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죠. 그리고 워낙 백성들의 신망이 강하니 백성의 반발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모든 사실을 날조했다고 뵈야 되는 거죠. 어릴 때 부터 권력다툼으로 살아온 호족들과 흙수저로 순진하게 살아온 궁예의 음모 실력은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죠. 신돈과 같은 신세가 됐다고 보면 틀림없죠.
궁예는 한반도 역사에서 신분제에 대한 개혁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왕임. 본인부터가 신분에 대한 컴플렉스와 모순을 겪었기에 능력에 따른 공평한 세상을 꿈꾸었을거임. 그렇기에 강력한 중앙집권을 꿈꾸며 급진적인 혁명을 꿈꾸다가 결국 호족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죽은거.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시도였을거라 봄. 호족들은 당시도, 그 이후로도 고려라는 나라를 좌지우지할정도의 기득권들이었으니 힘없는 백성들의 편에 서려고하던 궁예를 좋게 평가하려고 하지않았을거임.
패배자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의심 가는 정황은 맞다고 봄. 심지어 고려를 세운 왕건조차 송악을 중심으로 큰 호족 출신이니 호족 견제하다가 호족들이 왕건을 왕으로 세우고 그 유명한 29명의 부인을 맞이하게 된게 아닐까 싶음. 송악에서 철원으로 수도를 옮긴것도 호족의 영향에서 벗어난 땅에서 시작하려는게 아닌가 싶음. 상대적으로 강원도 쪽은 호족세력이 적었다고 봐야하니까...
@@음악사랑-o9x궁예의 세력 기반은 명주를 기반으로 한 철원이고, 왕건의 기반 세력은 송악을 기반으로 한 황해도임. 궁예는 황해도 세력과 싸우거나 통합해야 했는데 그를 위해서 송악에 도읍을 정하고 왕건을 받아드림. 계속 황해도와 마찰이 생기자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도 바꿈. 이 과정에서 왕건의 쿠데타로 쫓겨나는거임. 그래서 왕건은 쿠데타 명분으로 진짜 미륵은 궁예가 아니고 나라고 여론전 피는거고
@@user-runqian 그런만큼 호족의 지배가 약했다고 봐야죠.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건 송악에 지지기반을 둔 왕건이 있으니 자신의 왕권이 견제된다고 생각해서 인것 같고 그래서 농업이 주 산업인 한반도 땅에서 호족이 지지기반을 키울 수 없던 강원도 쪽으로 옮긴것 같음. 문제는 호족을 견제하려한게 너무 빠른 처사가 아니었나 싶음.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그 이후 공신들을 서로 견제시키면서 한명씩 없앴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긴함. ㅋㅋㅋㅋㅋㅋㅋㅋ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인프라가 하나도 깔리지 않은 곳에 수도를 옮기진 않음. 최소한 바로 옆에 어느 정도 규모의 큰 도시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에 수도를 찍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임. 고로 궁예가 도읍지로 정한 철원은, 지금의 철원이 아니었을 것이며 왕건이 궁예를 꺾고 난 이후, 그 지역 사람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을테니 왕건의 유언을 참조해보면, 그 지역이 어느 곳인지를 대충 유추해볼 수 있음.
님 원래 군주는 하늘에서 선택한 사람입니다 궁예는 신라 서자출신 승녀 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나라를 잘 다스려 나갑니다 그래서 피는 못속여 천한 서자 출신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합니다 태조 왕건을 하늘에서 내려주신 통일군주 입니다 참고로 궁예는 군주는 커녕 자기 자신도 못다스려는데 가화만사성 입니다 처 자식 죽임 놈이 무슨 군주입니까 그냥 폭군이 맞아요
승자는 이미 승자로써 자신을 옹호했잖아. 그러니까 패자 입장에서도 고려하는 게 뭐가 웃겨 ㅋㅋㅋ 그리고 그게 딱히 패자를 옹호해주는 거라고 보기도 힘든데? 이럴 수도 있었다라고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거지 그게 뭐 반대 되는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옹호하는 거야? ㅋㅋㅋ
고려는 외세침략에 매우 시달렸던 국가였다보니 정사기록이 대부분 불태워져서 없음. 고려사든 삼국사기든 정확한 정사로 보기힘들고 그저 입에서 전승되는 야사라고 보면됨. 그렇기에 궁예를 단편적으로 판단할수없다고 하는거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 삼국사기는 심지어 고려시대 사람인 김부식이 만든거고 고려사 역시 조선시대때 만들어진거.
앞뒤가 안맞는 역사는 곧 거짓역사이며 이는 승자의 전유물이라. 궁예는 영웅이였고, 탐욕스러운 왕건과 그의 호족들이 궁예가 닦은 나라를 빼앗기위해서 명분을 만들었다. 그것이 자신을 승격화 우상화였다. 궁예는 국가에 암덩어리가되는 호족들을 처단하기위해서 스스로의 왕이자 신격화하여 정치적 도구로서 호족들을 제압한것이다.
고려사는 순전히 정권을 잡은 세력들에 의한 자기 합리화와 당위성을 위한 왜곡된 결과물. 철원 포천 연천 지역의 많은 민간 설화들이 그것을 증명. 신채호선생의 궁예에 대한 평가 또한 많은 부분 민간설화와 일치. 고련려의 부활과 서토정벌을 꿈꾸었던 궁예의 원대한 꿈은 지방호족연합세력에 의해 깨져버렸다는 것이 핵심.
#벌거벗은한국사 #최태성 #김동현 #장예원 #조나단
쉽고 재밌는 한국사 스토리텔링쇼 〈벌거벗은 한국사〉
매주 [수] 저녁 8시 20분 tvN STORY
호족이 너무 강하니까..잡으려다 실패해서 폭군으로 몰아 제거된게 아닐까 합니다 승자의 기록이니 게다가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않아서..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죠. 그리고 워낙 백성들의 신망이 강하니 백성의 반발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모든 사실을 날조했다고 뵈야 되는 거죠. 어릴 때 부터 권력다툼으로 살아온 호족들과 흙수저로 순진하게 살아온 궁예의 음모 실력은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죠. 신돈과 같은 신세가 됐다고 보면 틀림없죠.
왕건이 행한 초기 행위들을 보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짐
궁예는 한반도 역사에서 신분제에 대한 개혁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왕임. 본인부터가 신분에 대한 컴플렉스와 모순을 겪었기에 능력에 따른 공평한 세상을 꿈꾸었을거임. 그렇기에 강력한 중앙집권을 꿈꾸며 급진적인 혁명을 꿈꾸다가 결국 호족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죽은거.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시도였을거라 봄. 호족들은 당시도, 그 이후로도 고려라는 나라를 좌지우지할정도의 기득권들이었으니 힘없는 백성들의 편에 서려고하던 궁예를 좋게 평가하려고 하지않았을거임.
궁예는 호족을 족치려다 죽은거임
개념 ㅅㅌㅊ노
그에비해 왕건은 호족 응딩이 후빨하면서 왕된거고
저희고향 운천 명성산인대
울어서죽엇다하여서 울음산이라고도
불리는대 안타까운 위인이네요
저는 관인
ㅋ 나는 76년도 포천 도평리에서 군대생활!
패배자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의심 가는 정황은 맞다고 봄. 심지어 고려를 세운 왕건조차 송악을 중심으로 큰 호족 출신이니 호족 견제하다가 호족들이 왕건을 왕으로 세우고 그 유명한 29명의 부인을 맞이하게 된게 아닐까 싶음. 송악에서 철원으로 수도를 옮긴것도 호족의 영향에서 벗어난 땅에서 시작하려는게 아닌가 싶음. 상대적으로 강원도 쪽은 호족세력이 적었다고 봐야하니까...
추리소설은 역사에 끼지마세요
궁예는 왕권강화할려다보니 호족들과 마찰이 있었고 호족 대표 왕건에게 시해당한거임.
머저리소리
누가그래? 니맘대로?
@@음악사랑-o9x궁예의 세력 기반은 명주를 기반으로 한 철원이고, 왕건의 기반 세력은 송악을 기반으로 한 황해도임.
궁예는 황해도 세력과 싸우거나 통합해야 했는데 그를 위해서 송악에 도읍을 정하고 왕건을 받아드림.
계속 황해도와 마찰이 생기자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도 바꿈.
이 과정에서 왕건의 쿠데타로 쫓겨나는거임. 그래서 왕건은 쿠데타 명분으로 진짜 미륵은 궁예가 아니고 나라고 여론전 피는거고
@@음악사랑-o9x아니 궁예 맘대로지 나르시시스트 새키야
@@sang-hoonkim7733왕건은 권력을 호족들과 공유하기 위해 부인을 29명이나 두었죠
29명의 부인의 청탁도 들어줘야하고 애가 생길때까지 의무방어전 해줘야 하고 얼마나 피가 말랐을지
4:35 조나단 하드캐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웃김
한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서 지금알고 있는 역사들도 다를수가 있다는....
김영철은 궁예 그 자체...김두한은 NG~!
승자의 기록이 역사다………
저시대를 직접본사람은 없지 그시대의 작성된자료를토대로 추측하는거지 성군일수도있고 망군이기도하지
@@홍스랑 지금도 철원은 철베리아라고 불릴만큼 추운땅인데 이런곳으로 도읍정하면 성군일수가없죠
@@user-runqian 그런만큼 호족의 지배가 약했다고 봐야죠.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건 송악에 지지기반을 둔 왕건이 있으니 자신의 왕권이 견제된다고 생각해서 인것 같고 그래서 농업이 주 산업인 한반도 땅에서 호족이 지지기반을 키울 수 없던 강원도 쪽으로 옮긴것 같음. 문제는 호족을 견제하려한게 너무 빠른 처사가 아니었나 싶음.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그 이후 공신들을 서로 견제시키면서 한명씩 없앴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긴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당당 임기끝난 감옥갔다온 대통령들 잘했던거라고 미화되는거 보면 . 성군인지 망군인지 모를수 있음
@@user-runqian 그래서 용산으로 정했나 청궁에 말대로 역대급 모오지리
@@user-runqian넌 그딴걸로 성군 악군 구분하냐? ㅋㅋ
[청정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7:13 누가인가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콜록콜록~
나라수도는 주변에 강이있어야하는데 멀쩡한수도 개성놔두고 산골짜기 철베리아 철원으로 수도옮긴건 호족들 불만이 컸을거다
내가 지점에서 짱먹다가 본사로 영전 했는데,, 본사 새기들이 하도 지랄 떨어서 본사를 옮겨버린듯?ㅋㅋㅋ
역사무식자노 철원에서 패서호족들한테 항복받고 개성전에 철원이 궁예본거지였다 그래서 호족들 누르려고 자기 본거지로 천도한거야 제발 모르면 글쓰지마 이 능지없는것들아
철원에는한탄강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창피한소리하네 초등학교라도 졸업하시길 바람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인프라가 하나도 깔리지 않은 곳에 수도를 옮기진 않음.
최소한 바로 옆에 어느 정도 규모의 큰 도시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에 수도를 찍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임.
고로 궁예가 도읍지로 정한 철원은, 지금의 철원이 아니었을 것이며
왕건이 궁예를 꺾고 난 이후, 그 지역 사람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을테니
왕건의 유언을 참조해보면, 그 지역이 어느 곳인지를 대충 유추해볼 수 있음.
고려사는 왕건의 잔당들이 만든 것이기에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따라서 왕건은 쿠데타를 일으킨 나쁜 놈이다.
님 원래 군주는 하늘에서
선택한 사람입니다
궁예는 신라 서자출신 승녀 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나라를 잘 다스려 나갑니다 그래서 피는 못속여 천한 서자 출신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합니다
태조 왕건을 하늘에서 내려주신 통일군주 입니다
참고로 궁예는 군주는 커녕 자기 자신도 못다스려는데 가화만사성 입니다
처 자식 죽임 놈이 무슨 군주입니까 그냥 폭군이 맞아요
고려시대까지
여인들이 남자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고 굉장히 개방적이었습니다.
특히 성적으로...
왕씨도 결국 이씨에 의해 파멸했지... 왕씨가 별로 없는 이유..
철원에서 기침한다고 때리는게 정상은 아닌듯 ㅋㅋㅋ 거긴 지금도 한국에서 제일 추운 지역중 하나인데 ㅋㅋ
코로나 19에
감염된것임
즉 죽이지 않으면
나라가 날라감
중앙집권화 시도하다가 실패했을뿐...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자처하면 안되는 이유가 뭐지?
신라의 진흥왕이나 발해의 문왕도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했지만 그들이 폭군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궁예는 승려이고 백성을 구한다라는 면에서 미륵이라 칭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
궁예가 이걸 모름 사람의 가치관은 인간적인 기준과 원칙원리적인 기준이 있는데 이 두가지를 소통하는 법으로 나가면서 가치가 따르게 하면은 모든것이 굴러들어온 그래도 안되면 관심법 만들어 때려누이면 되는것이고
현재도 궁예같은 사람이 위에 있네요~ ㅠㅠ
궁예는 좋은 왕이었든 아니었든 권력 다툼에서 졌고, 굴욕적인 모욕까지 역사서에 기록된 벌까지 다 덤탱이 쓰인게 아닌지...
궁예가 죽은 뒤 이흔암, 환선길의 반란이 있었고, 김순식도 반기를 들었고, 백성도 반반씩 슬픈 사람도 있었을듯
누구인가?누가 기침 내었어!!
왕건이는 유하니 왕이되고, 궁예는 강하니 죽은 것이지.
왕권강화에 실패한 궁예라 보면 가장 이해하기 쉽다.
당시 호족이 영주급이었으니 그 호족들이 힘을 합하면 궁예보다 훨씬 강했지.
북조선의 김씨 왕조?
끝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호족도 광종때되서 조금안정되었죠 호족이문벌귀족이되서 고려멸망의원인이
태종 이 방원과의 비교는 무리지
태종은 외척, 공신들에게는 저승사자였지만 백성들에게는 진정한 나랏님이었지
뭐 왕건의 후손들도 이성계한테 똑같이 죽었으니
시대를 잘못 태어난 궁예
지금 시대 태어났으면.. 궁예도 반신반인 됬을텐데....
됬이아니라 됐임
따봉.. 이 여기서 유래된건가
마즘
무식하면 이렇게 추할 수가 있군 ㅉㅉ
관심법? 직속 민간사찰 기구였을듯?
궁예=김영철!이 공식은 100년 후에도 그대로 일 듯 ㅋㅋㅋ
썸네일 요약 : 선채로 죽었어...!!
아무 일도 없었다...
김군 이군 박군 최군,,,,,, 궁예 성씨는 폭씨인가?
울나란 웃기는게 승자의 기록이라고하면서 패자를 옹호해주는경우가 많거든 그럼 울나라 역사는 전부다 승자는 나쁜넘들이고 패자는 존넘들인건가 웃기는거지
승자는 이미 승자로써 자신을 옹호했잖아. 그러니까 패자 입장에서도 고려하는 게 뭐가 웃겨 ㅋㅋㅋ 그리고 그게 딱히 패자를 옹호해주는 거라고 보기도 힘든데? 이럴 수도 있었다라고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거지 그게 뭐 반대 되는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옹호하는 거야? ㅋㅋㅋ
멍청한건가
연산군 재평가하는거 봤냐?
무지성 억빠하는 것도 아닌데 왤캐 불편하세요?
역사는 승리에 의해쓰여진다.. 왜곡이있었겠지.
누가봐도 이건 왕건이의 쿠데타다 자고로 칼로흥한자 칼로망한다 왕씨도한 이씨에게 망한다
500년간 잘 해먹고 망하면 칼로 흥할만 하지~~~~
콜록 콜록 에~~~ 취~~~
호족한테 진거임. 호족대표 왕건이 결국왕이되고.. 뒤통수후리고 영웅이됨
옴마니반메홈돨🐕
역사는 승자의입장에서 써여집니다
누구나 평등한 민주공산국가. 세웠는데. 몇년을 못가고. 독재국가가 된네. 부칸. 처럼
양나라 무제 가 한것과 같은 방식이네..
마키아벨리의 신정국가 이론을 보면 태봉의 궁예는 잘못하지 않았다.
다만 호족 세력들이 제어가 안되었을 뿐.
혹시 북한의 조상이 궁예인듯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타카-f3s 폭군이세요? 전 김군입니다 ㅠㅠㅠㅠㅠ
@@예능-g2l김군이세요? 전 밥군입니다
궁예권려을 빼앗은 자들의 정당화론 아닌가?
멍멍
정답입니다
궁예후손?
왕건도 통일 후 3대 이후에 겨우 왕이라고 할 수 잇게되엇는데.세력도 없이 왕조정치를 하려고햇으니 호족들에게 씨도 안 먹혓다.
당시 최고 호족이엇던 왕건도 살살 눈치보고 살앗다.
왕건이 주작한 역사 너무믿지마라 뒷통수친사람말 믿겠냐?
은부 장군은 뭣 하는가?
그만 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청주사는 권태봉 돈갚아라
권씨는 걸러라
저 양반 말은
신뢰가 안감
궁 예. 정신병자. 되는거같앗어
삼국사기에서 가장 왜곡된 부분은 궁예와 왕건이 등장하는 후삼국 말기입니다. 반면에 가장 정확한 부분은 초기 기록으로 손댈 필요가 없습니다. 초기 기록에 손을 댄 사람은 근초고왕과 법흥을 비롯하여 중간에 역사서를 새로 쓰면 정통을 정리한 왕들입니다.
총독부가 만든 역사지도
가 관학언론을 도배하는
부끄러운현실 언제
끝나려나
민담은 민담, 설화는 설화일 뿐. 백성의 인식이 항상 진실을 담고 있다면 홍길동,임꺽정 모두 진짜 의적이었겠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진부한 얘기로 삼국유사나 고려사보다 설화에서 진실을 찾는다는게 우스운 짓거리다.
홍길동 임꺽정 모두 흉악범이라고 기록 아주 많이 남아있음..
저 역사교사라는 작자는 얼굴 볼때마다 뭔 가짜 역사를 가르치려고 들지 참 걱정이 앞선다
이순신에 대해서도 날조를 해대더니
니가 뭘 안다고 평가질을 하노
당시 시대상으로.. 왕건은.. 친일파.. 궁예는.. 독립투사라고 생각하면됨..
구라치지마라
ㅡ 후4국 시대
마누라.자식죽이이는노이.온전하게죽엇것나!ㅡ척보면앱니더!😢😮
궁예는 폭군이 아니다.. 왕건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전왕조였던 태봉국(泰封國)을 부정하고 고려왕조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궁예를 폭군으로 기록한 것 뿐이다.
폭군은 맞음 성군도 맞을뿐이지 반반임 궁예때문에 죽은 무고한 백성들이 많음
폭군이 아닌데 자기 부인과 아들 둘을 죽이냐?
그럴가능성이큰데 너무오버해서 죽었나보죠
백제는 한반도에 있었던적이없다..지도가 식민사관이다. 저딴게 역사를 가르치려드네..
답답합니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대중... 왜 한번도 의심도 의문도 안할까요??
그저 교수가 박사가 강사가 이야기하면 답일까요?? 깨어나세요
대륙 동부가 동남부가 본토입니다👍👍👍👍👍
깜댕이 궁예....드러
후손들이 판단할건 기록밖에없는데 폭군이 아니라는건 제정신인가
기록이니까 아님?
역사는 승자의 것 이니까
애초에 폐위 당할 왕에게 하자 없는 경우는 없죠. 승자의 기록이건 어쨋건 폭정 없이 희생만 당했을까요?ㅎㅎ 그런점에서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고려는 외세침략에 매우 시달렸던 국가였다보니 정사기록이 대부분 불태워져서 없음. 고려사든 삼국사기든 정확한 정사로 보기힘들고 그저 입에서 전승되는 야사라고 보면됨. 그렇기에 궁예를 단편적으로 판단할수없다고 하는거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
삼국사기는 심지어 고려시대 사람인 김부식이 만든거고 고려사 역시 조선시대때 만들어진거.
진실은 아무것도모름 근데 멍청한 거란놈들은 발해멸망시킬때 자기들을 더 강하게 나타내면서 기록할수있는데 그런기록안하고 발해역사서를 다 불태우고 없애기만 했으니
앞뒤가 안맞는 역사는 곧 거짓역사이며 이는 승자의 전유물이라.
궁예는 영웅이였고, 탐욕스러운 왕건과 그의 호족들이 궁예가 닦은 나라를 빼앗기위해서 명분을 만들었다. 그것이 자신을 승격화 우상화였다. 궁예는 국가에 암덩어리가되는 호족들을 처단하기위해서 스스로의 왕이자 신격화하여 정치적 도구로서 호족들을 제압한것이다.
그때 유모가 안 받았어야 했나 왜 이리 못됬냐 ㅡㅡ^
고려사는 순전히 정권을 잡은 세력들에 의한 자기 합리화와 당위성을 위한 왜곡된 결과물.
철원 포천 연천 지역의 많은 민간 설화들이 그것을 증명.
신채호선생의 궁예에 대한 평가 또한 많은 부분 민간설화와 일치.
고련려의 부활과 서토정벌을 꿈꾸었던 궁예의 원대한 꿈은 지방호족연합세력에 의해 깨져버렸다는 것이 핵심.
고구려
왕건이 다 조작한거다 😂😂😂
안경 또 😂😂
관심법이 줜나 웃기네 ㅋㅋㅋㅋ 관종인가
구라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