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곳이 몇 군데가 있는데요 1) 다카마쓰성을 그냥 둑으로 둘러싸서 마냥 비를 기다린게 아니라 인근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둑 안으로 강물이 흘러 들어가게하여 성을 잠기게 하였다고 합니다. 2) 히데요시가 열이 받아서 빨리 돌아간게 아니라 주군을 시해한 역적을 제거하는 것이 엄청난 공이 되어서 후계 다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리군과 빠르게 화친하고 무기와 군장은 배로 보내고 병사들은 밤낮없이 달리게하여 일주일이 아니고 3일만에 교토로 돌아가서 아케치를 멸했고 그 덕에 노부나가의 맏손주 산보시를 옹립해서 실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3) 히데요시의 컴플렉스 때문에 생긴 여자 취향은 키보다는 신분입니다. 히데요시는 본인의 신분이 미천한 것이 컴플렉스였고 만약 신분이 높은 여자와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자식은 절반은 고귀한 신분을 갖고 태어나니 신분이 높은 여자를 좋아했고 이에야스는 반대로 신분이 낮고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이마가와 가문의 정실 세나히메와 다툼이 많았기때문에 신분이 높아서 기가 센 여자를 꺼림) 히데요시는 원래 미인으로 소문난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를 좋아했고 오이치는 오우미의 일부 지역을 다스리는 아사이 나가마사에게 시집을 갔는데 아사이 가문이 오다에게 반기를 들면서 훗날 오다군의 선봉으로 아사이 가문을 멸한 것이 히데요시입니다. 그래서 오이치는 히데요시에게 앙심을 품고 노부나가 사후 가신간의 권력다툼이 일어났을때 반히데요시의 필두인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합니다. 가쓰이에가 시즈카타게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하고 자결할때 오이치는 히데요시에게 투항하기를 거부하고 함께 자진했고 후에 히데요시는 오이치의 장녀인 차차를 취합니다. 차차는 노부나가의 조카라 높은 신분이였으며 오이치를 갖고 싶었던 마음까지 달랠 수 있었기에 정실인 키타노만도코로에 필적하는 두번째 정실 취급을 했는데 후에 히데요시의 아들을 낳아 히데요시의 총애를 독차지합니다.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가 삼국지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히데요시가 오다의 군단장일때 전공을 살펴보면 오다 가문이 미노 사이토 가문을 정공법으로 아무리 두들겨도 번번이 실패할 때 히데요시의 조략, 내통으로 미노를 먹었습니다. 미노는 일본의 가운데인 사통팔달의 비옥한 땅이라 오다는 이 곳을 취하자 자신만만하여 천하를 무로 다스리겠다고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미노를 취한 것이 노부나가의 야망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죠. 교토를 정벌하고 쇼군 옹립 후 아사쿠라를 치러 에치젠으로 들어갔다가 아사이의 배신으로 오다군 전체가 포위당하는 형국으로 엄청난 위험에 처하자 미천한 신분 때문에 멸시받던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최후방에서 군단을 퇴각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가리를 자처해서 카네가사키 퇴각전을 처절하게 성공시켜서 오다 가문을 보전했습니다. 이 때 히데요시 휘하 병사들 대부분이 사상될 정도였으니 목숨 건 도박을 한거죠. 아네가와 전투에서 3만의 오다군이 8천의 아사이군에게 본진까지 뚫리고 노부나가 앞까지 적군이 밀려들어올 정도로 세력은 작지만 강했던 아사이군을 히데요시가 조략으로 차근차근 제압하여 아사이를 멸문시키게 되고 그 공으로 아사이의 영지를 받아서 다이묘가 되고 비와호의 나가하마성을 거성으로 삼습니다. 이후 오다가 포위망을 뚫고 군단장들이 각지 맡은 곳을 제압해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거나 지지부진했던 다른 군단장들과는 달리 히데요시는 탁월한 능력을 노부나가에게 인정받아 가장 강력한 적인 츄고쿠의 모리군을 상대하라는 명령을 받아서 노부나가에게 가장 신임받는 군단장임을 인정받았고 실제로 그 능력을 다카마쓰성 수공에서 보여줍니다. 모리군 3만이 다카마쓰성의 시미즈 무네하루를 구하러 왔으나 손을 쓸 방법이 없어서 영지를 많이 떼어주고 화친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히데요시는 모리를 본인 혼자 힘으로 제압하면 공이 너무 커서 시기, 질투를 받고 주군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거라고 본인이 다 만든 밥상을 노부나가가 떠먹으라고 구원을 요청합니다. 흡족한 노부나가는 먼저 아케치 미쓰히데를 히데요시를 도우러 가라하고 본인이 뒤따라가던중 참변을 당했는데요 이는 동급의 군단장이였던 아케치를 히데요시 밑으로 들어가라는 굴욕적인 명령인것과 동시에 탄바, 탄고의 영지를 몰수하고 모리를 정벌하면 모리의 영지를 새로내어주겠다고 했는데 이에 아케치는 모욕감과 자신의 입지에 위기감을 느껴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주군인 노부나가를 주살합니다. 노부나가 시해 소식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모리와 화친하여 역사적인 츄고쿠 대회군을 성공시켜 아케치가 대비하기 전에 노부나가 휘하 세력을 규합하여 아케치를 빠르게 멸합니다. 이 때부터 히데요시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전격전을 장기로 하여 후에 오다 가문의 필두 가로였던 시바타 가쓰이에와의 시즈카타케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로 놀라운 전격전을 보여주어 시바타군을 제압합니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자 노부나가가 제압한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말을 듣지 않아 어수선한 상황일 때 오다의 근거지로 후퇴하려다 호조와 붙어 박살나서 키요스 회의조차 참석 못한 다른 군단장 타키가와 가즈마스와는 매우 비교되는 행적입니다.
히데요시는 신분이 너무 미천해서 치세의 능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당시에는 신분을 엄청나게 따졌으니까요. 신분도 줄도 좋았던 조조와는 시작부터 너무 다르죠. 지지기반이 전무한데다 후손도 너무 늦게 태어났고 말년엔 노망나서 덕을 쌓기는 커녕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자손이 비참하게 죽었죠.
히데요리 키 197너무 과하다 그당시 남자들 평균키 150 이었다는데 히데요리180 정도 였다고함 이정도 그당시 거인급 토요데미 히데요시는 정말 대단 하다고 생각됨 흙수저 에다 세계정복 야심을 가지고 있었음 당시 인도 태국 까지도 선전포고를 했음 그래서 태국왕이 열받아 조선에 파병 보낼려고 했음 만약 히데요시 가 당시좀더 젊고 적극적이었다면 명나라 까지 먹을수 있었다고 봄 그당시 명은 망해가고 있었음
다른건 몰라도 노력형의 완전체이자 노력형의 인생최대 성공자는 히데요시 맞음ㅋㅋㅋ 천민으로 태어나서 시장에서 바늘장사 하면서 입에 풀칠했고 친아빠는 일찍죽고히데요시 새아빠는 어릴때부터 히데요시 학대하고 괴롭힘 바늘장사 하다가 오다 노부나가한테 병사로 들어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해서 아시가루 쫄병으로 오다 노부나가 군대에 들어가서 여러 전투나가서 활약하고 오다 노부나가 발 시릴까봐 한겨울에 오다 노부나가 신발 가슴품에 품어서 따뜻하게 해서 이때부터 노부나가 가신되서 여러 주변 영주들 오벌하러 다니고 혼노지에서 노부나가 배신한 아케치 없애버리고 노부나가 오른팔에서 일본의 실질적인 권력자까지됨 쇼군이 되야되지만 히데요시는 원래 신분이 천민이라 절대 쇼군이 될수 없어서 관백이됨 쇼군이 되려면 다이묘 가문이 아니면 절대 안됐음 히데요시가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기초수급자 집안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태어난 애가 커서 대기업 ceo나 대통령된거임
참고: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려 할때 당시 천황이였던 고요제이 덴노는 오히려 이를 반대하며 서찰을 보냈다. 조선을 건너 명을 친다는 게 미친 짓인건 당연했고 명분도 없을 뿐더러 조선과 일본, 명의 애꿎은 백성들의 피해가 두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천황은 허수아비였기에 이는 씹혔고 (비록 성사는 안되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명나라 황녀와 강제로 국제결혼할뻔했다....
풍신수길은 물을 접하면 길하다는 뜻으로 풍신수길은 물과 상당히 깊은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 이것은 작은 키를 가진자들에게 상당히 운명적으로 갖고 태어난다 대체로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이어준다 개명이 그래서 필요하다 개명이 안되면 예명으로 살아가는 자들도 많다 지나간 세월은 이미 되돌릴 수 없으니 누가 앞서 물길을 돌리지 않는한 스스로 자기 머리를 깍지 못하듯 운명은 스스로 바꿀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능력주의'따위는 무정부상태의 난세시대엔 어느나라나 다 똑같이 그랬음. 난세엔 맨파워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니까. 그리고 난세가 끝나고나면 그 능력주의랍시고 아무나 다 가져다 쓴애들, 차후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간주되면 가차없이 쳐내는게 동서고금 막론한 현실이었음
수많은 여자를 건드렸으나 아이를 낳은것은 차차 뿐이었으니 그것도
두번이나 아들만 출산...그것이 과연
늙은 히데요시의 친자식인가...
아니면 히데요시의 측근인 젊은 미쯔나리의 자식인가 라는 풍문이...
머리회전이 빠르고 거기에다가 부지런하고 일도 잘해서 오다에게 신임을 얻음 거기에다가 전쟁때도 선봉에서서 승리 많이하고 대단한인물은 맞음
히데요시는 진짜 말단부터 시작해서 관백까지 올라간 대단한 인물이긴함.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작고 근데 오로지 높은사람이 되겠다는 야망만으로 저 위치까지 올라갔죠. 여기선 안나왔는데 하급 아시가루로 진짜 쫄병부터 시작해서 전투도 꾸준히 참여함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일으키고 말년에 처신을 잘못해서 아들 히데요리가
오사카성에서 자결하고 일족이 몰락함.
진정한 승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잘 만났음
거지에서 왕까지 넘사벽이긴 하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네. 만약 히데요시가 조선을 함락하려 직접왔다면 그것도 궁금함
히데요시가 대단해도 아들 히데요리가 5살될 무렵에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배신해서
21살에 히데요리가 사망함.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미츠나리 격파하고 일본전국을 날로 먹음.
@@jhshin9413 교토 냠냐미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hshin9413 히데요리를 2번 죽이네 ㅋㅋㅋ
이상 × 기반 = 직전신장
야망 × 출세 = 풍신수길
존버 × 롱런 = 덕천가강
이순신 x 풍신수갈의 야망
망함 ㅋㅋㅋㅋㅋ
오다 노부나가는 절을 불태우고 승려와 신도들을 학살.
과격한 야심가.
이에야스는 너구리영감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손녀 센히메를 히데요시의 아들과 결혼시킴.
히데요리를 배신하고 오사카성점령.
오호
이에야스가 갑이지
다끼끼 마사오?
눈에 띄는 곳이 몇 군데가 있는데요
1) 다카마쓰성을 그냥 둑으로 둘러싸서 마냥 비를 기다린게 아니라 인근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둑 안으로 강물이 흘러 들어가게하여 성을 잠기게 하였다고 합니다.
2) 히데요시가 열이 받아서 빨리 돌아간게 아니라 주군을 시해한 역적을 제거하는 것이 엄청난 공이 되어서 후계 다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리군과 빠르게 화친하고 무기와 군장은 배로 보내고 병사들은 밤낮없이 달리게하여 일주일이 아니고 3일만에 교토로 돌아가서 아케치를 멸했고 그 덕에 노부나가의 맏손주 산보시를 옹립해서 실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3) 히데요시의 컴플렉스 때문에 생긴 여자 취향은 키보다는 신분입니다. 히데요시는 본인의 신분이 미천한 것이 컴플렉스였고 만약 신분이 높은 여자와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자식은 절반은 고귀한 신분을 갖고 태어나니 신분이 높은 여자를 좋아했고 이에야스는 반대로 신분이 낮고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이마가와 가문의 정실 세나히메와 다툼이 많았기때문에 신분이 높아서 기가 센 여자를 꺼림)
히데요시는 원래 미인으로 소문난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를 좋아했고 오이치는 오우미의 일부 지역을 다스리는 아사이 나가마사에게 시집을 갔는데 아사이 가문이 오다에게 반기를 들면서 훗날 오다군의 선봉으로 아사이 가문을 멸한 것이 히데요시입니다. 그래서 오이치는 히데요시에게 앙심을 품고 노부나가 사후 가신간의 권력다툼이 일어났을때 반히데요시의 필두인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합니다. 가쓰이에가 시즈카타게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하고 자결할때 오이치는 히데요시에게 투항하기를 거부하고 함께 자진했고 후에 히데요시는 오이치의 장녀인 차차를 취합니다.
차차는 노부나가의 조카라 높은 신분이였으며 오이치를 갖고 싶었던 마음까지 달랠 수 있었기에 정실인 키타노만도코로에 필적하는 두번째 정실 취급을 했는데 후에 히데요시의 아들을 낳아 히데요시의 총애를 독차지합니다.
나도 내가 알던 지식이 부정당한느낌이었음
천민 출신의 원숭이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경상국백성들이 존경하는 일본장수중하나
@@takakimasao5442 적국 지도자 숭배하는 그 지역 주민 등장 ㅋㅋ
@@user-cd4ms4tt3l 견마지로 충성맹세 적군에 자원입대한 경상국 반인반신.
@@user-cd4ms4tt3l 숭일당 일본의힘만하겠나
@@user-cd4ms4tt3l 황국신민 ㅋㅋㅋ경상국백성
이세상에 좋은사람과 나쁜사람은 없다 단,나한테 잘하는사람과 잘못하는사람만 있을뿐이다
@@onepun 맞습니다.
히데요시가 똑똑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팩스토리님 이야기 들으면 보통 똑똑한게 아니었나 보네요 ㄷㄷ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가 삼국지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히데요시가 오다의 군단장일때 전공을 살펴보면 오다 가문이 미노 사이토 가문을 정공법으로 아무리 두들겨도 번번이 실패할 때 히데요시의 조략, 내통으로 미노를 먹었습니다. 미노는 일본의 가운데인 사통팔달의 비옥한 땅이라 오다는 이 곳을 취하자 자신만만하여 천하를 무로 다스리겠다고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미노를 취한 것이 노부나가의 야망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죠.
교토를 정벌하고 쇼군 옹립 후 아사쿠라를 치러 에치젠으로 들어갔다가 아사이의 배신으로 오다군 전체가 포위당하는 형국으로 엄청난 위험에 처하자 미천한 신분 때문에 멸시받던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최후방에서 군단을 퇴각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가리를 자처해서 카네가사키 퇴각전을 처절하게 성공시켜서 오다 가문을 보전했습니다. 이 때 히데요시 휘하 병사들 대부분이 사상될 정도였으니 목숨 건 도박을 한거죠.
아네가와 전투에서 3만의 오다군이 8천의 아사이군에게 본진까지 뚫리고 노부나가 앞까지 적군이 밀려들어올 정도로 세력은 작지만 강했던 아사이군을 히데요시가 조략으로 차근차근 제압하여 아사이를 멸문시키게 되고 그 공으로 아사이의 영지를 받아서 다이묘가 되고 비와호의 나가하마성을 거성으로 삼습니다.
이후 오다가 포위망을 뚫고 군단장들이 각지 맡은 곳을 제압해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거나 지지부진했던 다른 군단장들과는 달리 히데요시는 탁월한 능력을 노부나가에게 인정받아 가장 강력한 적인 츄고쿠의 모리군을 상대하라는 명령을 받아서 노부나가에게 가장 신임받는 군단장임을 인정받았고 실제로 그 능력을 다카마쓰성 수공에서 보여줍니다.
모리군 3만이 다카마쓰성의 시미즈 무네하루를 구하러 왔으나 손을 쓸 방법이 없어서 영지를 많이 떼어주고 화친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히데요시는 모리를 본인 혼자 힘으로 제압하면 공이 너무 커서 시기, 질투를 받고 주군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거라고 본인이 다 만든 밥상을 노부나가가 떠먹으라고 구원을 요청합니다. 흡족한 노부나가는 먼저 아케치 미쓰히데를 히데요시를 도우러 가라하고 본인이 뒤따라가던중 참변을 당했는데요 이는 동급의 군단장이였던 아케치를 히데요시 밑으로 들어가라는 굴욕적인 명령인것과 동시에 탄바, 탄고의 영지를 몰수하고 모리를 정벌하면 모리의 영지를 새로내어주겠다고 했는데 이에 아케치는 모욕감과 자신의 입지에 위기감을 느껴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주군인 노부나가를 주살합니다.
노부나가 시해 소식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모리와 화친하여 역사적인 츄고쿠 대회군을 성공시켜 아케치가 대비하기 전에 노부나가 휘하 세력을 규합하여 아케치를 빠르게 멸합니다. 이 때부터 히데요시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전격전을 장기로 하여 후에 오다 가문의 필두 가로였던 시바타 가쓰이에와의 시즈카타케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로 놀라운 전격전을 보여주어 시바타군을 제압합니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자 노부나가가 제압한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말을 듣지 않아 어수선한 상황일 때 오다의 근거지로 후퇴하려다 호조와 붙어 박살나서 키요스 회의조차 참석 못한 다른 군단장 타키가와 가즈마스와는 매우 비교되는 행적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본인은 명예의 극치를 누렸지만 아들 히데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배신해서
오사카성에서 요절했습니다.
자수성가해도 2대까지는 못갔던
권력.
근데 아들이 그냥 문 열어준거부터 대놓고 통수맞겠습니다 한거지 ㅋㅋㅋ
다른거 다 떠나서 밑바닥에서부터 최정상까지 올라간건 본받을만함
물론 그거 하나만
친일파 국짐이가
난세의 간웅... 오직 난세와 전란의 시대에만 출세할 수 있어서 막상 평화가 오려하자 그 한계를 보이고 무너진 인물...
히데요시는 신분이 너무 미천해서 치세의 능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당시에는 신분을 엄청나게 따졌으니까요. 신분도 줄도 좋았던 조조와는 시작부터 너무 다르죠. 지지기반이 전무한데다 후손도 너무 늦게 태어났고 말년엔 노망나서 덕을 쌓기는 커녕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자손이 비참하게 죽었죠.
조조? 가 거기서 왜나와?
@@미국전-z6k 난세의 간웅을 보통 조조라 하지않나요? 그래서 언급하신듯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계긴 했지만 그나마 유비는 황족이라는 빽이라도 있었지 히데요시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거잖아 어찌보면 대단하다
정말 창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네요..역시 바닥부터 성공하는 사람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ㅎ
그 때부터 시작
이런 영상은 왜올리는겨 성웅이순신장군님이 지하에서 통곡하시겠네 ㅎ러새끼ㅇ
*너무 많이 착정당해서 무정자증 걸려서 자식을 얻기가 힘들었다는 게 학계의 정실부인*
예나 지금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선 이른바 "처세술(정치력이라고도 하고)"이 제일 중요한 덕목이자 능력이지. 설마 대기업에서 정말로 "(일잘하는)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승진하고 임원이 된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은 없겠지...아마도?
처세술 좋은 사람들이 대체로 능력들도 같이 좋은편이라 먹힌거죠 요즘은 능력이 뒷받쳐주지않으면 소용없어서 결국 둘 다 좋아야하는거 겪어본바로는 ㅈ소는 처세술만있어도 되긴함 그래서 ㅈ소
흑흑 개천에서 난 용이 씨없는 수박이었어 ㅠㅜ
히데요시. 노부나가. 이에야스...등 이야기 재미있게 듣고 갑니다.
요도도노 엄마 오다이치를 히데요시가 취하려하자 너무 못생겨 자신 남편과 죽은걸 택했다는설이 있음 그래서 세딸중
오다이치와 가장 비슷한 요도도노를 택했다는 설이 있음
못생겨서 그런 것도 있겠고 하인이였던 니가 감히 공주인 나를? 이라고 생각했을듯 싶네요. 무엇보다도 남편 아사이를 죽게한 것이 히데요시였던 것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히데요시가 너무 미워서 히데요시와 대립하던 아버지뻘인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할 정도였으니까요.
@@남산코끼리-l3e 아사히를 죽이라고 시킨건 오다
@@유상규-w4z 네 당연하죠. 그 명령을 받들어서 아사히를 멸한 것이 히데요시입니다.
오 꿀잼~😄
요도도도 키가 170넘었다함 ㄷㄷ
자식 키는 190
잘볼께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대기이네요
야망만으로는 못 올라갔죠
그만큼 군사적 재능도 받쳐줬으니 가능했던일
금잔이 우물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나 보네. 가라앉았다면
물 부어봐야 소용없는데... 어떤 위기에도 행운이 있구나 그걸 캣치하고 ㅎ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예 없던 시대에 저렇게까지 올라간건 신화 그 자체임
히데요리 키 197너무 과하다 그당시 남자들 평균키 150 이었다는데 히데요리180 정도 였다고함
이정도 그당시 거인급
토요데미 히데요시는 정말 대단 하다고 생각됨 흙수저 에다 세계정복
야심을 가지고 있었음 당시 인도 태국
까지도 선전포고를 했음 그래서 태국왕이 열받아 조선에 파병 보낼려고 했음
만약 히데요시 가 당시좀더 젊고 적극적이었다면
명나라 까지 먹을수 있었다고 봄
그당시 명은 망해가고 있었음
뒤에 도쿠카와 이에야스 세력이 버티고 있어서
불안해서 조선에도 못넘어왔어요...
@@김시영-f7c 명은 커녕 조선한테 막혔는데 무슨
다른건 몰라도 노력형의 완전체이자 노력형의 인생최대 성공자는 히데요시 맞음ㅋㅋㅋ 천민으로 태어나서 시장에서 바늘장사 하면서 입에 풀칠했고 친아빠는 일찍죽고히데요시 새아빠는 어릴때부터 히데요시 학대하고 괴롭힘 바늘장사 하다가 오다 노부나가한테 병사로 들어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해서 아시가루 쫄병으로 오다 노부나가 군대에 들어가서 여러 전투나가서 활약하고 오다 노부나가 발 시릴까봐 한겨울에 오다 노부나가 신발 가슴품에 품어서 따뜻하게 해서 이때부터 노부나가 가신되서 여러 주변 영주들 오벌하러 다니고 혼노지에서 노부나가 배신한 아케치 없애버리고 노부나가 오른팔에서 일본의 실질적인 권력자까지됨 쇼군이 되야되지만 히데요시는 원래 신분이 천민이라 절대 쇼군이 될수 없어서 관백이됨 쇼군이 되려면 다이묘 가문이 아니면 절대 안됐음 히데요시가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기초수급자 집안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태어난 애가 커서 대기업 ceo나 대통령된거임
변소지기,노부나가 신발지기
결론은 미천한신분 이라는것
일본도 이때부터 개혁이라는게
시작?
일본이 개혁한 시기가 메이지4년이고 사민평등이 이때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 밑에 잘
들어가서 출세하고 일왕에게 부탁해서 신분세탁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금잔이 물에 뜬다고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인물임. 왜냐? 흑수저출신이 관백까지 올라감. 일본 서민들에겐 히데요시의 출세는 용기를 준다고함 ㅎㅎ
근데 키는 엄마가 90% 가져가기때문에 아빠가 작아도 엄마가 크면 자식 키큰 사람들 많음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인줄 알았는데 삶이 파란만장했군요 .
암만 생각해도 이순신 장군님이 그 시대에 있던 건 최악의 억까ㅋㅋㅋㅋㅋㅋㅋㅋ
야망가.천재적 지략가.
히데요시가 처세술이 달인이지요 오다가에서 부엌에서 일할때 동료들이 주군음식에 손대지 말라고 하자 누군가 음식에 독을 탓을지 모르니 내가 먼저 맛보는거야 하고 말하다가 주군한테 걸려서 혼나는 일화도 있습니다 ㅎㅎㅎ
잘 봤습니다
조선을 침력한것 제외하고는 세기적 위인입니다
주원장 하고 한고조는 그래도 사람들이 쫄쫄 따라다니는 풍모는 가지고 태어났는데
히데요시는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꼭대기 까지 간거라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함
주원장은 덩치는 크고 얼굴은 산 도적놈 같이 생겼다 함
이사람도 참 대단하네
막상 일본인중에서 세계에서 인정받은 분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선생님같은 창작가나 기업인들이지만
키가 140cm 였다구요? 넘 작았네요
위대한 이순신 장군님 각하
혼노지의 변 다루어주세요.^^
임진왜란 흑역사만 아니었어도 존경받을만한 인물. 그 한치의 욕심이 인생을 전체를 망가트림.
주원장은 가난하고 낮은 신분에 홍건적활동까지 했지만 명나라건국하고 황제까지 됨
@@jhshin9413 그러나 주원장은 북원으로 원정 안갔음. 그래서 명나라는 200여년 갔고 토요토미는 아들대에 멸족됨.
@@성이름-c4e9x 서달을 보내서 북원을 제압하지 않았나요? 찾아보니 북원은 서달이 아니고 남옥의 명군에게 대패하고 내분이 일어나서 멸망했군요.
호랑이였던 주군을 닮고 싶어서 호랑이 흉내를 낸 원숭이였죠
임진왜란도 성공했으먄 대업이 되는건데
처세는 기회이고 능력이라는 본진이 없으면 버틸 수 없음
저런 사람을 막은 이순신은 .....
더 갓 제너럴 순신리 ㄷㄷㄷㄷㄷㄷㄷㄷㄷ
명나라가 막은건데요
도요도미보다 더위대하신 분이심니다
격이 다름니다
@@smokbig3202이뭔 개소리야 ~~~
구하라 얻을것이다 라는 계시가 그대로 야망이 큰 사람에게 갔다는건데 그러나 그는 ㅡ
울지않으면 울게만들것이다
옛날 대망 책에서는 히데요시의 사주가 원숭이와 연관된 특이한 사주인걸로 기억 하는데 ?
가물 가물 .
위대한 인물이죠 조선침략이란 무의미한 살생만 안했어도 도쿠가와가 기회잡을 일도 없었을 듯
모든 우주의 기운이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갔음. 저 미천한 인물이. 일본 천하통일을 하다니
원피스 삼대장...
키자루-노란 원숭이
8:59 오죽하면 부인인 네네가 상관인 노부나가에게 편지로 남편 바람기를 막아달라고 했을 정도였을까
10:31 이로인해 생겨난 문화가 오카마
하지만 그 히데요리도 결국
히데요시가 장려했던 산업이 유곽입니다.
대단한 난봉꾼
어마어마한 사람이였구맘 히데요시 관백
그때는 푸세식. 아무리해도 냄새남
금 비중이 절대 못 떠오름.
요런거 빼면 재미있슴.
꿀잼 😊
참고: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려 할때 당시 천황이였던 고요제이 덴노는 오히려 이를 반대하며 서찰을 보냈다. 조선을 건너 명을 친다는 게 미친 짓인건 당연했고 명분도 없을 뿐더러 조선과 일본, 명의 애꿎은 백성들의 피해가 두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천황은 허수아비였기에 이는 씹혔고 (비록 성사는 안되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명나라 황녀와 강제로 국제결혼할뻔했다....
임진란 병자호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키가 백사십ㄷㄷ
오다 세력에서 오다가 1위고 히데요시가 2위였나요?
고...고자루...
영웅호걸은 미인을 좋아하지요
한고조 유방.
풍신수길은 물을 접하면 길하다는 뜻으로 풍신수길은 물과 상당히 깊은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 이것은 작은 키를 가진자들에게 상당히 운명적으로 갖고 태어난다 대체로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이어준다 개명이 그래서 필요하다 개명이 안되면 예명으로 살아가는 자들도 많다 지나간 세월은 이미 되돌릴 수 없으니 누가 앞서 물길을 돌리지 않는한 스스로 자기 머리를 깍지 못하듯 운명은 스스로 바꿀수 없게 되어있다
나도 키큰 여자가 좋은데, 키큰 여자가 비율이 좋아.
변소청소 한놈한테...조선이 똥통놀이감이 됐었군....할말없군.
히데요시 도 진짜 사기캐 였지 삼국지 게임 캐릭터로 따지면 매력은 그지 같지만 지략 무력 통솔력이 전부 99 였음
한반도엔 이런 사람이 없으니 ...만주라도 먹었던 인간 하나가 없으니...
특히 한국에선 충남 대전 이쪽에서 인물 많이 나옴
일본 : 능력 있으면 인생역전 가능.
조선 : 음? 공로를 세웠어? 근데 노비,평민 출신? ㅅㄱ. 잘했다는 칭찬만 해줄게.
조선은 폐쇄적이라 서얼출신들은 능력이 있어도 높은 관직에 진입불가.
이덕무는 재능이 있었으나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과거를 보면 신분을 상승할수 있음
@@장만석-d5d 과거는 아무나 볼 수 있는게 아니죠..일단 책을 사야 하는데..책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고, 글을 읽어야 하는데 한자가 쉬운게 아니죠 거기에 생계를 이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 공부도 한다? 사실상 불가능.
@@장만석-d5d 장영실은 몰락한 양반가문이었음에도 대신들 반대로 높은 자리에 못올랐고 임진왜란때는 공을 세운 장수가 평민출신이란 이유로 선비에게 감히 개겼어? 이러면서 사형시켜버림. 오오. 조선 클라스!
그런 '능력주의'따위는 무정부상태의 난세시대엔 어느나라나 다 똑같이 그랬음. 난세엔 맨파워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니까. 그리고 난세가 끝나고나면 그 능력주의랍시고 아무나 다 가져다 쓴애들, 차후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간주되면 가차없이 쳐내는게 동서고금 막론한 현실이었음
최홍마아버지도 160인디. 최홍만이 친자가 아닌가. 말도안되는소리. 😅
키가 아빠를 꼭 닮지않음.물론 친자가 아닐수도있겠지만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우리한테는 나쁜 놈이지
일본센코쿠시대 사극에서 히데요시는 외모는 별로 인데 머리는 비상한 인물로 연출 되더군요
히데요리 키가 197 대에박,,,,
아들은 엄마를 닮는게 일반이지,,,
전생했더니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던 건에 대하여
전생에 저는 그의 부인이었습다
꿀잼ㅎㅎ
히데요시...심영...ㄷㄷ
저시대 일본남자 키가 150대인데 197이면 ㄷㄷ
찢어졌을듯
조선에겐 불한당이었지만 일본인들에겐 영웅일듯 ㅎ
韓国で、豊臣秀吉の印象が最悪なことは知っています。
ただ、朝鮮出兵のことは横に置いておき、秀吉の人生を観ると、大変な努力家であり、困難な仕事をこなして出世した人です。
若い頃の秀吉は、大変な努力家でした。織田信長からの困難な命令(仕事)を達成し、織田信長から認められ出世していきました。
若い頃の豊臣秀吉は、相手の心を読むことに長けていました。
又、世の中の大きな流れを読むことにも長けていました。
私は、相手の心見通す(相手の心を読む)能力が秀吉を天下人へと導いたのだと考えています。
長い日本の歴史の中で、農民出身で、関白(征夷大将軍より位は上です)まで登り詰めた人は、豊臣秀吉しかいません。
各時代で、朝廷の要職に就いた者や、征夷大将軍になった者達は、全て名家の生まれであり、貴族や武士の身分です。
農民の身分で、天下を握った秀吉は『日本では出世の象徴』とされてます。
天下を握るまでは、とても長い道のりです。様々な困難を乗り越え天下を握った豊臣秀吉は、どれだけ努力をしたのか、理解できると思います。
普通の人には真似のできないことです。
残念なのは、秀吉の人間性は年齢と共に変化していきました。
私の推測ですが、幾多の戦の中で、残酷な場面を多く目撃し、人としての心が壊れていったのだと考えています。それ故、年老いた秀吉は残酷な性格に変化していました。非常に冷徹な正確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天下を握ったことで、思い上がっていたことも関係しているのでしょう。
織田信長の命令を受けて、一生懸命仕事していた、若い頃の秀吉とは全く違う、冷徹な人間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韓国では、豊臣秀吉は最悪の人間ですから、受け入れることは困難だと思いますが、若い頃の豊臣秀吉は、優しい心を持ち合わせた努力家でした。
とても優秀な家臣でしたから、織田信長に気に入られて出世していきました。
織田信長は、身分にとらわれることなく、仕事のできる有能な人間を出世させました。
織田信長が存在しなければ、豊臣秀吉や徳川家康が天下を握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織田信長が、本能寺で死ななかったら、天下を統一していたでしょう。織田信長は、日本の歴史ファンの間で、一番人気のある人物です!
織田信長は、何を考えているのか?家臣の中で、織田信長の気持ちや戦略を一番よく理解していたのが、豊臣秀吉でした。
秀吉は相手の考えてることを読み取る能力が高かったからです。
머리도 좋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구나...
인물전 쌉좋아하는데 이완용이랑 도요토미는 감명받음 그들이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현대사회에 살아가려면 필요한것들은 너무 많음
젊을때 너무고생해서 정자에 문제가 있었을수도...
뭔 둑을쌓아 성이 물에잠겨 그정도 비가오는 지역이면 저런벽없어도 저 뻘꾸디에 다 끝났지 뻥이다 그냥 고립시키기 작전이겠지
일본은 우리보다도 더 비나 눈이 많이 오는 기후니 가능했을겁니다
둑을 쌓아서 인근의 강물의 흐름을 바꾼 뒤 둑의 일부분을 터트려 강물이 성쪽으로 쏟아지게 만들어서 다카마츠 성이 물에 잠기게되어 성병 5천명이 성의 가장 높은 부분에서 고립되었다고 합니다. 군사 칸베에 드라마보시면 잘 나옵니다.
조조가 업성을 수공으로 성안을 수몰
@사가타긴토 업성은 워낙 커서 겨울에 발을 얼게하는 정도의 수공이였다면 다카마쓰성은 작으니 제대로 침수되어서 도우러 온 모리 원군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죠.
결국침략해서 하지말아야할 살육의 전쟁을 일으켰군 압
악마.
능력치
선조
그래서 일본인들이 저런 부분 서로 알아줘
순발력 개그맨
양동이 몇개에 수면이 얼마나 올랐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수하 오다 노부나가에게 가서 밑바닦 부터 시작해서 일을 하여..... 관백까지 올라갔지만.....임진왜란을 일으킬때 중국 대륙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을 차지 할려고 했지만..... 너무나 빈틈이 많았던것의 현실 ㅎㅎㅎㅎㅎ
선조 빤쓰런과 이순신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먹을뻔 했죠.
왕이 도망다니는데 어케 조선을 먹음
히데요시는 출신은 미천해도 희대의 간웅이네요.
이런류의 인간이 막부시대 그정도 위치까지가는 과정에 얼마나많은 비리와 야합이 있었을까.전국시대니까 가능했을라나.
도요토미도 가난을 딛고 일어났지만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ㅜ
은근히 히틀러와 공통점이 많음
역사상 부자간 키차이가 가장많이나는 사례가 히데요시와 히데요리라고합니다. 히데요시는 140 히데요리는 197정도
어머니가 키가 크나봐용 현재 이재용 이건흐 전 회장 보면 알수 있조
@@youngmokang6733 네 어머니인 요도기미가 키가 165~170정도라네요
물로 흥한자 물로 망하리
309회가 없네요
히데요시 에이즈 안걸렸나?
히데요시는 동성애 안해서 안걸림~
유곽만들어 매독환자 늘린 히데요시.
에이즈는 20세기 초반 아프리카에서 전파된 질병.
당시에는 에이즈는 모르겠고 매독이 유행했습니다. 이에야스의 2남 유키 히데야스도 매독으로 요절했고 말년에는 매독 때문에 코를 잘라내기도 했습니다.
우대한 인간승리네여
자식의 키는 어머니를 따른다는건 몰랐던시대였나보군
그 시대에 사람들은 경험적 법칙을 몰랐을까? 부계도 무시못함
난아직도 모르겠다. 금술잔이 왜 떠오르지?
잔이니까 뜨는거지
쇠로 만든 배가 바다를 떠다니듯이
쇠로 만든 배가 바다를 떠다니듯이
속이 빈 잔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