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과 노비가 의형제를 맺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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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 лют 2025

КОМЕНТАРІ • 226

  • @knowboastknowledge
    @knowboastknowledge  2 роки тому +173

    이 영상의 마지막에
    실종자의 사진과 정보가 있습니다.
    실종자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른 실종자들을 보고 싶으시면
    경찰청의 안전Dream을 검색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발로하는발컨
      @발로하는발컨 2 роки тому +7

      영상 마지막에쓰는것도 좋은데 신상정보도 댓글에 같이 적어주세요! 너무 짧게 지나가네요 ㅠ

    • @enerji4330
      @enerji4330 2 роки тому +3

      궁금한데요. 쇼츠는 광고도 안붙는데 수익이 발생하나요?

    • @we_h8_the_popo
      @we_h8_the_popo 2 роки тому +1

    • @knowboastknowledge
      @knowboastknowledge  2 роки тому +9

      @@발로하는발컨 쇼츠가 1분 이내의 영상이어야 하다보니 실종자의 신상정보가 짧을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 그럴 땐 멈춰서 봐주세요!

    • @페페르퓨
      @페페르퓨 2 роки тому +17

      얨병 실종자가 왜케 많냐? 보니깐 어른에 노인에 10살짜리 애들도 있던데 여튼 그들이 모두 험한꼴 안보고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 @오태현-s9k
    @오태현-s9k 2 роки тому +722

    저 노비가 ㄹㅇ 상남자인게
    사약은 왕이 하사하는건데
    그걸 양반도 아니고 노비가 엎음
    아버지 가시는길 아들이 보게하는것도 못해주냐면서 ㅋㅋㅋㅋ

    • @korean_queen69
      @korean_queen69 2 роки тому +94

      양반이면 절대 못ㅇ엎지 잃을게 많은데 ㅋㅋ 물론 노비도 못 엎음

    • @lIlIlIlIIlIlllIIlIII
      @lIlIlIlIIlIlllIIlIII 2 роки тому +67

      @@korean_queen69 ㅇㅇ양반이면 그나마 명예롭게 죽는건데 노비는 잃을게 없지

    • @정철호-s6o
      @정철호-s6o 2 роки тому +14

      어차피 잃을것 없는데 이판사판.

    • @asdx88
      @asdx88 2 роки тому +47

      진짜 금부도사가 덮지 않았다면 능지처참 당할뻔... 양반은 사약으로 곱게나 보내주지...

    • @jikim6870
      @jikim6870 2 роки тому +9

      효를 중시하는 문화라서 ㅇㅇ

  • @류윤석-q8s
    @류윤석-q8s 2 роки тому +417

    어찌보면 평소에 노비한테도 대우를 잘해줬으니까 노비도 목숨걸고 도와준듣

    • @john4615
      @john4615 2 роки тому +11

      그게 정답일듯

    • @오재훈-w2t
      @오재훈-w2t 2 роки тому +4

      그쵸 노동착취 하고 물건취급했으면..

    • @안현민-n3c
      @안현민-n3c 2 роки тому +6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나 봅니다.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2 роки тому +2

      1950년 전쟁일어났을때
      베풀며 인정넘치던 잘살던 양반 가문들은
      노비들이 지켜줬다지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모루-n9o
    @모루-n9o 2 роки тому +127

    진짜 목숨걸었네

  • @감자돌이-o5h
    @감자돌이-o5h 2 роки тому +58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네 ㅋㅋ

  • @최무용-g5g
    @최무용-g5g 2 роки тому +87

    앜ㅋㅋ 놀란 개사진 너무 귀여워

  • @늑대개-x8w
    @늑대개-x8w 2 роки тому +99

    어명을 ㄷㄷㄷ 미쳤네

  • @쿠쿨칸-q1o
    @쿠쿨칸-q1o 2 роки тому +109

    ㄹㅇ 목숨걸고 판엎은일

  • @랄라룰루0070
    @랄라룰루0070 2 роки тому +53

    그보다 금부도사가 홍동석을 살려뒀다는거
    더신기ㅋㅋ

    • @뱅가드-j9e
      @뱅가드-j9e 2 роки тому +5

      공무원이니깐
      지 목도 날라가거든

    • @신라의달밤불국사
      @신라의달밤불국사 2 роки тому +2

      금부도사가 노비에게 무시당했다는게 더 창피한 일이고 목숨건 노비를 보고 감동했을 수도 있고요

    • @Hyuchan1002
      @Hyuchan1002 2 роки тому +1

      금부도사도 상남자

    • @Hyuchan1002
      @Hyuchan1002 2 роки тому

      금부도사도 상남자

    • @还没见过世面的井底之
      @还没见过世面的井底之 Рік тому

      금부도사도 사약임무를 완수 못하면, 엄벌을 받을 상황이라서, 안 죽을려고 머리쓴거임.

  • @박용덕-t6y
    @박용덕-t6y 2 роки тому

    감사합니다.

  • @이주연-t7z
    @이주연-t7z 2 роки тому +75

    근데 저정도면 잘 대해줬었나? 자신이 죽을수도 있는 건데 그걸 그냥 엎다니..

    • @youp7964
      @youp7964 2 роки тому +15

      저당시 노비취급보면 잘대해주니까 그랬겠지. 반대로 주인죽이는경우도 있었는데ㅋ

    • @파파-o6i
      @파파-o6i 2 роки тому +4

      죽는 정도가 아니지.. 다리에 뜨거운거 찌이이ㅣ익 할듯

    • @홍영욱-k3s
      @홍영욱-k3s 2 роки тому +3

      물건만도 못한 대우 받았으니까요..
      괴롭히지만 않아도 잘 대우해준거고
      밥만 제때재때 줘도 ㅈㄴ 천사 수준이였죠

    • @홍영욱-k3s
      @홍영욱-k3s 2 роки тому

      @@2rm730 조선 시대때 노비 대우 어땠는지 모름?? ㄹㅇ 고려보다도 못했음 ㅋㅋㅋㅋㅋ
      고려 말기때는 이성계 아버지가 부인 죽고나서 노비랑 재혼할 정도로 어느정도 오픈 마인드인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개씹선비 조선은 그딴거 없음 ㅋㅋㅋㅋㅋ
      여노비는 돌림빵으로 갖고 놀기도 했고 학대와 고문으로 과롭힌 경우도 있고 백정은 천민들 사이에서도 돌팔매질 당하고 성희롱 성폭행 하면서 놀아나다가 자살한 캐이스도 있음
      다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닜고 관심 갖고 찾아보면 어이없는 사건들 ㅈㄴ많엌ㅋㅋㅋㅋ
      세종때 사유 재산 인정해주고 유가 휴직 주는거? 그거라도 안해줬으면 추노사태 또 터지니까 그거라도 보상해준거고 그마저도 새종 이후로는 노비대우 개 씹창났다
      하다못해 양반 자식이여도 서자면 서얼이라며 천대받고 노비 종모법때문에 엄마가 노비면 양반 아빠를 둬도 노비가 되었단다
      노비 종부법? 신분 상승의 기회? 노비 인권 보장?
      다 세종 초기때만 보장된거다
      그 이후로는 그딴거 없었다

    • @soosoosoo1234
      @soosoosoo1234 2 роки тому

      @@2rm730이쁜 여자노비는 성노리개 수준이였다 양반 애비랑 자식이 서로 먼저하겠다고 싸웠슴

  • @MrCho-yg5rraddfht4ehkkiurwdggg
    @MrCho-yg5rraddfht4ehkkiurwdggg 2 роки тому +6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 가시는 주인어른을 위해 충성한 노비 그런 노비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한 주인 아들 참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야기다.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conellshone3637
    @conellshone3637 2 роки тому +13

    옛날 우리조상들의 모습은 정말 반듯했다 이런 멋진 조상을 둔 지금우리는 양아치들이 권력을 지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ㅜ ㅜ 슬프다

    • @우일환-e5b
      @우일환-e5b 2 роки тому

      조선은 500년 동안 자국민을 노비로 만들어 짐승처럼 사고팔은 세계역사 에서도 유래를 찾을수 없는 최악의 왕조입니다

    • @자유를꿈꾸는몽상가
      @자유를꿈꾸는몽상가 2 роки тому +2

      ㅋㅋ 멀 착각을 겁나 하시네.
      우리조상관리들이 얼마나 백성들 수탈하는 개양아치인줄도 모르고.
      지금이나 그때나 별로 달라진거 없다.
      좀더 우아하게 해먹는게 좀 다를뿐.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천대식-s8k
    @천대식-s8k Рік тому +1

    노비가 목숨을 걸고 자기 주인을 위해 저렇게 할 정도면 ... 그 주인은 훌륭한 인격자였을듯.

  • @쿠쿠-o1y
    @쿠쿠-o1y 2 роки тому +5

    고증이 크게 틀린 부분이 있네요. 사약은 단번에 죽는게 아녀서 많은 양을 미리 준비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먹였다고 합니다. 한번 들이키며고 그릇 놓치며 피 흘리고 죽는건 드라마.

    • @user-nn9dw7cw2c
      @user-nn9dw7cw2c 2 роки тому

      그릇이 아니라 항아리를 깨버린걸로 암

    • @김유빈-c9d
      @김유빈-c9d Рік тому +1

      사약은 주변에서 만드는거로 들음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김동훈-d1m
    @김동훈-d1m 2 роки тому +3

    의가 있는 홍동석.
    서로에게 의가 있다면
    과실이있지만.
    의를버리면 끝이 좋지 못하다.
    형제간이나친구간에.많은 배신이있다 결국 망조

  • @쥐쥐-k5m
    @쥐쥐-k5m 2 роки тому +1

    금부도사 놀란거 개웃기넼ㅋㅋㅋㅋ

  • @슈가마미괌
    @슈가마미괌 2 роки тому +2

    아 ~너무나 좋은아이디어요 !!!

  • @camping-farmer
    @camping-farmer 2 роки тому +2

    무릇 참된 의리란게, 목숨을 걸수
    있는 관계란걸 보여줍니다.

  • @hu-ni-U
    @hu-ni-U 2 роки тому +5

    사약은 한잔만 들고가는게 아님
    한잔 먹고 안죽을수 있기에
    사약은 리필됨 그러니 이야기 자체가
    말이 앞두가 안맞음

    • @karisam91
      @karisam91 2 роки тому

      있는 사약을 다 엎었다구.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hu-ni-U
      @hu-ni-U Рік тому

      @@이통영-y9v 본이이 목격한거나 경험한듯 서술하시는데 사약은 무한 리필이 맞습니다.
      임금이 주는약으로 생을 마감하라 명한것을 금부도사가 맘대로 목을치다니요??
      사약을 10잔 이상 마셨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심심하시면 찾아보세요ㅎㅎ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hu-ni-U 말같지도 않은 소리작작하시고요 무식하면 아닥하세요 말이 안되는것이 그러면 사약을 백잔 먹어도 안죽으면 동해바다에 사약을 풀어 그 바닷물을 다 먹일 것입니까
      이러니 당신같은 사람들 덕분에 정명석같은 인간이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나무위키 편)
      5.1.죽음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장인 송현수와 숙부 금성대군의 죽음을 듣자 슬픔을 못 이겨 목을 매고 자살하였고, 후에 예를 갖춰 장사지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승정원일기나 이후 무덤을 방치해 둔 것, 그리고 후대 왕들의 기록을 보면 타살이 확실해 보이고, 아마도 사약을 거부한 후 타살로 추측된다. 선조실록에 기대승이 경연 때 단종 사망 당시 영의정이던 정인지를 비판하면서 금부도사가 사약을 주었다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사약기록이 의금부에 남아 있고 당시 사형장면을 현지인이 기록하였고 이것을 관찰사가 보았다는 것 등을 내세운 것으로 보아, 사약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사약을 받은 사람이 약발이 잘 받지 않거나 반항하거나 하여 참살이나 교살로 직접 죽이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지만, 단종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사약을 거부하다가 끝내 타살을 당한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사약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약은 문자 그대로(賜, 줄 사) 임금이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는 죽음을 내리는 은사의 개념이었는데, 단종은 세조의 이런 '하사품'만큼은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이야기이다."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hu-ni-U 나무위키
      각주19] 참고로 이때 사약을 1사발이나 마셨는데도 죽지 않자 관례대로 금부도사가 송시열을 활줄로 교살해야 했는데 80세가 넘은 노론의 거두를 차마 그렇게 죽일 순 없었던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부디 사약을 마셔서 조용히 죽어달라고 읍소까지 하였다. 송시열도 이런 금부도사가 가여웠던지 직접 칼로 입에 상처를 낸 후에 사약을 3사발 정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한다.
      각주 [20] 참고로 송시열은 사약을 3번이나 마시고 나서야 죽었다. 흠좀무. 보통 사약을 먹고 바로 죽지 않으면 활줄로 목을 졸라 죽이는데, 송시열은 노론의 거두인 만큼 목졸라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약을 세 번이나 먹인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사사된 사람들 중의 절반 가량은 사약이 통하지 않아 활줄로 교살되었다

  • @참새가짹짹짹
    @참새가짹짹짹 2 роки тому +6

    금부도사가 노비 안죽이고 거짓보고 올린 이유
    어명수행을 노비가 방해한걸 사실 그대로 올리면
    조사 들어갈테고 거기서 노비가 이미 저럴 징조가 몉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관리하지 못해 사달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죄가 생김
    그리고 어차피 사약은 다시 와야하니까
    이러면 금부도사는 진계는 징계대로 밪고 시간만 벌어준 꼴이니
    그냥 덮음….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송준호-r8s
    @송준호-r8s 2 роки тому

    사약을 옮길때 작은 단지이지만 꽤 양이 많아 몇사발은 될텐데 이 이야기는 좀 지어낸듯.
    또 불량사약이 많아서 잘 죽지 않는데 이유는
    사약을 만드는 의원이 사형수쪽의당파가 다시 권럭을 잡을 경우를 대비해 극약보다는
    설사약 수준으로 만드는 겨우도 있다고 함. 금부도사도사 마찬가지일텐데...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송준호-r8s
      @송준호-r8s Рік тому

      @@이통영-y9v 사약을 인근에 가서 다리는것은 원거리일 경우 맞을것 갿네요. 다만 제글중 어의가 약에 안배를 했다는것은 사실이고 또 몇번 먹여도 죽지 않으면 바로 다른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습니다. 네이버나 다른 유투버를 참고하세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송준호-r8s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온갖 사기와 얼토당토 않는 개소리가 판을 치지요 그걸 곧바로 믿는 당신 수준도 참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송준호-r8s 나무위키 편 중
      5.1 죽음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장인 송현수와 숙부 금성대군의 죽음을 듣자 슬픔을 못 이겨 목을 매고 자살하였고, 후에 예를 갖춰 장사지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승정원일기나 이후 무덤을 방치해 둔 것, 그리고 후대 왕들의 기록을 보면 타살이 확실해 보이고, 아마도 사약을 거부한 후 타살로 추측된다. 선조실록에 기대승이 경연 때 단종 사망 당시 영의정이던 정인지를 비판하면서 금부도사가 사약을 주었다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사약기록이 의금부에 남아 있고 당시 사형장면을 현지인이 기록하였고 이것을 관찰사가 보았다는 것 등을 내세운 것으로 보아, 사약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사약을 받은 사람이 약발이 잘 받지 않거나 반항하거나 하여 참살이나 교살로 직접 죽이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지만, 단종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사약을 거부하다가 끝내 타살을 당한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사약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약은 문자 그대로(賜, 줄 사) 임금이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는 죽음을 내리는 은사의 개념이었는데, 단종은 세조의 이런 '하사품'만큼은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이야기이다.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송준호-r8s 나무위키
      각주19] 참고로 이때 사약을 1사발이나 마셨는데도 죽지 않자 관례대로 금부도사가 송시열을 활줄로 교살해야 했는데 80세가 넘은 노론의 거두를 차마 그렇게 죽일 순 없었던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부디 사약을 마셔서 조용히 죽어달라고 읍소까지 하였다. 송시열도 이런 금부도사가 가여웠던지 직접 칼로 입에 상처를 낸 후에 사약을 3사발 정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한다.
      각주[20] 참고로 송시열은 사약을 3번이나 마시고 나서야 죽었다. 흠좀무. 보통 사약을 먹고 바로 죽지 않으면 활줄로 목을 졸라 죽이는데, 송시열은 노론의 거두인 만큼 목졸라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약을 세 번이나 먹인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사사된 사람들 중의 절반 가량은 사약이 통하지 않아 활줄로 교살되었다

  • @saintcho7425
    @saintcho7425 2 роки тому +8

    여기 조씨가 땅콩 조씨입니다.
    대한항공 오너일가죠.

    • @rayyy915
      @rayyy915 2 роки тому

      이게 핵심인데 ㅋㅋ

  • @redblackgoat
    @redblackgoat 2 роки тому +3

    1. 사약을 받을 자가 난동을 부리며 사약을 엎는 경우가 허다해 예비용으로 여러개의 사약을 들고 갔을 뿐 아니라 한 번에 죽는 경우가 없어 죽을 때까지 몇그릇을 마셔야 되는데, 한 번에 달이는 양이 몇 그릇은 나올 양이라 한 그릇 엎었다고 다음약을 기다려야된다는 건 말이 안됨.
    2. 왕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는 일반인이 방해해도 즉결처분인데 노비가 사약을 엎었는데도 목숨을 부지하고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면천까지 받았다?
    어떠한 사유로든 저 두가지 현실이 기적적이게도 성립됐어야 가능한 이야기.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자유를꿈꾸는몽상가
    @자유를꿈꾸는몽상가 2 роки тому

    감동적인가?
    그러면 노비근성 있는거지.
    평생 주인님 발밑에서 충성스럽게 살다 면천 받고 개감동 눈물 주륵.
    지금도 누군가의 종으로 사는 인간들 아직도 많더라.
    지가 종인줄도 몰라.ㅋㅋ

  • @상머슴-r8e
    @상머슴-r8e 2 роки тому +26

    여기서 사약은 죽을약이 아니고 왕이 하사한 약 이라는 뜻입니다

    • @사과가너무좋다
      @사과가너무좋다 2 роки тому

      사가 죽을 사가 아니라 하사할 사 자군요

    • @모노데라
      @모노데라 2 роки тому

      하사할 사
      약 약

    • @hotewang
      @hotewang 2 роки тому +1

      그려? 반품시켜.

    • @lamr.3995
      @lamr.3995 2 роки тому

      영상 보는 사람들은 다알듯ㅡㅡ
      몇일전에 봐서..

  • @태디의하루
    @태디의하루 23 дні тому

    금부도사 표정 알만하네 ㅋㅋ 역시 인생은 노빠꾸지

  • @downup4929
    @downup4929 2 роки тому +6

    노비가... 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 @전동혁-u4q
      @전동혁-u4q 2 роки тому +11

      홍동석이 면천되고 말직(낮은 벼슬) 받은 기록이 있는거 보면 추측컨대 조관빈이 홍가 별보에 끼워준듯, 조태채가 노론 4대신이라 불릴 정도로 목소리 꽤나 내는 사람이었고 사후 복권됐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임. 인맥 써서 다른 집안에 꽂아주는건 일도 아니었을테니

  • @kimjwajin5211
    @kimjwajin5211 2 роки тому +2

    노비는 천 방 지 축 마 골 피 씨만 있는.줄

  • @쩌엉나라
    @쩌엉나라 2 роки тому +7

    노비는 안죽은게신기하네

  • @형님-c5t
    @형님-c5t 2 роки тому +1

    금부도사는 어명을 수행중이라 현장에서
    홍동석을 즉시 목을 자를수 있었으며
    당시 노비가 홍씨라는
    성까지 있다는건
    약간 조작 냄새가 있다

  • @캡틴마블링
    @캡틴마블링 2 роки тому

    구라.사약이란게 한그릇에 가는게 아니라 여분을 항상 들고감.

  • @geniuskim4329
    @geniuskim4329 2 роки тому +19

    왕이 하사한 약을 노비가 엎었는데,
    금부도사는 거짓보고를 하고ㅋㅋㅋ
    그 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네.ㅋ

    • @친미멸공반중
      @친미멸공반중 2 роки тому +1

      이런건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죠.....여럿한테 좋은 보탬이
      된거니....
      어차피 죽을 사람도 한을 갖고 가면 다 안좋으니까....

    • @hotewang
      @hotewang 2 роки тому

      니가 금부도사여....넌 어찌 할 거여? 사실직고를 할테냐? 대갈빡에 돌만 가득 들었으니 그렇게 할테지? 그럼 넌 모가지고 종놈도 무사하지 못했을거다 ....어느게 낫겠냐?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dongsunchoi5547
    @dongsunchoi5547 2 роки тому

    노비가 말을 걸어?
    말이되냐구요?
    노비는 사람이 아닌데 그당시에
    노비가 성도 있네욬ㅋㅋ

    • @dongsunchoi5547
      @dongsunchoi5547 2 роки тому

      @고등어자반 노비 면천은 왕 밖에 없는데!
      쓰다 버려도 노비는 노비 이고
      평민도 성 없이 사는데
      왕이 사약을 내렸는데 노비가 그걸 막는다?
      그리고 사약을 진도에서 만들면 되지 그걸 한양으로 가져간다?
      냉보온병이라도 있었나?
      겨울이면 가능하겠지만 날 더워지면 가다가 상하겠네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터미네이터-q5x
    @터미네이터-q5x Рік тому

    이글의
    사실 관계를 떠나서 주위에
    조씨성 가진 사람은 곁에 두지 마세요.

  • @allankwon
    @allankwon 2 роки тому +2

    평소에도 사노비에게 잘해줬고 노비도 주인을 잘 따랐다는거겠네요... 사노비는 완전 재산 물건취급이라 주인 잘못만나면 굉장히 비참한데 짐승보다 못할정도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허허현영-f6y
    @허허현영-f6y 2 роки тому +3

    진도가 예전에 유배지역이었다고하더니 사실이었군

    • @윤혜원-u6s
      @윤혜원-u6s 2 роки тому

      트롯가수ㅡ 성함 떠오르는

  • @윤혜원-u6s
    @윤혜원-u6s 2 роки тому

    실종자들 죄에ㅡ 무사히 찾길요ㅡ

  • @리페어맨-o2u
    @리페어맨-o2u Рік тому

    노비에게 인간적으로 잘해줬겠지 그러니 목숨걸고 사약을 엎었지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chojaechan
    @chojaechan 2 роки тому

    와... 이런 역사는 어느 책을 보면 알 수 있나요? 항상 응원합니다.

    • @fiercehan6791
      @fiercehan6791 2 роки тому

      있지않을가요????

    • @ZAEIT
      @ZAEIT 2 роки тому +1

      조선왕조실록

    • @chojaechan
      @chojaechan 2 роки тому

      @@ZAEIT 고맙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

    • @ZAEIT
      @ZAEIT 2 роки тому

      @성이름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지적해줘서 감사 ㅋㅋㅋㅋ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Lauterbrunnen1106
    @Lauterbrunnen1106 2 роки тому +9

    ' 아 사약으로 편하게 죽으면 안되는데 '

  • @一刀流-k8q
    @一刀流-k8q 2 роки тому +9

    여기서 조씨가문이 대한항공 그 조씨가문입니다ㅎ

  • @제시리버-t7k
    @제시리버-t7k 2 роки тому +4

    홍동석 후손이 무슨 재벌 그룹 이라던데

  • @럭비공-i8k
    @럭비공-i8k 2 роки тому +2

    교훈 정쟁에서 밀리면 죽는다
    이모~~~한땡땡 전 추가요
    아니 비꼬는거에요 우스워요
    이모가 ㅎㅎ

  • @군침이싹도노-k6m
    @군침이싹도노-k6m 2 роки тому +6

    알면 자랑 할수는 있겠네요

  • @띠이모
    @띠이모 2 роки тому +1

    그 사연도 소개하면 웃길텐데 그 사약 항아리째 먹고도 안죽어서 별짓다했던 그분 ㅋㅋ

  • @hanswoody19xx
    @hanswoody19xx 2 роки тому

    땅콩회항 대한항공 조상 이야기이군 저때 노비가 조씨성 사용을 허락받고 조씨로 살았다고 하던데
    저때 노비는 성씨가 있는 사람도 있었고 없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

  • @aqsaqs1417
    @aqsaqs1417 2 роки тому +2

    노비는 성이없었는데 어떻게 홍씨 성을 가졌을까 생각했는데 면천후 얻은 성과 이름일거같군

    • @정일품영의정
      @정일품영의정 2 роки тому +3

      홍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성씨가 노비이고 양반입니다.
      남양홍씨 풍산홍씨가 양반이라 자랑하지만 홍씨성 가진사람모두가 양반이 아니였습니다.
      4대가 지나도록 과거급제자를 내지 못하면 양반에서 탈락됩니다.
      또한 양반이라 할지라도 역모에 연루되면 3족이 노비신분이 됩니다.
      양반이니 상놈이니 따지는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 @체크리스트
    @체크리스트 2 роки тому

    어명으로 사약받고,죄인에게 먹이면 되는데,
    소홀히 관리해서 처벌 받게될 그 당시의 표정은 개의 얼굴과 매우 일치할것 같아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likephoenix659
    @likephoenix659 2 роки тому

    결과가 좋아서이지 멍청한 짓인게 사약 거부나 기타등등의 이유로 사약 안마시면 형이 교수형이나 참형으로 올라가게 됨. 즉 아들 인생까지 망칠려고 한 행동임

  • @박하사탕-x7n
    @박하사탕-x7n 2 роки тому

    애초에 사약을 넉넉하게 가져갔어야지

  • @야빠아빠
    @야빠아빠 2 роки тому

    사약의 사가 죽을사가 아닌 왕이 하사하다의 사인데 노비 주인 따라갈뻔 했네

  • @gjhkv2052
    @gjhkv2052 2 роки тому +23

    ???: 드디어 노예 탈출…! ㅋㅋㄹㅃㅃ

  • @user-yj7jx6xd1z
    @user-yj7jx6xd1z 2 роки тому

    사약먹으면 고통이 있나요? 아니면 고통없이 죽나요?

    • @hellsoeub
      @hellsoeub 2 роки тому

      정확한지는 몰라도 사약이란게 한약이 대부분이였음 사약 먹고 방에 가둬두고 아궁이 불 ㅈㄹ 땜
      그람 먹은 약 빨이 보일러 불 빨 버프 받아서 약 먹은 사람은 열 받아 죽는거임
      근데 가끔 안죽는 사람도 있는데 그람 그 사람은 한약으로 몸보신 한거임

  • @김종남-f7r
    @김종남-f7r 2 роки тому

    사약도
    여분으로
    가져갔을텐데
    저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 @TV-jinnhappyahn
    @TV-jinnhappyahn Рік тому

    여기서 놓치고 있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서 우리가 알고 있다는거죠.

  • @강콩-s2w
    @강콩-s2w 2 роки тому

    밑도 끝도 없이 갑툭튀 해서 엎었으면
    그 자리에서 칼로 죽였을 텐데
    그전에 자식이 부모 가는 길을 보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또 부탁했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jjw0902
    @jjw0902 2 роки тому +2

    홍동석이 죽진 않았지만 금부도사일행에게 죽기직전까지 쳐맞고 신체 일부분이 불구가 됐음.
    나같으면 안함

    • @hotewang
      @hotewang 2 роки тому

      맞어..넌 정준우니까...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다함께탁탁탁
    @다함께탁탁탁 2 роки тому

    다시오는 사약을 기다리는동안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 @Bananakick12
    @Bananakick12 2 роки тому +1

    저는 이렇게 알고있었는데
    금부도사가 홍동석 오지게 패는데 조태채가 내가 정치를 10년이나 했는데 이런것도 못하겠냐며 일단 심한파도로 바다에 빠졌다고 하라고 했던거로 기억이ㅋㅋㅋ

    • @Han_seon_gyou_07
      @Han_seon_gyou_07 2 роки тому

      썰&사 잖엌ㅋㅋ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uwin-rj4rj
    @uwin-rj4rj Рік тому

    왕의 사약을 뒤집은 노비

  • @해피텐-w1u
    @해피텐-w1u 2 роки тому

    부모를 같이 모셨으면 형제다.

  • @이상무-n3y
    @이상무-n3y 2 роки тому +2

    홍씨가 조씨로 바뀌고 지금은 누구나 다아는 조씨지

  • @박의현-c9t
    @박의현-c9t 2 роки тому +3

    이거 맹꽁이서당에서 봤었는데... 추억이네

    • @fiercehan6791
      @fiercehan6791 2 роки тому

      그게뭐에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aaa................
    @aaa................ 2 роки тому +1

    노비가 사약을 엎어버렸는데 어떻게 살았지?

  • @하준권-j4y
    @하준권-j4y 2 роки тому +2

    조태채님의 후손의 기업이
    한진그룹입니다.

  • @송추85.11
    @송추85.11 2 роки тому

    의리에끝판왕이다.

  • @민혁강-r7x
    @민혁강-r7x 2 роки тому +1

    어릴때 맹꽁이 서당에서 봤었던기억나네

  • @soungkyu
    @soungkyu 2 роки тому

    금부도사도 짜고친 부자상봉

  • @Ajae-j9j
    @Ajae-j9j 2 роки тому +2

    실종자 사진과 정보 너무 영상이 짧아요

  • @나뭇군-v6l
    @나뭇군-v6l 2 роки тому

    사약을 달여서 가져가나 가져가서 끓였겠지

  • @난망초련
    @난망초련 2 роки тому

    거짓 장계 올린 금부 도사의 최후를 알고 싶네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롤스로이스타고싶다
    @롤스로이스타고싶다 2 роки тому

    노비가 성도 있네요 면천후 이름인가

  • @허태식-p8v
    @허태식-p8v 2 роки тому

    깨알 지식 사약에 한자 사짜는 죽을 사가 아니라 줄 사짜이다

  • @ToryAghissiDo
    @ToryAghissiDo 2 роки тому +1

    조태채 조관빈이 대한항공 한진 택바 조씨 집안 조상

  • @araby33
    @araby33 2 роки тому

    노비가 홍씨?

  • @LKS3738
    @LKS3738 2 роки тому

    이거 구라임
    사약이 한그릇양만 올수없음
    몇번이고 마시고도 안죽이가 많아서
    많이 준비함

    • @파워뽀로로
      @파워뽀로로 2 роки тому

      항아리를 부셔버렸다고 하네요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졸린듯한-x2j
    @졸린듯한-x2j 2 роки тому

    조상님들 야그네요,...

  • @Sam-hs2zy
    @Sam-hs2zy 2 роки тому

    조선인들 풍속 심리 정서 사상 행동방식 이한편에 다나오네^^

  • @kallkimahaz9741
    @kallkimahaz9741 2 роки тому +1

    참고: 사약은 한사발로 끝이 아니라 죽을때까지 무한리필해줌. 최고기록 18사발임. 뭔가 와전된듯

    • @ohilyeojoh-a
      @ohilyeojoh-a 2 роки тому +1

      사약은 무조건 서울에서만들고 가져가야했기때문임 물론 먼곳은 항아리째 넉넉하게 보냈지만 노비가 항아리째 쏟아버렸다하면 말이 안되는건아님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하루-y8d
    @하루-y8d 2 роки тому

    그래서 조씨들이 유난히 사건.사고 가 많이 나는 조국 이구나

  • @shm7059
    @shm7059 2 роки тому

    사약은 드라마에서처럼 마시면 바로 죽는게 아닌데...?

    • @seonuhurak
      @seonuhurak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고 며칠을 안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죠..

    • @shm7059
      @shm7059 2 роки тому

      @@seonuhurak 한번만 마시는것도 아닙니다.
      기간 정해놓고 죽을때까지 계속 마시는거라
      저거 한번 상 엎었다고 집행 불가능한게 아님..

    • @이통영-y9v
      @이통영-y9v Рік тому

      사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사약은 미리 달여서 가는게 아니라 약재를 갖고 가서 유배중인 죄인이 살고있는 집마당이나 부억에서 몇시간씩 달입니다 금부도사를 수행한 나졸이 달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유배죄인의 시중을 드는 노비에게 달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달이는데 죄인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입니다
      이때 달인 약을 먹고도 죄인이 죽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자리에서 바로 교살하거나 아니면 칼로 목을 쳐서 죽이기 때문에 사약이 없다고 해서 죽을 일이 연기될 일은 없습니다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 세조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숙종실록과 여러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금부도사가 준 사약을 단종이 거부했으나 그의 시중을 들던 노비가 면천을 조건으로 직접 단종을 교살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경우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도 한시간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자 기다리다 지친 금부도사가 수행중인 나졸에게 직접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조광조가 "멈추어라 전하께서 특별히 내 목을 온전히 지켜주시고자 사약을 내리셨는데 너희들이 그뜻을 어겨서야 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송시열의 경우 숙종에게 장희빈 아들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밉보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숙종이 추가로 더 심문할 것이 있다면서 다시 서울로 불러 올리라고 해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덕이 죽끓듯 하던 숙종인지라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그럴 필요없이 사약을 보내라"고 해서 전라도 정읍의 노상에서 숙종이 퀵서비스로 보낸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길에서 죽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금부도사는 인근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이동하여 큰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인근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그집 에서 달인 사약을 송시열에게 대령하나 송시열은 사약을 여러사발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자 규정대로 교살해야 함에도 전국에서 달려온 송시열의 제자 수십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한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곱게 죽어달라"고 통사정하자 송시열은 일부러 스스로 입천장에 상처를 낸후 사약을 세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양반들의 경우 유배를 가게 되면 각자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따라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묵재일기의 저자 이문건은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때 부인과 아들 손자 노비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시중을 들던 손녀뻘의 여종을 건드렸다가 부인의 핀잔을 들었고 고을 수령이 그에게 특별히 화대의 일부를 부담해가며 제일 예쁜 기생과의 잠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 @탐라도민
    @탐라도민 2 роки тому

    노비가 아니라 아전임

  • @seeds9990
    @seeds9990 2 роки тому

    홍동석 중인 아녀?

  • @낭랑씨방새
    @낭랑씨방새 2 роки тому +1

    누구뉘ㅣ 얘네들은

  • @광판소년단
    @광판소년단 2 роки тому

    도대체 조태채가 누구임???

  • @goldsim5854
    @goldsim5854 2 роки тому

    사약먹고 바로 안뒤지는데

  • @changryul92
    @changryul92 2 роки тому

    믿거조 사약받네

  • @이재석이재석
    @이재석이재석 2 роки тому

    왜케 빠진 정보가 많냐

  • @superspeedmotor
    @superspeedmotor 2 роки тому +1

    여윽시 그 지역 무법자 ㅋㅋ

    • @junbokli8959
      @junbokli8959 2 роки тому

      역시나 그 사이트 출신들답게
      여기저기서 티를 못내서 안달

  • @이상무-n3y
    @이상무-n3y 2 роки тому

    대충대충 해놨냐 할려면 제대로 하든가

  • @오형제-r1j
    @오형제-r1j 2 роки тому

    어저아산에살아요

  • @jdjdfu8
    @jdjdfu8 2 роки тому

  • @쏸-y2r
    @쏸-y2r 2 роки тому +1

    누구한테 자랑하지 암튼 여자꼬실때는 안됨 키크고 잘생긴 사람만 자랑하세요

    • @downup4929
      @downup4929 2 роки тому

      @@qxcv98 어머 오빠.. 그런거 좋아하는구나... 하아..품..

  • @TV-ig6lg
    @TV-ig6lg 2 роки тому +2

    와샌즈

    • @xex942
      @xex942 2 роки тому

      찐이놐ㅋㅋㅋㅋㅋ

  • @윤건주-p5y
    @윤건주-p5y 2 роки тому +1

    이게 말이 안되는게 사약은 항상 무한리필을 준비한다.

  • @vvw4527
    @vvw4527 Рік тому

    실종자 앵?

  • @맨솔래땅
    @맨솔래땅 Рік тому

    사약은 1회분이 아니고 2ㆍ3회 복용분을 가지고 가는걸로 역사책에 나오는데? ..... 요건 거짓말

  • @On1024On
    @On1024On 2 роки тому

    인생 천만원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비트코인 1원에 올인한 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