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0:23 '규슈의 나고야' 라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이 '나고야'는 지금의 '나고야'와 다릅니다. 저 때는 규슈 지역에도 '나고야'라는 곳이 있어서 히데요시가 여기를 전진기지로 삼았어요. 따라서 영상에 제대로 기제한 것이 맞습니다. 0:33 0:33 해당 지도에 명나라 영토로 지금의 '대만' 지역도 들어가 있는데요. 이는 잘못된 사항입니다. 이때 '대만' 지역은 명나라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5:16 구로다 칸베에는 흔히 히데요시의 제갈량이라고 묘사되지만 실제 그의 행적을 보면 제갈량보다는 사마의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출가 후에는 조스이(如水)란 호(號)를 사용하여 구로다 조스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며 돈 시메온(Don Simeon)이란 세례명을 갖고 있는 크리스천이기도 한데, 구로다 칸베에의 일화 중에서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나고 돌아온 아들 구로다 나가마사가 “도쿠가와 공께서 제 오른손을 잡고 치하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구로다 칸베에는 ”그렇구나. 그럼 네 왼손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왼손으로 이에야스를 베지 않고 뭘하고 있었느냐는 속뜻을 돌려서 말한 것으로, 이 일화는 역사적인 실증자료가 없어 후세에 그의 냉정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생전에 자신에게 많은 계책과 묘안을 내주었던 칸베에를 속으로 아주 두려워했는데, 종종 칸베에는 맘만 먹으면 날 내치고 천하를 차지하려 들거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공은 미친 것마냥 깔깔 웃었다’란 기록이 남아있으며(여기서 공은 구로다 칸베에를 말합니다) 그 시대로써는 드물게 첩을 두지 않았고, 검약가로 잘 알려져있는 인물입니다.
참전시점에선 무게감이 떨어지는 장수들이 맞긴하죠 사실 시즈카타케, 호죠 및 규슈정벌전에 쌓은 군공이라고 하기엔 가토 구로다 등이 얻은 영토가 지나치게 넓었죠 히데요시가 그만큼 후다이 가신이 부재한 한계를 덮으려던 거지만 아무튼 임란을 거치며 대다이묘로서의 무게를 갖추게 되는 인물들이 많긴하나 그리고 무장들이 센코쿠시대 활약이나 무게감이 떨어졌다한들 휘하 병력들은 어찌되었건 전국시대에 이골이 난 베테랑 들이었죠 자기 가문이 망해서 떠돌다가 새로이 편입된 무사들이 많았으니 그리고 군략으로 이름난 히데요시 도쿠가와 마에다가 건너왔다한들 달라질건 없었을 것 같습니다 회전양상의 전투라면 모를까 정묘재란에 이르러선 전멸전 게릴라전 공성전 해전 위주의 전투였으니 오히려 시즈가타케 전투이후 대단한 전투가 없었던 마에다 가문보단 서부지역에 몰려든 신진 다이묘 휘하 낭인들의 개개 전투력과 전투의지가 훨씬 강했을듯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파병 되었던 군사 숫자가 실록의 기록이나 다른 기록상에 전해지는게 다르긴 한데 일단 왕조실록 기록상 그 당시 3만의 병력은 일본의 수도인 교토를 수비하고 10만명은 히데요시랑 함께 나고야에 머물러있었고 20만의 병력이 조선을 침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앞서 말씀하신데로 정규군에 예비병력 보급병 등등 합하면 30만은 넘었을거 같네요
전근대시대에 보급병+예비병+후방에 남겨두는 병사는 전투병 숫자 x1.5~3배 잡고 계산해야함. 물 식량 갑주 공성무기 야영도구 등등을 다 옮겨야하고, 전투중 통신에 필요한 깃발 북 나팔 이런 것도 들고 다녀야 함. 게다가 화약은 현지약탈로 확보하기 힘든 전략자원이라 반드시 갖고 다녀야 함. 그리고 보급병 외에도 정찰병도 은근 필요한데, 이 이유가 대규모 기동을 위해 따져야 하는게 정말 많기 때문임. 몇천 몇만단위 병사가 움직이면 이 몇만명이 물을 마시는 것도 일이라서 우물 몇개 정도론 택도 없음. 그런걸 미리 조사해서 기동에 차질이 없게 하는게 정찰병의 임무이기도 했음. +보급로를 유지하는 것도 큰 일이였던게 상대가 보급로를 노릴게 뻔하기 때문에 보급로 보호를 위해서 보통 성과 성을 연결하는 식으로 보급로를 설정하는데, 그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후방 성에 병력을 남겨놔야 하고, 보급행렬을 지키는 병력도 필요함. 그외에도 갑주 수리병, 무기 수리병 등 정비전문인력도 있고, 현지에서 나무로 만드는 공성무기 제작하고, 길의 장애물 뚫는 공병인원까지 생각하면 전투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최소 전투인력 x2 잡아야함. 따라서 기록상 20만이 넘어왔다고 하면 전투병 7만에 비전투 13만정도로 보는게 맞음.
뭐 병력 수송이 삼국지 게임처럼 딸깍딸깍만 하면 끝날 일이면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관동에서 규슈 최서쪽인 그 때 나고야까지 가는데 가는 경제적 부담 등 생각하면 보낸다고 해도 다테나 우에스기처럼 소규모로 보내고 말았지 뭐 제 1진이 혼다니 사카키바라니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요. 무엇보다 이에야스는 막 관동으로 히데요시 본인의 명으로 인해 전봉 받은 시기라 치안이나 세수 조사 등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그 정도 군사를 일으킬 여력이 있기는 있었나가 더 궁금하네요. 세키가하라까지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지만 임진왜란에는 어림도 없었던 일입니다.
-센고쿠 시대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히데요시는 20대 중후반의 나이였고, 임진왜란때는 50이 다되어가는 나이였음. -도요토미의 '듣보잡' 부하들이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중반이었음. -도요토미와 도쿠가와가 센소쿠 시대를 살아갔을 때 이들의 부하들은 어린 애들이었거나 청소년기를 막 지낸 세대들임, 그렇다보니 센고쿠 시대 때 이름을 들어 볼 수가 없음. -도요토미는 오다 노부나가의 네임드 부하 중 하나였고, 쟁쟁한 라이벌들을 다 이겨내고 전국 1위가 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가졌음. -도요토미의 부하들은 전통 가문들과 달리 신흥 세력일 뿐이지 결코 쩌리 레벨의 군대가 아님. -꾸준한 전쟁을 통해 강한 전투력을 가진 일본과 달리 조선은 전투 경험에 대한 공백기가 너무 길었고 그나마 전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변방에 이민족들 상대하는 부대들 정도였고, 해안가쪽 군인들은 가끔씩 오는 왜구들을 상대하는 정도였음. -반대로 생각하면 전투경험도 적고 준비도 제대로 안된 나라가 일본 전국구 레벨의 군대를 상대로 끝까지 싸운 것임.
11:00 신흥 다이묘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전쟁에서 경험을 쌓고 난 뒤에 활약한 것이라, 그게 임진왜란 참전 당시의 이들이 경험없는 신흥 다이묘라는 점을 보완해주지는 못합니다. 일본은 7년 전쟁을 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전력이 충분했다 라는 건 사실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시마즈군을 반괴 시켰다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다이묘들은 본국으로 철수하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만 20만 병력이 서로 내전을 벌일 역량이 있었기도 하구요. 반면 조선군은 도원수 권율이 1만단위로 군을 굴려본 적이 없을정도로 육군은 명군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수준이었죠.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일본과 조선의 인구차이도 있고, 또 전쟁 경험이라는건 절대 무시할 수가 없으니.. 전쟁에서는 조선이 이겼지만, 전투에서는 매 전투가 열세였다는건 반박하기 힘들죠.
일본의 유명한 다이묘와 장수들의 이야기는 거의 소설 수준이 많아서 충분히 걸러서 들어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출처의 상당부분이 역사적으로 가치가 없는 가문의 행장이나 민간전승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듣보잡이 아닌 대단한 것처럼 묘사된 인물조차 대체로 엄청난 뻥튀기로 포장된 인물인 경우도 많습니다.
@@HNL-uf5le 중근동이나 인도는 과거에는 세계적인 선진국이었지만 지금은 최악의 국가가 되었죠. 유럽은 그 반대고요. 그 과정이 모두 필연이라고 생각하나요? 앞으로 또 어떤 문명권이 선진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겹 아래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보이지만 그걸 파고들면 세상의 인과관계는 복잡계처럼 우연적인 세상에 가까워집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은 한겹 아래의 이면이고 그 이면의 이면으로 다가가면 결국 우연적인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거죠. 세상을 설명하는데 고전역학인 기계적 인과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hydrocynus415 말기를 못알아듣네. 필연적인 이유를 나도 거론했잖아. 그리고 그렇게 필연적 조건이 생기게끔 하부 조건들 또 그 하부 조건의 하부 조건들이 생겨나는 건 단순한 인과관계를 풀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거지. 역사에서 인과관계는 단순한게 아니라 그렇게 필연적 유연적 두 층위로 동시에 봐야 한다는 거야.
말이 전국통일이지 실제적으로 히데요시의 영향력은 동부까지 전부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아직 비우호적인 세력들도 많이 숨어있었음. 그러니 조선에 듣보잡 장수로만 보냈다기보는 자기가 믿을만한 장수들로만 편성할수 밖에 없던거지. 그리고 일본 내에서도 언제 도쿠가와나 다른 다이묘들이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니 최소한의 방어병력은 남겨놔야 했었고. 그러니 모든 전력을 투사할 수 없던것은 맞음.
1. 흔히 생각하는 전국시대 네임드들(노부나가, 신겐, 겐신, 모토나리 이런애들)은 이미 죽은지 10년 이상씩 됨 2. 그나마 살아있는건 이에야스였는데,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간토로 전봉해버리는 바람에 조선엔 안왔고, 히젠 나고야에 대기하는 비전투병력(16군) 으로 편성 3. 이에야스를 제외한 코바야카와 타카카게, 쿠로다 칸베에, 시마즈 요시히로같이 당대 이름난 무장들도 참여 (다테 마사무네나 우에스기 카게카츠도 왔고) 4. 당대 히데요시가 키우던 후쿠시마 마사노리, 카토 키요마사, 쿠로다 나가마사 등 참여 5. 무엇보다 생사를 건 전쟁에 ‘듣보잡’이라고 무시할수는 없음 ㅋㅋ 걍 일본은 가용 가능한 다이묘중에 최대치를 보낸거
@@moratanco4013 그렇게 말하면 도쿠가와도 왔죠 한성까지 왔었는데 모르셨는 모양이네요 우에스기와 도쿠가와는 참전보다 세력확장에 열을 올렸고 히데요시 사후에 한판 붙은게 세키가하라고입니다 비록 우에스기가 추격을 안하는 바보같은짓을 해서 졌지만요 세키가하라에서 히데요리측이 믿은것은 우에스기인데 그가 추격을 포기 하는 바람에 배신자가 속출했서 패배 한것 입니다 하는 바람
@@afta-u8g 당시 이순신의 함대가 출전했던건 맞나요? 일반적으론 고니시의 정보를 신뢰못해서 출진을 안했기에 삼도수군통제사자리에서 물러나고 압송됬다고 하지만 다른영상에서는 출진했는데 여러사정 때문에 놓쳤다는 영상도 다른채널에서 본거 같아서 정확한 팩트를 알고싶은데;;;
선조라는 미친왕때문에 정유재란의 엄청난 학살과 인적, 물적 피해를 자초했지요. 해군을 거의 몰살 시켰고, 서해 재해권을 일본에 내어준 꼴이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치고 올라가며, 다 죽이고, 약탈했습니다. 권력욕에 미친놈이 있으면 나라가 망가집니다. 이순신이나 중국 악비도 다 그렇죠..
일본이 괜히 전국시대라고 불리는게 아니죠 일반 농민도 어지간한 훈련받은 조선 병사보다 잘싸웠습니다... 훈련은 기본으로받고 툭하면 영지 교착상태에 빠지기도해서 농사나 짓던 농민들조차 전투경험이 있었죠 그렇게 싸우다 실력을 인정받고 사무라이 계급으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전투실력이 노장보다 좋은자가 많았습니다 다만, 일단 히데요시 출신이 출신인만큼 이름있는 영주 가문에서는 같은 천한출신의 사무라이를 앞세우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히데요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중앙집권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앙집권체제는 메이지유신때 영지(번)을 중앙정부에 완전히 귀속시키는 폐번치헌을 통해 완성되기때문에 그 이전에는 절대 번을 무시할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히데요시가 천민출신이 아니였다면 진짜로 조선은 그때 멸망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시 일본군은 규슈와 츄코쿠, 시코쿠 등 일본 서부 지역의 다이묘 대부분이 참전한 상태였어요. 듣보잡이 온게 아니라, 당시 일본 서부 지역 다이묘들 대부분이 다 동원되서 온건데, 단지 그 다이묘들의 병력이 모인 각 번대 대장들이 그 지역의 여러 다이묘들이 아니라, 히데요시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시즈카타케 칠본창이나, 히데요시의 측근 가신들이었던겁니다. 다만, 시마즈는 규슈 남부의 거대 다이묘였고, 모리 가문은 츄코쿠 지방의 거대 다이묘, 죠쇼카베는 시코쿠의 거대다이묘였고, 다테 가문이나 도쿠가와 등 대부분 동쪽 다이묘들은 후발주자로 참전하기로 되어있었던 겁니다.
@@venividivici9652 그 관동 가문들은 관동삼국지 시절의 위세를 잃은지 10년 넘었었고, 그 전설들의 다음 세데에서 전부 다 몰락해 다케다 가, 호조 가는 아예 멸문된 상황이었습니다. 대신 도쿠가와 가가 일대를 장악했지요. 임란 시점에서는 모리 가, 시마즈 가가 훨씬 더 강력한 가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모리 가는 관동삼국지 시절에서도 최상위권이며 주고큐 장악을 마무리지음)
@@venividivici9652 다케다와 우에스기는 서로 힘 빼다가 죽도 밥도 안됐고 호조는 히데요시 군에게 정벌당했죠.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는 유력한 가문이 그의 측근 가신들과 다테, 시마즈, 모리, 초소카베, 도쿠가와 등이죠. 센코쿠지다이때의 유명한 다이묘들은 이미 옛말이 되었을때인데요? 전국시대의 영웅들은 이미 지나갔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시기인데 말이죠? 다테 마사무네도 전국시대땐 어린 나이였죠. 시마즈, 모리, 초소카베, 다테, 도쿠가와 정도가 전국시대 이후 통일된 일본에서 대 다이묘라 할 수 있겠네요. 님이 잘 아시는 전국시대의 영웅들 우에스기나 다케다, 호조 등은 이미 ㅈ망했습니다.
우에스기 다케다 도쿠가와 이마가와 호죠. 사이토도산 구로다간베에등등이 죽지않고 서로서로 사이좋게 모두 합심. 통일 일본으로 오다나 히데요시 제장들로 임진란때 참전했다면 생각만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네요. 가토, 고니시등을 선두로한 일본 삐급장수들로도 한반도를 유린했었으니. 참..
사천왜성전투에서 포위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연합군 상대로 반격을 가해 승리했던 것도 유명하죠.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중앙 돌파를 성공하고 탈출했었고 ㅋㅋ 시마즈가 위치했던 일본의 사쓰마 지역이 원래 왜구들이 많이 주둔하던 지역이라 그런지 싸움 잘하기로는 보신전쟁때까지도유명했죠 ㅋㅋ
시즈가타케 칠본창의 인물도 그렇고, 전국시대가 중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능력이나 업적같은 부분보다는 아무래도 젊다 보니,(전국시대 후반부 쯤에 등장하다보니) '네임드' 로 들지 못 한다는 느낌이 좀 있습니다. 삼국지에서도 초창기 장수들 보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나오는 인물들이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과 같다랄까요?? 아무래도 후세의 인물들인 우리에겐 결국 이야기속의 인물들이다 보니, 긴장감과 집중도가 좀 떨어질 부분에서는 놓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겠죠 ㅎㅎ
애초에 일본이 중앙집권제가 아니라서 저 정도 보낸 것만 해도 히데요시의 압도적인 장악력을 나타낸다고 봐야 합니다. 자기 직할 다이묘뿐만 아니라 그 주변 다이묘들까지 죄다 싸그리 보낸거라서... 전국시대 동안 응축된 전력의 절반 이상을 보낸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도쿠가와 군까지 오기에는 보급 문제가 너무 심각했을 겁니다. 다테 마사무네도 2000명밖에 안 데리고 온 이유가 있죠. 여러가지 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쏟아부은 역량은 전근대국가로서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죠. 조선에서 엄청 수탈해가지 않았으면 일본 서부 다이묘들은 죄다 망했을수도...
고니시랑 가토가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니었어요.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서로 인정하고 그저그런 사이였는데 히데요시가 카톨릭 신자를 박해할 때 가토는 적극적이었고, 고니시는 카톨릭 신자들을 보호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죠. 그러다 가토의 영토에서 도망친 카톨릭 신자들을 고니시가 거두자 더 사이가 안 좋아지죠... 가토 : 야 고니시! 내 나와바리에서 토낀 기리시탄 다 내놔! 고니시 :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마귀야! 가토 : 이 쐑히!!!!
처음 인도까지 생각했죠. 사실 일본 전군을 동원해도 여진족 정벌도 쉽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원래 여진족 자체가 강력했고 또 정복 전쟁은 상대가 내부적으로 무너지지 않은 이상 힘드니까요. 그리고 명나라야 당연하고 인도도 세력이 규합하면 거대한 세력입니다. 그만큼 히데요시가 국제 정세에 어두었고 자신과 일본의 힘을 심하게 착각한 것이죠.
시마즈가 규슈 통일을 눈 앞에 두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함. 시마즈 가문이 용맹하기로 원래 유명했고 단합이 특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마즈의 돌격 전술이 유명했죠. 그 시마즈가 사츠마 번에서 끝끝내 존버해서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고 지금까지 시마즈 공업이란 기업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실상 여지껏 보면 조슈의 모리와 사츠마의 시마즈가 위너죠.
시마즈가문이 나중에 사츠마쵸슈동맹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축이 되어 일본 내각에 주요관직을 차지합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시마즈가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영화에서 백윤식님이 연기했구요. 시마즈가 17대 당주로 세키가하라 전투서 소수의 병력으로 도쿠가와 진영을 정면돌파해서 뚫어버린 전쟁의 귀신입니다.
가장 중요한건 임진왜란때 넘어온 부대들이 대부분 히데요시 최측근들인거고 히데요시가 통일을 하는 중심이 된 군대라는거고 그 말인 즉슨 구세대 강한 군대를 대부분 작살낸 장수와 부대들이라는거임 즉 새로운 세력들의 장수들 중 최강의 군대들을 보냈다는거고 신흥 무신집단 중 가장 강력한 애들이 모인거임 센고쿠 시대 무장들은 과거에 강했던 무장들이라는 의미라서 진짜 일본의 진짜 전력이 안왔다는거 자체가 희대의 개소리임
보급 문제 때문에 한 번에 많이 간다고 좋은게 아니예요. 대표적인 예가 수문제의 고구려 친정입니다. 적당히 지속적으로 예비대를 충원해주는게 좋은거예요. 이걸 진짜 잘한게 한고조 유방의 재상 소하입니다. 성도에 있으면서 기가 막히게 병력, 물자를 계속 충원해줘서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되었죠.
@@김동욱-i5b사실 조선 건국 이후로 큰 전쟁은 아예 없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긴 함... 어느 나라든지 그 정도로 평화 지속됐는데 제대로 돌아간 나라가 없음. 우리야 북방 여진족들 때리느라고 그나마 북쪽에 기병이 셌던거지. 그마저도 지휘관들이 일본을 너무 얕본 나머지 털려버리고. 하여간 여러모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로 망했어야 하는 나라인데
인조이 재팬 시절 일본애들 1군론 그대로 읊는 애들 많네. 게임이나 소설에서 유명하다고 능력있는 게 아니란다. 임란 당시에 가용 가능한 병력을 다동원한 거임. 임란에서 조선 정복했으면 고니시가 일본 최고 명장 소리 듣고 있겠지. 이름 유명하다고 유능한 게 아님. 당장 일본에서 유명 하다는 놈들도 고니시보다 임란에서 더 전공 세운 놈 없음
일본에서 전국시대 유명한 다이묘들은 이미 늙거나 죽은 이후였고, 신겐이나 겐신 같은 유명한 애들도 도요토미 군이랑 붙으면 그냥 깨짐. 병력 수랑 인력풀 자체가 다르고 세대도 한 세대 뒤라 더 발전된 전쟁수행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도요토미 최정예 측근 병력이 넘어온 게 임진왜란 임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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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의 나고야' 라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이 '나고야'는 지금의 '나고야'와 다릅니다.
저 때는 규슈 지역에도 '나고야'라는 곳이 있어서 히데요시가 여기를 전진기지로 삼았어요.
따라서 영상에 제대로 기제한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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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해당 지도에 명나라 영토로 지금의 '대만' 지역도 들어가 있는데요.
이는 잘못된 사항입니다.
이때 '대만' 지역은 명나라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규슈의 나고야성은 아직도 유적으로 있습니다 이름도 간사이의 나고야는 名古屋 규슈의 나고야는 名護屋로 표기가 다릅니다
@@틱타알릭-b3x일본 친구들도 규슈 나고야 잘 모르더군요. 가라쓰 근처입니다.
@@틱타알릭-b3x//
임진왜란관련 소설에 명호옥 (名護屋)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기재
너는 낙오야
하아?! 도노 제발 그것만은
5:16 구로다 칸베에는 흔히 히데요시의 제갈량이라고 묘사되지만 실제 그의 행적을 보면 제갈량보다는 사마의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출가 후에는 조스이(如水)란 호(號)를 사용하여 구로다 조스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며 돈 시메온(Don Simeon)이란 세례명을 갖고 있는 크리스천이기도 한데,
구로다 칸베에의 일화 중에서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나고 돌아온 아들 구로다 나가마사가
“도쿠가와 공께서 제 오른손을 잡고 치하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구로다 칸베에는
”그렇구나. 그럼 네 왼손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왼손으로 이에야스를 베지 않고 뭘하고 있었느냐는 속뜻을 돌려서 말한 것으로, 이 일화는 역사적인 실증자료가 없어 후세에 그의 냉정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생전에 자신에게 많은 계책과 묘안을 내주었던 칸베에를 속으로 아주 두려워했는데, 종종 칸베에는 맘만 먹으면 날 내치고 천하를 차지하려 들거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공은 미친 것마냥 깔깔 웃었다’란 기록이 남아있으며(여기서 공은 구로다 칸베에를 말합니다) 그 시대로써는 드물게 첩을 두지 않았고, 검약가로 잘 알려져있는 인물입니다.
사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칸베에를 견제한 히데요시.
실제로 세키가하라 때 칸베에는 이에야스 편을 듭니다
@@슬잎-f7y 헐 역시 강한쪽을 아는군요
제갈량은 다케나가 한베에가 더 가깝죠.
효웅급 정도되죠 독안룡 다테마사무네
와 비슷하나 구로다 간베가 좀더 능력이 있는듯
우리도 임진왜란 터지고나서 네임드들이 됐지 이전엔 곽재우 백수였고 이순신은 정읍현감 권율도 광주목사 정도였음 신립 이일 김명원 정도 이름있었지 정작 네임드들 다 깨짐
쪽바리들은 직전까지 통일전쟁하느라 능력이 곧 네임드였어이미
ㅇㅇ맞지 원래 영웅은 시대도 잘 타야함
시대가 영웅을 만드네용
곽재우 백수였고에서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지맞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순신은 임란 1년전 7계급 수직 상승하여 갑자기 전라좌수사...... 지금으로는 육군 소령에서 해군 소장으로......
참전시점에선 무게감이 떨어지는 장수들이 맞긴하죠
사실 시즈카타케, 호죠 및 규슈정벌전에 쌓은 군공이라고 하기엔 가토 구로다 등이 얻은 영토가 지나치게 넓었죠 히데요시가 그만큼 후다이 가신이 부재한 한계를 덮으려던 거지만
아무튼 임란을 거치며 대다이묘로서의 무게를 갖추게 되는 인물들이 많긴하나
그리고 무장들이 센코쿠시대 활약이나 무게감이 떨어졌다한들 휘하 병력들은 어찌되었건 전국시대에 이골이 난 베테랑 들이었죠 자기 가문이 망해서 떠돌다가 새로이 편입된 무사들이 많았으니
그리고 군략으로 이름난 히데요시 도쿠가와 마에다가 건너왔다한들 달라질건 없었을 것 같습니다 회전양상의 전투라면 모를까 정묘재란에 이르러선 전멸전 게릴라전 공성전 해전 위주의 전투였으니
오히려 시즈가타케 전투이후 대단한 전투가 없었던 마에다 가문보단 서부지역에 몰려든 신진 다이묘 휘하 낭인들의
개개 전투력과 전투의지가 훨씬 강했을듯
와키자카도 ㅅㅂ 3만따리 개하꼬장수인데 ㅋㅋㅋㅋ
정유재란 ㅇㅇ
군대한텐 밥 다음으로 중요한게 바로 실전경험입니다. 히데요시 사후 일본 내전에서 반도 공격군들이 주된 역할을 했을 겁니다.
히데요시의 출신의 미천함으로
유명장수들이 속으로 깔보고 있었죠
재밌게 봤습니다
5:37 4군은 사실상 시마즈 군임. 시마즈 요시히로가 대장이라고 봐야함.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파병 되었던 군사 숫자가 실록의 기록이나 다른 기록상에 전해지는게 다르긴 한데 일단 왕조실록 기록상 그 당시 3만의 병력은 일본의 수도인 교토를 수비하고 10만명은 히데요시랑 함께 나고야에 머물러있었고 20만의 병력이 조선을 침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앞서 말씀하신데로 정규군에 예비병력 보급병 등등 합하면 30만은 넘었을거 같네요
28만명 출병 20만명 사망 조선출병 다이묘는 거의 망함
군사 손실 및 경제적으로도
세끼가하라에서 서군이 패한이유
군사수를 불려서 나왔지만
정예군은 조선에서 다죽음
싸워봐야 힘쓸수없는 잡병만 모아서 참전
조선출병 안한 이에야스에게는 상대가 안됨
보급인원까지 모두 합치면 47만
전근대시대에 보급병+예비병+후방에 남겨두는 병사는 전투병 숫자 x1.5~3배 잡고 계산해야함.
물 식량 갑주 공성무기 야영도구 등등을 다 옮겨야하고, 전투중 통신에 필요한 깃발 북 나팔 이런 것도 들고 다녀야 함. 게다가 화약은 현지약탈로 확보하기 힘든 전략자원이라 반드시 갖고 다녀야 함.
그리고 보급병 외에도 정찰병도 은근 필요한데, 이 이유가 대규모 기동을 위해 따져야 하는게 정말 많기 때문임. 몇천 몇만단위 병사가 움직이면 이 몇만명이 물을 마시는 것도 일이라서 우물 몇개 정도론 택도 없음. 그런걸 미리 조사해서 기동에 차질이 없게 하는게 정찰병의 임무이기도 했음.
+보급로를 유지하는 것도 큰 일이였던게 상대가 보급로를 노릴게 뻔하기 때문에 보급로 보호를 위해서 보통 성과 성을 연결하는 식으로 보급로를 설정하는데, 그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후방 성에 병력을 남겨놔야 하고, 보급행렬을 지키는 병력도 필요함.
그외에도 갑주 수리병, 무기 수리병 등 정비전문인력도 있고, 현지에서 나무로 만드는 공성무기 제작하고, 길의 장애물 뚫는 공병인원까지 생각하면 전투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최소 전투인력 x2 잡아야함.
따라서 기록상 20만이 넘어왔다고 하면 전투병 7만에 비전투 13만정도로 보는게 맞음.
이에야스의 병력이 온전히 남아 있었음
어림잡아 8에서 11만정도 동원 가능할듯
보통 동아시아 전쟁에 보급 인원이 더 많음.
다치바나 무네시게가 빠진게 아쉽네요
그리고 히데요시 입장에서 30만 대군을 자신의 최측근에게 주는건 당연한겁니다. 만약 이에야스가 관백이었으면 이이 나오마사나 혼다 다카카츠가 1번대 2 번대 대장이 됬겠죠
1번대 대장은 아마도 사카이 타다츠구가 되지않앗을까요
히데요시 최측근들 다보내면 간토의 너구리에게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을듯ㅋㅋㅋ
다치바나 무네시게도 임진왜란에 참전 했습니다 벽제관전투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군공을 세웠습니다
다치바나 무네시게도 시마즈 요시히로도 임진왜란 참전기록이. 있는데 우에스키 가케가스는 임진왜란 참전기록이 잘 안보임니다
모가미 요시아키나 사다케 요시노부 등 북동부 무장들도 잘 안보이고요
뭐 병력 수송이 삼국지 게임처럼 딸깍딸깍만 하면 끝날 일이면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관동에서 규슈 최서쪽인 그 때 나고야까지 가는데 가는 경제적 부담 등 생각하면 보낸다고 해도 다테나 우에스기처럼 소규모로 보내고 말았지 뭐 제 1진이 혼다니 사카키바라니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요.
무엇보다 이에야스는 막 관동으로 히데요시 본인의 명으로 인해 전봉 받은 시기라 치안이나 세수 조사 등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그 정도 군사를 일으킬 여력이 있기는 있었나가 더 궁금하네요. 세키가하라까지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지만 임진왜란에는 어림도 없었던 일입니다.
-센고쿠 시대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히데요시는 20대 중후반의 나이였고, 임진왜란때는 50이 다되어가는 나이였음.
-도요토미의 '듣보잡' 부하들이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중반이었음.
-도요토미와 도쿠가와가 센소쿠 시대를 살아갔을 때 이들의 부하들은 어린 애들이었거나 청소년기를 막 지낸 세대들임, 그렇다보니 센고쿠 시대 때 이름을 들어 볼 수가 없음.
-도요토미는 오다 노부나가의 네임드 부하 중 하나였고, 쟁쟁한 라이벌들을 다 이겨내고 전국 1위가 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가졌음.
-도요토미의 부하들은 전통 가문들과 달리 신흥 세력일 뿐이지 결코 쩌리 레벨의 군대가 아님.
-꾸준한 전쟁을 통해 강한 전투력을 가진 일본과 달리 조선은 전투 경험에 대한 공백기가 너무 길었고 그나마 전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변방에 이민족들 상대하는 부대들 정도였고, 해안가쪽 군인들은 가끔씩 오는 왜구들을 상대하는 정도였음.
-반대로 생각하면 전투경험도 적고 준비도 제대로 안된 나라가 일본 전국구 레벨의 군대를 상대로 끝까지 싸운 것임.
듣보잡 무장이란데서 채널 수준 이미 알아버림. 최소 일본 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신 듯
@@김영-j1w게임이 애들 많이 버렸네
명나라의 지원과 이순신의 하드캐리 아니었으면 지도에서 진작 사라졌을 나라임.
일뽕들 일본 까니까 불편하냐. 그렇게 준비하고 작정하고 무방비 상태 조선 공격했는데 의병들이나 실전경험없는 군대에 진거지. 우리나라가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어 그렇지 작정하고 일본하고 붙는다면 일본것들 살아남지 못해
@@김영-j1w듣보잡까진 아니어도 하급무장들은 맞는데요?... 이시다,가토,모리,시마즈,고바야카와,후쿠시마,우키타 빼곤.... 그리고 모리,시마즈,후쿠시마 세명빼면 세키가하라에서 트롤짓으로 유명하거나 그렇게까지 이름을 날린 장수는 아니었어요... 조선에서 원균이 유명한게 명장이거나 용맹하거나 잘 싸워서가 아니잖아요?
11:00 신흥 다이묘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전쟁에서 경험을 쌓고 난 뒤에 활약한 것이라, 그게 임진왜란 참전 당시의 이들이 경험없는 신흥 다이묘라는 점을 보완해주지는 못합니다.
일본은 7년 전쟁을 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전력이 충분했다 라는 건 사실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시마즈군을 반괴 시켰다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다이묘들은 본국으로 철수하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만 20만 병력이 서로 내전을 벌일 역량이 있었기도 하구요. 반면 조선군은 도원수 권율이 1만단위로 군을 굴려본 적이 없을정도로 육군은 명군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수준이었죠.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일본과 조선의 인구차이도 있고, 또 전쟁 경험이라는건 절대 무시할 수가 없으니.. 전쟁에서는 조선이 이겼지만, 전투에서는 매 전투가 열세였다는건 반박하기 힘들죠.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정말 잘 만드셨네요. 큰 공부 됩니다!!!
일본의 유명한 다이묘와 장수들의 이야기는 거의 소설 수준이 많아서 충분히 걸러서 들어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출처의 상당부분이 역사적으로 가치가 없는 가문의 행장이나 민간전승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듣보잡이 아닌 대단한 것처럼 묘사된 인물조차 대체로 엄청난 뻥튀기로 포장된 인물인 경우도 많습니다.
@@HNL-uf5le 초반 대응 미숙, 장수들 군기 빠짐, 소규모 침략 예상, 정치질에 군사행정 개판이 맞물린 결과. 전쟁과 역사는 우연적인 요소로 황당한 결과가 나오기 마련임.
@@HNL-uf5le 중근동이나 인도는 과거에는 세계적인 선진국이었지만 지금은 최악의 국가가 되었죠. 유럽은 그 반대고요. 그 과정이 모두 필연이라고 생각하나요? 앞으로 또 어떤 문명권이 선진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겹 아래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보이지만 그걸 파고들면 세상의 인과관계는 복잡계처럼 우연적인 세상에 가까워집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은 한겹 아래의 이면이고 그 이면의 이면으로 다가가면 결국 우연적인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거죠. 세상을 설명하는데 고전역학인 기계적 인과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hydrocynus415 말기를 못알아듣네. 필연적인 이유를 나도 거론했잖아. 그리고 그렇게 필연적 조건이 생기게끔 하부 조건들 또 그 하부 조건의 하부 조건들이 생겨나는 건 단순한 인과관계를 풀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거지. 역사에서 인과관계는 단순한게 아니라 그렇게 필연적 유연적 두 층위로 동시에 봐야 한다는 거야.
@@HNL-uf5le 일본도 이순신은 물론이고 이름없는 의병들한테 발목잡힐거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뭘 그런걸로 듣보잡에게 당한걸로 치믄 일본놈들이 더억울하지
중국은 도 심하죠 ㅋㅋ
그리고 만약에 근데 동군까지 참전 했으면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기긴 힘들었을거 같음 아무래도 동군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태랑들이라서 물론 그러면 너무 많은 병력으로 중세특성상 보급에서 막히겠지만 애초에 조선이 그렇게 털어갈 만큼 식량이 풍족한 나라도 아니였고
임진왜란 참전 일본 무장들 중 세키가하라 때 동군이었던 인물들도 많습니다
와, 진짜 잘만드셨네요! 추천합니다.
말이 전국통일이지 실제적으로 히데요시의 영향력은 동부까지 전부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아직 비우호적인 세력들도 많이 숨어있었음. 그러니 조선에 듣보잡 장수로만 보냈다기보는 자기가 믿을만한 장수들로만 편성할수 밖에 없던거지. 그리고 일본 내에서도 언제 도쿠가와나 다른 다이묘들이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니 최소한의 방어병력은 남겨놔야 했었고. 그러니 모든 전력을 투사할 수 없던것은 맞음.
진짜 이채널 개꿀잼인듯👍
캐릭터 너무 귀엽게 생겼어요 ㅋㅋㅋ😂
😂😂
1. 흔히 생각하는 전국시대 네임드들(노부나가, 신겐, 겐신, 모토나리 이런애들)은 이미 죽은지 10년 이상씩 됨
2. 그나마 살아있는건 이에야스였는데,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간토로 전봉해버리는 바람에 조선엔 안왔고, 히젠 나고야에 대기하는 비전투병력(16군) 으로 편성
3. 이에야스를 제외한 코바야카와 타카카게, 쿠로다 칸베에, 시마즈 요시히로같이 당대 이름난 무장들도 참여
(다테 마사무네나 우에스기 카게카츠도 왔고)
4. 당대 히데요시가 키우던 후쿠시마 마사노리, 카토 키요마사, 쿠로다 나가마사 등 참여
5. 무엇보다 생사를 건 전쟁에 ‘듣보잡’이라고 무시할수는 없음 ㅋㅋ
걍 일본은 가용 가능한 다이묘중에 최대치를 보낸거
저 라인업이 어떻게 듣보잡인지 이해는 안되긴함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네임드 부하들 중 하나였고, 그 쟁쟁한 라이벌들을 다 까부수고 전국 통일 및 1인자가 된 것을 생각하면 히데요시의 부하들은 결코 '듣보잡'들이 아니죠.
우에스기는 참가 안한걸로 아는데요
처음부터 이에야스와 카게카츠는 반대했고 전쟁하면서 세력확장 했는데요
@@이제원-o6j 3개월동안 별 전투는 안했지만, 오긴 했습니다
나오에 카네츠구랑 같이 와서 웅천왜성 쌓고 그 근처에서 책 털어갔어요
@@moratanco4013
그렇게 말하면 도쿠가와도 왔죠
한성까지 왔었는데
모르셨는 모양이네요
우에스기와 도쿠가와는 참전보다
세력확장에 열을 올렸고
히데요시 사후에 한판 붙은게
세키가하라고입니다
비록 우에스기가 추격을 안하는 바보같은짓을 해서 졌지만요
세키가하라에서 히데요리측이
믿은것은 우에스기인데 그가
추격을 포기 하는 바람에 배신자가
속출했서 패배 한것 입니다
하는 바람
정유재란때 고니시가 가토가 건너가는걸 알린거에 대해서 다른해석을 하는 채널도 있던데 정말로 가토를 날려버리려고 알렸는데 당시 이순신의 함대가 풍랑에 발이 묶여서 놓쳤다고 보는 영상도 본거 같네요
@@afta-u8g 당시 이순신의 함대가 출전했던건 맞나요? 일반적으론 고니시의 정보를 신뢰못해서 출진을 안했기에 삼도수군통제사자리에서 물러나고 압송됬다고 하지만 다른영상에서는 출진했는데 여러사정 때문에 놓쳤다는 영상도 다른채널에서 본거 같아서 정확한 팩트를 알고싶은데;;;
고니시는 양날의 검..... 가또를 잡던가 이순신을 잡던가.....
@@김승철-v6d 선조가 정보를 이순신장군에게 주었고 출격 명령을 내리지만 이순신은 가짜 정보로 의심하고 출격을 거부합니다. 이순신장군은 임금의 명을 어긴 죄로 삭탈관직에 투옥당하죠. 그래서 풍랑에 발이 묶였다는 설은 틀립니다.
그냥 이순신이 이기든, 가토가 이기든, 실제역사대로 가든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처리할 수 있고, 그렇게 안 되고 손해볼 것 없다 싶었을듯…
선조라는 미친왕때문에 정유재란의 엄청난 학살과 인적, 물적 피해를 자초했지요. 해군을 거의 몰살 시켰고, 서해 재해권을 일본에 내어준 꼴이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치고 올라가며, 다 죽이고, 약탈했습니다. 권력욕에 미친놈이 있으면 나라가 망가집니다. 이순신이나 중국 악비도 다 그렇죠..
와키자카는 칠본창 중에 제일 떨어지는 한명이었지만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자기에게 언젠가는 승전보를 가져다줄거라 믿었던 명장이었습니다;;
일본이 괜히 전국시대라고 불리는게 아니죠 일반 농민도 어지간한 훈련받은 조선 병사보다 잘싸웠습니다...
훈련은 기본으로받고 툭하면 영지 교착상태에 빠지기도해서 농사나 짓던 농민들조차 전투경험이 있었죠
그렇게 싸우다 실력을 인정받고 사무라이 계급으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전투실력이 노장보다 좋은자가 많았습니다
다만, 일단 히데요시 출신이 출신인만큼 이름있는 영주 가문에서는 같은 천한출신의 사무라이를 앞세우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히데요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중앙집권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앙집권체제는 메이지유신때 영지(번)을 중앙정부에 완전히 귀속시키는 폐번치헌을 통해 완성되기때문에 그 이전에는 절대 번을 무시할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히데요시가 천민출신이 아니였다면 진짜로 조선은 그때 멸망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내전 이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최소 17만이라는 뜻. 저 정도면 조선, 중국, 탐낼만하죠.
당시 일본군은 규슈와 츄코쿠, 시코쿠 등 일본 서부 지역의 다이묘 대부분이 참전한 상태였어요.
듣보잡이 온게 아니라, 당시 일본 서부 지역 다이묘들 대부분이 다 동원되서 온건데,
단지 그 다이묘들의 병력이 모인 각 번대 대장들이 그 지역의 여러 다이묘들이 아니라,
히데요시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시즈카타케 칠본창이나, 히데요시의 측근 가신들이었던겁니다.
다만, 시마즈는 규슈 남부의 거대 다이묘였고, 모리 가문은 츄코쿠 지방의 거대 다이묘,
죠쇼카베는 시코쿠의 거대다이묘였고,
다테 가문이나 도쿠가와 등 대부분 동쪽 다이묘들은 후발주자로 참전하기로 되어있었던 겁니다.
칸토 다이묘들까지 싸그리왔어야 일본군 전군이긴 하니까 전국시대때 다케다나 우에스기 호죠 다 칸토 다이묘인데 칸사이 다이묘들이 칸토보다 더 강했다고 하는게 말이되는지
@@venividivici9652
그 관동 가문들은 관동삼국지 시절의 위세를 잃은지 10년 넘었었고, 그 전설들의 다음 세데에서 전부 다 몰락해 다케다 가, 호조 가는 아예 멸문된 상황이었습니다. 대신 도쿠가와 가가 일대를 장악했지요.
임란 시점에서는 모리 가, 시마즈 가가 훨씬 더 강력한 가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모리 가는 관동삼국지 시절에서도 최상위권이며 주고큐 장악을 마무리지음)
@@venividivici9652 다케다와 우에스기는 서로 힘 빼다가 죽도 밥도 안됐고 호조는 히데요시 군에게 정벌당했죠.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는 유력한 가문이 그의 측근 가신들과 다테, 시마즈, 모리, 초소카베, 도쿠가와 등이죠.
센코쿠지다이때의 유명한 다이묘들은 이미 옛말이 되었을때인데요?
전국시대의 영웅들은 이미 지나갔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시기인데 말이죠?
다테 마사무네도 전국시대땐 어린 나이였죠.
시마즈, 모리, 초소카베, 다테, 도쿠가와 정도가 전국시대 이후 통일된 일본에서 대 다이묘라 할 수 있겠네요.
님이 잘 아시는 전국시대의 영웅들 우에스기나 다케다, 호조 등은 이미 ㅈ망했습니다.
다케다가는 없어졌지만 우에스기가는 5대로에 포함되는 대 다이묘였을겁니다.
고도로 단련된 병력들과 장군들. 말 그대로 전쟁통에 태어나서 전쟁터에서 죽는 시대의 베테랑들이 설마 바다 건너에 전쟁의 신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을 듯.
원균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조선 수군이 강했던 것이 아니라. 그 지휘관이 강했던 걸 스스로 증명해줌.
우에스기 다케다 도쿠가와 이마가와 호죠. 사이토도산 구로다간베에등등이 죽지않고 서로서로 사이좋게 모두 합심. 통일 일본으로 오다나 히데요시 제장들로 임진란때 참전했다면 생각만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네요. 가토, 고니시등을 선두로한 일본 삐급장수들로도 한반도를 유린했었으니. 참..
맞는 이야기이나 서로가 노림수가
많아서 그렇게 되진 않았을겁니다
오다 노부나가 대단한거죠 저시기에
저들틈에서 두각을 나타내니
애초에 불가능한 가정 ㅋ
안온 유명한 장수는 도쿠가와이에야스하고 사나다 가문만 안왔음
@@user-op4ds1np9x 사나다는 중소 다이묘라 별 의미없구요 대 다이묘인 마에다가 안온 것이 더 의미있죠.
마에다는 유명세가 없자아요 왔으면 좀 더많이 왔구나 정도
시마즈는 일본내에서도 최고중의 최고 아니였던가요 ㄷㄷ 칠천량에서 조선수군 전멸시킨것과 이순신장군님이 전사하신 노량도 시마즈군과의 전투였죠.
원래 해군 집안으로 유명한 것 같더라구요. 일본 근대화 되면서도 시마즈 집안이 있는 사쓰마번을 위주로 해군이 편성됐고
사천왜성전투에서 포위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연합군 상대로 반격을 가해 승리했던 것도 유명하죠.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중앙 돌파를 성공하고 탈출했었고 ㅋㅋ 시마즈가 위치했던 일본의 사쓰마 지역이 원래 왜구들이 많이 주둔하던 지역이라 그런지 싸움 잘하기로는 보신전쟁때까지도유명했죠 ㅋㅋ
케릭 디자인이 귀엽네요 ㅋㅋ
솔직히 임진왜란 정도면 14세기 대전쟁인데 서양사에서는 거의 안알려진거 같음 저정도 병력의 해상작전은 14세기 기준 이전까진 전세계에서 보기 힘든데 거리가 좀 가까워서 그렇지 거의 십자군 이상인데
한중일 쪽에서 큰 전쟁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것 같음. 고구려 때도 그렇고. 반면 서양 전쟁 역사들 보면 생각보다 한중일에 비해 병력수가 딸린다는 생각이 조금 들더라고여
@@prohightension2000 그게 맞는게 1차세계대전 이전 가장 많은 병력이 동원된 전쟁이 고구려 수나라 전쟁인데 솔직히 서양인들 아무도 모를 듯요 우린 백년전쟁이니 잉글랜드 전쟁이니 장미 전쟁 십자군 다 배우는데
오징어가 없어서 아쉽네요. >_< 사슴벌레는 많이 봤는데…윗줄 가운데 캐릭터는 뭘까요? 네모난거 너무 궁금함
정리를 아주 잘하셨네요. 잘 봤습니다~^^
구로다 나가마사가 단지 싸움에만 능한 장수라는 오해가 생길 지도 모르겠네요. 거기에만 이의가 있고 정말 잘 봤습니다!
와키자카도 임진왜란때 용인전투라는 조선입장에선 최악의 패전을 만든 육전도 했는데요 그리고 칠본창도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포함됩니다
10:19에 와키자카도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일본이 대단하기는 함. 저 시대에 30만에 가까운 병력을 바다를 건너 보낼수가 있을정도의 국력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었을것 같은데.
당시 철포 보유량도 세계 제일에 전투 경험 풍부한 장수와 병사들이 워낙 많아서 해볼만했죠.
100年間もの間戦争が続く社会で、民間人における戦闘が可能な人の割合が高かったのです。
도쿠가와 이에야스:나는 항상 때를 기다린다.
사마의. 중달
노부나가 때는 필요없다
히데요시 때는 내가 만든다
이에야스 때가 올때까지 기다린다
임란에서 이겼으면 듣보잡이 아니라 전설로 남았겠지
이순신ㆍ권율 ㆍ김덕령ㆍ한명련ㆍㆍㆍ일단 진짜 레전드라고 생각합니다.
가토 키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고바야카와 타카카게 같은 일본에서도 손에 꼽는 장수들도 많았어요
와키자카 야스하루도 S급은 아니지만 도요토미의 시즈가타케 칠본창 중 하나이고 토도 타카도라도 유명한 장수입니다
방송에 나온 진용은 전혀 무능하지 않은데요;;
시즈가타케 칠본창의 인물도 그렇고, 전국시대가 중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능력이나 업적같은 부분보다는 아무래도 젊다 보니,(전국시대 후반부 쯤에 등장하다보니) '네임드' 로 들지 못 한다는 느낌이 좀 있습니다.
삼국지에서도 초창기 장수들 보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나오는 인물들이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과 같다랄까요??
아무래도 후세의 인물들인 우리에겐 결국 이야기속의 인물들이다 보니, 긴장감과 집중도가 좀 떨어질 부분에서는 놓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겠죠 ㅎㅎ
비록 게임이긴 하지만 전국시대 초창기 장수들이랑 임진왜란 라인업 능력치 비교해보면 음...
와키자카는 듣보잡 맞다고 봄.
토도 아님 도도입니다
@@zzitkkit4517애초에 일본에선 임진왜란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을 가졌으면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후퇴하면서 조명연합군을 깨부수고 이순신까지 사살하면서 퇴로를 만들어놓은 시마즈를 언급했겠죠 근데 시마즈는 세키가하라때 기행과 용맹한걸로 유명하지 임진왜란에서 뭘 했는지조차 모르는사람이 태반입니다
장수가 영주들 입니다. 즉 다이묘 라고 하지요.
고니시 가토는 확실히 선봉장으로 높은 지위는 맞았죠.
도쿠가와가 참전 안한건 생각보다 일본 입장에서 타격이 큼
일본 본토에 주둔중인 도쿠가와군 견제한다고
도요토미 본군도 조선으로 출병 못했거든
우에스기 본군도 출병 못하고..
게다가 도쿠가와 휘하에 있던 부대들은 거의 엘리트라고 할정도로 노련한 집단들이었으니
우리입장으론 다행이죠 도쿠가와덕에 마에다도 집안지킴이로 하고있었고
@@ZaiKerizm 마에다도 있었네요
결국 도요토미 도쿠가와 우에스기 마에다가 참전안했으니 천만 다행이네요
애초에 일본이 중앙집권제가 아니라서 저 정도 보낸 것만 해도 히데요시의 압도적인 장악력을 나타낸다고 봐야 합니다. 자기 직할 다이묘뿐만 아니라 그 주변 다이묘들까지 죄다 싸그리 보낸거라서... 전국시대 동안 응축된 전력의 절반 이상을 보낸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도쿠가와 군까지 오기에는 보급 문제가 너무 심각했을 겁니다. 다테 마사무네도 2000명밖에 안 데리고 온 이유가 있죠. 여러가지 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쏟아부은 역량은 전근대국가로서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죠. 조선에서 엄청 수탈해가지 않았으면 일본 서부 다이묘들은 죄다 망했을수도...
걍 도쿠가와 자체도 히데요시랑 맞먹는데 ㅋㅋ 4천왕보면 쟤네랑 비교가안됨
이에야스가 참전안한게 다행이라고 할수 있겠지만.,.만약 참전했으면..이에야스도 전국을 통일했을까 싶은데..ㅋ..도쿠가와도 조선에 왔으면..우리의 순신이 행님한테 털렸을꺼야.,.
고니시랑 가토가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니었어요.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서로 인정하고 그저그런 사이였는데 히데요시가 카톨릭 신자를 박해할 때 가토는 적극적이었고, 고니시는 카톨릭 신자들을 보호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죠. 그러다 가토의 영토에서 도망친 카톨릭 신자들을 고니시가 거두자 더 사이가 안 좋아지죠...
가토 : 야 고니시! 내 나와바리에서 토낀 기리시탄 다 내놔!
고니시 :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마귀야!
가토 : 이 쐑히!!!!
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로 적이 되었죠.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게 부하들을 경쟁시키는걸 좋아해서 히고를 반으로 갈라 고니시와 가토에게 주고 경쟁시켰는데 가토는 열렬한 정토종, 고니시는 카톨릭인지라 너무너무 사이가 나빴죠.
임진왜란 몇편까지 가요?
네임드에 시마즈도 있습니다. 그 역시 중간에 참전하지만. 그리고 다테도 조선에 건너온적이 있었군요.
다테 마사무네가 전투에서 잃어버린 서양식 권총도 한국에 박물관에 있어요
그리고 서국무쌍 타치바나 무네시게도 있죠
@@vvvvvv-r3l
다테는 참전 의사가 없었는데 시키니까 잘 보이려고 딱 한번 싸우고 귀환
그런데 참전한게 하필이면 2차 진주성 전투의 학살….
처음 인도까지 생각했죠. 사실 일본 전군을 동원해도 여진족 정벌도 쉽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원래 여진족 자체가 강력했고 또 정복 전쟁은 상대가 내부적으로 무너지지 않은 이상 힘드니까요. 그리고 명나라야 당연하고 인도도 세력이 규합하면 거대한 세력입니다. 그만큼 히데요시가 국제 정세에 어두었고 자신과 일본의 힘을 심하게 착각한 것이죠.
@@마스터마구니-e7n 몇백년동안 그렇게 때려잡다가 그 7년 사이로 조선과 명을 발 아래 둘 정도면 절대 만만히 볼 사람들이 아님 여진족도. 명과 조선이 그렇게 괴롭혔는데 어쩔 수가 없지
함경도 일대를 점령했던 가토 기요마사 군대가 국경을 넘어 여진족 부락을 공격하다가 여진족에게 털린적이 있었죠
@@마스터마구니-e7n 간만봤다기에는 이후여진족이 두만강을넘어 조선부락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때 가토도 남쪽으로 후퇴했다고하죠
일본군이 전력이 남쪽으로 향해있자 이틈을타 정문부중심으로 다시 조선군을편성해서 일본군을 공격했죠
@@마스터마구니-e7n 그래도 가토휘하병력은 숫자는 적어도 나머지대군들을 충분히이끌고 적을칠수있는데 왜안쳤을까요? 애네 긁어 모으면 그래도2만이넘는대군인데 님이봐도 좀 이상하지않나요
@@마스터마구니-e7n 멍청하면 댓글을쓰면안되지 명나라 5만 대군이쳐들어온게 1593년1월인데
그전에 쳐들어왔냐? 그래 조승훈이 이끄는 5000병력이 평양성쳐들어갔는데 결과는 개털리고 본국으로돌아갔잖아 가토가 여진족을친게 8.9월인데 ㅋㅋㅋㅋㅋㅋ 논리좇도안맞네 걍 모르면 댓글을쓰지마
고니시 글 모를 텐데
고니시 사위가 조선어를 잘 했음. 고니시는 글 몰라서 선조실록에도 보면 가등청정 소서행장은 글을 전혀 모른다고 기록되어있음 (선조 34년 1월 17일)
대마도 다이묘 소 요시토시 고니시 사위로 조선어에 능했고 조선이랑 사이 좋다는 명분으로 도쿠가와가 살려줬죠 조선이랑 다시 외교하고싶어서
8:48 그래도 조선수군 전용 샌드백
히데요시는 목표가 인도 까지 였습니다
목적은 세계정복이였습니다
듣보잡이라고 하는 애들은 그냥 신장의야망이랑 전국무쌍 능력치보고 판단하는 애들이라 무시하면됨.
형님덜 전국시대 1도 몰라서 그러는데
시마즈가 센편이었나요?
왜란 이후엔 도쿠가와가 일본 다 먹지않았나용
시마즈가 규슈 통일을 눈 앞에 두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함.
시마즈 가문이 용맹하기로 원래 유명했고 단합이 특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마즈의 돌격 전술이 유명했죠.
그 시마즈가 사츠마 번에서 끝끝내 존버해서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고 지금까지 시마즈 공업이란 기업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실상 여지껏 보면 조슈의 모리와 사츠마의 시마즈가 위너죠.
시마즈가문이 나중에 사츠마쵸슈동맹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축이 되어 일본 내각에 주요관직을 차지합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시마즈가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영화에서 백윤식님이 연기했구요. 시마즈가 17대 당주로 세키가하라 전투서 소수의 병력으로 도쿠가와 진영을 정면돌파해서 뚫어버린 전쟁의 귀신입니다.
굉장히 쎄서 규슈 전체 통일 목전까지 갔다 히데요시에게 밀려서 원래 영지인 규슈 남부만 먹고 있었습니다. 세키가하라에서도 패전했지만 소수병력으로도 대단한 무용을 보여줘서 군에 섰음에도 가이에키(영지 몰수, 교체, 삭감) 당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누구세요-y7y 시마즈가문 엄청 유명한 가문입니다. 전국시대때도 시마즈군은 잘싸우기로 이름높았구요. 향후 일본 근대화에 중요한 삿쵸동맹의 한축을 이룹니다.
한국애서는 고니시와 가또 외에는 헷깔리기도 하고 잘 모른다.
가장 중요한건 임진왜란때 넘어온 부대들이 대부분 히데요시 최측근들인거고 히데요시가 통일을 하는 중심이 된 군대라는거고
그 말인 즉슨 구세대 강한 군대를 대부분 작살낸 장수와 부대들이라는거임
즉 새로운 세력들의 장수들 중 최강의 군대들을 보냈다는거고 신흥 무신집단 중 가장 강력한 애들이 모인거임
센고쿠 시대 무장들은 과거에 강했던 무장들이라는 의미라서 진짜 일본의 진짜 전력이 안왔다는거 자체가 희대의 개소리임
임진왜란 침략한 일본 장수들중에 현대까지 군공 또는 본인 무력으로 유명한 장수는 타치바나 무네시게 서국무쌍 이사람이 진짜 배기인데 거의 후발대에 군사수도 적어서 우리나라에서 인지도는 없긴함
난 임진왜란이 일본의 전력의 2분의1 수준 정도였다는걸 나중에 알았는데 만약 전력이 갔다면 명나라도 먹지 않았을까 싶음
전력을 동원하지 않은게 아니라 동원 못한거임
倭军火铳+步兵,在日本和朝鲜的山地地形能发挥出最大作用。但是明朝有平原、有高山、有江河、城高墙厚。至少得需要几十万战馬、大炮等攻城武器。还得需要千万以上的百姓人口制造武器、器材、准备粮食等等后勤。
明朝在万历抗倭援朝的同时期,还在与蒙古诸部、宁夏勃拜、播州杨应龙、苗乱、缅甸等等多线作战。参加抗倭援朝的将领李如松死在了与蒙古作战,在露梁海战战死的邓子龙,之前刚从缅甸战场回来。明朝如果动用举国之力单线作战,是可以动用50万以上的兵力
@@光明的祈祷A그런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힘 다 써서 청나라한테 개발림
방어하는 입장에서야 올인이 가능하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선 올인이 불가능하다 봅니다.
보급 문제 때문에 한 번에 많이 간다고 좋은게 아니예요. 대표적인 예가 수문제의 고구려 친정입니다. 적당히 지속적으로 예비대를 충원해주는게 좋은거예요. 이걸 진짜 잘한게 한고조 유방의 재상 소하입니다. 성도에 있으면서 기가 막히게 병력, 물자를 계속 충원해줘서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되었죠.
전국통일 했는데 괜히 네임드 잃을 필욘 없음
아니왜 수련의숲이랑 에델슈타인이랑 청운골, 악몽의시계탑 브금이 들리지...?
😮❤❤🎉😢😢😊 1:36 😢😂
최선이맞습니다..그리고 그당시 30살이면 지금의 40.50대로 봐야죠ㅋ
1.5배로 보면 딱 편한 속도 입니다
팀장은 아니었지만 4군단에 시마즈 요시히로 5군단에 초소카베 모토치카도 센고쿠시대를 풍미했던 네임드들이죠
시마즈 요시히로는 훗날 정면돌파 후퇴라는 미친짓으로 유명하죠. 그러고서도 살아남고 심지어 동군측 장수 두명을 격퇴했다는게 참......
이순신의 진짜 라이벌 시마즈
그나마 다행 인것은
이에야스 우에스기측 장수들이
참가 안한게 다행이죠
이들이 왔어면 결과는 또 모름
시마즈가문은 정말 대단하죠 훗날 메이지유신 일으킨 가문
@@kelihon
미친짓이 아니라 시마즈 가문의 전투패배시 대응 교리였습니다.
결론: 히데요시가 영끌하고 도쿠가와나 호조는 영끌 x
아진짜 아쉬운게 어짜피 명나라 자동참전이니 충주거점에 육군총동원령 내려서 몰빵전하고 초기 경사좌우수사가 그냥 함대만 보존하고 전라도로 피신하고 전면전 했어도 해볼만했음 ...
조선군은 너무 나약한 군대라. 그냥 몰살 당했지. 공자왈 꼰대들 나라 하는게 그렇지
어차피는 아니예요. 첨에는 명이 조선과 일본이 짜고 도와달라고 거짓말하는 줄 알고 구원군 안 보낼 생각이였거든요. 또 보내긴 보냈지만 벽제관 전투 패전 이후 소극적으로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대륙을 극복한 남자들인데 안정시키려면 락앤 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쿠가와 제외 올놈들은 거진 다옴 그리고 도쿠가와군이 와도 못이김 이순신 못이기면 군 배급이 잘안되서 못이김
한국인이 모르는거지 저 전국시대에 살아남았다는게 대단한거임..다들 좀 친다는 무장들임...
시마즈도 있잖아
얘들 듣보잡 취급하면 우리는 저 듣보잡한테 나라 전역 털린 조선이라고 하꼬취급받지
하꼬는 맞죠..한달만에 수도 털리는 나라가 어딧어요ㅋㅋ 그것도 기병도 아니고 보병 위주의 군대에
@@김동욱-i5b 수도털린 나라: 여요전쟁 여몽항쟁
그리고 얘들이 어케 하꼬임? 500년의 전국시대로ㅠ실전으로 다져진 살인병기들임
조선이 하꼬다? 승리를 이끈 이순신권율곽재우선거이황진 이런 분들이 나라지키고 한거 다 가치내려치기임
@@김동욱-i5b 그 거대한 중국도 문치주의 하다가 100분의 1도 안되는 유목민 한줌단들한테 중국 전역을 먹혔는데 중국의 한 지방도 안되는 조선 따위가 똑같이 문치주의를 따라하니 상대가 될리가 그나마 다행인건 왜구를 수백년을 상대하다보니 해군은 훨씬 강했던거..
@@김동욱-i5b 진짜 기병이라면 이해라도 하지 ㅉㅉ
@@김동욱-i5b사실 조선 건국 이후로 큰 전쟁은 아예 없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긴 함... 어느 나라든지 그 정도로 평화 지속됐는데 제대로 돌아간 나라가 없음. 우리야 북방 여진족들 때리느라고 그나마 북쪽에 기병이 셌던거지. 그마저도 지휘관들이 일본을 너무 얕본 나머지 털려버리고. 하여간 여러모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로 망했어야 하는 나라인데
듣보로 편성한게 아니라 여기서 발려버려서 듣보가 된거 아님?
그렇다고 해도 저시기에 가장센군대는 도쿠가와 군인건 맞음
애꾸눈이었던 다데 마사무네는 울산쪽에 주둔했죠
야마오카 소하치의 마지막 소설인데 우리나라에선 패자와 패자 (한자는 다름 )라는 제목으로 출간 되었었죠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ᆢ
애초에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일으킨 게 자기 땅 넓히려고 하는 건데 당연히 믿을 만하고 "비교적" 약소 무장들로 보냈겠지. 그리고 당장 히데요시 본인도 그렇고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처음부터 네임드였나. 하다보니 네임드가 된 거지. 임진왜란도 기회였던 거임.
나고야가 큐슈에 있는거임?
일본에 나고야는 2곳입니다 일본 혼슈 중부에 있고
큐슈에도 나고야가 있었습니다 한자는 다릅니다
쟤네가 전부 와도 이순신한테 보급 계속 짤라막혀서 명나라 진출은 조선을 완전히 복속 시키고 수십년이 지나야 가능한 일이고 한 국가가 바닷길 건너서 정복전쟁하는데 총력전 한다는 발상자체가 정신나간 짓
WA! 채널 아케치 아시는구나!
이에야스, 토시이에 이외에는 어지간한 다이묘들은 잠깐이라도 참전했었는데 뭔 듣보잡이라는건지 모르겠네요.
무슨 저들이 듣보임 ㅋㅋㅋㅋㅋ 싹다 전투경험 풍부한 숙련된 다이묘들인데.
그리 따지면
조선 조정이 밀어준 이일, 신립은 그냥 농민 수준인데.
신립이 농민? 개소리하고 있네
장군들은 모르겠는데 저때 한반도로 발령난 졸병들은 졸라 불쌍하지.. 자대배치 운 지지리도 없지..
다른 사람 영상은 잘 안 보는데(먼산)...
제목에 낚여서(?) 클릭했다가, 내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람;;;
당연히 오케이 하시고 영상에 언급되신 줄...
임진왜란때 최정예로 풀공격했으면 일제시대는 더 빨라졌을수있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왜 오대로임?
원래 도쿠가와, 마에다, 모리, 우키타, 고바야카와였는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죽고나서 우에스기가 그 자리 채운겁니다.
なんか韓国って日本の歴史に詳しい人が多い気がする
저들이 듣보잡 무장으로 불리우는 가장 큰 이유는... 최후의 승자는 관동의 덕천가강 .. 즉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가 하는거니.. 당연히 히데요시 밑의 무장을 깎아 내리고 이에야스의 무장을 높이는 거죠.
정벌군??? 침략군이 더 맞아 보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서 동군으로 배신 때린
내가 좋아하는 사무라이.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수군 최고 무장도 그럼 듣보잡?
와키자카는 진짜 듣보잡 맞다....
와키자카는 좃밥인데요
아쉽지만 듣보잡 맞음..같은 칠본창도 쟤랑 엮여서 불쾌하다 그랬음.
와키자카는 석고도 얼마 없고 듣보잡 맞아요.
나고야는 혼슈인데요
임진왜란 당시 출병장소는 큐슈 나고야 名護屋 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혼슈 나고야 名古屋 와 한자가 다릅니다
@@이승원-f9h9z 그렇군요 하나 알아갑니다
17만;;; 이상이라면 거의 적벽대전 급이였네
모리 모도나리의 아들
모리 데루모토 같은 거물도 조선출병했는데
황석산성에서 수만명의 병력을 잃고
조용히 일본으로 돌아감
세끼가하라에서
못싸운 이유가
조선황석산성에서 손실이
회복 불가
왜병
28만명들어와서 20만명 죽음
모리 모토나리의 장남은 모리 다카모토 이고 모리 테루모토는 다카모토의 아들입니다
모리가 거물은 2남 킷카와 모토하루 3남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인듯. 모리 모토 나리의 장남은 40세에 요절한걸로 알고 있음. 그래서 데루모토가 가독 상속하고 삼촌들이 옆에서 도운걸로 알고 있음.
28만이 들어와서 20만이 죽었다는건 대체 어디서 뭘 보고 얘기하시는건지
희안한게 일본 장수이름들은 삼국지마냥 기억에 남는데 왜 우리나라 장수들은 기억에 안남는거지 😅
건담 머리들이 있네😂😂😂
35살때 장인? 몇살에 애를 낳은겨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우키타 히데이에도 서군 핵심 다이묘 아닌가
주력이였죠. 임란에서는 총사령관이였구요.
마지막 브금 거상이 아니라 군주 아닌가요?
장수가문제가 아니라 군대자체의 질이 다르지. 백년가까이 전쟁한 군대인데
웅치와 이치 전투를 잊지말자...
근데 과거 삼국시대만 올라가더라도 25만 30만이 아니라 수나라가 100만까지 동원한 역사도 있어서 고작 17만가지고 명을 정복할수있었을라나 ㅋㅋ;;
임진왜란도 사실상 만력제가보낸 명나라군한테 쳐발린거임 선조가 명나라 후장까지 괜히 빤게 아니라
만주족 후금이 명나라 침공 때 동원한 군대의 수를 보면 17만은 큰 숫자이지요
수나라 100만은 사실상 거짓일 확률이 큽니다. 당시 도로상황이나 보급능력으로는 절대 그 인원을 보급하기 힘들어요. 해상보급도 용이하지 않았고요.
수나라 100만은 그냥 대놓고 구라인데요 ㅋㅋㅋㅋㅋ 명나라 정복한 청나라가 그거 10분의1도 안됩니다.
@@권현운1644年攻入北京的是李自成的农民军。女真人在明朝与农民军两败俱伤后占了便宜
캐릭터 왤케 귀엽지ㅋㅋ
ㅇㅈㅋㅋㅋㅋㅋㅋ
시마즈가 않보이넹
4군이라 초기 침략군만
인조이 재팬 시절 일본애들 1군론 그대로 읊는 애들 많네. 게임이나 소설에서 유명하다고 능력있는 게 아니란다. 임란 당시에 가용 가능한 병력을 다동원한 거임. 임란에서 조선 정복했으면 고니시가 일본 최고 명장 소리 듣고 있겠지. 이름 유명하다고 유능한 게 아님. 당장 일본에서 유명 하다는 놈들도 고니시보다 임란에서 더 전공 세운 놈 없음
일본에서 전국시대 유명한 다이묘들은 이미 늙거나 죽은 이후였고, 신겐이나 겐신 같은 유명한 애들도 도요토미 군이랑 붙으면 그냥 깨짐. 병력 수랑 인력풀 자체가 다르고 세대도 한 세대 뒤라 더 발전된 전쟁수행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도요토미 최정예 측근 병력이 넘어온 게 임진왜란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