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이 매우 좋아 고속도로 못지않은 56번 국도가 완전 개통되었고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어서 2~30대 젊은 근로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최근 들어서 다시 활기를 띄고 있네요 파주 토박이들만 아는 맛집도 많이 있어서 운정신도시 사는 토박이들이 시원하게 잘 뚫린 56번 국도를 타고(운정 저희집에서 25분 걸림)가서 주말에 점심 먹거나 포장해서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럽니다...
파주, 봉일천. 금호역. 법원리. 동두천. 이런곳 지금 가보면......... 아무것도 없다. ......정말 내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장소. 내 기억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람들. 내가 죽으면 그 장소와 그 사람들도 영원히 사라진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세월이 유상무상하다.
저기 세 분 아주머니중에
울 외숙모가~ㅋㅋ
어딜다녀오시다가 찍히셨는지
내 눈 썰미가 맞는듯 한뎅
ㅋㅋㅋㅋㅋ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바뀐 세월의 요람 격동과 격정의 수단 어린시절 눈물
곱던 추억의 아이러니 춥고 배고픈시절 눈물과 눈물 곱던 아픔의 시절 아려니 떠오른 답니다.
법원리 20포의 길
추억이 떠 😂오른답니다. 파주 연풍리 내 고향 용주골!
동문리에 살았는데..지금은 친구들이 다 어디갔는지 모르고사네요..보고싶다 친구들아,금곡리 금곡 국민학교 나왔네..
옛생각이나네요
저두ㅡ금곡국민학교
나왔네요
동문리(이율곡산소로
지겹도록 청풍간ᆢ
추억들이
작년에ᆢ금곡리와동문리
다녀왔답니다
80년대 중반 법원리에서 군복무할 때 막둥이아들 보러 목포에서부터 하루걸려 면회왔던 부모님. 2시간정도 외출해서 식사하고 다시 되돌아가시던 부모님 뒷모습이 아련하다.
몇 년 전에 법원리에 가봤더니 법원읍으로 승격이 됐고, 군생활했던 부대는 없어져서 아쉬웠던..
아버지 10대 시절
65년 천현국민학교입학 그이듬해 내고향서울로 다시이주.그당시미군들 양색시들 많았지요 미군들지나가면 헬로머니기브미 하고외치면 그당시십원짜리지페 미군들이주구그랬는데 무슨뜻인지도몰고 외쳣는데돈을주더라고요
그곳에서 살았나요?
@@은희-d2d 4년살았지요
후반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제가 어릴적이 떠오르네요. 가진게 없어도 행복했던 시절..
80년대초 지인분 외가가 금촌에있어 놀러간적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파주까지 넘 멀었던 기억이.... 지금은 도로가 잘되어있어 금방가지만
지금은40분이내면가죠
내고향! 수산 모습은 그대로 네요.
미군 빠지기 전 까지 파주에서 잘 나가던 곳이고 교통도 그당시는 나름 좋았어요
파주에서 양주쪽에 가까워 32번 평안운수 타면 의정부까지 장도 보러 갈수 있었죠
저 어릴적만해도 사람 많이 살던곳인데
이제 인구소멸 지역이 되서 아쉽네요
선형이 매우 좋아 고속도로 못지않은 56번 국도가 완전 개통되었고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어서 2~30대 젊은 근로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최근 들어서 다시 활기를 띄고 있네요
파주 토박이들만 아는 맛집도 많이 있어서 운정신도시 사는 토박이들이 시원하게 잘 뚫린 56번 국도를 타고(운정 저희집에서 25분 걸림)가서 주말에 점심 먹거나 포장해서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럽니다...
32번 추억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 의정부애서 파주를 오갔던 파란색 빨간색 선이 있던…
와 화질 무엇.. 대단하십니다 여행자 형님..
전주가 다 통나무네❤❤❤
와 법원리..
제가 25사단 에서 군생활 한곳이네요
사진 하나하나가 다 작품이구먼...
지금은 개농장. 개도살장만 많던데ㅜ 이렇게 아름다운곳이었군요ㅜㅜ
왜이리가슴이아련하지70년도면 초등하교시절이네
파주일산하면 영화 초록물고기생각나네요
밥원리…,90년대에 저기서 군생활 했었는데 그립네.
188대대 2포대 나오신분?
2000년 중반 되서야 개발되지 않았나요?
1970년대 파주
아저씨들 입고있는옷이 요즘유행스타일이네요 신기
일소와 쟁기는 동네에 많지 않았다. 네 다섯 집이 우리 집 소와 쟁기를 빌려가거나 우리 일꾼이 가서 쟁기질을 해주었는데 그 대가로 우리 집 일에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교환비율은 모르겠다. 아마 쟁기질한 면적으로 계산하지 않았을까 한다.
1:1로 노동력을 서로 교환하는 품앗이를 말하는 듯
파주는진짜개깡촌이엇는데 90초반 일산신도시영향 많이받앗네요
그 25년후 내군복무 동네.. 군인들 상대로 먹고 살든 지역 ㅋ
70년 파주면 쌩 시골에 미군부대만 덜렁 있었던 시절
70년대 서울사대문 빼고 생시골 아닌곳 있나요? 미국에서 살았나봐요?
ㄷㄷ
70년대에도 법원에 용주골 있었나??
용주골은 지금의 파주읍 연풍리 이고
법원리엔 이십포 라고 불리던 곳이 따로 있었어요.
법원리면 차로 10분 거리면 민통선
이분은 도대체 정체가 몰까 이귀하고 희귀한 영상자료를 어디서 구할가 이분 영상 자주 보는데 박물관에도 없는 영상이 너무 많던데
진짜 타임머신 타고 가서 직접 찍어온거 같은 착각이 드는건 나뿐인가 ~~~
연료가 부족해 땔감 쓰느라 민둥산이네
파주, 봉일천. 금호역. 법원리. 동두천. 이런곳 지금 가보면......... 아무것도 없다. ......정말 내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장소. 내 기억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람들.
내가 죽으면 그 장소와 그 사람들도 영원히 사라진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세월이 유상무상하다.
파주는...90년대에도 시골이었는데 70년대면;;;
지금보면 천지 개벽한거네요~
지금도 시골인데 ..
북한보는거같네 ㅋㅋ
1사단 전진 교육대 에서 근무 했음 ㅋ 종교 활동은 시내 걸어서 10분 가량 ~ 법원리 시내에서 커피값 한잔이 압구정동 가격이랑 같았던 물가 비싼 도시 였는데 ~ ㅋ 20 호 ? 아직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