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5] 목종은 죽였으면서 대체 왜? 천추태후는 굳이 살려 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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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0 лис 2023
  • 우리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실제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축약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으니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영상 내 오류나 기타 수정해야 할 사항이 보이신다면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제가 모아서 고정댓글에 게시해 다른 시청자분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훗날 종합본 영상을 만들 때 수정사항들을 반영해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BGM]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괴력난신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선유산기슭
    메이플스토리 BGM 아랫마을 - 금지된 절벽
    메이플스토리 BGM 고스트파크 - 고스트하우스
    메이플스토리 BGM - 까막산
    메이플스토리 BGM - 미남법사의 사원
    메이플스토리 BGM - 퀘스트 중 긴급상황
    메이플스토리 BGM - 네트의 피라미드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소멸의 여로 - 망각의 호수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시간의 신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시그너스의 정원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에델슈타인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에레브 수련의 숲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엘리니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흩어진 시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거상 BGM - 조선 필드
    BGM팩토리 - 보드게임의 세계 - 장기
    [참고서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 휴머니스트
    '조선국왕 이야기' - 임용한 / 혜안
    '조선왕조실록 1 태조~세종 편' - 이성무 / 살림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1분 조선왕조실록 1: 태조~태종' - 정명섭 / 21세기북스
    '왕, 왕비, 참모로 산다는 것' -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참고자료]
    (유튜브) 최태성 1TV - 전설의 한능검 고급
    (유튜브) 황현필 한국사 - 조선사
    (유튜브) 임용한TV

КОМЕНТАРІ • 243

  • @1shot2end68
    @1shot2end68 8 місяців тому +103

    천추태후는 태조의 외손녀+ 광종의 며느리+경종의 부인+성종의 누이+목종의 엄마 5대 버프를 깔고 간데다가
    성별이 여자라서 죽이기도 부담스럽죠.
    많은 사람들이 강조를 너무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는데,
    전근대의 인물로서는 흔치않게 '왕에 대한 반역'과 '국가에 대한 반역'을 구분했던 깨어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 @baegi.102
      @baegi.102 8 місяців тому +12

      빽이 어마무시..
      할아버지가 태조 왕건
      목종까지 제거했는데 천추태후까지 제거하면 강조는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 @lupin9305
      @lupin9305 8 місяців тому +9

      시대를 어마무시하게 앞선 페미니스트..

    • @user-ps1cp1fe9x
      @user-ps1cp1fe9x 6 місяців тому

      공감

  • @eyon44
    @eyon44 8 місяців тому +18

    강조의 행동이 정말 이해가 안 됐는데 드라마에선 독백으로 풀더군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거같아요.

  • @user-yt4wm4fr6j
    @user-yt4wm4fr6j 8 місяців тому +2

    고려거란전쟁을 4화까지 2번씩 보고 이 영상을 보니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1. 드라마는 생각보다 역사에 대한 각색을 섬세하게 잘 했네요.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을 정말 잘 녹여냈다 생각합니다. 저번 영상보고 3화 볼 때 '기록이랑 좀 판이하게 다른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대로 말이 되고 역사서가 사실 그대로 쓰여졌다 확증할 수도 없으니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오늘 영상보니 그 정도 내용이면 작가 역시도 이러한 역사의 모순점이나 의문점을 잘 알고 만들어낸 스토리라 감탄하게 되네요.
    2. 저도 강조가 주도하여 반란을 일으킨 거라 생각합니다. 고려사에선 강조가 부하들에게 설득당해 반란을 일으켰다 쓰여져있었다 하지만 저는 강조라는 사람이 부하들이 뭐라 설득했다고 설득당할 인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강조의 반란은 강조가 주도적으로 하였고, 이로 인한 명과 암이 있었을 텐데 이 중 '암' 에 대한 부분을 모종의 이유로 의도적으로 가리기 위해 일부러 내용을 바꾼것이라 생각합니다. 모종의 이유가 무엇인지까진 모르겠지만 고려사가 조선시대때 편찬된 것이라 하면 그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강조에 대한 구전이나 판소리 등, 민간문학에서 강조를 좋게 보고 있던 것을 의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3. 이 내용대로라면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은 뒤죽박죽이라 거의 정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천추태후 드라마는 왜 그렇게 욕을 먹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해당 드라마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혹시 이에 대해 말씀해주실 분이 계시다면 답글로 이유를 알려주세요. 혹시 천추태후 뿐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하거나 곡해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건가요?

  • @youctube
    @youctube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강조라는 인물을 볼 때 확실하게 해야되는 점은
    거란의 침략이 가까워 졌다는 것을 몸소 느끼던 인물이라는 것.
    왕권을 휘어 잡고 움직일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고 거란과 전쟁에 집중 했다는 것.
    단순한 왕의 충신이 아닌 고려 자체의 미래를 보고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줌.

  • @type0911
    @type0911 8 місяців тому +3

    극현실적인 채널장님의 추측들이 저랑 딱 맞아 떨어지니 아주 기쁘네요 :)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8 місяців тому +29

    드라마 작가님도 왜 이랬는지 생각하면 끝이 없어서 걍 심플하게 묘사한 듯...

  • @chicaquila
    @chicaquila 8 місяців тому +24

    천추태후를 살려둔건 일종의 절차용으로 놔둔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중에 강조가 왕위를 찬탈하려 할때, 어떤식으로든 현종을 죽이거나 실각시키고,
    남아있는 왕씨 가문의 제일 큰 어른인 천추태후가 옥새를 바치게 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를 때도, 공식적인 형식은 대왕대비 안씨가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에게 옥새를 바치며 양위를 했죠.

    • @lupin9305
      @lupin9305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이것도 가능한 할듯요. 기록에 보면 천추태후는 유배간게 아니라 목종이 스스로 충주에서 여생 살겠데서 같이 갔다니 그러지 않으면 궁궐에 남겨서 언제든 명분쌓기용으로 이용했을지도요

    • @user-cs3wu9tn3w
      @user-cs3wu9tn3w 7 місяців тому

      최씨 무신정권도 몇 대를 걸친 동안 왕을 명목상 군주로 둔 것을 보아 강조도 자기가 왕이 되려한 건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 @archangel7882
    @archangel7882 8 місяців тому +65

    그리고 무신 정권 때 원나라랑 전쟁 났는데 최씨 일가가 강화도로 들어가면서 나몰라라 한 것 보면 강조는 좀 더 고려국가에는 충심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 @user-xs4hd4oe4l
      @user-xs4hd4oe4l 8 місяців тому

      나도 이부분을 말하고 싶었는데 몽고 1차 침입때 최충헌은 고려최정예 별초들을 최전선 전쟁터로 지원군으로 보내지 않고 개경에서 자신을 계속 경호토록 잡아두고 있었죠. 그래서 중앙정부로 부터 어떠한 지원 병력이 오지않아 전방의 성들이 하나둘 무너지게 되죠. 이것만 볼때도 강조와 최충헌의 나라에 대한 생각은 천양지차라고 볼수있죠.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들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왕을 죽인 강조를 좋게 역사에 기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예로 요사에는 강조가 거란군과 아주 치열하게 싸우다 장열하게 전사한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고려사에는 상대를 우습게 깔보고 미적대다가 참패한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서북면을 지켜왔던 강조가 거란의 무력을 몰랐을수도 없고 더구나 거란 성종이 직접 대병력을 이끌 고 왔는데 나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건 싸움에서 안이하게 싸웠다는것은 좀 밑기 힘들어요.

    • @user-lk8mk6vu7k
      @user-lk8mk6vu7k 8 місяців тому

      그건 아니죠 이미 무신정권때야 나라 개판되고 무신들이 지멋대로 한지 꽤 됐으니 가능했지만 저때는 나름 국가 기강도 있어서 불가능 했죠. 그리고 대군이 대놓고 강조 본인을대놓고 저격했으니 최시 정권과는 다르죠.

    • @pign5229
      @pign5229 8 місяців тому +3

      강화도로 들어간 건 나몰라 라기 보단 본진 털렸는데 gg안치고 카맨더 배럭 팩토리 다 띄워서 섬으로 도망간 거로 보는게 맞음

    • @NightN6
      @NightN6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나몰라라 할거 같았으면 천도는 안했겠지요. 도방만을 강화도로 옮겼을듯 ㅋㅋ

  • @pq6543
    @pq6543 8 місяців тому +72

    저는 강조가 분명히 왕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천추태후의 생존이 그 증거라고 봅니다. 이성계가 형식적으로는 정비 안씨의 교서를 받아서 창왕, 공양왕을 옹립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직접 옥새를 넘겨받은 것처럼 강조도 형식적으로는 천추태후의 승인을 받아서 왕위를 넘겨받으려고 했을 것 같아요.
    목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 그냥 반역자가 되지만, 현종을 옹립하여 정치 기반을 다지다가 왕실 큰어른인 천추태후의 승인을 받아 옥새를 넘겨받으면 그냥 형식적으로는 왕위 계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 @MNMNM1111
      @MNMNM1111 8 місяців тому +17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본인이 직접 왕위에 오르면 찬탈이지만, 왕위를 물려받으면 표면상 찬탈은 아니거든요.
      삼국지의 위나라 조비도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굳이 번거롭게 한나라 헌제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은 포퍼먼스를 보이게했었죠.
      영상에서 언급이 되었듯이 명분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번거로워도 천추태후를 보험삼아 살려둔 것 같습니다.

    • @user-kn9zd5bi6t
      @user-kn9zd5bi6t 8 місяців тому +9

      와 이거 그럴듯 하네요.
      이성계도 왕 갈아끼울 때마다
      도장 찍는 용도로 안씨를 살려 뒀었죠 ㄷㄷㄷ
      강조도 빌드업 용도로 왕이 못되지만 가장 왕건의 씨가 짙게 남은
      천추태후를 선위용으로 남겼을 수 있겠네요!

    • @Holycow8638
      @Holycow8638 8 місяців тому

      ㅇㅎ 그렇게 보면 자신이 직접 나서 싸운것이 이성계가 왜구 잡는 장수로써 명성을 쌓은것과 비슷하게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을 구실이 필요한거일 수도 있겠네요

    • @skim5456
      @skim5456 8 місяців тому +7

      그러기엔 거란의 포로로 잡혔을때 회유를 거절한건 어덯게 설명 가능할까요? 일단 살아 있어야 고려의 왕이 되던 뒷일을 도모 할수나 있지 그리고 그러기엔 강조가 바보가 아닌이상 다른 장수들이 가만히 강조에게 황제의 자리가 넘어가게 두진 않을듯

    • @pq6543
      @pq6543 8 місяців тому +12

      @@skim5456 고려를 사랑하는 마음과 본인이 황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양립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이성계가 왕 되기 직전에 명나라 포로로 잡혔으면 덜컥 항복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고려에 진심을 다한 장수인 것도 맞아 보이나 그게 강조 본인이 황제가 되려는 마음이 없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 @user-fw8mn4qo6e
    @user-fw8mn4qo6e 8 місяців тому +21

    그래서 고려 배경의 드라마 만드는 게 작가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너무 나서 그동안 잘 만들지 않았던 걸 일수도 있겠네요

  • @user-vw8ny1jf1b
    @user-vw8ny1jf1b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이런 의문점에 대해서 고려거란전쟁에서 대부분 정황을 잘 살려서 표현한 거 같네요

  • @archangel7882
    @archangel7882 8 місяців тому +171

    강조는 진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으면서 기간이 짧다고 해도 하는 행위나 마지막 최후가 조조나 동탁이랑 다른 것 보면 참 특이한 사람이네요.

    • @user-wj9ei5ss4m
      @user-wj9ei5ss4m 8 місяців тому +3

      😊😊😊😊😊😊😊

    • @llillllii
      @llillllii 8 місяців тому +7

      강조가 궁궐에 들어왔을때 궁인들이 만세 외치니까 강조가 황제께서 아직 안오셨는데 어찌 만세라고 외치는가! 하면서 무릎 꿇었다는거 보면 애가 선은 있는 것 같음

    • @korjojo
      @korjojo 8 місяців тому +44

      강조는 고려에 충신이 맞긴 한거같아요 나라꼴이 엉망이라 일으킨 쿠데타라고 생각합니다

    • @c-tb4fq
      @c-tb4fq 8 місяців тому +15

      저도 이런 생각은해보았습니다. 강조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나간것은 어찌되건 고려가존속되야함.거란군을 막고 고려가존속된다면 강조는 거란군을 막은 영웅이될테고 민심이 강조에게 향할테고 그러면 자연스레 선위받을 명분이 생긴다면 직접 군대를 지휘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 @user-sc3cr5sq6j
      @user-sc3cr5sq6j 8 місяців тому +9

      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뭐가 다르다는건지 모르겠네요

  • @nutts242
    @nutts242 8 місяців тому +26

    강조가 생존했으면 제2의 연개소문이 됐을지 알 수 없죠. 하지만 최후를 보면 고려 왕조는 몰라도 고려라는 국가에 대한 충신은 맞았던 거 같습니다.

    • @user-kt8gw2hq5u
      @user-kt8gw2hq5u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아이러니하게도 이원종배우님은 영화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역을 하셨네요.

  • @user-hx7co5eb5e
    @user-hx7co5eb5e 8 місяців тому +10

    왕, 백성, 돈, 지위 보다는 단순히 고려를 사랑했던 인물 같음 만약 대회전때 거란을 이겼다면 나중에는 오히려 동북면까지 수복하려 전쟁을 일으켰을거 같음

  • @yune5597
    @yune5597 7 місяців тому +5

    강조는 전방을 지키는 장수였으니 나라와 황제에 충심이 강했을거 같습니다. 또 거란과의 전투에서 처음엔 승리할 만큼 기량도 뛰어났구요. 때문에 사리사욕이 아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 정변을 일으킨것 아닌가 해요

  • @user-cx6nu9ju5t
    @user-cx6nu9ju5t 8 місяців тому +110

    강조 나름에 조국에 대의가 있었다고 생각되네요...오로지 권력만을 탐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거란왕에게 잡혔을때 목숨을 구걸했을텐데 그러지 않고 죽음을 택한것을 보면 애국심이 있는 인물이라 평가되네요

    • @skim5456
      @skim5456 8 місяців тому +16

      맞음 영상 제작자는 강조를 권력이나 탐하는 사람으로 몰아 같지만 권력이나 탐하는 사람이
      거란왕의 포로로 잡혔는데 회유를 마다 한다 말이 안되죠

    • @alffksltmxk
      @alffksltmxk 8 місяців тому +22

      고려에 대한 충정+야심 두가지가 다 있는 인물이라 생각됨

    • @user-bs7zy6oq6v
      @user-bs7zy6oq6v 8 місяців тому

      제 생각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전에 왜구를 막아내면서 본인의 입지를 부각시킨거처럼 강조도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본인 입지를 부각시키려 한거같아요

    • @milo-lh5zb
      @milo-lh5zb 7 місяців тому +2

      고구려를 이은 고려란 나라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

  • @user-ut5eb5wj8v
    @user-ut5eb5wj8v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이형 영상 볼떄마다 메이플 하고싶음...........내가 어케끊엇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으..암튼. 형님 오늘도 잘보고 가요 ㅎㅎ

  • @user-hjsoh
    @user-hjsoh 8 місяців тому +29

    합리적인 해석이네요 .. 제 느낌엔 강조가 지략은 별로 없는 인물 같습니다. 계획자체 치밀하지 않죠. 강조가 계략이 뛰어났으면 역사에 의인이건 악인이건 훨씬 더 큰 인물로 기록이 남았겠죠

    • @user-hf1oz4xf5j
      @user-hf1oz4xf5j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는 지략이 뛰어난 전략가 입니다 요황제와 전투에서 강조는 군을 3군으로 나눠 강조는 중앙에서 요나라 대군을 막고 하나는 산에 하나는 성쪽에서 서로 호흥하게해 요나라 황재가 크게 전투에서 패하고 강조의 진을 깰수가 없었는데 요황제 전략을 짜는 책사가 거짓 항복해 강조에게 여러번 요군을 패배하게 거란의 전략을 알려주고 강조를 방심 하게 합니다
      자만에 빠진 강조는 거짓 항복한 요나라 최고 전략가의 계책에 속아 자만하다 나중에 잡히게 되는데 강조와 싸워본 요황제는 강조의 재주가 아까워 강조에게 항복해 자기의 신하가 되기를 설득했으나 강조는 고려의 신하로 죽겠다며 거절하고 죽게 됩니다

  • @user-wu4nd3xd5z
    @user-wu4nd3xd5z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요즘 재미나요

  • @yoon2684
    @yoon2684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이걸보니 드라마에서 각색을 잘 했네요 ㅎㅎ

  • @Exclamationmarkss
    @Exclamationmarkss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유튜버님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진짜 그럴것 같아요

  • @jj9791
    @jj9791 8 місяців тому +6

    단순히 기록만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해석까지 곁들여 주어 정말 깊이가 있네요. 좋은 컨텐츠 정말 감사합니다!

  • @user-ih5ig7xo6t
    @user-ih5ig7xo6t 8 місяців тому +55

    천추태후 같은 경우는 아들 목종을 제거하면 아무런 힘도 없는 인물이라 그냥 살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외에 여러 정황에서 의문점들이 너무 많기는 하죠. 잘 봤습니다^^

    • @user-sp6oq8nw8w
      @user-sp6oq8nw8w 8 місяців тому +10

      5대 경종의 왕비라 그렇습니다 왕비는 죽이지 않아요

    • @user-te7dl7yp9b
      @user-te7dl7yp9b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원래 역적이라도 여자는 안죽입니다

    • @user-yf8rl1dr3w
      @user-yf8rl1dr3w 8 місяців тому

      여자는 보통 종노비로 만들지 죽이진 않음

    • @user-wx2ct5vw3d
      @user-wx2ct5vw3d 7 місяців тому

      ​@@user-te7dl7yp9b역적이라도 여자는 안죽인다? ㅋㅋ 아무말 대잔치 하시네

  • @Mi-vy3rx
    @Mi-vy3rx 8 місяців тому +7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충심은 있었던듯
    항복 안하고 죽음을 택한것도 그렇고

  • @seung_junlee6426
    @seung_junlee6426 8 місяців тому +8

    저도 다른건 몰라도 역사서를 완전히 신뢰할순 없기에 님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단걸 동의합니다 아쉬운건 고려사는 조선에 비해 남아잇는 기록물이 너무 적어서 같은 역사적 사실도 대조해가면서 분석할수 있는 조선사보단 객관적으로 알기가 너무 힘드네요

  • @user-wm4cj9xi4r
    @user-wm4cj9xi4r 8 місяців тому

    작가님도 쓰다가 해석하다가. 어떡게써도 이해시키기,,힘들다는게 눈에보이니 그냥. 그대로쓰자 하고 하고 한듯해요ㅋ내생각 입니다 ㅋ

  • @user-nx4dv1pb2v
    @user-nx4dv1pb2v 8 місяців тому +39

    왕이 코파는거까지 다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새삼 대단한 이유.

    • @user-hx7co5eb5e
      @user-hx7co5eb5e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 이 부분은 기록하지 말거라
      ???: 이 부분은 기록하지 말라 하셨다.
      ???: 기록하지 말라니까
      ???: 기록하지 말라는걸 기록하지 말리 하셨다.

    • @tonyy2977
      @tonyy2977 8 місяців тому

      몇백년후였는데 나름 발전이 아니였을까요? 물론 무관보다는 문관을 중요시한 나라였어서 그랬을수도 있구요..하지만 백성에대한 정치는 후퇴하였지요~

    • @user-td8gc1on5w
      @user-td8gc1on5w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개인적으로 진심으로 나라걱정을 했던 것 같아오

    • @ninjasinparis99
      @ninjasinparis99 8 місяців тому +5

      누가보면 고려는 실록도 없는 줄 알겠네 있었는데 불탄거임

    • @user-nx4dv1pb2v
      @user-nx4dv1pb2v 8 місяців тому +3

      @@ninjasinparis99 그럼 백업의 중요성으로 합시다

  • @cheesycheddar7530
    @cheesycheddar7530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그러네요 드라마 보면서 재미는 있지만 찝찝했는데 바로 이런 의문점 때문이었네요

  • @user-fh3cl1nh1x
    @user-fh3cl1nh1x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강조는 결국 왕이 되기 위한 명분으로 가장큰 모험을 건거 아닐까요 ?? 본인이 직접 나가서 거란의 대군을 막아 냈다면 그만큼 더 높게 평가 할꺼닌깐 본인이 왕이 된다 해도 반발이 덜할꺼 니

  • @user-rw5pu6mx4z
    @user-rw5pu6mx4z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강조의 정신은 걍 군인정신으로 무장된것 같네요😂

  • @dfgytyhju
    @dfgytyhju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강조 본인의 생각이 어찌됐든 국가와 백성들 입장에서는 악의 무리를 싸그리 한큐에 댕강댕강해줬으니 고마운 사람이죠.기득권들 한큐에 소탕하는게 생각처럼 쉬운게 아닙니다

  • @user-bi6ux7kj1c
    @user-bi6ux7kj1c 8 місяців тому +4

    강조가 거란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으면 최소 제2의 연개소문 탄생이죠.
    이거보니 고구려 연개소문도 1차 고당전쟁때 분명 강조마냥 주력군은 본인이 직접 지휘할 가능성이 있음

  • @whitemind111
    @whitemind111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제 강감찬이 나올때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 @bluefighterj
    @bluefighterj 8 місяців тому +6

    강조가 약간 킬방원 포지션이 아니였을까?

  • @Uyrnaes4202
    @Uyrnaes4202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제가 가졌던 의문점들하고 상당히 비슷하네요..

  • @kangchangsung
    @kangchangsung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천추태후 가문이 황보씨라고 했잖아요.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도 대량원군을 보호하러간 장군의 성이 황보씨였습니다. 태후가 황보씨 가문의 큰어른이었고 황보씨 가 군사측에서도 많아서 함부로 거기까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user-tm3ys3vj4b
    @user-tm3ys3vj4b 8 місяців тому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역사 이야기 요즘 재미나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추태후를 살려둔건 천추태후가 어마무시한 미모를 가졌고 둘사이에 과거 썸이 있었다면 살려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듯 ㅎㅎ 제생각입니다

  • @user-WHITE-DOUGH
    @user-WHITE-DOUGH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왕조 중심으로 해석하자면 엄연히 반역자라고 생각합니다
    충심 보단 국가의 옮은 길을 원하였던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

  • @user-ky4ee8zj5h
    @user-ky4ee8zj5h 8 місяців тому +4

    강조가 명분이 없다 하셨는데
    사찰에 있는 대량원군을 손쉽게 강조가 죽였다면 왕씨 손이 없고 나라가 개판이니 목종 죽이고 왕위에 앉는 명분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오^^
    왕권까진 노리진 않은거 같네요

  • @검통_공포채널
    @검통_공포채널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요 성종의 군대는 고려의 흥화진에 가로 막힙니다. - 2차대전 초기 알프스 전선 차용.

  • @user-tz1fu7yg1t
    @user-tz1fu7yg1t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뻐서 ㅋㅋ
    ㅡㅡㅡㅡㅡ
    잘보고 갑니다 😂

  • @Sabjeal
    @Sabjeal 8 місяців тому +1

    5천이면 충분한 숫자일듯해요. 경대승이나 최충헌이나 도방병력이 3천정도였으니까요.
    이성계의 가별초도 2천에서 5천사이니까요

  • @kingshark77
    @kingshark77 8 місяців тому +2

    강조는 언럭키 이성계였네

  • @user-jb7wm5xr3t
    @user-jb7wm5xr3t 7 місяців тому +1

    고려거란 전쟁보면 쿠테타를 했던 강조를 정의의 화신처럼보이게 설정함.

  • @fffoooxxxx7063
    @fffoooxxxx7063 8 місяців тому

    혹시 고려병사와 거란병사의 규모가 뻥튀기 되었다던가
    고려의 경우는 농업국가의 특성상 원정군은 많이 모으지 못하지만 지킬때는 대군을 모으는게 가능하다 치더라도
    거란이든 한나라든 간에
    중국역사 특유의 숫자 부풀리기를
    어떤식으로든 풀어주기면
    재미 있을것 같아요
    병사 개개인의 역량도 거란군이 두당 고려군 3명은 상대 가능했을것 같은데

  • @ChoiBaiDalZ3373
    @ChoiBaiDalZ3373 8 місяців тому +6

    이성계처럼 정도전같은 확실한 플랜을 짜주는 사람이 없으면 강조

  • @user-pv9db9lw2x
    @user-pv9db9lw2x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천추태후 아들이 죽었으니 이미 허수아비고 현종이 그렇게 똑똑하고 영리할 줄 몰랐을듯요 ㅎ

  • @Luminary03
    @Luminary03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요즘 같은 시대에도 같은 사건을 정 반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라면 뭐 쓰는 사람 맘이죠. 더군다나 다음 왕조의 기록이니 반만 믿어줘도 많이 믿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 정치인에 대한 폄훼는 동양사 고유의 패시브 같은 거니까 더 조심해야죠.

  • @user-zd2pm5zj9o
    @user-zd2pm5zj9o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목종의 마지막 부탁이 아니였을까?!
    마지막으로 목종의 명을 따른거 아닐런지...

  • @fam7112
    @fam7112 8 місяців тому +4

    목종이 아주 지극한 효자 라는 설도 있지요

    • @user-kt5io6cy1d
      @user-kt5io6cy1d 8 місяців тому

      진정한 효자였다면 태후 목을 쳤어야지 ㅠㅠ

  • @jongwookchoi7582
    @jongwookchoi7582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역사란 승자가 쓴 기록이다 보니, 원래 있던 자초지종에서 최대한 승자입장에서 유리하게, 나쁜놈으로 안보이도록 편잡각색하다 보니, 개연성이 안드로메다로 갔고...후세들은 그걸로 역사공부를 하니 앞뒤가 안맞고 이해가 안갈 수 밖에.

  • @HN_Jo
    @HN_Jo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강조가 거란과 싸우러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충신이라고 말할 수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요.

  • @user-kh3zy8tq8r
    @user-kh3zy8tq8r 8 місяців тому

    좋은분석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천추태후가 후대에 악녀로 평가받았는데 물론 기록상으로도 문제는있었지만 생각보다 그정도는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후에 강조가 쿠데타 이기고나서 역사를 더유리하게 현종에게 기술되는건 당연하기에 더욱 악녀로 묘사되었지만 목종이 계속 효도했다는거보면 그렇게 나쁜사람은 아니고 어느정도 정치력은 있었지만 리스크도 있었다고 보는게 맞을듯

  • @kysm4893
    @kysm4893 6 місяців тому +1

    누구였으면 내가 고려의 왕을 죽이고 왕이되서 조공을 보내겠소!! 거란의 충신이 되겠소!! 했겠지...... 최악의 상황에서 그사람은 본질을 볼 수 있지

  • @user-uy8rx1cb3i
    @user-uy8rx1cb3i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강조가 거란전에서 이겼다면 권력을 더더욱 공고히 한후 역사적으로 반란후 했던 반역자들같이 훗날 황위를 선양받지않았을까요?

  • @YJKim-lx6zu
    @YJKim-lx6zu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작가님 최대의문 강감찬은 이때 문하시중였는디 머하고 있었나요

  • @Uyrnaes4202
    @Uyrnaes4202 7 місяців тому +1

    남편 죽고 아들 둘 죽고 애인 죽은 나이든 여자는 전혀 위협이 안 되는 데 죽이면 마이너스죠. 잔인한 놈 되는 거지.

  • @stelive_fans
    @stelive_fans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천추태후살린건 그당시 남자와 여자에대한 인식차이아닐까요 남자면 반란의씨앗이될수있는데 여자 그것도 황실의어른을 죽이면 오히려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플러스는 아닐거같아요 그래서 직접적인원인임에도불구하고 살려둔거죠 어차피 혼자살아남아서 반란일으킬수도없고 주변사람들 다죽은데다가 나이도많아서 곧죽을수있으니

  • @user-ks8nd7im9m
    @user-ks8nd7im9m 8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태후는 왕실에 남아 있는 가장 어른으로 자기가 왕이 되고자 한다면 허락을 받아서 선양의 명분을 얻어야 하니 살려둔 것이겠죠. 그게 아니라면 형식적으로 천추태후와 결혼을 해서 명분을 얻으려고 했을 수도 있구요.

    • @TheThirdEYE637Shinhan
      @TheThirdEYE637Shinhan 8 місяців тому

      허락은 천추태후 죽이고 다른 왕가 어른을 위협하여 허락받아도 됨..
      왕실의 허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려는
      왕씨가 아닌 타 성씨가 왕이 되는 걸 용인해 줄 수 없는 구조.. 지방호족들 입장에서는 왕씨가 아닌 타 성씨의 왕을 절대 용인하지 않음.
      왜냐 왕건이 지방 대호족과 결혼 관계를 맺으므로 지방호족은 왕씨의 외척... 그렇기에 강씨가 왕이되려한다??? 바로 지방에서 반란 일어남 ㅋ

  • @Kasll1470
    @Kasll1470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장군님은 정의를 실현한 상나자다

  • @user-fy2dp1cr3d
    @user-fy2dp1cr3d 8 місяців тому +1

    ??? : ... 이렇게 된 이상, 만월대로 간다.

  • @hursuh
    @hursuh 8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는 마지막에 망설인 것 같아요.
    김치양이 도모하려고 진행하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천추가 말렸거나 혹은 천추가 목종에게 말했거나.
    그게 강조를 부르는 상황에서 꼬였던가
    그러다가 강조는 분명 야심이 있었던 것 같고.
    이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ㅋㅋ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ㅋ

  • @user-sp6oq8nw8w
    @user-sp6oq8nw8w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천추태후는 역적이긴 하지만 태조 왕건의 피가 가장 진하게 흐르고 무엇보다 5대 경종의 왕비임 목종은 위험이 되고 나이가 너무 젊음

  • @H8RM8S
    @H8RM8S 8 місяців тому +2

    강조는 고려에 대한 애국심은 분명히 강했던 사람이고 또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누구보다 큰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변방에서 거란족을 막는 수비군 총지휘관으로 근무했던 것이고 또한 마지막까지 비겁한 항복을 하지 않고 무인다운 죽음을 선택하면서 그 마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강조가 고려와 국가 그리고 한번도를 사랑했을 지라도 당시의 임금과 권세가들 그리고 왕씨 왕조에 충성을 다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탄스러운 조정의 상황을 바라보며 역성 혁명에 대한 의지가 있었고 이성계와 같은 논리였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성계는 명에게 사대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였고 강조는 가란에 사대하지는 않았고 맞서싸우다가 사로잡히고 거란의 회유를 거절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치밀하고 영리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완벽하진 않으나..
    고려를 사랑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한 장군 = O
    무능한 임금과 간신배 무리들 그리고 왕씨 조정에 맹목적 충성을 한 인물 = X
    고로 유교적 기준으로 보면 역적인 맞으나 오히려 대통령도 일 못하면 탄핵하는 요즘 시대의 관점에서는 이해되는 면이 많습니다.
    다만 정권을 잡은 뒤에 어떤 정치를 행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무신정권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충헌처럼 무인 출신으로서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세습하되 왕을 노리지는 않았을 수도 있죠.

  • @user-ub1ju4rn4n
    @user-ub1ju4rn4n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 @messipark
    @messipark 8 місяців тому +3

    2차전쟁 대회전에서 충분히 이기고 있는데 판단미스로 진것 자체가 이해가 안됬는데 이 영상을 보니 일부러 진거라고 판단되기도 합니다. 강조는 충신 맞습니다.

  • @mintizend
    @mintizend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의 쿠데타는 의문점이 참 많네요...

  • @fury-of-pluto
    @fury-of-pluto 8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태후는 남의 말에 잘 휘둘리는 사랑꾼이지 않았을까

  • @user-je3fb9br3x
    @user-je3fb9br3x 8 місяців тому

    ❤😅

  • @user-bh2ct5ug9x
    @user-bh2ct5ug9x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당시 신라의 근친혼 풍습은 왕족들 사이에 전혀 문제 될것이 없었죠 김치양의 아들이 왕위에 올르는것도 신라의 풍습상으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신라는 외척이 왕이되도 이상할께 없었고 여왕도 존재 했으니까요 고려가 신라의 강역을 그대로 물려 받은것도 그렇고 왕건 조상중에 신라의 성골의 피을 이었다고 했기에 신라을 계승할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당시 모든 행동들을 이해할수 있는겁니다 그러니 왕권이 약해지고 세력이 강해진 호족이 역성으로 왕권을 장악하는건 전혀 이상할게 없는 일이 었지 조선시대의 남녀차별과 외척억제 역성혁명을 매우 나쁜것으로 우리가 알게된건 조선시대에 정권유지 차원에서 성리학을 기반으로 모든걸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 @user-rl5uk1ug5e
    @user-rl5uk1ug5e 8 місяців тому +4

    빌미를 제공한건 목종과 천추태후죠! 예초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강조정변 명분은 없었을겁니다

  • @fuckingchina44
    @fuckingchina44 8 місяців тому +8

    강조는 목종에게는 반역자였지만, 고려에는 충신이었지

  • @user-lm3ti9ih3b
    @user-lm3ti9ih3b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하고천추태후하고 쫌 썸씽이있었지요.....정땜에

  • @skim5456
    @skim5456 8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태후 살려둔건 그래도 왕씨의 혈족을 남겨둔게 아닐까요?
    거란이 고려를 무너 뜨리면 100%왕씨왕족3명 다죽을수도 있으니까
    후대를 위해서도 천추태후는 살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LevisKIM
    @LevisKIM 8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태후를 살려둔것이, 강조가 왕위까지 염두해둔 포석으로 보이네요.
    현종도 천추태후가 미쳐날뛰어서 왕위가 어쩌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라, 옛일 생각하면 열받지만 그냥 냅둔거 아닐까요?
    그리고 목종도 폐위된 후 천추태후에게 효도 한 것도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이였기 때문이였을지도..

  • @user-kn9zd5bi6t
    @user-kn9zd5bi6t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강조의 정변.
    흐름이 납득이 안 갔었는데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천추태후는 왜 안죽었냐구요?
    (강조가 천추태후를 사랑해서요
    ㅋㅋ ㅡ 드라마 천추태후 피셜)

  • @yn5443
    @yn5443 Місяць тому

    안녕하세요 드라마 천추태후 충신 강조 랑 다른인물 인가요?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8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태후를 절에 가두었다면
    치욕적이게도 비구니로 살게했을것이고
    비구니는 뭘 할수 있는게 없었죠.
    살아서 아무짓도 하지못하게 만들었다면 이야기가 성립이 된다고 봅니다.
    물론 선위의 명분도 주어질것이긴합니다만 케이스가 너무 다른 상황이지요.

  • @user-ot3xf5hq8f
    @user-ot3xf5hq8f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솔직히 천추태후만큼 왕씨 피가 짙은 사람도 없음...... 성이 말만 황보씨지 그냥 왕씨임 그당시 왕족 여성들은 모계족 성씨를 많이 썼으니까

  • @user-oz3nt2xf5d
    @user-oz3nt2xf5d 8 місяців тому

    메이플 브금 반갑네

  • @nsequation1206
    @nsequation1206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천추태후 살려준거 뻔한거 아닌가요? 공민왕때 생각해보면 됩니다. 강조가 왕위 선양 받을려면 누가 필요하죠? 고려왕실의 큰어른이 필요합니다. 천추태후는 아무리 악행이 있었어도 왕실 큰어른임. 누군가는 "현종이 덕이 없어 강조에게 선위한다"라고 도장 쾅 찍어줄 왕실사람이 필요합니다. 필요해서 살려둔거임 걍 이성계도 공민왕때 왕비였던 안씨의 교서를 받고 조선개국함

    • @user-sp6oq8nw8w
      @user-sp6oq8nw8w 8 місяців тому

      그건 너무 나간거 ㅋㅋㅋ왕이 되는게 쉬운게 아니에요

    • @nsequation1206
      @nsequation1206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sp6oq8nw8w 쉬운게 아니니까 저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거죠. 조조도 사마의도 권력얻자마자 찬탈하지 않았습니다. 과정이 필요한거

  • @user-rc6pk2kb5d
    @user-rc6pk2kb5d 8 місяців тому

    음 저도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강조가 천추태후한테 반했던거 아닐가 싶습니다 😊 그 외엔 어떤 이유도 설명할수 없을듯요.

  • @Saxophone_EWI
    @Saxophone_EWI 8 місяців тому

    탁견이십니다!

  • @NightN6
    @NightN6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강조가 천추태후를 안죽인 이유는 대량원군을 황위에 올리는데 좋든 싫은 대량원군의 직접적인 엄마는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어머니 인지라 대비를 함부로 죽일 수 없었던거 같습니다.
    여럼으로 운이 ㅈㄹ게 좋은 천추태후 ㅋㅋㅋ 김씨랑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시점부터 황족에서 퇴출 되어야 마땅한데 ㅋㅋ 목종의 어머니라 살아남고 그렇게 대량원군 개갈궛으면서 대량원군 덕에 살아버린 LUCK MAX 찍은 존재...

  • @TheThirdEYE637Shinhan
    @TheThirdEYE637Shinhan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사실 거란과의 전쟁에서 강조는 동탁이 햇던 것 처럼 해도 되었음.
    현종을 끼고 자신의 친위대랑 함께 옹진... 그런데 그러지 않았음.
    강조가 동탁같은 소인배였으면 반란에 참여한 부하를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해 전방에 나가 싸우게 하고 (여포,화웅)
    자신은 현종을 끼고 친위대랑 옹진하면 그만 (헌제끼고 장안으로 도주) ...근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

    • @user-ps1cp1fe9x
      @user-ps1cp1fe9x 6 місяців тому

      살신성인해서 거란군을 맞아냈죠.. 고려를 정말 사랑했던것같아요

  • @user-xc2cg6ep7d
    @user-xc2cg6ep7d 8 місяців тому

    ㅎㅎ

  • @user-hf1oz4xf5j
    @user-hf1oz4xf5j 8 місяців тому +6

    강조의 난은 모르겠고 나중에 거란황제에 사로잡힌 강조는 거란황재가 투항할것을 권하자 단칼에 거절하고 난 고려의 신하로 죽겠다고 말해서 거란황제가 강조를 죽이게 됩니다 이건 역사적 사실이고 이 하나로 강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드라마를 봤다면 무조건 비판만 못할겁니다

  • @user-kt5io6cy1d
    @user-kt5io6cy1d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가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서 그렇지 아주 나쁜놈은 아닌거같음.
    나였다면 연개소문처럼 모조리 죽이고 황제자리에 올랐을것 같아요 ㅋㅋㅋㅋ
    군부는 내 손안에있으니 말이죵 ㅎ

    • @user-ib9hs2sh2v
      @user-ib9hs2sh2v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연개소문이 언제 황제 자리에 올랐다니 무슨 소리 강조처럼 왕 죽이고 대막리지 자리에 올라서 허수아비 왕 세우고 지멋대로 했지

  • @batuu2601
    @batuu2601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가 동탁과 같군여
    변방의 시골 장수를 불러들여
    수도를 장악해서 고려가 망할뻔했으나
    거란 성종이 강조를 잡아죽여서
    쉽게 해결 됨

  • @TheThirdEYE637Shinhan
    @TheThirdEYE637Shinhan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강조에 대해서 더 명확한 분석을 하려면 그의 최후를 봐야함
    통주 전투 패배로 포로가 된 강조를 거란 성종이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할 정도로 분명 인물은 인물이였다는 점이 있을 것이고. (아무에게나 항복하라고 할 레벨은 아니기에..)
    이미 패했지만 요왕의 항복권고를 무시하며 거란을 낮추어 부르며 고려인이란 자부심을 끝까지 유지한 사람이라는거..
    고려는 여전히 지방 호족의 강력함이 있기에 왕씨가 아닌 다른 성씨는 왕은 될 수 없는 구조.
    그랬기에 100여년의 무인정권이 있었음에도 왕성은 바꾸지 못하고 왕씨로 계속 내려온 특성이 있는..
    강조가 자의던 타의던 변란을 이르켰지만 강조는 절대 왕이 될 수 없는.. 사회적 환경.. 그리고 강조 자체가 고려인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라는 점..
    그의 죽임과정이 이런 부분을 증명함.

    • @user-ld9yj2tr9z
      @user-ld9yj2tr9z 8 місяців тому

      신하 권유는 강조가 뛰어나서 그런게 아니고 강조가 갖고 있는 지위 때문에 권유한거죠

    • @TheThirdEYE637Shinhan
      @TheThirdEYE637Shinhan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ld9yj2tr9z / 왕도 아닌데 그 지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지 겨우 1년정도라 권력층이 탄탄한 것도 아님.

  • @kimyongsung79
    @kimyongsung79 8 місяців тому +2

    강조는 알까기하다 전쟁진게 최대 미스테리..

    • @user-ps1cp1fe9x
      @user-ps1cp1fe9x 6 місяців тому

      바둑이야 ㅋ

    • @kimyongsung79
      @kimyongsung79 6 місяців тому

      @@user-ps1cp1fe9x 그래요? 탄기를 알까기라고 번연했던데.. 역시 위키피디아가 틀린거였군요~! 감사합니다. 논문이나 뭐 그런거 출처좀 알려주시면... 정말감사하겠습니다~

    • @user-ps1cp1fe9x
      @user-ps1cp1fe9x 6 місяців тому +1

      @@kimyongsung79 출처는사실 kbs대하드라마고려거란전쟁입니다만..

    • @kimyongsung79
      @kimyongsung79 6 місяців тому

      @@user-ps1cp1fe9x 앗 ㅋㅋㅋㅋ 네 감사합니다

  • @user-lw1xh4gp7z
    @user-lw1xh4gp7z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강조는 분명 잘못한 것은 쿠데타 를 일어킨 것이고 잘한것은 자기가 왕을 안하고 대량원군 현종을 왕으로 추대하고 옹립한거 왕을 죽인건 역적이 분명한데 그래도 나는 강조를 비난을 할수가 없네요

  • @marklee9785
    @marklee9785 8 місяців тому

    아들 다 죽은 천추태후는 산송장이니까, 살아 있는 것이 더 괴로우니까 살려준거다.

  • @user-cis-ab
    @user-cis-ab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뻐서

  • @goldnusu
    @goldnusu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조가 천추태후를 아내로 맞이하는 계획으로 살려둔거 아닐까요 천추태후를 아내로 맞면 역성혁명에 명분이 확실해지니 살려준거 아닐가요 (아님 사마의 고평릉변 과 같이 선양할때 태후의 명이라는 것으로 하려고 하던가) 이상 왈왈소리였습니다 ㅋ

  • @rockstarpangmu
    @rockstarpangmu 8 місяців тому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인게
    천추태후가 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절세미녀인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현종도 천추태후를 그냥 둔 이유는 그래도 선왕이었고 본인을 생각해줬던 형의 어머니이니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생각으로 효심에 그냥 둔게 아닐낀 생각해봅니다ㅎㅎ

  • @highquality2110
    @highquality2110 6 місяців тому

    이원종배우 거란역할도 어울린듯

  • @user-ld9yj2tr9z
    @user-ld9yj2tr9z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만약에 강조가 30만 대군으로 거란을 막아냈으면 현종이 강조를 끌어내릴 수 있었겠습니까? 빼박 삼국지 헌제꼴 나죠

  • @user-cx3yl4mq2j
    @user-cx3yl4mq2j 8 місяців тому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 합리화 하려고하니 이상해지는 것임

  • @user-ss6ki4kw1p
    @user-ss6ki4kw1p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정말 어쩌다보니 상황이 흘러가다보니 선택도 일괄성 없이 오락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