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리얼 팀은 이번에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해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노란 리본을 사진을 찍어 보내주세요🎗 가방에 달려있는 노란 리본이든, 노트북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스티커든 상관없습니다. 각자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이미지는 씨리얼 채널에서 세월호 관련 콘텐츠나 커뮤니티 글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 forms.gle/y9frJxd7u3wpCpCS7 4월 15일 오전 9시까지 받겠습니다 :)
안산에서 초중고를 전부 나왔습니다. 저희 오빠도 13년도에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14년도 4월 16일에 같은 학원을 다니며 친하게 지내던 언니와 오빠들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나요. 중간고사가 곧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1교시가 끝난 쉬는시간에 2학년 층에서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수업 종이 치고 국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아무 말 없이 tv를 트셨어요. 2교시 내내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3교시에 들어오신 선생님도 수업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 전원 구조 속보가 떴고, 그제야 말소리가 났어요. 다들 웃으며 다행이라고 했고, 수업을 진행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날은 점심만 먹고 하교를 했던 것 같아요. 시험기간이라 다같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가는 길이 밝았거든요. 학교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는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었고... 친구들과 도서관 지하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1층으로 올라왔는데 tv에서 전원 구조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도서관 1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tv만 봤어요. 전신거울 위에 달려있는, 원래는 열람실 대기자 번호표를 띄우는 그 tv만요. 얼마 뒤에 구조가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는 말에 다들 안심하며 흩어졌어요. 그리고 내내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갔는데... 부모님이 틀어둔 tv에서는 아침에 봤던 전원 구조라는 말과는 딴판인 현황이 나오고 있었어요. 완전히 뒤집힌 배 화면이랑요.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무슨 감정이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며칠 뒤에 학교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한다면서 PTSD 검사지 같은 걸 나눠줬던 것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화랑유원지에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을 때 친구, 언니, 오빠들 다같이 모여서 갔습니다. 여덟명 정도 갔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10년이 지나 27살이 된 지금, 아직도 궁금합니다. 수많은 학생이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목숨을 잃었어야 했는지. 왜 학생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방송을 했는지. 사람이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데 해경은 왜 거짓말을 했는지... 비가 오네요. 그 날은 유독 맑고 화창했었는데...
제사지내고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을 지겨워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참사 n주년에 맞춰서 이슈가 되지않으면 기억도 못하는 보여주기식 선민의식 및 애도와 매번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 재조명되는게 지겨운겁니다. 묘지까지 찾아가서 절하고 오는 것도 아닌데 설마 이런걸 사람들이 지겹다고 하진 않겠죠 빡대가리련아
@@김김-h2k5u 잊어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되길 바라시나요? 잊는순간 또 일어날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아닐거란 보장있나요? 배가 아니라 비행기 지하철 자동차 버스 사고는 예상가능하지않아요.. 예방안할거예요? 이글 읽는것도 귀찮으니 안읽겠쥬? 그렇게 잊고싶으면 뭐.. 위험한 안전사고 나거나 말거나 잊어도 당신의 일이 되더라도 화이팅하시구요..네.. 당신의 일 아니니까 나중에 무슨일이 일어나도 화이팅! 안전불감증 화이팅!
중식이는 갈색과금발이 섞인 1자머리에 초1때 집에도 갔고 부모님하고도 알던사이였고 소영이는 단발머리에 5학년때 오빠가있던 같이 놀던 친구였고 지현이는 늦둥이로 순하고 착한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아마 저 안에는 내가 잊었지만 얼굴을 보면 그때 그 친구구나 하고 떠올릴 사람들이 몇은 더 있을건데.. 뺑뺑이 1지망이었던 단원고에서 떨어져 집에서 좀 떨어진 고등학교에 가지않았더라면, 내이름도 저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13살, 저는 18살이 어른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씩씩하게 탈출할거라 믿었습니다. 18살, 18살은 여전히 어린아이였습니다. 23살,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입니다. 만약 그 사고가 없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직장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혹은 가정을 꾸렸을 수 도 있겠군요. 잊지않겠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슬프네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정쟁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이요..그 당시 안산시민으로서 이 일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마치 세월호를 추모하면 좌파, 천안함 연평도도발사건을 추모하면 우파 이런식으로 정쟁이 되는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하나는 나라가 지켜야할 아이들이고 하나는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입니다. 둘 다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겁니다. 왜 이게 정쟁으로 이용되어야 합니까... 왜 이게 정치인들에게 이용되고 마치 그들을 지지하려면 특정 집단을 혐오해야만 하는게 되나요..모두 추모하면 안되는겁니까..
문제 자체가 정치권에서도 나서야 할 영역이라 문제를 해결 하려면 정치권에서 언급이 되는 거까진 이해 하겠는데, 지지자들...극성 지지자들이 이 사건을 정쟁화 문제처럼 만들었다고 생각 합니다. 도대체 그 정치가 자신들에게 뭐길래 같은 국민들을 이렇게 갈갈이 찢어 놓는지..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사실 자신들도 언제든지 처할 수 있는 사건이잖아요. 거창하게 이웃을 아끼는 마음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진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의 일 일 수 있다' 라는 입장으로 한 목소리 내는 게 맞는 거잖아요. 자신들에게 정치가 뭐길래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이 같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를 일을 이렇게 정쟁화 시켜 핵심적인 문제 해결을 벗어나게 만드는 건지 너무 답답 합니다.
나는 유독 세월호 사건이 더 마음 아픈 이유가 당시 단원고 학생들처럼 나도 똑같은 고2 18살이었다. 야자하러 야자실로 가는 길에 다른 반 친구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 라는 배가 뒤집혀졌다고 얘기를 전해주고 나는 멍해져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평소와 똑같이 야자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뉴스에서 진실과 거짓으로 뒤덮인 언론과 세상에 점점 이해가 되지 않고 무언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나는 광화문에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탄핵이 된 그 이후에 다시 혼란스러움과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감정을 가지고 20대가 되었을 때 뒤늦게 나만의 작은 방식으로 추모했다. 떼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노란 색종이로 만든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1년 넘게 카톡 프사를 노란 세월호 리본으로 추모했다. 그리고 sns로 관련 영상들을 보며 왜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이제라도 세상을 점점 알아가자 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참된 지식인들이 알려주기를 바라고 배우는 마음과 자세를 가질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한국에선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있고, 책임을 피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움직임 또한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것이다. 세월호 10주년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업 끝나고 학교 앞 매점에 들렸다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방송 보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전부 얼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 야자 담당 선생님은 나라가 알아서 잘 구조할테니까 걱정하지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죠. 워낙 공부 머리가 아니기도 했지만 어떻게 공부가 되고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겠어요... 며칠 내내 뉴스만 들여다봤는데 생존자는 거의 없었죠.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 모두 그 소식을 처음 들었던 때에 뭘 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더라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10년 쯤이 지나서 그런지 그만 좀 하자는 댓글들이 꽤 보여요. 당사자에게는 참사이고 재해인데 말이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절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헐 저도 그때 비록 7살이긴 했지만 기억나요..! 주방에 작은 티비로 엄마가 밥 짓다가 불러서 밑에 의자놓고 올라가서 봤었어요.. 사촌언니 중에 10살 차이나는 언니가 있어서 엄마랑 와 ㅇㅇ이언니보다 한 살 많네 이런 말 했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땐 아무생각도 없었던 것 같은데 뭐지..ㅜㅜ
@@찜두부-r7q 현생을 안산다는게 아니잖아 저분들은 자기 자식이 18살 성인 다 되어갈때쯤 까지 키웠는데 충분히 살수 있었는데도 먼저 튄 선장ㅅㄲ랑 정부의 늦장 대처로 어이없이 허무하게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잊혀져? 넌 상관 없는 일이어서 그렇게 쉽게 말하겠지만 그사람들한테는 잊혀질수가 없어 그건... 잊으면 안돼 그때 그순간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고 그로 인해서 수많은 무고한 학생들이 죽어간건 어쩌면 하나의 역사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억하고 배워야 된다고 생각해. 다른 사건이면 몰라도 우리나라 정부의 무능으로 인한 참사 사건이라면..
동갑의 친구들이 사고를 겪은 것을 알게 되었던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화창한 날씨, 중간고사가 다가오던 봄, 2교시 영어시간. 모두가 당연히 전원 구조될 것이라고 믿던 때, 그리고 저녁이 되자 온통 뉴스에서 나오는 비보와 생존 가능성을 논하는 이야기들. 에어 포켓이 있다면 살아있을 수 있다던 3일동안 밤에 자려고 누울 때마다 그 친구들이 그 컴컴한 바다에서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저절로 눈물이 났었어요. 세월호는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또다시 이태원 참사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된 사회안전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걸까요. 유가족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적어도 그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더더욱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봐야합니다. 늘 잊지 않겠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을 친구들아. 그곳에서는 평온하길 바란다.
진짜 말도 안되는 사고였다…. 어릴 때는 공감이 안 갔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물로 서서히 잠기고 나갈 수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고 그 안에 있던 분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가 생각나서 미치겠다…… 아 어떡하냐…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고통받는 사람은 고통받고있구나……
10대였던 저는 10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10년간 무엇이 바뀌었나 생각해보면 없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는 참사가 반복되었느니 말이죠. 저는 같은 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서 잊지 않고 계속 지켜볼겁니다. 젊은이들이 믿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길…더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없길.
살아있었다면 20대 후반이 되었을 아이들이 열여덟에서 멈췄다는게 아직까지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온국민에게 충격이자 아픔이었던 사건이 너무 큰 상흔을 남긴 것 같아요 배안에 있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제주로 가던 모든 분들이 적어도 지금은 그곳에서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대학생 2학년이던 나는 강의 들으러 가기 전에 집에서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있자가 우연히 뉴스를 봤다. 하던 양치질도 멈추고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마저 준비하고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그 후 들려온 오보라는 소식, 계속해서 들려오는 비보들..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모든게 아직도 생생하고 끔찍한 기억이다. 잊지 않는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미안하다 난 그 날보다 더 어른이 됐는데, 해줄 수 있는게 그날도 오늘도 기억하는 것 뿐이라..
세월호 참사 친구들과 동갑이었습니다. 제 또래들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대형 참사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나 저는 연 나이 28살, 만 나이 26살이 됐습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고 대학생에서 직장인이 되고 쏜살같이 10년이 흘렀습니다. 저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는데 친구들은 아직도 18살에 시간이 멈춰 있다는 게 아직도 18살이라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꿈도 크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너무 어린 나이인데 그 죽음 앞에서 정말 얼마나 간절하게 살고 싶었을까요.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청소년인 친구들이 얼마나 성인의 삶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설렜을까요. 대학교에서는 신입생 환영회도 하고, MT도 가고, 과팅도 하고, 캠퍼스를 거닐고, 축제를 즐기고, 동기와 선후배들이랑 과 생활도 하고 사회에서는 가고 싶던 회사에 취업도 성공하고, 첫 월급의 기쁨도 누려보고, 연차도 쓰고, 휴가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고, 여가 활동도 하고 등등 아직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은데 누군가는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시간을 친구들은 얼마나 바라고 바랐을까요. 친구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친구들이 살아있었다면 함께 세월을 보내고 함께 익어가며 지금의 28살이 되었겠죠.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지금의 나이쯤이면 성숙한 성인이고 어른일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저 스스로 미숙하고 어린 것 같다고 느끼거든요. 친구들이 생을 다 못 살았으니까 꼭 다시 환생해서 제2의 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생에 못 피워낸 꽃 꼭 만개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의 명복을 빌어요.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한 만큼 아직도 눈물을 흘립니다. 지겹지 않습니다. 익숙해질 수 없는 슬픔은 절대 지겨워질 수 없습니다. 10살이었던 제가 스물이 될 때까지, 어느덧 열일곱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될때까지도,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먹먹합니다. 지켜지지 못했던 십대들이, 이십대들이 이제는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않는 제 친구들이, 제가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1. 알다시피 세월호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일정이였는데 세월호 사고가 아니였다면 일정이 금요일에 귀가를 하는 것이여서 어떤 분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문구가 슬프게 합니다! ㅠㅠ 2. 생존학생들 대부분이 십수년간 그 지역을 오갔던 화물차 기사님들이랑 같이 있었는데요 그 분들은 경험으로 그 유명한 '가만히 있어라!'라는 방송이 이건 아니다 싶어서 같이 구조를 했는데 살아남으신 분들은 밑천이 화물차를 잃고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극단적인 시도를 하신 분도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ㅠㅠ
진짜 나랑 같은 나이의 저 친구들... 고2때 교실에서 저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던 아직도 선명하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고 뭐하는지 발만 동동구르고 안타까웠는데 나는 성인이 되었고 벌써 10년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 얼마나 무서웠을지 아직도 무섭고 가슴이 미어진다
동갑내기 친구들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슬픔에 빠졌던 그날을 기억해요. 수학여행을 못가게 됐다며 투정부리던 반친구의 철없음도 지금은 그들과 유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성숙해지지 않았을까요.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게 믿기지도 않지만, 살아있다면 평범한 청년으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이 안타까워 마음이 미어집니다. 너희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다며 애도하던 깊은 슬픔도 조금은 옅어졌지만 여전히 그 슬픔에 잠겨 계신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잊지 않을테니 천천히 조금이나마 그 슬픔을 흘려보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저 사고 때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보면서 나도 생각했다. "왜 구하러 가지 않지? 다들 왜 보고만 있지?잠수복 입고 다들 잘만 들어가던데 눈 앞에 보면서 왜 아무도 안들어가지?"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가라앉는 배를 보는 부모는.......그 아이들은.......10년이 지나 보는 기사에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이 분들은 어쩌지요. 어쩌지요. ㅠㅠㅠㅠ
미술학원에서 그림그리고있던 평범한 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다던 제 또래 친구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그당시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학생이였거든요. 그때 받은 충격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게 현실인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더군요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때 많이 울었고 영상을 보면서 또 눈물이 나네요. 얼른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고3 시절 핸드폰도 다 걷어갔던때에 조례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너네 수학여행 배 하나 침몰한거 아냐 근데 전부 다 구했댄다 그날 야자 끝나고 집에 들어갔을때에 집 티비에 보였던 화면이 아직도 선명하네요 끝도 없이 내려가던 실종자 명단들과 바다... 그때 처음으로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늘 기억하겠습니다. 스물여덟이 되었을 제 동생들 잊지 않겠습니다.
그 날, 제 남동생은 같은날 제주도에 도착해서 그 학생들이 함께하도록 예약되어있던 예약일정을 돌아다니면서 수힉여행을 잘 다녀왔고, 그 후 대학도, 군대도, 대학원도 다녀오고 취직까지 했는데.. 그 애들은 동생이 여행갔던 그 날 부터 모든게 멈춰버렸다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워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살아 있었으면... 이제 회사 다니면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멋진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sns에 자랑도 했을텐데.... 결혼준비 하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참....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으면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품고 산다는데 잊을 수 없는 건 당연한거다. 우리도 잊지말자...
제가 올해로 18살인데, 친구들이랑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해요. 곧 성인인데 아직도 초등학생 같고, 아직도 애같다고.. 나이라는 게 막상 되어보면 생각보다 어리더라구요. 영상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제 가방엔 노란 리본이 아직 걸려있고, 제 방 책상에도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있어요. 잊지 않겠습니다..
딱 10살 차이 나는 언니 오빠들인데... 당시 8살이였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기억나는 건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보도되던 뉴스 타이틀,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께서 관련 뉴스를 보여주셨다는 거 보는 데 눈물만 나네요 97년생 언니오빠들과 07년생이 10년 뒤 같은 나이가 되었어요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울었는데 이번 년도는 가장 많이 울었지 않나 싶네요 10년이 벌써 지났다는 사실과 내가 그 때 어른같던 언니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되고보니 열여덟살은 정말 어리다는 게... 눈물만 납니다 살아 있다면 30살을 바라보고 있을텐데 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씨리얼 팀은 이번에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해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노란 리본을 사진을 찍어 보내주세요🎗
가방에 달려있는 노란 리본이든, 노트북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스티커든 상관없습니다.
각자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이미지는 씨리얼 채널에서 세월호 관련 콘텐츠나 커뮤니티 글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 forms.gle/y9frJxd7u3wpCpCS7
4월 15일 오전 9시까지 받겠습니다 :)
안산에서 초중고를 전부 나왔습니다. 저희 오빠도 13년도에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14년도 4월 16일에 같은 학원을 다니며 친하게 지내던 언니와 오빠들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나요. 중간고사가 곧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1교시가 끝난 쉬는시간에 2학년 층에서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수업 종이 치고 국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아무 말 없이 tv를 트셨어요. 2교시 내내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3교시에 들어오신 선생님도 수업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 전원 구조 속보가 떴고, 그제야 말소리가 났어요. 다들 웃으며 다행이라고 했고, 수업을 진행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날은 점심만 먹고 하교를 했던 것 같아요. 시험기간이라 다같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가는 길이 밝았거든요. 학교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는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었고... 친구들과 도서관 지하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1층으로 올라왔는데 tv에서 전원 구조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도서관 1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tv만 봤어요. 전신거울 위에 달려있는, 원래는 열람실 대기자 번호표를 띄우는 그 tv만요. 얼마 뒤에 구조가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는 말에 다들 안심하며 흩어졌어요. 그리고 내내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갔는데... 부모님이 틀어둔 tv에서는 아침에 봤던 전원 구조라는 말과는 딴판인 현황이 나오고 있었어요. 완전히 뒤집힌 배 화면이랑요.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무슨 감정이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며칠 뒤에 학교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한다면서 PTSD 검사지 같은 걸 나눠줬던 것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화랑유원지에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을 때 친구, 언니, 오빠들 다같이 모여서 갔습니다. 여덟명 정도 갔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10년이 지나 27살이 된 지금, 아직도 궁금합니다. 수많은 학생이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목숨을 잃었어야 했는지. 왜 학생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방송을 했는지. 사람이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데 해경은 왜 거짓말을 했는지...
비가 오네요. 그 날은 유독 맑고 화창했었는데...
이번 선거 결과로 바라던 것이 황교안이 봉인한 세월호 7시간 대통령지정기록물이였어요. 30년간 못 본다고 하니까.. 국회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열람가능하다더군요. 세월호를 이태원 참사를 잊을 수도 지워지지도 않아요.
그안에 뭐가있고 그게뭔대?? 애들살릴방법이라도 존재했고 정부가 그걸은폐했다는거임? 대통령이 사고 보고받고 어떻게 지시했으면 살릴수라도있었음?? 문재인 노무현때 저런사고났으면 대통령지시로 살릴수있는 사고였음??? 해경도착했을땐 이미 뒤집어저서 선내 진입도안되고 뛰어내린 일반인건지는 조취밖에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악마몰이좀 그만해라 세월호는 그전정부부터 안고치고 이어저온 잘못된 선박규정에의해 터진사고임 그게 박근혜때 터진거고 음모론은 고인추모에 진정한의미도 교훈도 담을수없음 우리가해야할건 악마를만들어서 그사람책임으로 분노할게 아니라 사고의원인 유발시킨 각종규정을 찾아내고 법을바꿔서 다시일어나지않게하는게 진정한추모고 죽음을헛되이 하지않게하는거임 님처럼음모론을퍼트려 대중을분노시키는게 추모라고생각함??
30년이었구나..맙소사..
이미 주요 증거물은 진작에 다 없앴을 겁니다
그런걸 민주당이 왜안해주는걸까요
@@찜두부-r7q표팔이 어느 대형정당도 국민들 위해서 일 안함
제사 지내는 나라서 뭔 지겹다지겹다야
이제 고작 몇년 지났다고
니네 조상 제사는 안 지겹니?ㅋㅋ
제사지내고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을 지겨워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참사 n주년에 맞춰서 이슈가 되지않으면 기억도 못하는 보여주기식 선민의식 및 애도와 매번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 재조명되는게 지겨운겁니다. 묘지까지 찾아가서 절하고 오는 것도 아닌데 설마 이런걸 사람들이 지겹다고 하진 않겠죠 빡대가리련아
user-un6ib4lr8r 일년에 한번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주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자고 다 함께 생각하자는 건데… 이게 나쁜가요??
물귀신된애들앞뒤않거려요위험해
ㄹㅇ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어린 고등학생 아기들이 배 안에 갇혀서 대피도 못한채 죽은 건데 그걸 가지고 몇 년을 우려먹는 거냐 ㅇㅈㄹ.. 어른들이 참 못됐다.
@@yong1choi 그냥 대피 못해서 죽은 것도 아니고 명백히 어른들의 잘못이 있는 사건... 진짜 그런 말 하는 놈들 이해가 안됨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제사 지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걍 잊지만 말아달라는건데 핀트 이상하게 잡는 새끼들 때매..; 남의 일이 아님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문제임
🤑🤑🤑
왜 잊지말아야함 강요하지마세요
진짜 못된 사람 많다... 불쌍하지도 않니? 나도 충분히 겪을수있는 일인데.. 공감능력 참 떨어진다
왜냐면. 꼭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태원 참사도.
오송지하차도도.
위기의 순간마다 국가의 부재로 무고한 국민이 희생당하는 사고가 반복되지요.
잊지말고 기억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원인 규명 대책 마련. 을 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김김-h2k5u 잊어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되길 바라시나요? 잊는순간 또 일어날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아닐거란 보장있나요? 배가 아니라 비행기 지하철 자동차 버스 사고는 예상가능하지않아요.. 예방안할거예요? 이글 읽는것도 귀찮으니 안읽겠쥬? 그렇게 잊고싶으면 뭐.. 위험한 안전사고 나거나 말거나 잊어도 당신의 일이 되더라도 화이팅하시구요..네.. 당신의 일 아니니까 나중에 무슨일이 일어나도 화이팅! 안전불감증 화이팅!
중식이는 갈색과금발이 섞인 1자머리에 초1때 집에도 갔고 부모님하고도 알던사이였고
소영이는 단발머리에 5학년때 오빠가있던 같이 놀던 친구였고
지현이는 늦둥이로 순하고 착한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아마 저 안에는 내가 잊었지만 얼굴을 보면 그때 그 친구구나 하고 떠올릴 사람들이 몇은 더 있을건데..
뺑뺑이 1지망이었던 단원고에서 떨어져 집에서 좀 떨어진 고등학교에 가지않았더라면, 내이름도 저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13살, 저는 18살이 어른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씩씩하게 탈출할거라 믿었습니다.
18살, 18살은 여전히 어린아이였습니다.
23살,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입니다.
만약 그 사고가 없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직장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혹은 가정을 꾸렸을 수 도 있겠군요. 잊지않겠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들에게 시체장사라고 했던 모든 정치인과 비제이, 여론은 반성해야한다. 지금도 이게 시체팔이같냐?
너무 슬프네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정쟁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이요..그 당시 안산시민으로서 이 일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마치 세월호를 추모하면 좌파, 천안함 연평도도발사건을 추모하면 우파 이런식으로 정쟁이 되는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하나는 나라가 지켜야할 아이들이고 하나는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입니다. 둘 다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겁니다. 왜 이게 정쟁으로 이용되어야 합니까... 왜 이게 정치인들에게 이용되고 마치 그들을 지지하려면 특정 집단을 혐오해야만 하는게 되나요..모두 추모하면 안되는겁니까..
공감합니다..
진짜 맞는 말씀...
문제 자체가 정치권에서도 나서야 할 영역이라 문제를 해결 하려면 정치권에서 언급이 되는 거까진 이해 하겠는데, 지지자들...극성 지지자들이 이 사건을 정쟁화 문제처럼 만들었다고 생각 합니다. 도대체 그 정치가 자신들에게 뭐길래 같은 국민들을 이렇게 갈갈이 찢어 놓는지..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사실 자신들도 언제든지 처할 수 있는 사건이잖아요. 거창하게 이웃을 아끼는 마음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진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의 일 일 수 있다' 라는 입장으로 한 목소리 내는 게 맞는 거잖아요. 자신들에게 정치가 뭐길래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이 같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를 일을 이렇게 정쟁화 시켜 핵심적인 문제 해결을 벗어나게 만드는 건지 너무 답답 합니다.
팽목항에서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아이를 받고 떠나는 사람을 축하해주고 부러워하는 그 상황이.. 얼마나 참담하고 기괴한지..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꽃다운 17살 나이에 머물러있는 선배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무능의 나라에 발생되는 참사를 언제까지 반복을 하고있을겁니까..
나는 유독 세월호 사건이 더 마음 아픈 이유가 당시 단원고 학생들처럼 나도 똑같은 고2 18살이었다. 야자하러 야자실로 가는 길에 다른 반 친구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 라는 배가 뒤집혀졌다고 얘기를 전해주고 나는 멍해져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평소와 똑같이 야자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뉴스에서 진실과 거짓으로 뒤덮인 언론과 세상에 점점 이해가 되지 않고 무언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나는 광화문에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탄핵이 된 그 이후에 다시 혼란스러움과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감정을 가지고 20대가 되었을 때 뒤늦게 나만의 작은 방식으로 추모했다. 떼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노란 색종이로 만든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1년 넘게 카톡 프사를 노란 세월호 리본으로 추모했다. 그리고 sns로 관련 영상들을 보며 왜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이제라도 세상을 점점 알아가자 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참된 지식인들이 알려주기를 바라고 배우는 마음과 자세를 가질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한국에선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있고, 책임을 피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움직임 또한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것이다. 세월호 10주년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죽은자식 시신 찾으면 축하해주는 참담한 상황 ... 정말 잊을수가 없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업 끝나고 학교 앞 매점에 들렸다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방송 보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전부 얼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 야자 담당 선생님은 나라가 알아서 잘 구조할테니까 걱정하지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죠. 워낙 공부 머리가 아니기도 했지만 어떻게 공부가 되고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겠어요... 며칠 내내 뉴스만 들여다봤는데 생존자는 거의 없었죠.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 모두 그 소식을 처음 들었던 때에 뭘 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더라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10년 쯤이 지나서 그런지 그만 좀 하자는 댓글들이 꽤 보여요. 당사자에게는 참사이고 재해인데 말이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절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맞아요. 저도 그 소식 들었을 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요ㅠㅠ
ㄹㅇ 저도 당시 고3이였는데 당시 중간고사 일주일도안남은상황이였는데도 반애들 죄다 신문펼쳐놓고 세월호얘기만했음.. 나보다 한살어린애들이 그렇게 사망했다는게 큰충격이였죠..
국가적으로 트라우마가 남는 사건은 그때 그 순간 뭐했는지 다들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재수하고 있었을 때라 밤늦게 집에 와서 엄마랑 같이 울었던 기억이 참으로 또렷합니다.
맞아요 특별한 일도 자주 까먹는데 그날은 정말 별거아닌 일상이었는데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통학버스를 타고 티비가 나오는데 세월호사고 전원 구조 완료 뉴스를 보고 내렸던 기억이나요 똑같이 수업듣고 보냈는데 그 뒤로 구조되지 않았다는걸 보고 대충격을 받았던....
헐 저도 그때 비록 7살이긴 했지만 기억나요..! 주방에 작은 티비로 엄마가 밥 짓다가 불러서 밑에 의자놓고 올라가서 봤었어요.. 사촌언니 중에 10살 차이나는 언니가 있어서 엄마랑 와 ㅇㅇ이언니보다 한 살 많네 이런 말 했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땐 아무생각도 없었던 것 같은데 뭐지..ㅜㅜ
사고 소식을 듣고 슬퍼했던 초등학생은 벌써 대학생이 되었네요.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다는게 놀랍고 학생분들은 여전히 고등학생이라는 점이 가슴이 아픕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울딸이 갔다오고 그담주에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부모의 맘으로 구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10년.....절대 잊지 못합니다
얘들아,미안해
그만하라는 악귀들아.
저분들의 시간은 10년전 4월 16일에서 멈춰있어. 니들이나 그만해.
공감이 안되면 그냥 모른체하고 지나가라고 공감해달라고 사정하지 않으니까
현생안사는것도 문제아닐까요?
@@찜두부-r7q 현생을 안산다는게 아니잖아 저분들은 자기 자식이 18살 성인 다 되어갈때쯤 까지 키웠는데 충분히 살수 있었는데도 먼저 튄 선장ㅅㄲ랑 정부의 늦장 대처로 어이없이 허무하게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잊혀져? 넌 상관 없는 일이어서 그렇게 쉽게 말하겠지만 그사람들한테는 잊혀질수가 없어 그건... 잊으면 안돼 그때 그순간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고 그로 인해서 수많은 무고한 학생들이 죽어간건 어쩌면 하나의 역사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억하고 배워야 된다고 생각해. 다른 사건이면 몰라도 우리나라 정부의 무능으로 인한 참사 사건이라면..
@@찜두부-r7q 니 현생이나 제대로 살아. 그리고 너도 똑같이 당하길 바랄게. 그러면 현생 잘 살아지나 두고보자
동갑의 친구들이 사고를 겪은 것을 알게 되었던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화창한 날씨, 중간고사가 다가오던 봄, 2교시 영어시간. 모두가 당연히 전원 구조될 것이라고 믿던 때, 그리고 저녁이 되자 온통 뉴스에서 나오는 비보와 생존 가능성을 논하는 이야기들. 에어 포켓이 있다면 살아있을 수 있다던 3일동안 밤에 자려고 누울 때마다 그 친구들이 그 컴컴한 바다에서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저절로 눈물이 났었어요.
세월호는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또다시 이태원 참사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된 사회안전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걸까요.
유가족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적어도 그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더더욱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봐야합니다. 늘 잊지 않겠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을 친구들아. 그곳에서는 평온하길 바란다.
아직도 배끝머리가 바다 위로 나와있던 장면이 잊혀지질않는다 할수없이 그냥 바라만 볼수밖에없었던 유가족들 맘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가늠도 안간다...
진짜 말도 안되는 사고였다….
어릴 때는 공감이 안 갔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물로 서서히 잠기고 나갈 수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고 그 안에 있던 분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가 생각나서 미치겠다…… 아 어떡하냐…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고통받는 사람은 고통받고있구나……
10대였던 저는 10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10년간 무엇이 바뀌었나 생각해보면 없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는 참사가 반복되었느니 말이죠. 저는 같은 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서 잊지 않고 계속 지켜볼겁니다. 젊은이들이 믿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길…더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없길.
살아있었다면 20대 후반이 되었을 아이들이 열여덟에서 멈췄다는게 아직까지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온국민에게 충격이자 아픔이었던 사건이 너무 큰 상흔을 남긴 것 같아요 배안에 있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제주로 가던 모든 분들이 적어도 지금은 그곳에서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않았습니다 기억합니다
10년전 4월...실시간 속보중계방송으로 가라 앉고있던 세월호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네요.....참 세월호 아픔의 세월이 이만큼이 흘렀네요...
그날 대학생 2학년이던 나는 강의 들으러 가기 전에 집에서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있자가 우연히 뉴스를 봤다. 하던 양치질도 멈추고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마저 준비하고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그 후 들려온 오보라는 소식, 계속해서 들려오는 비보들..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모든게 아직도 생생하고 끔찍한 기억이다. 잊지 않는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미안하다 난 그 날보다 더 어른이 됐는데, 해줄 수 있는게 그날도 오늘도 기억하는 것 뿐이라..
4월만 되면 생각나요.. 정말 없었던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화가 납니다 세상은 왜 이모냥인 거죠
세월호 참사 친구들과 동갑이었습니다. 제 또래들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대형 참사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나 저는 연 나이 28살, 만 나이 26살이 됐습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고 대학생에서 직장인이 되고 쏜살같이 10년이 흘렀습니다. 저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는데 친구들은 아직도 18살에 시간이 멈춰 있다는 게 아직도 18살이라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꿈도 크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너무 어린 나이인데 그 죽음 앞에서 정말 얼마나 간절하게 살고 싶었을까요.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청소년인 친구들이 얼마나 성인의 삶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설렜을까요. 대학교에서는 신입생 환영회도 하고, MT도 가고, 과팅도 하고, 캠퍼스를 거닐고, 축제를 즐기고, 동기와 선후배들이랑 과 생활도 하고 사회에서는 가고 싶던 회사에 취업도 성공하고, 첫 월급의 기쁨도 누려보고, 연차도 쓰고, 휴가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고, 여가 활동도 하고 등등 아직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은데 누군가는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시간을 친구들은 얼마나 바라고 바랐을까요. 친구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친구들이 살아있었다면 함께 세월을 보내고 함께 익어가며 지금의 28살이 되었겠죠.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지금의 나이쯤이면 성숙한 성인이고 어른일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저 스스로 미숙하고 어린 것 같다고 느끼거든요. 친구들이 생을 다 못 살았으니까 꼭 다시 환생해서 제2의 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생에 못 피워낸 꽃 꼭 만개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의 명복을 빌어요.
아니. 근데 10년이 넘도록 사고원인을 규명못한다는게 정상입니까?
아무도 규명하려고 안 하니까 ..
그래서 문제인 고맙다 미안하다 쇼하고 진실 밝히라고 그자리 앉혀놨는데 머했음?
나라 경제 파탄내고 나몰라라 도망이나쳐가고
규명났는데뭔소리하냐
애를 낳아도 지켜주지못하는나라
@@0lii0lii0lll 그니까 나라가 최소한은 지켜줘야지 소중한 미래 인재들인데
@@0lii0lii0lll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나요? 우리나라 헌법 이라도 한번 읽어보세요.
@@0lii0lii0lll수준..ㅉㅉ
22국회희원당선 되는 분들이 다시 조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조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아이이름을 못부르겠다는어머니 말씀 . .왠지 알듯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부르고싶은 아이이름이지만 같은하늘아래 없는세상 입밖으로 꺼내면 모든감정이 감당안되시고 힘드시니 그러시겠죠 . .자책감으로 또 버틸수없는 시간을 버텨야 될 두려움도요 . .
10년이지난 요즘 아니 돌아가실때까지 아마 이름못부르실듯 . .이겨내시라는 말이 더잔인한 위로라 저의 개인 의견은 . . 아이들을 다시만나시기전까지 뭐든지 아이가 자랑스러워할 일들을 하며 버티시라고 하고싶어요 나중에 아이에게 덜 미안하게요 . .ㅜ ㅜ
10년이 지났는데 여전하다는거에 화가 나고 슬퍼요...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사과하시는데 너무 가슴아프고 어른으로서 저도 미안해요...
이 나라는 지금도 그때에 멈춰있는거 같습니다.
보는건 괴로운데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세상이 뒤집혀야 이런일이 더이상 나오지 않으려나.......
그 당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전 여전히 노란리본을 달고다녀요. 벌써 곧 10주기네요... 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벌써 10년이네요..
그 날 아침의 감정이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잊을수가 없지요.
영상을 20초만 보고 가슴이 미어져서 못 보겠어요.. 잊지않아요.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한 만큼 아직도 눈물을 흘립니다. 지겹지 않습니다. 익숙해질 수 없는 슬픔은 절대 지겨워질 수 없습니다. 10살이었던 제가 스물이 될 때까지, 어느덧 열일곱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될때까지도,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먹먹합니다. 지켜지지 못했던 십대들이, 이십대들이 이제는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않는 제 친구들이, 제가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 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1. 알다시피 세월호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일정이였는데
세월호 사고가 아니였다면 일정이 금요일에 귀가를 하는 것이여서
어떤 분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문구가 슬프게 합니다! ㅠㅠ
2. 생존학생들 대부분이 십수년간 그 지역을 오갔던 화물차 기사님들이랑 같이 있었는데요
그 분들은 경험으로 그 유명한 '가만히 있어라!'라는 방송이 이건 아니다 싶어서
같이 구조를 했는데
살아남으신 분들은 밑천이 화물차를 잃고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극단적인 시도를 하신 분도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ㅠㅠ
16살 학원에서 공부히다 밥 먹으러 식당을 갔을때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 아직도 선합니다.
성인 된후 거의 해마다 팽목항을 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갈거구요.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왜용
15번째 생일날이었어요. 정말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의 뉴스, 그날의 날씨, 그날 제가 봤던 sns 글들..저와는 전혀 접점이 있는 사건이 아니었는데 그냥 너무 슬퍼요. 벌써 10년이 지났다는게 믿겨지지않습니다. 시간은 참 빠른데 참...무색하기만 합니다.
어렸을 때 18살은 나에게 성인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18살이 되어보니, 지나보니 정말 어린 아이들이더라 놀이터에서만 안 놀 뿐..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버둥댔을까
이제 고등학교 졸업한 20살인데 18살은 정말 어린나이였다 라는걸 깨닫게 되네요
#기억은 힘이세다🎗️
기억하는 것이 곧 나의 할일
감히 어떻게 잊으라 지껄이나요...
그저 너무 아프지만 않으시길 하는 마음 정도만 감히 가져봅니다.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는 끝까지 못보겠네요.
눈물이 너무 나서.
아직도 참 아파요.
그래도 이름도 모르는 고인들이 참 보고 싶네요.
진실 규명 안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나라 되길🙏
부모님들 가족들 친구들은 끊이지 않는 고통과 슬픔으로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셨을까요 영상 제작 감사합니다
..... 너무 마음이... 아파요...소중한 생명이... 더욱 더 이를 꽉 물고 진실을 밝히도록 돕겠습니다!
숨이 안 쉬어지네요.. 미안하다 아이들아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ㅜ 아직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가족들 얼마나 힘들까
진짜 나랑 같은 나이의 저 친구들... 고2때 교실에서 저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던 아직도 선명하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고 뭐하는지 발만 동동구르고 안타까웠는데 나는 성인이 되었고 벌써 10년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 얼마나 무서웠을지 아직도 무섭고 가슴이 미어진다
동갑내기 친구들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슬픔에 빠졌던 그날을 기억해요. 수학여행을 못가게 됐다며 투정부리던 반친구의 철없음도 지금은 그들과 유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성숙해지지 않았을까요.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게 믿기지도 않지만, 살아있다면 평범한 청년으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이 안타까워 마음이 미어집니다. 너희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다며 애도하던 깊은 슬픔도 조금은 옅어졌지만 여전히 그 슬픔에 잠겨 계신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잊지 않을테니 천천히 조금이나마 그 슬픔을 흘려보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지금 부모님들의 얘기가 너무 와닿네요. 바로 엊그제 같은데
저 사고 때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보면서 나도 생각했다. "왜 구하러 가지 않지? 다들 왜 보고만 있지?잠수복 입고 다들 잘만 들어가던데 눈 앞에 보면서 왜 아무도 안들어가지?"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가라앉는 배를 보는 부모는.......그 아이들은.......10년이 지나 보는 기사에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이 분들은 어쩌지요. 어쩌지요. ㅠㅠㅠㅠ
당시 단원고 2학년 모든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힘들지않고 언제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미술학원에서 그림그리고있던 평범한 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다던 제 또래 친구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그당시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학생이였거든요. 그때 받은 충격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게 현실인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더군요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때 많이 울었고 영상을 보면서 또 눈물이 나네요. 얼른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고3 시절 핸드폰도 다 걷어갔던때에 조례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너네 수학여행 배 하나 침몰한거 아냐 근데 전부 다 구했댄다
그날 야자 끝나고 집에 들어갔을때에 집 티비에 보였던 화면이 아직도 선명하네요 끝도 없이 내려가던 실종자 명단들과 바다...
그때 처음으로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늘 기억하겠습니다. 스물여덟이 되었을 제 동생들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 참 빠르다..
너무 슬프고 화가 납니다.. 눈물이 납니다...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요. 그저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기억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편안하시길~~~
움직이지말라고 누구지시한건가요? 누가 책임지지않고 진실을 숨겼나요? 🎗️4.16 304명 귀한생명 기억합니다.
10년이 지나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 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
기억해야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4월은... 분명 봄인데 왜 봄이 아닐까요
누가 잊습니까.. 누가 잊자고 합니까
. 힘들어도 생각하고 힘들어도 들어주고 해야죠.. 벌써 10년이네요.
그저 좋은 곳에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변화시키지 못한 세상에 대한 죄책감에 아무런 말도 못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벌써 10주년이네요. 10년이 지났지만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납니다.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 빠르네요 뉴스보면서 놀랐지민 다 구하겠지했던 것도 선명한데..그 곳에선 모두 행복하시길…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이 얼마가 지나든 진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마음 아파서 영상을 못 틀겠어요..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눈물이 계속 나요...
그 날, 제 남동생은 같은날 제주도에 도착해서 그 학생들이 함께하도록 예약되어있던 예약일정을 돌아다니면서 수힉여행을 잘 다녀왔고, 그 후 대학도, 군대도, 대학원도 다녀오고 취직까지 했는데.. 그 애들은 동생이 여행갔던 그 날 부터 모든게 멈춰버렸다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워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살아 있었으면... 이제 회사 다니면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멋진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sns에 자랑도 했을텐데....
결혼준비 하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참....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으면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품고 산다는데 잊을 수 없는 건 당연한거다. 우리도 잊지말자...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피해자들과 동갑이 된 올해 기분이 더욱 남다르네요.
항상 기억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짜 말도 안 돼….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얼마나 많은 젊은 시민들이 죽어나가야 하는건가? 국가 재난시스템은 작동되지 않고 책임은 아무도 지지않는다
말이돼야 이현실을 믿죠 ㅜㅜ 정말 있을수 없는일이 생겨버린거죠ㅜㅜ 고통속에 죽어간 어린 아이들
미안하다 너무 ...
왜 사람들을 구하지 않고 기어이 일부러 죽였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아 눈물만 납니다 진짜
왜 나는 벌써 언니 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된걸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봄이 열 번이 지나는 동안 나는 잊고 떠올리고를 반복했다 미안해요
40초만 보고도 눈물이 너무 나서 더는 보지못했습니다 잊지않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쉴 수 있을 날까지 계속 잊지않고 있겠습니다
🎗️
그당시 해양경찰청. 세월호 선장. 움직이지말고 대기하라고 방송한 직원. 그외 방관한 공무원과 관계자들 처벌 어떻게 받았는지 취재해주세요!!!!! 세금받고 일하면서 직무유기한 범죄자들 얼굴도 공개해주세요!!!
저때 어려서 잘 몰랐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저때 진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로 회귀한거 아니었을까? 정치인들은 말할것도 없고, 언론, 그 다음 아직까지도 지겹다고 하고 있는 국민들.. 진짜 너무 가슴아파
어떻게 잊어요 이제 겨우 십년인데.
아이들 ...어떡하나요
배가 침몰하는거면 무조건 구명조끼 착용후 다 나오게 지시하고 구조대만 총동원했어도
정말 다 살수있었는데 대체 왜
영원히 잊혀질 수가 없는 사건… 뱃머리만 수면에 둥둥 떠있던 그 장면을 누가 기억에서 지울 수 있을까. 국가가 책임을 저버릴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과가 뒤따르는지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울고 있다
세월호 이태원..국가는 없었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로 18살인데, 친구들이랑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해요. 곧 성인인데 아직도 초등학생 같고, 아직도 애같다고.. 나이라는 게 막상 되어보면 생각보다 어리더라구요. 영상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제 가방엔 노란 리본이 아직 걸려있고, 제 방 책상에도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있어요.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자 끊임없이 얘기하고 부르짖자
나는 이제 27살이 되었는데, 너희는 여전히 17살에 머물러있구나..너희의 청춘을 앗아간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다. 절대 잊지 않을게..
잊지않겠습니다
10년이 갔어도 해결이 안되니ᆢ나라가 이렇게 무능해도 되는건가요ᆢ시간은 가고 의지는 없는듯하고 남은이들의 한은 쌓여만 가니ᆢ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딱 10살 차이 나는 언니 오빠들인데...
당시 8살이였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기억나는 건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보도되던 뉴스 타이틀,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께서 관련 뉴스를 보여주셨다는 거
보는 데 눈물만 나네요 97년생 언니오빠들과 07년생이 10년 뒤 같은 나이가 되었어요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울었는데 이번 년도는 가장 많이 울었지 않나 싶네요
10년이 벌써 지났다는 사실과 내가 그 때 어른같던 언니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되고보니 열여덟살은 정말 어리다는 게... 눈물만 납니다 살아 있다면 30살을 바라보고 있을텐데
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