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의 미니스커트급 충격을 안겼던 소녀대 그때까지 은둔의 왕국이었던 나라를 변화시킨 선구자였죠 무대 의상 노래 화장 퍼포먼스 센스 충격받은 한국연예계가 음악 드라마 패션등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주었죠 우리에겐 은인이나 마찬가지 였죠 저당시 공연조건이 일본어로 못부르고 영어로 하는 조건으로 공연이 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일본어로 부르면서 일본에서도 난리났었다고 하죠
소녀대..초등학생 시절 MBC 국제 가요제에서 Starlight memory 라는 노래로 은상을 수상했고 중학생 시절 KOREA 라는 노래로 올림픽과 맞물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기억이 납니다😄원래는 징기츠칸의 보컬이었던 레슬리 만도키와 혼성그룹 뉴턴 패밀리의 에바 선이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만나 연인이 된것을 자축하며 만든 곡이었고 🇰🇷의 박혜령과 🇭🇰의 시타웡도 리메이크 해서 불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이 연인이었단 소리는 틀린 사실입니다. 둘이 같은 헝가리인 출신으로서 의기투합해 곡을 만든건 맞습니다.. (만도키는 공산정권 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여러번 투옥되는 경험을 거쳐 결국 정치적 박해로 독일로 망명) 그러나 당시 에바 선은 다른 나라 사람과 연애중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고 만도키는 88년 의사였던 에바 피츠너(Eva Pfitzer)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 중 한명이 독일에서 배우로 활동중인 Lara Mondoki). (서로 다른 상대와 연애중이었는데 대중들 모르게 둘이 같은 곡을 작업하다 눈맞았다면 불륜 아니 양다리였던 거겠죠. 근데 88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놓고 만도키가 88년에 가수 에바가 아닌 의사출신 에바와 결혼한거 보면 한국에서 퍼진 괴상한 루머는 루머일뿐..더군다나 여지껏 만도키가 여성편력이 화려하다거나 불륜으로 사고쳤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이런 잘못된 소문이 퍼지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에바 선과 에바 피츠너 두 사람의 'Eva'...이 이름이 같아서 생긴 오해인듯 싶습니다. 참고로 에바 선은 그룹(Neoton Familla..영어식으로 알려진게 뉴튼 패밀리)이 아닌 솔로로 활동할때 일종의 예명같은 거였고 실제 이름은 에바 체프르키(Eva Csepregi)였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작곡가였던 밥 히틀리(Bob Heatlie)와 만나 슬하에 아들을 하나 두게 됩니다.
들이 연인이라는건 루머입니다. 둘다 따로 연인이 있었고 헝기리 출신이며 독일 팝그룹 징기스칸 맴버였던 레슬리가 88올림픽에 주제가 공모 위해 만든곡 입니다. 물론 영화 탑건의 take my breath away를 작곡한 조르지오 모더로 가 만든 손에손잡고에 밀렸지만 그리고 같은 헝가리가수 에바와 같이 불렀죠. 뮤직비디오도 있습니다.
@@3월의라이온 당시 쉴새없이 올림픽관련 소식을 내보내던 뉴스프로그램에서도 두명이 한국올림픽을 통해 연인이 되었고 그곡을 만들게되었다. 이런 식으로 소개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엔 당사자 직접 출연해서 재연도 하고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그때문에 뉴스를 본사람은 기정사실처럼 생각했을겁니다. 저도 궁금해서 위키등을 찾아보니 부부사이도 아닌거 같아서 적잖이 충격인데, 방송국에서 왜 그런식의 연출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이후에 부부는 아니었더라도 그 시점에서는 연인이었을수도 있구요. 마치 한국에서의 괴상한 루머로 치부하신다면 그건 방송국의 잘못이겠죠.
저때 당시 소녀대를 보고 충격먹은 한국인들이 많았죠. 김완선과 소방차가 있었으나 나이 어린 아이돌 그룹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저때 당시 일본은 선진국이었고 국가 차원에서 반일을 외쳤으나 정작 어른들은 일본 전자제품에 열광했고 청소년들은 소니 워크맨에, 아이들은 일본 문구제품에 열광하던 아이러니한 시대였습니다.
쟈니 윤 쇼에 출연했을 때의 방송 장면들이 기억이 납니다. 게스트를 위한 소파가 좁아 자리가 부족해지니 조영남씨가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버려 폭소가 터지고 역시 조영남씨가 소녀대에게 뽀뽀하는 시늉을 익살스럽게 하자 미호가 조영남씨를 향해 뺨을 떄리는 헛동작을 크게 하니 조영남씨는 또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개그 연기를 해서 폭소가 터졌지요. 하지만 질문 내용은 약간 아쉽기도 했어요 내놓은 앨범들중 몇개나 히트했느냐, 세명중에 누가 리더냐는 질문등은 그다지 세련지않았다고 생각되네요. 서울랜드에 다녀온 강신*이라는 친구가 소녀대의 공연 장면을 직접 촬영한 5*7사이즈 컬러 사진 한장을 선물해주었는데 지금도 보관중입니다. 그때 서울랜드에서 하얀색 단체티를 맞춰입은 팬클럽 학생들이 보여서 자기도 가입하고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였다고 투덜거리던 강신*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벌써 34년전 일이군요.. 죠니엔젤 비디오도 잘 봤습니다. 좋은 자료 많이 소장중이신 것같은데 많이 보여주세요!
소녀대는 초기 투자비용만 무려 30억엔(300억원)이라는 사실로 화재가된 그룹으로써, 미국에서 앨범, 안무, 패션컨셉을 제작한 일본의 차세대 그룹이었음 (참고로 1980년대에 300억원이면 지금의 2천~3천억원 수준인데, 당시 일본은 미국과 거의 대등한 경제대국이었던 버블경제시대라서 가능했던 금액). 소녀대가 한국을 방한했을때, 평균적인 일본 걸그룹의 수준에도 한국이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소녀대는 일본에서도 매우 앞서가는 컨셉의 그룹이었음. 그리고 영어로 '코리아'를 부른 이유는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당시 반일감정이 심할때라, 한국방송에서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될 때라서임 (그만큼 한국에서의 활동도 매우 간절했기 때문. 자세한 설명은 아래단락에) 하지만 소녀대가 한국에 자주 방문을 하고 일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자, 나중에는 일본어로도 다른 노래들을 불렀음. 소녀대는 아키모토 야스시(훗날 AKB48와 노키자카46 제작자)와 손잡고 일본 각종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승승장구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아키모토 야스시가 육성형 아이돌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게 일본팬들에게 제대로 먹히면서, 반복된 연습을 통해 데뷔하는 완성형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 들었고, 소녀대도 이 흐름에 직격타를 입었음. 소녀대가 한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 이후 일본내 앨범 판매량이 1000장 수준으로 곤두박질 치다가, 투자비용 30억엔 회수에 고생하던 제작사는 결국 부도나버림. 하지만, 소녀대가 한국 가요계에 미친 영향은 정말 컸으며, 한국 최초의 팝 그룹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가 결성되었고, 이후에도 남자/여자 그룹형 아이돌이 계속해서 생겨나는데에 지속적인 영향을 줬음. 현재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케이팝에 영향을 줬다고 하는말은 결코 억지가 아님.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이후에 생겨난 팝 그룹아이돌 중에 하나임.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으로 한국의 음악계가 팝중심으로 바뀌고, 본격적인 그룹아이돌의 시대가 열린것도 사실임.
한국에서 레전드 찍을수 있었던 사람들인데 ... 당시에 조그만하던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생들이 다 왼쪽이나 오른쪽 중앙 누구 좋아하냐고 남자 여자 다들 그 소리였음... 그러면 대 도시들 소 도시들은 어떤 상황이었겠음? 그러다가 갑자기 티비에 나오지도 않고 사라짐... 댓글들 보면 은퇴각이라서 해체 했다는데, 정말 지대로 활동 했으면 서태지와 아이들 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았을정도임...ㄷㄷ
80,90년대 한국가요의 르네상스라고 주장하는분들 꿈깨시라 일본 음악의 카피시절이다 90프로가 일본음악이었다 그당시의 작곡가들이 모두 활동중지하고 은퇴한 이유가 애시당초 작곡의 능력은 1도앖이 일본문화를 먼저 접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호의;호식 하고 있다 윤상 유희열 윤종신 전부 카피의 신이다 물론 코리아는 소녀대의 노래는 아니지만 소녀대의 컨셉 자체가 kpop걸그룸의 원조라고 할수 있다 웃긴건 일본 노래 카피로 호의호식하는 소위 대한민국 탑 음악가라는 인간들이 허구헌날 반일몰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그러니 좌빨들의 내로남불이 어처구니 없는것
이때만 해도 한국예능은 거의 일본예능 표절이었다. 일본대중문화가 닫혀있엇고 금지되어 있었다. 부산에서는 일본방송이 일부잡히던 곳이 있어서 일찌기 일본문화가 많이들어와 있었다. 이때는 일본은 말그대로 전세계를 씹어먹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일본걸그룹이 한국을 찬양하던 노래를 불렀다는거 자체가 신기했던일이다.
88년 '코리아'로 소녀대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89년 내한했을 때 모습이다. 당시 무척이나 반갑고 기다렸던 모습이였다. 89. 5월초에 내한하여 토토즐에 출연하였고 서울랜드 1주년 기념공연 그리고 쟈니윤쇼 공연과 토크를 끝으로 출국을 했다.(당시 자니윤쇼 방송까지 녹화했지만 테이프가 분실되어 실망이 많이 크다.. ) 시간이 많이 지나갔지만 지금도 나에겐 풋풋한 소녀들로 기억되는 미호, 토모, 레이코~~
저때면 일본에서는 마지막앨범 내고 사실상 해체한 후 였죠. 저는 서울랜드 가서 당시 흔치 않았던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도 했었는데...자료가 없는게 아쉽네요.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급 충격을 안겼던 소녀대 그때까지 은둔의 왕국이었던 나라를 변화시킨 선구자였죠 무대 의상 노래 화장 퍼포먼스 센스 충격받은 한국연예계가 음악 드라마 패션등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주었죠 우리에겐 은인이나 마찬가지 였죠 저당시 공연조건이 일본어로 못부르고 영어로 하는 조건으로 공연이 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일본어로 부르면서 일본에서도 난리났었다고 하죠
@@sky_angel2 무슨 소리인지. 이 노래를 일본에서 일본어로 불러서 난리가 났다고라고라 😂
@@에뚜삐숑 슈발 젊을때 거금주고 사서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던 내 비됴 카메라 없어진지 20년도 다 된거 같네 ㅠㅠ
何回聴いてもイイ歌だ!我が日本の宝だわ。
残念なのは 、日本語歌詞が韓国では認められてないと聞いてる事。
まぁ、英語歌詞でも結構サマにはなってるけど…。
의상과 스타일에서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던 소녀대❤
마이크 스탠드도 일본에서 공수해온 듯. 당시 한국엔 저런 알록달록한 스탠드가 없었음.
Lagu ini adalah dari Malaysia 🇲🇾...
헝가리노래를 각국에서 리메이크함
이덕화 진행자만 봐도 유선마이크 들고 나오는데 쟤들 셋은 무선임
미호..1969년생
토모...1972년생
레이코...1969년생
ひゃ~っ、だからか~、
少女隊、大好きだった✨同世代って嬉しい🎵😍🎵
私、1970年生まれ😂
とも、俺の一個上か
とも同じ中学だったから時々通学中見かけたけど小さくて可愛いかったよ、麗子はともに会いに来たのか近くのコンビニで何回か見た、凄く綺麗だった
미모가,, 미쳤다리네요.. 진짜 최고십니다! 갠적으로 korea 너무 좋아하는데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自主規制が溢れてきますよ。
소녀대..초등학생 시절 MBC 국제 가요제에서 Starlight memory 라는 노래로 은상을 수상했고 중학생 시절 KOREA 라는 노래로 올림픽과 맞물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기억이 납니다😄원래는 징기츠칸의 보컬이었던 레슬리 만도키와 혼성그룹 뉴턴 패밀리의 에바 선이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만나 연인이 된것을 자축하며 만든 곡이었고 🇰🇷의 박혜령과 🇭🇰의 시타웡도 리메이크 해서 불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이 연인이었단 소리는 틀린 사실입니다. 둘이 같은 헝가리인 출신으로서 의기투합해 곡을 만든건 맞습니다..
(만도키는 공산정권 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여러번 투옥되는 경험을 거쳐 결국 정치적 박해로 독일로 망명)
그러나 당시 에바 선은 다른 나라 사람과 연애중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고 만도키는 88년 의사였던 에바 피츠너(Eva Pfitzer)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 중 한명이 독일에서 배우로 활동중인 Lara Mondoki).
(서로 다른 상대와 연애중이었는데 대중들 모르게 둘이 같은 곡을 작업하다 눈맞았다면 불륜 아니 양다리였던 거겠죠. 근데 88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놓고 만도키가 88년에 가수 에바가 아닌 의사출신 에바와 결혼한거 보면 한국에서 퍼진 괴상한 루머는 루머일뿐..더군다나 여지껏 만도키가 여성편력이 화려하다거나 불륜으로 사고쳤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이런 잘못된 소문이 퍼지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에바 선과 에바 피츠너 두 사람의 'Eva'...이 이름이 같아서 생긴 오해인듯 싶습니다.
참고로 에바 선은 그룹(Neoton Familla..영어식으로 알려진게 뉴튼 패밀리)이 아닌 솔로로 활동할때 일종의 예명같은 거였고 실제 이름은 에바 체프르키(Eva Csepregi)였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작곡가였던 밥 히틀리(Bob Heatlie)와 만나 슬하에 아들을 하나 두게 됩니다.
들이 연인이라는건 루머입니다.
둘다 따로 연인이 있었고
헝기리 출신이며
독일 팝그룹 징기스칸 맴버였던
레슬리가 88올림픽에 주제가 공모 위해 만든곡 입니다.
물론 영화 탑건의 take my breath away를 작곡한 조르지오 모더로 가 만든
손에손잡고에 밀렸지만
그리고 같은 헝가리가수 에바와 같이 불렀죠.
뮤직비디오도 있습니다.
@@3월의라이온 당시 쉴새없이 올림픽관련 소식을 내보내던 뉴스프로그램에서도 두명이 한국올림픽을 통해 연인이 되었고 그곡을 만들게되었다. 이런 식으로 소개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엔 당사자 직접 출연해서 재연도 하고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그때문에 뉴스를 본사람은 기정사실처럼 생각했을겁니다.
저도 궁금해서 위키등을 찾아보니 부부사이도 아닌거 같아서 적잖이 충격인데, 방송국에서 왜 그런식의 연출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이후에 부부는 아니었더라도 그 시점에서는 연인이었을수도 있구요.
마치 한국에서의 괴상한 루머로 치부하신다면 그건 방송국의 잘못이겠죠.
중딩때 그시절... 그립다...ㅜㅜ
저때 당시 소녀대를 보고 충격먹은 한국인들이 많았죠. 김완선과 소방차가 있었으나 나이 어린 아이돌 그룹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저때 당시 일본은 선진국이었고 국가 차원에서 반일을 외쳤으나 정작 어른들은 일본 전자제품에 열광했고 청소년들은 소니 워크맨에, 아이들은 일본 문구제품에 열광하던 아이러니한 시대였습니다.
굳이 열광까진 안했어요
@@unhanskims263
열광했었어 그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내가 직접 경험했었어
@@unhanskims263 열광 했음 불법 카세트 테이프에 형들이고 아이들이고 전부 듣고 저 여자들 예쁘다고 난리났었으니깐
소니 아이와 카셋트 가지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던 시대였음
일제 펜텔샤프 대박침. 짝퉁 국산 제도샤프가 삼분지 일 값에 추격시작. 품질 따라 잡는데 20년 걸림
소녀대 사랑해요 😊
쟈니 윤 쇼에 출연했을 때의 방송 장면들이 기억이 납니다. 게스트를 위한 소파가 좁아 자리가 부족해지니 조영남씨가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버려 폭소가 터지고 역시 조영남씨가 소녀대에게 뽀뽀하는 시늉을 익살스럽게 하자 미호가 조영남씨를 향해 뺨을 떄리는 헛동작을 크게 하니 조영남씨는 또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개그 연기를 해서 폭소가 터졌지요. 하지만 질문 내용은 약간 아쉽기도 했어요 내놓은 앨범들중 몇개나 히트했느냐, 세명중에 누가 리더냐는 질문등은 그다지 세련지않았다고 생각되네요.
서울랜드에 다녀온 강신*이라는 친구가 소녀대의 공연 장면을 직접 촬영한 5*7사이즈 컬러 사진 한장을 선물해주었는데 지금도 보관중입니다. 그때 서울랜드에서 하얀색 단체티를 맞춰입은 팬클럽 학생들이 보여서 자기도 가입하고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였다고 투덜거리던 강신*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벌써 34년전 일이군요..
죠니엔젤 비디오도 잘 봤습니다. 좋은 자료 많이 소장중이신 것같은데 많이 보여주세요!
잘기억하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자니윤씨가 토모 보고 남자친구 많냐고 하니깐~ 곰곰히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손가락을 찝어 가면서 어디 친구...어디 친구...어디친구...많다고 웃으면서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dream9789 그렇습니다~ 그 장면도 댓글을 읽으니 바로 기억이 나네요 정말 꼭 다시보고싶은데 언젠가 볼 수 있겠지요~
헐~ 나이가 어떻게 되시길래 이걸 다 기억하시나요. 전 당시 국민학교 5학년 때 TV에 이쁜 누나들이 화려한 옷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보고 그냥 충격 먹은 기억뿐...
와..이런 이야기 좋네요
고등학교 당시 비됴 가게에서 소녀대 일본 라이브 테잎 사서 2시간 공연한것 보면
미호 토모 레이꼬 3명 정말 그당시 최고였음..특히 레이꼬는 정말 일본 에니메이션 외모였음...
소년대 무도관 공연 테입은 봤는데
두명 혼혈이죠?
当時は大変だったのですね。40年近く前のLP版いまだに持つてます。
당시에 받은 충격이 엄청 났었음. 마치 한국에서 보여주면 안되는 금기를 실수로 보여준듯한 느낌이었음.
북한에서 공중파로 지금 한국 아이돌을
보여준 느낌이랄까
소녀대는 초기 투자비용만 무려 30억엔(300억원)이라는 사실로 화재가된 그룹으로써, 미국에서 앨범, 안무, 패션컨셉을 제작한 일본의 차세대 그룹이었음 (참고로 1980년대에 300억원이면 지금의 2천~3천억원 수준인데, 당시 일본은 미국과 거의 대등한 경제대국이었던 버블경제시대라서 가능했던 금액). 소녀대가 한국을 방한했을때, 평균적인 일본 걸그룹의 수준에도 한국이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소녀대는 일본에서도 매우 앞서가는 컨셉의 그룹이었음. 그리고 영어로 '코리아'를 부른 이유는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당시 반일감정이 심할때라, 한국방송에서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될 때라서임 (그만큼 한국에서의 활동도 매우 간절했기 때문. 자세한 설명은 아래단락에) 하지만 소녀대가 한국에 자주 방문을 하고 일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자, 나중에는 일본어로도 다른 노래들을 불렀음.
소녀대는 아키모토 야스시(훗날 AKB48와 노키자카46 제작자)와 손잡고 일본 각종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승승장구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아키모토 야스시가 육성형 아이돌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게 일본팬들에게 제대로 먹히면서, 반복된 연습을 통해 데뷔하는 완성형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 들었고, 소녀대도 이 흐름에 직격타를 입었음. 소녀대가 한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 이후 일본내 앨범 판매량이 1000장 수준으로 곤두박질 치다가, 투자비용 30억엔 회수에 고생하던 제작사는 결국 부도나버림.
하지만, 소녀대가 한국 가요계에 미친 영향은 정말 컸으며, 한국 최초의 팝 그룹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가 결성되었고, 이후에도 남자/여자 그룹형 아이돌이 계속해서 생겨나는데에 지속적인 영향을 줬음. 현재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케이팝에 영향을 줬다고 하는말은 결코 억지가 아님.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이후에 생겨난 팝 그룹아이돌 중에 하나임.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으로 한국의 음악계가 팝중심으로 바뀌고, 본격적인 그룹아이돌의 시대가 열린것도 사실임.
좋은 설명 감사드립니다~
원곡은 이탈리아남녀 둘이 만나서 사랑을 이룬곳이 한국이라 기념으로 만든곡을 일본아이돌이 리메이크함
아닌데 독일인가 불가리아인가 그랫음
성큼성큼 코리아~~~ 성큼성큼~~~
참 흥겹고 정겨운 노래네용 😊❤
한국에서 레전드 찍을수 있었던 사람들인데 ...
당시에 조그만하던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생들이 다 왼쪽이나 오른쪽 중앙 누구 좋아하냐고 남자 여자 다들 그 소리였음...
그러면 대 도시들 소 도시들은 어떤 상황이었겠음?
그러다가 갑자기 티비에 나오지도 않고 사라짐...
댓글들 보면 은퇴각이라서 해체 했다는데,
정말 지대로 활동 했으면 서태지와 아이들 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았을정도임...ㄷㄷ
소녀대 일본 걸그룹 max찍은 누님들 소녀대 이전에도 소녀대 이후에도 이정도 수준의 걸그룹은 없었다 거기다 친한이라서 마음에 들었음
이거 lp 있었는데 많이 들었는데 좋아요
89년도인데 미호 패션좀 봐!
지금 저렇게입어도 쌈박할듯 ~
100년 200년.... 후에 입어도 상꼼할것 ㅋ
그래도 저시대 일본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는게 신기하고 고맙게 느껴지네
이노래 리메이크해서 한국축구 응원가 만들면 100퍼 히트친다
저 곡조차도 리메이크로 알고 있고 한국에서도 박혜령(검은고양이네로)가 리메이크 해서 불렀음..
저때만해도 일본아이돌이 노래를 잘했구나~~
그도 그럴게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은 아이돌이 주류가 아니고 밴드음악이 주류임
슬프다
소녀대 안무와 1도 관련없는 춤을 추는 백댄서들 ㅋㅋㅋ
우리나라의 k-pop의 씨앗이 저 무렵부터 ㅋ뿌려진듯...
저는 70년대 말에 핑크 레이디를 그렇게 좋아 했지요. 키스 인 더 다크! 선친은 미소라 히바리를...
아 미치겠다 잊구 살았던 소조다이 ㅎㅎ 아직 엘피판 있음
의상 이쁘네요
패션도 유니크해~~~^^
난 저 3명중 앞짱구 누님을 좋아했었는데...
나 이거 실시간으로 봤지
정말 쇼킹 그 자체
그 전까진 죄다 20대중반은 돼야 가수 하는줄 알던 시절인데 저런 상큼함 저런 외모와 패션
모든게 충격이었는데 이젠 완전 반대니
고등학교 때. . .
일본어 버전 있는데도 영어로 한건 당시 일본노래는 방송 금지여서 그런가
일본가수가 한국에서 노래를 불렀다는것자체로 대단했어~~물론 의상은 꽁꽁싸메고 나와 아쉬웠지만 ㅋㅋ
Mentari Korea 1988 performing by Raja Ema Soeul
근황 올림픽 같은곳에 얼굴좀 비춰주었으면 좋겠네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방송에서 일본어 못하니까 영어로 질문 했구나
한국가수가 일본가서 japan 불럿으면 바로 가수 은퇴
근데 이분들은 왜 이 노래를 불렀던 걸까요?
일본어도 금지된 나라에서
日本以外の外人からすれば日本の天皇が死んだってまったく関係ないものね。
この曲を聴くと昭和天皇の下血を思い出しますよ。
阿含宗桐山靖雄大僧正。B型。
안무가 락킹으로 바꼈네요~
왼쪽애가 노래는 잘하는거같네😂
상큼상큼 코리아인가?
성큼성큼 코리아인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일본애들이 한국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이상한 상황
정수라 환희가 표절해서 당시 알고 있었던 나는 부끄러움은 내 몫 이었었음.
80,90년대 한국가요의 르네상스라고 주장하는분들
꿈깨시라 일본 음악의 카피시절이다
90프로가 일본음악이었다 그당시의 작곡가들이 모두 활동중지하고 은퇴한 이유가 애시당초 작곡의 능력은 1도앖이 일본문화를 먼저 접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호의;호식 하고 있다
윤상 유희열 윤종신 전부 카피의 신이다
물론 코리아는 소녀대의 노래는 아니지만
소녀대의 컨셉 자체가 kpop걸그룸의 원조라고 할수 있다
웃긴건 일본 노래 카피로 호의호식하는 소위 대한민국 탑 음악가라는 인간들이 허구헌날 반일몰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그러니 좌빨들의 내로남불이 어처구니 없는것
정확한가사가뭔지요
만약 한국에서 JAPAN을 노래했다면 개난리났을듯.. 소녀대의 KOREA를 들어준 일본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복날에 오면 문제(인ㅎ) 없었을듯. 개(딸)덜 줄초상나서 난리 부르스 못췄을테니께이. 😂
감사할것도 많다 ㅋㅋㅋ 오글거린다 니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에게나 감사 먼저 하세요
젊은 세대는 괜찮은 데, 똥86 늙은 세대들은 난리나지.
그 세대들에게는 김일성 찬양가를 불러줘야 좋아함.
더 웃기는 거는 625때 일제 때보다 훨씬 많은 남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거.
@@신의열단네 집구석에서 100년 전 일로 맨날 반일 선동 교육만 시키는 건 잘 알겠다. ㅋ 수탈로 수많은 사람이 아사했다는 데 정확히 어디서 무슨 일로 몇 명 죽었는지 얘기해 볼래? ㅋ 뭐 제대로 대답 못할 게 뻔하다만.
@@시애틀의너부터 감사하고 다녀. 나라 지키는 군인 욕하지나 말고.
This only jpop who sing the korea 👌
일본인한테 영어통역을?
386운동권애들도 일본에 푹 빠졌지요....근데...반일한다고요? ㅋㅋㅋ웃기는거죠..일본문화 개방하고...한국에서 일본문화 유행처럼 금방 퍼져나갔죠....패션도 , 가수들도, 많이 따라하고 모방했지요..
저 때 일본 분위기가 지금 일본 보다 성숙했던 것 같다
KOREA노래.정말몇년만인가
국적은.일본인대.
코리아라고해서.했갈렸어
한국인줄알고.
뭐라할까.재일교포
일본이 제일 살기좋은 나라였을때...내한한 영상이네....근데 애들 스타일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어로 바꿔서 공연했구나
소녀대가 영어를 하는것도 아닌데 웬 영어로 통역?
이때만 해도 한국예능은 거의 일본예능 표절이었다.
일본대중문화가 닫혀있엇고 금지되어 있었다.
부산에서는 일본방송이 일부잡히던 곳이 있어서 일찌기 일본문화가 많이들어와 있었다.
이때는 일본은 말그대로 전세계를 씹어먹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일본걸그룹이 한국을 찬양하던 노래를 불렀다는거 자체가 신기했던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