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떨어진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소헌왕후의 행동 01:41 심온의 재조사를 명하지 않은 세종 03:05 세종이 품은 여인의 수 06:58 세종의 여성 편력이 심해진 이유 08:40 소헌왕후의 리더십이 드러난 사건 12:02 소헌왕후를 대한 세종의 태도 14:32 며느리 순빈 봉씨의 스캔들 18:35 소헌왕후의 근심이 된 임영대군 21:15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에 앓아누운 소헌왕후
옆에서 든든하게 보필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니 자기 일과 업적에 집중하고 성과를 이뤄낼 수도 있는거죠,,,, 그게 보통 주로 안주인들, 어머니, 아내의 역할이구요 하지만 그런 부녀자들의 희생과 공은 잘 조명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왔죠 역사적으로. 바깥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만 공이고 업적인게 아니에요. 사실 다 가정 내에서 든든하게 받춰주고 오롯이 희생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근간이고 토대가 되는겁니다..
하긴…차기 왕비가 될 세자빈이 주술에 손을 댄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논란이 되고…중세유럽 같은 경우는 파문 당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긴한데…할아버지 상과 세자가 16살이 되서 초야를 치르는 법도때문에 후계자 잉태가 미루어져서 불안한 나머지 실수를 한 것이고 로열페밀리 그것도 후계자 내외가 이혼을 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니 일단 기회를 주고 예의주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았을껀데…어차피 측실을 두는 경우가 있어도 후계자 변경되는 문제를 생각하면 정실에서 후계자를 보는 게 낫겠지…심각한 결격사유가 없는 이상 적장자와 그의 직계후손이 1순위이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서 만든 글자가 한글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글자보다 달콤하고 아름답게 사랑을 표현할수있는거 같습니다 반대로 그 어떤 글자보다 아프고 악랄하게 표현가능해서 마음의 상처도 더 깊게 줄수있다는 양면성이 존재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때 최고의 글자임은 변하지않는거같네요
애초에 나라의 질서 자체가 남자들 중심이었고 왕실이고 사대부고 간에 여인들의 소리없는 희생 위에서 업적을 이루고 군림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는데 뭘 어쩌겠냐.... 그리고 그놈의 유교니, 왕권이니 지키기 급급해서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겠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있어도 세종은 평천하는 했으나 가정을 다스리고 내 사람을 돌보는 일은소홀 할 수 밖에 없었던거지... 소헌왕후의 희생과 노고가 없었으면 이정도 성군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 세종의 큰 위상 뒤엔, 그 토대가 되어준 아내 소헌왕후의 공이 크다. 소헌왕후는 정말 그릇이 큰 조선의 국모이고 멋진 여성 리더라 생각한다 그걸 알고있으니 세종대왕도 비롯 후궁은 많이 뒀으나 왕으로선 아내를 극진히 대했겠지
그래도 소헌 왕후와도 금슬이 좋았다고 했죠 그래서 8남 2녀를 낳았고, *정소 공주 & 문종 & 정의 공주 & 세조 & 안평 대군 & 임영 대군 & 광평 대군 & 금성 대군 & 평원 대군 & 영응 대군* 을 낳았다고 전해지고, 소헌 왕후의 친정이 망할때도, 소헌 왕후의 폐위를 막았던게 세종이었다고 전해지죠 만일, 소헌 왕후가 손자 단종이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살아 있다면??
심온이 대역죄인으로 죽기 직전까지만 해도 조선 최고 명문 집안이었던 소헌왕후 집안은 세종 때에는 등용되지도 못 하다가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해서 심온을 신원복관시키고나서야 등용되었죠. 심온의 장남 심준은 이미 죽었고 차남 심회가 영의정, 삼남 심결은 영중추부사에 오르는 등 청송 심씨 집안은 다시 부활하게 되죠
@@enjoypanda그러나 문종은 첫째 부인 휘빈 김씨 & 두번째 부인 순빈 봉씨와도 사이가 안 좋았대요 그래서 휘빈 김씨는 주술하다 걸려 쫓겨났고, 순빈 봉씨는 동성애에 걸려 쫓겨 났고요 그래서 문종의 후궁들 중에서 권씨가 세번째 부인이 되었죠 원래는 문종의 맘에 든 사람이 있었으나, 세종이 권씨를 세자빈으로 둔 이유가 아이를 이미 2명을 낳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그 세자빈 권씨가 아들 단종을 낳고 사망했고요
세종이 여성편력이 있다기 보다 정치적으로 내명부를 이용한거죠. 태종 사 후 아무리 처가를 몰락 시켰다 하더라도 왕자를 8이나 낳은 왕비의 세를 누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왕비를 견제하기 위해 많은 후궁이 들이고 궁궐 안 수족이 될 궁녀들을 승은을 준것이겠죠. 세자빈이 계속 바뀐 이유도 마찬가지로 외척의 발호를 맊기 위함이였습니다. 조선은 건국 초기라 왕권강화가 중요했거든요. 여러므로 세종은 빈틈 없는 왕이였으나...그렇게 무너진 내명부로 단종은 외톨이가 된 채 왕이 되었고 결국 계유정난이 일어난거죠
그런데 옛날 왕 치고 후궁 안들인 왕이 잇나? 서양이고 동양이고 간에 후궁 엄청 많던데 여성 편력이라고 까기엔 왕이면 나라가 자기거라고 생각하는데 궁녀 도 다 왕 여자고 연산군처럼 전국 여자 기생 다 모집하는 정도 아니면 심한건 아닌거 같음 그래도 처신은 잘한거 같은데 후궁 많으면 문제가 본부인은 개무시하고 후궁만 총애하고 본부인은 자식도 없고 후궁 자식이 왕되고 이러면 분란이 생기는데 세종은 여자는 많앗어도 본부인을 제일 사랑하고 대우해주고 세자도 본부인 자식으로 세워서 왕비 권위도 잇으니 후궁들도 왕비한테 순종하고 평화롭게 지낸거 같음 조선 다른 왕비들 보면 행복하게 사랑 받고 산 왕비가 거의 없고 후궁이 사랑 받고 세자도 후궁한테서 보고 왕비들은 불행한 경우가 대다수인데 세종이 저정도면 저 시대 왕 치고는 처신 잘하고 본부인한테 잘한거 같은데
님이 실제 세종보다 님 머릿속에 허상으로 존재하는 세종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왕은 공인으로써 치세에 이룬 업적으로 평가 받는거고요, 신이 아니기에 개인으로썬 결함이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부왕 눈치본건 유교 국가에선 당연한거고요, 부인 여럿두고 자손 많이 보는건 왕의 의무입니다. 이거에 게을러서 족보 뒤져 제왕교육도 못 받은 방계 끄트머리 왕족이 왕의 치세가 백년 가까이 이어지다 망한게 조선이고요. 게다가 세종에 비판적이면 중국이나 일본 영향이다? 역사 문화적 자존감이 떨어지니 그럼 한심한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겁니다. 외국에 열등감 느끼며 자라온 늙은 세대나 그런 생각하고요, 외국에 꿇리는거 없이 당당하게 자란 젊은 세대는 재밌는 이야기네 하고 웃어 넘겨요. 자꾸 낡은 사고방식을 남한테 강요 마세요. 그게 이 사회의 발목을 잡는겁니다.
00:00 떨어진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소헌왕후의 행동
01:41 심온의 재조사를 명하지 않은 세종
03:05 세종이 품은 여인의 수
06:58 세종의 여성 편력이 심해진 이유
08:40 소헌왕후의 리더십이 드러난 사건
12:02 소헌왕후를 대한 세종의 태도
14:32 며느리 순빈 봉씨의 스캔들
18:35 소헌왕후의 근심이 된 임영대군
21:15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에 앓아누운 소헌왕후
ㄴ5
😊😊😊😊😊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잘만나야 성공하는 건 똑같네요
소헌왕후가 든든하게 안 받쳐줬다면 세종의 일이 두배 세배로 늘어나서 지금같은 역사적 업적이 훨씬 줄었을 지도 모르는듯
아버지 이방원, 큰 형인 양녕대군의 기질이 있는데 아니면 그게 더 웃기는게지. 국왕으로서의 세종과 남자로서의 세종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얘기.
한글창제 하나로 모든 과가 퉁
@@arrkaize 전세계 언어중에 창제원리가 기록되고 만든사람이 특정되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합니다 . 전인류사상 유일한업적입니다
@@ohthgee8795 감사합니다
세종대왕이 저쪽으로도 대왕이였군요 ...
그래도 소헌왕후가 단종즉위후 5년정도만 더살았어도 ㅠㅠ
엄니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계신데 수양이 감히 찬탈 못했죠
마음대로되기도하고안되기도하는인생사앞에순응하고살아가야하나봅니다
소헌왕후랑 문종 둘 다 오래 살았으면 그야말로 최강이었을텐데ㅜㅜ
소헌왕후가 아니라 딘종의 모 양원권씨 현덕왕후가 더 오래 살았어야 하는거 아닌가?
소헌왕후는 단종의 할머니과 현덕왕후가 딘종의 어머니 인데?
소헌왕후 말고도 문종 비인 헌덕왕후가 단종 낳을 때 안죽고 대비로 있었으면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을엔데...조선의 쇠락은 사실상 세조가 만들었다 봐도 무방합디다
원래 외부평 좋은 정작 자기한테 가장 가까운 사람한텐 못하죠..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듯
옆에서 든든하게 보필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니
자기 일과 업적에 집중하고 성과를 이뤄낼 수도 있는거죠,,,,
그게 보통 주로 안주인들, 어머니, 아내의 역할이구요
하지만 그런 부녀자들의 희생과 공은 잘 조명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왔죠 역사적으로.
바깥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만 공이고 업적인게 아니에요.
사실 다 가정 내에서 든든하게 받춰주고 오롯이 희생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근간이고 토대가 되는겁니다..
참 한 인간으로서 짠할 뿐이다. 그 한도 고통도 다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정작 본인은 하나의 빛,하나의 바람이 되었구나.
위인들치고 좋은남편 거의 없음 ㅋㅋㅋㅋㅋ
두번째 며느리가 저 지경일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첫번째 며느리 휘빈을 잘 타일러서 데리고 있을 걸 그랬군
하긴…차기 왕비가 될 세자빈이 주술에 손을 댄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논란이 되고…중세유럽 같은 경우는 파문 당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긴한데…할아버지 상과 세자가 16살이 되서 초야를 치르는 법도때문에 후계자 잉태가 미루어져서 불안한 나머지 실수를 한 것이고 로열페밀리 그것도 후계자 내외가 이혼을 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니 일단 기회를 주고 예의주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았을껀데…어차피 측실을 두는 경우가 있어도 후계자 변경되는 문제를 생각하면 정실에서 후계자를 보는 게 낫겠지…심각한 결격사유가 없는 이상 적장자와 그의 직계후손이 1순위이니…
그거 후회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세번째 며느리였던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다 결국 사망했죠
첫번 째 휘빈 데리고간게 제일 베스트였을 듯. 그럼 단종 사태도 없었을 것같음. 역사의 만약은 없지만 😢
문제는 세자인 문종이 자기 부인 첫번째 부인세자빈 휘빈 김씨에게도, 두번째 부인 순빈 봉씨에게도 관심이 없던게 문제였죠
결국 휘빈 김씨도 주술하다가 걸려서 쫓겨난것.......,
@@user-ce2dh7cn3d그쵸
현덕왕후 권씨가 그나마 첫째 딸과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는데,
님 말씀대로,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다가 산욕열로 사망했었죠
만일 살아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
지금의 도덕 가치로 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한 인간을 한 두 가지만으로 매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간은 피카소 그림 같다.
옳은 말씀이세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서 만든 글자가 한글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글자보다 달콤하고 아름답게 사랑을 표현할수있는거 같습니다
반대로 그 어떤 글자보다 아프고 악랄하게 표현가능해서 마음의 상처도 더 깊게 줄수있다는 양면성이 존재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때 최고의 글자임은 변하지않는거같네요
자기 여자에게 사랑을 안 주다보니 김씨나 봉씨 같은 여인네가 생기는 거야
외로운데 어쩌겠어
남자들아 네 여자를 외롭게 하지 마라
애초에 나라의 질서 자체가 남자들 중심이었고
왕실이고 사대부고 간에 여인들의 소리없는 희생 위에서 업적을 이루고
군림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는데 뭘 어쩌겠냐....
그리고 그놈의 유교니, 왕권이니 지키기 급급해서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겠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있어도
세종은 평천하는 했으나 가정을 다스리고 내 사람을 돌보는 일은소홀 할 수 밖에 없었던거지...
소헌왕후의 희생과 노고가 없었으면 이정도 성군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
세종의 큰 위상 뒤엔, 그 토대가 되어준 아내 소헌왕후의 공이 크다.
소헌왕후는 정말 그릇이 큰 조선의 국모이고 멋진 여성 리더라 생각한다
그걸 알고있으니 세종대왕도 비롯 후궁은 많이 뒀으나 왕으로선 아내를 극진히 대했겠지
참다가 아버지가 죽으니 이제야 본심이 나온거지 에라이 ㅋㅋㅋ
지 아빠가 지 형 여자문제로 세자 폐위시키는거 보교 무서워서 참은거. 남자로선 최악 오브 최악
그래도 소헌 왕후가 무사했던게, 이미 소헌왕후가 세종 사이에서 자녀들인 *정소 공주 & 문종 & 정의 공주 & 세조* 를 낳았고, 게다가 왕비가 된 해에서 또 다른 아들인 *안평대군* 을 낳았기때문이었죠
15:30의 '열녀전'이라는 한자가 틀렸네요. 列女傳이 아니고 烈女傳이 맞습니다.
글구, 시아머니 원경 왕후가 며느리인 소헌 왕후에게 동질감 느꼈을 지도........,
왜냐면 원경 왕후는 이미 남편 태종에게 친정 망했고, 그게 또 며느리 소헌 왕후 역시 같은 일 겪게 되니까......,
후궁들도 짬을 보고 덤빈다고 아들만 5명을 넘게 낳은 왕비한테 깍듯이해야지ㅋㅋㅋㅋ
감사합니다!!
그래도 소헌 왕후와도 금슬이 좋았다고 했죠
그래서 8남 2녀를 낳았고,
*정소 공주 & 문종 & 정의 공주 & 세조 & 안평 대군 & 임영 대군 & 광평 대군 & 금성 대군 & 평원 대군 & 영응 대군* 을 낳았다고 전해지고, 소헌 왕후의 친정이 망할때도, 소헌 왕후의 폐위를 막았던게 세종이었다고 전해지죠
만일, 소헌 왕후가 손자 단종이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살아 있다면??
정력왕이네요
임금이 후손을 많이 낳아야지 나라가 안정되지
조선 말기로 갈 수록 자손이 마르더라
@@울랄라-l6f조선 태종이 세종보다 더했죠 원경왕후와의 4남 4녀 이지만, 실제론
*정순 공주 & 경정 공주 & 경안 공주 & 양녕대군 & 효령대군 & 세종 & 정선 공주 & 성녕대군 & 양녕대군 위 아들 셋* 으로 7남 4녀를 뒀대요
세종..아버지 3년상 후 드러나는 본색,
그래서~~~피는 못속인다는거지
세종대왕님은 내가 한글을 쓰고 있게 해줬으니까 인정
소헌왕후 아버지 심온은
모함으로
가족을 위해 누명을 스스로
인정한 분입니다
임금으로는 잘했을지 모르겠으나 남자로선 최악임.
조선시대 칠거지악중 투기가 죄라는데....아니 그럼 남편이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데 투기 안하면 사람이냐? 그럼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거지.
투기 안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냐.
유교, 성리학이 정상이냐고...
그냥 여자를 인격체로 안보고 남자를 위한 노예정도로 여겼는데;;
뭘 바래...
유교를 국교로 만든 태조 이성계가 개 ㅅㄲ
전주 이씨도 아니고 짱ㄲ
@@ss-xu7jy 그건 시대적으로 봐야 하는거라
남편이 첩질을 해도 관용으로 대해야했던 시대
시대가 다르기에..
정작 저 시대에서도... 여자가 질투 안 하면 남편 사랑 안 하는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질투도 어디까지나 사람 헤칠 정도로 하지마라 이거지, 오히려 질투를 아예 안하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게 여겼어요.
(인현왕후 : ㅅㅂ 그럼 어쩌라는 건데)
태종, 세종, 문종은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성군이었으나 남편으로써는 완전 꽝이듯...
눈에 들어와서 자빠뜨린게 아니고 색이 동해서
옆에 있는 아무한테나 푼것일테지 ㆍ
심온이 대역죄인으로 죽기 직전까지만 해도 조선 최고 명문 집안이었던 소헌왕후 집안은 세종 때에는 등용되지도 못 하다가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해서 심온을 신원복관시키고나서야 등용되었죠. 심온의 장남 심준은 이미 죽었고 차남 심회가 영의정, 삼남 심결은 영중추부사에 오르는 등 청송 심씨 집안은 다시 부활하게 되죠
세종대왕이 수많은 후궁들 들여 자식들
도 낳았지만 그건 왕실에 자손들을 번창
해야하는 임금의 큰 책무였습니다 그래
도 세종대왕은 왕비와의 사이에서 가장
많은 자식(10명)을 낳을만큼 소헌왕후
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걸 핑계로 하기엔 상궁도 건들고 보통 임금들도 관계를 안하던 여인들도 그냥 성욕이
왕성하신듯 ㅋㅋ
근데 자기 아들 이었던 세조는 여색은 별로 밝히지 않은게 아이러니 술은 그렇게 좋아 했다는데 세종이나 문종은 여자를 제법 밝히거나 그랬는데 🤔
@@enjoypanda진짜....오죽하면 신하들이 세조에게 후궁 좀 들이라고 할 정도였죠;;;정희왕후 입장에선 조았겠지만
@@enjoypanda그러나 문종은 첫째 부인 휘빈 김씨 & 두번째 부인 순빈 봉씨와도 사이가 안 좋았대요
그래서 휘빈 김씨는 주술하다 걸려 쫓겨났고, 순빈 봉씨는 동성애에 걸려 쫓겨 났고요
그래서 문종의 후궁들 중에서 권씨가 세번째 부인이 되었죠
원래는 문종의 맘에 든 사람이 있었으나, 세종이 권씨를 세자빈으로 둔 이유가 아이를 이미 2명을 낳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그 세자빈 권씨가 아들 단종을 낳고 사망했고요
자식 여럿낳고 좋은일 생긴 임금은 어떤 나라에도 없다
위대한중전마마시네요
당시엔 자손을 남기는 것도 왕의 중요한 임무중 하나였으니까요. 지금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일은 아니지 싶네요.
세종대왕, 소헌왕후 😊
인물을 지금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안된다는 대표적 인물이 세종이지
난 저러고 못살듯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섹으로 풀었다라고 보는게 맞을 듯
또한 아버지의 여자 좋아하는 피도 필요하고...
스트레스는 운동이나 술 등으로 풀어야 하는데 여자로 푸는 사람도 존재함...ㅎ
세종이 여성편력이 있다기 보다 정치적으로 내명부를 이용한거죠.
태종 사 후 아무리 처가를 몰락 시켰다 하더라도 왕자를 8이나 낳은 왕비의 세를 누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왕비를 견제하기 위해 많은 후궁이 들이고 궁궐 안 수족이 될 궁녀들을 승은을 준것이겠죠.
세자빈이 계속 바뀐 이유도 마찬가지로 외척의 발호를 맊기 위함이였습니다.
조선은 건국 초기라 왕권강화가 중요했거든요.
여러므로 세종은 빈틈 없는 왕이였으나...그렇게 무너진 내명부로 단종은 외톨이가 된 채 왕이 되었고 결국 계유정난이 일어난거죠
왕비는 비구니 수도승 같은 마인드로 살았겠지요.
그게 현실판 지옥 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현자라도
아랫도리는 따라 움직이죠.
세종이 성욕구가 해소 되니
열정적으로 나랏일 할수 있었겠지요.
왕치고는 후궁 몇명은 기본 입니다.
그런데 옛날 왕 치고 후궁 안들인 왕이 잇나? 서양이고 동양이고 간에 후궁 엄청 많던데 여성 편력이라고 까기엔 왕이면 나라가 자기거라고 생각하는데 궁녀 도 다 왕 여자고 연산군처럼 전국 여자 기생 다 모집하는 정도 아니면 심한건 아닌거 같음
그래도 처신은 잘한거 같은데 후궁 많으면 문제가 본부인은 개무시하고 후궁만 총애하고 본부인은 자식도 없고 후궁 자식이 왕되고 이러면 분란이 생기는데 세종은 여자는 많앗어도 본부인을 제일 사랑하고 대우해주고 세자도 본부인 자식으로 세워서 왕비 권위도 잇으니 후궁들도 왕비한테 순종하고 평화롭게 지낸거 같음
조선 다른 왕비들 보면 행복하게 사랑 받고 산 왕비가 거의 없고 후궁이 사랑 받고 세자도 후궁한테서 보고 왕비들은 불행한 경우가 대다수인데
세종이 저정도면 저 시대 왕 치고는 처신 잘하고 본부인한테 잘한거 같은데
형이나 동생이나 여성에 대해서는 똑같네요
세종이 왕후와의 사이에 아들이 많아서 속궁합이 맞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세종은 그냥 성욕 식욕이 뛰어났구만. 그래서 문종이 여자를 멀리했나
좀더 오래사시징.. 남편이랑 같이 뭍히고싶지 않으셨을텐데...😢
후궁이 한트럭인데 고고하고 우아한 마음가짐 가지는게 이상한거지
세종 교배 졸라 좋아했네 왕족이니까 칭송받는거지 평민이었으면 걍 변태지
교배가 아니라 교미겠지
@@waigaioege820아니 세종대왕님께 이런 망발을ᆢ
참 사랑이 넘치는 대왕님 존경합니다
다섯째 광평대군을 기리는 글들을 보면, 평소 좋아하는 생선을 드시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
효령대군은 안그랫눈데😡
양녕대군과 다르지 않는 세종😵
좋은씨는널리멀리퍼뜨라는것이자연의순리
저 집구석 피는 못 속임 ~
애비나 아들들이나
웃긴게 세조는 세종이랑 문종과는 다르게 후궁이 역대왕들에 비해 적은게 아이러니~실록보면 정궁인 정희왕후만 아꼈고
ㅡ
세종이
ㅡ똑똑 했네
ㅡ여인 경호부대를 만들었네
세종 사랑 안했네
그건 아님 암만 후궁을 많이 들였어도 소헌왕후한테서 제일 많은 자식을 봤는데.. ? 소헌왕후랑 세종 사이에서 본 자식만 10명임 영상에도 세종이 소헌왕후를 상당히 아꼈다고 나오는데..
소헌이 세종을
뇌과학자가 머리가 좋을 수록 성욕도 높다더니..세종도 그래서 그런지 ..그래도 왕은 자녀를 많이 낳을 수록 좋으니 나쁘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럼 아들인 문종은 세종대왕 못지않게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그리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오히려 문제였죠.
남편으로는 세조 수양대군이 더 나은듯
어제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472년만에 망하는걸 482년이라고 잘못 방송하셨네요. 자축인묘진사오... 말은 12 간지에서 7번째인데 8번째라고 잘못 세셨습니다.
세종대왕 바람둥이
연비기도
어허. 유사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꼽아래
이야기는 하지않는 것입니다.
아울러 최소한의 금도는 지키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
후궁이 1백명이던 1천명이던 그게 뭔 상관이랴?
그저 노비나 잡것들과 술주정꾼들의 가십꺼리
이상은 아닐터?
세종 아버지 이방원, 세종 아들 세조...
태종 할아버지가 있어야 손주들이 정신 바짝 차릴껀데
성종처럼 특정 궁녀 1인에게 빠지는것보다 여러 궁녀들을 사랑하시는게 중전한테는 낫지.
본인 건강엔 안 좋겠지만.
왕이 한 명의 여자와
살기는 힘들었겠죠.
눈 앞에 널렸는데.
세종이 유일한건가? 숙종도 생전에 인현왕후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해서 인현왕후 옆에 묻혔는데
세종의 후궁이 많다 하여 흠이되는 시대도 아니고 잘못한것도 아닌데 꼭 잘못한거 처럼 묘사를 하네요
세종이 후궁이 많았다는건 왕실의 후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데
지금의 일부 일처제의 시각으로 나쁜 넘으로 만드네
좋은 왕과 좋은 남편은 다름. 공민왕 샤자한왕 보면.
조선시대 왕비 중 연산군 비 신씨나 소헌왕후는 인품 좋고 처복도 세종이나 연산군이 더 좋았네 반면 소헌왕후랑 연산군 정비 신씨는 남편복이 없었던 것 같다
세종은 바람둥이 군.
그 피가 어디로 가나요?
여성편력때문에 민씨집안을 피로 물들였으니까
외척배제? ㅋ 이방원은
살인자
아들 9에 딸 2을 낳아 비의 대접 톡톡히 받고 타의 추종을 불허했구만 왠 질투?
세종대왕님은 자식농사가 힘드셨네
에구 박정희 대통령 생각 나네
우리 육영수 여사님도 대통령 여성편력때문에 얼마나 속썩였을까.
매번 느끼지만 혹시 중국이나 일본자본이 투자된 프로그램인가?인간에게 과오가 없을수는 없지만 세종은 하늘아래 다시 없을 애민정신으로 점철된 군주인데ᆢ 저 강사분 계속 이런류의 주제로 강의하시네.
약간 좀 그러네요 재미위주라서 그런듯
과한칭송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디스하는데에 장시간을.
설민석이 훨 나았을 듯
님이 실제 세종보다 님 머릿속에 허상으로 존재하는 세종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왕은 공인으로써 치세에 이룬 업적으로 평가 받는거고요, 신이 아니기에 개인으로썬 결함이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부왕 눈치본건 유교 국가에선 당연한거고요, 부인 여럿두고 자손 많이 보는건 왕의 의무입니다. 이거에 게을러서 족보 뒤져 제왕교육도 못 받은 방계 끄트머리 왕족이 왕의 치세가 백년 가까이 이어지다 망한게 조선이고요. 게다가 세종에 비판적이면 중국이나 일본 영향이다? 역사 문화적 자존감이 떨어지니 그럼 한심한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겁니다. 외국에 열등감 느끼며 자라온 늙은 세대나 그런 생각하고요, 외국에 꿇리는거 없이 당당하게 자란 젊은 세대는 재밌는 이야기네 하고 웃어 넘겨요. 자꾸 낡은 사고방식을 남한테 강요 마세요. 그게 이 사회의 발목을 잡는겁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의 이면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깨끗하게 세탁된 역사만이 진실된 과거라고 생각하면 타국의 역사 왜곡을 꾸짖을 입장도 못 되는거죠.
지금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말도 안돼지만 조선시대 기준으론 이상할게 없음
남자의 아래는 다른인격이 존재하는건 사실..
나같아도 존경이 단전에서 끌어나왔겠네
아주제대로 즐기며 살았구만 ㅋ
왕 = 궁안의 종마
성군? 동물에 왕국이내 ㅋ
이 프로는 좀. . . 지들 마음대로 역사를 재해석하는 듯.
강사 말하는 것도 답답하고
역시 성군!
조선이라는 나라가 뭐가 좋다고 찬양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음.
500년 간 나라인데 욕할건 또 뭐임? ㅋㅋ
찬양이라기보단 어쨌든 우리의 역사이니 존중하는거고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죠.
또 이런 해석도 현대의 관점에서의 해석일 뿐 저 시대떈 저게 원칙이고 도리였으니까요.
그게 올바르다는건 아니지만 역사는 역사로만 보자구요.
조선은 대한민국의 뿌리인데 부정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없음
친일파나 하는 짓 이라고 봄
역사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고 근본인 걸 알아야 됨
@@김경애-g1c9i조선이 우리의 뿌리?ㅋㅋ ㅁㅊ 진짜 적당히 해라
보살이네..
조회수 올리느라 애쓴다 얘야
ㅇx
종묘를 지켜낸게 무슨 현명한 국모냐.
국민들보다는 지네집안 조상들이 먼저 라는건데
ㅋㅋㅋㅋ ㅇㅈㅇㅈ
종묘 포기함 =유교포기함=조선이라는 국가포기함 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던게 그때 조선이죠
중국인 이성계 후손 답게 여자 후리는 ㅉㅉ
이건 또 뭔 ×소리지?
성군이라니~
그런데 아들들을 그따위로 키웠을까?
조카를 죽이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노예제도를 만든 자를~ ㅋㅋ 개 웃기네~ 한국은 조선이 아닌데~
일본 애들이 하는 소릴하네? 독도 얘기하면서 그때는 대한민국 아니었다고? 왜 그럼?
있는 사실 입니다. 공부 좀 하삼~
인생사 새옹지마이지만,,,,,
최소한 남편의 사랑과 자식사랑은 가지고 가셨네....
인생성공 별거없다....나를 사랑하고 믿어주고 기억해주는 단 1명만 남겨도 성공한 삶이다....
책공부 열심히 하면 혹시 스트레스가 많아 그럴 수도 있지 세종대왕이 무지 과한 스트레스!!!!!!!!!!!
남아 나는 것이 없었구나.
메야? 의자왕은 3천인데 후궁만 9만명이라고 장난하냐?
순빈봉씨는 페미니스트지 않앗으려나..
주인인고 종인데 그런게 어디있어 사약받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