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vs 일본 전격 국력 비교!! 일본의 압승? 그런데 조선은 어떻게 일본을 무찔렀을까? [임진왜란-4]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26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426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Рік тому +84

    1. 일본의 국토가 한반도 국토의 2배로 표기했는데 이는 요류입니다
    현재 일본 국토에서 홋카이도 지방을 제외하면 약 30만 제곱km이고 한반도 면적은 약 22만 제곱km 입니다
    여기서 류큐와 센카쿠열도까지 제하면 차이는 더욱 좁혀질 거구요
    인구가 최대 2배 차이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걸 착각한 것 같습니다
    면적이라도 적어놨으면 실수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2. 관동평야는 센고쿠시대 이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개간한 땅이기에 임진왜란 기준으로 관동평야를 곡창지대라 표현한 건 잘못됐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해당 자료는 제가 아직 조사를 못 해봐서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형으로 따지자면 둘 다 산악지대가 많아서 산악지형은 빼도 될 것 같고요
    다만 조선은 북쪽이 너무 추워서 농사짓기가 어려우니 그걸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대충 호남평야의 많은 생산량이 한반도 북부의 적은 생산량으로 인해 상쇄됐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또한 일본은 한반도보다 기후가 따뜻해서 식량 생산엔 더 좋았을거란 의견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 임란 직전 기준으로 조선과 일본의 식량 생산량을 비교해보면
    '일본 국토는 조선 국토에 비해 조금 컸다
    그 외 조건은 대충 상쇄되는 것 같으니 식량 생산량은 대충 엇비슷하거나 일본이 조금 더 많았을 것이다'
    라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조사 자료가 미비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3. 일본 북부 지방의 옳은 표기는 '훗'카이도가 아니라 '홋'카이도입니다
    여태 잘못 알고 있었네요 ㅠㅠ
    4. 의병에 관한 부분은 문제가 많아 삭제처리 했습니다

    • @zzang-mathis
      @zzang-mathis Рік тому +20

      식량 생산량과 소비 부분도 오류가 있는데, 농지 면적도 일본이 넓지만 토지 생산력도 비교가 안됩니다.
      일본의 상당한 지역은 벼만 2기작이 가능한 곳이에요. 호남 평야의 생산량은 일본에 토지에 비하면 곡창이라는 말을 전혀 붙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식량 생산량은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예전부터 지금까지 영남 지방이 호남 지방에 비해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하루에 3끼를 먹었다는 것도 오류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세끼를 먹는 문화가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고 그 전에는 우리 나라도 대부분의 농경 민족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두끼를 먹는 문화가 많았습니다
      의병 문제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이 지적해주셨으니

    • @ELBUG-ku1iq
      @ELBUG-ku1iq Рік тому +1

      ​​@@역사의길 일본 단위로 쌀 1석이 인구 한명이 1년에 먹는 쌀이었고, 태합검지령은 당대에 실시된 1차 사료이니 태합검지령을 근거로 추정한게 아닐까 합니다.
      태합검지령으로 확인된 일본전국토의 쌀 수확량이 1800만 석이었으니, 1500만~1800만 사이쯤이겠죠.
      조선의 쌀 수확량은 일본의 친한파교수 키타지마 만지 교수가 당대 일본사료 조선사료 전부 참고해 추산한 결과 1200만 석이니 대충 900만~1200만 사이였다고 보구요.

    • @ELBUG-ku1iq
      @ELBUG-ku1iq Рік тому +14

      @@AFTFH-99 히데요시가 천통한 직후 실시한 태합검지령으로 쌀생산량이 1800만 석이었고 에도시대 후반기 쌀생산량이 6000만 석이었으니 관동과 동북의 개간때문에 조선과 일본의 국력차가 안드로메다로 벌어진 듯 합니다

    • @진실의방으로-y7g
      @진실의방으로-y7g Рік тому +9

      호남 평야도 대부분 일제시대에 간척+개간한 것입니다.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ELBUG-ku1iq 단순 인구와 쌀 생산량으로만 국력을 가늠하기 어려운게 공업 능력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조선이 비록 사농공상으로 공업과 상업을 천시했지만,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보고 있는 것도 공업 능력이 조선이 일본보다 한참 한 수 위었습니다. 한예로 통신사들이 일본에 갔을 때 조선에서는 서민 밥그릇이 일본에서는 다완이라 부르며 고급 자기로 쓰여지는 걸 봤었죠. 물론 전쟁이후 도공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조선의 은채광술과 대규모 철재주조술등 많은 기술들이 건너가면서 경제력 차이가 본격적으로 났죠. 이는 전쟁 이후 통신사 일지에서도 부유함을 인정합니다.

  • @컹스-j2u
    @컹스-j2u 10 місяців тому +22

    유교탈레반으로 시장경제 자체를 조져버린게 큰듯

  • @kiyongkim7651
    @kiyongkim7651 Рік тому +50

    저도 명나라의 참전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평양성 함락 이후부터는 일본은 조선과 명, 양국과 싸움을 벌인것이니. 만일 명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본의 영토가 되지 않았더라도 국토 전반이 초토화가 되어 국가기능을 거의 상실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 @나만세-b1z
      @나만세-b1z 2 місяці тому

      명나라가 참전 안했으면 말 그대로 답이 없죠.
      이순신이 추가 파병,보급을 끊어주고 명이 밀어내서 승리한 겁니다.
      이순신의 존재와 명나라의 참전 둘중 하나라도 없었으면 졌을 전쟁입니다.

    • @우주악당삐삐
      @우주악당삐삐 16 днів тому

      그럼 지나가던 베트남에서 10명보내도 3대1이니 조선이 유리하단 논린가요?

    • @kiyongkim7651
      @kiyongkim7651 16 днів тому

      @@우주악당삐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명의 만력제가 보낸 지원군은 10명 그런 수준의 군세가 아니라 정말로 국력을 쏟아서 보낸 병력입니다. 실제 명의 본군이 도착한 이후로 육지에서의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총지휘권이 명군에 있었고 평양성 거점이 탈환되면서 이순신장군의 해상 보급로 차단과 함께 일본군이 일제히 남하하여 거점수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벌어지던 일본군의 약탈과 살육을 남부해안 일대로 다시 축소 할 수 있었지요.
      임진왜란이후에 숭명(崇明)의 자세가 절대적으로 된 것은 왕의 위신을 유지하려던 선조의 정치적인 계략도 있지만 실제로 조정과 민간에서도 전쟁에서 명군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입니다.

    • @ahahahaahbsbddbdb
      @ahahahaahbsbddbdb 2 дні тому

      ​@@우주악당삐삐명 파병 이후엔 명나라 군사가 대부분이었음

  • @고대경-b6d
    @고대경-b6d Рік тому +49

    일본은 기후가 더 따뜻하고 평야도 많아서 농사 짓기도 한반도의 조선 보다 유리해서 농업생산력에서 앞서고 오랜 내전으로 단련된 군사력, 섬나라 라는 특성으로 외침을 받지 않고 인구도 많은 것이 이유죠. 오늘날 한반도의 대한민국 🇰🇷과 북한, 일본열도의 일본을 비교하면 마찬가지죠.

    • @user-ri73bdis88h7
      @user-ri73bdis88h7 Рік тому +15

      섬나라가 외침이 없는건 사실이지만 내전이 계속되었으니 인구면에서는 같았을겁니다. 대신에 내전경험으로 군사력은 높은건 인정이구요.

    • @user-g5bs1gh8h
      @user-g5bs1gh8h Рік тому +12

      일본은 이미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 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였고 실제 오다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것도 결국 상업을 통한 경제력 장악이었고 저는 이것도 크다고 생각함

    • @ohmalub
      @ohmalub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user-g5bs1gh8h 상업 공업 기술이 많이 발전했고 조총은 유럽 전체보다 총이 많았을 정도였죠

    • @예압-w7z
      @예압-w7z 3 місяці тому

      일본은 간토평야가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우리보다 산이 많은데영

    • @HAND_AXE
      @HAND_AXE Місяць тому

      산림비율은 비슷. 근데 땅 크기가 확실히 일본이 큼. 한반도보다. 남한말고

  • @jqgj6692
    @jqgj6692 9 місяців тому +21

    저떄 일본의 경제규모가 진짜 상상초월인듯하다,, 아직 중세인데 그떄라면 유럽나라들도 대부분 가난하고 , 전세계에 아직 풍족하게 사는국가가 없다고 볼떄인데
    이미 자본주의 상업의 발달이 완성되있고 , 농사도 잘됫나본지 쌀수확량도높고 인구증가율도 매우높앗던거같음, 무엇보다 몇십만의 군대를 군선까지 건조해서
    원정까지 보낼정도의 국력? , 그리고 수십만의 군사들이 조선처럼 징병 농민병이 아니라 월급받는 직업군인 , 그러니까 현대사회에서도 어려운 모병제를
    진작에 하고있고 , 규모가 몇십만이상이라니 , 현대국가들도 힘든규모임 , 내생각엔 저떄 일본의 경제규모 군사규모나 전투력등,, 세계유일무이하게 최고수준일거같다
    그떄는 유럽도 여기저기 갈라지고 통합도 잘안될때임 ,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칠떄 이미 산업화직전의 수준에 와있다고 봄

    • @PunchCat-i5j
      @PunchCat-i5j Місяць тому

      그건 너무 높게 친거고 당시 일본이 부유했던건 국가가 통합하며 농업생산량이 올라가고 전국시대가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 병력들의 질이 좋았던 것도 있고
      당시 조선에서 만들어진 연은분리법이 일본에 건너갔는데 당시 세계경제는 명나라가 지정은제를 도입하면서 세계적으로 은이 화폐로 사용되었고 일본은 조선에서 건너온 연은분리법으로 은 생산량이 매우 높아졌고 명나라가 쇄국정책을 하며 조선과 몇몇 조공국들을 제외하고는 거래를 하지 않으니 일본으로 거래상대를 돌리게 되면서 막대한 부를 쓸어담게됨.
      정작 이 기술을 개발한 조선은 은생산을 장려하던 연산군이 폐위되고 사치를 장려한다며 은광산을 폐광시켜버린게 결정타였음

  • @로건리-h2g
    @로건리-h2g Рік тому +23

    한반도 생산력이 일본열도 생산력보다 낮아진건 고려때부터입니다. 다만 한반도는 통일국가, 일본열도는 분열국가였던 관계로 힘을 모으지 못했죠. 결국 일본열도는 통일 후 더 넓은 영토의 온전한 농업생산량과 더 많은 인구로 조선을 침공하게 됩니다.

    • @kingvs1628
      @kingvs1628 2 місяці тому +1

      일본은 늦어도 14세기가 되면 모내기 이앙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합니다. 2모작도 가능한 기후였고요. 생산력 차이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일본이 높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백강전투에 4만 병력을 바다건너서 원정보낼 정도의 국력은 당대에 몇나라 없습니다..

    • @나만세-b1z
      @나만세-b1z 2 місяці тому +3

      일본이 처음부터 생산력이 높았습니다.
      어디서 본 자료인데, 일본이 제대로 나라가 서지도 않았을때 한반도로 식량 수출을 한 자료였습니다.
      농사가 아니라 채집과 수렵으로 수출까지 될 정도니, 땅과 기후가 한반도 보다 좋았던건 맞습니다.
      총균쇠에서 본건데, 농업 생산력이 채집 생산력보다 효율이 높아진건 철기가 도입되고도 한참이 지나서 라고 합니다.
      즉 처음부터 일본의 생산력은 한반도를 앞서고 있었다는 말이죠.

    • @xtreemsjyu
      @xtreemsjyu 3 дні тому

      저는 개인적으로 기원전 3-1세기 즈음, 한반도(고조선의 몰락으로 도미노처럼 요동에서 부터 파도치는 정치적 혼란) 남부에서 밀려난 한반도 남부에 살던 왜인이 야요이의 시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조몬인은 인구가 많지 않았고, 일본의 시대별 추정인구 또한 야요인의 농경생활이 시작된 이후가 성장 속도가 빨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즉, 한반도보다 일본 혼슈(홋카이도 제외) 까지의 영토가 약간 크다 하나, 인구가 한반도를 넘어선 것은 생각보다 후대에 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즉, 땅은 넓지만, 인구가 적어 생산력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더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안된 일본을 통으로 비교하기에는...

  • @강태윤-j4u
    @강태윤-j4u Рік тому +39

    임진왜란 직전 조선과 일본의 국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둘 중에서 일본의 국력이 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운영자님이 영상에서 대부분 설명하셨기에 추가로 말씀드릴 것은 없지만
    굳이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바로 서양과의 직접적인 무역이었습니다. 조선도 무역을 했습니다만 명나라, 일본 외에 다른 나라와 직접적인 무역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이 시기에
    서양과의 교역을 통해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수입 및 개발과 함께 천주교의 영향으로 인해 서구적인 안목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이 조선 정벌을
    실패한 이유는 운영자님이 설명해 주신 것 외에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잠재적인 적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런 이에야스를 따르는 관동 지역의 다이묘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명나라 군대의 참전은 그들이 평양성 전투를 제외하고 조선군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참전한 것 자체만으로
    일본군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의병의 등장은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 보급로를 철저히 괴롭혔고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성주성 탈환전을 여러 번 시도하면서 일본군의 후방을 위협했습니다. 특히 함경도는 정문부 장군이 이끄는 의병의 힘으로 수복되었다는 말씀을 함께 드립니다. 정유재란 때 의병이
    다시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1차 전쟁인 임진왜란 기간 중 활약했던 의병장들과 의병들이 관군에 편입된 것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김덕령, 이산겸 같은 의병장들이 무고죄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기에 이에 대한 조정에 대한 불신도 분명 작용했을 것입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이번 영상도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7

      선조 수정 실록에서 명나라군이 도움이 안된 것으로 기록이 되었지만, 명나라 군은 북군과 남군으로 나뉘어서 조선에 파병되었습니다. 명의 남군의 경우 조선 처럼 일본의 약탈을 겪은 적이 있어서 대보병 전술이나 무예 등을 적극적으로 알려줘 조선군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귀'라는 장수에 대해서 봐도 굉장히 높게 평하고 있습니다.

    • @drpepperzerosugar
      @drpepperzerosugar Рік тому +1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였죠. 오직 명나라만 사대하는 종속국.
      사실상 명나라의 식민지 국가나 다름 없었던터라, 열악한 농업 생산량의 상당부분이 명나라의 조공으로 바쳐져 실제 상황은 더 처참했죠. 일본에 절대 비빌 수 없는 국력의 차이였음. 이에 반해 왜는 명나라와 1:1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군사 강국이었음.

    • @The_Right_Peoples_Life
      @The_Right_Peoples_Life 10 місяців тому +6

      ​@@drpepperzerosugar그건아님;; 당신이 말하는건 괴뢰국수준이지, 조선은 속국수준임. 그리고 그당시 일본이 강국은 맞았지만 명나라에 비빌만큼 강국은 아니였음.

    • @나만세-b1z
      @나만세-b1z 2 місяці тому +2

      ​@@The_Right_Peoples_Life속국은 아니고, 지금 한미관계와 비슷함. 사대란게 큰것을 섬긴다는 뜻인데, 국력이 강한 나라에 머리를 숙인다는 외교 노선임.

    • @j.c.s7762
      @j.c.s7762 Місяць тому +3

      명과 조선은 형식상은 종주 종속 관계이지만 명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책봉이 있지만 명이 책봉하여 조선국왕으로 임명 되는게 아닌 조선에서 왕으로 등극한 후 명에게 허락을 받는식의(허락 안해서 왕에서 내려간 경우가 없음) 사실상 독립국입니다 그 이전 원과 고려의 관계처럼 속국 수준(강제성)하고는 완전 달랐어요 명이 조선에 외교적 수탈하는것도 거의 없었어요

  • @진우-q7d
    @진우-q7d Рік тому +6

    15~16세기 조선과 일본의 국력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일단 인구는 조선의 경우 학자들 마다 주장하는 추정치가 천차만별이라서 700만~1,400만까지 잡는데, 대부분 900~1,000만 정도로 봄.
    동시기 일본의 경우 1,200만~1,800만 정도로 잡는데, 1,200~1,500만 정도가 중론에 가까움.
    당시 농업생산량으로 보았을 때 토지는 조선과 일본 모두 150만 정보로 두 나라 전부 누락치가 존재할 것을 감안해도 경작지의 크기 자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음. 그러나 문제점은 조선은 밭 중심의 농업 사회였던 반면에 일본은 논 중심의 농업 사회였기 때문에 농업 생산량 측면에서 일본이 유리할 수밖에 없음. 조선의 1인당 농업생산량은 세종 시기 1.8석으로 최고정점을 찍고 꾸준히 하락세에 들어 1.0~1.3석까지 떨어진 반면, 일본은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세종시기 1.0석에 불과하던 일본의 1인당 농업생산량은 임진왜란 직전에는 1.4~1.5석 가까이 증가함.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치에 불과하고 추정치를 제시한 학자도 한국의 1인당 농업생산량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감소한 것 때문에 실제보다 상당히 과소평가 되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일본의 농업생산량이 더 많았던 것은 사실임.
    전체적인 농업생산량은 파악된 것으로는 조선의 경우 대략 1,200만 석 정도로 추정하고 있고, 동시기 일본은 대략 1,500~2,000만 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즉, 인구는 대략 1.5배, 농업생산량도 1.25~1.6배 가까이 났음.
    앵거스 매디슨이 제시한 조선과 일본의 1600년 GDP는 대략 1.5배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하지만 이 당시의 GDP 추정치는 사실상 믿을만한 수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충 아 그 정도 차이가 났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됨.
    군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신분 등의 조건을 감안하고 조선의 군역 동원 가능 인구는 60~70만 정도였으나, 조선에는 보인 제도라는 것이 존재하여 실질적으로 군역을 지는 것은 20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40만 명 이상이 보인으로 돈을 내고 군역을 지지 않았음. 그렇기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동원한 군사는 대략 50만 명으로 여러 썰이 존재하지만 대략 일본의 동원 가능 인구의 50%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고 보았을 때 큰 차이를 보임. 거기에 일본은 5만 명 이상의 대군을 한번에 상륙시킬 수 있을 만큼의 수송선이 존재하였는데, 조선의 경우 수군의 정원이 대략 2~3만 내외였고, 전시에 동원되는 조운선 등을 다 합친다고 보았을 때 수군의 질적, 양적 수준은 비슷했다고 봄.
    여기에 세입의 경우 일본은 봉건제의 모습을 띠고 있어 획일화된 세율이 적용되지 않고 지역과 가문마다 제각각의 세율이 적용되었으며,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영주들이 농민을 악착같이 쥐어짰기 때문에 일본의 세입액은 조선에 비해 훨씬 높았을 것임. 동시기 조선의 경우 중앙 조정이 거둔 세입액은 쌀 50~60만 석 내외로 국내총생산의 5%채 안되는 미미한 수치였음.

  • @Utd5
    @Utd5 Рік тому +31

    웃긴게 일본 유명 사극들 보면 '군사 칸베에', '사나다 마루' 등 보면 오히려 일본의 다이묘나 5봉행 등이 조선을 문화가 찬란하고 뭐 그런 나라라고 대사에서 나옴 ㅋㅋㅋㅋㅋㅋ 서로서로 가진게 다르니 서로가 서로에 없는 걸 높게 쳐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독특이2
      @독특이2 Рік тому

      그나마 군사 칸베에랑 80년대 nhk사극(이름 생각안남)에서 임진왜란이 조금이나마 묘사됐죠 ㅋㅋㅋ

    • @Utd5
      @Utd5 Рік тому

      @@독특이2 최근 사나다 마루에서도 언급되었고 사실상 준주인공인 이시다도 조선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문과라 그런가)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1

      @@Utd5 당시 일본이 통일 한 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관백이 별로 없었다고 하면, 말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삼국연의 조차도 대부분 모여서 글 읽을 줄 아는 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알고 있었으니.

    • @ohmalub
      @ohmalub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하이젠버그-b3b 공업기술이나 무력 상업과 많은 식량생산으로 국력은 강했지만 그런건 많이 약했군요 ㅎ

    • @moonblade4406
      @moonblade4406 17 днів тому

      ​​@@ohmalub
      성리학만이 학문이고 사상이고 철학인 것이
      조선의 재앙임
      일본지배층이
      한반도의 한민족의 민족정기에 가깝지 않았을까
      삼국시대 고백신 유민 통일신라 유민 고려유민까지 다 넘어감
      ㅋㅋㅋㅋ
      간혹 왕들이 신하를 가르쳤다는 조선판타지는
      성리학 잘 외우기 싸움임

  • @ddfgt3c-4fvb
    @ddfgt3c-4fvb 11 місяців тому +5

    경지 면적을 지금의 기준으로 보는 건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야 농기계를 이용해서 농작을 할 수 있어서 경작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지만, 그 땐 농업에 쓸 수 있는 거라고는 인력이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면적으로 산출량을 계산하기보단 인력 자체로 추산하는 편이 더 올바를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면적도 한계가 있습니다. 수경재배를 하니 물을 갖다 대야죠, 씨 뿌려야죠, 잡초 뽑아야죠, 가을에 추수해야죠, 곡식 낟알 털어야죠, 농촌에서 살아보면 휴일이 없습니다. 농한기에도 다음해 농사를 위해서 해야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밥그릇 차이도 언급하셨던데, 요즘처럼 식품이 넘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적은데도 많이 먹은 게 아니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먹었던 거라고 추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선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대인데 노동력을 전쟁에 가져다 썼다면 쌀의 수확량은 더 적을 수 밖에 없었겠죠. 그러니 그 당시 일본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됩니다.

  • @길민제-j3r
    @길민제-j3r 8 місяців тому +6

    명이 본격 참전은 1593년 부터이니 초반 2달 빼고는 이미 소모전으로 가서 명 직접적인 참전 없어도 일본이 조선 먹는것은 쉽지 않아요 즉 개전 1년동안 일본군 사상자가 12만이였을 정도로 괘멸적이였어요

    • @PunchCat-i5j
      @PunchCat-i5j Місяць тому +1

      이게 맞는게 사람들이 임진왜란때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함.
      사실상 7년 중 6년이 부산 구석에서 수성전 하면서 뻐팅기던 상황이었는데 초창기에 준비안된 조선을 밀어붙힌 위세로 너무 과대평가됨.

  • @볼쇼이
    @볼쇼이 Рік тому +6

    조선을 일본보다 크게 그린 것은 완전 거짓이지만, 일본을 조선보다 크게 그린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국토,인구,생산력,전투력 측면에서 조선보다 우월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조선은 그냥 홈그라운드에서 지키는 입장이었고, 명나라 도움까지 받았음에도, 바다 건너 장거리 원정군을 보낸 일본을 7년간이나 몰아내지 못했고, 히데요시 죽고 나서야 일본이 스스로 물러나는 바람에 전쟁이 끝난 것임.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Рік тому +35

    16세기에 경제와 농업생산에서 압도까진 아니어도 상대적 우위에 있었죠...
    다만 봉건제로 역량 집중에 한계가 있으니 조선이 잘 대비했다면 좋았을 것을...;;

    • @남산코끼리-l3e
      @남산코끼리-l3e Рік тому +8

      징비록 드라마보다 눈물나서 못보겠더군요. 대비를 안한건 아닌데 이미 총체적난국이였어요.

    • @shotgun2992
      @shotgun2992 Рік тому +14

      애초에 귀족(양반)되면 군대 빠지는 나라는 전세계에 조선 하나 뿐이라 대비를 100배를 해도 결과는 비슷비슷했을듯…
      죄다 총기 무장해서 기사가 필요없어졌을때도 귀족들이 지 자식은 한두놈 군대 보내서 기병대나 장교라도 하게 했음

    • @이도형-x9x
      @이도형-x9x Рік тому +6

      @@shotgun2992 중국 일본도 많이 빠졌습니다
      서양도 군사 귀족 아니면 많아 빠졌고요

    • @ssamjanghannip
      @ssamjanghannip Рік тому +11

      누가 봉건제 사회인데 일본 전병력 2/3인 40만을 끌고 왔을거라 생각했냐고 ㅋㅋ

    • @drpepperzerosugar
      @drpepperzerosugar Рік тому +6

      16세기 조선과 일본은 압도적인 차이가 난 거 맞음.
      조선의 생산량의 상당부분이 명나라에 조공으로 할애되는 바람에 조선의 경제는 처참했음.
      그리고 봉건제 핑계대는데, 그 시절에 봉건제 아닌 국가는 없었음.

  • @제임스-w2n
    @제임스-w2n Рік тому +13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생각보다 불안정해서, 유력 영주들에게 임진왜란 참여유도를 시키지도 못함... 가장 큰 영주인 오대로 중에서 임진왜란에 참가한건 모리, 우키타 뿐이었음... 그나마 우키타 히데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양자여서 총대장으로 임진왜란 참가한거라.....

  • @심원식-m7v
    @심원식-m7v Рік тому +8

    목소리가 너무 좋네요~~
    구독 눌렀습니다

  • @테리-f4z
    @테리-f4z Рік тому +38

    일본군들이 쳐들어와서 식량조달 하려다가...이렇게 가난한 나라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하죠. 국력차이는 어마어마 했을겁니다.

    • @user-jjy1015
      @user-jjy1015 Рік тому +19

      일본군입장에선 도로도 없고 식량도 없는데 자기들은 듣도보도 못한 의병이 일어나고
      밥먹는건 자기들보다 더먹는걸 보고 정말 여러가지로 충격이였을듯

  • @사무엘-l8v
    @사무엘-l8v Рік тому +7

    임진왜란때 이미 일본이 조선보다 국력이 더 강했음 일본이 청일전쟁부로 청나라도 추월한듯 그니깐 국가 경제규모는 그때까진 청나라가 훨씬 컷겠지만 군사,정치제도,외교에서 입지 모든거 고려할때 청일전쟁 이기고 청나라도 넘은듯

  • @옼꾸릉
    @옼꾸릉 Рік тому +8

    아니 성곽보수할돈도 없고 농업국가면서 생산력 ㅈ또없네 저정도면 전쟁을 이긴것보다 나라를 어떻게 유지시킨거에 놀라야될듯

  • @johnpark657
    @johnpark657 Рік тому +9

    임란직전 곡물생산 조선 2000만석 일본 1850만석으로 농업기술이 현격하게 차이남 단지 세율이 조선1할 일본6할로 군비면에선 조 200만 일본 1000만 이상으로 5배 차이가 남

    • @이승원-f9h9z
      @이승원-f9h9z Рік тому +1

      조선의 한석과 일본 석고에서 예기하는 한석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석은 백미기준 180kg 으로 조선의 탈곡 전 두가마 보다 많은 것 같던데, 저도 정확하지는 않아서 찾아봐야겠네요

  • @연자강-k6q
    @연자강-k6q Рік тому +3

    넘 잼있어요

  • @Gucci-in6zo
    @Gucci-in6zo Рік тому +3

    감사합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Рік тому

      제가 더 감사해요!
      재밌게 시청해주시고 후원까지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 @베지터-b6y
    @베지터-b6y Рік тому +55

    음,,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일본을 무찌른건 아니고 토요토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쇼군들이 본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 권력을 사수하려고 한게 임진왜한 종결의 가장큰 이유라고 생각함.

    • @benyoo6711
      @benyoo6711 10 місяців тому +16

      왜군은 전쟁터지고 몇년지나자 경상도 해안가에서 왜성쌓고 버티기했고 일본다이묘들도 전쟁끝내고 퇴각하길 원했습니다. 전쟁비용이 어마어마했거든요. 토요토미가 전쟁을 일으켰으니 뭐라도 받아내고 끝내려고 버틴탓이 제일 큽니다.

    • @샤아-g1h
      @샤아-g1h 10 місяців тому +4

      맞음 ㅇㅇ 걍 존버로 이긴 거

    • @천-l8w
      @천-l8w 10 місяців тому +16

      버텨낸 게 무찌른 건 맞아요. 지금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저 때도 공격하려면 천문한적인 전쟁 비용이 들어가는데, 일본은 전쟁을 수행할 만한 경제력이 아니였으니깐요. 도요토미가 안 뒈졌어도, 저 상태로는 계속 전쟁 수행하기가 무리였어요

    • @qlnmnlp8561
      @qlnmnlp8561 9 місяців тому +6

      그때쯤되면 히데요시가 죽던말던 상관없음
      이미 전쟁이 질질 끌려서 조선 전투력이 상향평준화되고 일본은 보급문제에 더 시달리게되면서 더 이상 조선상대로 일본이 거저먹는 전투는 점점 사라지게됨

    • @샤아-g1h
      @샤아-g1h 9 місяців тому +7

      @@qlnmnlp8561 맞음 왜 입장에선 속전속결로 조선왕 잡지 못한 시점에서 패퇴가 결정된거나 마찬가지였지

  • @VHG-yn3xp
    @VHG-yn3xp Рік тому +5

    조선의군대는 사실상 어제는 농민 오늘은 군인이었으니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전투에 참가했을거같네요..(몇몇 훈련된 군인뺴고 대다수는 농민들을 징병해서 싸웠다하네요)

  • @테라리마리오
    @테라리마리오 7 днів тому +1

    솔직히 저당시 일본군은 체계적인 정예병에다가 조총 각 부대 지휘시스템도 그리고 경험 또한 많고 군사 숫자 또한 많앗으니 .. 각 다이묘 시스템 안에서 정예병력 시스템 제도가 얼마나 효율이 좋앗나를 검증 햇다고 보면되지 .. 명이 가깝게 잇엇다면 정복 충분히 햇을듯 .. 멀어서 그렇지 .. 저당시 일본군은 유럽이랑 싸워도 최강 가히 전세계 탑 1이엇을듯 . 군사 숫자면에서도 외국은 용병 시스템이라 20만 군사가 모일수가 업음 기껏해봣자 1만명 정도

  • @doitjust2776
    @doitjust2776 Рік тому +4

    8:11 원래 히데요시의 목표는 명나라를 넘어 인도까지 정복하려 하였지요!

  • @jesse5710
    @jesse5710 Рік тому +13

    역주행님
    오늘도 감사히 잘 봤습니다~
    딱딱할수도 있는 내용들을 항상 쉽게 잘 설명해주시는데 아이들을 위한 만화나 책으로도 나오면 정말 좋겠네요👍

  • @김태중-k7i
    @김태중-k7i Рік тому +5

    한가지 덧붙이자면 당시 조선과 일본에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사실은 맞는거 같아요 다만 조선의 경우 과거 신숙주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작성한 해동제국기를 기본으로 일본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세조때 지도를 가지고 판단하는건 좀 무리가 있어보여요 물론 같은시대이긴 한데 해동제국기가 생각보다 일본을 잘 분석한 자료라서요! 문제는 이후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다보니 자료가 업데이트 되지는 않은거 같아요 즉 조선이 일본에 대해서 알고 있던자료가 100년도 더된 자료라는게 문제이긴하죠 그래서 오닌의 난이후 일본의 센코쿠시대에 대해선 정확한 파악이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일본의 경우에도 소요시토시를 위시한 대마도의 도주이하 여러 관리들이 조선을 자주 다녀왔으므로 생각보다는 조선을 잘알고 있기는 했죠 다만 도요토미를 위시한 조선에 건너왔던 주요제장들이 대마도세력과 사카이상인 출신이며 소오요시토시의 장인이었던 고니시유키나가를 제외하곤 조선을 잘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요 임란전까지 두나라간 워낙 교류가 없기도 없었거니와 상대방에게 신경쓸 여력이 없었죠

  • @tubenoonting
    @tubenoonting Рік тому +3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체제대결의 양상도 있습니다. 일본의 체급이 이미 조선을 상회했지만, 통일했어도 중앙권력의 통치가 흔들거리는 봉건제로 그 국력을 오롯이 동원하기 힘들었죠. 전쟁에 패한 히데요시 세력이 바로 이에야스에게 갈려나가게됩니다. 그에비하면 오랜평화기로 군사력이 약해진 조선이 버틴것은 수세기 다져진 중앙집권관료제의 힘입니다.

  • @정도전-x9w
    @정도전-x9w Рік тому +5

    선조가 잘한것이 이순신 발탁이 크죠 이순신도 부임이후 전쟁대비해 군사훈련과 물자를 보충하는등 했는대 그게 7년간 전쟁을 이렇게 좌우할줄은 예상 못했죠

    • @user-bz9og4wx9j
      @user-bz9og4wx9j Рік тому +2

      선조가 인재등용은 잘했음 다만 정치가보다는 기업가적 성향이 너무 강한게 문제였지

  • @danjjakchinguTV
    @danjjakchinguTV 13 днів тому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hyojinshim9802
    @hyojinshim9802 Рік тому +1

    역시 역주행님 목소리👍 항상 가게에세 이어폰으로 잘보고있습니다~

  • @hai_3760
    @hai_3760 Рік тому +8

    볼때마다 느끼지만 참 좋은 영상👍 이런 채널은 상주자

  • @조광조-w2p
    @조광조-w2p Рік тому +16

    영상잘보았습니다. 다만 정유재란때 의병이 아예없었던것은 아니고요. 조식의 제자 정인홍이 유일하게 의병을 일으켰다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영상 기대할게요~^^

    • @user-bosndocmx
      @user-bosndocmx Рік тому +8

      그리고 그러한 정인홍은 훗날 광해군을 왕위에 올려 북인의 수장으로…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Рік тому +1

      고정댓글을 통해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생대용가리
      @고생대용가리 Рік тому

      원연도 한목했죠 전사하긴 하지만..

    • @팔괘장
      @팔괘장 Рік тому

      @@user-bosndocmx 조선사 덕후 시네요 역사를 좋아하시네요

  • @노지심21
    @노지심21 Рік тому +2

    어쩌니저쩌니해도 명나라가 당시에 엄청난 규모의 군사와 식량을 지원해주었다!
    선조가 잘한것은 없지만, 명나라의 도움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 @jhfoever
    @jhfoever 9 місяців тому +3

    현재 일본의 경작 가능 토지는 남한 경작 가능 토지보다 조금 더 큰 정도입니다. 왜 조선이 대식국으로 불렸고 일본은 소식이 문화가 되었을까요.

  • @구저갱
    @구저갱 Рік тому +5

    사실 늘 궁금한 거 있었는데 이거 아는 사람 있으려나?
    일본군이 장전이 오래 걸리는 조총을 시스템화해서 강력한 군대가 된 건 알겠어. 근데 왜 임진왜란에서 왜군이 대포를 사용했다는 묘사나 기록은 없는거야? 이순신이나 조선&명나라 연합군도 대포를 활용해서 일본군을 격퇴한 기록은 많이 봤는데, 그 전에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성주들끼리 싸우던 시절에 왜 대포가 발전하지 않았고, 심지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대포 맛을 본 뒤에도 도쿠가와 이야에스가 도요토미의 잔여세력과 전투를 할 때도 대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종종 궁금했는데 아시는 분~~?

    • @김동욱-i5b
      @김동욱-i5b Рік тому

      제가 알기론 육상전에서는 지금처럼 포탄이 날아가서 터지는 작열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냥 큰 쇠구슬을 날리는 정도의 위력 뿐이라 별 의미가 없고 성벽 같은데 날린다 하더라도 수비군에서 복구를 해버리면 그만이니 한번 쏠때 화약 소모량도 많고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해상전에서는 달랐지만 일본의 주력선 문제나 이것저것 다른 분들이 분석한게 많죠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김동욱-i5b 조선에는 임진왜란전에 비격진천뢰 같은 초기형 파열식 포탄이 있긴 했죠. 조선은 이미 화력을 집중해서 화망을 형성하는 전술이 발달한 반면 접근전은 약했습니다. 이는 여진족의 기마전술을 저지하는 위주로 발달한 원인이 큰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시 화약 무기들은 생각보다 수명이 짧았고, 일본의 공업 생산 능력은 떨어지기도 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륙당시에도 조총병 같은 포수 비율이 많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 @miniz0217
    @miniz0217 Рік тому +17

    체급차이가 나는것부터 이미 승패는 어느정도 갈렸는데 체급이 차이나도 질적 우위를 통해서 승리하는 사례도 유럽에서 충분히 나오지만 조선은 그러한 질적우위도 없었으니(수군 제외) 명군의 참전이 아니면 사실상 조선은 졌을것이라고 봅니다 제일 큰 공은 명군의 참전 두번째로 이순신 장군님의 활약이 제 생각이네요

  • @이남형-i9v
    @이남형-i9v 2 місяці тому +1

    바다를 사이에 둔 두 국가간의 총력전은 국력과 군사력의 우열에 관계없이 제해권을 가진쪽이 언제나 승리했음이 인류 전쟁사의 결론입니다

  • @leedonghyup
    @leedonghyup Рік тому +1

    대비는 잘 못해도 막상 당하고 나면 잘하는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6

    단순 비교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군이 국가대 국가 전면전 경험이 적었지만, 꾸준히 북방 여진족과 전투가 있었고, 선조대에도 니탕개의 난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쪽과 맞닥드인 남쪽지방은 그 동안 후방에 가까워서 방비가 안되어 있었죠.
    오히려 우리가 익히 아는 판옥선도 이순신 이전부터 잦은 일본군의 약탈로 이를 막고자 연구 개발된 전투선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자 총통(산탄식 개인화기)도 운영했고, 일본의 3단 조총 사격처럼 3단 화력 사격 전술이 있었습니다. 이는 조선이 이시애의 난때 이미 화력 중심의 내전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 정예 병력을 사라집니다(더 강력한 화력의 화차로 찍어누름..). 오히려 화력은 일본군이 조선군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았죠.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행주산성 전투와 울산성 전투입니다.(권율은 행주산성 당시 조선군이 정예 병이라 웅치와 이치 전투에 비해 쉬운 전투였다 평하였고, 울산성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멀리서 화포로 성벽을 깨부수는 걸 보고 왜군이 당황함)
    다만 다른 문화(세계)의 충돌이 가장 크죠. 이미 니탕개의 난을 거치면서 제승방략 체계로 전환되었는데, 일본군은 전쟁을 빨리 끝낼 목적으로 왕을 바로 잡겠다고 레이스를 했고, 이 속도(거의 보름만에 한양 도달)가 너무 빨라서 중앙군이 집결하기 이전에 일본군이 당도해서 와해되는 경우가 많았죠. 애초이 미스테리로 남은 신립의 (무리한) 배수진에 동원된 병력도 정예군이라기 보다는 급히 모집한 징집병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미 (급조한) 중앙군이 깨진 상황에서 한양에서 방어하기는 어려워서 임금이 피난을 갔는데, 일본군 입장에서는 성주가 성을 버린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 했죠.
    그리고 기록상 조선군이 일본의 조총보다 가장 성가신것은 긴 창자루였다고 합니다.

  • @jkc0424
    @jkc0424 Рік тому +2

    고니시가 평양 점령 하고 밍기적 거린거 자체가 명나라의 공격(?)을 대비하려는 성격이 강했다고 봅니다 공세종말점이 와서 그랬다는 말도 맞긴 한데 애초에 목적이 조선 점령이었으면...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컸죠 주요 성 중심으로 순회공연 돌았으면 뭐.
    명나라는 꼬장만 부리고 한거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만력제 제사 지내준것만 봐도 조선이 얼마나 고마워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사실 군사적 지원보다도 명 조정의 재정을 털어서 곡물 사다가 대량으로 뿌린게 컸을겁니다.전란에 농사가 잘 될리 없어 식량사정이 어땠을지는 뻔한지라..
    하긴 그쯤되니까 숭명으로 유턴 한거겠죠 그 전엔 사신들 갑질에 공물 바치네 하느라 숭명은 개뿔이었을텐데 말이죠 결과만 보면 공물 바쳐놓은 값을 해준 셈 ㅋ
    나중엔 명나라가 그떄 조선 도운다고 국력을 쏟아낸게 다른 스노우볼이 또 굴러간것 보면 이래서 역사는 재밌는것 같습니다

  • @wsk-k2i
    @wsk-k2i 10 місяців тому

    결국 보급과 추위 등 있어보니, 자신들이 왔던 농사 잘되고 따뜻한 곳 보다 험악했기에 갈수록 싸울 마음도 줄어들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당시엔 기름 보일러도 비료도 파카도 없던 시절이란는 것...

  • @sslee1418
    @sslee1418 Рік тому +5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영상에서 훗카이도라고 말하시길래 정정 댓글 남김니다. 홋카이도가 더 현지어와 비슷한 발음입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Рік тому +1

      다음부터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franz-liszttt
    @franz-liszttt Місяць тому

    저정도의 열세에도 이땅엔 위기때마다 천재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살려내니.. 참 이땅에 뭔가 있는지 인구대비 뛰어난 사람들 나오는 비율이 높나봄. 신분제도 같은것들이 능력있는 인재들을 매우 억누르고 있던 시대임에도.. 참 대단하긴 함. 역사를 보면볼수록 하나의 생각이 들음. 어케했누?

  • @골식이
    @골식이 Рік тому +67

    이순신이 해군 GOAT인 이유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Рік тому +4

      이걸 이긴다고..?

    • @멋쟁이-e8e
      @멋쟁이-e8e Рік тому +1

      이걸 나진이?

    • @노모해
      @노모해 2 місяці тому

      이순신씨가 수군고트라면 세게대전때 영국해군이 독일을 봉쇄한것처럼 아예 일본군의 추가파병이나 보급이 안되게 만들었어야죠. 또한 일본의 바다를 봉쇄해 일본과 포르투칼 등과의 교역도 막았어야죠. 순신씨는 그냥 훌륭한 해군지휘관일뿐입니다.

    • @user-zu7ug4dd3q
      @user-zu7ug4dd3q Місяць тому +1

      @@노모해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일본의 보급 못막았으면 임진왜란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은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놀라운 전과입니다.

  • @표현의자유-f1p
    @표현의자유-f1p Місяць тому +1

    선조가 커맨드 띄우는거보고 질럿들이 얼마나 컬쳐쇼크를 받았을까

  • @user_775
    @user_775 Рік тому +4

    일본이 식량 소모가 적은건
    세금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임.

  • @정도전-x9w
    @정도전-x9w Рік тому +3

    그런대 저는 신기한게 센코쿠 시대를 격으면서 수많은 전쟁경험도 쌓았을텐데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을 제압하지 못해서 전쟁을 조선에게 반격에 기반을 만들어줬는대
    전쟁경험도 풍부한 일본군이 조선수군을 이끄는 이순신장군을 제압하지 못해서 전쟁을 끝네
    이기지 못했다는건 참 ;; 명량해전도 일본이 워낙 유리했는대 그 유리한 이점도 끝네 살리지 못하고
    명량해전 이후 일본은 아예해전을 피할려고 했으니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하고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대 해전을 포기한다는건 조선정벌 포기하는거나 다름없어서

    • @-markshin-
      @-markshin- Рік тому +2

      솔직히 이순신 장군이 잘하긴 했지만 명덕분에 이긴거죠. 이순신장군이 막은건 아닙니다.

    • @낭랑-t4l
      @낭랑-t4l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실상 명나라의 지원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음 ㅋㅋ 나라가 기울 정도로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해버려서 청나라한테 뒤통수가 터질 정도로 맞아버렸죠

    • @Poro해피
      @Poro해피 10 місяців тому

      센고쿠시대 전투는 대부분 육지전위주였고 해전은 극소수니까요 임란전엔 일본도 대규모 해전을 해본경험이 없음

    • @dw-w5r
      @dw-w5r 8 місяців тому

      ​@@Poro해피 궁금한게 조선은 그 이전에 해전이 있었나요? 찾아보니까 판옥선도 당시 만들어진지 얼마 안됬다던데

  • @user-bosndocmx
    @user-bosndocmx Рік тому +5

    의병이 숫자가 많은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긴함. 경상도 의병의 대표주자 곽재우 뿐아니라 전라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 없을뿐 많이 일어남. 진주성에서 싹 몰상당해서 그렇지

  • @hyungjunkim7564
    @hyungjunkim7564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일단 일본 관동 평야가 우리 한반도 평야 합친거 보다 넓고 이모작 삼모작도 가능해서 결국 한반도가 문명 스타트 빨리 끊었어도 따라잡힐 수 밖에 없는 여건임.

  • @경대승-s4o
    @경대승-s4o Рік тому +53

    30만 살인병기들이 왔는데 나라 안망한거 보면 진짜 기적이네...

    • @korean_citizen
      @korean_citizen Рік тому +10

      청나라 쌩까고 명나라편 든 이유가...

    • @user-bosndocmx
      @user-bosndocmx Рік тому +11

      이때 일본을 물리치고 쿠테타 한번 일어나서 나라망하고 싹다 바뀌었어야했는데 ㄲㅂ

    • @정도전-x9w
      @정도전-x9w Рік тому +17

      진짜 이순신에 활약이 없었다면 진짜 나라가 패망했을듯
      저 30만중에서 이순신이 60~70% 가량을 상대하면서 한번도 패하지 않았고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안겨줬으니 이순신 장군에 활약이 엄청나다는걸 느낌

    • @jhs2645
      @jhs2645 Рік тому

      이순신이 다 잡은거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로 싹 끊어놓음

    • @niconicnicole
      @niconicnicole Рік тому +7

      망한거와 다름없는 초토화 상태가 되었죠

  • @책읽는삵
    @책읽는삵 Рік тому +1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식량수급 문제를 겪은건 조선의 식량 생산량보다는 두 나라의 인식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의 경우 봉건제 중심의 사회여서 농민들이 세금을 가혹하게 수탈하면 잇키를 일으키기 까지 하는 사회였습니다. 만약 영주끼리 전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산력의
    중요요소인 농민들은 건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널리퍼져 있었기 때문에 한 지방을 점령하면 그 지방의 생산력을 거히 완벽하게 흡수가 가능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유교 중심의 중앙집권제 국가이고, 임진왜란 초기 일본이 부산에서 실행한 학살이 농민들의 다수 이탈 및 피난, 그리고 의병을 촉발했다고 봅니다.
    농민의 대다수가 떠나버리거나 숨어버리고, 반발하는 활동을 하는 점령지에서 원활한 식량수급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불어 일본은 오랜기간 전쟁을 하면서 농민들이 잇키를 일으킬 정도로 세금의 징수 비율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조선은 그 보다는 적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기에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원하는 만큼의 식량확보는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 @최유훈-n1r
    @최유훈-n1r Рік тому +3

    이순신이 뛰어난 장군이긴 했지만 당시 조선과 일본의 수군 무기를 보면 조선이 압도적이였습니다. 조선은 화포를 쏘는 방식 일본은 화포는 쏘지만 손으로 들고 쏴서 명중률이 떨어지는 포 그리고 일본은 배에 붙어서 백병전을 하는것을 좋아했죠 하지만 반면에 조선은 왜에 비해 창이나 칼이 짧아 백병전을 안하고 원거리러 싸우려고 했던게 있습니다.

    • @룰루랄라-k6t4k
      @룰루랄라-k6t4k Рік тому +1

      압도적인데 왜 원균은 발림

    • @The_Right_Peoples_Life
      @The_Right_Peoples_Life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룰루랄라-k6t4k걔는 ㅂㅅ이여서

    • @un3532
      @un3532 3 місяці тому

      ​@@룰루랄라-k6t4k한번에 팔 댕강하는 칼 쓰는 일반인이여도 검술 1위를 못이기지

  • @팔괘장
    @팔괘장 Рік тому +1

    이렇게 일본사를 객관적이고 정확히 방송하시는 역주행님 수고 많았습니다. 밥 도꼬데스까에 웃음이 나오네요 사운드이펙트 일러스트 내레이션 그리고 최대한 근거중심 객관적인 일본사는 우리 한국에겐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덕분에 한국이 극일이 아닌 지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조선시대 전부 터 있어 왔는데 일부 권력층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하여 뻘짓을 하는 바람에 아직도 나라가 이리 된 것을 반성하는 국민이 적다는데 문제가 있다 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역주행님 영상은 전부 보아야할 컨텐츠 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 @archangel7882
    @archangel7882 Рік тому +4

    사실 군대 관련해서는 조선초기 진관체재에서 니탕개의 난으로 제승방략로 바꾸면서 꼬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의병이 일어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일본과 조선 세율 차이때문에 안 그래서 쳐들어온 것도 짜증난데 세율을 높은 것 (자기들 입장에서는 본토보다 잘 주었다지만) 때문에 전국적 반발이 일어난 것도 영향이 큰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이거 조선 시대는 결국 관군 편입으로 지휘관 통일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기억이 안 나네요)

    •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Рік тому

      징비록에서 제승방략이 잘못된 전략임을 말합니다. 😊

    • @스틸얼라이언스
      @스틸얼라이언스 8 місяців тому

      근데 진관체재였어도 찌발림

  • @Mikoon3326
    @Mikoon3326 Рік тому +13

    이미 빠르면 신라 통일 이후,
    늦어도 고려시대때
    이미 인구,쌀 생산력,전투력등의 국력은 일본에 역전되었다고 본다.

    • @정승호-d4t
      @정승호-d4t Рік тому +3

      gdp는 그렇고 1인당 gdp는 임란 수십년전에 뒤집혔다 생각해요 연은법 덕이라는거죠 전투력은 문종시절까진 큰차이 안 났을겁니다

    • @내취저
      @내취저 7 місяців тому

      고려때 감히?ㅋㅋ 고려때 GDP가 세계 4위였는데. 먼 헛솔일지.

    • @Mikoon3326
      @Mikoon3326 7 місяців тому +2

      @@내취저 국뽕 사절...ㅋ

    • @이프로-q9j
      @이프로-q9j 6 місяців тому +3

      ​@@Mikoon3326고려때는 아닐건데요 기술단계 차이가큰데

    • @예압-w7z
      @예압-w7z 3 місяці тому +1

      ​@@내취저빠가냐?? 건국 초부터 망할때까지 전란이 일상이던 나라가 뭔 GDP타령이여 ㅋㅋㅋ

  • @jsw-i4l
    @jsw-i4l Рік тому +9

    일본이 저당시 은 생산량이 엄청나게 많았어서 국력차이는 쌀 생산을 빼놓더라도 많이 차이 났을겁니다.

    • @팔괘장
      @팔괘장 Рік тому +1

      정답 입니다. 제련술이 상당히 발전 하였고 교역도 활발 하였스니다. 나가사키 사쓰마가 그 대표였지요

    • @589stepahead3
      @589stepahead3 Рік тому +2

      상당히가 아니고 압도적으로 차이났을듯..

    • @PunchCat-i5j
      @PunchCat-i5j Місяць тому

      그 은 생산량이 늘어난게 조선에서 만들어져 건너간 연은분리법 덕분이었죠.
      당시 세계에서는 최고로 생산력있고 순도높게 납과 은을 분리하는 최신식 기술이었고 이때 명나라의 지정은제가 도입되며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은을 화폐로 사용하게 되었고 쇄국정책과 겹쳐서 서구인들의 교역로로 일본이 채택되면서 막대한 부를 쥐게됨.
      정작 조선은 은생산을 장려하던 연산군이 폐위되고 사치를 장려한다며 은광산을 폐광시켰고 지리적으로 일본에 가로막혀서 이때도 서구인들과 제대로 접촉조차 못했음.

  • @최유훈-n1r
    @최유훈-n1r Рік тому +1

    우리나라도 일본한테 놀란 점도 있지만 일본 또한 조선과 명의 국력에 놀랐다고 합니다.
    일단 대규모 기병 전력인데 왜의 경우 말이 왜소하기 때문에 힘들죠

  • @낮술-s9j
    @낮술-s9j Рік тому +7

    임란초기에 회유정책으로 일본군이 점령지에 군량풀었다가 본인들 10일치를 3일만에 먹어치워서 당황했다고 합니다...

  • @jerrykim2768
    @jerrykim2768 Місяць тому +1

    1. 인구도 많고 2. 무엇보다 쌀 과 여타 식량 생산량이 엄청 많았다 => 여기서 부터 양국의 운명이 갈라짐

  • @carrot0204
    @carrot0204 Рік тому +2

    나라를 지켜낸 이유에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켜낸 것도 중요하지만 명의 참전이 1순위가 아닐까 합니다.
    명 참전이 없었으면 이순신이 아무리 해봤자 육지로 배급하면 끝이죠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3

      반면 명 장수들은 이순신을 일등 공신으로 쳐줬다죠. 오히려 이순신 존재 자체가 부담으로 행주 산성 전투에서 조운선 보고 이순신인줄 알고 일본군이 후퇴합니다.

    • @이남형-i9v
      @이남형-i9v 2 місяці тому

      그당시 교통체계와 지형과 도로사정으로는 대규모.보급운송이 불가능함

  • @kjlee5632
    @kjlee5632 4 місяці тому +9

    일본 올려치기 하는 자들이 종종 보였는데 정작 일본은 내부전쟁으로 인해 고율의 세금과 잦은 징집으로 일본백성은 죽을 맛이었지요. 그에 반해 조선은 일본에 비해 상당히 낮은 세율과 최소한의 징집으로 일본백성에 비해 살만한 곳이었죠. 그리고 200년간 큰전쟁 없었던 조선과 100여간 전쟁만 한 일본과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조선이 이긴 것은 사실상 일본의 수치 입니다.

    • @Jadadad-n1l
      @Jadadad-n1l 4 місяці тому +1

      ㅇㅈ 국력은 일본이 넘사일지라도 백성이 살만했냐는 다른 문제일듯

    • @Nina-j5i
      @Nina-j5i 2 місяці тому

      정작 세율이 낮아서 아전들 봉급을 못줘서 원래 세율의 몇배로 뜯어가고 정작 그 돈들을 조선은 쓰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자기위로 해봤자 더 비참함 ㅋㅋㅋ

    • @jaa2948euf
      @jaa2948euf 2 місяці тому

      ​@@Nina-j5i 자기 위로가 아니라 사실임. 유럽과 일본의 백성들은 잦은 전쟁으로 더 죽을 맛이었음.

  • @epsdm
    @epsdm Місяць тому +1

    국력 강하다고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면 전세계는 진작에 통일 됐어야지

  • @royalfrigern5297
    @royalfrigern5297 Рік тому +2

    퀄리티가 아주 좋습니다

  • @박욱현-e7e
    @박욱현-e7e Рік тому +1

    와~~ 끝내주는 내용입니다 ^L^

  • @러빙메이
    @러빙메이 17 днів тому

    일본은 오다노부나가가 직업군인 체계를 도입한 이래로 직업군인이 늘어나서 숙련도도 높아졌고 공병부대까지 따로 두어서 축성 기술자는 가신급으로 대우받았음....조선은 농사짓는 농민들 불러다가 돈도 안주고 일시키니 비교가 될수가 없지.....시스템 자체가 넘사벽이었음

  • @niconicnicole
    @niconicnicole Рік тому +3

    아니죠 일본인의 지도는 현실적이죠. 조선은 일본을 자기보다 훨 작게 그렸지만 현실감각이 꽝이란뜻. 일본은 대략 조선보다 두배 크기로 그렸으니 실제와 비슷하잖아요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Рік тому

      근데 재미있는 건 서양인이 봤을 때 조선의 지도는 신기한게, 프랑스 등 서양의 주요도시와 북아프리카 도시명이 있는 반면 후에 그려진 일본의 지도는 명나라가 끝임(물론 지면 부족일 수 도 있겠지만). 물론 면적은 상상대로 그렸지만, 어떤 도시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음.

  • @comet7621
    @comet7621 Рік тому +3

    솔까 해전을 걍 홀로 캐리한 먼치킨과 갑자기 대가리 깨져서 조선 사랑에 눈 뜬 명나라라는 ㅁㅊ 운빨 아니었음 임진왜란때 국호 바뀌었음

  • @김태중-k7i
    @김태중-k7i Рік тому +3

    임란당시에 일본과 조선의 국력차이는 사싫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죠 그래서 추산할수 밖에 없겠지만 저도 여러 유투브를 보다가 보니까 채널 아케치란 채널에서 임진왜란관련 시리즈를 유투브로 만든 동영상이 있는데 여기 참조해 보세요 나름 양국의 당시 자료를 통해서 나름 합리적으로 분석하신거 같더라구요

    • @ELBUG-ku1iq
      @ELBUG-ku1iq Рік тому +2

      그분이 일본중세시대에 대해 가지신 지식이랑 식견은 ㅇㅈ하는데 현재 정치 바라보는 시각이 좀 편향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서 들어가는게 좀 꺼려짐

    • @불곰뚝배기
      @불곰뚝배기 Рік тому

      ​@@ELBUG-ku1iq거의 대부분의 역사 유튜버들이 그러함 전근대쪽은 나름 중립적이면서 객관적인데 반해 근현대쪽으로 오면 정치적인 가치관을 발설해버리죠

    • @딸저씨
      @딸저씨 Рік тому +1

      잉? 현저하게 차이 났죠 ㅋㅋㅋ 일본군이 부산 급습한 이후로 단숨에 한성 먹고 평양까지 먹었는데 당시 선조는 그냥 중국으로 튈라다가 만력제의 명군 참전 아니였으면 조선은 바로 사라졌습니다

  • @소요마차
    @소요마차 Рік тому +2

    그당시도 조선과 일본의 국력차는 10~50년.도 더 났던. 것 같다

  • @fogsagav1829
    @fogsagav1829 Рік тому +2

    단기전이 아니라면 장기전은 병참과 군수가 1순위~
    왜군은 전투에서 이기고 병참과 군수가 지원이 잘 안되서 전쟁에 패배~
    남해를 꽉 틀어막은 이순신 장군이 계셔서 엘리전 비슷하게 가서 승리~
    병자호란은 장기전 가 보지도 못하고 단기전으로 패배~

    • @The_Right_Peoples_Life
      @The_Right_Peoples_Life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병자호란은 장기전을 갈수가없음. 인도가 파키스탄 정벌한다고 파키스탄이 버틸수없는것처럼

  • @jameshuku5790
    @jameshuku5790 Рік тому +2

    동해바다, 이순신 장군, 민중의 게릴라전, 명나라의 참전땜에 승리할 수 있었다.

  • @김상우-b2b
    @김상우-b2b Рік тому

    5:51 이거 완전히 지금이네 ㅎㅎ

  • @정민구-o8s
    @정민구-o8s Місяць тому

    저런 국력차가 있었음에도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장군에게 존경을

  • @user-jjy1015
    @user-jjy1015 Рік тому

    10:14 이와 관련해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길을 질못들어 부산까지 내려가기만 했어도 제2의 임진왜란처럼 될수도 있었다는 말이있고
    산조도 아예 명으로 도망갈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그럼 니이제 왕대접은 못받을줄 알아라 하면서 대놓고 협박까지 할결과 조선을 떠나지 못했죠.

  • @망고-g8m1b
    @망고-g8m1b 4 дні тому

    식량에서 많은게 아니라 부식이 일본이 많나 싶음
    생각을 해보면 나오는게 정예병이면 활동량이 일반보병보다 월등해서 칼로리소모가 적을 일은 없어보여서... 사람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칼로리는 거의 대부분 동일하다는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으니까말임?
    그래서 일본이 쌀이 아니라 부식섭취가 많아서 조선이 그냥 쌀량만 측정한 방식이라 오차가 있었나 싶음

  • @flashwolf3148
    @flashwolf3148 Рік тому +1

    토요토미가 진지하게 명 본토까지 치려는 목적으로 전쟁 일으켰다면 명이 당연히 조선에 파병 올꺼라는거 충분히 예상하고 조선에 처들어온거 아닌가요? 결정적으로 명의 참전으로 후퇴했다는건 일본도 명의 역량을 과소평가 했나보군요? 아니면 첨부터 목적은 그냥 조선정도였거나

  • @하심-s7h
    @하심-s7h Рік тому +2

    히데요시가 15만을 드랍시키는 미친놈일줄 누가 알았겠음ㅋㅋㅋ

  • @Arisdg-e6s
    @Arisdg-e6s Місяць тому

    일본자체는 한국의 두배정도 됩니다. 인구도 위에 말하다시피 1.5배가량 많았을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1/3 가량이상의 동북부 다이묘들은 일절 참여하지않았고, 영상에 나온 간토평야 역시 도쿠가와가 개간 중이었습니다. 저정도의 생산량이 나오기 전입니다.
    또한 일본의 세금은 당시 조선의 3-4배가량되므로, 단순히 석고생산량이 맞을지 의문을 가져야합니다.
    조선도 엄청난 행정력으로 세종시대의 군사가 17만에 달했을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는 베테랑에 가까운 군사들이었고, 장수들 또한 대부분의 경험이 엄청나게 많은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장수들이 도요토미의 직속 부하들이기에 폄하되기도 하지만, 조선의 장수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도 않을정도이죠. 오히려 조선이 잘싸운것이 의문이 들정도입니다

  • @윙욋-p8n
    @윙욋-p8n Рік тому +2

    이미 통일신라나 고려때부터 인구에서 추월당했다

  • @Daniel-il2gs
    @Daniel-il2gs Рік тому +1

    근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차이없는거 같은데? 다만 일본도 우리보단 덜 했지만 막장이란거

  • @ramenjoa6790
    @ramenjoa6790 10 місяців тому

    영상 잘봤습니다. 임란당시 일본이 조선을 그렇게 압도적이지는 않았고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은 호족연합체라서 국력을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서로 반목했던 것도 있었고...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압도했던 것은 전후 에도시대였던것같아요.

  • @인디페일에일
    @인디페일에일 Рік тому +14

    아우..보는데도 스트레스..조선은 수백년 버틴게 기적임..명나라 아니였으면 임진왜란때 이미 망할 나라..

    • @user-ri73bdis88h7
      @user-ri73bdis88h7 Рік тому +7

      오히려 그때 안망한게 독이되었을지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된것처럼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나와야 했는데.

    • @ВасилийЗайцев-х9р
      @ВасилийЗайцев-х9р 10 місяців тому

      명의 지원에 수군의 이순신이 지닌 존재감이 엄청컸죠.

  • @dr.k6544
    @dr.k6544 Рік тому +3

    조선은 생산량의 10%를 수취했고 일본은 50%를 수취했음. 다이묘의 부는 조선 지배층을 압도했을지 몰라도 백성 한명 한명의 삶은 조선이 더 나았음.

    • @dr.k6544
      @dr.k6544 11 місяців тому

      @@행주쓰 니 마음의 조국 일본이 디스 당하니까 배알이 꼴리고 분노가 치밀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낭랑-t4l
      @낭랑-t4l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생산량의 10퍼만 착취했는데도 일본군 상륙하고 수도까지 갈 동안 고니시 군대가 2배가 되버리고 수도에서는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봄? ㅋㅋ

    • @dr.k6544
      @dr.k6544 10 місяців тому

      @@낭랑-t4l 고니시 군대가 2배가 됐다는 건 니 뇌피셜?ㅋㅋ 수도에서 일본군이 해방군?ㅋㅋㅋㅋㅋ지~랄을 싸는구나ㅋㅋㅋㅋ해방군이 부녀자 강간하고 약탈하냐?ㅋㅋㅋㅋㅋ 일본군에 겁탈당한 부녀자들 세검정에서 목욕하면 없던일로 해주라는 왕명이 있었던 건 뭘까?ㅋㅋㅋㅋㅋㅋ 고니시에 항복했던 함경도에선 일본군이 50%를 수취하자 조선왕조가 더 나은 거 아니냐며 민심이 술렁거렸어. 하지만 이미 조선을 배신했는데 받아주겠냐며 걱정할 때 정문부가 지도자급 몇 명만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면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결국 다시 조선왕조에 편입되었단다. 소설은 니 일기장에 써라.ㅋㅋ정신병이 심해지면 지 애미애비도 몰라본다던데ㅋㅋㅋㅋㅋ너 혹시?ㅋㅋㅋㅋㅋ

  • @gray8235
    @gray8235 Рік тому +1

    솔까 관동평야는 곡창이 라기 보단 이예야스가 개간 한 거라는 데 이게 맞나요?

  • @마이바이-h6u
    @마이바이-h6u 11 місяців тому

    한반도가 일본이랑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상업의 발달 유무임 일본의 상업은 한반도의 고려시대 부터 아득히 멀어지기 시작했고 에도시대에는 현대적의미의 은행업까지 등장하면서 시장이 형성되고 민간에서 창의력이 엄청나게 쏟아졌기때문임 한반도는 조선후기 되어서야 시장다운 시장이 생겼고요

  • @opo_scv5605
    @opo_scv5605 Місяць тому

    조선은 평화가 길었고 일본은 근 100년간 내전으로 전쟁에 특화된 군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음. 거기에 서양과의 교류로 무기에서도 앞선 상황. 전쟁이 될리가 없지..
    단지 일본이 내륙전에 특화된 상황에 수상전은 별볼일 없었기에 이순신과 같은 명장의 등장에 보급도 끊기고 거기에 내전이 끝난 상황이라해도 조선과의 전력전을
    벌이기도 힘든게 일단 도요토미 정권의 불안정(나이,도쿠가와에 대한 견제 등등)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함.

  • @doroshi99
    @doroshi99 4 місяці тому +1

    애초에 국토의 크기, 인구, 경작지부터 일본이 조선보다 우월했음.

  • @Torreslee
    @Torreslee 2 дні тому

    홈버프 비대칭 해군 무기

  • @midwestl7417
    @midwestl7417 Місяць тому

    이걸 증명해줘야 이해하는 게 한국의 문제. 한국 빼고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얘기.

  • @양인수-u4c
    @양인수-u4c 9 місяців тому

    왜 이런 얘기를 내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는 못 들었나?

  • @kjlee5632
    @kjlee5632 4 місяці тому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문맹이라 글을 몰랐죠. 그 결과로 정유재란이 발발한 가장 큰 원인이 되었죠

  • @ansolu_assa
    @ansolu_assa Рік тому +7

    관동평야도 전국시대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개간한곳. 원래는 깡촌에 황무지였음. 임란기준으로 비교하기에는 말이안됨.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Рік тому

      고정댓글을 통해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인-g3m
      @다인-g3m Рік тому

      더군다나 도쿠가와의 영지였으니 임란 당시에는 전혀 동원할 수가 없는 지역...

    • @남산코끼리-l3e
      @남산코끼리-l3e Рік тому +1

      황무지+물 투성이라 수시로 범람

    • @parkdaechoong
      @parkdaechoong Рік тому

      히데요시가 이에야스 영지를 거기로 옮겨놓고 임진왜란에 참전까지 시켰으면 대놓고 반란하라는거 ㅋㅋ

    • @남산코끼리-l3e
      @남산코끼리-l3e Рік тому

      @@parkdaechoong 조선에서 공을 넘 많이 세우고 조선에 간 장수들이 이에야스를 따라버려도 문제인지라

  • @zard1214
    @zard1214 Рік тому

    5:55 이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네

  • @타운브라더
    @타운브라더 Місяць тому

    철수 아닐까요 우린 이미 왕이 도망간 시점에서 노답.

  • @proscourt1
    @proscourt1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예나 지금이나 일반 서민들과 가난한 하층민들이
    이 나라를 지켜왔다
    앞으로도 그럴꺼같다
    위정자들은 나라를 망치고 지들 주머니만 채운다
    갑자기 드라마에서 했뎌 명언이 생각난다
    천년 전에도 강자는 약자를 병탄한다
    천년 후에도 강자는 약자를 인탄한다

  • @타농부-n8b
    @타농부-n8b 18 днів тому

    아 지금 한국군이랑 똑같네요. 전투훈련은 하지않고 작업만 시키는 한국군. 이게 맞냐?

  • @PsEille
    @PsEille 3 місяці тому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공격하고 조선은 방어를 하기 때문이라고봄. 한반도는 천연요새인데 그걸 심지어 배타고 건너가야 한다? 일본이 아무리 강해도 성공하기 힘들지

  • @요괴워치뿌니뿌니-x4v
    @요괴워치뿌니뿌니-x4v 28 днів тому +1

    훗카이도 X 홋카이도 O

  • @뽕구-e3i
    @뽕구-e3i Місяць тому

    본토에 병력남겨놓고도 10 만넘게 원정군을 보낼정도면 당연히 조선보다 국력이 세다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