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고려 충선왕, 티베트로 유배된 까닭은 / KBS 2006.2.1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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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24 гру 2024
- 충선왕의 티베트 유뱃길을 따라가다
티베트는 북경에서도 4,200킬로미터 떨어진 이역만리!
원 황제가 충선왕에게 불경을 공부하라는 명목으로 토번, 지금의 티베트 살사결 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가는 데만 반년이 걸린 1만 5천리 유뱃길! 지금도 교통이 불편한 험난한 길을 되짚어, 충선왕이 머물렀다는 티베트 샤카사원을 찾았다.
한 나라의 국왕이 먼 이국땅 티베트까지 유배를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충선왕이 원 황제 쿠빌라이의 외손자가 된 까닭은?
당시 원의 영토는 서쪽으로 모스크바를 거쳐 이라크에 이를 정도로 광활했다. 원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제국주의적 대외팽창에 주력했다. 고려 역시 결국 원과 조공 책봉의 강화를 맺었지만, 고려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바로 분명한 국경선과 나라 이름을 지켜낸 것! 원의 세계 정책에 있어 유일한 일이었다. 또한 고려 태자와 원 황제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공주의 결혼도 성사된다. 충선왕이 쿠빌라이가 아끼는 외손자로 태어나기까지,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걸까?
아버지를 두고 충선왕이 왕위에 오른 이유는?
충선왕은 어려서부터 고려와 원을 오가며 쿠빌라이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4세 되던 해, 충선왕은 왕위에 오른다.
선왕이 죽어야 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관례, 왜 충렬왕은 충선왕에게 직접 왕위를 넘긴 것일까? 원 간섭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왕이 된 충렬왕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도 자주권을 지키려 애썼다. 충렬왕의 어떤 면이 원의 미움을 사게 되었나?
충선왕, 원제국의 2인자가 되다
충선왕 역시 왕위에 오른 지 불과 8개월 만에 폐위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충선왕의 비인 원나라 계국공주의 시기.
충선왕이 폐위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폐위된 후 원에 머무른 충선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원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진다.
과연 충선왕은 어떤 방법으로 원의 신임을 되찾아 심양왕에 책봉되기에 이른 것일까?
고려 왕좌를 비웠던 충선왕, 그의 개혁성과와 한계는?
충렬왕 사후 다시 고려 국왕에 오른 충선왕. 이미 심양왕에 봉해진 그의 권력은 더욱 막강해진다. 그런데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1년을 고려에 머문 뒤 다시 원으로 돌아간다.
고려의 국정운영은 교지를 내려 전하는 ‘전지 정치’로 대신했다.
원에서의 정치적 기반이 고려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충선왕.
그러나 결국 원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휘말려 결국 유뱃길에 오른다. 충선왕의 선택을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HD역사스페셜 37회 - 고려 충선왕, 티베트로 유배된 까닭은 (2006.2.17.방송)
history.kbs.co.kr/
워우... 진짜 안 믿어 지는 광경이로군여 ! 고려 때 지어진 사원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고, 그 때 그려진 탱화를 마치 초등학교 때 그린 그림 보관하듯이 간직하고 있고, 그 역사를 주지스님이 알고 있다니요 !? 어메이징임다. KBS 다큐들이, TV를 안 봐서 그 간 모르고 지냈는데, 유투브를 보다보니 압도적인 데가 있네요 ! 앞으로도 계속 좋은 다큐들 제작 부탁드려요.
당시 원나라가 한족을 탄압하고 과거제도도 없애 버려서 유학의 씨가 말랐는데, 충선왕이 만권당이라는 학술기관을 만들고 한족과 고려의 유학자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했죠. 그들이 나중에 각각 명나라와 조선 건국 세력으로 발전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 그래서 조선 유학자들도 충선왕은 고려의 왕인데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하고 받들었습니다.
고려의 역사는 정말 모르는 부분이 많았네요. 충선왕이 그 먼 티베트까지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것도 생소했는데 역사스페셜 그날 팀 감사드립니다.
평소에공부를하지 ㅉㅉ한심한것
@@암행어사출두여
평소에 교과서에서도 안나오는거라서 직접찾아야함.
교과서보다 숨겨진 이야기가 많음.
@@암행어사출두여 ㅉㅉ 인성이...
많은 사람이.있습니다ᆢ
@@바삭바삭-l7l 다 슴김
ㅋㅋ
왜구가 고려 개성까지 텨들어간것도 안씀 ㅋㅋ
역사스페셜은 정말 유익한프로입니다ᆢ잊어버리고 지난 세월을 다시금 재밋고 슬기롭게 잘 풀어주셔서 배웠던것이 새삼스레 생각도나고 머릿속에 속속들어와서 꼭 챙겨보려고 합니다
이번 내용 너무 좋넴,,,
주지스님이 그걸 알고 있다니 대단하다.
잊지않고 전해지네
충선왕은 자신이 쿠빌라이 손자인것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랑케가 왕이 됐네요.
@@graycain 왜요? 몽골이 모쿠리이고, 고구려가 모쿠리이고 결국 같은 나라인데,
고리
몽고리
고구리
결국 다 같은 고리족.
@@graycain 쿠빌라이 당시 원나라 역사를 보면 그의 외손자를 오랑케가 왕이 됐다고 폄하 하기엔... 😑
@@graycain
조선족이세요? 아님 오H구?
무식하면 조용이 있어야 중이라도 가는데... ㅉㅉ
칸의 외손이었다는것 어찌 자부심이 없었겠나요 자기피의 반쪽이 고려임을 부끄러워했다지요?
대하드라마로 충선왕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네요.
그를 롤모델로 한 드라마는 있어요
왕이사랑한다 임시완씨가 충선왕 모티브한드라마있어요
충선왕뿐만 아니고 그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대하드라마, 정말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아주 냉정한 시각에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충선왕역을 한국 배우가 아닌, 한국말을 더듬더듬 할 줄 아는 몽골 배우가 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충선왕은 실지로 고려말보다 몽골말을 훨씬 더 잘했을 것이고, 고려로 돌아가기 싫어서 아들한테 양위까지 한 충선왕이 스스로를 고려인으로 생각했을지 몽고인으로 생각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이기 때문에.
@@lennie1476 내생각은 내생각일뿐. 우리나라에 와있는 몽골인들 어색하지않게 한국말 잘하는사람 많음.
@@백민-j4k 몽골인들 중에는 한국말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고, 더듬더듬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고, 아예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고 . . . 제 이야기는 충선왕 역을 맡을 배우는 한국말을 할 주는 알되, 아주 잘 하지는 못하는 몽골 배우가 맡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인데, 그 정도의 독해력도 없다면, 남의 글에 답변 글 달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편 역사 출제자들이 난도조절할때 활용하는 왕 ㅎㅎ
알고보면 충선왕이 한 일도 많았고 중요한 인물이었음
ㅣ
캬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을 ,퇴출시키고 자기가 왕노릇하다 쫓겨남...
ㅏㅜ ㅜㅑ😊9ㅠ 😊😊
@@하닷사-s2q 0😊😊😊😊
충선왕은 원나라 왕위 계승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는 데... 적어도 왕의 형제와 동급으로 인정 받았으니...
1
ㅅ
서열이 높았죠
정말유인한 방송이네요
간섭기를 치욕이니 머니 하면서 외면할것이 아니라 역사흐름 그 자체를 바로알고 인식하는게 중요한것같다
정말 훌륭한 분이었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충선왕이 쿠빌라이 손자였다는건 정말 충격적이다
재밌게 봤습니다
고려와 심양 까지 다스렸다면 권력 파워가 어마어마 했겠네요
병자호란때도 십만 양민이 심양으로 포로로 끌려갔다던대 그옛날 그지역 맹주 거란족이 못살게 하니 서희외교로 너희와 우리는 한뿌리 두줄기라 했다나 뭐라나 쌈박질 한번 안하고 세치혀로 고려 영토를 넓혀 국사책에 나오시는 울 외교의 산전설 아이지비요
충선왕 ㅏ
탬
권력은 어마어마했는데.. 막상 고려는 잘안갔다고 하더라고요
충선왕은 원나라 권력서열 3위 : 1위 인종(원황제), 2 무종 (인종을 이어받은 원황제), 3. 충선왕........황제권한을 이어받을 수 있는 서열 10위이내....황제 다음 권력인 신하의 최고위 승상직위을 거절, 정치권력에서 물러나 만권당 설치. 후계자 선정과정에서 인종의 아들을 선택했으나 무종의 아들인 영종이 이어받음에 따라 티벳트 유배. 3년후 영종이 죽고 난후 북경에 귀향했으나 곧 병으로 죽음. 원나라에서 충선왕의 위치와 여정은 청나라 태종이후 막강한 권력자였던 도로곤 여정과 비숫함.
와,,, 엄청난 스토리네요, 고려 조선사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하고 글로벌하게 사신 인물이네요, 이런 얘기를 이제야 알았다는 것도 쇼킹합니다 ㅠ
우리 익제할부지 고생 많으셨네요 ㅜㅡ 자랑스럽당
충선왕 관련 드라마 나오면 볼만 하겠당 ㅋㅋㅋ
왕은 사랑한다- 임시완 이용 ㅎ
임시완이 충선왕으로 출연한 '왕은 사랑한다'라는 MBC 퓨전사극이 있었죠. 시청률은 망했습니다.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이 영상 못 봐서 아쉬웠는데 유튜브 덕에 보네.
이렇게훌륭한 다큐 만들어주세요
,원,한테 충성한다고
,충,자들어가는 호칭으로 왕이름을
지었다는데..
공민왕은 거부하고.
오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충선왕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는 재미져요.
16:04 와 이익주 교수님 젊다!!
2006년 방송했으니 16년전이구나 ㄷㄷ
징기스칸의 직계들도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나라 이름 지켜 낸 것 만으로도 업적이다.
ㅇㅈ
충선왕. 그도 얼마나 힘드셨을까....
ㅆㅇㅈ
나라 이름 지켜낸거 ㅇㅈㄹ ㅋㅋㅋㅋㅋ 외국 대학들은 저 당시 고려를 몽고 영토로 가르치고 있다ㅋㅋ
@@WestYoon 17:25
우리 자국이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매일매일 싸우고 나라 경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있는가, 이런것을 볼때는 양아치들만 모여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래이션이 잘못되었네요.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는 몽케 칸(헌종)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들입니다. 영상에는 툴루이 칸의 아들이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아리크부카 로 제대로 나와 있는데 나래이션은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를 몽케 칸의 아들로 이야기 하고 있군요. 나래이션이 잘못되었으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잘 못 : 잘하지 못하다.
잘못 : 틀리다
@@ldavid2001 수정 했습니다. 덕분에 맞춤법을 알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
심양이 원나라 땅이 아니라 원래 고려 영토였으니 고려인이 많은거임. 평주 평양은 지금의 심양지역임
선생님 오늘 복장 컨셉에 맞추셨나봐요. 멋있음 ㅎㅎ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사실대로 널리 교육하고 큰 교훈을 새기도록 해야 올바른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받아 한민족 역사가 후대에 더욱 융성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끄러운게 아님.. 지금 미국 이길 수 있음?
몽골제국의 패권이 다른 세기와 비교하면 영국, 미국 정도일 텐데.. 다른 분 말씀대로 몽골 아래는 모두 부끄러운 역사가 되는 건 아닌 듯 싶네요. 이런 몽골에 먹히지 않고 자국의 문화를 지킨 선조들의 용기와 지혜
@@DrWho44 맞긴한데 그러면 명나라 청나라 사대주의는 왜 부끄러워하는건가요?
@@jarangsruun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부끄러워해야 되고 청나라에 대한 사대는 진정한 사대가 아니었음... 뒤에서 전쟁을 준비했다 ... 부끄러워해야 될 것은 사대가 아니라 전쟁준비로 청의 선진문물을 늦게 도입한 이씨조선의 안일함임
@@DrWho44세계사에선 고려는 완전 몽골에 복속된 걸로 나옵니다. 국뽕 한국사만 독립유지했다고 정신승리하고 있어요. 충자가 들어간 왕들은 고려왕들이 아니고 몽골황제보다 아래인 몽골족 왕들일 뿐입니다.
몽골족이 한족보다는 강인하고 위대하죠~ 또한 몽골족은 열린마음으로 통치했기에 제국을 이룩했죠
@동해안오징어 / 맞는 말인데 왜그러나?,,멍청하고 편협하고 속좁으면 세계 최대 제국을 이뤗겟냐?,,,, 그런 몽고에게 개 처발린 고려는 ㅄ들만 모여 사는 나라엿고?ㅋㅋㅋㅋ,,
열린 마음은 아니에요 유럽 박살낸것 보면
고구려의 역사는 몇몇위대한 왕들 때문에 넓은 영토를 차지할수 있었지만 항상 내부분열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세계 모든 역사가 그렇지만 유달리 우리 민족은 내부분열로 외부침략을 맞고 그제서야 정신차리고 단합하는 역사를 반복했습니다
@@폴라리스-o9m 민족성이 그럽니다. 안 변하죠
@@hyeonjingwak1501 책좀보슈
고려사 전문가 이익주 교수님 젊은 시절이 빛나는 편이네요.
이익주 교수는 식민사관,,,강단사학자,,,
@@카프카-i4r강단사학자들이 식민사관이란 근거가 뭡니까? 국뽕역사 주장 안하면 식민사관인겁니까?
@@카프카-i4r우파 빨갱이들이 이렇게 못 배운티를 냅니다… 그러니 붕짜라붕짜 같은 국방부 장관이 나오지 ㅋㅋ
13세기 건물을 아직도 사용하다니 너무... 부럽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박살내고 저거 대부분 복원 된 겁니다....
@@user-yq6cn7ef1c
그건 북경일대를 중심으로 한 한족들 근대역사이고요. 서쪽 중앙 아시아는 근대역사가 다릅니다. 문화혁명은 한족들의 역사에요.
잘 보고갑니다 ~^^
보니까 최선의 선택을 했고만... 그때 당시에 몽골에 반기 들었어봐라 다 죽었다. 호라즘 제국보고도 정신 못차렸네...
이거지
@@mykang6574 0
고려가 호라즘 볼 수 없었겠지요
맞는 판단
개기면 지도에서 삭제임
고려 역사, 너무 잼있네. 왕족에서도 저렇게 중국본토와 피가 섞였는데,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중국과 많이 섞였겠지.
충렬왕, 충선왕, 공민왕 이 고려왕들 모두 원나라 제국대장공주, 계국대장공주, 노국대장공주 순으로 혼인을 맺었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심 누님이 설명하시네 똑똑하시네
22:05 국경선 잘못됐음 요동 철령에서 공험진 이남 길림 등은 대대로 한민족의 강토였다 고려, 조선실록 지리지만 봐도 나와있는데 식민사관론에 따라 기술하는 역사인식에 분개한다
중국애들 자체가 만리장성위를 오랑캐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스스로 부정하니 뭐 중국땅 된거임.. 그 이면에는 쓰레기같은 중국식민지 조선이있고
이래저래 해도 고려가 원나라한테 간섭받지 않게하려고 충렬왕도, 충선왕도 진짜 애썼구나..ㅜㅜ
충선왕은 우리말도 제대로 못 배우고 원나라가 더 편하고 좋아서 북경에 살았어요. 고려는 편지로 통치했다지요. 심양땅을 하사 받아 심왕을 겸하게 되었을 때는 심양땅을 고려땅보다 더 아꼈다죠. 내 눈엔 그냥 몽골 사람처럼 보이던데.
아닌데요? 공민왕 빼고는 충자 돌림 왕들은 죄다 현실의 벽 앞에 진작 포기하고 제멋대로 나라가 망하든 말든 했던 왕들이죠. 물론 고려사는 이미 무신정권 때부터 망했으니 뭔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한반도는 자기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통치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한 거겠죠 ㅎㅎ
고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미 절반은 몽골의 피를 잇고 있고 어릴 때부터 몽골식으로 교육받고 자란 왕들이다 보니 과연 고려인이라는 의식이 있었을지 의심이 들어요
공민왕도 처음 환국할 때만 해도 몽골식 복장과 머리를 하고 있어 신하의 충언을 받아 고려식으로 바꾸었다잖습니까
나라보다는 본인들의 입지를 위해서 애쓴 거 같음.
서울 살다가 지방 내려오면 심심하고 정보에서 뒤쳐지는 기분이던데... 같은 맥락일 거 같기도 하구요.
@@오리-p6g 무인들이 무도함은 있으나 고집 또한 있었기에 칼에는 칼로써 버티기라도 하였지 유교쟁이들은 선비족,몽골,개잡종 주원장 등등을 가리지 않고 모화 사대주의에 빠진 쓰레기들이었죠,
충선왕은 직계 외손임 어머니가 제국 대장 공주쿠빌라이의 황녀임 다른 왕들은 아니였음
Please subtitle these in English. It's amazing how much history had been recorded in Asia. Let the world learn. Please translate all of the KBS History Specials into English.
Main Point : Mongol , which dominated China for hundreds years , related with Goryeo Dynasty. They were engaged by marriage.
@@Trinity3-75 r I
@@YOUYOUNG-4290뭐 이런 중국인 같은 댓글이.....
좋은생각임ㆍ영어로도ㆍ올해ㆍ단기4556년ㆍ고조선우리의땅은ㆍ중국본토임을알려주세요
@@연두-y1j 고조선 단군이 처음 도읍한 평양은, 지금의 북경 이죠. 북경시 조양구.
태어나보니 엄마가 원대장공주 아빠가 고려왕 외할배가 쿠빌라이칸 나중 직접 옹립한 원황제가 외사촌 것도 두명이나 ....결국은 조카한테 유배당함
@@mojihye 엄청 스런 가문이내요 ㅋㅋㅋ
징기스칸스 핏줄은 황금씨족이라 대우가 달랐다고 합니다.
ㄲ⁴@@기타맨-d4r
@@cs_english 지금의 백두혈통보다 더 좋겠죠?
지금으로 대입하면 아빠가 김정은 엄마가 시진핑 딸 차기 중국 국가주석들이 사촌들.. ㅎㄷㄷ
역사는 공부해도 끝이 없네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고 싶어요
거기 주지스님이 충선왕을 아는게 놀랍네
에릭부케, 쿠빌라이는 헌종(몽케칸)의 동생인데 아들이라고 나레이션하네요.
몽골은 칸을 형제세습했습니다. 형제중 막내가 최종적으로 물려받고 다음 세대로 넘어갔죠.
역사는 반복되고, 현재와 이어져 있다.
고구려 발해인 징기스칸 - 검색
터키를 건국한 오구즈칸도 고구려 발해인..
그래서 2002년 월드컵때 경기 끝나고 우리가 졌지만,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며 어깨동무하고 운동장을 돈것..
경복궁은 100만평이 넘었다 - 유튜브
서울 경복궁 13만평?
시청자의 시청료로 운영이 되는데 역사스페셜을 다시 부활시켜 주십시오.
35:25 이익주 교수님 이때부터 나오셧군..
저 시대에 티벳까지 갔다면
ㄷㄷ
고려 원나라 한테 이런
굴욕 ㄷ
나라 안없진게 다행이지;;
지금으로 치면 외가가 조물주위에 건물주
아빠는 세입자였구만
제가 잘못알고 있었군요..
충선왕을 원나라 빽을 믿고 아버지 충렬왕을 폐위시킨 패륜군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니 자신의 원나라 혈연관계를 이용해 아버지에 이어
고려의 독립적 지위를 지키고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셨네요..
이래서 역사는 배우고 말해야 하는가 봅니다..
공무원
단순히 고려 충선왕 하면... 고려에 머문 기간 보다 몽골 원나라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던 그런 왕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충선왕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었고, 또 왜 그런 선택을 하였던 것인지 좀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네요...
충선왕이 저평가 받아서 그렇지, "충"왕들중에서는 그나마 학문을 좋아하고 개념있고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개혁이 실패되건, 당시의 권문세족의 새력을 누르기가 어려웠다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그는 충분히 명군이 될수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업적도 또한 적지는 않습니다, 그에 치세가 좋았다면 더욱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평가하기 나름이지ㅋㅋㅋ 그래서 팩트는? 지 애비인 충렬을 벌레처럼 여기고 원나라 수도 연경에서 여자끼고 술먹고 고려정치는 오직 편지로만 했죠 ㅋㅋ그러니 권문세족이 득세햇음.그리고 평생 반이 고려인피가 섞인거에대해 부끄럽다고 한 인간임
@@geko5200 님의 말도 맞습니다!!
그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geko5200 ㅇㄱㄹㅇ👍 '충'자들어간 왕들 거의 다 패륜아였음.
충렬왕은 원 간섭을 줄이는 데 진력했고, 충숙왕은 경제 교역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죠. 패륜왕으로 치부되는 충혜왕도 무역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이 있고 패륜이라는 평판도 사이 좋지 않았던 원나라 조정의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이 있죠. 충목 충정은 모두 어려서 죽었으니 평가가 불가능하고요. 충 자 들어갔다고 무조건 나쁜 게 아니랍니다.
충 들어간 왕중에.제대로 된 놈 있었나요??
충선왕스토리는 드라마로 찍어야 할 건데 이거 상당히 글로벌해서 쉽지않네
헌종의 아들이 아니라 헌종 뭉케칸의 동생이 세조 쿠빌라이칸. 아릭 부케는 헌종의 막내 동생입니다.
17:04 이 부분 나레이션 잘못 됐군요
뒤에 나오는 가계도는 뭉케와 형제로 나오네요
Kv
너무 가슴아픈일이다 티베트까지 유배가다니 왕 노렷하기도 정말힘들었을 같다,,,
솔직히 현실 제대로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함. 내가 저 사람 입장이라면 제대로 못했을듯
충렬왕 충선왕 모두 선왕이었네요
고려-몽골 관계, 조선-청 관계, 대한-일제 관계는 비슷한 수준의 속국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셋 다 군사, 외교등에서 엄청난 간섭을 받았습니다.
고려는 몽골의 명령 때문에 일본을 침공했고
조선도 나선전쟁에 군인이 동원됐죠.
대한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습니다.
22:08 해외에선 걍 합병으로 되어있죠.
회장 외손자라서 하청업체 출신이면서도 본사 이사회에서 핵인싸가 가능했군요. 외사촌 형제들이랑 골프치고 같이 술먹고하면서 하청업체 경영도 곧잘하니 인기도 많았겠군요. 말년에 좀 아쉽지만 인생이란 트레이드-오프가 있으니 전성기와 평균내면 나름 행복했던 분인듯
참고로 충선왕은 원나라 레킹6위 였다고 합니다 .
더 높지 않나요??
황태자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하던데용??
황제승계 서열이7-8위라고 하더군요 몽고족은 외손도 승계서열에드는가봅니다
권력서열은 3위정도였던듯
@@changmoungkim3035 어머니가 정실 혈통의 제국대장공주이신데 당연히 서열이 높죠... 그것도 쿠빌라이의 직계 외손자.
근거는?
@@mykang6574 충선왕 본인이 쿠빌라이의 외손자이기도 하지만 원나라 6대 황제 성종이 죽고 황위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원래 성종의 사촌인 아난다 가 세력이 제일 강하고 차기 황제로 유력했는데 충선왕은 성종의 조카인 아유르바르와다 와 형인 카이샨을 지지 하였습니다
충선왕은 어릴적부터 이들과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고 커서도 우정을 지키고 있었죠
황위 쟁탈전에 충선왕이 직접 칼을 들고 싸우기도 하고 정적을 제거해주는등 큰 공을 세웁니다
이후 이들 일파가 황위를 잇게 되고 카이샨이 원나라7대 황제 무종 아유르바르와다 가 8대 인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충선왕은 이들을 황제에 옹립한 공으로 고려왕 보다 위계가 높은 심왕(심양왕) 에 봉해지고 심양 요동 일부 요양 지역 현재의 (랴오둥 반도, 랴오냥,헤이룽 장성, 단동, 두만강 일대)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로써 충선왕은 심양왕 에 고려왕을 겸하게 되어서 심양과 요동 일부, 요양 그리고 고려를 다스리게 됩니다
원나라 황궁에서의 권력도 무시무시 했구요ㅎ
19:57 이익주 교수 이때만해도 젊네요. ㅋㅋ
몽골이 지배할땐 위대한 중국 한족들은 어디에있었을까?
남송으로 겨우 유지 되다가 결국 무너짐.
@@이동연-c6d 몽골 카스트에 남송인은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됬다고 하더라구요
@@이동복-f8c 그 트라우마로 중국이 소수민족을 탄압을 자행한다고.
@@이동연-c6d 그거 말 되네요.. 최근에는 우리나라에게도 동북공정 실시하더군요 완전히 독립된 나라에게도 미친짓을 합니다 한복 판소리 김치 고구려역사 다 지들꺼라 하더군요 제정신이 아닙니다
고려왕자가 송나라관리 귀싸대기 날리던 시절이 그립읍니돳
너무 재밌어요 역사수업에서는 완전 휘리릭 넘어가서 그냥 원에 붙은 능력없는 왕으로 존재감 없었는데.. 왜 멋있냐…
당시 유럽대륙도 왕실끼리 혼인하였죠....고려와 원나라의 혼인도 그런 차원이었던 같습니다....중국 송나라 등 싹 멸망시켰지만 몽골이 유독 고려왕실에 자신들의 공주를 보냈다는건 큰 의의가 있어 보입니다......왕씨.전씨들은 몽골 유전자가 많을듯해요.
그래서 이북사람들 선조가 몽골인이라고 해요 엉데이에 몽고반점이 거의 다 있는 셈이죠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은 군사,문화,경제강국이 되었고 몽고는 중국의 간섭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죠
둘다 간섭받지 않낭
와 그래도 혈통 자체로 보면 우리 역대급 유니크네
실제로 몽고인이 충선왕한테 깝치다가 뒈졌죠
@고자보빌vs토끼보빌 덥다더워상 말 사실 입니다 충선왕 모친이 제국대장 공주여서 원나라에서 충선왕 직위가 랭킹6위였습니다.
@@mojihye 원나라관리들이 충선왕에게 무례하게하다가 처리 된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고자보빌vs토끼보빌 먼청
@@중추석 정략결혼이 랭킹 6위 라고라
Amazing history~
충혜왕은 어디서 온것인가..
충혜왕은충숙왕비 명덕태후소생임
고려여인에게서태어났음
충혜왕동생이공민왕임
어머니가 원의 제국대장공주이고 그것도 쿠빌라이의 직계 외손자인데 당연히 영향력이 강할 수 밖에... 다른 고려왕이 이야기했으면 하나도 안 먹히겠지..
고구려 발해인 징기스칸 - 검색
경복궁은 100만평이 넘었다 - 유튜브
서울 경복궁 13만평?
국력 있으면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knieht 논리가 전혀 안 맞음..;; 근대화랑 민주주의랑 무슨 상관임 그게?
@knieht 응 ㄴㄱㅁ~~
@knieht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라니 ㅋㅋㅋㅋ 개무식하네 ㅋㅋㅋ 자민당 일당 독재다 일뽕놈아
충선왕 스토리는 넓고 깊고 국제적인 관계까지 십년이상 공부 해야 할~~
18분38초 고려는 만리지국으로 당도 정벌못했다는것은 고구려언급. 만리나 떨어진이 아니고 만리에이르는 이죠. 식민사관에 따른 해석오류임
@동해안오징어 동서남북도 구분 못하는 붕어 맞는데요?
'만리에 이르는'이 맞긴 한데 쿠빌라이가 고구려를 고려와 착각한 듯 싶네요.
원나라가 전세계를 지배할 때 고려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고려의 국력으로 절대 방어가 불가능했기에) 늘 궁금했었는데 그 이유를 오늘 알았네요 쿠빌라이를 선택하고 부마국이 됨으로서 독자적인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네요 그 때 잘못 선택했으면 지금의 한반도는 중국의 변방이었을 수도...
외교력의 끝판왕
원나라 간섭기 아닌 지배기곘지!
@@김진우-s3g 니 인생이 지배기다
지금의 중국땅 전체가 우리 민족에 땅이었어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3333333ㄷㄸ
고두심씨 감사합니다
나의사랑 고두심♥♥
옛날에는?지금의생활에서.상상을초올하는 그때그시절?
프로그램 시작하자마자 티벳이 아시아 대륙 서쪽 끝이라는 헛소리가 나오는 걸 듣고 지난 주에 댓글 올리고 나서, 그 뒷부분은 나중에 보기로 했다가 오늘 조금 더 봤더니, 원 헌종이 죽자 그 아들들이 황제자리를 놓고 싸웠다는 헛소리가 나오길래 (쿠빌라이와 에릭부케는 헌종의 아들들이 아니고 동생들임), 또 잘못 알고 헛소리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삽질이 더 심각하군요. 즉, 1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16:42 부터 17:30)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16:42에서 너레이터가 헌종이 사망했다고 이야기하고 16:48에 나오는 자막에 "1259년 원황제 몽케 사망"이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몽케가 헌종이니까 거기까지는 좋은데, 곧바로 (17:02) 너레이터가 황제의 자리를 놓고 헌종의 다섯 아들간에 황제위 쟁탈전이 벌어졌다는 소리를 하는데, 전술했듯이, 황제위 쟁탈전을 벌인 쿠빌라이와 에릭부케 ("아리크부카"가 더 널리 통용되는 표기인데, 여기서는 그냥 프로그램에 나온대로 쓰겠습니다)는 헌종 몽케의 아들들이 아닌 동생들이기 때문에 너레이터가 한 소리는 헛소리입니다. 그런데, 17:11부터 나오는 가계도에는 쿠빌라이와 에릭부케가 몽케의 동생들이라고 제대로 나옵니다 (다만, 앞서 자막에는 몽케라고 나왔던 이름이 가계도에서는 "뭉케"라고 나옴). 가계도에 나와있듯이 몽케, 쿠빌라이, 에릭부케, 모두 툴루이의 아들들인데, 툴루이는 추존 황제로 묘호는 예종입니다. 그런데도, 너레이터는 계속해서 쿠빌라이와 에릭부케가 헌종의 아들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계도를 화면에 올려놓고 너레이터는 화면에 올라온 가계도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으니, 정말 황당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가계도는 제대로 된 가계도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댓글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가계도 이야기는 답변글로 따로 올리겠습니다.
여기 올라온 가계도의 문제는 예종 툴루이의 아들은 적자가 4~5명, 적자 서자 모두 합치면 11명~13명인데, 여기 나온 6명은 적자만 올린 것도 아니고, 적서자 모두 올린 것도 아니고, 정말 황당합니다. 적자가 4명인지 5명인지 불확실한 것은 쿠툭투가 적자인지 서자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또 쿠툭투는 적서자 합쳐서 차남인지 3남인지도 불확실합니다. 쿠빌라이는 적서자 합쳐서 확실하게 4남 (너레이터가 차남이라 한 것은 쿠툭투가 서자라는 가정하에서 적자들 중 차남이라는 뜻). 따라서, 아들을 6명 올린 것은 쿠빌라이의 형들을 모두 올리기 위해서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 (하지만 왜? 너레이터에게는 쿠빌라이가 차남이라고 이야기하게 하면서), 문제는, 장남 몽케와 4남 쿠빌라이 사이에 있는 쿠툭투 말고 또 다른 황자가 주리케라는 이야기는 중국 역사서인 원사에는 나오지 않고, 페르시아어로 써 있는 역사서에만 나오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원사에서는 서자인 3남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기록된 듯) 전술했듯이 예종 툴루이의 아들 수가 11명인지 13명인지 불분명한데, 이 주리케와 또 이름이 비슷한 "주리크"가 실존 인물인지, 실존 인물이면 동일 인물인지 서로 다른 두 인물인지 등의 의문점이 있기 때문인데, 분명한 것은 (실존 인물이면) 둘 다 서자이며, 실존인물이라하더라도 요절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종 툴루이의 아들을 여섯이라고 하며, 그 중 하나로 주리케를 올리면서 원사에 확실히 이름이 나오는 다른 서자들은 올리지 않은 이 가계도는 도대체 누구의 자문을 받아서 만든건지 기가 막힙니다.
충선왕 윈나라 왜. 손주 였다는것. 놀랍습니다~~>
신라의 외손자 매금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가...
어 대 신라의 후예 흉노의 후손 진흥매금이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짜장볶는냄새난다 말걸지마라
@@호야-h7r 우리 매금이 쟤 지금 혐한 자학사관 유튜버 방송에 자주 출연함.
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네 미친 ㅋㅋㅋㅋㅋ
고구려 발해인 징기스칸 - 검색
충선왕의 고조가 징기스칸 입니까?
외고조
이 방송이 2006년 초 방송이라니..
중학교 2학년때이고, 참여정부 시절이네요.
어제 같이 생생합니다.
35:23 이익주 교수님 엄청 젊으시네 ㄷㄷㄷ
이거 예전 고구려 아닌가여
미안 고려
몽골이 너야
그많은 영토가 원나라에 빼앗겼는데도 한반도만 못먹은게 대박 얼마나 항쟁이 심했으면
진짜는 일본이죠. 몇 번을 시도해도 바다에 막혀서 못감
요동은 고구려땅이었다 통일후에 되찾아야한다 하루라도 빨리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경제활동을 해야한다
독자노선을 걸어서라기 보다 쿠빌라이의 외손자 황실로서 쿠릴타이 참여해서 영향력을 발휘했기때문에 정치적으로 질시의 대상이었을것이다
그옛날에 어떻게 그 먼곳을 알고 찾아갔을까
몽고제국에게 먹히지 않고 명맥을 유지한 이유가 있었군~
몽고와는 삼년을 싸운 고려였다
행간의 뜻도 못읽는 머리로는 댓글 쓰지 말기를
황금씨족을 아무한테나주나
고려백성은 고단했어도 고려군은 대단했음
우리민족보고 단일민족이란 이딴소리 하지 말자
안타깝네요 티베트 저렇게들 착해서 중국을 몰아내고 독립을 할수 있을련지
그 여산송씨가문을 처음 노비로 만들어버린 충선왕ㅡㅡ....그러나 기씨가문의 기홍영의 딸이 여산송씨 송염의 부인. 기황후가 원나라의 황후가되자 여산송씨는 다시 가문을 회복한다. 왕의 사위집안이여서 노비에서 풀려남.
방송 중 쿠빌라이칸은 어찌 몽골족 변발과 의복이 아닌 한족의 속발과 의복을 하고 있네요ㅋ 황궁에 게르까지 두었던 쿠빌라이칸인데ㅋ
28:00 정동행성
소주 잘 묵고 있습니다
몽고간장이 몽고정으로부터 나온 이름이죠. 왜 몽고간장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몽고정이 뭐에요?
@@heeyeonkim2851 유투브 잘 보면 몽골애들이 쓰는 우물이라고 나오잖아!!
마산 출신인데 안내판에 고려정인데 일제가 몽고정으로 이름 바꿔데요
충선왕이 이곳으로 유배된건 기록상 일치한다고 쳐도, 그림 속 인물이 충선왕인지 어떻게 알고 추측하셨나요?
PD님 추측? 아님 무슨 근거로 그림 속 인물을 충선왕으로 지목하셨는지.... 넘 궁금합니다
몽케가 쿨빌라이랑 아리크부케 형제 아닌가요?
그냥 원에 살고싶은, 고려에 들어오기 싫은 반 몽고인이었던거같은데.
ㅇㅈ.. 무슨 고려에도움이되고 어쩌고 ㅋㅋ 미화오지게하네 지금으로치면 한국대통령보다 미국국회의원이 좋아서 미국체류하는거랑 마찬가지인데 ㅋㅋ
고려왕자가 원나라 황제가된 왕자가 있다.
충선왕이 심왕 자리를 자신의 아들인 충숙왕에게 넘기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언급하지 않네요
조카를이뻐해서양자삼음
왕고는 충렬왕손자임
(정화궁주아들 강양공 차남)
충선왕은 아버지와도 대립했고
자신의 장자 광릉군 도 죽일만큼
아들도안믿었음
자기 형이었지만 자신으로 인해 밀려난 강양공에 대한 미안함 + 강양공 아들인 조카 왕고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하죠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을수 있기에 후계구도의 권력을 분산시킨겁니다
이유는 좀더 정치적인 이유인데 충선왕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졌기 때문임 외사촌들 왕위에 올린 일등공신에 거의 승상의 지위까지 올라간 충선왕은 후에 견제받으며 두왕중 하나를 내어놓아야되는데 심왕과 고려왕중 고려왕을 포기 하고 심왕은 자기가 계속 유지했음 고려왕은 아들통해 계속 장악할심산이였고 심양왕은 거의 끝까지 쥐고 있다 다른몽골인척에 뺏길까봐 고려조카한테 물려준거임 두왕을 겸직하는건 거의 최초이자 마지막이였음
이런다큐 만들어 노면 만든사람도 소름일듯
환절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