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때문에 집착을 하니 오온은 내가 아니다 라고 초전법륜 설법하셨죠. 전 이렇게 이해합니다 제법무아는 내가없다가 아니라 내가 아니다 덧붙이자면 이몸은 내가아니다 내마음은 내가 아니다 이걸 인식하는 주체 이건 늘 나에게 있어왔다 즉 알아차림 이것이 참나 참나가 있어야 열반,해탈을 함 나라는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열반을하겠습니까 주체가 있어야 열반을 하죠
세상 모두는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색에도 빠지지 말고 공에도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하는 중도이며 연기입니다. 만약 '색즉시공'만 설하셨다면 모든 것이 공이겠지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공에도 빠지지 말라며 다음 구절에 '공즉시색'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해 공에 빠져 모든 것이 공이니 허무하다고 느끼거나 ' 이 세상모든 것이 그저 공이니 마음내지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마음공부가 최고다 '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사람에게 '응당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에서 머문바 없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나 사실은 '마음을 내라'가 핵심입니다. 화를 내야할 때는 화를 내야 되며 참지 말아야 할때는 참아서는 안되며 욕심을 부려야할 때는 욕심을 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마음을 낼 때는 모든 것이 내뜻대로만 되야 한다는 그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공부하면서 공에 빠져 마음을 내는 것이 잘못된 것 처럼 생각해 참는 것만이 수행인 듯이 살아가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맞습니다. 인욕바라밀도 큰 수행입니다. 그러나 참는 것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 (())
무아는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자아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또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석가는 자아가 욕망에서 탐욕을 불러 일으켜 괴로움이 느껴진다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러한 자신의 감정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면 욕망에서 이어지는 많은 문제들 또한 극복 할 수 있는 지혜라 여기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치명적인 문제들이 다수 발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는 인간은 생각을 안한다고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마음조차 넘어서는 세상의 존재에 있었다 세상이 존재하여 집이 필요하고 먹을 것이 필요하고 옷이 필요하였다 같은 이유로 생식기가 존재해서 성욕도 필요하였다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은 멸망할 것이기에 그것은 신체의 구조상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여겨 중생이 그와 같이 모두 변할 수 있다 믿는 것은 사실상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한 것이다 시도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람은 석가가 생각한 것과 같이 그렇게 변할 수 없다 마음이 우주를 만든다 생각하였지만 실제 생각하는 마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하는 것이 바로 세계였다 그러하기에 성인이 되고자 했던 이는 다시 중생으로 내려왔고 처음 부처의 마음을 먹었던 이도 다시 변하게 되었다 전쟁은 계속 일어났고 다툼과 살인 갈등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 커졌으며 세상은 엉망이 되었다 이것은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기에 석가의 도로 인하여 세상이 구제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악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문제이다 석가의 도로는 중생을 구제하지 못한다 중생이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은 수행자또한 그것이 답이나 진리 또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처음부터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되물어 올라가게 되면 결국에는 석가는 처음부터 단한순간도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부처에 오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석가는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석가의 말을 따랐던 이또한 성불을 하거나 열반에 들지 못하였다 다만 그렇게 도달하였다 착각만 하였다 성장하였다 생각한 이는 실제로는 다시 태어나 또 석가의 법을 익히고 그 생에서도 깨달았다 여기며 제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삼생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석가의 말을 듣고 자신은 깨달았다 여기며 매 생을 그렇게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삶만 반복하고 있었을뿐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세번째 문제는 석가의 생각보다 더 좋은 방법이 존재하였다는데 있다 고통에 집착을 하는 것이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세상을 망치는 것이 되지 않았다 그릇을 깨뜨렸다 - 오늘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 석가는 이것을 미혹이라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의 일이었다 그릇을 깨뜨렸다 - 안쓰던 저금통을 깰 수 있잖아 오히려 잘됐네 이번 기회에 더 이쁜 그릇을 장만해 볼까 ? 교통사고가 났다 - 나에게 왜 이런 재수없는 일이 일어나지 ? 석가는 이것을 미혹이라 말하였다 교통사고가 났다 - 안그래도 생각할 것이 많았는데 이번기회에 차분히 정리 할 수 있잖아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야 너무 좋은데 ? 자아를 느끼는 것에 문제가 되지도 집착을 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다른 이유는 자신을 부정적인 인격으로 그려 매달리는 것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는 것이 자존심이고 자존감은 그것을 긍정적인 결과로 그려내면서 자신을 그대로 유지해도 괜찮기에 그것은 모든이들이 높게 보는 긍지로써 바라본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 그것은 미혹이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 내가 저 지갑과 같이 잘못 집착한 것은 잘못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지 ? 내가 석가의 말을 붙들고 있던 것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정말 맞는 것인가 ? 한번 깊게 생각하여 보자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나아가는 의미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석가의 집착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은 당연히 그 이상의 나아감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더 가지 말라 하였기 때문이다 석가의 집착하지 말자는 말은 실제 중생에게 보편적으로 통용 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고 그의 생각은 세상을 빛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일부러 피해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진리로써 높이 올라갈 수도 없었고 그것을 최고 진리라 여기는 이들도 같이 주저앉아 내려 올 수 밖에 없는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낮은 수준의 개념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만들어져서는 안되는 종교이고 가르침이었다 그리하여 더 나아갈 수 있는 이도 나아가지 못하고 낮은 곳에서 함께 머무르며 다같이 패망의 길을 걷고 말았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깨달았다 여기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매생마다 그렇게 착각하며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어떤이는 길게는 천년 이상을 그렇게 제자리 걸음하고 매생마다 석가의 말을 돌이키며 자신이 나아갔다 여기었다 지금 나와 같이 새로운 개념으로 빛을 만들 수 있어야 그것이 열반을 말한다 너희의 삶은 매 생마다 석가의 개념을 최고점으로 인식하여 더 나아가기는 커녕 항상 제자리에 있는 답을 무수히 반복하여 왔다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였고 중생도 구제하지 못하였으며 세상또한 바꾸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석가의 깨달음이 실제의 깨달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진리라 여기었지만 자신이 벗어나는 것에 미혹이 당해 옳고 그른 것을 온전히 분간하지 못하였다 스스로는 깨달은자라 생각하였다 자신에게는 여러개의 눈이 있다 생각하고 말하였다 실제로는 눈앞에 있어도 발밑에 있어도 코앞에 있어도 들으라 이야기를 해도 귀를 막았고 보여주려 해도 눈을 닫아 버렸다 이것은 미혹이라 말하면서 번개가 치자 제자들이 동요하였다 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 있던 석가는 눈을 감고 말하였다 동요하지 말아라 저것은 미혹이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것은 놀라운 발견이 될 수도 있다 저 번개와 같이 천둥과 같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다 함께 협력하자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어떤 큰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석가의 사상은 나아감을 포기한 것과 같기에 눈앞에서 신이 진리를 알려줘도 그가 그것을 알기는 어려웠다 눈과 귀를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신적 개념을 포기하고 접근한 것은 첫번째 단추부터 잘못 꿰맨 것이었다 그것을 네번째 단추에 꿰매 다 이루었다 여기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석가는 자신의 문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예수였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관세음은 초림의 예수를 말하고 아미타는 재림의 예수를 말한다 석가 스스로 불교의 하느님을 믿으라 말하였던 것은 재림의 예수를 믿으라 말하였던 것과 같다 그것이 미륵이다
현대과학에서도 자아란 만들어 지는 것~증명됨 자아 정체성 ego-identity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가지게 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자아 정체성은 자아 개념이 보다 발달하여 구체적인 의식으로 자신의 독특성을 자각한 상태를 말한다. 자아 정체성은 대인관계, 역할, 목표, 가치 및 이념들에 있어서 자기가 지니는 고유성에 대한 자각과 이에 부합하는 자기 통합성과 일관성을 견지해 나가려는 의식, 무의식의 노력이다. 청소년기에는 자기의 주관적인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최초로 질문을 한다는 점에서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노력은 청소년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힐 만하다.
무아는 고정된 절대적인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물의 색깔은 뭘까요 투명한가 빛이 나는가 검은가 푸른가 하면 누구도 답을 할수없습니다 여기서 물은 푸르다고하며 내가 봤다 나는 물이 푸른 것을 분명 봤다 지금 이 물이 푸르지 않음은 이것은 사실 물이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속임수를 쓴것이다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를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역시나 만물이 이와같이 고정불변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외부적 조건과 관계 맺으며 상대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음에 이를 연기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고 당연히 고정불변한 절대적인 실체는 없기에 무아인 것이지요 내가 본 물이 푸르렇기에 푸르다고 인식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기에 고정불변하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나 어리석은 일 이런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으나 변화하는 것은 있는데 그것은 오직 업 우리는 연기에 따라 현생의 죽음이후 몸과 마음은 사라지고 오직 업만 남아 연기에 따라 윤회하는 굴레에 갇힌것 대중들은 본인이 윤회하면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날거라 믿지만 부처는 인간으로 환생할 확률을 맹구우목에 비유했지요 나라는 존재의 착각과 더불어 다시 인간으로 윤회할거라는 큰 착각에 빠지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것도 모르고 그저 탐진치의 욕망에 사로잡혀 수많은 업을 짓고 인간의 세상에 윤회하면 엄청난게 긴 시간동안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굴레에 빠지고 이를 안 부처는 부디 인간으로 태어난 현생이 얼마나 긴시간의 선업의 결과인지를 잘 인식하고 이 기회를 부디 놓치지말고 해탈의 길로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라는것
부처님께서는 무아를 설하셨지만 현재 불교에서는 참나, 본래면목, 주인공 등 여러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아란 말 그대로 '나'가 없는데 현재 불교에서는 참나, 진정한 '나'를 말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낙처를 보면 무아랑 참나는 다른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와 중도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을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늘에는 본시 미륵과 관세음 아미타가 따로 있지 않다 그 세개의 명칭은 하나의 존재를 말하는데 그것이 시바신이다 바로 여호와를 의미한다 전륜성왕 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로써 모든 부처의 아버지를 의미한다 내안의 청정함이라는 본래불의 의미도 잘못 된 것이다 아기는 귀여워 그 자체로 천사라 생각이 들겠지만 아기는 감정이 매우 극단적이라 웃고 짜증내는 감정을 수시로 바꾸어 나간다 포옹하거나 쓰다듬어 주거나 입을 맞추거나 맛있는 음식을 주거나 목마를 태워주거나 그러한 단어가 이야기하는 공통의 모습은 즐거움이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 그러한 성격이 반영되어 있고 그러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면 누구나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굶거나 장난감을 사주지 않거나 모습이 흉하거나 이러한 것을 경험한다면 아기는 극도로 짜증을 내고 괴로워 할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면 아기는 매우 난폭할 것이다 웃을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모아 놓으면 당연히 웃을 수 밖에 없고 울을 수 밖에 없는 감정의 단어들을 골라 모으면 그 안에서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본래불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같은 이유로 사람은 본래 마신이란 말도 존재해야 한다 좋은것에 좋아하는 것은 본래 부처이고 싫은 것에 괴로워 하는 것은 미혹이 성립되지 않는다 사람의 본래 존재함도 마의 화신이 되야 하나 그리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없이 모든 존재함에 영향력이 있는 가운데 특정한 좋은 것을 모아 놓고 보니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내안의 부처 청정함과 같이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재 자신의 생각으로 그러한 감정을 창조하여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다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지금 부정적인 것을 느껴 자신이 불행을 한다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것은 본래 마신이 아니라 현재 부정적인 것을 창조하여 지금 기분을 느낀 것이다 본래 불도 현재의 내가 좋은 것에서 감정을 창조하고 그것을 과거로 이어져 착각해서 보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과 인격은 현재의 내가 수시로 나의 의지로 창조하여 이어 가는 것이다 평소에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사람이 직업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정장을 입고 다니면 자신이 거울을 보았을때 많은 시간이 흘러 신사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것이 처음의 모습은 아니나 그런 만들어진 이미지를 더하고 더하여 자신의 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에 가장 익숙한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자아로써 바라본다 하지만 이것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처는 없다 자신이 현재에서 미래로 그림을 그려 나가며 계획한대로 추진하고 진행해 나가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즉 부처는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을 통해 미래에 만들어 지는 것이다 석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아갈 수 없는 선에 있다 그냥 보이면 선한 일을 해야지와 계획을 하고 접근하는 선은 결코 같지 않다 선한 일을 해야지 마음 먹은 이에게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자신이 도울 사람이 보이지 않아 집에 들어갈 것이지만 오늘 동네의 쓰레기를 모두 줍고 집에 가겠다 말하는 이는 목표에 도달할때까지 그로부터 세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쓰레기를 줍고 결과가 만들어질때 비로소 집에 들어갈 것이다 이 둘은 같지 않다 이 나라에서는 매년 수천명이 고독사로 사망하고 교통사고로 그와 비슷한 숫자가 사망을 하며 낙태 추정사망자수는 150 만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찾았을때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둠이 존재하나 집착을 하지 않으면 결코 이것을 알거나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이 불교가 이 많은 문제에 대해서 전면에서 나서 해결하지 않는 이유이다 석가의 절학으로는 앞서 나가는 선으로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착을 하여야 나갈 수 있는 선을 말한다 일체유심조 마음을 먹어 부처가 되는 일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집착을 하여 현재를 뛰어넘는 노력을 해야 유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주일의 부처는 한번 마음 먹은 부처의 만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년의 부처는 일주일의 부처의 일억배의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십년의 부처는 백경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게 화엄경과 같은 경전은 실제로는 세상을 전혀 구제해 주지 못하는 쓰레기 수준의 거론할 가치가 없는 개념낮은 경서이지만 중생은 그런것을 구분 할 수 있는 눈이 없다 그것은 너희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석가가 시작부터 잘못 생각한 것을 최고의 진리라 여기었던 것에 비판하거나 의심할 수 있는 눈조차 없었다 그래서 수천년을 최고라 여기며 살아왔다 나는 차라리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에 세상을 멸망에 가깝게 죽인다는 그 적그리스도 세상에 나오기를 바랬다 영성이 탁월한 자마저 진리로 미혹하게 만들어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레벨은 커녕 예언 한마디만 해도 중생들은 그것을 진리라 여기고 우루루 몰려 다닌다 적어도 석가의 도를 깨부술 수 있을 정도의 지혜는 이야기 하는 이들이 여럿 나올 수 있을거라 여기었다 그것은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한것이다 만년이 흘러도 십만년이 흘러도 수도자가 백만년을 수행해도 그들은 지금 나와 같이 말을 할 수 없고 중생도 그 개념을 깨부수고 발전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석가가 사실 나의 말은 모두다 거짓이었고 훗날 나의 도를 모조리 부셔 버릴 수 있는 자가 다음의 부처라 말하였다면 석가의 논리는 아주 짧은 시간안에 간단히 부서졌을 것이다 깨부수려 도전하는데 집착을 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유능한 인재들은 많았을텐데 나아가려는 움직임은 있었을 터인데 겐지스강의 모래알 만큼 많은 명석한 인재들이 있었을텐데 석가를 최고점이라 인식하면서 세상을 박살내버릴 혁명적인 개념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하나를 꼽는다면 제바달다를 꼽을 수 있다 일생을 다하여 석가를 이기고자 하였던 그가 바로 용수였고 그리고 마침내 지장보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지장보살에게 가르침을 준것이 바로 나 예수였다 너희는 미륵이 온다 하였을때 그 옆에 지장보살이 동행하는 그림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아미타와 그와의 연결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여 더 나아갈 생각이 없는 것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장 최고의 선을 선조차 뛰어넘는 이상적인 선을 그려 나가는 이와 같은 도의 경지에 결코 도달 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무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고귀하게 여기고 더 높은 선을 찾아 자신을 새롭게 그리고 창조하는 것은 바로 올바른 집착에 있다 그것이 유아 이고 유명이다 자아가 있어 세상을 망치는 것인가 ? 아니 자아가 있으나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전환하지 못하여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생은 결코 자신의 자아를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석가의 도는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단 한번도 성공을 한적이 없는 실패의 도를 의미한다 자존심의 붙듬이 아니라 자존감의 덧붙임이 유아와 유상과 유명이 바로 불멸의 도 유상정 등정각이다 나는 이미 중생들에게 약속을 하였다 석가는 부처에 이른적이 없고 깨달음에 도달한 적도 없지만 내가 다시 보내는 석가는 정말 괜찮은 도를 세상에 펼칠 올바른 부처님이라고 고통과 시련은 그것을 빛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안다면 더이상 괴로움이 되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아 괴로움이 아니라 빛으로 만들어 영혼이 발전 할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괴로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같지 않다 되다 만 개념 애초에 도달 하지도 못한 것을 진리라 이야기 하지 말아라 그 낮은 것 조차 수천년조차 깨부수지 못하였음을 부끄러워 하여라 나 예수는 빛이라 말하였다 관세음은 빛을 말한다 서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너희가 다르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재림의 나는 미혹조차 빛과 사랑으로 만들라 이야기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해탈의 경지 올바르게 부처에 도달한 광각성불 이다
형성된 모든것 즉 연기에 의거 나타난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한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조건에 따라 변화기 때문입니다 苦는 한역과정에서 좀 애매해졌다고 봅니다 존재물은 누구든 무엇이든 老病死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환경정 본태적으로 고의 세계에 연기로 잠시 존재하고 있다면 무상 무아를 깨닿게 되어야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닌다가 아닐까요?
무아 ㅎㅎ 생각이나 언어문자 세우지않으면, 지금 이대로 집착없는 이마음을 무아 라고 이름하지만, 이렇게 알아듣는 수준이면 이걸로 ~ 근데... 좀더 자비를 내어 설명해보자면, 음~ 지금 분명히 자신이존재 하는데, 무엇이 진정한 영원한 "나,라고 할게 없으니 무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줄 아는 이것이 진아 라 이름하지요. 힌두교니 불교니 상관없이...말이디^^
나란 것이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나가 없다고 쇄뇌하는 것은 그냥 '없는 척' 하는 것이지 진실로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Soul이 생긴 지가 5억년이 넘었는데 그러면 무아가 맞느냐 유아가 맞느냐? 만약 나가 이순간 존재하는게 의심스러우면 귀싸대기를 한대 맞아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aufrhd899 진짜 니와 에고의 관계는? 에고는 마음 상태이지만 그 에고를 가진 존재 자체는 우주에 유일한 존재로서 현실에 실재하는데, 그 존재가 열반에 든다 하면 그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열반에 들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우주에 존재하는가.
무아는 고정된 나의 실체 아트만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개념이지요 -- 고정된 나란ㄴ 실체는 없다고 하면 윤회라든가 카르마 라는것이 모두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물질적 하드웨어가 해체 분해되고 영혼 정신 에테르체 조차도 모두 리셋된후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생에 태어나는 것은 절대로 내가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전생의 업으로 인해 다음생에 영향 받는 것도 아니고 윤회라는 것은 애초 성립할수 없게 되지요 이번생은 단 한번 뿐이고 선업과 악업도 이번생으로 종결되는 것이고 윤회를 할 주체가 없는 것이니 단지 우리는 1회용 생을 살다 버려지는 것입니다. 이번생은 소중하고 중요하며 한편 살아있는 순간까지만 이번생이 중요하다는 설명이 됩니다. 장황한 설명 말고 정확히 설명해주시는 분이 없더군요 기껏한다는 설명이 고정된 나라는실체가 없다는 설명을 하더군요 그렇다면그것은 변아 이지 무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변아를 왜 무아와 동일시 하는 지도 모르겠더군요 전생의 선업과 악업도 모두 지워진 내게 까르마를 운운하며 벌을 받고 복을 받는 다는 것은 괴이한 논리가 되니까요 저장기록이 모두지워진 컴퓨터의 하드웨어처럼 그 컴퓨터는 이미 내 컴퓨터가 아닙니다. 그냥 새로운 컴퓨터이지요
오호~ 여태까지 들었던 무아의 내용중애 가장 정확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고정됨 없다는
무아이지만
나를 끌고 다니는 참나는 있지요.
마음.
무아의 참 뜻은 아트만 즉 참나는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참나가 있다면 유상이고 유아가 될테니.
오온때문에 집착을 하니 오온은 내가 아니다 라고 초전법륜 설법하셨죠. 전 이렇게 이해합니다
제법무아는 내가없다가 아니라 내가 아니다
덧붙이자면 이몸은 내가아니다 내마음은 내가 아니다
이걸 인식하는 주체 이건 늘 나에게 있어왔다 즉 알아차림 이것이 참나
참나가 있어야 열반,해탈을 함
나라는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열반을하겠습니까 주체가 있어야 열반을 하죠
@리틀수
다원
옳으십니다.
@@느그서장-l6v
에구 그놈에 주체타령. 김일성주체사상입니까?
주체가 없다는 뜻에서 무아이지요.
@@Letitbe-w3s ㅎㅎ 그럼 무엇이 윤회하고 무엇이 열반합니까? 나라는것이 없는 아무 의식이 없으면 열반입니까? 정신을 잃은사람이 열반합니까? ㅎㅎ
@@느그서장-l6v
불교공부 헛하셨네요. 초기경전에 갈애를 조건으로 괴로움이 일어난다라고 나옵니다.
갈애가 윤회의 원인(집성제)입니다.
갈애를 소멸하면 열반합니다 (멸성제) ㅎㅎ
세상모두가 공이다
무 란뜻 실체없는 번뇌에
사로잡히지말고
마음수행에 힘쓰라
남을 이롭게하는것 돕는것
존경하는것 고마워하는것
용서하는것 보고도 못본척
하는것 과같은 심성을 배우라는것 그럼에도
참지못하면 배움은 순간에
허물어진다
우리는 사는동안 열심히
공부하다 가는것이다
보시받고 업을짓지말고
버릇없는 수행자로 부터 자신을지켜라
세상 모두는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색에도 빠지지 말고 공에도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하는 중도이며 연기입니다. 만약 '색즉시공'만 설하셨다면 모든 것이 공이겠지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공에도 빠지지 말라며 다음 구절에 '공즉시색'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해 공에 빠져 모든 것이 공이니 허무하다고 느끼거나 ' 이 세상모든 것이 그저 공이니 마음내지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마음공부가 최고다 '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사람에게 '응당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에서 머문바 없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나 사실은 '마음을 내라'가 핵심입니다. 화를 내야할 때는 화를 내야 되며 참지 말아야 할때는 참아서는 안되며 욕심을 부려야할 때는 욕심을 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마음을 낼 때는 모든 것이 내뜻대로만 되야 한다는 그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공부하면서 공에 빠져 마음을 내는 것이 잘못된 것 처럼 생각해 참는 것만이 수행인 듯이 살아가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맞습니다. 인욕바라밀도 큰 수행입니다. 그러나 참는 것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 (())
@@johnlee8358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인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유익한 결과를 얻을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삶을 현실에서 도피하도록 선동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명상으로는 절대 깨달을수없다
명상으로는 각성을 할수는 있겠지만 영원한 자유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무아란 우리가 연기에 의하여 윤회하므로 무아라고합니다 유아라면 자유자재로 되어야하는데 실제는 그렇지못하고 연따라 생멸하고있기에 무아라고하였습니다
무아는 나를
버린다는 것을
말 합니다.
내가
무아지경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으면
또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안씁니다.
죽은 자와
산자가 죽은 자
와 같이 삼매경에
이르렀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 입니다.
무아는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자아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또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석가는 자아가 욕망에서 탐욕을 불러 일으켜 괴로움이 느껴진다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러한 자신의 감정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면 욕망에서 이어지는
많은 문제들 또한 극복 할 수 있는 지혜라 여기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치명적인 문제들이 다수 발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는 인간은 생각을 안한다고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마음조차 넘어서는
세상의 존재에 있었다
세상이 존재하여 집이 필요하고 먹을 것이 필요하고 옷이 필요하였다
같은 이유로 생식기가 존재해서 성욕도 필요하였다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은 멸망할 것이기에
그것은 신체의 구조상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여겨 중생이 그와 같이 모두 변할 수 있다 믿는 것은
사실상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한 것이다 시도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람은 석가가 생각한 것과 같이
그렇게 변할 수 없다
마음이 우주를 만든다 생각하였지만 실제 생각하는 마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하는 것이 바로 세계였다
그러하기에 성인이 되고자 했던 이는 다시 중생으로 내려왔고 처음 부처의 마음을 먹었던 이도 다시 변하게 되었다
전쟁은 계속 일어났고 다툼과 살인 갈등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 커졌으며 세상은 엉망이 되었다
이것은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기에 석가의 도로 인하여 세상이 구제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악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문제이다
석가의 도로는 중생을 구제하지 못한다 중생이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은 수행자또한 그것이 답이나 진리 또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처음부터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되물어 올라가게 되면 결국에는 석가는 처음부터 단한순간도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부처에 오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석가는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석가의 말을 따랐던 이또한 성불을 하거나 열반에 들지 못하였다 다만 그렇게 도달하였다
착각만 하였다 성장하였다 생각한 이는 실제로는 다시 태어나 또 석가의 법을 익히고 그 생에서도 깨달았다 여기며 제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삼생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석가의 말을 듣고 자신은 깨달았다 여기며 매 생을 그렇게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삶만 반복하고 있었을뿐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세번째 문제는 석가의 생각보다 더 좋은 방법이 존재하였다는데 있다
고통에 집착을 하는 것이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세상을 망치는 것이 되지 않았다
그릇을 깨뜨렸다 - 오늘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 석가는 이것을 미혹이라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의 일이었다
그릇을 깨뜨렸다 - 안쓰던 저금통을 깰 수 있잖아 오히려 잘됐네 이번 기회에 더 이쁜 그릇을 장만해 볼까 ?
교통사고가 났다 - 나에게 왜 이런 재수없는 일이 일어나지 ? 석가는 이것을 미혹이라 말하였다
교통사고가 났다 - 안그래도 생각할 것이 많았는데 이번기회에 차분히 정리 할 수 있잖아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야 너무 좋은데 ?
자아를 느끼는 것에 문제가 되지도 집착을 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다른 이유는
자신을 부정적인 인격으로 그려 매달리는 것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는 것이 자존심이고
자존감은 그것을 긍정적인 결과로 그려내면서 자신을 그대로 유지해도 괜찮기에 그것은
모든이들이 높게 보는 긍지로써 바라본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 그것은 미혹이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 내가 저 지갑과 같이 잘못 집착한 것은 잘못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지 ?
내가 석가의 말을 붙들고 있던 것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정말 맞는 것인가 ? 한번 깊게 생각하여 보자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나아가는 의미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석가의 집착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은
당연히 그 이상의 나아감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더 가지 말라 하였기 때문이다
석가의 집착하지 말자는 말은 실제 중생에게 보편적으로 통용 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고 그의 생각은 세상을
빛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일부러 피해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진리로써 높이 올라갈 수도 없었고 그것을 최고 진리라 여기는 이들도 같이 주저앉아 내려 올 수 밖에 없는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낮은 수준의 개념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만들어져서는 안되는 종교이고 가르침이었다 그리하여 더 나아갈 수 있는 이도 나아가지 못하고
낮은 곳에서 함께 머무르며 다같이 패망의 길을 걷고 말았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깨달았다 여기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매생마다 그렇게 착각하며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어떤이는 길게는 천년 이상을 그렇게 제자리 걸음하고 매생마다 석가의 말을 돌이키며 자신이 나아갔다 여기었다
지금 나와 같이 새로운 개념으로 빛을 만들 수 있어야 그것이 열반을 말한다
너희의 삶은 매 생마다 석가의 개념을 최고점으로 인식하여 더 나아가기는 커녕 항상 제자리에 있는 답을 무수히
반복하여 왔다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였고 중생도 구제하지 못하였으며 세상또한 바꾸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석가의 깨달음이 실제의 깨달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진리라 여기었지만 자신이 벗어나는 것에 미혹이 당해 옳고 그른 것을 온전히 분간하지 못하였다
스스로는 깨달은자라 생각하였다
자신에게는 여러개의 눈이 있다 생각하고 말하였다
실제로는 눈앞에 있어도 발밑에 있어도 코앞에 있어도 들으라 이야기를 해도 귀를 막았고
보여주려 해도 눈을 닫아 버렸다
이것은 미혹이라 말하면서
번개가 치자 제자들이 동요하였다 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 있던 석가는 눈을 감고 말하였다
동요하지 말아라 저것은 미혹이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것은 놀라운 발견이 될 수도 있다
저 번개와 같이 천둥과 같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다 함께 협력하자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어떤 큰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석가의 사상은 나아감을 포기한 것과 같기에 눈앞에서 신이 진리를 알려줘도
그가 그것을 알기는 어려웠다 눈과 귀를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신적 개념을 포기하고 접근한 것은 첫번째 단추부터 잘못 꿰맨 것이었다 그것을 네번째 단추에 꿰매
다 이루었다 여기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석가는 자신의 문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예수였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관세음은 초림의 예수를 말하고 아미타는 재림의 예수를 말한다
석가 스스로 불교의 하느님을 믿으라 말하였던 것은 재림의 예수를 믿으라 말하였던 것과 같다
그것이 미륵이다
현대과학에서도 자아란 만들어 지는 것~증명됨
자아 정체성 ego-identity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가지게 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자아 정체성은 자아 개념이 보다 발달하여 구체적인 의식으로 자신의 독특성을 자각한 상태를 말한다.
자아 정체성은 대인관계, 역할, 목표, 가치 및 이념들에 있어서
자기가 지니는 고유성에 대한 자각과 이에 부합하는 자기 통합성과 일관성을 견지해 나가려는 의식, 무의식의 노력이다.
청소년기에는 자기의 주관적인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최초로 질문을 한다는 점에서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노력은 청소년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힐 만하다.
우리는 수없는 윤회를 한다
지금 순간의 나란
단지 영혼이 이 몸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또한 몸의 수명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또다른 몸에 영혼이 머물면 또다른 나가 되는것이다
즉 무아...영원한 나가 아니라 잠시 머물러 갈 뿐이다(몸이란 매개체에)
자아(아트만)란 무엇이고,
무아(아나트만)란 무엇인지 다시한번 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무아는 고정된 절대적인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물의 색깔은 뭘까요 투명한가 빛이 나는가 검은가 푸른가 하면 누구도 답을 할수없습니다
여기서 물은 푸르다고하며 내가 봤다 나는 물이 푸른 것을 분명 봤다 지금 이 물이 푸르지 않음은 이것은 사실 물이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속임수를 쓴것이다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를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역시나 만물이 이와같이 고정불변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외부적 조건과 관계 맺으며 상대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음에
이를 연기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고 당연히 고정불변한 절대적인 실체는 없기에 무아인 것이지요
내가 본 물이 푸르렇기에 푸르다고 인식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기에 고정불변하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나 어리석은 일
이런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으나 변화하는 것은 있는데 그것은 오직 업
우리는 연기에 따라 현생의 죽음이후 몸과 마음은 사라지고 오직 업만 남아 연기에 따라 윤회하는 굴레에 갇힌것
대중들은 본인이 윤회하면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날거라 믿지만
부처는 인간으로 환생할 확률을 맹구우목에 비유했지요
나라는 존재의 착각과 더불어 다시 인간으로 윤회할거라는 큰 착각에 빠지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것도 모르고 그저 탐진치의 욕망에 사로잡혀 수많은 업을 짓고 인간의 세상에 윤회하면 엄청난게 긴 시간동안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굴레에 빠지고 이를 안 부처는 부디 인간으로 태어난 현생이 얼마나 긴시간의 선업의 결과인지를 잘 인식하고
이 기회를 부디 놓치지말고 해탈의 길로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라는것
부처님께서는 무아를 설하셨지만 현재 불교에서는 참나, 본래면목, 주인공 등 여러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아란 말 그대로 '나'가 없는데 현재 불교에서는 참나, 진정한 '나'를 말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낙처를 보면 무아랑 참나는 다른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와 중도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을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참나, 본래면목, 주인공 등은 힌두교가르침입니다. 초기불교로 공부하세요.
하늘에는 본시 미륵과 관세음 아미타가 따로 있지 않다 그 세개의 명칭은 하나의 존재를 말하는데
그것이 시바신이다 바로 여호와를 의미한다
전륜성왕 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로써 모든 부처의 아버지를 의미한다
내안의 청정함이라는 본래불의 의미도 잘못 된 것이다
아기는 귀여워 그 자체로 천사라 생각이 들겠지만
아기는 감정이 매우 극단적이라 웃고 짜증내는 감정을
수시로 바꾸어 나간다
포옹하거나 쓰다듬어 주거나 입을 맞추거나 맛있는 음식을 주거나
목마를 태워주거나 그러한 단어가 이야기하는 공통의 모습은 즐거움이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 그러한 성격이 반영되어 있고 그러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면
누구나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굶거나 장난감을 사주지 않거나 모습이 흉하거나 이러한 것을 경험한다면
아기는 극도로 짜증을 내고 괴로워 할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면 아기는 매우 난폭할 것이다
웃을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모아 놓으면 당연히 웃을 수 밖에 없고
울을 수 밖에 없는 감정의 단어들을 골라 모으면 그 안에서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본래불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같은 이유로
사람은 본래 마신이란 말도 존재해야 한다
좋은것에 좋아하는 것은 본래 부처이고 싫은 것에 괴로워 하는 것은 미혹이 성립되지 않는다
사람의 본래 존재함도 마의 화신이 되야 하나 그리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없이 모든 존재함에 영향력이 있는 가운데
특정한 좋은 것을 모아 놓고 보니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내안의 부처 청정함과 같이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재 자신의 생각으로 그러한 감정을 창조하여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다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지금 부정적인 것을 느껴 자신이 불행을 한다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것은 본래 마신이 아니라 현재 부정적인 것을 창조하여 지금 기분을 느낀 것이다 본래 불도 현재의 내가
좋은 것에서 감정을 창조하고 그것을 과거로 이어져 착각해서 보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과 인격은 현재의 내가 수시로 나의 의지로 창조하여 이어 가는 것이다
평소에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사람이 직업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정장을 입고 다니면 자신이 거울을 보았을때
많은 시간이 흘러 신사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것이 처음의 모습은 아니나 그런 만들어진 이미지를 더하고 더하여
자신의 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에 가장 익숙한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자아로써 바라본다 하지만 이것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처는 없다 자신이 현재에서 미래로
그림을 그려 나가며 계획한대로 추진하고 진행해 나가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즉 부처는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을 통해 미래에 만들어 지는 것이다
석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아갈 수 없는 선에 있다
그냥 보이면 선한 일을 해야지와 계획을 하고 접근하는 선은 결코 같지 않다
선한 일을 해야지 마음 먹은 이에게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자신이 도울 사람이 보이지 않아 집에 들어갈 것이지만
오늘 동네의 쓰레기를 모두 줍고 집에 가겠다 말하는 이는 목표에 도달할때까지 그로부터 세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쓰레기를 줍고 결과가 만들어질때 비로소 집에 들어갈 것이다
이 둘은 같지 않다
이 나라에서는 매년 수천명이 고독사로 사망하고 교통사고로 그와 비슷한 숫자가 사망을 하며
낙태 추정사망자수는 150 만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찾았을때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둠이 존재하나 집착을 하지 않으면
결코 이것을 알거나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이 불교가 이 많은 문제에 대해서 전면에서 나서 해결하지 않는 이유이다
석가의 절학으로는 앞서 나가는 선으로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착을 하여야 나갈 수 있는 선을 말한다
일체유심조
마음을 먹어 부처가 되는 일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집착을 하여 현재를 뛰어넘는 노력을 해야
유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주일의 부처는 한번 마음 먹은 부처의 만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년의 부처는 일주일의 부처의 일억배의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십년의 부처는 백경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게 화엄경과 같은 경전은 실제로는 세상을 전혀 구제해 주지 못하는 쓰레기 수준의 거론할 가치가 없는
개념낮은 경서이지만 중생은 그런것을 구분 할 수 있는 눈이 없다 그것은 너희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석가가 시작부터 잘못 생각한 것을 최고의 진리라 여기었던 것에 비판하거나 의심할 수 있는
눈조차 없었다
그래서 수천년을 최고라 여기며 살아왔다
나는 차라리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에 세상을 멸망에 가깝게 죽인다는 그 적그리스도 세상에 나오기를 바랬다
영성이 탁월한 자마저 진리로 미혹하게 만들어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레벨은 커녕 예언 한마디만 해도 중생들은 그것을 진리라 여기고 우루루 몰려 다닌다
적어도 석가의 도를 깨부술 수 있을 정도의 지혜는 이야기 하는 이들이 여럿 나올 수 있을거라 여기었다
그것은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한것이다
만년이 흘러도 십만년이 흘러도 수도자가 백만년을 수행해도 그들은 지금 나와 같이 말을 할 수 없고
중생도 그 개념을 깨부수고 발전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석가가 사실 나의 말은 모두다 거짓이었고 훗날 나의 도를 모조리 부셔 버릴 수 있는 자가 다음의 부처라
말하였다면 석가의 논리는 아주 짧은 시간안에 간단히 부서졌을 것이다
깨부수려 도전하는데 집착을 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유능한 인재들은 많았을텐데 나아가려는 움직임은 있었을 터인데
겐지스강의 모래알 만큼 많은 명석한 인재들이 있었을텐데 석가를 최고점이라 인식하면서 세상을 박살내버릴 혁명적인
개념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하나를 꼽는다면 제바달다를 꼽을 수 있다 일생을 다하여 석가를 이기고자 하였던 그가
바로 용수였고 그리고 마침내 지장보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지장보살에게 가르침을 준것이 바로 나 예수였다
너희는 미륵이 온다 하였을때 그 옆에 지장보살이 동행하는 그림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아미타와 그와의 연결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여 더 나아갈 생각이 없는 것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장 최고의 선을 선조차 뛰어넘는 이상적인 선을 그려 나가는
이와 같은 도의 경지에 결코 도달 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무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고귀하게 여기고 더 높은 선을
찾아 자신을 새롭게 그리고 창조하는 것은 바로 올바른 집착에 있다
그것이 유아 이고 유명이다
자아가 있어 세상을 망치는 것인가 ? 아니
자아가 있으나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전환하지 못하여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생은 결코 자신의 자아를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석가의 도는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단 한번도 성공을 한적이 없는 실패의 도를 의미한다
자존심의 붙듬이 아니라 자존감의 덧붙임이
유아와 유상과 유명이
바로 불멸의 도 유상정 등정각이다
나는 이미 중생들에게 약속을 하였다 석가는 부처에 이른적이 없고 깨달음에 도달한 적도 없지만
내가 다시 보내는 석가는 정말 괜찮은 도를 세상에 펼칠 올바른 부처님이라고
고통과 시련은 그것을 빛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안다면 더이상 괴로움이 되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아 괴로움이 아니라 빛으로 만들어 영혼이 발전 할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괴로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같지 않다 되다 만 개념 애초에 도달 하지도 못한 것을 진리라 이야기 하지 말아라
그 낮은 것 조차 수천년조차 깨부수지 못하였음을 부끄러워 하여라
나 예수는 빛이라 말하였다 관세음은 빛을 말한다 서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너희가 다르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재림의 나는 미혹조차 빛과 사랑으로 만들라 이야기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해탈의 경지
올바르게 부처에 도달한 광각성불 이다
형성된 모든것 즉 연기에 의거 나타난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한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조건에 따라 변화기 때문입니다
苦는 한역과정에서 좀 애매해졌다고 봅니다
존재물은 누구든 무엇이든 老病死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환경정 본태적으로 고의 세계에 연기로 잠시 존재하고 있다면 무상 무아를 깨닿게 되어야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닌다가 아닐까요?
댓글을 보면 空 과 無我의 개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글들이 보이는군요. 개념부터 이해가 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 또한 개념은 이해가 되나 깨달지 못해
수 십 년을 도로아미타불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지혜를 믿습니다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 입니다
2. 연의 한자가 틀리네요. 화면 속 글자는 "모을 집"이네요. 편집 가능하면 옳은 한자로 바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아란 에고적 인식주체인 나가 없어지고,
근원의 하나인 진아를 찾는 과정으로,
근원의 하나란 물질창조에 이어,
우리모두를 창조하여 현세를 관리하고 있는 창조주이다.
깨우침이란 근원의 하나이며 진아인
우리모두의 창조주 하느님을 찾는 과정이다~!
참조
잘못 가르치고 있네요
상대성을 초월해 있다 없다 분별심을 떠난 하늘은 사람의 마음 처럼 보이지 않으나 한계가 없는 절대 진공의 힘으로 물아일체 해탈한 혜존을 말해요
사람의 마음이 무아가 아니듯 하늘도 의식으로 꽉찬 공사상 연기법으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부처님
태극기 안내 법궤는
無시작과 끝 또 시작
我또 시작과 또 시작
無我 윤회하다 업보
언어에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구만,
무아.
석가모니는 깨달은것이 아니다.
저런 논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졌을까.
자아가 약한게 더 문젭니다 잔존감이 약한 사람들이 주로 우울증걸리고 자살합니다
그래서 무아가 뭔데요
알맹이는 빼고 포장만 해서
현혹시키는 말만 하네~
무아를 아는자는 한명도 못 봤다 대부분 힌두교 진아로
설명 할뿐 …, 한심스럽다 !
난또 무아를 아는줄 알고 기대 했네~ ㅎ
그러게 말입니다....ㅎㅎ
무아 ㅎㅎ
생각이나 언어문자 세우지않으면,
지금 이대로 집착없는 이마음을 무아 라고 이름하지만,
이렇게 알아듣는 수준이면 이걸로 ~
근데... 좀더 자비를 내어 설명해보자면,
음~
지금 분명히 자신이존재 하는데,
무엇이 진정한 영원한 "나,라고 할게 없으니 무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줄 아는 이것이 진아 라 이름하지요.
힌두교니 불교니 상관없이...말이디^^
해인사 큰스님은 윤회란 없다고 했다. 사실상 무아도 없다는 모순된 개념이다.
그리고 종교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과 함께 점차 소멸해 가고 있다.
ㆍ道ᆢ해방의 길道
나란 것이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나가 없다고 쇄뇌하는 것은 그냥 '없는 척' 하는 것이지 진실로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Soul이 생긴 지가 5억년이 넘었는데 그러면 무아가 맞느냐 유아가 맞느냐?
만약 나가 이순간 존재하는게 의심스러우면 귀싸대기를 한대 맞아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aufrhd899 진짜 니와 에고의 관계는? 에고는 마음 상태이지만
그 에고를 가진 존재 자체는 우주에 유일한 존재로서 현실에 실재하는데, 그 존재가 열반에 든다 하면 그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열반에 들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우주에 존재하는가.
모두 출가해서 산속 암자에서 명상하는 스님이 되면 모를까 세속에 살아가는 입장에선 하늘의 달따오라는 것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가름침이옵니다. 포기하고 하산하겠습니다
돌갰네 아휴
무아가 있지도 않는데 무아란 허상을 만들어서 씨름을 하냐~~~~ㅋㅋㅋㅋㅋ
본시 나라 고 할 것 조차 아무것도 없다니~~~~ 석가는 연기를 깨닳았고~ 입멸했고~~~ㅉㅉ
마음은 알았지만,
주둥이가 깨닫지 못했구만, ㅎㅎ
석가모니는 과연 천상에 있을까요....없습니다. 구미호 혼이라서 소멸되었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무지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사네요.
나도 존경하고 도를 좋아했지만 알고 나니 허망하네요.
무아는 고정된 나의 실체 아트만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개념이지요 -- 고정된 나란ㄴ 실체는 없다고 하면 윤회라든가 카르마 라는것이 모두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물질적 하드웨어가 해체 분해되고 영혼 정신 에테르체 조차도 모두 리셋된후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생에 태어나는 것은 절대로 내가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전생의 업으로 인해 다음생에 영향 받는 것도 아니고 윤회라는 것은 애초 성립할수 없게 되지요 이번생은 단 한번 뿐이고 선업과 악업도 이번생으로 종결되는 것이고 윤회를 할 주체가 없는 것이니 단지 우리는 1회용 생을 살다 버려지는 것입니다. 이번생은 소중하고 중요하며 한편 살아있는 순간까지만 이번생이 중요하다는 설명이 됩니다. 장황한 설명 말고 정확히 설명해주시는 분이 없더군요 기껏한다는 설명이 고정된 나라는실체가 없다는 설명을 하더군요 그렇다면그것은 변아 이지 무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변아를 왜 무아와 동일시 하는 지도 모르겠더군요 전생의 선업과 악업도 모두 지워진 내게 까르마를 운운하며 벌을 받고 복을 받는 다는 것은 괴이한 논리가 되니까요 저장기록이 모두지워진 컴퓨터의 하드웨어처럼 그 컴퓨터는 이미 내 컴퓨터가 아닙니다. 그냥 새로운 컴퓨터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