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3172 그것보다는 천주교에서 그냥 둘 다 인정 하는 게 아니 꼬운 것 같은데,,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하는 것도 천주교나 요즘 개방?적인 교회들 보면 "너도 맞고 나도 맞음ㅎㅎ" 이딴 식으로 행동하고 가르치니까 피터슨이 하는 말은 "아무리 서로 존중하자해도 결국은 정신승리일 뿐이고 이 시대 청년들의 궁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지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노력은 하고 있음?" 이라고 한 것 같음. 피터슨 지난 인터뷰에서 "예수를 완전히 믿는 것(역사적과 동시에 실존적으로 믿는 것)이 두렵다고 했던 거 보면 피터슨 자신은 예수를 믿는데 자신의 지성으로는 예수의 부활이라던가, 성경의 역사라던가 그것이 과학적이지 못한 그저 한낱 신화란 것이라면, 그걸 믿는다는 것은 용납이 안되기에 과학적으로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임 이 영상 초반에서도 자신은 지금 그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했고
너무나 깊이 있는 대화입니다. 이성의 너머에 믿음이 있다는 주교님의 말씀,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에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피터슨 박사님의 말씀, 이 모두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대단한 통찰인 것 같습니다. 두 어르신께서 품격 있는 대화를 통해 인간은 근원적으로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유대기독교적 문화에 기반한 것이든 아니든 말이지요.
@a z 한국 개신교가 보수적인 성향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이 받는 시선 또한 마땅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지금은 포스트포퓰리즘 또 그 후 발전하여 포퓰리즘 발전하겠죠 종교화합인가 다른 신을 혹은 우상을 모두 같다고 인정하는가 생각한 적은 있나요? 세상에 모두가 옳다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소리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말한 건지 아니면 일반인에 시선에서 답한 건지 궁금합니다 어떤 점이 바보 같고 어떤 점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a z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세상, 즉 자연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 이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또한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이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들린다는 뜻입니다.
이상하네요. 한국의 기독교의 개념은 아무래도 영어원본(그리스어와,히브루어)에 가까운 영어원서를 번역실패로인해서 오는 의미의 전달오류일까요? 저는 해외에서살고 local 교회를다니는데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유별나게 ‘하나님’에 의미에 중점을두고 더 강조하는데 사실 하나님이라는단어의 어원은 ‘하나’밖에없다는 현상에 가까운소리로밖에안들리고 히브루어로 ‘엘라’ 영어로는 ‘god’ 한글로는 ‘신’ 이라는 번역이 훨씬더 적합합니다;; 그럼 인간의 인식 범위밖에있는 신을 어떻게 인식하냐? 그건 방법이 전혀없습니다. 신을 상상할수도 이해할수도없는데 그 범주를 어떻게 인식하냐고하면 한국인들은 인간의 그릇으로 담을수없는 신을 마치 알고있다는듯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데 기독교의 뿌리적인 철학은 ‘신의 형상을 볼수도 느낄수도없고 상상할수도없는 무한의 가까운 신을 인간이 인간적인 조건내로 느낄수있고 이해할수있게하기위해서 신이 보낸게 예수님이고 ’기독교‘의 어원은 말그대로 그런 예수님을 이 세상에 하나밖에없는 ’신‘과 삼위일체로 따르고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는것이 ‘신’에게 다가가는일이며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이런철학대로라면 ’종교‘ 와 ’예수의가르침‘ 엄연히 분리되어있고 개인적으로의 예수님과의 관계를가지는것이라면 당신이 종교인이아니더라도 예수를 믿는다면 전혀 문제될게없습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고싶고 성경에 역사와 그전통성에 몸을담구고싶다면 종교라는 범위안에서의 의식을 치루는거지 (교회를다니는 행위) 개인이 예수와의 틀별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공동체에서의나오는 권위적인 가르침에 따를필요없습니다. 그렇게해서 마틴루터의 계신교가 시작된거구요..;; 개인이 성경을읽고 개인이 발견하는 것에서 오로지 본인만의 믿음이나오는것도 값진 믿음입니다. 여기 해외에서의 모든교회는 어느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하지않습니다. 말그대로 한글성경번역은 마치 ‘신’ 을 이름이 있고 인격체가있는것마냥 ‘하나님’이라는 이름을붙여놨는데 솔직히 제가듣기에는 조금 거북합니다. 유대교에 가까운 사상이 조금 끼어있어요..서구사회에서의 기독교란 엄연히 철저하게 ‘예수님’으로 통합이되고 예수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언급이 더많이나오구요..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할 수 없는 사랑, 행복, 영혼같은 모호한 개념이 더 중요하게 와닿네요. 그런 개념을 자신의 목표에 녹아냈을 때 더 숭고한 인생이 될 것 같아요. 숭고함을 추구할지도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건 주교님이 말씀하시는 '이성을 넘어선 믿음' 의 영역인 것 같네요.
그리고 과학도 계속 진보하는만큼 종교도 그래야한다. 당시엔 정당한 조언이고 최선이였을지 몰라도 이제 불필요한것도 많고, 당시에 타협했던 부분도 이제 거침없이 처리할건 해야된다. 성병 예방 차원에서 동성애를 금한 것이나, 성차별도 없애야 하고, 또 지금 와서 비위생적이고 위험한게 증명된 행위는 종교의 자유를 떠나 법으로 금해야한다. 갠지즈강을 성스럽다 믿는건 좋은데 똥물 시쳇물에 씻고 먹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조차도 더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해야지 극단적으로 전재산 처분해서 몸을 내던져야만 한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겐 비현실적인 것 같음. 그리고 신을 대변하는 사람들도 더이상 권력을 쥐어주면 안된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 덕분에 저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이성'과 '문자'로 채워진 저의 판단은 '냉소적'이였습니다. 하지만 '의미'와 '믿음'이 저를 최소한 냉소적이지만은 않게 그리고 최소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제 머리속에서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게 진실인지는 살아봐야 알겠지만 몸은 이미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읽게 된 남겨주신 이 댓글에 공감이 많이갑니다 피터슨 교수님이 말씀하신 "삶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을수있는것처럼 감사하지않을 이유를 찾는 것도 너무 많이 가능하다" 란 말처럼, 사실 세상을 긍정하기란 쉽지않으며 나이가먹을수록 갈수록 더욱 그러해지는것 같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절로 냉소주의가 생길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인것으로 느껴질 정도로요. 하지만 피터슨교수님이 말하신 '의미'와 '책임',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믿음'처럼 우리존재를 계속 움직일수있게 해주고 허무의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가치를 믿고 그에따라 살아간다면, 삶의 고통을 줄이고 그를 딛고 일어서 나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론 조화롭고 균형있는 의미를 지닌 삶에 도달해있지 않을까 합니다.
매번 볼때마다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관점들이 떠오르는 영상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한다'(긍정적인 의미에서), 신뢰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므로 인간 자체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시키는 사회학적 의미에서의 자유의지 등... 영상이 담고있는 내용이 더 좋은 가치란 무엇인가?를 찾는 방법에 대한 로드맵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접하는 관점이 늘어날 때마다 이 거대한 로드맵에 편입시키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것 같습니다. 수 년 후에 또다시 이 영상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자신이 기대됩니다.
주교님이 성경이 영적인 도서라고 말씀하신것 같은대요 최근 네빌고다드의 부활을 읽었어요 과학적 사고나 이성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스스로에게 한계를 정하게 된것 같아요 저 역시 구런 시간을 오래 보냈고 이제 그 한계 정함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네요 피터슨 교수님 최근에 크리스챤 되셨다고 하시네요 주교님 차분하시고 지성이 느껴지세요 조던 피터슨은 이 시대의 고민하는 지성인임에 분명하고요 반복해서 다시 봐야할 대화 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나도 유익한, 시간가는줄 모르고 본 두 분의 대화였습니다 저 주교님이 한 말, 믿음이란 이성의 반대편에 있는게 아니라 이성의 너머에 있는, 이성을 뛰어넘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란 말이 정말 새롭게 와닿네요. 피터슨교수님이 언급하신 현대에 기독교관점에선 쉬이답해지지 않는 많은 논점들 역시 모두 공감이 가는바였고, 이에 대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두분의 생각 모두 깊은 통찰을 거쳐 나온것이 느껴집니다 수준높고 심오하고 유익한 이런 대화를 들을수있음에 감사하네요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실제로 저희 엄마는 늘 길을 가면서 보이는 들풀이나 야생화를 보면서 저런게 애초에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생겼을까를 생각을 했었다고합니다. 그때만 해도 종가집에 어릴때 시집와서 제사만 해도 일년에 작은 제사까지 합쳐서 열대여섯개는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제사를 지내면서도 왜 죽은 사람한체 이렇게 제사를 지내야 할까하고 왜라는 의문이 늘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저도 우여곡절끝에 대학생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최 한달여 지났을때 제가 성경을 보여주면서 이런게 있다고 했었죠. 그런데 엄마가 성경책을 펴시고 첫구절에 머리속에 번개를 맞은것 같았다고 하셨어요. 물론 또다른 계기도 있었지만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을 하셨답니다. 그 이후 쫒아오는 믿음의 아브라함 세대에게 올 수도 있는 여러가지 모진 풍파에도 굳건히 신앙을 지켜나가고 고난속에서 더 성장하게 되었답니다. 신앙은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게 신을 만나지는 계기가 있어서 사실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가장 어메이징한 스토리들이 날마다 일어난다고 생각될 때도 가끔 있더라구요. 그래도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선과악의 저울이 늘 행동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듯 합니다. 선택적 책임과 책임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써 보고 싶네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꽤 무게있게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강의하신 JP 교수님의 강의가 아주 인상적이였답니다. 무릇 자유를 포장한 듯이 보니는 방종 나태 게으름 때론 성실함 부지런함등도 진리라는 나침반을 잃어 버린경우에는 때때로 어딘지 모를 곳에 나를 데려다 놓기도 하고 또는 자못 나만 미련하고 어리숙하게 진리를 고집하며 패배한 듯이 갈아온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먹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강렬한 햇살아래로 드러나듯이 경이로운 지점에 나를 내려 놓기도 하더라고요...인생은 참 역동적이여서 때로는 절망 때로는 환희에 젖기도 하는게 인생 그 자체에도 생명이 있는 듯이 보여질때가 종종 있더라고요....지금은 기분이 평온하여 이리 몇자 적어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길게는 100년 짧으면 태어나자마자 죽을수있는게 인간이다.우리는 주변환경,질병,조건에 의해서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고 좌절한다.누가 내게 기독교를 믿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혼란속에서 벗어나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월적인 믿음때문이라 답하고싶다.
멸망으로 가는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있다고 합니다. 화평하자, 화평하자. 그렇게 선과 악이 뒤섞이고 진리와 거짓이 뒤섞이고 있는 시대입니다. 카톨릭이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도 오히려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유투브에서도 삭제당하고 검열당합니다. 세상이 정말 웃겨요.
@@davidnoahjacob 개신교가 비판받는 이유는 바로 당신처럼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고, 남을 정죄하지 말라고도 했죠. 구원의 여부는 야훼만이 알고 있기에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톨릭이 멸망으로 가는 길인지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는걸 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죠. 당신은 이런 말을 들으면 사탄이니 미혹에 속지 말라느니 하겠지만, 어짜피 저는 무신론자라 딜이 1도 안들어가니 굳이 수고하지 마세요
@@자가격리탈주1일차 안녕하세요 저는 우선 신천지가 아니고 한때 거의 평생을 동성애자로 살았었고 하나님은 멀리계신분이라고 생각했었던 일산에 교회 다니는 청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것이 그당시 실제 로마 역사에도 남아있는 증거들때문에 확실히 부활한게 맞다고 보는건데요, (같이죽임당할까봐 도망갔던 12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모두다 순교함, 예수님의 친동생도 형이 미쳤다고 했었으나 부활을 목격하고 전도하다가 순교) 목숨때문에 도망갔던 사람들이 겨우 3일후에 다시 돌아와서 목숨을 버릴만큼 입장을바꿔 움직인다는건 지금 현시대 법으로 봐도 뭔가를 봤다는게 확실하잖아요, 부활이 사실이라면 성경도 사실인데 성경에 예수님은 나 이외에 구원받을만한 이름을 주지 않았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가톨릭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거에요 가톨릭은 수호성인을 믿고 마리아와 제자들을 신격화 하니까요 정죄 하는게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거에요 예수님은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사람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으로 생살이 박히셨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것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걸 믿을수 있게 해주셨거든요
@@만두-g7b 가톨릭에서 성모와 성인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함깨 기도하는 거죠. 부활이 사실이니 성경이 사실이니 하는 말은 당신의 신앙을 존중하기에 넘기겠습니다. 다만 가톨릭에 구원이 없다는 말이, 신의 말인지 아니면 당신 교회 목사가 한 말인지 생각해보면 감히 그게 진리라는 말은 하지 못할겁니다. 제가 알기로 기독교 안에서 그 누구도 진리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건 신성모독이죠. 성경을 근거로 한들, 그걸 해석하는 사람의 의견에서 자유로울수 없기에 역시 진리니 어쩌니 하는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생각을 다시 해보세요.
@@자가격리탈주1일차 구원의 방법에 대해선 성경에서 아주 자세히 알려줍니다 당신이야 말로 주워들은걸로 이야기하지 말고 좀더 알고 말하세요 가톨릭이 비판받는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안 가르치고 자기들 멋대로 성경을 조작하기떄문입니다 가르쳐야할 자들이 썩었는데 교회도 썩었지만 기본 교리 자체를 잘못되게 가르치는데 어찌 비판을 안합니까?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을 낳은 인간 여자일뿐인데 신격화해서 마리아한테 기도해라고 하질 않나
아주 중요한대화 서구문화, 문명,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대화였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젊은이들의 허무주의에 빠지게된이유 등등 여러 궁극적인 사람은 어떻게 형성되어지는가 왜 그렇게 되어가는가에 대한 시작부터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나간거같습니다. 종교와 창조 그리고 진화론에 맞물려 앞으로 오는 세대들을 위하여 짚고 넘어가야할 생각들을 미리해준거 같아 이래서 피터슨교수님이구나 싶습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읽어주시는 종교는 매번 곱씹어 생각하게 되네요. '받아들였다Accepted'라는 말이 갖는 모호함 때문에 교회는 교회대로 '내가 믿는건 뭐지?'하는 혼란을 겪고 과학은 과학대로 '니들이 받긴 뭘 받아들여'하고 이해를 못하는거 같아요. 저는 나름 모태(기독)신앙인이고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편인데, 과학 중엔 또 생명과학을 제일 잘하고 좋아하거든요. 기계과지만 신부님 말씀대로 성경은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책이지, 진화의 원리를 담기 위해 쓴 문헌도 전공서도 아니니까요. 우주를 이해하고 나와 타인을 배우고 내일을 젖혀 보여주는건 과학도 종교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그 표현이 "아예" 다르다는걸 서로 이해하면 참 좋을텐데요. 하나님, 예수, 부처, 알라, 그 밖의 성인과 신이 우리에게 가르치듯- 우리는 각자의 교리를 지키면서 내 자신에 내 주변에 사랑과 복음을 베풀고 다친 자 가난한 자 부족한 자를 북돋고 다른 이에게 본이 되고 가르침이 되고, 스스로 각자의 신이 주시는 복음의 통로가 된다면 그게 종교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자 존엄한 가치 아닐까요? 극단적인 자들은 '적그리스도'도 아니요, '사이비'도 아닌거 같아요. 다만 못된 자일 뿐.. 종교를 강요하는 자들- 절대선인냥 강요하고, 비종교를 탄압하고, 전쟁을 불사하고, 유사과학의 탈을 악의적으로 포장하는 자들 과학을 강요하는 자들- 종교에 선입견을 씌우고, 십자가에 매달아 같이 돌을 던지자하고, 신앙적 행동들을 폄하하는 자들 그리고 이들을 입맛대로 이용하는 자들까지
@@이룸백0 하나님께선 교인이 서로 사랑하고 교통하라 하셨기에 종교인을 모두 배척한다는건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기독교단의 현실태를 보자면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불교에서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수양하듯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그만입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상은 송아지상이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교회를 믿고 목사를 믿는 것 또한 우상입니다. 그저 전달하는 자일 뿐인데, 이에 잘못 경도되고 순서가 바뀌다보니 누구는 사이비 이단에 빠지고 누구는 이를 보고 불신하는거죠.
나름 모태신앙인이라고 하셔서 여쭙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나로 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외에 다른 신 즉 부처 이슬람등등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일텐데. 님의 말씀에는 다른 종교를 믿어도 선을 베풀고 좋은 일 하면 괜찮다 라고 하시는듯한데.. 그럼 성경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거 아닌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말씀하신거잖아요. 정중히 여쭙습니다!
@@Jesus-resurrection @김정경 해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을 읽고있노라면,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비유주시는 말씀은, 목자되시는 주 안에서 양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며 주를 찬양하고 가르침을 따르라는 메세지이지 '옆집 목자는 안된다, 따라가지 마라'와 같은 배타적 메세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신교 삼위일체의 교리에 따라 주님이 곧 예수님이니 주님의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건 주님 말씀이 아닌 선지자 중 한명 예수의 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느 견해에 따르든 마찬가지입니다. 구/신약 성경의 뜻이, 주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과연, 병들고 가난한 자를 위해 가장 낮은 곳을 밝힌 마더 테레사 "수녀"와, 매 연설 주님의 뜻을 전하며 비폭력주의 인권운동으로 인종차별을 지워낸 마틴 루터 킹 "목사" 모두에게 하신 말이 아닌걸까요? '이 자는 내가 말하는 구원의 자격이 없다'라고 하신걸까요? 평생에 서양종교는 커녕 서양인을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평생을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다 죽은 A가 있었다면, 그는 구원 받지 못했을까요? 말로만 교회의 복음을 떠들면서 평생을 사기치고 남들 눈에 피눈물 내가며 살아가는 적그리스도가 있다면, 이 자가 죽기 전에 회개기도 한번 하면 구원의 대기줄 앞에서 A 쯤은 새치기해도 되는걸까요? 이에 대한 답을 또 다른 성인에게 찾는다면, 세상의 평화를 자기 자신의 보전보다 앞세워가며 인도 독립을 주창한 간디는 힌두교 국가 인도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교인이자 유대인이자 이슬람교인이자 힌두교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주 아버지께로 와서 가르침을 받고 따르라는 의미이지, '우리 아빠 편이지? 그래야 구원이다'하고 배타적인 구역표시를 가르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르침을 외면하고 탄압하려하는 자들에게 도리어 손 내밀어 긍휼을 베푸시는 의미였을 수 있고요. 정중히 질문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독교인인 제 개인적 답은, 성경에 쓰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요,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하시는 의문점과 타종교의 메세지가, 결국 부족한 인간성을 관통하는 내면적(신앙적) 울림이라는 점에서, 참된 기독교인이 말씀에서 성령의 구원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방법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서로의 대화에서 공통분모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성경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른만큼 합의할 수 없는 이견이 존재합니다. 조던은 심리학 교수로 성경을 융이 집단무의식을 연구했듯이 바라봅니다(그의 저서 '의미의 지도'를 읽어야 조던이 사상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음). 주교님은 개신교의 목사들에 비해 대단히 융통적이고 편협함을 뛰어넘어보이지만, 성경을 단순히 조던처럼 어떤 연구의 자료로 바라보지 않고 신앙의 대상으로(당연하지만)보기에 저 두분간의 양보할 수 이견이 존재합니다. 마지막 쯤에 조던은 그 신앙이라는 부분을 마치 감사라는 태도로 인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신앙이라는 것이 (어쩌면 신)이 심리학적인 것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거 같은데, 주교님은 정색하며 아침에 눈을 뜨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가지 않겠다며, 결사 NO라고 외치십니다. 어쩌면 조던이 천주교 주교님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거같네요 ㅎㅎ. 아무리 터놓고 이야기해도 엄연히 주교신분에 있는 사람인데... ^_^ 조던 피터슨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이면 '의미의 지도'(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꼭 추천합니다. 조던은 이미 그의 사상이 정립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책임감있게 전달합니다. 그럼에도 늘 열린 태도로 대화하는 모습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는 관점에 이해해보고 그것을 다시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내가 느끼기엔 이러하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혹시 동의하느냐라고 하면서 자기 사상을 점점 키워갑니다. 그의 사상이 좋은 점은 그가 추구하는 태도가 늘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고 건강한 정신태도를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본질적으로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만, 두 분의 대화를 듣다보니 성경에 대한 흥미가 생기네요. 특히 주교가 "성경은 이성의 정반대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한 부분에서는 교회 소속이면서 저렇게 말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성경 속의 내용을 과학으로 해석하려들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라... 라고 하는 것 같네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는 '하느님이 말씀하신' 삶에서의 깊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의 구절들을 전부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드는 것보단, 그 안에 담긴 "의미", 그러니까 "인간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파악하고 느끼자... 저는 앞으로도 종교를 가지진 않을 것 같지만, 저 말의 의미가 궁금해서 성경을 진지하게 한 번은 읽어볼 것 같네요 ㅋㅋ
좋은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교님은 전통적 성경방법론이 지금도 적용되는 추론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조던 피터슨은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생각이 결국에는 의미체계라는 것에 도달해 그것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ㅎㅎ 꼭 한번 성경읽어보시길
영상 앞부분의 논의에 대해서 조금더 보면 하나의 물체가 있어도 여러가지 관점을 가질수 있고 그것에대해 과학이든 뭐든 검증하며 서로의 관점에대해 나누는데 검증할수 없는 부분이 생길때 그것을 믿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이 생길때 그것이 믿음의 영역이라고 했지 어디서도 "성경 속의 내용을 과학으로 해석하려들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라" 이런관점의 얘기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각 부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보면 문자 그대로의 해석 방식만으로는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했을 때 부딪히는 메시지도 무지하게 많습니다. 당장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봐도 창조에 대한 기사가 두 번 등장하는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초기 가톨릭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들인 교부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화롭게 성경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쓰인 그대로 해석하는 방식(문자적), 비유로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우의적, 도덕적),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는 방식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대목을 어느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성경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곳의 민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 그들이 정복하는 성읍을 완전 봉헌물(그 성읍 안에 있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재물이고 다 불태워 바치라는 것)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걸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난장판이 됩니다. 일단 그런 일을 명령 하느님도 잔인한 신이 되고,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이것을 시도하는 것 자체로도 큰 범죄가 됩니다(슬프게도 교회가 이런 일들을 진짜로 저지르기도 했다는게 마음 아플 뿐입니다). 더 웃긴 것은 고고학적으로 볼 때 이 대목이 표현하는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일을 저지를 힘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대목은 문자 그대로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내 맘 대로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그리고 이를 저술한 이들이 처한 맥락에서, 그리고 이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회 공동체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석할 면 이 대목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잔인함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대에 나에게 방해가 되는 스스로의 악덕들을 그렇게 확실히 잘라내야 한다.', '양심을 거스르는 악과 함부로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바뀌게 됩니다. 성경을 볼 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성경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가 긴 시간을 들여 쓴 공동체의 체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어떻게 하느님과 걸어왔는가, 그 안에서의 과오는 무엇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 되어있고, 어떻게 이루어졌다 같은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정보는 비교적 관심 밖에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많은 문학 장르들과 모티브들이 차용되기도 하고, 과장이 섞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저술한 신약 성경의 각 권 역시 그들이 만나고 체험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들, 그리고 그 모든 가르침을 진리로 보증한 사건인 부활 사건에 대해 쓴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마냥 교훈적이기 만한 책이냐 그건 또 아닙니다. 교훈적이기만 하다면 고전 문학과 다를 게 없겠죠. 영상에서 주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교회는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살아야한다'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니 당장 그렇게 실제로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함께 등장하는 것이죠. 물론 이는 믿는 이만이 그렇게 받아들이겠지만요. 복음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씨앗에 비유합니다. 겉에 있는 딱딱한 껍질을 뚫지 않으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 방법이 없죠. 누군가는 그것을 잘라 분석해볼 수도 있고, 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던져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씨앗 안에 있는 전부를 보기 위해서는 그것을 심고 기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이라는 토양 위에 하느님의 말씀을 심는 것이죠. 그것은 곧 나의 삶으로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지금 이곳에 내 삶으로서 재현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게 그 사람이, 그 공동체가 재현해내는만큼 성경은 진실이 되는 것이지요. 나름 열심히 썼는데 너무 문과같이 썼네요 ㅎㅎ 게다가 머리에 들은 건 없는데 욕심은 많아서,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피터슨 교수님과 배론 주교님 영상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이었습니다.
어릴적 유아세례를 받고 자연스레 천주교를 믿으며 열심히 성당에 다녔었습니다. 학생 시절 종교는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나름의 삶의 기준도 세우게 해주었죠. 그러나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보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당에서 배운 가치관과 철학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걸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자본주의에서 감성과 종교는 사치라고.. 그래서 요 몇년을 무신론자로 지내왔습니다. 심하게 이번 코로나 사태 발발 때는 기독교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이 지금 저의 생각을 조금은 바꿔준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개신교. 안티 기독이었던 제가 코로나 시기에 완전히 화심한 케이스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알고 예수님이 어떤분인지 알게 되면, 세상을 삼키는/ 세상을 이기는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요. 꼭 믿음의 여정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내며 세상도 우리를 쳐다 보게 되는 힘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내 일상에서 경험치 못하면 즉, 복음의 능력을 누려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고 있다 말하지 못하지요. 복음은 나를 옥죄이는게 아니라,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경험으로 다가오는 요즘인데....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 세상적 기준으로부터의 자유.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미움과 내 의로부터의 자유...등. 우리가 꼭 쥐고 있어야 살 것 같은 것들로부터의 자유 같아요. 무거운 짐 진 자들아..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요동친 적이 많았고 지금도 많습니다. 한 번에 다 자유로워지긴 힘들지만 ,한 번 이라도 그 자유를 경험하면 더 자유롭고 싶어집니다. 내 맘대로 사는게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 정하신 질서에 순종할 때 생기는 자유....경험하시길 바래요.
믿음으로 나아온 전통. 수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니. 비워서 가득찬 것 같은 비유네요. '우리'도 그 못지 않은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래봅니다. 과학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답을 주지만 그 외의 것들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희 삶 속에 있어 나오는 모든 질문들에 답을하기엔 삶이 너무 짧죠. 그렇기에 성경이 하나의 가이드북이 되는 모양입니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 혹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오랜시간속에 축적된 지혜를 믿고 따르면 결과는 나오는 것 처럼요. 과학은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분야이지만 종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인간에 대해 기록하고 분석한 거대한 데이터라고 봐도 되겠네요. 때문에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성경을 설명한다는것이 왜 전혀다른 두개를 통합하는 시도라고 말했는지 후반부에 이해했습니다.
이 세상은 그대로고, 변하는 것은 나 혼자 뿐. 인생은 1인칭이고, 항상 그대로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주인공인 나의 몫.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이 실존하는지 성경이 과학적으로 옳은지는 정말 하찮을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논쟁이 된다. 영상에서 지적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진실임이 들어난 과학만을 유일한 가치로 떠받드는 소극적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넓은 식견으로 세상을 수용하고 주체적으로 해석해 이 짧은 인생에서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 것인가?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성경이 과학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믿음이 갈리는건 아닌것 같음. 진지하게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인생을 사는데 좋은 영감을 주고 좋은 리더를 만들어주고 저 아재가 말한것처럼 쓴지 아주 오래된 책이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과거에나 현재나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지.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않는것은 이단이 많아서 헷갈리기도 하지만 뭣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경에 말씀대로 안살아서임. 성경을 백날천날보면 뭐하냐 거기에 나온대로 살지않으면 아무소용없지
저도 성경이 그것 자체로 사실이 아니라 어떤 집단적 의식과 구전된 인간사회에서의 진리와 관련한 것들의 집합이라고 보면 크게 충돌할만한 것은 없다 생각합니다. 가장 정면충돌하는 것은 신의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것인데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와 상호작용이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기도와 영적 만남을 통해 흐릿하게나마 가능합니다만 사실 신이 여러명인건지, 진짜인지 착각인지, 두 사람이 다른 영적 경험을 했다면 이는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영향인가 아니면 같은 존재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인가, 하나만 진짜라면 둘 중 어떤 경험이 진짜인가 같은 물음에 우리는 과학자들처럼 깔끔하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거의 100% 개인적 경험에 의거하니 객관성과 보편성의 형성 자체가 불가합니다.
포풀리즘 너도 맞고 나도 맞고 다 맞다 정말 좋죠 또 좋게 보이고 다른 시각에서 보면 또 생각하게 만드는 면 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해야 할 때는 그때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우리는 가끔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사회주의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톨릭을 빠져나가는 청년들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좀 쓰자면 어렸을때 부터 이십년 가까이 종교를 다니고 나서 이십대 중후반이 되서야 깨닫게 된건 그 모든걸 초월하는 종교적인 믿음 이라는게 나에게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질 못했구나 뿐 결국 절이 싫어 절을 나가는 중 처럼 그곳을 제 발로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건 일말의 티끌 조차도 없었다. 그 후로 믿음없이 계속해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건 날 움직이는건 믿음을 갈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날 믿고 나 스스로 움직여 좋든 안좋든 어떤 결과를 만드는 행동 이라는걸 알게되었다
나에게 구원이란 성취의 영역으로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투쟁을 한 사람의 결과라고 생각해서 종교는 없다 내 생각에 많은 젊은이들이 이탈하는 이유는 다른 심오한 믿음이 있거나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별쓸모없는 활자뭉치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 요즘 젊은이들에게 성경의 가치는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 오지 성경자체는 어떤 영감도 상상력도 교훈도 없다고 볼것이다 삶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수히 많기때문이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2천년 전이나 재밌고 감동적이지 현대에 이르러서 내 삶에 접목해서 생각해보면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 대단한 점이라곤 해석을 수도없이 바꿔서 생명력이 질긴정도
믿음에 대해 "어둠속을 더듬고 있다" 라는 말씀이 마음에 울립니다 주교님이 과학도 맞고 성경도 맞다라는 전제하에 말씀하셨습니다. 과학과 성경은 완전 반대같은데(지구의 시간, 진화론등등) 두가지는 다른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할걸로 이해했어요 이성을 넘어선 믿음이라고... 이건 완전 앞뒤가 안 맞는 모순입니다 이런분과 대화를 하고 계시니 어둠속을 더듬고 계신것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애매한것들, 중용.,중간, 모호한것들... 다들 결국은 자신도 모른것 입니다. 신분님은 성경도 못믿고 과학도 못믿고 계신 상황 같습니다.
피터슨 질문의 시작은, 과학과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의 간극에 대해, 종교측에서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가? 왜 하필 다른 종교도 많은데 기독교를 믿어야하는가와 같이 어느 정도 성경에서 말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서사가 진짜임을 믿을만한 근거를 대달라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고, 결국엔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람에게 필요한 이유만 설명하다 끝나버린 느낌이 들어서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질문 자체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지구는 평평하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을때, 인공위성, 더 나아가 인공위성에 들어가는 양자역학 때문에, 실생활에 쓰이는 무언가가 나왔다라는 말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양자역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보니 성경도 비슷하게 볼 수 있겠더군요. 저는 지금 성경에 나오는 말들이 전부는 사실이 아닐꺼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우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파고들어있는 '인권'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위의 사례와 무슨 차이가 있나 생각하게 되는군요.
친구와 짧은시간 신이란 무엇이고 신의 자세와 행동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를 어찌 알아가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논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불필요한 고통의 최소화 풍요의 극대화 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풍요로 다가서기 위해 한곳의 목적지를 보고있었고 과정이 여러가지로 다를 뿐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영상에서는 내가 아닌 우리가 생각한다. 이 말이 기억나네요. 토론과 대화를 통해 진실의 한 측면들에 대해서 알게되고 점점 입체감 있게 현실을 알아가는 것.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며 느낀 것은 불안감이 이런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좁은 박스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는 것 같습니다. 자아상실의 불안감부터 확실히 잡아야만 풍요에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나아가 성경을 믿게되는 과정이 있지만. 결국엔 '나 자신'이 인생의 어떠한 계기를 통해 성경의 내용과 경험을 통해 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한다면 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는정도에서 생을 보내게 되겠죠. (신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신을 인정하는 꼴 - C.S 루이스) 현대에 널리 퍼진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있고 전통적인 규율과 도덕성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변증적 신앙론이 크리스찬들에게 자리잡지 못하면 기반이 약하게 될거 같습니다. 유튜브 Damascus TV가 많은 질문을 남겨줍니다.
@@keepyourhead9047 그 가치를 잘 지켜왔으면 지금처럼 교회를 박해할 일은 없었을 텐데 목사님부터가 돈을 좋아하고 직업을 이용하니 그 목사에 그 성도가 될 수 밖에…물론 잘한건 당연하고 못한 것만 언론에서 얘기하니 그걸 전부인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한몫했고
최상의 행복을 찾기 위해 신을 믿는다는 데 동의하는데, ... 왜냐하면 사과가 맛있지만 오렌지가 맛있는 것과 다르고, 오렌지가 맛있지만 수박이 맛있는 것과 다르니까, 모두 불완전한 행복, 또 좋다가도 언젠가는 싫어질 행복감에 불과하니까, 이렇지 않고 항상 오로지 좋기만 한 그런 행복은 무엇일까... 그 행복감을 주는 "대상" 은 당연히 지상의 사물 그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하겠지. 인간은 눈에 보이는 존재 가운데 인간을 가장 낫게 여기고 만족스럽게 여기니까, 인간성을 우선 확보하고 그다음에 그 이상, 그래서 인격신, 하느님 아버지, 라고 설정하는 것도 이해는 가. 그런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즉 이 궁극적 행복감의 원천에 인격, 사람 이상, 내가 아니고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 어떤 대상, 이라는 특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다시 이 신은 현상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네. 이것이기 때문에 저것은 아닌 그런 것이 되어 버렸네. 그게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지. 외부 대상으로서 고유한 의지를 지닌 유사 인격체가 나의 운명과 세상 일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니까, 즉, 신의 의지가 나의 의지와 같은 층위에서 대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일이 뜻대로 안되면 신을 원망한다든지 등, 내가 미친놈이 아닌가, 이럴 거면 신을 없다고 여기는 게 낫겠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 같아. 내가 기독교 또는 천주교에서 견딜 수 없었던 부분은, 뭐 신학적으로야 얼마든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성경과 예배에서 만나는 신, 따라서 나의 개인 신앙생활에서도 만나게 되는 신은 항상 이런 특수한 이미지, 특수한 성격, 또 그에 따른 특수한 접근법이 굳어져 있어서, 이것이 나를 해방시키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정 반대의 결과를 내는 적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 신이라고 부르고 또 다르게도 불리는 그 어떤 것, 차라리, 그 어떤 바탕, 그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고 세상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별도로 갖는 의지, 계획,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서 펼쳐나가는 사업 따위는 없고, 오로지 모든 일이 뿌린대로 거두어지게만 해주는 자동장치 그 자체, 또는 자동장치의 운영자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듯.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과 교회는 옵션이 되어버리지. 또, 꼭 윤리적으로 생활해야 할 동기부여도 좀 덜 되는 편이고. 행동의 방향성과 추진력이 잘 안나온달까. 평화롭지만 꽤 게으른 사람이 되는 듯. 기독교 습관이 너무 깊이 들어놔서, 다른 운영체제로는 작동이 잘 안되는지 원. 부지런하지만 불안한 사람, 편안하지만 게으른 사람, 나는 아직도 이 두 가지를 화해시킬 방법을 못찾고 있네. 그건 그렇고. 피터슨 질문 : 성경이 심오하지만 우파니샤드나 불교경전에 비하여서는 어떠하며, 셰익스피어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것을 경전으로 또는 표준으로 만들어주나요. 바론 주교 답 : 왜냐하면 교부의 전통과 대화하며 또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읽기 때문입니다. 이게 대답인가 ? 성경이 왜 다른 종교 경전이나 위대한 문학작품에 비해 canonical 한가요. 이 질문도 이상하지만, 왜냐하면 서유럽에서 오랜 시간동안 종교생활의 주된 텍스트였고 그 가운데는 기라성같은 대가들도 있는가하면 여전히 그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읽으니까요. 그냥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이게 제일 중요한 책이었으니까요, 라고 대답했네. 교수의 질문 자체가 왜 canonical 한가요, … 어디서 ? 북미에서 ? 서구에서 ? 지구 전체에서 ? 아마도 북미와 서구에서. 주교의 답. 서양에서 이천년 가까이 책 중의 책이었으니까요. 왜 canonical 한가요 ? Canon 이니까요. 언뜻 보면 심오한 것 같지만, 뜯어보면 공허한 말잔치 같다. 적어도 이 부분은.
저도 완전 동의해요... 결론지어진 몇가지 빼고는 주교님도 모르겠으니까(당연한거라고 봐요 주교님 탓하거나 하는건 당연히 아니구요 똑똑한 분이신거 완전 인정해요)인간이란 내가 이해할수 있는 범주내에서만 대답할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들어낸거죠 근데 당연한 거라고 봐요그러니까 인간의 대화이죠....
@@violeta5567 얼마나 학문 훈련을 하는지와 관계 없이, 주교가 주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다가 신부 옷 벗어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주교좌야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식당 주인에게 이 집 음식 맛있냐고 묻는 격.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유일신이어야 맞고 종교는 크게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로 보는데 유일신과 사람들의 선택면에서 보면 불교는 제외되는게 맞다고 봅니다. 나머지 3종교와 결도 많이 다른거 같구요. 그러면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인데 천주교와 기독교는 큰 줄기는 유사한거 같구... 이슬람이 결이 다른데 그래도 방향성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기에
제가 회심하기 전에는 이 영상을 보았을 때 주교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역시 종교인은 돌려서 말하는 재능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대화의 50퍼센트 정도 이해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나 이성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고 많이 들었던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주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로 알게 되었고 (이제 시작이지만) 저는 신념의 영역을 뛰어넘어 신앙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은 거 같습니다. 회심 이후 다시 영상을 보니 90퍼센트 정도 이해가 가네요. 이전에는 성경이 판타지소설에서 도덕책을 왔다갔다 했는데 지금은 이것이 영적인 책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군요 베히모스는 분명 히브리어로 공룡을 뜻하는 단어였을 것입니다. 선악과의 뱀은 티아마트를 필두로한 대지모신들을 깎아내린 것이 아니였을 것이고, 루시퍼 또한 이슈타르 신앙을 깎아내리는 비열한 수단이 아니였겠죠. 플라우로스도 분명 에티오피아의 신앙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닌 에티오피아의 신과 이름만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노아, 모세 등의 인물은 다른 신화에서 베껴온게 아닐거에요..!
위 영상내용 4줄 요약 갑니다. 아래와 같이 4가지 이슈가 있었고, 그 중 3가지에 대해선 jp와 신부님의 입장이 어느정도 합의가 되었으나, 마지막 이슈에 대해선 위 영상만으로는 합의점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슈 1. 극단적 과학주의는 세련된 청년들에게는 더이상 세련된 것이 아니다. 이슈 2. 포스트모더니즘 가운데 성경이 '표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1)성경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공하는 의 산물이자, 2)현대사회가 기반삼고 있는 '서양문명 중심공리'가 성경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 3. '믿음'이란, 이성의 반대편이 아니라 이성의 너머에 있는 것이며, 성경의 핵심선언인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를 받아들임에 있어 새롭고도 가장 알맞은 도구이다. 이슈 4. '믿음'이 먼저있는것인가, '진리'가 먼저있는것인가 를 논하기위하여,,, '대화(예시적개념)'를 하는 이유를 묻고 또묻고 또묻기를 반복하였을 때 남는 것에 대하여 jp와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말한다. @jp는 [믿음]이 남는다고 한 반면, @신부님은 "행복하고 싶은 의지와 행복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통로역할을 하여 결과적으로는 [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이 세상에 있는 무언가로는 대답할 수 없는것)]가 남는다고 한다.
9:00 내 북마크 Just like the X factors, the factors that shape individuals perspectives of value, there are infinite amounts variable of influences available in every industries that affect our decisions. Ps: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하는게 있어서 댓글로 북마크 한거에용 :)
뇌과학과 고인류학,고고학의 발전을 통해 우리 모두 왜 이리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고있는지 합리 보단 너무도 불합리적이며 여러사건을 엵어서 '스토리'형식으로 뇌에 저장하고 공동체에 전승되어 가는지 알게됩니다. 신은 수십만년전 전두엽의 발달로 현생 인류의 탄생시점부터 함께 하고 우리를 이끄시는 거죠.
@@9day10 뭐래 성경보다 그리스 신화가 먼저 대중화됬고 성경 혹은 히브리교쪽 이야기들도 다른 문화권에 영향받았는데 그걸가지고 성경이 서구문화의 중심이다 이건아니지. 에초에 성경자체도 다른문화권 이야기들 복붙한게 얼마나 많은데. 다시말하지만 성경을 지금까지도 특별취급할이유는 단지 성경을 특별취급하는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거지. 걍 유러센트릭 사고방식일뿐
않이.. 유러센트릭 사고방식일뿐.. 찟었다 나녀석 ㅈㄴ멋있잖아... 하고 끝냈는뎅 그냥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특별한거면 왜 성경보다 먼저 대중화됐고 성경만큼 영향을 많이 준 그리스신화가 추앙받지 못하는건가용....? 자기 답변이 자기 질문을 부정해 버리네 부정이 거의 딸바보ㅋㅋㄹㅃㅃㅃ 하... ㅈㄴ웃겼다... 찢었어......
@이준석 뽑지마라 동굴에서 살때부터 따지면 어떨까 싶네. 흔히 말하는 성경 이야기 여기저기 다른 신화나 민속에서 많이들 나오는 내용이구요, 기독교나 이슬람쪽도 도토리 키처럼 비슷하고 원론적으로 다른것도 없는데 대중적으로 얼마나 다르게 취급하는거 보면 알꺼아냐. 피터슨 교수가 하는 말이 진리가 아니고 기독교 사상에 면죄부 주는 행위는 그만해야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거고 문제가 많고 현사회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작작해야된다 이소리 하고있는건데 개독이냐?성경이 문제가되는건 그 많은 인간들이 그걸 진짜라고 믿고 미친짓을 하니까 문제지 edit: 미안하다 니 체널 좀 살펴보고 답변달껄 그랬는데 그냥 글만보고 적었더니 당연히 이야기가 안됬겠네. 너처럼 자기 생각 적어서 이런데 적는것도 좋은 활동이다 홧팅해. 그러다 보면 좀더 건설적인것도 적는게 가능할꺼야.
개인과 개인과 개인의 교집합에서 평균값에 메겨진다. 지능의 차이 지식의 차이 의지의 차이 각각 역량의 차이는 있어도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윤리 의식을 통틀어 "자연법"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사람을 헤쳐서 안된다- 기본 인권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은 왜 보편적으로 존중 받아야 될까? 공교육 교과서에서 배우는 자연과학의 첫 장에 빅뱅과 자연선택을 받은 진화 생명체를 배운다 나는 궁금했다. 사람은 사람의 사고를 벗어난 그 미지의 것을 대폭 축소시켜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수 있다고 자부하는걸까? 우리는 모든 현상의 결과로서 원인을 파악하려고 한다. 생명이 존재한다고 인지할 수 있기까지 그저 자연에게 운좋게 선택 받았기 때문일까? 내게는 자연선택과 빅뱅의 학설이 너무 맹목적인 종교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삶은 일종의 결과다 세계사적으로는 2500년간의 지식과 진보된 농업 기술, 공공 인프라의 공업적인 기술의 집약이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동아시아에 사는 내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어느 스트리머의 영상을 아무런 제약 없이 시청하고 댓글창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결과로서 누리는 현대인의 삶이다 기본적인 우리의 문제는 죄다 결과로서 갈등이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나타나는 갈등은 없다고 본다 지금 같이 진화와 창조에 관한 종교-과학의 대립이 아니고서야. 과학도 일종의 아편이 아닐까? 과학은 이슬람 수니파보다 맹목적인 종교 교리를 채택하고 그것을 현대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이름을 붙인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수원역을 잠깐 다녀왔는데 수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예수님 믿고 회개하자- 라는 피켓을 봤을때랑 서울대학교 이공계열 학생들이 기깔나는 과잠을 입고 미국 인공 위선 -익스플로러가 찍은 지구의 모양을 봤을때랑 비교하면 아주 재밌는 심리 변화를 목격할 것이다. 하나는 상식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구닥다리 영역처럼 느껴질테니 둘다 공통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은 왜 서로 끌어당기는걸까 끌어당기는 현상은 설명해도 끌어당기는 이유- 그것의 당위성은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원자에는 전류가 흐르고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자기 근원이 되며 뱡향이 다른 자기 근원의 부딪침 때문에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여기에 이유는 없고 결과로서 설명하는 단면도만 있을 뿐이다. 서양에서는 사과와 오렌지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과학과 종교는 애당초 같은 비교 우위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은 귀납적인 방법의 집약체로서 기술과 공업의 진보를 가져오고 이에 빈곤과 기아를 해결하는 도구이자 매커니즘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도구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중세 시대 스콜라 학파의 토마스 아퀴나스가 했던 말이다.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반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에 과학은 세련된 종교다 과학적- 이것은 최고의 종교다 모든 변수와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최고의 종교 신은 없다 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연권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위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자연에게 선택 받은 단지 운이 좋은 짐승일 뿐이지 거기에 보편적인 인권 개념이 어디에 있을까? 이성으로서 인간이 위대하다면 기본적인 사고능력을 잃은 사람들의 인권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과학은 설명하고 종교는 원인을 밝힌다 우리는 단 한번도 지구를 육안으로 확인한적 없고 태양계를 육안으로 본적도 없다 나는 반과학적인 맹신도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의 신빙성은 한 개인이 육안으로 확인했던 기록지다. 그것을 상식처럼 받아들인다면 왜 예수님을 육안으로 확인했던 베드로와 부활 후 직접 보았던 바울의 기록은 그처럼 와닿지 않는걸까? 내 생각에 현대인 100명이 타임머신타고 이천년전 아테네 아고라 광장으로 간다면 한마디도 못하고 아닥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우리는 변수를 피하기 위해 교통 신호를 만들고 경제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통화량을 조절하고 안전과 방역을 위해 마스크와 백신 접종을 하는데 내 생각에 과학과 종교는 똑같이 맹목적이다 다만 과학이 가지고 있는 교리가 모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에 합리적인 현대인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만족과 성취를 주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다.
개소리를 써놓으셨네요 과학과 종교가 왜 둘다 맹목적입니까? 이 두가지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은 같은 조건하의 실험을 그 누가, 언제 하더라도 같은 결괏값을 얻게 됩니다. 누가하든 어디서하든 검증이 가능하죠. 반면 종교는 어떻죠? 예수님을 부활 후 다시 본 바울의 증언말고 부활이라는 사건을 검증할 방법이 있습니까?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와닿지 않는것이고, 때문에 더더욱 증거가 아닌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는것입니다. 과학은 종교가 아닙니다. 과학이 마치 빅뱅과 진화론을 맹목적으로 믿는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얼마든지 빅뱅과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증거가 나오면 그 증거를 받아들이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편협한 시각으로 과학을 폄훼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런 대화를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게 감사할 따름이네요.. 영상 너무 잘 봤습니다.
동감합니다 👍
너무 신봉하시는 듯~~ㅡ.ㅡ;;
정리: 결국 , 인간의 생물학적 허점에 종교가 적절히 들어간 것이고, 인간의 허점을 파고든 종교가 과학적 사고기반의 현대청년들을 초월권적으로 정의내리는 것을, 피터슨은 걱정한 것이었다.
@@psalty12374 지구는 둥글다.
@@hc3172 그것보다는 천주교에서 그냥 둘 다 인정 하는 게 아니 꼬운 것 같은데,,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하는 것도 천주교나 요즘 개방?적인 교회들 보면 "너도 맞고 나도 맞음ㅎㅎ" 이딴 식으로 행동하고 가르치니까 피터슨이 하는 말은 "아무리 서로 존중하자해도 결국은 정신승리일 뿐이고 이 시대 청년들의 궁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지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노력은 하고 있음?" 이라고 한 것 같음. 피터슨 지난 인터뷰에서 "예수를 완전히 믿는 것(역사적과 동시에 실존적으로 믿는 것)이 두렵다고 했던 거 보면 피터슨 자신은 예수를 믿는데 자신의 지성으로는 예수의 부활이라던가, 성경의 역사라던가 그것이 과학적이지 못한 그저 한낱 신화란 것이라면, 그걸 믿는다는 것은 용납이 안되기에 과학적으로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임 이 영상 초반에서도 자신은 지금 그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했고
인간의 행복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그분이 나를 만드신 뜻데로 살아가는 것이지 아닐까 합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주님을 만나 그분의 뜻데로 쓰임 받으시는것 같아 기쁘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깊이 있는 대화입니다. 이성의 너머에 믿음이 있다는 주교님의 말씀,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에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피터슨 박사님의 말씀, 이 모두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대단한 통찰인 것 같습니다. 두 어르신께서 품격 있는 대화를 통해 인간은 근원적으로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유대기독교적 문화에 기반한 것이든 아니든 말이지요.
@a z 한국 개신교가 보수적인 성향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이 받는 시선 또한 마땅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지금은 포스트포퓰리즘 또 그 후 발전하여 포퓰리즘 발전하겠죠 종교화합인가 다른 신을 혹은 우상을 모두 같다고 인정하는가 생각한 적은 있나요? 세상에 모두가 옳다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소리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말한 건지 아니면 일반인에 시선에서 답한 건지 궁금합니다 어떤 점이 바보 같고 어떤 점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a z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세상, 즉 자연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 이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또한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이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들린다는 뜻입니다.
@a z 탄압은 무슨..
@a z 교회는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이번 정부는 민노총을 편애하는거지, 개신교가 다 잘했는데 탄압받는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시죠.
이상하네요. 한국의 기독교의 개념은 아무래도 영어원본(그리스어와,히브루어)에 가까운 영어원서를 번역실패로인해서 오는 의미의 전달오류일까요? 저는 해외에서살고 local 교회를다니는데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유별나게 ‘하나님’에 의미에 중점을두고 더 강조하는데 사실 하나님이라는단어의 어원은 ‘하나’밖에없다는 현상에 가까운소리로밖에안들리고 히브루어로 ‘엘라’ 영어로는 ‘god’ 한글로는 ‘신’ 이라는 번역이 훨씬더 적합합니다;; 그럼 인간의 인식 범위밖에있는 신을 어떻게 인식하냐? 그건 방법이 전혀없습니다. 신을 상상할수도 이해할수도없는데 그 범주를 어떻게 인식하냐고하면 한국인들은 인간의 그릇으로 담을수없는 신을 마치 알고있다는듯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데 기독교의 뿌리적인 철학은 ‘신의 형상을 볼수도 느낄수도없고 상상할수도없는 무한의 가까운 신을 인간이 인간적인 조건내로 느낄수있고 이해할수있게하기위해서 신이 보낸게 예수님이고 ’기독교‘의 어원은 말그대로 그런 예수님을 이 세상에 하나밖에없는 ’신‘과 삼위일체로 따르고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는것이 ‘신’에게 다가가는일이며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이런철학대로라면 ’종교‘ 와 ’예수의가르침‘ 엄연히 분리되어있고 개인적으로의 예수님과의 관계를가지는것이라면 당신이 종교인이아니더라도 예수를 믿는다면 전혀 문제될게없습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고싶고 성경에 역사와 그전통성에 몸을담구고싶다면 종교라는 범위안에서의 의식을 치루는거지 (교회를다니는 행위) 개인이 예수와의 틀별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공동체에서의나오는 권위적인 가르침에 따를필요없습니다. 그렇게해서 마틴루터의 계신교가 시작된거구요..;; 개인이 성경을읽고 개인이 발견하는 것에서 오로지 본인만의 믿음이나오는것도 값진 믿음입니다. 여기 해외에서의 모든교회는 어느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하지않습니다. 말그대로 한글성경번역은 마치 ‘신’ 을 이름이 있고 인격체가있는것마냥 ‘하나님’이라는 이름을붙여놨는데 솔직히 제가듣기에는 조금 거북합니다. 유대교에 가까운 사상이 조금 끼어있어요..서구사회에서의 기독교란 엄연히 철저하게 ‘예수님’으로 통합이되고 예수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언급이 더많이나오구요..
조던 피터슨 교수와 로버트 배런 주교의 대화는 정말 인상적이네요. 종교와 과학 사이의 대화를 이렇게 상호 이해 속에서 신사적으로 풀어가는 예도 드물 것 같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잘해왔고 앞으로도 더 잘할겁니다. 모든면에서 좋아지고 발전할겁니다. 감사합니다
6:00
내용이 인상깊다
과학은 가치에 대한 부분을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에 가치의 세상을 찾아야 목표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할 수 없는 사랑, 행복, 영혼같은 모호한 개념이 더 중요하게 와닿네요. 그런 개념을 자신의 목표에 녹아냈을 때 더 숭고한 인생이 될 것 같아요.
숭고함을 추구할지도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건 주교님이 말씀하시는 '이성을 넘어선 믿음' 의 영역인 것 같네요.
그러게요 결국 과학과 종교는 싸울 이유도 싸울 필요도 없는 거군요...! 서로 이야기하는 영역도 다르기때문에... 그렇기에 둘다 잘 이해하면 삶에 대해 한걸음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과학도 계속 진보하는만큼 종교도 그래야한다. 당시엔 정당한 조언이고 최선이였을지 몰라도 이제 불필요한것도 많고, 당시에 타협했던 부분도 이제 거침없이 처리할건 해야된다. 성병 예방 차원에서 동성애를 금한 것이나, 성차별도 없애야 하고, 또 지금 와서 비위생적이고 위험한게 증명된 행위는 종교의 자유를 떠나 법으로 금해야한다. 갠지즈강을 성스럽다 믿는건 좋은데 똥물 시쳇물에 씻고 먹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조차도 더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해야지 극단적으로 전재산 처분해서 몸을 내던져야만 한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겐 비현실적인 것 같음. 그리고 신을 대변하는 사람들도 더이상 권력을 쥐어주면 안된다..
저도 '난 일할 동기를 못찾겠어', '그냥 보통으로 살다가 죽는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가 안됐는데 이 부분을 보고 명확하게 이해가 됬습니다.
근데 갈수록 뇌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인간의 감정이나 성격, 만족감에 따른 행복에 관한 것들까지 점점 과학이 설명할수있을정도로 발전해나가고 있어서 이것에 관해서 또 다시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지 궁금하긴함..
과학은 가치의 양적 비교를 할 수 없으며 스토리가 큰 비중으로 이를 차지한다라니. 사고와 지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놀라울 뿐입니다. 책을 정말 많이 읽어야 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 덕분에 저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이성'과 '문자'로 채워진 저의 판단은 '냉소적'이였습니다. 하지만 '의미'와 '믿음'이 저를 최소한 냉소적이지만은 않게 그리고 최소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제 머리속에서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게 진실인지는 살아봐야 알겠지만 몸은 이미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읽게 된 남겨주신 이 댓글에 공감이 많이갑니다
피터슨 교수님이 말씀하신 "삶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을수있는것처럼 감사하지않을 이유를 찾는 것도 너무 많이 가능하다" 란 말처럼, 사실 세상을 긍정하기란 쉽지않으며 나이가먹을수록 갈수록 더욱 그러해지는것 같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절로 냉소주의가 생길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인것으로 느껴질 정도로요.
하지만 피터슨교수님이 말하신 '의미'와 '책임',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믿음'처럼 우리존재를 계속 움직일수있게 해주고 허무의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가치를 믿고 그에따라 살아간다면, 삶의 고통을 줄이고 그를 딛고 일어서 나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론 조화롭고 균형있는 의미를 지닌 삶에 도달해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 이말 맞는거같다
이런 대담이 대중적으로 이루어지다니..ㅠㅡㅠ 인류 정신의 위대한 한걸음이 또 이루어지고 있네요.. 정말 좋은 때에 태어난것에 감사합니다~
두분 다 똑똑하시네 말의 의미를 찾으려면 끊어서 봐야할 지경
매번 볼때마다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관점들이 떠오르는 영상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한다'(긍정적인 의미에서), 신뢰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므로 인간 자체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시키는 사회학적 의미에서의 자유의지 등...
영상이 담고있는 내용이 더 좋은 가치란 무엇인가?를 찾는 방법에 대한 로드맵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접하는 관점이 늘어날 때마다 이 거대한 로드맵에 편입시키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것 같습니다.
수 년 후에 또다시 이 영상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자신이 기대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닌 이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 인상깊어요.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신앙에 대한 의심이 많았는 데 깊은 통찰 한 번 얻고 갑니다ㅎㅎ
한번 성경공부도 해보시는것을 추천합니다
성경을 공부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모태신앙이란 없습니다…
주교님이 성경이 영적인 도서라고 말씀하신것 같은대요 최근 네빌고다드의 부활을 읽었어요
과학적 사고나 이성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스스로에게 한계를 정하게 된것 같아요 저 역시 구런 시간을 오래 보냈고 이제 그 한계 정함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네요
피터슨 교수님 최근에 크리스챤 되셨다고 하시네요
주교님 차분하시고 지성이 느껴지세요 조던 피터슨은 이 시대의 고민하는 지성인임에 분명하고요
반복해서 다시 봐야할 대화 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나도 유익한, 시간가는줄 모르고 본 두 분의 대화였습니다
저 주교님이 한 말, 믿음이란 이성의 반대편에 있는게 아니라 이성의 너머에 있는, 이성을 뛰어넘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란 말이 정말 새롭게 와닿네요.
피터슨교수님이 언급하신 현대에 기독교관점에선 쉬이답해지지 않는 많은 논점들 역시 모두 공감이 가는바였고, 이에 대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두분의 생각 모두 깊은 통찰을 거쳐 나온것이 느껴집니다
수준높고 심오하고 유익한 이런 대화를 들을수있음에 감사하네요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지막 대화에서 '왜? 라는 미궁 속에 빠져나오기 위해 믿음을 갖는 것이다' 라는 말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뭔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신 말고는 답이 안나오니까 지식인중에 믿는 사람도 많죠
맞아요..! 그 질문들의 과정이 하나님께로 나간다는 말이 뭔가 다 이해되진 않지만 이해되는 거 같아요!!
실제로 저희 엄마는 늘 길을 가면서 보이는 들풀이나 야생화를 보면서 저런게 애초에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생겼을까를 생각을 했었다고합니다. 그때만 해도 종가집에 어릴때 시집와서 제사만 해도 일년에 작은 제사까지 합쳐서 열대여섯개는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제사를 지내면서도 왜 죽은 사람한체 이렇게 제사를 지내야 할까하고 왜라는 의문이 늘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저도 우여곡절끝에 대학생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최 한달여 지났을때 제가 성경을 보여주면서 이런게 있다고 했었죠. 그런데 엄마가 성경책을 펴시고 첫구절에 머리속에 번개를 맞은것 같았다고 하셨어요. 물론 또다른 계기도 있었지만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을 하셨답니다. 그 이후 쫒아오는 믿음의 아브라함 세대에게 올 수도 있는 여러가지 모진 풍파에도 굳건히 신앙을 지켜나가고 고난속에서 더 성장하게 되었답니다. 신앙은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게 신을 만나지는 계기가 있어서 사실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가장 어메이징한 스토리들이 날마다 일어난다고 생각될 때도 가끔 있더라구요. 그래도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선과악의 저울이 늘 행동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듯 합니다. 선택적 책임과 책임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써 보고 싶네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꽤 무게있게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강의하신 JP 교수님의 강의가 아주 인상적이였답니다. 무릇 자유를 포장한 듯이 보니는 방종 나태 게으름 때론 성실함 부지런함등도 진리라는 나침반을 잃어 버린경우에는 때때로 어딘지 모를 곳에 나를 데려다 놓기도 하고 또는 자못 나만 미련하고 어리숙하게 진리를 고집하며 패배한 듯이 갈아온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먹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강렬한 햇살아래로 드러나듯이 경이로운 지점에 나를 내려 놓기도 하더라고요...인생은 참 역동적이여서 때로는 절망 때로는 환희에 젖기도 하는게 인생 그 자체에도 생명이 있는 듯이 보여질때가 종종 있더라고요....지금은 기분이 평온하여 이리 몇자 적어봅니다.😇
왜?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퇴행은 어릴 때는 그럴싸하지만 결국 좋은 습관을 형성한 뒤에는 에너지를 빼앗는 일입죠. 글고 좀만 깊게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매력없는 작업이 없거든요...
특정 종교가 특정 시대에 성공한 원인을 찾는 것도 비슷한 결론이 나오죠. 왜 성공했을까? 그 시대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왜 나는 이렇지? 왜 세상이 이렇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자 이정표가 되었기 때문이니까요.
지금까지는 나는 성경을 문자로만 받아들였다.
이 영상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볼수있게 도와줄것 같은 기분이들었다.
좋은 영상 항상 감사하게도 너무나도 편하게 보고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피터슨 교수님의 채널을 통해 로버트 배런 주교님을 알게 되었는데 복음에 관한 설명을 했던 영상이 인상 깊었어요
ua-cam.com/video/UiFPkwTPjY4/v-deo.html
음 20분 짜리 심리와 상징 인식에 관한 쉽지 않은 내용일텐데 물론 나도 이제 보려고 온거지만
올라온지 20분도 안되서 이미 빠르게 넘겨서 보고 이해하고 비평하고 결론 내린분들 멋있다 역시 우리나라엔 천재가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팩트로 뿌셔버리기
10배속으로 봤나보다 ㅎㅎ
보면서 번역하시는 분같아요 철학과는 기본 필수로 공부 하셨던거 같습니다 ^^
영상 내용에 근거해서 댓글 하나 달자면 이렇게 각자의 비평과 결론을 공유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봅니다. 결국엔 어쩌면 그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로 가까히 가는 길일지도 모르니까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길게는 100년 짧으면 태어나자마자 죽을수있는게 인간이다.우리는 주변환경,질병,조건에 의해서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고 좌절한다.누가 내게 기독교를 믿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혼란속에서 벗어나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월적인 믿음때문이라 답하고싶다.
그 믿음 가진 당신을 전 [신]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2wlsdn잘못된 해석으로 보이네요..
@@소나기-x3c '신'이라는 단어의 의미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갓 같네요. 저와 당신의 '신'은 무엇이죠?
@@2wlsdn ㅂㅅ..
어줍잖은 판타지 성경에 나온 일들을 믿는다는 말보다 이런 믿음이 있다는 말이 훨씬 멋짐
믿음의 도약에 대해 얘기하는군요.
이성과 믿음은 서로 반목하고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과, 성경이든, 종교적인 일이건, 다른 무언가이든 간에, 무언가 행동하기 위해선 믿음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와닿네요.
저도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대해서 알고 싶네요. -[책갈피]인 나의한조각
머리가 안좋아서 이해가 잘 안되는데
댓글다시는분들 대단함 진짜
깊은 사고력 가지고싶다ㅠ
주교님 말씀 되게 잘하신다 핵심을 짚어서 다 답변해주시네 이해하기 쉬운 예 들어가면서
피터슨 교수를 보러 왔다가 주교님 말씀에 감탄하고 갑니다
수준높은 토론과 그렇지 못한 댓글들이네;;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기독교 나왔다고 욕하는 전투적 무신론자들이랑,
진화론이랑 천주교 나왔다고 욕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환상의 콜라보...
한국의 현실이죠 “개.판”
지혜로운것만보셈
솔직히 다 이해하진 못했습니다만..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지나친 자기주장이 없으며,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서로간의 '존중'이 베이스가되는 대화는 오랜만에 보는것같네요.
멸망으로 가는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있다고 합니다. 화평하자, 화평하자. 그렇게 선과 악이 뒤섞이고 진리와 거짓이 뒤섞이고 있는 시대입니다. 카톨릭이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도 오히려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유투브에서도 삭제당하고 검열당합니다. 세상이 정말 웃겨요.
@@davidnoahjacob 개신교가 비판받는 이유는 바로 당신처럼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고, 남을 정죄하지 말라고도 했죠. 구원의 여부는 야훼만이 알고 있기에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톨릭이 멸망으로 가는 길인지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는걸 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죠. 당신은 이런 말을 들으면 사탄이니 미혹에 속지 말라느니 하겠지만, 어짜피 저는 무신론자라 딜이 1도 안들어가니 굳이 수고하지 마세요
@@자가격리탈주1일차 안녕하세요 저는 우선 신천지가 아니고 한때 거의 평생을 동성애자로 살았었고 하나님은 멀리계신분이라고 생각했었던 일산에 교회 다니는 청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것이 그당시 실제 로마 역사에도 남아있는 증거들때문에 확실히 부활한게 맞다고 보는건데요, (같이죽임당할까봐 도망갔던 12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모두다 순교함, 예수님의 친동생도 형이 미쳤다고 했었으나 부활을 목격하고 전도하다가 순교) 목숨때문에 도망갔던 사람들이 겨우 3일후에
다시 돌아와서 목숨을 버릴만큼 입장을바꿔 움직인다는건
지금 현시대 법으로 봐도 뭔가를 봤다는게 확실하잖아요,
부활이 사실이라면 성경도 사실인데
성경에 예수님은 나 이외에 구원받을만한 이름을 주지 않았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가톨릭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거에요
가톨릭은 수호성인을 믿고 마리아와 제자들을 신격화 하니까요
정죄 하는게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거에요
예수님은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사람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으로 생살이 박히셨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것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걸 믿을수 있게 해주셨거든요
@@만두-g7b 가톨릭에서 성모와 성인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함깨 기도하는 거죠. 부활이 사실이니 성경이 사실이니 하는 말은 당신의 신앙을 존중하기에 넘기겠습니다. 다만 가톨릭에 구원이 없다는 말이, 신의 말인지 아니면 당신 교회 목사가 한 말인지 생각해보면 감히 그게 진리라는 말은 하지 못할겁니다. 제가 알기로 기독교 안에서 그 누구도 진리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건 신성모독이죠. 성경을 근거로 한들, 그걸 해석하는 사람의 의견에서 자유로울수 없기에 역시 진리니 어쩌니 하는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생각을 다시 해보세요.
@@자가격리탈주1일차 구원의 방법에 대해선 성경에서 아주 자세히 알려줍니다 당신이야 말로 주워들은걸로 이야기하지 말고 좀더 알고 말하세요 가톨릭이 비판받는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안 가르치고 자기들 멋대로 성경을 조작하기떄문입니다 가르쳐야할 자들이 썩었는데 교회도 썩었지만 기본 교리 자체를 잘못되게 가르치는데 어찌 비판을 안합니까?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을 낳은 인간 여자일뿐인데 신격화해서 마리아한테 기도해라고 하질 않나
수 많은 질문과정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조던 피터슨 교수님 나중에는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건강한 신앙을 가지시는 분이 될 것 같아요^^ 대화가운데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아주 중요한대화 서구문화, 문명,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대화였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젊은이들의 허무주의에 빠지게된이유 등등 여러 궁극적인 사람은 어떻게 형성되어지는가 왜 그렇게 되어가는가에 대한 시작부터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나간거같습니다.
종교와 창조 그리고 진화론에 맞물려 앞으로 오는 세대들을 위하여 짚고 넘어가야할 생각들을 미리해준거 같아 이래서 피터슨교수님이구나 싶습니다.
인간이성을 절대적을 맹신함으로 왜‘라는 쳇바퀴에 돌아가다 행동하지않는 인생되지 말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삶 살아내자 피터슨교수님 잘 알겠네요~~
정말 수준 높은 고찰이네요
무교인 사람인데 (성경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음) 수준 높은 종교인을 오랜만에 만나보는 것 같고, 존경심이 듭니다.
6:58 이렇게 보니 확 와닿네요. 정말 유익한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왕 사랑!!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아멘 시편 105편 15절 감사합니다 ❤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읽어주시는 종교는 매번 곱씹어 생각하게 되네요.
'받아들였다Accepted'라는 말이 갖는 모호함 때문에 교회는 교회대로 '내가 믿는건 뭐지?'하는 혼란을 겪고 과학은 과학대로 '니들이 받긴 뭘 받아들여'하고 이해를 못하는거 같아요.
저는 나름 모태(기독)신앙인이고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편인데, 과학 중엔 또 생명과학을 제일 잘하고 좋아하거든요. 기계과지만
신부님 말씀대로 성경은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책이지, 진화의 원리를 담기 위해 쓴 문헌도 전공서도 아니니까요.
우주를 이해하고 나와 타인을 배우고 내일을 젖혀 보여주는건 과학도 종교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그 표현이 "아예" 다르다는걸 서로 이해하면 참 좋을텐데요.
하나님, 예수, 부처, 알라, 그 밖의 성인과 신이 우리에게 가르치듯-
우리는 각자의 교리를 지키면서 내 자신에 내 주변에 사랑과 복음을 베풀고 다친 자 가난한 자 부족한 자를 북돋고
다른 이에게 본이 되고 가르침이 되고, 스스로 각자의 신이 주시는 복음의 통로가 된다면
그게 종교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자 존엄한 가치 아닐까요?
극단적인 자들은 '적그리스도'도 아니요, '사이비'도 아닌거 같아요. 다만 못된 자일 뿐..
종교를 강요하는 자들- 절대선인냥 강요하고, 비종교를 탄압하고, 전쟁을 불사하고, 유사과학의 탈을 악의적으로 포장하는 자들
과학을 강요하는 자들- 종교에 선입견을 씌우고, 십자가에 매달아 같이 돌을 던지자하고, 신앙적 행동들을 폄하하는 자들
그리고 이들을 입맛대로 이용하는 자들까지
그래서 저는 건방진 결론에 내렸어요!!!
하나님은 믿고 사랑하되 종교인은 믿지말자!!!
@@이룸백0 하나님께선 교인이 서로 사랑하고 교통하라 하셨기에 종교인을 모두 배척한다는건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기독교단의 현실태를 보자면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불교에서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수양하듯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그만입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상은 송아지상이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교회를 믿고 목사를 믿는 것 또한 우상입니다. 그저 전달하는 자일 뿐인데, 이에 잘못 경도되고 순서가 바뀌다보니 누구는 사이비 이단에 빠지고 누구는 이를 보고 불신하는거죠.
네~~ 옮으신 말씀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름 모태신앙인이라고 하셔서 여쭙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나로 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외에 다른 신 즉 부처 이슬람등등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일텐데.
님의 말씀에는 다른 종교를 믿어도 선을 베풀고 좋은 일 하면 괜찮다 라고 하시는듯한데..
그럼 성경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거 아닌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말씀하신거잖아요.
정중히 여쭙습니다!
@@Jesus-resurrection @김정경 해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을 읽고있노라면,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비유주시는 말씀은, 목자되시는 주 안에서 양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며 주를 찬양하고 가르침을 따르라는 메세지이지 '옆집 목자는 안된다, 따라가지 마라'와 같은 배타적 메세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신교 삼위일체의 교리에 따라 주님이 곧 예수님이니 주님의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건 주님 말씀이 아닌 선지자 중 한명 예수의 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느 견해에 따르든 마찬가지입니다.
구/신약 성경의 뜻이, 주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과연, 병들고 가난한 자를 위해 가장 낮은 곳을 밝힌 마더 테레사 "수녀"와, 매 연설 주님의 뜻을 전하며 비폭력주의 인권운동으로 인종차별을 지워낸 마틴 루터 킹 "목사" 모두에게 하신 말이 아닌걸까요? '이 자는 내가 말하는 구원의 자격이 없다'라고 하신걸까요? 평생에 서양종교는 커녕 서양인을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평생을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다 죽은 A가 있었다면, 그는 구원 받지 못했을까요? 말로만 교회의 복음을 떠들면서 평생을 사기치고 남들 눈에 피눈물 내가며 살아가는 적그리스도가 있다면, 이 자가 죽기 전에 회개기도 한번 하면 구원의 대기줄 앞에서 A 쯤은 새치기해도 되는걸까요?
이에 대한 답을 또 다른 성인에게 찾는다면, 세상의 평화를 자기 자신의 보전보다 앞세워가며 인도 독립을 주창한 간디는 힌두교 국가 인도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교인이자 유대인이자 이슬람교인이자 힌두교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주 아버지께로 와서 가르침을 받고 따르라는 의미이지, '우리 아빠 편이지? 그래야 구원이다'하고 배타적인 구역표시를 가르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르침을 외면하고 탄압하려하는 자들에게 도리어 손 내밀어 긍휼을 베푸시는 의미였을 수 있고요.
정중히 질문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독교인인 제 개인적 답은, 성경에 쓰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요,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하시는 의문점과 타종교의 메세지가, 결국 부족한 인간성을 관통하는 내면적(신앙적) 울림이라는 점에서, 참된 기독교인이 말씀에서 성령의 구원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방법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두분의 지성넘치는 토론은 존경스럽습니다
But 저로썬 simple한 진리를 넘어렵게 풀어가는 느낌이네요~
이 시리즈 정말 유익하네요. 더욱 많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잘해왔고 앞으로도 더 잘할겁니다. 모든면에서 좋아지고 발전할겁니다. 감사합니다
서로의 대화에서 공통분모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성경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른만큼 합의할 수 없는 이견이 존재합니다.
조던은 심리학 교수로 성경을 융이 집단무의식을 연구했듯이 바라봅니다(그의 저서 '의미의 지도'를 읽어야 조던이 사상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음).
주교님은 개신교의 목사들에 비해 대단히 융통적이고 편협함을 뛰어넘어보이지만, 성경을 단순히 조던처럼 어떤 연구의 자료로 바라보지 않고 신앙의 대상으로(당연하지만)보기에 저 두분간의 양보할 수 이견이 존재합니다.
마지막 쯤에 조던은 그 신앙이라는 부분을 마치 감사라는 태도로 인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신앙이라는 것이 (어쩌면 신)이 심리학적인 것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거 같은데, 주교님은 정색하며 아침에 눈을 뜨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가지 않겠다며, 결사 NO라고 외치십니다. 어쩌면 조던이 천주교 주교님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거같네요 ㅎㅎ. 아무리 터놓고 이야기해도 엄연히 주교신분에 있는 사람인데... ^_^
조던 피터슨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이면 '의미의 지도'(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꼭 추천합니다.
조던은 이미 그의 사상이 정립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책임감있게 전달합니다.
그럼에도 늘 열린 태도로 대화하는 모습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는 관점에 이해해보고 그것을 다시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내가 느끼기엔 이러하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혹시 동의하느냐라고 하면서 자기 사상을 점점 키워갑니다. 그의 사상이 좋은 점은 그가 추구하는 태도가 늘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고 건강한 정신태도를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본질적으로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만, 두 분의 대화를 듣다보니 성경에 대한 흥미가 생기네요.
특히 주교가 "성경은 이성의 정반대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한 부분에서는 교회 소속이면서 저렇게 말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성경 속의 내용을 과학으로 해석하려들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라... 라고 하는 것 같네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는 '하느님이 말씀하신' 삶에서의 깊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의 구절들을 전부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드는 것보단, 그 안에 담긴 "의미", 그러니까 "인간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파악하고 느끼자...
저는 앞으로도 종교를 가지진 않을 것 같지만, 저 말의 의미가 궁금해서 성경을 진지하게 한 번은 읽어볼 것 같네요 ㅋㅋ
ua-cam.com/video/oIkRiNICvFE/v-deo.html
좋은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교님은 전통적 성경방법론이 지금도 적용되는 추론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조던 피터슨은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생각이 결국에는 의미체계라는 것에 도달해 그것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ㅎㅎ 꼭 한번 성경읽어보시길
영상 앞부분의 논의에 대해서 조금더 보면
하나의 물체가 있어도 여러가지 관점을 가질수 있고 그것에대해 과학이든 뭐든 검증하며 서로의 관점에대해 나누는데
검증할수 없는 부분이 생길때
그것을 믿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이 생길때 그것이 믿음의 영역이라고 했지
어디서도 "성경 속의 내용을 과학으로 해석하려들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라" 이런관점의 얘기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의미를 이해하시면 종교를 가질수밖에 없어서 ㅋㅋ
역사적,상식적,교훈적 관점에서서 큰 도움이 되실겁니다. 끝까지 읽을 수만 있다면요.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의미있는 주말이 된거 같아요 ㅎㅎ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잘해왔고 앞으로도 더 잘할겁니다. 모든면에서 좋아지고 발전할겁니다. 감사합니다
성경의 각 부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보면 문자 그대로의 해석 방식만으로는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했을 때 부딪히는 메시지도 무지하게 많습니다. 당장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봐도 창조에 대한 기사가 두 번 등장하는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초기 가톨릭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들인 교부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화롭게 성경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쓰인 그대로 해석하는 방식(문자적), 비유로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우의적, 도덕적),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는 방식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대목을 어느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성경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곳의 민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 그들이 정복하는 성읍을 완전 봉헌물(그 성읍 안에 있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재물이고 다 불태워 바치라는 것)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걸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난장판이 됩니다.
일단 그런 일을 명령 하느님도 잔인한 신이 되고,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이것을 시도하는 것 자체로도 큰 범죄가 됩니다(슬프게도 교회가 이런 일들을 진짜로 저지르기도 했다는게 마음 아플 뿐입니다). 더 웃긴 것은 고고학적으로 볼 때 이 대목이 표현하는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일을 저지를 힘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대목은 문자 그대로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내 맘 대로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그리고 이를 저술한 이들이 처한 맥락에서, 그리고 이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회 공동체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석할 면 이 대목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잔인함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대에 나에게 방해가 되는 스스로의 악덕들을 그렇게 확실히 잘라내야 한다.', '양심을 거스르는 악과 함부로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바뀌게 됩니다.
성경을 볼 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성경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가 긴 시간을 들여 쓴 공동체의 체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어떻게 하느님과 걸어왔는가, 그 안에서의 과오는 무엇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 되어있고, 어떻게 이루어졌다 같은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정보는 비교적 관심 밖에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많은 문학 장르들과 모티브들이 차용되기도 하고, 과장이 섞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저술한 신약 성경의 각 권 역시 그들이 만나고 체험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들, 그리고 그 모든 가르침을 진리로 보증한 사건인 부활 사건에 대해 쓴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마냥 교훈적이기 만한 책이냐 그건 또 아닙니다. 교훈적이기만 하다면 고전 문학과 다를 게 없겠죠. 영상에서 주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교회는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살아야한다'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니 당장 그렇게 실제로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함께 등장하는 것이죠. 물론 이는 믿는 이만이 그렇게 받아들이겠지만요.
복음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씨앗에 비유합니다. 겉에 있는 딱딱한 껍질을 뚫지 않으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 방법이 없죠. 누군가는 그것을 잘라 분석해볼 수도 있고, 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던져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씨앗 안에 있는 전부를 보기 위해서는 그것을 심고 기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이라는 토양 위에 하느님의 말씀을 심는 것이죠. 그것은 곧 나의 삶으로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지금 이곳에 내 삶으로서 재현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게 그 사람이, 그 공동체가 재현해내는만큼 성경은 진실이 되는 것이지요.
나름 열심히 썼는데 너무 문과같이 썼네요 ㅎㅎ 게다가 머리에 들은 건 없는데 욕심은 많아서,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피터슨 교수님과 배론 주교님 영상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이었습니다.
와웅 좋은 댓글이네요 좋은 시각이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7:08 위대한 스승들의 성서해석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해결
14:40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이성을 넘어선 그 무언가로부터 탄생하는 의사 결정이 될 것
좋은 영상이고 조던피터슨님을 알고 듣고 생각하는 힘을 밝은쪽으로 사고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
음 그냥 그 분의 임재 앞에 세상의 어떤 지혜와 지식도 다 무릎꿇게 될 거예요 그치만 이런 지적인 대화는 흥미롭네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들은 설명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도 법이죠 사랑, 믿음, 신념, 행복..그저 느끼는 수밖에
어릴적 유아세례를 받고 자연스레
천주교를 믿으며 열심히 성당에 다녔었습니다.
학생 시절 종교는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나름의 삶의 기준도 세우게 해주었죠. 그러나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보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당에서 배운 가치관과 철학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걸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자본주의에서 감성과 종교는 사치라고.. 그래서 요 몇년을 무신론자로 지내왔습니다. 심하게 이번 코로나 사태 발발 때는 기독교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이 지금 저의 생각을 조금은 바꿔준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개신교. 안티 기독이었던 제가 코로나 시기에 완전히 화심한 케이스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알고 예수님이 어떤분인지 알게 되면, 세상을 삼키는/ 세상을 이기는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요. 꼭 믿음의 여정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내며 세상도 우리를 쳐다 보게 되는 힘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내 일상에서 경험치 못하면 즉, 복음의 능력을 누려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고 있다 말하지 못하지요. 복음은 나를 옥죄이는게 아니라,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경험으로 다가오는 요즘인데....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 세상적 기준으로부터의 자유.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미움과 내 의로부터의 자유...등. 우리가 꼭 쥐고 있어야 살 것 같은 것들로부터의 자유 같아요. 무거운 짐 진 자들아..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요동친 적이 많았고 지금도 많습니다. 한 번에 다 자유로워지긴 힘들지만 ,한 번 이라도 그 자유를 경험하면 더 자유롭고 싶어집니다. 내 맘대로 사는게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 정하신 질서에 순종할 때 생기는 자유....경험하시길 바래요.
번역의 호흡이 길지않고 추상적인 단어들이 많은데도 이해가 잘 되게 번역이 됐다. 번역자 네명의 학문적 배경이 궁금..
믿음으로 나아온 전통.
수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니.
비워서 가득찬 것 같은 비유네요.
'우리'도 그 못지 않은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래봅니다.
과학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답을 주지만 그 외의 것들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믿음은 사실과 이성의 토대 위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감히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너머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믿음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할렐루야
저희 삶 속에 있어 나오는 모든 질문들에 답을하기엔 삶이 너무 짧죠. 그렇기에 성경이 하나의 가이드북이 되는 모양입니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 혹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오랜시간속에 축적된 지혜를 믿고 따르면 결과는 나오는 것 처럼요. 과학은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분야이지만 종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인간에 대해 기록하고 분석한 거대한 데이터라고 봐도 되겠네요. 때문에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성경을 설명한다는것이 왜 전혀다른 두개를 통합하는 시도라고 말했는지 후반부에 이해했습니다.
멋있으시고 귀감이 됩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설명서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정말 뭐랄까..제가 이것을 듣는순간에 그 중요함의 무게가 느껴지는?대화네요
믿음은 이성을 뛰어넘은 것이라는 말씀, 고맙습니다!!!
PS.이 말씀대로라면, 이성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능력에 지나지 않다는 뜻이 되는군요.
나이가 들수록 신에 내 안에 있다라는 말이 조금씩 깨달아지는 듯 합니다.
좋은 영상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질문은 끝이난다, 믿음은 감사와 비슷하다, 믿음은 이성의 이해를 넘어서는 영역이다, 성경은 공동체적 이해를 기반으로 해석된다, 반복되는 고전적인 질문법 가운데 궁극적으로 가장좋은 것을 얻게된다(행복등).
18:47 ~ 끝까지
"나는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항상 행복하기를 원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는 아침에 침대밖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 씨게 한방 맞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종교적) 믿음이란 결국 각자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고
그 선택을 믿고 나아가는 결심이란 얘기인가..
오호......이거 재밌네 재밌어 ㅇㅇ
또 드는 생각은 그럼 우리가 불교, 유교같이 한국을 관통하는 사상에서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이 세상은 그대로고, 변하는 것은 나 혼자 뿐. 인생은 1인칭이고, 항상 그대로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주인공인 나의 몫.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이 실존하는지 성경이 과학적으로 옳은지는 정말 하찮을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논쟁이 된다. 영상에서 지적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진실임이 들어난 과학만을 유일한 가치로 떠받드는 소극적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넓은 식견으로 세상을 수용하고 주체적으로 해석해 이 짧은 인생에서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 것인가?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욥기 37:23-24)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이성을 넘어선다는 말이 너무 막연하게만 느껴졋는데 그에 대한 해석을 바로 풀어내는 게 지려버리네...
신에 대한 믿음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태도의 영역이다.
18:17 파인만이 비슷한 맥락의 내용에 대해 말했죠. 당신이 왜 자석이 서로 당기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자석이 서로 당기기 때문이다 라고 답해줄 수 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최소 이정도의 존중있고 깊이있는 대화를 해야될텐데 세상이 참 암울하다
대한민국에서는 한동훈이 가능하다고 본다. 많은 책을 보고 상대방을 비판하기보다는 함께 좋은 정치를 하기위해 토론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믿음 갖기에는 쉽지만 믿음을 잃고 다시 믿음을 얻기가 더욱 힘든법 하지만 맹신은 아주 간단하고
성경이 과학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믿음이 갈리는건 아닌것 같음. 진지하게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인생을 사는데 좋은 영감을 주고 좋은 리더를 만들어주고 저 아재가 말한것처럼 쓴지 아주 오래된 책이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과거에나 현재나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지.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않는것은 이단이 많아서 헷갈리기도 하지만 뭣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경에 말씀대로 안살아서임. 성경을 백날천날보면 뭐하냐 거기에 나온대로 살지않으면 아무소용없지
저도 성경이 그것 자체로 사실이 아니라 어떤 집단적 의식과 구전된 인간사회에서의 진리와 관련한 것들의 집합이라고 보면 크게 충돌할만한 것은 없다 생각합니다.
가장 정면충돌하는 것은 신의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것인데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와 상호작용이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기도와 영적 만남을 통해 흐릿하게나마 가능합니다만 사실 신이 여러명인건지, 진짜인지 착각인지, 두 사람이 다른 영적 경험을 했다면 이는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영향인가 아니면 같은 존재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인가, 하나만 진짜라면 둘 중 어떤 경험이 진짜인가 같은 물음에 우리는 과학자들처럼 깔끔하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거의 100% 개인적 경험에 의거하니 객관성과 보편성의 형성 자체가 불가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master_of_yas 성경의 하나님과의 만남은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이미 곁에 와 계시니까요...
어찌됐든 신은 우리보고 신을 섬기고 성경대로 살라고 만들지 않았음. 성경은 그냥 신행세를 하고싶었던 사이비종교식 인간이 만든거임. 제발 다들 정신차려. 성경 말씀대로라면 전세계 인구 99.99프로가 지옥감.
우린 말씀대로 살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참회개와 나의 삶에 주권을 주님께 드리면 변화가 시작되죠
그런자가 말씀대로 성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원의 여정을 이루워가며 완주하는 것입니다
포풀리즘 너도 맞고 나도 맞고 다 맞다 정말 좋죠 또 좋게 보이고 다른 시각에서 보면 또 생각하게 만드는 면 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해야 할 때는 그때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우리는 가끔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사회주의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신이라고 여기는 조물주도 결국은 인간보다 우월한 고등생명체일듯. 개미가 인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듯이.
그럴 가능성도 있죠ㅋㅋㅋㅋㅋ우주가 시뮬레이션이나 홀로그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그럴듯하듯이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
아멘
와우 정말 고차원적인 토론이네요 좀 어렵네요
성경은 지혜의 영역
과학은 지식의 영역
과학은 진실을 찾을 수 있지만, 가치의 세상을 찾긴 어렵다.
내 눈으로 실제의 존재를 볼 수 있지만, 실제의 가치는 보기힘들다. 그것을 보기위해 '믿음'을 얻기위해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지혜의 영역이 아닐까?
가톨릭을 빠져나가는 청년들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좀 쓰자면
어렸을때 부터 이십년 가까이 종교를 다니고 나서 이십대 중후반이 되서야 깨닫게 된건
그 모든걸 초월하는 종교적인 믿음 이라는게 나에게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질 못했구나 뿐
결국 절이 싫어 절을 나가는 중 처럼 그곳을 제 발로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건 일말의 티끌 조차도 없었다.
그 후로 믿음없이 계속해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건
날 움직이는건 믿음을 갈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날 믿고 나 스스로 움직여 좋든 안좋든 어떤 결과를 만드는 행동 이라는걸 알게되었다
동감합니다
나에게 구원이란 성취의 영역으로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투쟁을 한 사람의 결과라고 생각해서 종교는 없다
내 생각에 많은 젊은이들이 이탈하는 이유는
다른 심오한 믿음이 있거나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별쓸모없는 활자뭉치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
요즘 젊은이들에게
성경의 가치는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 오지
성경자체는 어떤 영감도 상상력도 교훈도 없다고 볼것이다 삶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수히 많기때문이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2천년 전이나 재밌고 감동적이지 현대에 이르러서 내 삶에 접목해서 생각해보면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
대단한 점이라곤 해석을 수도없이 바꿔서 생명력이 질긴정도
믿음에 대해 "어둠속을 더듬고 있다" 라는 말씀이 마음에 울립니다
주교님이 과학도 맞고 성경도 맞다라는 전제하에 말씀하셨습니다.
과학과 성경은 완전 반대같은데(지구의 시간, 진화론등등) 두가지는 다른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할걸로 이해했어요
이성을 넘어선 믿음이라고...
이건 완전 앞뒤가 안 맞는 모순입니다
이런분과 대화를 하고 계시니 어둠속을 더듬고 계신것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애매한것들, 중용.,중간, 모호한것들... 다들 결국은 자신도 모른것 입니다.
신분님은 성경도 못믿고 과학도 못믿고 계신 상황 같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해야합니다. 이성을 벗어나면 혼란에 빠집니다.
피터슨 질문의 시작은, 과학과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의 간극에 대해, 종교측에서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가? 왜 하필 다른 종교도 많은데 기독교를 믿어야하는가와 같이 어느 정도
성경에서 말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서사가 진짜임을 믿을만한 근거를 대달라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고, 결국엔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람에게 필요한 이유만 설명하다 끝나버린 느낌이 들어서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질문 자체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각자의 부분에서 전문가이다...
'지구는 평평하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을때, 인공위성, 더 나아가 인공위성에 들어가는 양자역학 때문에, 실생활에 쓰이는 무언가가 나왔다라는 말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양자역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보니 성경도 비슷하게 볼 수 있겠더군요. 저는 지금 성경에 나오는 말들이 전부는 사실이 아닐꺼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우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파고들어있는 '인권'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위의 사례와 무슨 차이가 있나 생각하게 되는군요.
성경이 말하는 포인트는 "착하게 살아라" 보다, "나 주를 믿고 의지하라" 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아닐까요?
용서받은 죄인으로 더 겸손히 살아야하는데. 자중..주중..
혹시 왜 주를 믿어야 하는지 성경에서 설명해 주나요? 문헌 있는지 궁금합니다.
@@meinlet5103 첫장부터 있어요
@@WantFK 첫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쓰여있는데 이게 의지를 해야 할 이유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와 짧은시간 신이란 무엇이고
신의 자세와 행동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를 어찌 알아가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논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불필요한 고통의 최소화 풍요의 극대화 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풍요로 다가서기 위해 한곳의 목적지를 보고있었고
과정이 여러가지로 다를 뿐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영상에서는 내가 아닌 우리가 생각한다. 이 말이
기억나네요. 토론과 대화를 통해 진실의 한 측면들에 대해서 알게되고 점점 입체감 있게 현실을 알아가는 것.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며 느낀 것은 불안감이 이런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좁은 박스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는 것 같습니다.
자아상실의 불안감부터 확실히 잡아야만 풍요에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가치의 영역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으니, 성경은 진리니 쓰여있는대로 믿어라”
이 사상으로는 교회는 젊은이들을 잃을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나아가 성경을 믿게되는 과정이 있지만. 결국엔 '나 자신'이 인생의 어떠한 계기를 통해 성경의 내용과 경험을 통해 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한다면 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는정도에서 생을 보내게 되겠죠.
(신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신을 인정하는 꼴 - C.S 루이스)
현대에 널리 퍼진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있고 전통적인 규율과 도덕성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변증적 신앙론이 크리스찬들에게 자리잡지 못하면 기반이 약하게 될거 같습니다.
유튜브 Damascus TV가 많은 질문을 남겨줍니다.
좋은영상인거 같지만 이해를 못하는 제자신이 참 부끄럽네요ㅋㅋㅋ
공교육보다는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할수 있는 방법을 앞으로 알려줘야 될거같다라는 생각이 들게해줍니다.
왜 다른 종교 중 기독교가 표준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생각보다 명쾌하네요 ㅋㅋㅋ 세계의 주류문화인 서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게 기독교이기 때문에...
가장 성공했기 때문에 가장 믿을만 하다 라는 뜻인건가요?
평등, 자유, 박애.라는 가치를 수호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서적 바탕이 기독교이기 때문.
@@keepyourhead9047 그 가치를 잘 지켜왔으면 지금처럼 교회를 박해할 일은 없었을 텐데 목사님부터가 돈을 좋아하고 직업을 이용하니 그 목사에 그 성도가 될 수 밖에…물론 잘한건 당연하고 못한 것만 언론에서 얘기하니 그걸 전부인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한몫했고
@@keepyourhead9047 사막잡신을 믿는 천한 것들 답게 다른것을 깎내리고 목을 치며 빵과 서커스로 우민들을 조교하는 등 야만적인 행위로 세를 불린 그리스도교를 믿으시는분 다운 발언이십니다^^
@@엄준식-i4b 뭘 알고나 글을 다는건지..
사람들은 '가치의 세상'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그러한 '가치의 세상'의 문제를 다룬다.
그것이 이야기의 기능이고 '가치의 세상'이란 사람들이 활동을 펼쳐나가는 세상이다.
인간 행동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거다.
참으로 어마무시한 수준의 대화내요 과연 인류의 몇 퍼센트나 이 대화를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신학을 전공하면 이해할수 있습니다.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믿음은 이성의 반대가 아닌, 이성을 넘어선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스스로 영위할 수 있다면, 신이 설 자리는 없었겠지.
애초에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신의 존재는 필연적임.
16:50 대화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지만 개읹적으로 가장 와닿는 부분
최상의 행복을 찾기 위해 신을 믿는다는 데 동의하는데, ... 왜냐하면 사과가 맛있지만 오렌지가 맛있는 것과 다르고, 오렌지가 맛있지만 수박이 맛있는 것과 다르니까, 모두 불완전한 행복, 또 좋다가도 언젠가는 싫어질 행복감에 불과하니까, 이렇지 않고 항상 오로지 좋기만 한 그런 행복은 무엇일까... 그 행복감을 주는 "대상" 은 당연히 지상의 사물 그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하겠지.
인간은 눈에 보이는 존재 가운데 인간을 가장 낫게 여기고 만족스럽게 여기니까, 인간성을 우선 확보하고 그다음에 그 이상, 그래서 인격신, 하느님 아버지, 라고 설정하는 것도 이해는 가.
그런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즉 이 궁극적 행복감의 원천에 인격, 사람 이상, 내가 아니고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 어떤 대상, 이라는 특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다시 이 신은 현상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네. 이것이기 때문에 저것은 아닌 그런 것이 되어 버렸네. 그게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지. 외부 대상으로서 고유한 의지를 지닌 유사 인격체가 나의 운명과 세상 일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니까, 즉, 신의 의지가 나의 의지와 같은 층위에서 대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일이 뜻대로 안되면 신을 원망한다든지 등, 내가 미친놈이 아닌가, 이럴 거면 신을 없다고 여기는 게 낫겠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 같아.
내가 기독교 또는 천주교에서 견딜 수 없었던 부분은, 뭐 신학적으로야 얼마든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성경과 예배에서 만나는 신, 따라서 나의 개인 신앙생활에서도 만나게 되는 신은 항상 이런 특수한 이미지, 특수한 성격, 또 그에 따른 특수한 접근법이 굳어져 있어서, 이것이 나를 해방시키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정 반대의 결과를 내는 적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
신이라고 부르고 또 다르게도 불리는 그 어떤 것, 차라리, 그 어떤 바탕, 그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고 세상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별도로 갖는 의지, 계획,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서 펼쳐나가는 사업 따위는 없고, 오로지 모든 일이 뿌린대로 거두어지게만 해주는 자동장치 그 자체, 또는 자동장치의 운영자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듯.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과 교회는 옵션이 되어버리지. 또, 꼭 윤리적으로 생활해야 할 동기부여도 좀 덜 되는 편이고. 행동의 방향성과 추진력이 잘 안나온달까. 평화롭지만 꽤 게으른 사람이 되는 듯.
기독교 습관이 너무 깊이 들어놔서, 다른 운영체제로는 작동이 잘 안되는지 원.
부지런하지만 불안한 사람, 편안하지만 게으른 사람, 나는 아직도 이 두 가지를 화해시킬 방법을 못찾고 있네.
그건 그렇고.
피터슨 질문 : 성경이 심오하지만 우파니샤드나 불교경전에 비하여서는 어떠하며, 셰익스피어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것을 경전으로 또는 표준으로 만들어주나요.
바론 주교 답 : 왜냐하면 교부의 전통과 대화하며 또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읽기 때문입니다.
이게 대답인가 ? 성경이 왜 다른 종교 경전이나 위대한 문학작품에 비해 canonical 한가요. 이 질문도 이상하지만,
왜냐하면 서유럽에서 오랜 시간동안 종교생활의 주된 텍스트였고 그 가운데는 기라성같은 대가들도 있는가하면 여전히 그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읽으니까요.
그냥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이게 제일 중요한 책이었으니까요, 라고 대답했네.
교수의 질문 자체가 왜 canonical 한가요, … 어디서 ? 북미에서 ? 서구에서 ? 지구 전체에서 ?
아마도 북미와 서구에서.
주교의 답. 서양에서 이천년 가까이 책 중의 책이었으니까요.
왜 canonical 한가요 ? Canon 이니까요.
언뜻 보면 심오한 것 같지만, 뜯어보면 공허한 말잔치 같다. 적어도 이 부분은.
저도 완전 동의해요... 결론지어진 몇가지 빼고는 주교님도 모르겠으니까(당연한거라고 봐요 주교님 탓하거나 하는건 당연히 아니구요 똑똑한 분이신거 완전 인정해요)인간이란 내가 이해할수 있는 범주내에서만 대답할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들어낸거죠
근데 당연한 거라고 봐요그러니까 인간의 대화이죠....
@@violeta5567 얼마나 학문 훈련을 하는지와 관계 없이, 주교가 주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다가 신부 옷 벗어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주교좌야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식당 주인에게 이 집 음식 맛있냐고 묻는 격.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유일신이어야 맞고 종교는 크게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로 보는데 유일신과 사람들의 선택면에서 보면 불교는 제외되는게 맞다고 봅니다. 나머지 3종교와 결도 많이 다른거 같구요. 그러면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인데 천주교와 기독교는 큰 줄기는 유사한거 같구... 이슬람이 결이 다른데 그래도 방향성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기에
제가 회심하기 전에는 이 영상을 보았을 때 주교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역시 종교인은 돌려서 말하는 재능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대화의 50퍼센트 정도 이해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나 이성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고 많이 들었던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주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로 알게 되었고 (이제 시작이지만) 저는 신념의 영역을 뛰어넘어 신앙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은 거 같습니다.
회심 이후 다시 영상을 보니 90퍼센트 정도 이해가 가네요. 이전에는 성경이 판타지소설에서 도덕책을 왔다갔다 했는데 지금은 이것이 영적인 책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닫습니다.
진화론 이외에는 수용하지 않는 현대 학문의 질타에 신학자들은 진화론과 타협을 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오히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기 시작했죠. 성경을 읽다보면 믿을 수 없으리만큼 구체적임.
그렇군요 베히모스는 분명 히브리어로 공룡을 뜻하는 단어였을 것입니다. 선악과의 뱀은 티아마트를 필두로한 대지모신들을 깎아내린 것이 아니였을 것이고, 루시퍼 또한 이슈타르 신앙을 깎아내리는 비열한 수단이 아니였겠죠. 플라우로스도 분명 에티오피아의 신앙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닌 에티오피아의 신과 이름만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노아, 모세 등의 인물은 다른 신화에서 베껴온게 아닐거에요..!
@@엄준식-i4b 관심있다면 각종 문명들의 구전 신앙들과 유대교의 기원이 어떻게 다른지 학문적인 견해를 보시면 그리 간단한 사항은 아니라는 걸 하실겁니다 ㅎㅎ
또 성경은 여러 저자가 쓴 목적을 둔 글입니다. 비유로 보라해서 성경 전체를 비유봐야하는 건 아니지요.
물질주의에 그 길 끝에는 정신적인 만족을 채워주기엔 한계가 있는 허무함과 공허감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나 고전물리학에 갇혀살고있습니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양자물리학에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눈에보이는것만이 과학이 아니란걸 알아야합니다
완전 공감합니다!
양자역학과같은 현대과학도 전부 고전물리학과같은 주관을 배제한 과학적 이데올로기로 연구되고 발전하였습니다. 눈에보이는것만이 과학이아니라는건 예수이전 피타고라스때부터 그러하였습니다. 뭔가 오해하고계신것같습니다
@@장현수-k4b 과학도 결국 확률이라는거에요
맞습니다. 결국 인간의 지각기관들(눈,코,입,귀,의식) 은 한계가 있습니다.
와... 진짜 중요한 내용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위 영상내용 4줄 요약 갑니다.
아래와 같이 4가지 이슈가 있었고, 그 중 3가지에 대해선 jp와 신부님의 입장이 어느정도 합의가 되었으나, 마지막 이슈에 대해선 위 영상만으로는 합의점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슈 1. 극단적 과학주의는 세련된 청년들에게는 더이상 세련된 것이 아니다.
이슈 2. 포스트모더니즘 가운데 성경이 '표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1)성경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공하는 의 산물이자, 2)현대사회가 기반삼고 있는 '서양문명 중심공리'가 성경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 3. '믿음'이란, 이성의 반대편이 아니라 이성의 너머에 있는 것이며, 성경의 핵심선언인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를 받아들임에 있어 새롭고도 가장 알맞은 도구이다.
이슈 4. '믿음'이 먼저있는것인가, '진리'가 먼저있는것인가 를 논하기위하여,,, '대화(예시적개념)'를 하는 이유를 묻고 또묻고 또묻기를 반복하였을 때 남는 것에 대하여 jp와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말한다.
@jp는 [믿음]이 남는다고 한 반면,
@신부님은 "행복하고 싶은 의지와 행복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통로역할을 하여 결과적으로는 [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이 세상에 있는 무언가로는 대답할 수 없는것)]가 남는다고 한다.
번역을 정말 잘하셨네요
9:00 내 북마크
Just like the X factors, the factors that shape individuals perspectives of value, there are infinite amounts variable of influences available in every industries that affect our decisions.
Ps: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하는게 있어서 댓글로 북마크 한거에용 :)
뇌과학과 고인류학,고고학의 발전을 통해 우리 모두 왜 이리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고있는지 합리 보단 너무도 불합리적이며 여러사건을 엵어서 '스토리'형식으로 뇌에 저장하고 공동체에 전승되어 가는지 알게됩니다. 신은 수십만년전 전두엽의 발달로 현생 인류의 탄생시점부터 함께 하고 우리를 이끄시는 거죠.
"그리스 신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라고 적었더라도 다른점이 없다는것.
결국 종교의 윤리적 가치가 현시대에 합당한 가치가 있는가? 많은 문학과 종교중 왜 "성경"만 특이취급을 받아야되는가?
ㄹㅇㅋㅋ 어차피 신화고 그걸 믿어서 삶이든 태도든 좋아지면 똑같은거 아님?ㅋㅋ
성경은 안봤는데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는 읽어봤거든ㅋㅋㄹㅃㅃ 영상 중간에 왜 다른지 얘기 나오는데 영상 안보고 댓글달러 왔다고 아ㅋㅋ
@@9day10 뭐래 성경보다 그리스 신화가 먼저 대중화됬고 성경 혹은 히브리교쪽 이야기들도 다른 문화권에 영향받았는데 그걸가지고 성경이 서구문화의 중심이다 이건아니지. 에초에 성경자체도 다른문화권 이야기들 복붙한게 얼마나 많은데. 다시말하지만 성경을 지금까지도 특별취급할이유는 단지 성경을 특별취급하는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거지. 걍 유러센트릭 사고방식일뿐
않이.. 유러센트릭 사고방식일뿐.. 찟었다 나녀석 ㅈㄴ멋있잖아... 하고 끝냈는뎅 그냥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특별한거면 왜 성경보다 먼저 대중화됐고 성경만큼 영향을 많이 준 그리스신화가 추앙받지 못하는건가용....?
자기 답변이 자기 질문을 부정해 버리네 부정이 거의 딸바보ㅋㅋㄹㅃㅃㅃ 하... ㅈㄴ웃겼다... 찢었어......
@이준석 뽑지마라 동굴에서 살때부터 따지면 어떨까 싶네. 흔히 말하는 성경 이야기 여기저기 다른 신화나 민속에서 많이들 나오는 내용이구요, 기독교나 이슬람쪽도 도토리 키처럼 비슷하고 원론적으로 다른것도 없는데 대중적으로 얼마나 다르게 취급하는거 보면 알꺼아냐. 피터슨 교수가 하는 말이 진리가 아니고 기독교 사상에 면죄부 주는 행위는 그만해야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거고 문제가 많고 현사회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작작해야된다 이소리 하고있는건데 개독이냐?성경이 문제가되는건 그 많은 인간들이 그걸 진짜라고 믿고 미친짓을 하니까 문제지
edit: 미안하다 니 체널 좀 살펴보고 답변달껄 그랬는데 그냥 글만보고 적었더니 당연히 이야기가 안됬겠네. 너처럼 자기 생각 적어서 이런데 적는것도 좋은 활동이다 홧팅해. 그러다 보면 좀더 건설적인것도 적는게 가능할꺼야.
@@9day10 여차역여하 역피역여하
토론이란 이런것이다 라는 깨달음을 주네요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1-3 KRV
개인과 개인과 개인의 교집합에서
평균값에 메겨진다.
지능의 차이 지식의 차이 의지의 차이
각각 역량의 차이는 있어도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윤리 의식을 통틀어 "자연법"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사람을 헤쳐서 안된다- 기본 인권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은 왜 보편적으로
존중 받아야 될까?
공교육 교과서에서 배우는 자연과학의 첫 장에
빅뱅과 자연선택을 받은 진화 생명체를 배운다
나는 궁금했다.
사람은 사람의 사고를 벗어난 그 미지의 것을
대폭 축소시켜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수
있다고 자부하는걸까?
우리는 모든 현상의 결과로서 원인을 파악하려고 한다.
생명이 존재한다고 인지할 수 있기까지
그저 자연에게 운좋게 선택 받았기 때문일까?
내게는 자연선택과 빅뱅의 학설이 너무
맹목적인 종교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삶은 일종의 결과다
세계사적으로는 2500년간의 지식과 진보된 농업 기술,
공공 인프라의 공업적인 기술의 집약이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동아시아에 사는 내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어느 스트리머의 영상을
아무런 제약 없이 시청하고 댓글창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결과로서 누리는 현대인의 삶이다
기본적인 우리의 문제는 죄다 결과로서 갈등이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나타나는 갈등은 없다고 본다
지금 같이 진화와 창조에 관한 종교-과학의 대립이 아니고서야.
과학도 일종의 아편이 아닐까?
과학은 이슬람 수니파보다 맹목적인 종교 교리를
채택하고 그것을 현대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이름을
붙인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수원역을 잠깐 다녀왔는데 수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예수님 믿고 회개하자- 라는 피켓을 봤을때랑
서울대학교 이공계열 학생들이 기깔나는 과잠을 입고
미국 인공 위선 -익스플로러가 찍은 지구의 모양을
봤을때랑 비교하면 아주 재밌는 심리 변화를 목격할 것이다.
하나는 상식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구닥다리 영역처럼 느껴질테니
둘다 공통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은 왜 서로 끌어당기는걸까
끌어당기는 현상은 설명해도
끌어당기는 이유- 그것의 당위성은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원자에는 전류가 흐르고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자기 근원이 되며
뱡향이 다른 자기 근원의 부딪침 때문에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여기에 이유는 없고 결과로서 설명하는
단면도만 있을 뿐이다.
서양에서는 사과와 오렌지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과학과 종교는 애당초 같은 비교 우위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은 귀납적인 방법의 집약체로서
기술과 공업의 진보를 가져오고 이에 빈곤과 기아를
해결하는 도구이자 매커니즘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도구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중세 시대 스콜라 학파의
토마스 아퀴나스가 했던 말이다.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반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에 과학은 세련된 종교다
과학적- 이것은 최고의 종교다
모든 변수와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최고의 종교
신은 없다
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연권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위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자연에게 선택 받은
단지 운이 좋은 짐승일 뿐이지
거기에 보편적인 인권 개념이 어디에 있을까?
이성으로서 인간이 위대하다면
기본적인 사고능력을 잃은 사람들의 인권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과학은 설명하고 종교는 원인을 밝힌다
우리는 단 한번도 지구를 육안으로 확인한적 없고
태양계를 육안으로 본적도 없다
나는 반과학적인 맹신도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의 신빙성은 한 개인이
육안으로 확인했던 기록지다.
그것을 상식처럼 받아들인다면
왜 예수님을 육안으로 확인했던 베드로와
부활 후 직접 보았던 바울의 기록은
그처럼 와닿지 않는걸까?
내 생각에 현대인 100명이 타임머신타고
이천년전 아테네 아고라 광장으로 간다면
한마디도 못하고 아닥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우리는 변수를 피하기 위해 교통 신호를 만들고
경제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통화량을 조절하고
안전과 방역을 위해 마스크와 백신 접종을 하는데
내 생각에 과학과 종교는 똑같이 맹목적이다
다만 과학이 가지고 있는 교리가
모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에
합리적인 현대인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만족과 성취를 주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다.
공감하지만, 인류는 지금도 지구의 모습을 육안으로 실시간 확인 중입니다. 과학에 경도되어 가치를 무시하는 일도 나쁘지만, 종교의 시각으로 사실을 보는것 역시 똑같이 나쁩니다.
개소리를 써놓으셨네요
과학과 종교가 왜 둘다 맹목적입니까?
이 두가지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은 같은 조건하의 실험을 그 누가, 언제 하더라도 같은 결괏값을 얻게 됩니다. 누가하든 어디서하든 검증이 가능하죠.
반면 종교는 어떻죠? 예수님을 부활 후 다시 본 바울의 증언말고 부활이라는 사건을 검증할 방법이 있습니까?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와닿지 않는것이고, 때문에 더더욱 증거가 아닌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는것입니다.
과학은 종교가 아닙니다.
과학이 마치 빅뱅과 진화론을 맹목적으로 믿는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얼마든지 빅뱅과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증거가 나오면 그 증거를 받아들이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편협한 시각으로 과학을 폄훼하지 않길 바랍니다.
어렵다....
너무 흥미로운데 내일 오전에 다시 볼게요
성경은 성경이지 과학책이 아니고, 과학책은 과학책이지 성경이 아니다.
서로 헐뜯는 근본주의자든 과학주의자든 둘 다 어리석다.
성경은 읽기 힘들지만 그저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끝도난다]는 한문장안에 사람들이 복작대고 있는것 뿐입니다.
그걸 알게되고 믿게되는게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