 나타났을 수밖에 없었겠구요. 그 당시 본능적으로 뛰어난 상인들은 fx 거래로 돈 많이 모았겠는데요 환율 변화는 늘 급격하니. 사실 베니스의 상인도 선악적으로 접근하기 그런게 신용도 낮은 부실채권은 이자가 높을 수밖에 없잖아요. 채권 및 원금조차 못받을 만한 가능성이 있으니 이자를 많이 받아내니까(물론 제한없는 대부업의 살인적 이자는 철퇴를 맞아야만 합니다만). 아무튼 생각할 거리가 진짜 많아서 재밌게 봤어요!
중세는 돈을 다루는 직업을 천하게 여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2제자중 하나인 사도 마태오도 원래 직업이 세리였죠ㅋㅋ 구휼을 하거나 예수의 장사를 지내고 제자들이 모이는데 마태의 재력을 유용하게 사용한걸 보면 중세의 교회와 왕이 경제권을 독점하기 위해 돈과 관련된 것들을 더욱 비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세리 = 세금공무원 이긴한데 로마한테 잘보이려면 정당하게 벌어서는 못해먹으니까 뒷돈받아먹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보면 친일매국노같은 이미지였어요. 민족의 반역자같은. 바리새인(율법주의 도덕자 / 예수한테 욕오지게 먹어서 쓰레기집단으로 폄하당하지만 행위적 도덕성에 관해선 예수도 인정해줬고, 이 사람들은 마음이 썩었는데 경건한척한다고 욕먹은거) vs 세리와 창기(원래 이스라엘에선 창기짓하면 쳐죽여야됨. 사형권이 로마에 있어서 못죽이는거지)로 자주 언급되죠. 중세유럽에선 유대민족의 배타성과 고리대금업 때문도 있었구요. 기독교문화권이던 시절에 예수죽인 핏값을 자기네 후손이 지불하겠다던 그 유대인들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므로 종교적으로도 배척받을 수밖에 없고 기독교로 개종하지않는 이상은 받는 처우도 안좋았어요.(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샤일록 딸은 아비와 떨어지기위해 개종함) 거기다 그들의 율법상 자기 형제나 자매한테 높은 이자를 책정해서 강탈하는건 안되지만 동포가 아닌 이민족을 뜯어먹는 건 쌉가능. 그러다보니 사회에 잘 섞이지도 않는데다 고리대금업으로 기존의 국민들 등쳐먹는 유대인들은 박해대상이 되고, 나치시절에는 '우리 우수한 게르만 민족의 땅에 기생해서 게르만 민족들의 등을 쳐먹고 부자가 된 유대인들을 조져야한다'라는 언플로 홀로코스트까지 갔죠.
이지환 그 말의 뜻은 아담이래 재화는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정당성 있게 정직하게 벌어 재산을 축적하고 향유하는 것은 허용되나, 부자가 되는 걸 목표로 재산을 축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자를 목표로 하면 돈 자체를 우상숭배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곧 돈은 선을 위한 선을 행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빈민이 10%의 재산을 더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것 보다, 부자가 10% 기부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지요. 곧 본인이 돈이 많으면 그 돈으로 주변 사람들을 더 크게 도울 수 있기에 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옛날 유럽 동전들 보면 둥글지가 않고 주변이 떨어져 나간 것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당시 동전은 은으로 주조되었는데 동전의 은 가치가 곧 동전 표면에 기록된 화폐 가치였기에 동전 가치를 속이고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얻기위해 사람들이 동전 주변을 깍아내었기 떄문입니다. 이러한 불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동전 같이 동전 주위에 홈을 파는 방식이 도입되어 홈이 없는 동전은 인정을 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동전에 홈을 파는 방식을 고안한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한 "아이작 뉴튼"입니다.
@@historytogether 선생님 제가 아직 sns 계정이 없어서 kebita221103@gmail.com 으로 메일 한번 꼭 부탁드립니다. 스라랑카 콜롬보에 사는 남학생 입니다 주재원 아버지 따라 이곳에 온지 5년차에요. 선생님 영상이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과 소통하고 싶어서 페북계정 배워서 만드려고 해요 감사합니다 꼭 독일에서 뵙고싶어요.
정말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이런걸 볼때마다 한반도가 중근세기간에 상공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해서 물질적 파이를 크게 확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실제 상업의 발달로 유라시아 문명의 밸런스를 뒤엎을 단초를 마련한 유럽이나 아예 스케일이 다른 중국을 제외하더라도 에도시대에 일본이 평화를 누리면서 교역량은 줄어들었어도 시장 파이 자체가 크게 늘어난것과 너무 비교되는것 같습니다
@@greed1s4 사실 화폐 자체를 부정하는게 결코 좋은 답이 될 수 없음에도, 그리고 조선에서도 자체적으로 화폐 도입을 여러번 시도했음에도 전부 실패하고 현물경제를 선택하게 된건 아무래도 한반도 내의 전체적인 물류랑이나 물산이 적어서 아니었나... 싶습니다. 현지에서 생산하고 현지에서 소비하는게 대부분이다 보니 물류가 돌 필요성이 적어지고, 때문에 지불수단의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지요. 대외무역에 극히 폐쇄적이었던 조선의 정책도 한몫 했을테고요 실제로 현대에 들어서도 나라가 망하면 국가의 지불능력이 없는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는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현대사회에선 거래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대체재를 찾기 마련이죠
상파뉴 트루아갔었는데 구도심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편도 30분걸으면 충분한 면적인데 그 안에 12세기에 지어진 온갖나라 양식의 성당이 다있더라고요. 왠만큼 규모가 큰 성당이 무슨 걸어서 5분간격으로 있음.. 주교좌성당도 있고요. 중세에 대형시장이 열려서 유럽온나라에서 다 모여서 그렇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그때생각나면서 넘 재밌네여
세계사 탑.. 독일의 사학은 면학, 학습 열정 등 분위기가 어떤가요? 제 생각에 한국은 20대 중반이후 역사란 그저 시험에 붙기위한 한국사 공부정도 뿐이고, 딱히 사학에 대한 기초학문적 열정은 떨어지는 듯 합니다... 독일은 사학에 대한 시선이나 관심이 과학만큼의 위상이 있는지 조금 궁금하네요 ㅎ
산업의 기초자원인 석탄이 많이 나왔고 양모를 통한 직물이 영국의 주 수출원이였기 때문임, 석탄광산의 물을 퍼내기 위해 증기펌프가 생기고, 수공업이던 직물의 생산성을 극대화 시키기위해서 방직기가 만들어짐 그에 비해 대륙쪽 유럽국가들은 천연자원이나 아직 기초산업으로는 양산할수없는 것들을 팔았기에 스타트가 비교적 느렸음
영국은 16세기 칼레해전에서 해적을 동원해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승리한 후 해상주도권을 잡습니다.스페인은 이후에도 한동안 군사 강대국으로 남았지만, 30년 전쟁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쇠락합니다. 그런데 영국은 스페인과 전쟁 중 자금 조달을 위해 '동인도 회사' 등 주식 회사를 세우고 식민지를 개척하여 해양 강국이 됩니다. 이 당시 영국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가 대다수 나왔습니다. 따라서, 시작은 유럽의 '한자무역'이였지만, 나중에 영국이 주도권을 잡아 결국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했지요.
@@왕세자입학도덕후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어날수밖에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단 우리가 쓰는 모든 생필품 가격이 아득히 넘어간다 보시면 될듯함. 예를 들어 수제 직물은 하나 만드는데 몇주가 걸릴일을 산업시대 방직기로는 몇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몇몇 물품은 서민들은 꿈도 못꿀거임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보면 '악독한 베니스의 상인' 상인 샤일록은 잘못한게 전혀 없습니다. 되려 주인공과 주변 등장인물들이 샤일록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하고 차별하는데 심지어 샤일록 면전에 대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 속 서술로는 샤일록이 못된 인물인 것처럼 묘사되고 안토니오는 억울한 사고로 빚을 못갚게 된 불쌍한 인물로 묘사되죠. 이건 당시 유대인 고리대에 대한 대중들의 민심을 생각하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그 유대인이 고리대를 하는 유대인이라면 정황이 어떻든 악인으로 낙인 찍혔던 것 같습니다.(작품 속 억울한 사람은 오히려 샤일록임에도) 애초에 희극(코미디)이니 작품 속의 모든 상황을 이성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것 맞습니다만 악덕 고리대 업자인 유대인이 유쾌한 반격을 당하는 것 자체에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희열을 느꼈는지에 대한 상상을 해보게 합니다.
오늘 이상하게 '베니스의 상인 ' 집필 목적 또는 집필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빙빙 돌더군요^^ 그러다 좀전에 '삼국지' 영상 하나가 올라오길래 클릭해보니 '오나라 멸망 과정'을 설명하네요. 뭐 별로 관심도 없는 내용이라 그만 나가려는데 대뜸 "이 내용을 나관중은 '촉빠라서' 생략했지만 정사를 쓴 진수는 '오나라 깎아내리기'에 좋은 내용이라 자세히 기록했다"는 멘트를 듣는 순간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오더군요. 유레카! ^^ "'베니스의 상인' 집필의도는, 구교 즉 가톨릭과 교황을 깎아내리기 좋은 그 사건을 환기시키려는 게 집필의도였구나!" 십자군 4차 전쟁은 베니스(베네치아)상인들의 배로 십자군 전쟁을 하기로 했는데 교황이 돈이 없어 출발을 못하게 되자, 베니스 공국 및 상인들과 교황이 협잡하여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을 침공ㆍ약탈하고 돌아온 어처구니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고, 십자군 전쟁은 물론 가톨릭 2천년사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영국은 헨리8세 때 이혼 사건으로 가톨릭을 탈퇴하고, 왕이 수장이 되는 인류역사상 독특한 종교인 '성공회'가 생겼습니다. 굳이 여기서 이후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영국이 치른 댓가를 열거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 헨리 8세를 따른 셈인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사실상 종교전쟁인 스페인 무적함대와 격돌하는 대모험을 겪었고 그 전비조달에 왕실 재정을 쏟아 부어 엘~1세 여왕(이하, 여왕)은 말년 10년 정도 고초가 컸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이 전비에 대해 의회도 신경쓰지 않았고, 외부 위험도 줄자 국민들도 나태해지고 거기다 농사도 흉년이 들어 민심도 꽤 흉흉했다네요. 베니스의 상인은 1596년경 집필 되고 1598년 출판등록후 발매되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1598년은 여왕이 65세였고, 여왕의 건강도 안 좋아 후계 문제가 나돌기 시작한 시기라는 게, 제가 알아냈습니다 ^^ 왕위후계 1순위인 스코틀랜드왕은 여왕이 처형한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인데다 메리 스튜어트가 독실한 가톨릭이고 외가인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라서, 스코틀랜드왕은 개인적으로 '신교' 신자이긴 하지만 여왕이 죽고나면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스코틀랸드 왕을 후계로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시기입니다^^ 여왕은 사후에라도 종교문제로 나라가 또 혼란에 빠지고(언니 '메리 여왕' 처럼), 살육전이 일어나는 것도 원치 않은 면도 있지만,, 불가역적으로 대못을 박아버릴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베이컨은 고대 희랍 때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왕' 신화를 조작하여 그 극을 그리스 도시국가 전역을 순회공연함으로써 전 그리스가 테베를 응징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 계책을 펴서 결국 아테네 장군이 테베 왕위를 빼앗아 버렸던 사례를 진언했다고 추정됩니다. 그래, 가톨릭 구교 전체 및 교황 입장에선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사, 4차 십자군 전쟁 때 베니스 상인들과 교황이 협잡하여 벌인 비잔틴 제국 약탈을 너무 '티나지 않게' 수위 조절도 하고 재미있게 이것저것 양념도 잘 섞고 버무려 제목은 '베니스상인'으로 고도의 알례고리 기법으로 풀어낸 게 베니스의 상인 작품이라 보여집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진짜 이름은 프란시스 베이컨이었을 거라 확신하는 것입니다 ^^ '극장 보이' 내지 '단역 배우'였던, 명의만 빌려주었을 법한 셰익스피어는 명의대여 값으로 상영 수익의 30%를, 베이컨이 수익의 70%를 먹는 구도였으리란 추정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왕은 어렸던 베이컨을 보고 (마치 세종이 김시습을 보고 신동이라 칭찬했다는 전설처럼) "미래의 옥새장관(재상)"이라 불렀지만 막상 베이컨은 여왕 치세 때 벼슬은 별로였었습니다. 그럼 이젠 그 비밀이 풀리는거죠. 베이컨은 여왕의 비밀 제갈공명 역할, 즉 이런 작품을 써서 상영하여 여론을 떠보기도 하고 여론을 조작하기도 하는 등 특수임무를 맡았던 듯 보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고위직을 주지 않고 표적이 되는 걸 막아 주었고, 봉급 대신 극장수익금 70%를 챙겨 가도록 눈을 감아주었다고 추정됩니다. 여왕 치세 때,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란 필명으로 작품을 써서 공연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공론화 되지는 못 했고 그게 베이컨이 고위공직자도 아니어서 조사에 들어갈 수도 없어 그냥 오늘날까지도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인지 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베니스의 상인' 작품은, 엘~ 여왕이 죽기 전에(65세때) 또 후계를 정하기(70세 임종때) 전에 누가 후계가 되더라도 영국이 가톨릭 국가로 되돌아 가는 게 불가역적이게 대못을 박아버릴 목적으로 그 불씨조차 꺼버릴 목적으로 비밀 요원 격인 베이컨을 시켜 집필케 한 '신의 한 수'였음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아마 당시까지도 '베니스의 상인'이란 말만 들먹여도 유럽 전역에선 십자군 4차 전쟁의 그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금기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치가 떨리게 하는 표현이었을 겁니다(조선시대 후기 내내 '남한산성', '삼전도' 란 말 자체가 병자호란 항복을 떠올리게 하여 금기시했던 것과 같은 논리인 게죠). 아예 교황까지 언급했더라면 역효과만 났을 겁니다. 화형을 각오하고 구교 가톨릭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왕은 종교엔 중도적 정책을 견지했는데 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어찌 될 지 불안불안 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베니스의 상인'은 그 등록 출판 연대가 분명한데요, 추정컨대 1596년에 집필하고 극장에서 상영했을 테고 2년 정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작품 마냥 전국 순회공연을 하여 '가톨릭 및 교황 깎아내리기'가 나름 성공했다는 심사평가를 거쳐 '금속활자 인쇄술'을 이용해 국비를 투입해 대량 출판해서 전국에 배포하고, "영국에선 가톨릭이 사이비"라고 선언한 정치적 효과를 기획한 정황으로 보여집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세익스피어 작품들은 100% 이런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햄릿'으로 스코틀랜드 왕이 여왕의 뒤를 이어 1603년 제임스1세로 등극하고, 마치 조선 중종 때 조광조 출세를 연상시키듯 베이컨은 바로 재상격인 옥새장관에 임명되고, 단역배우이던, 시골 초딩도 졸업 못 했다고 전해지는 셰익스피어는 일약 왕립극장을 짓자마자 극장주가 되어 평생 재직하게 되거든요~😍😍
1. 정치와 돈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2. 기업의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사회적 활동이 있어야 한다
3. 마켓의 발달로 인해 수많은 화폐의 교환이 생겨났다
4. 초기 형태의 은행이 생겨났다
5. 돈이 모이는 곳엔 반드시 사기가 발생한다
우와.. 중세 상인의 역사와 금용 언어의 어원까지 설명해주다니 이 채널 너무 유익하자너
학교 다닐 때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르네상스였지만 .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시기는 중세였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중세에 대한 좋은 책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었는데요..
마녀사냥 영상도 그렇고 중세에 대해 조금씩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제노바에서 식품을 수입해서 제노바에 많이 가봤는데 정말 중세상인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더라구요. 당시 항구며 또 최초 organized bank 가 제노바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하면 다들 베네치아 밀라노만 생각하시는데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코로나 이후 제노바도 꼭 가보시길!
와... 중세 상업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어떻게 찾아봐야할 줄 몰라서 손 놓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라는 책을 보시면 상당히 흥미로울겁니다.
너무 깔끔하게 잘 정리된 내용! 시간순삭이었습니다 ㄷㄷ 중세 상업이 르네상스를 거쳐서 주식회사 등이 등장하는 과정도 언젠가 다뤄 주시나용??!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오잉? 루피형...
아니 이런 고퀄리티 영상을 또 올려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풀이해서 영상으로 만들어 주시기까지.. 은행의 어원을 덕분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알림 뜨자마자 바로 정독...
와. 오늘도 재미 만빵입니다. 유익하네요. 이 채널 처음부터 보기만 하고 어디가서 한 마디하면 역사전문가 소리들을 듯. 항상 고맙습니다 ~~
정말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잘 보고있어요
정말 재미나게 잘 보고 있어요
중세 정말 미스테리한 시대인데 이렇게 베일을 벗겨주시니 넘 유익해요!!👍
항상 목소리도 좋으시고 영상도 재미있어요.
너무 유익하고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더 올려주세요~
제가 정말 애정하는 채널이에요~!! 오래오래 영상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베니스의 상인 시대 배경의 유대인은 당시 토지 소유권이 없었으며, 길드에도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구약의 해석에서 같은 민족이 아니면 얼마든지 고리대금업을 해도 된다고 해석하였기에,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기독교인은 고리대금업을 할 경우 파문까지 당했지요. 그래서 은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4세기 베니스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은행을 의미하는 단어인 ‘Bank’는 유대인들이 탁자를 놓고 업무를 했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지요. 그런데 요즘도 고리대금업자가 사회적으로 지탄 받기에, 당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는 자의던 아니던 비난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이였지요.
당시 피렌체에도 기독교 고리대금업자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주로 외국왕실과 국제적 사업에만 돈을 빌려주어 파문을 피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14세기 후반 피렌체 가문의 가톨릭 신자 ‘코시모 데 메디치’가 유대인을 피렌체로 데려와 은행을 열어 서민에게 환전과 고리대금업을 하였고, 이로 축적한 부로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 예술가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과학자를 후원 하여 르네상스의 선구자가 됩니다.
와 이 형 '한자동맹'읽을 때 [한짜]라고 안하고 [한자]라고 발음하는거 보고 찐이다 라고 느꼈다 진짜... 전공한 사람들만 아는 그런 건데 형 진짜 잘보고있어요ㅎㅎ
이 '형'님 독일어 발음이 완전 찰져요. 다른 영상에서도 확인해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
ㅋㅋ 어릴때 한짜동맹 처음 들었을때 왜 유럽에서 쭝국어를 쓰지 그랬었는데..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ㅎㅎ
재미난 이야기 감사합니다~~^^
넘나 유익해서 계속 집중해서 봄
이젠 더 못참겟다 구독해야겟다..
제가 궁금해하는 부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광고시청으로 고마움을 대신합니다 ♡
와 이번꺼 진짜 재밌게 봤어요.
한자동맹 왜 중요하게 다루는지 몰랐는데 그당시의 초다국적기업의 개념이 어느정도 들어있네요. 상인들이 각 지역의 부족한 물자들을 유통한다는 개념도 저때 나타났군요. 그 당시에 화폐가 저렇게 많았다면 금본위제가 나타났을 수밖에 없었겠구요. 그 당시 본능적으로 뛰어난 상인들은 fx 거래로 돈 많이 모았겠는데요 환율 변화는 늘 급격하니. 사실 베니스의 상인도 선악적으로 접근하기 그런게 신용도 낮은 부실채권은 이자가 높을 수밖에 없잖아요. 채권 및 원금조차 못받을 만한 가능성이 있으니 이자를 많이 받아내니까(물론 제한없는 대부업의 살인적 이자는 철퇴를 맞아야만 합니다만).
아무튼 생각할 거리가 진짜 많아서 재밌게 봤어요!
선좋아요 댓글 후 감상ㅎㅎㅎ
너무 재밌습니다!!!
이야ㅋㅋㅋ 일목요연하게 중세상업의 발달과 은행의 등장까지 정리해주시니 이건 뭐 공중파보다 낫네요 항상 감사드리고 응원합니다
중세 이탈리아는 동시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금융업과 상업이 발전 되어 있었던 나라죠.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항상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전공이 역사였지만 유럽은 근세 이후만 공부해서 그 이전은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는데
이 채널을 통해 재미있게 배우고 있습니다..
조만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잘 정리해서 관련 영상을 요청하고 싶어요
진짜 편집깔끔하고 인상적이네
와 내용의 완성도도 너무 좋은데 영상이나 편집도 과하지않아서 너무 좋습니다. 너무 유익해요..
와... 너무 유익해...
오... 뜨자마자 바로 봐요 ෆ╹ .̮ ╹ෆ
최근에 우연히 영상 뜨는거보고 구독 눌렀습니다. 이전 영상까지 챙겨봤는데 설명이 너무 듣기가 좋습니다! 좋음 영상 항상 감사드립니다.
역사 조아해요
중세 암흑기는 말그대로 그냥 암흑기인줄 알았는데 오늘날과 비슷하게 흘러가는걸 알게 되었네요 ㅎㅎ
항상 영상 재밌게 시청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요즘도 암흑긴거죠 머..
저 때는 암흑기라기 보다 르네상스 초기 시대임. 뭐 암흑기라고 해봤자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미개한 시대는 아니었지만요. 로마가 이뤘던 찬란한 문명에 너무나 대비 됐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의 문명과 문화를 일궜음에도 암흑기라는 이미지가 강했죠.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D
확실히 마이너하고 학문적인 주제라 그런지 잼민이들도 없고 댓들이 깔ㅡ끔
대신 조회수가 지옥으로 가버림..
요새 너무 잘보고있습니다 구독
오늘도 정말 재밌는 영상 보고 갑니다. '문명' 게임을 할 때 은행업을 기술 생각도 나고요. ^^
언제나 특유의 재밌는 캐릭터와 술술 풀어 설명해주시는 영상, 정말 좋습니다~ ^^
이리도 유의할 수가
은행과 파산의 어원에서 무릎을 탁 쳤읍니다.....
저는 랄부를 탁쳤읍니다
중세는 돈을 다루는 직업을 천하게 여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2제자중 하나인 사도 마태오도 원래 직업이 세리였죠ㅋㅋ
구휼을 하거나 예수의 장사를 지내고 제자들이 모이는데 마태의 재력을 유용하게 사용한걸 보면 중세의 교회와 왕이 경제권을 독점하기 위해 돈과 관련된 것들을 더욱 비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세리는 유대인로 부터 세금을 받아 로마에 바쳤기에 ‘배신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천시 받는 직업 이었지요.
@@gypgoodandtruth6783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세리 = 세금공무원
이긴한데 로마한테 잘보이려면 정당하게 벌어서는 못해먹으니까 뒷돈받아먹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보면 친일매국노같은 이미지였어요. 민족의 반역자같은. 바리새인(율법주의 도덕자 / 예수한테 욕오지게 먹어서 쓰레기집단으로 폄하당하지만 행위적 도덕성에 관해선 예수도 인정해줬고, 이 사람들은 마음이 썩었는데 경건한척한다고 욕먹은거) vs 세리와 창기(원래 이스라엘에선 창기짓하면 쳐죽여야됨. 사형권이 로마에 있어서 못죽이는거지)로 자주 언급되죠.
중세유럽에선 유대민족의 배타성과 고리대금업 때문도 있었구요.
기독교문화권이던 시절에 예수죽인 핏값을 자기네 후손이 지불하겠다던 그 유대인들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므로 종교적으로도 배척받을 수밖에 없고 기독교로 개종하지않는 이상은 받는 처우도 안좋았어요.(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샤일록 딸은 아비와 떨어지기위해 개종함) 거기다 그들의 율법상 자기 형제나 자매한테 높은 이자를 책정해서 강탈하는건 안되지만 동포가 아닌 이민족을 뜯어먹는 건 쌉가능.
그러다보니 사회에 잘 섞이지도 않는데다 고리대금업으로 기존의 국민들 등쳐먹는 유대인들은 박해대상이 되고, 나치시절에는 '우리 우수한 게르만 민족의 땅에 기생해서 게르만 민족들의 등을 쳐먹고 부자가 된 유대인들을 조져야한다'라는 언플로 홀로코스트까지 갔죠.
성 마태오는 재산을 적절하고 정직하게 관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세속적이며 죄라고도 이야기해 도덕적 모순의 수수께끼를 남기죠.
오늘날도 여전히 모호하죠, 부를 추구하는 단순한 물질적인 삶을 영위하는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지환 그 말의 뜻은 아담이래 재화는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정당성 있게 정직하게 벌어 재산을 축적하고 향유하는 것은 허용되나, 부자가 되는 걸 목표로 재산을 축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자를 목표로 하면 돈 자체를 우상숭배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곧 돈은 선을 위한 선을 행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빈민이 10%의 재산을 더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것 보다, 부자가 10% 기부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지요. 곧 본인이 돈이 많으면 그 돈으로 주변 사람들을 더 크게 도울 수 있기에 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중세 얘기 더 많이 들려주세요~👍🏻!! 알면 알수록 중독적인 중세 생활들 재밌어요.
이야 진짜 잘 만드셨다.
내용도 좋고 영상도 잘 만드셨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옛날 유럽 동전들 보면 둥글지가 않고 주변이 떨어져 나간 것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당시 동전은 은으로 주조되었는데 동전의 은 가치가 곧 동전 표면에 기록된 화폐 가치였기에
동전 가치를 속이고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얻기위해 사람들이 동전 주변을 깍아내었기 떄문입니다.
이러한 불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동전 같이 동전 주위에 홈을 파는 방식이 도입되어
홈이 없는 동전은 인정을 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동전에 홈을 파는 방식을 고안한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한 "아이작 뉴튼"입니다.
유투브보면서 가장 질 좋은 지식채널이네요.
진짜 찐으로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볼수록 나만 알고싶은 채널이네요,,
유럽 중세사회경제사를 초심자도 알수 있게 잘 적어서 좋네요. 수업 때 활용하기도 좋아요.
그래서 조상들을 모독했다고 생각한 이스라엘은 베니스의 상인을 상연 금지시켰습니다
비슷한 예로 태국이 영화 왕과 나 상영을 금지시켰고
디즈니 뮬란이 나왔을 때 몽골과 터키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죠
@한년충박멸韓女蟲撲滅 터키도 흉노를 조상으로 여기고 있거든요
모든 영상이 다 흥미로워요. 잘 보고 있어요^^
상인들이 크게 활약하지 못했던 초기 중세에는 수도원이 생산업과 상업을 주도했음 와인, 치즈, 서적, 밀랍등 생필품 및 가공품이 수도원에서 생산됨
이정도 퀄리티에 쉽게 풀어 설명해 주시는게 쉽지 않을텐데...
늘 감사히 보고있습니다
캐릭터들 넘 귀엽고 영상 내용도 유익해서 넘 좋아요💖
정말재밌네요!! 추천영상 뜰때마다 피할수가 없어요 ㅋㅋㅋ 프랑스어 banc 와 banque의 발음은 유사하지 않고 아예 같습니다 ㅎㅎ 어휘를 헷갈리게도 만들었다생각했는데 같은 어원이라서 그런거였다니 넘나신기
그렇군요. 이제 베니스의 상인을 보여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만 그런 줄 영상 끝나는 내내 그래서 베니스 상인은?? 하면서 봤어요..ㅎㅎ
bank가 저런뜻인지는 몰랐네요... 오호....
선생님 ^^
해외에서 국제학교 중1학생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독어와 역사에요.
선생님은 독어를 언제부터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댓글로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라, 채널 정보란에 나와있는 메일 주소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istorytogether 선생님 제가 아직 sns 계정이 없어서 kebita221103@gmail.com 으로 메일 한번 꼭 부탁드립니다. 스라랑카 콜롬보에 사는 남학생 입니다
주재원 아버지 따라 이곳에 온지 5년차에요.
선생님 영상이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과 소통하고 싶어서 페북계정 배워서 만드려고 해요 감사합니다
꼭 독일에서 뵙고싶어요.
Bank 와 bankruptcy 의 어원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네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유익한 영상입니다.^^
정말 많이 배웁니다
오.. 도제님..
오늘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영상중 에니메이션 효과도 직접 작업하시나요? 스크립트 준비하시느라 바쁘실텐데 수고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애니메이션 작업도 직접하고 있습니다!
정말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이런걸 볼때마다 한반도가 중근세기간에 상공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해서 물질적 파이를 크게 확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실제 상업의 발달로 유라시아 문명의 밸런스를 뒤엎을 단초를 마련한 유럽이나 아예 스케일이 다른 중국을 제외하더라도 에도시대에 일본이 평화를 누리면서 교역량은 줄어들었어도 시장 파이 자체가 크게 늘어난것과 너무 비교되는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여말선초에 원나라가 붕괴하면서 당시 원나라가 보증하는 화폐인 교초가 휴지조각이되었고 그로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커서 화폐에 극히 부정적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쌀과 면포같은 현물로 거래를 하게되었죠
@@greed1s4
사실 화폐 자체를 부정하는게 결코 좋은 답이 될 수 없음에도, 그리고 조선에서도 자체적으로 화폐 도입을 여러번 시도했음에도 전부 실패하고 현물경제를 선택하게 된건 아무래도 한반도 내의 전체적인 물류랑이나 물산이 적어서 아니었나... 싶습니다. 현지에서 생산하고 현지에서 소비하는게 대부분이다 보니 물류가 돌 필요성이 적어지고, 때문에 지불수단의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지요. 대외무역에 극히 폐쇄적이었던 조선의 정책도 한몫 했을테고요
실제로 현대에 들어서도 나라가 망하면 국가의 지불능력이 없는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는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현대사회에선 거래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대체재를 찾기 마련이죠
@@999masijjyeong 결국 후반부에 시장이 확대돼고, 어음같은 금융거래도 활발해졌지만..
???: 똑똑
조선: 누구세요?
제국주의: 나요.
...안습
좋은 채널이 알고리즘으로 걸렸냉 구독 박아서 혼내줘야지
유럽이 하나의 통일국가가 아니고, 분권시대라서 다양성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그래서 더 시간은 걸렸지만 조금씩 발전(?)이라는 것을 한 것 같네요.
그런데 중세의 정확한 경계가 언제인가요?
그렇니까 대략 몇 세기부터 몇 세기까지 중세라고 칭할 수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일반적으로는 6세기부터 15세기 정도를 중세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시대구분은 학자마다 관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관점마다 가지각색이지민 보통은 서로마 멸망인 476~비잔티움 멸망인 1453을 중세로 잡음. 거의 1000년의 기간이라 중세를 초기-중기-말기로 나눠서 보기도 함
은행과 벤치가 같은 어원을 가지고있었다니 정말 재밌네요!
선생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중에 뭐가 제일 소통하기 쉬운세요?
저도 만들어서 선생님과 소통해보고 싶어요
꼭 부탁드려요 알려주세요
사실 이 폰도 엄마것이에요
아무튼 훌륭한 영상 감사합니다
시간이 신의 소유물이라는 내용 왜 그랬던 건가요???
세상에 너무 재밋자너?
근데 배네치아 상인은 악독햇나요? ㅎㅎ
실리를 생각하고 돈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지금은 당연한거지만 당시에는 생소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욕심쟁이 취급을 받은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셰익스피에 본인이
유대인을 만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샤일록의 경우
'유대인이니깐 악독 할거다'
그런 편견하나만으로
탄생시킨 거죠;;;
너무 재밌네용ㅎㅎ
상파뉴 트루아갔었는데 구도심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편도 30분걸으면 충분한 면적인데 그 안에 12세기에 지어진 온갖나라 양식의 성당이 다있더라고요. 왠만큼 규모가 큰 성당이 무슨 걸어서 5분간격으로 있음.. 주교좌성당도 있고요. 중세에 대형시장이 열려서 유럽온나라에서 다 모여서 그렇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그때생각나면서 넘 재밌네여
이제 은행이 생겼으니 항해도 나오겠네요 그러면서 보험이 생긴 이유도 나오고
막상 베니스의 상인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안 나와서 아쉽네요..
베네치아의 십자군 4차 원정처럼 노답짓거리 한 것들 소개해주나 했는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옛날사람들은 1년이 지나가는걸 어떻게 알았나요?
재밌네 ㅎㅎ
아 중세상인 자본주의 근간이되는 내용 더 해주세요 재미있네요 벤치 ㅡ뱅크가 되었다는거 굿
bancarotta가 bankruptcy랑 연관되었다는거 상상도 못했다... 감사합니다
애정하는 채널입니다. 내용도 좋고, 영상도 정성들여서 너무 잘 만드시는데, 나레이션이 좀 우울한 느낌이예요. 조금만 더 밝고 힘있게 해주시면 훨씬 더 보기 좋을것 같습니다. 채널의 확장성에도 도움이 될 것 같구요.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업할때 어떤 프로그램을 쓰시나요?
안녕하세요. 파이널 컷 프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이런건 대체 어디서 아시는건가유?
재미있고 너무 유익한데, 조금만 주제에 집중했음 좋겠다..
역사 영상에서 영어공부까지 시켜주네...
세계사 탑.. 독일의 사학은 면학, 학습 열정 등 분위기가 어떤가요? 제 생각에 한국은 20대 중반이후 역사란 그저 시험에 붙기위한 한국사 공부정도 뿐이고, 딱히 사학에 대한 기초학문적 열정은 떨어지는 듯 합니다... 독일은 사학에 대한 시선이나 관심이 과학만큼의 위상이 있는지 조금 궁금하네요 ㅎ
뭔가 대항해시대가 생각나네요 ㅎㅎ
12세기 중세 유럽에서는 상업이 발달했는데, 왜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했을까?
산업의 기초자원인 석탄이 많이 나왔고 양모를 통한 직물이 영국의 주 수출원이였기 때문임, 석탄광산의 물을 퍼내기 위해 증기펌프가 생기고, 수공업이던 직물의 생산성을 극대화 시키기위해서 방직기가 만들어짐 그에 비해 대륙쪽 유럽국가들은 천연자원이나 아직 기초산업으로는 양산할수없는 것들을 팔았기에 스타트가 비교적 느렸음
영국은 16세기 칼레해전에서 해적을 동원해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승리한 후 해상주도권을 잡습니다.스페인은 이후에도 한동안 군사 강대국으로 남았지만, 30년 전쟁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쇠락합니다. 그런데 영국은 스페인과 전쟁 중 자금 조달을 위해 '동인도 회사' 등 주식 회사를 세우고 식민지를 개척하여 해양 강국이 됩니다. 이 당시 영국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가 대다수 나왔습니다. 따라서, 시작은 유럽의 '한자무역'이였지만, 나중에 영국이 주도권을 잡아 결국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했지요.
@@김혜성-c6f 님 만약에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왕세자입학도덕후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어날수밖에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단 우리가 쓰는 모든 생필품 가격이 아득히 넘어간다 보시면 될듯함. 예를 들어 수제 직물은 하나 만드는데 몇주가 걸릴일을 산업시대 방직기로는 몇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몇몇 물품은 서민들은 꿈도 못꿀거임
@@김혜성-c6f 님 만약에 산업혁명이 서유럽의 영국이 아닌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0:38 프랑스가 뭔가 좀 비좁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중세여서 그런거군요
오늘도 보다가 기절해버렸다...
은행의 기원은 조금더 빠르지 않을까요?(템플 기사단)
아 귀여워.... 어원이나 단어의 기원을 찾을때 난 너무 재밌더라 ~
이슬람교에서도 이자를 받는걸 금하는데 유사한거 같아요.이자대신 지분 투자하고 그 지분만큼 이익을 걷어가는건 허용하지만
꿀잼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보면 '악독한 베니스의 상인' 상인 샤일록은 잘못한게 전혀 없습니다.
되려 주인공과 주변 등장인물들이 샤일록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하고 차별하는데 심지어 샤일록 면전에 대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 속 서술로는 샤일록이 못된 인물인 것처럼 묘사되고 안토니오는 억울한 사고로 빚을 못갚게 된 불쌍한 인물로 묘사되죠.
이건 당시 유대인 고리대에 대한 대중들의 민심을 생각하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그 유대인이 고리대를 하는 유대인이라면 정황이 어떻든 악인으로 낙인 찍혔던 것 같습니다.(작품 속 억울한 사람은 오히려 샤일록임에도)
애초에 희극(코미디)이니 작품 속의 모든 상황을 이성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것 맞습니다만 악덕 고리대 업자인 유대인이 유쾌한 반격을 당하는 것 자체에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희열을 느꼈는지에 대한 상상을 해보게 합니다.
오늘 이상하게 '베니스의 상인 ' 집필 목적 또는 집필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빙빙 돌더군요^^
그러다 좀전에 '삼국지' 영상 하나가 올라오길래 클릭해보니 '오나라 멸망 과정'을 설명하네요. 뭐 별로 관심도 없는 내용이라 그만 나가려는데 대뜸 "이 내용을 나관중은 '촉빠라서' 생략했지만 정사를 쓴 진수는 '오나라 깎아내리기'에 좋은 내용이라 자세히 기록했다"는 멘트를 듣는 순간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오더군요. 유레카! ^^
"'베니스의 상인' 집필의도는, 구교 즉 가톨릭과 교황을 깎아내리기 좋은 그 사건을 환기시키려는 게 집필의도였구나!"
십자군 4차 전쟁은 베니스(베네치아)상인들의 배로 십자군 전쟁을 하기로 했는데 교황이 돈이 없어 출발을 못하게 되자, 베니스 공국 및 상인들과 교황이 협잡하여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을 침공ㆍ약탈하고 돌아온 어처구니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고, 십자군 전쟁은 물론 가톨릭 2천년사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영국은 헨리8세 때 이혼 사건으로 가톨릭을 탈퇴하고, 왕이 수장이 되는 인류역사상 독특한 종교인 '성공회'가 생겼습니다. 굳이 여기서 이후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영국이 치른 댓가를 열거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 헨리 8세를 따른 셈인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사실상 종교전쟁인 스페인 무적함대와 격돌하는 대모험을 겪었고 그 전비조달에 왕실 재정을 쏟아 부어 엘~1세 여왕(이하, 여왕)은 말년 10년 정도 고초가 컸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이 전비에 대해 의회도 신경쓰지 않았고, 외부 위험도 줄자 국민들도 나태해지고 거기다 농사도 흉년이 들어 민심도 꽤 흉흉했다네요.
베니스의 상인은 1596년경 집필 되고 1598년 출판등록후 발매되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1598년은 여왕이 65세였고, 여왕의 건강도 안 좋아 후계 문제가 나돌기 시작한 시기라는 게, 제가 알아냈습니다 ^^
왕위후계 1순위인 스코틀랜드왕은 여왕이 처형한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인데다 메리 스튜어트가 독실한 가톨릭이고 외가인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라서, 스코틀랜드왕은 개인적으로 '신교' 신자이긴 하지만 여왕이 죽고나면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스코틀랸드 왕을 후계로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시기입니다^^
여왕은 사후에라도 종교문제로 나라가 또 혼란에 빠지고(언니 '메리 여왕' 처럼), 살육전이 일어나는 것도 원치 않은 면도 있지만,, 불가역적으로 대못을 박아버릴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베이컨은 고대 희랍 때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왕' 신화를 조작하여 그 극을 그리스 도시국가 전역을 순회공연함으로써 전 그리스가 테베를 응징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 계책을 펴서 결국 아테네 장군이 테베 왕위를 빼앗아 버렸던 사례를 진언했다고 추정됩니다.
그래, 가톨릭 구교 전체 및 교황 입장에선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사, 4차 십자군 전쟁 때 베니스 상인들과 교황이 협잡하여 벌인 비잔틴 제국 약탈을 너무 '티나지 않게' 수위 조절도 하고 재미있게 이것저것 양념도 잘 섞고 버무려 제목은 '베니스상인'으로 고도의 알례고리 기법으로 풀어낸 게 베니스의 상인 작품이라 보여집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진짜 이름은 프란시스 베이컨이었을 거라 확신하는 것입니다 ^^
'극장 보이' 내지 '단역 배우'였던, 명의만 빌려주었을 법한 셰익스피어는 명의대여 값으로 상영 수익의 30%를, 베이컨이 수익의 70%를 먹는 구도였으리란 추정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왕은 어렸던 베이컨을 보고 (마치 세종이 김시습을 보고 신동이라 칭찬했다는 전설처럼) "미래의 옥새장관(재상)"이라 불렀지만 막상 베이컨은 여왕 치세 때 벼슬은 별로였었습니다. 그럼 이젠 그 비밀이 풀리는거죠.
베이컨은 여왕의 비밀 제갈공명 역할, 즉 이런 작품을 써서 상영하여 여론을 떠보기도 하고 여론을 조작하기도 하는 등 특수임무를 맡았던 듯 보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고위직을 주지 않고 표적이 되는 걸 막아 주었고, 봉급 대신 극장수익금 70%를 챙겨 가도록 눈을 감아주었다고 추정됩니다.
여왕 치세 때,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란 필명으로 작품을 써서 공연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공론화 되지는 못 했고 그게 베이컨이 고위공직자도 아니어서 조사에 들어갈 수도 없어 그냥 오늘날까지도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인지 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베니스의 상인' 작품은, 엘~ 여왕이 죽기 전에(65세때) 또 후계를 정하기(70세 임종때) 전에 누가 후계가 되더라도 영국이 가톨릭 국가로 되돌아 가는 게 불가역적이게 대못을 박아버릴 목적으로 그 불씨조차 꺼버릴 목적으로 비밀 요원 격인 베이컨을 시켜 집필케 한 '신의 한 수'였음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아마 당시까지도 '베니스의 상인'이란 말만 들먹여도 유럽 전역에선 십자군 4차 전쟁의 그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금기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치가 떨리게 하는 표현이었을 겁니다(조선시대 후기 내내 '남한산성', '삼전도' 란 말 자체가 병자호란 항복을 떠올리게 하여 금기시했던 것과 같은 논리인 게죠).
아예 교황까지 언급했더라면 역효과만 났을 겁니다. 화형을 각오하고 구교 가톨릭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왕은 종교엔 중도적 정책을 견지했는데 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어찌 될 지 불안불안 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베니스의 상인'은 그 등록 출판 연대가 분명한데요, 추정컨대 1596년에 집필하고 극장에서 상영했을 테고 2년 정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작품 마냥 전국 순회공연을 하여 '가톨릭 및 교황 깎아내리기'가 나름 성공했다는 심사평가를 거쳐 '금속활자 인쇄술'을 이용해 국비를 투입해 대량 출판해서 전국에 배포하고, "영국에선 가톨릭이 사이비"라고 선언한 정치적 효과를 기획한 정황으로 보여집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세익스피어 작품들은 100% 이런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햄릿'으로 스코틀랜드 왕이 여왕의 뒤를 이어 1603년 제임스1세로 등극하고, 마치 조선 중종 때 조광조 출세를 연상시키듯 베이컨은 바로 재상격인 옥새장관에 임명되고, 단역배우이던, 시골 초딩도 졸업 못 했다고 전해지는 셰익스피어는 일약 왕립극장을 짓자마자 극장주가 되어 평생 재직하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