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_귀천_시낭송가 손무성 시낭송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20 вер 2024
  •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배경음악 : Blue Sunset (Piano ver.)_박석원_박석원 뉴에이지 No.1 소풍

КОМЕНТАРІ • 21

  • @박수산-i4e
    @박수산-i4e 2 роки тому +9

    시낭송도 너무 잘 하셨지만 이 시의 내용을 더 깊게 알게 돼서 너무 좋습니다.

    • @다원-y5k
      @다원-y5k 3 місяці тому

      즈믄날소묘 쨈 쨉아닙다 시집은 영혼 진실 입니다

  • @tvpoemandrecitation2931
    @tvpoemandrecitation2931 Рік тому +3

    아름다운 영상 속으로 스미는 시향이 아름답습니다 🎉끝까지 즐감하고 자주 뵙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평강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

  • @알콩달콩-v6q
    @알콩달콩-v6q 4 місяці тому +2

    덕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happyparktv
    @happyparktv Рік тому +4

    너무 좋아요 영혼을 울려요 유친손잡고 갑니다 알람구독 과 좋아요 응원댓글 ❤️👍🙏💕 함께해요🙆‍♂️

  • @sbksb5711
    @sbksb5711 3 роки тому +13

    [評論]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오늘도 한편 골라서 심심하니 같이 데리고 놀아야 하겠다. 영 심심해서 안되겠다. 인생은 놀이다. 애나 어른이나 놀 거리가 있을 때 시간도 잘 가고, 시절도 좋다. 놀 거리란 일거리요, 놀 듯이 일하면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니 곧 글 쓰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이다. 消日거리가 없는 사람은 참 심심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 노쇠해서 기력이 쇠잔해져 눈도 침침하고 근골(筋骨)도 예전 같지 않을 때 그 적막감이란 참으로 막막할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일거리-소일거리와 노닥거리-가 있다는 것과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힘이 있다는 일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아직 그의 때가 남아 있고 그것은 이어지는 생의 잔잔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나 골라서 또 내 생각의 나래를 맘껏 左衝右突하면서 전개해 볼 생각이다.
    천상병님의 '귀천'을 골랐다. 이 시는 3연 9행으로 비교적 짧은 시에 속하지만 1연과 2연에서는 이 세상에 왔다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을 노래하고-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있고, 3연은 돌아가면서 느낀 소감을 서술하고 있다. 간결하지만 생의 의미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색과 더불어 아름다운 생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도 하고 있는 바 건강하고 밝은 저자의 인생에 대한 낙천적이고도 맑은 심성을 보는 것 같아서 참으로 가슴에 잘 와 닿는 시이다.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의 人口에 膾炙되는 좋은 시이다. 오늘 이 시를 불독처럼 물고늘어지며 좌우로 흔들어볼 요량이다. 뼈다귀 진국 살점이 묻어서 이빨에 잘근잘근 여운을 남길 때까지 뜯고 핥고 뱉었다가 다시 주워 물고 흔드는 것을 여러 번 할 생각이다. 行마다 그윽한 눈길도 주고, 하나 하나 내 소견에 옳은 데로 풀어 헤쳐서 희멀건 肉水 다 빠져 나올 때까지 맛을 음미하면서 정말 한통속이 될 때까지 씨름해 볼 요량이다. 물론 作家가 作故했기 때문에 내 글에 대해 반론할 여지는 없다. 나는 단지 내 局量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우연히 길을 가다가 길거리 가로에 내 걸린 가게 간판 하나를 무심코 보고 마음이 동하여 거기에 맞춰서 신명난 쾌춤(?)을 추면서 함께 흥겨워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 @sbksb5711
      @sbksb5711 3 роки тому +5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1연 1행에서 이 시는 과감한 歸納法的 서술로 단정을 짓고 있다. 시의 결론, 주제가 바로 이 행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기독용어로 이와 비슷한 것으로 소천(召天)이라는 게 있다. '불러서 하늘에 갔다'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別世(별세; 세상과 이별함), 作故(작고; 이미 옛일), 타계(他界;다른 세상으로 감), 영면(永眠;영원한 잠에 듬) 등 ... ...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말은 이밖에도 더 많이 있다. 나 즉, 본 시의 저자는 머지 않은 장래에 하늘나라에 돌아갈 것을 알았다. 바쁜 현대인들은 바삐 산다고 땅 위 세상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不知不識간에 잊고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왜 그런가? 골치 아픈 문제, 풀 수 없는 난해한 수수께끼에 파묻히거나 절망뿐인 미로(迷路)에서 쓸데없이 헤매지 않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약삭빠른 생쥐처럼 상자 안에 갇힌 채로 이 모서리 한번 이빨로 쓸어보고 저 귀퉁이 한번 갉아보고 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어쩔 수 없이 오도 가도, 빼도 박도 못하고 그냥 도리 없이 끌려가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이 시인은 돌아간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그에 대비한 삶을 살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명명백백한 그의 선언적 선포에서 그것을 감지할 수가 있다. 누구와 타협하지 않고 다른 어느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가는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만천하에 공포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당돌한 발상이요, 기발한 착상이다. 감히 그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자존에 대한 선언을 꺼려하는 현 세태에서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 자랑스럽게도 용감무쌍하게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는 빛이라곤 전혀 없이 자신 만만하게 담대하게 주장하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 있게 인생을 살았다는 말이다. 인생에 대하여 道通해서 이미 達觀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누가 불러 주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행은 저자 자신이 오랜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면서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고 영혼은 더욱 맑아져 괴로움과 고통과 不合理와 불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을 떠나 파란 하늘, 근심과 고통과 눈물이 없는 天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단적으로 그렇게 나타내었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불의의 체제에 항거하면서 옥고를 치르면서 고문으로 망가진 육신을 그 이전의 건강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희망으로 그리는 파란 하늘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음직도 하다. 여하튼 이 시 귀천의 주제와 목적이 바로 이 序頭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sbksb5711
      @sbksb5711 3 роки тому +5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새벽을 노래하고 있다. 캄캄한 영욕의 밤, 그 치욕의 밤, 불면의 밤, 암울한 시절, 얼음장같이 차디차게 얼어붙은 시린 동토의 나라에도 찬란한 새벽은 찾아오는가? 새벽의 빛, 희망과 소망의 빛, 자유의 노래는 들려오는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이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고 누르던 절대권력도 權不十年의 속담처럼 무너져 내릴 때가 오듯이 철권통치도 압제도 압박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고 국민의 의식도 그렇다. '아침이슬'처럼 긴 밤을 지새우고 찾아오는 밝은 黎明은 사람들에게 소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이슬은 무엇인가? 아침나절에 풀이나 땅 표면에 잠시 묻어 있다가 해가 떠올라 사방을 비추면 사라지는 것이 이슬이다. 이슬은 안개와 같이 그 수명이 짧다. 권력의 무상을 일깨워주는 말이라 할 수가 있다. 국민을 누르고 압박하는 철권통치도 자유에의 갈망과 소망을 결코 무너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얻어진 자유는 그 수명이 참으로 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해서 세워지고,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in the earth-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 @sbksb5711
      @sbksb5711 3 роки тому +4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이 행은 무너진 권력, 국민을 누르고 압제하던 권세가 깨어짐으로 인해 기뻐하는 국민의 환희에 찬 모습을 노래한다. '손에 손잡고' 이 구절은 88 올림픽 때 코리아나가 부른 '올림픽 주제가'와 비슷하다. 'hand in hand' 언젠가 소싯적에 본 그림의 장면도 떠오른다. 그 그림은 '성조기와 태극기 그림아래 두 손이 악수하는 모양의 그림'인데 그것은 그 당시에 미국이 우리나라에 식량을 원조하던 밀가루 부대에 그려진 그림이다. '손에 손을 잡는다'는 말은 親睦과 和解를 상징하고 의미한다. 한편으론 團結과 團合을 강조하기도 한다. 손에 손을 잡고 자유에의 기쁨을 맘껏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 자유에의 갈망이 커다란 기쁨으로 출렁거리며 온 산천을 기쁨의 도가니로 하얀 태극기의 물결로 일렁거리는 것을 이 시인은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에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렸을 때 거리에 모여 든 빨간 물결들, 그 축제의 넘실거림을 연상하면 별로 무리가 없겠다. 한편으로 이 행은 자연과 벗하며 사는 無爲自然의 도사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이슬은 무엇인가? 그냥 자연의 한 일부분이다. 맑고 맑은 수증기가 공기 중에 있다가 그것이 찬 물건에 닿으면 응고되어 생기는 결정체가 바로 이슬이다. 그 이슬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밝고 맑고 淨함 그 자체이다. 맑고 밝고 아름다운 그 순수성을 간직하고 그런 고운 마음씨,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같이 하겠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천사나 선녀와 함께 밝고 빛나는 하늘로 올라가고픈 念願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새벽빛'과 '이슬'이라는 부분으로 시간상으로 보면 이른 아침이다. 하루의 시작이요, 인생의 출발점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대밭에 빗살 같은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그 언저리 풀밭이나 竹葉에 옥구슬처럼 영롱하게 매달려 대롱대롱 빛나고 있는 맑은 正金같은 이슬방울을 한번 상상해 보라. 얼마나 우리로 驚異에 차게 하는가? 신비감에 사로잡히게 하는가? 자연은 때때로 말없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언의 많은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많은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렇게 도 해석이 가능한바 경이에 찬 신비감으로 인생을 시작하고 진행해 왔지만 언젠가는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는 悲壯感을 엿볼 수가 있다.

    • @sbksb5711
      @sbksb5711 3 роки тому +4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2연 1행도 1연의 1행과 마찬가지로 事必歸正의 심사를 노래하고 있다.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세상의 꿈도 소망도 고통과 슬픔도 아픔도 다 접어두고 훌훌 하늘나라로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보통 시에서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서술하는 경우 그것은 뜻을 강조하거나 더욱 힘있게 주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이 시도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늘은 이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歸去來辭이다. 모든 사람들이 안가더라도 저자만은 혼자서라도 가야겠다는 야무지고 다부진 포부와 각오가 이 구절에 서려 있다. 그것은 단호하면서도 決然에 찬 모습이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결의에 찬 신음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참으로 놀랄만한 强固한 忍耐요, 初志一貫과 節槪와 節操의 상징으로 귀감이 됨직도 하다.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이 구절에 등장하는 '노을빛'은 '새벽빛'과 함께 댓귀를 이루면서 묘한 대조와 함께 始終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새벽빛이 '처음, 시작, 알파(Α)' 라면 노을빛은 '나중, 끝, 오메가(Ω)'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또한 새벽빛은 모든 일들의 始初, 그 序幕이라고 볼 때, 노을빛은 斷初, 終幕일 것이다. 새벽빛과 이슬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서 여럿이 했다면 이제 노을 빛과는 함께 단 둘이서만 하겠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생의 적막감 쓸쓸함을 표상한 것은 아닐는지. 시작은 여럿이서 함께 했다면 이제 인생의 종막 쓸쓸한 그것은 노을 빛으로 대변되는 황혼의 저승사자와 함께 단 둘이서만 가야할 성질의 것이지 않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노을빛이 주는 색깔의 이미지는 황혼이고 느낌은 쓸쓸한 적막감과 고요함이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이 어찌할 수 없는 絶對孤獨의 상념을 노을빛이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해 아래 인생들에게 고루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理法이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그 자신 스스로 밖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짐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고 옆에 누가 있어서 같이 한다면 그것만큼 큰 인생의 위로도 없을 것이다. 이 시인이 신앙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는 그 신앙의 대상을 의미하고 상징하는 지도 모른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신앙의 대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붙들고 가거나 가슴에 품고 간다. 한마디로 연약한 인간이 의지할 곳을 찾아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시인은 노을빛을 만든 그 절대자와 함께 단 둘이서 눈물도, 아픔도, 고통도, 불의도, 추악도, 탐욕도, 없는 이상향을 함께 같이 가기를 소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sbksb5711
      @sbksb5711 3 роки тому +4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기슭'이란 단어의 사전적 풀이는 "*기슭[명사] 1.비탈진 곳의 아랫부분. ¶북한산 기슭. 2.강˙바다 등과 잇닿은 가장자리 땅. ¶한강 기슭." 으로 설명이 되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비탈지고 어두운 아랫부분의 가장자리 땅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사람이 사는 땅 곧 하늘아래의 모든 곳이나 여러 곳으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세상은 참으로 넓다. 그리고 무수하게 많은 것들이 있다. 어느 재벌가는 말하기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했지만- 그 사람은 개인 사정상 지금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한 기슭에서 논다는 말은 곧 산다는 말이요, 목숨을 지탱하고 부지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총체적인 적나라한 삶의 眞面目을 엿볼 수 있는 말이 바로 이 기슭이다. 邊方, 혹은 가장자리. 밑바닥은 다 뜻이 유사한 동의어들이다. 세상의 한 자락 귀퉁이에서 놀던 아님 세상 중심에서 지내던 간에 好衣好食하던 아님 流浪乞食하던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놓였을지라도 그것은 각 사람의 살아가는 다른 방편일 뿐 본질적인 삶이라는 놀이라는 입장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바로 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 말이 상징하는바 기슭이라는 말이 그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구름이 손짓한다' 구름은 허공에 떠 있는 아름다운 風光이다. 구름이 주는 이미지는 느낌과 색깔은 '평온함, 안락함, 포근함, 유유함, 기쁨, 들뜸'등 여러 상황으로 대변이 된다. 그 구름이 손짓을 한다. 손짓은 손가락을 놀리어서 어떤 뜻을 나타내는 형용인바 '오라고 하는지, 가라고 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文脈을 봐서는 '하늘로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지만 어쨌든 이 구절은 구름 타고 오시는 基督의 모습이 연상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제 본 시는 마지막 절정을 향하여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마치 연어 떼가 산란을 위하여 그 태어난 고향을 향하여 멀고 넓은 태평양 바다를 헤엄치고 강을 건너고 협곡을 가로지르고 자갈이 흐르는 沼와 내를 거슬려 올라가고 폭포수 떨어지는 거센 강물, 목숨을 위협하는 사나운 짐승들의 위협을 불구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死力을 다해 오르고 또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 그렇다. 産卵을 위해 그것은 마지막 희망의 堡壘다. 이 시인도 그것을 꿈꾸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심정은 그럴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어찌 하늘로 돌아갈 강렬한 꿈과 소망에 불탈 수 있었겠는가? 하늘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영원한 평안과 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모진 풍파와 싸운다고 한 허리 졸라매며 살았지만 그 곳은 항상 바람이 불어 내가 땅 위에서 살아온 동안 얼마나 눈물나고 슬픈 일이 많았던가? 不義의 體制에 항거하다 肉身은 골병이 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숱한 세월을 가슴 아파하며 지냈던가? 이제 그것을 곧 벗어버릴 것이다. 훌훌 털어 버릴 것이다. 번데기가 脫皮하여 매미로 탈바꿈하여 여름 땡볕 한낮을 고운 노래 부르며 날 듯이 나도 하늘 가운데서 세상의 무겁고 버거운 짐 다 벗어서 내려놓고 천상의 아름다운 노래나 한 곡조를 불러나 볼 것을 ... ... 시인은 혹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 @Ice-jp8fn
    @Ice-jp8fn 3 місяці тому +1

    감사합니다❤🎉

  • @naturefruitmineralwater6307
    @naturefruitmineralwater6307 2 роки тому +3

    고맙습니다

  • @공-p9y
    @공-p9y Рік тому +4

    와 목소리 대박 ㄷㄷ

  • @kimwonjune
    @kimwonjune Рік тому +2

    아멘.

  • @태종이방원-q1b
    @태종이방원-q1b 2 роки тому +4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조각...

  • @chriscossette6650
    @chriscossette6650 2 роки тому +3

    I am so confus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