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73년도에 EMI학원 여름방학 때부터 다녔어요.ㅎ 영어는 정통중학영어인가요. 강사 선생님 성함이 김계환 선생님이셨던 것 같아요. 이 양반이 지금 생각해 보니 광고 하려고 시작할 때마다, EMI 정통중학영어 김계환 선생! 이걸 따라 읽으라고 했어요.ㅎㅎ 142번이 수색에서 서울대 상도동 쪽이라서 종로5가는 안 갔을 텐에요.ㅎㅎ 반갑습니다. 저도 본의 아니게 92년부터 99년까지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다 왔어요.
Great montage. The music compliments the pictures very well. Back when life was simpler with less comfort, but stress was less and people knew better how to enjoy simple things.
이 댓글을 쓰는 2022년 3월 19일 현재 1970년대를 기억하며 그 때를 살아온 사람들의 추억이 아직 살아있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어지는 미래가 오겠지 그냥 먼 과거의 사진으로만 바라볼 미래가 오는거지 이렇게 1970년대는 아직 추억속에 살아있다
저때 남산과 창경원에 기면 엄청 신기하고 신비로웠음..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거기 가면 마냥 신기해하고 그했지.. 근데 훗날 30대때 그 규모가 비교도 안되게 큰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가보니 저때 창경원보다 신기하지가 않더라...물론 저때 창경원에 갔을때는 어렸을때이고 90년대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갔을때는 성인이 된 후에 갔으니 어릴때 가본 창경원이 더 신기하고 신비로웠을수 있지만 저 시절 남산이나 창경원의 풍경이 마냥 신기한 것은 당시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아 뭐든지 자주 접하지 못해 모든게 신기하고 자연환경이 많은 아날로그 시절이라 정겨움이 많이 배겨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었음..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저 시절엔 놀이 시설이나 동물을 보면 엄청 신기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핸드폰 등 온갖 매체들이 발달하여 그것들을 봐도 감흥, 신기함, 신비로움이 그리 크지 않은 것임.
무단상경 많았어요. 부모님 허락없이 서울로 온 것이 무단 상경이 맞습니다. 형법상 불법은 아니지만요. 옛날 1937년에 서리 해먹다 걸려서 아버지에게 혼줄나서 무단 상경하여 종로구 청진동에서 해장국집 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서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진옥이 있습니다.
70 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소위로 복무하던 해였다.. 아직도 그때 그시절이 생생히 기억나는데..70 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전역후 72 년 부터 근무했던 직장이 소공동이어서 성업은행 본점 건물.. 미도파 백화점 그리고 명동거리는 점심시간엔 식사하러 퇴근후엔 데이트 하던 거리라 감회가 새롭다.
깡패같은 리더쉽이지만 분명 공이 크긴하죠 대신 국민들은 오로지 경제성장의 도구로서 이용되엇기에 슬픔도 공존하는것이고.. 그래서 진정한 공은 국민들의 맨손에게 돌려야한다봅니다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던 미국의 영향이 가장 크기도햇구요 미소패권경쟁에서 남한까지 공산화되면 일본까지 먹히고 일본의 제국주의+공산화는 더 큰 불행을 불러올수잇기에.. 무역의 이유도 있고..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확신하기ㅜ어려웟다고하네요 이렇게 천문학적인 지원을 한다고해도 남한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잇을까에 대한 불확신이 컷고 .. 그럼에도 결국 해낸 남한 국민들을 지켜보며 미국내 정부관계자들도 많이 놀라워햇답니다 기대이상의 성장과 민주주의사회로의ㅜ발전.. 누구도 예상하기어려운 상황속에 해낸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정말 고생하셧다고 꼭 말씀드리고싶네요
which proves it's all about identity and national culture, not globalism and not metling pots. Learn from the world, but do not let it change your culture roots.
1970년 김현옥 시장 와우 아파트 부실공사로 욕 엄청 먹었지요 그바람에 물러 났고요 그당시는 임명직 저당시 3.1 고가와 3.1빌딩은 한국발전의 상징 처럼 인용 됬고요 남산 어린이 회관과 식물원 그리고 보이는 도쿄 호텔빌딩 창경원의 보트놀이와 동물들 보러 많이 갔고 바로앞 까지 전차운행 그 전차 타고 왕십리에서 창경원까지 소풍 갔었 답니다
이때는 극장표 130원 1000원이면 목욕하고 극장가고 차마시고도 돈이 남았네요 고급 단독주택 400만원 강남 아파트 400만원 시골 큰 황소 한마리 25만원~30만원 여자 하루종일 밭매면 150원 남자 하루일당 400원 시골 전재산 50만원 보뜰논 땅한평 180원 국민학교 선생 월급 2700원 당시에도 강남 아파트 비싸서 돈없어면 못사요 방한칸 부엌 전세 20만원
비슷한 시대에 생활 했네요 저도 동부극장 70년대초에 여러번 드나들었죠 친구아버지가 당시 동부극장 경비일을 했거든요 ㅎㅎㅎ 그당시 뚝섬일대는 뚝도시장 일대 말고는 공장들이 들어서던 시기였는데 당시 동부극장과 뚝도극장이 인근에서 가장큰 극장 이었읍니다 지금은 가보니 당시 지형지물은 알수가 없더군요 광나루다리 초입의 오래된 포플라나스 가로수 많이 겨우 흔적을 알수있게 하더군요..
박정희 아니었어도 우리나라는 발전할 나라였다. 아니, 더 빨리 발전할수도 있었으며 부의 분배 또한 더 공정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박정희 이전부터 구상해온것이었고 박정희는 그것을 이용한것 뿐이다. 지금처럼 역으로 동양에서 서양으로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는 표현을 어디 감히 박정희 시대때 상상할수 있었겠는가... 두발자유화는 1999년~2000년쯤 그룹가수 S.E.S가 방송정지 먹어가면서 염색머리 밀어붙여서 가까스로 풀린것이다. 그제서야 그나마 표현의 자유가 인정된것인데 감히 박정희때 저랬으면 미친놈 소리 듣고도 남았다. 지금 외국인들이 한국사람 그러면 환호하고 난리다. BTS가 한목했는데 지금 BTS가 비틀즈나 뉴키즈온더블록을 넘어섰다는 걸 아는 나이많은 분들은 거의 없을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제대로 직시하고 글을 적었으면 한다... 좌파교육이라니... 이러니 대선때 보수가 자꾸 패하는것이다.
위의 사진중 1 :28 에 "기공식에 참석한!" ... 하고 글이 멈추었는데 1970년 4월 김현옥 전서울시장의 뒤를 이은 ▶ "양택식 전 서울시장!" 이다! 위의사진은 서울전차선로중 제일마지막으로 남은 종로구간의 전차선로의 전차궤도 철거 기공식 장면이다! 지하철 1호선의 설계를 맡으신분 이셨고! ... 1974년 8월15일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장에서 8.15 축하 기념 연설을 시작할때 김일성이 내려보낸 저격수 간첩 문세광이 박정희대통령을 저격하려 단상 으로뛰어들며 권총을 난사! ... 박대통령암살은 불발로끝났으나! 그만 육영수여사의 머리를 관통 그자리에서 운명하셨다! ... 하필 이날이 양택식 전서울시장이 주관한 서울지하철1호선 개통날이라! ... 양택식 서울시장은 박대통령의 만류에도 양심의가책이 있다하며 서울시장직을 내려놓으셨다!
20대.시절이.생각나네요
그땐.가진것.없어도.마음은.줄거워던.젉은날들이....그립군요..그시절.명동.
꽃다방.돌고래.몽셀통통.
본전.피제이..카네기.등.등...벌써.70이넘고있군요
1970년시절 서울모습이 가장 보고싶고 그리워여
귀한영상 감사드립니다~~~
자막이 흐르는 17분 동안 많은 회상과 추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그대 의 영상 을 보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에 여행 을 너무나 실감나게 잘했습니다.
잊고 살았는데...너무도 소중한 추억 소환 을 하게 해주셔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대의 영상 을 항상 응원합니다.
엄지척 👍 하트 ❤ 박수 👏
이 시절 중학교 때 종로 2가 EMI 학원다니고, 고교시절 종로5가 까지 매일 신촌여객 버스 142번 타다가 점점 서대문과 북아현동고개 넘어 신촌 로타리를 다닌 기억이 납니다. 45년전 고국을 떠났으니 제 기억엔 지금의 서울보다 더 낯익고 그리운 모습들. 감사합니다.
그당시 이민을 가셨으면 그럴만도 하겠네요! 이때 이민 가신분들 타국에서 고생많이 하셨던데..
@@TVLagom 감사합니다 ㅎㅎ
우리아버지도 캐나다 이민가시려 했는데 엄마가 싫어하셔서 못갔다하심
우리아버지가 그때 이민가셨으면 빨리안돌아가셨을텐데ㅜ
저도 73년도에 EMI학원 여름방학 때부터 다녔어요.ㅎ 영어는 정통중학영어인가요. 강사 선생님 성함이 김계환 선생님이셨던 것 같아요. 이 양반이 지금 생각해 보니 광고 하려고 시작할 때마다, EMI 정통중학영어 김계환 선생! 이걸 따라 읽으라고 했어요.ㅎㅎ
142번이 수색에서 서울대 상도동 쪽이라서 종로5가는 안 갔을 텐에요.ㅎㅎ
반갑습니다. 저도 본의 아니게 92년부터 99년까지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다 왔어요.
세발 트럭
귀한자료 잘보고갑니다. 감사드려요.
대학 다니던 시절.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의 영상입니다,,
부잣집 아들이셨네요..ㅎ
저당시에 대학생이었으면 지식인이었네요
나 일곱살때 처음 서울을 비둘기 열차타고 방문햇는데...그때 머리속에 남아있던 기억들이랑 분위기가 비슷한거 같네요....!!
제나이46살인데 저태어나기전분들 고생 많이 했겠네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Great montage. The music compliments the pictures very well. Back when life was simpler with less comfort, but stress was less and people knew better how to enjoy simple things.
이 댓글을 쓰는 2022년 3월 19일 현재 1970년대를 기억하며 그 때를 살아온 사람들의 추억이 아직 살아있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어지는 미래가 오겠지 그냥 먼 과거의 사진으로만 바라볼 미래가 오는거지 이렇게 1970년대는 아직 추억속에 살아있다
●2022년 현재 북한평양보다 52년전인 70년 서울이 차량도 더많코 가게도 더많코 사람들 옷차림도 더 세련됐고 더 멋지네
참 좋은 영상올려주셨습니다, 감사히 보았습니다
가슴뭉클합니다
그당시 삼일빌딩이 제일높았었는데..
그 높은건물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자주 빌딩밑에서 위를 물끄러미 쳐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정말~
귀한자료
💜💜💜😂
참 추억 돋네요 ~! 우리는 지금 잘살고 있는거 겠죠 ?
그시절이 가난했어도 사람들은 정이 많았죠.
남대문 옆 무역진흥공사 건물 앞에 수출 10억불 달성을 위한 전광판을 매일 점검하던 것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저때 남산과 창경원에 기면 엄청 신기하고 신비로웠음..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거기 가면 마냥 신기해하고 그했지.. 근데 훗날 30대때 그 규모가 비교도 안되게 큰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가보니 저때 창경원보다 신기하지가 않더라...물론 저때 창경원에 갔을때는 어렸을때이고 90년대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갔을때는 성인이 된 후에 갔으니 어릴때 가본 창경원이 더 신기하고 신비로웠을수 있지만 저 시절 남산이나 창경원의 풍경이 마냥 신기한 것은 당시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아 뭐든지 자주 접하지 못해 모든게 신기하고 자연환경이 많은 아날로그 시절이라 정겨움이 많이 배겨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었음..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저 시절엔 놀이 시설이나 동물을 보면 엄청 신기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핸드폰 등 온갖 매체들이 발달하여 그것들을 봐도 감흥, 신기함, 신비로움이 그리 크지 않은 것임.
저 시대 명동을 쓸고 다녔던 기억으로 추억을 소환해 봅니다 감사 해요
옛날 어린이 회관 정원이 멋지다.청경궁에서 배타는 모습은 뉴욕 같다
그옛날이 그립네요 못살고 힘들었어도 인정많고 훈훈한사회 지금처럼 험악한 세상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살기 어렵다해도~ 저때 생각하면 ~ 어려운게 아니지요~ 저때을 생각하며 ~잘견디며 살아갑시다~^^
예~ 힘내셔요~^♡
귀한영상 보면서 코끝이 찡하네 저때 난 국민학교 5학년 복원왕님 감사합니다 귀한영상
옛날 생각 나네요. 국민학교 4학년 때 전차 탔던 기억, 상업은행 본점, 남대문 시장, 명동, 미도파 백화점, 남대문
감사합니다!
추억에 잠기며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 실감하게 되네요.
무단 상경은 아니고 무작정 상경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 가는 것이 불법은 아니니까요.
무단상경 많았어요.
부모님 허락없이 서울로 온 것이 무단 상경이 맞습니다. 형법상 불법은 아니지만요.
옛날 1937년에 서리 해먹다 걸려서 아버지에게 혼줄나서 무단 상경하여 종로구 청진동에서 해장국집 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서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진옥이 있습니다.
@@SilkShoes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soan-lt7dl8kz2s
안녕하세요. 이토록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SilkShoes 따뜻한 마음 느껴집니다. 익명의 공간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7~8살때 친척이 미국으로 이민간다해서 미도파백화점들러 선물을 사주신생각이 나네요. 그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pro trick : you can watch series on Flixzone. Been using it for watching loads of movies lately.
@Liam Messiah Yup, have been using flixzone for since december myself =)
@Liam Messiah definitely, have been watching on flixzone for years myself :)
@Liam Messiah definitely, I have been watching on flixzone for since november myself =)
대머리까진.양택식.시장도보이고.내가70년6월30일.용산역광장서.제대증을받았는데.너무나.서글프네요.너무나.보구싶은게많아요.종로는.한일협정반대로.2년을보냈고.명동.을지로는.우리의놀이터였고.추억이새록새록생각이나네요
제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버스 디자인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16:00경 大燃閣(대연각; 크게 불타는 집)호텔 멀쩡한 모습도 확인합니다.
전 2학년때였네요.
1970년 태어났습니다 보광동에 살았구요 이제보니 다른나라 같습니다 그립고 반갑고 그렇네요
불과 40~50년 전인데 지금과는 영 딴판이네요 ㄷㄷ
정말 이 한국이 발전 하나는 어마무시하게 해왔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는 영상인 것 같습니다..!
다만 옛 추억들은 점점 사라진다는 게 솔직히 많이 서글프네요 ㅠㅠ
내가 태어난 1970년.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70 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소위로 복무하던 해였다..
아직도 그때 그시절이 생생히 기억나는데..70 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전역후 72 년 부터 근무했던 직장이
소공동이어서 성업은행 본점 건물..
미도파 백화점 그리고 명동거리는
점심시간엔 식사하러 퇴근후엔
데이트 하던 거리라 감회가 새롭다.
한 때 근대화의 상징처럼 군림하던 삼일고가도로,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지나다 삼일 빌딩의 위용을 보며 참으로 자랑스러워 했더랬죠^^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것을....ㅋ
잘봤습니다^^
딱 저때 코스모스백화점 생길때 울부모님 명동서 레코드가게 하셨댔는데. .
아련하네요 . . .
일부 사진에 60년대 사진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전차가 있는거.
12분 13초의 자막,
흔히들 '말뚝박기'로 알고 있는데, 말뚝박기가 아니고 '말타기'였습니다.
저희는 말좃박기였습니다.ㅎㅎ
시기가 엇갈린 사진들이 섞여있습니다. 1970년 이전에 이미 청계천 복개완료. 청계천 주변 판자촌은 훨씬 이전 사진.
일본한테 돈을 빌렸던 얻었던 그걸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렇게 번영해서 사니 부끄러워할 거 없다. 자주, 주체, 민주, 인권은 생존을 보장못하면 무의미...
사진 주인님: 혹시 13:55 에 앉아서 국수먹는 아이 지금 어니있는지 아세요? 살아있으면 50대 후반 - 60 살 쯤 대갰죠. 저의 누나랑 비슷하네요. 눈물남니다.
그거 625 전쟁 때 사진입니다.
좋은 영상 잘 보고 갑니다~~^.^
박정희 대통령 께서 이때 급속히 대한민국을 많이 발전시켰네요~
깡패같은 리더쉽이지만 분명 공이 크긴하죠
대신 국민들은 오로지 경제성장의 도구로서
이용되엇기에 슬픔도 공존하는것이고..
그래서 진정한 공은 국민들의 맨손에게 돌려야한다봅니다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던 미국의 영향이 가장 크기도햇구요
미소패권경쟁에서 남한까지 공산화되면 일본까지 먹히고 일본의 제국주의+공산화는 더 큰 불행을 불러올수잇기에.. 무역의 이유도 있고..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확신하기ㅜ어려웟다고하네요
이렇게 천문학적인 지원을 한다고해도
남한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잇을까에 대한 불확신이 컷고 ..
그럼에도 결국 해낸 남한 국민들을 지켜보며
미국내 정부관계자들도 많이 놀라워햇답니다
기대이상의 성장과 민주주의사회로의ㅜ발전..
누구도 예상하기어려운 상황속에 해낸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정말 고생하셧다고 꼭 말씀드리고싶네요
무슨 경제 성장의 도구? 가난했기에 돈 벌기위해 열심히 일한것인데! 박통이 강제로 시켰냐? 국민이 열심히 하도록,돈 많이 벌어,가난과 배고픔 벗어 나도록,판 만들고,돗자리 깔아 준것임. 말장난 솜씨가 좀 있는데,배배꼬지 말기를…
아~~~ 그리운 옛 시절, 너무 눈에 익은 동네들, 그리운 삼화상운 버스의 엔진룸 위의 좌석(나의 지정 좌석) ㅋㅋㅋ
초등학교 2학년때.. 아 세월이여..
갑장이네요 ㅎ 반가워요
16:25 도쿄호텔이 아니라 도큐호텔입니다.
같은생각을 ᆢ
설명중 오류가 있군요, 사진인물은 양택식 서울시장이고 전임 서울시장이 김현옥씨로 알고 있습니다...
네 선생님 말씀이 맞읍니다.본인이 한번더 확인 했어야 되는데.. 고맙습니다.
맞고요~
@@md042141 김현옥시장이 초등학교에 어린이들 책받침도 나눠줬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는 책받침 받고도 기뻤던 생각이 나네요~
저도70년대학창시절인가요.지금은아련한추억과중고등학창때.기억이
청계천과명동.지금의.리라아트고등학교를등교.서울은평구갈현동집
에서학교.중구예장동.까지버스로통학하구.학교파하면.남산.길로.책가방들고걸어간추억.명동.피카다리극장.근처를머리에떠올리던기억들.특히천계천은그당시우마차에포목을싫고가는상인들.겨올엔동복 검은바지.앞에챙모자.기억이나내요
Amazing how far Korea has come in only a short time. Thank you for theses.
which proves it's all about identity and national culture, not globalism and not metling pots. Learn from the world, but do not let it change your culture roots.
어머니 아버지가 한참 젊으셨을 시절을 보고 있으면 아련함과 슬픔, 뜻모를 입 벌어짐 여러현상이 발생하곤 합니다
꿈과 사랑이 넘쳐 흐르던 시절!
사진 이미지 사용 요청을 하려면 어떻게 연락드리면 되나요?
내가 태어난해 참 아련합니다 시간이라는게 흐르는게 아니라 내 기억속에 머무는듯 언제 이리 나이를 배불리 먹었는지 헛웃음만
저 다음해에 대연각 화재났었지요 생생히 기억합니다 ㅡㅡㅡㅡㅡ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음.. 땅값?
1:53 은 1967년입니다.
버스요금10원~ 문이 두개였죠 차장님의 문을두번 치고 오라이~ 추억의 생각이 납니다
광진교북단 광나루영상이나 사진있으면 좀 올려주세요 내가태어나 자란 내고향좀 보고싶네요 70년대80년대초까지 뱃집들도 많이있었는데
아~ 한남동 우리학교 그때 모습 반가워라.
굴곡의세월을보낸사람으로써참!만감이교차합니다!끼니를못때우고연탄한장모사ㅗ차디찬방에서6시구와어린시절과젊은나이에갖은고생한기억이두렵습니다
대연각 호텔 화재 1년전이군~~ 71년 크리스마스날 신세계백화점 옥상에 롤러스케이트 타러갔는데 길건너 대연각에 불이 활활 ㅠㅠㅠㅠㅠㅠ
서울역 맞은편 건물에 '아지디 알'이 아니고 '아이디알'입니다.
1970년 11월에 명동 성모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잘보았습니다 😂
6분55초
저 길가운데 은행나무아래서
전차타고 학교가던 생각이.....!
삼륜자동차.남녀학생책가방.교복.....모두 아름다운추억😁
당시 서울에서 인천간 경인선 열차주행 자료잇으면 올려주삼
동부극장이라 하교길에 그 앞을 지나고 중랑천 뚝길로 자전거를 빌려탔었는데, 기억보다 훨씬 지저분했네요. ㅎㅎ
70년 무렵이면 뚝섬 빈터에선 여전히 농사짓고, 영동교 아래로 나룻배가던 시절인데, 그런 것이 보이면 이상할까요? ㅎㅎ
희귀사진
내가테어난해
봉천동 산101번지에서 테어나서...꼭떼기집올라다니기 힘들었는데ㅎ 주소가왜 산 인가했더니 무허가몄다는..서울대생 대모에 최루탄냄세맞으며...뭣도모르고 학생들이 공부는 안한다고 욕했던 동네 아줌니 아자씨들...
한국에 70년때 발전됬다.지금은 아름다운 나라 같아
1970년 김현옥 시장 와우 아파트 부실공사로 욕 엄청 먹었지요 그바람에 물러 났고요 그당시는 임명직
저당시 3.1 고가와 3.1빌딩은 한국발전의 상징 처럼 인용 됬고요
남산 어린이 회관과 식물원 그리고 보이는 도쿄 호텔빌딩
창경원의 보트놀이와 동물들 보러 많이 갔고 바로앞 까지 전차운행
그 전차 타고 왕십리에서 창경원까지 소풍 갔었 답니다
어린 넝마주위도 참 반갑네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나의 모든것드리리다
잘보고갑니다
이때는 극장표 130원 1000원이면 목욕하고 극장가고 차마시고도 돈이 남았네요 고급 단독주택 400만원 강남 아파트 400만원 시골 큰 황소 한마리 25만원~30만원 여자 하루종일 밭매면 150원 남자 하루일당 400원 시골 전재산 50만원 보뜰논 땅한평 180원 국민학교 선생 월급 2700원 당시에도 강남 아파트 비싸서 돈없어면 못사요 방한칸 부엌 전세 20만원
박정희 아니였으면 이나라 어찌되었을까 아마적화 됐을수도?지금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인물임
박정희 빨갱이였습니다.
@@jmoon745 너나 전향하라.
양택식 시장
세영 영민우영 왕규 ~많은친구들~
예전엔 공중전화 오래 쓴다고 시비붙고 폭력행사하는 사건 뉴스로 종종 나왔었는데~
'숭례문은 ...미군들에게도 아주 신기하게 보였든...'이 아니고
'신기하게 보였던...'입니다.
전차궤도걷어내는
양택식 서울시장
인왕산에 북한산이라고 달아놨구려...
이시절로 가서 재벌로 살아보고 싶다
ㅎㅎ
저때가내나이15살때영상이네
양택식서울시장!
전차괘도를 케내지않고
아스팔트 포장한곳도 많아요
으와~오비스케빈에서74년도에 여자 애들과 ^^
ㅋㅋ 오비스 캐빈 까지 나옵니까?? ㅋㅋ
국민학교 3학년
양택식서울시장
양택식 시장!
옜 총독 건물 철거는 잘못된 것. 건물이 무슨 죄가 있다고 철거를 하다니. 역사를 위해 놔뒀어야.
오비스 케빈~~~!
쎄시봉과 같은시기 같은 명동!
종환이 兄이 생각나네....
64년 생인데요, 화양리 동부극장 우리 동네였어요...옛날 생각이 나네요...동부극장에서 이미자 리사이틀도 했었는데...백발처녀같은 무서운 영화도 봤었죠....
비슷한 시대에 생활 했네요 저도 동부극장 70년대초에 여러번 드나들었죠 친구아버지가 당시 동부극장 경비일을 했거든요 ㅎㅎㅎ 그당시 뚝섬일대는 뚝도시장 일대 말고는 공장들이 들어서던 시기였는데 당시 동부극장과 뚝도극장이 인근에서 가장큰 극장 이었읍니다 지금은 가보니 당시 지형지물은 알수가 없더군요 광나루다리 초입의 오래된 포플라나스 가로수 많이 겨우 흔적을 알수있게 하더군요..
@@석천석천 아 그렇군요...아마도 김대성님과는 가까운 근처에 살았엇나 보네요...ㅎㅎ
박정희 대통령은 정말 대단하신분이다.... 이사진들을 보니까 다시 느끼네... 지금 젊은이들은 좌파교육 받아서... 정말 모르지...ㅜ.ㅜ
박정희는 국민을 개돼지 다루듯 했지요, 장발단속하고, 치마길이 재고, 술집에서 박통 욕하다가 중정에 끌려가 개패듯 맞고 병신되고, 그래도 박정희가 좋다니, 답답합니다.
바지락칼국수 ㅋㅋ
@@jmoon745 개소리마라 서울대 고대 일부 운동권 학생이나 일부지식인들만 해당되지 너같이 공부 못하는 무지랭이들 안접아갔다 어디서 뻥이야
박정희 아니었어도 우리나라는 발전할 나라였다. 아니, 더 빨리 발전할수도 있었으며 부의 분배 또한 더 공정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박정희 이전부터 구상해온것이었고 박정희는 그것을 이용한것 뿐이다. 지금처럼 역으로 동양에서 서양으로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는 표현을 어디 감히 박정희 시대때 상상할수 있었겠는가... 두발자유화는 1999년~2000년쯤 그룹가수 S.E.S가 방송정지 먹어가면서 염색머리 밀어붙여서 가까스로 풀린것이다. 그제서야 그나마 표현의 자유가 인정된것인데 감히 박정희때 저랬으면 미친놈 소리 듣고도 남았다. 지금 외국인들이 한국사람 그러면 환호하고 난리다. BTS가 한목했는데 지금 BTS가 비틀즈나 뉴키즈온더블록을 넘어섰다는 걸 아는 나이많은 분들은 거의 없을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제대로 직시하고 글을 적었으면 한다... 좌파교육이라니... 이러니 대선때 보수가 자꾸 패하는것이다.
좋지 않아요 누른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위의 사진중 1 :28 에 "기공식에 참석한!" ... 하고 글이 멈추었는데 1970년 4월 김현옥 전서울시장의 뒤를 이은 ▶ "양택식 전 서울시장!" 이다!
위의사진은 서울전차선로중 제일마지막으로 남은 종로구간의 전차선로의 전차궤도 철거 기공식 장면이다! 지하철 1호선의 설계를 맡으신분 이셨고! ... 1974년 8월15일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장에서 8.15 축하 기념 연설을 시작할때 김일성이 내려보낸 저격수 간첩 문세광이 박정희대통령을 저격하려 단상
으로뛰어들며 권총을 난사! ... 박대통령암살은 불발로끝났으나! 그만 육영수여사의 머리를 관통 그자리에서 운명하셨다! ... 하필 이날이 양택식 전서울시장이 주관한 서울지하철1호선 개통날이라! ... 양택식 서울시장은 박대통령의 만류에도 양심의가책이 있다하며 서울시장직을 내려놓으셨다!
박대통시절이 그립다.
보고싶다.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고 최단기 초고속 급성장 시킨 위인.
다른 사람이 대통령 했으면 더 성장했을 수도..
@@삶은달걀-o6h 😛
@@삶은달걀-o6h 맞어! 뒤에서 1~2등은 혔을거여!
암~그라쥐라잉!
우리나라기독교의 부흥과 함께~열정적인 믿음과새벽기도~크리스찬 대통령들의노고와수고~박정희대통령의 강한집념~모든것이 합력하여~선을 이루듯~모든것이 합력하여 축복의길로~~주님~감사합니다~이나라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소서~♡♡♡^^
서울 시장 구씨도 보이네요 지워 주세요.
혹시 구자춘씨 말씀 하시는건가요? 왜 지워달라고 하시는건지요~~
김대중만올리면만사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