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에도 제승방략제를 고집했던 이유 중 하나가 진관체제로 갈 경우 지방에 거대한 군사조직이 형성되서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굳이 제승방략제를 채택했다는 웃픈 현실이 있었더랬습니다🧐국가 안보의 중요성은 시대를 초월해서 지극히 소중한 국가의 당면과제 임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되네여🤔
역사의 사실을 통해 배우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세계 역사를 즐겨 공부하는 학자로서 우리 민족 2000여년을 돌이켜 봐야겠읍니다. 우리 민족은 지도자, 리더들이 항상 너무도 유약하고, 지도력을 상실해서 국가적, 왕가의 위기를 불러왔죠. 외국에서 오래살면서도 우리 정치가들이 너무도 나약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늘 지켜왔음을 국민들이 알아야......
여태껏 거짓역사를 배워왔던 것에 대해 무지 화가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도 제대로 해석을 못하고 우리나라 고대국가 강역을 한반도에서 찾으려하다니ᆢ 다 일본의 식민사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ᆢ이땅의 역사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사학계가 그 식민사관을 추종하고 있으니 ᆢ 어찌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었겠는가!
다 좋은데 최충헌이 고려왕에게 '전하' 라고 하는 호칭은 잘못된 게 최소 고려는 몽골에게 굴복하기 직전까지는 황제국이였습니다. 따라서 '전하'가 아니라 '폐하' 라는 칭호가 맞죠. 그러나 몽골에게 굴복하고 나서는 부마국으로 추락하고 더이상 황제국이 아닌 속국이 되어서 그 때부터 고려왕의 경칭이 '전하' 라고 강등됩니다. 심지어 통일신라만 해도 신라 왕들의 경칭도 '폐하'였습니다. 명색이 어찌되었든 통일신라도 황제국이였거든요. 보통 전하라는 칭호는 거대한 강대국의 제후국, 신하의 나라의 왕이나 그 거대한 강대국 황제의 황태자, 황태자비의 경칭들로 쓰여지는 칭호이고 폐하보다는 서열이 한참 낮은 칭호입니다. 조선의 경우도 스스로 명나라의 신하 나라라고 자처하면서 절대 왕의 경칭을 '폐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500년 내내 말이죠. 단, 대한제국이 탄생하기 직전까지는 그랬죠. 물론 고종이 세운 자칭 대한제국이라는게 허울좋은 자칭 제국이라 얼마 못가 일제에게 먹혀버렸지만요. 고려는 그래도 황제국이라 몽골한테 항복할 때까지는 일부러 신하의 나라라고 자처하는 수준까지는 안 갔습니다. 거란이나 금나라한테 사대는 했다고는 하나 몽골에게 짓밟힌 이후부터 스스로 강대국의 신하 국가, 속국이라고 자처하지는 않았으니 아직 몽골에게 짓밟히기 전까지는 고려왕의 경칭은 '폐하'가 맞고 조선시대의 모든 왕들 경칭은 '전하'가 맞습니다. '폐하'라는 경칭과 '전하'라는 경칭의 근본적 차이점은 자주성이 어느 정도 충분한 제국이냐 아니면 스스로를 낮춰서 신하의 나라가 되거나 몽골과 병자 정묘 호란의 청나라한테 짓밟혀서 신하의 나라고 강등당한 나라의 왕이냐 그 기준이죠.
저는 강화도에서 나고자란 시민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 개경 즉 개성까지 엄청 가까워요 우리아버지 할아버지도 고향이 개성이셨어여 즉 몽골군이 처들어왔을시 가장 빠르게 올수 있고 몽골군 이점으로 보았을때 바다에 취학하며 갑곳리 라는곳은 갑곳돈대가 있는곳 즉 강화대교가 있는곳인데 그곳을 갑옷으로 이어 건너던 몽골군들이 빠른물쌀에 떠 밀려 죽었다 하여 그곳을 갑곳리 갑곳 돈대라 불렸고 몽골군이 강인줄 알고 마셨던 강화대교 바다는 지금에 이름이 염하강이며 물이 짜서 목말라 죽었더라고 전설로도 내려옵니다 강화도는 지금에도 최고에 요새라고들 합니다 강화읍은 산이 둘러싸여 외군이 들어오기에 산이 높고 길은 쫍아서 몽골군이 들어오기 힘들었고 고려궁지 가 북산위에 위치하여 뒤로 넘어가면 바로 개성으로갈수있는 나룻터까지 있을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화읍은 땅을파면 유물이 나올정도로 귀족들이 살던 터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강화도가 39년 까지 버텻고 강화는 특성상 지하수도 풍부하여 물또한 충분하였습니다 역사의고장 풍요로운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로 오세여~~~ㅋㅋㅋㅋㅋㅋㅋㅋ
고려시대의 강화도는 그 강화도가 아니니까 ㅎㅎㅎ 고려시대 영토를 한반도보다 작은 고딱지만한 나라로 보고 있으니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30년동안 싸웠으면 시체가 산을 이뤄야겠지? 그리고 다른 많은 전투 기록과 승전기록이 있어야겠지? 왜 없냐? ㅎㅎ 그리고 인천 강화도에 군대가 주둔하면 몇명이나 주둔하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ㅎㅎㅎ 군대에 왕, 궁녀 등등 30년동안 먹여살릴정도면...?
섬과 섬 사이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간척하기전 강화는 크게 별립산과 봉천산권,고려산권(고려궁지가 있는 섬)과 혈구산권,진강산권,마니산권,길상산권으로 크게 다섯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썰물이 되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 지형이었습니다. 지도 띄워 놓고 보시면 쉽게 이해 가실 거에요.. 만약 항전시기가 제방 공사 전이라면 그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안됩니다. 당연히 산과 뻘 뿐이라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없으니 식량 자급자족은 언감생심이고요.. 강화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가졌던 합리적 의문이었습니다. 중학교때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지석묘에 올라가서 도시락 까 먹은적도 있다고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저는 강화도에서 나고자란 시민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 개경 즉 개성까지 엄청 가까워요 우리아버지 할아버지도 고향이 개성이셨어여 즉 몽골군이 처들어왔을시 가장 빠르게 올수 있고 몽골군 이점으로 보았을때 바다에 취학하며 갑곳리 라는곳은 갑곳돈대가 있는곳 즉 강화대교가 있는곳인데 그곳을 갑옷으로 이어 건너던 몽골군들이 빠른물쌀에 떠 밀려 죽었다 하여 그곳을 갑곳리 갑곳 돈대라 불렸고 몽골군이 강인줄 알고 마셨던 강화대교 바다는 지금에 이름이 염하강이며 물이 짜서 목말라 죽었더라고 전설로도 내려옵니다 강화도는 지금에도 최고에 요새라고들 합니다 강화읍은 산이 둘러싸여 외군이 들어오기에 산이 높고 길은 쫍아서 몽골군이 들어오기 힘들었고 고려궁지 가 북산위에 위치하여 뒤로 넘어가면 바로 개성으로갈수있는 나룻터까지 있을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화읍은 땅을파면 유물이 나올정도로 귀족들이 살던 터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강화도가 39년 까지 버텻고 강화는 특성상 지하수도 풍부하여 물또한 충분하였습니다 역사의고장 풍요로운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로 오세여~~~ㅋㅋㅋㅋㅋㅋㅋㅋ
잘못된 역사관입니다 이승만이 미국유학을 했던 대통령이었기에 한강 끊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유엔군 미군 다 불려들어서 반토막 대한민국 민주주의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반대파들이 이승만 도망 갔다고 하지만 이승만이 전쟁에서 죽어버렸으면 우리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밑에서 살아남지도 못했겠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할 때 김대중이 공사현장에 드러누워서 데모를 했지만 지금은 경부고속도로 위로 빛깔좋은 수입자동차를 몰고 달리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 있었기에 좋은 아파트에 거리에 달리는 수입차에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90파란불니 수준으로 생각하기 어렵겠지. 그 좃만한 섬에서 그 많은 귀족과 왕족들과 백성들이 30년을 버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니? 조선시대 인천 강화도에 군사가 497명에 몇 안 되는 백성들인데 고려에 그 많은 귀족들과 왕족들이 살았었다는거나 기마민족 몽고족이 그 작은 섬을 못 정복했을까나??
단순히 지명몇개갖고 말장난치기엔 너무 개연성이 없지않아? ㅋㅋㅋ 고려가 중원에있었다면 전쟁이 저렇게 흘러갈수가 없음 ㅋㅋ 금나라 집어삼키고 송나라 원정와중에 와서 툭툭 건드려보는나라겠어? 송나라 이전에 멸망시키려고 총력전을 해야하는나라가 고려겠지 송나라&고려는 반드시 연합을 해서 몽골에 대항하는게 압도적으로 유리했을테고 ㅋㅋㅋ 그냥 역사적으로 고려가 한반도땅에만 박혀있었다는게 훨씬 개연성있구만 지명몇개가지고 말장난치면서 중원드립 참 ㅋㅋㅋㅋ
@@청산천지해본래의 강화도는 대륙 하남성에 있는 지역을 칭했다고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반도를 강도라 칭하고 현일본열도를 화도라고 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반도 개성이 고려가 강화도로 피난해서 수도로 삼은 지역으로 생각합니다. 원나라가 황하도 건너고 양자강도 건넜는데 어찌 현 한반도 강화를 못건넜겠는지요? 원나라는 고려의 피난처를 건너려면 황해바다를 건너야하니 무척 난이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젠 사람들이 강화도가 저 강화도가 아니였음을 알게되었다. 최소한 이 나라 백성들중 10만명 이상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40만의 군대가 강화도에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겠는가? 강화도에 모든 고려의 귀족들이 모여들어 30년을 살았다는데 그들의 집은 지금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물론 왕궁터라는 곳도 사실은 보이질 않는다. 여기가 왕궁터라고 그냥 우길 뿐이다. 산동성의 그 옛날 이름이 강화도였다는 사실도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었다. 산동엔 고려의 궁궐이 아직도 남아있고 산성도 남아 있고 40만명의 군대가 30년을 버틸수 있는 농토도 있었다는 사실도 이젤 많은 사람들이 알아냈다.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노래했던 수많은 고려귀족들의 기와집들도 산동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성계가 주원장에게 고려의 대부분의 땅을 팔아먹고 조선을 개국하고 조선왕조 500년동안 역사를 날조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나라의 역사학자들이여 더 이상 역사를 날조하지 말라.
경기도 강화도에서 항쟁한게 아니라 산동성 산동반도 태산의 서쪽과 남쪽에 걸쳐 지대가 낮아 육지가 되었다가 때로 물에 잠기기도 했던 글자 그대로 "강화" 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이 곳 전체를 요세화하여 산동반도를 기반으로 몽골에 항쟁했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섬이 되기도 했던 산동반도가 바로 고려시대 당시의 강화(도)인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제주도 보다 작은 경기도 강화도에서 무슨 수십년 동안 항쟁을 했다고 구라를 치는지, 하여튼 간에 대한민국 역사학계 참 문제 많은 적폐 카르텔 집단이라 비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광활한 중국 대륙의 황화강, 양자강을 넘어 송나라도 정복했는데 그렇게 유라시아를 정복한 몽골제국 군대가 제대로 된 농지 하나 없는 동쪽 구석지 한반도에 강화도를 건너지 못해서 30년 넘도록 정복 못했다는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도대체 언제까지 듣고 가스라이팅 당해야하나? 그렇게까지 고려의 역사무대를 한반도 이내로 구겨넣어야만 하는 이유가 일제식민사학의 잔재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X같은 인간들이 역사 좀 배운 학자로 설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란 것이 슬프다.
고려가 강화도에서 34년을 버틴 이유는 강화도가 인천 강화도가 아니고 산동성 강화도였기 때문이다. 산동성은 고려시대에 거대한 섬처럼 대륙과 늡지로 분리된 지역이었다. 그래서 수전에 약한 몽고병은 산동성 뻘밭을 건너서 공격할수가 없었다. 한반도 남한의 절절반정도 크기의 강화도이었기에 그 안에서 농사를 지어 군량을 보충하고 말을 기르고 무기르 만들며 방어할수 잇었다. 인천시 강화도 같은 눈꼽만한 섬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항쟁이다. 조선인조때 청태종이 처들어오자 인조가 강화도로 도망갔는데 10일만에 함락됐다. 고려는 대륙의 주인이었고 고려의 개경은 지금 하북성 탕산, 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북경 자금성, 고려의 남경은 지금 남경, 고려의 동경은 심양이었다. 고려는 몽고와의 전쟁끝에 화친하고 북경을 내어주고 심양으로 물러났으니 그때부터 고려의 왕들이 심양왕이 된 것이다. 고려말 홍건적이 일어나 그 수괴 고려의 서경에 처들어오니 고려왕이 심양으로 피난을 갔다. 홍건적 수괴 이세민이 남경에서 일어나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북경에 입성하여 명나라를 세웠으니 이때부터 조선의 영역은 만주와 한반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옛부터 당파싸움으로 망했는데 지금도 당파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좁은 땅에 국개의원 300명이 말이 됩니까? 컴퓨터가 일하는데 보좌관 9명이 말이 됩니까? 한달에 1.400만원 말이 됩니까? 좁은 나라에서 우선 150명으로 줄이고 보좌관 1명이면 충분. 자동차도 자기가 끌고 모든 특권은 없애야 합니다 저것들이 지금 싸움만 하고있지 일을 하고 있습니까? 도의원 시의원 구의원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 먹여 살리느라 국민들은 허리가 휘고 있습니다 노조에서는 자기들 이익이 아니라 권력의 힘으로 놀고먹는 국회에 쳐들어가서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user-100heawon 그럼 몽골은 남송멸망 이전에 고려부터 확실히 조지고 갔어여함 그럼 그때정도의 병력규모로 그정도 쓸고 돌아가는게 개연성이 전혀없음 ㅇㅇ 고려를 살려둔것도 어불성설이고 애초에 고려랑 접점도 훨씬 빨라야하고 아예 중원진출할때 큰틀에서의 계획부터 기록이랑은 결이 달라야함 그리고 고려도 남송이 침략받고 있으면 인접국가로써 송나라랑 연대를 하던지 같이 연합이 됐어야겠지 금나라 다 쳐망하고 송나라 두들겨 맞을동안 모르고 있었다는게 말이안됌 중원에 있는국가가 ㅇㅇ 지명하나로 그렇게 장난질하기엔 역사의 모든 흐름에서 개연성이 사라짐
@@아재-r9d 강화나 우산 이나 거기서 거기 입니다 북으로 가면 우산이고 남으로 가면 강화이고 전부 산동반도 인근 왜 우산 이냐면 철광이 미친듯이 나오는 지역이며 철광은 고대 패권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차례로 우산을 귀히 여기고 거란은 고려의 철광의 숨통을 틀어쥐기 위해 우산을 공격 지금의 몽골초원 발원의 거란 . 그들 스스로 고구려의 서쪽 땅에서 발원 했기에 자신들이 고구려의 정통성이 있다고 고려에 통보한 그 거란 거란의 공주 무덤에 성씨가 고씨라 각인되어 있고 고려가 화친 예물을 보냈을때 거란왕은 고씨례를 보냈다며 크게 기뻐했다 라는 기록도 있는 거란 고구려의 성채는 멀게는 몽골넘어 키르기스탄 에서도 발견되고 내몽골 에서도 발견되며 중공이 고대 성채 구조를 갈아업기 전에는 자금성도 같은양식 산동성의 성채도 같은양식 산서성 핑야오성채 (평양성) 핑야오 성채 남쪽에는 다 허물어저 부스러지고 있는 성문과 하나된 현판에 쓰어있는 (금성) 핑야오와 금성 사이에는 안시성으로 추정되는 괴 산성과 토산 끼워 맞춘다고 해도 이정도면 진실입니다 요즘 과학 기술로 고대 삼국 과거 천문관측 기록을 역산하면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나옵니다 고려만 해도 츠펑 인근으로 나오며 이씨조선 초기 역시 츠펑 인근으로 나옵니다
@@ggjs9561 우리나라도 역사조작 은근 많이 함… 최근에 기억나는 건 석굴암 시멘트로 조져놨다고 하던데 사실상 폐허로 방치된 석굴암을 일본이 당시 최고기술인 시멘트로 복구해준 거…. 근데도 자동 습도 조절이 되던 걸 일본이 시멘트 바르고 원형을 부숴서 이슬이 맺히고 곰팡이가 생겼다고 하는 거 보고 기가 찼는데….
그리고 한반도에서 군대 10만명도 양설하기 힘들었던 조선시대를 보면은??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고려의 더 작은 영역에서 30만~40만 군대를 전쟁에 동원하는 고려의 군대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ㅋㅋ 고려는 지금의 한반도에 있었던게 절대로 아닙니다ㅡ.ㅡㅋㅋ 고려는 대륙에 있던게 맞다고 봐요ㅎㅎ
강화도에서 39년을 그냥 버텄다는게 이상함 몽골이 물에 약하다는 이유로 기록에 보면 몽골 이 베트남 침공할때 수군을 이용 했다는데 강화도로 들어갈려고 마음 먹었으면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들어 갔을건데 고려사는 조선시대에 쓴 역사서라 편향적이지 아니었을까 당시 무관독재 시대이라 조선시대 문관 이랑 반대되는 정부 무관지배 의 단점을 부각 시켜야 하니 편향적으로 고려사를 쓰지 않았을까
맞습니다. 이성계와 명이 고려의 광활한 영토를 나누어 먹고 고려사를 반도 안에 쑤셔 넣어 역사공정을 했다고 보이네요. 조선 초기 에서 성종까지 책과 역사서들을 계속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판 분서 갱유죠. 이성계가 명과 손잡고 고려를 나눠 먹고 명에 사대하며 명을 상국으로 모신 까닭은 그때까지 여진세력과 후원세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쿠테타의 명분이 없는 이성계가 살아 남으려면 명에게 귀속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성계 이후 성종까지 조선판 분서갱유 역사왜곡이 일어난 겁니다. 삼국은 물론이거니와 고려까지의 반도에서는 나오지 않는 역사적 지명이 북경에서 산동성을 지나 남경까지 우수수 쏫아져 나오는 이유가 있으며 동이족 성의 특징, 특히 고구려의 성에는 돌출구조물인 치 라는 것이 있는게 중국의 성들중 화하족이 만든 성들에는 치가 없는 반면 고구려의 옛땅이라 추정되는 성들에는 어김없이 치가 있습니다. 북경 자금성의 외곽의 성인 외성을 중국인 스스로 철거해버렸습니다. 마치 우리 스스로 한양도성의 성벽들을 철거해버린 것과 같은 이야기이죠. 북경 일부에 자금성의 외성이 남아 있는 곳이 몇군데 있는데 거기에 치 라는 구조 물이 있습니다. 화하족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선조들이 만들지 않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역사왜곡을 위하여 자금성의 외성을 갈아 엎어 버린 거라 생각됩니다. 어찌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유산을 스스로 철거해버리겠습니까?
우리민족이 이렇게 살아남아서 그분들 기억해드리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됩니다.
그때 피해 입은 사람들 언제 기억함? 최우 최항 최충헌 이런사람들 기억하지
👆🍟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흐름에 아주 귀감이 되는 내용이네요
모든 역사 프로그램과는 차별된, 제대로의 시각으로 우리를 일깨우는 프로그램이네요~!
결국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백성들 희생... 과연 항복 했어도 백성들은 행복 했을까? 지금도 기득권들을 위해 국민들이 열심히 국방 납세 근로 교육의 의무
@@mindcalm 투표 어디로 합니까?
@@mindcalm 몇번 찍냐고
@@corea.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독재 국가를 밀어주는 당을 찍든가…….
@@user-hc9ud7iz7n 그것도 병이다... 친일이나 친북이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에도 제승방략제를 고집했던 이유 중 하나가 진관체제로 갈 경우 지방에 거대한 군사조직이 형성되서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굳이 제승방략제를 채택했다는 웃픈 현실이 있었더랬습니다🧐국가 안보의 중요성은 시대를 초월해서 지극히 소중한 국가의 당면과제 임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되네여🤔
우리 진짜 역사의 강화는 현재 인천 강화가 아닙니다 이런 방송 볼때마다 정말 역사??? 정립이 시급하다는 점을,,,, 느낌요 이거 언제까지 날조 거짓된 역사테두리안에서 허우적대야 하는지 일본 중국이 우리 이런 모습보면 정말 포복절도!!! 할 일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일들의 반복입니다
책보고 영상을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사실상 산둥반도가 강화도입니다. 그리고 상하이 밑에까지 고려땅이라고 볼 수 있고요
여기서도 어김없이 환빠가 설치네 ㅋㅋㅋ
역사의 사실을 통해 배우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세계 역사를 즐겨 공부하는 학자로서 우리 민족 2000여년을 돌이켜 봐야겠읍니다.
우리 민족은 지도자, 리더들이 항상 너무도 유약하고, 지도력을 상실해서 국가적, 왕가의 위기를 불러왔죠.
외국에서 오래살면서도 우리 정치가들이 너무도 나약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늘 지켜왔음을 국민들이 알아야......
여태껏 거짓역사를 배워왔던 것에 대해 무지 화가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도 제대로 해석을 못하고 우리나라 고대국가 강역을 한반도에서 찾으려하다니ᆢ 다 일본의 식민사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ᆢ이땅의 역사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사학계가 그 식민사관을 추종하고 있으니 ᆢ 어찌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었겠는가!
이게 나라냐?
낯설지 않다.
각자도생의 시대, 2024년 대한민국
역사는 되풀이.... 지금도 나라는 뒷전이고 자신만 살려는 자들이 정치, 경제와 군대에도 있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각자도생은 변함이 없구나
위기때마다 편갈라서 싸우다가 자멸하는게 그냥 우리나라 종특임. 조상들부터 이어져온 DNA.
다 좋은데 최충헌이 고려왕에게 '전하' 라고 하는 호칭은 잘못된 게 최소 고려는 몽골에게 굴복하기 직전까지는 황제국이였습니다. 따라서 '전하'가 아니라 '폐하' 라는 칭호가 맞죠. 그러나 몽골에게 굴복하고 나서는 부마국으로 추락하고 더이상 황제국이 아닌 속국이 되어서 그 때부터 고려왕의 경칭이 '전하' 라고 강등됩니다.
심지어 통일신라만 해도 신라 왕들의 경칭도 '폐하'였습니다. 명색이 어찌되었든 통일신라도 황제국이였거든요.
보통 전하라는 칭호는 거대한 강대국의 제후국, 신하의 나라의 왕이나 그 거대한 강대국 황제의 황태자, 황태자비의 경칭들로 쓰여지는 칭호이고 폐하보다는 서열이 한참 낮은 칭호입니다.
조선의 경우도 스스로 명나라의 신하 나라라고 자처하면서 절대 왕의 경칭을 '폐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500년 내내 말이죠. 단, 대한제국이 탄생하기 직전까지는 그랬죠.
물론 고종이 세운 자칭 대한제국이라는게 허울좋은 자칭 제국이라 얼마 못가 일제에게 먹혀버렸지만요.
고려는 그래도 황제국이라 몽골한테 항복할 때까지는 일부러 신하의 나라라고 자처하는 수준까지는 안 갔습니다.
거란이나 금나라한테 사대는 했다고는 하나 몽골에게 짓밟힌 이후부터 스스로 강대국의 신하 국가, 속국이라고 자처하지는 않았으니 아직 몽골에게 짓밟히기 전까지는 고려왕의 경칭은 '폐하'가 맞고 조선시대의 모든 왕들 경칭은 '전하'가 맞습니다.
'폐하'라는 경칭과 '전하'라는 경칭의 근본적 차이점은 자주성이 어느 정도 충분한 제국이냐 아니면 스스로를 낮춰서 신하의 나라가 되거나 몽골과 병자 정묘 호란의 청나라한테 짓밟혀서 신하의 나라고 강등당한 나라의 왕이냐 그 기준이죠.
그당시 호칭이 그게 맞는지는 어케 앎? 전하 폐하 합하 각하라는 말의 기원은 알고 말하는거임? 그당시에 그 단어로 말했다는 기록은 있음? ㅋㅋㅋ 어이가없네
송나라와의 교역때문이라도 고려는 사실 계속 속국이었음. 실상 황제국이라고 칭한시기는 고려초 밖에 없음
'황상'입니다.
폐하고 나발이고 태자 착봉조차 대대로 허락받고 하던 나라가 뭔 그리 강대국으로 포장을 하려고 하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주 침락받던 그냥 작은 나라일뿐이었다
외왕내제국가인건 사실인데?
잠들기좋은 목소리톤 좋은 asmr찾았당.
구라안치고 5분내에 잠드는 asmr 있음 천마총발굴 안압지발굴 옛날 영상보셈 내 자장가임 구라안치고 5분안에 잠듬
인천 강화도에 가보았다. *저딴 곳에서 40여년을 버틴게 미스테리 이며, 몽골제국이 저딴 곳을 40여년이나 점령 못한게 미스테리이다. "꼭 이곳이여야만 한다"* 는「확증편향적 강박관념」때문에, 이성과 상식을 상실한채 비현실적 망상소설을 주장하고 믿고있는 한국역사학계
몽골이 강화도를점령하지못했던거는 당시 왕들이 갑자기 피난을 갈곳이 근처의 가장가까운 섬을 찾다보니 강화도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 강화도에서 나고자란 사람으로서 느낀것입니다
저는 강화도에서 나고자란 시민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 개경 즉 개성까지 엄청 가까워요 우리아버지 할아버지도 고향이 개성이셨어여 즉 몽골군이 처들어왔을시 가장 빠르게 올수 있고 몽골군 이점으로 보았을때 바다에 취학하며 갑곳리 라는곳은 갑곳돈대가 있는곳 즉 강화대교가 있는곳인데 그곳을 갑옷으로 이어 건너던 몽골군들이 빠른물쌀에 떠 밀려 죽었다 하여 그곳을 갑곳리 갑곳 돈대라 불렸고 몽골군이 강인줄 알고 마셨던 강화대교 바다는 지금에 이름이 염하강이며 물이 짜서 목말라 죽었더라고 전설로도 내려옵니다 강화도는 지금에도 최고에 요새라고들 합니다 강화읍은 산이 둘러싸여 외군이 들어오기에 산이 높고 길은 쫍아서 몽골군이 들어오기 힘들었고 고려궁지 가 북산위에 위치하여 뒤로 넘어가면 바로 개성으로갈수있는 나룻터까지 있을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화읍은 땅을파면 유물이 나올정도로 귀족들이 살던 터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강화도가 39년 까지 버텻고 강화는 특성상 지하수도 풍부하여 물또한 충분하였습니다 역사의고장 풍요로운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로 오세여~~~ㅋㅋㅋㅋㅋㅋㅋㅋ
서구쪽에선 원의 남송 정벌때
중원남부에 익숙한 고려군을
통해서 남송 정벌을 도모했다
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고려가
뜬금없이 중원남부 지리에 익숙?
그 코딱지 만한 섬에서 수백만명이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바보지.
그 당시 강화도는 섬처럼 큰 호수와 황하강으로 둘러싸인 산동반도인데 그런 반도에 갖힌 사고로는 답이 안나온다.
한반도 몇천년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여야 후대들이 역사의 경험 교훈을 잘 이어 받을수 있고 거기에 맞추어 어떻게 나라를 지켜야 하겠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지극히 작은불씨로 시작한다 산불두 처음엔 작은 불씨였다.
모든전쟁의 시작은 그러게시작 하는것이다.
작은 불씨가 반복되다가 커지겠쬬
무슨 멍멍이 소리야 갑자기
이제 유투브의 일상화로 고려시대의 강화도와 조선의 강화도가 다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가 검증 차원에서 보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조금만 공부해보면 먼저왔다감 202406
고려시대 강화도는 어디죠
산동
@@heejn7550 산동은 섬이 아니잖소
모든 유물들과 사람들은 그럼 일제가 심어 놓은 가짜라는 거죠? 지구가 평평한거 처럼
강화도는 산동을 가리키는데
왜 다들 모를까
울릉도가 우산국이라고 말하는것이 얼마나 소설인가요
조선이 청나라에 두번 그러나 그 버틴기간이 얼마인가요 이게 상식입니다
약 700년이 흐른 지금도 그 과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게 있었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ㅠㅠ
열받네...지금과 다를봐 없는거 같아서...
퀄리티 너무 좋네요
고려거란전쟁 보다 좋음
지금도 각자도생의 시대... 투표권 있다고 뭐가 되는지 알지만.., 실상은 돈있고 권력있는 자들에게는 그냥 하루살이
절대불변의 진리입니다 !!!
배우고 알고 중립적이게 각자도생 해야함
풀버전 오랫동안 기다렸다
각자도생의 시대.
낯설지 않다.
.
ㅋㅋㅋ월급처받고 살면서 각자도생 ㅇㅈㄹㅋㅋㅋㅋ
@@무단침입길냥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을 외교나 무역, 복지, 언론의 자유 등 예전만큼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도생의 상황인거죠.
@@interfrenz98대체 뭐가 예전보다 못한건지 ㅋㅋㅋㅋ 10년전보다 지금이 더 좋구만
@@승아-i8v 극단적 외교때문에 수출실적 곤두박질, 예산빵꾸나서 기초생활수급자 탈락 최대, 과학기술 예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삭감 이밖에도 넘쳐납니다.
@@무단침입길냥이
말투가 왜케 건방집니까
고려시대의 강화도는 그 강화도가 아니니까 ㅎㅎㅎ 고려시대 영토를 한반도보다 작은 고딱지만한 나라로 보고 있으니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30년동안 싸웠으면 시체가 산을 이뤄야겠지? 그리고 다른 많은 전투 기록과 승전기록이 있어야겠지? 왜 없냐? ㅎㅎ
그리고 인천 강화도에 군대가 주둔하면 몇명이나 주둔하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ㅎㅎㅎ 군대에 왕, 궁녀 등등 30년동안 먹여살릴정도면...?
섬과 섬 사이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간척하기전 강화는 크게 별립산과 봉천산권,고려산권(고려궁지가 있는 섬)과 혈구산권,진강산권,마니산권,길상산권으로 크게 다섯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썰물이 되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 지형이었습니다. 지도 띄워 놓고 보시면 쉽게 이해 가실 거에요..
만약 항전시기가 제방 공사 전이라면 그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안됩니다. 당연히 산과 뻘 뿐이라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없으니 식량 자급자족은 언감생심이고요..
강화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가졌던 합리적 의문이었습니다.
중학교때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지석묘에 올라가서 도시락 까 먹은적도 있다고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산동반도가 당시 강화도입니다. 거기에 한자가 완벽하게 동일한 오련산이 있고 "제주" "우산" (신라가 정복했다는 그 우산국)이라는 지명도 산동반도 태산의 서쪽과 남쪽에 현존합니다.
삼십년 넘게 강화도를 점령 못 한거도 말이 안되고 거기 갇혀서 삼십년 동안 병사 무기 식량을 계속 보충 했다는 거도 말이 안됨
그때 간척 했음 식량 때문 기록에 남아있고 조운선을 받았음
그리고 강화가 커요.
울릉도 거의 5배에요.
그럼 우산국은 뭐가 돼요.
거기서 몇천년 살았는데
우리 진짜 역사의 강화는 현재 인천 강화가 아닙니다. 이런 방송 볼때마다 정말 역사 정립이 시급하다는 점을 느낌요. 이거 언제까지 날조 거짓된 역사테두리안에서 허우적대야 하는지..일본,중국이 우리 이런 모습보면 정말 포복절도 할 일.
거란과 싸울 때는 국가가 나서서 싸우기라도 했지, 몽골과 싸울 때는 빤스런 하느라 바빴다는 게 차이점임.
저는 강화도에서 나고자란 시민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 개경 즉 개성까지 엄청 가까워요 우리아버지 할아버지도 고향이 개성이셨어여 즉 몽골군이 처들어왔을시 가장 빠르게 올수 있고 몽골군 이점으로 보았을때 바다에 취학하며 갑곳리 라는곳은 갑곳돈대가 있는곳 즉 강화대교가 있는곳인데 그곳을 갑옷으로 이어 건너던 몽골군들이 빠른물쌀에 떠 밀려 죽었다 하여 그곳을 갑곳리 갑곳 돈대라 불렸고 몽골군이 강인줄 알고 마셨던 강화대교 바다는 지금에 이름이 염하강이며 물이 짜서 목말라 죽었더라고 전설로도 내려옵니다 강화도는 지금에도 최고에 요새라고들 합니다 강화읍은 산이 둘러싸여 외군이 들어오기에 산이 높고 길은 쫍아서 몽골군이 들어오기 힘들었고 고려궁지 가 북산위에 위치하여 뒤로 넘어가면 바로 개성으로갈수있는 나룻터까지 있을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화읍은 땅을파면 유물이 나올정도로 귀족들이 살던 터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강화도가 39년 까지 버텻고 강화는 특성상 지하수도 풍부하여 물또한 충분하였습니다 역사의고장 풍요로운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로 오세여~~~ㅋㅋㅋㅋㅋㅋㅋㅋ
산둥성에 오련산이 있는곳, 그곳이 바로 강화도입니다. 옛지명 그대로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다르지않다에 좋아요
지금은 다르다면 싫어요
그러니 국방력 강화가 중요합니다. 다 필요없습니다. 힘에 의한 평화가 정답입니다.
영상좀 보고 댓들 달자
아휴 윤석열 지지자냐?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내용관 거리가 먼데요..?
@@스틸맨-r9f 문죄인처럼 삥 뜯기는면서 지키는 평화가 좋으냐 ?
@@스틸맨-r9f너는 그러면 삶은 소대가리 지지자냐? 아니면 형보수지 찢지지자냐?
도망이 최고요.
저도 도망가리다
지금 정치인들도 전쟁나면 제일 먼저 도망갈 것. 남아서 싸우는건 일반 시민들
가장 최근 역사가 625때 살인마 이승만이죠..
@@Happy-shot 특히 법비들이 가장 빨리 매국
잘못된 역사관입니다
이승만이 미국유학을 했던
대통령이었기에 한강 끊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유엔군 미군 다 불려들어서
반토막 대한민국 민주주의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반대파들이 이승만 도망
갔다고 하지만 이승만이 전쟁에서 죽어버렸으면
우리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밑에서 살아남지도
못했겠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할 때
김대중이 공사현장에 드러누워서 데모를 했지만
지금은 경부고속도로 위로
빛깔좋은 수입자동차를 몰고 달리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 있었기에
좋은 아파트에 거리에 달리는 수입차에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Happy-shot 마자요, 본인은 도망가면서 라디로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고 방송하고 도망가면서 한강다리 폭파하고(서울시민들 피난 X)... 이게 무슨 건국의 아버지 인가요...
고려시절부터 조선 선조 인조 현대사 이승만까지 현시대라고
과연 정치인들이 남아싸울까싶네요
모든성을 굴복시킨 몽골이 저 작은성을 쉽게 정복하지못했다는게 웃음... 포인트. 강화도는 현재 한반도의 강화도가아니다.
강화도는 산동 반도에 있다 현 강화도는 그당시 사람이 모여 거주할수가 없는 황무지 였다
40여년을 버틴 강화도를 쥐구멍 만한 한반도에 찾는 역사적 무지함......몽골제국을 호구로 보는건가?
개웃기네ㅋㅋ 그럼 강화도가 어딨는데?
@@90파란불대륙에 있지요.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혹시 궁금하면 유튭"책보고" 검색 해보는거 추천. 사서와 지도 교차검증
@@90파란불 산동 반도에 있는 강화(江華)가 고려의 수도 강화입니다.
@@90파란불니 수준으로 생각하기 어렵겠지. 그 좃만한 섬에서 그 많은 귀족과 왕족들과 백성들이 30년을 버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니?
조선시대 인천 강화도에 군사가 497명에 몇 안 되는 백성들인데 고려에 그 많은 귀족들과 왕족들이 살았었다는거나 기마민족 몽고족이 그 작은 섬을 못 정복했을까나??
@@90파란불 송나라가 고려에 조공한걸 알면 난리 나겠넹..
소중화 사상에 빠진 매국노들 ㅋㅋ
몽골이 강화를 점령하지못한것은
지금의 강화도가 아닌것이다
강화도에 있는 고려궁궐을 가보고 말해라 장기간 항전이 가능한지
역사는 사실과 검증이 필요한 작업인데
그걸 모두 생략하고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걸 그대로 역사라고 지금도 배우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얼치기 역사덕후의 주화입마된 모습을 보고계십니다.
단순히 지명몇개갖고 말장난치기엔 너무 개연성이 없지않아? ㅋㅋㅋ 고려가 중원에있었다면 전쟁이 저렇게 흘러갈수가 없음 ㅋㅋ 금나라 집어삼키고 송나라 원정와중에 와서 툭툭 건드려보는나라겠어? 송나라 이전에 멸망시키려고 총력전을 해야하는나라가 고려겠지 송나라&고려는 반드시 연합을 해서 몽골에 대항하는게 압도적으로 유리했을테고 ㅋㅋㅋ 그냥 역사적으로 고려가 한반도땅에만 박혀있었다는게 훨씬 개연성있구만 지명몇개가지고 말장난치면서 중원드립 참 ㅋㅋㅋㅋ
강화에 고려궁 없습니다.
고려궁지 옛터
진짜
실화니
예나지금이나 어쩜 변한게없니
대한민국 짝짝짝😅
역사에 나오는 강화도는 현재의 강화도가 아닙니다.
현재 강화도는 1921년 3월 1일에 일제가 새롭게 개명한 곳입니다.
그럼 어디래요?
@@청산천지해본래의 강화도는 대륙 하남성에 있는 지역을 칭했다고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반도를 강도라 칭하고 현일본열도를 화도라고 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반도 개성이 고려가 강화도로 피난해서 수도로 삼은 지역으로 생각합니다.
원나라가 황하도 건너고 양자강도 건넜는데 어찌 현 한반도 강화를 못건넜겠는지요?
원나라는 고려의 피난처를 건너려면 황해바다를 건너야하니 무척 난이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절대평형 그 혹시 조현병이라고 아시나요? 근처 가정의학과나 내과 가서도 처방 가능하니 조속한 시일내에 방문하시길 권해드립니다.
@@user-tt8gi3oq912 제가 의학전문가입니다.
님의 증상이 심각하니까 한번 진단 받아보세요?
교과서만 공부하고 잘난 척은 엄청하는 군요.
@@절대평형
하여간 환빠들 뇌구조 신기하다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해요👍👍👍
이래서 삼별초 난을 긍정적으로 볼 수가 없는.
이나라가 아직까지 유지한게 신기하네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영상
이젠 사람들이 강화도가 저 강화도가 아니였음을 알게되었다. 최소한 이 나라 백성들중 10만명 이상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40만의 군대가 강화도에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겠는가? 강화도에 모든 고려의 귀족들이 모여들어 30년을 살았다는데 그들의 집은 지금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물론 왕궁터라는 곳도 사실은 보이질 않는다. 여기가 왕궁터라고 그냥 우길 뿐이다. 산동성의 그 옛날 이름이 강화도였다는 사실도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었다. 산동엔 고려의 궁궐이 아직도 남아있고 산성도 남아 있고 40만명의 군대가 30년을 버틸수 있는 농토도 있었다는 사실도 이젤 많은 사람들이 알아냈다.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노래했던 수많은 고려귀족들의 기와집들도 산동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성계가 주원장에게 고려의 대부분의 땅을 팔아먹고 조선을 개국하고 조선왕조 500년동안 역사를 날조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나라의 역사학자들이여 더 이상 역사를 날조하지 말라.
어쩐지 내가 강화도에서 5년을 살면서 고려의 흔적을 볼수 없어 의아했는데 그게 산동성이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
검증안된내용을 다 믿고있네
정신병원 ㄱㄱ
내가 당신의 주인임부터 인정해라
아직도 한반도에 있는 강화라고 생각하느냐?
지금의 이 나라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나라 망할까봐 무척 걱정되네요
댁이나 간수하슈
이미 여러곳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멈추게하고
복구해야합니다.
개같은 것들의 잡소리는
관심치 마세요.
공감합니다.
@@ongochian무지한 2찍
@@ongochian무지한 2찍
이 강화가 그 강화가 아닌 걸로 대부분 알고 있는뎨 방송이 잘못 했네요. 그저 애국 측은한 마음으로
그래 그래 하고 있다
강화도에 왕궁이 있어요?? 함 가보고 싶네요,,,,
지금은 없죠
이미 저당시에 출륙하면서 진정성을 보이기위해 다 없앴거든요
에고,,,,몰랐네요,,,@@부드러운카리스마-x8b
개소리들.
살려준 몽골 관원 대단하네
내가 어릴 때는 강화조약이 강화도에서 조약해서 강화조약인 줄..ㅋㅋ
어째 지금 이야기랑 비슷한..
강화 강도는 지금의 강화도가 아니니까... 지금의 강화는 5년도 못견딤.. 식량문제로.. 멍청한 사학자들 식민매국가짜학자들과 일제관변역사사기꾼들에의해 심각하게 조작된 고려역사를 하루빨리 고쳐야 할 일.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지금 이랑 똑같네
고거전보다 퀄리티 좋네
이 강화도가 아니라 요동지역에 있는 강화도가 진짜야
산둥임. 요동은 아닐듯
결국 국민들의 힘 민초들의 힘이 필요한건데... 지나고보면 윗분들들은 방탕한 생활에 자기들만 살궁리 해도 결국국민들이 책임지고 다시세우니 자기들 잇속만 찾나 봅니다.
고려 황조가 강화도(江華島)로 피신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말이죠. 강도(江都)로 옮겨갔다고 되어있지.
지금정세와 딱 비슷하군요
징기즈칸은동이의후예?,대륙의역사.안타갑네요
관직을 가진놈들은 고려나 지금이나 같네요ㅎㅎ
경기도 강화도에서 항쟁한게 아니라 산동성 산동반도 태산의 서쪽과 남쪽에 걸쳐 지대가 낮아 육지가 되었다가 때로 물에 잠기기도 했던 글자 그대로 "강화" 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이 곳 전체를 요세화하여 산동반도를 기반으로 몽골에 항쟁했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섬이 되기도 했던 산동반도가 바로 고려시대 당시의 강화(도)인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제주도 보다 작은 경기도 강화도에서 무슨 수십년 동안 항쟁을 했다고 구라를 치는지, 하여튼 간에 대한민국 역사학계 참 문제 많은 적폐 카르텔 집단이라 비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광활한 중국 대륙의 황화강, 양자강을 넘어 송나라도 정복했는데 그렇게 유라시아를 정복한 몽골제국 군대가 제대로 된 농지 하나 없는 동쪽 구석지 한반도에 강화도를 건너지 못해서 30년 넘도록 정복 못했다는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도대체 언제까지 듣고 가스라이팅 당해야하나? 그렇게까지 고려의 역사무대를 한반도 이내로 구겨넣어야만 하는 이유가 일제식민사학의 잔재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X같은 인간들이 역사 좀 배운 학자로 설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란 것이 슬프다.
고려가 강화도에서 34년을 버틴 이유는 강화도가 인천 강화도가 아니고 산동성 강화도였기 때문이다. 산동성은 고려시대에 거대한 섬처럼 대륙과 늡지로 분리된 지역이었다. 그래서 수전에 약한 몽고병은 산동성 뻘밭을 건너서 공격할수가 없었다. 한반도 남한의 절절반정도 크기의 강화도이었기에 그 안에서 농사를 지어 군량을 보충하고 말을 기르고 무기르 만들며 방어할수 잇었다. 인천시 강화도 같은 눈꼽만한 섬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항쟁이다. 조선인조때 청태종이 처들어오자 인조가 강화도로 도망갔는데 10일만에 함락됐다. 고려는 대륙의 주인이었고 고려의 개경은 지금 하북성 탕산, 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북경 자금성, 고려의 남경은 지금 남경, 고려의 동경은 심양이었다. 고려는 몽고와의 전쟁끝에 화친하고 북경을 내어주고 심양으로 물러났으니 그때부터 고려의 왕들이 심양왕이 된 것이다. 고려말 홍건적이 일어나 그 수괴 고려의 서경에 처들어오니 고려왕이 심양으로 피난을 갔다. 홍건적 수괴 이세민이 남경에서 일어나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북경에 입성하여 명나라를 세웠으니 이때부터 조선의 영역은 만주와 한반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 강화도 무덤은 옮긴거임?ㅋㅋㅋㅋㅋㅋ
이세민 명나라😅😅😅😅😅
인조는 강화도를 건너가지도 못하고 남한산성에 머물다가 항복한것임
고려의 어느왕을 심양왕이라 칭하였는가? 나는 금시초문인데 ?
옛부터 당파싸움으로
망했는데 지금도 당파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좁은 땅에 국개의원
300명이 말이 됩니까?
컴퓨터가 일하는데 보좌관
9명이 말이 됩니까?
한달에 1.400만원 말이
됩니까?
좁은 나라에서 우선 150명으로 줄이고 보좌관 1명이면 충분.
자동차도 자기가 끌고
모든 특권은 없애야 합니다
저것들이 지금 싸움만 하고있지
일을 하고 있습니까?
도의원 시의원 구의원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 먹여 살리느라
국민들은 허리가 휘고 있습니다
노조에서는 자기들 이익이 아니라
권력의 힘으로 놀고먹는
국회에 쳐들어가서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최이가 아니고 최우아닌가요?
최이라고도불렸고
최우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최우라고나와서
그게정답인거처럼 생각하지맙시다
이해가 됩니다
주머니 손꼽고 있는게 젤웃기네.ㅋ
산동성 산동반도 이곳이 강화 라는
이야기도 .....
왜
미국도
왕이 사냥했다도 하지
@@아재-r9d멍청한데 에는 약도없다.
@user-100heawon 그럼 몽골은 남송멸망 이전에 고려부터 확실히 조지고 갔어여함 그럼 그때정도의 병력규모로 그정도 쓸고 돌아가는게 개연성이 전혀없음 ㅇㅇ 고려를 살려둔것도 어불성설이고 애초에 고려랑 접점도 훨씬 빨라야하고 아예 중원진출할때 큰틀에서의 계획부터 기록이랑은 결이 달라야함 그리고 고려도 남송이 침략받고 있으면 인접국가로써 송나라랑 연대를 하던지 같이 연합이 됐어야겠지 금나라 다 쳐망하고 송나라 두들겨 맞을동안 모르고 있었다는게 말이안됌 중원에 있는국가가 ㅇㅇ 지명하나로 그렇게 장난질하기엔 역사의 모든 흐름에서 개연성이 사라짐
@@아재-r9d 강화나 우산 이나
거기서 거기 입니다
북으로 가면 우산이고
남으로 가면 강화이고
전부 산동반도 인근
왜 우산 이냐면 철광이 미친듯이
나오는 지역이며
철광은 고대 패권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차례로 우산을 귀히 여기고
거란은 고려의 철광의 숨통을
틀어쥐기 위해 우산을 공격
지금의 몽골초원 발원의
거란 . 그들 스스로 고구려의
서쪽 땅에서 발원 했기에
자신들이 고구려의 정통성이
있다고 고려에 통보한 그 거란
거란의 공주 무덤에
성씨가 고씨라 각인되어 있고
고려가 화친 예물을 보냈을때
거란왕은 고씨례를 보냈다며
크게 기뻐했다 라는 기록도 있는 거란
고구려의 성채는 멀게는 몽골넘어
키르기스탄 에서도 발견되고
내몽골 에서도 발견되며
중공이 고대 성채 구조를 갈아업기
전에는 자금성도 같은양식
산동성의 성채도 같은양식
산서성 핑야오성채 (평양성)
핑야오 성채 남쪽에는
다 허물어저 부스러지고 있는
성문과 하나된 현판에 쓰어있는
(금성)
핑야오와 금성 사이에는
안시성으로 추정되는
괴 산성과 토산
끼워 맞춘다고 해도 이정도면
진실입니다
요즘 과학 기술로
고대 삼국
과거 천문관측 기록을
역산하면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나옵니다
고려만 해도 츠펑 인근으로
나오며
이씨조선 초기 역시 츠펑
인근으로 나옵니다
맞는 이야긴데 헛소리라 지껄여
생각보다 강화가 지금 한반도의 강화가 아닌것을 알고 계신 깨어있는 분들이 많네요 희망을 가져봅니다. 역사를 되찾길
지금강화 당근아니져 몽골도 못한걸 거란이 몇일만에햇다? ㅋㅋ
이거 근거가 어느 인터넷 자료나 유투브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진짜 공신력있는 학술지 사학 논문을 찾아봐야겠네요. 유투브….당췌 믿을게 못돼서…..
@@MrWalker0710 서울대사학자들을 더신뢰가안갑니다 돈받아먹으려고 서울대출신들 땜에 이나라가 이지경인겁니다 검사 판사 의사 교수 카르텔들 그들만의세상
아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ㅎㅎㅎ 강화에 최시가문 없네요
지금의 강화도는 반나절이면 털 수 있습니다. 그걸 조선시대 후금이 증명을 했죠...몽골이 침입한 강화는 산동반도에 있습니다. 거기 오련산도 있고요.
빙고.
후금이 강화를 정벌한건 만주족에게는 당시 명에서 귀순한 공유덕과 경중명의 수군이 있었기 때문이다….좀 알려면 제대로 알고 주장하던지..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비과학적인 창조론을 옹호하기 위해 미국 개신교의 창조과학이란 유사과학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임나일본부 노골적인 역사 왜곡을 보면 어떤 마음이신지.
거울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셨으면 좋겠네요.
나 0:05 @@DltptkddldnldpsirkdlTek
@@푸코-y2g양쯔강폭이 강화 앞바다보다 더 넓을걸?
손가락 끝에서 손금을 찾으려는 역사적 무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삼국의 영토와 고려의 영토가 어디인지 몽골을 막아낸 강화가 어디인지 좀 더 큰 눈으로 찾아봅시다.
무신정변 이후 고려는 시한부 선고 받은거죠 왕권이 없으니 몽골과의 전쟁에서 초동대응도 못하고...
강화도 = 현재 산동반도
오잉? 뭔소리~~
전국토가 유린당해서 씨가 바뀐마당에 왕이 숨어있든 뭔상관이요~
산동반도라면
바다건너 먼곳인데ᆢ
어찌 천도가능?
천도가 아니라
해외망명 이네ᆢ
@@골딩이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tokyuja
그러게요 처음접한
정보인데ᆢ
강화의 센 물길이
몽고군을 막아주었고
서쪽은 갯벌이라
상륙이 어려웠기때문에
삼별초의 저항이
가능했다는 설을 믿었는데
그 강화가 산동반도라니
너무 멀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강화도. 몽고침입을
다시 공부해야겠군요
^^♡
버틴거보다는 몽골이 사실상 본토는 정복했고 섬하나는 관심이 없었던거 아닌가
정답일수도..전세계적으로 옛역사보면 당시 고려도 정복했다고들 하는데..우리 나라만 국권 유지했고 몽골간섭기 라고함
@@ggjs9561
우리나라도 역사조작 은근 많이 함…
최근에 기억나는 건 석굴암 시멘트로 조져놨다고 하던데 사실상 폐허로 방치된 석굴암을 일본이 당시 최고기술인 시멘트로 복구해준 거….
근데도 자동 습도 조절이 되던 걸 일본이 시멘트 바르고 원형을 부숴서 이슬이 맺히고 곰팡이가 생겼다고 하는 거 보고 기가 찼는데….
미륵사지석탑도 돌무지상태를 일제때 쌓아서 세멘발라놓았죠~그걸. 훼손이라고 가르치죠
영상 뒷부분까지 다 보세요;; 뭔 역사왜곡 얘기까지 나오네
@@sksinfndkxk7시멘트는 콜로세움만들때도 쓰던건데 뭔 최신기술 ;;;
몽골을 막은 강화도는 산동반도임..그 밑쪽에 제주라는 명칭이 있는데 삼별초가 그곳으로 이동했다는 사서도 있음..따라서 현재 역사는 왜곡되고 있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데 헷갈리고 어려움..
강화도는 인천 옆 강화가 아니에요 칭타오가 있는 산동반도 주변이 강화입니다 모든 사서에 나와있어요
..?
???
말같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발 ㅋㅋ
역사를직접못보았으니... 대륙에있어다해도 지금은의미가..
😂
그리고 한반도에서 군대 10만명도 양설하기 힘들었던
조선시대를 보면은??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고려의
더 작은 영역에서 30만~40만 군대를 전쟁에 동원하는
고려의 군대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ㅋㅋ 고려는
지금의 한반도에 있었던게 절대로 아닙니다ㅡ.ㅡㅋㅋ
고려는 대륙에 있던게 맞다고 봐요ㅎㅎ
몽골이 아무리 수전에 잼병이라고 해도 전맵 다먹고 인구수 400에 가스 미네랄 무한인데 섬멀티 하나 못꺾는게 좀 이해가 안된다 ..
우리가 찾아야 할 국토죠^^ 엄청나지 않음요^^ 역사란게요^^ 그렇게 무한멀티해도 금방 없어지고.... 판타지 삼국지 대륙에 삼국그어놓고 진실인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죠 진시황처럼 꼴랑 몇십년 살다가 간 나라가.... 웃기죠 사람들도....
나느 지금 식민사관 배우면서 이상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ㅋㅋ근데 저분들은 그런 생각을 못했나? ㅋㅋ그저 외우기만해서??? 알면서 모르는척하나? 그럼 이완용 욕해대면서 잘못된 역사 가르치는건 이완용이랑 뭐가 다르냐ㅋㅋㅋ 부끄러운줄 알아라 식민사학자들아
강화도가 강화도가 아니니까 39년을 버텼지... 옛 고려 신라는 중국 대륙에 있었음 중국과 일본이 대한민국역사를 륜완용했음
잘했어요 😂😂😂😂😂😂😂😂
강화도가 과연 지금의강화인가 가보면 저기가 물살이 휘몰아쳐서 몽골이 못건너온곳으로 볼수가 없다
그건 국뽕에 취한 자들이 하는말이고
실재는 몽골군은 왕을 강화도애 가둬놓고 전국을 맘껏 유리했다
제발 국뽕에 취한 가짜 역사를 사실인양 말하지말자
다인철소 대장장이 충주 대소원면 지씨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0년 씩이나 싸운 게 대단한 것 같은데요?몽골같은 세계제국에 맞서서.
고려는 한반도에 있던 나라가 아님
강화도 지금의 강화가 아님
저 와중에 세금이 제대로 걷히는게 신기함.. 지방세력의 독립 시도는 없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
세상살이 고달프요~
강화도에서 39년을 그냥 버텄다는게
이상함 몽골이 물에 약하다는 이유로
기록에 보면 몽골 이 베트남 침공할때
수군을 이용 했다는데
강화도로 들어갈려고 마음 먹었으면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들어 갔을건데
고려사는 조선시대에 쓴 역사서라
편향적이지 아니었을까 당시 무관독재 시대이라 조선시대 문관 이랑 반대되는 정부
무관지배 의 단점을 부각 시켜야 하니
편향적으로 고려사를 쓰지 않았을까
몽골 입장에서는 본토는 이미 장악한대다가, 궂이 배타고 위험 무릎쓰고 상륙전 할필요가 없었지.
베트남 두번 뱃길로 공격해서 모두 실패한걸로 앎. 당시 베트남 수군대장이 몽골침략을 막아내 영웅이 됨.
@@Jaden_S-s2n 장악 못했음. 베트남전처럼 고려가 청야전술 게릴라전으로 나왔음. 심지어 몽골 총사령관도 게릴라전에서 암살당함
맞습니다.
이성계와 명이 고려의 광활한 영토를 나누어 먹고 고려사를 반도 안에 쑤셔 넣어 역사공정을 했다고 보이네요. 조선 초기 에서 성종까지 책과 역사서들을 계속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판 분서 갱유죠.
이성계가 명과 손잡고 고려를 나눠 먹고 명에 사대하며 명을 상국으로 모신 까닭은 그때까지 여진세력과 후원세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쿠테타의 명분이 없는 이성계가 살아 남으려면 명에게 귀속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성계 이후 성종까지 조선판 분서갱유 역사왜곡이 일어난 겁니다.
삼국은 물론이거니와 고려까지의 반도에서는 나오지 않는 역사적 지명이 북경에서 산동성을 지나 남경까지 우수수 쏫아져 나오는 이유가 있으며 동이족 성의 특징, 특히 고구려의 성에는 돌출구조물인 치 라는 것이 있는게 중국의 성들중 화하족이 만든 성들에는 치가 없는 반면 고구려의 옛땅이라 추정되는 성들에는 어김없이 치가 있습니다.
북경 자금성의 외곽의 성인 외성을 중국인 스스로 철거해버렸습니다. 마치 우리 스스로 한양도성의 성벽들을 철거해버린 것과 같은 이야기이죠. 북경 일부에 자금성의 외성이 남아 있는 곳이 몇군데 있는데 거기에 치 라는 구조 물이 있습니다. 화하족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선조들이 만들지 않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역사왜곡을 위하여 자금성의 외성을 갈아 엎어 버린 거라 생각됩니다. 어찌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유산을 스스로 철거해버리겠습니까?
좀패이이성게
한심한 최씨 무신가문...
그리고 5:35초 몽골군 방패에 卍 왜 새겨져 있는건가요?
당시에 강화는 지금에 한반도 강화 아닌것 같아.
지금2024년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어느시대나
무능하고 소프트파워가
미개한 리더가
한시대를 망쳐버립니다.
안타깝습니다.
지금 이나라랑 비슷하네.... 부패한 정치꾼과 기득권들이 나라를 망치고있다
김준 왜 안나옴?
고거전을 ebs가 만들었어야해
강화도가 버틴게 중요한거야?
강화도 밖에 있는 국민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서민들 관심없고
지들 권위만 지킬려고 노력해온 거지.
그 강화도 아니니까 흥분하지마. 고려시대 영토를 잘못 알고 있어서 발생하는 오해니까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까지 영토가 이어졌고 우리민족은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서해바다를 낀 해양국가였음
@@박종민-e7z 환빠는 좀 사라지자 ^^
저 강화도가 지금 경기도 강화일리가 있나 거기서 무슨수로 그렇게 버텨? ㅉㅉㅉ 산둥반도인데
강화도가 삼국시대 이후로 고려 조선을 거쳐 꾸준히 간척된건 알고는 있냐?
경기도 강화라니요 인천입니다
강화가 경기도인지 인천인지도 모르면서??? ㅋㅋㅋㅋㅋ
고려는 대륙을 통치햇엇는데...강화도는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