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자료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이런 내용을 밝혀 낼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훌륭한 역사자료입니다. 요즘들어 지금의 중국대륙에 살고있는 짬뽕족이 왜 무개념의 인간들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는게, 그들은 모택동에 의해 수천년 전통과 문화가 말살되어,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 떨어진 근본없는 족속이 되어서 조상도 없고, 지켜야할 기준같은 것들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찾는건 중국대륙에 원래 존재했던 동이족들의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불쌍한 족속들입니다~
3:47 대단하십니다. 산서성 오대산이 진짜 오대산이네요.. 명주도 마찬가지. 명주를 찾으면 우산국도 찾을 수 있죠. 9:02 충주.. 고려서에 충주태수(?)가 노인성을 관측하고 왕에게 보고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노인성은 한반도 내륙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별자리죠. 제주도 서귀포에서 관측가능합니다. 대륙의 충칭(충주)에서는 노인성을 관측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우리가 알던 우산국 잘못된 지식정보에 의하면 저 멀리 동해바다 울릉도를 말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고려사에 나오는 우산국... 여진이 침략하여 농토가 다 황폐해졌다 라는 기사 나옵니다 음 어떤 분들은 여진족 해적들이 배타고 거기까지 침략 했다고 하는 분들 있는데... 그때 무슨 동력선이 있었나 봅니다 그 멀리 울릉도까지 침략 했다는 것 보면요 11월 동해안 바닷물 흐름을 보면 바람이 일본 북동쪽으로 부는데 혹시 그때 여진족에 제갈량 뺨 치는 책사가 있었나 봅니다 나무위키도 그렇고
@@sl8hf_may형주, 양양 이 지역은 위촉오가 서로 빼앗기로 유명한 쟁지인데, 저기까지 동이의 영토라고 한다면... 이쪽은 좋기는 좋지만 식빠들은 너무 비약적이라면서 역공을 가해올 수 있지 않을까 두렵네요. 책보고님 지도에도 형주 방면은 송나라 영토라고 나와 있어서 헷갈리기도 하고요.
고려를 만리지국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일 것 같습니다.명주 강릉의 위치가 그 곳이라면 더 서쪽에, 남쪽에 우리가 모르는 영토가 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나의 진정한 주인은 고려이며, 나머지 민족은 조공국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서에는 차마 부끄러워 반대로 기록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의 남경 (강남)에서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했지만 3대 황제 주체가 수도를 고구려, 고려의 심장이었던 서경으로 천도를 감행하고 본인의 시호를 광개토태왕의 시호였던 영락으로 정했고 그가 영락제입니다. 다시 말해 오랜 옛부터 일찍이 천자가 태동했던 곳이 고조선-고구려-고려의 심장이었던 하북 지역이고 곧 황하의 옥토인 중원을 지배한 왕조가 진짜 천자였고 영락제는 스스로 그러한 천자가 되려고 아버지 주원장이 세웠던 명나라를 다시 설계했던 것입니다.
신라 명주 溟州 와 고려 명주 明州 는 한자가 댜르며 말씀대로 물가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슬라가 황하 하류쪽이 아닌 대륙의 강릉 쪽이라는 얘기 듣고 생각을 더 해보려고 합니다. 대륙의 한수가 있는데 지금의 한수인지 전에 황하가 더북쪽으로 흐를때 남쪽에서 평행하게 흘렀다는 주장도 있는데 한번 열린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싶어요.
1. 천하고금대총편람도의 배경과 제작 시기 이 고지도는 지도 한가운데에 '경주'라는 지명을 표시하고 있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의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천년 수도로서의 역사적 위치가 확실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특히 지금의 경주가 과연 신라의 위치와 동일한지에 대한 논란과 대안을 제시하는 유일한 지도입니다. 최근 고려사가 이 지도를 중심으로 재해석되면서, 고려의 개경이 양자강 남쪽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수도였다는 기존의 인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 입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왕건이 신라의 옛 수도를 경주로 개명하고 신라왕에게 식읍으로 하사한 것이 경주의 유래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지도 제작 시기가 경주라는 지명이 정립된 935년 이후로 추정되며, 왕건이 고려를 통일한 후 제작한 초기 지도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지도는 거란 멸망 전까지(1125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다가, 이후 김수홍 가문에서 보관되어 현대에 공개되었을 가능성이 많기에, 지도의 신뢰도와 보관 과정을 검증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고지도를 제작한 김수홍이라는 인물이 그의 직계 조상 중에 왕건의 가장 최근이였던 김선평이 고창성주였으며, 그가 신라왕족출신이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라는 고지도는 바로 그러한 안동김씨 집안에서 나온 고지도입니다. 김수홍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와 동시에 제작했다는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역시 같은 시기 같은 맥락에서 제작된 지도일 가능성도 많고, 원래 지도의 틀에 안의 내용들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게 약간씩 변형되어 기록되었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2. 지도의 구성과 내용 이 지도는 고려 왕건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멸망 이후 중원대륙을 통일하면서 통합한 당대의 소왕국들과 종족 분포, 주요 거점들을 포함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자료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고려시대 이전의 다양한 소왕국의 위치, 주요 종족 경계와 행정적 명칭과 당대의 중요한 인물의 행적과 고향까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인 지도로, 동아시아의 다원적 정치 구조와 고려의 영향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고려사와 함께 이 고지도를 살펴보면 고려의 수도 개경이 남경의 모습으로 양자강 이남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동강과 서강, 고려-몽고전쟁의 주요 전장터였던 강도 등의 지명도 구체적으로 표시되어 있어 고려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이 지도는 고려 시대 중국 본토 내 경주와 남경을 중심으로 그려졌으며, 당시 고려 영토와 영향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도에는 산, 강, 섬, 도시, 성곽 등의 지형 정보뿐 아니라, 각 지역 출신 인물과 행정 구역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 인물과 지형 정보를 모두 담은 역사인물지리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금나라와 거란, 몽골의 주요 도시와 지형도 추가되어 고려가 다양한 소왕국과 종족 경계를 관리하며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통합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지도는 고려 왕실의 통치 전략과 동아시아 정치 구조의 이해에 중요한 사료입니다. 고려의 역사를 보면 경주와 남경(개경)은 고려 500년 동안 중국 땅에 위치했던 도시로,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한반도 경주와 개성으로 그 위치가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3. 고지도에 남아 있는 고비사막 남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 고비사막 남부에 남아 있는 거대한 호수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과거 거대한 담수호에서 지금의 사막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이전까지 하부 지역의 물줄기가 고비사막쪽으로 이동해 형성된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고대에는 거대한 담수호로 고대 동이족들의 서해바다였을 가능성이 크며 약 3천 년 전부터 서서히 건조해지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물이 고갈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12세기 무렵까지도 남은 물줄기와 습지가 고비사막 남부로 흘러들며 잔존 호수를 형성했을 수 있습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무신국(無腎國)이라는 지명은 이 고지도에도 나오는데 타클라마칸과 고비사막 지역의 척박하고 황폐해진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곽박은 이 무신국(無腎國)을 신장이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해석했으나, 실제로는 이 무신국(無腎國)은 사막 지역에 있었던 고대왕국의 존재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곳의 물이 고갈되면서 그 생명력과 기운이 다한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곽박의 이러한 해석은 이러한 지리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데다 이 지역의 상징적 의미를 간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의 물줄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줄어들며 고비사막 남부에 영향을 미쳤고, 산해경에 등장하는 이 무신국(無腎國)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지리적·환경적 쇠퇴를 나타내는 상징적 명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고지도에 남아 있는 고비사막 남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상고사마저 완전히 뒤바꿀 가능성이 있는 지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대사를 해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가능성은 홍산문화의 시기와 역사해석까지 그 가능성을 열어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4. 황하의 변동과 황하의 북상 1) 1355년 벌어진 고우성전투는 명사에서는 원나라와 장사성이 주요 상대로 등장하고 고려는 쏙 빼버렸지만, 실제로는 당시 홍건적과 주원장 그리고 원나라와 고려가 연합해 부딪친 최대의 전쟁으로 명나라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황하를 중심으로 중원의 패권장악을 위해 벌어진 전쟁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고우성은 황하 북쪽에 위치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사 원사 고려사 모두 이 고우성 전투와 그 이후 벌어진 수많은 전쟁 사실 기록들을 사서에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를 보면 10세기부터 고려가 망하고 명나라가 건국되는 15세기까지 황하는 이 지역을 흘러 중국의 동해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며, 만약 이 고지도의 황하의 위치가 명나라 건국 이전에 벌어진 고우성전투가 있던 황하의 위치와 동일하다면 이 고지도의 신뢰성에도 한층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게다가 이 지도에서는 고려사에 등장하는 고려말에 벌어진 홍건적과 황하의 수로의 모습도 비교적 정확하게 담고 있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바로 동강과 서강의 전투들인데 그건 한반도 개성에 있는 도시에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이 지도로는 모든 것들이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고지도가 고려의 왕건이 그렸고, 고려 황실에서 보관되었던 지도일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3) 천하고금대총편람도는 10~12세기 사이에 제작된 고지도로 15세기에 제작된 대명일통지의 지도나 1820년 청나라 시기에 제작된 대청광여도와 이 고지도와 비교할 때 보다 훨씬 이전에 제작된 고지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명청시대에 만들어진 이런 고지도들과 비교해서도 황하는 이미 약 200km 이상 북상한 위치에 있으며, 구글지도로 보는 현재의 황하는 더 북쪽으로 이동하여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 그려진 황하의 위치보다 550km 이상 북상해 있습니다. 4) 황하의 북상은 현재도 진행중일 가능성도 큰데 이는 단순한 강의 자연적 이동이 아니라, 중국 남부 중심부(남령산맥)의 융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고우성전투가 벌어진 1355년부터 19세기 후반 청나라 시절에 닥친 거대지진과 대홍수로 현재 위치로 황하가 마지막 변화되는 시점까지 불과 500년도 걸리지 않았으며, 황하의 북상거리도 550km가 넘는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지금 얼마나 지각 변동이 심한 대륙이라는 것을 밝혀주는 직접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5) 이러한 거대한 남령산맥의 융기는 우한 하류를 흐르고 있던 장강의 지류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큰데, 이는 과거 이 산맥에 막혀 거대한 담수호를 형성하고 있던 동정호와 포양호 등의 거대한 물의 압력이 지각이 융기하면서 강력한 압력차가 발생하면서 남령산맥 북쪽을 두부처럼 자르고 장강이 유로 변경 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구글지도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동정호와 무릉을 배경으로 고려시대 삶의 애환과 권선징악을 표현한 심청전을 만들었고 또 정선 강릉 등이 모두 우리선조의 삶의 터전이니 고려영토를 대륙 정선 강릉 동정호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동정호를 기준으로 호남 호북이라 불렀으니 틀림없 고려 남부가 아주 넓었다고 보여집니다
지금 한반도 고대사관은 마치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이 다시 쪼그라들어서 섬나라가 되었다고. 미국이 영국의 원류라는 주장을 하는 것과 비슷하죠. 미국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것은 부정할수 없는 역사죠. 하화족 국가가 우리의 식민지는 아니었어도 절대 우리의 주인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자기 조상의 역사를 까먹을 수 있었을까? 조선 초에 역사서를 불태우는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었을까? 역사란 게 왕족과 귀족들만 공부하는 것이라서? 그렇다면 대부분의 한중일 국민들에겐 그 역사가 중요한 건 아니겠네 어차피 우리들의 역사가 아닌 극소수의 지배층의 역사니까 천 년 전의 일을 가지고 현대인들이 싸우는 건 어리석은 일 그러나 천 년 전의 역사를 다시 밝히는 건 재미 있는 일 아닌가? 모두가 궁금해 하는데 왜 역사를 가지고 싸움질을 하지? 역사를 가지고 소송까지 거는 짓을 왜 하는 것일까? 다 옛날 일에 불과한데...
이성계 조선이 아니라 인조와 선조의 조선이 저런 작태를 벌인게지요. 하필이면 그시절부터 모든 역사서가 불태워 졌을 겁니다. 근데 웃긴게 임진왜란때 왜국의 요청으로 참전한 일본군대가 당대 역사 서적들을 자기들 나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정작 인조와 선조는 싸그리 싹싹 불태우려고 염병했지요.
예전 영상 보면 강화도나 남경 유수관 대륙으로 다 설명하셨는데요.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 내용을 보면 남경유수관(南京留守官) 양주(楊州)는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북한산군(北漢山郡)【남평양성(南平壤城)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영토를 설명한 부분이줘. 다시 말하면 고려의 영토 이지요. 그렴 여기서 양주는 어디라고 보시나요. 양주나 강화도가 대륙이면 고려의 남경 양주를 의미하지 않을까요. 이 영상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역사서를 이용해 한반도에 똑 같은 지명을 만들고 이동했다고 하는데. 양주의 지명으로 보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조선이 탄생됐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 시대로 보면 대륙에는 명나라 겠지요. 이성계도 양주에 수도를 정했다고 하지요. 이런 우연이 있나요. 이성계가 따라했나요. 고려사에 나오는 주평장이 마지막으로 대륙 회수에서 고려에 무기를 받쳐 홍건난이 진압됐다는 말이 뭔 말일꼬. 대륙 회수에서 홍건난이 진압되고 끝이 났는데. 어떻게 명나라 건국 홍건난을 일으킨 주원장이 대륙에서 명나라를 건국할 수 있나 의문이네요. 조선왕조실록은 20세기 일본이 재 편찬한 가짜 왜 그런가 고려가 대륙이였다면 조선도 대륙에 있어야 한다이지요. 이성계는 전조 충숙왕이 예전에 계신 남경(양주) 수도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조선의 수도를 정했다고 하기때문이다.
모든 게 다 올바르게 바로 서려고 하면 판을 엎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현재 가능할까? 사회 곳곳에 중국 공산당 세력이 암약하고 법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법을 만드는 국회의 대다수가 이미 중국 공산당에 포섭된 사람들인데 더구나 거대 야당의 대표가 중국 공산당 정치 자금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손아귀에 넣고 있는데 .......
이성계는 한민족이 통일이 되면 민족의 역적으로 재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리, 백제, 신라, 발해는 물론 고리의 역사도 왜곡하고 어떻게 작게는 500에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왕조에 지도가 하나도 없다는게 도통 이해가 안됩니다. 얼마전에는 우연히 본 유튭에서 유튜버가 발해 유젹을 찾아 가면서 하는 말이 발해가 고구리 보다 더 컸다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 하는 걸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발해도 고구리의 연결이긴 하지만 발해가 고구리 보다 크다? 무슨 그건로? 아무튼 오늘도 힘든 지리, 지역명 공부 쉽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
내가 재벌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 모아서 맘 놓고 맘것 연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수 있도록 돈쭐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자료를 찾아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자료또한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니 잘보관해야겠습니다. 이런활동이 누적됨으로써 언젠가는 제대로된 역사찾기가 될수있는 단초가되겠지요.
감사합니다 더 좋은영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Ourhistory2023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대합니다
고려가즈아
끝도 없이 고려사 삼국사를 통해서 발굴되네요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런 좋은 영상을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에요! 오대산에 다섯개의 평평한 봉우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강가의 언덕인 강릉! 한반도 강릉은 바다가에 있으니 해릉이라고 해야지! ㅋㅎㅎㅎ
팩트로 사학계를 조곤조곤 까대기하시는 데, 유쾌 상쾌 통쾌합니다.
오늘도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
그렇군요 오늘 사실에 입각한 증거가 있음을 배웁니다
찾아주시고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고생하시고 노력하셔서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고려땅의 대해서 알아가고 있어요
오대산의 해석에서 정말 빼박이라 생각이 듭니다.이렇게 이해가 잘가는데 왜 사학자들을 모를까? 돈이 앞을 가렸나?
오늘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강릉에는 '강'이 없고, 대한민국 오대산에는 '대'가 없는 이상한 지명. 이렇게 엉터리로 지역명을 지어놓다니... 이성계의 조선이 저지른 작태가 참으로 어이가 없네요.
이성계가 대체 역사에 무슨 짓을 한것인지..
우산국의 위치가 산동반도와 장강의 상류쪽 두군데인가요? 아무튼 많은 생각이 드는 영상입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성계 이놈이 왕이 되려고 쿠데타 일으켜 왕이 된 놈인데 고려의 남경 출신 주원장,주중팔에게 밀려서
지명을 그대로 한반도에 같다 붙여서 역사를 만들었다고 봅니다...그러니 고대 사서를 전부 압수하고 보유,소장한 사람들은 목가지 잘랐겠죠
위성 지도를 동원하여 근거있게
설 명하니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잘 이해했습니다
대륙 역사가 확실하군요
산서성은 고려영토
대단하십니다 고려서쪽 영토
대륙에서 해석하는 삼국과 고려역사. 늘 환영하고 응원합니다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사서의 기록은
대륙을 설명하고 있다!👍
산서성 오대산 대박 👏👏👏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이 속담이 생각난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뺀다‘ 게다가 일본의 속담처럼 ’백명이 거짓을 말하면 참이 된다‘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 오늘도 의문의 답을 생각해본다!
늘 좋은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수고많으십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굿입니다. 고려 명주는 절대로 지금의 한반도 강릉이 아니죠. 지금의 강릉이 무슨 중요한 지역이라고 사서에 그리 많이 나올까요ㅡ
대륙에서는 어디있는지도 모를 지역이죠.
고려 명주는 한반도 동해가 어니라 대륙 동해에 있습니다
최고이십니다....항상 애청중입니다.
정말 역사가 역사입니다. 우리나라 국사책은 불태워야 합니다.
진짜 조선은 너무 싫다.
진짜 조선은 배달겨레의 찬란한 초대강국이고...
이성계 조선이 개양아치 수양이의
하극상 쿠테타 이후 개막장 나라가 된 것.
훌륭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
좋은 자료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이런 내용을 밝혀 낼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훌륭한 역사자료입니다. 요즘들어 지금의 중국대륙에 살고있는 짬뽕족이 왜 무개념의 인간들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는게, 그들은 모택동에 의해 수천년 전통과 문화가 말살되어,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 떨어진 근본없는 족속이 되어서 조상도 없고, 지켜야할 기준같은 것들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찾는건 중국대륙에 원래 존재했던 동이족들의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불쌍한 족속들입니다~
천자국 고리 대륙의 절반 이상이 고리땅이였네..
우산국의 위치는 책보고 및 다른 시민학자들과 다르네요 제발 시민학자들이 모여서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은 서로 정리하시여 새교과서를 만드시길
3:47 대단하십니다.
산서성 오대산이 진짜 오대산이네요..
명주도 마찬가지. 명주를 찾으면 우산국도 찾을 수 있죠.
9:02 충주.. 고려서에 충주태수(?)가 노인성을 관측하고 왕에게 보고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노인성은 한반도 내륙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별자리죠. 제주도 서귀포에서 관측가능합니다.
대륙의 충칭(충주)에서는 노인성을 관측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역사를 현실적 상식으로 접근하시어 너무 신뢰갑니다.❤
너무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응원합니다 👍
오 책보고와 우산국 위치가 다르네요. 그에따라 신라의 진출방향도 다르구요. 고려영토도 책보고에 비해 넓네요
중원 가운데 있던 고대 발해를 감안하면 '바다'를 건너...가 이해가 잘 됨. 생뚱맞아 보이는 영락궁 위치도 자연스러워 보이고 쉽게 이해됨. 명도전 출토 밀도와고 맞아돌아감.
식민사학 처벌해야
3분
당나라의 오대산은 어디일까요?
고려 오대산.최곱니다.
명주 형주!
우리가 알던 우산국 잘못된 지식정보에 의하면 저 멀리 동해바다 울릉도를 말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고려사에 나오는 우산국... 여진이 침략하여 농토가 다 황폐해졌다 라는 기사 나옵니다
음 어떤 분들은 여진족 해적들이 배타고 거기까지 침략 했다고 하는 분들 있는데...
그때 무슨 동력선이 있었나 봅니다 그 멀리 울릉도까지 침략 했다는 것 보면요
11월 동해안 바닷물 흐름을 보면 바람이 일본 북동쪽으로 부는데
혹시 그때 여진족에 제갈량 뺨 치는 책사가 있었나 봅니다 나무위키도 그렇고
형주만큼은 사천성 익주와 더불어 영구적으로 항상 화하족 영토였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보군요.
네 저희 선조님이 고리 중기 4대(3대~6대)에 걸쳐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이셨는데 영지가 무한(武漢)이예요~ 중국어 발음은 우한이고 고리때는 한양이라고 불렀음~
형주성(형주고성)이 있지요ㅡ 그 성은 "치"를 가진 성이죠, 양양고성이 있습니다 "치"가 없어요.. 이분 영상에 중에 있습니다.
치는 고대 우리조상님들이 쌓은 성의 가장 중요한 방어특징을 가진 성의 구조이죠...단군조선부터 고구려...
@@sl8hf_may형주, 양양 이 지역은 위촉오가 서로 빼앗기로 유명한 쟁지인데, 저기까지 동이의 영토라고 한다면... 이쪽은 좋기는 좋지만 식빠들은 너무 비약적이라면서 역공을 가해올 수 있지 않을까 두렵네요. 책보고님 지도에도 형주 방면은 송나라 영토라고 나와 있어서 헷갈리기도 하고요.
식빠 라는 신조어도 아주 통쾌한 용어지만
좀더 분명하게
왜식빠, 왜빠 라고 하면 좋을듯...
식빠, 왜식빠, 왜빠 양아치들은
반드시 천벌받고 지옥으로 복귀해서
1만년 불고문 당한다...ㅋ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합니다
강릉에만 강이 없나요? 경남의 사천에도 川천이 없습니다.
강릉 사천 지명과 다른 한반도의 모습 현재의 한반도의 지명 두 곳은 동부대륙의 것을. 이식했네요ㅈ
감사합니다
양자강중류의 충주가 고려사기록중 노인성을 관찰한 충주일수도 있겠네요.
강원도 오대산은 ...끼워 맞춘 짝퉁이군요...
이성계의 조선이 뭔짓을 한건지 ㅠㅜ
빼박이다👍👍👍
좋아요👍
정선의 은광교회는 우연이 아니디~
또한, 현 중국 지역의 지명은 물론, 바꾼 옛 지명 조차 왜 한반도에 중첩된 지명이 많을까!
명주 연곡현=> 강릉시에 연곡면이 있죠... , 명주 우계현 옥당 ==> 강릉 옥계면이 있죠, 명주 수산==>양양에 수산리가 있어요
산시성에 오대산이 있군요
뭔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
당은 돌궐족으로 우리와는 구이족인 형제지간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다.대가야 마저 중국 강남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幽然齊魯吳越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명나라초기 20년사가 고려의 남방에 도착.
고려를 만리지국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일 것 같습니다.명주 강릉의 위치가 그 곳이라면 더 서쪽에, 남쪽에 우리가 모르는 영토가 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나의 진정한 주인은 고려이며, 나머지 민족은 조공국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서에는 차마 부끄러워 반대로 기록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의 남경 (강남)에서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했지만 3대 황제 주체가 수도를 고구려, 고려의 심장이었던 서경으로 천도를 감행하고 본인의 시호를 광개토태왕의 시호였던 영락으로 정했고 그가 영락제입니다. 다시 말해 오랜 옛부터 일찍이 천자가 태동했던 곳이 고조선-고구려-고려의 심장이었던 하북 지역이고 곧 황하의 옥토인 중원을 지배한 왕조가 진짜 천자였고 영락제는 스스로 그러한 천자가 되려고 아버지 주원장이 세웠던 명나라를 다시 설계했던 것입니다.
신라 명주 溟州 와
고려 명주 明州 는 한자가 댜르며
말씀대로 물가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슬라가 황하 하류쪽이 아닌
대륙의 강릉 쪽이라는 얘기 듣고 생각을 더 해보려고 합니다.
대륙의 한수가 있는데 지금의 한수인지 전에 황하가 더북쪽으로 흐를때 남쪽에서 평행하게 흘렀다는 주장도 있는데 한번 열린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싶어요.
신라와 吳,齊지역의 통합 (3개지역의 통합으로 발전) (吳,齊를 제외한, 나머지 백잔이 당나라로 발전) 접경지 (출발지기준)
吳,齊의 출발지와 도착지에 유의.
1. 천하고금대총편람도의 배경과 제작 시기
이 고지도는 지도 한가운데에 '경주'라는 지명을 표시하고 있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의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천년 수도로서의 역사적 위치가 확실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특히 지금의 경주가 과연 신라의 위치와 동일한지에 대한 논란과 대안을 제시하는 유일한 지도입니다. 최근 고려사가 이 지도를 중심으로 재해석되면서, 고려의 개경이 양자강 남쪽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수도였다는 기존의 인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 입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왕건이 신라의 옛 수도를 경주로 개명하고 신라왕에게 식읍으로 하사한 것이 경주의 유래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지도 제작 시기가 경주라는 지명이 정립된 935년 이후로 추정되며, 왕건이 고려를 통일한 후 제작한 초기 지도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지도는 거란 멸망 전까지(1125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다가, 이후 김수홍 가문에서 보관되어 현대에 공개되었을 가능성이 많기에, 지도의 신뢰도와 보관 과정을 검증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고지도를 제작한 김수홍이라는 인물이 그의 직계 조상 중에 왕건의 가장 최근이였던 김선평이 고창성주였으며, 그가 신라왕족출신이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라는 고지도는 바로 그러한 안동김씨 집안에서 나온 고지도입니다. 김수홍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와 동시에 제작했다는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역시 같은 시기 같은 맥락에서 제작된 지도일 가능성도 많고, 원래 지도의 틀에 안의 내용들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게 약간씩 변형되어 기록되었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2. 지도의 구성과 내용
이 지도는 고려 왕건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멸망 이후 중원대륙을 통일하면서 통합한 당대의 소왕국들과 종족 분포, 주요 거점들을 포함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자료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고려시대 이전의 다양한 소왕국의 위치, 주요 종족 경계와 행정적 명칭과 당대의 중요한 인물의 행적과 고향까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인 지도로, 동아시아의 다원적 정치 구조와 고려의 영향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고려사와 함께 이 고지도를 살펴보면 고려의 수도 개경이 남경의 모습으로 양자강 이남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동강과 서강, 고려-몽고전쟁의 주요 전장터였던 강도 등의 지명도 구체적으로 표시되어 있어 고려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이 지도는 고려 시대 중국 본토 내 경주와 남경을 중심으로 그려졌으며, 당시 고려 영토와 영향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도에는 산, 강, 섬, 도시, 성곽 등의 지형 정보뿐 아니라, 각 지역 출신 인물과 행정 구역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 인물과 지형 정보를 모두 담은 역사인물지리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금나라와 거란, 몽골의 주요 도시와 지형도 추가되어 고려가 다양한 소왕국과 종족 경계를 관리하며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통합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지도는 고려 왕실의 통치 전략과 동아시아 정치 구조의 이해에 중요한 사료입니다.
고려의 역사를 보면 경주와 남경(개경)은 고려 500년 동안 중국 땅에 위치했던 도시로,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한반도 경주와 개성으로 그 위치가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3. 고지도에 남아 있는 고비사막 남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
고비사막 남부에 남아 있는 거대한 호수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과거 거대한 담수호에서 지금의 사막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이전까지 하부 지역의 물줄기가 고비사막쪽으로 이동해 형성된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고대에는 거대한 담수호로 고대 동이족들의 서해바다였을 가능성이 크며 약 3천 년 전부터 서서히 건조해지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물이 고갈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12세기 무렵까지도 남은 물줄기와 습지가 고비사막 남부로 흘러들며 잔존 호수를 형성했을 수 있습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무신국(無腎國)이라는 지명은 이 고지도에도 나오는데 타클라마칸과 고비사막 지역의 척박하고 황폐해진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곽박은 이 무신국(無腎國)을 신장이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해석했으나, 실제로는 이 무신국(無腎國)은 사막 지역에 있었던 고대왕국의 존재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곳의 물이 고갈되면서 그 생명력과 기운이 다한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곽박의 이러한 해석은 이러한 지리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데다 이 지역의 상징적 의미를 간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의 물줄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줄어들며 고비사막 남부에 영향을 미쳤고, 산해경에 등장하는 이 무신국(無腎國)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지리적·환경적 쇠퇴를 나타내는 상징적 명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고지도에 남아 있는 고비사막 남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상고사마저 완전히 뒤바꿀 가능성이 있는 지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대사를 해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가능성은 홍산문화의 시기와 역사해석까지 그 가능성을 열어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4. 황하의 변동과 황하의 북상
1) 1355년 벌어진 고우성전투는 명사에서는 원나라와 장사성이 주요 상대로 등장하고 고려는 쏙 빼버렸지만, 실제로는 당시 홍건적과 주원장 그리고 원나라와 고려가 연합해 부딪친 최대의 전쟁으로 명나라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황하를 중심으로 중원의 패권장악을 위해 벌어진 전쟁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고우성은 황하 북쪽에 위치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사 원사 고려사 모두 이 고우성 전투와 그 이후 벌어진 수많은 전쟁 사실 기록들을 사서에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를 보면 10세기부터 고려가 망하고 명나라가 건국되는 15세기까지 황하는 이 지역을 흘러 중국의 동해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며, 만약 이 고지도의 황하의 위치가 명나라 건국 이전에 벌어진 고우성전투가 있던 황하의 위치와 동일하다면 이 고지도의 신뢰성에도 한층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게다가 이 지도에서는 고려사에 등장하는 고려말에 벌어진 홍건적과 황하의 수로의 모습도 비교적 정확하게 담고 있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바로 동강과 서강의 전투들인데 그건 한반도 개성에 있는 도시에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이 지도로는 모든 것들이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고지도가 고려의 왕건이 그렸고, 고려 황실에서 보관되었던 지도일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3) 천하고금대총편람도는 10~12세기 사이에 제작된 고지도로 15세기에 제작된 대명일통지의 지도나 1820년 청나라 시기에 제작된 대청광여도와 이 고지도와 비교할 때 보다 훨씬 이전에 제작된 고지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명청시대에 만들어진 이런 고지도들과 비교해서도 황하는 이미 약 200km 이상 북상한 위치에 있으며, 구글지도로 보는 현재의 황하는 더 북쪽으로 이동하여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 그려진 황하의 위치보다 550km 이상 북상해 있습니다.
4) 황하의 북상은 현재도 진행중일 가능성도 큰데 이는 단순한 강의 자연적 이동이 아니라, 중국 남부 중심부(남령산맥)의 융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고우성전투가 벌어진 1355년부터 19세기 후반 청나라 시절에 닥친 거대지진과 대홍수로 현재 위치로 황하가 마지막 변화되는 시점까지 불과 500년도 걸리지 않았으며, 황하의 북상거리도 550km가 넘는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지금 얼마나 지각 변동이 심한 대륙이라는 것을 밝혀주는 직접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5) 이러한 거대한 남령산맥의 융기는 우한 하류를 흐르고 있던 장강의 지류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큰데, 이는 과거 이 산맥에 막혀 거대한 담수호를 형성하고 있던 동정호와 포양호 등의 거대한 물의 압력이 지각이 융기하면서 강력한 압력차가 발생하면서 남령산맥 북쪽을 두부처럼 자르고 장강이 유로 변경 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구글지도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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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호와 무릉을 배경으로 고려시대 삶의 애환과 권선징악을 표현한 심청전을 만들었고 또 정선 강릉 등이 모두 우리선조의 삶의 터전이니 고려영토를 대륙 정선 강릉 동정호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동정호를 기준으로 호남 호북이라 불렀으니 틀림없 고려 남부가 아주 넓었다고 보여집니다
북경이 고려영토란 증거
오대산ㅡ 다섯 오, 높고평평할 대, 뫼산
대륙의 오대산은 꼭대기가 넓고 평쳥함, 한반도 오대산은 꼭대기가 평쳥하지않은 산 꼭대기
그럼 진짜 오대산은 북경 서쪽의 오대산이 진짜네요.
자금성이 고려영토란 증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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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 고대사관은 마치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이 다시 쪼그라들어서 섬나라가 되었다고. 미국이 영국의 원류라는 주장을 하는 것과 비슷하죠. 미국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것은 부정할수 없는 역사죠. 하화족 국가가 우리의 식민지는 아니었어도 절대 우리의 주인은 아니었던 것이죠.
지도를 보면 대륙에서 떨어져 나왔잖아요 우임금 시대 대홍수 이후 지리가 변했다 생각함
幽然齊魯吳越이 백잔 백제는 백제
확언 할수가 없으니
우산국은 산동반도 그때는 섬이었기에 내는 그리 아는데
그런데 어떻게 자기 조상의 역사를 까먹을 수 있었을까?
조선 초에 역사서를 불태우는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었을까?
역사란 게 왕족과 귀족들만 공부하는 것이라서?
그렇다면 대부분의 한중일 국민들에겐 그 역사가 중요한 건 아니겠네
어차피 우리들의 역사가 아닌 극소수의 지배층의 역사니까
천 년 전의 일을 가지고 현대인들이 싸우는 건 어리석은 일
그러나 천 년 전의 역사를 다시 밝히는 건 재미 있는 일 아닌가?
모두가 궁금해 하는데 왜 역사를 가지고 싸움질을 하지?
역사를 가지고 소송까지 거는 짓을 왜 하는 것일까?
다 옛날 일에 불과한데...
이성계 조선이 아니라 인조와 선조의 조선이 저런 작태를 벌인게지요. 하필이면 그시절부터 모든 역사서가 불태워 졌을 겁니다. 근데 웃긴게 임진왜란때 왜국의 요청으로 참전한 일본군대가 당대 역사 서적들을 자기들 나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정작 인조와 선조는 싸그리 싹싹 불태우려고 염병했지요.
이성계 조선이 한반도에서 시작한 것으로 단정 지으시는데 고려땅을 버리고 한반도 로 왔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제 견해로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집권했을때 까지는 대륙에 ....
예전 영상 보면 강화도나 남경 유수관 대륙으로 다 설명하셨는데요.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 내용을 보면 남경유수관(南京留守官) 양주(楊州)는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북한산군(北漢山郡)【남평양성(南平壤城)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영토를 설명한 부분이줘. 다시 말하면 고려의 영토 이지요. 그렴 여기서 양주는 어디라고 보시나요.
양주나 강화도가 대륙이면 고려의 남경 양주를 의미하지 않을까요. 이 영상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역사서를 이용해 한반도에 똑 같은 지명을 만들고 이동했다고 하는데. 양주의 지명으로 보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조선이 탄생됐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 시대로 보면 대륙에는 명나라 겠지요. 이성계도 양주에 수도를 정했다고 하지요. 이런 우연이 있나요. 이성계가 따라했나요. 고려사에 나오는 주평장이 마지막으로 대륙 회수에서 고려에 무기를 받쳐 홍건난이 진압됐다는 말이 뭔 말일꼬. 대륙 회수에서 홍건난이 진압되고 끝이 났는데. 어떻게 명나라 건국 홍건난을 일으킨 주원장이 대륙에서 명나라를 건국할 수 있나 의문이네요.
조선왕조실록은 20세기 일본이 재 편찬한 가짜 왜 그런가 고려가 대륙이였다면 조선도 대륙에 있어야 한다이지요. 이성계는 전조 충숙왕이 예전에 계신 남경(양주) 수도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조선의 수도를 정했다고 하기때문이다.
모든 게 다 올바르게 바로 서려고 하면 판을 엎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현재 가능할까? 사회 곳곳에 중국 공산당 세력이 암약하고 법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법을 만드는 국회의 대다수가 이미 중국 공산당에 포섭된 사람들인데 더구나 거대 야당의 대표가 중국 공산당 정치 자금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손아귀에 넣고 있는데 .......
이성계 조선도 대륙에서 일어나고 대륙에서 사라졌답니다.
정신승리는 좋지만 얼핏 동북공정같은데
삼국은 맞는데 고려는 이니다 만주까지가 맞지 ㅠ
공부좀 더하세요..
아니면 땟넘인가?
이성계는 한민족이 통일이 되면 민족의 역적으로 재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리, 백제, 신라, 발해는 물론 고리의 역사도 왜곡하고 어떻게 작게는 500에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왕조에 지도가 하나도 없다는게 도통 이해가 안됩니다. 얼마전에는 우연히 본 유튭에서 유튜버가 발해 유젹을 찾아 가면서 하는 말이 발해가 고구리 보다 더 컸다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 하는 걸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발해도 고구리의 연결이긴 하지만 발해가 고구리 보다 크다? 무슨 그건로? 아무튼 오늘도 힘든 지리, 지역명 공부 쉽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성계가 교묘히 대륙지명
짜 맞추어 놓았음 그러니
일본놈들은 얼마나 좋아
왜곡 하기 딱좋잖아요
수고했습니다
얼마나 명나라를 두려워했으면ㅡㅡ지도 지명을 이리 바꿀까?