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보드게임에 "고바야카와"라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1에서 15까지 쓰여진 카드15장에 칩만 있는 아주 단순한 보드게임인데, 직구를 하면 엄청 비싸더군요. 그냥 숫자만 넣어서 15장의 카드를 만들고, 은행에서 10원짜리 50개쯤 준비하면 아주 재밌는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도 얼마걸리지 않는데, 마치 기회주의자 고바야카와와 같이 기회를 엿보면서 베팅을 하는 게임이죠. 가끔은 오프라인 보드게임도 필요합니다.
결과론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에도로 보내버린 게 결정적인 실책이었던 게 비유하자면 오지랍시고 우크라이나로 보내버린 격이었죠. 너무 평야라서 전시에는 방어가 불가능한 지형이라 쓸모 없는 땅이지만 평화시에는 일본에서 손에 꼽는 비옥한 땅이고 수산자원도 지금도 좋은 어장으로 불리는 곳이라 힘을 키우기에는 최적의 땅이었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략에는 밝을 지언정 통찰은 한참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그러니까 앞뒤도 안재보고 명나라를 치느니 하는 계획을 실행하죠.
도쿠가와 가문을 전봉시킨 간토평야는 호조가문이 100년이나 대영주로써 잘 다스린 땅이죠. 호조 가문이 내치를 잘해서 꽤나 평도 좋았구요.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한후 전국에 있는 모든 영주의 분쟁을 금했는데 호조가문이 이걸 어기게 되죠. 분노한 도요토미가 본보기로 호조를 조지려고 하고 호조 또한 당시 결혼 동맹이던 도쿠가와가 도와주면 한번 개겨볼만 하다 판단했는데 웬걸 도쿠가와가 도요토미의 선봉이 되어서 호조를 공격해 멸망 시키게 되죠. 그래서 간토에 있는 호족 세력들 무장 세력들 모두 도쿠가와에 원한이 있는 상태였고 도요토미는 도쿠가와 약화를 위해 이 지역으로 전봉 시켰는데 도쿠가와가 간토의 넓은 늪지를 개간하여 간토 120만석 영지를 250만석 땅으로 만들어 버리고 거기다가 이전 영지였던 도카이도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세력으로 성장해 버리죠.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걸물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너무 단순히 생각하시는데 전통적으로 다스리던 영지와 지역 이해관계를 버리고 황무지 갈대밭이던 당시 간토로 가라는건 전략적으로나 통찰로도 히데요시가 잘 읽은 거고 그걸 받아 들이고 도쿠가와가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히데요시의 안목으로는 천하인을 포기하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일이었습니다. 전국시대는 작은 촌락 단위와 가문도 언제 배반하고 협조 안 할까 두려운 시대인데 이미 잘 정돈해 놓은 지역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에요. 더군다나 당시 간토 지방은 호조가가 오래 동안 잘 다스린 지방이라 호조가에 대한 충성이 높았는데 이 호조랑 결혼 동맹까지 맺어 놓고 호조가 히데요시에게 멸망 할 때 지원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통수 치고 가만 있던게 도쿠가와 입니다. 때문에 초기에 도쿠가와가 민심과 지역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히데요시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근데 도쿠가와가 그걸 다 극복하고 성공한 거죠. 장기적 투자, 개척이 힘든 전국시대 라는걸 감안하면 도쿠가와가 대단한거지 히데요시의 안목이 틀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토, 나라, 오사카가 있는 긴키지방이 일본의 중심이었고, 아이치현(토카이), 츄고쿠, 호쿠리쿠 지방까지는 긴키랑 가까워서 변방은 아니었음. 그런데 간토는 긴키지방에서 해안으로 가면 평지 위주로 갈 수 있다고는 하나 상당히 멀고 먼 까닭에 발달 되지않은 변방있었음. 그리고 간토 하류는 큰 강이 엄청 많고 저지대라 범람이 잦았음. 결론 그래서 도쿠가와를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촌구석 변방으로 보낸거임. 통찰이 부족했다고 말하기는 그 당시 사람 입장에서는 말하기 힘듬.
히데요시가 도쿠가와의 옛 영지의 관리 실패 그리고 이에야스의 내정 역량 때문에 에도 외에 무사시, 이즈, 사가미, 고즈케, 가즈사, 시모우사 6개국 완전 지배 + 시모즈케 및 히타치의 일부를 지배함과 동시에 옛 영토에 대한 영향력도 잃지 않은 거물로 성장한거죠 석고는 250만석 이지만 실제론 더 많았을꺼에요
"이에야스"는 "야망"이란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우리나라에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원작소설도 한국에서 유행했습니다. 다만 임란때 참전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건 침략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임란이후 뒷치기를 할 기회를 엿보기 위함이 있고, 실제 조선정벌에 관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히데요시와의 맹약을 어기고 결국은 이간질을 통해 히데요시의 충복들을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세키가하라에서 승리를 거둔 인물인데, 이에야스의 용인술은 참고할 필요는 있어도 존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 본토에서조차도 상당히 인지도가 낮은 인물입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관련해서는 오카야마성도 관련이 있습니다. 토요토미가의 우키다 히에이에는 임진왜란 때 총대장으로 우리나라 침공했지만 행주산성에서 크게 부상을 당합니다. 이 사람이 오카야마의 다이묘였는데 세키가하라에서 토요토미측의 서군으로 참가했으나 도쿠가와의 동군에 대패하고, 동군 승리의 결정적인 인물인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오카야마 성주가 됩니다.이 양반도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양자였으나, 토요토미한테 후계자가 생겨서 찬밥이 되고, 후에 울산전투 관련해 좌천이 됩니다. 이 양반이 여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우키다 히데이에의 영지인 오카야마 성을 본인이 차지하게 됩니다만,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2년 후, 1602년에 사망하게 됩니다. 허무하게도 자손이 없었던 관계로 이케다 다다쓰구가 오카야마가 번주가 되어버립니다. 오카야마성 나중에 가시면, 이거 관련해서 간단히 영화(?)로 보여주기도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와 악연이 있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보내고 최후가 어땠는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참고로, 오카야마 성도 2차대전에 미군 공습으로 소실되었다가 콘크리트로 재건했습니다
@@호돌이-q3g 이건 무게감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를 말하는거고 이런 역사 공부는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서 이미 했어야 정상이란 생각은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독일인이 싫어할까봐 독일인 앞에서 2차세계대전 얘기 안한다는 소리들어본적은 있냐?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하네 부끄러운줄 모르고
15:05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보드게임에 "고바야카와"라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1에서 15까지 쓰여진 카드15장에 칩만 있는 아주 단순한 보드게임인데, 직구를 하면 엄청 비싸더군요. 그냥 숫자만 넣어서 15장의 카드를 만들고, 은행에서 10원짜리 50개쯤 준비하면 아주 재밌는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도 얼마걸리지 않는데, 마치 기회주의자 고바야카와와 같이 기회를 엿보면서 베팅을 하는 게임이죠. 가끔은 오프라인 보드게임도 필요합니다.
일본역사 정보도 재미있네요. ㅎ
타쿠야가 설명해줘서 전문적으로 느껴져요.^^
에도가 늪지대였는데 저렇게 발전 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단 한것 같습니다
그게 지금의 도쿄져
전국 통일한데다 오늘날 일본의 기틀을 가진 에도 막부를 형성한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며느리의 농간으로 오다한테 크게 의심받았지만 결국 배우자와 자녀를 처형하며 의혹을 해소했고 결국 장수하여 전국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선택은 신의한수였습니다.
@@아궁이-f8v ㅔ
사실상 변방으로 좌천된건데 그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게 도쿠가와 ㅎㅎㅎ 그냥 도쿠가와 이사람이 난사람임
포르투갈이 우리나라에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네요.
결과론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에도로 보내버린 게 결정적인 실책이었던 게 비유하자면 오지랍시고 우크라이나로 보내버린 격이었죠. 너무 평야라서 전시에는 방어가 불가능한 지형이라 쓸모 없는 땅이지만 평화시에는 일본에서 손에 꼽는 비옥한 땅이고 수산자원도 지금도 좋은 어장으로 불리는 곳이라 힘을 키우기에는 최적의 땅이었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략에는 밝을 지언정 통찰은 한참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그러니까 앞뒤도 안재보고 명나라를 치느니 하는 계획을 실행하죠.
도쿠가와 가문을 전봉시킨 간토평야는 호조가문이 100년이나 대영주로써 잘 다스린 땅이죠. 호조 가문이 내치를 잘해서 꽤나 평도 좋았구요.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한후 전국에 있는 모든 영주의 분쟁을 금했는데 호조가문이 이걸 어기게 되죠. 분노한 도요토미가 본보기로 호조를 조지려고 하고 호조 또한 당시 결혼 동맹이던 도쿠가와가 도와주면 한번 개겨볼만 하다 판단했는데 웬걸 도쿠가와가 도요토미의 선봉이 되어서 호조를 공격해 멸망 시키게 되죠. 그래서 간토에 있는 호족 세력들 무장 세력들 모두 도쿠가와에 원한이 있는 상태였고 도요토미는 도쿠가와 약화를 위해 이 지역으로 전봉 시켰는데 도쿠가와가 간토의 넓은 늪지를 개간하여 간토 120만석 영지를 250만석 땅으로 만들어 버리고 거기다가 이전 영지였던 도카이도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세력으로 성장해 버리죠.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걸물입니다
근거없는 멍청한 짓은 아니었어요 도쿠가와가 에도에 부임하던 시기엔 간토평야는 갈대밭이 무성한 황무지였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지금의 옥토로 가꿔낸 게 도쿠가와임
전형적인 현대의시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자의 망상같은 댓글
절대 아닙니다. 너무 단순히 생각하시는데 전통적으로 다스리던 영지와 지역 이해관계를 버리고 황무지 갈대밭이던 당시 간토로 가라는건 전략적으로나 통찰로도 히데요시가 잘 읽은 거고
그걸 받아 들이고 도쿠가와가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히데요시의 안목으로는 천하인을 포기하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일이었습니다. 전국시대는 작은 촌락 단위와 가문도 언제 배반하고 협조 안 할까 두려운 시대인데 이미 잘 정돈해 놓은 지역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에요.
더군다나 당시 간토 지방은 호조가가 오래 동안 잘 다스린 지방이라 호조가에 대한 충성이 높았는데 이 호조랑 결혼 동맹까지 맺어 놓고 호조가 히데요시에게 멸망 할 때 지원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통수 치고 가만 있던게 도쿠가와 입니다. 때문에 초기에 도쿠가와가 민심과 지역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히데요시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근데 도쿠가와가 그걸 다 극복하고 성공한 거죠. 장기적 투자, 개척이 힘든 전국시대 라는걸 감안하면 도쿠가와가 대단한거지 히데요시의 안목이 틀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토, 나라, 오사카가 있는 긴키지방이 일본의 중심이었고, 아이치현(토카이), 츄고쿠, 호쿠리쿠 지방까지는 긴키랑 가까워서 변방은 아니었음. 그런데 간토는 긴키지방에서 해안으로 가면 평지 위주로 갈 수 있다고는 하나 상당히 멀고 먼 까닭에 발달 되지않은 변방있었음. 그리고 간토 하류는 큰 강이 엄청 많고 저지대라 범람이 잦았음. 결론 그래서 도쿠가와를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촌구석 변방으로 보낸거임. 통찰이 부족했다고 말하기는 그 당시 사람 입장에서는 말하기 힘듬.
히데요시가 도쿠가와의 옛 영지의 관리 실패 그리고 이에야스의 내정 역량 때문에 에도 외에 무사시, 이즈, 사가미, 고즈케, 가즈사, 시모우사 6개국 완전 지배 +
시모즈케 및 히타치의 일부를 지배함과 동시에 옛 영토에 대한 영향력도 잃지 않은 거물로 성장한거죠 석고는 250만석 이지만 실제론 더 많았을꺼에요
교수님 사랑합니다 학교에서 봬요💕💕
일본에 대한 역사 많이 해주세요. ㅎㅎ 중국은 많은대 일본은 ....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살기 위해서 처절한 경쟁속에서 성장한거 아닌가 싶다. 유럽이 쪼개져서 서로 개처럼 싸우다 발전한것처럼,,
산은산이요
물은물이로다
씹선비질만한
조센징들이랑은
차원이다르네요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존경해도될듯
"이에야스"는 "야망"이란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우리나라에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원작소설도 한국에서 유행했습니다. 다만 임란때 참전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건 침략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임란이후 뒷치기를 할 기회를 엿보기 위함이 있고, 실제 조선정벌에 관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히데요시와의 맹약을 어기고 결국은 이간질을 통해 히데요시의 충복들을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세키가하라에서 승리를 거둔 인물인데, 이에야스의 용인술은 참고할 필요는 있어도 존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 본토에서조차도 상당히 인지도가 낮은 인물입니다.
인물이아니면
자리에연연하지말라! 아니라고생각하면
싸워야한다!
지면 할복이다ㅡ
떡 이야기는 전현무 전여친 말과 달리 성격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론인데…
맞장구 치는 교수는 뭐람
두견새 이야기가 성격을 보여주는 것
근데 실제로 혼노지의 변은 도요토미 배후설이 있긴 함. 은지원이 은근 예리해
뇌피셜은 뇌피셜일뿐
반론 도요토미는 미천한 출신이라 쇼군이 될수 없기에 굳이 주군을 죽일리가 없지 않나요? 신분 때문에 오다가 쇼군 되고 그 밑에서 2인자 격으로 사는게 낫지
뇌피셜로 오다가 쇼군 되었으면 임진왜란 없었을거고
뇌피셜은 개인의 대가리에서 나온 소리고, 배후설은 학자들의 이야기에서 나온얘기입니다. 혼노지의 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기때문에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죠;
@@요아소비-s8m 쇼군이 될수 없다니요, 실제로 쇼군급의 위치가 되었는데 무슨 소리죠??
Thanks for sharing like
전국시대에 대한 대강의 이야기만 참고해야지 세세한 영웅담 같은 건 삼국지연의보다 훨씬 뻥이 심해서 대부분 걸러야 함.
그냥 줘도 안 갖을 싸구려 늪지대였던 에도가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세계적으로 비싼 땅으로... ㅋ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에도 (현 도쿄) 발전할꺼라곤 히데요시는 몰랐을꺼에요 "설마 가능하겠어?" 이 생각이죠
에도로 좌천 시키는걸로 이에야스가 반발 할까봐 너무 큰 영지를 주며 전봉 시켜버렸죠 200만석이면 히데요시와 맞먹는 영지 크기인데
그게 도리어 실책이 된거죠 이에야스 힘만 더 키워줬고 에도 발전에 도움을 준셈
에도가 원래 늪지대였구나
정적에게 꿀땅을 줘버린 히데요시의 실책인가?
당시만해도 정말 늪지대에 불과한곳을 최고의 꿀땅으로 만든 도쿠가와가 대단한건가
히데요시가 도쿠가와의 옛 영지의 관리 실패 그리고 이에야스의 내정 역량 때문에 에도가 커진거죠
호조 : 내 땅이었다고
매불쇼 썬킴꺼 보세요 더 쉽고 재밌음
원래 전문적일수록 재미없고, 조금 아는 인간이 야부리섞어서 터는게 더 재밌음
썬킴 비호감
이거보다 더 쉽다는거 자체가 전문성 제로인증인건데 ㅋ 이것도 솔직히 존나 쉬운 수준인데
@@jakean3234 제가 유치원을 안나왔습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관련해서는 오카야마성도 관련이 있습니다. 토요토미가의 우키다 히에이에는 임진왜란 때 총대장으로 우리나라 침공했지만 행주산성에서 크게 부상을 당합니다. 이 사람이 오카야마의 다이묘였는데 세키가하라에서 토요토미측의 서군으로 참가했으나 도쿠가와의 동군에 대패하고, 동군 승리의 결정적인 인물인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오카야마 성주가 됩니다.이 양반도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양자였으나, 토요토미한테 후계자가 생겨서 찬밥이 되고, 후에 울산전투 관련해 좌천이 됩니다. 이 양반이 여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우키다 히데이에의 영지인 오카야마 성을 본인이 차지하게 됩니다만,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2년 후, 1602년에 사망하게 됩니다. 허무하게도 자손이 없었던 관계로 이케다 다다쓰구가 오카야마가 번주가 되어버립니다.
오카야마성 나중에 가시면, 이거 관련해서 간단히 영화(?)로 보여주기도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와 악연이 있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보내고 최후가 어땠는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참고로, 오카야마 성도 2차대전에 미군 공습으로 소실되었다가 콘크리트로 재건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가의 가신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오류 같네요...
동맹국이지만 거의 속국이어서 신하급이긴합니다
당시 일본은 봉건제였기때문에 자기 영지를 가지고 있어도 사실상 가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맹이라고 봐야지용
오다가 대기업 회장이라면 도쿠가와는 하청업체 사장
오다가 명나라라면 토쿠가와는 조선급 포지션
마치 금나라같네 누르하치같고
도yo to me 히데 yo si가 일본을통일한건 대단하지만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일본이 조선인들을 노비로 삼고 고향으로 다시 못돌아온다는게 너무 슬펐다.
가족을 잃고 저 먼 이국땅에 노예로 끌려가구 얼마나 괴로웟을까
일본의 극우가 이에야스를 폄하하고 료마와 히데요시를 영웅시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둘다 제국주의 기반을 만든 인물이잔아
1615년 겐나원년 이시점으로 평화시기 겐나엔부
저농들은 얼마나 잘살았길래 연달아 계속 전투냐?
한국인을 노예로 많이 잡아간 건 몰랐네요. T T 유럽까지 팔려갔다니.
전생에 히데요시의 부인이었던 사람을 최면에 걸면
히데요시이 죽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겠네요
전생에 히데요시 부인이었다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토쿄가 늪지대라면 지대가 낮다는 뜻인데
홍수나 물에 약한 도시라는 뜻이네요
봤는데 상황이나 틀린점도 꽤나 보이네요
동아시아사 맛있다
다른 거 떠나서 토요토미 히데요시 얘기 나오면 임진왜란은 자동인데 타쿠야는 굳이 왜 앉혀둔건데..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을 거 같다
그러게요. 한국인이 보는 도요토미랑 일본인이 보는 도요토미의 평은 완전 반대인데...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인물 랭킹에 항상 들어가는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인데 진짜 불편했을듯
그런 눈치까지 보는겁니까? 2차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 할때도 독일인 왜 앉혔냐? 이런말은 들어본적이 없는데 유독 일본만 들어가면 일본인 심기부터 살펴야 되나보네요
어차피 몇 백년 전 일이니까 그리 불편하진 않았을 듯 하네요. 분위기도 적대적이지도 않고
@@강인수-e6i 한국에서 독일인 앉혀뫃고 독일얘기하는거랑 일본인 앉혀놓고 일본인 얘기하는건 당연히 무게감이 다르지않니?
폴란드방송에서 아우슈비츠 얘기하면서 독일인 앉혀놓는거랑 한국인 앉혀놓는거랑 같아?
@@호돌이-q3g 이건 무게감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를 말하는거고 이런 역사 공부는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서 이미 했어야 정상이란 생각은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독일인이 싫어할까봐 독일인 앞에서 2차세계대전 얘기 안한다는 소리들어본적은 있냐?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하네 부끄러운줄 모르고
역사적사료도 많은데 굳이 소설 대망을 거의 사실이다시피 교수라고해서 뭔가 다른 사실을 얘기하나 싶었는데
방송 시간적인 이유 때문인지 굵직한 주요 서사를 엄청나게 도려내서 재미가 크게 떨어졌네요 방송 준비하시는 학자 분들도 답답하실 듯...
오사카 여름과 겨울의 진으로 도요토미가문은 몰락한걸로 아는데
좋단다ㅡㅡ 도요토미 본거지를 보고 좋다고 손벽치는ㅡㅡ
전교조의 세뇌가 확실하네요 방북하시지 그래요 일본싫어하는 님 친구들 많을텐데 ㅋㅋ
도쿠가와가 운이 좋다 만약 일본이 조선 먹었으면 도쿠가와는 아무 공적도 없었을테니
임진왜란 재정립되야함 일본이 경상남도 전라남도 아랫쪽 먹엇엇음
에도가 강남구였군
아직도 일본 짓을 알고도 친일 행위를 하는 놈들은........
친일파도 문제긴 하지만 당시 국뽕 조선 상황도 아는 게 역사를 배우는 거 아닐까 싶네요
짱깨,북한은 훨씬 심한짓 했는데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이니까.
천벌을 벋는거고.
후손까지도 잘 살지 못하는 거지.
배신 배신 배신 ㅋㅋㅋ
역시 일본 답네
@user-mi5mf5dk4g빤스런의 조선
야쿠자 역사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실책 - 에도로 내쳐진 도쿠가와가 황무지 에도를 거대하고 부유한 영지로 탈바꿈~ 엄청난 인구증가와 막강한 부를 축적
군사력도 대규모로 증강함.
🎉미개한조센징이랑은
민족성이다르네
일본은😂
거지같은 역사네
다이나믹한 역사지
조선은 이런 다이나믹함이 없어
일본 전국시대는 중국 삼국지와 비견 되거든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이에야스
노부나가 히데요시 당시의 영걸들이
활당하던 시대이다
모르면 배워라
이런 거지같은 역사한테 두 번이나 털린 조선은 대체..
이러니 동북아 좆집이지 ㅋㅋㅋㅋ
@@bandalgisab187 꼰
일본 역사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고 알 필요 없다.. 그냥 대충 강점기 시대만 알면 됨...
본인의 무지를 불필요로 만드는건 ㅋㅋ
이러니 일본한테 개털리지ㅋㅋㄱㅋㅋㅋㄱㄱㄱㄱ
끝까지 멍청해라
근데 그 일제강점기도 제대로 모르잖아 주작왜곡 교육만 받아가지고
강사 잠온다. 돈주고 저런애 섭외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