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님 저번 답변써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저도 정말 지금 답이 필요한것이 있습니다.알려주실수있을까요? 1.우리 할머니,할아버지가 힘들어서 교회를 그만나오셔서 이제 밥먹을때 잠을잘때 이모든 감사의순간에 기도를 안드려요.제가 답을찾기위해 찾아보다가 "좀 내버려두세요.믿음은 신뢰이기에 자기 스스로가 신뢰해야 믿음이생깁니다"이말씀을 들었는데 우리할머니 할아버지가 연세가 높으시진 않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돌아가시면 어떡할지 고민이에요. 2.예수님의 재림이 우리는 알수없습니다.그렇기에 지금 이순간 내일 일어날수 있는데 할머니,할아버지가 성령을 받지않으셨다면 천국 즉 하나님과 함께할수없는데 만약 재림하셔도 성령을 못받으면 천국에 갈수없는데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 깨우쳐도 천국에 못들어가나요? 이 질문에 답이없으면 안적어주셔도됩니다
안녕하세요? 질문자님께서 주신 질문들은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과 신앙의 문제, 그리고 영원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매우 무겁고 진지한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할머니, 할아버지의 믿음에 대한 고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고 기도하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구원에 대한 고민도 깊이 느껴지네요. 먼저, 믿음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분의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께 그분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오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세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판단이나 강요 없이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가 많지 않으셔서 다행이지만, 우리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가족을 위한 기도는 쉬지 않고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다시 찾고 믿음 안에서 회복되길 기도하며, 그분들 앞에서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2. 재림과 성령에 대한 질문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 이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나누고, 가족과 이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자는 지옥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개의 기회가 재림 전까지는 항상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살아계실 때,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지옥에 한 번 들어간 후에는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지옥은 회개의 기회가 끝난 후의 영원한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시면 그 후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그분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만지시고 성령께서 그분들에게 임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세요. 또한, 그분들과 사랑으로 교제하며 신앙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어떤 형태로든 편하게 문의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질문자님의 마음에 항상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혹 질문자님도, 그리고 할머님과 할아버님께서도 아직 하나님의 성령을 확실하게 받지 못하셨다면, 설교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찬찬히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ua-cam.com/play/PLLBA8oKJsd0RSmO9XnPT7bYHSJ5FDv6at.html 끝까지 들어보시고 또 질문 주시면 정성껏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늘 기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죄 때문에 영영한 지옥에 들어가는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죄를 사함받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 죄 사함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문제와도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이 죽고 흘린 피로 제사를 드릴 때 죄가 사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그런데 구약시대에 동물의 피로 지내는 제사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고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하고, 또 1년마다 한 번씩 속죄일에, 이스라엘 모두의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즉 영원한 효력을 지니지 못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한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제물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긴 효력을 가진 피일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분명히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피가 죄를 사하는 효력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자주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려 돌아가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만 오셔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5-26) 그래서 그 죄 사함은 영원히 효력을 갖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죄를 속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만드신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현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개인의 죄를 사해 주셨을 때, 그 사람의 20살까지, 30살까지, 혹은 40살까지의 죄만 사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보시고, 그 모든 죄를 한꺼번에 사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는 문제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해서 아들 자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들이 아무리 망나니라도 한 번 아들이 된 것은 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 [사무엘하 7:14-16]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그렇지만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죄를 짓든지 묵인해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죄에서 돌이킬 때까지 엄한 징계와 채찍으로 다스리시며, 그래도 듣지 않고 돌이킬 가망이 없다면 사단에게 내어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그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줄지라도 영혼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하나님이 지시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피로 온전히 씻어진 사람, 죄사함을 받고 완전히 용서를 받은 사람이 생애를 사는 동안 저지른 실수, 죄, 자범죄 등은 발바닥에 묻어 들어온 먼지와 같은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자기 입으로 토설치 아니하고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 마음의 고통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한번 속죄함을 입어 깨끗해진 사람에게는 살아가면서 생활에 묻어 들어오는 죄를 항상 하나님 앞에 자백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 우리가 사는 동안 짓는 죄를 씻어주신다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요한복음 13: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들끼리도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습니다. --- 거듭나기 전 죄악 가운데 살던 때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지은 죄에 대해 자주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할 일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찾아 완전히 돌아서는 회개를 한 번 했듯이, 죄와 사망의 길에서 돌아서는 완전한 회개가 한 번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에 묻어 들어온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일에 쓰이지 못하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 사단에게 내어줌을 당하지 않으려면, 형제자매들과의 교제 가운데 항상 거하며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깨어있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와 자백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드려보겠습니다. [요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회개는 목욕과 같은 것이고, 자백은 발을 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기준을 놓고 생각해보면 회개는 일생에 한 번만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발을 씻는 것은 수시로 더러워 질 때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생에 한번만 하면 되는 회개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는 회개의 중요성입니다. 예수님이 이 회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알 수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두번째는 회개하는 방법입니다. [눅16:30~31]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회개는 기적이나 특별한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기록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큰 죄인임을 알게 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우리 마음을 살펴보면 죄인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에도 두 마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형벌을 면하려는 목적으로 용서를 비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결정 되더라도 용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마음은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구분한다고 해도 우리 마음대로 없애거나 크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회개는 형벌 여부과 상관 없이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함께 달린 두 강도의 마음을 비교해보면 좀 더 이해가 쉽습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눅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한 사람의 마음은 조건부 요청입니다. 자신을 구원한다면 그리스도로 인정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은 지금 자신이 당하는 일은 자신의 죄 때문이고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께는 책임이 없다는 마음입니다. 전자는 자신에게 유익인 지 아닌 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후자는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자신에게 해가 된다 해도 자신이 받은 형벌이 맞다고 인정이 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를 하는 사람의 특징은 형벌을 면하겠다는 마음보다 하나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대부분 용서가 거절될 때 두 사람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전자는 원망과 비난하는 태도가 되고, 후자는 순순히 순종하는 태도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버림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결정에 동의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눅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이 아들은 아버지께 버림을 받을 각오가 이미 되어 있었습니다. 고생을 면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어진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다해도 감수할 마음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결정하시는대로 순종하는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한번 통과 된 후에는, 이제 자백만 하면 됩니다. 자백은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이 이행됩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있어도 그림자는 항상 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죄가 있으면 있는 대로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죄를 우리에게 처리하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징계와 고난을 통해서) 직접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거듭난 후에 원하지 않는 죄를 지음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 참조) 그런데 8장을 보면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선하든 악하든 있는 그대로 숨기지 않고 예수님께 아뢰고 그 처분에 맞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켜주십니다.
감사합니다.. 맘속에 늘 오랜 신앙 생활속에 구원의 불감증으로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도 또 제대로 고백 드리지 못한것 같고 성경 말씀이 주님이심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나의 하나님이기보다 성령 충만하신 그분들의 하나님인것 같은 생각...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무서운 하나님 정말 진심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습니다 죄를 자백하고 보혈의 피로 사함 받음을 믿기만하면 깨끗케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저는 자꾸만 말씀을 믿으면서도 이리 확신이 안들까요.. 답답하고 ..이루 말할수없는 애끓음을 매 순간마다 안고 삽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본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었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했지요. 죄나무의 열매는 오직 죄밖에 없음을... 그래서 하나님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절망속에서 도움을 구했더니 갈라디아서 3:13절을 통해 답을 주셨고 주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넘치는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불가의 가치로운 새 생명을 받았지요. 진심으로 간절히 겸손하게 끝까지 구하는 사람에겐 하나님께서 답을 주십니다 ♡🙏
구원을 받았다는것은 갓태어난 아기이기때문에 할일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쑥쑥 자라고 2번째 구원함을입은 형제자매들과 같이 교제를 하는것이고 3번째는 아버지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죠 마지막은 이웃 친구 지인 가족 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것이 그 거듭난 사람이 할일입니다 그외에도 더 있지만 갓태어난분은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느 인간이든 치부를 건드려 모욕을 주면 더러운 성깔이 나옵니다, 아이라고 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죄악 덩어리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잃어 짐승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믿노라 하는 자들이 이를 이루었을 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만 압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마세요 그래서 "아무도 모든 자를 판단하지 마라"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사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판단하여 떠나야 합니다. 사실 진리의 복음 생명의 말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인간이 만든 신학교를 나왔다고 자기들만 참하니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처럼 위세나 떠는 거짓 교회가 많습니다 자세히 보면 알 수가 있지요. 제발 배설물 처럼 과감히 버리고 나오세요 세뇌 당하지 말고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혼자 있을 수 있으나, 산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1)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죽음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 생명의 특징은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베드로전서 1:22)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죽은 영이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죽은 것은 모두 다 더러운 것입니다. 조그마한 병아리 한 마리만 보아도 살아 있을 때는 만져 보고 싶고, 예쁘게 보이고, 그 부드러운 털이 깨끗하게 보이나, 죽어 버리면 더러워 보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이 구원받아서 영이 살아났을 때, 비로소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영이 살았다는 것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벧전 1:22) 누구든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받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과연 진정한 구원을 받았는지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3:14) 구원받은 사람은 함께 구원받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저도 교회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데 믿음이 좋다고 하는성도가 말을 생각없이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습관성으로 아무생각없이 내뱉고 그러는데 본인은 아무것도 못느낍니다. 그러면 말함부러 하는사람은 생각없이 말한거니깐 사랑하는마음만있다면 천국이고 그걸 듣고 기분나빠하면 사랑하는게 불가능해지니깐 지옥인가요? 이거 불공평한거 아닌가요? 죄를 유발하는사람 따로있고 죄짓는사람 따로 있습니까? 예수님 믿어도 이런것때문에 지옥간다면 율법주의 아닌가요?
‘성화(聖化)' 라는 말은 점점 성스럽게 된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1장 5절에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개인의 성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 사이의 교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한 개인의 성화에 대해서 한 말씀이 아닙니다. 과연 한 개인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끗하게, 성스럽게 될 수 있을까요? 그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믿는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믿게 된 것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의 생각만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아, 믿을 만하다.' 하는 정도의 생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진짜 믿을 때는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으로서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또 믿는 과정에서 사람의 자유의지가 작용할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도 자유의지에 의해서 인간이 스스로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죄라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신, 반항,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아프게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살면서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을 원죄로 이해해야지,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죄로 인식하여 그 개별적인 죄 하나하나를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유다서 1장 3절에는 ---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분명하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사람은 언제나 죄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2-24) ---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 죄를 지었다 해서 거듭난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 사람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실이 행위로 인해 취소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짓든 어떠한 잘못을 하든 거듭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변경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약속입니다. 어떠한 큰 죄를 짓는다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받은 축복입니다. --- 그런데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는 문제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해서 아들 자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들이 아무리 망나니라도 한 번 아들이 된 것은 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사무엘하 7:14-16) --- 그렇지만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죄를 짓든지 묵인해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죄에서 돌이킬 때까지 엄한 징계와 채찍으로 다스리시며, 그래도 듣지 않고 돌이킬 가망이 없다면 사단에게 내어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5:5) --- 그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줄지라도 영혼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하나님이 지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죄 때문에 영영한 지옥에 들어가는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죄를 사함받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 죄 사함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문제와도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이 죽고 흘린 피로 제사를 드릴 때 죄가 사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그런데 구약시대에 동물의 피로 지내는 제사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고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하고, 또 1년마다 한 번씩 속죄일에, 이스라엘 모두의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즉 영원한 효력을 지니지 못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한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제물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긴 효력을 가진 피일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분명히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피가 죄를 사하는 효력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자주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려 돌아가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만 오셔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5-26) 그래서 그 죄 사함은 영원히 효력을 갖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죄를 속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만드신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현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개인의 죄를 사해 주셨을 때, 그 사람의 20살까지, 30살까지, 혹은 40살까지의 죄만 사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보시고, 그 모든 죄를 한꺼번에 사해주신 것입니다.
구원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제 세상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수있습니다 어떤자는 느리게 가고 어떤자는 걸어가고 또 어떤자는 조금빠르게 걷고 어떤자는 뛰어갑니다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는이유가 성경에 기록이 됬는데요 어떤자는 채소를 먹고 어떤자는 죽을먹고 또 어떤자는 고기를 먹습니다 또 어떤자는 누어서 미음을 먹습니다 또성경에 먼저된자로써 나중되고 나중된자로써 먼저되느니라 입니다 그럼 구원이 아닌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아주 더 간단합니다 그사람의 간증에서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이것이 없으면 절때로 구원이 아닙니다
평생 예수 믿어도
결국 지옥가는 사람들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ua-cam.com/video/4eRK-tjoM9U/v-deo.html
70평생 불교공부 하다 22년도 구원 받았습니다 늦어지만 너무 행복합니다
아멘!!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사랑에 하나님, 저희엄마 김순희 예수님 믿고 영접하고 구원받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신장투석 중 췌장에 혹이 발견되고 왼쪽다리 마비가 온
상태입니다, 부디 모든죄 다 용서하시고 교회로 인도해 주세요
아멘
하나님 사랑속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마지막때에 이런영상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깔려고 했는데 잘 아는것 같아서 잘 듣고 갑니다
ㅋㅋㅋㅋ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그 걸 믿으면 됩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 에게 세속적 친구와 혈족은 매우 큰 장애물 이다.
태초에님 저번 답변써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저도 정말 지금 답이 필요한것이 있습니다.알려주실수있을까요?
1.우리 할머니,할아버지가 힘들어서 교회를 그만나오셔서 이제 밥먹을때 잠을잘때 이모든 감사의순간에 기도를 안드려요.제가 답을찾기위해 찾아보다가 "좀 내버려두세요.믿음은 신뢰이기에 자기 스스로가 신뢰해야 믿음이생깁니다"이말씀을 들었는데 우리할머니 할아버지가 연세가 높으시진 않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돌아가시면 어떡할지 고민이에요.
2.예수님의 재림이 우리는 알수없습니다.그렇기에 지금 이순간 내일 일어날수 있는데 할머니,할아버지가 성령을 받지않으셨다면 천국 즉 하나님과 함께할수없는데 만약 재림하셔도 성령을 못받으면 천국에 갈수없는데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 깨우쳐도 천국에 못들어가나요?
이 질문에 답이없으면 안적어주셔도됩니다
안녕하세요? 질문자님께서 주신 질문들은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과 신앙의 문제, 그리고 영원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매우 무겁고 진지한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할머니, 할아버지의 믿음에 대한 고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고 기도하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구원에 대한 고민도 깊이 느껴지네요. 먼저, 믿음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분의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께 그분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오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세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판단이나 강요 없이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가 많지 않으셔서 다행이지만, 우리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가족을 위한 기도는 쉬지 않고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다시 찾고 믿음 안에서 회복되길 기도하며, 그분들 앞에서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2. 재림과 성령에 대한 질문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 이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나누고, 가족과 이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자는 지옥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개의 기회가 재림 전까지는 항상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살아계실 때,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지옥에 한 번 들어간 후에는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지옥은 회개의 기회가 끝난 후의 영원한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시면 그 후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그분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만지시고 성령께서 그분들에게 임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세요. 또한, 그분들과 사랑으로 교제하며 신앙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어떤 형태로든 편하게 문의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질문자님의 마음에 항상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혹 질문자님도, 그리고 할머님과 할아버님께서도 아직 하나님의 성령을 확실하게 받지 못하셨다면, 설교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찬찬히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ua-cam.com/play/PLLBA8oKJsd0RSmO9XnPT7bYHSJ5FDv6at.html
끝까지 들어보시고 또 질문 주시면 정성껏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늘 기도 드리겠습니다.
@@태초에 재림의 정확날짜가 아닌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한 징조는 없을까요?
성령을 받으면 치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죄 때문에 영영한 지옥에 들어가는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죄를 사함받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 죄 사함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문제와도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이 죽고 흘린 피로 제사를 드릴 때 죄가 사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그런데 구약시대에 동물의 피로 지내는 제사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고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하고, 또 1년마다 한 번씩 속죄일에, 이스라엘 모두의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즉 영원한 효력을 지니지 못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한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제물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긴 효력을 가진 피일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분명히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피가 죄를 사하는 효력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자주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려 돌아가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만 오셔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5-26)
그래서 그 죄 사함은 영원히 효력을 갖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죄를 속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만드신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현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개인의 죄를 사해 주셨을 때, 그 사람의 20살까지, 30살까지, 혹은 40살까지의 죄만 사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보시고, 그 모든 죄를 한꺼번에 사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는 문제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해서 아들 자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들이 아무리 망나니라도 한 번 아들이 된 것은 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
[사무엘하 7:14-16]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그렇지만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죄를 짓든지 묵인해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죄에서 돌이킬 때까지 엄한 징계와 채찍으로 다스리시며, 그래도 듣지 않고 돌이킬 가망이 없다면 사단에게 내어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그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줄지라도 영혼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하나님이 지시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피로 온전히 씻어진 사람, 죄사함을 받고 완전히 용서를 받은 사람이 생애를 사는 동안 저지른 실수, 죄, 자범죄 등은 발바닥에 묻어 들어온 먼지와 같은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자기 입으로 토설치 아니하고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 마음의 고통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한번 속죄함을 입어 깨끗해진 사람에게는 살아가면서 생활에 묻어 들어오는 죄를 항상 하나님 앞에 자백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
우리가 사는 동안 짓는 죄를 씻어주신다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요한복음 13: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들끼리도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습니다.
---
거듭나기 전 죄악 가운데 살던 때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지은 죄에 대해 자주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할 일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찾아 완전히 돌아서는 회개를 한 번 했듯이, 죄와 사망의 길에서 돌아서는 완전한 회개가 한 번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에 묻어 들어온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일에 쓰이지 못하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
사단에게 내어줌을 당하지 않으려면, 형제자매들과의 교제 가운데 항상 거하며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깨어있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와 자백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드려보겠습니다.
[요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회개는 목욕과 같은 것이고,
자백은 발을 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기준을 놓고 생각해보면 회개는 일생에 한 번만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발을 씻는 것은 수시로 더러워 질 때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생에 한번만 하면 되는 회개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는 회개의 중요성입니다.
예수님이 이 회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알 수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두번째는 회개하는 방법입니다.
[눅16:30~31]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회개는 기적이나 특별한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기록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큰 죄인임을 알게 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우리 마음을 살펴보면 죄인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에도 두 마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형벌을 면하려는 목적으로 용서를 비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결정 되더라도 용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마음은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구분한다고 해도 우리 마음대로 없애거나 크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회개는 형벌 여부과 상관 없이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함께 달린 두 강도의 마음을 비교해보면 좀 더 이해가 쉽습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눅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한 사람의 마음은 조건부 요청입니다. 자신을 구원한다면 그리스도로 인정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은 지금 자신이 당하는 일은 자신의 죄 때문이고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께는 책임이 없다는 마음입니다.
전자는 자신에게 유익인 지 아닌 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후자는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자신에게 해가 된다 해도 자신이 받은 형벌이 맞다고 인정이 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를 하는 사람의 특징은 형벌을 면하겠다는 마음보다 하나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대부분 용서가 거절될 때 두 사람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전자는 원망과 비난하는 태도가 되고, 후자는 순순히 순종하는 태도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버림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결정에 동의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눅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이 아들은 아버지께 버림을 받을 각오가 이미 되어 있었습니다.
고생을 면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어진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다해도 감수할 마음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결정하시는대로 순종하는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한번 통과 된 후에는, 이제 자백만 하면 됩니다.
자백은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이 이행됩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있어도 그림자는 항상 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죄가 있으면 있는 대로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죄를 우리에게 처리하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징계와 고난을 통해서) 직접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거듭난 후에 원하지 않는 죄를 지음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 참조)
그런데 8장을 보면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선하든 악하든 있는 그대로 숨기지 않고 예수님께 아뢰고 그 처분에 맞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켜주십니다.
감사합니다..
맘속에 늘 오랜 신앙 생활속에 구원의 불감증으로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도 또 제대로 고백 드리지 못한것 같고
성경 말씀이 주님이심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나의 하나님이기보다 성령 충만하신 그분들의 하나님인것 같은 생각...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무서운 하나님
정말 진심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습니다
죄를 자백하고 보혈의 피로 사함 받음을 믿기만하면 깨끗케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저는 자꾸만 말씀을 믿으면서도 이리 확신이 안들까요..
답답하고 ..이루 말할수없는 애끓음을 매 순간마다 안고 삽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본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었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했지요. 죄나무의 열매는 오직 죄밖에 없음을...
그래서 하나님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절망속에서 도움을 구했더니 갈라디아서 3:13절을 통해 답을 주셨고 주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넘치는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불가의 가치로운 새 생명을 받았지요.
진심으로 간절히 겸손하게 끝까지 구하는 사람에겐 하나님께서 답을 주십니다 ♡🙏
구원을 받았다는것은 갓태어난 아기이기때문에 할일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쑥쑥 자라고 2번째 구원함을입은 형제자매들과 같이 교제를 하는것이고 3번째는 아버지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죠 마지막은 이웃 친구 지인 가족 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것이 그 거듭난 사람이 할일입니다 그외에도 더 있지만 갓태어난분은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보여집니다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느 인간이든 치부를 건드려 모욕을 주면 더러운 성깔이 나옵니다,
아이라고 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죄악 덩어리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잃어 짐승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믿노라 하는 자들이 이를 이루었을 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만 압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마세요
그래서 "아무도 모든 자를 판단하지 마라"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사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판단하여 떠나야 합니다.
사실 진리의 복음 생명의 말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인간이 만든 신학교를 나왔다고 자기들만 참하니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처럼 위세나 떠는 거짓 교회가 많습니다 자세히 보면 알 수가 있지요. 제발 배설물 처럼 과감히 버리고 나오세요 세뇌 당하지 말고요
이 말을 제대로 알게 되어서 참 감사^^하지만
(트라우마도 같이 떠오릅니다. 예) 혼자 못산다. 함께 같이 살아야 한다.
(어느교회 집단성)관계... 나를 구해달라 변호사네 아들 등등...) 인니다. 캬캬컄 커걱..쿨럭. 감사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죽었던 영이 살아날때 동시에 구원 받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양심에 죄를 지었구나 생기지 않으면 구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자기가 하나님인양 지옥 가느니 천국 가느니 사람이 판단하는거 아닌거라 봅니다 구원 받은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것인데 말이죠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혼자 있을 수 있으나, 산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1)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죽음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 생명의 특징은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베드로전서 1:22)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죽은 영이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죽은 것은 모두 다 더러운 것입니다. 조그마한 병아리 한 마리만 보아도 살아 있을 때는 만져 보고 싶고, 예쁘게 보이고, 그 부드러운 털이 깨끗하게 보이나, 죽어 버리면 더러워 보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이 구원받아서 영이 살아났을 때, 비로소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영이 살았다는 것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벧전 1:22)
누구든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받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과연 진정한 구원을 받았는지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3:14)
구원받은 사람은 함께 구원받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히 6장 4절 6절 말씀과 빌 2장 12절 말씀
고린 9장 27절
에스겔 18장 24 말씀은 두려워요
저도 교회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데 믿음이 좋다고 하는성도가 말을 생각없이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습관성으로 아무생각없이 내뱉고 그러는데 본인은 아무것도 못느낍니다.
그러면 말함부러 하는사람은 생각없이 말한거니깐 사랑하는마음만있다면 천국이고
그걸 듣고 기분나빠하면 사랑하는게 불가능해지니깐 지옥인가요? 이거 불공평한거 아닌가요?
죄를 유발하는사람 따로있고 죄짓는사람 따로 있습니까?
예수님 믿어도 이런것때문에 지옥간다면 율법주의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셔서 죄를 없애 주셨는데 지옥에 가나요?
내향적인 저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가르치는이가 무지하며 거듭나지못한걸로 보입니다..
교제가 원칙이지만 태초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자가 교제에 소홀하다고 지옥에 가지않습니다..
친구가 한명도없다할지라도 예수님과 진실한 친구라면 지옥은 안갑니다...
철저한 교제중심의 교회에 다니면서
깨달은바가 있습니다..
소외당하는일이 많고 비참함속에 살았는데 거듭나고보니 엉터리가르침과 망상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교회란곳도 결국 끼리끼리 어울립니다..
선택받은사람은 소수입니다~~~
‘성화(聖化)' 라는 말은 점점 성스럽게 된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1장 5절에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개인의 성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 사이의 교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한 개인의 성화에 대해서 한 말씀이 아닙니다. 과연 한 개인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끗하게, 성스럽게 될 수 있을까요?
그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믿는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믿게 된 것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의 생각만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아, 믿을 만하다.' 하는 정도의 생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진짜 믿을 때는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으로서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또 믿는 과정에서 사람의 자유의지가 작용할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도 자유의지에 의해서 인간이 스스로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죄라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신, 반항,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아프게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살면서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을 원죄로 이해해야지,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죄로 인식하여 그 개별적인 죄 하나하나를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유다서 1장 3절에는
---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분명하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사람은 언제나 죄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2-24)
---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 죄를 지었다 해서 거듭난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
사람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실이 행위로 인해 취소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짓든 어떠한 잘못을 하든 거듭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변경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약속입니다. 어떠한 큰 죄를 짓는다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받은 축복입니다.
---
그런데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는 문제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해서 아들 자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들이 아무리 망나니라도 한 번 아들이 된 것은 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사무엘하 7:14-16)
---
그렇지만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죄를 짓든지 묵인해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죄에서 돌이킬 때까지 엄한 징계와 채찍으로 다스리시며, 그래도 듣지 않고 돌이킬 가망이 없다면 사단에게 내어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5:5)
---
그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줄지라도 영혼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하나님이 지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죄 때문에 영영한 지옥에 들어가는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죄를 사함받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 죄 사함이 얼마나 긴 효력을 갖느냐 하는 문제와도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이 죽고 흘린 피로 제사를 드릴 때 죄가 사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그런데 구약시대에 동물의 피로 지내는 제사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고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하고, 또 1년마다 한 번씩 속죄일에, 이스라엘 모두의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즉 영원한 효력을 지니지 못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한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제물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긴 효력을 가진 피일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분명히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피가 죄를 사하는 효력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자주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려 돌아가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만 오셔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5-26)
그래서 그 죄 사함은 영원히 효력을 갖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죄를 속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만드신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현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개인의 죄를 사해 주셨을 때, 그 사람의 20살까지, 30살까지, 혹은 40살까지의 죄만 사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보시고, 그 모든 죄를 한꺼번에 사해주신 것입니다.
걈사함니다 아멘♥
구원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제 세상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수있습니다 어떤자는 느리게 가고 어떤자는 걸어가고 또 어떤자는 조금빠르게 걷고 어떤자는 뛰어갑니다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는이유가 성경에 기록이 됬는데요 어떤자는 채소를 먹고 어떤자는 죽을먹고 또 어떤자는 고기를 먹습니다 또 어떤자는 누어서 미음을 먹습니다 또성경에 먼저된자로써 나중되고 나중된자로써 먼저되느니라 입니다 그럼 구원이 아닌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아주 더 간단합니다 그사람의 간증에서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이것이 없으면 절때로 구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