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 Nostalgia)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지즐)대는 실개천이 회(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베개)를 돋아(돋워)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함초롬) 휘적시든(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아내)가 따가운 해ㅅ 살(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줍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성긴)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鄭芝溶)은 1902년 5월 15일 (음) 충청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현. 향수길 56)에서 아버지 정태국(鄭泰國),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 독자로 태어났다. 연못에서 용(龍)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태몽을 꿨다해서 어릴적 이름은 지룡(池龍)이었고, 나중에 '芝溶'을 본명으로 삼았고 필명(筆名)으로 '지용'을 썼다. 옥천 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을 졸업했다. 귀국후에는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평교사로 영어를 가르쳤으며 1945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主幹)을 역임 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강사로 출강(出講)한 바 있다. 지용은 천재적 기질(氣質)과 소박한 인품을 가지고 향수, 고향, 백록담 등 주옥(珠玉)같은 명시를 연이어 발표했고 문장지(文章誌)를 통하여 이른바 청록파(靑錄派)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과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登壇)시키는 등 현대 시문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시사(詩史)를 장식했다. 지용의 시와 글은 '정지용시집', '지용시선', '문학독본', '백록담' 등의 간행본(刊行本)에 수록(收錄)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논문은 계속 나오고 있다. 1988년 3월 "지용회"가 창립 되었고 그해 5월 15일에 " 제1회 지용제"가 거행된 이래 해마다 5월초 옥천군 생가지 일원에서 "지용제"가 전국적인 문학축제로 이어져 오고있다. ………………………… 8.15 해방이 되자 정지용은 누구보다 목청껏 애국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땅의 진정한 해방과 통일을 갈망하며 각종 사회적인 문제에 개입한다. 시 보다는 신문 활동에 주력하며 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러던중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지용은 서울 녹번리 초당에서 전쟁을 맞게된다. 그해 7월 지용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문인 4~5명이 찾아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그들과 함께 나간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월북설, 납북설, 미군에 의한 처형설, 미군의 폭격에 의한 사망설, 보도연맹 학살에의한 희생설 등 소문만 무성한채 그의 행적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또한 분단의 비극에 희생된 천재시인의 최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노랫말은 그져 감사할 뿐이죠,,,,,일제 강점기 정지용님과 윤동주님 교토에서 대학시절을보냈지요...동지사대학교(도시샤?) 학교에 두 분의 시비를 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항일 독립 운동 혐의로 윤동주님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저세상으로,,,,정지용님은 귀국후 대학교수를..
이동원씨가 젊은 시절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발견한,정지용시집 정지용 시인은 납북된 분으로 그 이전까지 그의 시가 금지되었다가 해금되어 그 기념으로 나온 시집을 이동원 분이 발견하고, 김희갑 작곡가를 찾아갔어요. 김희갑씨는 시가 너무 길다 노래로 하기 힘들다 했는데, 이동원님의 간곡한 부탁과 아내 양인자 씨의 설득으로 곡을 10개월이나 걸려서 만들었고 물어물어 듀엣할 박인수교수를 소개받아 서울대 음대 찾아가서 부탁했더니, 박인수 교수가 흔쾌히 승락( 유학시절 당신의 노래 "이별노래"로 향수를 달랬습니다) 그래서 가요를 클래식음악하는 분과 협업한 첫 케이스라네요. 이일로 음악계에서는 박인수 교수를 클래식 격 떨어뜨렸다고 비난하고, 국립오페라 단원으로 차기 단장후보이셨던 박교수는 그곳을 나옵니다. 이 두분의 콘서트는 크게 성공했고 그당시 100만장? 팔렸데요. 2년후 KBS는 가요, 가곡을 함께 하는 "열린 음악회"를 기확했데요. 이동원 님의 기획력, 시를 노래로 부른 뛰어난 안목도 가지고 계셨죠. 무명의 정호승시인의 "이별노래"를 노래로 불러서 정호승시인을 유명작가로, 또한 많은 시를 노래로 하는 가요계 풍토가 자리잡혔다고... 이동원 가수에 대한 일화가 무척 많지만, 너무 길어져서 이만 죄송합니다. 하늘에서 "귀천"의 천상병 시인도 만나시고, 그곳에손 아버지 마세요. 님은 가셨지만, 우린 님의 남겨진 노래로 위로받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동원 가수님!!
향수 Nostalgia 1.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 대는 To the east of vast field where old legends were told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A streamlet was meandering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And spotted oxen were lowing peaceably their lazy golden call…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2.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When ashes in the clay brazier became lukewarm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Sounds of night winds ran across from the empty fields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And aged father dozing off and on 짚 베게를 돋아 고이 쉬는 곳 Tried to raise his straw pillow up and straight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3. 흙에서 자란 내 마음 My heart, grown up out of dirt,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Yearning for the sky blue colors.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플 섶 이슬에 Was looking for an arrow shot haphazardly in the grassy, 함초롬 휘적시던 곳 Dew strewn wet field…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4.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Dancing like night waves in the legendary sea,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Her dark hair blown away, my baby sister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And plain looking, not so pretty 사철 발 벗은 아내가 But always barefooted wife…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Were gleaning grains with hot sunlight on their backs…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5. 하늘에는 성근 별 In the sky, stars far apart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Moving toward the unknown sand castles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And autumn crows flying croaking sadly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 빛에 Over poorly thatched roof and around the dim candle lights, 도라도란거리는 곳 Sitting closely, we were humming with stories shared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even in a dream, even in a dream?
정지용 시인이 일본유학을 가기전 옥천에 내려가면서 고향의 생각을 2년여 다듬어서 지은 시입니다. 1988년 월북문학가의 작품이 해금돼면서 가수 이동원이 시를 발견하고 성악가 박인수와 함께 김희갑 선생님께 곡을 부탁하여 직접 옥천 정지용 시인 생가까지 와서 6개월여 긴 시간 끝에 대곡을 만드신것입니다.
감동 임니다 이렇게 멋진시를 쓰신분
김희갑 선생님 테너 박인수님 이동원님
너무 멋지고 내마음이 울컥하고
어린시절 고향이 그리워지는 음악 임니다
이렇게 멋지게 불러주신 두분께 너무
감사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스물둘에 이런시를 쓰다니 가능한일이단말인가
천재라는 말로만 설명될수있다
천재가 쓴 시에 김희갑이라는 또한사람의 천재가 곡을 만들어
우리들에게 크나큰 감동을주는ᆢ 두사람에게 너무도 감사하다
한국 가곡의
품위와 정취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값진 사진들,,,,
보기가 참 좋습니다.
노래방에서 저의 18번지!!!
너무 못진 30년지기 노래!!!
이동원 박인수 한번더 기억해 봅니다.
Thank you♥
몇번을 들어도 멋진 곡입니다...
너무 너무 좋은노래 감사합니다
힐링이되는음악입니다^^~~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 보게하는
그리운 시 잘듣고
감니다
누구에게 추억과 행복의 고향인데 나에게 갈수가 없어던 고향이 있었다 너무 보고싶고 가고싶은던 고향 아들과 딸[mbc]속의 삶의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나
듣고 들어도 넘 좋은 노래에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비와 생가를 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
kbseattle.com
언제 어디서 들어도 고향들녁 을거닐게하는 교수님 의 성악 최고
옛시골살던기억이나네요시골생활참좋았는데그립네요
꿈엔들 잊힐리야...
이 부분에서 울컥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꿈에서도 잊을수 없는 그립고 그리운 것들이 있잖아요
떠나온 고향 ..돌아갈수 없는 시절 ..뵈올수 없게된 돌아가신 부모형제...
넘 좋아요.....^^
이십년전에 듣곤하던 노래... 여전히 맘속에 남아 있는 명곡 입니다
햇살 맞으며 눈 감고 풀피리 부르며~
이동원,박인수 두 분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2021년과 올해 차례대로 타계하셨어요ㅠㅠ
아버지 생각나네 천국에서 잘 지내시겠죠
안선생님 어젠 한국에 조카가 아곳을 방문... 오랜만에 나이아가라에 다녀왔습니다 넓은 들녘을 바라보며 아침에 들었던 이곡에 더 향수에 젖어... 다시 찾아 들으며 클라리넷과 어떤악기가 가장 듀엣으로 맞을까 생각하며... Thanks.
향수(鄕愁 Nostalgia)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지즐)대는 실개천이 회(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베개)를 돋아(돋워)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함초롬) 휘적시든(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아내)가
따가운 해ㅅ 살(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줍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성긴)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鄭芝溶)은 1902년 5월 15일 (음) 충청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현. 향수길 56)에서 아버지 정태국(鄭泰國),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 독자로 태어났다. 연못에서 용(龍)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태몽을 꿨다해서 어릴적 이름은 지룡(池龍)이었고, 나중에 '芝溶'을 본명으로 삼았고 필명(筆名)으로 '지용'을 썼다.
옥천 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을 졸업했다. 귀국후에는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평교사로 영어를 가르쳤으며 1945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主幹)을 역임 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강사로 출강(出講)한 바 있다.
지용은 천재적 기질(氣質)과 소박한 인품을 가지고 향수, 고향, 백록담 등 주옥(珠玉)같은 명시를 연이어 발표했고 문장지(文章誌)를 통하여 이른바 청록파(靑錄派)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과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登壇)시키는 등 현대 시문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시사(詩史)를 장식했다.
지용의 시와 글은 '정지용시집', '지용시선', '문학독본', '백록담' 등의 간행본(刊行本)에 수록(收錄)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논문은 계속 나오고 있다.
1988년 3월 "지용회"가 창립 되었고 그해 5월 15일에 " 제1회 지용제"가 거행된 이래 해마다 5월초 옥천군 생가지 일원에서 "지용제"가 전국적인 문학축제로 이어져 오고있다.
…………………………
8.15 해방이 되자 정지용은 누구보다 목청껏 애국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땅의 진정한 해방과 통일을 갈망하며 각종 사회적인 문제에 개입한다. 시 보다는 신문 활동에 주력하며 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러던중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지용은 서울 녹번리 초당에서 전쟁을 맞게된다. 그해 7월 지용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문인 4~5명이 찾아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그들과 함께 나간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월북설, 납북설, 미군에 의한 처형설, 미군의 폭격에 의한 사망설, 보도연맹 학살에의한 희생설 등 소문만 무성한채 그의 행적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또한 분단의 비극에 희생된 천재시인의 최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노랫말은 그져 감사할 뿐이죠,,,,,일제 강점기 정지용님과 윤동주님 교토에서 대학시절을보냈지요...동지사대학교(도시샤?) 학교에 두 분의 시비를 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항일 독립 운동 혐의로 윤동주님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저세상으로,,,,정지용님은 귀국후 대학교수를..
이동원씨가 젊은 시절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발견한,정지용시집
정지용 시인은 납북된 분으로 그 이전까지 그의 시가 금지되었다가 해금되어 그 기념으로 나온 시집을 이동원 분이 발견하고, 김희갑 작곡가를 찾아갔어요.
김희갑씨는 시가 너무 길다 노래로 하기 힘들다 했는데, 이동원님의 간곡한 부탁과 아내 양인자 씨의 설득으로 곡을 10개월이나 걸려서 만들었고
물어물어 듀엣할 박인수교수를 소개받아 서울대 음대 찾아가서 부탁했더니, 박인수 교수가 흔쾌히 승락( 유학시절 당신의 노래 "이별노래"로 향수를 달랬습니다)
그래서 가요를 클래식음악하는 분과 협업한 첫 케이스라네요.
이일로 음악계에서는 박인수 교수를 클래식 격 떨어뜨렸다고
비난하고, 국립오페라 단원으로
차기 단장후보이셨던 박교수는 그곳을 나옵니다.
이 두분의 콘서트는 크게 성공했고 그당시 100만장? 팔렸데요. 2년후 KBS는 가요, 가곡을 함께 하는 "열린 음악회"를 기확했데요.
이동원 님의 기획력, 시를 노래로 부른 뛰어난 안목도 가지고 계셨죠.
무명의 정호승시인의 "이별노래"를 노래로 불러서
정호승시인을 유명작가로, 또한 많은 시를 노래로 하는 가요계 풍토가 자리잡혔다고...
이동원 가수에 대한 일화가 무척 많지만, 너무 길어져서 이만
죄송합니다.
하늘에서 "귀천"의 천상병 시인도 만나시고, 그곳에손 아버지 마세요.
님은 가셨지만, 우린 님의 남겨진 노래로 위로받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동원 가수님!!
박인수 교수님 다음카페로 퍼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듣겠습니다감사드립니다^^
향수
Nostalgia
1.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 대는
To the east of vast field where old legends were told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A streamlet was meandering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And spotted oxen were lowing peaceably their lazy golden call…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2.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When ashes in the clay brazier became lukewarm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Sounds of night winds ran across from the empty fields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And aged father dozing off and on
짚 베게를 돋아 고이 쉬는 곳
Tried to raise his straw pillow up and straight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3. 흙에서 자란 내 마음
My heart, grown up out of dirt,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Yearning for the sky blue colors.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플 섶 이슬에
Was looking for an arrow shot haphazardly in the grassy,
함초롬 휘적시던 곳
Dew strewn wet field…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4.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Dancing like night waves in the legendary sea,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Her dark hair blown away, my baby sister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And plain looking, not so pretty
사철 발 벗은 아내가
But always barefooted wife…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Were gleaning grains with hot sunlight on their backs…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5. 하늘에는 성근 별
In the sky, stars far apart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Moving toward the unknown sand castles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And autumn crows flying croaking sadly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 빛에
Over poorly thatched roof and around the dim candle lights,
도라도란거리는 곳
Sitting closely, we were humming with stories shared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Such a place…will ever be forgotten, even in a dream, even in a dream, even in a dream?
정지용 시인이 친일로 알려저서 조선시대 사람으로 생각했나봅니다 작곡은 김희갑님이 하셨지요,
이 노래의 가사는 정지용(鄭芝溶,1902년 6월 20일 ~ 1950년 9월 25일)님의 싯글 '향수'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중에 곡이 붙여진 것입니다.
모두의 고향은 노래가사 같겠죠?
진정한 애국가다
이젠 애국가를 다시 만들때가 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없다
국립묘지에있는 친일파놈들
부관 참수해서 민족정기 바로 세우자
대한민국 만세
@yingdat Lee Dong Won and Park In Soo
여전히 노래가우울하네요
이동원,
운동장 끝 보성학교 음악당에서 부터
고유정서가 깃든 노래의 꿈이 움트기 시작했나보다.
기회가 되면 옥천 소재의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꼭 방문하고 싶다...
저도요...
This song have composed at 1980's. That's impossible. I think you don't know about this song story.
이곡이 조선시대사람이 작사했다는 그자체가 놀랍습니다
ebs 온라인 손
뭔가 잘못알고 있는데 이곡을 쓰신분은
작곡가 김희갑님 인데 이분은 일제시대에 살지 않았어요 뭘좀 알고
얘기하시오.
정지용 시인이 일본유학을 가기전 옥천에 내려가면서 고향의 생각을 2년여 다듬어서 지은 시입니다. 1988년 월북문학가의 작품이 해금돼면서 가수 이동원이 시를 발견하고 성악가 박인수와 함께 김희갑 선생님께 곡을 부탁하여 직접 옥천 정지용 시인 생가까지 와서 6개월여 긴 시간 끝에 대곡을 만드신것입니다.
헐;;;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