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본질과 핵심, 가장 성경적으로 말씀드립니다 | "성찬, 배부름과 기쁨의 식사" 이성호 교수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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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0 вер 2024
  • #성찬 #개혁교회 #고신
    *이 콘텐츠는 좋은씨앗 출판사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출연
    • 이성호 교수님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 영상에서 소개한 책
    • 이성호, "성찬, 배부름과 기쁨의 식사", 좋은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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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21

  • @kgurwns
    @kgurwns 9 місяців тому +5

    식사는 인간에게 가장 일상적인 것이며, 또한 각 나라의 식사문화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의식을 고찰할 수 있듯 문화에 대한 예전적 의미를 담아내기에 좋은 행위입니다. 어쩌면 성찬이 식사의 방식으로 시행된 것이 예수님의 지혜였다라는 생각을 저도 많이 하게 되는데요, 실제로 처음 죄가 들어온 것도 먹는 문제(선악과)와 관련되었고, 또 오병이어, 칠병이어를 비롯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식사자리를 가지시는 모습도 일상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연결이 된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성찬은 식사가 맞고, 그 주된 의미는 일상 가운데 누리는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보여요. 반면 요즘 성찬의 임재 신학이 많은 부분 음악에 자리를 내어주다보니, 화려한 조명과 음악 가운데 누리는 임재경험이 일상의 먹고 마시는 행위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만나는 임재 경험을 사실상 많이 축소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물론 과도한 해석이라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임재경험이 일상과 차이가 클 수록, 성도들은 일상 속에서 임재를 잘 누리지 못하고, 찬양집회나 기도회 등 특정한 상황에서만 임재경험을 할 수 있어 일상 중심의 신앙생활보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로 형성되어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보여요. 반대로 다시 말하면, 성찬은 그야말로 일상의 행위로서 연결된 실천이어야 본래의 의미를 살리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일상 식사와도 연결되는 성찬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구체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부목사 위치에서 자유롭지 않다보니, 어린이들에게는 식사 기도를 이것과 연결시켜서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 @skybird4171
    @skybird4171 9 місяців тому +3

    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누던 성찬은 실제 식사였으니 말입니다.

  • @ezramoon980
    @ezramoon980 9 місяців тому +2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강건하세요^^

  • @가람-n4u
    @가람-n4u 9 місяців тому +3

    흥미가 생기는 책입니다

  • @b-7581
    @b-7581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더 깊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영상 자막에 중요한 단어들에 오타(?) 몇 개가 있어 아쉽습니다.

  • @la.facere
    @la.facere 9 місяців тому +6

    성찬은 단순한 식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매주 성찬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배 후에 공동 식사를 하니까요.(물론 코로나 기간 잠시 중단되긴 했지만)
    성찬의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일치입니다. 나와 그리스도의 연합, 더 나아가 한 분 그리스도를 더불어 모시는 교회의 일치이기도 합니다. 해서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성변화는 일면 타당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례 문헌은 3세기 초 교부 문헌에서도(가령 )에서 확인할 수도 있는데 문헌으로 남겨진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성찬은 전례로 지켜졌습니다. 또한 서방교회 4대 교부 중 하나인 히에로니무스도 "말씀이 책이 된 것이 성경이고, 말씀이 빵이 된 것이 성체"라고 말한 바 있죠. 심지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도 공재설을 주장했고요. 즉, 말씀과 성찬 모두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세례 받은 이가 그분과 연합하는 거룩한 의식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찬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새 언약 갱신의식'라고 보는 게 성경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전 11:25, 누가 22:20) 만일, 단순한 식사에 그친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식사는 무엇이고, 굳이 왜 죽기 전에 성만찬을 제정하셨는지 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사의 신비의 절정인 성찬(영성체)이 중심이라면, 개신 교회에서는 성찬의 의미는 다소 덜어내고 말씀 중심적입니다. 이 두 가지의 온전한 조화가 이루어질 때 교회의 본질은 회복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보이지 않는 말씀과 보이는 말씀이 두 가지가 올바르게 선포되고, 거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sarang775
      @sarang775 8 місяців тому

      개신교 목사님들은 사도계승이 끓어져서 성변화 하실수 없으십니다

    • @sarang775
      @sarang775 5 місяців тому

      가톨릭 교회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두가지를 합니다

  • @권영복수학TV
    @권영복수학TV 6 місяців тому +1

    국내신학자 중에 피터 마터 버미글리를 전공하신 분은 김진영박사님과 김진흥박사님 두분 입니다.

  • @종숙최-m1m
    @종숙최-m1m 9 місяців тому +1

    배부르게 나누는거
    좋아요 . 서비스 받고 나누는거 좋치만 막상 서비스하려는 사람은 적지요 .교회에 몸담고 봉사라고 하지만
    늘 좋을 수 없어요 . 특히 주방쪽 일은
    소수의 정해진 인원으로. 교회를 떠나는 한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
    나도 알곡처럼 보이는 쭉정이가 아닐까 삼십년 쯔음 되니
    의심이 드네요 스스로

  • @항상웃자-b1i
    @항상웃자-b1i 9 місяців тому +2

    한국특 일차원적 접근 넘 안타깝습니다
    문해력 보강을 위해 독서를 권해드립니다

  • @towardsthelife5311
    @towardsthelife5311 3 місяці тому

    일반 신자들은 성찬을 집전할 수 있나요? 목회자만이 성찬을 집전할 수 있다는 건 성경의 어느 구절을 근거로 하는지 궁금합니다.

  • @오-m9g
    @오-m9g 4 місяці тому

    사람들은 죄인이라서 자신이 죄인인것을 고백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가 무엇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지요 가인처럼요
    그 결과의 하나로 성 자를 즐겨 사용합니다 성경에도 없는 성찬 성체 라는 단어들을 열심히 사용을 하며는 거룩해지는 줄 착각을 하게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냥 종교 행위이지요 가인처럼 즉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성찬 이라는 단어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만찬 또는 주의만찬 이라고 해야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정하셨다 주님께서 주인으로서 행하는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 이라는 표현은 주님을 반역하는 뜻이며 사탄의 작품입니다 사탄의 작품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주의만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공부하지를 않습니다 누군가를 통해서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아 그렇구나 하지요 아마도 99퍼 그러지 않을까요
    이러한 모습들은 바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깨닫게 해달라고 하며 성경을 봐야합니다
    누가복음 22장 13~18. 19~20 나누어 보겠습니다
    유월절 준비를 했고 유월절 식사를 하였습니다 핵심 음식은 마짜 입니다 무교병 이라고 하지요 (누룩을 넣지않은 앏게 펴서 화덕에 구운빵 입니다 우리나라 파전 정도의 크기와 비숫한 두께 정도의 빵 입니다)
    한가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떼어 라는 단어입니다 잘못된 번역입니다 송편같은 것은 서로간 붙습니다 그래서 떼어 라는 단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마짜 라는 것은 찢어서 줍니다 찢어 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전체적인 뜻에도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채찍에 맞아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찢기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사야 53장 5절 채찍에 맞으므로 라는 구절입니다 그 당시 채찍 끝에 뾰족한 갈고리 형태의 납조각이 달려서 살점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아무튼 떼어 라는 번역보다 찢어서 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마짜는 서로 엉겨 붙지 않는 빵 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실 주의만찬에 대해서 성경에 많은 구절이 없습니다 다른 가르침에 비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전 개인적으로 오랜기간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식에 치우침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상숭배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것이 전부인양 죽자살자하고 매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은 내팽기치고 오로지 먹고 마시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라는 것들을 생각했지만 정답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비숫한 이유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지팡이를 우상숭배 했으니까요
    주의만찬이 유월절 식사와 연계된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식사와 어떻게든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리 생각했던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의 마침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인의 예식인 주의만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통한 하나님께 나아감의 마침을 의미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께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내 몸 (소마) 내 피 (하이마) 이 단어들은 figurative figuratively 비유적.전의적.상징적.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실제적인 주님의 몸으로 주님의 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끔찍하게도 우상숭배하지 않았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빵 일뿐이며 포도에서 난 포도주 일 뿐입니다 주님의 몸으로 피로 여기고 상징적인 의미로 두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사람일것입니다 지나치면 빵과 포도즙을 우상숭배로 넘어가게 됩니다 고전 10장에서 우상숭배에 관한 가르침이 나온 다음에 바로 11장에서 주의만찬에 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점 유념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절이하에서 3가지를 발견합니다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1. 먹고 마시는 행함 2.주님을 기념하는 행함 3.주님의 죽으심을 주님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 (전하는 것의 뜻은 공중앞에서 선포하다 반포하다 전달하다의 뜻 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되새기는 의미도 있으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복음을 공중의 보이지않는 권세잡은자 사탄이나 천사들에게도 우주의 모든 만물에도 선포하는 것이 됩니다
    떡을 나누기전에 잔을 나누기전에 떡과 잔을 들고서 내 몸 내 피라 하신 의미를 공중앞에서 선포해야합니다 그리하여 고전 11장 27절 이하에서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이러한 일을 막는 역활을 합니다 즉 이러한 의미를 즉 죽으심의 의미를 알고 먹으며 마셔야 합니다
    먹고 마시며 (유월절 음식처럼 결코 배부르게 먹는 것이 아님을 사도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나를 기념하라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죽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 안에는 주님의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구약에서는 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속건제의 모습을 공부해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이것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첫째 하나님을 만족 하나님의 모든 요구 충족 시키신것입니다 둘째 세상 죄 사람이 모든 죄를 사하시고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신것입니다
    세상 죄 사람의 죄 즉 나의 죄를 주님께서 전부다 감당하시고 맡으시고 우리가 받아야 하는 죄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벧전 3:18절 말씀을 보고 또 보고 반복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자를 대신하여서
    자신이 의인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리새인 처럼 그렇다면 이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새리처럼 나는 죄인 이라고 고백을 하셔야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죄인인지 날때부터 죄악중에 출생했읍니다 라고 다윗이 고백처럼 나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부패한 존재인지 깊이 알면 알수록 주님의 은혜가 더욱 넘칠겁니다
    죄가 더한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라는 말씀
    흠도 점도 없으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나타내시고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도저히 알수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정말이지 누추한 곳에 누추한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꺼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육신으로 우리랑 똑같은 방법으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출산하는 방법으로 완전한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의인으로서 불의한자를 대신하셔서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2장 42절 날마다 행해졌던 일 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2절 뿐만 아니라 복음전파 재물 나누는것 기도하는것 날마다 모이는 것 말이지요 이것이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들 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6절 이하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에서 드로아까지 배로 가는데 5일 걸렸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7일을 기다렸다가 주의만찬과 설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떡을 떼러고 모였다고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주된 목적이 있는데요 떡을 떼기 위하여 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도 모이고 교제하기 (오늘날 일방적인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님 쌍방적인 교제 혼자가 아닌 두세 명 허용)위해서 모임
    성령님께서 5일가 7일을 기록하셨습니다 이 점을 유념해서 보셔야 합니다 닷새 만에 기록을 통해서 바울은 좀 아쉬어했지 않았나 라는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드로아에 월요일에 도착을 한겁니다 목.금.토.일.월.5일을 배로 이동한것입니다 즉 주의 만찬 행하는 일요일 하루를 지나서요 바쁜 일정을 생각하면 아쉬었겠지요 그러나 바울 일행은 7일을 머무릅니다 왜냐하면 드로아의 성도들과 동행하는 동역자들과 떡을 떼기 위해서요 ***** (그냥 식사 자리가 아니고 주님의 분부하심 죽으심을 기억하는 떡을 떼기 위함 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해서 7일 입니다
    즉 주님께서 부활하신날 맟추어서 주의날 주일날에 맟추어서 즉 일요일에 주님의 만찬을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예식을 행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여행중에 주의날 이라고 해서 주의만찬을 하지 않음을 성령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가족끼리 여행가서 캠핑가서 해도 무방한거 아니냐는 모습에 아니라고 쐐기를 박으신것입니다
    그 당시와 오늘날은 말로 할수 없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요일은 모든 사람들 전부다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쉬는날 입니다 그러므로 일요일마다 주님의 만찬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을 못할 조건은 없지 않습니까

  • @user-bb6dp3ke5v
    @user-bb6dp3ke5v 9 місяців тому +6

    오늘 내용이 좀 애매한 것 같은데..성찬식을 매주 거행하라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초대교회처럼 애찬 즉 식사나눔을 하라는 건가요?
    만일 성찬식을 매주 거행하라는 거라면.. 그리고 성찬식을 진짜 식사인 것처럼 상상 허라는 것이라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차라리 진짜 식사면 식사지... 성찬을 식사처럼 생각하면서 하러???

    • @brilliant9780
      @brilliant9780 9 місяців тому +10

      (1) 칼빈도 그의 성찬 신학에 따르면 매 주 성찬을 시행할 것을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물론 칼빈이 목회하던 당시에도 고착된 신앙관으로 인해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칼빈도 한 발 물러나 격 주 혹은 한 달에 한 번 시행하는 것 밖에 못했지만,
      성찬은 매 주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에 말씀과 함께 꼭 시행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맞습니다.
      (2)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떡과 잔을 나누시는 장면을 보세요. 그 자리는 식사의 자리입니다. 주님은 식사의 자리에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빈부에 따른 격차로 인해 부작용이 많아지는 바람에(고전 11: 18~22, 33~34) A.D. 220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사람들이 임의로 애찬과 성찬을 구분시키게
      되었습니다만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또 초대 교회의 성경적인 원형으로서 성찬은 식사가 맞다고 봅니다.
      역사적 배경과 상황, 여건을 따지느라 간소화, 축소화 시킨 현재의 고착화 된 성찬식 모습이 오히려 성경 그 자체에서 말하는 성찬의 모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개혁 교회는 언제든 성경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

    • @davidcheong5348
      @davidcheong5348 9 місяців тому +4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기존 교회가 하는 성찬의 분위기가 예수님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런 방식으로는 성찬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자기 존재를 돌아보는 것에도 그 목적이 있지만, 그 죽음의 도그마를 넘어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을 축제로써 받아들이는 성찬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 아닐까요?

    • @user-bb6dp3ke5v
      @user-bb6dp3ke5v 9 місяців тому +6

      ​@@seonminjeon1332
      예수님이 거행하셨던 성찬은 진짜 식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찬이 의식처럼 됐잖아요. 그런데, 그 의식을 행하면서 진짜 식사처럼 생각하라는 게 웃기다는 거죠. 차라리, 예수님이 하셨던 것 처럼, 함께 식사를 하라고 하든지, 아니면, 떡과 포도주는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과 보혈의 의미다라고 하든지, 이 둘 중의 하나여야지.. 그 떡과 포도주의 모형을 갖다 놓고 진짜 식사라고 생걱하라는 것은... 참.. 그런 교회는 별로 안가고 싶네요.. 오히려..

    • @sarang775
      @sarang775 9 місяців тому +2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곧 성체를 모십니다 "나의 몸이다 받아 먹어라 너희를 위하여 흘릴 피다 "하시면서 새 계약을 맺으신 다음 (루카22,20)그 말씀을 성취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묻히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몸을 이제 성령의 힘으로 사제의 손 끝에서 미사안에서 실체 변환을 통해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환시키시어 그것을 우리의 영적 음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이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라고 당신의 희생 제사를 영원히 사람들에게 기념하도록 제현할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미사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과 가톨릭 교회가 맺은 신약입니다

    • @sarang775
      @sarang775 9 місяців тому

      십자가의 죽으심이 희생 제사가 되려면 그분의 몸과 피를 성체성혈로 우리가 모셔야 하지만 개신교는 사제가 없으므로 이것을 거행할수가 없게 되었고 사도전승을 거부하면서 사도들의 안수도 끊어져 사도계승도 끊어져 버렸습니다 ❤개신교는 이 신약이 없습니다 성체를 모시지 못하니까 그냥 상징이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