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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35-38절 설교|영혼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까?|생명 없는 자들을 긍휼히 여깁니까?|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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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7 лип 2024
  •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36.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38.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NIV]
    35. Jesus went through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each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36.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37.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38.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
    ..."부한 자나 가난한 자," 도시인들이나 시골뜨기는 그 안에서 함께 만난다. "마을 주민에 대한 그의 의로운 행동"은 "열거" 되어야만 한다(삿 5:11).
    2. 공중적인 예배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이는
    (1) 부패가 있기는 하였지만 경건한 회합자들에게 증거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어떤 일과 같이 함께 모이는 집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2) 들으려는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곳에서 설교하려는 기회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복음적 교회가 설립되거나 기독자 집회가 모이는 곳에서 사도들이 자주 "유대인의 회당에서" 설교하였다. 그것을 최고로 삼는 것은 현명한 지혜이다.
    Ⅱ. 다음 장에 나오는 제자 파송의 기사에 대한 서언이나 서론. 그는 "무리"(36)를 보셨다. 그는 "자기를 따르던" 무리뿐만 아니라 지나갈 때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주시하셨다. 그는 마을과 성읍에 어떤 영혼의 거처나 많은 주민이 있는가를 주목하셨다. 각 회당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문의 입구에는 어떤 집회 장소가 있는가를 주목하셨다. 많은 인구가 있었으므로 국가는 지금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그것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였다. 이것을 볼 때에,
    1. 그리스도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36절). "그는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가 눈먼 자나 절름발이, 병자를 불쌍히 여기신 것은 현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영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는 그들을 무지하고 경솔하며 소망이 없기 때문에 망하려 하는 자로 보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귀중한 영혼에 대한 애정 있는 친구이시라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그의 자비심은 특별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를 하늘에서 지상으로 또한 거기에서 십자가로 이끌어온 것은 영혼에 대한 긍휼(연민)이었다. 비참은 자비의 대상이다. 죄스러운 비참이나 자기 파괴적인 영혼은 최고의 비참이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비참한 처지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와 같이 우리도 행해야만 한다. 기독자의 최고 연민은 영혼에 대한 연민이다. 그것은 최고로 그리스도와 닮는 것이다.
    이 긍휼을 일으킨 동기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 "그들은 고생하였다." 그들은 빈곤하고 고통스러웠으며 피곤하였다 그들은 "곁길로 나아갔다." 또한 서로가 흩어졌다. 또한 "연락의 막대기가 잘라졌다"(슥 11:14).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을 위해 도움을 원하였으며, 어떤 좋은 것도 그들 곁에 있지 않았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공연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장로들의 유전으로 무거운 짐을 지움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오류를 범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으며, 신적 법률의 범위와 영적인 본질을 잘 알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고생하였다." "생명의 떡" 대신에 찌끼와 재로 먹여진 영혼들에게 무슨 영적 건강과 생명, 활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고귀한 영혼이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되지 못했으므로, 의무가 이해해야 되고 시험에 저항하며, 고통을 견뎌야 할 때 "약해진다."
    (2)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였다." 그 표현은 열왕기 상 22장 17절에서 인용된 것이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일에서 그들보다 앞장 설 신실한 인도자가 없는 자들의 슬픈 상태를 나타낸다. 양처럼 길을 잘 일어버리는 동물도 없으며, 또한 길을 잃어버릴 때는 다시 집을 찾아오는 일이 드물며 거의 소망이 없다. 죄지은 영혼은 "잃어버린 양과 같다." 그들은 그들을 데려다 줄 목자가 필요하였다. 유대인 교사들은 "목자"로 행세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들이 "목자"를 가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처참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올바르게 인도하는 목자가 아니라 곁길로 나가게 하는 목자였으며, 잘 양육하는 목자가 아니라 양떼를 쫓아내는 목자였다. 이러한 목자는 예레미야 23장 1절과 에스겔 34장 2절 등에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러한 백성들의 경우는 매우 가엾으며 또한 그들은 전혀 목자들을 가지고 있지 않고 누구보다도 처참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영혼들의 일들이 아닌 자기 자신들의 일을 구하였다.
    2.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하셨다. 그의 긍휼은 이 백성을 위한 수단을 강구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사도들을 내보내기 전에 그는 자신이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나타나 있다(눅 6:12, 13).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난 후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돌이켜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1) 그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라." 사람들은 좋은 설교를 원하였으나 좋은 설교자는 거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선행이 많았지만 그것을 행할 손이 적었다.
    [1] "추수할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은 격려였다.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무리가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 그것을 원하는 자들이 그것을 받으려고 나갔던 일이 드물었다는 사실은 이상하다. 잘못 가르침을 받았던 자는 더 가르침을 받으려고 원하였다. 사람들의 기대는 부풀어졌으며, 잘 약속된 것 같은 감정의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사랑 안에서 좋은 설교로 양육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된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 때 골짜기(들판)은 곡식으로 덮혀져 있으며 그것을 잘 거두어들이려는 소망이 있다. 그것은 절호의 기회로서 그것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중적인 배려와 근면을 요구한다. 추수날은 바쁜 날이 되어야만 한다.
    [2] "일꾼"이 적은 것은 가엾은 일이었다. 추수꾼이 없으므로 곡식은 떨어지고 못쓰게 되며 땅 위에서 썩게 될 것이다. 할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자들은 많지만 "일꾼"은 매우 "적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좋은 일군이 없기 때문에 선행이 멈춰지고 천천히 진행되는 것은 교회에 불행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될 때 이미 있는 "일꾼"은 매우 분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이 경우에 그들의 할 일은 무엇이었는가?(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라."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시대의 우울한 국면과 귀중한 영혼의 비참한 상태는 기도를 일으키고 재촉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만 하며 불평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교회의 현재 위급한 사태에 대해 기도해야만 하다. 이스라엘이 해야할 것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때를 잘 이해해야만 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추수하는 주인"이시다. 내 아버지는 그 농부이다"(요 15:1).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이다"(사 5:7). "추수가 거두워지는 것"은 그를 위함이며 그에게 드려지는 것이며 그의 봉사와 영예를 위한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다"(고전 3:9). 그의 "타작 마당이며 그의 마당의 곡식"(사 21:10)이다. 그는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추수"에 관한 모든 일을 명령하신다. "일꾼"은 그때에, 그곳에 오래 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최고로 모든 것을 확실히 명하실 하나님이 관장하시는 "추수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2] 교역자들은 하나님의 "추수"에서 "일꾼들"이며 또한 일꾼들이 되어야 한다. 교역은 "일"이며, 따라서 소중하게 간직되어야 한다. 그것은 필요할 일인 "추수의 일"이며, 모든 일이 적절하게, 또한 철저하게 열심히 해야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기쁨으로 거둔다." 복음 설교자의 기쁨은 "추수의 기쁨"과 흡사하다(사 9:2, 3). 또한 "거두는 자는 임금을 받는다." 하나님의 들에서 거두는 "일꾼들의 품삯은" 그들의 것과 같이(약 5:4)"주지 않고 숨겨지지" 않는다.
    [3] "일꾼을 내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리스도를 사역자로 삼으신다(엡 4:11). 그 임무나 그의 일의 자격, 그가 주시는 소명은 그가 임명하신다. 그들은 임무나 자격이나 소명이 없이 활동하는 "일꾼"으로 간주되거나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보냄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2024년 7월 8일 월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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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cyreform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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