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논리적 오류가.... 아타케부네는 여러 자료를 봐도.. 다이묘의 기함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함대.. 다이묘 별 함선집단의 기함과 극소수의 주력함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1592년 6월 등 난중일기에 나타난 내용을 봐도 각 분함대에서 왜장이 타고 있는 한척이 판옥선 만한 크기라는 묘사가 등장한다. 또한 이 아타케부네는 왜란 중 일본 입장에서도 도입활용 기간이 짧은 함선이었다. 뭐로 보나 세키부네가 일본군의 주력인데... 여러 자료에는 판옥선의 60%가량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조운선 정도 크기라고 한다. 조운선 중 80여명이상을 승선하는 군선이 대맹선이라 했으니... 세키부네는 탑승원만 따지면 대맹선 정도의 전투력? 규격?을 가졌다고 보는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위 컨텐츠의 내용처럼. 임진왜란 이전에 조총을 사용해 화력에 우위를 빼앗겼다는 식의 이야기는 논리적 비약이다. 임진왜란 전... 조선전기를 지나며. 왜적의 약탈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고려말 수준의 대량 침입은 이뤄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총은 일본에도 도입된지 오래지 않은 무장으로 도입당시의 엄청난 가격과 그 이후로도 매우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오다노부나가 이전에 대량사용되지 못했다. 오다노부나가의 대량사용 한 전적 역시 일본 서기의 특성상 매우 확대? 과장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많다. 그걸 일개 해적들이 화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정도로 대량사용한다? 또한 거리를 유지하는 근접전 전술? 여기 컨텐츠에서도 장대등의 사용이 묘사되는데....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무리가 많다. 사실. 조선의 함선들은 대다수 인원이 노군이다. 거기에 화포 담당을 제외하면.. 실제 살수들은 숫자가 많지 않다. 판옥선도 그럴진데.. 맹선은 더할 것이다. 즉, 소수의 인력으로 장대 등을 이용해 거리를 유지하도록 막으며 남는 살수들로 왜구의 선상 전투원을 화력제압한다???? 가능했을까? 더군다나.. 선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등선을 위해 노군까지 동원해 접근하는 왜군 함선을... 아무리 작은 세키부네라도 수십톤은 되었을 노를 젓든.. 해류로 인해서든... 그 무게의 함선이 접근하는걸 막대 몇개로 막는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뭐 요령이 있다면.. 여러명을 동원해 충격을 흡수하는 식으로 충격력을 줄이고 다시 밀어내는 방법등을 쓸수도 있겠지만.. 그럼 장대 한두개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장대당 인력 서너명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매우 서서히 다가온다면 모를까....그런데.... 등선을 위해 서서히????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조선군의 전술이 그렇다면 몇번 경험을 통해 배가 손상을 입더라도 빠르게 접근해 붙이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등선을 위해 이미 접근 또는 충돌한 왜선을 그 후에 밀어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등선 전에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는 소수의 인원과 소수의 장대로 매우 어렵고 위험한 방법일 것이다. 물론 왜란 후반으로 갈수록 왜군 선박이 대형화 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며.. 왜군의 등선육박전이 용이해졌다는 기록도 실록에 존재함으로 임용한 박사님이 말씀하신 왜군이 사용한 화력 제압+등선의 방법은 아마도 왜란 후기가 더 타당한 시점일 것이다. 또한 과거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임용한 박사님이 고려말 수군의 화포를 화약단지를 익혀 던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라는 식의 표현을 들은적이 있다... 당시가 바로 맹선과 세키부네가 맡붙는 시점일 것이다. 과연 화약단지가 주력이었을까? 물론 정식 학설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원(몽골)은 화포를 사용했다. 대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화포(대포)에 대한 기록은 공민왕시절 이미 등장한다... 진포해전은 우왕 시절이다. 최무선이 우왕시절 화약 양산 기술을 개발했으나. 화약의 활용에 대한 시도와 연구는 이미 공민왕 시절부터였다는 것이다. 또한 최무선의 연구분야는 화약 뿐 아닌 화기에 대한 부분도 있었으니... 화기가 없어 화약단지 형태 투척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 보다는 화포를 통해 장거리 공격, 화약단지??를 통한 근거리 투척공격이 더 올바른 활용이었을 것이다. 화전 또한 이미 존재하고 고려시대 화기 자체가 화살을 쏘는 형태가 주류였다고 하니.. 화포로 화전을 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또한 당시 저품질의 흑색화약을 익혀 던지는 형태가 주력이라면... 폭발보다 화재의 확산을 노리는 형태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주정 등을 이용한 화재가 더 용이 하지 않았을까? 수입산에 의존하는 유황이나 구하기 어려운 염초 보다 소주를 증류해 고순도 주정을 만드는게 더 손쉽고 저렴할 것같은데...... 예상컨데... 고대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체계가 잡힌 조선수군은 화기를 체계적으로 상황에 따라 맞춤식 사용을 했을 것이다. 원거리 적에게 장군전(다양한 자료들은 장군전의 사용시 km급 사거리가 가능하다 언급된다. 또한 왜군 역시 거대한 화살이 날라오는 기록이 꽤 존재한다. 만들기 어렵고 적재량도 적을 수 밖에 없는 장군전은 원거리에서 숙련된 포수에 의해 신중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라 상상해볼수 있다. 가장 다수를 차지했다는 현자총통도 전용 차대전이 존재함으로 장거리 사격이 가능하며 일반 화살의 특성을 적용한 장군전이나 차대전은 자체 회전으로 일반 철환보다 사거리와 명중률이 높을 것이다. 중거리 적에게 일반 포탄 즉, 솔리드탄... 철환을 날리는 형태...가장 대량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근거리 적에게 조란탄으로 일종에 산탄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수십미터의 거리에서 측면의 전 화포가 조란탄을 살포했다고 생각해보자.. 수백에서 수천발이 비슷한 각도에서 산란되어 날아가는 것이다.....근거리라면.. 정식 군용 납탄?납코팅탄? 수백 수천발은 숨어도 어지간한 나무까지 파손시키며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 후 이뤄지는 활에 의한 제압사격... 난 이 시리즈를 보며 느낀점이 나오는 전문가 분들이 언급한 거리보다 훨씬 원거리에서 부터 전투가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점과 다양한 화기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산군 당시에 조선에서 은광석에서 은을 손쉽게 추출할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는데 그게 일본으로 누출되고 신기하게도 풍신수길이 은광을 잘 찾아내서 은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하게 조총을 수입하고 기술자들을 대려다가 직접 생산도 하고 자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팔면서 까지도 조총을 대거 장만했는데 조총의 약점이 비가오는 우기에 심지가 젖어버려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고 두번째는 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데 신립의 기병들이 패한연유의 유추로는 당시에 갑자기 소나기 일수도 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서 늪지대 인데도 불구하고 조총을 사용할수 없을꺼라 생각해서 급하게 돌진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 되는데 모노노케히메란 애니를 보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총포수들이 파라솔 같은 거대한 우산을 매고 나와 펼처 놓고서 사격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파라솔을 펼치고 연사의 문제는 미리 장전된 조총을 잔뜩 싸아 놓고 쏘고 나면 바로 장전된 조총으로 아예 총기를 바꾸어 버리는 식으로 빠른 연사른 가능하게 해서 기병들이 어이 없이 당했다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봅니다. 하여튼 노예를 팔고 대량의 은을 유통해서 조총과 외국 기술진을 대려다 조총을 포수보다 더많이 보유할 정도로 상당히 많이 보유해서 약점인 연사속도를 해결했다고 봐요
연산군 당시에 조선에서 은광석에서 은을 손쉽게 추출할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는데 그게 일본으로 누출되고 신기하게도 풍신수길이 은광을 잘 찾아내서 은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하게 조총을 수입하고 기술자들을 대려다가 직접 생산도 하고 자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팔면서 까지도 조총을 대거 장만했는데 조총의 약점이 비가오는 우기에 심지가 젖어버려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고 두번째는 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데 신립의 기병들이 패한연유의 유추로는 당시에 갑자기 소나기 일수도 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서 늪지대 인데도 불구하고 조총을 사용할수 없을꺼라 생각해서 급하게 돌진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 되는데 모노노케히메란 애니를 보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총포수들이 파라솔 같은 거대한 우산을 매고 나와 펼처 놓고서 사격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파라솔을 펼치고 연사의 문제는 미리 장전된 조총을 잔뜩 싸아 놓고 쏘고 나면 바로 장전된 조총으로 아예 총기를 바꾸어 버리는 식으로 빠른 연사른 가능하게 해서 기병들이 어이 없이 당했다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봅니다. 하여튼 노예를 팔고 대량의 은을 유통해서 조총과 외국 기술진을 대려다 조총을 포수보다 더많이 보유할 정도로 상당히 많이 보유해서 약점인 연사속도를 해결했다고 봐요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고 너무들 좋아하는데 그렇게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ㅠ 일본은 우리나라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고만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승리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한 안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나라들은 보복의 칼을 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은 무려 7년동안 한반도에서 노략질을 벌린 일을 생각하면 분노와 함께 치가 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말 순진하게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사실만 가지고 좋아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일본군은 수많은 아녀자를 겁탈하고 죽였으며, 또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하고 나라의 보물들을 쓸어가다 시피 훔쳐 갔습니다. 그것뿐일까요??. 수많은 백성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일본군이 지난간 자리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쓰러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주택들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또 한 곡식을 다 빼았아 갔습니다. 이에 굶어 죽은 백성들도 즐비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일본군이 또 올까봐 농사를 짓지 못해 산에 숨어 살았습니다. 이에 전답은 나무와 풀이 무가 무성하게 자라 농지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저지른 처참한 결과를 잊어버리고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에만 고취되어 만세만 부르고 있는게 맞는 것일까요???.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일본은 조선이 복수하러 올까봐 걱정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유성룡 장군이 쓴 징비록이 일본에서 더 유명하였으며 엄청난 관심으로 상세히 분석하고, 판단한 이유입니다.
저는 미스테리한게 일본수군이 서남해 진출이 한산도에서 막히면서 해상수송을 못하게 되는데 문제는 가토의 함경도 군대는 동해안을 통한 해로 수송이 가능했음에도 가토군대조차 보급을 전혀 못받아서 심각한 보급난을 격었거든요. 일본이 동해안 해상 수송도 포기한 이유가 대체 뭘까요?
동해는 해류가 급해요.. 이건 고대부터 증빙된 사실임. 신라가 3국중에 제일 좆밥인 이유도 바다로 나갈수가 없으니까 또 바다에서 들어오는게 없으니까 신문물(중국)문물을 매번 제일 늦게 받아서 늦게 발전한거고 발해있을때도 왜와 교류가 그리 많지않았던 이유가 해류가 험난하여 교류가 많지 않았다는 역사가있습니다. 또 함경도에 내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당시에도 항구 같은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기도 아니고 동해쪽에 큰 항구를 만들수가 없는거죠
끝까지 영상을 듣지를 못하겠네요. 이놈의 질투쟁이들이.. 난리네.. 1. 선행되는 주장은 감사권을 발도할 조건이 아니라 감사권의 결과로 알게 된 내용이에요. 인과가 잘못됐죠. 2. 이혼에 배고할수가 없죠. 민희진과 방시혁이 서로 사귀는게 아니에요 이게 감정의 문제가 아니에요. 뭔놈의 변호사가 법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나요? 그렇게 따지면 하이브는 투자사일 뿐이에요. 민희진은 그냥 월급쟁이 자회사 사장이 아니에요 지금 이건 주주간 계약을 무력화 하려는 목적이 주에요. 이는 애초의 투자 조건이었을 것이에요.. 현재 기본 1000억에서 확장되면 3000억 가까지 가는 문제가 걸려있고 그 밑에 어도어든 하이브던.. 뉴진스던 있는 것이에요. 대박이네. ///// 하이브가 방시혁꺼도 아니고 방시혁이 과점 주주도 아니에요. 인수업체도 아니고 신생으로 법인을 설립해서 지금 하이브 레이블 산하에서 수익이 3등이에요. 위로 두개는 방탄과 세븐틴입니다. 보여줄건 다 보여준것이에요. 내가 하이브 주주라면 누구 편을 들까요? 120억으로 이정도 했으면 이제 남돌까지 만들면 장난 아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더구나 방시혁등이 원하니 않는 정확한 다른 방향으로 가서 만든 결과에요. ///// 일단 질투심좀 빼고... 만일 이게.. 서울대ㅐ 나오고 반도체 만든 박사라고 해도 이럴가요? 민희진은 kpop씬에 인물이에요. 대표적인 디렉이에요. 테딩와 함께. 테디네 화시는 1조에요. 아직 복격적으로 시작도 하기전에 그리고 미야오 나와서 봐요. 뉴진스랑 비교도 안되는.. 그럼 민을 영입할때 어느정도 조건이어야 할까요? 테디는 1조인데.. ///// 전홍준은 투자 받을때 지돈 십원도 없이 팔십억을 받았고 지분도 1도 안줬어요. 자.. 테디와 전홍준을 봤을때 민의 조건은 형편없어요. 전홍준 조건보다 나빠요. 액면으로 본다면.
역시 팩트에 의한 설명을 해주시는 임소장님.
[청정심(평기허심) 박치우]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
박사님 말씀 진짜 재밌어요...😂❤
약간... 논리적 오류가....
아타케부네는 여러 자료를 봐도.. 다이묘의 기함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함대.. 다이묘 별 함선집단의 기함과 극소수의 주력함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1592년 6월 등 난중일기에 나타난 내용을 봐도 각 분함대에서 왜장이 타고 있는 한척이 판옥선 만한 크기라는 묘사가 등장한다.
또한 이 아타케부네는 왜란 중 일본 입장에서도 도입활용 기간이 짧은 함선이었다.
뭐로 보나 세키부네가 일본군의 주력인데... 여러 자료에는 판옥선의 60%가량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조운선 정도 크기라고 한다.
조운선 중 80여명이상을 승선하는 군선이 대맹선이라 했으니... 세키부네는 탑승원만 따지면 대맹선 정도의 전투력? 규격?을 가졌다고 보는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위 컨텐츠의 내용처럼. 임진왜란 이전에 조총을 사용해 화력에 우위를 빼앗겼다는 식의 이야기는 논리적 비약이다.
임진왜란 전... 조선전기를 지나며. 왜적의 약탈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고려말 수준의 대량 침입은 이뤄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총은 일본에도 도입된지 오래지 않은 무장으로 도입당시의 엄청난 가격과 그 이후로도 매우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오다노부나가 이전에 대량사용되지 못했다. 오다노부나가의 대량사용 한 전적 역시 일본 서기의 특성상 매우 확대? 과장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많다.
그걸 일개 해적들이 화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정도로 대량사용한다?
또한 거리를 유지하는 근접전 전술? 여기 컨텐츠에서도 장대등의 사용이 묘사되는데....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무리가 많다.
사실. 조선의 함선들은 대다수 인원이 노군이다. 거기에 화포 담당을 제외하면.. 실제 살수들은 숫자가 많지 않다. 판옥선도 그럴진데.. 맹선은 더할 것이다.
즉, 소수의 인력으로 장대 등을 이용해 거리를 유지하도록 막으며 남는 살수들로 왜구의 선상 전투원을 화력제압한다???? 가능했을까?
더군다나.. 선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등선을 위해 노군까지 동원해 접근하는 왜군 함선을... 아무리 작은 세키부네라도 수십톤은 되었을 노를 젓든.. 해류로 인해서든... 그 무게의 함선이 접근하는걸 막대 몇개로 막는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뭐 요령이 있다면.. 여러명을 동원해 충격을 흡수하는 식으로 충격력을 줄이고 다시 밀어내는 방법등을 쓸수도 있겠지만.. 그럼 장대 한두개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장대당 인력 서너명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매우 서서히 다가온다면 모를까....그런데.... 등선을 위해 서서히????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조선군의 전술이 그렇다면 몇번 경험을 통해 배가 손상을 입더라도 빠르게 접근해 붙이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등선을 위해 이미 접근 또는 충돌한 왜선을 그 후에 밀어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등선 전에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는 소수의 인원과 소수의 장대로 매우 어렵고 위험한 방법일 것이다.
물론 왜란 후반으로 갈수록 왜군 선박이 대형화 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며.. 왜군의 등선육박전이 용이해졌다는 기록도 실록에 존재함으로
임용한 박사님이 말씀하신 왜군이 사용한 화력 제압+등선의 방법은 아마도 왜란 후기가 더 타당한 시점일 것이다.
또한 과거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임용한 박사님이 고려말 수군의 화포를 화약단지를 익혀 던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라는 식의 표현을 들은적이 있다...
당시가 바로 맹선과 세키부네가 맡붙는 시점일 것이다. 과연 화약단지가 주력이었을까? 물론 정식 학설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원(몽골)은 화포를 사용했다. 대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화포(대포)에 대한 기록은 공민왕시절 이미 등장한다... 진포해전은 우왕 시절이다.
최무선이 우왕시절 화약 양산 기술을 개발했으나. 화약의 활용에 대한 시도와 연구는 이미 공민왕 시절부터였다는 것이다.
또한 최무선의 연구분야는 화약 뿐 아닌 화기에 대한 부분도 있었으니... 화기가 없어 화약단지 형태 투척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 보다는
화포를 통해 장거리 공격, 화약단지??를 통한 근거리 투척공격이 더 올바른 활용이었을 것이다.
화전 또한 이미 존재하고 고려시대 화기 자체가 화살을 쏘는 형태가 주류였다고 하니.. 화포로 화전을 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또한 당시 저품질의 흑색화약을 익혀 던지는 형태가 주력이라면...
폭발보다 화재의 확산을 노리는 형태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주정 등을 이용한 화재가 더 용이 하지 않았을까? 수입산에 의존하는 유황이나 구하기 어려운 염초 보다 소주를 증류해 고순도 주정을 만드는게 더 손쉽고 저렴할 것같은데......
예상컨데... 고대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체계가 잡힌 조선수군은 화기를 체계적으로 상황에 따라 맞춤식 사용을 했을 것이다.
원거리 적에게 장군전(다양한 자료들은 장군전의 사용시 km급 사거리가 가능하다 언급된다. 또한 왜군 역시 거대한 화살이 날라오는 기록이 꽤 존재한다. 만들기 어렵고 적재량도 적을 수 밖에 없는 장군전은 원거리에서 숙련된 포수에 의해 신중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라 상상해볼수 있다. 가장 다수를 차지했다는 현자총통도 전용 차대전이 존재함으로 장거리 사격이 가능하며 일반 화살의 특성을 적용한 장군전이나 차대전은 자체 회전으로 일반 철환보다 사거리와 명중률이 높을 것이다.
중거리 적에게 일반 포탄 즉, 솔리드탄... 철환을 날리는 형태...가장 대량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근거리 적에게 조란탄으로 일종에 산탄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수십미터의 거리에서 측면의 전 화포가 조란탄을 살포했다고 생각해보자.. 수백에서 수천발이 비슷한 각도에서 산란되어 날아가는 것이다.....근거리라면.. 정식 군용 납탄?납코팅탄? 수백 수천발은 숨어도 어지간한 나무까지 파손시키며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 후 이뤄지는 활에 의한 제압사격...
난 이 시리즈를 보며 느낀점이 나오는 전문가 분들이 언급한 거리보다 훨씬 원거리에서 부터 전투가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점과 다양한 화기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산군 당시에 조선에서 은광석에서 은을 손쉽게 추출할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는데 그게 일본으로 누출되고 신기하게도 풍신수길이 은광을 잘 찾아내서 은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하게 조총을 수입하고 기술자들을 대려다가 직접 생산도 하고 자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팔면서 까지도 조총을 대거 장만했는데 조총의 약점이 비가오는 우기에 심지가 젖어버려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고 두번째는 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데 신립의 기병들이 패한연유의 유추로는 당시에 갑자기 소나기 일수도 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서 늪지대 인데도 불구하고 조총을 사용할수 없을꺼라 생각해서 급하게 돌진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 되는데 모노노케히메란 애니를 보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총포수들이 파라솔 같은 거대한 우산을 매고 나와 펼처 놓고서 사격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파라솔을 펼치고 연사의 문제는 미리 장전된 조총을 잔뜩 싸아 놓고 쏘고 나면 바로 장전된 조총으로 아예 총기를 바꾸어 버리는 식으로 빠른 연사른 가능하게 해서 기병들이 어이 없이 당했다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봅니다. 하여튼 노예를 팔고 대량의 은을 유통해서 조총과 외국 기술진을 대려다 조총을 포수보다 더많이 보유할 정도로 상당히 많이 보유해서 약점인 연사속도를 해결했다고 봐요
연산군 당시에 조선에서 은광석에서 은을 손쉽게 추출할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는데 그게 일본으로 누출되고 신기하게도 풍신수길이 은광을 잘 찾아내서 은을 이용해서 어마어마하게 조총을 수입하고 기술자들을 대려다가 직접 생산도 하고 자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팔면서 까지도 조총을 대거 장만했는데 조총의 약점이 비가오는 우기에 심지가 젖어버려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고 두번째는 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데 신립의 기병들이 패한연유의 유추로는 당시에 갑자기 소나기 일수도 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서 늪지대 인데도 불구하고 조총을 사용할수 없을꺼라 생각해서 급하게 돌진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 되는데 모노노케히메란 애니를 보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총포수들이 파라솔 같은 거대한 우산을 매고 나와 펼처 놓고서 사격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파라솔을 펼치고 연사의 문제는 미리 장전된 조총을 잔뜩 싸아 놓고 쏘고 나면 바로 장전된 조총으로 아예 총기를 바꾸어 버리는 식으로 빠른 연사른 가능하게 해서 기병들이 어이 없이 당했다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봅니다. 하여튼 노예를 팔고 대량의 은을 유통해서 조총과 외국 기술진을 대려다 조총을 포수보다 더많이 보유할 정도로 상당히 많이 보유해서 약점인 연사속도를 해결했다고 봐요
? 논리적오류를 지적하시기에는
논리적으로 많이 부족하내요
결정적인 논리적오류 지적하는 의견의 뒷받침이 본인 생각뿐이 없군요
사료가중요하죠
고려 최무선 장군의 진포해전 승리와 화포 개발이 더욱 빛나보입니다
소장님의 말씀 중 "진주 창신도"는 당시 진주변방 창선도 적량입니다. 그곳에서 일박 한것입니다 적량에는 적량성(둘레1182척, 병참지원) 및 굴항, 전망대.국사봉,망께,망산 등) 이 존재합니다.
임진란에 그리 당하고,또 경술국치로 36년 식민지를 당하고~
신경을 전부 밥그릇에만 써나???
왕조야 없어지지만 대비책이라도 있었어야지.
원래 그 정도 되면 왕조가 망히고 새 나라가 일어나야 했음~
그거 인 되면서 근대화도 안 되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된 거임~
전문가분들이 왜 자꾸 와키자카를 와카자키라고 하냐?????
우리는 천재적인 리더.과학자들이 나라를 지켰는데 지금은 뭐 하는건지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고 너무들 좋아하는데 그렇게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ㅠ 일본은 우리나라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고만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승리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한 안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나라들은 보복의 칼을 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은 무려 7년동안 한반도에서 노략질을 벌린 일을 생각하면 분노와 함께 치가 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말 순진하게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사실만 가지고 좋아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일본군은 수많은 아녀자를 겁탈하고 죽였으며, 또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하고 나라의 보물들을 쓸어가다 시피 훔쳐 갔습니다. 그것뿐일까요??. 수많은 백성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일본군이 지난간 자리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쓰러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주택들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또 한 곡식을 다 빼았아 갔습니다. 이에 굶어 죽은 백성들도 즐비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일본군이 또 올까봐 농사를 짓지 못해 산에 숨어 살았습니다. 이에 전답은 나무와 풀이 무가 무성하게 자라 농지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저지른 처참한 결과를 잊어버리고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에만 고취되어 만세만 부르고 있는게 맞는 것일까요???.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일본은 조선이 복수하러 올까봐 걱정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유성룡 장군이 쓴 징비록이 일본에서 더 유명하였으며 엄청난 관심으로 상세히 분석하고, 판단한 이유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는 국방을 위해 어떤 무기개발에 힘썼는지 ᆢ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일제가 쳐들어올때 똑같이 일방적으로 당했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방에 힘써야하는
이유다.
허준동상 자켓이 불쌍해 보여.....
여자 출연자 상의... 빌려입은거 같은데..
와 대단하당 대한민국🇰🇷 조선수군들의 지혜👍🏻
박수치는 이상민보면 쟈는 하는일이 뭔지 모르겠음. 그냥 술자리 상무 같음
방종관은 한산대첩을 한산해전이라 표현할까?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이라 표현하는 뉴라이트적 사고방식인가요? 아시는분 답변요.
7월4일 이전 고성 운흥사에서 모여 작전농의(김천일 등 )을 하였고 향로봉(578M)에서 작전 지역을 결정한것 같음, 참고로 향로봉에서는 거제 한산도 앞바다가 환하게 관측됨...
조선군 특) 활 쏘면 다 맞추는게 당연~~
와카자키 미치겠네 ㅋㅋㅋ
소장님 당시 7월8일은 '
조금때'라 물때가 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미스테리한게 일본수군이 서남해 진출이 한산도에서 막히면서 해상수송을 못하게 되는데 문제는 가토의 함경도 군대는 동해안을 통한 해로 수송이 가능했음에도 가토군대조차 보급을 전혀 못받아서 심각한 보급난을 격었거든요. 일본이 동해안 해상 수송도 포기한 이유가 대체 뭘까요?
태백산맥 넘어서 보급 가능함?
@@uncle30boy 해상으로 함경도 가는데 태백산을 왜 넘음? 동해안 따라 올라가면 함흥인데.. 그런데도 가토군조차 보급이 안되서 겨울옷이나 신발도 없이 눈길로 산맥넘어 퇴각하면서 남은 전투원 절반도 동상과 부상으로 전투력을 상실했음.
@@신-w2p산을 타고 보급을 해야 하는데다 포구가 부산포 말곤 마땅하지 않아서 일것 같아요. 해류에 영향도 있고 지리에 문제가 있어서 지도에 표시된 루트가 아니면 가다가 길을 잃어먹기도 쉽고 산악지에서 매복에 걸릴수도 있구요.
동해는 해류가 급해요.. 이건 고대부터 증빙된 사실임. 신라가 3국중에 제일 좆밥인 이유도 바다로 나갈수가 없으니까 또 바다에서 들어오는게 없으니까 신문물(중국)문물을 매번 제일 늦게 받아서 늦게 발전한거고 발해있을때도 왜와 교류가 그리 많지않았던 이유가 해류가 험난하여 교류가 많지 않았다는 역사가있습니다.
또 함경도에 내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당시에도 항구 같은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기도 아니고 동해쪽에 큰 항구를 만들수가 없는거죠
와카자키??? 와키자카가 아니고???
거북선 상부에, '물에 적신 가마니'를 덮어 송곳을 감추고 화공에 대비한것이 분명히 있다.
이걸 말하는 이가. 하나도 없네.
와카자키?
와키자카 아닌가요?
다들 왜이렇세요!
ㅎㅎㅎ
이자카야
@@happy06147덴노헤이카반쟈이?😊
댓글을보면 일본놈들이 대단하긴 한거같다. 갈수록 일본놈같이 생각하는 인간들이 많아진다..
여 MC 왜케 지루해 보이냐 ㅋㅋㅋ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할때 여친보는거 같네 ㅋㅋㅋㅋㅋㅋ
결론 조선은 나라를 일본에게 빼았겼다
와카자키? 와키자카 ㅋㅋㅋㅋ
전라도라 합시다
영남은 경상도고
전라도라 말을못해
그냥 상상력 발휘한거네
이젠 나도 햇갈린다
와키자카 인지 와카자키 인지 ...니미럴 내가 알기로는 와키자카인데 ..,
그럼 아가리또고자이마스
왜 자꾸만 일로오냐. 자동재생 미쳤나
긔런거 잡는게 강대국가죠?
프로그램을
이중으로 보여주나?
역시나 이순신 장군님의 활약을 유달리 불편해하고 발작하는 인간들이 여기에도 좀 있네요
여직원 예뻐요
오랜만에 혀 안 잛으신 분 ㅡㅡb
지빌 살꼼 빼라
끝까지 영상을 듣지를 못하겠네요.
이놈의 질투쟁이들이.. 난리네..
1. 선행되는 주장은 감사권을 발도할 조건이 아니라 감사권의 결과로 알게 된 내용이에요. 인과가 잘못됐죠.
2. 이혼에 배고할수가 없죠. 민희진과 방시혁이 서로 사귀는게 아니에요 이게 감정의 문제가 아니에요.
뭔놈의 변호사가 법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나요?
그렇게 따지면 하이브는 투자사일 뿐이에요.
민희진은 그냥 월급쟁이 자회사 사장이 아니에요
지금 이건 주주간 계약을 무력화 하려는 목적이 주에요.
이는 애초의 투자 조건이었을 것이에요..
현재 기본 1000억에서 확장되면 3000억 가까지 가는 문제가 걸려있고
그 밑에 어도어든 하이브던.. 뉴진스던 있는 것이에요.
대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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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가 방시혁꺼도 아니고
방시혁이 과점 주주도 아니에요.
인수업체도 아니고 신생으로 법인을 설립해서 지금 하이브 레이블 산하에서 수익이 3등이에요.
위로 두개는 방탄과 세븐틴입니다.
보여줄건 다 보여준것이에요.
내가 하이브 주주라면 누구 편을 들까요?
120억으로 이정도 했으면
이제 남돌까지 만들면 장난 아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더구나 방시혁등이 원하니 않는 정확한 다른 방향으로 가서 만든 결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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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질투심좀 빼고...
만일 이게.. 서울대ㅐ 나오고 반도체 만든 박사라고 해도 이럴가요?
민희진은 kpop씬에 인물이에요.
대표적인 디렉이에요. 테딩와 함께.
테디네 화시는 1조에요.
아직 복격적으로 시작도 하기전에
그리고 미야오 나와서 봐요. 뉴진스랑 비교도 안되는..
그럼 민을 영입할때 어느정도 조건이어야 할까요?
테디는 1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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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준은 투자 받을때 지돈 십원도 없이 팔십억을 받았고
지분도 1도 안줬어요.
자.. 테디와 전홍준을 봤을때 민의 조건은 형편없어요.
전홍준 조건보다 나빠요. 액면으로 본다면.
헛 국뽕 정신차려
조선 수군 X
전라도 수군 ㅇ
뭐야 전라도는 외국이라는거 인정해버리는거야? ㅋㅋㅋㅋㅋ
충청도장군 ㅎ
먼 개소리여???
고북선은 없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화포는 어케되냐?
임용한, 이 자는 왜 주는 것 없이 싫을까!!!!
국뽕 방송 안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