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금번 강의는 청화수라는 재야 역사가가 전에 강의한 것을 들은적이 있었는데 많은 부분에서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강의를 접했습니다. 이렇게 어렴게 얻은 성과를 인정하고 공유하면 약한 재야 사학자들이 더 많은 힘을 얻틀 거라 믿습니다. 결국 백제의 근원은 졸본부여=홀본부여였고, 홀본은 해의근원 = 일본이었다는 연구 성과는 탁월한 발견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이란 국호가 분명 해뜨는곳의 동쪽에 사는 사람이 지었을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는데 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는 맞았지만 백제인이 스스로를 일본이라 불렀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큽니다. 늘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쿠다라는 구다국. 즉 산동지역에 있었던 마한 국가중 가장 큰 나라였던 구다국이 원 명칭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보시는 위키백과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습니다. 꼭 걸러서 보시길 바랍니다. 진짜역사는 사서를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교수님 강의 깊이 감사드 드립니다 너무나 만은 한국 단아가 일본 단어와 유사하지요 우리말의 부인을 뜻할때 “여보”가 실제 일본어 단어에 “뇨보우”입니다. 일본 도시중 ”나라“ 시가 잇는데 실제 한국어의 국가를 의미하는 나라의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것말고 엄청 만습니다… 소서노라고 소개하신 사람 이름에서 일본 유명 신화에 나오는 폭풍 신“스사노”와 너무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런 것들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요?? 한국 조상들 특히 백제계 사람들의 고대 일본 국가에 끼친 영향이란 것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이엇던 것이 틀림업습니다….
25년 일본 오사카에서 6개월간 일본 기숙사에서 지낼때 일본 전국에서 온 일본 의사들과 아사히 맥주를 마시면서 담론했습니다 왜? 백제를 읽을때 쿠다라 라고 읽니, 하쿠사이라고 읽는 경우는 백제를 일걷지 않는다합니다 백개의 ... 백제는 오로지 쿠다라 입니다 유일하게 한단어 입니다 쿠다라 한국에 돌아온 백제역사를 조금씩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쿄토의 토백이의 30프로는 백제계 라고 하더군요, 정말,어떻게 알았니? 역사책에 다 있다 하더군요 광주리 같은 것을 다라 라하죠 쿠 ㅡ구 ㅡ 언덕 구다라 ㅡ 큰 언덕 봉우리 비약이 심하죠? 백제는 한강 웅진 부여 익산 을 터전 삼고 담로를 운영하던 해양제국 아닐까요? 예전에 15년전에 처음 부여에 도착해서 택시타고 정림사지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가 형제탑 ㅡ나중에 알고보니 평제답 부여친구들을 만나면 부여주민의 역사인식이... 힐난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15년전 경에 한국 한 방송국에서 역사물을 방영한 중에 일본 현지 취재중 일본인 교수에게 왜 백제를 쿠타라라고 읽느냐고 하니 웃으면서 '당신들의 나라'라고 대답했어요. 피지배층이 지배층에게 그 출신국을 그대로 읽지 않고 귀국이라고 한 셈이지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여 발표하시는 영상을 소개해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몇일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ua-cam.com/video/pc7KVqOcK4E/v-deo.html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41550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발음했고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모음 탈락하여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그 영상들 중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일월日月의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보이시고 팔괘를 만드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지나(china) 사서와 서적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와 여와 남매를 그린 인수사신도人首蛇身圖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치우천왕의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한 것을 영어-산스크리트어 사전 서문을 보여주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는 실례들을 보여주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이 전해진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시고 여러 나라의 같은 뜻 다른 발음들의 자료을 보여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전에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뜻이라는 훈을 봐도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영상에서 쌍각지 가진 사람은 중국(지나)인의 후손이라 해서 웃고 이미 댓글이 매우 많아서 못 달았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이신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ua-cam.com/video/5ofYOcofmuk/v-deo.html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한자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우리 민족은 지금도 유일하게 사용하는 표의문자 글자(한자)와 가장 과학적이고 쉬운 표음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문화의 시원이자 강국이라 하셨어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부상국은 북아메리카 대륙 서쪽입니다. 나중에 점점 커져서 멕시코 까지 커졌고... 미국?역사 채널에서 북아메리카를 부상으로 말하면서 콜롬부스 신대륙은 잊으라 말하더군요. 우리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에 의해 한반도에 묶여 있는 것을 한탄하지만, 사실 북경과 황하강, 양자강에 묶여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동해항에서 울릉도 까지 160킬로인데 베링해협은 80킬로 밖에 안됩니다. 외국어로 된 고지도에서는 그곳을 운하라고 다 기록했습니다. 고구려든 백제든 발해든 거란이든 여진이든 적에게 밀리면 다 대륙을 넘어 도망갔을 거라고 봅니다. 고작 일본 열도로 도망가서 뭐하게요. 다 잡히죠. 어떤 세력이 아메리카에 관심을 끊기 위해 대륙을 가르고 언어를 지우고 했을 겁니다. ... 유목민은 거리 상관없이 자유롭게 들고 나고 했을 겁니다. 우리 민족 중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사는 사람이 동국을 세우고 동이가 되었을 수도 있죠. 그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아니 제가 들은 노래 소리만 해도 충격이 되실 겁니다. 아즈텍만 해도 그들은 고조선 수도 아스탈란에서 고리를 거쳐 와서 세웠고 맥이족이라 하잖아요. 예맥족 말하는 거겠죠. 600년대 사막인근 아스달란에서 기질 이라는 무당에게 선동되어 고리땅을 거치고 거기서 고리족 부족사람과 같이 10000여명이 와서 아즈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계속 밀려와서 늦게 온 사람들은 점점 멀리 남하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동이족 들이 우리말을 가지고 아메리카에 제국 들을 세운 것이겠죠. 잉카제국에 말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 형벌이 있더군요.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는 세계사라고 하더군요. 저는 신뢰합니다. 그리고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그리고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 세계를 정복한 정화가 왕의 성을 하사받아 이정화가 된 기록과 세계지도 ....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세종의 뜻에 부합됨을 확신합니다.
부여융 묘지명에 백제는 사직이 천년되었고 산동성 양곡(해뜨는 고을)에서 처음 나라를 열였다 순임금이 희중에게 양곡에 살도록 명하였읍니다 우이마한 입니다 소정방의 직책이 사지절 도독 우이마한 토벌 대장으로 되어 있어요 양직공도에는 백제는 래이마한에 속하는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온조는 십제로 마한연방의 일개국가 일뿐입니다 산동성 래국은 은나라 이전부터 있었던 래이족 즉 동이족입니다 백제는 마한이요 고조선을 이은 나라입니다 우이마한은 부여계이고 래이마한은 선비계 모용황의 연나라와 같은 민족입니다 선비 모용씨가 백제 문주 삼근 동성왕을 일본은 계체천황의 현 일본천황가를 신라는 백제에서 바다로 건너간 백제인 모즉지(일본서기 문득지)가 신라왕이되었다 라고 수서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법흥왕이 되었읍니다 신라는 이 법흥왕이후 진흥왕 등 강력한 국가다운 국가가 되어 삼국을 통일하였읍니다 우리나라의 정통은 우이마한 래이마한 백제 신라가 정통이고 일본은 백제의 속국입니다 이것이 실제역사 아닌가요!
따라서... 신라의 후계를 보면 결국 만주족이 신라의 정통성을 이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한반도는? 한반도는 발해 출신의 작제건이 신라로 들어와서 예성강의 송도(개성)에 터전을 잡게 됩니다. 이후 작제건 후손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게 되지요. 물론 1392년 조선이 건국되지만... 그 정통성은 엄연히 발해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한반도에 뿌리 내린 국가의 정통성은? 바로 고구려에서 찾아야 된단 말입니다. 우리는 고구려의 후손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불리우는 명칭이 바로 korea가 된 것입니다.
백제의 정통성은 당연히 일본이 잇게 되는 것이고요. 지금도 수많은 백제 왕족들이 일본에 있으며 제일 유명한 사람은 아키히토 천황이지요. 아키히토 천황은 자신을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놈의 반일주의 덕택에 곧 죽어도 인정하려 들지 않지요.
백제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점령하고 국호를 바꾸어 존속해 왔고,,,, 그럼 고구려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중국에 몇몇 소수 민족으로 변해 있지는 않고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그 기상이나 진취성 불굴의 기질은 결코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존속해 오지 싶은데,,,, 동유럽 어느 나라일까? 아니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ㅋ
고(구)려는 망한후 얼마 안있어서 대조영이 고려라는 국호로 재건국했는데 당나라는 그나라를 발해라고 부른 것이고 얼마후 궁예라는 작자가 고려라는 나라를 건국했다가 곧바로 이름이 같은걸 알고 마진 태봉으로 고쳤다가 후에 왕건이 고려(발해)가 망한후 십여년후에 다시 고려라고 이름 바꾸어 재건국하였다. 고구려는 원래 200여년 고구려라는 명칭을 썼고 그이후 400여년을 고려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영어명칭은 여전히 고려공화국으로 쓰고있는 중이다.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여 발표하시는 영상을 소개해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몇일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ua-cam.com/video/pc7KVqOcK4E/v-deo.html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41550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발음했고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모음 탈락하여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그 영상들 중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일월日月의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보이시고 팔괘를 만드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지나(china) 사서와 서적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와 여와 남매를 그린 인수사신도人首蛇身圖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치우천왕의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한 것을 영어-산스크리트어 사전 서문을 보여주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는 실례들을 보여주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이 전해진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시고 여러 나라의 같은 뜻 다른 발음들의 자료을 보여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전에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뜻이라는 훈을 봐도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영상에서 쌍각지 가진 사람은 중국(지나)인의 후손이라 해서 웃고 이미 댓글이 매우 많아서 못 달았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이신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ua-cam.com/video/5ofYOcofmuk/v-deo.html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한자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우리 민족은 지금도 유일하게 사용하는 표의문자 글자(한자)와 가장 과학적이고 쉬운 표음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문화의 시원이자 강국이라 하셨어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우리 조상과 관련된 표기의 핵심이 불(火), 해(日), 쇠(金), 새(鳥/隹), 세(三/東), 쇠(牛), 등은 모두 해(태양)를 지칭하는 훈.음차 표기입니다. 백제는 삼조선 마한(馬韓)의 자리를 이어받은 나라로 그 뜻이 같은 것으로 봅니다. 즉 백(白/百/伯/十)은 마한의 마(馬)와 대응되고 뜻은 크다(大) 입니다. 제(齊/濟/殘)의 고대음은 '카시러' 이고 우리말 훈음도 '가지런(하다)' 뜻은 해(태양 ) 입니다. 마한의 한(韓)과 같습니다. 따라서 국호 백제는 '큰 해나라'로 추정합니다. 문자의 뜻이 아니라 훈.음차로 풀어야 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백제의 본거지는 한반도가 아니라 산동성 남사호(海) 인근이고 그 아래에 왜(倭)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엔, 동서남북 = 좌우전후 였고, 몽골에선 지금도 동일합니다. 몽골어에서 서쪽이 오른쪽이고, 둘다 "바룬" 이라고 합니다. 바룬은 곳 우리말 바른 과 같은거고. 바른쪽이 오른쪽입니다. 다시말해 발조선 은 서쪽 조선 이란 소리죠. 발조선=번조선=변한 . 마파람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 막조선=마한. 진/신/새 는 동쪽 진조선=진한 . 북동풍은 높새바람. 높=북쪽. 한자화 해서 고-구리. 북쪽 구리 라는 소리. 서풍을 하늬바람 이라고 하는건, 발바람 하면 발음이 중복되니 변화가 된듯.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여 발표하시는 영상을 소개해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몇일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ua-cam.com/video/pc7KVqOcK4E/v-deo.html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41550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발음했고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모음 탈락하여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그 영상들 중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일월日月의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보이시고 팔괘를 만드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지나(china) 사서와 서적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와 여와 남매를 그린 인수사신도人首蛇身圖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치우천왕의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한 것을 영어-산스크리트어 사전 서문을 보여주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는 실례들을 보여주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이 전해진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시고 여러 나라의 같은 뜻 다른 발음들의 자료을 보여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전에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뜻이라는 훈을 봐도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영상에서 쌍각지 가진 사람은 중국(지나)인의 후손이라 해서 웃고 이미 댓글이 매우 많아서 못 달았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이신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ua-cam.com/video/5ofYOcofmuk/v-deo.html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한자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우리 민족은 지금도 유일하게 사용하는 표의문자 글자(한자)와 가장 과학적이고 쉬운 표음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문화의 시원이자 강국이라 하셨어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일본 왕실과 연대를 강화해 일본의 침략성을 반성 시키고 관계개선의 열쇄를 찾을 수는 없나요? 모국 땅 형제국을 악용해 자기만 부흥해보겠다는 야망은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침략적 제국주의는 공동번영의 새로운시대를 맞이하여 아직도 중국 일본과 같은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 고루한 정책이 아닐까요?
@@Hyuchan1002 19세기 이전에는 대사관이라는 존재도 없었죠. 단지, 임라일본부의 기능이라는 것이 그러한 대사관/공사관의 역할이었다는 의미. 가야는 노동력이 부족했고 열도에서는 철광석/강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가야는 열도에서 노동력을 공급받았고 열도는 가야로 부터 철광석/강철을 공급받았죠. 이에 따라 가야로 공급된 노동력을 관리할 열도 출신 노동자 관리 센터가 필요 했을 것입니다. 임라일본부가 그 역할을 했다는 거 정도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데?
어찌 이런 얘기를 이제야 듣게 되는지
우리 역사학계는 깊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풍부한 사료와 근거로
가장 설득력있는 말씀을 해 주시는 교수님께 큰 감사와 존경을드립니다.
교수님의 높고깊은뜻이 이루어지는 그세월을 기다림니다 조은강의 굿굿굿
건강 잘 보살피셔서 오래오래 훌륭한 가르침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님의 노고로 우리 역사를 보는 눈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와우^^ 넘 놀랍네요^^ 다음 강의가 기대가 됩니다.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넘 흥미진진 하네요...건강 유의하시고...우리 역사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여정이 너무 즐겁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백제의 의미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의를 들으니 백제도 고조선과 같이 해뜨는 밝은 나라의 의미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즉, 백제의 건국 이념도 고조선과 같이 밝고 양심적인 사람이 사는 행복한 나라를 염원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월 10일이 기다려집니다.
졸본= 홀본=백제=일본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교수님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금번 강의는 청화수라는 재야 역사가가 전에 강의한 것을 들은적이 있었는데 많은 부분에서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강의를 접했습니다. 이렇게 어렴게 얻은 성과를 인정하고 공유하면 약한 재야 사학자들이 더 많은 힘을 얻틀 거라 믿습니다. 결국 백제의 근원은 졸본부여=홀본부여였고, 홀본은 해의근원 = 일본이었다는 연구 성과는 탁월한 발견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이란 국호가 분명 해뜨는곳의 동쪽에 사는 사람이 지었을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는데 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는 맞았지만 백제인이 스스로를 일본이라 불렀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큽니다. 늘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테스트-b6i므슨소리하냐고
재야 민족사학이 므슨 친중이라는헛소리하노 여기서까지 친일매국노 수구꼴통짓입니까? 정치는배제하세요
날조와 왜곡에맞서 반중 반일만 존재할뿐
고맙습니다 💯 🍉
1등. 감사합니다.❤
쿠다라는 구다국. 즉 산동지역에 있었던 마한 국가중 가장 큰 나라였던 구다국이 원 명칭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보시는 위키백과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습니다. 꼭 걸러서 보시길 바랍니다.
진짜역사는 사서를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이미 올바른 우리의 고대사, 삼국의 대륙역사, 동북공정의 폐해 등을 익히 연구하시고 계신 분의 댓글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 나라의 식민지 사관이 일소되고 올바른 역사가 정립되고 학교 교육에 이를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나름대로 역사 연구를 많이 하신 분 같은데, 국뽕이 넘치십니다.
반대 증거에도 눈을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산동에 구태 가 세운 구태 백제 에서 따온 이름임.
구태의 나라 > 구태라 > 구다라
@@iljinshin9352 식민사관에서 만선사관, 내선일체를 부정하면 위의 논리전개는 모두 부정 당합니다.
@@davidjacobs8558 저도 구태백제설도 있다고 말하려 했는데요....
과거가 없는 현재와 미래가 있을 수 없죠
'우리 조상 東夷族은 현재 세계 인구의 1/4 이상이 사용하는 뜻글(表意文字)인 漢字의 원형 甲骨 文字를 만들었고, 세종대왕은 인류역사상 가장 우수하고 가장 간편한 소리글(表音文字)인 訓民 正音을 創製하였다.'
5000년전 부족마다 말이 다를땐, 표음 문자는 거의 쓸모없는 문자임.
큰 나라에 대다수 사람들이 동일한 말을 써야 표음문자가 가치가 있어짐.
그러니 표의 문자는 초고대엔 어쩔수 없는거임.
@@davidjacobs8558 이와 같은 이유로 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겠네요.
표음문자를 상용화 시키지 않은 원인은 피지배계층에 대한 통치 수단이 붕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점 입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또 개발 소발 댓글도 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이 바뀌지 않는한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과거를 모르는자 미래를 논하지 말라는 글귀가 뜨오릅니다.
가라테가 가야의 손이라는 것은 정말 탁월한 생각입니다. 일본은 교묘히 공수도라고 쓰고, 읽기는 가라테니까~~
일본의 유도, 가라테, 검도의 원류가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갔고, 일본에서 발전한 것이죠...
교수님 강의 깊이 감사드 드립니다 너무나 만은 한국 단아가 일본 단어와 유사하지요 우리말의 부인을 뜻할때 “여보”가 실제 일본어 단어에 “뇨보우”입니다. 일본 도시중 ”나라“ 시가 잇는데 실제 한국어의 국가를 의미하는 나라의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것말고 엄청 만습니다… 소서노라고 소개하신 사람 이름에서 일본 유명 신화에 나오는 폭풍 신“스사노”와 너무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런 것들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요?? 한국 조상들 특히 백제계 사람들의 고대 일본 국가에 끼친 영향이란 것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이엇던 것이 틀림업습니다….
해마다 일본인 무리들이 공주시 공산성에 찾아와 성묘하고 울고 간다고 합니다 백제유민 사람들은 고국을 잊어버리지 않은것은 아닌지요 백제=일본.
공산성 만이 아니지요.
일본 주고쿠(야마구치현, 히로시마현, 오카야마현, 돗토리현, 시마네현)을
세력권으로 하던 일본의 다이묘 중에 오우치 가문이 있습니다.
이들은 계속 무령왕릉을 찾아와서 제사를 지내고 간다고 합니다.
뭐... 공산성이 아니기는 해도 무령왕릉도 공주시에 있으니...
국사교과서에 일본사 넣어라. 정확히는 3세기부터. 한국인들이 건너가서 세운 우리역사의 연장선상이다.
전교조가 내선일체 라고 싫어합니다.
전ㄱ조가 내선일체라고 싫어해요.
25년 일본 오사카에서 6개월간 일본 기숙사에서 지낼때 일본 전국에서 온 일본 의사들과 아사히 맥주를 마시면서 담론했습니다
왜? 백제를 읽을때 쿠다라 라고 읽니, 하쿠사이라고 읽는 경우는 백제를 일걷지 않는다합니다 백개의 ...
백제는 오로지 쿠다라 입니다 유일하게 한단어 입니다 쿠다라
한국에 돌아온 백제역사를 조금씩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쿄토의 토백이의 30프로는 백제계 라고 하더군요, 정말,어떻게 알았니?
역사책에 다 있다 하더군요
광주리 같은 것을 다라 라하죠
쿠 ㅡ구 ㅡ 언덕
구다라 ㅡ 큰 언덕 봉우리
비약이 심하죠?
백제는 한강 웅진 부여 익산 을 터전 삼고 담로를 운영하던 해양제국 아닐까요?
예전에 15년전에 처음 부여에 도착해서 택시타고 정림사지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가 형제탑 ㅡ나중에 알고보니 평제답
부여친구들을 만나면 부여주민의 역사인식이...
힐난을 했습니다
산동반도에 구태 가 세운 구태 백제 > 구태의 나라 > 구태라 > 구다라
아사히 = 아침해 (朝日)
히타치 = 해돋이 (日立)
토모 = 동무 (友)
.......
韓日은 그냥 고대 三韓에 根源을 둔 같은 겨레임.
안녕하세요.
15년전 경에 한국 한 방송국에서 역사물을 방영한 중에 일본 현지 취재중 일본인 교수에게 왜 백제를 쿠타라라고 읽느냐고 하니
웃으면서 '당신들의 나라'라고 대답했어요. 피지배층이 지배층에게 그 출신국을 그대로 읽지 않고 귀국이라고 한 셈이지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여 발표하시는 영상을 소개해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몇일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ua-cam.com/video/pc7KVqOcK4E/v-deo.html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41550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발음했고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모음 탈락하여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그 영상들 중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일월日月의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보이시고 팔괘를 만드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지나(china) 사서와 서적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와 여와 남매를 그린 인수사신도人首蛇身圖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치우천왕의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한 것을 영어-산스크리트어 사전 서문을 보여주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는 실례들을 보여주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이 전해진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시고 여러 나라의 같은 뜻 다른 발음들의 자료을 보여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전에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뜻이라는 훈을 봐도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영상에서 쌍각지 가진 사람은 중국(지나)인의 후손이라 해서 웃고 이미 댓글이 매우 많아서 못 달았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이신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ua-cam.com/video/5ofYOcofmuk/v-deo.html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한자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우리 민족은 지금도 유일하게 사용하는 표의문자 글자(한자)와 가장 과학적이고 쉬운 표음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문화의 시원이자 강국이라 하셨어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부상국은 북아메리카 대륙 서쪽입니다. 나중에 점점 커져서 멕시코 까지 커졌고... 미국?역사 채널에서 북아메리카를 부상으로 말하면서 콜롬부스 신대륙은 잊으라 말하더군요.
우리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에 의해 한반도에 묶여 있는 것을 한탄하지만, 사실 북경과 황하강, 양자강에 묶여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동해항에서 울릉도 까지 160킬로인데 베링해협은 80킬로 밖에 안됩니다. 외국어로 된 고지도에서는 그곳을 운하라고 다 기록했습니다. 고구려든 백제든 발해든 거란이든 여진이든 적에게 밀리면 다 대륙을 넘어 도망갔을 거라고 봅니다. 고작 일본 열도로 도망가서 뭐하게요. 다 잡히죠.
어떤 세력이 아메리카에 관심을 끊기 위해 대륙을 가르고 언어를 지우고 했을 겁니다. ...
유목민은 거리 상관없이 자유롭게 들고 나고 했을 겁니다. 우리 민족 중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사는 사람이 동국을 세우고 동이가 되었을 수도 있죠. 그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아니 제가 들은 노래 소리만 해도 충격이 되실 겁니다.
아즈텍만 해도 그들은 고조선 수도 아스탈란에서 고리를 거쳐 와서 세웠고 맥이족이라 하잖아요. 예맥족 말하는 거겠죠.
600년대 사막인근 아스달란에서 기질 이라는 무당에게 선동되어 고리땅을 거치고 거기서 고리족 부족사람과 같이 10000여명이 와서 아즈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계속 밀려와서 늦게 온 사람들은 점점 멀리 남하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동이족 들이 우리말을 가지고 아메리카에 제국 들을 세운 것이겠죠. 잉카제국에 말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 형벌이 있더군요.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는 세계사라고 하더군요. 저는 신뢰합니다. 그리고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그리고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 세계를 정복한 정화가 왕의 성을 하사받아 이정화가 된 기록과 세계지도 ....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세종의 뜻에 부합됨을 확신합니다.
부여융 묘지명에
백제는 사직이 천년되었고
산동성 양곡(해뜨는 고을)에서 처음 나라를 열였다
순임금이 희중에게
양곡에 살도록 명하였읍니다
우이마한 입니다
소정방의 직책이
사지절 도독 우이마한 토벌 대장으로 되어 있어요
양직공도에는
백제는 래이마한에 속하는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온조는 십제로
마한연방의 일개국가
일뿐입니다
산동성 래국은
은나라 이전부터
있었던 래이족
즉
동이족입니다
백제는 마한이요
고조선을 이은 나라입니다
우이마한은 부여계이고
래이마한은
선비계 모용황의
연나라와 같은
민족입니다
선비 모용씨가
백제 문주 삼근 동성왕을
일본은 계체천황의
현 일본천황가를
신라는 백제에서
바다로 건너간
백제인
모즉지(일본서기 문득지)가 신라왕이되었다
라고 수서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법흥왕이 되었읍니다
신라는 이 법흥왕이후 진흥왕 등 강력한 국가다운 국가가 되어
삼국을 통일하였읍니다
우리나라의
정통은 우이마한 래이마한
백제 신라가 정통이고
일본은 백제의 속국입니다
이것이 실제역사
아닌가요!
마한은 그쪽 계통이라고 명확히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본 전방후원분의 원형인 분구묘가 전라도와 china 강소성 일대에서 발굴되고 있죠.
그러나 강소성과 요령성/하남성의 선비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테스트-y3q 양나라 황제가 각 국의 외교사절이 다 모인자리에서
래이마한을 이야기 했는데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이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테스트-y3q 양나라 황제가 각 국의 외교사절이 다 모인자리에서
래이마한을 이야기 했는데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이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문창훈-w5e china는 산동도 동이라 불렀음
@@테스트-y3q 산동이 우리 본향입니다
진시황 태어나기
2000년전 부터....
백제와 신라의 깊은 원한을 언제쯤 풀수있으련지요..
따라서... 신라의 후계를 보면 결국 만주족이 신라의 정통성을 이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한반도는? 한반도는 발해 출신의 작제건이 신라로 들어와서 예성강의 송도(개성)에 터전을 잡게 됩니다.
이후 작제건 후손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게 되지요. 물론 1392년 조선이 건국되지만...
그 정통성은 엄연히 발해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한반도에 뿌리 내린 국가의 정통성은?
바로 고구려에서 찾아야 된단 말입니다. 우리는 고구려의 후손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불리우는 명칭이 바로 korea가 된 것입니다.
백제의 정통성은 당연히 일본이 잇게 되는 것이고요.
지금도 수많은 백제 왕족들이 일본에 있으며 제일 유명한 사람은 아키히토 천황이지요.
아키히토 천황은 자신을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놈의 반일주의 덕택에 곧 죽어도 인정하려 들지 않지요.
따라서... 신라의 후계를 보면 결국 만주족이 신라의 정통성을 이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한반도는? 한반도는 발해 출신의 작제건이 신라로 들어와서 예성강의 송도(개성)에 터전을 잡게 됩니다.
이후 작제건 후손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게 되지요. 물론 1392년 조선이 건국되지만...
지배자 고구려,백제,일본 같은민족
신라,당나라 선비족
같은민족
백제는 큰나라입니다. 중국인들은 남의역사, 즉 걔들 입장에서 오랑캐는 축소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대륙백제를 부정하고 싶은 당나라 입장에서 써진 내용이 당서라고 봐야지요. 일개 장군 한놈이 백제정벌 탑을 세울정도인데.
중국 백제마을 다큐를 보니 백제를 박지 로 발음 하던데요
백제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점령하고 국호를 바꾸어 존속해 왔고,,,, 그럼 고구려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중국에 몇몇 소수 민족으로
변해 있지는 않고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그 기상이나 진취성 불굴의 기질은 결코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존속해 오지 싶은데,,,,
동유럽 어느 나라일까? 아니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ㅋ
고(구)려는 망한후 얼마 안있어서 대조영이 고려라는 국호로 재건국했는데 당나라는 그나라를 발해라고 부른 것이고 얼마후 궁예라는 작자가 고려라는 나라를 건국했다가 곧바로 이름이 같은걸 알고 마진 태봉으로 고쳤다가 후에 왕건이 고려(발해)가 망한후 십여년후에 다시 고려라고 이름 바꾸어 재건국하였다. 고구려는 원래 200여년 고구려라는 명칭을 썼고 그이후 400여년을 고려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영어명칭은 여전히 고려공화국으로 쓰고있는 중이다.
고구려는 발해가 이어 받았고
발해 출신 작제건이 개성에 자리를 튼 이후
고려/조선이 고구려의 대를 이었습니다.
거란족의 요나라 소손녕이 인증 해 주었습니다.
濟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무우을 드세요
안녕하세요.오늘도잘듣고보았읍니다
우리모두는 지금의 카자흐스탄(파미르고윈)
에서 왔다는 이야길많이들었읍니다
유트브)강상윈박사님
유트브) 소호금천
유트브)아리안X의 역사복윈
유입은 되었지만 한반도 토속민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는 일본의 속국이었다
일본은 중국 중심에서 동해 한반도 백제가 썼던 용어 백제왕은 자신을 일십대왕 이라고 칭했습니다
대마도가 왜였는데 이게 엘리자베스1세의 해적부대가 합류된후 뒤바뀌고 가장먼저 점령된 한민족 나라가 백제
100여년전 이야기...
한자 일 日이 "해"로 읽힌건아닐까요?!
해 =날 =일=>日=白=百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여 발표하시는 영상을 소개해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몇일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ua-cam.com/video/pc7KVqOcK4E/v-deo.html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41550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발음했고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모음 탈락하여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그 영상들 중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일월日月의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보이시고 팔괘를 만드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지나(china) 사서와 서적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와 여와 남매를 그린 인수사신도人首蛇身圖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치우천왕의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한 것을 영어-산스크리트어 사전 서문을 보여주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는 실례들을 보여주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이 전해진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시고 여러 나라의 같은 뜻 다른 발음들의 자료을 보여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전에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뜻이라는 훈을 봐도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영상에서 쌍각지 가진 사람은 중국(지나)인의 후손이라 해서 웃고 이미 댓글이 매우 많아서 못 달았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이신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ua-cam.com/video/5ofYOcofmuk/v-deo.html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한자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우리 민족은 지금도 유일하게 사용하는 표의문자 글자(한자)와 가장 과학적이고 쉬운 표음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문화의 시원이자 강국이라 하셨어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우리 조상과 관련된 표기의 핵심이 불(火), 해(日), 쇠(金), 새(鳥/隹), 세(三/東), 쇠(牛), 등은 모두 해(태양)를 지칭하는 훈.음차 표기입니다.
백제는 삼조선 마한(馬韓)의 자리를 이어받은 나라로 그 뜻이 같은 것으로 봅니다.
즉 백(白/百/伯/十)은 마한의 마(馬)와 대응되고 뜻은 크다(大) 입니다.
제(齊/濟/殘)의 고대음은 '카시러' 이고 우리말 훈음도 '가지런(하다)' 뜻은 해(태양 ) 입니다. 마한의 한(韓)과 같습니다.
따라서 국호 백제는 '큰 해나라'로 추정합니다. 문자의 뜻이 아니라 훈.음차로 풀어야 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백제의 본거지는 한반도가 아니라 산동성 남사호(海) 인근이고 그 아래에 왜(倭)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엔, 동서남북 = 좌우전후 였고, 몽골에선 지금도 동일합니다. 몽골어에서 서쪽이 오른쪽이고, 둘다 "바룬" 이라고 합니다.
바룬은 곳 우리말 바른 과 같은거고. 바른쪽이 오른쪽입니다.
다시말해 발조선 은 서쪽 조선 이란 소리죠. 발조선=번조선=변한 . 마파람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
막조선=마한. 진/신/새 는 동쪽 진조선=진한 . 북동풍은 높새바람. 높=북쪽. 한자화 해서 고-구리. 북쪽 구리 라는 소리.
서풍을 하늬바람 이라고 하는건, 발바람 하면 발음이 중복되니 변화가 된듯.
그건 3세기 이전 이야기고요.
3세기 이후에 모든 중앙 권력이 한반도로 이주 합니다.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여 발표하시는 영상을 소개해요.
최춘태 님의 갑골음 연구 영상을 구독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몇일전에 최신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 방법을 보고 신세계를 봤어요. 2배속으로도 잘 들려서 평균 30분 분량 27개 영상들을 2일 만에 다 봤는데 계속 '와! 와!', '야! 야!'를 연발했어요.
갑골문의 발음은 고대한국어. 갑골음으로 밝힌 식민사학 동북공정. 최춘태 박사
ua-cam.com/video/pc7KVqOcK4E/v-deo.htmlsi=--z3wiorFfF0gcwC
언어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하기에 주장이 아니라 증명한다 시며 노암 촘스키 님께서 수학과 교수이셨는데 언어학의 대가가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정확히 자료를 제시하세요.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동북공정" 책을 2년전에 출간하셨고 갑골문갑골음연구원 설립하셔서 여러 분들에게 음운학을 가르치시고 함께 우리말 어원을 찾으시고 역사 왜곡을 정정하시려 노력하고 계신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41550
아들, 딸 등 여러 말들 발음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시고, 원 발음에서 분화해서 달리 변한 발음들이 여러 사투리로 남아 있음을 국어사전으로 보여 주세요.
日, 月을 '가라'로도 '나라', '다라'로 발음했고 공 같은 구체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나라'가 모음 탈락하여 '나ㄹ'로 변해서 다시 '날'로 변했는데 이를 훈으로 해서 날 일日로 읽고, 특히 해와 달은 높이 있으므로 높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달동네'가 높은 데 있는 동네라는 뜻이고, '다라'가 '사라'로 변해서 둥근 접시를 '사라'라고 부르고, 진한 청색을 왜 감색이라 하는지, 불을 활이라고 같이 말해서 지금도 활활탄다 라고 한다 등 놀라운 설명들이 많아요.
그 영상들 중 댓글에서 다섯 五의 갑골음이 '가락'이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까지도 몰랐는데 그 다음에 손가락, 발가락이라고 하셔서 그때야 알았어요.
심지어 일월日月의 '가라' '나라' 다라' '사라'에서 해를 따라 동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 등은 국기에 해를 넣고, 달을 따라 서로 이동한 민족들은 국기에 달을 넣는다는 말씀도 하시며 몽골 등 중앙 아시아 '-스탄' 나라들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을 말씀하세요.
훈민정음 당시 초성에 두개, 세개의 자음이 쓰이는 이유가 갑골음 한 글자의 발음이 3음절, 4음절 였어서 시대가 변하면서 모음이 탈락하고 자음을 같이 적어서라고 설명하세요. 이를 종성(받침)에 적용하면 왜 우리말에 2개 받침 말들이 있는지 설명이 되네요.
이두가 우리 음을 적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글자의 갑골문 시대의 발음이 변해서 고유명사의 발음을 옛 발음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정확한 설명은 기니, 예를 들어 가야加耶가 원 발음이 '가라'였는데 耶가 '야'로 변해서 가라加羅로 원 발음을 찾았다는 설명하세요. 일반적인 경우는 억지 예를 만들면 가야라加耶羅로 적고 바뀐 '야'가 아니라 '라'로 읽게 하려고 라羅을 추가했으니 발음은 '가라라'가 아니라 마지막 라는 안하고 '가라'로 읽으라는 방식이래요.
대륙의 孤竹(고죽), 盧龍(노룡), 樂浪(낙랑)은 정복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갑골음은 '가라'로 일치하여 발음이 변해서 그에 맞는 다른 글자로 바꾼 것으로 설명하시며 이런 경우가 대륙에 많아 역사 회복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風풍이 바람의 뜻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뱀의 뜻이 있는 것을 보이시고 팔괘를 만드신 태호 복희 씨께서 이미 여러 지나(china) 사서와 서적에 풍씨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태호 복희와 여와 남매를 그린 인수사신도人首蛇身圖에 하반신이 뱀으로 꼬아 그려진 것을 보이시며 우리의 조상님이신 것을 알려 주세요.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본 개척을 하셔서 일본어 훈독이 갑골음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일본어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갑골음 음운학 공부하시면 큰 도움 될 거에요.
환국 시대의 발음이 치우천왕의 배달국과 조선을 지나 그 지류인 상商(은殷)나라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갑골(시초)음에서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분화됐음을 보여 주세요.
고 강상원 님께서 범어(실담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의 원형이라고 하시며, 영국인들이 인도 정복후 언어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어가 동서 언어의 뿌리라고 한 것을 영어-산스크리트어 사전 서문을 보여주시며 결국 우리말이 세계 언어들의 원형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여러 사투리에 실담어가 남아 있다는 실례들을 보여주셨는데, 최춘태 님께서는 환국시대의 시초음이 전해진 갑골음이 원형이고 산스크리트어도 그 지류라고 하시고 여러 나라의 같은 뜻 다른 발음들의 자료을 보여 주세요.
영상들을 보고 이해하기는 글자契字(한자漢字)의 음音과 훈訓이 결국은 음은 지나(china)인들이 주周나라 이후에 글자를 이어 쓰면서 발음을 자기네 식으로 하면서 변해 가는 중에 지금의 우리 음은 당나라 시기 음이라고 하지요. 훈이 뜻을 말하는데 결국 그 훈(뜻)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발음을 이전에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어쩐지 옥편을 보면 어떤 글자들은 도대체 뜻이라는 훈을 봐도 뜻이 이해가 안 됐던 이유가 옛 발음이나 옛 말을 모르니 그런거였어요.
요즘 황당하게 우리 민족이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3천여년 전의 현재 산동반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지 우리 민족과 무관하다 는 이들이 있어서 유전으로 갖는 쌍각지(雙脚趾 일명 며느리 발톱, 새끼 발톱의 몸 바깥쪽 옆에 작게 벌어져 나는 것)로 그치기 바래요.
저도 20여년 전까지 나는 왜 발톱이 이렇지? 하면서 아버님께서도 그러신지 여쭐 생각도 안 났었는데 인터넷에서 우리 역사에 연결되어 수많은 웹문서들을 볼 때 동이족 신체특징이라고 설명되어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영상에서 쌍각지 가진 사람은 중국(지나)인의 후손이라 해서 웃고 이미 댓글이 매우 많아서 못 달았어요.
동이족 풍습과 우리 민족 풍습이 동일하고 화하족(한족) 등 다른 민족과는 다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이신 영상을 소개해요.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도자기로 빚은 할아버지 陶祖, 구리로 만든 할아버지 銅祖를 영상으로 보시면 왜 지나인은 절대 모른다 라고 제목에 넣었나 아실 거에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ua-cam.com/video/5ofYOcofmuk/v-deo.htmlsi=jnCV1qfKJbgOgYaX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동이족 한자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진태하 님 설명 중에 갑골문 당시의 문자를 뜻하는 말이 글(契)인데 지금은 계약할, 맺을 계이지만 처음에는 글이었는데 긋다, 그리다의 말이었고, 죽간, 목간에 글자를 새기는 작은 칼도 글鍥인데 수천년이 지나도 글, 글자라 부르고 조각하는 작은 칼을 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집家(집면宀 아래에 돼지시豕)에 왜 사람이 없고 돼지가 있나 지나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이 10종이 넘는데 한중일 한자연회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대륙에 사실 때 아열대 기후라서 뱀이 집으로 들어와 고심중에 돼지가 뱀을 보면 뱀이 도망도 못 가고 돼지가 쏜살 같이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을 보고 수상가옥 처럼 2층으로 지어서 돼지를 길러 해결하여 집에 돼지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글자를 쓰게 됐고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고 대대로 그래 왔는데 이유가 잘못 전해져서 사람 똥을 먹은 돼지고기 맛이 좋다고 제주 똥돼지가 있었다 고 발표하셔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해요.
우리 민족은 지금도 유일하게 사용하는 표의문자 글자(한자)와 가장 과학적이고 쉬운 표음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문화의 시원이자 강국이라 하셨어요.
2024년 10월 28일 월 21시 태평양 시간
일본 왕실과 연대를 강화해 일본의 침략성을 반성 시키고 관계개선의 열쇄를 찾을 수는 없나요?
모국 땅 형제국을 악용해 자기만 부흥해보겠다는 야망은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침략적 제국주의는 공동번영의 새로운시대를 맞이하여
아직도 중국 일본과 같은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 고루한 정책이 아닐까요?
일본 천황 아키히토가 무령왕의 후손임을 스스로 만천하에 공표했음에도
오히려 한국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으며 일본 천황에 대해 어떤 담화도 발표하지 않았죠.
결국 한국 내에서는 계속 반일운동을 행해야 정치적 이득을 얻는 세력들 때문에
일본 천황이 무슨 행동을 해도 한국의 정치권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백잔은 백잔일뿐
수,당,幽然齊魯吳越을 달리 이르는 속명.
통일신라가 너무 작네요. 신라는기본 대륙신라죠. 그게 아니면 전부 엉터리 역사입니다
일본을 세운건 임나계 사람들이지요 ㅋ
임나는 대마도에 있다고 일본 서기에 나옵니다 ㅋ
그들이 열도에 그들의 분국인 임나일본부를 세웠기 때문에
새로인 국호인 일본을 일본부에서 따온 겁니다 ㅋ
제가 볼 때에 임라일본부는 가야 주재 일본 대사관 정도로 보는게 맞을거 같습니다.
@@테스트-y3q 당시에는 일본은 국호도 아니었는데 그 이름으로 대사관은 무리 ㅋ
@@Hyuchan1002 19세기 이전에는 대사관이라는 존재도 없었죠.
단지, 임라일본부의 기능이라는 것이 그러한 대사관/공사관의 역할이었다는 의미.
가야는 노동력이 부족했고 열도에서는 철광석/강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가야는 열도에서 노동력을 공급받았고 열도는 가야로 부터 철광석/강철을 공급받았죠.
이에 따라 가야로 공급된 노동력을 관리할 열도 출신 노동자 관리 센터가 필요 했을 것입니다.
임라일본부가 그 역할을 했다는 거 정도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데?
가야멸망때
남자들을 몰살했답니다
한국에 일본남자 유전자가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