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고등학교 때 단어장을 샀을 때 항상 예문이 붙어있는 이유도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어의 단어와 영어의 단어는 엄밀한 규칙이 아니라 느슨한 가족유사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대일대응이 불가능해 한국어 단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문장 속에서 단어의 실제 쓰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예문을 싣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전부터 눈팅만 했었는데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할땐 더럽 안되더니 캐나다 와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용 방식을 이해하니 공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습득 속도가 다르더라구요. 한국어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묘한 뉘앙스가 있는데 그걸 의미로 외워서 이해하려고 했으니 그렇게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어학의 원리를 그 옛날 제대로 집으셨는데 그 원리가 언어 교육에 그렇게도 오랫동안 적용이 안되었던건 희안할 정도네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에 대해서 뭘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미가 잘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 영상을 통해 많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똑 같은 문장도 누가 쓰느냐, 언제 어디서 하느냐 등에 따라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정확한 컨텍스트 속에서 그 의미를 이해 하려고 해야 보다 정확한 뜻에 다가갈 수 있을거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그래서 어쩜 문맥을 벗어난 글 만으로는 작가나 화자의 뜻을 오해하기 쉬울것도 같습니다. 많이 공부하여 잘 정리된 설명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가족 유사성..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다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단어 '거시기' ... "거시기 뭐냐, 거시기가 참 거시기 허다" "거 거시기 뭐냐? 거시기 좀 가져와라." (이 말 듣고 듣는 사람은 알아서 가져옴) 명확하지 않은 의미의 경계와 복잡성 그것을 한마디로 뛰어 넘는 단어. 어떠한 경우에도 그 의미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그리고 다양한 품사로 쓰일 수 있는단어...그리고 충청도 사투리. 은유와 풍자로 가득한 충청도 화법. 비트겐슈타인... 아~~~???... 그리고 불립문자와 화두... 과연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는건가? 인간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또는 뇌가 작동하는 세 가지 방식. 사유와 이해는 한가지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개념의 불분명한 경계에 동의했을 때..지식이나 진리에 대한 획득의 과정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비트게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에 대해 들으니..정희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쓰까페미라는 말이 생각나네요..쓰가(섞는다는 말의 방언에서 온 말)페미라고 하면서 불문명한 경계를 지지하러는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건데요....참 불편한 말이고..비트게슈타인의 철학을 들으니 위안이 되네요.
너무 잘 봤습니다. 그림이론도 언어이론도 가족유사성도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특히 언어이론을 눈여겨보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언어이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시면, 일상에서도 여러모로 효용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빨간 포인트로 간결하게 짚어주시는 거 좋네요. 강의 잘 봤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유대인이기에 그런 언어에 대한 철학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성경에선 야곱의 경우에 행동이 우수워서 야곱이란 이름을 지었고, 이후 신에 의해 이스라엘이라고 다른 차원의 본질적 이름을 얻게 되죠. 언어의 사용이 중요한 것은 인간이 피조물의 상태로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때 어떤 언어를 쓴다고 해도 그것을 컴퓨터 내에서 규정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듯이 사용되고, AI가 개발되면서 컴퓨터가 그 언어와 유사한 의미의 사물들과 비교하면서 다른 차원으로 명확히 개념적으로 발전할 수 있듯이 인간에게 있어서의 언어는 아직 규정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본질적 세계에서의 언어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들에 대한 언어적 쓰임도 문제일 것이구요. 신이 하나의 별을 순간 만들면, 그 별은 별의 의미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의미를 부여받고 과거부터 있어왔던 별로써 다가올 것입니다. 그 시간은 중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큰 배가 있을 때 그 주변의 작은 배들은 큰 배의 물결에 의해 떠밀리기도 하고 가까이 있을 때는 끌려가 부딪히기도 할텐데 이것은 큰 배의 속도 즉 시간 즉 물질중력과도 같은 작용일 것입니다. 시간이 중력을 만들었고, 속도의 운행에 따라 중력은 더 강해지기도 합니다. 신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고, 인간은 언어의 한계 때문에 신과 다릅니다.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작용에 인간은 본질적인 악을 알 수 없었고 다만 본질적인 것을 무시하면서 행위와 현상에 대한 거짓에 인간을 당하고 맙니다. 언어 능력의 한계 때문이죠.
언어라는 것이 한계가 있죠. 간단한 물음으로 되짚어 보자면 나는 지금 왜 그러한 말을 하고 있는걸까 라고 한다면 그 말에는 행위를 한 사람에 목적이 있죠. 아저씨들 흥얼거리는 소리에도 그 의미가 있듯이요. 결국 이 의미가 언어라는 텍스트에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내 뱉은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으로 주목해야 하고 철학자들의 진리라는 물음에 대해 그래서 그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접근하는게 아니라 넌 왜 그 진리를 말하고 있느냐로 변환 시켜서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가 '언어의 한계는 곧 그 사람의 사고의 한계다'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영상을 참고해보면 이는 아마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네요. 실제로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적 사용을 검토할 때가 많지, 언어의 사용에 한해서만 생각이 한정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후기 비트겐슈타인도 본인의 주장을 정정함으로써 보다 본인의 이론을 유연화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조에 따라서 변화해 나가는 상태는 생기기 이전 생긴후 변화해 나아가는 과정 사멸하여 원래대로 복원 되는 과정 이니 무에서 유 유에서 무로 돌아가나 돌아갔다고 없는 것은 아니요 있음과 없음은 매 한가지니 진행이 있으니 그변화의 진폭을 사물과 소리로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구조 대상은 그목적과 사용용도로서 스스로를 정의 할수 있으므로 혀를 혀라고 할수 있습니다. 목적 상실은 존재 부정으로 이어지니 면밀한 흐름을 끊는 것과 같으므로 스스로 대를 잇는것을 부정 하니 양자얽힘의 물리성을 또한 부정 하므로서 스스로 사물 붕괴과정 자멸법을 선택 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해서 구조 해석 학적 부정을 통해서 결국에는 영혼과 정신이 무너지는 것울 주변 사람들 보면서 길을 가는 것과 가지못하고 주저 앉는것을 살면서 바라 볼 뿐입니다. 그래서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죽을 때는 신께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하는데 삶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증명을 하는 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신?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시작 아전과 끝의 이후는? 이러한 물음에 우리가 인지 인식을 한다는 것은 뇌에서 이물음에 대해서 구조로 해석 해서 시공간 적으로 해석 한다는 것입니다. 도와 덕 진리 삶이란 무엇인가? 정보 종합학적인 접근과 구조 해석학적인 해법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법을 제시 하는 것입니다.. 자기자신만의 답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 합니다. 통찰력은(신에 물음에(정보종합학(형이상학))대한 해답 구조적 해석론은 중요 합니다.)중요 합니다.
어쩐지… 처음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을 들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앎도 깨달음도 경험도 감정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것을 어째서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표현하고 소통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한정짓는 것도 위험한 생각이라고 봤어요. 불교에서 유명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라.”라는 구절도 달(말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죠. 저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이것이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더 겸손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뒤집어 엎으면서 자기가 한 말의 한계를 인정하는군요. 오늘 영상 잘 봤습니다
결국 도덕경의 주제문과도 연결이 되는군요. 도를 도라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이는 원래 경계선이 없는 인간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져있는지를 영역의 선을 긋고 지식의 체계로 만든 ‘인위성’을 강조한 유교와도 대립되는 말인것 같네요. 이렇게보면 서양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건 이미, 노자가 훨씬 전에 동양쪽에서 일찍이 강조했다는것이 놀랍기만합니다. 다만 비트겐은 노자에 비해 그 예시부분이 조금더 친절했다는 것이네요.
충코님께서 불교의 중관논리도 같이 소개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비가 내린다 . >> 내리지 않는 비가 있는가? 내가 간다. >> 가는자와 내가 따로 있는가? 우리 인간은 언어에 둘러 쌓여져 있지만 언어는 참 모순이 많고 역설적인 놈입니다.^^ 고통의 느낌이라든가 사랑이란 감정의 주관적 체험을 언어로 나타내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린 그저 의사소통의 방편으로써 표현을 하고 서술을 할 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도 언어가 유일합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오감또한 언어와 같다고 봅니다. 술한잔 마시고서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떠벌려 보지만 현존하는 나라고 불리는 자는 술값을 걱정해야 합니다. ㅎㅎ
작가님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2분 50초 쯤에 다 그럼 모자가 보이면 그건 참이고 보이지 않으면 참이 아니라는 전제를 깐다면 어떻하면 세계의 사태와 언어적인 표현을 잘 합치시킬 지가 관건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용... 저도 아직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궁금한거라.. ㅠㅠ 세계의 사태라는 건 굉장히 포괄적인 부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잖아요?아니면 맥락적으로 큰 부분들만을 의미하는 건가여? 이건 작가님이 하시는 말씀이랑은 조금 별개일 수 도 있지만, 우리가 언어를 잘 사용하길 원한다면 ~~사태와 언어를 잘 합치시킬 수 있을지 라고 말씀하셨는뎅, 사람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잘 묘사할 수 있을지를 말씀하셨는뎅..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말에 대해서 침묵해야 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공감했어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게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인가요? 언어란 의미를 가지기 전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언어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영..
철학, 사상=뇌의 전기 화학작용이 작동하는 유희.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거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거 같고 하지만 결론도 없고 명확하지도 않고 답도 없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 옴. 인간은 동물이기에 기본적 본능에서 결국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음 죽을 때까지.
후기 비트켄슈타인은 마치 발효음식 같은 것. 김치의 종류는 각 가정 어머니의 수 보다도 많죠.그 때 그 때 사용하는 량이나 배합이 틀리고 발효 온도,저장도 틀리고...김치 맛은 어머니의 숫자*알파=김치의 실제 종류.이정도 되는데 언어나 세상에 대한 정의,생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100 명이 있다면 최소한 100개의 생각이 있는거고 실제로는 각자가 수시로 생각을 바꾸니까 실제로는 무한정한 것이 생각이겠죠. 실상이 이런데도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사는 걸보면 신기하긴 해죠. 이럴 땐 인간 만세해야 맞나? 아님 너무 어지러워 인간세상은 부조리한 곳이야 해야 맞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철학을 접하면서 제 세계가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고생하고 생활이 힘들면 삶이 생생해지고 피부로 다가올까 싶어서 입대를 하였는데 최전방 gop에 배치되었을 때 내심 기뻤습니다. 앞에는 북한이 보이고 북의 도발이 계속될 때 장난으로 머리카락 한 올과 유서를 쓰라고 할 때 그냥 덤덤했습니다. 저에게도 훌륭한 사람이 될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생기는 것은 고통의 경험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주고 가치를 더하는, 생명을 긍정하는 경험들을 통해서입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공감해주는, 지지해주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보다 많은 성취의 시간을 맛보시기도 아울러 기원합니다. 그런 시간과 경험들을 통해서 스스로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 지를 깊이, 많이 느끼시길 기원합니다. 삶이 힘들고 의미를 찾기 힘들 때, 여러 사변적인 철학보다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자는 거기서 삶이 인간에게 적대적이라고 규정하면서, 마치 시지프가 돌을 굴려 올리고 또 다시 그 의미없는 짓거리를 반복하는 듯한 부조리한 삶에서 과연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 생각이 옳건 그르건, 그 생각에 동의하건 반복하건, 우리가 삶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수많은 시각이 있고, 어느 쪽을 따르는가 하는 것은 대부분 객관적 요소보다 주관적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2, 3년 전에 군 인성 교육을 담당했던 강사로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젊은 이(들)에게 조그마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답니다.
The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라는 책은 의외로 얇습니다. 대학교 학부 다닐 때, 한학기동안 언어논리/분석철학 교수님과 원전을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간단한 비평과 소감을 댓글로 남기자면, (1)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동양의 직관적인 종교철학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가를 동양학문계에서 많이 듣는데, 실상은 서양의 언어논리철학의 과잉발전(?)에 비트겐슈타인 본인의 의향과 관계없이 이바지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한국철학계도 전통적인 희랍/중세/근세철학들은 다 쓰레기통에 들어가야된다는 쓸데없는 형이상학적인 컨텐츠들로 매도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1970/80년대에 유럽보다 미국으로 논리실증주의 철학을 공부하러 가던 많은 젊은 철학자들이 생각납니다. 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모택동의 문화혁명처럼 언어논리실증주의 책 몇권으로 철학계의 홍위병 노릇을 하던 모습들이 생생합니다. (2) 물론 곧 철학의 본질이 언어논리적 담론에서만 그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사회적 가치 그자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반성이 일면서, 21세기가 되면, 이 철학판 문화혁명은 다소 진정되는 듯이 보입니다. (3) 동양사상에도 정명사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정명사상은 동양의 수리철학인 상수철학(주역과 정역)과도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데, 만약에 비트겐슈타인의 그의 성향상 이 상수철학을 알았다면, 이에 열광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상수철학의 핵심논리는 수가 천지우주의 본성과 우주변화의 원리를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앞으로 K문화가 세계로 뻗어나아가고 있는데, 그 마지막 단계는 한국의 고유철학인 역철학(상수철학)이라고 봅니다. 10년후에는 전세계의 철학도들이 이 상수철학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오는것을 상상해봅니다. (1909년, 종교사상가 강증산의 예언 -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모든 세상사람들이 우리의 말과 문화, 사상, 문명을 배우러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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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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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때 C0 받은 '현대 철학의 이해' 졸업 후 재수강하는 기분입니다. 근데 이게.. 이제는 학점이 안 걸려있어서 즐거운.
헉...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도 평가에 대한 걱정 없이 글 쓸 때나 공부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늙어가면서 할 일이 없어지는 요즘 충코철학 열심히 보면서 젊은 시절 등한시하던 철학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때 단어장을 샀을 때 항상 예문이 붙어있는 이유도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어의 단어와 영어의 단어는 엄밀한 규칙이 아니라 느슨한 가족유사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대일대응이 불가능해 한국어 단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문장 속에서 단어의 실제 쓰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예문을 싣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전부터 눈팅만 했었는데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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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전기: 이것
후기: 거시기
(감탄)
언어는 정의하는게 아니라 사용하는 것
일상언어everyday language로 말해질 수 있는 건 모두 말해질 수 있다. 문제는 바로잡음으로서 해소되고 거짓으로 드러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가 정말 문제이다. 어떤 정의된 그러니까 사적언어와 같은 것들이 굳이 필요없다고 말했죠.
ㅋㅋㅋ 경이롭네
와우
각자의 삶의 방식이 다른 이유가 각자의 언어에 대한 개념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아주 흥미롭고 제가 일상 속에서 고민되던 부분에 대해 저 또한 영감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닷!😊
비트겐슈타인의 강의를 듣고나니 더 자유로워진 느낌입니다. 불필요한 자기검열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할땐 더럽 안되더니 캐나다 와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용 방식을 이해하니 공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습득 속도가 다르더라구요. 한국어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묘한 뉘앙스가 있는데 그걸 의미로 외워서 이해하려고 했으니 그렇게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어학의 원리를 그 옛날 제대로 집으셨는데 그 원리가 언어 교육에 그렇게도 오랫동안 적용이 안되었던건 희안할 정도네요…
어ㅏ 공감 합니다
집으셨 ---> 짚으셨
희안 ---> 희한
@@emiliofermi9994문맥으로 보세요 ㅋㅋㅋ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에 대해서 뭘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미가 잘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 영상을 통해 많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똑 같은 문장도 누가 쓰느냐, 언제 어디서 하느냐 등에 따라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정확한 컨텍스트 속에서 그 의미를 이해 하려고 해야 보다 정확한 뜻에 다가갈 수 있을거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그래서 어쩜 문맥을 벗어난 글 만으로는 작가나 화자의 뜻을 오해하기 쉬울것도 같습니다.
많이 공부하여 잘 정리된 설명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가족 유사성..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다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단어 '거시기' ... "거시기 뭐냐, 거시기가 참 거시기 허다" "거 거시기 뭐냐? 거시기 좀 가져와라." (이 말 듣고 듣는 사람은 알아서 가져옴) 명확하지 않은 의미의 경계와 복잡성 그것을 한마디로 뛰어 넘는 단어. 어떠한 경우에도 그 의미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그리고 다양한 품사로 쓰일 수 있는단어...그리고 충청도 사투리. 은유와 풍자로 가득한 충청도 화법. 비트겐슈타인... 아~~~???... 그리고 불립문자와 화두...
과연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는건가? 인간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또는 뇌가 작동하는 세 가지 방식. 사유와 이해는 한가지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확실히 프리젠테이션이 있으니까 집중도 더 잘 되고 이해도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스승을 까서 밟고 올라가는 것이 철학 발전의 원래 모습이지만,
젊은 날의 자기 생각을 까부수고 또 다른 후기 발전을 이룬 비트켄슈타인 ,,,
멋진 삶 인정 !
역시 경직된 공자는 유연하고 포용성 만빵인 장자를 영원히 이길수 없는 것일까 ? ,,,,,,
가끔 전기비트겐슈타인이 만든 논고의 공리계가 후기비트겐슈타인의 주장으로부터 매우독립되어있는 느낌이라 말할수 없는것으로 표출된 그 주장들로부터 항상 건재한채로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곤합니다
언어가 세계 속 특정의 대상을 엄밀하게 지정할 수 있다는게 과연 사실이었다면요.
요즘은 어떠한 개념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정리할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개념의 불분명한 경계에 동의했을 때..지식이나 진리에 대한 획득의 과정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비트게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에 대해 들으니..정희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쓰까페미라는 말이 생각나네요..쓰가(섞는다는 말의 방언에서 온 말)페미라고 하면서 불문명한 경계를 지지하러는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건데요....참 불편한 말이고..비트게슈타인의 철학을 들으니 위안이 되네요.
우와 엄청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책사다 놓고 거의 못읽었거든요 ㅋㅋㅋ)
말과 사물은 관련이 없고, 말과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릿 속 세계 속의 사물과는 관련이 있다. 이건 의식이니 주체니 영혼이니 하는 주제로도 넓혀볼 새로운 시야를 펼쳐 준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시고 가르마를 옆으로 하시면 이미지가 훨씬 좋아질 거예요
넘 쏙쏙 이해되요^^ 후기 비트겐슈타인 공부가하고 싶어지네여.
논리의 끝자락 극단엔 잔인하게도 인권이 없죠.
그렇기에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바이블,
가장 잔인한 전쟁터 한복판이었기에
비트겐슈타인이 논철논을 쓸 수 있었다고 봅니다.
러시아ㅡ우크라 전쟁만 보더라도 전쟁터엔 논리와 철학은 존재치 않고 , 국제정세는 힘의 논리로 구동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알게해주는곳 그곳에서 탄생한 논리철학논고
@@호소-c6w
논리와 철학이 왜 없어요
철학의 본질인 물리와 논리만 남는게 시스템 없는 전쟁터에요.
홉스가 말하는 사회계약 이전의 상태야말로 가장 철학적 본질과 논리가 남죠
간결한 내용의 전달에 감사드립니다. 전기의 생각이 언어의 "절대적" 정의에 집착했다면 후기에는 언어의 "상대성"에 의해 취득되는 의미에 집착을 하신 듯하네요. 너무 극단적인 전환인 듯합니다.
비트겐 슈타인에 대해 어렴풋이 관심이 많았는데
명료하게 그의 가치를 와닿게 설명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너무 잘 봤습니다. 그림이론도 언어이론도 가족유사성도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특히 언어이론을 눈여겨보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언어이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시면, 일상에서도 여러모로 효용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빨간 포인트로 간결하게 짚어주시는 거 좋네요. 강의 잘 봤습니다.
왜 같은 말을 쓰는데 의미가 많이 다른 것 같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민주주의가 그런 말이죠. 38선 이북에 민주주의 국가가 하나 있죠. 정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비트겐슈타인이 유대인이기에 그런 언어에 대한 철학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성경에선 야곱의 경우에 행동이 우수워서 야곱이란 이름을 지었고, 이후 신에 의해 이스라엘이라고 다른 차원의 본질적 이름을 얻게 되죠. 언어의 사용이 중요한 것은 인간이 피조물의 상태로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때 어떤 언어를 쓴다고 해도 그것을 컴퓨터 내에서 규정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듯이 사용되고, AI가 개발되면서 컴퓨터가 그 언어와 유사한 의미의 사물들과 비교하면서 다른 차원으로 명확히 개념적으로 발전할 수 있듯이 인간에게 있어서의 언어는 아직 규정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본질적 세계에서의 언어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들에 대한 언어적 쓰임도 문제일 것이구요. 신이 하나의 별을 순간 만들면, 그 별은 별의 의미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의미를 부여받고 과거부터 있어왔던 별로써 다가올 것입니다. 그 시간은 중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큰 배가 있을 때 그 주변의 작은 배들은 큰 배의 물결에 의해 떠밀리기도 하고 가까이 있을 때는 끌려가 부딪히기도 할텐데 이것은 큰 배의 속도 즉 시간 즉 물질중력과도 같은 작용일 것입니다. 시간이 중력을 만들었고, 속도의 운행에 따라 중력은 더 강해지기도 합니다. 신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고, 인간은 언어의 한계 때문에 신과 다릅니다.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작용에 인간은 본질적인 악을 알 수 없었고 다만 본질적인 것을 무시하면서 행위와 현상에 대한 거짓에 인간을 당하고 맙니다. 언어 능력의 한계 때문이죠.
언어가 없던 때에도 언어는 자연발생했죠 각나라나부족마다언어가다른것은그사람들이각자언어를만들었다는 것이고 이렇게본다면 인간의 구조 속에 언어를 자연벌생적으로만들수있는 어떤 모형이 있다고 생각됩니다.언어는그세계를나타낸 것이 아닐지
충코님 펜으로서
영상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잘해주시네요! 영상을 보다가 비트겐슈타인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과 번역이라는 분야를 같이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언어라는 것이 한계가 있죠. 간단한 물음으로 되짚어 보자면 나는 지금 왜 그러한 말을 하고 있는걸까 라고 한다면 그 말에는 행위를 한 사람에 목적이 있죠. 아저씨들 흥얼거리는 소리에도 그 의미가 있듯이요. 결국 이 의미가 언어라는 텍스트에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내 뱉은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으로 주목해야 하고 철학자들의 진리라는 물음에 대해 그래서 그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접근하는게 아니라 넌 왜 그 진리를 말하고 있느냐로 변환 시켜서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가 '언어의 한계는 곧 그 사람의 사고의 한계다'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영상을 참고해보면 이는 아마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네요. 실제로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적 사용을 검토할 때가 많지, 언어의 사용에 한해서만 생각이 한정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후기 비트겐슈타인도 본인의 주장을 정정함으로써 보다 본인의 이론을 유연화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쉽게 알려준다는 썸네일 보고 왔는데.. 속은 기분입니다. ㅎㅎ
유익한 면도 있지만, 보고 나서 남는 게 없는 느낌이고, 단순히 책 내용 요약한 거 같습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목소리 왜이렇게 좋으셔요
쏙쏙 들어오는 설명 감사합니다
비트겐슈타인 아버지가 철강 회사로 큰 돈을 벌고 퇴직하면서 주식을 다 팔고 그걸 미국 채권에 투자했다 1차대전 끝나고 나니 그야 말로 대박나서 지금으로 보면 세계적 부자가 됐다고 하네요..
항상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꾸준히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한국의 천재소설가 이고 시인이었던 ”이상” 은 생전에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하라"라는 말을 남겼는데, 비트겐슈타인을 의식하고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겟다는 생각을 비트겐슈타인을 알고난후 생각하게 되더둔요.
탐구욕 호기심 등의 상상이 언어의 확대에 기여했지만 아직도 그 대상을 서로 완전히 타자에게 전하는 것은 요원한듯 합니다
언어는 정말 인간이 발전하면 무한대로 확장할듯 하네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에 관한 책 좀 추천 바랍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이도 아는 것도 있지요!
스스로 생각해봤던 내용이네요
언어의 확장성, 빨리 깨우쳐야 됩니다
" 어차피 언어의 사용은 무한히 확장되고 변하기 때문에 어떠한 진리를 언어로서 표현하는것은 크게의미가 없을 것이다.. "
라는거죠?? 제가 잘 이해한건가요?
구조에 따라서 변화해 나가는 상태는 생기기 이전 생긴후 변화해 나아가는 과정 사멸하여 원래대로 복원 되는 과정 이니 무에서 유 유에서 무로 돌아가나 돌아갔다고 없는 것은 아니요 있음과 없음은 매 한가지니 진행이 있으니 그변화의 진폭을 사물과 소리로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구조 대상은 그목적과 사용용도로서 스스로를 정의 할수 있으므로 혀를 혀라고 할수 있습니다. 목적 상실은 존재 부정으로 이어지니 면밀한 흐름을 끊는 것과 같으므로 스스로 대를 잇는것을 부정 하니 양자얽힘의 물리성을 또한 부정 하므로서 스스로 사물 붕괴과정 자멸법을 선택 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해서 구조 해석 학적 부정을 통해서 결국에는 영혼과 정신이 무너지는 것울 주변 사람들 보면서 길을 가는 것과 가지못하고 주저 앉는것을 살면서 바라 볼 뿐입니다.
그래서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죽을 때는 신께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하는데 삶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증명을 하는 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신?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시작 아전과 끝의 이후는?
이러한 물음에 우리가 인지 인식을 한다는 것은 뇌에서 이물음에 대해서 구조로 해석 해서 시공간
적으로 해석 한다는 것입니다.
도와 덕 진리 삶이란 무엇인가? 정보 종합학적인 접근과 구조 해석학적인 해법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법을 제시 하는 것입니다..
자기자신만의 답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 합니다.
통찰력은(신에 물음에(정보종합학(형이상학))대한 해답 구조적 해석론은 중요 합니다.)중요 합니다.
컴퓨터공학에서 사용되는 임베딩 벡터와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져요.
수고하셨습니다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쩐지… 처음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을 들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앎도 깨달음도 경험도 감정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것을 어째서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표현하고 소통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한정짓는 것도 위험한 생각이라고 봤어요. 불교에서 유명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라.”라는 구절도 달(말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죠. 저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이것이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더 겸손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뒤집어 엎으면서 자기가 한 말의 한계를 인정하는군요. 오늘 영상 잘 봤습니다
칼
살인자가 들고 있는것
주방장이 들고 있는것
이때 칼의 본질은?
만약 살인자의 직업이 주방장이라면?
결국은 정의 할수 없는것을 정의 할려는 철학자들
결국 도덕경의 주제문과도 연결이 되는군요. 도를 도라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이는 원래 경계선이 없는 인간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져있는지를 영역의 선을 긋고 지식의 체계로 만든 ‘인위성’을 강조한 유교와도 대립되는 말인것 같네요.
이렇게보면 서양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건 이미, 노자가 훨씬 전에 동양쪽에서 일찍이 강조했다는것이 놀랍기만합니다. 다만 비트겐은 노자에 비해 그 예시부분이 조금더 친절했다는 것이네요.
이렇게 들으니까 현학과도 좀 유사하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충코님께서 불교의 중관논리도 같이 소개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비가 내린다 . >> 내리지 않는 비가 있는가? 내가 간다. >> 가는자와 내가 따로 있는가? 우리 인간은 언어에 둘러 쌓여져 있지만 언어는 참 모순이 많고 역설적인 놈입니다.^^ 고통의 느낌이라든가 사랑이란 감정의 주관적 체험을 언어로 나타내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린 그저 의사소통의 방편으로써 표현을 하고 서술을 할 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도 언어가 유일합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오감또한 언어와 같다고 봅니다.
술한잔 마시고서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떠벌려 보지만 현존하는 나라고 불리는 자는 술값을 걱정해야 합니다. ㅎㅎ
재미 있었습니다
전기에서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거의 정반대로 변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비트겐슈타인 제일좋아하는데 감사합니다~
오 저 지금 자율세특에 철학적 탐구 쓰는중인데 ㅋㅋ
의의 적을때 어떻게 적어야할지 막막했는데 딱 정리됐내요 감사합니다!
세특 작성 하는게 시험보다 더 바쁘죠 진짜 ..
작가님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2분 50초 쯤에 다 그럼 모자가 보이면 그건 참이고 보이지 않으면 참이 아니라는 전제를 깐다면
어떻하면 세계의 사태와 언어적인 표현을 잘 합치시킬 지가 관건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용...
저도 아직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궁금한거라.. ㅠㅠ
세계의 사태라는 건 굉장히 포괄적인 부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잖아요?아니면 맥락적으로 큰 부분들만을 의미하는 건가여?
이건 작가님이 하시는 말씀이랑은 조금 별개일 수 도 있지만, 우리가 언어를 잘 사용하길 원한다면 ~~사태와 언어를 잘 합치시킬 수 있을지 라고 말씀하셨는뎅, 사람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잘 묘사할 수 있을지를 말씀하셨는뎅..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말에 대해서 침묵해야 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공감했어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게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인가요?
언어란 의미를 가지기 전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언어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영..
비트겐슈타인이랑 히틀러랑 동창이라는데 같이 찍은사진도있던데
진리의 보태가를 가족유사성으로도 적용가능하네요ㅋㅋㅋㅋ
신작 굿굿
유튭에서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다뉫!
근데요 정말 인간의 규정을 뛰어넘는 언어를 예를들어 영화 컨택트에서 외계인들의 언어처럼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간대에 이해하게 될까요?
철학, 사상=뇌의 전기 화학작용이 작동하는 유희.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거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거 같고 하지만 결론도 없고 명확하지도 않고 답도 없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 옴. 인간은 동물이기에 기본적 본능에서 결국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음 죽을 때까지.
후기 비트켄슈타인은 마치 발효음식 같은 것. 김치의 종류는 각 가정 어머니의 수 보다도 많죠.그 때 그 때 사용하는 량이나 배합이 틀리고 발효 온도,저장도 틀리고...김치 맛은 어머니의 숫자*알파=김치의 실제 종류.이정도 되는데 언어나 세상에 대한 정의,생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100 명이 있다면 최소한 100개의 생각이 있는거고 실제로는 각자가 수시로 생각을 바꾸니까 실제로는 무한정한 것이 생각이겠죠.
실상이 이런데도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사는 걸보면 신기하긴 해죠. 이럴 땐 인간 만세해야 맞나? 아님 너무 어지러워 인간세상은 부조리한 곳이야 해야 맞나?
김치는 김치이고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람의 사상은 그의 사상임. 서로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가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논증 방식은 10스레기 방식이니 하루 빨리 버리시길 ㅇ
세상에서 제일 쉬운건 죽음 다음에 침묵되어지는것이다....🤔🤔🤔
언어가 세계에 대한 그림 → 언어의 실제 사용인 언어놀이(가족 유사성)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 노자의 도가도비상도 주장과 비슷한 맥락인 듯 하네요
하이데거보다 비트겐슈타인인가요?
1학기 철학개론듣고 C0나왔어요 그래도 비트겐슈타인이랑 카뮈랑 키르케고르는 좋아해요
전기: 입자 후기: 파동
'알파메일'이라는 단어는 초기에 불리우던 '알파메일'과는 매우 다른뜻을 가지고있음
지금 24년도 사람들이 과거에 알파메일을 썼던 학술자들의 주장을 들으면 전혀 다르게 해석할거같음
몇년전의 알파메일과 지금의 알파메일은 전혀 다른뜻
넌 아파매일
모든재산을 포기했다는게 대단하다…
아임 그루트
'거시기혀~'가 맥락에 따라 여러 뜻이 되는...ㅋㅋ
충코님 논리학 기초에 대해서 영상 올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퍼지로직을 이용한 언어적 변수의 수학적 표현이 생각나네요.
키에르케고르 영상올려주세요
충코님도 잘생기심 타블로 닮음ㅋㅋㅋ
난또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람인줄 알았네.
개념의 의미가 무한할 수 있다는 건 지금은 상식이라서 그런가?
이게 우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음.
분석도 불가능 이해하지도 못한다...이해 한다는 것은 뻥이다...지금은 21세기 이다.
비트켄슈타인 시대가 아니다.
사진 개잘생겼네 ㅋㅋㅋ 금수저에 지금까지 회자되는 학문적 성취까지 다가졌네 ㄹㅇ
그래서 논문 쓰는게 어려운 거군요..
결국엔 철학자의 생각도 이리저리 바뀐다는 건데..이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나요? 뭐랄까 이공계 출신들이 문과 출신 비아냥 거릴 때 좋은 소재 같네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철학을 접하면서 제 세계가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고생하고 생활이 힘들면 삶이 생생해지고 피부로 다가올까 싶어서 입대를 하였는데 최전방 gop에 배치되었을 때 내심 기뻤습니다. 앞에는 북한이 보이고 북의 도발이 계속될 때 장난으로 머리카락 한 올과 유서를 쓰라고 할 때 그냥 덤덤했습니다. 저에게도 훌륭한 사람이 될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갑자기 뭔 죽어버리고싶다는 말이 왜나옴..
삶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생기는 것은 고통의 경험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주고 가치를 더하는, 생명을 긍정하는 경험들을 통해서입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공감해주는, 지지해주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보다 많은 성취의 시간을 맛보시기도 아울러 기원합니다. 그런 시간과 경험들을 통해서 스스로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 지를 깊이, 많이 느끼시길 기원합니다.
삶이 힘들고 의미를 찾기 힘들 때, 여러 사변적인 철학보다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자는 거기서 삶이 인간에게 적대적이라고 규정하면서, 마치 시지프가 돌을 굴려 올리고 또 다시 그 의미없는 짓거리를 반복하는 듯한 부조리한 삶에서 과연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 생각이 옳건 그르건, 그 생각에 동의하건 반복하건, 우리가 삶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수많은 시각이 있고, 어느 쪽을 따르는가 하는 것은 대부분 객관적 요소보다 주관적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2, 3년 전에 군 인성 교육을 담당했던 강사로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젊은 이(들)에게 조그마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답니다.
@@AHAAAA 좋은 말씀입니다
놀이의 본질적 공통점은 타인을 제압하고 승자가 되는 것. 그로부터 느끼게 되는 쾌감
아주 흥미로운 접근법이네요! 언어놀이에서도 그런 승패의 경험이 일어날 수 있겠군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노자와 관련지어 억지 해석하는데 참으로 안타갑 습니다. 노자는 언어에 관심이 전혀 없었고 기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호 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동양에서 삼단논법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문법 가르치지 말고, 돈 되는 소설 작문이나 가르치는 게 정답이네요. 국어나 영어나 다 말이죠.
아는것은 힘이다 프랑스 이스 베이컨 일화가 떠오르네요
프랜시스 베이컨 이라는 사람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썰...ㅋㅋㅋ
정상이 아니에요 이사람도
The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라는 책은 의외로 얇습니다. 대학교 학부 다닐 때, 한학기동안 언어논리/분석철학 교수님과 원전을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간단한 비평과 소감을 댓글로 남기자면, (1)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동양의 직관적인 종교철학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가를 동양학문계에서 많이 듣는데, 실상은 서양의 언어논리철학의 과잉발전(?)에 비트겐슈타인 본인의 의향과 관계없이 이바지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한국철학계도 전통적인 희랍/중세/근세철학들은 다 쓰레기통에 들어가야된다는 쓸데없는 형이상학적인 컨텐츠들로 매도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1970/80년대에 유럽보다 미국으로 논리실증주의 철학을 공부하러 가던 많은 젊은 철학자들이 생각납니다. 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모택동의 문화혁명처럼 언어논리실증주의 책 몇권으로 철학계의 홍위병 노릇을 하던 모습들이 생생합니다. (2) 물론 곧 철학의 본질이 언어논리적 담론에서만 그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사회적 가치 그자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반성이 일면서, 21세기가 되면, 이 철학판 문화혁명은 다소 진정되는 듯이 보입니다. (3) 동양사상에도 정명사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정명사상은 동양의 수리철학인 상수철학(주역과 정역)과도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데, 만약에 비트겐슈타인의 그의 성향상 이 상수철학을 알았다면, 이에 열광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상수철학의 핵심논리는 수가 천지우주의 본성과 우주변화의 원리를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앞으로 K문화가 세계로 뻗어나아가고 있는데, 그 마지막 단계는 한국의 고유철학인 역철학(상수철학)이라고 봅니다. 10년후에는 전세계의 철학도들이 이 상수철학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오는것을 상상해봅니다. (1909년, 종교사상가 강증산의 예언 -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모든 세상사람들이 우리의 말과 문화, 사상, 문명을 배우러 오리라!")
설명 졸라 어렵게하네
별로네요 ^^철학공부 더 하세요
언어란 공감자가 적어도 둘 이상일때만 가능하다
초월경험은 언어화될수 없다
콜라를 먹어보지않은 사람에게 콜라를 설명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