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여느 날과 같이 유튜브를 열었다. 알림이 떴다. "○○ 씨, 반갑다. 김○○ 하사다. 알지? 그때가 몇 년 전인가? 영상 잘 봤다." 군대에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하여 만든 내 유튜브 동영상에 꿈에서도 보고 싶었던 김 하사가 댓글을 달았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40년 동안 기다렸던 말 한 마디 "나 김 하사다"가 남겨져 있었다. 김 하사는 40년 전 강원도 양구 대암산 기슭 포병대대에서 군복무할 때 나의 바로 위 군수과 선임이었다. 그는 단기하사로 이사종계였고 나는 서무계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답글을 썼다. "1977년 양구 833포병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하사님 맞습니까?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답글도 전화도 없다. 바쁘신 건가, 혹 누가 장난으로 보냈나? 그러고는 잠시 잊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유튜브 알림을 열어보니 "○○ 씨, 연락처 알려 주라. 내 전화는 010 ㅡ"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즉시 김 하사한테 전화를 했다. "김 하사님!" 그토록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 40년 만에 아니 정확하게는 43년 만에 불러보는 이름, 김 하사님! "김 하사님!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 씨, 목소리 그대로네." 김 하사도 옛날 목소리 그대로다. 40년 전,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고 서럽던 졸병 시절, 김 하사는 어리바리하던 나를 늘 아껴주고 감싸준 고마운 선임이었다. 당시 부대 내 고참 선임들은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김 하사는 정말 드물게도 말과 행동이 반듯한 멋진 신사였다. 그는 내가 기댈 언덕이었고 인자하고 자상한 형이었다. 그가 전역한 후에도 그는 나의 마음 속에 닮고 싶은 롤모델로 남아 있었다. 김 하사와 나는 그 옛날 그때 양구 대암산 포병대대에서 서럽고 힘들었던 이야기와 전우들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또 오늘의 삶을 이야기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화를 이어갔다. 40년 동안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물었다. 김 하사는 대구에 살고 있었다. 나의 이종사촌이 살고있는 동네에서 일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그곳을 다녀왔는데 세상은 이렇게 넓고도 좁은 것일까. 김 하사를 찾았다는 소식을 군수과장님과 선임하사님께 전하니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군수과장님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때 군수과 식구들 다 좀 찾아 봐. 대규, 상배, 규익이, 김 중사도 찾아보고.." 하시며 그 시절 군수과 과원들을 보고 싶어하셨던 터였다. 이제 40년 전 양구 대암산 산골짜기에서 함께 했던 그 시절 고생담과 추억담을 나누며 추억여행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움도 떨쳐버릴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만날 수 있을 텐데. 코로나 시절은 이렇게 평범한 삶 만남의 자유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그래도 유튜브가 찾아준 40년 전 옛 전우 김 하사, 그를 기다리는 기쁜 마음을 빼앗아 가지는 못 하리라. / 2020.09.16 전우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호박고구마-p1c 반갑습니다 전우님. 21사 직할대 출신 14군번 젊음이 느껴집니다. 양구 그 혹한의 겨울은 겪어본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지요. 계곡 얼음 깨고 물 떠다가 식기를 씻었지요.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였습니다. 눈은 또 어찌 그리도 많이 내리던지요. 모든 것들이 열악했던 시절, 지우고 싶은 기억도 많지만 그때 만난 전우들과의 좋은 추억은 잊고 싶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그린던 전우이자, 친구이자, 군대선임을 (3위일체에 가까운) 만났다니 제 친구를 만난 것 같이
기쁘네요.
김영택선생 소원푸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저는 이범용이라는 서울친구가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이 친구는 건국대 다니다 왔는데 저보다는 자대를 먼저 전입을 했고 군번은 저보다 2
달 가까이 늦은 60이었습니다.
닭고기가 나오는 날은 항상 나에게 먹으라고 넘겨주던 친구였습니다.
다른 친구(전우)들이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제대할때까지 한번도 다른 전우에게 주지 않고 항상 나한테만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한때 선배들이 1군 측정에서(1군, 3군이 나누어지기 전. 지금의 지작사처럼) 보병을 제치고 2등을 했다해서, (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사실인것처럼 느꼈다) 너희 는 최소한 2등 아니면 1등이고 그렇치 않으면 죽음이다 (보좌관 왈-소령)해서 완전군장해서
10KM를 3개월간 (무식하게)뛴적이 있습니다.
뛰기 전 부대안에서 선착순 몇번하면 벌서 지쳐서 헉 헉 소리가 나는데, 구보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야전
삽, 수통 등을 논두렁으로 던지고 (무게를 줄일려고) 뛰었지만 나는겨우 아슬아슬하게 합격시간 안에 들어오고, 이 친구는 내 바로 뒤로 들어오는데 그 몇보 사이가 합격,불합격의 갈림길이
되곤 했습니다.
불합격한 친구들은 오리걸음후 2KM를 더 뛰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는 (나와같이) 같이 떨어졌으면 (위안이 될텐데)하고 입밖으로 표현을 하곤 했
습니다.
눈도 남자답지 않게 소 눈망울처럼 크고 얼굴이 뽀얗게 솜털이 난 여성처럼 예쁘게 생겼는데다 감성도 풍부해서 나한테 속마
음을 털어놓곤 했습니다.
낮에는 훈련하곤 밤에는 업무(사무)를 3개월 동안 본적이 있습니다.
너무 몇달간 뛰니깐 정강이뼈(2개)가 갈라진것 같이 뛰면 궎찮은데 걸으면 다 절뚝절뚝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밤에 위병근무 나갔다 (나도모르게)위병소안 책상위에서 골아 떨어졌는데 총이 없어져써 안절부절했는데 평소에 그래도 근무성적이 좋다고 영창대신에 기압으로 대체해 주었습니다.
54. 56들은 선임대접을 깍뜻이 하고 59.60.61들은 동기처럼 지났던 것 같습니다.
대구,부산에 사는 친구들은 젊은 날에 한번씩 보곤 왕래도 했는데 이 친구는 살았는지 어쩐
지 궁금합니다.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정말로 이 친구가 정말 닭고기에 알레르기가 있었는지도 의심해 보곤
했습니다.
제대하기 얼마전 범용 왈, 양병장은 좋겠다. 부럽다면서
그런데 조수들이 양병장 처럼 할러는지. 사단은 잘 굴러갈런지 걱정을 해주곤했지만, 아버지 죽으면 아들이 잘 이끌어 간다고 걱정 븥들어 매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병때부터 사수하고, -행정병과 창고병을 겸임해서 조수선택 우선권을 받았음- 서울공대 나온 친구안뽑고 병참학교 나온 조수뽑았으니 선견지명은 있었던 것 같오)
살아있으면 잘 지내시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제대말년에, 친구들은 벌써 7년전에 정년퇴직을 했는데 아직까지 꾸물되느라 하지 못했다오. 못난이처럼.
@@양영식-n4g 반갑습니다 전우님. 이범용 전우와의 추억이 많으시군요. 그리운 전우 이범용 전우를 꼭 찾아 만나셔서 옛 추억 나눌 수 있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합니다. 건국대학교 출신이면 입학이나 졸업년도를 추정하여 동창회에 문의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우님의 군대시절 추억 잘 들었습니다. 전우들의 아름다운 추억에 제가 다 흐뭇합니다. 저도 동생처럼 아껴주었던 전우를 동창회를 통해 찾아보았는데 5년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는 안타까운 연락을 받았어요. 40년 전 모셨던 군수과장님과 선임하사님을 몇 년 전 찾았고요. 이제 군수과 이사종계로 근무했던 김 하사도 찾았어요. 함께 다 모여서 옛 추억 나누며 회포를 풀고 싶은데 코로나로 미루고 있습니다. 군수과장님이 그때 군수과 식구들 모두 찾아 보라시는데 쉽지 않네요. 언젠가 유튜브 보고 연락주길 기다려 봅니다. 긴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대 군번입니다. 저희때랑 비교도 안되는 시절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74년군번이십니다 아버지의 군생활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이 영상을 접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누구보다 강합니다. 왜 이영상을 보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속도 많이 썩였는데 정신들고보니 이미 늙어계신 아버지는 아무 힘도 없으시고 약해지셨습니다. 항상 아버지는 아버지인줄 알았습니다. 너무 후회되고 술한잔 마시면서 이 영상을 봅니다. 지나간 과거가 너무 후회스럽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때 이 영상 시청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버님께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하셨군요. 그때는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아버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드님께서 아버님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아버님께서 육체적으로는 쇠하지만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든든하시고 힘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버님 건강하시고 아드님도 뜻 하시는 일들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찾아와 영상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을가르며70~80년대 군대 참 힘들었지요. 전우님 말씀처럼 부모님 생각하면서 버티지요. 저는 군수과 서무계였는데 비밀문서를 다루다 보니 FDC 작전과에 자주 갈 수밖에 없었지요. 작전과에 올라가면 3과장이 동네 양아치 같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를 군화발로 정강이를 깠는데 그것이 지금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왜 저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지금이라도 묻고 싶어요. 3과장을 제외하고는 주위 모든 장교분들과 하사관분들 모두 좋은 분이셨어요. 우리 군수과장님은 일은 혹독하게 시키셔도 정이 있는 분이셨는데 몇 년전 연락이 되어 4년 전 부대개방행사 때 모시고 부대방문을 다녀왔습니다. 인정많으셨던 선임하사님도 연락해 주셔서 만나뵙고 있습니다. 작년엔 군수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하사와 이 하사도 제게 연락해 주셔서 어찌나 고마운지요. 코로나로 카톡과 전화로만 연락 주고받고 있어요. 군수과 식구들 모두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76년 3월 군번이면 저와 거의 같은 시기에 군복무하셨네요.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은 아픈 기억이 있으신데도 40년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키시는 전우님의 용서하는 마음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전우님 서무계 조수가 연세대 출신이었군요. 제 군수과 서무계 조수는 고려대 출신이었는데 그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두꺼운 전공서적 사무실에 갖다놓고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외무고시 합격 콜롬비아와 멕시코 대사까지 지낸 인재죠. 긴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수 전우님 만나서 그 힘들고 서러웠던 옛 추억담 꼭 나누시는 날이 찾아오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73년9월 입대하여 양구군 동면 팔랑리에 위치한 66연대 8중대에 배속되어 복무하다가 76.8.4 펀치뽈 제4땅굴 위쪽 GOP에서 전역한 충북 청주출신 유재천입니다.. 가끔 앨범속 사진을 보며 46년전의 젋은날 보고싶은 전우들을 그려봅니다..몹쓸 코로나19 잘 이겨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공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해병대 26개월 복무하시고 전역하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복무할 때 우리 육군도 가끔씩 해병대 군가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때는 정말 모든 게 열악하여 참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체력이 약해서 더욱 힘들었는데 선임들과 동기들의 전우애로 잘 이겨냈습니다. 태영님~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큰형님뻘 되시는 선배님 ^^ 저는 84년 보병 소총수, 사병입대하여,하사관를 거쳐 특전사 대위전역 했습니다. 전세계유일에 사병과 장교 전투복 차별을 두는.. 참으로 요상하고,드런나라 에서.. 추위와 배고픔 무료로 고생한덕에, 이나라가 세계에서 10대 무역국이 되고, 세계적 무기개발 국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에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전우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사병입대하여 하사관을 지원하는 경우는 보았는데 전우님처럼 특전사 대위까지 하신 예는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보다 10년 후쯤 입대하셨군요. 참 춥고 배고픈 시절이였지요. 길고 긴 군대생활 특히나 특전사... 힘드셨겠지만 전우님 덕분에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감사드립니다. 추워지는 날씨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전우님 말씀대로 제가 병영생활을 했던 시절이 전후 20년 남짓 지난 때이네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때 전우들 참 고생 많았습니다. 36개월 군복무 한 선임들은 20대 청춘의 1/3을 군대 병영에서 보낸 거지요. 춥고 배고팠던 그때 군시절의 고통도 이제는 추억의 한 조각들로 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님이 올리신 영상 보며 옛날 생각에 잠시나마 그리움을 달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저는 1970부터 1973까지 경기도 지역 말단 포병 부대에 복무해서 제가 있던 부대는 아니지만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가 너무나 흡사해서 반갑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이 몹시도 그립네요.
선배 전우님 댓글 고맙습니다. 저보다 5년 앞서 군복무하셨군요. 제가 근무한 곳도 강원도 양구 지역 말단 독립 포병부대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영상으로 옛 생각에 그리움을 달래셨다니 제가 다 고마운 심정입니다. 일산 제가 사는 곳 5분 거리에 백마부대가 있어 가끔씩 병사들이 무리지어 동네를 지나갈 때면 나도 저런 젊음이 있었나 하고 부러움의 눈길이 잠시 머뭅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833포병 선배님! 70년 5월에 입대하셨으면 저보다 5년 선배시네요. 선배님이 군복무하실 때인 73년 초에 철원에 있던 833포병대대가 양구 대암산으로 부대이동을 하였군요. 부대이동 때 근무하셨으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75년 12월에 양구 833포병대대로 자대배치 되었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저희들은 그래도 번듯한 내무반이며 사병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기억하시네요. 부대 뒷편에 막걸리 파는 오두막집이 있었지요. 저는 전역 전날 그곳 오두막집에서 후임들과 막걸리 한 잔에 석별의 정을 나누었기에 더욱 잊지 못합니다. 나이들수록 젊은 시절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고 소식 나눌 길 없는 그때 그 전우들이 그리워만집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젊은 시절 군대에서 만나 고생했던 전우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문득 생각나곤 합니다.
70년 8월 대구 50사단 입대 그해 10월 의정부 보충대 로 철원 문혜리 이층막사 8사단 50포병대대 부라보 포대 전입 양은 밥그릇 국그릇 수저는 늘 야전상의 보관 문혜리 물탱크 훈 련장 훈련과 교육으로 일관 600 그램 밥 과 국 참으로 배고픈시절 신탄리 포 진지 구축 으로 102op 바로 밑 1년의 공사 후 첫휴가 25일 부대복귀 베트남 특명 으로 춘천오음리 에서 한달간 적응훈련 71년 12월 부산3부두 에서 7박8일 의 항해 백마 부대 966대대 155m차리 포대 라트랑 십자성사령부 추진소대 근무 곡사포 사수로 73년 3월 부대철수 병력으로 인천부평 백마장 안착 돌아보니 꿈길같은 세월 현재군대 는 엄청변화 한 잠시 소풍같은 외출 이다 모두가 선후배 의 악으로 전진된 군대 남북 휴전상태 의 현실 을 우리는 반공방첩으로 북 의 침략을 견재해야 하노라
선배님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도 있습니다. 영상 감사히 잘 봤습니다. 저는 21개월 철원군 5포병여단 예하부대에서 군복무했습니다 사회에서 힘들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위병초소 근무 설때면 나가서 누구든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고. 각자 고향을 떠나 한마음 한 뜻으로 봄과 가을이 없는 철원군에서 엄동설한의 추위와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 혹독히 훈련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했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세월이 그립습니다. 그때의 젊음과 더불어 함께했던 간부님들 선후임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거진 10년이 지난 시점, 행정반에 전화해도 전역, 전출로 간부님들도 안계시네요. 연락은 안닿지만 그 시절 청춘을 함께했던 전우들이 사회 각자 위치에서 승승장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감사히 잘 봤습니다 선배님. 승진!
전우님 반갑습니다. 한 편의 좋은 수필을 읽은 듯 잔잔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댓글을 읽으며 전우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흐뭇해 집니다. 왠지 갑자기 반듯하고 멋진 모습의 문학 청년이 제 눈 앞에 나타난 듯합니다. 비록 철원군과 양구군, 먼 옛날과 10년 전 시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엄동설한과 찌는듯한 더위란 말씀 속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특히 혹독한 훈련을 하며 작은 것에 감사했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세월이 그립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옛 전우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르러서는 이글을 내가 쓴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듭니다. 전우님의 글이 제 속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 같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동적인 댓글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전우님의 군시절 추억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두용 833포병 전우님 반갑습니다. 우리 부대가 제가 막 전입 갔을 때는 8913부대였는데 1679부대로 바뀌었지요. 작년에 옛 부대를 찾아가 보셨군요. 원당리에서 부대로 들어가는 길, 참 애환이 서려있는 길고도 긴 길이지요. 아침마다 구보를 했던 길이기도 하고요. 저도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원당리 부대 방문하였습니다. 후곡리에 있던 챠리포대(후에 알파포대가 그곳에 독립포대로 있었다고 하더군요)도 원당리 본부쪽으로 들어와 알파 브라보 챠리가 모두 한 자리에 있더군요. 8인치 견인곡사포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 갔고 정문 포토존에 한 대가 기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후곡리 약수터를 찾아 약수도 한 잔하며 옛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전우님과 1년 가까이 같은 부대에 있었지만 포대가 달라서 교류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그 당시 알파포대 전우들은 왕포회라고 모임을 갖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모임을 갖는지요?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 서로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 전우들, 전역하여 옛 추억담 나누며 전우애를 다져가는 모습보다 더 큰 우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음 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전우 몇을 만났습니다. '고향언덕'이 제 닉네임입니다. 본부 통신과 허남두 전우와 동기시군요. 엊그제 본부 통신과 어느 전우가 댓글에 축구선수 출신 허남두 전우 얘기를 했습니다. 모두 그리운 이름들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youngtaekkim663 제가 자대배치를 받앗을때 본부포대 행정실에서 잠시 대기병으로 있었으니깐 아마도 스쳐 지나간 순간의 만남도 가능 하였겠읍니다 ㅎ 부산에서 833포대 전우 모임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모임이 해체 되었다 합니다 저는 지금 울산에서 생활중인데 64군번인 고참 장호익선배분과 거의 매일 만나며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허남두동기가 원래 전포반으로 가야되는데 경희고 축구선수출신이라 본부포대에서 차출해서 본부포대에 남은 동기였답니다 제대후 현대중공업에서 선수생활을 한동안 하였었는데 그이후론 연락이 두절되어 못만난지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쫄병시절 동경사로 부대이동 한다는 소리에 마음이 부풀기도 하였지요 세월이 참으로 빠릅니다 엊그제만 같앗든 시절 이였었는데.....
우연히 군대 시절이 생각나 검색해보았더니 제가 근무하던 833대대 양구군 원당리 영상이 나오네요.. 충성! 선배님들의 노고를 이제 나마 인사드립니다! 전 07군번 본부포대 FDC K77 장갑차 조종수 였습니다. 저때는 신막사여서 편하게 군생활을 했습니다. 영상 잘 보았고 마지막부분 위병소 앞 8인치 곡사포 모습도 보니 눈물나네요..감사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07년 군번으로 833포병에서 근무하셨군요. 17년과 18년 두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원당리 833포병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실로 40년 만에 다시 찾은 부대는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전우님 말씀대로 신막사에 신세대 장병들이 생활하는 그곳은 정말 부럽기조차 했습니다. 위병소 근처에 옛 8인치 견인곡사포가 유물로 전시되어 있더군요. 그래도 고마운 건 산천은 변함이 없고 우리 포대가 사라지거나 이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거지요. 추억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격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뵙지는 못했지만 선임이신데 반갑습니다. 저도 78년~81년에 833(1679부대)포병대대의 포 없는 본부포대에 근무했습니다. 저는 1287****군번으로, 논산훈련소 26연대를 거쳐 김해 육군공병학교에서 후반기 교육 받고, 춘천 102보충대에서 며칠 푹 쉬다가 자대 배치받고 따불백 메고, 소양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인제로 들어갈 때, "세상에 이런 데가 있었나."할 정도의 오지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눈앞이 깜깜했었지요. 그 당시 서울에서 부대를 가려면 마장동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양구읍까지 오는데 4시간 정도 걸렸고, 양구읍에서 동면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쯤 가서 원당리에서 내려, 거기서부터 부대 들어오는 차가 없어 천근같은 마음을 안고 걸어서 들어오곤 했던 아득한 산골짝 부대는 누구든지 면회를 오면 꼭 자고가야 하는 곳이었지요.^^ 영상에 올리신 감사패 밑에 눈에 익은 분들의 성함이 있어 반갑고, 영상 후반부로 갈수록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나오네요. 식당, 식기를 닦던 개울터, 내무반, 내무반 뒤 창고건물, 수송부, 위병소, 의무대, 영락교회가 지어준 예배당은 물론 위용을 자랑하던 M115, 8인치 곡사포도 보이네요. 생각해보면 일생에서 파란만장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사관들이나 장교들, 포대장님, 부 대대장님, 대대장님은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그 중 월남전 참전용사들인 중사, 상사들이 폭력성이 강하고, 분노조절장애가 심한 사람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만 벌리면 욕 반, 말 반이었고 별 일 아닌 것에 빠따를 들거나 발길질을 해댔고, 그런 사람이 주번사관을 하는 날은 평화롭던 내무반엔 곡성에서도 들을 수 없는 곡소리가 났었지요. 군대도 사람들 사는 세상입니다. " 군복무는 썩는 것"이 아닌 나라를 지키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과 타협하지 못하는 혼란한 시기에 부닥치는 고립된 병영 문화의 충격은 상당히 커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빠따를 맞아야 취침할 수 있었던 졸병시절도 있었지만, 남아(男兒)가 남자(男子)로 변하는 속성과정이라 생각하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받아들였지요. 털 빠진 쥐꼬리를 받는 봉급날은 전우들과 빈약한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화려한 미래의 꿈도 나눴고, 사랑하는 사람들 얘기는 숨 죽이며 들었고, 우악스러운 분위기에서도 꽃 피는 전우애를 느꼈으며, 자질구레한 상처들을 훈장으로 기억하는 능력도 배웠고, 좋은 추억들만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게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아련한 시절이 소중하게 가슴에 와닿고, 동고동락 했던 전우들이 징하게 그립네요. 86년에 고국을 떠나와서 미국 동부지역에 사는지라 가고싶어도 못 가는 곳이지만, 다음에는 원당리에 꼭 가서 꿈속에서도 그리던 곳들을 둘러보고 대암산도 올라보고, 옥녀탕에 발도 담그고, 무수막에서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올려주신 귀한 영상 자료를 몇 번이나 돌려봤습니다. 가물거리던 추억에 따스한 불을 붙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선임께서 올려주신 영상 삽입곡 'Carry me back to old verginny'는 Soft country music 을 좋아하는 저도 처음 듣습니다. 글도 참 잘 쓰시지만, 곡 선택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시고, 음악적 취향이 저와 같아 반갑습니다. 앞으로 댓글을 달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도 추가하겠습니다. 시간 날 때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마이클 부블레의 'Home'인데, 고향 생각날 때 주로 듣는 곡입니다. ua-cam.com/video/lbSOLBMUvIE/v-deo.html
전우님, 정말 반갑습니다.우리 833포병대대가 독립대대여서 전우들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만나니 더욱 반갑고 감사합니다. 전우님이 쓰신 글은 댓글이라기보다 한편의 명작 수필입니다. 정말 공감과 감동으로 가슴이 찡해지고 옛 추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제가 전역하던 78년에 우리 833포병 포없는 본부포대에 자대배치되어 오셨군요. 서로 조금 늦게 조금 일찍이었더라면 함께 근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좀 아쉽네요. 전우님은 논산훈련소를 거쳐 김해 육군공병학교 후반기 교육을 받으셨고, 저는 안동 36사를 거쳐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네요. 춘천 102보충대에서 따블빽을 메고 소양강선착장에서 군용선을 타고 인제로 양구로 들어갔지요. 전우님 말씀대로 그땐 정말 교통이 최악이었지요. 마장동터미널에서 양구 동면 부대까지 가는 길, 정말 하루 꼬박 걸렸지요. 원당리에서 부대로 터덜터덜 걸어서 귀대하는 그 길, 정말 멀고도 먼 길이었지요. 전우님이 말씀하신 내무반, 창고건물, 취사장, 개울물, 수송부, 의무대, 위병소가 저도 눈앞에 그려집니다. 저는 다행히도 재작년과 재재작년 두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꿈에도 그리웠던 원당리 우리 833포병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옛 전우들과 챠리포대가 있던 후곡리도 둘러보고 약수터에서 약수도 한모금 마셨습니다. 십여년 전엔 생태탐사차 대암산 정상 용늪도 올랐고 두타연도 가 보았습니다.그리고 함께 근무했던 그리운 여러 전우들과도 연락이 되었고 몇 분들과는 만나서 옛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전우님께서는 지금 미국에 사시면 정말 원당리 대암산 선녀탕 무수막이 그리우시겠어요. 부디 꼭 한번은 고국을 찾아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그리운 곳 찾아 마음껏 회포 푸시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찾아와 주시고 감동의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youngtaekkim663 험지의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괴로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집안의 자식이라 근무지가 집에서 가까우면 잦은 외출, 외박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어 부담스러웠고, 군과 민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자칫 군인의 본분을 잊기 쉽고, 마음도 해이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한 번쯤은 혼자서 나를 돌아보며, 나와 다르지만, 함께 목숨을 지켜야 하는 강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뭉쳐진 조직 속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했지요. 그 덕분에 제대 후 사회생활은 물론 외롭고 힘든 외국 생활 또한 군대의 여러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사는 곳이 위도상으로 북한의 청진시와 비슷한 곳이라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바람도 세고 춥지만, 4계절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잘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힘든 군 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일도 많았고, 사회에서 알지 못했던 것을 많이 배워서 좋았습니다. 내무생활과 훈련으로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계절마다 다른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걸 배웠지요. 봄이면 이곳저곳 대청소하랴, 페치카 금 간 데를 시멘트로 때우고, 지붕에 올라가서 굴뚝 청소하다 그을음이 얼굴에 묻어 시커먼 얼굴을 마주 보며 낄낄댔었고, 주말엔 라면과 김치를 반합에 싸 들고 대암산에 올라가 각종 산나물을 캐고, 가끔 대민지원 나가서 모도 심고, 맛있는 사제 밥 얻어먹고, 막걸리도 배불리 마시며 잠시 행복에 젖기도 했지요. 여름이면 모기와의 전쟁에 대비해 창문마다 방충망을 달고, 화장실에 벌레 안 꼬이게 열심히 ㄸ 퍼다 버리고, 거름 안 줘도 잘 자라는 풀들과의 전쟁인 제초작업, 도랑 청소, 장마 때에 흙이 유실되지 않게 진지 보수공사를 하느라 온 몸이 구리빛으로 변했지요. 가을이면 싸리나무 줄기 꺾어 싸리비를 만들고, 짚단 구해다 영을 엮어 생무 저장고 위 덮개 만들고, 아름드리 옥수숫대를 구해다가 짚으로 동여매어 동계훈련 때 텐트 밑에 깔 깔판 만들고, 겨울 칼바람에 대비해 내무반 창문에 방풍 비닐을 덧대어주고, 연병장에 떨어지는 낙엽의 흔적 잽싸게 없애느라 바빴지요. 겨울이면 후문 쪽 석탄 창고에서 조개탄을 퍼다 리어카에 실어 페치카 탄 저장고에 부어주고, 하루에도 몇번 씩 취사반에 가서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다 물을 가득 받아 리어카에 싣고 내무반 페치카 위의 물탱크에 채워 페치카 열로 물이 덥혀지면, 전우들이 추운 밖에 나가지 않고 페치카 옆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세면을 할 수 있었고, 수시로 산에 올라가서 땔감을 구해 짊어지거나, 철망으로 묶어 끌고 내려오고, 끝없이 내리는 폭설과의 전쟁에 젖은 야전잠바와 방한장갑이 마를 날이 없었지요. 위에 열거한 작업들은 인원이 많은 수송부나 통신과는 수월하게 했지만, 인원이 적거나 행정병이 많은 부서는 출장이나 열외가 많아 맨날 작업하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그들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살림살이도 가난했던 그때 비해 지금은 천지개벽할 정도로 모든 것이 좋아졌지만, 군 생활을 앞둔 사람에게는 바뀐 환경과 불편해진 현실은 그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쉽게 적응할 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하지요. 군대와 사회의 환경과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큰 데 따른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것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이 순전히 각자 헤쳐나가야 할 몫입니다. 저는 군 생활의 그 값진 고생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자부합니다. 선임은 물론 833 부대를 거쳐간 이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자랑스럽게 병역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군필자들 모두에게 무한한 신뢰와 찬사를 보냅니다.
@@임휘석-o6r 그곳 지명을 알고 계신 걸 보니 그 주변에서 군생활 하셨나 봅니다. 저는 커네티컷에 삽니다. 나이는 60대 초반이구요. 군기가 바짝 들어 선임의 눈짓이나 혀 차는 소리에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고, 빠따 몇 대에 단잠을 이뤘던 몸이 이제는 탄력을 잃고 쪼그라들어 낡은 일기장 같은 그때 추억만 들추어내면 가슴이 아립니다.
에고...저는 63연대 4대대에서 정훈장교로 3년 복무하고 89년에 제대 했습니다 (80학번입니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데 지금 한국에 안식년으로 나와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4대대에 있다가 1년 뒤에 사단본부로 재배치돼어 심리전 장교로 있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 1초소 후방 (전방이 아니고) 1000미터 지점의 지뢰밭에서 제 4땅굴이 발겼됐었습니다.
원당리 833포대에서 군복무하신 전우님께서 댓글 남겨주시니 참으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833포대는 독립포대라 출신 인원도 많지 않아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습니다. 대암산 아래 포대에서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 많이 생각나시지요? '833포병대대전우회'라는 다음카페가 있는데 혹 가입하셨는지요? 옛 전우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833포대 방문했습니다. 옛 내무반이나 취사장은 사라졌어도 대암산 아래 그 자리에 그대로 부대가 남아있는 것 만으로도 옛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추억만 남아있네요.
안녕하세요 대선배님들 앞에서 감히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운 전역 13 년된 햇병아리 애송이 입니다 영상과 특히 배경음악이 넘 좋네요 요즘 죽고싶을만큼 힘들어서 술만 먹고있습니다 술김에 그런건지 몰라도 영상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나네요 잠시 잊고 있었지만 군생활 함께 했던 전우들 보고 싶습니다 저희 세대와는 다르게 정말 힘든 군행활을 하셨던 선배님들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또한 이런 멋진 영상과음악 접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우님, 63연대 대대 군수과에서 군복무하셨군요. 월운저수지 팔랑푹포 잘 압니다. 엊그제 833포병 부대개방행사에 다녀왔어요. 40여년전 군수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우들 네명이 하루 전 양구를 찾아 임당리에 있는 '고향의 봄' 펜션에서 하루 묵었지요. 군생활은 힘들었지만 젊음을 함께한 전우들은 늘 그립고 보고싶네요.
김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나도 양구 21사단 65년대 대암산 인근 백석산 에서 위생병 으로 복무하다가 1970년 9월에 3년6개월 2주만에 제대했습니다, 그때 같이 고새했던 전우들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납니다, 혹시 같이 근무했던 전우님이 보셨다면 연락주세요, 특히 김천이 고향인 병장이 제일 보고싶군요. 감사합니다.
최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양구 21사단 65 연대에서 위생병으로 군대생활하셨군요. 군대생활 3년 넘게 정말 오래 하셨네요. 함께 고생하셨던 전우분들 꼭 만나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스무살 남짓 그 꽃다운 젊은 시절에 만난 전우들 정말 보고싶은 사람들이지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을텐데 소식 전할 길이 없지요. 선배님 전우들 만나 쌓인 회포 나눌 수 있는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6.25직후 때어나 배고프고 힘든 시대를 겪어온 세대죠. 가진것 없고 바글거렸던 형제자매들 사이 각자도생으로 생존 했지만., 그래도 그시절에는 희망도 있고 개천에서 용도 나고, 성실하기만 하면 쌀집 점원하다가 쌀집사장도 하고 주물공장에서 얻어터지며 일배웠어도 그기술로 가족들 먹여살리고 성공도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 세대는 희망도 잃어가고 개천에서 태어나면 벗어나기 힘든시대입니다. 고생하셨던 젊음도 가고~ 추억이 아련하시겠네요. 건강하십시요.
6.25 직후 태어난 세대를 정말 실감나게 표현하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바글거렸던 형제자매들. 맞습니다. 돌아보면 힘들고 서럽던 일들 참 많았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 친구 집에 놀러가서 밥도 얻어 먹고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뛰놀던 추억도 아련히 그립게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21사단 63연대에서 군복무하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매일 아침 점호 마치고 같은 사단 소속 66연대 앞까지 구보 나갔던 기억이 새롭네요. 양구! 참 춥고 눈 많이 내렸지요. 양구나 인제에서 군생활하신 분들은 제설작업 하느라 다들 고생 많았지요. 힘든 시절이지만 그래도 지나고나면 고생한만큼 추억으로 남아 있지요.
답글이 늦었네요. 82군번이면 저보다 7년 후 군입대하셨군요. 1679부대 브라보 출신이라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우리 833포병이 대대급이라 전우들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댓글로나마 만나뵈니 반갑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 저도 셍각납니다. 정말 40년 세월이 꿈같이 흘러갔습니다. 원당리 후곡리 대암산 애증이 얽힌 곳이지요. 혹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에 가입하셨는지요. 지난 토요일에 부대개방행사가 있었습니다. 옛 전우들 네명이 모여서 후곡약수 둘러보고 임당리 펜션에서 1박 한 후 부대개방행사에 참가하여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제가 군복무한 포병대대가 1군 직할이라 1군 부대마크를 군복에 달았는데 3군단 포사령부 지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본부포대에 근무해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3군단 마크를 달지 않고 1군 부대마크를 달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전역한 후 3군단포사령부가 3군단포병여단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저때는 배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있던 88년도 에도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배나온 장교, 하사관(부사관)들이 많이 보입니다. 먹을것도 많고 당류도 많이 먹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선배님 시절에는 배가 고플정도로 밥이 많이 안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입대한 88년2월엔 한국에 쌀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쌀은 남아 돌았습니다. 맛이 없어서 그렇지요 하지만 여전히 반찬은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70년도 보다는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전 꼬박 30개월을 복무 했습니다. 선배님 께서는 몇개월 생활을 하셨습니까 제가 영상을 보니까 저희는 이름표는 군복 색깔로 했었는데 70년도에는 흰색도 있었군요 제대를 하실때 예비군복 입고 나가셨고요 저희땐 예비군복이 따로 없이 예비군 마크만 붙이고 나갔습니다. 저도 보배드림 이라는 사이트에 제가 근무를 했던 사진을 올리고 밴드 라는 곳에 제가 있던 사진을 올렸는데 아직 한명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빨리 예전 전우를 찾아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긴 댓글 말씀 고맙습니다. 다른 부대는 모르겠지만 제가 군복무했던 우리 포병대대는 식사가 좋았습니다. 1식 3찬이었고요. 제가 군수과 서무계로 근무했는데 큰 부조리도 없었습니다. 전우들 만나서 추억담 나누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저도 함께 빌어봅니다. 제가 군복무할 때는 33개월이었는데 저는 대학시절 교련이수로 3개월 단축 특명으로 30개월 군복무했습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833포병 알파포대에서 근무하셨군요. 86년도면 저보다 10년쯤 후에 같은 공간에 있으셨네요. '북쪽이 어느 쪽일까' 하고 질문하신 행정반 인사장교님도 훌륭하시고 포가 향한 곳 보고 북쪽을 알아 맞힌 전우님도 대단한 분이십니다. 재미난 에피소드 글을 써서 '좋은생각' 잡지에 투고하시면 채택될 듯 합니다. 옛 군 시절 멋진 추억 간직하시고 오늘 더욱 힘차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86군번 이시면 저 신병때 보았을수도.. 저 고생 많이 했습니다 86군번 선배님들이 이뻐 해주셔서리 ㅎㅎ 아닐수도 있겠네요 전포반 저 신병때는 일명 쓰리김 이라고 세분 이셨거든요 참고로 전 66연대에서 훈련받고 4주차에 동기 8명과 일명착출? 여단주임상사님에게 현리로 팔려갔다가 두명만 야밤에 닷지 태워서 자대간다고 포병 숫자 열심히 겁을 하도줘서리 달달외우던 기억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구보하니 도로 양구 방산 원당리 윽~~~
군대 복무 시절 과장님과 선임하사님 상봉 후기: 작년엔 병기과 박수천 전우와 함께 박남종 선임하사님 찾아뵈었고요. 지난 1월엔 40년 만에 신현탁 군수과장님과 박남종 선임하사님을 병기과 박 전우와 함께 만나뵈었습니다. 40년 전 추억담을 나누며 정말 꿈 속을 헤매는 듯, 스무살 남짓 그 청춘의 시절로 빠져들었습니다. 신 과장님, 박 선임하사님께서 꼭 만나보고 싶어하시는 그때 그 군수과 식구들, 김대규 하사, 최규익 병장, 정상배 병장, 김한수 병장, 이성교 하사, 김창술 중사님 꼭 한번 만나실 수 있기를.. 그 때 그 시절로 추억 여행 떠나시고.. 더욱 더 건강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82년 11월 군번입니다 65-9-wp 방산 백석산 험한 산골....큰 형님 대 선배님이십니다.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들이 잘 살고 있다고 봅니다. 저희때도 엄청 빡신 군기에 하루하루가 힘든 하루 군 생활이었는데.. 고생많으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슴에 좋은 추억으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단결!
문상철 전우님! 찾아와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보다 몇 년 후 양구에서 군생활하셨군요. 방산 65연대 백석산 산골 그때 고생 많으셨습니다. 힘들고 고되었던 빡센 군대생활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고 그때 고생했던 전우들도 생각나고 이따금 가보고 싶기도 하시지요? 좋은 추억만 간직하시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75년도에 입대하셧으면 현재 2023년의 세월에서 저는 거의 절반인 00년 군번입니다.^^ 본영상의 부대와는 다른 저는 논산에서 후반기교육거쳐 육군 9사단 백마부대 30연대 60미리 박격포 주특기였죠~ 이제는 제가 받았던 주특기도 세월속에 사라졌다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68년 양구에서 근무하셨습니다. 정확한 부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영상속 사진으로만 봐도..고향집 부모님만을 늘 생각하며 나라를 위해 복무하신 그 숭고한 헌신과 노고가 물씬 느껴집니다. 선배님들이 계셨기에...중간짬밥?^^ 인 저부터 지금의 우리 다음세대들까지 건강하게 군복무를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16군번이면 전역한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청년이시군요. 생각이 반듯한 청년을 만나니 흐뭇합니다. 파주 법원리에서 군복무하셨군요. 고양 일산에 살고 있어 문산 파주 쪽으로 가끔씩 놀러갔었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군시절 경험을 디딤돌 삼아 멋진 사회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영상을 보면서 잊고 살았던 군시절 젊은 날의 추억들이 떠오르는군요 저는 75년 9월 ~ 78년 4월까지 922포병대대 본부포대 서무계로 복무를 했는데 그때 그 시절에는 922포대는 강원도 고성군 장신리 위치한 7710 부대 였습니다 78년 동부전선 최전방 보병부대 대대장이 통신병을 데리고 월북한 사건으로 모든 부대 명칭과 위치들을 변경하는 혼란이 있어 제가 전역하고 얼마 후 양구로 부대를 옮겼다 들었습니다 지금도 강원도로 휴가 놀러 가는 일이 있으면 일부러 진부령을 넘어 간성으로 돌아 가면서 922포병대대가 있던 장신리 마을을 돌아 보면서 갑니다 부대 정문 언덕으로 오르는 길 옆 교회도 44년 지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있으며 지금은 다른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더군요 그때 함께 복무하며 내무생활을 했던 전우들이 그립군요 인사과.정보과.작전과.군수과.통신과.등 ... 포대본부.전우들의 성명과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본부포대 서무계로 매일 부대 각 초소 보초 근무자 명단을 작성했던 이유로 많은 전우들의 이름들이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 혹시 소식과 연락이 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네요 ) 대대장.박천수님 포대장.차동개님 백규태님.유상달님 인사계.최명환님 지금은 80대 중 후반 되셨겠군요 뵐 수 있으면 식사 멋지게 대접하고 싶군요 ( 수원 출신 오진록 올림 )
오진록 전우님! 댓글 남겨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비록 부대는 다르지만 포병대대 본부포대에서 저와 똑같은 시기에 군복무를 하셨다니 더욱 반가움을 느낍니다. 저는 1975년 9월부터 1978년 3월까지 군복무 하였습니다 저는 양구 833포병대대에서 본부포대 군수과 서무계 업무를 맡아보았는데 업무상 922포병대대와 877포병대대 군수과 서무계와 가끔씩 통화를 했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은 통신과 교환병을 통해 전화통화를 했었지요. 전우님은 본부포대 본부행정실 서무계로 근무하셨군요. 본부포대에 인사과 정보측지과 작전과 군수과 통신과 수송부 등이 있었지요. 본부행정실 서무계로 매일 각 초소 근무자 명단을 작성하시다 보니 포대원들 많이 기억하고 계시겠군요. 그리운 전우님들 만나서 그 시절 추억담 많이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문득 전우님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서럽고 고달펐던 군시절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젊었던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합니다. 전우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군시절 추억에 잠겨 양구를 검색하다가 이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연배이신거 같아 더 영상에 몰입해서 봤습니다. 저 역시 양구에서 21개월동안 복무하고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양구라는 지역에서 복무했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뭉치게 되는거같습니다. 선배님께서 복무할 당시 양구는 그야말로 도로도 연결되어있지 않아 배를타고 들어가고 휴가를 나가는 수준이었다고 말로만 들었습니다. 게다가 양구똥바람이라고 불렀던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은 70년대에는 더 매서웠겠지요... 그 당시에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군대였지만 지나고보니 군시절이 그립기도합니다. 멋진 동영상 잘 감상하고가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3년이라는 청춘을 바치신 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늘 양심적 병역거부선고가 있었는데 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영상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 건강하세요 충성!
전우님! 반갑습니다. 부산에서 102보충대 거쳐 소양가메서 배를 타고 양구로 자대배치 받으셨군요. 저보다 20년 후 군번이신데 그때도 소양강 선착장에서 군용선 배 타고 양구로 갔었군요. 저는 안동(지금은 원주)에 있었던 36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전반기 6주 훈련받고 부산으로 내려가 육군병기학교에서 5주간 후반기 탄약관리병 교육 받았습니다. 그리고 춘천 102보 거쳐 양구로 자대배치 받았어요. 양구 인제 하면 대암산이지요. 저희 부대는 대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지요. 휴가 때 서울까지도 하루종일 걸리는데 부산은 정말 오랜 시간 걸렸겠어요. 작년에 40여년 전 함께 군복무했던 전우들과 함께 양구 선착장 둘러보았어요. 요즈음은 손님이 없어 배가 다니지 않는다고 하네요.
필승! 대선배님 저는 공군 제5전술공수비행단 제대한 10군번입니다.(아버지는 82군번 전차병 30개월 복무) 입대한 다음날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났었죠. 모든 것이 열악하고 사병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군사정권 시기 선배님의 국가에 대한 헌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필승!
반갑습니다. 전우님! 포병대대 통신과에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하셨네요. 세월이 너무도 많이 흘러갔지요. 그 젊음의 시절, 청춘의 얼굴들 이제는 모두 노년이 되었겠지요. 문득문득 그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그 전우들 어느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동시대의 전우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 시대의 아픔과 전우애.. 지금 양구에 사시는군요. 부산에서 양구로 멀리 이사가셨네요. 전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후반기 교육 받고 양구에서 군생활했습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때 양구 방문했어요. 수년전엔 양구 탐사 한번했고요. 김수근미술관 선사박물관, 전쟁기념관, 산양보전센터, 두타연 대암산 용늪 제4땅굴 을지전망대 두루 다녔습니다.
@@이명재-j2l 양구가 교통이 정말 좋아졌더군요. 춘천에서 터널 통과하니 빠르게 양구 도착. 40년 전 춘천 103보(102보)에서 3일 묵고 소양강에서 밖이 보이지도 않는 군용선 배타고 앙구 선착장 도착. 양구 가서 자대배치까지 하루종일. 휴가 나오고 들어갈 때도 서울 마장동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하루 종일이었죠.
83년에 입대해서 85년 전역할때 까지 육군본부 심리전단 소속으로 21사단G,OP에서 파견 생활 했었는데 대암산 중계소에도 잠깐이나마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힘들고 고생많았던 군생활 이었는데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보다는 동고동락을 같이했던 전우들이 먼져 생각나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보다 8년 후쯤 입대하셨네요. 백용학 님 말씀이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땐 정말 힘들고 고생 많았었지요. 저 역시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청춘의 시절이 그립고 그때 그 전우들 보고 싶어집니다. 육본 소속으로 21사단 GOP에서 파견 생활하시며 대암산 중계소도 들리셨군요. 양구와 인제에서 군대 생활하신 분들은 대암산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양구 동면 팔랑리 161포병 본부포대에서 근무하셨군요. 전역하신지 40년이 다 되어가도 군대생활 그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지요? 물론 또 많은 일들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겠지만.. 그 꽃같은 청춘의 시절, 좋은 추억들 오래도록 간직하시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안동 36사단에서 전반기 훈련, 부산육군병기학교에서 후반기 교육 받고 춘천 102보충대를 거쳐 소양강에서 군용선 배타고 양구선착장으로 갔었는데, 꼭 20년 후인 96년에도 똑같이 전우님께서 소양강에서 배 타고 양구선착장으로 가셨다는 말씀 들으니 참 놀랍습니다. 20년 동안 변한게 없었군요. 2사단과 21사단 모두 양구에 이웃해 있었지요. 감사합니다.
833포병 전우님, 반갑습니다. 저보다 5개월 늦게 833에 전입 오셨군요. 지난 2017년과 2018년 5월 부대개방행사때 원당리 833포병 다녀왔어요. 지나는 길에 후곡리 약수터에 들러 약수도 한 모금 마셨지요. 8인치 견인포에서 k9 자주포로 바뀌었고요. 챠리포대는 원당리 본부로 모두 옮겨갔어요. 챠리 포 그 흔적은 유물처럼 남아있었습니다.
현직 군의관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군의관님 말씀대로. 양구는 큰 변화가 없는 곳이지요. 재작년 부대개방행사때 원당리 마을을 지났는데 예전 마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더군요. 마을은 옛 모습이나 곳곳에 새로운 박수근미술관이나 선사박물관, 전쟁기념관, 산양복원센터, 양구식물원, 을지전망대, 곰취재배 등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양구 두타연과 도솔산, 대암산 용늪도 좋지요.
아버님께서 인제 원통에서 공병대 근무하셨군요. 겨울에 선임들 빨래 얼음 깨가며 하셨다는 말씀이 과장이 아닐 겁니다. 제가 근무한 양구의 겨울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였지요. 취사장에서 식기 세척할 땐 얼음 깨고 흐르는 물에 식기 씻었지요. 씻자마자 식기에 얼음이 부스럭거렸죠. 한밤중 단잠 깨어 눈 쌓인 초소에서 보초 2시간 서고 올 땐 발도 얼고 통일화도 얼어서 부스럭거렸고요. ㅠ 다 지난 얘기지만 어려운 일 닥치면 그때 일 교훈 삼아 이겨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길고 긴 군대생활이었습니다. 혹한과 폭설의 겨울을 세 번 보내고서야 전역일의 아침이 밝았지요. 보초서랴 업무하랴 야간근무에 치여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이 참 많았지요. 어느 선배가 말하더군요. 훈련 받을 때마다 배웠던 물리 공식들이 하나 둘 다 날아가 버려, 군대 3년 세월 보내고 나니 머리가 텅 비어 있더라고요.
20년 전쯤 3박 4일 '양구생태탐사'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수근미술관, 양구전쟁기념관, 양구선사박물관, 산양복원센터, 제4땅굴, 통일전망대, 펀치볼, 두타연, 도솔산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대암산 용늪에도 올랐습니다. 지금도 그때 본 용늪의 멋진 풍경과 '금강초롱'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정말 감격적이었던 순간은 양구식물원을 찾아갈 때였지요. 왠지 낯익은 길이다 생각했는데 버스가 동면 원당리로 접어들어더니 66연대를 지나 제가 군복무했던 833포병부대 쪽으로 가더군요. 가슴이 마구 뛰었지요. 버스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내무반과 행정사무실. 달려가면 그때 그 전우들과 한바탕 큰 소리로 반가운 인사라도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갑자기 젊은 시절의 '내'가 되어 마구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4년 전 부대개방행사 때 부대를 다녀왔습니다. 비록 그때 그 전우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내무반도 행정사무실도 취사장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그 남은 조각들을 주워 모아 옛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부대가 사라지거나 이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그 다음 해 부대개방행사 때는 옛 군수과장님과 함께 방문하여 추억을 더듬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 덕분에 그때 함께 군복무했던 여러 전우들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나, 김 병장이야", "나, 이 하사야", "저 강 상병입니다", 하며 불쑥 소식 전해 올 전우들을 기다려봅니다.
75년에 고방산 183 포병대에서 제대 했는데 그땐 고생 많았지만 다시 한번더 군생활 하고싶답니다 첫 휴가 가는날 21사단 보충대 집합 하루 자고 소양강 어기 까지 왔어는 배를 타고 소양땜 까지 그리고 춘천역 용산역 삼랑진역 마산 휴가 올때는 그렇게 왔지만 귀대할것 걱정되어 잘 놀지도 못했거던요 평생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 이랍니다
상사 이재영입니다. 오늘 뵈서 영광이였습니다. 건강하시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뵙겠습니다. 충성!!😅
네, 행보관님! 이렇게 댓글로 또 뵈니 반갑습니다. 부대방문 때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언제 서울 쪽으로 오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맛있는 식사 대접해 드릴게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상사님 어디에서근무하셧나요 전2사단통신지원대근무햇읍니다78년입대80년10월제대
지금은 하늘높은곳에서 보고계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도 저런시절 힘들게 군생활하셨겠지요.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어제 아침 여느 날과 같이 유튜브를 열었다. 알림이 떴다.
"○○ 씨, 반갑다. 김○○ 하사다. 알지? 그때가 몇 년 전인가? 영상 잘 봤다."
군대에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하여 만든 내 유튜브 동영상에 꿈에서도 보고 싶었던 김 하사가 댓글을 달았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40년 동안 기다렸던 말 한 마디 "나 김 하사다"가 남겨져 있었다. 김 하사는 40년 전 강원도 양구 대암산 기슭 포병대대에서 군복무할 때 나의 바로 위 군수과 선임이었다. 그는 단기하사로 이사종계였고 나는 서무계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답글을 썼다.
"1977년 양구 833포병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하사님 맞습니까?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답글도 전화도 없다. 바쁘신 건가, 혹 누가 장난으로 보냈나? 그러고는 잠시 잊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유튜브 알림을 열어보니
"○○ 씨, 연락처 알려 주라. 내 전화는 010 ㅡ"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즉시 김 하사한테 전화를 했다.
"김 하사님!"
그토록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 40년 만에 아니 정확하게는 43년 만에 불러보는 이름, 김 하사님!
"김 하사님!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 씨, 목소리 그대로네."
김 하사도 옛날 목소리 그대로다.
40년 전,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고 서럽던 졸병 시절, 김 하사는 어리바리하던 나를 늘 아껴주고 감싸준 고마운 선임이었다. 당시 부대 내 고참 선임들은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김 하사는 정말 드물게도 말과 행동이 반듯한 멋진 신사였다. 그는 내가 기댈 언덕이었고 인자하고 자상한 형이었다. 그가 전역한 후에도 그는 나의 마음 속에 닮고 싶은 롤모델로 남아 있었다.
김 하사와 나는 그 옛날 그때 양구 대암산 포병대대에서 서럽고 힘들었던 이야기와 전우들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또 오늘의 삶을 이야기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화를 이어갔다.
40년 동안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물었다. 김 하사는 대구에 살고 있었다. 나의 이종사촌이 살고있는 동네에서 일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그곳을 다녀왔는데 세상은 이렇게 넓고도 좁은 것일까.
김 하사를 찾았다는 소식을 군수과장님과 선임하사님께 전하니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군수과장님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때 군수과 식구들 다 좀 찾아 봐. 대규, 상배, 규익이, 김 중사도 찾아보고.." 하시며 그 시절 군수과 과원들을 보고 싶어하셨던 터였다.
이제 40년 전 양구 대암산 산골짜기에서 함께 했던 그 시절 고생담과 추억담을 나누며 추억여행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움도 떨쳐버릴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만날 수 있을 텐데. 코로나 시절은 이렇게 평범한 삶 만남의 자유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그래도 유튜브가 찾아준 40년 전 옛 전우 김 하사, 그를 기다리는 기쁜 마음을 빼앗아 가지는 못 하리라.
/ 2020.09.16 전우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아 선배님들 멋지십니다. 저는 14년도 군번 21사 직할대 출신입니다 ㅋㅋ 양구의 추운 날씨 그것 하나로 정말 고생했는데 선배님들은 구타와 폭언 등 열악한 환경속에서 군생활을 하셨네요 존경스럽습니다^^
@@호박고구마-p1c 반갑습니다 전우님. 21사 직할대 출신 14군번 젊음이 느껴집니다. 양구 그 혹한의 겨울은 겪어본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지요. 계곡 얼음 깨고 물 떠다가 식기를 씻었지요.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였습니다. 눈은 또 어찌 그리도 많이 내리던지요. 모든 것들이 열악했던 시절, 지우고 싶은 기억도 많지만 그때 만난 전우들과의 좋은 추억은 잊고 싶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그린던 전우이자, 친구이자, 군대선임을 (3위일체에 가까운) 만났다니 제 친구를 만난 것 같이
기쁘네요.
김영택선생 소원푸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저는 이범용이라는 서울친구가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이 친구는 건국대 다니다 왔는데 저보다는 자대를 먼저 전입을 했고 군번은 저보다 2
달 가까이 늦은 60이었습니다.
닭고기가 나오는 날은 항상 나에게 먹으라고 넘겨주던 친구였습니다.
다른 친구(전우)들이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제대할때까지 한번도 다른 전우에게 주지 않고 항상 나한테만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한때 선배들이 1군 측정에서(1군, 3군이 나누어지기 전. 지금의 지작사처럼) 보병을 제치고 2등을 했다해서, (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사실인것처럼 느꼈다)
너희
는 최소한 2등 아니면 1등이고 그렇치 않으면 죽음이다 (보좌관 왈-소령)해서 완전군장해서
10KM를 3개월간 (무식하게)뛴적이 있습니다.
뛰기 전 부대안에서 선착순 몇번하면 벌서 지쳐서 헉 헉 소리가 나는데, 구보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야전
삽, 수통 등을 논두렁으로 던지고 (무게를 줄일려고) 뛰었지만 나는겨우 아슬아슬하게 합격시간
안에 들어오고, 이 친구는 내 바로 뒤로 들어오는데 그 몇보 사이가 합격,불합격의 갈림길이
되곤 했습니다.
불합격한 친구들은 오리걸음후 2KM를 더 뛰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는 (나와같이) 같이 떨어졌으면 (위안이 될텐데)하고 입밖으로 표현을 하곤 했
습니다.
눈도 남자답지 않게 소 눈망울처럼 크고 얼굴이 뽀얗게 솜털이 난 여성처럼 예쁘게 생겼는데다 감성도 풍부해서 나한테 속마
음을 털어놓곤 했습니다.
낮에는 훈련하곤 밤에는 업무(사무)를 3개월 동안 본적이 있습니다.
너무 몇달간 뛰니깐 정강이뼈(2개)가 갈라진것 같이 뛰면 궎찮은데 걸으면 다 절뚝절뚝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밤에 위병근무 나갔다 (나도모르게)위병소안 책상위에서 골아 떨어졌는데 총이 없어져써 안절부절했는데
평소에 그래도 근무성적이 좋다고 영창대신에 기압으로 대체해 주었습니다.
54. 56들은 선임대접을 깍뜻이 하고 59.60.61들은 동기처럼 지났던 것 같습니다.
대구,부산에 사는 친구들은 젊은 날에 한번씩 보곤 왕래도 했는데 이 친구는 살았는지 어쩐
지 궁금합니다.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정말로 이 친구가 정말 닭고기에 알레르기가 있었는지도 의심해 보곤
했습니다.
제대하기 얼마전 범용 왈, 양병장은 좋겠다. 부럽다면서
그런데 조수들이 양병장 처럼 할러는지. 사단은 잘 굴러갈런지 걱정을 해주곤했지만,
아버지
죽으면 아들이 잘 이끌어 간다고 걱정 븥들어 매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병때부터 사수하고,
-행정병과 창고병을 겸임해서 조수선택 우선권을 받았음- 서울공대 나온 친구안뽑고 병참학교 나온 조수뽑았으니 선견지명은 있었던 것 같오)
살아있으면 잘 지내시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제대말년에, 친구들은 벌써 7년전에 정년퇴직을 했는데 아직까지 꾸물되느라 하지 못했다오. 못난이처럼.
@@양영식-n4g 반갑습니다 전우님. 이범용 전우와의 추억이 많으시군요. 그리운 전우 이범용 전우를 꼭 찾아 만나셔서 옛 추억 나눌 수 있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합니다. 건국대학교 출신이면 입학이나 졸업년도를 추정하여 동창회에 문의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우님의 군대시절 추억 잘 들었습니다. 전우들의 아름다운 추억에 제가 다 흐뭇합니다. 저도 동생처럼 아껴주었던 전우를 동창회를 통해 찾아보았는데 5년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는 안타까운 연락을 받았어요. 40년 전 모셨던 군수과장님과 선임하사님을 몇 년 전 찾았고요. 이제 군수과 이사종계로 근무했던 김 하사도 찾았어요. 함께 다 모여서 옛 추억 나누며 회포를 풀고 싶은데 코로나로 미루고 있습니다. 군수과장님이 그때 군수과 식구들 모두 찾아 보라시는데 쉽지 않네요. 언젠가 유튜브 보고 연락주길 기다려 봅니다. 긴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youngtaekkim663 저는 양구 동면 추운곳에서 태어나 1년정도 살았읍니다
10년대 군번입니다. 저희때랑 비교도 안되는 시절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74년군번이십니다 아버지의 군생활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이 영상을 접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누구보다 강합니다. 왜 이영상을 보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속도 많이 썩였는데 정신들고보니 이미 늙어계신 아버지는 아무 힘도 없으시고 약해지셨습니다. 항상 아버지는 아버지인줄 알았습니다. 너무 후회되고 술한잔 마시면서 이 영상을 봅니다. 지나간 과거가 너무 후회스럽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때 이 영상 시청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버님께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하셨군요. 그때는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아버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드님께서 아버님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아버님께서 육체적으로는 쇠하지만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든든하시고 힘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버님 건강하시고 아드님도 뜻 하시는 일들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찾아와 영상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효도해서 모든 아버지분들에게 감사인사 표하겠습니다. 힘든시기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나라가 혼란스러운게 느껴집니다. 건강하세요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늦은게아닙니다.
지금해도 충분한거죠
저도 87년군번입니다.무서운시기였죠
뚜드려맞기도 엄청나게 쳐맞고 군생활 해었죠. 그냥 부모님생각하면서 버텻죠 ㅠ 근데 전역했던부대를 방문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저도 가보고싶은데 그렇게 안되네요~~
영상잘봤습니다^^;
@@바람을가르며70~80년대 군대 참 힘들었지요. 전우님 말씀처럼 부모님 생각하면서 버티지요. 저는 군수과 서무계였는데 비밀문서를 다루다 보니 FDC 작전과에 자주 갈 수밖에 없었지요. 작전과에 올라가면 3과장이 동네 양아치 같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를 군화발로 정강이를 깠는데 그것이 지금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왜 저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지금이라도 묻고 싶어요. 3과장을 제외하고는 주위 모든 장교분들과 하사관분들 모두 좋은 분이셨어요. 우리 군수과장님은 일은 혹독하게 시키셔도 정이 있는 분이셨는데 몇 년전 연락이 되어 4년 전 부대개방행사 때 모시고 부대방문을 다녀왔습니다. 인정많으셨던 선임하사님도 연락해 주셔서 만나뵙고 있습니다. 작년엔 군수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하사와 이 하사도 제게 연락해 주셔서 어찌나 고마운지요. 코로나로 카톡과 전화로만 연락 주고받고 있어요. 군수과 식구들 모두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youngtaekkim663
양아치 같은, 인간같지 않은 종들이 꼭 있지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반갑습니다. 76년 3월 논산 26연대에서 훈련 마치고 233수송대대로 자대배치받고 근무했어요. 논산에서는 중대장이 아픈사람 약준다고해서10여명이 나오니 약대신 1.5미터 깊이의 세면장 물통에 처박아 넣은일, 자대에서 상병일때 아무잘못도 없는데 술취한 고참병장과 하사에게 밤새도록 구타당한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서무계였고 그때 저의 조수였던 연세대 사회학과 다니다가 온공유식일병을 찾습니다. 그립습니다. 그때 공일병은 안경이 다 부서지도록 맞았어요.
수송부대라 그런지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죠. 2.5톤 GMC트럭의 배기통에 코박게 하고 고참이 엑셀을 밟아대면 시커먼 매연을 그대로 흡입하는 악랄한 기합을 받았죠. 휴가가려고 부대앞 목욕탕에 가면 죄다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있었죠. 그것을 본 민감인들이 쯧쯧 혀를 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떠올리면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전우님 반갑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 엄청난 비인간적인 일도 일어났었군요. 이유도 없이 아니면 조그만 꼬투리 잡아 침소봉대하여 구타당한 아픈 기억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질만도 한데 그 서럽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곤 하지요.
76년 3월 군번이면 저와 거의 같은 시기에 군복무하셨네요.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은 아픈 기억이 있으신데도 40년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키시는 전우님의 용서하는 마음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전우님 서무계 조수가 연세대 출신이었군요. 제 군수과 서무계 조수는 고려대 출신이었는데 그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두꺼운 전공서적 사무실에 갖다놓고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외무고시 합격 콜롬비아와 멕시코 대사까지 지낸 인재죠. 긴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수 전우님 만나서 그 힘들고 서러웠던 옛 추억담 꼭 나누시는 날이 찾아오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도76년3월 26년대1중대에서 훈련받았습니다 군번1263
70~80년대 군복무하신 선배님들껜 무조건 존경해야한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의 시절을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떳떳이 군복무를 다 했으니 떳떳이 사회생활도 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오케바리~^^
ㅡㅡㅡㅡㅡㅡㅡ
그때 대공근무나갈때 소대 1개밖에없는 철모위에쓰는 털달린 큰 모자(장교용,이름모름) 서로쓰려고 싸웠는디 털장갑도....
시방은 개인별로 다 있더라고욤,
월급도 병장이 4~6천원이 안넘었는디 시방은 50만원이 넘는디야, 흐미
그때 직업군인 하사관 월급 초봉이 8만원이었시유
집에가보면 그지였시유ㅋㅋ
그렇게 다들 견뎠시유 그때는~~
시방은 군대정말 좋아졌시유.
요즘애들 그때처럼 33개월 근무하고 배고프고 때리고 춥고(당시-36도까지 내려갔음,뉴스에나왔음,)훈련빡쎄게 시킨다면 아마 다 도망갈겁니다요.ㅋㅋ
진짜끔직할정도로 맞았지요.
그래도 그시절이그립습니다.
선배님들이 계셔서 지금 자유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젊음의 시절 나라 위해 헌신한 분들 모두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본포대 측지병 김경일 아닌가요?
@@cookie4151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73년9월 입대하여 양구군 동면 팔랑리에 위치한 66연대 8중대에 배속되어 복무하다가 76.8.4 펀치뽈 제4땅굴 위쪽 GOP에서 전역한 충북 청주출신 유재천입니다.. 가끔 앨범속 사진을 보며
46년전의 젋은날 보고싶은 전우들을 그려봅니다..몹쓸 코로나19 잘 이겨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배님. 저보다 2년 먼저 입대하셨네요. 팔랑리 66연대에서 군복무하셨군요. GOP에서 전역하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장군만 영웅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한분 한분이 영웅입니다.
오늘 동면을 거쳐 펀치볼에 다녀왔는데...
이분도 다 떨어진 통일화 신고 제설작업 하던 군인 아저씨네.
강원도 인제 양구에서 군대생활하신 분들을 위하여...
@@yiichanho 네..그시절 전우들의 복장은 추레하고 볼품없었지만 최일선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정신무장은 대단했지요..저도 10여년전 아내와 함께 방산.두타연.펀치뽈 등에 다녀왔습니다..
양구 동면, 남면, 방산면, 원당리, 후곡리, 임당리, 팔랑리, 해안리 귀에 익어요. 저도 수년 전 두타연과 펀치볼, 도솔산 가 보았습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대암산 정상에 있는 용늪도 가보았으니.. 이제는 즐거운 맘으로 그때를 가끔씩 떠올려봅니다.
저는 94년 해병대 입대해서 26개월 전역했지만 선배님들 이런 영상보면
특히 집에서 한잔 할 때면 눈물이 납니다.
정말 고생많으셨고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거라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공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해병대 26개월 복무하시고 전역하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복무할 때 우리 육군도 가끔씩 해병대 군가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때는 정말 모든 게 열악하여 참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체력이 약해서 더욱 힘들었는데 선임들과 동기들의 전우애로 잘 이겨냈습니다. 태영님~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띄우고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춤을 춥니다~~!
필승
99년4월7일 서문 들어간 851기 경상도 해병입니다.
쏜화살같이 지나가버린 세월에
그저 빛바랜 나까오리만 늘
기분이좋습니다.
늘 복되고 건강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필씅^^~~
흐미 님은 우리보다 더 고생 하셨구만요 여기 선배님 세대는 육군도 군기가ㅠ전설 이셨던 분들이고 저도 육군출신이지만 해병분들 정말 고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생 많았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저는 89년 군번 입니다 육군 보병출신이죠 ㅎㅎ
큰형님뻘 되시는 선배님 ^^ 저는 84년 보병 소총수, 사병입대하여,하사관를 거쳐 특전사 대위전역 했습니다. 전세계유일에 사병과 장교 전투복 차별을 두는.. 참으로 요상하고,드런나라 에서.. 추위와 배고픔 무료로 고생한덕에, 이나라가 세계에서 10대 무역국이 되고, 세계적 무기개발 국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에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전우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사병입대하여 하사관을 지원하는 경우는 보았는데 전우님처럼 특전사 대위까지 하신 예는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보다 10년 후쯤 입대하셨군요. 참 춥고 배고픈 시절이였지요. 길고 긴 군대생활 특히나 특전사... 힘드셨겠지만 전우님 덕분에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감사드립니다. 추워지는 날씨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와~보병 병생활 하셧으면 군 생활 지긋지긋 해서라도 간부 지원 안할건데 하사관 거쳐 특전사 장교까지 두루두루 ..ㅋ 대단하십니다~전 91년 81mm 전역햇습니다~ㅎㅎ
존경하고 멋지십니다ㆍㆍ선배님
대단하네요. 고려말 최영장군님이 병에서 출발했고 삼국지 여몽도 병에서 시작했다지요.
대단하십니다. 군대생활 밑바닥부터 장교까지 다 하시고 참으로 멋진 사나이 군인이십니다. 훌륭하세요
가장 찬란한 젊은시절에 3년을 고생한곳이니..그 추억의 아련함은 우리 모두에게 아스라한 추억일수밖에 없습니다.....지금쯤은 모두들 할아버지가 되어있겠네요
가장 찬란한 젊은 시절에 3년을 고생한 곳..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보다 군대시절 기억들이 더 뇌리에 박혀 아련히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참 매번 들어도 좋은노래입니다 ㅎ 여기 다녀가시는 모든님들 행복한 성탄절 맞으시고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김영탁 선배전우님 덕분에 저도 가끔 추억여행을 다녀오곤 한답니다 ^^ 건강하세요 ㅎ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우님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70년대 군대는 진짜 상상속의 시절이라 저 시절 군인분들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가늠이 안되네요
이 시대는 우리모두가 주인공 입니다 선배님 후배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말할수있다 나라 잘 지켜다고 대한민국을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 그 소중한 젊음을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 그 누구든 존경스럽습니다.
70년2월에 입대하여 양구2사단 32연대 10중대 3소대 자대 배치 받자마자 수송부 발령받고 부연대장 운전병으로 근무했네요 ... 같이 뺑이치던 수송부 전우들이 그립습니다 모두 건강하길 바래요
저보다 5년 먼저 군입대하여 양구 2사단에서 군복무하셨군요. 전우들 그리워하는 따뜻한 마음 공감합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전후 20년이 지난 시절의 병영, 저 보다는 10년을 앞선 선배님들의 고된 병영생활을 추축해봅니다. 겨울철 넉가래질만 해도 김근육이 될 뻔했던 그 시절, 오직 휴가 날짜와 전역날 육군특명만을 손꼽았을 선배님들의 소중한 추억 잘 보았습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전우님 말씀대로 제가 병영생활을 했던 시절이 전후 20년 남짓 지난 때이네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때 전우들 참 고생 많았습니다. 36개월 군복무 한 선임들은 20대 청춘의 1/3을 군대 병영에서 보낸 거지요. 춥고 배고팠던 그때 군시절의 고통도 이제는 추억의 한 조각들로 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백두산 선배님들 반갑습니다. 07군번으로 까마득한 후배이지만 백두OP에서 근무 하면서 느낀 저시절 선배님들의 노고와 고생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건강하십시오 선배님들.
07 군번 전우님 반갑습니다. 백두 OP에서 근무하셨군요. 선배님들의 노고와 고생에 존경을 보내는 전우님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마음과 공감 능력을 갖춘 전우님의 앞날에 큰 축복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님이 올리신 영상 보며 옛날 생각에 잠시나마 그리움을 달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저는 1970부터 1973까지 경기도 지역 말단 포병 부대에 복무해서 제가 있던 부대는 아니지만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가 너무나 흡사해서 반갑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이 몹시도 그립네요.
선배 전우님 댓글 고맙습니다. 저보다 5년 앞서 군복무하셨군요. 제가 근무한 곳도 강원도 양구 지역 말단 독립 포병부대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영상으로 옛 생각에 그리움을 달래셨다니 제가 다 고마운 심정입니다. 일산 제가 사는 곳 5분 거리에 백마부대가 있어 가끔씩 병사들이 무리지어 동네를 지나갈 때면 나도 저런 젊음이 있었나 하고 부러움의 눈길이 잠시 머뭅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70년5월에입대하여 논산--후반기교육--제2하사관학교--원주통신학교,그리고철원833포대 71년3월부터복무--73년초에 양구대암산부대이동하여 그해5월에 제대한사람입니다,부대이동후 엄청 일했고,부대뒷편오두막집 도토리묵,막걸리생각납니다.정말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833포병 선배님!
70년 5월에 입대하셨으면 저보다 5년 선배시네요. 선배님이 군복무하실 때인 73년 초에 철원에 있던 833포병대대가 양구 대암산으로 부대이동을 하였군요. 부대이동 때 근무하셨으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75년 12월에 양구 833포병대대로 자대배치 되었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저희들은 그래도 번듯한 내무반이며 사병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기억하시네요. 부대 뒷편에 막걸리 파는 오두막집이 있었지요. 저는 전역 전날 그곳 오두막집에서 후임들과 막걸리 한 잔에 석별의 정을 나누었기에 더욱 잊지 못합니다. 나이들수록 젊은 시절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고 소식 나눌 길 없는 그때 그 전우들이 그리워만집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젊은 시절 군대에서 만나 고생했던 전우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문득 생각나곤 합니다.
70년 8월 대구 50사단 입대
그해 10월 의정부 보충대 로
철원 문혜리 이층막사 8사단 50포병대대 부라보 포대 전입
양은 밥그릇 국그릇 수저는 늘
야전상의 보관 문혜리 물탱크 훈
련장 훈련과 교육으로 일관 600
그램 밥 과 국 참으로 배고픈시절
신탄리 포 진지 구축 으로 102op
바로 밑 1년의 공사 후 첫휴가 25일 부대복귀 베트남 특명 으로
춘천오음리 에서 한달간 적응훈련
71년 12월 부산3부두 에서 7박8일 의 항해 백마 부대 966대대 155m차리 포대 라트랑
십자성사령부 추진소대 근무
곡사포 사수로 73년 3월 부대철수 병력으로 인천부평 백마장 안착
돌아보니 꿈길같은 세월 현재군대
는 엄청변화 한 잠시 소풍같은 외출 이다
모두가 선후배 의 악으로 전진된
군대 남북 휴전상태 의 현실 을 우리는 반공방첩으로 북 의 침략을 견재해야 하노라
선배님 제대 하시자마자 저희가 신병신고한것같군요..부대첫인상이 뭔가 정리가 않되어있어 신고후에 인사계님 한테 들었습니다.부대가 철원에서 양구로
옮겼다고..ㅎㅎ 고생 엄청했습니다.포반진지 만든다고..등짝만한 돌를들고 확인받고 식사하고 식사중 대가리박고..ㅎㅎ
그때는 참 월남참전 하셨던분들 꽤 계셨거든요.그리고 독 쓴다라는 말를
참많이했는데...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대암산 도솔산 펀치볼 203기지 근무햇습니다81연7월28일방산 군번입니다 대단하신 선배님이십니다 자대를 철책선로해서 전방2번 들어갓습니다 저도 직장 다니면서 취미로 유튜브 승인받아서 영상 올리고 있지요 추억의 좋은영상잘보앗습니다 저도 21사단 영상올려 놓앗지요~~
반갑습니다 전우님. 대암산과 도솔산, 펀치볼 그리고 철책선에서도 근무하셨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앗싸주말농장tv 유익하고 재미난 영상 많군요. 제가 식물을 공부하여 관심이 많아요. 가끔씩 들를게요. 올려놓으신 21사단 영상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올빼미 24번 ㅋ
유격
총번 525450
싸리작업
구타 심했고
ㅋ
선배님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도 있습니다. 영상 감사히 잘 봤습니다. 저는 21개월 철원군 5포병여단 예하부대에서 군복무했습니다 사회에서 힘들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위병초소 근무 설때면 나가서 누구든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고. 각자 고향을 떠나 한마음 한 뜻으로 봄과 가을이 없는 철원군에서 엄동설한의 추위와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 혹독히 훈련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했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세월이 그립습니다. 그때의 젊음과 더불어 함께했던 간부님들 선후임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거진 10년이 지난 시점, 행정반에 전화해도 전역, 전출로 간부님들도 안계시네요. 연락은 안닿지만 그 시절 청춘을 함께했던 전우들이 사회 각자 위치에서 승승장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감사히 잘 봤습니다 선배님. 승진!
전우님 반갑습니다. 한 편의 좋은 수필을 읽은 듯 잔잔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댓글을 읽으며 전우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흐뭇해 집니다. 왠지 갑자기 반듯하고 멋진 모습의 문학 청년이 제 눈 앞에 나타난 듯합니다. 비록 철원군과 양구군, 먼 옛날과 10년 전 시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엄동설한과 찌는듯한 더위란 말씀 속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특히 혹독한 훈련을 하며 작은 것에 감사했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세월이 그립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옛 전우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르러서는 이글을 내가 쓴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듭니다. 전우님의 글이 제 속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 같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동적인 댓글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전우님의 군시절 추억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군필이지만... 그 힘든 옛날 군생활 무사전역하셔서 다행이고 지금의 대한민국 있을수있도록 지켜주셔서, 열심히 견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시길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군복무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83년 군대 생활 했는데 그때도 구타 기합 많았지만 식사는 자율 급식으로 밥은 굶지 않았지만 힘들었는데, 70년대 군생활은 적과도 싸우고 구타와 배고픔에 시달렸던 세대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었습니다.
저도83년도근무해는되구타심해지요
저와 같은시기에 군생활을 하셨네요ㆍ
저는 공군병장 출신입니다ㆍ
반갑습니다ㆍ
당백!!!
본부포대 선배님 이시네요
저는 77년 4월군번 입니다
1679대대 알파포대 3포반에서
근무하였답니다
작년 여름휴가때 큰마음 먹고
그옛날을 회상하며 옛날 부대를
찾아가 보았답니다
무엇보다 감회 스러운게 1679부대
이름이 아직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원당리에서 부대들어가는 길이 42년전
그길이 변함없이 비포장상태인 그대로 더군요
핵투발 훈련하든 후곡리 개울가를 쳐다보며 참으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본부포대에서 근무하신 선배님이시라
얼굴은 알수가없지만
무지 반갑습니다
당백!!!!
추신: 본부포대 통신과 허남두가 제동기입니다
신두용 833포병 전우님 반갑습니다. 우리 부대가 제가 막 전입 갔을 때는 8913부대였는데 1679부대로 바뀌었지요. 작년에 옛 부대를 찾아가 보셨군요. 원당리에서 부대로 들어가는 길, 참 애환이 서려있는 길고도 긴 길이지요. 아침마다 구보를 했던 길이기도 하고요. 저도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원당리 부대 방문하였습니다. 후곡리에 있던 챠리포대(후에 알파포대가 그곳에 독립포대로 있었다고 하더군요)도 원당리 본부쪽으로 들어와 알파 브라보 챠리가 모두 한 자리에 있더군요. 8인치 견인곡사포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 갔고 정문 포토존에 한 대가 기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후곡리 약수터를 찾아 약수도 한 잔하며 옛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전우님과 1년 가까이 같은 부대에 있었지만 포대가 달라서 교류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그 당시 알파포대 전우들은 왕포회라고 모임을 갖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모임을 갖는지요?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 서로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 전우들, 전역하여 옛 추억담 나누며 전우애를 다져가는 모습보다 더 큰 우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음 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전우 몇을 만났습니다. '고향언덕'이 제 닉네임입니다. 본부 통신과 허남두 전우와 동기시군요. 엊그제 본부 통신과 어느 전우가 댓글에 축구선수 출신 허남두 전우 얘기를 했습니다. 모두 그리운 이름들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youngtaekkim663 제가 자대배치를 받앗을때 본부포대 행정실에서 잠시 대기병으로 있었으니깐 아마도
스쳐 지나간 순간의 만남도 가능 하였겠읍니다 ㅎ
부산에서 833포대 전우 모임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모임이 해체 되었다 합니다
저는 지금 울산에서 생활중인데
64군번인 고참 장호익선배분과
거의 매일 만나며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허남두동기가 원래 전포반으로 가야되는데
경희고 축구선수출신이라
본부포대에서 차출해서 본부포대에
남은 동기였답니다
제대후 현대중공업에서 선수생활을
한동안 하였었는데 그이후론
연락이 두절되어 못만난지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쫄병시절 동경사로 부대이동 한다는
소리에 마음이 부풀기도 하였지요
세월이 참으로 빠릅니다
엊그제만 같앗든 시절 이였었는데.....
@@신두용-f2x 자대배치 받고 오면 인사과에서 대기병들 본부포대에서 하루 재우고 포대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오며가며 스쳐 지나가기도 했을 거고요. 울산에 사시는군요. 허남두 전우가 현대중공업 선수로 뛰었군요. 의무대 임종빈 전우 기억나시는지요? 허남두 얘기 가끔씩 합니다. 부대에서 축구 같이 했다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생활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당백'은 12사단, 을지부대의 경례 구호아닌가요?
우연히 군대 시절이 생각나 검색해보았더니
제가 근무하던
833대대 양구군 원당리 영상이 나오네요..
충성! 선배님들의 노고를 이제 나마 인사드립니다!
전 07군번 본부포대 FDC K77 장갑차 조종수 였습니다.
저때는 신막사여서 편하게 군생활을 했습니다. 영상 잘 보았고 마지막부분 위병소 앞 8인치 곡사포 모습도 보니 눈물나네요..감사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07년 군번으로 833포병에서 근무하셨군요. 17년과 18년 두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원당리 833포병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실로 40년 만에 다시 찾은 부대는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전우님 말씀대로 신막사에 신세대 장병들이 생활하는 그곳은 정말 부럽기조차 했습니다. 위병소 근처에 옛 8인치 견인곡사포가 유물로 전시되어 있더군요. 그래도 고마운 건 산천은 변함이 없고 우리 포대가 사라지거나 이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거지요. 추억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격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FDC 새롭네요. 시간마다 "사격대기 메트로"하던기억이....
뵙지는 못했지만 선임이신데 반갑습니다. 저도 78년~81년에 833(1679부대)포병대대의 포 없는 본부포대에 근무했습니다. 저는 1287****군번으로, 논산훈련소 26연대를 거쳐 김해 육군공병학교에서 후반기 교육 받고, 춘천 102보충대에서 며칠 푹 쉬다가 자대 배치받고 따불백 메고, 소양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인제로 들어갈 때, "세상에 이런 데가 있었나."할 정도의 오지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눈앞이 깜깜했었지요.
그 당시 서울에서 부대를 가려면 마장동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양구읍까지 오는데 4시간 정도 걸렸고, 양구읍에서 동면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쯤 가서 원당리에서 내려, 거기서부터 부대 들어오는 차가 없어 천근같은 마음을 안고 걸어서 들어오곤 했던 아득한 산골짝 부대는 누구든지 면회를 오면 꼭 자고가야 하는 곳이었지요.^^
영상에 올리신 감사패 밑에 눈에 익은 분들의 성함이 있어 반갑고, 영상 후반부로 갈수록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나오네요. 식당, 식기를 닦던 개울터, 내무반, 내무반 뒤 창고건물, 수송부, 위병소, 의무대, 영락교회가 지어준 예배당은 물론 위용을 자랑하던 M115, 8인치 곡사포도 보이네요.
생각해보면 일생에서 파란만장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사관들이나 장교들, 포대장님, 부 대대장님, 대대장님은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그 중 월남전 참전용사들인 중사, 상사들이 폭력성이 강하고, 분노조절장애가 심한 사람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만 벌리면 욕 반, 말 반이었고 별 일 아닌 것에 빠따를 들거나 발길질을 해댔고, 그런 사람이 주번사관을 하는 날은 평화롭던 내무반엔 곡성에서도 들을 수 없는 곡소리가 났었지요.
군대도 사람들 사는 세상입니다. " 군복무는 썩는 것"이 아닌 나라를 지키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과 타협하지 못하는 혼란한 시기에 부닥치는 고립된 병영 문화의 충격은 상당히 커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빠따를 맞아야 취침할 수 있었던 졸병시절도 있었지만, 남아(男兒)가 남자(男子)로 변하는 속성과정이라 생각하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받아들였지요.
털 빠진 쥐꼬리를 받는 봉급날은 전우들과 빈약한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화려한 미래의 꿈도 나눴고, 사랑하는 사람들 얘기는 숨 죽이며 들었고, 우악스러운 분위기에서도 꽃 피는 전우애를 느꼈으며, 자질구레한 상처들을 훈장으로 기억하는 능력도 배웠고, 좋은 추억들만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게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아련한 시절이 소중하게 가슴에 와닿고, 동고동락 했던 전우들이 징하게 그립네요.
86년에 고국을 떠나와서 미국 동부지역에 사는지라 가고싶어도 못 가는 곳이지만, 다음에는 원당리에 꼭 가서 꿈속에서도 그리던 곳들을 둘러보고 대암산도 올라보고, 옥녀탕에 발도 담그고, 무수막에서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올려주신 귀한 영상 자료를 몇 번이나 돌려봤습니다.
가물거리던 추억에 따스한 불을 붙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선임께서 올려주신 영상 삽입곡 'Carry me back to old verginny'는 Soft country music 을 좋아하는 저도 처음 듣습니다. 글도 참 잘 쓰시지만, 곡 선택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시고, 음악적 취향이 저와 같아 반갑습니다. 앞으로 댓글을 달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도 추가하겠습니다. 시간 날 때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마이클 부블레의 'Home'인데, 고향 생각날 때 주로 듣는 곡입니다. ua-cam.com/video/lbSOLBMUvIE/v-deo.html
전우님, 정말 반갑습니다.우리 833포병대대가 독립대대여서 전우들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만나니 더욱 반갑고 감사합니다. 전우님이 쓰신 글은 댓글이라기보다 한편의 명작 수필입니다. 정말 공감과 감동으로 가슴이 찡해지고 옛 추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제가 전역하던 78년에 우리 833포병 포없는 본부포대에 자대배치되어 오셨군요. 서로 조금 늦게 조금 일찍이었더라면 함께 근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좀 아쉽네요.
전우님은 논산훈련소를 거쳐 김해 육군공병학교 후반기 교육을 받으셨고, 저는 안동 36사를 거쳐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네요. 춘천 102보충대에서 따블빽을 메고 소양강선착장에서 군용선을 타고 인제로 양구로 들어갔지요. 전우님 말씀대로 그땐 정말 교통이 최악이었지요. 마장동터미널에서 양구 동면 부대까지 가는 길, 정말 하루 꼬박 걸렸지요. 원당리에서 부대로 터덜터덜 걸어서 귀대하는 그 길, 정말 멀고도 먼 길이었지요.
전우님이 말씀하신 내무반, 창고건물, 취사장, 개울물, 수송부, 의무대, 위병소가 저도 눈앞에 그려집니다.
저는 다행히도 재작년과 재재작년 두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꿈에도 그리웠던 원당리 우리 833포병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옛 전우들과 챠리포대가 있던 후곡리도 둘러보고 약수터에서 약수도 한모금 마셨습니다. 십여년 전엔 생태탐사차 대암산 정상 용늪도 올랐고 두타연도 가 보았습니다.그리고 함께 근무했던 그리운 여러 전우들과도 연락이 되었고 몇 분들과는 만나서 옛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전우님께서는 지금 미국에 사시면 정말 원당리 대암산 선녀탕 무수막이 그리우시겠어요. 부디 꼭 한번은 고국을 찾아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그리운 곳 찾아 마음껏 회포 푸시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찾아와 주시고 감동의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youngtaekkim663 험지의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괴로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집안의 자식이라 근무지가 집에서 가까우면 잦은 외출, 외박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어 부담스러웠고, 군과 민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자칫 군인의 본분을 잊기 쉽고, 마음도 해이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한 번쯤은 혼자서 나를 돌아보며, 나와 다르지만, 함께 목숨을 지켜야 하는 강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뭉쳐진 조직 속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했지요. 그 덕분에 제대 후 사회생활은 물론 외롭고 힘든 외국 생활 또한 군대의 여러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사는 곳이 위도상으로 북한의 청진시와 비슷한 곳이라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바람도 세고 춥지만, 4계절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잘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힘든 군 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일도 많았고, 사회에서 알지 못했던 것을 많이 배워서 좋았습니다. 내무생활과 훈련으로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계절마다 다른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걸 배웠지요.
봄이면 이곳저곳 대청소하랴, 페치카 금 간 데를 시멘트로 때우고, 지붕에 올라가서 굴뚝 청소하다 그을음이 얼굴에 묻어 시커먼 얼굴을 마주 보며 낄낄댔었고, 주말엔 라면과 김치를 반합에 싸 들고 대암산에 올라가 각종 산나물을 캐고, 가끔 대민지원 나가서 모도 심고, 맛있는 사제 밥 얻어먹고, 막걸리도 배불리 마시며 잠시 행복에 젖기도 했지요.
여름이면 모기와의 전쟁에 대비해 창문마다 방충망을 달고, 화장실에 벌레 안 꼬이게 열심히 ㄸ 퍼다 버리고, 거름 안 줘도 잘 자라는 풀들과의 전쟁인 제초작업, 도랑 청소, 장마 때에 흙이 유실되지 않게 진지 보수공사를 하느라 온 몸이 구리빛으로 변했지요.
가을이면 싸리나무 줄기 꺾어 싸리비를 만들고, 짚단 구해다 영을 엮어 생무 저장고 위 덮개 만들고, 아름드리 옥수숫대를 구해다가 짚으로 동여매어 동계훈련 때 텐트 밑에 깔 깔판 만들고, 겨울 칼바람에 대비해 내무반 창문에 방풍 비닐을 덧대어주고, 연병장에 떨어지는 낙엽의 흔적 잽싸게 없애느라 바빴지요.
겨울이면 후문 쪽 석탄 창고에서 조개탄을 퍼다 리어카에 실어 페치카 탄 저장고에 부어주고, 하루에도 몇번 씩 취사반에 가서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다 물을 가득 받아 리어카에 싣고 내무반 페치카 위의 물탱크에 채워 페치카 열로 물이 덥혀지면, 전우들이 추운 밖에 나가지 않고 페치카 옆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세면을 할 수 있었고, 수시로 산에 올라가서 땔감을 구해 짊어지거나, 철망으로 묶어 끌고 내려오고, 끝없이 내리는 폭설과의 전쟁에 젖은 야전잠바와 방한장갑이 마를 날이 없었지요.
위에 열거한 작업들은 인원이 많은 수송부나 통신과는 수월하게 했지만, 인원이 적거나 행정병이 많은 부서는 출장이나 열외가 많아 맨날 작업하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그들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살림살이도 가난했던 그때 비해 지금은 천지개벽할 정도로 모든 것이 좋아졌지만, 군 생활을 앞둔 사람에게는 바뀐 환경과 불편해진 현실은 그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쉽게 적응할 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하지요.
군대와 사회의 환경과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큰 데 따른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것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이 순전히 각자 헤쳐나가야 할 몫입니다. 저는 군 생활의 그 값진 고생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자부합니다.
선임은 물론 833 부대를 거쳐간 이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자랑스럽게 병역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군필자들 모두에게 무한한 신뢰와 찬사를 보냅니다.
@@cookie4151 쿠키님 혹시 글 쓰시는 작가님 아니신가요? 전우님의 글을 읽으니 40년 전 대암산 산골짝 외딴 부대에서 군생활할 때의 잊혀진 기억들이 지금 이순간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라 전율이 느껴집니다. 두고두고 간직하며 가끔씩 읽어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로 삼겠습니다.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수필 정말 감사합니다.
타국생활 늘 건강하시고 꼭 한번은 양구를 찾아 원당리와 선녀탕과 두타연도 둘러보시고 833포병 추억여행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땐 꼭 여행후기도 올려주시면 저도 눈물로 읽겠습니다. 쿠키님을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힘든 시절에 군생활 하셨군요, 워싱턴이나 메릴랜드 쪽에 사시는군요,
이젠 70이 넘으셨겠군요, 추억이 많으시겠습니다,원당리, 백암산, 돌산령 터널,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일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임휘석-o6r 그곳 지명을 알고 계신 걸 보니 그 주변에서 군생활 하셨나 봅니다.
저는 커네티컷에 삽니다. 나이는 60대 초반이구요.
군기가 바짝 들어 선임의 눈짓이나 혀 차는 소리에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고,
빠따 몇 대에 단잠을 이뤘던 몸이 이제는 탄력을 잃고 쪼그라들어
낡은 일기장 같은 그때 추억만 들추어내면 가슴이 아립니다.
단결! 95군번 입니다
선임님 영상을 보니 옛생각이 새록새록 합니다
당시 고생하셨습니다
백두산부대 양구 고방산쪽 근무자 보고싶어요
선배님.. 반갑습니다. 저는 80년도에입대. 21사단63연대4대대13중대에근무했읍니다. 백두산부대에서근무했읍니다. 저는 뉴욕에서살고있읍니다.. 40년전에 같이근무했던 전우들 보고싶읍니다. 장재근병장. 박 선우하사. 안양에사는 이병장...보고싶읍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멀리 뉴욕에 거주하시는군요. 40년 세월이 흘러갔어도 21사단 63연대 대대 중대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아니 영원히 잊을 수 없겠지요. 그 젊음의 시절 함께 동고동락했던 보고싶은 전우들 꼭 만나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포탈에 21사단 백두산부대 전우회 카페가 있습니다. 그리운 전우들 찾아보시면 기적처럼 만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대선배님! 저는63연대15중대에서82~84년 복무했지요198op,983고지에서 있어는데 제대한지 벌써 36년 입니다. 그때는 지겨웠는데...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네요.
65연대.3대대....1984년 제대
에고...저는 63연대 4대대에서 정훈장교로 3년 복무하고 89년에 제대 했습니다 (80학번입니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데 지금 한국에 안식년으로 나와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4대대에 있다가 1년 뒤에 사단본부로 재배치돼어 심리전 장교로 있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 1초소 후방 (전방이 아니고) 1000미터 지점의 지뢰밭에서 제 4땅굴이 발겼됐었습니다.
충성!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도 92~94년 원당리 833포대 출신 입니다.
영상을 보니 그때 그시절이 너무 그립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원당리 833포대에서 군복무하신 전우님께서 댓글 남겨주시니 참으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833포대는 독립포대라 출신 인원도 많지 않아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습니다.
대암산 아래 포대에서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 많이 생각나시지요? '833포병대대전우회'라는 다음카페가 있는데 혹 가입하셨는지요? 옛 전우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833포대 방문했습니다. 옛 내무반이나 취사장은 사라졌어도 대암산 아래 그 자리에 그대로 부대가 남아있는 것 만으로도 옛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추억만 남아있네요.
안녕하십니까
00군번 인사드립니다
66연대에서 수리봉 무학 도솔 GOP
근무하면서 낯선환경과 혹한을 이기고 제대했습니다.
옛 추억이지만 지금도 양구 백두산부대를 나왔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님들도 자랑스럽습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66연대 GOP 근무하신 것은 정말 자랑스런 일입니다. 21사단 백두산부대 이름만 들어도 자랑스럽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00군번이시면 지금 불혹의 나이겠네요. 제 딸은 00학번이랍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그당시 4대대장차운전병으로 잠시있었는데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65연대 백두산 12년 군번입니다. 선배님 사랑합니다
@@HoneyBee-ft2gt 7중대입니다.혹?
같은 군번입니까? ^^
@@엔지니어-n8l 아 전 98군번이구 6중대지만 옆중대라 반가워서요... 대대장님은 같은분이자나여. 임창규 중령님. 7중대 동기 ○찬우?? 라고 있었던것 같았는데, 전 00년도 태백 gop에서 가을에 전역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대선배님들 앞에서 감히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운 전역 13 년된 햇병아리 애송이 입니다
영상과 특히 배경음악이 넘 좋네요
요즘 죽고싶을만큼 힘들어서 술만 먹고있습니다
술김에 그런건지 몰라도 영상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나네요
잠시 잊고 있었지만 군생활 함께 했던 전우들 보고 싶습니다
저희 세대와는 다르게 정말 힘든 군행활을 하셨던 선배님들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또한 이런 멋진 영상과음악 접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우님 힘내세요.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군대 시절 그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도 잘 참고 견뎌내셨는데.. 전우님, 닥친 시련 잘 극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내세요, 전우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팔랑리 임당리 월운리 983등등...
저는 81~84기간동안 833,922,맞은편 월운저수지 사격장근방에 주둔했던 63연대4대대 군수과3종계로 복무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전우님, 63연대 대대 군수과에서 군복무하셨군요. 월운저수지 팔랑푹포 잘 압니다. 엊그제 833포병 부대개방행사에 다녀왔어요. 40여년전 군수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우들 네명이 하루 전 양구를 찾아 임당리에 있는 '고향의 봄' 펜션에서 하루 묵었지요. 군생활은 힘들었지만 젊음을 함께한 전우들은 늘 그립고 보고싶네요.
983 787
김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나도 양구 21사단 65년대 대암산 인근 백석산 에서 위생병 으로 복무하다가 1970년 9월에 3년6개월 2주만에 제대했습니다,
그때 같이 고새했던 전우들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납니다, 혹시 같이 근무했던 전우님이 보셨다면 연락주세요,
특히 김천이 고향인 병장이 제일 보고싶군요. 감사합니다.
최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양구 21사단 65 연대에서 위생병으로 군대생활하셨군요. 군대생활 3년 넘게 정말 오래 하셨네요. 함께 고생하셨던 전우분들 꼭 만나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스무살 남짓 그 꽃다운 젊은 시절에 만난 전우들 정말 보고싶은 사람들이지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을텐데 소식 전할 길이 없지요. 선배님 전우들 만나 쌓인 회포 나눌 수 있는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김선생님 격려의 말씀 정말고맙습니다. 부디 해운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존경스럽네요 1.21사태이후에 군복무기간이 길어었다는얘기 들었는데 3년넘게 군복무하시다니 대단하네요
@@highquality2110 3년 세월도 긴데 6개월이 연장되었을 때 그 심정 어땠을까요? 그때 내무반 분위기 엄청 삭막했다고 들었습니다. 긴 군대 생활 고생 많으셨습니다.
42개월 ㄷㄷ 리스펙
아버님 세대의 선배님 이시군요! 저도 833대대 근무했고 현재도 타 부대에서 근무중입니다
옛 부대의 모습과 사진을 영상으로 보니 감회가 남다름니다! 선배님들의 노고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833대대에서 근무하셨군요. 수십 년 세월이 흘러갔어도 부대 구석구석이 눈에 선합니다. 현역이시군요. 추운 겨울 몸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선배님 저는 81년7월28일날 방산훈련소 .66연대1대 대암산 도솔산 펀치볼 근무 개나리지역 땅꿀탐사 203기지 철책근무 2번 들어갓습니다 자대를 전방으로 가서 초전박살 마대세 모래가득담아 선착순 시키고요배고 배고프고 춥고 햇던시절 이젠추억으로 남네요 저는 밴드에21사단 전우회 회원이고요직장에 다니면서 취미로 유튜브 정식승인 받아 영상올리고 있습니다 저도21사단 영상 올려놧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영택님의 개인적인 기록임에도 왜 이리 공감이 되는지요. 저는 80년 중반에 군생활을 한 한참 후배지만 올리신 영상을 보면서 저도 군생활 추억에 빠져 봅니다. 음악도 아주 좋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80년대 중반에 군복무하셨군요. 그때도 제가 복무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군요. 공감하시고 군생활 추억에 잠시 빠져들으셨다니 저도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 늘 건강하시고 활기찬 하루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추억 너무 감사하네요 전 77년 10월 대전 병력으로 12월초에 833대대에서 후곡리 쨔리 포대로 배속되어 군생활 했네요 여러 사진속에 40년전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준 옛 선임병께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후곡리 833포병대대 챠리 독립포대에서 군생활하셨군요. 재작년 후곡리 들러 약숫물 마시고 왔어요. 후곡리 챠리포대도 원당리 본부쪽으로 이전했어요. 그 자리엔 한방병원인가 들어섰구요. 포차가 있던 곳은 유물처럼 남아있었습니다.
77년 12월에 833으로 자대배치 되셨군요. 저보다 꼭 2년 후네요. 저는 75년 9월에 입대하여 안동 36사에서 전반기 6주간 훈련, 부산병기학교에서 5주간 후반기 교육 받고 그해 12월에 833에 자대배치받아 갔었지요.
다음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가 있습니다. 참 엊그제 76년 5월부터 78년 10월까지 후곡리 챠리포대에서 근무하하신 민대식 전우님이 댓글을 다셨습니다. 부산 사는 김동규 전우 보고 싶다면서. 전우님과도 1년 정도 함께 근무한 것 같습니다.
정말 기분좋고 반갑습니다 금년 여름에 40 여년전 추억 여행으로 챠리포대 후곡리 방문하려 했는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못가 아쉽네요 계속하여 좋은 소식 기다립니다 저는 대전에 있네요
민대식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혹시 동해경비사령부 신설되면서 전속 간 선임병 갔네요?
6.25직후 때어나
배고프고 힘든 시대를 겪어온 세대죠.
가진것 없고 바글거렸던 형제자매들
사이 각자도생으로 생존 했지만.,
그래도 그시절에는 희망도 있고
개천에서 용도 나고, 성실하기만 하면 쌀집 점원하다가 쌀집사장도 하고 주물공장에서 얻어터지며 일배웠어도 그기술로 가족들 먹여살리고 성공도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 세대는 희망도 잃어가고 개천에서 태어나면 벗어나기 힘든시대입니다.
고생하셨던 젊음도 가고~
추억이 아련하시겠네요.
건강하십시요.
6.25 직후 태어난 세대를 정말 실감나게 표현하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바글거렸던 형제자매들. 맞습니다. 돌아보면 힘들고 서럽던 일들 참 많았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 친구 집에 놀러가서 밥도 얻어 먹고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뛰놀던 추억도 아련히 그립게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우연하게 영상을 보았습니다.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멋집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 지나간 젊음, 사라져버린 시절이지만 그때 함께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이 생각나서 만들어 본 영상입니다.
저는 양구 근처 화천에서 근무했었습니다... 멋진 사진이 많으셔서 너무 부럽습니다...
영상 보면서 예전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네요... 잘보고 갑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화천에서 군복무하셨군요. 다시 올 수 없는 젊음의 시절이기에 그리운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한참 어린군번 06군번입니다.
대암산 통문을 열고 제설작전ㅇ 생각나네요.
혹한기도 취소시킨.
주말의 휴식도 날려버린.
돌아서면 눈은 그대로고.
06년도는 63연대 9.10.11중대에서 6개월돌면서 선점근무를했네요.
아무쪼로 저희 3대대 통일대대는 추억속으로 해체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양구 한번 갔다왔는데 많이 바꼇네요.
선배님 항상 건강하세요
전우님! 반갑습니다.
21사단 63연대에서 군복무하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매일 아침 점호 마치고 같은 사단 소속 66연대 앞까지 구보 나갔던 기억이 새롭네요. 양구! 참 춥고 눈 많이 내렸지요. 양구나 인제에서 군생활하신 분들은 제설작업 하느라 다들 고생 많았지요. 힘든 시절이지만 그래도 지나고나면 고생한만큼 추억으로 남아 있지요.
눈물겹게 고생하던 시절
맨주먹으로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군생할
하던 시절이 생각 나네요
76년시절이니 저보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
군 선배님 감사합니다
하나군단 서부전선의
병장으로 제대했지만
지금도 그때 시절이
생생합니다~
맞습니다. 전우님. 눈물겹게 고생하던 시절이었죠. 그래도 세월이 흐르고 뒤를 돌아보니 그 젊던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도 보고싶고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80년 중반에 이 부대 작전과에서 근무했습니다.
모두 낮익은 추억의 장소들이 떠오르네요~
단결~~
반갑습니다. 전우님! 80년대 중반에 작전과에서 근무하셨군요. 저는 군수과 서무계라 비밀문서 관리하느라 비탈진 언덕에 위치한 작전과에 종종 올라갔었지요. 다음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가 있습니다. 놀러와 주세요. 저는 고향언덕입니다.
선배님들 89년 군번입니다;;
저보다 15여년 선배님들 그당시 얼마나 힘들고 고초가 많았을지 감히 짐작도 하기 힘드네요...
그리고 소중한 추억의사진 잘 간직하셔서 덕분에 좋은영상 잘보고 갑니다^^ 내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전우님, 반갑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가버린 시절이지만 다시는 올 수 없는 시절이기에 사진으로나마 그때를 추억해 봅니다. 힘들고 허전할 땐 군대시절 떠올리면 이겨낼 힘이 솟는답니다. 감사합니다.
단결!!
반갑습니다.
82년군번 브라보 출신입니다.
저는 군단마크에 1679부대
였습니다.
포차타고 팀스피리트 훈련 나갈때가 엊그제 같은데 40년이나 지나갔습니다.
원당리,대암산,양구대교등등
그시절 그곳이 그립습니다.
선배님들..그리고 후배님들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단결 !!
답글이 늦었네요. 82군번이면 저보다 7년 후 군입대하셨군요. 1679부대 브라보 출신이라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우리 833포병이 대대급이라 전우들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댓글로나마 만나뵈니 반갑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 저도 셍각납니다. 정말 40년 세월이 꿈같이 흘러갔습니다. 원당리 후곡리 대암산 애증이 얽힌 곳이지요. 혹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에 가입하셨는지요. 지난 토요일에 부대개방행사가 있었습니다. 옛 전우들 네명이 모여서 후곡약수 둘러보고 임당리 펜션에서 1박 한 후 부대개방행사에 참가하여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군사령부 마크죠? 1982년쯤 친구녀석 면회차 원주에 갔던 추억.. ㅎ
추억의 인생사진. 잘~ 보고갑니다..
대한민국육군 파이팅~~^^.. ♥
대대급인데 군직할 독립대대라 1군사령부 마크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전우님 말씀처럼 추억의 인생 사진.. 감사합니다~^^
방책선작업들어갔을때 우리소대가 대암산잔류대로 갔지요 83년도 거기 잔류대장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거기서 빤치볼에 다녀오던생각 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보고 싶었던 전우들 연락이 되어 소식도 나누고 가끔씩 만나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다 나더군요. 아직도 만나지 못한 그리운 전우들 많은데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려니 하고 꿈을 꾸어 봅니다.
본부 박존희 취사반장, 인사과 김명수 장교계, 최창경 서무계, 의무대 김위흡, 임종빈, 김학근 전우들 소식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반갑고 고마웠어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몇 년 전엔 최동호 본부포대장님과 이복수 측지장교님과 전화 통화 나누었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노성황후 젊은 시절 동고동락하고 서러움 함께 나누었던 옛 전우들 그리울뿐...
Youngtaek Kim 혹시 몇년도 군번입니까 저는97년도 군번이고 11여단 나왔습니다
노성황후 반갑습니다~^^ 젊음이 부럽습니다.
저는 75년 입대, 78년 전역하였습니다.
옛 전우들 만나 추억담 나누는 기쁨 누리고 있습니다.~
양구에 1군 직할 포병부대가 있었군요. 신기합니다.
저도 2사단 포병으로 복무해서 인제와 양구 돌아다니며 훈련 많이 받았는데 3군단 직할 포병부대까진 봤어도 1군에 소속된 부대는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네요.
반갑습니다. 전우님! 제가 군복무한 포병대대가 1군 직할이라 1군 부대마크를 군복에 달았는데 3군단 포사령부 지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본부포대에 근무해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3군단 마크를 달지 않고 1군 부대마크를 달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전역한 후 3군단포사령부가 3군단포병여단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힘들고 배고픈 시절의 군생활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확실히 저때는 배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있던 88년도 에도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배나온 장교, 하사관(부사관)들이 많이 보입니다. 먹을것도 많고 당류도 많이 먹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선배님 시절에는 배가 고플정도로 밥이 많이 안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입대한 88년2월엔 한국에 쌀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쌀은 남아 돌았습니다. 맛이 없어서 그렇지요
하지만 여전히 반찬은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70년도 보다는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전 꼬박 30개월을 복무 했습니다. 선배님 께서는 몇개월 생활을 하셨습니까
제가 영상을 보니까 저희는 이름표는 군복 색깔로 했었는데 70년도에는 흰색도 있었군요 제대를 하실때 예비군복 입고 나가셨고요 저희땐 예비군복이 따로 없이 예비군 마크만
붙이고 나갔습니다. 저도 보배드림 이라는 사이트에 제가 근무를 했던 사진을 올리고 밴드 라는 곳에 제가 있던 사진을 올렸는데 아직 한명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빨리 예전 전우를 찾아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긴 댓글 말씀 고맙습니다. 다른 부대는 모르겠지만 제가 군복무했던 우리 포병대대는 식사가 좋았습니다. 1식 3찬이었고요. 제가 군수과 서무계로 근무했는데 큰 부조리도 없었습니다. 전우들 만나서 추억담 나누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저도 함께 빌어봅니다. 제가 군복무할 때는 33개월이었는데 저는 대학시절 교련이수로 3개월 단축 특명으로 30개월 군복무했습니다.
헉 ? 제가 86년도에 833포대 알파포대에 근무 했어요 ~
방산 훈련소 마치고 833 포대로 자대배치를 ㅎ
그때 행정반 인사장교가 저희6명동기들한테 문제를 냈는데 여기서 북쪽이 어딘지 아는사람 거수 하길래 문득 포반에 8인치견인포가 모두
한방향으로 배치된거보고 북쪽이라고 가르키니
ㅎㅎㅎ 웃으면서 넌 틀림없는 포병이다 하시며
건빵한봉지 주셨던기억이 ㅎ
근대 왜 눈물이 날까요 ?
반갑습니다 ~
전우님 반갑습니다. 833포병 알파포대에서 근무하셨군요. 86년도면 저보다 10년쯤 후에 같은 공간에 있으셨네요. '북쪽이 어느 쪽일까' 하고 질문하신 행정반 인사장교님도 훌륭하시고 포가 향한 곳 보고 북쪽을 알아 맞힌 전우님도 대단한 분이십니다. 재미난 에피소드 글을 써서 '좋은생각' 잡지에 투고하시면 채택될 듯 합니다. 옛 군 시절 멋진 추억 간직하시고 오늘 더욱 힘차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86군번 이시면 저 신병때 보았을수도.. 저 고생 많이 했습니다 86군번 선배님들이 이뻐 해주셔서리 ㅎㅎ 아닐수도 있겠네요 전포반 저 신병때는 일명 쓰리김 이라고 세분 이셨거든요
참고로 전 66연대에서 훈련받고 4주차에 동기 8명과 일명착출? 여단주임상사님에게 현리로 팔려갔다가 두명만 야밤에 닷지 태워서 자대간다고 포병 숫자 열심히 겁을 하도줘서리 달달외우던 기억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구보하니 도로 양구 방산 원당리 윽~~~
다음 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가 있습니다. 요즘 활동이 뜸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저는 전우들 몇을 만났습니다.
@@홍마부스 86군번들이 이뻐해 주어서 고생 많이 했다는 표현 참 멋집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시네요. ㅎㅎ
17년도 833 알파포대 근무자는 조용히 지나 가겠읍니다ㅋㅋ
제 큰아버님 세대의 군생활을 유투브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할수있게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29인 제 나이가 부끄럽게 느껴질만큼 겸손해지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단히 고생하셨습니다.
찾아와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9살 청춘이 부럽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때는 대학공부와 군대복무로 20대 청춘이 모두 지나간 것 같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댓글에서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군대 복무 시절 과장님과 선임하사님 상봉 후기:
작년엔 병기과 박수천 전우와 함께 박남종 선임하사님 찾아뵈었고요. 지난 1월엔 40년 만에 신현탁 군수과장님과 박남종 선임하사님을 병기과 박 전우와 함께 만나뵈었습니다. 40년 전 추억담을 나누며 정말 꿈 속을 헤매는 듯, 스무살 남짓 그 청춘의 시절로 빠져들었습니다.
신 과장님, 박 선임하사님께서 꼭 만나보고 싶어하시는 그때 그 군수과 식구들, 김대규 하사, 최규익 병장, 정상배 병장, 김한수 병장, 이성교 하사, 김창술 중사님 꼭 한번 만나실 수 있기를.. 그 때 그 시절로 추억 여행 떠나시고.. 더욱 더 건강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38년 군대 생활하시고 주임원사로 전역하신 박남종 군수과 선임하사님은 40년 전 833포병 근무 당시 군수과 과장님을 상봉하시고 그옛날 청춘의 시절이 생각나신 듯 목이 메이시고... 그때 그 전우들 모두 다시 한번 꼭 보고 싶으시다며 그리움의 눈물을 삼키셨습니다...
아름다운 모습
감동입니다~~~!!!!
82년 11월 군번입니다 65-9-wp 방산 백석산 험한 산골....큰 형님 대 선배님이십니다.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들이 잘 살고 있다고 봅니다.
저희때도 엄청 빡신 군기에 하루하루가 힘든 하루 군 생활이었는데.. 고생많으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슴에 좋은 추억으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단결!
문상철 전우님! 찾아와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보다 몇 년 후 양구에서 군생활하셨군요. 방산 65연대 백석산 산골 그때 고생 많으셨습니다. 힘들고 고되었던 빡센 군대생활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고 그때 고생했던 전우들도 생각나고 이따금 가보고 싶기도 하시지요? 좋은 추억만 간직하시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75년도에 입대하셧으면 현재 2023년의 세월에서 저는 거의 절반인 00년 군번입니다.^^
본영상의 부대와는 다른 저는 논산에서 후반기교육거쳐 육군 9사단 백마부대 30연대 60미리 박격포 주특기였죠~
이제는 제가 받았던 주특기도 세월속에 사라졌다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68년 양구에서 근무하셨습니다.
정확한 부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영상속 사진으로만 봐도..고향집 부모님만을 늘 생각하며 나라를 위해 복무하신 그 숭고한 헌신과 노고가 물씬 느껴집니다.
선배님들이 계셨기에...중간짬밥?^^ 인 저부터 지금의 우리 다음세대들까지 건강하게 군복무를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70년대면 저희 아버지가 어렸을때네요..
그 시절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세대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제는 수능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군복무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젊은이신가요?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용기와 활력을 얻어 수능에서 좋은 성과있기를 기원합니다. 교실에서 야자실에서 수능을 준비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응원합니다~^^.
@@youngtaekkim663
감사합니다 열심히하겠습니다
다시 이 유투브를 보며 댓달게되네요.힘들고 춥고 배고프고 어떻게 30개월 15일을 버텼는지...그래도 20대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세월이 너무 빨리흘러서...이생은 망해서 담생엔 여유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열심히 하고싶네요
저와 군복무 기간이 비슷하네요. 저는 30개월 10일 군복무했습니다. 참으로 길고 긴 힘든 시간이었지요. 여유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말씀 가슴이 찡합니다.
귀한 사진들 ... 잘 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파주 법원리에서 근무한 16년 군번입니다
고됨을 비교 할 수 없지만 아버지같은 분들이 계셔서 지금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존경합니다 항상 몸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전우님 반갑습니다. 16군번이면 전역한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청년이시군요. 생각이 반듯한 청년을 만나니 흐뭇합니다. 파주 법원리에서 군복무하셨군요. 고양 일산에 살고 있어 문산 파주 쪽으로 가끔씩 놀러갔었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군시절 경험을 디딤돌 삼아 멋진 사회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72년도 천도리2사단6162포병부대전역했읍니다 옛날생각이 나네요
저보다 3년 먼저 군입대하셔서 천도리 2사단에서 군복무하셨군요. 천도리는 양구 인제 원통에서 군복무한 사람들은 모두 알겁니다. 저도 함께 고생한 전우들 문득문득 생각나곤 합니다.
충성 선배님...2011년도부터 2013년 833찰리포대에서 군생활 했었네요 대선배님을 유튜브에서 뵈니 반갑네요... 선배님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만큼 편하게 했지만 1679부대라는 같은 부대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833포병 전우님. 우리 땐 8인치 견인곡사포였는데 k9 자주포로 바뀌면서 폐기처분하거나 박물관으로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전우님은 k9 세대시죠? 재작년 부대개방행사때 원당리 1679부대 833포병 방문했습니다. 부대내에서 본 포병의 자존심 'Pride of Artillery'이라는 커다란 글귀가 잊혀지지 않네요. 다음 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가 있습니다. 제 닉네임은 '고향언덕'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영상을 보면서 잊고 살았던 군시절 젊은 날의 추억들이 떠오르는군요
저는 75년 9월 ~ 78년 4월까지 922포병대대
본부포대 서무계로 복무를 했는데 그때 그 시절에는 922포대는 강원도 고성군 장신리 위치한 7710 부대 였습니다
78년 동부전선 최전방 보병부대 대대장이 통신병을 데리고 월북한 사건으로 모든 부대 명칭과 위치들을 변경하는 혼란이 있어 제가 전역하고 얼마 후 양구로 부대를 옮겼다 들었습니다
지금도 강원도로 휴가 놀러 가는 일이 있으면 일부러 진부령을 넘어 간성으로 돌아 가면서 922포병대대가 있던 장신리 마을을 돌아 보면서 갑니다
부대 정문 언덕으로 오르는 길 옆 교회도 44년 지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있으며 지금은 다른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더군요
그때 함께 복무하며 내무생활을 했던 전우들이 그립군요 인사과.정보과.작전과.군수과.통신과.등 ... 포대본부.전우들의 성명과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본부포대 서무계로 매일 부대 각 초소 보초 근무자 명단을 작성했던 이유로 많은 전우들의 이름들이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 혹시 소식과 연락이 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네요 )
대대장.박천수님 포대장.차동개님 백규태님.유상달님
인사계.최명환님
지금은 80대 중 후반
되셨겠군요
뵐 수 있으면 식사 멋지게 대접하고 싶군요
( 수원 출신 오진록 올림 )
오진록 전우님! 댓글 남겨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비록 부대는 다르지만 포병대대 본부포대에서 저와 똑같은 시기에 군복무를 하셨다니 더욱 반가움을 느낍니다. 저는 1975년 9월부터 1978년 3월까지 군복무 하였습니다 저는 양구 833포병대대에서 본부포대 군수과 서무계 업무를 맡아보았는데 업무상 922포병대대와 877포병대대 군수과 서무계와 가끔씩 통화를 했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은 통신과 교환병을 통해 전화통화를 했었지요. 전우님은 본부포대 본부행정실 서무계로 근무하셨군요. 본부포대에 인사과 정보측지과 작전과 군수과 통신과 수송부 등이 있었지요. 본부행정실 서무계로 매일 각 초소 근무자 명단을 작성하시다 보니 포대원들 많이 기억하고 계시겠군요. 그리운 전우님들 만나서 그 시절 추억담 많이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문득 전우님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서럽고 고달펐던 군시절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젊었던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합니다. 전우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군시절 추억에 잠겨 양구를 검색하다가 이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연배이신거 같아 더 영상에 몰입해서 봤습니다. 저 역시 양구에서 21개월동안 복무하고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양구라는 지역에서 복무했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뭉치게 되는거같습니다. 선배님께서 복무할 당시 양구는 그야말로 도로도 연결되어있지 않아 배를타고 들어가고 휴가를 나가는 수준이었다고 말로만 들었습니다. 게다가 양구똥바람이라고 불렀던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은 70년대에는 더 매서웠겠지요... 그 당시에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군대였지만 지나고보니 군시절이 그립기도합니다. 멋진 동영상 잘 감상하고가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3년이라는 청춘을 바치신 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늘 양심적 병역거부선고가 있었는데 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영상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 건강하세요 충성!
영풍 님~^^ 반갑습니다. 긴 답글 써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양구에서 군대 생활 하셨다니 40여년 세월을 뛰어넘어 친근감 동질감을 느낍니다. 21개월 복무하셨다면 전역하신지 몇 년 안된 20대 청년이시겠네요. 청춘의 시절 부럽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70년 대엔
정말 교통이 불편했어요. 귀대할 때 서울에서 아침에 집을 나서면 저녁이 되어서야 부대에 들어갔지요. 춘천에서 배를 타고 양구 선착장에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가야했지요. 지금은 정말 교통이 좋아졌더군요.
양구~! 참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지요. 겨울엔 어찌 그리도 춥고 눈은 또 어찌 그리 많이 내리던지요... 다 지나고 보니 세월이 흘러가고 보니 그 서럽던 마음 다 사라지고 그리움만 남아 있습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옛 전우들 만나 양구 군대 시절 추억담 나누고 지냅니다. 그때 상관이셨던 과장님, 선임하사님도 정말 기적처럼 만나뵈었고 포대장님과도 소식 나누었고요. 세월은 흘러가도 추억은 남아 그리움을 더합니다.
영풍님~! 사시는 곳이 어디인지요?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면 시간 내실 수 있다면 이런 인연으로 제가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하고 싶습니다만... 거듭 긴 답글 감사드리며 하시는 일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970년대군대
예전에는
다
이런 분위기
그때 기억이
그때 축억이
가물가물 나시겠어요 .
양구 대암산 방공진지에서 근무한 병사입니다. 여전히 겨울엔 2일에 한번꼴로 눈이 옵니다. 전 이제 가지만 여러분 힘내서 건강하게 전역하시길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양구 대암산. 여전히 겨울엔 눈이 많이 오는군요. 후배들 격려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저에게도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대선배님 96군번 3대대 11중대 자대배치받고 거진 대암산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102보에서 소양강에 배타고 신교대입소 훈련중 강릉무장공비터지고 전쟁나는거 아니냐고 동기들이랑 불안에 떨었었지요
군생활중 훈련끝내고 완전군장메고 주둔지에서 대암산 올라가는데 3시간은 걸렸던거 같네요 어찌나 힘들던지 체력의 한계를 거기서 많이 넘었습니다
거기서 오래전에 근무하신 선배분들은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정말 대단했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부산에 휴가 한번 나가면 하루 꼬박걸렸었네요
정말 아련하게 생각나는곳입니다
전우님! 반갑습니다. 부산에서 102보충대 거쳐 소양가메서 배를 타고 양구로 자대배치 받으셨군요. 저보다 20년 후 군번이신데 그때도 소양강 선착장에서 군용선 배 타고 양구로 갔었군요. 저는 안동(지금은 원주)에 있었던 36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전반기 6주 훈련받고 부산으로 내려가 육군병기학교에서 5주간 후반기 탄약관리병 교육 받았습니다. 그리고 춘천 102보 거쳐 양구로 자대배치 받았어요. 양구 인제 하면 대암산이지요. 저희 부대는 대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지요. 휴가 때 서울까지도 하루종일 걸리는데 부산은 정말 오랜 시간 걸렸겠어요. 작년에 40여년 전 함께 군복무했던 전우들과 함께 양구 선착장 둘러보았어요. 요즈음은 손님이 없어 배가 다니지 않는다고 하네요.
필승! 대선배님 저는 공군 제5전술공수비행단 제대한 10군번입니다.(아버지는 82군번 전차병 30개월 복무) 입대한 다음날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났었죠. 모든 것이 열악하고 사병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군사정권 시기 선배님의 국가에 대한 헌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필승!
반갑습니다 전우님. 10군번 청춘의 시절 부럽습니다. 아버님도 저와 같이 30개월 복무하셨군요. 전우님 말씀처럼 그땐 모든 게 열악하고 병사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던 시절. 그래서일까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이 문득문득 생각나곤 합니다.
18군번 21사단 이곳에서 근무했습니다!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아버지 세대네. 나도 이제 나이 많이 먹어 그런가 이런 옛날 사진 보면 세월이 무섭다
12군번 대암산 후방에서 근무한 인원입니다
훈련때 대암산타며 진지 점령하러 갈때가 엊그제네요..
길터놓은 선배님들 덕에 훈련잘마치며 전역햇습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12군번 젊음이 부럽습니다. 대암산 타며 진지점령 훈련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때 추억들이 오늘 삶의 활력소가 되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는1977년부터 1980년초까지 21사단 65연대옆 169 포병대대에 통신병으로 근무한사람인데요
그때를 생각하니 감회가새롭습니다. 벌써 세월이흘러60대 후반이됐습니다 아무튼 건강하게사십시요
반갑습니다. 전우님! 포병대대 통신과에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하셨네요. 세월이 너무도 많이 흘러갔지요. 그 젊음의 시절, 청춘의 얼굴들 이제는 모두 노년이 되었겠지요. 문득문득 그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그 전우들 어느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반가워요 저도77년도 동면 팔랑리 161포대 통신에 있었습니다 80년초에 전역하고 지금 70에 턱걸이 합니다
부산에서 자라고 지금은 양구헬기장 근처에서 살고있는 동시대의 전우입니다
79년 군시절의 기억을 떠오르게하는군요
박격포들고 치악산을 오르던 시절 힘들었지만 지금은 추억으로만 남아있군요
언젠가 양구오시면 연락주세요 소주한잔하면 좋겠군요
반갑습니다. 전우님. 동시대의 전우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 시대의 아픔과 전우애.. 지금 양구에 사시는군요. 부산에서 양구로 멀리 이사가셨네요. 전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후반기 교육 받고 양구에서 군생활했습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때 양구 방문했어요. 수년전엔 양구 탐사 한번했고요. 김수근미술관 선사박물관, 전쟁기념관, 산양보전센터, 두타연 대암산 용늪 제4땅굴 을지전망대 두루 다녔습니다.
@@youngtaekkim663 그당시엔 휴가때 오고가고 이틀은 걸렸을 오지의 양구였지만
지금은 서울서 2시간이면 올수있어요 2사단도 해체되고 외출 외박 병사들의 모습도 많이 줄었답니다
그래서인지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걱정이 많습니다
있을때 잘했어야지 전역병들이 한번씩 들릴텐데 워낙이 접경지역에대한 인상이 좋지않아서 어려움을 자초했다고 뒤늦게 후회들 합니다
@@이명재-j2l 양구가 교통이 정말 좋아졌더군요. 춘천에서 터널 통과하니 빠르게 양구 도착. 40년 전 춘천 103보(102보)에서 3일 묵고 소양강에서 밖이 보이지도 않는 군용선 배타고 앙구 선착장 도착. 양구 가서 자대배치까지 하루종일. 휴가 나오고 들어갈 때도 서울 마장동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하루 종일이었죠.
통일화 지급받던 그시절 아닌가요? 가죽 전투화는 아껴신고.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을까 상상이 가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가죽 전투화는 휴가 때.. 평상시에는 통일화. 한겨울 한밤중 눈쌓인 초소에서 2시간 보초 서고 내무반에 들어서면 통일화도 얼고 몸도 얼고 마음도 얼어붙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햐~~~아련한 80년대 군대생활이 한편의 영화처럼 지나가게하는 영상이네요, 80년대중반 양구에서 인제, 원통 훈련가느라 대암산 광치령을 넘나들면서 불럿던 노래가 생각나네요 , 대암산 광치령을 울고넘는 ㅇ사단용사여 ~~ 방한모,개구리전투복,장교잠바,방상복.30개월동안 워낙 고생했더때라 전역하면서 그쪽으로보고 오줌도 안눌거다 하면서 전역했는데 지금도 그마음은 변하지 않아서 여행을가도 강원도쪽으로는 웬지 가고싶은 마음이 없지만 그때의 군대 추억은 간직하고 싶네요. 그때 전우들도 보고싶고..저도 군대사진이 좀있는데 자식들한테 보여줄려니 꼰대 소리 들을까봐 책장깊숙한곳에 꽂아 두었습니다.
83년에 입대해서 85년 전역할때 까지 육군본부 심리전단 소속으로 21사단G,OP에서 파견 생활 했었는데 대암산 중계소에도 잠깐이나마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힘들고 고생많았던 군생활 이었는데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보다는 동고동락을 같이했던 전우들이 먼져 생각나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보다 8년 후쯤 입대하셨네요. 백용학 님 말씀이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땐 정말 힘들고 고생 많았었지요. 저 역시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청춘의 시절이 그립고 그때 그 전우들 보고 싶어집니다. 육본 소속으로 21사단 GOP에서 파견 생활하시며 대암산 중계소도 들리셨군요. 양구와 인제에서 군대 생활하신 분들은 대암산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옛ㆍㆍ선배님들 정말 존경하고 감사드립니다ㆍㆍ당신들이야 말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굳건한 마음으로 부모형제 나라들 지키셨던 마음 항상 감사드립니다ㆍ항상 선배님들의 가정에 평화와 축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ㆍ98년군번ㆍㆍ5군단ㆍㆍ통일^^
예 전우님, 반갑습니다. 36개월 복무하던 옛날이나 21개월 복무하는 지금이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나라를 위해 보냈던, 보내고 있는 모든 전우들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작은 영상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youngtaekkim663 그러고 보니 제가 태어난해에 전역 하셨네요ㆍ저는 78년생입니다ㆍ늦은시간 편히 주무십시요^^
저는 79년 4월 입대 포병교육 마치고 배치된곳이 양구군 동면 팔랑리 21사단 161 포병대대 본부포대에서 무사히근무하고 82년1월 전역 했습니다 40년전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
전우님 반갑습니다. 양구 동면 팔랑리 161포병 본부포대에서 근무하셨군요. 전역하신지 40년이 다 되어가도 군대생활 그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지요? 물론 또 많은 일들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겠지만.. 그 꽃같은 청춘의 시절, 좋은 추억들 오래도록 간직하시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youngtaekkim663 감사 합니다. 저는 인사과 있었구요 옆사무실이 군수과 였습니다. 원래는 포병학교에서 사격지휘반 이수 이수는데 자대가서 인사과 업무을 보개 되었네요. ㅋ
@@jaejoonchoi7679저는 양구 동면 원당리 833포병 본부포대 군수과에서 근무했어요. 옆 왼쪽 사무실은 인사과, 오른쪽은 통신과.. 저는 부산 병기학교에서 후반기 탄약관리(440, 지금은 540) 주특기 교육을 받았어요. 병기과에서 근무했어야 하는데 군수과에 붙잡혀 서무계로 밤낮없이 일만 했네요. 어느 날은 저녁에 보초 2시간 서고 챠트 작성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도 납니다. 서무계, 정신적으로 참 피곤한 직책이었죠.
@@youngtaekkim663 반갑습니다 지금은 2사단이 헤체 되었다고 들은것 같은데 일부는 21사단에 흡수 되었다 고 하더군요..
@@jaejoonchoi7679 네 저도 2사단이 해체되고 21사단과 합쳐졌다고 들었습니다.
96년2월 논산훈련소..홍천야수교운전병수료..춘천102보충대를거쳐 소양강배타고 양구선착장...2사단 지휘관운전병으로 인제.원통.양구 모든부대훈련이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남았습니다.좋았던일..나빴던일.모두..선배님 부대 가보았던생각이납니다 항상건강하세요..추억소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음악 너무좋습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안동 36사단에서 전반기 훈련, 부산육군병기학교에서 후반기 교육 받고 춘천 102보충대를 거쳐 소양강에서 군용선 배타고 양구선착장으로 갔었는데, 꼭 20년 후인 96년에도 똑같이 전우님께서 소양강에서 배 타고 양구선착장으로 가셨다는 말씀 들으니 참 놀랍습니다. 20년 동안 변한게 없었군요. 2사단과 21사단 모두 양구에 이웃해 있었지요. 감사합니다.
@@youngtaekkim663 선배님 2003년3월 군번인 저도 논산훈련소 수료 후 2사단 배타고 갔습니다. 배 탄 군번은 아마 제가 거의 마지막 세대일겁니다. ㅎㅎ
반갑네요 갑자기눈시울도 적셔지네요 저는76년5월부터78년10월13일제대까지833 차리수송부근무햇지요 그시절그립기도하구 전우님들 모두 건강하게 잘들지네겟지요 가 끔생각납니다 부산사는 김동규 알고계신분?
833포병 전우님, 반갑습니다. 저보다 5개월 늦게 833에 전입 오셨군요. 지난 2017년과 2018년 5월 부대개방행사때 원당리 833포병 다녀왔어요. 지나는 길에 후곡리 약수터에 들러 약수도 한 모금 마셨지요. 8인치 견인포에서 k9 자주포로 바뀌었고요. 챠리포대는 원당리 본부로 모두 옮겨갔어요. 챠리 포 그 흔적은 유물처럼 남아있었습니다.
보고 싶은 전우 꼭 만나시기를 기원합니다. 포탈 다음에 833포병전우회 카페가 있어요. 가입하셔서 가입 인사 나누시고 혹 그리운 전우가 있는지 찾아보세요. 요즘은 카페 활동이 좀 뜸한 것 같은데 저는 이 전우회 카페에서 함께 근무한 본부포대 전우들 몇을 만났어요.
많이 반갑고 추억이 물씬 생각 나네요 저는 77년 12월부터 80년7월까지 챠리 4포 반원이었네요 고참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름은 가물 가물하지만 경상도 사투리 많이하신분 아닌가 생각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입대는 10 월21일 이네요
멋있어요
감사드립니다
음악도 죽이네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음악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
방문해 주시고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60대 중반 쯤 되셨겠군요.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죠. 예전 군복 사진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립습니다. 한국 땅을 떠나 유투브를 보며 예전 기억에 잠기면 몇 시간이 훌쩍 가버립니다.
반갑습니다. 외국에 거주하고 계시는군요. 비록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젊음이 넘치던 시절이라 그리운 게지요. 군복을 입고 함께 보낸 그 시절 그때 전우들도 그립고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잘된 영상입니다. 영화처럼요.....😁
최고입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현역 복무 중인 군의관입니다. 양구 부대는 21세기 지금도 20세기 같은 곳이라고 하죠... 예전 복무하셨던 사진보니깐 매우 짠하네요. 저희 아빠 군복무 하셨을 때 사진은 어땠을 지 궁금해집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현직 군의관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군의관님 말씀대로. 양구는 큰 변화가 없는 곳이지요. 재작년 부대개방행사때 원당리 마을을 지났는데 예전 마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더군요. 마을은 옛 모습이나 곳곳에 새로운 박수근미술관이나 선사박물관, 전쟁기념관, 산양복원센터, 양구식물원, 을지전망대, 곰취재배 등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양구 두타연과 도솔산, 대암산 용늪도 좋지요.
대전병원 군의관님 아니신가요? 군의관에대한 이미지가 안좋았었는데,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친절하게 자세히 진료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풍기, 온열기도 제대로 없던 시절 고생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다들 어떻게들 사셨는지 짐작이 안가네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여건이 열악했습니다. 그래도 서로를 위하는 전우애가 있어 잘 견뎌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민무늬 군복시절 하루라도 빳다 안맞는 날이 없었다는 그때그시절 이군요 저희 아버지께서 인제 원통에서 공병대 근무하셨다고 하는데 겨울에 선임들 빨래 얼음깨가면서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올해72세인데 비슷한 시절의 군대인거 같습니다 영상 잘봤습니다
아버님께서 인제 원통에서 공병대 근무하셨군요. 겨울에 선임들 빨래 얼음 깨가며 하셨다는 말씀이 과장이 아닐 겁니다. 제가 근무한 양구의 겨울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였지요. 취사장에서 식기 세척할 땐 얼음 깨고 흐르는 물에 식기 씻었지요. 씻자마자 식기에 얼음이 부스럭거렸죠. 한밤중 단잠 깨어 눈 쌓인 초소에서 보초 2시간 서고 올 땐 발도 얼고 통일화도 얼어서 부스럭거렸고요. ㅠ 다 지난 얘기지만 어려운 일 닥치면 그때 일 교훈 삼아 이겨냅니다.
저녁에 한따가리 해야만 잠을잘수있던 시절 지금생각하니
약간은 그립기도 하지요! ㅎ ㅎ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시길!
감사합니다. 축복해 주시는 전우님께도 같은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대배치 첫주에 우리 할무이 시루떡 한박스 머리에이고지고. 찾아오셨어 ~ 전방까지 ~ 할무이 ! 할배랑. 그곳에서. 안싸우고 오신도신 잘게시죠 ?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하신 듯.. 자대배치 첫 주 시루떡 한 박스 머리에 이고 손주 면회 오신 할머님.. 걱정도 근심도 없는 그곳에서 잘 계시겠지요? 효자 손주~^^
@@youngtaekkim663 할무이보니까 올매나 눈물이 쏱아지는지 ㅎㅎ
@@유돌삐 아름다운 추억 간직하고 계시네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시루떡 이고 손주 면회 가시는 할머니.. 눈문 쏟는 이등병 군인 손주 한 컷~^^.
저는 25개월도 지겨웠는데 36개월 복무하신 아버님들을 보니 부끄럽고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길고 긴 군대생활이었습니다. 혹한과 폭설의 겨울을 세 번 보내고서야 전역일의 아침이 밝았지요. 보초서랴 업무하랴 야간근무에 치여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이 참 많았지요. 어느 선배가 말하더군요. 훈련 받을 때마다 배웠던 물리 공식들이 하나 둘 다 날아가 버려, 군대 3년 세월 보내고 나니 머리가 텅 비어 있더라고요.
@@youngtaekkim663 물리학 전공하셨나봐요?
@@깡총거미 물리학 전공하신 타과 선배님. 저는 생물교육학과 졸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youngtaekkim663 아~네 ㅋㅋ 선생님하셨겠네요.전공대로 가셨더라면요.
@@깡총거미 네 서울에 있는 8개 학교에서 30년 남짓 생물교사로 근무하다가 몇 년 전 명퇴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나치다 보는데 댓글들이랑 영상들 정독했네요. 울컥했습니다. 전우분들 꼬옥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 젊음의 시절 눈물나게 추억하고, 함께 한 전우들 그리워하는 댓글을 읽으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20년 전쯤 3박 4일 '양구생태탐사'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수근미술관, 양구전쟁기념관, 양구선사박물관, 산양복원센터, 제4땅굴, 통일전망대, 펀치볼, 두타연, 도솔산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대암산 용늪에도 올랐습니다. 지금도 그때 본 용늪의 멋진 풍경과 '금강초롱'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정말 감격적이었던 순간은 양구식물원을 찾아갈 때였지요. 왠지 낯익은 길이다 생각했는데 버스가 동면 원당리로 접어들어더니 66연대를 지나 제가 군복무했던 833포병부대 쪽으로 가더군요. 가슴이 마구 뛰었지요. 버스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내무반과 행정사무실. 달려가면 그때 그 전우들과 한바탕 큰 소리로 반가운 인사라도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갑자기 젊은 시절의 '내'가 되어 마구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4년 전 부대개방행사 때 부대를 다녀왔습니다. 비록 그때 그 전우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내무반도 행정사무실도 취사장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그 남은 조각들을 주워 모아 옛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부대가 사라지거나 이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그 다음 해 부대개방행사 때는 옛 군수과장님과 함께 방문하여 추억을 더듬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 덕분에 그때 함께 군복무했던 여러 전우들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나, 김 병장이야", "나, 이 하사야", "저 강 상병입니다", 하며 불쑥 소식 전해 올 전우들을 기다려봅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그시절 183 포병 대대에서 근무 했답니다 6포차 운전 병 이였답니다 그 옛날이 그리워 지는군요
183포병 전우님 반갑습니다. 70년대 중후반 참 모든 것이 열악하고 힘든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뒤돌아보며 그곳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떠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71-73 년까지 서치라이트 포병 8765부대 법원리에서 제대를 하였는데
영상을 보니 내모습을 보는듯하여 감회가 새롭네요,
추억을 불러주어 감사합니다!
저보다 5년 먼저 입대하신 선배님이시네요. 법원리 포병부대에서 군복무하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youngtaekkim663감사합니다^^
오늘 우연히 마주친 그때 그시절, 왜 우린 거기에 서있었던가요? 잘 모르겠지만 아련한 추억과 그래도 자부심으로 남아있네요! 833이름으로 78~81년 33개월 14일 근무했죠. 멋있어요.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833 어느 포대에서 근무하셨나요? 제가 전역한 직후 자대배치 받으신 것 같네요. 다음 포탈에 833포병대대전우회 카페가 있습니다. 그리운 전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반갑네요. 이름이 기억에 있는데, 혹시 알파에서 본포 인사과로 왔던 전우 맞죠?
당백!
안녕 하십니까?
저는 73년12월논산 군번입니다
21사단 사단교육대에서 후반기 박격포 교육 받고63연대11중대에서
군복무를 했읍니다
당시에는 월남전 다음에는 한국전이라 해서 별별 훈련 다해지요. 근무지는 경회루9310p31기지983고지
당백! 오랫만에 들어보는 구호입니다. 저희 부대도 인사 구호가 '당백'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73년도에 군입대하셨으면 저보다 2년 선배님이시군요. 논산에서 전반기 훈련 받으시고 21사단에서 후반기 박격포 교육을 받고 63연대에서 군복무하셨군요. 그땐 참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찾아와 영상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추억의 멋진사진이 참 많으시네요
춥고 배고프고 훈련많았던 시절 잘 극복하셨습니다
그땐 정말 배고프고 춥고 힘든 시절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어떻게 보냈는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해요. 체력이 약해서도 힘들었지만 참기 힘든 모욕도 잘 견뎌냈지요. 그때 그러려니 했으니까요.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찾아와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이 흐르니 그 시절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이 문득문득 생각나곤 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양구군청 유튜브 담당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양구군 유튜브 페이지에 영상 공유하고 싶습니다. 답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을 올린 사람입니다
부족한 영상을 양구군 유튜브 페이지에 공유하신다니 송구스럽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youngtaekkim663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국가를 위해 헌신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항상 행복하시기 바라봅니다.
75년에 고방산 183 포병대에서 제대 했는데 그땐 고생 많았지만 다시 한번더 군생활 하고싶답니다 첫 휴가 가는날 21사단 보충대 집합 하루 자고 소양강 어기 까지 왔어는 배를 타고 소양땜 까지 그리고 춘천역 용산역 삼랑진역 마산 휴가 올때는 그렇게 왔지만 귀대할것 걱정되어 잘 놀지도 못했거던요 평생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 이랍니다
@@윤한일-m1u 저도 102보충대에서 사단훈련소로 배치받는데 소양강에서 배타는 동기들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양구 21사단ㅋㅋ
저는 관광버스태우고 3시간후에 도착한 휴계소가 3.8선휴계소ㅜㅜ
북파공작원으로 보내는줄 알았어요ㅜㅜ
거기서 1시간 더들어가니 12사단 을지부대ㅋ
평생 못잊을 추억이네요ㅋ
@@브루스리-f6m 저랑 똑같이 느꼈군요 부산살다 원통도착하니 주민들 모두 북한말^^
저는 을지부대 88군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