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영웅으로 보는 것은 한국인의 주관이므로 아무래도 좋지만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다. 3승 20패 정도다. 이순신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일본군이 무장하기 전 첫 2개월뿐이다. 일본군 배가 대포를 장비하고 곶에 포대를 설치하자 조선 수군은 무력화되어 연전 연패였다. 다음은 상황과 그것이 쓰여 있는 문헌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해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뒤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비만에 시력도 나쁜데다 촌마게가 아닌 진성 탈모였으며 일을 결정하는데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다보니 셈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노부나가가 가신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걷어차며 뒷간 돼지가 어줍잖게 똑똑하니 이걸 어찌 써야 좋겠느냐며 모욕을 주었다는 민담이 있긴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단한거지, 일본이 그 정도로 유연한 사회는 아니었음. 물론 가지고 있는 기술이 뛰어나다면 어느정도 잘먹고 잘 살수 있었지만 조선만큼이나 폐쇄적인 계급사회였음. 열심히 노력한만큼 얼마든지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건 판타지;; 그나마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기술자라면 도공 정도였을거임.
억압된 어린시절삶이 성인이된후 성공하면 자신의 자격지심에 반격하고자 큰일을벌려서 자기의 존재가치를 높이고자하는 마음이 참 안타깝다. 이렇게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해주시고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과거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ㅋㅋ전형적인 좌파식 해석같은데 ㅋㅋㅋㅋ 농민출신이 관백 자리에 오름.. 감히 쇼군 자리에 오를수가 없음 명분도 없고 다른 다이쇼들이 인정을 못하니까 ㅋㅋ 근데 봉지는 한정적인데 논공행상을 해야하고 만족을 못하면 반란이 날테니 당연히 조선땅 먹는놈 가져라로 내부 분열을 외세로 돌린거인데 무슨 개똥철학 소리입니까 ㅋㅋ 그리고 출세하려고 신발을 품은거지 충성하려고 신발을 품었다는 저런 헛소리가 참ㅋㅋ
차라리 따라했다면 조조의 하비성 공략을 따라했다는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하비성 공략도 연의서술이라 실제로 수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살수대첩은 수공이 아니라 보급이 부족해서 후퇴하던 수나라군이 도하하는 상황에서 공격해서 궤멸시켰다고 하네요 수공으로 궤멸시켰다는건 오해였다고 하네요 수십만명 쓸어버릴 위력이면 진짜 큰 댐을 지어야하고 현대에나 겨우 가능할거라면서요 설령 그 시절에 그런 댐을 짓는게 가능하다쳐도 워터파크에서 파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 수장시켜주세요~"하면서 멍청하게 있어야 가능하다면서요
3명 다 그당시 일본에서 대단한 인물이었던거임 히데요시 같은경우 밑에 하인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무사계급 더 나아가 오다에 유력한 영주가 된것이고 이에야스 같은경우 가문이 거이 이마가와에 속국이었지만 벗어나 독립적(미카와가신단에 충성심)이고 강력한 영주로 거듭난것이고 노부나가 같은경우 그당시 보편적 생각과 다른 혁신적인 생각과 마인드로 성공한것이죠 오다가 절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저당시에는 영주 승려 잇키(민병대) 강력했슴니다 오사카가 그당시 승려들에 총본부여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승려들이 오다가문을 싫어했기때문에 엄청난 갈등이 일어난것이죠 절이 영지를 가지고있는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을 테지만 당시엔 승려들의 권력이 막강했다고 하더군요.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것을 대부분 컨텐츠에서도 다루는 걸 보면. 대놓고 정치를 하지 못했을 뿐. 조총을 제작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도 하고. 다른 영주와의 싸움보다 그들과의 싸움이 가장 치열해 보이기도 합니다.
척추관협착증. ‘척추관협착증’이란 척추 가운데 관 모양의 속이 빈 곳이 좁아져 허리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3년 7월경 허리 통증이 극심하여 몹시 아플 때 소위 강남의 유명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더니 척추전방전위증과 척추관협착증이 심하다고 하여 수술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으니 나사못으로 허리 뼈를 고정한다는 설명을 듣고 수술 받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후 불교에서는 혹시 허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신비한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던 중 고통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으니 원인을 알아서 제거하면 된다는 것을 배우고, 허리 통증의 원인이 중력임을 깨닫고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등산과 역도 등 운동으로 허리를 튼튼하게 단련하여 큰 불편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병원에서는 제가 척추관협착증과 척추전방전위증세가 심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큰 어려움 없이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할 수 있는지 궁금하여 부산에 있는 K정형외과 원장에게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이 실제로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즉, “ 척추신경을 보호하는 척추관은 튼튼한 뼈로 된 구조물로,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구조물이 아니고, 설령 나이가 들면서 척추관이 조금 좁아지는 퇴행성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척추신경은 충분한 여유 공간을 두고 보호받게 되어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현재까지 많은 환자를 수술했지만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답을 해 왔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다면 단순히 허리가 아픈 정도가 아니고 신경이 마비되어 설악산 대청봉을 즐겁게 등산하거나 역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리 병은 맹장처럼 한번 수술해서 낫는 병이 아니라 ,배 고픈 상태를 삼시세끼 밥 먹어서 없애듯이 운동으로 허리 주변근육을 강화하며 관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허리 통증으로 수십 년간 고통을 당하고 극복하며 철저히 검증한 결과입니다.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 희 숙 서초동 졸저에는 히포크라테스와 고대 그리스 의사들의 허리 치료 방법도 소개하였습니다. 이글은 로마교황청 WHO.,미국대통령. 하바드대학교 의과대학 주한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이태리.스웨덴 대사에게 보내드렸습니다. Lumbar spinal canal ‘Lumbar spinal canal” is a disease that causes back pain due to narrowing of the tube-shaped hollow part of the spine. I went to a famous hospital in Gangnam to take an MRI around July 2003 when my back pain was severe and I decided to operate because I heard that my spondylolisthesis and lumbar spinal canal were severe. However, when I asked what and how to do the surgery, I heard that they would fix the waist bone with a screw nail, so I gave up on getting the surgery. After that, I thought that there might be a secret to strengthen my back in Buddihism. And while studying at Dongguk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Buddhism, I learned that pain must have its cause, so I can remove the cause on my own. Realizing that the cause of back pain is gravity, I train my back strongly with exercises such as hiking and weight lifting that can overcome gravity, and now I live a daily life without much inconvenience. Is there actually a disease called Lumbar spinal canal? The hospital said I had serious spondylolisthesis and lumbar spinal canal. I was curious about how I could climb Daecheongbong Peak of Seorak Mountain without much difficulties, So I asked head of K Orthopedic in Busan if there was a disease called Lumbar spinal canal. The doctor said that there was not such a disease. In other words, he said, “The spinal canal that protects the spinal nerve is a strong bone structure, not as loose as experts explain, and even if the spinal canal narrows down a little with age, the spinal nerve is protected with sufficient space. So far, I have operated on many patients, but I have never seen the spinal canal press against the nerves”. I’m not a doctor, so I don’t know if the spinal cord is actually pressing against the nerves. However, if the spinal canal presses down on the nerves, it will not just hurt your back, but your nerves will be paralyzed, so you will not be able to enjoy hiking at Daecheongbong Peak in Soeraksan Mountain or weight lifting. I learned that spine disease is not a disease that can be cured by surgery like an appendix surgery. Instead, you should strengthen and manage the muscles around your waist by exercising. It is like to get rid of your hunger by eating three times a day. This the result of my thorough verification after decades of suffering and overcoming back pain. Hie-Sook Lee Author of the book “Why do people have neck, back, and knee pain?” 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저자 이 희숙
처세가 매우 강했지요. 주변국이 모두 형제국이었습니다. 화살 3개 이야기도 이집안 이야기지요. 이집안의 봉지 조슈번에서 사무라이들이 자신들만의 신념을 이념화하고 일어나것이 메이지유신이고, 조선을 삼키고 전쟁을 통해서만 부국을 추구하는 국국주의 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아베 외조부가 그지역 출신의 우익 정치인이죠. 물론 아베도 그 영향하에 있고... 그곳이 지금 우리가 가깝다고 많이 놀러가는 야마구치현입니다.
멘탈 만큼은 최강이다. 바늘장수 변소지기 마부 신발꾼 거치고 거치고 거쳐서 결국 전국통일 태합. 근데 말년엔 무슨 노부나가 귀신이라도 씌였던건지 스타일과 맞지않은 불 같은 과격한 행동과 판단을 많이 했다. 히데요시의 마음 한 구석엔 자신의 롤모델, 패왕이자 이상형이였던 노부나가가 죽는 순간까지 자리잡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히데요시 우리가 한국이어서 저평가 하는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상 최고의 참모중 하나인듯 저사람 계획이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고 명나라를 정복하는건 실제로 가능했을거라고 보임 만약에 성공했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영국에서 일본으로 바뀌고 제국주의 의 시작을 400년가까이 앞당길수 있었을 테니 .... 이순신 아니었으면 조선도 멸망하는게 정상이었음
명과 조선의 사이의 정치역학에 대해 일본이 정보가 부족해서, 정명가도가 문자 그대로 지나가기만 하겠다고 일본이 순진한 발상을 했다는 해석도 있더군요 ㅋㅋ 실제로 일본 전국 시대에 각 번의 영주들끼리 그런일이 자주 있었으니, 그 논리가 조선에서도 통할 줄 알았던거구요. 당연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죠 ㅋ 형님으로 모시는 나라를 치러 가라고 길만 빌려주는게 말이 안되죠. 그건 길만 빌려주는게 아니라 동맹국 뒷통수 후려치는건데
13:50 첨언을 드리자면 이에야스의 본거지는 나고야 옆동네였던 오카자키쪽에 있었다가 히데요시가 득세하자 도쿄로 쫒겨납니다. 근데 여기서 병력자출을 명령하면 무조건 또다른 내전으로 갈텐데 이에야스는 내전으로 끌고가기엔 부담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이미 오다 잔존세력과 결탁해서 한번 붙어봤는데 히데요시가 처참히 깨지고 강화요청 해올정도로 쎘습니다.
이순신을 영웅으로 보는 것은 한국인의 주관이므로 아무래도 좋지만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다. 3승 20패 정도다. 이순신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일본군이 무장하기 전 첫 2개월뿐이다. 일본군 배가 대포를 장비하고 곶에 포대를 설치하자 조선 수군은 무력화되어 연전 연패였다. 다음은 상황과 그것이 쓰여 있는 문헌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해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뒤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대단한 인간이지
맨땅에서 천하인에 올랏으니까
히데요시는.. 민의 민심이다..
⭕강한 국방력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
❤강력한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대한민국❤
토요토미증후군
억압된 어린시절삶이 성인이된후 성공하면 자신의 자격지심에 반격하고자 큰일을벌려서 자기의
존재가치를 높이고자하는 마음
권력자들과 장사꾼들이 이러한 증후군을 보일때가 많다
찢죄명이네
님은 해석방식이 좌파 증후군 같네요 ㅋㅋㅋ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임진왜란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었지만 결국 그걸 잊은 후손은 나라를 일본에 통째로 넘겨주는 비극을 맞았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병합시대의 조선인은 행복했다. 매일 섹스하고 35년간 인구가 두 배로 늘었다. 가난으로 결혼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한국인보다 훨씬 행복하다.
도요토미는 어릴때부터 자존심이없고 가축이라 놀림받아도 별 타격이없었음 자신한테도 무자비하고 잔인했음 오로지 목표를 정하고 정진만한 인물
서민청년들의 롤모델로 부족함이 없다만 멘탈부분에서는 난이도가 높군요.
서민일수록 칼을 갈아야되는데 요즘애들 그런거없음ㅋㅋ 돈벌기엔 개꿀이긴함
쟤를 롤 모델로 삼기에는 일반인의 정신력은 못 버티죠 ᆢ
정신력은 진짜 말도 안되긴 하다. 몇천만명중 한명 나올까 말까한 멘탈이네
오다. 울지 않는새 죽여 버린다
도요토미. 울지 않는새 울도록 만든다 ㅋ
도쿠가와. 울지 않는새 울때까지 기다린다
이런거보면 진짜 사람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름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
오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거임
@@음-x7t ㅇㅇ
@@음-x7t 이런 경우가 조선에도 있었는데?
@@thqngjdb5832 ㄴㄱ
@@rock-c9o 반석평
선생님.. 세키카히라 ... 기다립니다.
자수성가한 센코쿠시대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의민도 그렇고 주원장도 그렇고 도요토미히데요시도 그렇고 자수성가한 인물은 호불호를 떠나서 매력적인건 사실임.
궁예는요? 밑바닥에서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 다음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계획을 무참하게 짓밟아줄 이순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ㅋㅋㅋ
이순신을 영웅으로 보는 것은 한국인의 주관이므로 아무래도 좋지만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다. 3승 20패 정도다. 이순신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일본군이 무장하기 전 첫 2개월뿐이다. 일본군 배가 대포를 장비하고 곶에 포대를 설치하자 조선 수군은 무력화되어 연전 연패였다.
다음은 상황과 그것이 쓰여 있는 문헌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해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뒤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이순신의 승
저기요.. 고구려는요
오다노부나가는 할복자살한것이 아니라, 불타는 혼노지 불속으로 들어가 타서 죽은건 아닌가요. 그래서 시체도 못찾았고
오다. 울지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린다 🔪 🐦
도요토미. 울지않는 두견새는 울게 만든다 🧠 🐦
도쿠가와. 울지않는 두견새는 울때까지 기다린다 🙇♂️ 🐦
하도 많이 봐서 지겹다. 이 글에 무슨 감동을 느끼는건지 꺼덕하면 나와. 별것도 아닌데
@@zorosz55 이순신: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것도 별거아닌거데 드럽게빨아줌
@@user-sx5jmhfybb78 모든전장에서 장수는 다 그럴꺼 같은데 말이죠
@@zorosz55 모든전쟁에 장수들이 그러면 별것도아닌거 맞네 ㅋ
병걸린분들 많네
가장 미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2 사람 인간 승리,,,미천한 거지에서 명나라 황제가 된 주원장 ,,,변소지기 에서 천하 들 가진 토요토미..역사상 가장 큰 산분 상승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2사람 ㅋㅋ 한글 파괴는 어디까지....
사람이
때를
잘만나면영웅이된다
규현이 .. 누나 초밥 .. ㅋㅋㅋㅋ
와 무슨 광고가 3분마다 나오냐 ㅋㅋㅋㅋㅋㅋㅋ 대단하다 tvn
뭔 광고드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키치로와 히데 노지.
오다가 하사한 히데요시.
요괴라는 각색이 있었지만
인왕2 라는 게임으로
전국시대의 흐름을 재밌게
접했던 기억이 있네요.
아케치가 대머리 였는데 오다가 아케치한테 대머리라고 놀려대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설도 있다는데
그러면 킹정이지ㅋㅋ
하여튼 졸부들이 인성 파탄 나서 밑에 사람들 한테 막말하고 함부로 대하는게 동서고금 막론하고 똑같음
아케치 미츠히데는 비만에 시력도 나쁜데다 촌마게가 아닌 진성 탈모였으며 일을 결정하는데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다보니 셈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노부나가가 가신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걷어차며 뒷간 돼지가 어줍잖게 똑똑하니 이걸 어찌 써야 좋겠느냐며 모욕을 주었다는 민담이 있긴합니다.
노부나가가 불이라면 미츠히데는 물이였으며 히데요시는 불이 더 잘 타도록 하는 기름이였습니다.
난 비티에스가 세계 일인자 됏으면 좋겟타
일본은 그래도 야망이란게 있네. 인도까지 갈 생각을 했다니
관백,쇼군 이런 명칭을 사극속 일드나 일영에서 많이 나오는 명칭인데
역사적 이해없이 볼때는 이해안되었는데
조금은 이해되네요
쇼군은 총독같은거구요. 관백은 재상 태합은 섭정대신이죠
도요토미는 생긴것도 땅딸보에 못생김.. 하지만 야심하나만은 있었음 정말 대단한 인물 시작도 아무런 백그라운드없이 하급아시가루에서 시작
점마들보다도 나까무라순사가 더 무서웠다
ㅋㅋㅋㅋ
의문점 .. 3일 일주일만에 쿄토로 진격했다는대 ?
은지원이 졸지않고 듣고 있다는게 놀라움...
재미있거든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스고이데스네!
타쿠야님의 설명 좋네요.^^
토요토미의 야망이 좋은 곳에 쓰였었으면 ㅜ
히데요시 부하들과 농담 따먹기 잘하고 의외로 소탈했다는 글 어디서 본적 있는거 같은데..
맞음 은근 유쾌했다함 성에있던 사람들도 유쾌했고 지금은 도요토미성주변에서 거의 죽임을 당해 유령이되어서 심령스팟 농담따먹기하던 유쾌한 여자귀신을 봣다는 썰도
그런거 보면 이순신 장군이 주인복이 없다. 고니시 가토 이시다 전부 충성했는데
소탈하지는 않았고 말빨이 엄청났음ㅋㅋ
군인보다는 장사꾼스타일
대망을 보면 히데요시는 농부의 아들인데, 갑자기 변소지기??? 대망 보면 오다 노부나가 처음 만나서 했던 일이 변소지기가 아니라 노부나가 말 관리 하던 것이었음.
지도자가 중요한거지. 지금 현재도 그렇고. 절대 우습게 보이면 안되는데. 진짜 창피하다.
선조실록이니까 도요토미 깍아내릴려는게보이네
조선을 식민지 삼고 중국까지 먹는 다는 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은 결국 나중에 이또오 히로부미에 의해 이루어지죠.
아님
이토도 천민 출신이로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둘이 비슷한 점이 있음
@@BeatleRin 풍산수길은 농민 출신이었지만 이등박문은 하급 사무라이 집안 이었음
@@markryu1863도요토미는 노부나가 노비에요. 농민보다 아래죠
에도막부 무너뜨린게 도요토미 충성파 후예들이라던데
한국인 코랑 귀 다 베어버리라하고 그걸 일본에서 영수증으로 써라햇던 행님
조선과 일본의 신분상승 ㆍ조선은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거의 불가능했으나 일본은 무신사회로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유연한 사회 였음
과거시험을 ㅈ으로 보노?
@@UA-campremiumgagyeoknatchura ㅡ 양반은 조선인구의 약 3% 인구ㆍ97%는 3%를 위해 무상봉사ㆍ무상으로 굿은일 ㆍ무상착취 당했다 ㆍ3%에게만 주어지는 과거시험 ㅡ 개망나니 사고나 집어던저버려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단한거지, 일본이 그 정도로 유연한 사회는 아니었음. 물론 가지고 있는 기술이 뛰어나다면 어느정도 잘먹고 잘 살수 있었지만 조선만큼이나 폐쇄적인 계급사회였음. 열심히 노력한만큼 얼마든지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건 판타지;; 그나마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기술자라면 도공 정도였을거임.
@@냥냥-m3h9i당장 이토 히로부미도 천민 출신임
@@BeatleRin 그리고 또?
일본 사극중 군사 칸베이 보면 도요토미히데요시의 광기를 볼수 있음 ㅋㅋㅋ 배우가 딱임 예전에 완전한사극에 출연했던 배우
억압된 어린시절삶이 성인이된후 성공하면 자신의 자격지심에 반격하고자 큰일을벌려서 자기의 존재가치를 높이고자하는 마음이 참 안타깝다. 이렇게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해주시고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과거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병합시대의 조선인은 행복했다. 매일 섹스하고 35년간 인구가 두 배로 늘었다. 가난으로 결혼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한국인보다 훨씬 행복하다.
ㅋㅋ전형적인 좌파식 해석같은데 ㅋㅋㅋㅋ 농민출신이 관백 자리에 오름.. 감히 쇼군 자리에 오를수가 없음 명분도 없고 다른 다이쇼들이 인정을 못하니까 ㅋㅋ 근데 봉지는 한정적인데 논공행상을 해야하고 만족을 못하면 반란이 날테니 당연히 조선땅 먹는놈 가져라로 내부 분열을 외세로 돌린거인데 무슨 개똥철학 소리입니까 ㅋㅋ
그리고 출세하려고 신발을 품은거지 충성하려고 신발을 품었다는 저런 헛소리가 참ㅋㅋ
토요토미 히데요시 .. 배우고 싶다.
하시바 히데요시
근데 일본이 임진왜란때 조선을 차지하고 명이랑 협상해서 신하의 나라가 된다고 했으면 역사가 엄청 봐뀌었겠내요 ㄷㄷ
사람의본성은
악하다
잘해주면더악해진다
기어오르니,
히데요시가 임진왜란만 안일이키고 전국통일하고 관백자리서 만족하고 섬나라 다스렸다면 전세계역대 정치가들중에 1인자가 됐을거다 그시대는 신분의시절 히데요시같은자가 정점에 선다는건 전세계 어느역사에도 없었다
주원장은요?
변소지기 ? 어느 자료에 나온 이야기인지 ?
선조실록이라잖아 제대로좀 봐라
@@juniors7524 그러니깐 선조실록 어느 장에 나와있냐고 묻잔냐
조선족이냐 한국어 모르냐
징허네
@@자그라-p5c 니 질문에 어느장에 나온건지 묻는 말이있냐? 한글못하면 글을 쓰질마ㅋ
배웁니다
풍신수길이 을지문덕장군님의 수공작전을.... 설마.
차라리 따라했다면 조조의 하비성 공략을 따라했다는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하비성 공략도 연의서술이라 실제로 수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살수대첩은 수공이 아니라 보급이 부족해서 후퇴하던 수나라군이 도하하는 상황에서 공격해서 궤멸시켰다고 하네요
수공으로 궤멸시켰다는건 오해였다고 하네요
수십만명 쓸어버릴 위력이면 진짜 큰 댐을 지어야하고 현대에나 겨우 가능할거라면서요
설령 그 시절에 그런 댐을 짓는게 가능하다쳐도 워터파크에서 파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 수장시켜주세요~"하면서 멍청하게 있어야 가능하다면서요
오다 사진이 진짜냐ㅡㅡ
뭔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감이 가.... 임진왜란때 참여안한거 잘했어~
꿈은 위대하나ㅡ
중국이나.조선이
순순히 응해주며.
자국을 일본에게
넘겨주나.
야망은 크나
현실성이 없는 야망
일본과 몽골에 차이 몽골은 대륙중앙에 자리잡았기에 동쭉은 만주 남쪽은 중국 서쪽은 유럽까지 기병으로 몽고가면 되지만 일본은 섬이라 대륙진출이 불가능하죠
오다나 도쿠가와는 아래를 모른다.
3명 다 그당시 일본에서 대단한 인물이었던거임 히데요시 같은경우 밑에 하인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무사계급 더 나아가 오다에 유력한 영주가 된것이고 이에야스 같은경우 가문이 거이 이마가와에 속국이었지만 벗어나 독립적(미카와가신단에 충성심)이고 강력한 영주로 거듭난것이고 노부나가 같은경우 그당시 보편적 생각과 다른 혁신적인 생각과 마인드로 성공한것이죠 오다가 절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저당시에는 영주 승려 잇키(민병대) 강력했슴니다 오사카가 그당시 승려들에 총본부여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승려들이 오다가문을 싫어했기때문에 엄청난 갈등이 일어난것이죠 절이 영지를 가지고있는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 vs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모리 란마루 이게 다 동성애 관계인것 같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을 테지만 당시엔 승려들의 권력이 막강했다고 하더군요.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것을 대부분 컨텐츠에서도 다루는 걸 보면. 대놓고 정치를 하지 못했을 뿐. 조총을 제작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도 하고. 다른 영주와의 싸움보다 그들과의 싸움이 가장 치열해 보이기도 합니다.
병합시대의 조선인은 행복했다. 매일 섹스하고 35년간 인구가 두 배로 늘었다. 가난으로 결혼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한국인보다 훨씬 행복하다.
오다.. 정말 잔인한 장수였죠.
웃어라.웃어줘.웃곘지
일본분 미남이내
비정상회담 타쿠야잖음
배타고 화남 지방 쪽에 상륙하면 되잖아? ㅋㅋㅋㅋㅋㅋ
척추관협착증.
‘척추관협착증’이란 척추 가운데 관 모양의 속이 빈 곳이 좁아져 허리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3년 7월경 허리 통증이 극심하여 몹시 아플 때 소위 강남의 유명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더니 척추전방전위증과 척추관협착증이 심하다고 하여 수술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으니 나사못으로 허리 뼈를 고정한다는 설명을 듣고 수술 받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후 불교에서는 혹시 허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신비한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던 중 고통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으니 원인을 알아서 제거하면 된다는 것을 배우고, 허리 통증의 원인이 중력임을 깨닫고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등산과 역도 등 운동으로 허리를 튼튼하게 단련하여 큰 불편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병원에서는 제가 척추관협착증과 척추전방전위증세가 심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큰 어려움 없이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할 수 있는지 궁금하여 부산에 있는 K정형외과 원장에게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이 실제로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즉, “ 척추신경을 보호하는 척추관은 튼튼한 뼈로 된 구조물로,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구조물이 아니고, 설령 나이가 들면서 척추관이 조금 좁아지는 퇴행성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척추신경은 충분한 여유 공간을 두고 보호받게 되어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현재까지 많은 환자를 수술했지만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답을 해 왔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척추관이 신경을 누르고 있다면 단순히 허리가 아픈 정도가 아니고 신경이 마비되어 설악산 대청봉을 즐겁게 등산하거나 역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리 병은 맹장처럼 한번 수술해서 낫는 병이 아니라 ,배 고픈 상태를 삼시세끼 밥 먹어서 없애듯이 운동으로 허리 주변근육을 강화하며 관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허리 통증으로 수십 년간 고통을 당하고 극복하며 철저히 검증한 결과입니다.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 희 숙 서초동
졸저에는 히포크라테스와 고대 그리스 의사들의 허리 치료 방법도 소개하였습니다.
이글은 로마교황청 WHO.,미국대통령. 하바드대학교 의과대학
주한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이태리.스웨덴 대사에게 보내드렸습니다.
Lumbar spinal canal
‘Lumbar spinal canal” is a disease that causes back pain due to narrowing of the tube-shaped hollow part of the spine. I went to a famous hospital in Gangnam to take an MRI around July 2003 when my back pain was severe and I decided to operate because I heard that my spondylolisthesis and lumbar spinal canal were severe.
However, when I asked what and how to do the surgery, I heard that they would fix the waist bone with a screw nail, so I gave up on getting the surgery. After that, I thought that there might be a secret to strengthen my back in Buddihism. And while studying at Dongguk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Buddhism, I learned that pain must have its cause, so I can remove the cause on my own.
Realizing that the cause of back pain is gravity, I train my back strongly with exercises such as hiking and weight lifting that can overcome gravity, and now I live a daily life without much inconvenience.
Is there actually a disease called Lumbar spinal canal?
The hospital said I had serious spondylolisthesis and lumbar spinal canal. I was curious about how I could climb Daecheongbong Peak of Seorak Mountain without much difficulties, So I asked head of K Orthopedic in Busan if there was a disease called Lumbar spinal canal.
The doctor said that there was not such a disease. In other words, he said, “The spinal canal that protects the spinal nerve is a strong bone structure, not as loose as experts explain, and even if the spinal canal narrows down a little with age, the spinal nerve is protected with sufficient space. So far, I have operated on many patients, but I have never seen the spinal canal press against the nerves”.
I’m not a doctor, so I don’t know if the spinal cord is actually pressing against the nerves. However, if the spinal canal presses down on the nerves, it will not just hurt your back, but your nerves will be paralyzed, so you will not be able to enjoy hiking at Daecheongbong Peak in Soeraksan Mountain or weight lifting.
I learned that spine disease is not a disease that can be cured by surgery like an appendix surgery. Instead, you should strengthen and manage the muscles around your waist by exercising.
It is like to get rid of your hunger by eating three times a day. This the result of my thorough verification after decades of suffering and overcoming back pain.
Hie-Sook Lee
Author of the book “Why do people have neck, back, and knee pain?”
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저자
이 희숙
풍신수길씨죠? 아 난.. 이순신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오다 사망 후 오다 딸들을 첩으로 삼는 시종 출신 히데요시.ㄷㄷㄷ.주군이라고 부르다가 ㄷㄷ
히데요시도 결국 지죽고 자식들 다 도쿠카와 한테 작살남 ㅎㅎ
그냥 이세끼들은 무식한 쓰레기일뿐 가오만잡음
오다 여동생 딸 아님요?
무식하기는 오다 여동생 딸중 맏딸을 첩으로 삼고 거기서 태어나 아들이
도쿠가와 손녀와 결혼하나 오사카 여름전쟁때 엄마랑 자폭하고 손녀만
구출되어 재혼함
산노마루 도노~~오다 딸=히데요시 첩.유명한 요도도노는 여동생 딸 맞네요
이놈들은 언젠간 또 침략의 발톱을 드러낼거다
10만양병설이 이뤄졌어도 일본의 20만대군과 화승총을 버텼을까?
없어도 버텼으니 있었으면 훨씬 좋죠 글코 방어군입장이 유리하니까
임진왜란에서 압도적으로 당하지는 않고 어느정도 대등한 전투로 운이 따르면 초기에 일본군들이 물러가서 한반도전체가 전란으로 황폐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십만양병설은 정말 탁월한 전략인것 같다 신하가 좋은 안건을 내어도 주군이 채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뭐
십만양병설 그대로 따랐으면 반란일어나서 조선이 사라졌을꺼임 ㅋㅋ
글쌔요? 용인전투에서 조선군6만 와키자카1600명한데 도망가서 죽은거 보면 십만이라 해도.....모르겠네요.
작가님 . 피디님. 고구려는요...
잠깐 꿈이 이루어 졌지 제국주의
침략 날짜가 5월이 아니고 4월 아닌가?
음력으로는 4월13일 양력으로는 5월23일 양력으로 말씀하신것 같네요
@@라이키-g1t 아 그런것 같네요.
안타깝네 일본 통일만 안됐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금 및 왕이되고 … 그다음엔 황제 및 천황이 됐을수도 ~
그 당시 황실과 권력은 완전히 분리된 상태였죠 그래서 괴랄한 쇼군 (마치 고려 무신정권 같은) 이 탄생했던 거고요. 그래서 천황이 된다는건 일어날수 없었던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임금, 왕의 역할을 하는 정이대장군(쇼군)이 있었지만, 이 또한 쇼군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가문의 후손만 가능함(源氏 원씨 가문).
그래서 농민출신이었던 히데요시는 관백, 태합이라는 직급으로서 일본을 통솔했던 것.
@윤석열 도요다 다이쥬 반자이~!!! 다시 목포와 군산의 번창을 위해 일제 강점기로...
@@shu4213 한국이라면 쌉가능한데 ㅋㅋ 본래 한국 왕은 고씨 박씨 뿐이 엿는데 이씨가 장악하더니 왕이 됏으니 ㅋ
@shu4213 관백 태합이 쇼군보다 높은관직인데요. 관백은 재상 태합은 섭정대신 쇼군은 총독 비슷하거고
도키치로..
도쿠가와는 영주잖어 말듣는건 도요토미랑은 다르지요..
모리가도 진짜 운좋은게 오다가 도쿠가와가를 가장 적대 했는데도 가 살아남음…
처세가 매우 강했지요. 주변국이 모두 형제국이었습니다. 화살 3개 이야기도 이집안 이야기지요.
이집안의 봉지 조슈번에서 사무라이들이 자신들만의 신념을 이념화하고 일어나것이 메이지유신이고, 조선을 삼키고 전쟁을 통해서만 부국을 추구하는 국국주의 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아베 외조부가 그지역 출신의 우익 정치인이죠. 물론 아베도 그 영향하에 있고...
그곳이 지금 우리가 가깝다고 많이 놀러가는 야마구치현입니다.
일륜의 데마르카시온 생각나네 ㅎㅎ
멘탈 만큼은 최강이다.
바늘장수 변소지기 마부 신발꾼 거치고 거치고 거쳐서 결국 전국통일 태합.
근데 말년엔 무슨 노부나가 귀신이라도 씌였던건지 스타일과 맞지않은 불 같은 과격한 행동과 판단을 많이 했다.
히데요시의 마음 한 구석엔 자신의 롤모델, 패왕이자 이상형이였던 노부나가가 죽는 순간까지 자리잡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도요토미는 그 전에 선배들이 깔아줘서 운으로 전국통일 한거에 열등감 때문에 대륙을 침략하면 능력을 인정 받을수 있다라는 망상을 가졌다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사실인지 몰라도 일본 역사 전문가들이 그런 말을했죠
@@tva6445그게 아닙니다 ~ 전국 통일을 이룬뒤 전국 대통합을 위해 그리고 이제 막 통일을 해서 혼란스러움을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침략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 ㅎ
적은 혼노지에 있다
아케치 미쓰히데
그때도요토미가명나라를노리지말고조선만정복했으면남북이분단도안돼고아직도쓰레기같은친일파도안생겼을걸요즘은이나라에서태어난게쪽팔린다정부건일반인이건이제는대놓고친일을하니이딴게나라냐
아직도 친일타령하는병신이,,, 중공에게는 말도못하는 것들이,,
도키치로
히데요시 우리가 한국이어서 저평가 하는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상 최고의 참모중 하나인듯 저사람 계획이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고 명나라를 정복하는건 실제로 가능했을거라고 보임 만약에 성공했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영국에서 일본으로 바뀌고 제국주의 의 시작을 400년가까이 앞당길수 있었을 테니 .... 이순신 아니었으면 조선도 멸망하는게 정상이었음
히데요시는 삼국지에 조조랑 비슷한가요?
근데 오다 노부나가도 500년전 사람인데 사진이 어떻게 있죠? 그림이라기엔 너무 사진 같은데요
사진 찍으면 영혼이 뺏기는 조선인답네요
네덜란드 상인들이 찍어줌.
@@김레이-g5s 카메라는 180년 전에 처음 발명됐습니다 선생님.. 오다 노부나가는 임진왜란 때 사람이고요...
@@inalove2 오다가 죽고 히데요시가 태정대신이됬는데 무슨 임진왜란 사람임?
@@user-sx5jmhfybb78 아니 오다가 임진왜란 때 사람인게 즁요한게 아니고 아찌됐던 사진이란게 없었을 시절에 사진이 존재한다는게 중요한거 아님? 그래서 님이 말하는 그시절에 카메라 라는 물건이 존재했음?
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쁘다고 보는데
악질쓰레기이긴한데 강적이였음
이순신장군님 없었으면 히데요시때문에 일제강점기 500년 확정이었다.
한국인으로써, 분노의 대상이지만... 남자로썬 매력적인 인물임... 정말 오기와 끈기 정신력, 결단력,추진력.. 정말 대단한 인물임. 출세를 원하는 사람은 도요토미라는 인물 꼭 공부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니가 조선인이 아닌데 왜 분노하냐? 분노의 주체는 조선백성 분노의 대상으로는 저 인물이 아니라, 조선의 무능한 왕과 신하들이지..
조선 계승한 나라 윗동네에 있음
@@nerd2836 이거지. 반일갈라치기를 정치로이용하는 민주당에 그만놀아나고 우리는 일본한테 당한근본원인이 조선의 왕과 신하들의 무능이었음을 깨달아야한다.
@@luck7357니네나라중국으로가라 ㅋㅋ그지야 민주당 거리지말고
풍신수길이 너한테 피해준거 있음?
당해본것 처럼 말하네 ㅋㅋ
만약 다케다신겐이랑 이순신이랑 전투했다면 누가이겼을지 궁금하네요
다케다는 카이의 호랑이로 일본에서 최고 강한 힘을 가진 다이묘였죠
다케다 신겐은 육상에서만 전쟁을 했기 때문에 해군 제독이신 이순신 장군과는 싸움을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육전은 다케다 신겐의 승이겠고
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승이겠죠
교수님 불도그닮아서 집중이 안되네...
일왕 아니야? 천황이라고 불러?
빈틈이 조금은 많이 보이는 강의
아시아를 지배한 인물
하시바를 이렇게 지루하게 설명하기도 힘들겠다..
강사 누구야
너무 무식하네
서민형 자수성가.
지금도 총땜에 일본이 전쟁에서 이겼다그러고있네
전략전술이 핵심인데 ㅋㄱㄱ
조선에 총있었으면 이겻을거같나
敵は本能寺にあり
한국인으로선 ㅊㅈ길 놈이지만 자유경쟁시대를 사는 사나이로서 풍신수길이란 녀석은 쬐금 본받을만 하다. 완전 밑바닥 맨땅에서 헤딩하고 정상까지 올랐다는 그점에서.
1500년대 사람인데 오다 노부나가 사진이 있다고??
3대영웅이라니! 미쳤네 헐...
친일 겁나 많네 ㄷㄷ
전국시대의 약자는 부인도 빼앗기는데 도쿠가와의 할머니도 미즈노 가문 정실에서 빼앗아 온거고 그딸 오다이가 엄마가 되고. 약자가 강자의 요구를 무시하면 백성들이 도륙당하는데 아들의 목을 바치고 백성의 목숨을 구했다고 볼 수도 있지.
먼말이고
병합시대의 조선인은 행복했다. 매일 섹스하고 35년간 인구가 두 배로 늘었다. 가난으로 결혼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한국인보다 훨씬 행복하다.
@@goodluck_7 미인이면 결혼하건 말건 다 자기것으로 만든다는 소유욕
노부나가의 최후가 마치 장비같네?
2차세계대전으로 성공하긴 했었네요
0:15 도쿠가와가 무슨 의리가 없다고? 일본인이 일본사에 관해 전혀 모르는거임? 대본임?
변소지기에게 도륙을 당한 대단한 나라 조선
그래도 정신만은 승리한다!
그 변소지기에 통일당한 일본은 더 대단하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냥냥-m3h9i 일본은 히데요시공을 인정을하나 조선은 인정을 안함ㅋ
토요토미가 이미 1590년에 정명가도를 조선에 요구했는데 이에 대해 조선정부가 대비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네요.
명과 조선의 사이의 정치역학에 대해 일본이 정보가 부족해서, 정명가도가 문자 그대로 지나가기만 하겠다고 일본이 순진한 발상을 했다는 해석도 있더군요 ㅋㅋ 실제로 일본 전국 시대에 각 번의 영주들끼리 그런일이 자주 있었으니, 그 논리가 조선에서도 통할 줄 알았던거구요. 당연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죠 ㅋ
형님으로 모시는 나라를 치러 가라고 길만 빌려주는게 말이 안되죠. 그건 길만 빌려주는게 아니라 동맹국 뒷통수 후려치는건데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당파문제가 가장 컸고 무능한 리더도 문제였죠
조선도 전쟁에 대비했습니다 다만 일본의 침략 규모가 그 대비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이라
선조도 눈치 채고 북방 한직 전전하던 이순신을 파격 승진시켜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는 등 전쟁이 분명 일어날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갓도그-c4c ; 침략 규모 타령은 전쟁 대비 소홀한 당시 조선 권력자들을 쉴드치는 변명일수밖에요 그런 규모를 파악못한 것도 문제 아닙니까? 침략하는 적의 규모가 어떤 건지
파악하는게 전쟁 대비의 기본인데 조선은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안했지요
저 재미난 혼노지의 변 등을 참으로 밋밋 하게 전달한다
13:50 첨언을 드리자면 이에야스의 본거지는 나고야 옆동네였던 오카자키쪽에 있었다가 히데요시가 득세하자 도쿄로 쫒겨납니다. 근데 여기서 병력자출을 명령하면 무조건 또다른 내전으로 갈텐데 이에야스는 내전으로 끌고가기엔 부담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이미 오다 잔존세력과 결탁해서 한번 붙어봤는데 히데요시가 처참히 깨지고 강화요청 해올정도로 쎘습니다.
기노시타 도키치로
하시바 히데요시
후지와라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마타이코로써 입지전적의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손가락 11개 있었죠
손가락 하나를 짤랐죠 그리고 오다노부나가와 아케치 미쓰히데가 동성애 관계 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김영규-t4r노부나가의 남색은 모리 란마루 아니였나요?
@@Titan_Boyz 그것도 맞습니다 모리란마루는 닌자이기도 했습니다
광고가 흐름을. 아주 적절히 끈어내내
아직도 한양까지 총때문에 밀렸다고 강의하네 ㅋㅋ. 총있는데 진주대첩어떻게 이기고, 행주대첩 어떻게 이겼지? 정보부족(병력규모, 침략일자 등등), 오판(일본이 섬이라 수군이 갈할것이라는) 무엇보다도 실직적인 군대의 정교함의 차이가 심했죠
이순신을 영웅으로 보는 것은 한국인의 주관이므로 아무래도 좋지만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다. 3승 20패 정도다. 이순신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일본군이 무장하기 전 첫 2개월뿐이다. 일본군 배가 대포를 장비하고 곶에 포대를 설치하자 조선 수군은 무력화되어 연전 연패였다.
다음은 상황과 그것이 쓰여 있는 문헌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해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뒤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반대로 사천성 전투 울산성전투는 일본이 명나라 조선 연합군 격파했어요
지금 쓰지만 울산성전투는 잘못했으면 일본군이 졌어요 울산성전투에서 일본군은 고전을 면치못했고 가토도 2번이나 할복시도함
@@dl-ry3lf 그지경까지갔는데도 함락못함.우물쭈물하다가 지원군와서
총은 둘째치고 그냥 병사의 압도적인 수준차이 때문이지
왜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로 인해 모든 병사가 전쟁에 매우 익숙한 베테랑들이었고 조선군은 칼쓰는법조차 모르는 오합지졸들이었고
게임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