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이 기록은 패전해서 오히려 사실을 축소했을법한,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자료이다 고구려 침공한 병력은 113만 3800명 으로 기록되어 있고 워낙 대규모라 출발만 40일 걸렸다고 한다 고구려군들과의 지방 여러성들에서 승산이 없이 전쟁이 장기화되자, 113만 중에 정예병력 35만을 뽑아 수나라 우중문 장군이 별동대를 조직, 고구려 수도 평양으로 바로 돌격하다가 을지문덕에게 전멸했다!! 참고로 1차 세계대전때까지 인류 역사에서 깨지지 않는 기록이 이 전쟁이다 알렉산더도, 나폴레옹도 아니고 고구려가 113만 수나라 군대와 싸워 이긴 ,이 전쟁이다 1차 대전 이전의 세계사에서 최대 병력 동원 전쟁!!!!
@@수분-g3g 역추적해서 113만이 아니고요. 기록에 1차 원정 군인이 113만이라고 적혀있는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따르면 보조병력까지 300만이 넘어요. 거기에 이걸 4차까지 하고 4차에 이르러서는 주전력이 30만이였는데. 이게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전력을 뽑아낸다고 칩시다. 농사짓던 농민들이랑 상인들 싸그리 데려다가 뽑아놔요. 그럼 지휘는 어떻게 할겁니까. 기원후 500년대에서 600년대 사이 시기인데 통제는 어떻게 하고 지휘는 어떻게 내릴거에요. 생각은 좀 가세요? 전쟁이 보내기만하면 되요? 말 전할수만 있으면 되요? 밥은 어떻게하고 잠은 또 어디서 재울건데요. 뭐 바닥에서 잔다고 합시다. 근데 그인원이면 전부 아사하겠네요? 애초에 아시아에서는 일부로 부풀리는 것들이 많아서 진짜 완전히 믿으면안됩니다. 우린 이만큼이나하고 강력했는데 상대가 진짜 하늘에 몇없는 영웅이 있어서 너무 정예병력이라서 어쩔수 없이 졌다는 식으로 기록해요. 체면이 있잖아요. 다 아사했어요라고 기록할까요?
@@Contentio_ 역추적 개념은 ㅋㅋㅋ 편제 그 당시 편제 단위가 있겠죠? 정 의심스러우면 그 편제를 계산하면 113만 3800명 나오니 숫자가 크다고 뻥튀기인 거 아니냐 의심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거 별 것도 아닌 일에 장문 투척하는 건 좀 하지 마세요; 읽기도 귀찮음 수서 기록에 나와 있는 거 알만한 사람 다 아는데 왤케 오바세요 정 못 믿겠으면 그 잘난 머리로 이 기록 부정할 만한 근거 본인이 내놓던가 어디에 씨알도 안 먹힐 어설픈 장문 설파글 쓸 시간에 ㅡㅡ 솔까 글만 길죽길죽하게 쓰는 님 같는 부류가 제일 허접스러움 ㅋㅋㅋㅋㅋ
호위병 몇명만 데리고 협상하러 적 진지로 갈 만큼 대담했고 또 수나라 군대의 허점을 잘 파악해서 협상으로 시간을 끌어들여 파발로 북경에 있는 황제한테 서신을 전달하려면 적어도 3~4일 왕복 6~8일 정도 걸리는 것을 이용해서 적의 군량을 소비(100만명이 하루에 소비하는 식량만 해도 엄청난 타격)시켜서 지치게 만든게 진짜 똑똑하셨죠 사실상 식량도 없고 증원군인 수군도 비사성에서 막혀 자국으로 도망가버리고 보급로도 게릴라전으로 인해 차단당해버려 사실상 수나라 30만명은 평양성에서 고립되버린 상태였죠 더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어 철수하던 찰나에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기병으로 뒤를 쳐버리고 사기와 의지가 꺾인 수나라 군대는 그대로 강을 뛰어가며 도망가려했지만 몇명이 넘어지자 물귀신 마냥 다른 병사 발을 붙잡고 줄줄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건너지 않은 병사는 고구려 기병에 쓸려갔고 간신히 2700명만 살아남아 중국으로 돌아가려했지만 가는 도중에도 고구려 기병이 끈질기게 쫓아와서 괴롭혔죠 그래서 그 당시에 수나라에서는 고구려 정벌을 위해 군사를 모집하면 백성들이 두려워서 숨어버렸고 군사를 일으키기가 어려웠다죠 진짜 을지문덕 장군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십니다.
북한 꺼낼게 뭐니. 우리가 북쪽을 점령하고 있어도 마찬가지. 워낙 고대사인데다가 고구려 백제가 신라 당 연합군에 망했으니 뭔들 하나 제대로 남겼을까. 발해도 마찬가지고..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거고 수 당에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기지 않으려 했을테니 어쩔 수 없지 뭐
TMI:고대전쟁에서 100만명 이상의 대군을 모은건 수나라가 최초이고 100만명 이상의 대군을 이긴것도 고구려가 최초이고 100만명 이상의 대군으로 패배한것도 수나라가 최초이다 고대전쟁에서 100만명 이상의 군대를 모았다는건 수나라가 당시 얼마나 잘 살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MalangMolang 동양사에서 북방민족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한국은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죠 그저 오랑캐로 멸시할 뿐 신라의 입장에서 주적 고구려 또한 북방과 마찬가지인 존재였기 때문에, 신라대로부터 쭉 내려온 반북방 감정에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중화가 아닌 북방과 늘 국경을 맞대왔죠 때문에 천년의 적 중국이라는 말은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천년 원수는 북방이었죠 결국 중국 및 한국과는 달리 북방과 척질 일이 없었던 일본이 동북방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앞서있습니다 어느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 역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섬나라인 일본이 아무리 파고들어봤자 직접 국경을 맞댔던 중국과 한국이 제대로 연구하는 것보다 나을 리가 있나요. 고고학적 한계가 크니까요 결국 이렇게 교과서로만 배우면 잘못된 역사를 익히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죠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ㅂ
현대 우리가 쓰는 성씨개념은 고려말에 정립된 것이라 삼국시대엔 지금 같은 개념의 성씨를 쓰지도 않았고 성을 바꾸는 일도 많았음. 강력한 왕권알 자랑하던 영양왕 때 군통수권자였으니 당연히 친왕파 귀족가문이였을 거고 연개소문이 영류왕 찢어죽일 때 을지문덕 가문도 같이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높음. 본인도 살아있었다면 그 때 죽었을거고 가문도 그 때 멸문했을 것
장수왕 이후 고구려 후기에 졸본고씨 왕권 세력 VS 국내성 귀족 세력 VS 신 평양 귀족 세력 이렇게 3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는데 제 모자란 예상으로는 을지문덕 장군도 저 파벌싸움에 말려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훗날 저 왕권 싸움은 왕이 연개소문 암살을 시도하고 역으로 연개소문이 왕을 죽인 다음 보장왕을 세울 정도로 심각해졌습니다.
@@intb653 고구려 사에 있어서 고-수 전쟁사에서 영양왕-을지문덕 장군이지만 다음 27대 왕인 영류왕일때는 을지문덕의 기록이 없습니다. 또 추가로 영류왕은 연개소문에게 시해당하구요. 여기서 영류왕은 영양왕의 이복동생이자 수나라와의 전쟁에 있어서 큰 공신을 세운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추측인 시기상으로 같은 수나라 전쟁 공신파인 영류왕편을 을지문덕 장군이 함께 편들다가 훗날 막리지와 대막리지 세력인 연씨가문 + 귀족연합에 의해 축출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별로 신빙성없음 을지문덕처럼 큰공을 세운 사람을 그냥 쳐내버리면 그 누가 왕한테 충성하려고 하겠음 저렇게 큰공을 세운 사람마저 쳐냈는데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공포 분위기가 조성될텐데 이러면 무조건 쿠데타 시작임 즉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무식한게 아니면 그럴일 없다는 뜻 개인적인 생각으론 봉군줘서 은퇴시키고 잘먹고 잘살게 해줬을꺼라고 봄 이러면 실권에서 배제되다보니 사료에도 안나오는게 당연하고
@ㅎㅎ 허허 이사람 뭘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ㅋㅋ 진지충? 우리가 100%믿는 과학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반전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법인데 특히 역사는 승자에 의해 지워지기도 왜곡되기도 하는 법이거늘 가능성의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생각해 보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고 있네 ㅋㅋㅋ 당신이야 말로 중국뽕 아니오? 명, 청 시대에나 그나마 몇백년 국가를 유지하면 나라를 발전시킬수 있었지 중세시대 이전에는 끊임없이 전쟁만 치르고 십여년 마다 주인이 바뀔 정도로 문화를 발전 시킬 여유가 없을 정도인데 ㅋㅋㅋ 반면 한반도는 고조선부터 부여 삼한 삼국시대 까지 몇백년씩 국가의 틀을 가지고 있었으니 단순 비교해도 몇백년씩 국가가 유지된 나라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몇년 유지도 못하고 주인이 계속 바뀌고 아수라장인 나라들과 어느쪽이 문화가 발전 하겠소?
@ㅎㅎ 당신이 말하는 중국은 중세시대 뿐이지 내가 말하는 것은 중세 이전의 고대사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조선이 유교를 받아들여서 중국을 섬기고 과학과 상업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오로지 사상에만 매진 하였으니 발전이 없었습니다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에 사대하기 시작한 것이지 그 전에는 오랑캐라 부를 정도로 문화가 미비하고 전쟁 기술만 발전한 그런 집단으로 묘사한 것 입니다
ㄹㅇ 한국 고대사가 꿀잼인데 조선시대 좀 그만보고 싶다... 역사 기반으로 한 픽션드라마보면 맨날 조선시대 붕당정치, 왕과의 러브스토리 반복.. 물론 이 클리셰를 가지고 있음에도 뛰어난 작품들도 많고 남아있는 기록도 조선에 대한 게 젤 많아서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지겹기도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ㅂㅂㅈ
그냥 전쟁이 장난같아 보이지만 을지문덕만 하더라도 강이식 장군의 임유관 대첩이후 살수 대첩이후에도 수양제의 연속된재침을 막아낸 불세출의 영웅 병법의 귀신이라고 하는데 그뒤를 이은 연개소문은 피폐한 가운데서도 돌궐과의 외교 신라 백제와의 동맹추진 물론 김춘추는 당을 선택하지만 친당세력의 견제와 직접 전투 지휘 더구나 상대는 중화 사상 최고의 영웅이라는 이세민 물론 이세민도 돌권을 먼제 제압 연개소문의 외교를 무력화 한후에 모든 준비를 마친후에 고구려에 쳐들어옴 생각해봐라 우중문 우중술 같은 범장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과 비빌만한 천재가 적이 되어 긴시간의 치밀한 준비끝에 엄청난 병력과 인력을 총결집해서 쳐들오는걸 깨부슨게 연개소문이다 당나라 최고의 기재인 위징이 이세민엔게 황제께선 연개소문의 상대가 안되니 고구려에 가면 안된다고그토록 말렸건만 결국 그의 사후 이세민은 처절한 패배를 당하니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피토하며 후회하는세 삼국지에 제갈량의 말을 안듣고 망한 유비짝임
고구려가 한반도 만주 언저리에만 있던 민족국가였다는 편견부터 깨면 많은게 보여요. 거란 말갈등 주변민족들까지 복속했던 연합국규모였는데 "올지"라는 성은 지금도 몽골에 있는 성입니다.. 책보고 유튭 ㄱ ㄱ ㄱ 그리고 청천강이 살수라는 주장은 지금 현재 청천강을 끼고 있는 북한조차도 하지 않는 주장이에요
단일민족은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타민족과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요...물론 지금과 같은 국가 개념이 없던 고대에는 여러 부족들이 있었겠지만 그게 유전적 차이가 있는 타인종?인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한국인들 유전자 차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 작은 편이라네요. 동북지방, 시베리아 지방, 한반도, 일본 서쪽 지역까지 유전자가 비슷하더라구요. 중국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유전적 차이가 있고요. 그 말은 만주, 시베리아에서 고립된채로 진화한 특정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태라고 할 수도... 시베리아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유전자를 검사했는데 한국인과 가장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 고대 인류를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고, 겨드랑이 냄새가 안나는 유전적 특이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인들과 비슷하죠.
온달 장군은 부리야트(부여) 사람입니다. 몽골이란 국호도 테무진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이름이고 범어잡명에 고구려는 모쿠리 모지리라 불렸습니다. 바이칼호수 남쪽 접경에 울란우대란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고구려의 일식기록이 기록됩니다. 천문기록은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만 합니다.🎉 놀랍죠😊 12한국은 서로 나뉘어서 세계로 흩어져서 일가를 이루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말속에 입맛등을 가지고 베링해를 넘어 신대륙으로 넘어갔다. 난 우연히도 프랑스 국경도시 포르토보에서 내가 어릴때 놀던 놀이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있다. 멕시코 원주민 아이들이 우리가 예전에 놀던 구슬치기를 하더라.
양만춘은 안시성주 실제 본명이 아니라 소설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그중 한가지 설을 소개하자면 정황상 안시성 전투를 실제 승리로 이끈 인물의 이름은 고정희라는 설이 있습니다. 청화수라고 다양한 설들을 소개하고 다각도에서 역사를 보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가 계신데 시간 되시면 그 분이 소개하는 안시성주 영상 한번 찾아보십시오
@@corea. 을지라는 성씨는 기록이 없다시피한데 을씨는 고구려 초기 유리왕 때 을소, 고국천왕이었나 당시에 대대로로 명칭 바뀌기전 최고 관직이었던 을파소 등 을씨 성은 상당히 유력세가였을 겁니다. 그래서 을지의 지 자가 경의의 표현을 담은 sir 와 같은 의미로 쓰인게 아닌가 하는 거죠. 수서에 묘사 된 을지문덕은 당대 포지션 자체가 영양왕과 동급이라는 점에서 결코 듣보잡 출신에 별볼일 없는 관직은 아니라는 관점이 크고요.
을지문덕이 약간 도깨비랑 비슷할수도 있는게 왕한테 토사구팽당한 것 같습니다. 그정도의 일을 해냈으니 명망이 왕보다 높아졌을테죠. 게다가 고구려의 왕은 친수, 친당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다 연개소문한테 처참히 죽었죠. 을지문덕을 토사구팽하고 당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왕을 연개소문이 그렇게 한 것일수도...
어우... 고구려란 나라는 그런 국가가 아니었음 역사 정황상 을지문덕은 대대로 위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대대로는 왕도 눈치봐야하는 최고 직위임 대대로라는 직위가 명문 세력가들 간에 합의를 통해 선출 되는 최고 직위인데 문제는 이 합의에는 캐삭빵도 허용이 됐고 왕이 간섭했다간 오히려 왕이 삭제 될 그런 직위임. 게다가 을지 씨 가문이 아닌 을 씨 가문이라면 친왕파 세력이라 후에 연개소문의 정변에 의해 가장 크게 숙청당했지 싶음.
@@hikerfrantz5829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세계역사적으로 그러한 케이스가 비일비재한 건 맞지만 당대 영양왕 시대 상을 본다면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하죠. 우선 영양왕 자체가 기록 상 상당한 성군으로 묘사됩니다. 게다가 온건파의 주축이었지만 결코 유약한 인물도 아니었구요. 그도 그럴 것이 네 번 씩이나 되는 수나라의 침공을 겪고도 별 탈 없이 조용히 국가가 돌아간걸 보면 반란 같은 큰 트러블 없이 국정을 잘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헌데, 아무리 왕이라도 당대 대대로 그것도 국가적 영웅을 선빵친다? 명분도 없고 대대로 씩이나 되려면 당대 세력가들의 과반수의 지지를 힘에 업은 인물일텐데 조용히 암살만으로 끝날 일이 아닌 내전이 발생하고 당시 전쟁 직후 고구려는 그대로 자멸했을 것이 다분하죠. 그 정도 규모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중국이나 일본 사서에 기록 될 수 밖에 없구요. 무엇보다 을지문덕은 누구보다 왕당파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고요. 그 시절 대대로면 왕명도 ㅈ까세요 하며 디나이 놓을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적진에 한복판에 비무장으로 들어가라는 미친 명령을 그냥 승낙 한 것만 봐도 왕과 대대로 사이에는 깊은 유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구요. 상식적으로 척지는 사이였다면 서로 뭘 믿고 명령을 하고 뭘 믿고 승낙했을까요. 영양왕 입장에서는 유대를 더 깊게하면 했지 을지문덕이 뇌절해서 모반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결코 숙청할 명분도 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선대 평강왕, 매제 온달, 연씨 가문, 동부 고씨 가문 등 연관되고 유추할 수 있는 요소가 더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네요.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ㅅㅅㄱ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ㅛㅛ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ㄹㄹ
@@포메-f6o 고구려가 고조선의 적통 실위도 고조선 일원이였는데 방계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군최고 통수권자 왕이 아니라 대대로 에게 통수권이 있었슴 을지문덕이 바로 대대로 대한민국 군최고 통수권자를 외국인 시킬수 있슴?ㅋ 을지문덕이 몽골계라는 주장은 너무 어이가 없는 주장이라 설명하기도 짜증남ㅋ
30만 병력을 한 순간에 2700명만 남기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사를 찾아봐도 정말 손에 꼽을 대승리 중의 대승리
근데 그 당시 30만은 많이 부풀린거같은데.
30만이나 제대로 통제했을리도 없고
@@Contentio_ 기록에 다 남아 있는데 기록을 불신하면 대체 뭘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중국 사서에서 진 전쟁에서 숫자를 부풀릴리도 만무하고 학자들도 바보가 아니라 군편제로 역추적하면 113만 대군 나옵니다
맞습니다
이 기록은 패전해서 오히려 사실을 축소했을법한,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자료이다
고구려 침공한 병력은 113만 3800명 으로 기록되어 있고 워낙 대규모라 출발만 40일 걸렸다고 한다
고구려군들과의 지방 여러성들에서 승산이 없이 전쟁이 장기화되자, 113만 중에 정예병력 35만을 뽑아 수나라 우중문 장군이
별동대를 조직, 고구려 수도 평양으로 바로 돌격하다가 을지문덕에게 전멸했다!!
참고로 1차 세계대전때까지 인류 역사에서
깨지지 않는 기록이 이 전쟁이다
알렉산더도, 나폴레옹도 아니고 고구려가 113만 수나라 군대와 싸워 이긴 ,이 전쟁이다
1차 대전 이전의 세계사에서 최대 병력 동원 전쟁!!!!
@@수분-g3g 역추적해서 113만이 아니고요. 기록에 1차 원정 군인이 113만이라고 적혀있는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따르면 보조병력까지 300만이 넘어요. 거기에 이걸 4차까지 하고 4차에 이르러서는 주전력이 30만이였는데. 이게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전력을 뽑아낸다고 칩시다. 농사짓던 농민들이랑 상인들 싸그리 데려다가 뽑아놔요. 그럼 지휘는 어떻게 할겁니까. 기원후 500년대에서 600년대 사이 시기인데 통제는 어떻게 하고 지휘는 어떻게 내릴거에요. 생각은 좀 가세요? 전쟁이 보내기만하면 되요? 말 전할수만 있으면 되요? 밥은 어떻게하고 잠은 또 어디서 재울건데요. 뭐 바닥에서 잔다고 합시다. 근데 그인원이면 전부 아사하겠네요? 애초에 아시아에서는 일부로 부풀리는 것들이 많아서 진짜 완전히 믿으면안됩니다. 우린 이만큼이나하고 강력했는데 상대가 진짜 하늘에 몇없는 영웅이 있어서 너무 정예병력이라서 어쩔수 없이 졌다는 식으로 기록해요. 체면이 있잖아요. 다 아사했어요라고 기록할까요?
@@Contentio_ 역추적 개념은 ㅋㅋㅋ 편제 그 당시 편제 단위가 있겠죠?
정 의심스러우면 그 편제를 계산하면 113만 3800명 나오니 숫자가 크다고 뻥튀기인 거 아니냐 의심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거 별 것도 아닌 일에 장문 투척하는 건 좀 하지 마세요; 읽기도 귀찮음
수서 기록에 나와 있는 거 알만한 사람 다 아는데 왤케 오바세요
정 못 믿겠으면 그 잘난 머리로 이 기록 부정할 만한 근거 본인이 내놓던가 어디에 씨알도 안 먹힐 어설픈 장문 설파글 쓸 시간에 ㅡㅡ
솔까 글만 길죽길죽하게 쓰는 님 같는 부류가 제일 허접스러움 ㅋㅋㅋㅋㅋ
그냥 명장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수나라 격파하고 사라졌다고 하니까 존나 낭만그자체네 ㅋㅋㅋ
존나는 빼고~~~~!
@@ayobro5823물결표빼고
@@ayobro5823엄마..?
팽당한듯...너무 실력있어도 안됨...ㅅㅂ
@@이제동-f7q 생각해보니 팽당하는건 한반도 종특이라 그럴수도…
그래서 더 간지난다. 정체를 알수 없지만 신기에 가까운 전술로 나라를 지키신 을지문덕 장군님 아아...ㅠㅠ
호위병 몇명만 데리고 협상하러 적 진지로 갈 만큼 대담했고
또 수나라 군대의 허점을 잘 파악해서 협상으로 시간을 끌어들여 파발로 북경에 있는 황제한테 서신을 전달하려면 적어도 3~4일 왕복 6~8일 정도 걸리는 것을 이용해서 적의 군량을 소비(100만명이 하루에 소비하는 식량만 해도 엄청난 타격)시켜서 지치게 만든게 진짜 똑똑하셨죠
사실상 식량도 없고 증원군인 수군도 비사성에서 막혀 자국으로 도망가버리고 보급로도 게릴라전으로 인해 차단당해버려 사실상 수나라 30만명은 평양성에서 고립되버린 상태였죠
더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어 철수하던 찰나에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기병으로 뒤를 쳐버리고 사기와 의지가 꺾인 수나라 군대는 그대로 강을 뛰어가며 도망가려했지만 몇명이 넘어지자 물귀신 마냥 다른 병사 발을 붙잡고 줄줄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건너지 않은 병사는 고구려 기병에 쓸려갔고 간신히 2700명만 살아남아 중국으로 돌아가려했지만 가는 도중에도 고구려 기병이 끈질기게 쫓아와서 괴롭혔죠
그래서 그 당시에 수나라에서는 고구려 정벌을 위해 군사를 모집하면 백성들이 두려워서 숨어버렸고 군사를 일으키기가 어려웠다죠
진짜 을지문덕 장군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십니다.
@@Chan-lv9tn 그것도 맞는데 사실 수양제가 ㅂ신인게 컸죠 ㅋㅋㅋ 몇번이나 잡히고 잡힐뻔 하고 나라가 망할뻔했는데 그때마다 거짓항복하면 풀어줌 ㅋㅋㅋㅋ 천자의 은혜
30만 중국인들을 착해지게 만든 을지문덕 장군님 그립읍니다
@@LEOmess1realGOAT ㄷㄷ 우리가 통수의 민족인듯. 사기범죄도 많이 일으키는걸 보면 확실한듯.
영웅은 죽지 않아요....캬....
때가되면 물러날줄 아는 남자... ㅋㅋㅋㅋ
고대사 사료가 너무 적은것이 아쉽...
고구려사는 북한 만주 쪽이라 연구하기 어렵죠..,
고구려 멸망후, 고려시대 몽고침략기,조선시대 임진왜란, 일제에 의한 주권상실 등 잦은 외침으로 사료가 많이 소실훼손됨
북한이 제가 알기론 고조선 고구려 고려를 이은 나라라고 자칭한다고 알고있는데 제대로 된 나라구실이라도 했으면 연구라도 했을텐데...아쉽네요
@@초코바-d8q아이러니한건 그덕텍에 그지형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북한 꺼낼게 뭐니. 우리가 북쪽을 점령하고 있어도 마찬가지. 워낙 고대사인데다가 고구려 백제가 신라 당 연합군에 망했으니 뭔들 하나 제대로 남겼을까. 발해도 마찬가지고..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거고 수 당에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기지 않으려 했을테니 어쩔 수 없지 뭐
수나라에서 고구려 국왕하고 을지문덕은 반드시 생포하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음. 아마 고구려 귀족세력의 1인자였을텐데, 을파소의 후손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죠
당나라가 아닌 수나라입니다.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이죠. 귀족 1인자면 대대로 직위인데 이건 가문의 정치적 푸싱도 있어야하고 여차하면 캐삭빵까지 조져서 얻는 직위이다보니 힘도 있어야하죠.
헌데 이민족 가문이니 변방의 듣보잡 가문이니 하는건 상당히 설득력이 부족하죠.
그럼 을씨예요?
@@소년보살보조개 을지
잔다르크처럼 마녀사냥 하려한거 아님? ㅋㅋ
고구려 기록자체가 너무 사라져서 안타깝다. 다합쳐도 종이한장이 정도라던데..
기록이 잘 보관되었다면 유익한 정보가 많았을텐데.
이미 위에 뭐 다 설치하고 난리난 신라 백제가 문제지 고구려는 북한 파보면 더 나올듯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만 봐도 내용이 엄청 많는데 뭔 종이 한장이여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불태워지고 일제강점기 때 고서들을 사그리 방화하거나 수탈해가갔으니....
그 방대한 역사서가 일본왕실도서관에 꽁꽁 숨겨져 있다 하죠.
@@BF-hj1gr 민간방문 ㄱㄴ?
TMI:고대전쟁에서 100만명 이상의 대군을 모은건 수나라가 최초이고 100만명 이상의 대군을 이긴것도 고구려가 최초이고 100만명 이상의 대군으로 패배한것도 수나라가 최초이다 고대전쟁에서 100만명 이상의 군대를 모았다는건 수나라가 당시 얼마나 잘 살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수나라 탄생배경= 1.중국어 전혀 모르는 선비 언어 선비족들 수십만명이 중국어족의 남조국가를 식민지배하면서 탄생됨. 2. 그래서 수나라 왕족들은 선비 언어 선비족들이였고 수나라의 하층민들은 수많은 중국어족들이였어요$^*)
수나라가 100만명을 금방 모을수 있었던 이유= 수나라의 선비족 왕조가 식민지배했던 중국어족들을 고기방패로 사용하면서 100만명까지 금방 모을수 있었어요. 선비족에게 식민지배당했던 하층민 중국어족들은 수나라때 고기방패로 이용당했어요
수나라의 주인 선비 언어 선비족들 병력은 30만명 정도가 전부였어요. 살수대첩때 고방 당했던 수많은 병력들은 수나라 왕조 선비족들에게 식민지배 당했던 하층민 중국어족들이였어요 ㅎ
@@MalangMolang 동양사에서 북방민족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한국은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죠
그저 오랑캐로 멸시할 뿐
신라의 입장에서 주적 고구려 또한 북방과 마찬가지인 존재였기 때문에, 신라대로부터 쭉 내려온 반북방 감정에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중화가 아닌 북방과 늘 국경을 맞대왔죠
때문에 천년의 적 중국이라는 말은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천년 원수는 북방이었죠
결국 중국 및 한국과는 달리 북방과 척질 일이 없었던 일본이 동북방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앞서있습니다
어느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 역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섬나라인 일본이 아무리 파고들어봤자 직접 국경을 맞댔던 중국과 한국이 제대로 연구하는 것보다 나을 리가 있나요. 고고학적 한계가 크니까요
결국 이렇게 교과서로만 배우면 잘못된 역사를 익히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죠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ㅂ
을지라는 성은 고려때까지 있었지만
많은 삼국시대 성씨가 시대를 거쳐오면서 사라졌습니다
가문이 유지되었으면 좋았을테지만요
을지문덕은 가문이 비천해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해요
북한은 있다고합니다
북한에 목천돈씨가 을지문덕 후손들임
@@이그런대로 비천하다는 건 무슨 근거로? ㅋㅋㅋㅋ
현대 우리가 쓰는 성씨개념은 고려말에 정립된 것이라 삼국시대엔 지금 같은 개념의 성씨를 쓰지도 않았고 성을 바꾸는 일도 많았음. 강력한 왕권알 자랑하던 영양왕 때 군통수권자였으니 당연히 친왕파 귀족가문이였을 거고 연개소문이 영류왕 찢어죽일 때 을지문덕 가문도 같이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높음. 본인도 살아있었다면 그 때 죽었을거고 가문도 그 때 멸문했을 것
기록이없어 아쉽다ㅜㅜ
■ 중요한건 살수대첩 패배가 중국 역사에는 기록되 있다는 사실! ㄷㄷ■
기록되어
기록돼
그냥 봐 이 씨발년들아
댓들 이리 불편해서 살것아
되/돼 모르는 짱꺠섀끼가 처지껄이네
@@건아까 살것아도 너무 불편하네요.
을지문덕이 미스터리한게 아니라 남아있는 우리나라 고대사 기록 자체가 빈약한 것임
...무식...
@@덕계동불개미 뭐가 무식이에요? 맞는 말인데 신라가 통일하면서 기록들 싹다 날렸는데
조선 초기 때까지만 해도 백제, 고구려, 신라의 기록이 남아있었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이것도 맞지
@@덕계동불개미 이름만 있고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는 역사서가 엄청 많아요. 님이 더 무식하신듯..
대고구려 제국의 위대한 성장, 명장 을지문덕! 청사에 영원히 길이 빛나리라!
장수왕 이후 고구려 후기에
졸본고씨 왕권 세력 VS 국내성 귀족 세력 VS 신 평양 귀족 세력
이렇게 3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는데
제 모자란 예상으로는 을지문덕 장군도
저 파벌싸움에 말려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훗날 저 왕권 싸움은
왕이 연개소문 암살을 시도하고
역으로 연개소문이 왕을 죽인 다음
보장왕을 세울 정도로 심각해졌습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추측이군요
@@intb653
고구려 사에 있어서
고-수 전쟁사에서
영양왕-을지문덕 장군이지만
다음 27대 왕인 영류왕일때는
을지문덕의 기록이 없습니다.
또 추가로 영류왕은 연개소문에게
시해당하구요.
여기서 영류왕은 영양왕의 이복동생이자
수나라와의 전쟁에 있어서
큰 공신을 세운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추측인 시기상으로
같은 수나라 전쟁 공신파인
영류왕편을 을지문덕 장군이 함께 편들다가
훗날 막리지와 대막리지 세력인
연씨가문 + 귀족연합에 의해
축출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에서는 가설인지 을지문덕이
연개소문을 지지하는 장면이 있었어요ㅋ
@@time79654드라마로 역사를 배우시는 분
연개소문에게 숙청 됐을거라는 기록도 있음..
세력 다툼으로 역사에서 지워졌다는게 가장 신빙성있다
신라가 통일을하면서 백제 고구려 역사기록은 거의 포맷시켰고 지금남아있는건 중국과 신라 일본을 통해 기록에 남아있던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네요
@@user-idjeyxsa296 ㄴㄴ 중국쪽 침입 땜에 다 불탐
@@user-idjeyxsa296삼국과 가야 단군 기록 다 지운건 이씨조선때임
별로 신빙성없음
을지문덕처럼 큰공을 세운 사람을 그냥 쳐내버리면 그 누가 왕한테 충성하려고 하겠음
저렇게 큰공을 세운 사람마저 쳐냈는데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공포 분위기가 조성될텐데 이러면 무조건 쿠데타 시작임
즉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무식한게 아니면 그럴일 없다는 뜻
개인적인 생각으론 봉군줘서 은퇴시키고 잘먹고 잘살게 해줬을꺼라고 봄
이러면 실권에서 배제되다보니
사료에도 안나오는게 당연하고
@@fcbarca3047 큰 전공을 세우고 바로 나락간 경우 흔합니다... 이순신장군도 백의종군했구요.
드라마 제작해줘~
기록이 없는데 뭘로 만들라는건지.... 님 페미아줌마임?
@@fsgd77777 뭐만하면 페미 갖다붙이네
대장금이나 미실 캐릭터같은것도 역사나 야사 한두줄로도 상상력 가미해서 드라마 만드는데 드라마로 보고싶어할수도 있지
@@fsgd77777 얘는 진짜 ㅂㅅ이네
@@fsgd77777 니땜에 없던 페미도 생기겠다 ㅅㅂㅋㅋㅋㅋ
드라마 있어요
sbs 연개소문중에 살수대첩도있습니다
물론 합판소문이지만
고구려에도 수도에 이것저것 기록해놓은 서고가 있었는데 당나라가 멸망시키면서 다 태웠다고 들었어요..
청화수님의 을지문덕 편을 찾아보세요
100만 대군을 격파한 대장군
고구려가 망할때 당이 먼저 점령하면서 당시 당군이 놀랄정도의 엄청난 도서관을보고 다털어갔다니 지금 당시대의 책중 고구려책이 있을수도 있고 당태종이 무예책은 소림사에 주었다고 봣으니 거기에 고구려인물 기록이 있겟죠
문화 대혁명때 책들 다 태워버려서 그때 같이 사라졌을 지도
@@jho7089 혹시 그때 태운 서적 내용 중에 고구려등 한민족에 관련한 고대사에 중국역사와 비교도 못할 만큼 유구한 문명의 비밀들이 들어있어서 일부러 사멸시킨 것은 아닐까요?
@@jho7089 ㄴㄴ 부수려하던걸 주은래가 고구려나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라 해서 문화 대혁명때 중국인들이 안부시고 돌아감
@ㅎㅎ 허허 이사람 뭘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ㅋㅋ
진지충?
우리가 100%믿는 과학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반전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법인데
특히 역사는 승자에 의해 지워지기도 왜곡되기도 하는 법이거늘
가능성의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생각해 보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고 있네 ㅋㅋㅋ
당신이야 말로 중국뽕 아니오?
명, 청 시대에나 그나마 몇백년 국가를 유지하면 나라를 발전시킬수 있었지
중세시대 이전에는 끊임없이 전쟁만 치르고 십여년 마다 주인이 바뀔 정도로 문화를 발전 시킬 여유가 없을 정도인데 ㅋㅋㅋ
반면 한반도는 고조선부터 부여 삼한 삼국시대 까지 몇백년씩 국가의 틀을 가지고 있었으니 단순 비교해도 몇백년씩 국가가 유지된 나라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몇년 유지도 못하고 주인이 계속 바뀌고 아수라장인 나라들과 어느쪽이 문화가 발전 하겠소?
@ㅎㅎ 당신이 말하는 중국은 중세시대 뿐이지 내가 말하는 것은 중세 이전의 고대사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조선이 유교를 받아들여서 중국을 섬기고 과학과 상업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오로지 사상에만 매진 하였으니 발전이 없었습니다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에 사대하기 시작한 것이지 그 전에는 오랑캐라 부를 정도로 문화가 미비하고 전쟁 기술만 발전한 그런 집단으로 묘사한 것 입니다
가끔 가문중에 벼슬자리엔 오르지말고 백성이 힘들어할때 전쟁일때 전쟁으로 향하여 나라를 구하는 가훈이 있는곳이 있어여
가끔 을지문덕 장군은 신선이거나 혹은 미래에서 온 분이 아닌가~~~생각이듬~~
을지문덕은 김기회다
최수종 일수도...
아쉬운 고대사 ㅠ 자료가별로없어
ㄹㅇ 고대사만큼 꿀 잼인 한국사가 없는데 난 개인적으로 전쟁 이야기 좋아해서 한국사 졸면서 배웠음 ㅌㅋㅋㅋ
ㄹㅇ 한국 고대사가 꿀잼인데 조선시대 좀 그만보고 싶다... 역사 기반으로 한 픽션드라마보면 맨날 조선시대 붕당정치, 왕과의 러브스토리 반복.. 물론 이 클리셰를 가지고 있음에도 뛰어난 작품들도 많고 남아있는 기록도 조선에 대한 게 젤 많아서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지겹기도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ㅂㅂㅈ
특히 고구려는 거의 기록이 중국 북한에 있으니 더욱..
왕이 받쳐줘야 재상과 장수가 능력발휘하지 연개소문은 왕 죽이고 자기가 다 해먹다가 자식대에 나라를 말아먹었지
무식한 소리
애당초 왕이먼저 연계소문 죽일려했는대...
정치 외교 군사의 일을 혼자 다 짊어진 불세출의 영웅이였음 중국의 위징이나 백제의 성충이 당태종은 연개소문의 상대가 안된다고 한게 과장된 기록이 아님 아직도 중국인들이 두려워하는 동이족의 마지막 수호신
그냥 전쟁이 장난같아 보이지만 을지문덕만 하더라도 강이식 장군의 임유관 대첩이후 살수 대첩이후에도 수양제의 연속된재침을 막아낸 불세출의 영웅 병법의 귀신이라고 하는데 그뒤를 이은 연개소문은 피폐한 가운데서도 돌궐과의 외교 신라 백제와의 동맹추진 물론 김춘추는 당을 선택하지만 친당세력의 견제와 직접 전투 지휘 더구나 상대는 중화 사상 최고의 영웅이라는 이세민 물론 이세민도 돌권을 먼제 제압 연개소문의 외교를 무력화 한후에 모든 준비를 마친후에 고구려에 쳐들어옴 생각해봐라 우중문 우중술 같은 범장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과 비빌만한 천재가 적이 되어 긴시간의 치밀한 준비끝에 엄청난 병력과 인력을 총결집해서 쳐들오는걸 깨부슨게 연개소문이다 당나라 최고의 기재인 위징이 이세민엔게 황제께선 연개소문의 상대가 안되니 고구려에 가면 안된다고그토록 말렸건만 결국 그의 사후 이세민은 처절한 패배를 당하니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피토하며 후회하는세 삼국지에 제갈량의 말을 안듣고 망한 유비짝임
삼국시대에는 왕이 정치못해서 나라를 위태롭게 하면 죽이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안시성 양만춘 장군과 당태종의 전쟁도 영화로 나왔으니 을지문덕 장군의 수나라와 전쟁도 영화로 나오길 기대합니다!
양만춘도 그냥 부르는거죠.
안시성주는 지금도 누군지 모름
알아봐야겠어요 갔다올께요
아, 하지마세요. 부끄럽게. 여태 숨겨왔는데.
고구려가 한반도 만주 언저리에만 있던 민족국가였다는 편견부터 깨면 많은게 보여요. 거란 말갈등 주변민족들까지 복속했던 연합국규모였는데 "올지"라는 성은 지금도 몽골에 있는 성입니다.. 책보고 유튭 ㄱ ㄱ ㄱ
그리고 청천강이 살수라는 주장은 지금 현재 청천강을 끼고 있는 북한조차도 하지 않는 주장이에요
환빠
살수가 황하 아닐까 생각함
몽골은 존재하지도 않았음
흉노는 그런성씨가 없었고
영웅 중의 영웅의 기록이 사라졌다는건 그 영웅을 시기한 자가 반란을 일으켜 영웅의 기록을 없앴다고 생각할수도 있음. 그리고 그 반란의 주인공으로 의심되는 가문은 연개소문 가문.. 연가문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 많고 을지가문기록은 패자의 기록이라 적다고 생각할수 있음
연개소문 기록도 삼국사기 한페이지도 안될 정도로 기록이 없는데 무슨 ㅋㅋㅋ
@@이혁-x6w ㄹㅇ 이 사람 알지도 못하면서 걍 지 맘대로 댓글 씀 ㅋㅋㅋㅋㅋㅋ
신라가 고구려를 당나라에 넘겼을 때,
당나라가 고구려 기록을 거의 말살 수준까지 없앴다고 함.
그 때 을지문덕에 대한 것도 많이 삭제 되었을 듯.
하여간 참 기록 없애는 거 좋아하는 민족임 중국
하여튼 5천년의 원수...
연개소문에게 멸문당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대말이 맞 음
질투때문?
막리지
직위의 승계상 가문상
연계소문집안에 의해 가문이
무너졌을 가능성이 커지요
우리나라를 단일민족이라는 가설안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고대사가 보이지 않음.
고인돌 들어보니 백인유골
단일민족은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타민족과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요...물론 지금과 같은 국가 개념이 없던 고대에는 여러 부족들이 있었겠지만 그게 유전적 차이가 있는 타인종?인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한국인들 유전자 차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 작은 편이라네요. 동북지방, 시베리아 지방, 한반도, 일본 서쪽 지역까지 유전자가 비슷하더라구요. 중국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유전적 차이가 있고요.
그 말은 만주, 시베리아에서 고립된채로 진화한 특정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태라고 할 수도...
시베리아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유전자를 검사했는데 한국인과 가장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 고대 인류를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고, 겨드랑이 냄새가 안나는 유전적 특이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인들과 비슷하죠.
진짜 영웅!!!
몽골과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을지 씨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을지문덕 후손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습니다.
영화가 왜안나올까싶음😊
참잘했어요.
을지문덕 그는 "블루 드레곤" 이였음
알고 보니 브레스 한 방으로 ...
이청용?
네 다음 잼민이~
고구려가 북방 이민족을 얼마나 천대했는데, 다른것도 아니고 수도방위를 맡겼다고? 더군다나 가문과 집안을 철저하게 따지는 고대국가에서? 을지문덕은 그저 고구려 귀족 출신의 권력자입니다.
@@byronic5682 부마와 군권은 다릅니다. 부마는 정치적 스텐스라고 볼 수 있으나 군권은 그렇지 않죠.
@@byronic5682 온달이 부마로서 정벌군 사령관이 된거지 수방사가 된건가요?? 수방사랑 정벌군 사령관은 완전히 다릅니다. 애초에 정벌군 사령관은 임시직이에요.
그것보다도 이미 수나라에서 을지문덕을 고구려의 왕과 동급으로 보고 둘은 반드시 생포하라고 했던 것이 핵심이죠. 사실상 강감찬 장군님 처럼 왕의 오른팔 포지션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혹시 이순신 장군의 전생처럼 느껴진다..
@@문정주-e3x ?
@@문정주-e3x 뭐라 쳐씨부렸냐
@@문정주-e3x 급발진오지구요
@@문정주-e3x오히려 좋은거 아님? ㅋㅋㅋ
그냥 두분의 영웅이 있었던거지 무슨 이순신장군 전생입니까~
묘한 조상일세
암튼 감사
요즘 김진명 작가 책 "살수" 읽는데 그게 딱 이 내용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을지문덕에 대한 이야기
온달 장군은 부리야트(부여) 사람입니다.
몽골이란 국호도 테무진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이름이고
범어잡명에 고구려는 모쿠리 모지리라 불렸습니다.
바이칼호수 남쪽 접경에 울란우대란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고구려의 일식기록이 기록됩니다.
천문기록은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만 합니다.🎉 놀랍죠😊
12한국은 서로 나뉘어서 세계로 흩어져서 일가를 이루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말속에 입맛등을 가지고 베링해를 넘어 신대륙으로 넘어갔다. 난 우연히도 프랑스 국경도시 포르토보에서 내가 어릴때 놀던 놀이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있다. 멕시코 원주민 아이들이 우리가 예전에 놀던 구슬치기를 하더라.
내 생각 ...
조선초기 .. 모든역사서 와 기록을 다 지웠지 ..
그때 지워버린게 아닐까? ..
그때 역사서를 가지면 .. 멸문지화 당할수있기
때문에 ..... 내 생각.
별에서 온 장군님? ㅋㅋㅋ
ㅇㅇ 이거임 김수현씨가 을지문덕임
영상 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죽으면 신께 물어봐야지...하고
이제 죽음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나이는 지난듯 하다...
슬슬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네요
부모님께서 약을 이것저것 드셨는데 이젠 제가 약을 이것저것 먹고요
고생하셧어요 푹쉬세요
과거를 보지말고 미래를봅시다
국민교육현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마지막 그대로 새역사를 창조하자!!
몽골에 올지성이있고 모돈은 한자식으로는 문덕이 됩니다.
연개소문의 반란 때 그 후손들이 절명됨
그리고 기록말살로 후대에 못 전해내려오는 것임.
무슨개풀떠더먹는 소리하노 모르면가만있어라 욕척머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씨불이는 너같은 애들때문에 가짜뉴스가 생겨나는 것이다
@@머구리다 그럼 니가 말해봐라 지도 모르면서 아가리 닥쳐라
절명은 대체 어디사는 누구인가...
개10소리를 너무 신박하게 쳐써대서 진짜인줄알았네;
강감찬장군도 대단한데 알려주세요
당이 고구려 먹으면서 지들한테 불리한 역사서는 죄다 폐기 이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
왠지 다음 왕이 이복동생이고 친당정책을 펼친 사람인데 그래서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을지문덕을 제거하고 당나라에는 을지문덕을 제거한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 했을지도...
삼국과 발해에 대한 사료가 부실한 건 한국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고려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봄.
왕건과 그 후예들은 말로만 북진을 떠들었지, 고토 회복에 대한 적극성은 사실상 제로임.
멸망 직전 최영이 가장 적극적이었던 게 고려의 비극임.
조선이 더 했지 그런건
ㄹㅇ 딴건 몰라도 발해사 1도 사서 안남긴건 너무 아쉬움. 거의 비슷한 시대의 국가라 자료가 지금보다 몇십배는 더 풍부했을텐데..
국운이 다할 때 하늘이 내리신 절세영웅이었네요
저때 국운 다할 때 아니라 짱짱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럴 수 밖에 없음... 고구려 기록을 중국사서에 의존해야 될텐데... 중국이 자기나라 패한걸 기록안하거나 축소할 뿐더러, 동북공정에도 방해가 되니..있어도 안보여주겠지...
반도 사관으로만 몰고 가니 을지문덕을 찾을수 없지 . 김정민 박사 강의 들음 다 있어
당태종 이세민의 눈을 화살로 맞춰 애꾸로 만든 안시성성주도 미스테리임. 양만춘이라고 하던데
양만춘은 중국소설에 나오는 이름이구요 실제 안시성 전투의 사령관은 고정의장군입니다 양만춘은 허구
양만춘은 안시성주 실제 본명이 아니라 소설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그중 한가지 설을 소개하자면 정황상 안시성 전투를 실제 승리로 이끈 인물의 이름은 고정희라는 설이 있습니다.
청화수라고 다양한 설들을 소개하고 다각도에서 역사를 보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가 계신데 시간 되시면 그 분이 소개하는 안시성주 영상 한번 찾아보십시오
@@후아유-y9n 엥 소설이 아니라 야사라고 표현해야 맞는거 아닌가요?
@@백성윤-w5s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명나라 시대의 소설가 웅대목의 저술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양만춘은 솔직히 당에서 연개소문을 깍아내리기 위해 그 최측근인 대대로 고정희의 공적을 반막리지파인 가상의 인물로 덮어씌웠다고 보면 됨
서울시 중구엔 을지로가 있더군요..ㅎ
강원도 인제의 육군 12사단은 을지부대입니다
37연대 신교대 조교들 모자엔 을지문덕이 말을 탄 모습을 형상화한 모양이 들어가 있죠 ㅎ
충무로 을지로 모두 살아있을 당시 이순신 을지문덕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요.
현대에 와서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요.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인 케이스죠..
광복하고 나서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힘 쓰고 있으니
일본인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서 충무공 이순신을 본따 충무로라는 이름을 붙였고
중국인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서 을지문덕의 이름을 본따 을지로라는 이름을 붙였죠
@@cjs-oh8vb ?? 당연한 얘기를;
양만춘 이라는 인물도 없다면서
안시성주 도대체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조인성입니다
@@공찬영-z8u무슨 근거인지
그래서 더 멋짐.
멋지네~
한국사 최초의 디스곡 작사가
시간 여행자 입니다.
우리와 dna가 75프로 일치하는 바이칼호수쪽에사는 부리야트족에 올지라는 성이있습니다 한자로음차하다보니 을지가됐다고보고 문덕은 모돈을 음차한것으로 판단됩니다
우리랑 침팬치도 95프로 일치함 75프로면 아예 사람이 아닌데?
@@goredgo7456 부리야트족 보시면알아요 그냥한국인과똑같이생김 실제로저는 부리야트사람 봤는데 그냥한국인이라고보면됩니다 부리야트에 올지라는성이 매우많습니다 트라는건 부족을뜻하고 부리야는 옛 부여족을 얘기하는겁니다 부리야트4종족중 코리족얘기는들어보셨죠?
@@SamSaek. 환빠 개심하네
@@boyllldje217 환빠드립치지말고 나는 내가본자료 실제 올지성이있는거 실제부리야족사람본걸로 얘기했으니 뭐 자료라도 꺼내봐
밑에 말 다 필요없고 dna 75퍼 일치부터가 이미 틀렸음 초파리랑 인간이 65퍼센트 일치하는데 침팬치는 위에 말했던 수치였던거같고 당장 현생 인류가 아니에요 75면
그렇군요 ㅋ 안타까운데용
우리나라에 을지문덕이란 이름이 남아 있지 않지만 몽골에는 아직도 많이 쓰이는 남자이름이라고 합니다
살수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선비 귀족 가문중에 울지씨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쪽 계통이 아닐런지.
확신이 아니고 이미 영상에 그런 주장이 있자너
근데 현실적으로는 대대로 같은 최고 관직이있었을듯. 나라의 국운이 걸린 전쟁에 외국 용병을 지휘관으로 썼을리가...
윗분 말씀처럼 그 고구려가 어떤 나라인데 이민족이나 듣보잡 가문을 대대로라는 직위에 올릴리가 없음 ㅋㅋㅋ
저 주장은 솔직히 환빠들이나 주장할 법한 낭설 취급임 이젠
@@개우지-v1x 을지문덕 어디까지가 성인지 모르겠지만 을 을지 예전에 가문이 있어야 되는데 귀족 가문이 전무할 걸요?
@@corea. 을지라는 성씨는 기록이 없다시피한데 을씨는 고구려 초기 유리왕 때 을소, 고국천왕이었나 당시에 대대로로 명칭 바뀌기전 최고 관직이었던 을파소 등
을씨 성은 상당히 유력세가였을 겁니다.
그래서 을지의 지 자가 경의의 표현을 담은 sir 와 같은 의미로 쓰인게 아닌가 하는 거죠.
수서에 묘사 된 을지문덕은 당대 포지션 자체가 영양왕과 동급이라는 점에서 결코 듣보잡 출신에 별볼일 없는 관직은 아니라는 관점이 크고요.
나라의 덕을 지니고 나온 인물임. 그만큼 나라가 덕을 쌓아야한다고 생각함
그럼 잔다라크는 프랑스가 덕을 쌓아서 나온거임? 그 학살만했던 중세 프랑스가?
도깨비로 우리에게 다시 오신 듯 합니다
을지문덕이 약간 도깨비랑 비슷할수도 있는게 왕한테 토사구팽당한 것 같습니다. 그정도의 일을 해냈으니 명망이 왕보다 높아졌을테죠. 게다가 고구려의 왕은 친수, 친당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다 연개소문한테 처참히 죽었죠. 을지문덕을 토사구팽하고 당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왕을 연개소문이 그렇게 한 것일수도...
몽골에 가면 을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파헤쳐 주세요..제발!
당나라를 무찔렀던 안시성 전투를 이끈 안시성주도 양만춘으로 알려져있지만 양만춘이란 이름이 교차검증이 안된다고함. 고구려 초기 왕이던 태조왕은 기록에 따르면 거의 120년을 산거로 되어 있음. 고구려 기록은 좀 의미심장한게 많음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초기도 의문투성이가 더 많죠 ㅋㅋㅋ 족보가 개같이 꼬여있음
거기다가 진짜 건국 시조가 비류인지 온조인지도 그렇고
의도적인건지 후대 고려 시절까지 남아있는 기록이 개판인건진 몰라도
덕분에 미스테리하고 유추하는 재미가 있음
태조왕 동생 차대왕도 거의 100살까지 살죠
삼국사기는 동생이라는데, 당대 사료인 후한서에는 태조왕 아들로 기록되어 있죠
을지문덕 광개토 양만춘은 우리나라 해군 첫 구축함 이름으로도 쓰여지고 있죠
을지문덕의 자세한 내력이 안 남아있는 것은 사료의 소실 및 부족인게 가장 큰 원인인 듯 하고, 고려땅이 지금 우리 땅으로 남아있었다면 혹시나 묘비명이라도 건진다던가 고고학적 발굴에 기대를 해볼만 했을텐데 이 역시도 여의치 않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살수대첩 하나만 봐도 군사적인 능력은 그냥 최강이고 단신으로 적진도 갔다 오는 담력에 글로 적장 을 돌려까며 조롱하는 능력도 있었지.
글구 수양제도 을지문덕을 알고 있었음. 왕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인지도 높은 대귀족이었던듯
30만 대군을 전멸시킨 국가적 영웅을, 왕이 살려뒀을리가 없잖아... 존재 자체가 왕권에 대한 위협인데. 쥐도새도 모르게 죽인거지.
로마시대 스키피오도 전공이 너무커서 질시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모함을 받아 그렇게 억울해하며 죽었다던가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 선조도 이순신 장군을 싫어했네요.
@@centurionkwk 토사구팽의 원조격이 되는 한신도 그렇지요. 항우한테 맨날 줘터지고 살고 가족도 버리고 빤스런 하길 반복하던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을 시켜줬더니만 돌아온건 역모죄 교수형...
어우... 고구려란 나라는 그런 국가가 아니었음
역사 정황상 을지문덕은 대대로 위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대대로는 왕도 눈치봐야하는 최고 직위임
대대로라는 직위가 명문 세력가들 간에 합의를 통해 선출 되는 최고 직위인데 문제는 이 합의에는 캐삭빵도 허용이 됐고 왕이 간섭했다간 오히려 왕이 삭제 될 그런 직위임.
게다가 을지 씨 가문이 아닌 을 씨 가문이라면 친왕파 세력이라 후에 연개소문의 정변에 의해 가장 크게 숙청당했지 싶음.
@@개우지-v1x 고구려가 아니라 동서고금의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임금보다 인기가 많거나 뛰어난 신하는 존재 자체로 왕권의 위협이죠. 그런 신하는 언제나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왕을 죽이고 왕이 되거나 왕의 손에 죽거나.
@@hikerfrantz5829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세계역사적으로 그러한 케이스가 비일비재한 건 맞지만 당대 영양왕 시대 상을 본다면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하죠.
우선 영양왕 자체가 기록 상 상당한 성군으로 묘사됩니다. 게다가 온건파의 주축이었지만 결코 유약한 인물도 아니었구요.
그도 그럴 것이 네 번 씩이나 되는 수나라의 침공을 겪고도 별 탈 없이 조용히 국가가 돌아간걸 보면 반란 같은 큰 트러블 없이 국정을 잘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헌데, 아무리 왕이라도 당대 대대로 그것도 국가적 영웅을 선빵친다? 명분도 없고 대대로 씩이나 되려면 당대 세력가들의 과반수의 지지를 힘에 업은 인물일텐데 조용히 암살만으로 끝날 일이 아닌 내전이 발생하고 당시 전쟁 직후 고구려는 그대로 자멸했을 것이 다분하죠.
그 정도 규모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중국이나 일본 사서에 기록 될 수 밖에 없구요.
무엇보다 을지문덕은 누구보다 왕당파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고요.
그 시절 대대로면 왕명도 ㅈ까세요 하며 디나이 놓을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적진에 한복판에 비무장으로 들어가라는 미친 명령을 그냥 승낙 한 것만 봐도 왕과 대대로 사이에는 깊은 유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구요.
상식적으로 척지는 사이였다면 서로 뭘 믿고 명령을 하고 뭘 믿고 승낙했을까요.
영양왕 입장에서는 유대를 더 깊게하면 했지 을지문덕이 뇌절해서 모반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결코 숙청할 명분도 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선대 평강왕, 매제 온달, 연씨 가문, 동부 고씨 가문 등 연관되고 유추할 수 있는 요소가 더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네요.
현재의 몽골계 이름
올지모돈..
김부식은, 왜 이렇게,허술하
게 기록했을까? 삼국사기~
기록이 없습니다 고의가 아니고요 본인도 언급합니다
근데 이런 걸 수도 있어... 이각,곽사 어디서 어쩌다 죽었는 지 연의에서는 모르잖아... 물론 을지문덕 장군님에게 비교하는 게 무례지만, 그 이후로 큰 사건이 안나거나, 권력에서 조용히 축출되면 모를 수 있어...
30억 투자했다가 2700원 남긴 루나코인 투자자가 과거로 회귀한게 아닐까?
전쟁에 진심이었던, 넘어서 전쟁에 미♡던, 싸움을 좋아하고 잘했던, 하지만 정치와 외교를 너무 몰랐던...
숨겨졌겠군요..
어찌 되었든 신이 고구려를 구하고자 보내신 인물임은 틀림없네요.
다음 권력자를 보면 알지 연개소문한테 죽었을거야 가문을 다 없애버린듯
618살수대첩, 642쿠데타 24년동안 간극이 이렇게 긴데?
연개소문이 가장 존경한 장군이 을지문덕인데ㅋㅋㅋㅋ웃기네
그걸 연개소문이 말하더나 지가 가장 존경한다고 ㅋㅋ 너는 나이가 몇살이니?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ㅅㅅㄱ
@@sleepon481 앜ㅋㅋㅋ 그럼 연개소문이 "나 사실.. 을지문덕 죽였어ㅜㅜ" 이렇게 너한테 말함? ㅋㅋㅋㅋㅋ
을지문덕은 고구려 명장으로 높은 직책까지 오랐을것으로 추정하지만 연개소문 반란 또는 다른 귀족세력 권력 암투로 인해 멸족 되었을거 같다는 추정이..
보통 멸문지화를 당하면 멸족에 기록을 모두 없애버리죠.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함..
좆도 모르는 새끼야,개소문은 을지문득과강의식을 존경했고 고건무를싫어했다
이순신, 을지문덕, 광개토대왕 이런사람들이 화폐에 찍히는날이오길...
100원에 계신분 이순신이십니다.
5원은 거북선
@@럭키리-i4v 이순신장군님의 업적에 비해 너무 액수가... 5만원권에 들어가셔야죠. 10만원권은 세종대왕님 이고.
@@임형지-o4q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랍니다
@@묵직한한방-d3h 중요하죠. 그 나라의 가치를 말해주는게 돈이고 그 가치를 알리는게 그 인물인데... 백원 널리 쓰일 동전이라 넣었다는건 알지만 5만원권엔 신사임당은 아니죠?
@@임형지-o4q 액수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심사임당은 사실상 여성쿼터제로 넣은걸 고려하고 봐도 왜 다른 여자도 아니고 굳이 심사임당인가 싶죠
기록이 이래서 중요한거지
양만춘장군님도..
안시성주 이름에 대한 기록이 없음.
양만춘이야말로 진짜 허구인물
우리는 양만춘 같은 듣보를 기억할게 아니라 고정의라는 대대로를 기억해야함
그래서 더욱 멋있는 사람
을 지문덕인지 을지 문덕인지 을지문 덕인지도 모르고, 을지문덕이 한자이름인지, 순우리말 이름인데 한자로 음독한건지도 모르고, 을지문덕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인지 이름이 을지문덕인지도 모름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ㅛㅛ
자료가 다 없어져서 아쉽..
자료가 없어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어려움...
거의 한반도판 잔다르크여
을지문덕은 잔다르크와 다르죠. 을지문덕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수양제가 공격을 가면서 고구려의 왕이나 을지문덕은 반드시 사로잡아 두라고 말합니다. 이미 살수대첩이 있기 전부터 왕을 제외한 고구려의 1인자였다는 뜻이죠.
@@조민수-x5o 그런 사람의 출생지도 모르고 살수대첩이후 행방도 모르는게 더 신기한 듯
세계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이 을지문덕의 승리입니다.
30만명인지 백만대군인지 이것도 확실히
몰라요
을지문덕은 몽골 사람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성씨입니다.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
이름을 씁니다.
바보온달도 바이칼 부리야트족이며
온다르 성씨지금도 써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도 징기스칸과
같은 이름인 테무진으로 몽골사람이니까
마찬가지로 주몽도 몽골 사람으로
몽골에서는 자기 선조로 여깁니다
고구려가 몽골이고 몽골이 고구려입니다
그래서 징키스칸이 고려를 정복안하고
파트너로삼아 세계를 같이 경영했죠ㄹㄹ
잔다..르크랑은 좀
인간이 이해 안가는 행적을 남긴건 비슷하지만 스케일은.. 차이가 많이 나죠..
현재 몽골에는 "을지" 라는 이름이 널렸음. 그리고 "평양" 이라는 지명은 현재 북한의 평양 말고도 옛고구려 영토 내(현 중국 영토)에 여러 곳임.
전후 반대세력에게 팽당해서 기록이 사라졌을듯...
다음왕이 친동생도 아니고 이복동생이면서 친당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합리적 의심이 들고 그 왕을 시해한 연개소문도 절대 권력을 차지 하기 위해 을지문덕 가문을 몰살시켰을 가능성이 있죠..
도깨비가 생각나네요.
??? 미래에서 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바꾸신 현재가 지금이 아닐지,,,
"을지"라는 이름은 몽골식 이름입니다. "을지"라는 이름을 현재시대에도 몽골에서 쓰고 있답니다.. 고구려시대는 몽골인뿐만 아니라 그 외 민족하고 같이 살았던 다문화시대라고 봅니다.
저때 몽골 없었다~
저때 몽골 없었고 전신이 실위부락수준인데..
저때 몽골초원은 돌궐 위구르로 이어지정
@@포메-f6o
고구려가 고조선의 적통
실위도 고조선 일원이였는데 방계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군최고 통수권자
왕이 아니라 대대로 에게 통수권이 있었슴
을지문덕이 바로 대대로
대한민국 군최고 통수권자를
외국인 시킬수 있슴?ㅋ
을지문덕이 몽골계라는 주장은
너무 어이가 없는 주장이라
설명하기도 짜증남ㅋ
부족국가이고 몽골땅까지 고구려 땅이였다면
충분히 가능한일 아닌가?ㅋ
@@김정수-u5t
역사를 거꾸로 말하면 곤란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영국식 이름이다 (피터)
이런 소리죠ㅋ
동생 을지마사가있어요
발해인으로계속이어갔죠 발해인과 여진족은 고구려후손들입니다
즉 청나라 누루하치도
고구려후손이지요
So interesting!!
을지문덕장군이나 잔다르크나 신비의 존재 ~ 정말 신이 내려와 도와준건지 ᆢ 👍
전쟁 전부터 당나라에서는 을지문덕을 왕을 제외한 고구려 조정의 1인자로 보고 있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냥 갑툭튀 하신게 아니라 이미 고려의 강감찬 장군님 같은 위치셨을듯요
기록이 안남아 있으니 궁금한데 기록이 사라진걸까요..아님 안남긴걸까요 진짜 궁금하다~~~~
수서를 찾아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