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자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구글맵, 번역기 돌리고 문제상황 생기면 인터넷으로 서칭하고 전화하면 되는데 저 당시엔 전화도 못하고, 지금은 잘 사지도 않는 그 흔한 여행책자 하나도 구하기 힘들었을텐데요. 정말 배낭과 자기 자신만 짊어지고 모험심 하나로 간걸텐데 대단한거 맞습니다.
@@제리-v1r 저는 어려서 아빠가 해외나가서 1년에 한번씩 오시고 국제전화도 너무 비싸서 한달에 한번. 전화받으면 너무 슬퍼서 목이메여서 말을 못했어요.그땐 그런게 당연한것인줄 알았는데.ㅠㅠ 비디오가 어디있어요. 그냥 카세트테잎에 우리 목소리 녹음해서 보내드리고, 아빠는 일년에 한번 오실때 정말 귀한선물 많이 들고 오시면 너무 기뻤지만 일주일후에 가실때는 너무 너무 슬펐어요. 아빠쫓아 외국나가서 살 때가 제일 좋았어요.
그건 아님. 해외여행 자체는 아무 제한없이 갈 수 있음. 입국하는 국가에서 방역절차에 따라야 될 뿐. 저때는 아예 여행 목적 여권 발급이 안되다가, 81년에 일단 여권은 만들 수 있게 바뀌고, 점차 제한적으로(60세이상 부부동반, 60세이상, 50세이상...) 여행을 허가해 주다가, 89년에 완전자율화 한 거에요. 즉 89년 이전엔 20대 청년이 해외여행 자체가 안 되었고, 80년 까진 여권 가지고 있는 자체가 불가능 했던거죠.
69년 생입니다. 스무살 무렵에 탑골공원 주변을 지나가는데 일본인 학생들 수학여행단을 보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도대체 일본은 얼마나 잘 살길래 어르신도 아니고 애들이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할까 ....한국인으로서 위축되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운 좋으면 경주 기껏해야 서오릉으로 가던 시대였죠.
90년대 1세대 배낭어행 하신 분들이 가장 부럽더라고요. 정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사진 한쪽 보고 나갔던 시절. 지금은 직접 가지 않아도 수많은 간접경험을 겪고, 세계화로 똑같은 체인 ,공통된 문화 등과 거기에 대한 익숙함으로 실제로 여행을 가도 뭔가 시무룩 한거 같아요. 영화관 입장 할 때 스포당하는 느낌.
호주 워킹홀리데이 첫 시행할때 갔어요... 비자를 받는데 (스탬프) 직원이 시행후 20번째라나 ...암튼 댓글로 다 못 적지만 홀로 개척해가는 건 맞아요. 대신 사건사고도 중간에 많았어요..호주에서 운전미숙으로 교통사고로 전원 사망등... 전 당신 군전역후 돈이 없어서 호주에서 BMW. 얻어타거나......그 시절이 너무나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그 경험이 일때문에 장기출장 아프리카에 가도 잘 살아남는 경험이 되더라구요.
우리 아버지 중동에서 일하시다 휴가때 집으로 귀국 안하고 유럽으로 여행하셨다고함. 70년대였는데, 이탈리아 공항에 내렸는데 그냥 택시타고 호텔가자고 하고 가서 체크인하고 자고 다음날 돌아다니시고.. 뭐 그렇게 젊은날은 누구나 그렇듯 두려움이 적고, 막상 어딜가든 사람사는게 비슷해서 특별히 어떤 문제가 된적은 없다고 하시네요. 하나 기억나는건 다음날 길거리 돌아다니면 현지 사람들이 많이들 쳐다봤다고 하네요.
형인데. 형은 82년도 인도 여행했다 덤으로 홍콩하고 일본도 그태 갔다왔다 뉴델리. 아시안 게임 갔다오면서 아 선수로 간것은 아니고 국민 응원단으로 당시 거금인 250만원 내고 갔다 시바 아시아 유럽은 다 가본 나라들인데 남미만. 못갔네 남아공에도 갔는데 나이 칠십 되어가는데 언제 남미 가려나
88년도쯤, 아빠가 학교직원들과 동남아랑 일본 다녀오신걸 필두로 우리가족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해외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김포공항 청사 들어설 때의 설래임을 잊을수가 없네요. 환전을 하고, 필름을 여러통 사고, 사람들 캐리어만 봐도 들떠서, 워크맨 끼고 탑승 기다리던 그때 ㅎㅎ 지금은 버스터미널처럼 공항에 별 감흥이 없지만, 저 당시는 정말 풍선마냥 마음이 붕 떴었네요. 그리워라~~
6:25 캐나다 원자력공사의 할리배리씨를 찾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저 인터뷰가 이루어진 80년대 초에 지어지고 있던 월성원전에는 캐나다 원자력공사에서 개발한 CANDU형 원자로가 설치되었음. 아주 짧은 인터뷰지만 저 속에 당시 한국의 상황을 알수있는 단서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음. 물론 저 할리배리씨는 진짜 원자력공사 직원일수도 있고 장난으로 말한 이름인지는 모르지만ㅋㅋ
아빠께서 딱 저 때 쯔음에 유럽일주 배낭여행을 갔다오셨는데 폰도 없고 지도만 보고 뭐가 있는지도 자세히 모르고 무작정 떠나기....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고 가네요 아빠께서 돈이 없으셔서 다리 밑에서도 자보고 이탈리아 일반 가정집에서 말도 안통하지만 하루 자고 오기도 하고 프랑스에 가서 개똥도 많이 밟아오시고..ㅋㅋㅋㅋ 저라면 절대 못갔을 것 같아요ㅠㅋㅋ
@@taeseongcho584 60년대 중반 베트남에 기술취업하는 사람수가 많아지면서 해외여행의 폭이 넓어졌고, 70년대 중반부터 중동건설 붐이 불면서 건설회사의 주선으로 한꺼번에 수천명씩 여권을 받아 나가면서 해외여행이 푹증했어요. 이집트 같이 잘 가지 않던 나라에도 많이들 나가게 되고...그러다 보니 건설회사의 해외자재구매. 건설수주 팀들이 선진국에 지사로 많이 나가게 되었지요. 영국. 미국등에 큰 건물 몇개층을 사용하는 대규모 지사 시대였고...그들을 따라가는 가족들....
옛날에 초등학교때, 반마다 꼭 한 두명 씩은 방학때 미국가고 그러는 친구들 있었는데... 가끔씩 선생님이 발표 시키고 그랬는데...미국 여행 소감 말하라구.... 그때 나도 미국 가고 싶다 그랬는데 ....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근데 내가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네 ㅋㅋ
60년대엔 김포공항 터미널 한나뿐이었는데, 비행기 타러 가는사한들은 빌딩으로 들어가 밖으로 다시 나가 비행기로 걸어가서 계단을 걸어 비행기 탑승했어요. 환송객들은 터미널 빌딜 안쪽으로 베란다 같은걸 만들어 송영대라고 부르는곳에 나가 걸어가는 승객들을 보며 손을 흔들며 전송했고, 승색들은 탑승직전 돌아서서 송영대쪽을 보며 손을 흔들며 비행기 속으로 들어갔지요. 그땐 다 울며 헤어졌지요 ㅋㅋㅋㅋ. 60년대 중반 대한항공 비행기는 DC-6 였어요.
저때에는 비행기 자체를 탄다는 것도 어느 정도 부유한 사람들만 가능 했던 시절, 사람들 스타일 보니 초딩 시절인거 같음 그때는 동네 골목도 넓었었지요 자동차 보유를 한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지금의 주차된 차들로 꽉차 있는 골목과는 다른 풍경이었지요 그때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곤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밖에서 노는 모습 조차도 보기 힘듬, 학원가거나 논다해도 집 안에서만 노니 ,또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은 이웃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다 정도는 알았고 이웃과 어울릴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모름.
나의 첫해외여행, 93년10월 아직도 잊지못하죠. 일단 동사무소 예비군중대본부에 신고하고 신고필증을 다시 김포공항 병무과에 가지고가서 여권에 확인도장 받았었죠. 당시 유나이티드에어라인에 탑승했었는데 비행기 여기저기서 사람들 담배피웠고요 저도 한대 빨았었죠. 기내금연은 그다음해에 생긴걸로 기억납니다. 못믿겠죠? ㅎㅎㅎ 어쨌든 첫해외여행이라 무척 설레였던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 신기하네요.. 별 차이없는 시간대 같은데 여행가는데 연령제한이 있고 저렇게 자유롭게 칵핏을 들어가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다음날 바로 해외로 떠날 수 있는 지금 시기와는 너무 생소하네요. 지금도 비행을하면서 매일 김포공항에 들어가지만 김포공항에서 유럽을 갔었던 적이 있다는걸 듣기만 했지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까 너무 신기하네요.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예전처럼 다시 자유롭게 해외여행객들을 태우고 비행하고 싶네요.
엄마가 아시아나 7기 승무원이라 보여드렸더니 아는 선배들이라고 좋아하네요~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당
우리엄마도 아시아나 32기임
앗 저희어머니는 10기세요
내가 20기요
우리 엄마는 30기
난 비둘기
저당시에 배낭여행 다닌 사람들이 진짜 대단한거 같음. 인터넷 스마트폰도 휴대폰도 없고 오로지 지도 하나들고 공중전화 해가면서 영어랑 손짓발짓 해가면서 물어보며 다녔을텐데ㅋㅋ
뭔 놀러간거가지고 대단하다 하고잇넼ㅋㅋㅋㅋ대단할것도없닼ㅋㅋㅋㅋ
@@약탈자-x1n 전 백퍼센트 길잃고 헤멜거같은데ㅜ 일본이나 유럽도시같은데는 엄청 복잡하잖아요
약탈자 대단한거지 폰없이 지도하나주고 해외다니라면 잘다닐수잇냐?ㅋㅋㅋ
약탈자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구글맵, 번역기 돌리고 문제상황 생기면 인터넷으로 서칭하고 전화하면 되는데 저 당시엔 전화도 못하고, 지금은 잘 사지도 않는 그 흔한 여행책자 하나도 구하기 힘들었을텐데요. 정말 배낭과 자기 자신만 짊어지고 모험심 하나로 간걸텐데 대단한거 맞습니다.
개척자
공항에서 우는게 촌스러운게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몇년이고 중동이고 어디고 기약도 없이 출국했다구요. 어떻게 눈물이 안 나요.? 촌스럽다니..당치않아요.ㅠㅠ
정스러운이요 정스러운;
@@제리-v1r 저는 어려서 아빠가 해외나가서 1년에 한번씩 오시고
국제전화도 너무 비싸서 한달에 한번.
전화받으면 너무 슬퍼서 목이메여서 말을 못했어요.그땐 그런게 당연한것인줄 알았는데.ㅠㅠ 비디오가 어디있어요.
그냥 카세트테잎에 우리 목소리 녹음해서 보내드리고, 아빠는 일년에 한번 오실때 정말 귀한선물 많이 들고 오시면 너무 기뻤지만 일주일후에 가실때는 너무 너무 슬펐어요. 아빠쫓아 외국나가서 살 때가 제일 좋았어요.
귀가.. ㅉ
저기 물품 창고에 있던 것들은 어떻게 되나?
요즘사람들은 촌스럽다고 생각할수있죠.
요즘 해외여행은 목숨을 내놓고 가야할 정도로 귀함
요즘 여행은 뒤지고싶어서 가는거죠
앜ㅋㄲㅋ 마즘ㅋㅋㅋㅋㄱ의미가 다른 귀한일이지만ㅋㅋㅋ 코비드19 ㅠ
격하게 공감되는 말입니다 ㅋㅋㅋ
1:59 오징어??ㅋㅋㅋㅋ
@@shaneseo9885 오징어 ㅋㅋ
인터뷰 한 여자분들 화장을 안해도 다들 이쁘네요 ㅎㅎㅎ수수한 매력 좋다 ㅎㅎㅎ
10:28 우리 엄마에요ㅋㅋ 와 엄청 신기 엄마랑 너무 비슷해서 보여줬는데 깜짝 놀라면서 맞다고 하네요ㅋㅋ
풋풋하네요 ㅎㅎ
오 평생 간직할 영상이네요ㅎ
우와 대박이네요!!!
와. 대박이네요
우와~~부럽습니다 엄마의 젊은시절 모습을 간직하실수있으시니까~~
저땐 유학도 아무나 못갔음. 돈도 돈이지만 문교부 유학시험에 통과해야 유학목적으로 출국 가능.
그럼 양준일씨는. 금수저인가요? 이민자들 대부분 부자였나요?
지금 외국어 담당 교수님들 대단하신 분들이죠. 다 국비 장학금받고 유학 다녀오신 분들
@@ydj08171 맞습니다. 당시엔 외화 반출이 지금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제한적이었으니 사실상 국비장학생이나 해외정부 초청 장학생 아니면 유학이 거의 불가능했죠.
K Yon 준일님은 아버지가 여행 가이드고 어머니는 기자 인걸로 알고 있어요. 아마 특파원 이였던 것 같아요.
@@KK-tt4if 어렸을때 엄청 부유했다네요
와... 왜 스튜어디스가 예전부터 최고의 미인인줄 알겠다 ... 너무 아름답..
단기간에 급성장한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어주신 어른들을 존중하고 존경합시다.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성장이 아니라 비극임.
그리운 저 시대 근데 말투땜에 빵빵 터진다
ㅋㅋㅋㅋㅋㅋㅋ저시대 특유의 말투와 패션
!!귀한영상 잘 보고 갑니다
말투가 웃김ㅋㅋㅋㅋ
난..인천공항세대라;;;;;;; 신기방기...
그런데 코로나 덕에 갑자기 해외여행자유도가 80년대가 되었네요;;;;;;;
서민들에게 자가용 보급 시작 한게
1991년 인데 .. ㄷㄷㄷ
그건 아님. 해외여행 자체는 아무 제한없이 갈 수 있음. 입국하는 국가에서 방역절차에 따라야 될 뿐.
저때는 아예 여행 목적 여권 발급이 안되다가, 81년에 일단 여권은 만들 수 있게 바뀌고, 점차 제한적으로(60세이상 부부동반, 60세이상, 50세이상...) 여행을 허가해 주다가, 89년에 완전자율화 한 거에요. 즉 89년 이전엔 20대 청년이 해외여행 자체가 안 되었고, 80년 까진 여권 가지고 있는 자체가 불가능 했던거죠.
@@빨강-w6i 그건 아니에요
80년대도 돈 있으면 얼마든지 자가용 사서 타고 다닐수 잇었습니다
6:39 불편한 공항에서 지금은 세계1위... 대단하다
공항이요..ㅋㅋ
현재 김포공항은 공식적으로 세계 국제공항 59위 입니다
아하 인천이랑 헷갈렸네요 ㅋㅋㅋ
거긴 인천
4:54 은행 직원분 여권 들고 있으시면서 여권같은거 좀 보여달라고 ㅋㅋㅋㅋㅋ 더웃긴건 남자분도 엉겁결에 다른서류 주시네 ㅋㅋ
비자를 여권으로 잘못 말한 것 같아요
둘다 긴장한 노습이 참 순진해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몇 사람 목소리만 뚜렷하게 들리고 카메라 앵글같은 거 보니까 방송촬영? 같은 거였나본데ㅋㅋㅋㅋ
개스무스 햇는데;
그당시 한국어 특징이 ....같은거..란 표현을 많이 사용했었죠.
69년 생입니다. 스무살 무렵에 탑골공원 주변을 지나가는데 일본인 학생들 수학여행단을 보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도대체 일본은 얼마나 잘 살길래 어르신도 아니고 애들이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할까 ....한국인으로서 위축되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운 좋으면 경주 기껏해야 서오릉으로 가던 시대였죠.
자매학교 교류로 학교에서
초청하는거였음
우리 고모가 그케이스로
일본갔다오심
80년대초..
환율때문에……..같은 일본으로 가면 더 비싸, 저렴한 한국으로
환율차이 때문에 그래요! 우리나라사람들 제주도 가는거 보다 동남아가 더 싸게 먹히는것 처럼!!!
94년에 일본 시골학교 애들이 결연으로 놀러 왔었는데... 걔들 갖고 있던 싱글 음반 8cm CD가 신기했음.
버블재팬
90년대 1세대 배낭어행 하신 분들이 가장 부럽더라고요. 정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사진 한쪽 보고 나갔던 시절. 지금은 직접 가지 않아도 수많은 간접경험을 겪고, 세계화로 똑같은 체인 ,공통된 문화 등과 거기에 대한 익숙함으로 실제로 여행을 가도 뭔가 시무룩 한거 같아요. 영화관 입장 할 때 스포당하는 느낌.
가서 바가지 당해봐야지 아 ~ 지금이 좋구나 얘기할꺼야?
90년대 여기저기 배낭매고 다닌 세대로서 어떻게 다녔는지 꿈 같네요. 히치하이크도 많이 했었는데 ㅎㅎ
신비로움이 없어졌죠ㅜㅜ
공감합니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많은 것을 보고 듣게 되어 그 감흥이 줄어들더라고요.
호주 워킹홀리데이 첫 시행할때 갔어요... 비자를 받는데 (스탬프) 직원이 시행후 20번째라나 ...암튼 댓글로 다 못 적지만 홀로 개척해가는 건 맞아요. 대신 사건사고도 중간에 많았어요..호주에서 운전미숙으로 교통사고로 전원 사망등... 전 당신 군전역후 돈이 없어서 호주에서 BMW. 얻어타거나......그 시절이 너무나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그 경험이 일때문에 장기출장 아프리카에 가도 잘 살아남는 경험이 되더라구요.
1:58 누가 오징어 들고 가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씨 이거 어떻게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관 합격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오징엌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ㄱㅋㅁㅊ 맛있겠다
아존나웃기네 ㅋㅋㅋㅋㅋ
영상 다 보는데 왠지 모를 울컥함이 있네요~
저는 80년대생인데, 97년에 부모님과 처음갔던 해외여행도 생각나고
젊은시절 부모님 모습도 생각나고
아 눈물나네요ㅜㅜ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전 78년생인데 2005년도에 비행기 첨 타봤습니다 ㅎㅎ
실질적으로 90년도 부터 여행의 자율화를 느꼇죠
어느정도 돈도 작게 나마 여유도 생기고 주변이 품처럼 해외여행을 일고있을때라
저는 89년생.. ㅠㅠ 진짜 소중한 영상이라 생각되더라구여
80년대생이 눈물이 나면 60년대 생은 어쩌란 말입니까? 아직 청춘이구만.....
80년대생이 아니고 80년 생이세요? 나도 80년대생인데 그 정도는 아닌데...
와 약간 촌스런 느낌은 있는데 저시대 스튜어디스 개이쁘네 ㄷㄷㄷ 13:36
정말 우리나라가 엄청 빨리 발전한거구나....... 북한보는거 같애욬ㅋㅋ
70년대까지만해도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잘살았다고 알고있어요~
80년대면 40년전
@@oov6419 수치상 73년도 역전되었고 배급제 한계와 국가예산 반을 국방비로 쓰는 북한 특성상 70년전후 이미 남한이 역전함 그때 남한은 차들이 급증했는데 북한은 평양거리도 차들 없어 한산했음
70년대 북한이 아무것도 없는데 잘살긴 뭘잘살아 ㅋㅋ똑같지 ㅋㅋ우리나라가 70년대 포니차 만들고 삼성금성 티비 만들고 북한은 암것도 없었는디 ㅋㅋㅋ
그걸 한강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산업화 세대.
마지막에 창공노래깔리면서 지나가는 영상들보니까 왜이리 찡하냐ㅠㅜㅜㅜ 세월 많이 좋아졌다. 정말 내 나이에이말할줄 몰랐는데 격세지감이다
저 시절 해외여행 가신분들 진짜 대단하다.. 지금도 해외가려면 알아볼것도 많고 두렵고 한데 아무것도 모른채로 어떻게 갔을까
우리 아버지 중동에서 일하시다 휴가때 집으로 귀국 안하고 유럽으로 여행하셨다고함.
70년대였는데, 이탈리아 공항에 내렸는데 그냥 택시타고 호텔가자고 하고 가서 체크인하고 자고 다음날 돌아다니시고..
뭐 그렇게 젊은날은 누구나 그렇듯 두려움이 적고, 막상 어딜가든 사람사는게 비슷해서 특별히 어떤 문제가 된적은 없다고 하시네요.
하나 기억나는건 다음날 길거리 돌아다니면 현지 사람들이 많이들 쳐다봤다고 하네요.
요즘은 쉽게 가는구만ㅋㅋㅋㅋㅋㅋ 니가 돈 없는 흙수저라서 어렵게 느껴지는거임ㅋㅋㅋㅋㅋㅋ
형인데. 형은 82년도 인도 여행했다 덤으로 홍콩하고 일본도 그태 갔다왔다 뉴델리. 아시안 게임 갔다오면서 아 선수로 간것은 아니고 국민 응원단으로 당시 거금인 250만원 내고 갔다 시바 아시아 유럽은 다 가본 나라들인데 남미만. 못갔네 남아공에도 갔는데 나이 칠십 되어가는데 언제 남미 가려나
아버지께서 비서 구해서 출장 갔다 하시네요.
요즘 맨날 마스크만 써서 그런지 마스크 안쓰고 있는 장면이 너무 어색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이라해서... 얼마전에 쓴글인줄 알았는데 11개월전..ㅜㅜ 언제쯤 마스크 벗을 수 있을까... 2021.08.04일에 글 남겨봅니다. 코로나 아웃~
88년도쯤, 아빠가 학교직원들과 동남아랑 일본 다녀오신걸 필두로 우리가족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해외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김포공항 청사 들어설 때의 설래임을 잊을수가 없네요. 환전을 하고, 필름을 여러통 사고, 사람들 캐리어만 봐도 들떠서, 워크맨 끼고 탑승 기다리던 그때 ㅎㅎ 지금은 버스터미널처럼 공항에 별 감흥이 없지만, 저 당시는 정말 풍선마냥 마음이 붕 떴었네요. 그리워라~~
부유하셨나봐요 ㅎㅎ
저당시 워크맨?ㄷㄷ
저기 님 여성이면 저랑 결혼하실래요?ㅅㅅ
88년에 워크맨이면 진짜 부자네요~ ㅎㅎ
님 남자시면 kimkim님 말고 저랑 결혼해용~ 🤗
ㅋㅋㅋㅋㅋㅋ
luv gum님 말투가 틀림없이 여자 이신거같아요
저랑 결혼합시다!!
181 74 건장합니다!
아니 미친ㅋㅋㅋ 여기서 공개구혼을 햌ㅋㅋㅋㅋ 개귀여웤ㅋㅋ
이렇게 보면 80.90년대는 너무 재밌네요.... 경제발전 대박...
해외 한번나가보는게 꿈이고 가슴설레이던 시절...
6:25 캐나다 원자력공사의 할리배리씨를 찾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저 인터뷰가 이루어진 80년대 초에 지어지고 있던 월성원전에는 캐나다 원자력공사에서 개발한 CANDU형 원자로가 설치되었음. 아주 짧은 인터뷰지만 저 속에 당시 한국의 상황을 알수있는 단서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음. 물론 저 할리배리씨는 진짜 원자력공사 직원일수도 있고 장난으로 말한 이름인지는 모르지만ㅋㅋ
오 대박이네요. 님의 지식도 놀랍습니다 ㅎ
ㅋㅋㅋㅋㅋㅋ신기
진짜 님의 지식이 더 놀라움...ㄷㄷ
귀하는 한전 엔지니어셨군요. 원전관련~~ㅎㅎ
5:07 본인이시군요 , 목소리 너무 옛날영화 여주인공 더빙소리같다구
저때는 해외 나가려면 남자들은 병역신고해야해서 진짜 별짓 다했는데....서류 떼러 여기갔다 저기갔다....여권도 늦게 나오고... 복수여권은 꿈도 못꿈. 무조건 단수여권... 지금은 참 많이 편해졌죠...예전 생각나네요 ㅎㅎ;;
들어와서도 신고해야함
저 시대가 지금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캄보디아나 베트남 여행가면
느낄수있는 풍경이랄까
그리고 해외여행 완전자유화와
여행경비 만달러 시대 개막
대한민국 최고 초호황기시대
저시절 젊음 보냈던 세대가 늙어서 동남아도 가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자기들 모습이었단걸 망각하고 동남아가서 애들 무시함
@@semil898 50세 이상들이 20대 아가씨 1~2 애인 만들어 같이 데리고 다니는 동남아
18초쯤에 아시아나 언니는 지금봐도 상당한 미모네
기온 38도가 지금 날씨였으면 좋을듯
현실은 -6도
저기 모인 당시 멤버들 : 당시 핵부자들 + 교포, 교포예정자 + 북한 등 외국 간첩들, 기타 범죄자들ㅋㅋ
당시 공항이라는 장소는 엄청난 곳이었죠 ㅋ
진짜 다이나믹했겠내요
해외 이민붐이었기때문에 가족 일가로 이민가던 사람들도 있었죠..
추가하자면 해외법인 파견으로 나가는 가족들 포함 해야됩니다
자칫하면 영상속 인물들에게 실례가 될 발언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 서울말 발성이 또박또박하니 듣기 좋다.
이제는 없어진 말씨 듣기 좋네요
약간 더 시크한 느낌이네요
@@eriyayu7026 2020년 지금 말투 40년후 들어보면 똑같음
요즘은 웅얼웅얼거림
아빠께서 딱 저 때 쯔음에 유럽일주 배낭여행을 갔다오셨는데 폰도 없고 지도만 보고 뭐가 있는지도 자세히 모르고 무작정 떠나기....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고 가네요 아빠께서 돈이 없으셔서 다리 밑에서도 자보고 이탈리아 일반 가정집에서 말도 안통하지만 하루 자고 오기도 하고 프랑스에 가서 개똥도 많이 밟아오시고..ㅋㅋㅋㅋ
저라면 절대 못갔을 것 같아요ㅠㅋㅋ
악깡버가 기본인 시대였으니
2:32 잘생기심
13:38 아이돌인줄 개이쁘심ㅠ
원래 아시아나가 예쁨
@@kangcharles8683 네..제가1976년생 98년도 제주군생활할때 처음엔 대한항공 스카이패스맴버십해서타고다니다가 아시아나 한번타보고는 이뻐서 그담부터 계속 아시아나만 타고다녔죠.당시 배우 이보영이 아시아나모델이었구
서민재 아시아나가 미모를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우최우!SPU ㅇㅈ ㅋㅋㅋ
랜시랭 닮은 꼴!
저기 나오는 여행객들이 진짜 부자들임. 당시에 외국나가려면 1년 가까운 연봉을 모아야 가능했음
@@강승희-t2v 꼬맹아 엄마한테 물어보고 오렴
80년대 초반은 월급이 10만원 아래였어요
장관 월급이 25만원이었는데
@@sangsoonkwon6382 그럼 $2000 가지고 가는 그 부부는 장관 80개월치 월급을...와....
@@강승희-t2v 조또 모르면 다물어라
@@강승희-t2v 확마 찍어불라 사회생활 하면서 ㅈㄴ 나대다 인생 개망할거다
그 누가 방문해도 편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와 시설이 되기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하게 애써주신 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르네요. 덕분에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언제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저때는 한국 관광공사 산하 교육원에서 소양교육을 받고 수료증을 받아야
여권 들고 해외에 나갈 수 있었죠. 일종의 에티켓 교육 , 반공 교육 그런거 였어요.
1979년땐 정보부 위장단체 대성공사에서 실시하는 소양교육.
그렇게 만들어 주었던 여권도 아무나 만들수 없었다고 들었어요.
그야말로 부 아님 명예의 상징이었다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taeseongcho584 88년 올림픽 이후로는 해외 여행 자율화가 되어서 대학생들도 방학을 이용한 해외 연수 목적으로 쉽게 나가곤 했어요. 그땐 주로 유럽에서 하는 음악 연수 프로그램이 많았던거 같아요.여권 만들기도 쉬웠고 소양 교육만 받으면 됐었죠.
@@taeseongcho584 60년대 중반 베트남에 기술취업하는 사람수가 많아지면서 해외여행의 폭이 넓어졌고, 70년대 중반부터 중동건설 붐이 불면서 건설회사의 주선으로 한꺼번에 수천명씩 여권을 받아 나가면서 해외여행이 푹증했어요. 이집트 같이 잘 가지 않던 나라에도 많이들 나가게 되고...그러다 보니 건설회사의 해외자재구매. 건설수주 팀들이 선진국에 지사로 많이 나가게 되었지요. 영국. 미국등에 큰 건물 몇개층을 사용하는 대규모 지사 시대였고...그들을 따라가는 가족들....
지금 중국이랑 비슷했네요
저 때 해외여행 갈 정도면 상위 1%였지..
코로나19에는 국제선에서는 외국인 입국금지인가요?
공무원들도 4달 안쓰고 모으면 환율상 해외여행 쌉가능이었음 ㅋㅋ 아는척 하지 마요
@@이은중-m1r 4달 안 쓰고 모으면이라는 전제는 어케 나오는거임?
ᄋᄋ 그 전에 법적으로 만50세이하인가?
불가했었음...그 80년대 전에는
사업 외교 유학 외신기자 해외취업
이런게아니면 출국자체가 불가능했었음...
물론 국내선이용은 가능했었음ㅎ
@오구오구 저희나라라고 하지마시죠
그때 공항 출국장은 눈물바다였죠.
해외로 일하러가는사람이 관광객보다 많았죠.
2:32 아저씨 뜬금없이 잘생기셨넴
눈이 초롱초롱
ㅋㅋㅋ 나두 이 생각해서 쭉 내려서 댓글 찾음. 겁나 꽃미남 훈남 아저씨 ㅋㅋㅋ훅 튀어나오심
관광 여권발급이 83년도 부터라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88년도 일반인 자유여행시작 일반인들 83년 힘듬 회사보증 개인은불가 ᆢ
사실 부자들은 70년대에도 여행 많이 했습니다
원래 무역회사같은 회사직원은 업무상 해외에 나갈 수 있는데
이름만 회사에 올려놓고 직원들하고 같이 출국해서 직원은 열심히 바이어 만나서 줄다리기 하는동안 주로 사주들 가족들은 관광지 찾아다니면서 여행하다 왔죠
와 진짜 경제적으로 못 살던 나라가..발전해서.. 정말 애 썼구나..노력의 역사구나 싶다.
15:02 거 잠깐 기다려달라는데 말 드럽게 안듣네. 저 아재들 운전도 개떡같이 하고 다녔을 확률 백퍼
??????
ㅋㅋ 이상한데 찍어놈
어느시대나 중년 꼰대들이 젤 문제. 좀 살았다고 지멋대로.
지금은 틀딱이 됐을까요
ㅋㅋㅋㅋ앜 기다려달라는데 양옆에서 스틸,,
누군가해외갔다오면서 초코렛하나 선물받으면 우와~대박하던시절
17:05 화낼만 하네....5시간을 기다려ㅋㅋㅋ
솔직히 지연 50분도 힘든데 5시간이면 상상도 안되네요 ㅋㅋ
재작년인가 다낭갈때 아시아나 기내에서 1시간 앉아있는데도 답답해 미치는줄 알았는데 5시간이면 ㅡㅡ
아후 다섯시간............................. 세상 끔찍하네요..............
호주, 뉴질랜드도 엄청 오래 걸리더만 세관 검사
우린 핸드폰이라도 하지 핸드폰도 없으니 와...우
저희 어머니는 대한항공 143기십니다. 언제나 저희를 위해서 노력해 주시는 모든 승무원분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ㄴㄹㄴㄱㄹ
앗 143기 어느분이실까요?01사번 선배님이실것 같은데 전 02사번 148기입니다.
ㅋ
난 신기한게옛날사람들은 특유의 그발음이있어
북한사람같은말투
ㄴㄴ 옥희말투
저 말투가 원래 서울말투입니다.
지금 서울 말투는 전라도랑 많아 섞여있다네요
서울말도 시대에 따라 많이 바뀌는게 느껴지지요? ..
@@t2o-l7y 그런것 같아요 티비 아나운서가 전라남도 식으로 단어를 발음 하던데 그게 표준말 처럼 되어서 , 장음과 단음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ㅜ
북한보는것 같네..ㅋㅋ
여성의 사회진출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 또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기.
비행기를 타고서 해외를 왕복하는 스튜어디스는 당시 최고의 선망 엘리트 직업 중 하나였음
지금도 그러잖나
@@user-wexfewlic스튜어디스가 엘리트는 아니죠
@@user-wexfewlic 지금은 그냥 서비스직이라는 인식이죠
ㄹㅇ 저땐 엘리트였음
@@seansong75 갑자기 관련없는 네 사상 드러내지 마셈 찐따인가
선배님들한테 말로만 듣던 한복입고 웰컴인사ㅋㅋ 진짜였네요ㅋㅋㅋ
버억아
각 클래스에 한명씩이였지요
저당시 해외로 다니던 어른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다.
신선하면서 또 한편으론 신기합니다ㅎㅎ
진짜 그랬어요~ 심지어 여행가면서 옷도 꼭 정장을 챙겨갔어요 ^^ 우린 한국인이야 마치 약간 외교관들 마음가짐으로~
저땐 아무나 못나갔을테니 뭐ㅎㅎ
번외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 해외 나가려면 반공교육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군부정권 시절이기도 했지만 해외 나간다는 자체가 공산권 국가 사람들과 접촉도 이뤄지는거라 교육이 필수였죠.
아무나 못나가던 시절임 저때 해외 나가면 최소 지금 상위 5%이내 부자들임
해외 다녀오면 공항에서 꽃다발 들고 기다리던게 엇그제같은데.. ㅎㅎ
비행기.탄다는건 언제나 즐거움
하와이 괌 싱가폴 캐나다 일본 중국..해외여행은 언제나 나이스샷
@@etc13589 해외여행 한번도 안가본거 티내누
옛날 영상 보면 왤케 다 그때가 그리운지....
저 시기에는 기내에서 오렌지쥬스 마시는거도 되게 행복했겠다 ㅎㅎㅎ
요즘도 기내에서 쥬스만 마셔도 행복ㅋㅋㅋㅋ난 해외여행 가는거 도착한 장소 여행 보다 공항 가서 비행기 탈때의 설렘이 더 좋아서 해외여행 좋아했는데ㅋㅋ
왜? 저시대에는 공항을 간다고 하면 꼭 옷을 차려입고 나왔는지...ㅋㅋ 공항간다고 하면 정장꺼내입고..명절날 입는옷 꺼내입고...ㅋㅋㅋ
저때 여승무원들은 진짜 미모보고 뽑았어요 지금 여승무원보다 더이쁜것 같아 ㅎㅎ
당시 공항패션인가보죠 ㅋㅋㅋ 정장에 넥타이까지 꽉! ㅋㅋㅋㅋ
명절날 ㅋㅋㅋㅋㅋㅋㅋ
저시대는비행기타는게 출세라는의식이있어서 갖춰?입음
90년대 때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뷔페만 가도 정장까진 아니어도 나름 차려 입은 사람들만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옛날에 초등학교때, 반마다 꼭 한 두명 씩은 방학때 미국가고 그러는 친구들 있었는데... 가끔씩 선생님이 발표 시키고 그랬는데...미국 여행 소감 말하라구.... 그때 나도 미국 가고 싶다 그랬는데 ....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근데 내가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네 ㅋㅋ
근데 한국이 더 좋은걸 깨닫고...
ㅋㅋ 저도 해외여행 다녀온 친구들 부러웠는데 이젠 해외도 많이 다녀오고 외국서 살고 있네요
저도 외국에 대한 동경있어서 승무원 했는데. 다니다보니 한국이 젤 좋더라구요.
@@slfppjk-0134 ㅈㄹ
재일한국인인데 외국이라고 좋을거 없음 ㅋㅋㅋㅋ 한국이 말통하고 제일나음
흡연자들에겐 천국 같았던 저 시절 공항과 뱅기ㅋㅋ 좌석팔걸이에 재떨이가 있었지~ㅋㅋ
60년대엔 김포공항 터미널 한나뿐이었는데, 비행기 타러 가는사한들은 빌딩으로 들어가 밖으로 다시 나가 비행기로 걸어가서 계단을 걸어 비행기 탑승했어요. 환송객들은 터미널 빌딜 안쪽으로 베란다 같은걸 만들어 송영대라고 부르는곳에 나가 걸어가는 승객들을 보며 손을 흔들며 전송했고, 승색들은 탑승직전 돌아서서 송영대쪽을 보며 손을 흔들며 비행기 속으로 들어갔지요. 그땐 다 울며 헤어졌지요 ㅋㅋㅋㅋ. 60년대 중반 대한항공 비행기는 DC-6 였어요.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이듬해 89년 1월1일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죠.
서민들에게 희망찬 시대였습니다.
80-90년대 그 희망이 이루어져가는 경우도 많았죠. IMF 모든게 바뀌었지만요
이번편 너무 재밌네요. 14:06 승무원님 피부 꿀피부~❤ 특히 기내영상 재밌게 잘 봤어요😄
13:37 이쁘시다
설리 닮음
너땜시 돌러봤는데 취존한다
ㅇㅈ
엄청 미인이신
지금쯤이면 60 초중반의 어머님의 모습으로 ㅠㅠ 세월이 무섭네요ㅠㅠ
2:32 와.. 진짜 잘생겼다
하루 빨리 바이러스 종식되어서 해외여행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싶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이 자유화 이전보다 못하고 있습니다
18:18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 인삼 특식. 상추 위에 놓인 생인삼 한 조각. 함께 제공되는 버터...
David Lee 보니까 꿀인거 같아요
그 시절 인삼과 꿀이 서비스 됐습니다
저 당시에 1000불을 들고 해외여행 다닐정도면
진짜 갑부였을듯.
우리 87년도에 울 어머니가
내동생 등에 업고 벽돌공장에서
한달에 8만원 받았다고 하시니....ㅠㅠ
추억이 새록새록 그땐 몰랐는데 지금보니 말씨가 지금의 북한 말씨같네요.. 승무원들 넘 예쁘다 지금은 60대초 50대 후반 되었겠네요... 요즘 비행기 못타니 더 타고싶네요...그때 사람들이 전부 수수하니 좋아보이네요
북한말씨는 지금도 그대로 이고요
우리가 영어 교육 때문에 변한 겁니다. 70년대 재미교포들이 사용 사용하던 말투죠. 그시절에는 재미교포 말투가 이상 하다고 하던시절
네..제친척이모님두 저 당시 대한항공승무원이셨죠 ㅎ 얼굴너무이뻐서 대한항공시험보고합격. 제가76년생이니까 울이모는지금64세입니다. 벌써퇴직하시고 지금은 경기 어느공기좋은곳에서 전원주택사시면서 밭일도하시고 사심 ㅎㅎ 인생엔영원한게없죠. 세월이흐르고
98년에 우리집 이민간다고 공항 갈 때도 온동네 사람들 다 같이 공항와서 배웅해주던 거 생각나네여...
같이 온 동네 친구가 내 양손가락에 짱구과자 끼워줬었음
18:52 와... jal b747-200부터 kal dc-10 칵핏... 거기에 아시아나 B737-400 칵핏에 kal b727-200칵핏 ㅎㄷㄷㄷㄷㄷ
14:06 시작부터 저때 일본문화 개방도 안되었는데 머리가 마쯔다 세이코임..~!!
80년대랑 지금이랑 많은것이 달라졌지만 공항모습이랑 비행기는 지금이랑 별 차이가 없는거 같다
비행기가 엔진 개량을 하긴 하지만 기종자체가 저때랑 별차이 없어서 그럼 ㅋㅋㅋㅋㅋㅋ
화면에 나오는 저 시대는 지금은 2명중 1명이 해외여행 갈 수있는 시대라면 그 때는 10000명당 1명이 갈 수있는 시대였다는 것으로 동경에 대상이 아니라 해외여행 같다가 왔으면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옛날 사람들 보면 왜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ㅋㅋ 낭만이 흘러 넘치던 시절이 보기만 해도 그리워지는 느낌
이 시절 말투 남아 있는 유일한 남한인=이영애
제가 처음으로 김포공항 갈때는 국내선 예천공항 갈때 가봤고, 처음 해외 여행 갔을때는 99년도? 가 고1때 학교에서 일본여행 갔을때 김포공항을 이용해서 갔습니다.
젊으시네요
삐삐 조금 쓰셨을 듯
걸면 걸리는 걸리버
웃기죠
옛날 감성 너무 좋다 ~~!!!
ㅋㅋ 절차는 지금이나 그때나 비슷하네 ㅋ 근데 신기한건 ㅋㅋ 다 정장 입고 나가네 ㅋㅋ 비행기 탈때 쪼리 반바지 반팔& 긴팔 아닙니까?! ㅋ
정장이.. 양복 양장 이죠
마치.. 미국 영국사람들 처럼
차려 입는 겁니다. 서양복
@@피키블라인더 공항패션 입는건 자기맘인데 뭔 뺨을쳐
울긋불긋 등산복두요.
김미영 우와 그렇군요! 그렇게는 생각을 못해봤네요. 차림새를 단정히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양장, 서양 양장이라 그렇게 입었던 거군요..
6:21
아 익스큐주미
누굴찾나요?
미스티 행링베리 케나다 아토믹.. 쩌구저구
아... 그를 만낫나요?
아니요 아직 그분을 못 찾앗어요.
왜 안만나는거죠?
ㅡㅡ;;;;;
ㅋㅋㅋㅋㅋㅋㅋㅋ왜 물어봤을까ㅎㅎㅎ
Why don't you 는 ~하는게 어때 라는 뜻 아닌가요??
영알못이라서 틀릴수도 있지만..
저때에는 비행기 자체를 탄다는 것도 어느 정도 부유한 사람들만 가능 했던 시절, 사람들 스타일 보니 초딩 시절인거 같음 그때는 동네 골목도 넓었었지요 자동차 보유를 한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지금의 주차된 차들로 꽉차 있는 골목과는 다른 풍경이었지요 그때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곤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밖에서 노는 모습 조차도 보기 힘듬, 학원가거나 논다해도 집 안에서만 노니 ,또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은 이웃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다 정도는 알았고 이웃과 어울릴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모름.
해외여행자율화 초기 때 일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서 추태를 부려 "어글리 코리언"이란 소리도 들은 현재 중국인들과 동급으로 취급했던 흑역사도...
그건 요즘도 그런데..ㅋ
그건경제성장할때 쯤이면 다그런듯 일본도 그런시절이있었음
지금도 중국이나 한국이나;;
지금은 다르죠. ㅋㅋㅋ 비교가 되나요.
그때 외국나가서 어글리 코리언 소리 듣던 세대들은 지금도;;;
저 시대에 천불을 가지고 나간다니 ㄷ ㄷ
저당시 급여가 월20인데 ..
나랑 똑같은 생각 하셨네요ㅋㅋㅋㅋ
돈있는 사람이나 나갔지
생각해보니
그당시 1달러당 800원인데
1000달라면 80만원 이네요
다들 만불로 착각하시는듯
@@ronie6237 그때 800원하고 지금 800원의 가치가 천지차이잖아요
80년초에 어린나이에 이민올때 저 공항에서 정말 가족들과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땐 돈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가난을 피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설음에 복받쳐서 더 슬펐어요. 비행기표값도 빚으로.
나의 첫해외여행, 93년10월 아직도 잊지못하죠. 일단 동사무소 예비군중대본부에 신고하고 신고필증을 다시 김포공항 병무과에 가지고가서 여권에 확인도장 받았었죠. 당시 유나이티드에어라인에 탑승했었는데 비행기 여기저기서 사람들 담배피웠고요 저도 한대 빨았었죠. 기내금연은 그다음해에 생긴걸로 기억납니다. 못믿겠죠? ㅎㅎㅎ 어쨌든 첫해외여행이라 무척 설레였던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98년도 태국가는길에도 비행기에서폈음
세상에나~~!!
91년 샌프란시스코 가면서 유나이티드 에어 이용했었지요.
담배 물론 기내에서 피워대고 여행 했었고,
당시 샌프란시스코 도착해서 시내에 이찌방 스시기차식당에서 식사하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는 삼십년 ......
96년에 첫외국 뱅기탓는데 금연이었어요
중고딩때 버스는 담배 다피웠고 ㅋ 버스 엔진부분위에 가득쌓아뒀던 가방들 그립네 ㅋ
2005년에중국갈때화장실흡연했죠
중국공항: 중국인들 수다하는 소리밖에 안들림
일본공항: 공항에서 심각할 정도로 조용함
한국공항: 한국인들 얼굴 무표정에 캐리어 덜덜 끄는소리밖에 안들림
개웃ㅇ기네ㅎㅋ 코로나태문에 무표정 더심해짐
@@samoh6084 마스크땜에 표정도 읽기 어려움..눈알만 데굴데굴...ㅋㅋㅋ
@@한승남-c6v ㅇㅈ.
너무 정확함.
ㅋㅋㅋㅋ덜덜덜 소리 인정
4:52 이런톤이 귀에 때려박아주면
잠 솔솔~♡
지금은 너무 꾸며진 말투인데 저때는 말투가 넘 청순>.
이른바 오그라든다 이게 없던시절이라 그런감 ㅎㅎ
서울사투리에요 ㅋㅋㅋ
저때는 저 말투도 가식적이라 했음
지금이 뭐가 꾸며진 말투여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된거지;; 누가 말하면서 꾸며진 말투라고 생각하냐
@@skdidufjfndbde 반박시 니말이 맞음
1980년도 고1때 해외여행은 생각 자체가 없었고 서울 가보는게 꿈이였다.
꼰대요 고생햇소ㅜ
snapple hee 우리아빠 꼰대아닌데요?
83 학번 이실텐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꼰대소리를 듣는 나이가 됬네요.. ㅎㅎ 언제 빨리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려나?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세월이....
안오시길 잘하셨어요
지금이라면 안하겠지만 90년대 중반 초등학생이었던 저희때도 인천, 부산 이런데서 와도 그냥 지방촌놈 놀림감에 사투리 써보라고 시키고 그랬었어요
참 무식했었죠
인천공항 이 생기기 전까지는 김포공항이 유일한 공항이었죠
아버진 김포공항을 통해 출장도 많이
다녀오시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인천공항 이 생겼고 넓고 큰
규모에 별천지에 온줄 알았죠
81년생이지만 옛날영상 너무 신기해요😀
15:00 비매너에 성질 급한 사람은 어딜가나 있네ㅎ 진짜 싫다. 얼마 걸린다고 그걸 못 기다려서 휴....
그니까요 잠깐 그 조금 기다리는 것도 못하고 아오 진짜 욕나와요
접어서가져와도 될것같은뎅 ㅜ
@@장희선-h8q 그러면 부피가 커지잖아요. 접는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몇 초만 기다리면 될걸. 그걸 못 기다리는 사람이 문제죠.
@@랙홀-k5k못기다리는사람이 문제인건맞죠ㅎ 그렇네여 부피가크니깐 미리 안접어서 오능구낭ㅠ
영상에서는 5시간 기다렷다고 하는데 화날만도 하죠 ㅋㅋ
해외갈려면 소양교육을 하루받아야했는데
납치당하지않게 간첩조심하라는 거 그것만기억나네요
김포공항 출입구엔 총든 헌병같은 군인들도 계셔서 어디가냐고 묻고했는데
세월 참 빠르네요
김포공항 경비대 검문검색 ! 대한민국 주요 길목마다 검문소가 널렸던 시절!
서울에서 강화도 놀러가는데 열개도 넘는 검문소 마다 버스 세워서 군경합동검문 받았음.
세월이 지났으니 좋은 추억 같지만 전대가리 시절은 지옥 그 자체였다!
4:55 옛날 성우들이 더빙하는 영화 보는거같네 ㅋㅋ 옛날 서울말투 ㅋㅋㅋㅋㅋㅋㅋㅋ
북한 보는 줄 알았음. 말투와 화면, 패션이 비슷함.
ㅡ북한하곤 하늘과 땅 차이지
걔넨 아직 저때 수준의 소득이고 우리는 저때보다 100배는 잘삼.
아무리그래도 북한보단 나아보이는데....
검정고무신 말투네
@@arankang 북한은 아직도 저때의 수준도 못돼죠
울들의레전드🌠
이ㆍ문ㆍ세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된건
1989년이래요
88서울올림픽 끝나고 나서
나는 그때 중2
넓디넓은 운동장에서
홀로 굴렁쇠? 굴리며
달려가던 꼬마 생각나요
그꼬마도
이제 아저씨가 됐겠죠
그땐 그랬는데...
하하하
너무 재미있게 보았어요.
제가 그당시에 승무원으로 근무 했었거든요.
사탕서비스 하는 모습을 보니 저를 보는것 같았어요 ㅎㅎ
삶은 계란을 간식으로 갖고 오는 승객들도 계셨구요 ㅎㅎ
좋은 영상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비행기에서 달걀이라니 ㅋㅋㅋ 정겹다
그당시 승무원 하셨다니 1981년 인데 울동기 얼굴 미경이가 인터뷰 하는게 보이던데 ᆢk항공?
전 다른 항공사 였었구요,
저도 한번 해외여행 자유화에
대해 안터뷰해서
TV 에 뜬적이 있는데요, 아쉽게도
이 영상에는 언 나오더라구요 ㅜㅜ
해외여행은 공항에서의 설레임이 즐거움의 반이상인듯~ 요즘은 제휴카드로 라운지에서도 즐기는것도 편해졌고.. 아... 이놈 코로나때문에 진짜ㅠㅠ
저때 파일럿 이라는 직업을 하시는분들도 대단하시다..
공군 출신……….
89년도에 수학여행을 해외라.... 겁나 금수저들이였네....ㅡㅡ^
80년 초에도 애플컴퓨터 쓰는 친구들 많았죠. 대한제국때도 손탁호텔에서 비싼 모닝 가비(커피)를 마시던 모던보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시대나.
부자고등학교인거같은데요?
이름표에 쓰여진 한자를 보니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동구여상이네요.
난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 다녔는데 86년도에 일본 갔어요. 금수저 아니어도 갔어요. 원하는 사람만.. 옛날 생각 나네요.
@@79violin 86년도에 비행기타고 수학여행가는학교가 흔한학교는아니죠...^^;;
저때는 비행기타고싶어도 돈없어서 못타는 집들이 많은시절이라... 지강혁사건도88년도 전이였으니...
유전무죄.... 무전유죄.... 빈부격차를보여주는 사건이였죠...
참 신기하네요.. 별 차이없는 시간대 같은데 여행가는데 연령제한이 있고 저렇게 자유롭게 칵핏을 들어가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다음날 바로 해외로 떠날 수 있는 지금 시기와는 너무 생소하네요.
지금도 비행을하면서 매일 김포공항에 들어가지만 김포공항에서 유럽을 갔었던 적이 있다는걸 듣기만 했지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까 너무 신기하네요.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예전처럼 다시 자유롭게 해외여행객들을 태우고 비행하고 싶네요.
그시절gdp 3000 ᆢ지금
30000 ᆢ
저때 항공법이 아마 잘안되어있어서 그런것 같네요
9.11 테러이후 조종실 함부로 못들어감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활발해졌네요ㅎㅎ
어머님 말씀이 4살때 아버지가 사우디로 출국하시는데 김포공항에서 제가 아부지 가지마~~하고 엄청 울어서 출국하시는 분들 다 울었다고 ㅋㅋㅋㅋ
캬...기억이 새록 새록...배낭여행 1세대입니다...남산밑 반공센터가서 1주일 소양교육받고 도장 받은거 중앙청앞 외무부 여권과에가 여권받고 기내 흡연이 되던시절 배낭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자전거타고...돈이없어 김포공항에서 100불 들고...이나라 저나라 자전거로 이동하며 돈이없어 일도하고...대부분 노숙에...해외여행을 했더랬습니다...좋은 영상 제작해주셔 감사합니다...옛날티비 영상제작팀 최고🎉
넘 그리운 옛날이네요!!! 모든게 정겨워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