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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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4 лип 2024
  • 그들이 떠나간 뒤에, 귀신이 들려 말 못하는 한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께 데리고 왔다.
    33. 귀신이 쫓겨나니, 말 못하는 그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 무리가 놀라서 말하였다. "이런 것은 이스라엘에서 처음 보는 일이다."
    3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는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NIV]
    32. While they were going out, a man who was demon-possessed and could not talk was brought to Jesus.
    33. And when the demon was driven out, the man who had been mute spoke. The crowd was amazed and said, "Nothing like this has ever been seen in Israel."
    34. But the Pharisees said, "It is by the prince of demons that he drives out demons."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심.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1. 그의 처지는 매우 딱한 것이었다. 그는 이 특별한 경우에서 마귀의 능력 아래 있었으며,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비참한 상태를 보라. 그리고 고통받는 자의 고통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우리는 "두 소경"을 떠나보내자마자 곧 "벙어리 된 자"를 만나게 된다. 우리들이 말하는 것과 보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리자.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류에 대한 사탄의 악의를 살펴 보라. 또한 그는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그것을 보여 주셨는가! 이 사람이 벙어리 된 것은 "귀신이 들린" 결과였다. 그러나 그러한 귀신들이 했던 것처럼, 즉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말하기를 강요당하는 것(마 8:29)보다는 어떤 일을 말하지 않게 된 것이 오히려 더 나았다. 둘 중에, 모독하는 귀신보다는 벙어리 된 귀신이 오히려 낫다. 귀신이 영혼을 소유할 때 선한 일에는 침묵하게 된다. 즉 귀신이 불구대천의 원수인 기도와 찬미에는 벙어리이다. 그들은 이 불쌍한 피조물을 "그리스도에게로 데려 왔는데," 그리스도야말로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스스로 나아오는 자를 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앙으로 그들 친구에 의해 "그에게 끌려온" 자들도 환대하셨다. "의인은" 영원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지만" 현세적인 자비는 우리를 위해 중개하는 그들의 신앙을 염두에 두고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다. 그들이 "소경이 나가자마자"(나갈 때에) 그를 데려왔다. 그리스도는 선을 행하는데 얼마나 지칠 줄을 모르셨는가를 살펴 보라. 하나의 선행이 밀접하게 다른 선행을 따른 것을 살펴 보라! 자비의 보화들, 놀랄 만한 일들이 그 안에 숨겨진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전달될 수 있지만 결코 소모 될 수는 없다.
    2. 그의 치유는 매우 급작스러웠다.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였다."(33절).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치유는 뿌리체 근절하는 것이며, 또한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그 결과를 없이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영혼에 있어서 사탄의 능력을 깨뜨리심으로써 그 입술을 연다. 성결에 있어서 그는 소금을 샘에 던짐으로써 물을 고치신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은혜에 의해 영혼에서부터 "귀신들을 내어쫓으실 때," 곧 "벙어리는 말한다." 바울이 개심 하였을 때 "보라, 그는 기도하고 있다." 그 때에 "벙어리는 말하였다."
    3. 이 치유의 결과.
    (1) "무리는 기이히 여겼다." 그들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비록 "소수가 믿었지만 많은 사람이 놀랐다." 일반 사람의 찬미는 어떤 다른 감정보다 곧 일어난다. 새 노래, 새 언약의 노래는 "기이한 일을 위하여" 불러져야 한다(시 98:1). 그들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스라엘이 행하였던 것과 같은 자비의 기사를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는 이적을 행하는데 참여했던 자들이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을 능가하였다. 모세가 행했던 모든 이적들은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과 관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적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집으로 데려와졌다.
    (2) "바리새인들"은 모독을 하였다(34절). 이 이적들의 확실한 증거를 반박할 수 없을 때 그들은 마치 이러한 이적들이 계약이나 공모에 의해 행해진 것처럼 마귀를 빙자하여 이 일을 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즉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나친 제안이다. 우리는 후에 그것에 대하여 또한 그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응답에 대해 더욱 듣게 될 것이다(마 12:25). 여기에서 단지 살펴볼 것은, 어떻게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이 더욱 악해지는 자라는 사실이다.(딤후 3:13). 또한 그것은 그들의 죄와 그들의 형벌이다. 그들이 주님과 논쟁하려는 요지는 그가 "죄를 사하신다"(3절)는 것과 "세리들과 죄인들로 더불어 교제하신다"(11절)는 것, "금식하지 않는다"(14절)는 것이었으며, 비록 악의가 충분히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 속에는 경건과 정결과 헌신의 어떤 색채를 띠고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이런 것들을 인하여 그들을 형벌하기 위해 남겨둔 것이다) 극도의 악의와 거짓, 소름기치는 적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악마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당연히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선고된다. 사람들은 기이히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이 적을 떨어뜨리는 어떤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이것은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저희가 나갈 때에 - 이 장면은 앞절과 연결된 것으로 소경을 고치셨던 바로 그 집에서 막 나가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을 가리킨다.
    귀신 들려 - 성경에는 귀신에 사로잡힌 중풍병자나 소경 또는 벙어리가 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즉 사단의 무리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질병이나 불구를 이용하여 침투하고는 교묘하게 자기들의 모습을 감추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이 사람의 벙어리 병이 귀신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아시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다고 종종 기록하는 신약성경의 언급들이 조잡하고 원시적인 미신에 근거한 성경 기자들의 우매성을 드러낸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적 발병과 귀신에 의한 병증을 구분할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을 반증해주는 것이다(막 9:14-29, 귀신들림과 축사 참조).
    벙어리 된 자(* , 코포스) - 이 말의 원어는 '귀머거리'(deaf), '벙어리'(dumb), '귀 먹고 말 못하는 자'(deaf-mute)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귀가 먹어 듣지 못할 경우 자연적으로 말을 배우지 못해 벙어리가 되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 그리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자들 역시 벙어리 귀신에 사로잡혀 말 못하는 벙어리인 것이다.
    귀신이 쫓겨나고 - 벙어리 된 자의 질병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즉 태어날 때부터 귀가 먹어 벙어리가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본문처럼 귀신들려 벙어리가 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벙어리의 원인이 귀신들린 데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므로 이 사람의 벙어리를 고치신 것이다.
    벙어리가 말하거늘 -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 때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하면서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 6)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벙어리가말하게 된 이적은 메시야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던 것이다.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한 일이 없었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냄과 동시에 벙어리를 고치신 이적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다음 구절에 언급되는 바리새인들의 반응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부자와 학자들보다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더 쉽게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 바리새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예수의 사역과 이적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메시야로 보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를 비난하고(9:3, 11, 24) 급기야 여기에 와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벙어리를 고치는 메시야 이적에 대해 예수께서 귀신의 왕의 힘을 빌었다고 극단적인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 부분은 이후의 예수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특히 10:16-28의 배경이 된다.
    귀신의 왕 - 귀신들의 괴수, 곧 사단을 지칭하는 말로서(4:1-11, 사단과 귀신)이는 바알세불을 가리킨 것이다(10:25; 12:24 참조).
    빙자하여(* , 엔) - 이는 귀신의 왕을 '통하여' 라는 뜻도 있고 귀신의 왕 '안에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사단을 방편삼았을 뿐 아니라 그의 능력을 덧입어 병자를 치유했다고 하는 것이다.
    귀신을 쫓아낸다 - 이와 같은 악한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더할 나위 없는 악의에 찬 비난이었다. 이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대표자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목수의 아들 예수를 통해 발휘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시기와 질투심에 가득차 있었으며 또한 자기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게 일어나는 이 신비로운 메시야의 광채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이와같이 악한 사단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비록 이들 바리새인들과 같은 정도의 악한 시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죄의 권세 아래에 놓여 있는 이상 이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하겠다.
    2024년 7월 5일 금요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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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cyreform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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