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뉴전사 이순신장군 해전3부작은 진짜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ㄷㄷ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또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갈리네요 마지막의 '미래세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만큼 책임감 있는 행동은 없다' 이라는 말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량은 성웅이 돌아가신 해전이라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밤부터 담날 아침까지, 그러니까 새벽 캄캄한 밤에 이루어진 전투라는 측면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음. 근대도 아니고 중세시대에 전기도 없는 시대에, 그것도 바다 한복판에서 전투? 거기서 유인, 매복, 포위, 야습이라는 여러단계의 작전을 성공시킨 통제공의 환상적인 지휘력과 지장의 모습을 볼 수 있음. 하지만 전술했듯, 캄캄한 시간에 싸웠던 터라 그전의 해전보다 더 인파이팅으로 싸워야 했고, 이 때문에 많은 사상자를 낼 수 밖에 없었고 최고 지휘관이신 성웅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심. 솔직히 명나라 도독 진린 이 놈이 뒤에서 고니시랑 밀약만 안 맺었어도, 노량해전의 최후 목표인 적들의 주오 장수들을 잡았을 수도 있음. 일본이 노량해전이 어떻게 니들이 이긴전투냐!? 우리의 목표는 탈출이었고, 너네는 주요 지휘관들을 잡는게 목표였는데 너희들은 오히려 주요지휘관이 전사하고 우리는 탈출하지 않았냐고 주장하는것도 이 때문임. 그래서 나는 진린이 ㅈㄴ 싫음. 그리고 간혹 성웅의 자살설을 믿는 분들이 계신데, 제발 그런 썰에 불과한 얘기들은 안믿었으면 좋겠음… 그건 성웅에 대한 모욕임.
마지막 결전이니까 돌아가실때 안심하고 돌아가셨을듯...ㅜㅜ 다음 전투가 없으니까 장군이 아닌 일반 병사처럼 몸으로 싸우는것이 적을 한명이라도 더 죽일수 있는 합당한 방법이라 판단하셨던듯... 굳이 일부러 죽으려 하실분은 아니고...진심으로 목숨바쳐 싸우셨겠죠. 항상 부하들에게 목숨바쳐 싸우라고 하셨으니 자신도 마지막 전투에서는 그렇게 하셨을거 같네요.
노량의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는 그동안의 왜장과 다릅니다. 일본 전국시대 150년 역사상 최고의 5인에 드는 장수에요. 야전 지휘 능력으로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시마즈 요시히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순서입니다. 이건 우리가 잘 아는 게임 삼국지를 만드는 일본의 코에이에서 자국 전국시대 게임도 만드는데 “신장의 야망” 이라는 그 게임속에 적용되는 능력치 기준입니다. 심지어 무력이 높으면서 동시에 지력도 높은 장수 순서로 정렬하면 얘가 일본 전국시대 무장중 1위 입니다.
한번만 더 쳐들어오면 이렇게 개박살날줄 알아 하며 본보기를 보여준 노량해전....... 이순신의 마지막 투쟁 그리고 의지를 보여준 역대급 전투;; 그리고 선조입장에서는 이순신의 존재를 부정할수밖에 없고 부정하고싶을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같은 일반인이 임금이 되었다면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번편을 보면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츠나리를 이긴데에는 노량해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의 병력은 불과 1700명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그 이유가 노량에서 엄청난 수하병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저때 노량에서 싸우지 않고 고니시 유키나카를 그냥 보내주었으면 시마즈 요시히로가 자기병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일본귀환해서 나중에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해서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이 이기게 기여했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마즈 요시히로의 병력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했으면 그 군세를 믿고 서군의 배신자들이 배신하지 않았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포진이나 병력에서 불리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긴 결정적인 이유가 서군의 배신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뒤로 도망하지 않고 노량해전에서 했던것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진을 목표로 직진돌격을 해서 탈출했다고 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같이 무서운 장수가 자기병력을 보존하고 일본귀환을 해서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이 이기게 기여했으면 도요토미 가문은 계속 유지되었거나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조선에 호전적인 서군이 정권유지를 하면서 또다시 조선침략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정한론을 펼친 자들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몰락한 서군의 후손들입니다. 노량해전의 전략적 목표가 일본의 재침략 방지에 있었고 이것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연관지어서 생각한다면 적장을 아주 제대로 골라서 회복불가의 큰 피해를 준것 같습니다.
@@나는저승사자다 영국이 신정부군 사쯔마번 조슈번에 좋은 무기를 많이 제공함. 이에 비해 프랑스는 막부에 조금 않좋은 무기를 지원함. 서로 무기 지원하기는 하는데 일본을 이용하기 좋게 만드는데 대에는 기존막부보다는 신정부군을 지원하는게 좋다고 판단한 모양. 막부가 대정봉환을 했음에도 양쪽을 중재하려한 사카모토 용마를 암살하고, 보신전쟁이 일어나게 계획함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에 벌어진 시마즈 내전에서 시마즈군은 4만명을 동원합니다, 또 그 몇년후 수만명을 동원해 오키나와를 정복해 식민지로 삼고요,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서 시마즈가의 병력이 부족해 1700명밖에 동원하지 못했다는것은 이치에 맞지 않죠, 세키가하라전투에 시마즈의 병력이 적은것은 "시마즈가문"이 참전한것이 아니라 가문의 차남인 "시마즈 요시히로" 독단적으로 참전한것이고, 그렇기에 휘하의 1700병력은 가문이 아닌 시미즈 요시히로 개인을 따라서 함께한 자들이기에 그 수가 적은것입니다
@@bonha1847 뭐가 사실이 아니죠? 시마즈 가문이 군대가 많은것하고는 별개로 시마즈 요시히로 수하의 직속부대는 노량해전에서 완전 박살나서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병력회복 못한거는 님의 댓글로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에요. 류큐정벌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몇년 뒤에 일어났어요.
좌로군의 선거이 장군이 비록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수성을 포기해서 비판을 받지만 녹둔도에서부터 이순신 장군과 연을 쌓아서 소위 절친인 느낌이고 한산과 행주 2대첩을 겪은 유일한 장군입니다 바다에 이순신, 육지에 선거이라는 얘기도 있죠 노량과 같은 해 2월 울산성에서 전사합니다
37:14 실제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운구할때 지나가는 마을마다 백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운구하는 수레를 붙잡고 마치 제 부모를 잃은거마냥 통곡했다는 기록이 있죠. '우리 군사와 중국 군사가 순신의 죽음을 듣고 진영이 연달아 통곡하기를 자기 어버이같이 하였고, 관을 운반해 가는데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이 곳곳에서 제를 지내고 수레를 당기면서 울며 말하기를, “공이 실로 우리를 살렸는데, 이제 공은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길이 막혀 수레가 나아갈 수 없었고, 길 가는 사람들도 눈물을 뿌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의정부 우의정으로 증직(贈職)하였다. 형개가 말하길, “바다 위에 사당을 세워 충혼을 표창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으나, 일이 마침내 행해지지 않았다. 이에 바닷가 사람들이 서로 솔선해서 사당을 세워 민충(愍忠)이라 부르고 철마다 제사를 지내며 그 밑을 지나는 장삿배도 모두 제사를 지냈다. 이초객(李楚客)이 수영(水營)을 읊은 시가 있다. 땅의 형세는 남극에 연하였고 / 地勢連南極 웅장하게 해 뜨는 동쪽 자리 잡았네 / 雄臨日出東 외로운 성은 좌수영이 앞인데 / 孤城前左水 한 섬은 고금도의 바람일세 / 一島古今風 지켜 막은 관방은 중요지인데 / 控禦關防重 단청한 해묘만이 비어 있구나 / 丹靑海廟空 슬프다. 이 통제여 / 哀哉李統制 천 년을 기이한 공 칭송하리라 / 千載誦奇功 - 신경 (申炅)(1613-1653), 재조번방지 중에서 -
@@야채토마토 근접전이라 화공을 쓰는데 바람이 북서쪽에서 불어오면 왜군이 엄청나게 불리하고 난중잡록에 보면 너무 급박해서 짚에 불을 붙여서 던질 시간적인 상황적인 여유밖에 없었어 동영상의 마지막에 보면 다 나오듯이 화살부터 총통부터 짚에 불을 붙이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지금까지 조선수군이 한 전투지 함포를 위주로 공세를 펼치는 해전이 아니었거든여~ 동영상을 끝까지 봐요
하나 알아둬야되는게 저 당시 일본은 그들 역사상 가장 전쟁 경험도 많고 기술도 발달된 상태였음. 그런 그들이 성웅 한명과 그 군대에 막혔는데, 그들의 이순신장군에 대한 트라우마나 경외감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일거 같다. 돌려 비교해서 삼국시대 통일후에 조조가 죽고 사마의가 궁극의 한타를 날렸는데, 조선 일개 장군한테 틀어막힌 경우라 할까?
고니시는 그렇게 일본으로 빠져나갔다고 하니 다른 왜군들은 어떻게 됐나요??? 저게 이순신 장군님 최후의 전투지만 아직 전멸을 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시마즈도 살아서 일본 내전?에도 참여한다고 했고,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라곤 하지만 혹시 그 후에 전투가 또 있었나요?? 아니면 나머지는 그냥 보내줬나요??
@@실프리아 음... 그냥 보내줬다라기 보다는 보내줄수 밖에 없다라는게 맞는 표현일거에요. 당시 일본이 조선내에 지은 요새만 30개가 넘는데다, 본부인 부산주변은 더욱 요새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노량해전이 발생한 것도, 순천왜성을 완벽히 포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해요. 작전의 요지도 순천을 포위해서 지원군 유도, 그리고 그 지원군을 기습 섬멸이었던 것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부산에 주둔한 잔존 병력을 섬멸 하려면 그 주변을 육지 바다를 포위해야 하는데 현상유지도 힘들었던 조선군으로는 사실상 불가능 하죠. 칠천량해전 이전의 해군병력으로도 못한다고 말했던게 이순신 장군이었고, 당시 울산왜성 마저도 함락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상황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일본군이 물러난 후에도 선조는 재위내내 일본이 재침한다는 소문때문에 불안에 떨었다더군요 그래서 전쟁영웅 이순신을 죽일 명분도 없고 죽일 생각도 없었을겁니다 만약 전쟁영웅을 죽였다간 나라를 구한 공을 세운 사람도 죽이는데 저정도 공도 세운 사람도 역모로 몰아 죽인다면 우리는 어떻겠어라면서 반란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또 일본이 재침한다면 이순신의 존재감이 병사들이나 백성들에게 큰 힘을 줬을거구요 노량해전 후에도 이순신장군이 살았다면 본인이 삼도 수군 통제사직 스스로 물러나거나 아니면 본인은 스스로 그만둘 생각 없더라도 6년내내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조선군의 70프로 수군전력의 절반이상을 한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 수많은 모함을받고 의심받아와서 일단 일선 지휘관직은 거두고 실권은 안준다는 뜻이죠 대신 부원군이나 봉군같은 명예직을 줬을거라 허준씨 유튜브에서 임박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nirvanafriend 적과의 전쟁중에 죄있다 하고 끌어와 고문하고 곤장치고 백의종군 하게 했으니 뭔짓을 못하겠읍니까...불안에 떨어요?... 불안에 떠는 이가 조선을 지탱하는 장군을 전쟁중에 소환하나요? 거기다가 원균을 이순신장군과 같은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었죠 그리고 그시절에는 반역죄라는 것도 있었고 죄를 덮어 씌우는것은 흔했읍니다... 오늘날도 뉴스를 날조하는대 그당시야 뭐 말할필요 있나요?...
@@wusongyang7751 이순신 장군은 곤장 맞지 않았습니다. 왕이 곤장칠 정도면 진짜 죽어요. 이순신 장군이 건강이 나빠진것은 대부분의 수군이 전멸한 상태에서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총에 맞는 부상이 악화되서 그렇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을 절대 못죽입니다. 이미 명나라 황제한데 인정 받아서 양호가 선조 앞에서 황제 명으로 이순신 면사첩 준다고 했는데 명나라 황제의 명을 어긴다? 이건 선조가 바로 쫏겨날 일입니다. 원균 문제는 사실 많은 장군들이 원균 같아요. 전공에 목숨걸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돌격하는 스타일 들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봐도 패배한 장군들은 나쁜놈이라기 보다 그냥 돌격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균에게 배울 것은 현재도 전쟁나서 몇번 이긴 장군이 수비만 한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 비난할 거고 원균처럼 용감하게 돌격한다고 하면 그 장군에게 박수치고 돌격하라고 할겁니다. 그러다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세상에는 이순신 보다 원균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휴~ 이런 이야기 말고 명나라 군대가 공을 세우려고 우리 백성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목을 베었던 이야기나 하시죠 청일 전쟁 때 청나라 군사들이 민간 부녀자들을 닥치는대로 겁탈했던 이야기도 하시구요 그런 이야기를 후손들이 알아야 남의 손에 자국의 안위를 맡기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게 아닙니까. 6.25 때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좋은 교훈이 되지요.
아 이사람 영상 제대로 본거 맞음? 니가 말하는 그 자살설이 이순신장군에게 모욕적인 말이라고 인간아 그 자살설은이순신장군을 더더욱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드는건데 그렇게 생각이란게 없냐? 이순신장군은 개인의 안위를 걱정해서 전장을 두고 자살하는 그런 무책임한 분이 아니다 좀 생각이란걸 하고 말해라 그리고 당시 명나라 황제가 면사첩을 내려서 조선국왕이 함부로 처벌할 수 없는 신분이 되었는데 뭔 말같지도 않는 소리냐?
이번 뉴전사 이순신장군 해전3부작은 진짜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ㄷㄷ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또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갈리네요
마지막의 '미래세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만큼 책임감 있는 행동은 없다' 이라는 말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30대 초중반 세대인 제가 요즘 출산율 문제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와..시간 순삭..보는 도중 살짝 눈시울도..ㅠ
진짜 성웅 이순님 장군님 대단, 위대, 그냥 한 인간이 후손들의 미래를 바꾸셨네요.
군인이..어떻게 저렇게 멀리 보고 전략적 사고를 하며 전투하신것인지..
성웅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편히 쉬세요
이순신 장군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않고
왜에게서 조선을 구하라고 하늘이 내린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왜란이 끝나니 하늘로 올라가신게 아닐지...
그래서 덕수이씨 이지 않나 싶습니다. 물에 덕이 있으니 그 물로써 나라를 지키셨지 않나 싶습니다 ㅎㅎ
임용한 박사님과 방종관 연구원님 짱
제가 난중일기를 두번째 읽었을 때 느낀점은 멋지다 위대하다보다 일기에 하루에 세세하게 작은 일들도 다 적고 그냥 흘리는 날이 없었구나를 가장 크게 느낀 것 같습니다
최고의 영상.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이순신이 되어 나라에 임햇으면 합니다 .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위험함을 무릎쓴다라는 말이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성웅이여 그대가 있기에 조선이 있고 우리가 있소
살아있을때 정당한 평가를 해줄수있는 사회를 만들자. 👏👏👏
노량은 성웅이 돌아가신 해전이라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밤부터 담날 아침까지, 그러니까 새벽 캄캄한 밤에 이루어진 전투라는 측면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음.
근대도 아니고 중세시대에 전기도 없는 시대에, 그것도 바다 한복판에서 전투?
거기서 유인, 매복, 포위, 야습이라는 여러단계의 작전을 성공시킨 통제공의 환상적인 지휘력과 지장의 모습을 볼 수 있음.
하지만 전술했듯, 캄캄한 시간에 싸웠던 터라 그전의 해전보다 더 인파이팅으로 싸워야 했고, 이 때문에 많은 사상자를 낼 수 밖에 없었고 최고 지휘관이신 성웅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심.
솔직히 명나라 도독 진린 이 놈이 뒤에서 고니시랑 밀약만 안 맺었어도, 노량해전의 최후 목표인 적들의 주오 장수들을 잡았을 수도 있음.
일본이 노량해전이 어떻게 니들이 이긴전투냐!? 우리의 목표는 탈출이었고, 너네는 주요 지휘관들을 잡는게 목표였는데 너희들은 오히려 주요지휘관이 전사하고 우리는 탈출하지 않았냐고 주장하는것도 이 때문임. 그래서 나는 진린이 ㅈㄴ 싫음.
그리고 간혹 성웅의 자살설을 믿는 분들이 계신데, 제발 그런 썰에 불과한 얘기들은 안믿었으면 좋겠음…
그건 성웅에 대한 모욕임.
이순신대장군님이 왜 우리나라 장군들중 가장 존경받는 장군인지 또 한번 깨달아요! 나라를 지키시는데 목숨 바치신 이순신 장군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노량 관람전 재시청 하러왔습니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나라의 존망이 결정되는데 그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성웅 존경스럽습니다
잘보겠습니다.
정말 멋집니다.
난 진짜 내년 노량 개봉해서 보러가면 울지 않을 자신이 없다...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걸 보고도 눈시울 뜨거워지는데...
저역시도 영화보고 울고싶네요
전 명량.. 한산.. 영화관에서 보면서 항상 울었습니다...ㅎㅎ..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노량에서 여기서 묘사한 내용의 반이라도 담으면 좋겠다. 이번 한산은 전투과정이 미흡한게 있었지만 이치전투설명이나, 빌드업도 꽤 신경쓴거 같고, 거북선을 너무 멋있게 만들어서 영화적으로 어느정도 만족했는데... 영화전에 또 보러 오겠습니다
노량은 한산과 명량의 장점만 합치기를
@@seungbin100 명량의 장점이 뭐죠
@@Maple684 뽕차는 맛이요
상상력 너무 동원하지 말고, 그냥 역사대로 잘 따라가주었음 싶네요.
명량, 한산, 노량 3부작 진짜 고맙습니다.
저도 내년 11월에 영화 보러 가기 전까지 수시로 보려구요.😄😄
감사합니다
크 해전 6부작 고생많으셧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본받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
충분한 정도가 아님
🎖🎖🎖🎖
마지막 결전이니까 돌아가실때 안심하고 돌아가셨을듯...ㅜㅜ
다음 전투가 없으니까 장군이 아닌 일반 병사처럼 몸으로 싸우는것이
적을 한명이라도 더 죽일수 있는 합당한 방법이라 판단하셨던듯...
굳이 일부러 죽으려 하실분은 아니고...진심으로 목숨바쳐 싸우셨겠죠.
항상 부하들에게 목숨바쳐 싸우라고 하셨으니 자신도 마지막 전투에서는 그렇게 하셨을거 같네요.
맞습니다
살아있을때 업적을 가치를 살려주어야 진정한 가치겠지요
흠집 만들어 법으로 판단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겠지요
마녀의 방망이
본인 발을 찍어내도록 일반 시민이 힘을 키웁시다
가슴이 웅장해진다...장군!
이번편 너무 재미있네
마치 영화를 본듯,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벌써 영화속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그려질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julee0353 영화 노량 전투씬이 3분의
2라는데 가늠이 안되네
@@seungbin100 그러게요....얼마나 치열하게 그릴런지..게다가 야간에 치뤄진 전투였잖아요.ㅎㄷㄷㄷ
@@julee0353 왜교성 전투서부터 대박이네
@@seungbin100 아마 명량해전 끝나고 난 시점부터해서 울산왜성 전투, 사천왜성 전투 짧게 휙휙 지나가고 절이도해전 짤막하게 다루고 갈듯
노량해전 하면 이순신 장군의 전사 말고는 몰랐는데, 실제로 어떤 전투였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덕분에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량의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는 그동안의 왜장과 다릅니다. 일본 전국시대 150년 역사상 최고의 5인에 드는 장수에요.
야전 지휘 능력으로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시마즈 요시히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순서입니다.
이건 우리가 잘 아는 게임 삼국지를 만드는 일본의 코에이에서 자국 전국시대 게임도 만드는데 “신장의 야망” 이라는 그 게임속에 적용되는 능력치 기준입니다.
심지어 무력이 높으면서 동시에 지력도 높은 장수 순서로 정렬하면 얘가 일본 전국시대 무장중 1위 입니다.
와~ 영화 노량에서 시마즈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
300년후 사쯔마번과 영국해군이 전쟁해서 영국함장 부함장을 전사 시켰죠...일본 해군을 건설한 세력이기도 하고요
@@seungbin100 영화 노량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원로배우 백윤식 씨가 연기한다고 합니다.
타짜의 평경장, 내부자들의 그분...ㅎㄷㄷㄷ
@@han7594 일본제국 육군은 조슈 번 기병대에서 시작됐고, 일본제국 해군은
도쿠가와 막부 수군에서 시작됐지요. 그 수군의 주축이 사쓰마 번..지금의
일본 규슈쪽 사람들.
@@julee0353
훗날 그 후손들이 난징대학살에 참여
재미었어요
ㅋㅋㅋ
이순신大장군님의 마지막 전투(노량)해전 출전 때의 어마어마한 고뇌와 비장함이 이루말할없었을 겁니다ㆍ한반도 역사상 을지문덕장군님과 이순신장군님
한번만 더 쳐들어오면 이렇게 개박살날줄 알아 하며 본보기를 보여준 노량해전....... 이순신의 마지막 투쟁 그리고 의지를 보여준 역대급 전투;;
그리고 선조입장에서는 이순신의 존재를 부정할수밖에 없고 부정하고싶을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같은 일반인이 임금이 되었다면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동감합니다.개박살을 내놔야 다시는 남의집에 기웃거릴 엄두도 못내게 됩니다 /우리도 선조 입장이엿다면...충무공에 전사소식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엇을까여...
우리의 인격 품성 자질이 선비 및 성인이상급이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일반인이 선조였을경우 이순신 전사소식에 미소를 띄웠겠죠;;
이당시 임금의 이미지는 완전 개박살이 나있었습니다 그와중에 이충무공의 존재가 선조를 불안하게 했죠 이게 그 이유입니다
제2 연평 해전 승전 당시 우리 해군들의 전투력은 역시 이순신 장군의 수군의 피와 전통이 이어져왔슴을 알수있다.
이번편을 보면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츠나리를 이긴데에는 노량해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의 병력은 불과 1700명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그 이유가 노량에서 엄청난 수하병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저때 노량에서 싸우지 않고 고니시 유키나카를 그냥 보내주었으면 시마즈 요시히로가 자기병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일본귀환해서 나중에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해서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이 이기게 기여했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마즈 요시히로의 병력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했으면 그 군세를 믿고 서군의 배신자들이 배신하지 않았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포진이나 병력에서 불리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긴 결정적인 이유가 서군의 배신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뒤로 도망하지 않고 노량해전에서 했던것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진을 목표로 직진돌격을 해서 탈출했다고 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같이 무서운 장수가 자기병력을 보존하고 일본귀환을 해서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이 이기게 기여했으면 도요토미 가문은 계속 유지되었거나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조선에 호전적인 서군이 정권유지를 하면서 또다시 조선침략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정한론을 펼친 자들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몰락한 서군의 후손들입니다. 노량해전의 전략적 목표가 일본의 재침략 방지에 있었고 이것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연관지어서 생각한다면 적장을 아주 제대로 골라서 회복불가의 큰 피해를 준것 같습니다.
에도막부는
왜
메이지 덴노한테는
못이기는
원인이 뭐고????
@@나는저승사자다 영국이 신정부군 사쯔마번 조슈번에 좋은 무기를 많이 제공함. 이에 비해 프랑스는 막부에 조금 않좋은 무기를 지원함. 서로 무기 지원하기는 하는데 일본을 이용하기 좋게 만드는데 대에는 기존막부보다는 신정부군을 지원하는게 좋다고 판단한 모양. 막부가 대정봉환을 했음에도 양쪽을 중재하려한 사카모토 용마를 암살하고, 보신전쟁이 일어나게 계획함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에 벌어진 시마즈 내전에서 시마즈군은 4만명을 동원합니다, 또 그 몇년후 수만명을 동원해 오키나와를 정복해 식민지로 삼고요,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서 시마즈가의 병력이 부족해 1700명밖에 동원하지 못했다는것은 이치에 맞지 않죠, 세키가하라전투에 시마즈의 병력이 적은것은 "시마즈가문"이 참전한것이 아니라 가문의 차남인 "시마즈 요시히로" 독단적으로 참전한것이고, 그렇기에 휘하의 1700병력은 가문이 아닌 시미즈 요시히로 개인을 따라서 함께한 자들이기에 그 수가 적은것입니다
@@bonha1847 뭐가 사실이 아니죠? 시마즈 가문이 군대가 많은것하고는 별개로 시마즈 요시히로 수하의 직속부대는 노량해전에서 완전 박살나서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병력회복 못한거는 님의 댓글로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에요. 류큐정벌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몇년 뒤에 일어났어요.
@@submariney 독고다이식 전투를 벌이는 애들은...싸움은잘해도...팀에는 도움이 안되는거 같네요. ㅋ 1700명으로도 충분히 이길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지 않나요? 1만명이 무슨 소용일까요. 전쟁은 숫자로 하는게 아닌거 같네요.
아니 저정도로 격전이었는데 조선 수군은 잃은 배가 없는게 ㄹㅈㄷ
최고 사령관이 죽더라도 병사들 탄 배는 살리시네.....
개인의 책임감, 미래세대를 위한 현재의 희생을 아무리 강조해도.. 선조같은 리더가 있는 이상 제2의 성웅 이순신 장군님같은 분은 나오긴 힘들겠지..
지금 정치인들 꼬라지 보면 선조는 양반이네요
이순신 장군이 살아계셔도 다음 병자호란 아니 인조반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 살아계실수도 없지요ㅜㅜㅜ
차라리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게 다행인듯, 가뜩이나 마음고생도 심하신데 병자호란 같은 전쟁을 또다시 참여해야된다고 생각하니...
살아계셨더라도 인조반정때면 78세
정묘호란-82세
병자호란-91세...
전군의 존경과 사랑을받는 존재로 계셨겠지만 어떤역할을 하시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셨겠지요
광해군이 잘해서 인조반정이 일어난 건 아닐텐데요
전략적으로 왜적의 재침예방 전술적으로는 화공과 조명연합군의 전투력의 우위에 따른 승산
고금에 이와 같은 이 다시는 없다.
노량해전은 너무 슬플것 같음….
하늘에서 조선을 위해 성웅 이순신장군을 보내주셨다.
노량해전 이순신장군
01:37 사로병진. 2:53 왜교성 전투 6:22 순천왜성 07:04 명나라의 입장. 08:20 나눈 이유 9:23 봉쇄 11:00 노량해전의 의미 12:57 묘도 14:15 진린을 압박 16:16 일본군의 집결,조명 연합군 출전 17:31 노량해협 18:59 대도리 20:20 전술을 바꿈 23:17 시작 26:15 관음포에 갇힘 27:39 정면돌파 vs 막자 29:00 가장 격렬 30:30 이순신 전사 30:51 박사님 주장 33:01 전사한 지휘관들 34:54 격전중 35:44 고니시의 탈출. 36:30 백성들의 통곡(신도비,현충사) 39:18 쪼잔한 선조xx... 40:20,47:02 명언 41:12 결과,정리 43:07 일본의 행동 44:24 책임감 45:33 명장
요즘에도 선조같은 마인드를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들 계시죠...
그분들에게 반성 하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미래세대 걸림돌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군인이라면 이순신 장군처럼…
마지막에 돌아가셔서 자세한 전황을 알 수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현세엔 나라를 구한 전쟁영웅
미래엔 난중일기라는 저서를 남겨 역사적으로 엄청난 도움이된 분
좌로군의 선거이 장군이
비록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수성을 포기해서 비판을 받지만
녹둔도에서부터 이순신 장군과 연을 쌓아서 소위 절친인 느낌이고
한산과 행주 2대첩을 겪은 유일한 장군입니다
바다에 이순신, 육지에 선거이라는 얘기도 있죠
노량과 같은 해 2월 울산성에서 전사합니다
선거이와 황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장수들의 서사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 해야됨
잘못된게 고금도는 정유재란당시 절이도 해전이후로
권준장군과 이운룡장군이 판옥선 2~30척과 수군 8천명으로 방어하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은 경상우수군과 전라우수군과 함께 지금 광양시쪽에 숙영지를 지어
7~80척에 1만 6천 수군을 이끌고 교전중이었습니다.
37:14 실제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운구할때 지나가는 마을마다 백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운구하는 수레를 붙잡고 마치 제 부모를 잃은거마냥 통곡했다는 기록이 있죠.
'우리 군사와 중국 군사가 순신의 죽음을 듣고 진영이 연달아 통곡하기를 자기 어버이같이 하였고, 관을 운반해 가는데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이 곳곳에서 제를 지내고 수레를 당기면서 울며 말하기를,
“공이 실로 우리를 살렸는데, 이제 공은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길이 막혀 수레가 나아갈 수 없었고,
길 가는 사람들도 눈물을 뿌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의정부 우의정으로 증직(贈職)하였다. 형개가 말하길,
“바다 위에 사당을 세워 충혼을
표창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으나, 일이 마침내 행해지지 않았다.
이에 바닷가 사람들이 서로 솔선해서 사당을 세워 민충(愍忠)이라 부르고 철마다 제사를 지내며 그 밑을 지나는 장삿배도 모두 제사를 지냈다. 이초객(李楚客)이 수영(水營)을 읊은 시가 있다.
땅의 형세는 남극에 연하였고 / 地勢連南極
웅장하게 해 뜨는 동쪽 자리 잡았네 / 雄臨日出東
외로운 성은 좌수영이 앞인데 / 孤城前左水
한 섬은 고금도의 바람일세 / 一島古今風
지켜 막은 관방은 중요지인데 / 控禦關防重
단청한 해묘만이 비어 있구나 / 丹靑海廟空
슬프다. 이 통제여 / 哀哉李統制
천 년을 기이한 공 칭송하리라 / 千載誦奇功
- 신경 (申炅)(1613-1653), 재조번방지 중에서 -
만인이 눈물쏟을 위인이라!
내년 11월에 개봉하는 영화 '노량' 보러가기 전까지 몇번이고 더 보고 가려구요^^
노량 죽음의바다 영화보고 다시 왔음~~
인격적으로도 너무나 완벽했던 충무공!!
결국 성웅의 긴 여정도 민족을 구원하고 노량의 망망대해에서 쫒기는 일본군을 섬멸하신 것은
향후 조선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신 것에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 😢
성웅이순신장군
노량에지다.
이후 300년동안 우리의 바다를 쳐다보지도 못하였지........
300년도 안되어서 일본이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유럽에서 2차대전 끝나고 70년만에 다시 전쟁 터지는거 보면 300년 못쳐들어온게 대단한거 아닌가..
@@Luisp1288-kj2 대단하긴요 나라뺏긴게 뭐가 대단한건지...
@@야채토마토머이리 빼빼꼬였서요.
3:54 성깔있으시네 ㅋㅋㅋㅋㅋㅋㅋ
성웅을 넘어 무신이 된 호국수호신 이순신 장군!!!
맥성 전투에서 여몽이 관우를 사로잡았듯이 이순신 장군님이 왜군을 해치웠으면 돌아가시지 않으실수 있었다는 말에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 돌아오셨으면 금의환향 하셨을 장군님인데
통제사또 덕에 동해가 동해일 수 있었고, 독도가 독도일 수 있었다.
50분이 순삭입니다.
1:30 강 아나님 보고 음 필터 너무 씌운거 아냐? 사람이 어떻게 (예쁘게) 생겨? 햇는데 5초돌려서 허준님 보고~ 아 원래 미인이시구나 하고 옵니다 ㅋㅋ
이순신 장군님 내려까는 인간들은 대체 어떤 부류인가요? 진심 궁금...
원균을 옹호하는 떨거지들일 가능성이 큼
이순신장군이 조선김씨왕조를 끝장내고 왕권을 잡았다면 이후 일본에 나라 넘겨주는 치욕은 절대 없었을꺼임.
대부분의 회사에서
회사에서 꼭 나가서 해결해주고 풀어주고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고, 뒤에서 정치질하고 모함하는 사람도 있더라.
회사에 비상이 걸리고, 그게 자기업무가 아니더래도 나가서 해결해주면, 회사내의 공공의 적이 된다. 특히 자기부서 상관.
08:04 조ㅈ...진압!
임용한업
삼국지 제갈량의 동남풍은 거짓이지만 노량해전의 북서풍은 결정적인 승리요인이었다.
북서풍하고는 그다지 연관 없습니다 갖다 붙이지 마세요
@@야채토마토 왜 연관이 없어 북서풍을 감안하고 전투에 들어간거야 500척의 대함선의 왜적을 이길수 있는 기상적인 조건을 이미 파악하고 화공을 통해서 이겼잖아~ 북동풍이었으면 조명연합함대가 화공을 쓸수 없었어
@@알파고제로 그다지 연관성 없음
근접전으로 했기 때문에.. 서로 화공 쏘고 있었음.. 북동풍이었어도 불화살 가능했음. 그리고 주요 무기는 불화살이 아니라.. 함포였음
@@야채토마토 근접전이라 화공을 쓰는데 바람이 북서쪽에서 불어오면 왜군이 엄청나게 불리하고 난중잡록에 보면 너무 급박해서 짚에 불을 붙여서 던질 시간적인 상황적인 여유밖에 없었어 동영상의 마지막에 보면 다 나오듯이 화살부터 총통부터 짚에 불을 붙이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지금까지 조선수군이 한 전투지 함포를 위주로 공세를 펼치는 해전이 아니었거든여~ 동영상을 끝까지 봐요
전국 넘버1 이라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여기서 죽자 한데가 노량이죠? ㅎㅎㅎ 도쿠가와는 카이 다음에 자신들이 넘버2 라고해도 우에스기가가 타케다랑 1위 고 그다음 시마즈가가 1윈데 4위 5위 ㅋㅋㅋ
하나 알아둬야되는게 저 당시 일본은 그들 역사상 가장 전쟁 경험도 많고 기술도 발달된 상태였음. 그런 그들이 성웅 한명과 그 군대에 막혔는데, 그들의 이순신장군에 대한 트라우마나 경외감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일거 같다. 돌려 비교해서 삼국시대 통일후에 조조가 죽고 사마의가 궁극의 한타를 날렸는데, 조선 일개 장군한테 틀어막힌 경우라 할까?
손에 피를 묻지 않으려는 자와 손에 피를 묻히려는 자~
고니시는 그렇게 일본으로 빠져나갔다고 하니 다른 왜군들은 어떻게 됐나요??? 저게 이순신 장군님 최후의 전투지만 아직 전멸을 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시마즈도 살아서 일본 내전?에도 참여한다고 했고,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라곤 하지만 혹시 그 후에 전투가 또 있었나요?? 아니면 나머지는 그냥 보내줬나요??
나머지 다수의 다이묘들은 노량해전 전에 이미 일본으로 철수를 했어요.
@@kanvarry3356 먼저 간 사람들 말구요. 아직 노량해전 직전까지 빠져나가지 못했던 왜군들이요.
@@실프리아 노량해전 이후로는 노량해전과 같은 규모 있는 전투는 없었고, 나머지 남은 군대도 마찬가지로 모두 철수 합니다.
@@kanvarry3356 아하 추가 전투가 없었다는 건 그냥 나머지는 보내줬다고 생각하면 되나요?
@@실프리아 음... 그냥 보내줬다라기 보다는 보내줄수 밖에 없다라는게 맞는 표현일거에요. 당시 일본이 조선내에 지은 요새만 30개가 넘는데다, 본부인 부산주변은 더욱 요새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노량해전이 발생한 것도, 순천왜성을 완벽히 포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해요. 작전의 요지도 순천을 포위해서 지원군 유도, 그리고 그 지원군을 기습 섬멸이었던 것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부산에 주둔한 잔존 병력을 섬멸 하려면 그 주변을 육지 바다를 포위해야 하는데 현상유지도 힘들었던 조선군으로는 사실상 불가능 하죠. 칠천량해전 이전의 해군병력으로도 못한다고 말했던게 이순신 장군이었고, 당시 울산왜성 마저도 함락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상황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적에게(?????)알리지 마라.라 한심하고 두심한 소리다.
내가 그리 일렀건만 깨닫지 못하네.
아군 수장(대장)의 전사는 아군이나 적이 알아서 안된다.
아군이 알게되면 사기가 꺾이고,적이 알게되면 사기가 올라 패전으로 끝난다.
평신같은 위인이 왕이되어 열등감을 표출하니 가히 폐해가 막대하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기에 성웅이라 칭해졌지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면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원균을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만든것만 봐도 확실하죠
허준씨 채널 역사 if에 임박사님이 나오셔서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지 않으셧다면..이란 영상이 있으니 한번보세여 조선이란 나라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하시더군여
일본군이 물러난 후에도 선조는 재위내내 일본이 재침한다는 소문때문에 불안에 떨었다더군요 그래서 전쟁영웅 이순신을 죽일 명분도 없고 죽일 생각도 없었을겁니다 만약 전쟁영웅을 죽였다간 나라를 구한 공을 세운 사람도 죽이는데 저정도 공도 세운 사람도 역모로 몰아 죽인다면 우리는 어떻겠어라면서 반란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또 일본이 재침한다면 이순신의 존재감이 병사들이나 백성들에게 큰 힘을 줬을거구요 노량해전 후에도 이순신장군이 살았다면 본인이 삼도 수군 통제사직 스스로 물러나거나 아니면 본인은 스스로 그만둘 생각 없더라도 6년내내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조선군의 70프로 수군전력의 절반이상을 한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 수많은 모함을받고 의심받아와서 일단 일선 지휘관직은 거두고 실권은 안준다는 뜻이죠 대신 부원군이나 봉군같은 명예직을 줬을거라 허준씨 유튜브에서 임박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soda8403 조선이라는 나라는 바보가 아니더라도 선조는 미쳐있었으니까요 뭔짓을 못하겠읍니까?... 고문하고 곤장치고 백의종군하게하고... 그 이후로 이순신장군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원균을 감싸는듯한 발언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nirvanafriend 적과의 전쟁중에 죄있다 하고 끌어와 고문하고 곤장치고 백의종군 하게 했으니 뭔짓을 못하겠읍니까...불안에 떨어요?... 불안에 떠는 이가 조선을 지탱하는 장군을 전쟁중에 소환하나요? 거기다가 원균을 이순신장군과 같은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었죠
그리고 그시절에는 반역죄라는 것도 있었고 죄를 덮어 씌우는것은 흔했읍니다... 오늘날도 뉴스를 날조하는대 그당시야 뭐 말할필요 있나요?...
@@wusongyang7751 이순신 장군은 곤장 맞지 않았습니다. 왕이 곤장칠 정도면 진짜 죽어요. 이순신 장군이 건강이 나빠진것은 대부분의 수군이 전멸한 상태에서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총에 맞는 부상이 악화되서 그렇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을 절대 못죽입니다. 이미 명나라 황제한데 인정 받아서 양호가 선조 앞에서 황제 명으로 이순신 면사첩 준다고 했는데 명나라 황제의 명을 어긴다? 이건 선조가 바로 쫏겨날 일입니다.
원균 문제는 사실 많은 장군들이 원균 같아요. 전공에 목숨걸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돌격하는 스타일 들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봐도 패배한 장군들은 나쁜놈이라기 보다 그냥 돌격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균에게 배울 것은 현재도 전쟁나서 몇번 이긴 장군이 수비만 한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 비난할 거고 원균처럼 용감하게 돌격한다고 하면 그 장군에게 박수치고 돌격하라고 할겁니다. 그러다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세상에는 이순신 보다 원균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강민채 진행자는 조금 준비를 하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조금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네요.
이제 월드 랭킹으로 이순신 장군님 평가해주세요 ㅎㅎ 요즘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워해머게임에서도 해군생도라면 상식 이라고 등장하시는데
선초 초상화 관상 과학이다
선조의 저 초상화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면사첩ㅋㅋ
처칠 근데 갈리폴리 책임 졌나??
선조는 역시 찌질해
선조🖕🖕🖕🖕🖕🖕🖕🖕🖕
이순신 없었어 임진왜란이 없었거든
한심..😒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1위 이순신장군
2위 강감찬장군
3위 을지문덕 장군
우리역사에. 위대한 주군
1위 박정희 (우리역사 가난을 극복)
2위 세종 (훈민정음)
3위 선덕여왕(우리역사 통일 교량한분)
휴~
이런 이야기 말고
명나라 군대가
공을 세우려고 우리 백성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목을 베었던 이야기나 하시죠
청일 전쟁 때
청나라 군사들이
민간 부녀자들을 닥치는대로 겁탈했던 이야기도 하시구요
그런 이야기를 후손들이 알아야
남의 손에 자국의 안위를 맡기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게 아닙니까.
6.25 때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좋은 교훈이 되지요.
미군에 의해 구원받은 나라가 한국인데? + 이대남 노예로 끌고가면서 자주국방 외치지말고 본인이 입대하세요 ^^
??? 평양성 이야기하는거 같은데 그거 구라임. 그리고 청일전쟁은 뭐 임진왜란에서 뭐 어쩌라는거임. 반중하는건 좋은데 좀 때와 상황을 가려서 하시길
한심한인간
음
이 4명만
이해를 못하는 건가?
주제에 포커스를 맞춰주시죠. 영어 시간에 수학 이야기하면서 자기 잘난 척 하는데 그거 꼴불견입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거이 자살에 가까운 사망을 했습니다 ... 그때 안죽었으면 .. 전쟁끝나고 역적으로 몰려 온가족과 친인척들이 몰쌀 당햇을겁니다 .. 미안한 이야기 지만 .. 챙피한 역사 아닌가요 ...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건 없는듯 .. 당파싸움도 여전하고 ..
역적? 아직도 이런소리 하는 사람 있냐?
선조가 죽일려고 이를 갈고 있었음
살았더라도 역적으로 몰아서 죽였을 거
아 이사람 영상 제대로 본거 맞음?
니가 말하는 그 자살설이 이순신장군에게
모욕적인 말이라고 인간아
그 자살설은이순신장군을 더더욱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드는건데 그렇게 생각이란게 없냐?
이순신장군은 개인의 안위를 걱정해서 전장을 두고 자살하는 그런 무책임한 분이 아니다
좀 생각이란걸 하고 말해라
그리고 당시 명나라 황제가 면사첩을 내려서
조선국왕이 함부로 처벌할 수 없는 신분이 되었는데 뭔 말같지도 않는 소리냐?
역적은.. 왕명으로 죽일수 있음
@@야채토마토 역적은 왕명으로 죽일 수 있는데
당시 이순신장군보고 역적모함 한 부분도 없으며
이순신장군은 명나라황제로부터 죽음을 면하는
면사첩을 받은상태라 조선국왕이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음
일본에선 시마즈를 엄청 명장으로. 평가하죠
거의. 도요토미 히데시. 도쿠카와. 담으로. 평가하조. 무력과 지략까지. 해서. 근데. 우리나라에선. 고니시 나 가토가 선봉장
No 1. 2. 와서 . 고니시나 가또가 더. 유명하죠
임박사님 마지막 출연 전과사인가??? ㅡ_ㅡ
명불허전 선좃 ㅋ
노량해전은 전략의 실패다
최고의 영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