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후궁의 후손이 조선 임금 14명이라니 ~이런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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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5 січ 2025

КОМЕНТАРІ • 23

  • @맥가이버-l9z
    @맥가이버-l9z 3 місяці тому +16

    아 ᆢ현충원에도 후궁 묘가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이네요 ᆢ역시 찾아가는 보거스님 최고심

  • @하나-i3t
    @하나-i3t 3 місяці тому +7

    살아서 선함이 후대의 길이길이 아름답게 보전하셨네요 보거스 님 감사합니당 힘내세요

  • @aurakim7859
    @aurakim7859 2 місяці тому +8

    명당인데..왜 선조일까..ㅉㅉ
    땅도 이겨먹나봄.

  • @민수김-d9t
    @민수김-d9t 3 місяці тому +14

    선조 할머니 창빈안씨가 있죠 ㅎㅎ

  • @우윤환
    @우윤환 3 місяці тому +6

    누가 유트브에서 설명을했는데 정말로 명당 자리라고합니다..잘보고감니다

  • @runtv80
    @runtv80 3 місяці тому +5

    수고하셨습니다 ❤

  • @wizimam
    @wizimam 3 місяці тому +10

    최후의 승자 창빈안씨

  • @송민성-y7o
    @송민성-y7o 2 місяці тому +3

    조선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선조의 조모)의 묘는 서울현충원이 생기기 전에 이곳에 있었습니다. 창빈 안씨 묘는 원래 양주에 있었으나 풍수설에 따라 이곳으로 이장하였습니다. 서울현충원이 생기기 훨씬 전에...
    창빈안씨신도비(昌嬪安氏神道碑)는 숙종 때 세워졌고, 정조 때부터 치제가 치러졌습니다.

  • @kimthaongohoango4596
    @kimthaongohoango4596 3 місяці тому +3

    Very good 👍😍

  • @광팔-g4b
    @광팔-g4b 3 місяці тому +6

    잘 봤습니다..
    경빈박씨는 1527년 작서의변으로 김안로라는 사람에게 중종의 서자인 복성군과 두 모자가 살해당했다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황규영-y3b
      @황규영-y3b 3 місяці тому +2

      @@광팔-g4b 살해라기보다는 사사입니다. 1533년

    • @광팔-g4b
      @광팔-g4b 3 місяці тому

      @@황규영-y3b 사사는 왕이 신하를 역모나 대역죄를 지어 사약이라든가 죽일때 사사라고 하잖아요.

    • @황규영-y3b
      @황규영-y3b 3 місяці тому +2

      @@광팔-g4b 경빈이 사사 되었지 살해안당했는데요? 유배지에서 사사된거죠

    • @황규영-y3b
      @황규영-y3b 3 місяці тому +2

      @@광팔-g4b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왕의 후궁을 신하가 멋대로 살해할 수 없습니다. 왕의 허가가 있어야죠

    • @민수김-d9t
      @민수김-d9t 3 місяці тому +3

      사사입니다.경빈 죽고 며칠뒤인가 아들 복성군(이미)도 따라 죽어요.

  • @우전-z5r
    @우전-z5r 3 місяці тому +9

    국립묘지에 후궁묘가 있는게 아니고
    후궁묘에 국립묘지를 만든거
    글구 창빈안씨가 조선왕의 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