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패자의 기록. 그리스는 히틀러에 부역한 매국노들이 영국에 붙어 내전을 치룬 것이고. 제주 4,3은 백범 김구의 5.10 제헌선거 보이코트를 철저하게 관철한 것일 뿐. 에서 말하듯 그리스에서 영국군이 그랬던 것처럼 서북청년단을 동원한 미군정이 한 짓이지요.
우리 외할머니는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6년전 제나이 마흔넷에야 친정어머니께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4.3 대정읍 하모리 마당에서 바다가 보이는 그 평화로운 집. 외할머니는 당시 셋째 외삼촌을 임신한 상태셨다고합니다.만삭의 몸으로 멀리도 못도망가고 집안 옷장 다락방에 가족이 숨어지냈다고합니다. 집으로 쳐들어가 사람들끌고나와 집안의 살림살이며 다 도덕질해가져가려면 빨갱이로 몰아 죽창으로 찔러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고합니다. 그 당시를 왜구들의 노략질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앞집 친구집에 서북청년단놈들이 차지하고는 그집마당에 말을 잡아 구워 냄새를 사방팔방으로 나게하고 당시 외할머니는 어차피 몇일을 굶어 목숨부지하고 숨어있는데 그 냄새에 못이겨 저거먹고 뱃속에 아이한테 먹여야겠다고 나가먹어야겠다 하시는걸 외할아버지가 겨우 막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그 냄새가 진동하니 냄새를 못참고나오는 사람들을 죽창으로 찔러죽였고 그앞마당에서 죽은사람만수십명이었다했습니다.단 이틀사이 벌어진일이었다고했습니다. 이후 수십년이지나도 그집앞마당 그자리엔 풀도나지않는다셨습니다. 8남매를 키우셨고 아이들 공짜로 글가르키고 성당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에가서 애들 돕고 돌봐주시던분이었는데 할머님 영양실조로 몸이 아파 평생을 앉은뱅이로 사셨습니다. 어릴적엔 왜 할머니가 앉아만계시는가했는지 몰랐는데 그 때 가혹한 3년이 일제시대때보다 더 힘들었다 했습니다.외가식구들은 농담처럼 셋째삼촌만 눈이 유독작은게 뱃속에있을때 너무못먹어서라고 하셨는데 4.3에대해선 아무런 얘길하지못했던 그때의 기억 제 44년의 세월속 유일하게 어른들이 내비친 4.3에얽힌 얘기었습니다.
21:53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 와 사는 몇몇에게 물어보면 제주도 분들은 타 지역민들에게 너무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라고들 말씀하시죠. 제주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 타 지역에서 오신분들이라 하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4.3과 같은 이러한 일들을 겪은 분들이 그때의 상처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서 나온 방어기재라고 저는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9살이 되어 제주로 이사 왔고 현재 30년이 넘도록 제주에 거주하며 이제는 어디 가더라도 제주도민이라 말할 순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렸을 적 택시를 타거나 어딜 가게되면 육지것 제주것을 구분하여 말씀하시는 어른 분들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저도 제주에서 초중고를 나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4.3에 대해 교육적으로 들었던 건 손에 꼽을 정도이니 4.3 자체가 저의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제주에서 입에서 꺼내기도 힘든 금기어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매년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오고 벚꽃이 피는 4월이 되면 주변 지인들이나 어르신들이 제사를 준비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제는 가족 중에 4.3시기 희생 당한 가족 분들이 계셨구나 라고 이제는 알 수 있죠.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4.3을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이렇게도 길었지만 앞으로 라도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교육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4.3의 대한 규정이 하루빨리 정해지고 많은 분들이 5.16 만큼이나 큰 사건이였다고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을 먼저 읽고 이 컨텐츠를 보내요. 도대체 국사시간에는 왜 근현대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걸까요... ㅠ 제주 4.3은 저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됐고 그나마도 여러 매체를 통해 조각조각 알게 됐어요. 노벨상 수상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공론화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언제쯤 돼야 한국 근현대사는 매체에서 눈치안보고 편하게 다루어질 수 있을지 ㅠ
4.3을 알게 된 후 제주는 제게 아주 다른 섬이 돼 버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풍광이 아름다워 가슴이 더 찢어졌어요. 학교에선 당연히 배우지 못 했고, 30대에서야 알게 됐다는 사실 또한 너무 기가 차고, 죄송했어요. 이젠 4월 3일 즈음에 제주를 갑니다. 추념식에 참석해 주위 계신 유족들과 대화도 나누는데, 사연 하나하나가 너무 가슴 아파요. 제주를 위해 뭘 할까 궁리 끝에 여행 중 쓰레기를 줍습니다. 4.3이 진즉 알려졌더라면, 어쩌면 광주의 비극은 없었을 수 있어요.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시절과 장소가 다르다고 무관심한 순간, 미래에 내가 그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4.3 유족이시고 현재 저도 유족으로 등록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매년 4월 학교에선 4.3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많이하고 영상들, 단편 독립영화 보여주시고 기념관을 가는 등 여러 교육을 해서 익숙하고 들을 때마다 아는 내용인데.. 이러면서 귀찮은 듯 또 듣고 이러는데 이 영상 보고 그러면 안되겠다 싶네요..ㅜ
댓글 보면서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은 다시 살아날.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렸을때 배웠던 빨갱이들의 무장봉기였다라는.것이 아닌걸 알았을때 그 배신감은 아직도 기억합니다. 잊지말고 이런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한국 역사 선을 잘 들여다보면 저때 저 악행을 자행한 주체들이 지금까지 이어진 정치 세력인이국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윤석열이가 4.19때 무너뜨린 이승만 동상을 칠곡 다부동전투기념관에 다시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나온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태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하는 나까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인 김태효와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사사까와 재단으로부터 매달 20만엔씩 20년간 받은 친일집안 윤석열이가 박정희가 남긴 7광구와 독도를 일본에게 넘기기로 기시다에게 약속한 매국노
4.3사건 진실을 봅시다. 역사는 감정으로 흐르는게 아니라 정말 냉철한 시선으로 봐야합니다. 안타까운 사건이고 무시무시한 사건이나 한 정치세력이 역사지우기로 만든 역사 가슴으로 읽는 민족적인 역사는 옳지 못합니다. 중국이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역사를 만들고 북한과 러시아의 어떤 우상화를 보면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 무지해서 그래요...나라가 힘이 없었어서 그동안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유행에만 민감한 나라가 되어서...주관이 없고 선동에 당하는.. 오웰의1984만 읽어도 지금 정치 선동이 어디까지 온건지 느낄수 있는데 도통 역사를 황현필 같은 사기꾼 역사를 보니.. 플라톤이 말한 무지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하게되면 오는 정확한 예시가 한국인거 같아요..
요새 자칭 우파들의 선동영상이나 보면서 사실관계 자료 등을 찾아 볼 노력은 안하고 그럴 것이다라고 선짐작만하고 게으른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어깨 위의 장식품을 덜렁대며 상대를 감성팔이로만 몰아가는 덜떨어진 이런 무지한 자들이 참 많어. 정작 자기는 게으르고 무지하지만 자칭우파들의 단편적인 선동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듯 머리무게와 같은 그 가벼운 조잘댐이란....이런자들이 풍기는 냄새는 정말 역함이 그 정도가 심해서 너무 역겨워. 그 무거운 엉덩이 떼고 좀 찾아봐라. 한 번 현장에 가보고 한 줄이라도 읽고 와서 떠들어대라.
학살의 선빵을 날린것은 4.3 남로당 무장봉기대였다..무장봉기가 없었으면 군경에 의한 진압과 학살도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즉 쌍방과실이지만 선빵을 날려 무고한 양민들이 죽은 책임은 분란을 먼저 일으킨 4.3 남로당유격대의 책임이 더 크다 ...역사는 사실대로 봐야지 외눈박이로 즉 내로남불로 보면 안되는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사건 입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에27만 제주인구 중 7만의 남로당을 걸러내지 못하였다면 제주도는 공산화 되었을 것 입니다 근데 이승만이 저 당시 대통령도 아니였는데 이승만을 학살자로 모는 것은 부당합니다 한강이 비판받는 이유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입을닫고 그 사태에서 일어 나는 비극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야 이탈리아 어땠어?”
🧟♀“분위기는 모르겠고, 위기는 있었어.”
여자 넷의 현실 유럽 여행 ⛺〈텐트 밖은 유럽 로맨틱 이탈리아〉 🇮🇹
매주 [목] 저녁 8시 40분 tvN에서!!
we’re :DIGGLE family
저는 제주에 이주한지5년차에요 아이들 학교 과제를통해4.3사건을 어른이되고 알게됬을때 너무큰 충격을받고 눈물이났습니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수 보다 10배가 넘는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육지에사는 학생들은 이사건을모르고 삽니다 그부분이 너무 어이가없더라구요 민간인대학살 사건을 왜 모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던것인지 이해가 안갑니다 부끄러운 자국민 대학살 사건이지만 잊혀지면 안됩니다 이런역사는 반복되면 안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패자의 기록.
그리스는 히틀러에 부역한 매국노들이 영국에 붙어 내전을 치룬 것이고.
제주 4,3은 백범 김구의 5.10 제헌선거 보이코트를 철저하게 관철한 것일 뿐.
에서 말하듯 그리스에서 영국군이 그랬던 것처럼 서북청년단을 동원한 미군정이 한 짓이지요.
5.18은 단순 학살이 아니라 민주항쟁이라 당시 관련됐던 사람들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하면서 그나마 인정을 받지만 4.3은ㅠㅜ 힘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갔는데 아직까지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았죠…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해서 참 다행이에요 그런 면에서
@vierwuenscheansuniversum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백범 김구와 한독당이 보이코트한 48년 5.10 제헌선거를 제주도는 육지보다 확실하게 반대했던 것
제주 4.3사건은 알면서도 가르치기 힘들죠..학살에 포커스를 마추면 그냥 학살이라 너무 아프고 그렇다고 남로당의 국가 전복에 포커스를 마추려해도 민간인 희생이 너무 많았구요..불안안 시대에 너무나 아픈 비극적인 사건 이라고 밖에..
보고나니 맘이 편하지가 않네요
5.18은 독재에 대한 항쟁이었고, 4.3은 시대적 비극임. 독립 후 이념 대립에 의한 학살이었기에... 그 누구도 말을 못 했음.
전 제주여행 중에 우연히 조천을 지나다가 그들의 시신없는 단체묘소를 가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안내문으로 처음 접하고 정말 넘 충격적이었고 슬퍼서 펑펑 울었습니다.
여순과 4.3 골령골 모두 모든 국민이 제대로 알게 해야 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야 4.3사건(학살이네요ㅠㅠ)을 이제 조금 알게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픈 역사입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외할머니는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6년전 제나이 마흔넷에야 친정어머니께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4.3
대정읍 하모리 마당에서 바다가 보이는 그 평화로운 집.
외할머니는 당시 셋째 외삼촌을 임신한 상태셨다고합니다.만삭의 몸으로 멀리도 못도망가고 집안 옷장 다락방에 가족이 숨어지냈다고합니다. 집으로 쳐들어가 사람들끌고나와 집안의 살림살이며 다 도덕질해가져가려면 빨갱이로 몰아 죽창으로 찔러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고합니다.
그 당시를 왜구들의 노략질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앞집 친구집에 서북청년단놈들이 차지하고는
그집마당에 말을 잡아 구워 냄새를 사방팔방으로 나게하고
당시 외할머니는 어차피 몇일을 굶어 목숨부지하고 숨어있는데 그 냄새에 못이겨 저거먹고 뱃속에 아이한테 먹여야겠다고 나가먹어야겠다 하시는걸 외할아버지가 겨우 막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그 냄새가 진동하니 냄새를 못참고나오는 사람들을 죽창으로 찔러죽였고
그앞마당에서 죽은사람만수십명이었다했습니다.단 이틀사이 벌어진일이었다고했습니다.
이후 수십년이지나도 그집앞마당 그자리엔 풀도나지않는다셨습니다.
8남매를 키우셨고 아이들 공짜로 글가르키고 성당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에가서 애들 돕고 돌봐주시던분이었는데
할머님 영양실조로 몸이 아파 평생을 앉은뱅이로 사셨습니다.
어릴적엔 왜 할머니가 앉아만계시는가했는지 몰랐는데 그 때 가혹한 3년이 일제시대때보다 더 힘들었다 했습니다.외가식구들은 농담처럼 셋째삼촌만 눈이 유독작은게 뱃속에있을때 너무못먹어서라고 하셨는데 4.3에대해선 아무런 얘길하지못했던 그때의 기억
제 44년의 세월속 유일하게 어른들이 내비친 4.3에얽힌 얘기었습니다.
넘 슬프네요ㅠㅠ
4.3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저는 저희 집에도 4.3으로 돌아가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한번도 얘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요 ㅠㅠ
저도 그 당시 외증조부가 돌아가셨지만, 부끄럽게도 40줄이 된 나이에야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쉬쉬 살아가셨으텐데, 그
마음 오죽했을까요.
잊지않게 계속 이야기를 꺼내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읽고 있었더니 유튜브에 이런 유익한 영상도 뜨네요 정말 끔찍하다 눈물이 계속 나요
‘작별하지 않는다’ 읽고 이제야 제대로 알았네요...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제주도 출신인데 정말 말로는 형용할수 없네요 너무너무 화나고 가슴아프고 슬퍼서 ㅠㅠ 같은 인간으로서 이런 잔인함이란…
이북에서 1946년 토지개혁을 당한 '38따라지' 부재지주들의 서북청년단들이 분풀이를 제주도에서 한 것.
@@HaSeunghyo 대한민국 수립을 반대한 백범 김구와 한독당이 5.10 제헌선거를 보이코트한 것이고 제주도는 서북청년단들이 자행한 폭력에 저항하여 김구의 단정반대를 무력으로 거행한 것
정말 감사한 프로그램입니다.
21:53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 와 사는 몇몇에게 물어보면 제주도 분들은 타 지역민들에게 너무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라고들 말씀하시죠.
제주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 타 지역에서 오신분들이라 하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4.3과 같은 이러한 일들을 겪은 분들이
그때의 상처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서 나온 방어기재라고 저는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9살이 되어 제주로 이사 왔고 현재 30년이 넘도록 제주에 거주하며 이제는 어디 가더라도 제주도민이라 말할 순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렸을 적 택시를 타거나 어딜 가게되면 육지것 제주것을 구분하여 말씀하시는 어른 분들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저도 제주에서 초중고를 나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4.3에 대해 교육적으로 들었던 건 손에 꼽을 정도이니 4.3 자체가 저의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제주에서 입에서 꺼내기도 힘든 금기어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매년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오고 벚꽃이 피는 4월이 되면 주변 지인들이나 어르신들이 제사를 준비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제는 가족 중에 4.3시기 희생 당한 가족 분들이 계셨구나 라고 이제는 알 수 있죠.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4.3을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이렇게도 길었지만 앞으로 라도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교육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4.3의 대한 규정이 하루빨리 정해지고 많은 분들이 5.16 만큼이나 큰 사건이였다고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슬픈 역사입니다. 잊혀지면안됩니다
책을 먼저 읽고 이 컨텐츠를 보내요. 도대체 국사시간에는 왜 근현대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걸까요... ㅠ 제주 4.3은 저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됐고 그나마도 여러 매체를 통해 조각조각 알게 됐어요. 노벨상 수상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공론화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언제쯤 돼야 한국 근현대사는 매체에서 눈치안보고 편하게 다루어질 수 있을지 ㅠ
정부가 다루지못하게 했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근현대사 제대로 안가르치는 이유요. 정치때문에 그렇죠...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면 빨간당 못찍어요. 그래도 제주도는 찍지... 할말없음
최근에 한능검 공부하면서 관심 갖게 됐고, 한강 작가님 노벨 수상 덕분에 저서 읽어보면서 더 깊이 알게 됐어요. 때마침 유튜브에도 추천 영상으로 뜨네요.
다른 것보다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정확히, 제대로 관심 갖고 배우는 자세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법조인들은 법과 제도에 대해, 학자들은 역사와 지식에 대해,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에 대해, 시민들은 시민들의 인식에 대해 알고 기억하고 바꾸어나가는.. 그래서 모두가 조금씩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사회가 되기를....
4.3을 알게 된 후 제주는 제게 아주 다른 섬이 돼 버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풍광이 아름다워 가슴이 더 찢어졌어요. 학교에선 당연히 배우지 못 했고, 30대에서야 알게 됐다는 사실 또한 너무 기가 차고, 죄송했어요. 이젠 4월 3일 즈음에 제주를 갑니다. 추념식에 참석해 주위 계신 유족들과 대화도 나누는데, 사연 하나하나가 너무 가슴 아파요. 제주를 위해 뭘 할까 궁리 끝에 여행 중 쓰레기를 줍습니다. 4.3이 진즉 알려졌더라면, 어쩌면 광주의 비극은 없었을 수 있어요.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시절과 장소가 다르다고 무관심한 순간, 미래에 내가 그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4.3 유족이시고 현재 저도 유족으로 등록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매년 4월 학교에선 4.3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많이하고 영상들, 단편 독립영화 보여주시고 기념관을 가는 등 여러 교육을 해서 익숙하고 들을 때마다 아는 내용인데.. 이러면서 귀찮은 듯 또 듣고 이러는데 이 영상 보고 그러면 안되겠다 싶네요..ㅜ
참.... 사람이 사람한테 저럴 수가 있나 ㅠㅠㅠㅠㅠㅠ
악마들이 자신들의 학살을 변호하는 말,
"빨갱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나름대로 역사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인데 4.3은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늦게 알게 된 만큼 더 많이 알아보겠습니다
9:00 진짜임... 26까지 그냥 뭔가 있었다 정도만 알고있었음...
너무 가슴아픈 일이었던, 실제 겪으셨던 분들의 고통 과 트라우마는 감히 가늠해보지도 못하는 일입니다 .
부디.
아름답지만 제주의 곳곳에는 제주도민분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것 같습니다...과거의 영광된 역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닌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민낯도 기억하고 서로 보듬는 한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외가가 제주인데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게 너무 창피합니다.
죄도 없는 분들을 이제 와 무죄라고 하면 끝이냐?… 나라가 제대로 사죄하고 반성하고 보상하고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바로잡아야 되는거 아니냐
역사를 잊으면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 이런건 자꾸 자꾸 알려야 합니다.
앞 장면 배경음악이 여명의 눈동자 OST네요 ㅠㅠ...
오늘 막 작별하지 않는다를 정독했는데 ㅠㅠ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4.3 기념관은 꼭
방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 한라산 中, 이산하
퓨ㅠㅠㅠㅠㅠㅠㅠ나중에 제주도 놀러갈때 4.3기념관가봐야겟다
학살자..... 이 승 만........
그 이승만이의 배후는 미국입니다.
왜 원인제공 빨갱이들한테는 아무소리도 못할까
@@이용호-u2f3g 그래도 미국인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과 이승만이 자국민을 보는 시선에는 서로 차이가 있어야 했습니다
@@partywhereat 미국과 이승만은 반공이고. 히틀러와 도죠 히데끼가 반공입니다. 반공은 히틀러 이승만 미국 일제를 잇는 것
@partywhereat 이승만과미국은 매카시즘
불과…얼마전까지, 이런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어…….👍
제주의 47년 3.1절 집회는 관덕정이 아니라 북국민학교(북초등학교)에서 5만 정도의 인파가 모여 열렸습니다. 행진을 하다가 관덕정 부근의 경찰서 쪽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발포한 것입니다.
영상보고 다녀왔습니다.
지슬이란 영화가 있지요 ㅠ
이승만이 제주도민을 얼마나 미워했겠어...
5 10. 총선거에. 제주도만 투표율 부족으로 무효가 되었는데......
학살이란게 처음에는 이념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살자들의 약탈을 위해 이념을 가져다 붙인다. 종교는 안믿지만 악마들도 절레절레 하는 수준이었을 것임.
제주 4.3항쟁. 사건이 아니라 항쟁.
그러나 지금도 문제시하는 이들에게 빨갱이란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건 참 세뇌는 무섭단 생각이 듭니다。。。 누가 사상에 세뇌되어 이성을 잃은 건지 。。。
국힘은 과거에 저런짓을 했던 같은패들이다. 아직도 국짐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생각해봤음 좋겠다. 저런 짐승같은 짓을 했던 아직도 하고 있는 자들을 지지하고 싶은지.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절대로 과도한 생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웬만해서.
아무리 국가안정기가 아니더라도 군.경이 민간인을 이렇게 죽여야했을까요.진짜 분노가 그냥 표면적 단편적으로 알았던4,3사건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피해유족분들 빨리 개념이 정리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댓글 보면서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은 다시 살아날.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렸을때 배웠던 빨갱이들의 무장봉기였다라는.것이 아닌걸 알았을때 그 배신감은 아직도 기억합니다. 잊지말고 이런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한국 역사 선을 잘 들여다보면 저때 저 악행을 자행한 주체들이 지금까지 이어진 정치 세력인이국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3 추모식에 대똥령이랑 여당대표 등 국힘 불참한거 보면 아직도 북한소행이라고 여기는 듯
뿌리의 흠과 오신을 인정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뇌가 늙어 쪼글어서 그런가봅니다.
윤석열이가 4.19때 무너뜨린 이승만 동상을 칠곡 다부동전투기념관에 다시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나온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태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하는 나까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인 김태효와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사사까와 재단으로부터 매달 20만엔씩 20년간 받은 친일집안 윤석열이가
박정희가 남긴 7광구와 독도를 일본에게 넘기기로 기시다에게 약속한 매국노
아픈 역사지만 4.3사건을 제대로 알 필요는 있습니다..희생된 사람만 본다면 민간인 대학살이지만 남로당이 연관된 사건이라 아직도 사건이라 부릅니다
@user-simple0531 백범 김구의 한독당이 보이코트한 48년 5.10 제헌선거
아직도 여기는듯이 아니라 사실이잖아
빨갱이들 공산폭동 제압에 민간인이 휘말린게 문제지 원인은 떼버리고 결과로만 얘기하네
이런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질렀는데도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송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모든게 밝혀져 억울하고 비통하게 떠나신 분들의 명예회복과 그로인해 아픔과 제재를 받고 아직도 고통 속에 계신분들의 소망과 희망이 지금이라도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기도 하겠습니다
18:20
22:02
제주4.3, 여순사건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승만 ......ㅡㅡ
동의대 사태도 좀 다뤄주세요 운동권 이야기는 성역이냐? 다루는데가. 하나도 엄네
편집자 누구신지. 일 잘하셔 ㅠㅠ
저런데도 이승만을추앙하는 인간들은 악마다.
이승만 학살자놈을 위인으로 추대하고 앉았다니 아오
저때 경찰에게 돌을 던진 이유는, 저때 당시에 이미 경찰들이 정말 악질 이었다는 반증 입니다.
이승만의 만행 그런자는 건국의 아버지라 칭하고 동상만들고 석열아 정신차려라
미국이 한국인들 6만명 죽였는데 이런건 왜 교과서에 안나옮? ㅎ
학살이야.
4.3사건 진실을 봅시다. 역사는 감정으로 흐르는게 아니라 정말 냉철한 시선으로 봐야합니다. 안타까운 사건이고 무시무시한 사건이나 한 정치세력이 역사지우기로 만든 역사 가슴으로 읽는 민족적인 역사는 옳지 못합니다. 중국이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역사를 만들고 북한과 러시아의 어떤 우상화를 보면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ㄹㅇ감성민국 눈가리고 귀닫고 진실을 알려하지 않고 쉽게 선동당함
@ 무지해서 그래요...나라가 힘이 없었어서 그동안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유행에만 민감한 나라가 되어서...주관이 없고 선동에 당하는.. 오웰의1984만 읽어도 지금 정치 선동이 어디까지 온건지 느낄수 있는데 도통 역사를 황현필 같은 사기꾼 역사를 보니.. 플라톤이 말한 무지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하게되면 오는 정확한 예시가 한국인거 같아요..
요새 자칭 우파들의 선동영상이나 보면서 사실관계 자료 등을 찾아 볼 노력은 안하고 그럴 것이다라고 선짐작만하고 게으른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어깨 위의 장식품을 덜렁대며 상대를 감성팔이로만 몰아가는 덜떨어진 이런 무지한 자들이 참 많어. 정작 자기는 게으르고 무지하지만 자칭우파들의 단편적인 선동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듯 머리무게와 같은 그 가벼운 조잘댐이란....이런자들이 풍기는 냄새는 정말 역함이 그 정도가 심해서 너무 역겨워. 그 무거운 엉덩이 떼고 좀 찾아봐라. 한 번 현장에 가보고 한 줄이라도 읽고 와서 떠들어대라.
학살의 선빵을 날린것은 4.3 남로당 무장봉기대였다..무장봉기가 없었으면 군경에 의한 진압과 학살도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즉 쌍방과실이지만 선빵을 날려 무고한 양민들이 죽은 책임은 분란을 먼저 일으킨 4.3 남로당유격대의 책임이 더 크다 ...역사는 사실대로 봐야지 외눈박이로 즉 내로남불로 보면 안되는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사건 입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에27만 제주인구 중 7만의 남로당을
걸러내지 못하였다면 제주도는 공산화
되었을 것 입니다 근데 이승만이 저 당시 대통령도 아니였는데 이승만을 학살자로 모는 것은 부당합니다
한강이 비판받는 이유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입을닫고 그 사태에서 일어 나는 비극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2찍
발포사건 시기에는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그 후 초대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남한에서만 이뤄진 투표를 거부한 제주도민을 토벌했습니다. 48년 11월 계엄령을 선포하고 집단 학살을 지시했습니다.
미쳤냐?
🤏🤏
이승만은 48년 7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48년 11월 총선거를 거부한 제주도민에 대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토벌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로인해 집단학살이 시작되었으니 이승만의 책임이 있고 부당하지 않습니다. 알아두시면 좋을 듯 합니다.
결국엔 공산당놈들이 문제네요. 근데 항준감독님은 이걸 애써서 친일 프레임으로 이니시를 왜 걸지.. 밤에는 좌익단체가 내려와서 "죽이고" 이 부분은 기가막히게 편집..
정말 제대로 널리널리 가르쳐야한다.
후세에..
그리고 누구때문에 발생된건지
바로잡히지 못했는지
어떻게 아직도 그 연장선인건지.
제주도 어른들이 외지 육지 사람들 경계하는 건 다 저런 이유일까? 라는 생각도 됩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 그리고 국짐
이런 과거를 알면 절대 난 그 당 못뽑을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